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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문화예술 관련글

Classic & Trend - 장일범

by Wood-Stock 2011. 6. 13.

광장으로 나온 공짜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실험 ‘여름 HD 페스티벌’…
타임스스퀘어 등에 5천 석 마련해 시즌 오프닝 공연 실시간 상영

 

» 2010~2011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작품은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이다. 9월 27일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월13일 극장에서 리허설이 한창이다.

 

요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하 메트 오페라)은 세계 오페라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최고의 캐스팅으로 매일 밤을 ‘환희의 시간’으로 만든다. 그런데 이보다 놀라운 것은 뉴욕에서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돈 한 푼 안 내고도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트 오페라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여름 HD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올해는 8월28일부터 9월6일까지, 2009∼2010 시즌에 상연한 푸치니의 <토스카> <투란도트> <라보엠>,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비제의 <카르멘>, 베르디의 <아이다> 등 10개 작품으로 링컨센터 광장을 채웠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일반인을 위해 페스티벌 기간 내내 광장에서 지난 오페라 공연의 영상을 상영하는 것을 규모 있게 확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여름 HD 페스티벌에서는 관객 4만 명이 스크린을 통해 오페라를 감상했다고 한다. 대중 오페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메트 오페라 극장장인 피터 겔브는 “우리의 그랜드 오페라를 더 많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다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트 오페라의 공연 영상은 세계 1500여 개 극장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

 

메트 오페라는 지난 9월27일 2010∼2011 시즌 문을 열었다. 오프닝 공연으로는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을 선택했다. 바그너가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서사극 <니벨룽의 반지> 4개 악극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메트 오페라의 터줏대감이자 데뷔 40주년을 맞은 예술감독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고 세계적인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가 연출을 맡았다. 공연장에 가지 못해 아쉬워한 관객을 위해 메트 오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뉴욕의 상징인 브로드웨이 타임스스퀘어에서 스크린을 통해서도 같은 공연을 무료로 제공했다. 타임스스퀘어에 2천 석의 좌석을 마련하고 메트 오페라 극장 앞 조시 로버트슨 광장에도 3천 석의 좌석을 준비했다. 뉴욕시의 전폭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시에 라디오와 메트 오페라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생중계했다.

 

메트 오페라의 이번 시도는 오페라 역사에 매우 혁명적인 일이다. 극장 안에 숨은 공연을 실시간으로 광장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끌어냈다. 문화 콘텐츠의 노출이 수익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한 메트 오페라 경영진은 오페라의 대중화를 적극적인 방식으로 시도했다. 노력은 모객으로 이어진다. 메트 오페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뉴욕에 가면 ‘오페라 한 편 꼭 봐야지’ 하고 지갑을 열게끔 만들었다. 다른 예술단체들도 이제 비슷한 시도를 한다. 예전에는 예술단체들이 콘텐츠의 개방을 두려워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적극적인 노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작품에 친숙해지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메트 오페라와 관련해 반가운 소식이 들려 하나 덧붙인다. 한국 출신 테너 이용훈이 가을에 공연되는 메트 오페라의 베르디 대작 <돈 카를로> 무대에 선다. 세계적인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더블 캐스팅됐다. 11월29일, 12월3일과 15일, 18일 네 번의 공연에서 그를 볼 수 있다. 뉴욕과 유럽에서 활약하는 테너 이용훈이 한국 테너의 불모지인 메트 오페라에서 세계 최고의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점은 한국 성악의 진화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멋진 성공을 기다린다.

 

20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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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폐인이 나타났다

도서관 10분 콘서트·쇼핑 콩쿠르 인터넷 동영상 중계…
일상에 파고드는 클래식에 중독되는 관객들

 

» 국립경상대 도서관은 매주 목요일 로비에서 ‘10분 콘서트’를 연다.

 

최근 경남 진주에 있는 국립경상대에 갔다가 참 참신한 행사 하나를 알게 됐다. 이곳 대학 도서관 로비에서 이번 가을 학기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4시30분에 클래식 음악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첫 공연은 경상대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양준 교수가 이끄는 앙상블로 레퍼토리는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과 <중국의 북> 등이었고 곡에 대한 자세한 해설도 곁들여 콘서트를 열었다. 쇼팽,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곡들도 자주 연주되는 이 도서관 로비 콘서트의 제목은 ‘10분 콘서트’. 단 10분 동안만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 매우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클래식 콘서트는 늘 길다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10분 콘서트’라는 기획은 신선했다. 이효리의 <텐 미닛>이라는 곡이 바로 떠올랐다.

