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음반을 찾는 사람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중고 LP 명반을 찾는 이들은 누구일까
요한나 마르치, 그리고 지네트 느뵈.
일반인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이 두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명성은 높았으나 음반 녹음은 적었던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마르치, 그리고 요절한 프랑스 첼리스트 느뵈는 당대에는 비운의 연주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의 엘피(LP) 초반(가장 처음 발매한 음반)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좋은 음반들로 꼽힌다. 마르치의 바흐 바이올린 무반주 파르티타 음반 석장짜리 세트는 나오기만 하면 500만원 이상이 기본이다. 느뵈의 바흐 무반주 첼로 음반은 1000만원을 호가할 정도다. 이베이 같은 경매 사이트에 이들 음반이 매물로 나오는 게 고작 1년 한두번인데도 수많은 전세계 엘피 마니아들은 음반이 나왔을 때 몇초 차이로 놓치지 않으려고 수시로 검색을 한다. 우리나라 주요 중고엘피 전문점들에도 이 음반들이 나오면 연락 달라며 부탁하고 기다리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 언젠가는 ‘꿈의 음반’을 갖게 되리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1948년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엘피는 오랫동안 음악팬들에겐 음악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80년대 초반 바늘 없이 디지털로 음악을 듣는 시디가 혁명처럼 등장했고, 10여년 뒤 엘피는 기술 흐름에 밀려 퇴장하고 말았다. 그러나 음반 매장에서 물러났을 뿐, 엘피는 지금도 사람과 음악을 이어주고 있다. 시디로는 나오지 않아 엘피로만 존재하는 음반을 찾는 이들, 당대의 음악을 당대의 연주에 당대의 저장매체로 듣는 매력에 흠뻑 빠진 음악팬들이 존재하는 한 엘피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태세다.
엘피 멸종이 엘피에 대한 열망 불러
클릭 한번이면 수백만곡을 내려받는 시대에 멸종된 엘피 음반을 수백만원씩 주고 사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묘한 노릇이다. 엘피의 종말은 엘피팬들에겐 오히려 엘피의 가치를 더욱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인터넷으로 전지구 차원에서 구매가 가능해지면서 팬들의 열망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마르치와 느뵈의 음반처럼 시디로 복각되지 않은 음반들의 가치가 치솟기도 하고, 엘피 전성기에는 큰 인기가 없었던 음반이 뒤늦게 희귀 아이템으로 각광받는 경우도 있다. 엘피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이다.
인터넷에서 인기 높은 엘피 가운데 하나가 아무도 예상 못했던 한국의 독특한 해적판 ‘빽판’이다. 외국 음반을 불법 복제한 한국의 ‘빽판’은 음반 재킷을 올컬러가 아니라 초록색이나 갈색으로 값싸게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군사독재 시절 오리지널 음반에 수록된 곡들 일부가 검열로 국내 라이선스 음반에서 빠졌을 때 원판 그대로 듣고 싶어하던 음악팬들의 갈증을 채워줬던 것이 빽판이었다. 재킷 디자인이 조금이라도 ‘야한’ 음반들은 라이선스로 발매될 때 어김없이 디자인이 바뀌었지만, 빽판에선 그런 법이 없었다.
이런 빽판이 외국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다. 녹색, 갈색으로 찍은 재킷 자체를 흥미로워하는 구매자들이 많아 1달러부터 100달러까지 다양한 가격에 이베이 등에서 거래된다. 한때 딥 퍼플의 빽판이 가장 인기가 높았고, 요즘에는 AC/DC나 퀸, 아이언 메이든 등 록그룹들의 빽판이 꾸준하게 팔리고 있다. 검열제도가 낳은 문화 사각지대의 변종이 한 세대 뒤 독특한 대중문화 골동품이 된 것이다.
빽판과 함께 외국 록그룹의 한국 라이선스 엘피판들을 찾는 외국 음악팬도 많다. 80~90년대 국내 라이선스 음반 가운데에는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서만 나온 것들이 상당했는데, 이런 음반들이 특정 가수들의 음반 전체를 모으는 외국 음악팬들에게 중요한 수집 대상이다. 또한 검열제도 탓에 국내에서 디자인이 바뀐 엘피들도 ‘디퍼런트 커버’(변형 커버)로 주목받는다. 아이언 메이든의 음반 <피스 오브 마인드>의 경우 원래 재킷에는 해골이 그려져 있는데 국내 검열 탓에 속지에 있던 이미지가 표지로 바뀌었는데, 이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별한 음반으로 아이언 메이든 팬들이 구입하고 있다. 이런 한국식 변형 엘피들은 우리 돈 2만~3만원에 팔린다.
한국에서 엘피 생산이 중단된 것은 90년대 중반, 어느새 10여년이 흘렀다. 귀한 줄 몰랐던 엘피들이 골동품처럼 변하면서 클래식에 견주면 싸구려 취급을 받았던 가요 엘피들이 새로운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도 엘피 단종 이후 등장한 주목할 만한 풍경이다. 한국 옛 가요를 재발견한 공의 절반쯤은 일본 마니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메모지에 어설프게 음반 이름을 적은 일본 관광객들이 서울시내 중고엘피점들을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60년대 한국 록과 포크음악 엘피들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중현 초기음반 한때 100만원 호가하기도
가요 엘피 역시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엘피로는 나왔지만 시디로는 나오지 않은 것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신중현의 초기 음반, 그리고 잊혀진 가수 김정미 등 한국 사이키델릭 음반은 한때 100만원 이상으로 값이 뛰었고 지금도 내려올 줄 모른다. 임아영과 이정화, 그리고 포크 사단의 김민기·한대수·양병집과 김희철, 데블스와 라스트찬스 같은 그룹들의 음반도 최고 인기 품목들이다. 70년대 활동한 시각장애인 가수 윤용균, ‘불나무’를 부른 방의경의 엘피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 팬들이 모두 탐내는 인기 음반이어서 200만원 이상의 가격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소외되었던 우리 옛 가요 엘피들에 대한 관심은 이제 50~60년대 트로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당시 ‘뽕짝’ 음반들은 5만~8만원 선, 특히 60년대 영화 포스터를 재킷 디자인으로 썼던 모음집들은 20만원 이상에도 거래되고 있다. 일부 소형 음반사들은 수백장 단위로 인기 엘피를 복각 판매하기도 한다. 정식 저작권 계약이 이뤄진 것은 아닌데 특별 소량생산이다 보니 나오자마자 절반 이상이 일본 마니아들에게 바로 수출되는 실정이다.
가요는 클래식과 달리 시디가 나온 뒤에도 저렴한 테이프가 주를 이뤘기 때문에 소량 발매된 시디들도 인기가 높아졌다. 2001년 나온 넬의 1집은 20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고, 옛 동물원 멤버인 이성우·윤도현과 김현성 등이 동인으로 활동했던 ‘종이연’ 시디도 최소 몇만원은 줘야 살 수 있는 음반이 됐다.
중고엘피 시장이 자리잡은 것은 인터넷이란 장이 펼쳐지면서 개인 소장자들이 ‘개미군단’처럼 등장해 거래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고음반가게를 뒤지며 자신만의 ‘꿈의 음반’을 찾는 이들은 물론 대부분 수집가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애호가들이다. 회현지하상가에서 중고엘피점 클림트를 운영하는 김세환(49)씨는 값비싼 고가 엘피를 찾는 이들은 결코 돈이 많은 호사가들이 아니라고 잘라말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엘피판을 못 산다. 이거 말고도 할 게 많으니까. 골프도 치고 아파트 평수도 늘려야 하고…. 비싼 엘피 사는 사람들은 다른 것 안 하고 아껴 모은 돈으로 신중하게 고르는 사람들이다. 음악이 좋고 음반 자체가 좋아서 언젠가는 원하는 판이 나오기를 기다릴 줄 아는 이들이다.”
엘피 음반을 모으고 사고팔기도 하는 권태주(44)씨는 시디나 엠피3보다 엘피가 원하는 음악을 찾기에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몇만원씩 하는 음반을 사는 사람은 일부일 뿐, 대다수 엘피팬들은 음반가게에서 시디로 사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음악을 비싸지 않게 중고엘피로 구할 수 있어서 즐긴다는 것이다. 엘피 중고시장이 아직 정착 단계다 보니 인기 음반들에 가격 거품이 끼어 있는데 앞으로 엘피 시장이 더 활성화되려면 합리적인 가격과 정보 체계가 갖춰지는 것이 급선무라고 권씨는 지적한다.
디지털 시대, 음악은 아날로그의 길에서도 흐른다. 에디슨이 음악을 저장하는 법을 찾아낸 이래 엘피는 가장 오래 음악을 담아왔고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꿈의 음반’을 찾는다. 1000원짜리든 1000만원짜리든 그 한 장이 다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꿈의 음반이다.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엘피의 시대는 결코 저물지 않았다. 이 시커먼 비닐덩어리가 앞으로 최소 한 세대 정도는 너끈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엘피팬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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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원대에 거래되는 클래식 명반들
1. 페터 마크가 지휘한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50년대 녹음한 ‘한여름밤의 꿈.’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힌다. 2.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콘체르토’.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느뵈가 남긴 몇 안되는 음반으로 인기가 높다. 3. 데카에서 50년대 나온 ‘무도회의 초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의 대표적 무곡 연주를 모았다. 최고의 발레 지휘자로 꼽히는 알베르트 볼프가 지휘한 파리 콩세르바투아르 오케스트라 연주. 4.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고르토의 음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고르토는 파블로 카살스, 자크 티보와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
“엘피 안에 인생이 있다”
김갑수·윤결 등 엘피 마니아들이 말하는 ‘왜 엘피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엘피 애호가라면 첫째, 둘째로 꼽히는 이가 시인 김갑수(51·사진)씨다. 그의 작업실 ‘줄라이홀’은 가히 엘피로 쌓은 성채다. 서울 마포 주택가 골목, 평범한 상가건물 지하에 자리잡은 줄라이홀은 3만장의 엘피와 수천장의 시디, 그리고 족히 집 한 채 값에 이르는 빈티지 오디오들로 가득 차 있다.
김씨는 엘피 원판을 구하기 어려웠던 80년대 대학 시절부터 미군들이 가져온 원판을 구하러 동두천을 헤맸고,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로는 거의 모든 수입을 음반과 오디오에 써왔다. 남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늘 “다른 것을 안 하니까”라고 똑같은 대답을 한다. “똑같은 음악이 곰삭아 노골노골거리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느낌” 때문에 엘피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엘피는 트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겁니다. 엘피는 하나하나가 나만의 것이란 고유성이 있어요.” 엘피가 들어오면 그는 먼저 천으로 닦고, 세척 용액을 문질러 때를 벗긴다. 그리고 진공흡입기로 용액을 빨아내 말린다. 재킷에 터진 부분이 있으면 정성껏 테이프로 붙여 수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낡은 음반을 손보는 과정 전체가 그에겐 음악을 듣는 연장선이다.
