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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 - 김한용

by Wood-Stock 2011. 4. 11.

김한용 사진연구소의 <꿈의 공장>

최은희는 왜 톱스타였을까?

 

"청춘은 희망에 살고, 백발은 추억에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청춘은 희망이 있기에, 백발은 추억이 있기에 아름답다"라고 내 나름대로 풀이해 본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희망(꿈)을, 벌써 숱한 추억을 지닌 채 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내 삶은 축복이기도 하고, 주책이기도 하다.

 

어제 시각예술도서 전문출판사 '눈빛'으로부터 <꿈의 공장>이라는 묵직한 사진집을 받고는 어제 오늘 책장을 넘기며 아련한 추억의 시간에 빠졌다. 이 책은 올해 미수(米壽, 88세)를 맞은 한국 광고사진계의 대부이며, 영원한 현역 김한용 선생이 지난 60여 년간 작업해 온 인물사진과 광고사진을 한 권에 모았다. 책의 날개 면에는 고바우 모자를 쓴 김한용 선생의 깨끔한 모습을 그분의 손자 김주식씨가 렌즈에 담아 실었다.

 

"1924년 평남 성천에서 태어나 1947년 국제보도연맹 소속 보도사진가로 사진에 입문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 "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눈을 감고 김한용 선생의 생애에 경의를 드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88세까지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서 입때까지 현역에서 일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더욱이 60년 넘게 외길로 한 분야(더욱이 춥고 배고픈 예술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 자체가 명장의 길로 아름답고, 한 생활인으로서 귀감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어린 시절의 추억

 

<꿈의 공장>은 한국 광고사진의 대부 김한용 선생이 지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업해 온 인물사진과 광고사진을 집대성한 사진집이다. 최은희, 신성일, 엄앵란, 윤정희 등 광고사진 속의 모델이 된 추억의 스타들과 그 당시 최첨단 유행을 창조했던 광고사진, 달력 사진, 각종 잡지 및 사보의 표지 사진 등, 270여 점이 컬러로 수록되어 있다.

 

5장과 6장에 수록된 130여 점 흑백사진은 당대 스타들과 사회 각계각층 인물들을 촬영한 사진들로, 김한용 선생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특히 소설가 박인환, 전 국회위원 김두한, 부산 피난 시절의 화가 이중섭의 포트레이트는 이 책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희귀한 사진이다. - 출판사제공 책 소개 요약 -

 

나는 앞부분 컬러사진보다 뒷부분 흑백사진에 더 눈길이 갔다. 여기에는 추억의 정감어린 얼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복혜숙, 조미령, 주증녀, 최은희, 김지미… 등의 여우와 김승호, 최남현, 황해, 주선태, 김진규, 최무룡 … 등 남우의 젊은 날 모습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 고향(경북 구미)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영화가 들어오면 의용소방대 창고에서 상영했다. 영화가 상영한 날이면 확성기를 단 지프차가 마을을 돌면서 촌사람들을 유혹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람하시는 구미면민 여러분, 오늘 저녁에 여러분을 모실 영화는 돈에 속고, 사랑에 우는, 눈물 없이 보지 못할 순애보로…."

 

그 확성기 소리를 들은 우리 악동들은 돈이 없으면 부모 몰래 뒤주의 쌀이라도 배지기하여 십리 길을 걸어 영화가 상영하는 면사무소 옆 소방대 창고로 갔다. 의자도 없는, 가마니를 깐 바닥에 앉아 영화 한 편을 감상하려면 필름이 최소한 네댓 번은 끊겼고, 화면에서는 줄곧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위의 배우들은 그때 스크린을 주름잡았던 분들이다. 픽션과 논픽션도 제대로 구별 못하는 유치한 우리 악동들은 영화를 본 다음날 악역을 맡은 배우 포스터 사진에 흠을 냈다. 그 무렵 가장 악역을 많이 맡은 배우는 이예춘, 최남현, 황해, 주선태, 복혜숙… 등이었다.

 

  

김승호, 최은희, 김지미

 

 

최은희와 김지미

 

어느 날 갑자기 '김지미'라는 배우가 혜성처럼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그 무렵 '김지미'는 미녀의 대명사였다. 어린 눈에도 그를 보면 졸음이 달아날 정도로 예뻤다. 선배 최은희와 신인 김지미의 미모와 인기는 그 무렵 촉새들의 최대 관심거리였던바, 영화계는 이를 놓치지 않고 <춘향전>으로 일대 격돌했다.

