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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영화 이야기

부산 국제영화제 위원장 - 김동호

by Wood-Stock 2010. 10. 18.

부산영화제 ‘산증인’  퇴임하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15년 고락 뒤로하고 ‘고별 파티’ 합니다

 

 

지난 4월 김동호(74)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부가 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을 삭감한 데 대한 의견을 들어보려는 것이었다. 그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부족하긴 하지만 잘 치러야죠. 스폰서를 좀 더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정 안 되면 규모를 줄여야겠지만…. 잘될 겁니다.”

 

강한 비판까지는 아니어도 노련한 문화행정가답게 정책의 문제점을 명확히 짚어주리라는 기대는 간단히 무너졌다. 겸손하고 온화한 그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싸움 붙이기 좋아하는 기자 처지에서야 심심하고 재미없는 대답이었지만, 그의 이런 자세가 부산영화제 15년을 이끌어온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올해 그는 자신의 마지막 부산영화제를 ‘집행’하고 있다. 영화제 개막을 앞서 최근 그를 만났다. 서울 남산 기슭 작은 사무실 벽에 걸린 일정표에는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했다. 노신사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꽉찬 일상이 피부에 와 닿았다.

 

문화예술도 기초가 중요하다

 

 

다시 예산 삭감 문제를 물었다. “내년에는 더 줄어들 거라고 봐요. 국회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건데…. 칸국제영화제는 예산 2000만유로(약 300억원) 중 1000만유로를 정부가 지원하고, 베를린영화제는 1800만유로 예산 중 800만유로를 지원받거든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영화제가 낭비성이 있는 게 아니냐,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서 하라는 생각이니 문제인 거죠.” 그는 금세 계산해냈다. 예산 100억원인 부산영화제가 7일간 극장 30여개를 꽉 채워도 입장료 수입은 8억~9억원에 그친다는 것. “어떻게 100억원을 벌어요?” 올해 부산영화제에 대한 정부 지원이 3억원 줄어든 15억원이었지만, 다행히 부산시가 추경예산으로 메워줬고 후원도 늘었다.

 

이 문제가 한참 떠들썩할 때 왜 그는 가만히 있었을까? “예전 같으면 항의했겠지만 이번엔 그냥…. 그동안 예산 투쟁을 많이 했었죠. 하지만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요.” 더 캐묻자 순순히 털어놨다. “예산 증액시키고 하는 건 문화체육관광부가 해야 할 일이에요. 국회 예산심의는 전체 영화제 지원액수를 포괄적으로 정해주는 건데, 개별 영화제에서 주장하는 건 순리에 맞질 않죠. 전체 쿼터를 운영하는 문화부가 가만히 있는데 개별 영화제 위원장들이 뛰어다니는 건 본말전도입니다.”

 

그는 서울법대 졸업 뒤 문화공보부 주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행정고시보다 어렵다던 공개승진시험을 거쳐 사무관으로 승진했고, 영화진흥위원회 전신인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문화부 차관을 지냈다. 그야말로 정통 문화관료 출신이다. 그런 그가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문화를 산업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기초가 되는 문화를 진흥시키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영화로 봐도, 기초예술이 튼튼해야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어요.”

 

영진위와 문화부가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방식 등을 간접지원으로 바꾸기로 한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영화의 저변은 역시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저예산독립영화라고 생각해요. 대자본이 아닌 소규모 예산이 들지만 아주 중요한 그런 영화를 제작하는 데 정부가 지원해주고 또 전용상영관을 확대하는 정책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3디 영화 지원 같은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3디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요? 영화 내용, 즉 콘텐츠와 시나리오 개발에 많은 노력이 집중돼야 좋은 영화가 생산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풍부한 이야깃거리 자원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지원을 많이 해줘야하고, 혜택이 직접적으로 들어가야 하죠.”