“음악은 귀에 들리는 소리만이 아닙니다.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이 더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연장까지 가고, 기다리고, 객석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 등등이 사람을 긴장시켜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엘피를 공들여 다루는 몸짓이 모두 음악입니다. 엘피는 음악을 더 귀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얼마 전, 그는 엘피 하나를 틀어볼 생각도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기만 했다고 한다. 한 영국 애호가가 세상을 떠난 뒤 한국으로 건너온 음반이었다. 새로 들여온 엘피를 반갑게 꺼내는데 음반에 붙어있는 은회색 머리카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노인이 런던 자기 방에서 그 음반을 평생 듣던 모습이 떠올라 순간 너무나 뭉클했습니다. 인생이 엘피 안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자신이 엘피광이지만 그는 누구나 엘피를 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이 인생에서 여가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음악에 많은 것을 걸고 싶은 사람이라면 엘피를 한번 만나보라 권한다. “엘피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들어가거든요. 대신 ‘음악이 얼마나 강하게 다가오는지’ 느끼게 될 겁니다.”
김갑수씨가 음악 못잖게 엘피란 물건 자체의 매력을 예찬하는 애호가라면, 독립영화 감독 윤결(37)씨는 “엘피가 내게 가장 효과적인 음악 저장매체이기 때문에 엘피를 듣는다”고 말한다.
“미클로시 페레니란 첼리스트를 예로 들면, 그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일생 동안 두번 녹음했습니다. 2000년대 나온 페레니 음반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가 30년 전 낸 먼저 음반이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시디가 없었으니 엘피로만 나왔어요. 그 음반을 들으면 다시 페레니가 사사한 야노시 스터르케르는 어떤 음악을 했는지 다시 들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시대 연주자들의 해석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옛날 음반들이 엘피로만 나와있으니까 엘피를 찾아 듣는 겁니다.”
윤 감독은 엘피를 듣는 것을 사람들이 현재와 동떨어진 향수, 추억을 추구하는 회고적 취미로 보는 것이야말로 오해라고 말한다. 지금 연주자들이 전범으로 삼는 다양한 연주들을 찾아 듣기에 시디보다 엘피가 더 낫기 때문이란 것이다.
“간혹 시네마테크에서 고전 영화들을 틀어주잖아요? 그 낡은 필름에서 우리가 뭔가 발견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시선’일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없는 다른 시선이죠. 엘피는 불편하고 수고로워요. 카트리지 하나만 해도 침압을 맞추고, 수평도 맞추고, 스타일러스와 스핀들의 간격도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수고로움을 통해 음악에 대한 다른 시선을 얻어요. 그래서 엘피를 듣습니다.”
김갑수 시인이 본 디지털 음악
“디지털 음악, 편리한 만큼 과잉소비 아날로그 닮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
여러 해 클래식 음악방송을 진행해온 음악애호가 김갑수 시인은 3만여장의 엘피(LP)판을 소장한 개인작업실 ‘줄라이홀’을 만들 정도로 아날로그 음악에 빠져 지내지만, 디지털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나는 시디(CD)와 엘피를 모두 사용하지만, 엘피는 음악 감상을 위한 절차가 번거로워 마음먹어야 틀게 된다”고 말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한’ 엘피 음반 듣기는 그 복잡한 과정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늘’ 듣는 게 애초 불가능한 소리다. 양적으로도 적게 섭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엘피의 번거로움은 소리의 가치를 소중하게 만드는 하나의 의례가 됐다.
김갑수 시인은 “디지털 음악은 편리해진 만큼 과잉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소중하게 여겨온 본래의 가치를 왜소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삶이 디지털로 가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흐름지만,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왔던 것이 한낱 소비상품으로 전락한 것을 보는 느낌이다.
그는 음향기술 발달에서 최신 디지털 기술의 기여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한다. 진공관 방식의 스피커 등 초기의 오디오가 여전히 가장 우수한 편이고, 돌비의 잡음제거 기술이나 5.1채널과 같은 입체음향 기술 역시 영화 등에서 주로 쓰이지 ‘음질’을 따지는 음악 애호가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조미료처럼 뭔가를 인공적으로 더해 맛을 내는 기술이 처음엔 환호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꾸미지 않은 알맹이를 직접 체험하는 게 소중하다는 경험이 음악에서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시디가 등장한 초기에는 리코딩 마스터링 과정에서 잡음을 빼는 게 당연하게 수용됐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잡음을 제거하지 않는 게 일반적 제작방식이다.
하지만 디지털 음향으로 음악적 체험을 시작한 사람은 아날로그 소리에 대한 감각이 무디기 때문에, 현재의 디지털 음악이 제한된 소리이자 본디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힘들다.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세대에 의해 밀려나는 게 운명이다.
디지털 음악도 본디부터 있던 소리의 아날로그적 특성을 더 닮아가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파일을 담는 플래시메모리의 한계와 가격 때문에 음질이 낮은 엠피3가 사실상의 표준으로 채택됐지만, 최근의 사용환경은 더이상 저용량 기술표준을 고집해 음질을 포기할 이유를 줄였다. 김 시인은 “산업화 초기엔 인간의 물리력을 극복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으나 이후 환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방식의 지속가능한 개발이 중요해진 것처럼, 디지털 또한 인간의 생래적인 것과 조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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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맨’ 사라졌지만…재발견되는 아날로그
소니, 생산중단 선언 디지털에 두손 든 셈
원음의 풍부함·감성 되살리는 기술 개발 새로운 과제로 남아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해온 음악이 디지털로 속속 투항하고 있다. 지난달 소니는 음악 감상 문화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워크맨’의 생산을 중단했다. 애플은 지난 17일부터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비틀스의 곡들을 음원판매 사이트인 아이튠스스토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청각이라는 원초적이고 직접적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음악이 디지털 기술 때문에 달라지고 있다. 모든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음향이 0과 1이라는 전자적 정보로 전환되면서 일어나는 변화다. 저장과 복제가 간편해지고 이동성이 부여돼 음악을 듣는 사람이나 시간은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 늘어났다. 디지털로 바뀐 소리는 편리해지고 다양한 기술과 접목되면서 더 나은 청각 경험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새로운 과제도 함께 던지고 있다.
■ 디지털 덕분에 공연장과 스테레오 스피커를 통해 공간의 울림을 느끼며 즐기던 음악 감상이 디지털 환경에선 주로 이어폰과 헤드폰을 통해 귓속에서 이뤄진다. 휴대전화, 엠피(MP)3 등 개인용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음악 감상의 조건에 맞는 새로운 음향 기술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음향기술 업체인 돌비는 최근 피시와 모바일 환경을 위한 새 기술을 선보였다. 스마트폰에서 엠피3 파일을 들을 때 낮은 음역대를 키우고, 디지털 압축과정에서 사라진 높은 음역대를 복원해주는 ‘돌비 모바일’이란 기술이다. 가상화 5.1채널을 적용해 서라운드 효과의 입체감을 이어폰에서도 즐기도록 해주려는 시도다. 사람이 소리를 인식하는 구조를 연구하는 음향심리학의 도움도 크다. 돌비가 최근 넥슨의 온라인 게임에 적용한 기술은 가상현실을 더욱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게임 속 캐릭터에 가까이 가면 음성이 커지고, 멀어지면 작아진다. 게이머들이 서로 벽을 등지고 있으면 음향이 반사돼 들리고, 장애물에 막혀 있으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젠하이저, 소니 등의 소음제거 헤드폰은 항공기나 열차 등에서 들리는 소음 주파수를 분석한 뒤 이를 상쇄하는 전파를 발생시켜 무소음 상태를 만드는 기능을 구현해, 높은 가격에도 만족도가 높다. 닛산과 혼다의 승용차에도 같은 원리의 소음제거 기술이 적용돼 외부 소음을 크게 줄이고 실내를 음악 감상실로 만들었다. 디지털 기기에서는 아무리 복제와 재생을 반복해도 음질 변화가 없으며, 메모리와 재생기술의 발달로 음질도 더 충실해져가고 있다.
■ 디지털 때문에 디지털 환경은 ‘원음’(Original Sound)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임상완 돌비코리아 대표는 “아날로그는 모든 게 녹음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리까지 담기는데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원음’에 길들여져왔다”며 “디지털 기술로 불필요한 소리를 제거할 수 있게 돼 시디(CD)나 엠피3의 음질은 깔끔해졌지만, 동시에 차갑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돌비는 40년 전 테이프 녹음 때 잡음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해 인기를 얻고 카세트테이프의 대중화를 가져왔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이를 선호한 것은 아니다. 음악 재생기기들은 잡음이 섞인 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돌비 기술 활성화를 감상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엘피(LP) 음반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모든 음역대를 제한 없이 녹음하는 데 반해, 시디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를 제거하고 녹음한다. 가청 주파수 대역인 20~2만㎐ 안의 소리만을 녹음한다. 저장용량의 한계 때문이다. 시디 한 장에 담기는 용량은 700메가바이트로 엘피판과 비슷한 60분 안팎의 연주시간을 확보하려면, 불가청 영역대를 제거한 채 녹음해야 한다. 엠피3는 시디의 음원을 다시 10분의1 크기로 압축하는 파일 형식이다.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서 가장 널리 쓰이지만 음질이 낮다.
디지털 음악은 불필요한 소리라고 보아 잡음과 불가청 주파수 대역을 제거했는데, 소리의 풍부감과 깊이가 함께 사라진 결과를 낳았다. 귀로만 음악을 듣는 게 아니고, 들리지 않는 주파수대의 소리도 군더더기가 아니었다. 녹음 과정에서 사라진 소리라서 아날로그 시절처럼 ‘돌비 비활성화’를 통해 되살릴 수도 없다. 디지털 기술은 이어폰에서도 입체음향을 느끼게 해주고 엠피3에서 블루레이처럼 더 나은 음질로 진화하며 더 충실한 ‘원음’을 추구하겠지만, ‘무엇이 더 좋은 소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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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사내들의 공간…음악은 술을 타고
트래픽·피터 폴 앤 메리·별이 빛나는 밤에 등 엘피 술집들
90년대 중반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엘피(LP)판들. 어디에 가면 손쉽게 만날 수 있을까? 바로 엘피판을 수천장에서 1만장 이상 보유하고 있는 음악바다. 이들 술집의 공통점은 10대 시절부터 팝에 빠져 평생 엘피를 모아온 마니아들이 술집을 냈다는 것이다. 또 엘피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40대 남성들이 압도적인 손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술집의 신청곡 1위는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보유 LP 1만5천장 ‘트래픽’
트래픽에 들어가면 한 벽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까지 쌓여 있는 엘피판에 놀라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음악실 디제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오영길(54) 사장이 그때부터 모은 엘피들이다. 집에도 5천장이 더 있다고 한다. 80년대 초 경희대 앞에서 음악다방을 하다 90년대 초 종로로 옮겨 음악카페를 운영한 뒤 2002년 이곳에 술집을 연 오 사장은 엘피를 모으는 재미를 ‘보물찾기’에 비유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엘피가 있습니까? 그중 내가 가진 음반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하죠. 특히 재킷을 봤을 때 안에 무슨 음악이 있을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음반을 살 때 여기엔 또 어떤 음악이 들어 있을까 하는 그 셀렘, 그리고 정말 좋은 곡이 들어 있을 때 그 기쁨이 바로 음반을 모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런 설렘과 기쁨으로 젊은 시절 청계천과 회현동 지하상가, 용산을 비롯해 지방에 1박2일 원정까지 가면서 중고판 가게를 뒤지며 살았단다. 손님의 80%가 단골이어서 손님들끼리도 친하다는 이 가게. 주인장은 자녀들에게도 대를 이어 이 가게를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위치: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 맞은편 가로수길 입구. 영업시간: 저녁 7시~새벽 3시. 일요일은 휴무. 술: 위스키·와인·맥주·칵테일 등. 안주: 마른안주·치킨·과일 등 2만~3만5000원. (02)3444-7359.