 

콘서트를 기획한 도서관장 황의열 한문학과 교수에게 물어보니 정말 이효리의 노래 제목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연주를 들려주는 것도 학업에 방해될 수 있어서 10분 만에 학생들에게 쉬면서 음악을 즐길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든 공연이었다. <텐 미닛> 가사처럼 10분 안에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자는 의미로 만든 공연이 바로 ‘10분 콘서트’였다.

 

도서관 로비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공연을 듣는 학생도 있지만 이제는 팬들이 많이 늘어 일부러 목요일 4시30분을 기억해두었다가 도서관을 찾거나 열람실에서 내려와 클래식 음악을 듣고 머리를 식히는 학생이 많아졌다고 하니 반갑다. 황 도서관장은 “종합문화센터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물론 안락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친근한 도서관을 만들고자 오후 시간에 일주일에 한 번 음악 감상으로 휴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화적 소양과 학습능률 향상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면서 도서관에서 각종 공연과 전시회를 마련해 지역민과 대학 구성원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잡게 하겠다고 밝혔는데 ‘10분 콘서트’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평소 클래식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클래식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좋은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가볍게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클래식을 접할 수 있다면 현대인의 각박한 삶은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질 거라고 믿는다.

 

지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피아노 부문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 중 하나인 ‘쇼팽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 1927년부터 열린 이 콩쿠르가 더 뜻깊은 것은 올해가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성대하게 열리는 콩쿠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더니 참가자 중에 요즘 대세를 반영하듯 동양세가 역시 강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콩쿠르들에 비해 본선 진출자가 조금 적어졌지만 동양의 한국·중국·대만·일본에 더해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미국의 출전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꼭 바르샤바에 가야만 이 콩쿠르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어디든 인터넷만 되면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피아노 콩쿠르 하면 권위적이고 비개방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는데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처음 시도한 인터넷 동영상 중계는 세계의 많은 피아노 음악 팬들로 하여금 콩쿠르에 관심을 갖게 했으며 더욱 많은 참가자를 불러오는 효과까지 생겨 콩쿠르 쪽으로서는 일석이조의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밤새워 실황을 보느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폐인’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한정된 소수의 청중과 심사위원들만 듣고 평가할 수 있었던 권위 있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변화를 시도하면서 이젠 청중도 나름 자신들의 우승자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처럼 인기상을 직접 팬들이 투표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경상대의 도서관 로비 콘서트와 바르샤바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인터넷 동영상 중계, 모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예술의 모습을 반영해주고 있다.

 

201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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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필과 점심을

권위의 상징이지만 늘 시대를 앞서간 그들,
또 하나의 파격적 시도 ‘런치타임·디지털 콘서트’는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하면 그야말로 클래식계 권위의 상징이었다. 특히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으로 이어지는 지휘자들을 통해 세계 클래식 음악팬들은 절대적 강자 베를린필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단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카라얀 시대에 대거 CD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런데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되는 베를린필이 사실은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의 사고를 지닌 오케스트라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단원들이 거세게 반대하던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를 베를린필에 최초로 입단시킨 것도 카라얀이었으며, 세계에서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발빠르게 CD 시대를 예감하고 가장 먼저 CD 제작에 나선 것도 베를린필이었다. 연주 영상이 담긴 LD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한 남자 중심으로 단원이 구성된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빈필에 비해, 자비네 마이어 사건 이후 베를린필은 일찌감치 문호를 개방해 외국 국적의 최고 단원들이 함께하는 국제적 오케스트라가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베를린필은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시간 단위로 이어지는 약속, 멈추지 않고 울리는 휴대전화, 점심은 신속하게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 필요한 쇼핑을 하는 풍속도가 거의 모든 도시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베를린필은 이런 정신없는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한낮에 만들어놓았다. 낮 시간에 베를린필홀이 비어 있다는 것에 착안해, 베를린시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점심 약속을 베를린 필하모닉홀에서 할 수 있게 점심 시간에 무료 콘서트를 열고 양질의 점심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게 하는 ‘런치타임 콘서트’를 만든 것이다.