 

 

정체성과 자율성이 핵심이다


부산영화제가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는 영화제 천국이 됐다. 영진위 공식 집계로 국내 영화제만 70개가 넘고 국제영화제가 20개가 넘는다. 명맥을 가까스로 유지하거나 사라지는 영화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영화제 나름의 독특한 정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제 나름의 색깔이 뚜렷해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고 무엇보다 자율성을 확보해야 살 수 있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죠. 지자체 외풍이나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부산영화제의 영향으로 영화제가 많아진 것에 대해선 “과도 있지만 공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다양한 영화를 접할 기회가 영화제 덕분에 마련되죠. 또 지역에서 운영하는 영화제인 이상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부산영화제는 매년 대학 연구소를 통해 효과를 측정하는데 지난해 560억원의 경제파급 효과가 있었어요. 더 중요한 건 부산이 제조업이나 큰 기업이 없는 상태에서 영상산업이 주류 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이제 영상문화 중심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산 100억원 중 59억원을 부산시로부터 지원받아 쓸 수 있었던 거죠.”

 

그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부산영화제가 한단계 더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원사업이던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이 내년이나 내후년 준공됩니다. 아시아 영화 문화를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할 곳이니 이상적인 운영방안이 마련돼야겠죠. 또한 지금까지 부산영화제를 이끌어온 기조, 즉 아시아의 젊은 감독, 좋은 영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좀더 발전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 겁니다.”

 

숨을 고른 김 위원장은 “셋째”를 유독 강조했다. 바로 재단법인화 문제였다. 정체성 유지의 기반은 자율성이라는 원칙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일 터였다. “부산영화제의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재단법인화하는 게 필요해요. 영상센터 준공 뒤에는 영화제를 재단으로 만들어서 기금이 1000억원 정도로 조성될 계획입니다.” 그는 로테르담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등 재단이나 기금이 재정을 뒷받침하는 영화제를 사례로 들었다.

 

 

이렇게 큰 성과와 과업을 앞두고 그는 홀연히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2005년 10회 때 그만두려 했는데 영상센터 사업이 아직 미진해서 못했고, 지난해에는 주변에서 극구 말리고 해서…. 이젠 영상센터 준공도 눈앞에 있고, 미련을 계속 가지면 시기를 놓치게 되고 끝까지 미련을 못 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또 그러다 보면 쿠데타 일어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겁니다. 그래서 해외에 돌아다니면서 미리 다 얘기해놨어요. 올해 ‘페어웰 파티’ 하니까 꼭들 오라고요.” 단호한 말투 끝은 웃음이었다.

 

두주불사의 술꾼, 술을 끊다

 

그는 ‘술꾼’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의 한 유명 감독이 ‘평생 먹을 술을 하룻밤 동안 그와 마셨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술자리에서도 술 대신 녹차가 그 앞에 놓여 있다. “매일 폭음했는데 몇년은 더 살아야 할 거 아닌가 해서 하루아침에 뚝 끊어버렸죠.” 2006년 1월 우리나이로 일흔이 되던 해 끊어 4년9개월이 되어 간다고 했다. “평소 집에서든 밖에서든 혼자서 마신 적이 없고, 마주 앉으면 물불 안 가리고 끝장을 내서 그런지 끊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 같네요.”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도 빠뜨리지 않았던 게 아침운동이다. “71년부터 새벽에 매일 테니스 치고 출근했어요.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하루 30~40분씩은 뛰거나 걷거나 운동을 했죠.” 일흔넷인 그에게 ‘정정하다’는 표현이 불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젊게 보였다.

 

이런 자기 관리가 15년 부산영화제를 이끌어온 기반임을 알 수 있었다. 집이 서울인 그는 1년의 절반은 국외에, 국내에 있는 시간 중 3분의 1은 부산에서 지내면서도 건강을 잘 유지해왔다.