스피커 빵빵 ‘피터 폴 앤 메리’
6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포크송 그룹의 이름을 따 2006년에 문을 연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보랏빛 소파들이 나른하게 놓여있고 우아한 장식장엔 고급 양주들이 자태를 뽐내고, 주인장이 축음기를 손으로 돌려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을 틀어주는 순간, 1940년대 고전영화 속 어느 사교클럽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엘피판을 9천장 보유하고 있지만, 엘피판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 화려한 스피커들과 오디오 기기들이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음악이 너무 좋아” 무작정 가게 문을 열었다는 한계남(55) 사장은 직장인 시절부터 인터넷에서 이름을 날리던 오디오 전문가였다. 가게에 보유하고 있는 턴테이블 3개 중 하나는 1천만원짜리 일본 마이크로제인데 직장생활을 하던 97년에 마련한 것이다. 스피커는 미국제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1928년산 모델을 구하고 싶었는데 구할 수가 없자 직접 설계해서 제작했다. 천장에는 대포처럼 기다란 보스(BOSE)제 대포 스피커가 매달려 있다.
“장사가 잘돼도 그만 안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지만 다행히 장사는 잘된다. 금요일 밤에는 자리가 없어서 많은 손님들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위치: 압구정역 4번 출구 나와서 압구정성당 바라보고 왼쪽 골목. 영업시간: 저녁 7시~새벽 2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되 일요일은 사정에 따라 쉴 때도 있다. 술은 위스키·맥주·와인 등. 안주는 마른안주·소시지·과일 등 1만~5만원. (02)547-2838.
태평로와 정동 두 곳에 있는 ‘음악과 사람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음악과 사람들’은 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종로와 무교동에서 각각 음악카페를 운영하던 친한 형·동생 사이였던 두 명의 사장이 비슷한 시기에 재개발로 가게를 옮기게 되면서 이름을 똑같이 지은 것이다.
우선 태평로 ‘음악과 사람들’은 벽돌로 마감한 내부 인테리어 덕분에 어느 가정집의 넓고 아득한 거실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준다. ‘필링’과 ‘마이웨이’를 들으며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음악에 빠진 노희택(43) 사장은 이미 고등학교 졸업할 때 보유한 엘피판이 1천장에 이르렀다. 이곳에 보유하고 있는 엘피판은 4500장, 시디는 1400장 정도다. 한 손님이 아무리 많은 신청곡을 제출해도 웬만하면 모두 틀어주려고 노력한다는 게 이 집의 특징이다.
정동 ‘음악과 사람들’은 19년간 여행업에 종사하던 박용훈(49) 사장이 집에 넘쳐나는 엘피판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들고 나와서 가게를 연 곳이다. 박 사장이 이전에 무교동에서 운영하던 음악바 ‘밀워키’는 손님이 넘쳐나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는 손님이 있을 정도였단다. 재개발로 정동으로 옮긴 뒤에는 근처 신문사 기자들이 마감 뒤 많이 오는 탓에 술집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4시30분에 문을 연다. 이 가게의 특징은 신청했던 곡이 없으면 1주일 안에 반드시 판을 확보해놓는다는 것. 박 사장은 “곡이 없으면 1주일 안에 중고가게를 다 뒤져서 사오죠. 그게 밀워키 때부터 손님과 해온 유일한 약속”이라고 말했다.
태평로점 위치: 삼성생명 본관 맞은편. 영업시간: 저녁 7시~새벽 2시. 토·일요일 휴무. 술·안주: 양주·맥주·안주로 구성된 폭탄주 세트(12만~25만원)가 인기. (02)738-9995. / 정동점 위치: 경향신문사 맞은편. 영업시간: 오후 4시30분~새벽 3시. 일요일 휴무. 술·안주: 양주·맥주·안주로 구성된 폭탄주 세트가 12만~16만원. (02)778-2003.
홍대 앞 명소 ‘별이 빛나는 밤에’
주변에 엘피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술집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뿐만 아니라, 취재한 대부분의 엘피 술집에서 이구동성으로 추천한 집이다. 디제이 생활을 20년 정도 하다가 2001년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마련한 유민규(43) 사장은 이 시대 가장 유명한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게 이름을 따왔다. 엘피판은 가게에만 6천장 정도 있고 자택에도 3천장 정도 있다고 한다. 홍대 앞에 있다 보니 다른 가게보다는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젊은 편에 속한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많이 쓰이는데 최근에는 드라마 <파스타>에 등장하기도 했단다. 대학생 손님도 점차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다수 손님은 30~40대 남성들이다.
위치: 홍대 앞 주차장 골목. 영업시간: 저녁 7시~새벽 3시. 일요일 휴무. 술: 위스키·와인·맥주 등. 안주: 대구포·소시지·과일 등 1만2000~3만원. (02)337-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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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먼지 제거 순서〉 1. 엘피 표면을 물로 닦아낸다. 2. 찌든 때의 정도에 따라 알맞은 세척액을 고른다. 3. 세척액을 엘피 표면에 바른다. 4. 엘피를 세척 건조기인 VPI에 놓고 돌리면서 거품을 낸다. 5. 건조대에 엘피를 놓고 충분히 말린다.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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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만나는 옛노래·옛물건
지직거리는 LP판, 70ㆍ80의 노래, 이소룡과 달고나…
LP판을 기억하시는지. 그 까맣고 동그란 판을 후후 불며 살며시 턴테이블에 내려놓던 순간의 설렘. 혹 '튈까(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민감한 바늘이다)' 째려보며 정확히 첫 라인에 맞춰 내려놓던 그 바늘. '지직 지직' 음악이 시작되기도 전에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던 그 잡음. 모든 게 훈훈하다는 느낌이 든다. 첨단과 유행의 거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한복판에서도 LP판이 버젓이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날로그는 죽지 않는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
◆ 디지털의 무장 해제 … 트래픽ㆍ피터 폴 앤 메리
= 이곳 기가 막힌다. 우선 장소. 첨단 유행 패션의 아지트 가로수길이다. 초입 스타벅스 대각선 맞은편엔 묘한 간판 하나가 내걸려 있다.
'트래픽(TRAFFICㆍ02-3444-7359)'. 아니, 속도의 시대에 트래픽이라니. 내부는 더 놀랍다.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면 입이 쩍 벌어진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게 죄다 LP판이다. 이 카페 사장인 오영길 씨가 스무 살 때부터 모은 LP판은 모두 1만5000여 장.
1980년대 초에는 경희대 앞에서 음악다방을 운영했고 90년대 초 종로 음반 가게를 하다 이 자리에 둥지를 튼 게 8년 전이다. 이곳은 모든 게 7080식이다. 신청곡을 종이에 적어 내면 사장 DJ인 오씨가 직접 LP판을 꺼낸 뒤 그 곡을 틀어준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은 지난 23일. 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신청한 곡은 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제목조차 아련한 이 곡을 신청하자마자 오씨가 즉석에서 틀어준다. 마침 옆자리엔 외국인 손님. 그들 역시 LP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았단다. 잠깐 종업원에게 물으니 이곳엔 시가로 70만원이 넘는 희귀 LP판도 있다고 한다. 귀한 바인 만큼 술값은 좀 비싼 편이다. 추억에 젖을 수 있는 냉커피는 1만원. 참, 잊을 뻔했다. 트래픽은 오 사장이 가장 좋아했던 그룹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신사동엔 트래픽과 함께 LP 카페 양대 산맥이 있다. '피터 폴 앤 메리'다. 트래픽을 나와 압구정 성당 쪽으로 10분 정도 가면 '떼부짱'이란 고깃집 옆쪽에 둥지를 틀고 있다. 트래픽과 마찬가지로 지하. 문을 열면 손떼 묻은 LP판 9000장이 정겹게 손님을 맞는다.
흐르는 곡은 낯익은 퀸의 'Don't stop me now'.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3.5m짜리 대형 스피커 두 개가 아날로그 소리의 깊이와 정감까지 전하고 있다. 이곳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1930년대 '축음기'부터 1980년대 외국 록 스타들 브로마이드가 그 주인공.
이 아지트를 운영하는 한계남 사장은 뜻밖의 말을 한다. "추억을 찾는 사람보다 진정한 음악의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요. 심지어 최신곡을 신청하기도 하니까요."
사실 CD가 인위적이라면 LP는 자연적이다. 차가운 CD와는 달리 LP가 전하는 음악 속엔 그래서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한 사장의 LP사랑은 갑자기 시작된다. 3년 전 여름 잘 다니던 여행사를 덜컥 그만둔 뒤 그냥 LP카페를 차려버린 것. 동기는 간단했다. 50대가 됐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진짜 멋진 술집'을 한번 만들겠다고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킨 것.
경기도 안양시 안양예술공원 안에 자리한 LP(long playing record) 음악 다방 '세월이 가면'도 꽤 유명하다. 영화 '여고시절'의 빛 바랜 포스터와 줄이 끊긴 통기타, 헐어버린 교복과 네모난 책가방 등 소품을 보면 60~70년대 옛다방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031)472-7080
◆ 인사동ㆍ홍대 추억의 카페
인사동 골목 한켠.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있다. 탄성도 곧잘 터져나온다. 모두 추억과 낭만에 톤이 한 옥타브씩 올라가 있다.
바로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다. 이곳엔 없는 게 없다. 모두 옛것들이다. 찌그러진 흑백 TV에서 이제는 사라진 주황색 공중전화와 철제 도시락, 아톰 만화딱지, 못난이 인형 등이 마치 그들의 시대라는 듯 눈을 부라리고 서 있다.
요즘 유원지 앞에서 1000원짜리로 재탄생한 똥과자(달고나)는 기본.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바짝 태워 먹었던 쫀드기에 튜브 끝까지 쪽쪽 빨아먹던 아폴로 등 추억의 주전부리도 살 수 있다. 당시엔 불량식품이었던 것들이 이곳에선 쌓인 시간만큼 추억이 더해져 낭만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02) 725-1756
인사동까지 왔는데 추억의 '별다방 미스리'를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인사동 입구 별다방 미스리는 초등학교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분위기다. 초등학생 때나 봤음 직한 아담한 탁자에 알록달록 꾸며둔 실내가 훈훈하다. 이소룡 포스터와 아톰 그림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는다. 가게 한가운데 소원나무는 정말 소원을 적어 걸어놓는 아날로그의 전형.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소망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메모지에 유치한 그림까지 그려가며 아이처럼 다소 엉뚱한 소원을 적어보는 것도 매력. 주문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다. 인기메뉴인 전통차와 한 끼 든든히 먹을 수 있는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하면 된다. (02)739-0939
잘나가는 패션 리더들이 모이는 홍대 주차장 쪽엔 촌스러움의 극치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다방'이 있다. 이 다방에 DJ는 없다. 하지만 레코드 판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뮤직 박스와 '화랑'이란 이름이 적힌 옛날 성냥갑, 그리고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는 60~70년대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별이 빛나는 밤에'와 '라디오스타'도 순도 100%짜리 진짜배기 추억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02)332-0248
■ 추억이 있는 거기는…
- 인사동 '토토의 오래된 물건' 가는 길 : 종각역 인사동 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인사동 골목길 중간쯤 건물 2층에 있다. 입장료는 1000원.