 

이 콘서트는 2010년 9월7일부터 2011년 6월28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 베를린의 뛰어난 음악가들이 참여해 열리는데, 빼어난 수준의 실내악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공연 시간은 30~40분. 베를린필 단원과 베를린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의 교사들, 도이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단원, 베를린 콘서바토리 학생들도 참가한다. ‘런치타임 콘서트’는 직장인들에게 휴식 시간을 줌과 동시에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에게 베를린필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늦은 저녁 공연 뒤의 귀가를 부담스러워하는 노인들에게도 낮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이 공연은 공식적인 콘서트와 달리 좀더 가깝게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점심시간 콘서트와 더불어 베를린필을 베를린 시민을 넘어 전세계인이 더욱 가깝게 즐기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디지털 콘서트홀’이다. 베를린필이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로 시도한 디지털 콘서트홀은 마치 직접 프리미어리그 축구나 메이저리그 야구를 실황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베를린필의 베를린 필하모닉홀 공연을 고화질(HD) 수준으로 실시간으로 컴퓨터를 통해 감상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스템이다. 보통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실시간 공연을 볼 수 있는데, 놓친다 해도 아카이브를 통해 지난 공연들을 다시 볼 수 있다. 디지털 콘서트홀은 유료 가입을 해야 하는데, 1년 동안 볼 수 있는 가격이 150유로(약 24만원)다. 한 콘서트 또는 한 곡(2~3유로)씩 사서 들을 수 있게 해놓았으니 베를린필이 얼마나 실용적인지 알 수 있다. 베를린필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잘 활용한다. 트위터로는 역사 속의 오늘 베를린필에서 어떤 지휘자와 아티스트가 데뷔했는지를 매일 올려주며 음악과 동영상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20세기에 베를린필은 세계 오케스트라의 나아갈 방향을 이끌어왔다. 런치타임 콘서트나 디지털 콘서트홀이 또 어떤 파급효과를 세계 악단에 불어넣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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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앉은 레퍼토리에 빛을

살리에리를 복권시키고 거세가수들의 희생을 기리는 음반 낸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책임감

 

»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음반 <사크리피치움>.

 

최근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세계적인 명성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위촉됐다는 것이다.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페스티벌은 여름에 펼쳐지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함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가 자랑하는 양대 페스티벌 중 하나다. 그동안 이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였다. 그런데 새로 발탁된 사람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성악가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40대의 여성 현역 성악가가 예술감독이 될 수 있었을까?

 

최근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행보를 보면 수긍이 된다. 그녀는 최고의 콜로라투라 메조소프라노다. 바로크 오페라와 모차르트, 로시니의 작품에 탁월한 기량을 보여준 그녀는 속사포처럼 쏘아대고 빠른 고공비행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기교로 듣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탈리아인답게 활달한 성격을 지닌 그의 오페라와 독창회 무대는 늘 청중으로 가득 메워졌다. 목소리의 질량감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가볍고 솜털처럼 날아갈 것 같은 소리를 지닌 조수미씨와 같은데 음역이 더 낮은 메조소프라노라고 이해하면 빠를 것이다.

 

무대와 레코딩을 통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고, 단 한 차례 있었던 내한공연에서도 전석 매진을 기록한 바르톨리가 최근에는 책임감을 더욱 느낀 듯하다. 음반 레코딩에 심혈을 기울여 잘 불리지 않고 묻혀진 레퍼토리들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죽게 만든 사악한 인간이라는 꼬리표와 의혹을 갖게 된 빈의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을 바르톨리는 음반으로 취입했다. 살리에리는 결코 모차르트를 죽인 인물이 아니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잘못 알려진 그의 이야기를 바로잡고 싶었으며, 비록 지금은 저평가됐지만 살리에리가 가진 위대한 음악을 이탈리아 음악계의 후손으로서 전세계에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르톨리는 최근 <사크리피치움>(Sacrificium)이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라틴어로 ‘희생’이라는 뜻인 이 앨범은 바로크 시대로부터 낭만주의 초기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의 찬양과 오페라 무대를 위해 희생된 카스트라토(Castrato)들에게 헌정한 음반이다. 카스트라토란 거세한 가수다. 어린 시절 목소리가 아름다운 찬양대의 어린이 중 가난한 집안의 어린이를 골라 부와 명예를 보장해주며 거세를 했다. 남자 어른의 폐활량과 체격에 아름다운 고음의 목소리가 나오니 당시 청중들은 열광했다. 바르톨리는 당시 1년에 무려 3천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 어린이들이 거세당했고 세계 오페라 무대와 성당으로 팔려나갔다고 음반에 적고 있다. 카스트라토는 이탈리아의 수출품이었고, 예술을 위해 인권을 유린한 행위였다. 그런데도 교황이 있는 바티칸 가톨릭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목소리’라며 이런 행위를 묵인하고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파리넬리나 카파렐로 같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거세가수 카스트라토들은 헨델이 런던에서 올린 오페라 <리날도> 같은 작품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바르톨리는 자신과 음역대가 비슷한 카스트라토들의 노래를 발굴해 세계 최초로 레코딩을 한 것이다.

