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
신화가 된 사진가 짐 마샬 ~ 록 포토그래프의 전설, 만신전에 오르다
기사입력 2010-03-26 오전 11:21:31
1966년 8월 29일 월요일,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에서 비틀즈의 공연이 열렸다. 2만5000명의 관중이 지켜본 비틀즈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존 레넌도 카메라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폴 매카트니는 관계자에게 공연을 녹음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를 들고 지켜본 이가 있었다. 짐 마샬. 유일하게 백스테이지 출입을 허가 받은 공식 포토그래퍼이자 1960년대, 70년대 음악계의 '결정적 순간'을 기록한 전설적 사진 작가였다.
"나는 신화도 좋아하고 진실도 좋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그 둘을 모두 담는 누군가를 사랑한다." 2005년 영국 음악 저널 <모조>의 이미지 어워드 시상식에서 U2와 메탈리카의 포토그래퍼이며 영화 <콘트롤>의 감독인 안톤 코베인이 짐 마샬에게 바친 헌사다. 그런 짐 마샬이 2010년 3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936년 시카고에서 출생,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960년 존 콜트레인과 만난 이후였다. 그가 성장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음악 신을 카메라로 담고 있던 무렵이다. 그의 사진을 본 존 콜트레인이 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존 콜트레인과의 첫 포토세션에서 찍은 아홉 롤의 필름은 이후 그가 걸었던 전설적인 록 포토그래퍼의 길에 출발점이 됐다. 눈을 감고 지긋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존 콜트레인을 담은 사진은 그의 음악에 담긴 불안한 격정, 내성적 성격과 비즈니스적인 냉철함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 셀러니어스 몽크 등 재즈의 거장들을 속속 자신의 라이카로 찍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마일즈 데이비스가 복서의 차림을 하고 링 위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에서 마일즈는 뮤지션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파이터처럼 보인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인생이 곧 재즈의 혁신사였고, 재즈에 대한 선입견과의 투쟁기였음을 감안한다면 음악 외의 장소에서 찍은 이 사진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진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밥 딜런,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롤링 스톤즈, 레이 찰스, 애니멀스 등과 작업했다. 그 중 어떤 사진들은 그들의 앨범 커버로 쓰였고, 또 어떤 사진들은 오늘날까지 그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적 이미지로 남았다. 뉴욕에서 아침 식사를 하러 가던 도중 타이어를 발로 차며 노는 밥 딜런의 사진은 초기의 그를 상징하는 사진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흑인 예수처럼 보이는 지미 헨드릭스의 사진이나, 마이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레이 찰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나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다만 볼 뿐이다"라던 그의 사진 철학은 포토 세션보다는 공연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앞서 말한 비틀즈의 마지막 공연뿐만 아니라 수많은 록의 역사적 현장에서 셔터를 눌렀다.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불태웠던 1968년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짐 마샬은 수석 포토그래퍼로 참가했다. 흑백이 아닌 생생한 컬러 사진으로,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신들린듯한 표정으로 불붙은 기타에 인화물질을 뿌리는 지미 헨드릭스를 담아냈다. 이듬해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도 역시 수석 포토그래퍼를 맡아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는 더 후의 광기를 포착했다. 역시 같은 해에는 조니 캐시와 함께 샌 퀜틴 감옥을 방문, 그곳에서 공연을 하는 조니 캐시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조니 캐시의 대표적인 이미지중 하나인,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사진이 바로 그 때의 기록이다. 음악의 역사가 쓰여지는 많은 순간, 짐 마샬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무대 아래서 음악인의 모습이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밥먹고 수다떨고 데이트하고 미팅을 갖고…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짐 마샬은 그런 평범한 모습에서 특별한 모습, 즉 결정적 순간을 뽑아낸 사진 작가였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해피>에서 세계적인 사진가가 우연히 찍힌 쵸코의 못된 표정에서 그녀의 진실을 읽어 냈듯, 짐 마샬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짐 모리슨과 리허설 중 휴식을 취하는 키스 리처드의 모습에서 그들의 본질을 포착했다. 동시대 비평이 읽어내지 못했던, 그리고 후대의 비평에 영향을 줬던 아름다운 진실을. 그들이 무대 위에 오르면, 형광등 혹은 백열등 아래서의 삶은 소거되고 서치라이트를 받는 삶이 시작된다. 몇 십에서 몇 만에 이르는 시선을 받으며 그들은 삶의 특별한 순간을 불태운다. 정해진 노래란 룰만 지키면 모든 자유가 허용된다. 그것은 일종의 신내림이다. 음악인들의 본질이자 무의식이 담긴 순간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음악을 탄생시켰을 본질과 무의식이 짐 마샬에 의해 영원으로 남은 것이다.