- 트래픽ㆍ세월이 가면 가는 길 : 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이다. 스타벅스 대각선 맞은편. 안양 '세월이 가면'은 안양예술공원 내 인공폭포 앞 150m 정도 거리 2층에 있다. (031)472-7080
- 추억의 영화 서대문 아트홀 : 과거 드림 시네마였던 바로 그곳. 추억의 영화를 볼 수 있다. 지금은 벤허를 상영 중.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자가용 이용 시는 서대문역 서울역 방향 서대문 로터리에 위치. (02)362-3820
- 홍대 은하수 다방 : 홍대역 주차장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 (02)332-0248
2010.05.26 / 매일경제 신익수 여행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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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음반 소리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턴테이블 장인 류진곤씨
류진곤 진선오디오 대표는 이제는 거의 멸종된 턴테이블을 살리는 이다. 그의 턴테이블은 ‘구로공단표’이지만 1000만원대 명품부터 최근 선보인 60만원대 보급형까지 모두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외국 유명품 수리하다 제작 도전
3년 걸쳐 개발…만든것마다 매진
“현장음에 가까울수록 좋은 소리”
매일 청음실 들러 소리감각 훈련
류진곤(53)씨는 턴테이블이 좋았다. 중학교 들어갈 무렵 형님이 사온 전축은 전북 남원 고향 마을에서 유일한 턴테이블이었다. 몇장 안 되는 엘피(LP)판에 담긴 오은주의 ‘아빠는 마도로스’ 같은 노래를 닳도록 들었다. “다른 판을 더 사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파는 곳도 없었죠.”
스무살 넘어 상경한 그는 음악다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12시간씩 죽치고 앉아 원 없이 음악을 들었다. 우연히 철공소에서 쇠가 무처럼 깎여나가는 장면을 보고 신기해한 그는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으로 들어가 일을 배웠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격증 학원에 다니느라 음악은 잊어갔다. 1988년 서울 구로구 고척동 산업용품상가에 진선기계를 차리고 ‘사장님’이 됐다.
1992년 선반과 밀링으로 쇠를 깎아 산업용품을 만들던 그에게 특별한 주문이 들어왔다. 어느 오디오 마니아가 방진대를 만들어줄 것을 의뢰한 것이다. 스피커 소리의 진동이 턴테이블에 전달되지 않도록 받침으로 쓰는 장비다. 독일 제품을 뜯어보고 연구하며 그대로 만들었다. 당시 100만원이 넘는 고가였는데 이후 여러 오디오 마니아들이 그를 찾아왔다.
방진대를 납품하러 찾아간 손님 집에는 생전 처음 보는 오디오와 스피커가 즐비했다. ‘나도 한때 음악깨나 들었는데, 오디오 장비 만드는 데 한번 도전해봐?’ 호기심이 발동해 ‘이 일에 5년만 투자해보고 안 되면 발을 빼자’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외국 유명 턴테이블을 수리하다가 급기야 턴테이블 만들기에 도전했다. ‘1000만원 넘는 최고급 제품을 만들어보자.’ 그가 턴테이블 개발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10명이나 계약하고 선금까지 냈다. 3년에 걸쳐 개발해 2005년 ‘진선 아이리스 레퍼런스’를 내놓았다. 1200만원이나 하는데도 5년도 안 돼 22대나 팔렸다. 1억원 넘는 외국 유명 제품보다 소리가 낫다는 평가도 들었다.
그는 후속 모델인 아이리스2(700만원대), 아이리스3(180만원대)를 잇따라 내놓았다. 올해 초 보급형 모델로 100대 한정으로 내놓은 아이리스4(60만원대)는 두달도 안 돼 예약이 완료됐다. 엘피 생산이 중단되면서 턴테이블은 고가 상품만 남았기에 이 정도로 저렴한 보급형 턴테이블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엘피팬들에겐 희소식이었다. 이미 80대를 만들어 납품했고, 20대를 더 만들어야 한다. 혼자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1대 완성하는 데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달까지 걸린다.
단골손님 가운데는 “더 좋은 제품 개발에 힘쓰지 왜 보급형을 만드는 데 힘을 빼느냐”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다. 그러면 그는 대답한다. “엘피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데요.” 그가 만든 보급형 턴테이블로 엘피를 처음 접한 어느 손님은 “사장님, 저 이제 엘피만 들어요.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조만간 턴테이블, 앰프, 스피커까지 묶은 보급형 컴포넌트 오디오를 200만원 밑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소리는 뭘까? “강한 소리나 부드러운 소리를 선호하는 취향이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좋은 소리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 목소리나 악기가 만들어내는 현장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는 현장음에 대한 감을 얻기 위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한달 내내 공연을 보기도 했다. 작업실 인근에 마련한 청음실에서 매일 아침과 퇴근 전 각각 1시간씩 음악을 듣는다. “음악보다는 소리로 듣는다”는 그는 “무게, 재질, 질량, 공법 등을 이리저리 바꿔보다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얻게 되면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엘피는 단순히 추억으로 듣는 음악이 아닙니다. 시디나 엠피3 같은 디지털 사운드는 어딘지 부담스럽고 불편해요. 하지만 엘피 소리는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줘요. 음의 파장이 인체와 잘 맞는 거죠. 미국이나 유럽은 다시 엘피로 돌아가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3~4년 뒤면 그렇게 갈 거라고 봅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영화관처럼 음악관을 만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최고급 오디오의 최고 수준 사운드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가수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듣게 된다면, 아마 단골이 될 수밖에 없을 걸요?” 그는 꿈을 이뤄가는 단계로 조만간 음악 카페를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청음실로 기자를 데려간 그는 엘피 한장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김민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노래한 ‘봉우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
“음악이란 게 다른 게 없어요. 느낌, 그리고 감동이죠. 이렇게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노래했는지 교감이 되거든요.”
그가 음악을, 소리를 듣고 있는 이 공간이 바로 그토록 사람들이 오르고 싶어하는 봉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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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가 좋아서 LP로 듣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다른 사물이 대체하면서 효용 가치가 떨어져 옛 물건으로 남는 것이 있는 반면 시간의 흐름 속에 영속되는 사물이 존재한다. LP가 바로 그러하다. 이즈음, 많은 이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LP가 다시 제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LP는 1948년 첫 선을 보였고, 당시만 해도 소수 계층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였다. LP 한 장 가격이 상당한 고가였기에 주급을 받아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사서 즐기기는 어려웠던 것. 이후 진화를 거듭해 1960년대 음반 녹음과 제작 기술은 정점에 달했다. 명반으로 꼽히는 많은 음반이 이때 제작되었고, 당시의 음반은 요즘에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LP가 유행한 때는 1960~1980년대로, 199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CD가 대중화되면서 국내 LP 시장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깨끗한 음질과 콤팩트한 사이즈의 CD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고, 음악계의 혁명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LP가 주목을 끌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LP를 듣는 이유는 하나다. 소리가 좋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한 LP는 라이브 음악과 다를 바 없이 음악 그 자체다. 그러나 디지털 음원은 본래 음악보다 디테일이 떨어지고 기계음이 많다. 같은 곡을 LP와 디지털 음원으로 각각 들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녹음이 잘된 명반을 들으면 이게 과연 내가 알던 그 음악인가 싶을 정도로 좋다”라고 LP 바 ‘게스후’의 김형신 대표는 말한다.
“LP음반의 소리골을 가느다란 바늘이 접촉하고 지나가면서 시공을 초월한 원작자의 숨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재생될 때, 그 소리의 질감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다.”
LP는 녹음에서 재생까지 모두 아날로그 매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들을 때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날로그 음이 디지털로 변환될 경우 정보가 많이 손실된다. CD는 특정 주파수 대역만 선별해서 재생하고, 여기에서 더 변형된 MP3파일은 용량 자체가 작아서 CD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이어 맞춘 형식이기 때문에 본래의 음질과는 달리 부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음원은 여전히 건재하다. 디지털 기기는 편의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잘 맞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옮겨가는 것에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기에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안착했다. 지금 음악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디지털이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음악을 듣는 수단이 CD도 아니고 아예 디지털 파일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LP 이용자도 이에 발 맞춰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음악소비량을 측정하는 닐슨 사운드스캔에 따르면 2011년 미국 내 디지털 음악 소비량이 CD와 LP 등 실물 음악 소비량을 사상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11년 미국에서 MP3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등 디지털 음악 소비량은 전체 시장의 50.3%를 차지해 처음으로 실물음악 소비량보다 많았다. 흥미로운 결과는 2011년 LP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36% 급성장 했다는 것이다. CD 판매량이 전년대비 5.7%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비록 전체 LP 판매량은 디지털사운드 양에 비해 적은 수준이지만 음악업계는 앞으로 실물 형태의 음악 매체 중 CD는 사라지고 LP만 유일하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한다.
LP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경쟁력의 주축은 앞서 말했듯 자연의 소리를 담아낸 음질에 있다. 40대 이후 중장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층의 LP 마니아가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레코드를 구매하러 오는 고객 중에는 20~30대도 적지 않다. LP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임에도 그 소리에 빠지는 것은 기존의 디지털 음악과는 다른 음악의 질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이 LP를 즐기기엔 더 좋은 때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음반은 복사본 같은 저가 제품이 많고 고작해야 미군부대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어서 당시 최고의 음반을 즐길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여행자유화 이후에야 해외로 좋은 음반을 구하러 갈 수 있었다”라고 ‘필레코드’ 김원식 대표는 말한다. 깨끗한 음질과 편리함으로 대중화를 이룬 디지털 음악과 완전한 음악성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날로그 음악.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LP Q&A
Q. LP란 무엇인가?
LP(Long Playing) 이전에 등장한 SP(standard Playing)는 음반 한 장에 3~5분 정도 길이의 음악만 담을 수 있었다. 음향 기술, 프레스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한층 진보된 레코드가 바로 LP이다. LP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무엇보다 재생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 특징. 노래 10곡을 들으려면 최소 5장의 SP가 필요했지만, 한 면에 30분 분량이 수록 가능한 LP 덕분에 단 1장에 그 노래들을 모두 담을 수 있었다.
Q. LP의 등장은 음악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연주 시간이 비교적 긴 클래식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공연 무대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SP라는 음반 포맷의 한계로 인해서 음반으로 보급되지 못했던 교향곡과 오페라 등이 LP로 제작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연주자나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Q. LP로의 회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LP를 선호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해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이 외에 디지털 음원과 달리 손으로 만지고 감상할 수 있는 예술적인 앨범 재킷도 한몫한다. 사진, 그림, 일러스트, 그래픽 등을 활용한 재킷 디자인은 예술 작품에 비견될 만하다. 실제로 앤디 워홀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이 음반 재킷 작업에 참여해 참신하고 독창적인 커버를 선보였다.