 

바르톨리의 노력은 음반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저명한 ‘에호클라식상’은 나폴리 카세라타 궁에서 카스트라토의 오페라 주역 분장을 하고 찍은 바르톨리의 <사크리피치움> 음반 DVD를 올해의 최고 성악 연주 리사이틀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세계적 명성의 독일 오페라 잡지 <오페른벨트>에서도 같은 부문의 상을 안겨주었다. 바르톨리의 이런 과거 음악사를 복구하고 새로운 음악의 길을 제시하는 노력들이 여세를 몰아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축제의 예술감독 자리까지 맡게 한 것이다. 그녀의 행보는 클래식 음악과 성악 발전을 위해 매우 균형 잡힌 모습을 띤다. 앞으로 바르톨리가 음반과 음악 축제를 통해 펼쳐 보일 새로운 레퍼토리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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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 중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

화려한 연주가 랑랑, 단정하고 귀족적인 윤디, ‘피아노의 여제’로 떠오르는 유자왕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 등을 보란 듯이 따돌리며 혼자 금빛 질주를 하며 막강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스포츠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경제에서도 그러하며, 문화예술에서도 놀라운 기세를 보인다. 특히 클래식 부문에서 중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를 배출해내고 있다. 중국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만 10만 명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수의 피아노 학도가 있을지는 자명한 일이 다. 한국의 중고 피아노들이 중국에 대거 수출될 정도로 중국에서 피아노는 공급이 늘 모자란, 가정의 필수 악기가 되었다.

 

이 피아노 열풍에 불을 댕긴 피아니스트가 있다. 바로 랑랑이다. 2살 때 만화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 협주곡>을 듣고 피아노 음악에 빠져버린 만주 랴오닝성 선양 출신의 랑랑은 중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베를린필·빈필과 협연한 연주가가 되었다.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는 물 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공연을 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흰색 의상을 입고 흰색 피아노를 치며 <황허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마치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무술 장면처럼 테크닉이 화려하고, 표정과 터치가 과장적이다.

 

랑랑은 2009~2010 시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예술가로 선정돼 1년 내내 베를린필홀에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독주회, 실내악 공연을 펼쳤는데 그가 출연한 모든 공연이 빠른 속도로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차지했다. 랑랑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100주년 기념 아시아 투어 때의 내한 공연 및 8천 석의 베이징 인민궁전홀 공연, 런던 BBC 프롬스의 거대한 로열앨버트홀 공연을 매진시켰다. 또 2007년 노벨상 수상식, 독일 월드컵 당시 뮌헨올림픽 스타디움의 개막 공연 갈라 콘서트에서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와 공연하고, 2008년 유럽컵 축구대회 폐막 콘서트에서 주빈 메타가 이끄는 빈필과 쇤브룬궁전에서 협연했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마침 랑랑의 내한 공연이 12월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화려한 연주로 대중의 찬사를 받는 동시에 전통적 해석을 무시하는 듯한 개성적인 연주 스타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이 연주자가 이번 내한 공연에서 과연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랑랑과는 또 다르게 단정하고 귀족적인 피아니즘으로 유명한 피아스니트로 윤디 리가 있다. 2000년 제14회 폴란드 쇼팽콩쿠르에서 18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당당히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혜성같이 떠올랐다. 그는 최근에 이름을 랑랑처럼 두 음절인 ‘윤디’로 바꾸고 연주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충칭 출신의 이 피아니스트는 얼마 전 내한 공연을 했는데,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퉈 원하는 독주자로 명성을 쌓고 있다. 대중적이고 전방위적인 유명인사인 랑랑과는 달리 전통적인 클래식 연주자의 행보를 보인다.

 

여기에 한 명 더 중국 음악인이 가세했으니 베이징 출신의 23살 여성 피아니스트 유자왕(왕위자)이다. 지난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개막 무대에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작고 가냘픈 체구지만 속주와 힘있는 터치로 큰 음량을 가진 그는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뒤를 이을 여성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고 있다.

 

랑랑, 윤디 그리고 유자왕에 이르기까지 3명의 큰 별을 중국이 갖게 된 것은 빼어난 실력에 더해 많은 인구를 가진 시장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세계 굴지의 음반사·기획사들도 성장하는 중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젊은 예술가들이 더욱 분발해, 이 중국 3인방을 능가할 건반 위의 예술가가 등장하길 기대한다.