 

신상옥 감독은 최은희, 김진규를 내세워 <성춘향>을, 홍성기 감독은 김지미, 신귀식을 내세워 <춘향전>을 만들었다. 두 작품은 희대의 라이벌 전으로 장안의 화제였다. 두 작품이 같은 한 고전소설 <춘향전>을 각색한 한국 최초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인 데다가 홍성기, 신상옥 두 감독은 당대 최고로 촉망받았다.

 

더욱이 <춘향전>의 주인공은 20대의 새로운 스타 김지미였고, <성춘향>의 타이틀롤은 최고의 스타로 한창 연기에 물오른 30대 최은희였기에 더욱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배우는 공교롭게도 각 감독의 부인으로 그야말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자존심 대결이었다.

 

두 감독은 사생결단 작품에 전력투구했다. 제작비가 바닥이 난 신상옥 감독은 부인 최은희의 패물까지 팔아 충당했고, 그래도 모자라 스탭들의 밥은 외상전표로 먹었다고 한다.

 

1961년 정초, 영화팬들의 눈과 귀는 온통 두 영화의 대결에 쏠렸다. 두 편의 <춘향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한 까닭이었다. 그해 1월 18일 국제극장에서 먼저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이 개봉했고, 열흘 뒤 1월 28일 명보극장에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개봉됐다.

 

이 극적 라이벌 전에서 운명의 여신은 신상옥․최은희 커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영화는 당시 74일이라는 기록적인 상영 끝에 서울에서만 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명승부 결과 <성춘향>의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 전성시대를 구가했고,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은 막대한 제작비 손실에, 부인 김지미씨와 헤어지는 이중의 아픔을 겪었다. 그때 두 배우를 렌즈에 담은 김한용 선생의 후일담(작가의 말)에 그 무렵 최은희씨의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하루는 OB 맥주 달력 1월 달용 사진 촬영을 위해 최은희 씨가 (내 스튜디오에) 왔다. 그는 맥주잔을 들고 촬영을 해야 하는 사진이었는데, "못 들겠다. 내가 기생이냐"라며 끝끝내 거부해 촬영에 실패하고 다른 연기자로 대체했다.

- <꿈의 공장> 448쪽

 

돈 앞에서도 당대 최고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를 잃지 않은 당당한 최은희씨였다. 그는 이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최고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의 연예인들이 본받아야 할 얘기가 아닐까.

 

그 시절에 봤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머니 역을, 그리고 <상록수>에서 채영신 역을 맡은 최은희씨의 열연은 지금도 머리속에 삼삼하다. 대붕의 연기와 프라이드를 어찌 뱁새들이 따르겠는가. 최은희 - 그는 당대, 아니 20세기 최고의 배우였다.

 

비운의 대통령 후보 해공 신익희 선생

 

이밖에도 이 사진집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많다.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입후보하여 한강 백사장 유세장에서 청중 30만 명을 동원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할 수 있었던 대망의 대통령선거를 열흘 앞두고, 갑작스럽게 호남선 열차에서 뇌일혈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해공 선생에 대한 애도 탓인지, 그 무렵 발표된 '비 내리는 호남선'이 애창곡으로 전국방방곡곡에서 백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꿈의 공장>에는 연예인 외에도 김동리(소설가), 김백봉(무용가), 박목월(시인), 곽상훈(정치가), 김경승(조각가), 김광주(소설가), 김기창(화가), 김영주(삽화가), 박인환(시인), 박태준(기업인), 변관식(화가), 손원일(군인), 안익태(작곡가), 유일환(기업인), 유진오(법학자), 윤보선(정치인), 김영삼(정치인), 이승만(정치인), 이병철(기업인), 임화수(영화인), 장택상(정치인), 조병옥(정치인), 정비석(소설가), 조병화(시인), 천경자(화가), 이봉구(소설가) 등 그 시절 각계 명사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분들 가운데 나는 고교 신문배달 시절 거의 매일 만났던 '여인과 꽃과 뱀의 화가' 천경자 선생과 '명동 백작' 소설가 이봉구 선생이 가장 반가웠다. 천경자 선생은 종로구 누하동에서, 이봉구 선생은 종로구 계동에서 사셨다. 두 분 다 그때는 매우 가난한 예술가였다. 대학시절에 총장으로 뵌 유진오 박사님의 인자한 모습도 마치 어제 뵌 듯하다.