LP Music Bar
| 게스후 |
- ©게스후
음반점과 LP 바가 함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90평에 달하는 바에는 다양한 LP가 천장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LP 애호가의 마음을 설레게 할 듯. 또한 고가의 JBL 파라곤 스피커로 본인이 찾은 LP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다. “JBL 파라곤 스피커 혼(Horn)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뮤지션이 라이브로 연주하는 듯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며 아날로그의 매력을 설파하는 김형신 대표는 음악에 빠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계에 투신한 인물. 1998년부터 LP를 다뤄 왔으며 클래식, 샹송, 재즈, 메탈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적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다량의 음반을 보유하고, 뛰어난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곡한 클래식과 재즈를 김 대표의 설명과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문의 02-547-9063
| 뮤즈온 |
- ©월간 <오디오>
용산 전자랜드에 위치한 음반 숍 ‘필레코드’의 김원식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김 대표는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년에도 여러 차례 영국에 가서 LP를 구입해 오는 만큼 희귀본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롤링스톤스의 ‘스티키 핑거스’ 앨범. 남성 청바지에 실제로 개폐가 가능한 지퍼를 달아놓아 화제를 모은 앨범 커버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디자인 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편안하게 음악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뮤즈온은 신사점과 목동점 두 곳.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뮤즈온은 젊은이들의 거리인 만큼 20~30대가 많이 찾는 편이다. 반면 목동에 위치한 뮤즈온은 주변의 방송국과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과 아파트에 사는 중장년층이 주고객이다. 목동점의 경우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 주로 60~70년대 록과 올드팝, 샹송, 칸소네 같은 음악을 들려준다고.
문의 02-514-4541(신사점), 02-711-4541(목동점)
| 제플린 |
‘소리의 질’을 운영 철학으로 내세우는 만큼 최적의 음향 시스템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공간적 매력은 LP 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젝터 영상. 운영 시간 내내 뮤직비디오와 공연실황 등 블루레이 DVD를 상영한다. 강남구 논현동.
문의 02-532-9727
| 브라스 |
홍대 근처에 자리한 브라스는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 출신이 운영하는 곳으로 대표의 해박한 음악 지식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빔 스크린으로 상시 상영하는 고전 영화도 바의 운치를 더해준다.
문의 02-338-8342
| 오아시스 |
신천역 부근에 위치한 오아시스는 국내외 뮤지션들의 다양한 음반을 갖추고 있으며, 인테리어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물씬 풍긴다. 브라운관 TV, 녹음기, 다이얼 전화기 같은 추억의 물건을 비롯해 앤틱 가구와 해외여행 중 사 모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애잔한 추억을 선사한다.
문의 02-420-6274
| 피터 폴 앤 메리 |
1960년대 미국 포크 그룹 이름을 딴 피터 폴 앤 메리의 상징은 3m가 넘는 대형 스피커. 미국 최고의 스피커 브랜드 웨스턴 일렉트로닉의 첫 모델로 1930년대 극장에서 사용하던 수제품이다. 이 소리를 들어보려고 애호가들이 지방에서도 찾아올 정도라고. 강남구 신사동.
문의 02-547-2838
“진짜 음악은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날이 추워지면 아버지는 집에서 음악을 듣곤 하셨다. 오디오를 사달라고 졸랐던 것은 정작 나였지만 아버지가 오디오를 만지는 날은 먼발치에서 부럽게 바라볼 뿐 다가가지 못했다. 그즈음 나의 일상은 음악이었고, 음악이 곧 전부였다. 금단현상은 조바심이 됐고 그런 날은 종일 아버지가 출타하시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30년 전 그렇게 나는 오디오에 입문했다. 이후 음악을 듣는 환경은 급격하게 변했다. CD가 보급되면서 LP의 운명은 크고 작은 숍들이 연이어 문을 닫으면서 심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집안 구석에 처박혀있던 음반은 고물상이 매입했고, 후미진 도시에서 초라한 자취를 드러냈다. 영락없는 폐기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때 LP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웅성거렸다. 웅성거림이 그 몰락의 예견으로 당연시되고 신뢰할 수밖에 없는 숱한 증거들이 등장했는데, 2000년대가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LP를 생산하던 공장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가 그 절정이었다. 나는 잠깐이긴 했지만 갖고 있던 LP를 처분할 것을 고민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용기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다행이 없다.
다시 LP를 찾는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시대를 대표하고 음악적 성취가 탁월했던 당대의 음반들은 디지털이 없을 때 만들어졌던 시대의 소리를 담고 있다. 디지털 방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었던 음악을 디지털로 들어서는 제 맛을 느낄 수 없다. 원 음악을 만들던 방식 그대로 듣는 것이야말로 그 곡을 만든 사람들의 느낌을 제대로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틀즈의 ‘Abby Road’나 롤링 스톤스의 ‘Sticky Fingers’가 빅 히트를 했던 시기에 디지털 음원이란 단어는 없었다. 80년대를 가로 질러 시대를 풍미했던 들국화, 김현식, 유재하, 김광석의 음악도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편리한 디지털 녹음 방식보다 다시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유명 뮤지션들이 생겨나 팬심을 자극했고, 그들을 따르는 많은 무리의 팬들은 앞 다퉈 아날로그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숨을 죽이던 헌 LP들의 먼지를 털어냈고, 기념비적인 음반들이 새로 제작되어 선보이기 시작했다. 문을 닫았던 LP 공장도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이에 발맞춰 턴테이블 회사들도 속속 저렴한 신제품을 만들고 있다. CD와 다른 아날로그의 소리를 찾으려는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LP의 부활을 그저 ‘추억 팔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으니 온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뿐이겠는가. LP의 매력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더 새로운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디지털 음원과 LP의 차이를 실감하면서 아날로그에 입문하기 시작한 세대다. 아날로그 음악의 부활을 만들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음원이었던 것이다.
차이를 넘어 이전에 듣지 못했던 진지한 소리에 대한 탐구를 담았던 LP시절의 명반들은 요새 음악을 통해 범접하기 힘든 깊이를 느끼기도 한다.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깊고 풍부하게 우러나오는 감동의 세계는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 예술인가 보여준다.
직장을 다니며 돈벌이를 시작하고 오디오를 장만하면서 음악의 취향도 세월과 함께 바뀌었다. 좋았던 것이 싫어지기도 했고,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근래에 아버지 시대에 유행했던 음반 몇 장을 어렵사리 구해 들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어른들의 음악이다. 다음 주말에는 아버지께 그 음반들을 들려드리련다. 이제는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 김영훈은 〈생각의나무〉, 〈오픈하우스〉 편집주간을 지냈다. 문학과 예술 분야의 책을 기획·출판해왔으며, 현재는 출판사 안나푸르나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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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영의 서울 숨은그림 찾기]
LP 10만장과 함께하는 아날로그 여행… 압구정동 '게스후'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게스후'는 LP전문 바로 중고 LP를 약 10만장을 소장하고 있다.
최근 너무나도 빠른 사회 변화와 디지털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복고 열풍을 타고 LP(Long Playing)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검은색 LP 음반 위 가는 선을 따라 뾰족한 바늘이 물 흐르듯 미끄러지면서 만드는 보드랍고 따뜻한 음색이 우리의 귀와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LP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중고 LP의 수요가 늘고 대학가와 도심을 중심으로 소소한 LP 바(BAR)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LP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서울에서 그리 많지 않다. 한때 성업했던 음반가게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회현지하상가, 홍대앞, 용산전자상가 등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음반 가게들은 서로 특화된 전문분야를 내세우며 마니아층 사이에선 이미 명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직접 청음을 하기 어렵고 청음을 하더라도 여유 있고 쾌적한 공간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이 같은 아쉬움 속에 LP 마니아 사이에서 최근 명소로 꼽히는 LP 중고숍 및 LP 바가 서울 강남에 오픈해 화제다. 시가 10억원에 달하는 10만 장의 중고 LP를 소장,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압구정동에 위치한 ‘게스후’ ’(02-547-9063)다.
게스후는 LP 마니아들의 욕구를 고루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이다. 90평에 달하는 바에는 다양한 LP가 도서관처럼 천장까지 빽빽이 들어차 있어 직접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게다가 시가 2000만원 상당의 JBL 파라곤 스피커로 본인이 직접 찾은 LP를 들어볼 수도 있다. JBL 파라곤 스피커 혼(Horn)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뮤지션이 직접 라이브로 연주하는 듯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게스후를 운영하는 김형신(43) 대표는 1998년부터 LP를 다뤄 왔으며 클래식, 샹송, 재즈, 메탈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적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곳에선 그가 선곡한 클래식과 재즈를 설명과 함께 듣는 묘미 또한 색다르다.
게스후에는 중고 LP숍 공간과 청음실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중고 LP숍은 김형신 대표가 홍대앞에서 운영하던 중고 LP숍을 정리해 재오픈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중고 LP숍은 중저가 LP를 판매하는 재팬 레코드와 희귀 레코드를 판매하는 33RPM으로 나뉘어 있으며 33RPM에서는 운이 좋으면 최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LP를 구경할 수도 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최고가 앨범은 에르텔만의 바이올린 바흐 무반주(휘어진 활로 켜는 바이올린 연주)와 엔니코 마이나르디의 무반주 첼로 음반으로 둘 다 400만원을 호가한다.
카멜, 비틀즈 등 올드팝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빌 에반스 등 스탠다드 재즈 넘버 그리고 수준 높은 클래식 앨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반이 존재하는 게스후는 수준 높은 음악적 문화충전 공간이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저작권자 ⓒ 이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주소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84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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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음악 향유의 변화
잡스도 집에선 LP로 감상…MP3 위주 음악 소비 균열중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엘피(LP) 바 ‘게스후’에 모인 사람들이 노래를 즐기며 한 벽을 가득 메운 앨범들을 바라보고 있다.
밤이 깊도록 음악에 취한 이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11월29일 새벽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바 ‘게스후’에선 밴드 들국화가 1987년 발표한 ‘사랑한 후에’부터 팝가수 비욘세의 ‘헤일로’(halo)까지 다양한 노래들이 쉼없이 흘러나왔다. 흥에 겨운 한 여성은 일어나 춤을 췄다. 이 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한 면을 천장까지 가득 채운 10만장의 엘피(LP) 음반들이다. 김형신(44) 대표가 지난 18년간 중고 엘피 매장을 운영하며 쌓은 앨범들이다.
스마트폰에 엠피3(MP3) 파일을 수천 곡씩 담아 언제 어디서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게 디지털 시대 음악 향유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으며 밀려난 엘피 레코드와 턴테이블이 점차 마니아 층을 늘려 가는 게 대표적이다. 교보문고 핫트랙스는 올해 1분기 전국 매장의 엘피 판매액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200%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늦은 밤, 바에서 커피를 두고 마주 앉은 김형신 대표는 “30~50대 중장년층이 주고객이지만, 엘피를 몰랐던 20대들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전축은 1970~80년대 텔레비전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추억의 물건에 가깝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턴테이블이 세계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면서, 미국의 올해 수입량이 전년보다 5% 늘어난 8만4000개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엠피3 일변도의 디지털 음악 생태계 안에서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고음질 오디오 파일과 재생기(플레이어)의 부상이다. 한때 대한민국 벤처 신화를 썼던 아이리버는 이 분야를 선점하면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핫트랙스 엘피 판매 1년새 2배로, 아이리버, 아스텔앤컨으로 새 도약 모색
“최근 엘피 선호는 복고 문화와 달라 예술감상이란 음악 본질에 접근 시도”
시디(CD)의 노래를 추출한 음악 파일은 보통 확장자 이름과 같이 웨이브(wav) 파일이라고 부른다. 이 파일들은 시디와 같은 음질을 지니지만 크기가 한 곡에 수백 메가바이트(MB)에 달할 정도로 크다. 엠피3는 여기서 사람의 가청 범위 밖의 데이터들을 잘라내고 나머지를 압축해 만들어지는데, 한 곡당 3~4메가바이트에 불과할 정도로 작지만 내용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고음질 오디오 파일은 이런 손실을 없애고 시디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압축한 파일을 말한다. 플랙(FLAC) 파일이 대표적인데 용량이 30~40메가바이트에 이른다. 무손실 압축음원이라고도 불린다.