 

 

그는 마음 역시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적이 없다’는 평가는 ‘색깔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평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인간관계에서도 극단적이지 않은 것, 화합을 전제로 하는 중용에 치중해서 살다 보니까 그런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퇴임 뒤에는 서예와 한학, 그리고 역시 영화를 벗삼아 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60년대 초반에 서예로 국전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단기에 배워서 기초가 없어요. 시에 더 깊이 천착해 진짜 서예가로서 좋은 글씨를 쓰고 싶습니다. 해외 다니면서 현대미술을 많이 봐 현대 회화, 유화도 겸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보여주는 것보다 스스로 쓰고 그리면서 심취하는 게 중요해요. 영화도 대충 생각은 있지만 작품화될지는 모르겠네요. 친한 세계적 감독들이 많은데 그분들 만나 인터뷰도 하고 영화에 대한 해석이나 집념, 정신 등을 쭉 쫓아가 보면 다큐멘터리가 되는 셈이죠. 그렇게 한두 편 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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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문화부 장관’은 어떤가

 

대개의 식물은 저를 보호하기 위해 다소간의 독성을 품고 있다. 드문 예외가 산사나무다. 거의 완벽하게 무독한 나무로 꼽히기도 한다. 대신 순이나 열매, 뿌리, 꽃 등 거의 모든 부위는 차나 술, 약재 따위로 온전히 내준다. 언젠가 경기도 한택식물원에서 산사차를 마시다가 불현듯 첫사랑이란 말이 떠오른 것은 산사나무의 이런 순정한 덕성 때문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장이머우 감독의 <산사나무 아래>였다. 누구나 한번쯤 간절히 꿈꿨거나 경험했을 첫사랑에 대한 영상 보고서다. 온전히 내주고, 기다리고, 이해하며, 받아주는 그런 사랑을 그렸다고 한다. 산사나무는 그 상징이다. 무협 블록버스터에서 10여년 만에 초기의 순정한 세계로 귀환하는 장이머우 감독의 선택이었으니 단연 화제였다.

 

이 영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탓도 크다. 그와 부산영화제의 관계가 꼭 그런 첫사랑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지난 15년은 그가 오로지 이 영화제를 위해 헌신한 기간이었다. 외근중이던 그가 가족에게 한 일이라곤 일터로 가는 부인을 깨우기 위해 매일 아침 모닝콜을 한 것뿐이라고 할 만큼 열정을 온통 영화제에 쏟았다. 그런 그가 지금, 떠남으로 완성된다는 첫사랑의 공식처럼, 올 영화제를 끝으로 퇴장하려 한다. 그의 떠남에 대해 이미 무수한 헌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거기에 으레 따라붙는 아름답다는 수식어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따듯하지만 엄정한 그 앞에서 숙연함이 앞서는 까닭이다.

 

부산영화제와 그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다. “어쭙잖은 관리가 낙하산 타고 떨어진 줄 알았는데”(봉준호 감독) 그는 오로지 열정과 헌신으로 까다로운 우리 영화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세계의 어떤 영화제 위원장을 놓고 보아도, 헌신에서 유례가 없는 인물”(이창동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를 알고 지낸 세월 동안 그는 한 살도 더 나이들지 않은 듯 보인다. 마치 위대한 소나무처럼”이라는 중국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찬사에 디터 코슬리크 베를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요다 다쓰미 도쿄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동의한다.

 

그의 떠남이 숙연하기까지 한 것은 사실 이 정부가 앞세운 문화 무뢰배들의 추접한 욕망이 그 배색을 이루는 탓도 크다. 연기자 출신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양심적 문화예술인의 일터와 밥그룻을 빼앗았다. 그렇게 탈취한 자리에, 결국 그들 자신도 넌더리를 낸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같은 이들을 앉혔다. 미술계 원로라는 이는, 사법부가 불법부당하다고 판결했음에도 이 정권이 강탈한 자리에 뭉개고 앉아 예술인의 자존심을 더럽혔다. 오죽 그렇고 그런 이들뿐이었으면, 문화부 장관 내정자는 온갖 추접스런 행적 때문에 중도탈락했을까. 덕분에 자리를 보전한 유인촌 장관의 꼴도 구질구질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이 권력에 매달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제 자리마저 빼앗길 경우 그들의 더럽고 일그러진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두려운 것이다. 그것을 가려주고 분칠까지 해주는 권력은 얼마나 편리하고 고마운가.

 

이틀 뒤면 영화제의 폐막과 함께 김 위원장은 역사가 된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이는 그렇게 스스로 자리를 떠난다. 물론 전설이 되어버린 해운대 파티, 타이거 클럽 따위는 영화제와 함께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없는 그런 것들은 몸이 빠져나간 탈피처럼 허전하다.