 

 김두한, 박인환, 이중섭 

* 소설가 박인환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두한, 부산 피난 시절의 화가 이중섭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YS는 있는데 DJ는 왜 없을까

 

각계 명사 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영의 사진이 나왔다면, 으레 나왔어야 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면서 잠시 김한용 선생을 속 좁은 예술인으로 봤는데, 책 끄트머리 작가의 말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포스터 등의 촬영 부탁도 많이 받았다. 군사정권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포스터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는 많이 피곤했는지 필름을 바꿔 끼우는 순간에 졸기도 했다. 그래서 큰 소리를 지르며 촬영했는데, 불행히도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당시, 야당 후보를 촬영한 사실을 어디에선가 알면 큰일 난다고 하여, 필름을 어딘가 깊이 간직하였는데, 아직까지 그 필름을 찾아내지 못했다.

- <꿈의 공장> 445~446쪽

 

나는 밤이 깊도록 책장을 넘기며 지난 추억을 더듬었다. 누군가 그랬다. 꿈이 많은 사람은, 추억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나는 가진 것은 적지만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면서 450쪽이 넘는 두툼한 <꿈의 공장> 사진집을 덮었다.

 

세상은 살 만한 곳,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기쁨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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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타들의 사진에 투영된 ‘한국인의 꿈’

▲ 꿈의 공장… 김한용 | 눈빛

 

OB맥주 광고사진 모델로 나온 영화배우 신영균과 김지미, 영화배우 남정임의 초상사진, CF모델의 등용문이었던 오란씨 광고(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옛날 사진들을 본다. 최은희, 윤정희, 김지미, 신성일, 남진, 장미희, 이덕화, 황신혜부터 수영복 입은 ‘오란씨걸’, 에베레스트 정상에 놓인 ‘오비생맥주’ 잔까지.

그러나 이 옛날 사진은 옛날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시대 젊은 작가가 찍은 듯 때로는 ‘초현대적’이기도 하다. 10년 전 유행은 촌스럽지만, 100년 전 유행은 클래식이다. 이 옛날 사진들에는 보는 이의 시간감각을 통째로 뒤흔드는 힘이 있다.

김한용은 올해 미수를 맞이한 한국 광고사진계의 대부다. 1959년 충무로에 한국 최초의 광고사진 스튜디오인 김한용사진연구소를 세웠고, 총 60여년간 광고사진과 인물사진을 찍어왔다. <꿈의 공장>에 수록된 270여점의 컬러 사진, 130여점의 흑백 사진은 그 기록이다.

사진비평가 이영준의 훌륭한 해설이 수록됐다. 그는 “자주적 근대화의 초기에 한국사람들이 꾸던 모든 꿈이 김한용의 사진에 들어있다”고 썼다. 김한용이 “근대화와 고도성장의 길목에 들어서서 이전에는 꿀 수 없었던 꿈을 꾸기 시작하는 한국사람들의 잠자는 두뇌에 들어가듯이 그들의 꿈을 사진으로 찍어냈다”는 것이다.

꿈은 현실의 반영이지만 정확한 반영은 아니다. 북한산 계곡에서 사냥한 꿩을 불에 구워먹으며 백화수복을 마신다거나, 눈덮인 강변에서 백마를 끌고 가는 모녀는 어느 나라의 풍경으로 봐야 할 것인가. 옛날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어색하듯, 당대를 호령하던 최고의 배우·모델들이 이 사진들 속에서는 마네킹보다도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총천연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색채들이 지면을 뚫고 나올 듯 화려하다.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시대는 다음 시대를 꿈꾸며, 꿈꾸기는 깨어남을 추동한다.” 하지만 ‘공장’에서 생산된 이 꿈들이 누구에게나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음은 오늘날의 독자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꿈들은 꿈인 줄 알고 꾸는 꿈, 즉 ‘자각몽’일 것이다. 2만9000원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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