인터뷰와 해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음악적 요소들을 짐 마샬은 렌즈를 통해 본 건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시선은 그리고 역사가 됐다. 예술로서의 대중음악이 폭발하던 시대, 그래서 보다 많은 음악인들이 홍보나 마케팅이 아닌 음악적 진지함과 자의식으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시대 한 켠에 짐 마샬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유독 일찍 세상을 뜬 사람들이 많았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존 레넌, 재니스 조플린 등등. 천수를 누렸다해도 대부분 짐 마샬보다 먼저 하늘로 갔다. 그가 싸늘한 몸으로 발견된 호텔 방에서, 그는 함께 투숙하는 이 없이 혼자였다. 홀로 세상을 뜬 짐 마샬, 렌즈를 통해 그를 만났던 저 세상의 음악인들이 재회 기념 단체 사진 촬영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후대에 남겨준 것에 감사하며.
*아래는 짐 마샬의 홈페이지(http://www.marshallphoto.com/)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진 콜렉션의 일부다(편집자).
"나는 신화도 좋아하고 진실도 좋아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그 둘을 모두 담는 누군가를 사랑한다." 2005년 영국 음악 저널 <모조>의 이미지 어워드 시상식에서 U2와 메탈리카의 포토그래퍼이며 영화 <콘트롤>의 감독인 안톤 코베인이 짐 마샬에게 바친 헌사다. 그런 짐 마샬이 2010년 3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936년 시카고에서 출생,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960년 존 콜트레인과 만난 이후였다. 그가 성장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음악 신을 카메라로 담고 있던 무렵이다. 그의 사진을 본 존 콜트레인이 그에게 촬영을 부탁했다. 존 콜트레인과의 첫 포토세션에서 찍은 아홉 롤의 필름은 이후 그가 걸었던 전설적인 록 포토그래퍼의 길에 출발점이 됐다. 눈을 감고 지긋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존 콜트레인을 담은 사진은 그의 음악에 담긴 불안한 격정, 내성적 성격과 비즈니스적인 냉철함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마일즈 데이비스, 셀러니어스 몽크 등 재즈의 거장들을 속속 자신의 라이카로 찍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마일즈 데이비스가 복서의 차림을 하고 링 위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에서 마일즈는 뮤지션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파이터처럼 보인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인생이 곧 재즈의 혁신사였고, 재즈에 대한 선입견과의 투쟁기였음을 감안한다면 음악 외의 장소에서 찍은 이 사진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진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밥 딜런,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롤링 스톤즈, 레이 찰스, 애니멀스 등과 작업했다. 그 중 어떤 사진들은 그들의 앨범 커버로 쓰였고, 또 어떤 사진들은 오늘날까지 그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적 이미지로 남았다. 뉴욕에서 아침 식사를 하러 가던 도중 타이어를 발로 차며 노는 밥 딜런의 사진은 초기의 그를 상징하는 사진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흑인 예수처럼 보이는 지미 헨드릭스의 사진이나, 마이크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레이 찰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나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다만 볼 뿐이다"라던 그의 사진 철학은 포토 세션보다는 공연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앞서 말한 비틀즈의 마지막 공연뿐만 아니라 수많은 록의 역사적 현장에서 셔터를 눌렀다.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불태웠던 1968년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짐 마샬은 수석 포토그래퍼로 참가했다. 