 

아마 그런 아쉬움 때문이겠다. ‘김동호 문화부 장관’은 어떨까, 얄궂은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 그는 손사래를 칠 것이다. 집권 초 영화계부터 초토화시킨 이 정권도 내키지 않을 게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문화행정과 문화현장을 지켜왔고, 열정과 헌신으로 영화인의 대부가 된 그 말고 누가 이 정권을 문화파괴주의의 굴레에서 구할 수 있을까. 그가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

 

곽병찬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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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의 미래 - 김영진 명지대 교수· 영화평론가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5일 막을 내렸다. 부산영화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아시아 영화의 집결지로 성장했다. 또 발전하는 한국 영화산업의 상징적 통로로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얻었다. 출범 15년 만에 이러한 성공을 이룬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부산영화제가 오늘에 이르도록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이들을 기억할 만하다.

무엇보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헌신과 노고를 한껏 치하하고 기리지 않을 수 없다. 부산영화제는 출범 당시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위원장의 개인적 능력과 노력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는 스폰서 유치부터 해외 게스트 네트워킹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역할을 한, 큰 우산 같은 존재였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그를 대신해 앞으로 누가 영화제를 이끌 것인지, 또 영화제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 영화제의 위상이 갈릴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상징적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과제를 몇 년 전부터 안고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에 오면 유명 스타와 감독들의 전시장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실제 극장 안에서 돌아가는 영화들은 세상과 불화하고 기성 질서에 동의하지 않는 비타협적인 예술영화들이 많다. 영화제를 통해서만 소통되는 이 영화들의 배급망을 넓혀 영화제 바깥의 일반 대중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외연을 넓히는 것이 절실한 과제이다. 영화제 관객이 특정 전문 관객층으로 게토(guetto)화하지 않고, 부산영화제 브랜드가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해마다 영화제 사상 최대 편수가 상영되고 화제작들이 몇 초 만에 매진되고 영화제 관객이 몇 % 늘었다는 식의 뉴스가 지역 언론을 장식한다. 또 근거는 분명치 않지만 '세계 10대 영화제에 만족하지 않고 5대 영화제로 도약해야 한다'는 따위의 치사도 흔히 듣는다. 지자체 주도 행사에서 성장제일주의와 전시효과가 차지하는 비중을 모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부산영화제가 영화산업의 젖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폭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화제 상영작들을 일반극장에서도 유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출품 영화들에 대한 더 많은 전문 비평자들과 관객의 비평을 유도할 수 있는 네트워킹을 고민해야 한다. 부산영화제에 찾아오는 그 많은 영민하고 진실한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영화제의 브랜드 가치는 점점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부산영화제의 숙원인 전용상영관이 내년부터 건립된다. 남포동과 해운대에서 기존 영화관을 빌려 더부살이하던 시대를 벗어나 프랑스 칸과 같은 서구의 유명 영화제처럼 자체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이를 계기로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스태프의 헌신에 크게 의존해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한 영화제 시스템도 한 단계 도약할 전기를 맞을 것이다. 지난 15년간 영화제 핵심 인력들이 축적한 노하우를 믿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국제영화제는 20세기의 잔치마당이었다. 아날로그 전시장인 극장을 벗어나 디지털 상영공간으로 영화가 확장되는 21세기에 국제영화제는 갈수록 다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영화문화의 핵심으로 기능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포스트 김동호' 시대의 부산국제영화제가 혁신을 통한 지속적 발전을 이룰 것을 믿고 기대한다.

2010.10.16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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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 마다않던 위원장님...그가 부산을 뜬다

부산국제영화제 15년의 산 증인 김동호 위원장 퇴임... "다큐영화 감독이 꿈"

 

"젊고 노련하고 열정적인 인물들이 앞으로 영화제를 맡아 이끌어야 합니다. 지난 15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저를 믿고 성원해준 국내외 영화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4일 저녁 열린 김동호 위원장 송별파티에 참석한 배우 문성근, 가수 노영심 씨와 영화제 관련 인사들

 

독립영화인들의 와이드앵글 파티에서 줄리엣 비노쉬와 함께 한 김동호 집행위원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피날레를 기뻐하는 김 위원장을 향한 감사와 성원의 마음을 담은 박수였다.