아이리버는 2012년 무손실 음원 전용 플레이어인 ‘아스텔앤컨’을 출시하며, 2000년대 초반 세계를 휩쓸었던 엠피3 플레이어 선두로서의 명성을 되찾으려 노력중이다. 이에 힘입어 이 회사 오디오 플레이어 제품군의 매출은 2012년 146억원, 2013년 153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이미 10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스텔앤컨은 고급형이 278만원에 이르고, 곡도 한 곡당 1000~2000원은 한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쿠르베’ 청음실에서 박성제 피에스제이(PSJ)디자인 대표가 턴테이블에 엘피를 올려놓고 있다.
외국에선 엠피3가 지배하는 디지털 음악 체제에 대한 반항의 기운이 진작부터 높았다. 세계적 싱어송라이터인 닐 영은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2년 <와이어드>와 한 인터뷰에서 “내 목표는 지난 50년 동안 악화된 예술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디지털은 우리 음악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압축된 파일과 스트리밍으로 쉽게 음악을 즐기는 대신, 질 나쁜 소리만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일화를 소개했다. “잡스는 디지털 선구자였지만, 집에 돌아가면 엘피판으로 노래를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팟’으로 아이리버를 누르고 엠피3 플레이어 시장을 재편하고, ‘아이튠스’로 음반업계와 피투피(P2P) 서비스 사이의 오랜 음원 분쟁을 종식시킨 당사자가 정작 일상에서는 디지털 파일을 멀리한 아날로그 음악 애호가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음악 향유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구분은 애초 의미가 없는 일인지 모른다. 피에스제이(PSJ)디자인의 박성제(47) 대표는 “듣는다는 것은 늘 아날로그였다”고 말한다. <문화방송> 해직기자로, 지금은 ‘쿠르베’라는 수제 스피커 제작자인 그는 오랜 오디오 애호가이기도 하다. “소리와 우리 귀는 아날로그입니다. 이는 불변이죠. 처음 소리를 녹음하는 과정과, 저장한 녹음을 다시 소리로 바꾸는 과정은 반드시 아날로그적인 것이죠.” 중간의 저장 장치가 비닐로 만든 엘피판이거나 디지털인 하드드라이브일 수 있고 파일을 인터넷으로 내려받거나 테이프로 복사할 순 있지만, 결국 우리 귀로 들어올 때 종착점은 공기를 울리는 아날로그 음파라는 것이다.
근래의 엘피 선호 이유에 대한 김형신 대표의 관점도 비슷하다. 김 대표는 “음악은 과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예전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됩니다. 그럼 당시 노래를 가장 잘 듣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엘피건 시디건 그 노래가 처음 발매되던 때의 매체를 그대로 재생하는 것 이상은 있을 수 없죠.” 더 좋은 노래를 듣고자 한다면 당시로 시간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음악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단지 기호가 세분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 더 좋은 품질, 차별화된 제품을 소비하려는 대중의 욕구와 기업의 마케팅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박성제 대표는 “하지만 엘피 등에 대한 지금의 대중적 관심은 단순한 복고 문화와는 다르다고 본다. 예술을 감상한다는 본질적인 요소에 더 다가가고자 하는 관심이 높아져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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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장의 LP판, 이것은 역사다
한 수집가의 헌신으로 정리한 한국 대중 음악사
최규성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1986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일보 기자와 편집위원으로 일했던 그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수집가이자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모든 절판된 것들을 소장한다고 해서 ‘절판소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특히 대중음악과 관련된 자료들을 온전히 사비를 털어가며 모으는데 주력했다. 한국 대중가요 음반과 공연 포스터 뿐만 아니라 공연 티켓, 사진, 의상 등 관련 자료들이 모두 그의 수집 대상이 되었고 그를 통해 보존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40년 내내 모은 것이고 10만점이 넘는 엄청난 양이다. 그는 이밖에도 자신의 장기인 사진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 관련 테크놀로지가 발 빠르게 발전하면서 엘피(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시디(CD)로 교체되고, 시디(CD)가 온라인 음원으로 교체되는 동안 앞 시대의 기록들은 버려지기 일쑤였다. 국가 역시 이러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활용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보관만 하고 있거나 보관하고 있다가 폐기했을 뿐이다. 일부 애호가들이 중고 시장에서 자비를 털어가며 꾸준히 자료를 모았지만 이 역시 개인적으로 활용되었을 따름이다.
▲ 대중가요 LP 가이드북 / 최규성 저 / 안나푸르나 출판 | ||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결국 사라지는 운명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빠르고 편리한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니었다. 엘피와 시디의 물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음악 팬들의 마음을 끝끝내 자극했다. 특히 시디 이후의 디지털 음악과는 달리 아날로그적인 질감을 주는 엘피는 명확한 소리의 차이와 정서의 차이 덕분에 다른 매체로 대체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중단되었던 엘피가 다시 생산되고 있으며, 음악팬들을 중심으로 국내의 엘피와 해외의 엘피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사 때 함부로 버려지던 엘피들이 고가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수년 전이다.
▲ 왼쪽 위부터 김정미 5집 NOW,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에드훠(Add4) 비속의 여인, 영화 별들의 고향 OST 앨범 표지 ⓒ 최규성 | ||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춰 출간된 최규성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음반으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그가 모은 수많은 엘피들 가운데 추린 엘피 318장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국내 최고의 대중음악 관련 수집가로 손꼽히는 그가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수집해온 중요한 엘피의 실체를 공개함으로써 사라지거나 존재조차 희미했던 엘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주요 엘피들의 오리지널 자켓과 실물을 일일이 직접 사진으로 찍어 보여줌으로써 사진과 디자인을 통해 그 시대와 음악의 역사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진만 봐도 흐름이 보이고 변화가 보일만큼 풍부한 화보로 꾸며진 책은 보는 맛이 그만이다.
▲ 왼쪽 위부터 정태춘 6집 92 장마 종로에서, 김지하 시와 노래와 말 옥중앨범, 조용필 1집 대표곡 모음, 국내 최초 제작된 LP KBS레코드 앨범 표지 ⓒ 최규성 | ||
또한 한 장의 앨범이 다양한 재발매 버전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출시된 재발매 버전들까지 함께 정리해서 보여줌으로써 음반에 대한 기록에 충실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엘피를 다 공개한 것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주요한 앨범에 한정해서 정리했지만 이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출반의 사실관계들을 정리함으로써 대중음악의 기본 정보를 분명히 하는데 기여했다.
그가 정리한 것은 엘피 318장의 사진과 정보만이 아니었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통해 그는 레코드의 제작 공정과 아날로그 레코드의 종류를 정리하고, 관련 용어를 정리해서 엘피에 관한 기본 정보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신중현의 재발견, LP 콜렉터의 탄생>, <포크 1>, <포크 2>, <그룹사운드> 등의 챕터에 318장의 엘피를 나눠 소개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 왼쪽 위부터 최양숙 가을편지 꽃피우는아이, 이수만 윤연선 데뷔음반 오아시스 포크 페스티발 6집, 남일해와 이미자 우리 둘은 젊은이, 리리씨스터즈 투코리언스 앨범 표지 ⓒ 최규성 | ||
최규성은 엘피를 만든 뮤지션과 제작자의 이야기를 함께 싣고, 주요 수록곡과 관련 사연들을 소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음반 한 장 한 장에 담긴 음악과 시대와 음악인들을 알아갈 수 있게 했다. 그의 분류와 서술이 종합적이고 새로운 대중음악사 서술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는 한국 대중음악을 이해하는 보편적인 시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들을 기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그는 오랫동안 자료를 모아온 이의 전문성으로 밝혀지지 않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을 분명하게 밝혀냈다. 이제는 이러한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밝혀줄 이가 갈수록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는 음반에 참여한 관계자들과 그들의 행적, 그들의 작업에 대한 선후와 사실 관계를 밝혀줌으로써 엘피가 객관적인 사료로 활용될 수 있게 했으며 한 장의 음반에 담긴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한국 대중음악의 변화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 싸이 강남스타일 미국발매 한정본 픽쳐 LP 앞면과 뒷면 ⓒ 최규성 | ||
일제 강점기, 해방, 한국 전쟁, 산업화와 독재 등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한국 대중음악이 어떠한 장르와 음악, 가사, 태도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이어왔고 어떻게 시대와 조응했는지, 그리고 한국의 음악 산업을 어떻게 형성 발전시켜왔는지를 이야기꾼처럼 담아낸 것이다. ‘음반으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라는 부제에 충실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대중음악부터 현재의 대중음악까지가 엘피라는 키워드로 모두 정리된다. 덕분에 이 책은 대중음악 팬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읽기 좋은 한국 대중음악 입문서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한 생을 걸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꼼꼼하게 사실 관계를 확인해온 덕분이다. 최규성은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나름의 사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 위부터 최양숙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음반, 김민기 1집 음반 ⓒ 최규성 | ||
하지만 이 책 한 권에만 만족할 일이 아니다. 책 밖의 문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도서관, 국가기록원, 남이섬 가요박물관, 한국음악데이터센터, 올림픽홀 등에서 대중음악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가 진행되고 있지만 산발적이고 종합적이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자료가 있음에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충분히 활용되지도 못하고 있다.