흑백이 아닌 생생한 컬러 사진으로,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신들린듯한 표정으로 불붙은 기타에 인화물질을 뿌리는 지미 헨드릭스를 담아냈다. 이듬해 열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도 역시 수석 포토그래퍼를 맡아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는 더 후의 광기를 포착했다. 역시 같은 해에는 조니 캐시와 함께 샌 퀜틴 감옥을 방문, 그곳에서 공연을 하는 조니 캐시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조니 캐시의 대표적인 이미지중 하나인, 카메라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사진이 바로 그 때의 기록이다. 음악의 역사가 쓰여지는 많은 순간, 짐 마샬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짐 마샬. 1936년 2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출생, 2010년 3월 미국 뉴욕주 뉴욕에서 사망. |
무대 아래서 음악인의 모습이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밥먹고 수다떨고 데이트하고 미팅을 갖고…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짐 마샬은 그런 평범한 모습에서 특별한 모습, 즉 결정적 순간을 뽑아낸 사진 작가였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해피>에서 세계적인 사진가가 우연히 찍힌 쵸코의 못된 표정에서 그녀의 진실을 읽어 냈듯, 짐 마샬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짐 모리슨과 리허설 중 휴식을 취하는 키스 리처드의 모습에서 그들의 본질을 포착했다. 동시대 비평이 읽어내지 못했던, 그리고 후대의 비평에 영향을 줬던 아름다운 진실을. 그들이 무대 위에 오르면, 형광등 혹은 백열등 아래서의 삶은 소거되고 서치라이트를 받는 삶이 시작된다. 몇 십에서 몇 만에 이르는 시선을 받으며 그들은 삶의 특별한 순간을 불태운다. 정해진 노래란 룰만 지키면 모든 자유가 허용된다. 그것은 일종의 신내림이다. 음악인들의 본질이자 무의식이 담긴 순간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음악을 탄생시켰을 본질과 무의식이 짐 마샬에 의해 영원으로 남은 것이다.
인터뷰와 해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음악적 요소들을 짐 마샬은 렌즈를 통해 본 건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시선은 그리고 역사가 됐다. 예술로서의 대중음악이 폭발하던 시대, 그래서 보다 많은 음악인들이 홍보나 마케팅이 아닌 음악적 진지함과 자의식으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시대 한 켠에 짐 마샬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유독 일찍 세상을 뜬 사람들이 많았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존 레넌, 재니스 조플린 등등. 천수를 누렸다해도 대부분 짐 마샬보다 먼저 하늘로 갔다. 그가 싸늘한 몸으로 발견된 호텔 방에서, 그는 함께 투숙하는 이 없이 혼자였다. 홀로 세상을 뜬 짐 마샬, 렌즈를 통해 그를 만났던 저 세상의 음악인들이 재회 기념 단체 사진 촬영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후대에 남겨준 것에 감사하며.
*아래는 짐 마샬의 홈페이지(http://www.marshallphoto.com/)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진 콜렉션의 일부다(편집자).
▲1960년의 존 콜트레인. 짐 마샬이 가장 아낀 사진 중 하나다. |
▲샌프란시스코, 비틀즈의 마지막 공연. |
▲1963년의 밥 딜런. |
▲1963년 몬터레이재즈페스티벌의 마일즈 데이비스와 스티브 맥퀸. |
▲1969년, 샌 퀜틴 감옥의 조니 캐시.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Copyright ⓒ PRESSian Corp. All rights reserved.
프레시안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므로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Art & Culture > 문화예술 관련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작 스캔들 - Classic (0) | 2011.08.07 |
---|---|
Classic & Trend - 장일범 (1) | 2011.06.13 |
꿈의 공장 - 김한용 (0) | 2011.04.11 |
한국 재즈의 대부, 전설 이판근 (0) | 2010.11.16 |
꿈의 음반 LP (0) | 2010.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