 

201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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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곡으로 한 해를 마감하실 건가요

<호두까기 인형> 등 연말 단골 작품은 이제 그만…
<돈 카를로> <마술피리> 등 새로운 시도 나선 외국 극장들

 

12월이 되면 전세계 공연장들은 연말을 즐겁게 보내려는 청중을 위해 달콤한 공연을 준비한다. 미국의 각급 학교는 크리스마스부터 새해에 이르는 기간에 꿀맛 같은 일주일간의 겨울방학을 갖는다. 어른들은 이 기간에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물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매년 뉴욕시티발레단은 코흐극장에서 12월부터 1월 초반까지 크리스마스 전야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인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본떠 6~7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각 공연장에서 매년 <호두까기 인형>을 상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호두까기 인형>이 태어난 러시아에서는 이 작품을 연말연시에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 시즌 개막부터 올린다는 점이다. 결코 성탄절과 연말용 작품이 아니다.

 

»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마술피리>.

 

극장 중에는 늘 같은 단골 공연물을 올리는 곳도 있지만 팬들이 식상하지 않게 개성 있는 공연을 준비하는 곳도 많다. 미국 뉴욕은 올해 변화를 꾀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하 메트오페라)의 12월 주력 상품은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이었다. 어떤 해에는 사흘 건너 한 번씩 <라 보엠>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연출의 <라 보엠>은 뉴욕의 12월을 상징하는 공연 작품 중 하나였다. 역시 배경은 크리스마스 전야. 예술에 대한 꿈을 갖고 사는 파리의 미혼 남녀들이 만드는 사랑 이야기가 연말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올해 메트오페라는 <라 보엠> 공연을 적게 편성해놓았다. 오히려 베르디의 <돈 카를로> 같은 묵직한 작품을 12월 공연작 전면에 내세웠다.

 

짧은 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재미있는 오페라 공연을 마련한다. 메트오페라는 지난해 훔퍼딩크의 동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상연했다.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주는 다양한 무대 기법과 분장은 어린이와 가족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늘 원어 공연을 채택하는 메트오페라지만 이 공연만큼은 영어를 사용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배려했다. 이번 겨울방학 기간엔 매일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상연한다. 긴 오페라를 다 부르지 않고 효과적으로 축약하고, 가사는 영어로 번역해 공연한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에서 <마술피리>를 아이들을 위한 작품으로 줄여서 낮 공연을 하는 걸 예전에 볼 수 있었는데, 메트오페라 역시 아이들을 위해 오전 11시와 오후 5시에 <마술피리>를 선보인다.

 

한편 일본에서는 수십 년째 연말 전국 각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공연한다. 도쿄는 물론이고 전국을 돌면 매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 곡을 합창하고 듣지 않으면 새해가 오지 않는다는 듯 여기는 것이 일본인이다. 밸런타인데이를 꼭 챙기고 보졸레 누보 와인을 매년 빠뜨리지 않는 것처럼 이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합창>을 챙긴다. 이런 영향을 우리나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받아, 연말이 되면 <합창>을 꼭 연주하는 단체들이 있다. 물론 교향곡 <합창>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노래한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으로,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곡이 태어난 유럽에서는 연말이라고 해서 이 곡을 연주하거나 자주 듣지는 않는다. <합창>은 사시사철 연주하고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연말 클래식 무대에서도 ‘외국 공연 무작정 따라하기’가 아니라 좀더 참신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담긴 공연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매년 똑같은 곡을 듣고 보면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낸다는 것, 너무 단조롭지 아니한가!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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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벌레

아침엔 네덜란드에서 저녁엔 모스크바에서…
전세계 무대로 ‘살인적 스케줄’ 소화하는 러시아 대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한국 시각으로 지난 12월3일 새벽,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 발표가 있었다. 2018년 개최지가 발표되던 순간 러시아 유치단이 환호성과 함께 ‘우라!’(만세)를 외쳤다. 그런데 화면을 보니 유치단의 면면이 정말 놀라웠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아스널에서 뛰고 있는 러시아 국가대표 축구선수 아르샤빈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놀랍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러시아 출신으로 세계 최고의 인기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가 함께 유치전 승리를 기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러시아 유치단 구성에 난 한 방 먹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저거다! 러시아는 월드컵 유치에 러시아 최고의 ‘문화 브랜드’인,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와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여성 성악가를 함께 투입했던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소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직접 영어로 연설했을 때보다 내겐 더 충격적이었다. 러시아라는 국가는 놀랍게도 전통적으로 강렬한 문화·예술의 힘을 통해 월드컵 유치에 화룡점정을 해낸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는 ‘러시아 월드컵은 결국 마피아가 한몫 챙기게 될 것’이라고 조롱하는 기사들도 나오고 있지만, <더타임스>의 음악평론가 리처드 모리슨은 “영국을 위해서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같이, 쟁취해 오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썼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아침에 네덜란드에서 공연한 뒤 전용기를 타고 밤에는 모스크바에서 지휘하는 사람. 푸틴이 대통령이던 시절부터 전화 핫라인이 개통돼 있고 지금도 푸틴 총리와 핫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필요한 문제를 즉석에서 해결하는 음악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페스티벌 기간 중에는 매일 지휘하는 것도 모자라 하루에 두 번 지휘대에 오르기도 하는 지휘자. 그는 런던의 제1오케스트라인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활약하면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하는가 하면 일본으로 마린스키 극장 단원들을 이끌고 가 오페라 순회공연을 펼친다. 언제 곡들을 다 익히는 건지는 오직 그만이 안다. 모리슨은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을 가진 ‘일벌레’가 왜 영국에 필요하다고 쓴 것일까?