▲ 위부터 한대수 1집 멀고먼길 초반 음반, 김광석 4집 서른즈음에 음반 ⓒ 최규성 | ||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엘피를 통해 확인하는 한국대중음악사나 중요한 엘피의 가격만이 아니다. 엘피만의 아날로그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엘피 열풍이 한 때의 유행이나 호사가들의 고급스러운 취향에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우리가 소흘히 여겨왔던 기록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 단위의 대중음악 관련 아카이빙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이 책으로부터 끌어내야 할 진정한 교훈이다. 더 이상 한 사람의 성실과 열정에 기댈 일이 아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제는 국가와 민간이 가진 자료들이 하루 빨리 정리되어 더 풍부한 연구로 이어져야 할 때다. 이 책은 그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미디어 오늘 / 2014년 03월 06일 / 서정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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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지도 다시 그린 LP가이드북 펴낸 ‘절판소장’ 최규성(인터뷰)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53)씨는 텐아시아에 매주 인디뮤지션을 소개하는 ‘골든 인디 컬렉션’을 연재하고 있다. 매주 그가 보내온 글과 사진을 편집하면서 느끼는 것은 콘텐츠의 무게감이다. 직접 찍은 사진들, 그리고 뮤지션들의 구술을 통해 정리된 음악적 여정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값진 내용들이 그 안에 있다. 최 씨는 음악에 대한 평가 이전에 그들이 살아온 삶에 집중한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뭘 좋아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는지를 물어본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담아낸 ‘팩트(fact)’ 덩어리들은 음악인을 소개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명함판이 된다. 그리고 그 명함판은 음악에 다가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최 씨가 최근에 펴낸 책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 504쪽) 역시 엄청난 팩트의 덩어리다. 1958년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된 LP부터 지난해 나온 조용필의 ‘헬로’까지 자신이 열정적으로 수집한 반세기 동안의 LP를 집대성했다. 저자는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LP의 라벨부터 음반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 시대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았다. LP에 대한 사진과 글을 보다보면 음반이 손에 잡히는 것 같다. 이러한 팩트들의 집합은 자연스레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다가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음악이 담긴 LP 자체에 집중을 해보려 했어요. LP의 재킷만 봐도 그 안에 시대의 핵심, 유행의 흐름이 들어가 있어요. 신중현과 엽전들 1집 LP를 보면 초반 재킷에는 ‘미인’의 이름이 빠져 있어요. 처음엔 타이틀곡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런데 나중에 ‘미인’이 히트를 하면서 재반부터는 이 곡이 타이틀곡으로 표시가 돼서 나와요. 그런데 나중에 신중현이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이 음반에서 무려 7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당하죠. 그래서 노래를 들을 수 없도록 X표로 긁어놓은 훼손된 음반이 생기게 되요. 이런 흔적이 70년대 금지문화를 증명하는 사료예요. 이런 스토리를 실물의 LP를 통해 직접 보여주는 거죠.”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최규성 씨는 LP의 초반부터 많게는 7~8개의 재반의 LP와 재킷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찍어 책에 실었다. 재킷에 담긴 크레디트만 봐도 역사의 흔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다. 여기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걸어 다니는 음악 백과사전’으로 명성이 자자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글로 담겼다.
최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973년부터 음반 수집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TV, 라디오로 음악을 접해온 최 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갔다가 LP를 처음 봤다. “시꺼먼 것이 돌아가는데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 나를 흥분시켰어요. 몸에서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죠. 그 노래가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였어요. 이어서 핑크 플로이드, CCR 등을 들으면서 LP를 모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가요에 애정이 깊었던 최 씨는 팝 음반과 함께 신중현, 키보이스, 트윈 폴리오, 데블스, 한대수, 김민기, 김의철 등의 LP를 함께 모았다. “당시 음악 듣는 선수들은 한국 대중음악을 무시하던 시절이었어요. 가요 LP를 사면 쪽팔린다고 할 때죠. 그런데 난 한국의 포크, 그룹사운드를 너무 좋아했어요. 윤연선, 박미성, 임희숙은 특히 사랑했던 여가수들이죠.”
대학에 가기 전까지 4,000여장의 LP를 모았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LP들을 모두 날리면서 충격을 받아 수집을 그만뒀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90년대에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 동호회가 유행했다. 최 씨는 수집가로써 면모를 발휘하며 하이텔 AV동호회에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당시 절판된 레이저디스크를 찾아다닌다고 해서 ‘절판소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시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경험하고 나서부터다. “동호회 지인의 집에 갔는데 1억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오디오가 있었어요. 그 장비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듣는데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갑자기 LP를 모으던 옛 생각이 간절해졌죠.”
다시 LP 수집을 결심한 최 씨는 그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이드북을 찾아 서점에 갔다. 하지만 가요 LP를 제대로 다룬 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LP가이드북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때가 1999년이었다. 이후 최 씨는 미국, 유럽, 아시아, 심지어 북한에서도 LP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주간한국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추억의 LP여행’을 연재했다. 이 연재기사의 애독자였던 민음사 박맹호 회장은 최 씨에게 “작품성 있는 아티스트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이미자, 하춘화, 남진, 나훈아와 같은 국민가수들에 대한 자료도 정리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이런 대중가수들도 다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 전까지는 포크, 록 등 소위 음악을 좀 듣는 선수들이 좋아하는 음악 위주로 모았죠. 박 회장님의 말을 들은 후에는 주류의 인기가수들의 음반까지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어요. LP만 모은 것이 아니에요. 음악잡지, 공연 포스터, 가수들의 무대의상, 트로피까지 음악관련 자료들을 모조리 수집했죠.”
병적인 수집욕은 결국 504쪽 분량의 두터운 실질적인 책의 자료가 됐다. 여기에 인터뷰, 신문사 자료실에서 먼지와 싸우며 얻어낸 정보들이 총망라됐다. 최 씨는 자신이 가진 음반 중 191장을 골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음반 선정 기준은 뭘까? “시대적으로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음반들을 골랐어요.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한 12인치 LP ‘KBS 레코드 시리즈’, 최초의 록 창작 음반인 애드훠의 ‘비속의 여인’,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한 김 시스터즈 등이 그런 음반이죠.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제작한 최초의 LP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라잖아요. 한국대중음악의 뿌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최 씨는 한국대중음악을 바라보는 핵심 키워드를 뽑아 목차를 나눴다. 신중현 사단을 시작으로 포크, 그룹사운드, 트로트, 사운드트랙 등을 시대별로 정리했다. 이러한 정리를 통해 잘못된 역사도 바로잡으려 했다. “잘못 알려진 내용들이 상식처럼 된 경우가 많아요. 최초의 포크를 1969년 트윈 폴리오의 음반이라고 하는데 이미 1964년에 아리랑 브라더스가 최초의 포크음반을 발표했죠. 전인권의 노래로 유명한 ‘사노라면’은 구전가요로 알려져 있는데 연원을 살펴보면 이 노래가 길옥윤이 만든 곡으로 자니리가 먼저 부른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외에 펄 시스터즈의 데뷔곡 ‘커피 한 잔’은 에드훠의 에드훠 첫 앨범에 ‘내 속을 태우는구료’로 먼저 담겼고, 김광석의 ‘불행아’는 김의철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가 원곡이죠. 전문가들도 헷갈리는 게 한둘이 아니에요. 잘못된 팩트들을 바로 잡으려 했습니다.”
책에는 희귀한 LP도 많다. 1975년 수감 중인 김지하의 인터뷰 육성과 직접 부른 노래를 담은 옥중 음반 ‘김지하 시와 노래의 말’, 길옥윤과 패티김이 결혼식 하객에게만 나눠줬다는 가수 커플 최초 결혼 기념음반, 일본 조총련계에서 나온 전설의 음반인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 김현식이 ‘사나이 노래’ 한 곡을 고고, 블루스 록, 행진곡 버전으로 편곡해 실은 싱글 등 진귀한 음반들도 책에서 볼 수 있다.
꿈에 그리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펴낸 최 씨의 다음 목표는 뭘까? “이제는 대중음악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 남은 꿈이에요. 지금 해외에서 케이팝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뿌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잖아요. 대중음악을 연구하는 전문가부터 일반 대중들까지 유익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음악 아카이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대중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어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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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LP 음악의 모든 것
‘대중가요 LP 가이드북’
한국에서 대중음악이 담론 영역으로 들어온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면서 정치·사회 영역에만 집중되던 운동 에너지가 문화로 향했다. 영화, 음악, TV는 감상과 소비 대상에서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바뀌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 신(新)철학은 대중문화를 담론으로 승격시키는 새로운 도구였다. 더불어 대중음악의 화자는 ‘음악칼럼니스트’에서 ‘음악평론가’로 이동했다.
그런 변화의 시기가 오기 전부터 꾸준히 음반을 모으던 사람이 있다. 사춘기 무렵 우연히 접한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로 음악에 빠져들어 40년간 음반을 수집해왔다. LP 2만 장, CD 2만 장 등 방대한 음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옛날 신문과 잡지, 인터뷰를 통해 막대한 정보를 축적했다. 그의 이름은 최규성.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음악계에서 ‘절판 소장’이란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절판된 가요 LP가 필요할 때 연락하면 100% 구할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일화 때문이다. 지독한 컬렉터이자 뛰어난 사진가, 음악평론가이기도 한 그가 생애 첫 책을 냈다.
제목은 간결하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 내용은 엄청나다. 신중현의 첫 밴드였던 애드포의 데뷔 앨범부터 조용필의 ‘헬로(Hello)’에 이르는 50년 한국 대중음악사를 오직 LP에 기반을 두고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음반은 2000장에 이른다. 저자는 이들 LP를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책에 담았다. 뮤지션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음악의 가치, LP의 판본, 시장 가격도 빼놓지 않고 서술한다.
이 책은 모두 9개 장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인 음악사 서적이라면 연도별 혹은 장르별로 장을 나누겠지만 최규성은 다른 방식을 취한다. 한 시대를 구분 짓는 대표적인 움직임마다 한 개 장을 할애하는 형식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독자성을 이끌었던 신중현의 작품이 첫 번째 장을 채웠다. 그리고 포크, 그룹사운드 등 장르 및 음악활동의 전기마다 각 장을 부여해 또 하나의 시간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책의 특색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음악평론과 저술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트로트 역사를 통해 음반 포맷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조망하고, 한국에서 첫 LP가 언제 생산됐는지 옛 신문기사를 뒤져가며 심도 깊게 파고든다. 최초의 LP, 최초의 민간 제작 LP, 최초의 동요 앨범, 최초의 해외 진출 앨범 등 ‘최초’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김지하 시인의 옥중 앨범 등 희귀 음반을 거론하며 지난 시대의 사회상도 보여준다. 자신의 일생을 쏟아부어 만든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컨대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이 정도 성과를 구축한 음악 서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리 많지 않다.
약점 아닌 약점을 꼽자면, 오직 LP를 통해 음악사를 서술하다 보니, LP에서 CD로 음반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던 시기나 그 이후에 대한 밀도가 상대적으로 헐겁다는 것이다. LP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1990년대 중반 이후 탄생해 CD로만 제작된 인디 음악이 다뤄지지 않았고, 아이돌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사실은 오히려 후대 평론가들을 향해 내려치는 죽비처럼 보인다. 개인이 모아온 자료로 국책사업 급 저술을 내놓았으니 너희도 나태해지지 말고 분발하라는. 나는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읽으며 앞으로 어떤 책을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4.3.3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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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반격 가하는 아날로그의 매력
디지털 세상은 빠르고 편리하다. 아날로그 시대보다 삶의 질은 향상됐지만 일상에서 불안과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외려 늘었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과거 아날로그 감성에 열광한다. 이것은 단순한 과도기 현상을 넘어 사회·문화적으로 이미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아날로그의 매력은 불편함에 있다. LP로 음악 감상을 하려면 여러 불편함이 따른다. 레코드판이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고르고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고 바늘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지익~하고 레코드판 표면을 긁는 잡음 뒤에 잠시 동안의 정적. 짧은 정적이 끝나면 노래가 실내에 슬그머니 번진다. 물 컵 안에 푸른 잉크가 퍼지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신체의 모든 기관을 예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LP는 번거롭고 잡음까지 포함한 불안정한 음원이지만, 디지털 음반에서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아날로그와 LP는 감성을 간직한 삶과 같다. 물론 거추장스럽고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한 매력이 있다. 오래 들으면 귀가 아프고 두통이 오는 디지털과는 달리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따뜻한 온도를 가진 소리다.
전시장 내부. 한국 최초의 LP부터 중요 가수들의 데뷔 음반, 100만 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운 시대별 앨범까지 60여년의 음반 역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
LP판 위의 콜라보 ‘100Albums 100Artists 展’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지 140여 년이 지났지만 아날로그인 LP는 지금도 건재하다. 오히려 아날로그 레코드의 따뜻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벽면에 걸어놓고 싶을 만큼 예술적인 작품도 있지만, 특유의 감성은 기술 발전에도 복제 불가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면 서울 송파구 에비뉴엘아트홀(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4월 2일까지 진행되는 한국 대중음악 ‘100 앨범 100 아티스트’전을 주목해야 한다. LP 제작 시대가 열린 1958년부터 60여 년의 한국 음반사를 돌아보는 이색 전시회다. 전시회에는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씨가 개인 소장한 2만여 장의 LP 중에서 대중음악사에 의미가 있는 134장의 앨범을 엄선했다. ‘발굴과 추억’을 모토로 한국 대중음악사적으로 의미 있거나 관람객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당대의 히트작을 10가지 주제로 구성했다. 최 평론가는 1986년부터 20년간 한국일보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이력이 있다. 당시에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취미로 음반을 모았다. 그러다 마흔 다섯이던 2006년 회사를 그만뒀고, 그때부터 음악평론가의 길을 걸었다. 그 뒤로 그는 망실됐던 가요계 자료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2014년 펴낸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이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100 앨범 100 아티스트’ 전도 연결선상에 있다.
전시관은 한국 대중음악의 압축판과도 같다. 윤복희와 조용필을 비롯해 펄 시스터즈, 전인권, 이문세, 김완선,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싸이, 소녀시대 등 당대를 수놓은 가수들의 음반들이 나란히 열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음반만으로도 전시장을 꽉 채우는 저력을 발휘한다.
LP 사이즈의 캔버스(31×31㎝)에 가수와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 세계도 펼쳐졌다. 이들의 앨범과 음악을 캔버스로 옮긴 작업에는 원로 작가인 주재환, 황주리부터 신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 100인이 참여했다. 음악과 미술이 보여주는 인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다. 최규성 평론가는 “정사각형의 음반 재킷은 개인에게는 하나의 작은 미술관이자 귀중한 소장품”이라며 “지치고 힘들 때 노래 한 곡, 가사 한 구절에서 때론 위로를 받으며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이 음악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다른 장르가 만나 서로 교감하는 전시로 기억되길 기대한다는 바람을 담았다.
펄 시스터즈에게 받은 영감을 표현한 작품들. |
전시회 엿보기, 신중현 사단 - 펄 시스터즈에서 김완선까지
전시회의 ‘SHIN JOONG HYUN DIVISION’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과 신중현 사단의 중요 가수들 앨범을 모아놓은 코너다. ‘신중현’이란 이름은 한국 대중가요 앨범 수집에서 가장 핫한 화두이기도 하다. 대중에게 익숙한 인기가수들과 더불어 생소하지만 의미심장한 음악성이 담긴 신중현 사단의 남녀 가수가 남긴 귀한 앨범들은 이 전시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1970년대의 신중현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한국 록의 대부이자 알아주는 스타 메이커였다. 수많은 히트 곡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수많은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신중현 사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가 만든 가수들의 앨범에는 ‘신중현 작품집’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대표적으로 배인순·배인숙 자매로 구성된 걸그룹 ‘펄 시스터즈’는 1968년 신중현의 실험적인 노래를 부르며 등장해 한국 대중음악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데뷔 1년 만에 가수왕으로 등극한 펄 시스터즈는 허벅지가 드러나는 핫팬츠를 입는 등 섹시한 이미지로 남성 팬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1968년 발표된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과 ‘님아’는 걸그룹 사상 최초로 가수왕을 수상하게 한 빅 히트곡이다. 이들의 데뷔 앨범은 노란 바탕에 초록색 물방울무늬의 상큼한 의상을 입은 펄 자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빅히트작이라 개체수가 많아 고가로 거래되는 앨범은 아니다. 1962년부터 한국적 록을 시도했지만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베트남으로 떠나려 했던 신중현은 펄 시스터즈의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신중현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한국 대중음악계는 오디오 시대에서 비디오 시대로 전환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대중음악 사상 가장 섹시한 여가수로 평가받는 김추자도 1969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김추자를 신데렐라로 떠오르게 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늦기 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터트렸다. 국악과 록을 접목한 신중현의 음악적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김추자의 모습이 담긴 표지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앨범은 여러 차례 제작사가 바뀌며 발매되었다. 재발매를 거듭한 것은 이 앨범이 얼마나 날개 돋친 듯이 팔렸는지 증명한다. 신중현이 활동 금지 시절이던 1975년 이후에는 ‘김추자 배스트(best)’라는 타이틀로 제작사도 없는 해적판이 등장한다. 1987년 발매된 김완선 정규 2집의 재반에는 신중현이 작사·작곡한 댄스곡 ‘리듬 속의 그 춤을’이 추가되어 빅 히트를 쳤다. 이 곡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김완선에게 준 유일한 곡이었다. 신중현의 노래를 히트시킨 김완선은 2년 차 징크스를 털어내고 댄스 팝 가수로서 확실하게 커리어를 쌓을 기반을 확보했다. MBC가 10대 가수를 선정하지 않았던 1987년, 그녀는 신중현 곡의 히트에 힘입어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을 받았다.
전시회 엿보기, 밀리언셀러 - 조용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조용필의 1집 음반을 모티브로 한 작품.(사진=C영상미디어) |
‘MILLION SELLER’코너는 100만 장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운 시대별 대박 앨범들이다. 과거 한국 대중음악계는 1980년대 이전까지 정확한 음반 판매 숫자를 집계하지 않았던때라 어느 앨범이 최초의 밀리언셀러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전시회에 소개된 앨범들은 당대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앨범임에 틀림없다.1976년 발매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조용필을 국민가수로 견인하기 시작한 밀리언셀러 음반이다. 앨범을 발매한 1976년 최대 이슈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에게 처음 허용된 고국 방문이었다. 이에 1972년 이미 발표했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통속적인 원래 가사를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해 일부 수정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산의 다운타운가에서 시작된 예상치 못한 반응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초반 발매 후 4개월 후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한 조용필의 사진으로 재킷을 교체한 재판은 100만 장이 넘게 판매되는 금자탑을 세웠다.
판매고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이문세다. 이문세 4집은 285만 장이 팔려나가 국내 대중가요 음반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1988년에 발표된 5집은 작곡가 이영훈과 콤비를 이뤄 발매한 ‘명반 3부작’의 완결판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팝 발라드의 명곡 만찬장이라 할 정도로 명곡들이 넘쳐나는 이 음반은 선주문만 수십만 장에 달했다. 당시 대중가요 LP 음반 가격은 3300원이었는데, 킹레코드가 이문세 5집의 가격을 팝송 음반과 같은 수준인 4000원으로 인상해 소매상들의 불매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런 난관에도 이문세 5집은 258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은 외국 팝송 음반보다 저평가를 받고 판매가도 낮았던 대중가요 음반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한국 대중가수 데뷔 앨범 중 최다 판매 180만 장을 기록한 음반이다. 1993년 서태지 신드롬으로 당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2집은 총 220만 장이 팔리며 그때까지 구멍가게 수준의 한국 대중음악 음반시장을 산업의 규모로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발매된 김건모 정규 3집은 ‘잘못된 만남’의 폭발적인 히트에 힘입어 총 286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한국 기네스북에 최다 판매 앨범으로 기록된 기념비적인 이 앨범에는 ‘아름다운 이별’, ‘드라마’, ‘너에게’ 등 매력적인 노래들이 가득하다. 가요의 황금기라 불리는 1990년대는 각종 음반 미디어가 공존했던 당시를 반영하듯 LP와 CD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까지 모두 제작되던 시대였다.
특유의 음색과 독특한 창법으로 사랑받은 김건모.(사진=C영상미디어) |
문·사·철(文·史·哲) 전문 헌책방 ‘클림트’
“도장 깨는 심정으로 인문학을 팝니다”
문·사·철(文·史·哲) 전문 헌책방 ‘클림트’는 충무로와 회현동을 잇는 회현지하상가에 보물처럼 숨어 있다. 서울 명동의 고층 빌딩 아래서 양질의 인문학 서적과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클림트의 김세환 대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을 판다”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클림트는 인문학 중에서도 문·사·철과 종교·예술 서적을 아우르는 전문 헌책방이다. 상호는 아름다운 시절로 불리는 ‘벨 에포크’ 시절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이름에서 따왔다. 김 대표는 매달 800권 정도의 책을 매입하지만, 관심 있는 분야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마주하면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책을 ‘전리품’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도 종교학자 하이비 콕스와 J. 몰트만의 책을 얻었다며 자랑했다. 클래식 LP 전문점이던 ‘클림트’는 책 수집광이었던 주인의 성향을 좇아 2011년부터 고서도 함께 취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취미였는데, 책을 읽고 수집하다 보니 이런 사상과 감동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유가 공유로 전환되면서 책방이 시작된 셈이죠.”
좋은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내 책을 나눠주고, 새로운 책을 끊임없이 보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헌책은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으면 폐지나 다름없어요. 밖에 두면 누가 훔쳐갈까 봐 걱정하는데, 그걸 알아보고 가져가는 사람은 도둑이 아니라 양상군자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게다가 주류 학문도 아닌 문·사·철을 공부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클림트를 드나드는 고객들은 유독 끈끈하다.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손님이 손님에게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시면 그 부인이 쓴 책을 읽어보세요. 작품의 뒷이야기를 알게 된답니다”라고 생생한 팁을 건네기도 한다. 김세환 대표 역시 상인의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다. 근대 일본 사상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책을 집어든 손님이 “2만 원인데 좀 비싸다”고 하면 “그럼 1만 5000원에 가져세요”라고 말한다. 저 책을 팔아야겠다는 마음보다 저 손님이 읽었으면 하는 태도였다. 상인이라기보다 지식 소매상이라 불러야 적확한 듯 보였다.
“저는 시대가 원하는 인간상은 아니에요. 하지만 좋아하니까 버텨보는 거죠. 이 시대에 인문학 서적을 취급하는 걸 비유하자면, 독립운동하며 진지를 구축하는 기분? 아니면 영화 ‘정무문’처럼 도장 깨기 하는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남짓 동안 클림트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편리한 디지털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진한 감동이 있는 아날로그를 찾는 현상은 클림트에서도 발견되었다.
“책의 물성은 고유하기 때문에 디지털이 대체하기 어렵죠. 책을 보거나 만지며 책장을 넘기는 긴장… 활자뿐만 아니라 책장을 넘기며 느낀 공기까지 기억하게 되는 복합적인 행위죠. 독서는 추억의 편린과도 같아요.”
디지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사고인지 모른다. 디지털 신호 속에 감춰진 아날로그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사회·문화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인문학과 닿아 있다. 클림트의 건재함이 이를 증명한다. 문화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강하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클림트의 내부. 복잡해 보이지만 김세환 대표만의 배열로 손님이 원하는 책을 척척 찾아낸다. 혼돈 속에도 나름의 규칙은 존재한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클림트의 내부. 복잡해 보이지만 김세환 대표만의 배열로 손님이 원하는 책을 척척 찾아낸다. 혼돈 속에도 나름의 규칙은 존재한다.(사진=C영상미디어) |
[위클리공감] http://www.korea.kr/policy/cultureView.do?newsId=148849227&call_from=naver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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