 

게르기예프는 지휘자이자 매니저 역할을 혼자 다 해낸다. 영국 예술계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모리슨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훨씬 큰 금액을 움직이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영국인 캐머런 매킨토시가 영국과 미국의 뮤지컬 신을 장악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연주단체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의 경이로운 활동에 놀라움을 표했다. “유일하게 게르기예프만이 모든 걸 갖고 있다. 세계의 많은 극장들이 경기침체로 예산을 줄이는 가운데 놀랍게도 56살의 오세티야 출신 지휘자가 100년 넘은 유서 깊은 마린스키 극장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발레와 오페라의 공장으로 만들고 있다. 빼어난 성악가와 발레 무용수를 끊임없이 공급하고 있으며, 2006년에는 1200석짜리 새로운 마린스키 콘서트홀을 짓고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마린스키 오페라보다 더 큰 2천 석짜리 새로운 오페라하우스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짓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선정된 게르기예프의 활동 반경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러시아 클래식 문화를 대표하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도 이제는 그가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린스키 오페라극장 음반 레이블을 만들어서 직접 레코딩을 한다. 유통단계를 줄이고 극장이나 오케스트라가 직접 음반을 만든다는 사실은 음반 레코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적인 시도다.

 

모리슨은 “게르기예프는 빼어난 음악가이면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매니저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영국 예술계에도 이런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운 어조로 말한다. 비단 영국 예술계뿐이랴. 우리 문화예술계에는 발레리 게르기예프에 필적할 만한 국제적인 거물이 한 명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적인 문화예술의 거물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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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필의 아름다운 꽃 장식은 어디서 왔을까

신년음악회 대표 브랜드 빈필하모닉이 특별한 이유, 자립형 운영 체제와 시민의 자발적 후원

 

정초에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우리나라에서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올해는 지난해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공연을 치렀던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지휘해 명장 카를로스 클라이버 이후 가장 우아한 빈 신년음악회를 만들어주었으며, 오스트리아인으로서는 카라얀 이후 최초의 신년음악회 지휘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빈필의 신년음악회는 그야말로 세계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브랜드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클래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평생에 한 번쯤은 보고 싶어하는 음악회가 됐다. 베를린필, 뉴욕필, 체코필 등 세계의 다른 오케스트라들은 아예 자신들의 신년음악회는 포기하고 빈필 신년음악회를 중계로 즐기며 12월31일 송년음악회에 치중하기도 한다. 빈필 신년음악회는 왜 이리 특별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 2011년 1월1일을 아름답게 장식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최고 브랜드다.

 

무엇보다 160년이라는 오랜 전통에서 나오는 특별한 분위기와 흠잡을 데 없는 탄탄한 실력,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 그리고 황금으로 장식된 유서 깊은 빈 무지크페어라인홀의 아름다움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빈필은 16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다. 기본기의 탄탄함은 다른 어떤 오케스트라와도 비교할 수 없다. 빈필은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없는 관계인데,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만이 빈필의 단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빈필에 들어오기 전 기악 연주자는 누구나 빈국립오페라에서 단원으로서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빈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에게 경제적인 면을 보장해주는 대신 다른 오케스트라들과 달리 철저한 수련 기간을 거쳐 빈필 단원이 되도록 하는 도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빈국립오페라와 빈필이 이런 형제 같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빈의 음악 문화가 탄탄히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빈필은 매우 민주적인 자립형 오케스트라 운영·경영 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움을 준다. 현대의 직업 오케스트라들은 거의 모두 연주단원과 행정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데 비해, 빈필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사장도 뽑고 이사도 뽑고 총무도 뽑는다. 그야말로 자치 정부다. 물론 이들도 모두 정기 연주회나 투어에서 연주를 함께 한다. 빈필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오케스트라다.

 

1930년대 빈필 단장이 처음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폴카, 행진곡만 갖고 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을 때 단원들은 일제히 반대를 했다. “우리가 어떻게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같은 경음악을 연주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19세기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연주회가 아니라 무도회에서 춤출 때 연주되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단장은 딱 한 번만 해보자면서 단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빈필의 요한 슈트라우스 음악회는 천신만고 끝에 열렸는데 청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고무된 빈필은 청중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음악회임을 깨닫고는 매년 신년음악회를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으로 연주하게 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빈 신년음악회는 빈필을 상징하는 대표 음악회가 되었다.

 

이번 2011 빈필 신년음악회에서는 프란츠 벨저 뫼스트와 빈필의 연주도 아름다웠지만 온통 핑크빛인 아름다운 꽃 장식은 분위기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빈필 신년음악회의 꽃 장식은 매년 다르다. 한 해도 같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꽃들은 매년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의 꽃의 도시 산레모에서 공수해온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어마어마한 양의 꽃을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산레모의 플로리스트와 정원사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플로리스트와 정원사들은 이 꽃을 이용해 빈필에 디자인을 기부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요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탈리아를 필두로 유럽 몇몇 국가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고 있다. 이럴 때 오페라극장과 오케스트라를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과 기부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메워주는 기부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각종 공연장과 오케스트라에 후원회가 생기고 또 열심히 자원봉사하는 모습을 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도 예술 후원의 뜻을 가진 이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예술을 후원하는 이들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 오페라단이나 오케스트라가 마음껏 훌륭한 연주와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해주길 기대한다. 빈필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예에서 보듯 결국 훌륭한 작품은 훌륭한 지원을 통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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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20세기, 뉴욕 무대에 서다

1972년 닉슨의 방중 소재로 한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 후진타오 방미 맞춰 메트에서 초연

 

요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에서는 1987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던 <닉슨 인 차이나>의 2월2일 메트 초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미국 순방, 날로 뛰어오르는 중국의 기세를 생각해보면 메트의 선택은 매우 절묘했다는 생각이 든다.

 

1972년 2월21일 베이징 공항.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에어포스1의 트랩에서 미국 대통령 닉슨이 내려오는 장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중국은 당시 ‘중공’이라고 불렸고, 미국과 서방세계의 적성국가였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 본인이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고 불렀던 중국 방문에 미국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매일같이 ‘죽(竹)의 장막’을 걷어올린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 TV 뉴스에 매달렸다.

 

» 오페라<닉슨 인 차이나>는 닉슨이 베이징 공항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곡가 존 애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작은 흑백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미국 대통령이, 그것도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붉은 중국’(Red China)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저우언라이와 헨리 키신저가 함께 만나는 극적인 모습이라니. 이건 진정한 오페라의 소재라고 생각했다.

 

앨리스 굿맨의 대본, 존 애덤스와 평생의 친구인 피터 셀라스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에서 굿맨과 애덤스는 6명의 비교되는 캐릭터로 등장인물을 줄였다. 20세기를 움직인 정치인들인 마오쩌둥과 아내 장칭, 닉슨과 아내 팻 닉슨,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3막6장짜리 이 오페라는 외면적인 사건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시선을 더욱 집중한다. 거대한 세리머니가 펼쳐지면서도 주인공들은 서양과 동양의 다른 시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독백과 대화를 토해낸다. 굿맨의 대본은 서양 오페라의 전통, 중국의 시와 연극의 전통을 모두 담았으며 르포와 실제 주인공들이 했던 말을 사용해 현장감 넘치고 유머러스했다. 이를 받아 애덤스는 반복이 많은 미니멀리즘적 음악을 사용한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오페라는 닉슨이 베이징 공항에 내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유명한 아리아 <뉴스란 참 미스터리한 것>을 부른다. 이어 마오쩌둥과 닉슨의 첫 만남, 미국인들과 중국인들의 축배 장면이 1막에서 펼쳐지며, 2막에서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된다. 팻 닉슨이 베이징의 명소 곳곳을 찾는 장면, 장칭의 안내로 문화혁명의 상징적인 작품을 관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팻 닉슨의 아리아 <이것은 매우 예언적이야>). 3막에서는 특이하게 주인공들의 내면세계가 펼쳐진다.

 

<닉슨 인 차이나>는 1987년 10월 휴스턴 오페라에서 초연을 올리며 미국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존 애덤스의 첫 오페라였던 이 작품은 정치적 제스처에 대한 패러디를 서사적이면서 풍자적으로 그렸다. 역사·철학적 이슈를 불러온 문제작이었다. 또한 미국에서 20세기 실제 사건과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현대 오페라, 예컨대 앤서니와 털라니 데이비스 작곡의 <말콤 X의 삶과 그의 시대>, 스튜어트 월래스와 마이클 코리의 <하비 밀크>, 마이클 도허티와 웨인 케스텐바움의 <재키 오>, 잭 헤지와 테렌스 맥널리의 <데드 맨 워킹>, 그리고 존 애덤스 본인의 <클링호퍼의 죽음> <닥터 아토믹> 같은 작품이 봇물처럼 나오게 한 신호탄이었다.

 

지난해 시즌에 존 애덤스의 <닥터 아토믹>을 올렸던 메트는 올해 2월 작곡가 존 애덤스의 지휘로 <닉슨 인 차이나> 초연을 했으며, 연출도 1987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초연을 했던 피터 셀라스가 맡았다. 또한 장칭 역은 메트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캐슬린 킴이 맡아 앞으로의 공연이 더욱 기대가 된다.


1972년 닉슨의 방중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2월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2월 첫쨋주에 중국의 춘절이 시작되는 만큼 메트의 <닉슨 인 차이나> 공연은 의미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닉슨이 1972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뉴욕의 중국 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닉슨이 중국에서 먹었던 디너 메뉴가 10달러에 불티나게 주문됐다고 한다. 과연 이번 공연은 또 어떤 중국 붐을 가져오게 될까. 20세기 걸작 오페라로 평가받는 <닉슨 인 차이나>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우리의 현대사를 다룬 걸작 오페라가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20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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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대가 집중탐구

세계적 추세인 전곡 연주, 국내에서도 베토벤·말러·브루크너 등의 교향곡 통째 감상할 기회 늘어

 

지난 2월21일 월요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열린, 프란츠 브뤼헨이 지휘하는 뉴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JP)의 공연을 보러 갔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8번과 9번. NJP는 일본 교향악계의 ‘앙팡테리블’로 불리며 NHK교향악단과는 또 다른 음악문화를 이끌어오고 있는데, 2월 한 달 동안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 초청된 고음악 지휘의 대가인 프란츠 브뤼헨은 데카 음반사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는 등 베토벤과 고전주의의 전문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지휘자다. NJP는 브뤼헨과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9곡을 모두 차근차근 연주해내는 대장정을 완주했다. 21일은 이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 이제는 거동이 힘들어 무대 위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겨우 오가는, 큰 키와 빼빼 마른 몸매의 노장 브뤼헨은 지휘대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러나 지휘를 할 때는 전혀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 베토벤과 고전주의의 전문가로 알려진 지휘자 프란츠 브뤼헨은 지난 2월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뉴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교향곡 9곡을 모두 연주했다.

 

브뤼헨은 주로 원전 악기를 사용하는 ‘18세기 오케스트라’ 등 고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음악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NJP라는 현대 악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원전 음악 연주 방법처럼 비브라토(현의 떨림)를 최소화하고 편성을 당대에 했던 것처럼 작게 하는 등 원전 연주의 방법을 적용해 공연했다. 이날 8번으로 시작해서 장대한 <합창> 전곡 연주를 모두 들은 청중은, 거동은 불편하지만 절제하며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낸 원전 연주의 명인 프란츠 브뤼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비단 일본에서뿐만이 아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전곡 연주 붐이 일고 있다. 지난해 내한해 클래식 팬들을 감동시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말러 탄생과 서거 해를 연거푸 맞이해 2009, 2010 그리고 2011년까지 3개년 계획으로 각기 다른 지휘자들을 내세워, 말러 교향곡 전곡 완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외에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전곡을 지난해 여름 백야페스티벌에서 연주했고,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등 교향곡 전곡 연주는 세계적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경기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 일주일간 이어졌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리사이틀,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가 있었고, 서울시향은 다시 말러 시리즈를 연주해나가고 있다. 국내 오케스트라들과 내한하는 오케스트라들은 지난해 내한했던 미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나 올해 내한한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처럼 또 한 명의 대곡 작곡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곡 연주 붐을 예고하고 있다.


올여름에도 기대되는 전곡 연주회가 열린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유대계 다니엘 바렌보임이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와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소년들로 구성된 평화의 사절인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이들이 공연할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도 정말 기다려지는 공연 시리즈가 아닐 수 없다.

 

박물관과 콘서트홀에 가는 중요한 이유 중에는 문화를 향유하고 음악을 즐기는 쾌락적인 기능 외에도 새로운 배움의 기쁨이 분명히 담겨 있다고 한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전곡 연주회에 참여해 한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즐거운 공부에 동참해보자.

 

2011.3.9 / 장일범 음악평론가

 

*‘장일범의 클래식 & 트렌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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