 

14일 밤 10시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김동호 페어웰(Farewell) 파티는 국내외 영화인들과 정관계 인사들로 북적였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 위원장을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는 김동호 위원장을 위한 공식 송별회여서인지 늦은 시간임에도 국내외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원로배우 신성일, 김지미, 박정자씨를 비롯해 임권택, 박찬욱 감독, 오석근 부산영상위원장, 배우 문성근, 강수연, 예지원, 김혜선, 안정숙 전 영진위원장,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 등 영화계 전체를 망라한 신구세대들이 모두 모인 자리기도 했다. 각 단체들에서 건네는 감사패 증정도 이어졌는데, 김동호 위원장 퇴임을 영화계가 모두가 아쉬워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에 앞서 지난 12일 밤 10시 광안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독립영화인들의 와이드앵글 파티에서는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에게 지난 15년간의 노고에 감사하는 의미로 독립영화인들의 마음을 모아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어 김 위원장을 무동을 태워 장내를 한 바퀴 돌며 영화제를 통해 독립영화를 지원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한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허우샤오시엔 감독 등과 함께 참석한 김동호 위원장은 줄리엣 비노쉬와 함께 화끈한 춤를 선보여 독립영화인들을 열광케 했다. 김 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독립영화인들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힘쓰겠다는 각오를 보여 박수를 받기도 했다. 

 

포장마차 옆에 신문지 깔고, 퀵 서비스 오토바이 타고

 

14일 송별 리셉션에서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12일 밤 옛 포장마차를 술자리를 추억하는 행사를 열어 참석한 해외 영화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지난 15년 동안 김동호 위원장이 만들어 놓은 전설은 셀 수가 없다. 1회 때 포장마차 옆에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술자리를 벌인 기억은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올해 해운대에서 일부러 그 모습을 재현하는 길거리 포장마차 이벤트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영화제가 남포동과 해운대로 이원화되기 시작할 때는 퀵 서비스 오토바이 뒤에 타고 양쪽을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도 김동호 위원장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 역시 올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트레일러 필름에 영화 상영에 앞서 많은 관객들의 그 모습을 새기기도 했다.

 

이런 열정 덕분인 듯 14일 파티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허남식 시장은 "명예위원장으로 계속 부산과 관계성을 맺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원로 배우들은 김 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 사장 재임 당시 남양주 촬영소를 완공한 업적을 거론하며 '영화인들의 아버지'라 칭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칭송에도 불구하고 검소하고 자신을 낮추는 김 위원장의 모습은 14일 각 단체가 연이어 증정한 감사패와 예물 증정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내가 생각했던 모임은 몇몇만 모여 조촐히 송별회를 갖는 것이었는데 행사가 너무 커졌다"며 "이런 것은 내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증정된 예물과 선물 등은 현금화시켜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고 말해 또 한 차례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지막까지 그다운 자세를 견지한 것이다.

 

해외 영화제 파티는 '미스터 킴' 참석 여부가 관건

 

 

부산국제영화제 남포동 전야제 행사 때 인사를 하고 있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15일 결산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

 

15일 저녁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은 역대 폐막식 중 가장 의미 있는 행사였다. 사회는 1회 때부터 부산영화제와 함께한 안성기, 강수연씨가 맡았다. 

 

김 위원장의 퇴임 소식에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 감독과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참석해, 15년간 부산을 이끌어 온 칠순의 위원장이 물러나는 자리를 의미있게 했다.

 

김 위원장은 '15년간의 기록 그는 세상을 축제로 만들었다' 자막이 비추는 가운데, 폐막 공연 직후 "저는 지금 가장 행복하고 영광된 시간을 맞고 있다. 이 영광은 함께 헌신해 온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 여러분의 것이다. 부산을 찾아주신 관객들에게도 감사하다. 남은 인생 한국 영화를 위해 애쓰겠다"는 고별사를 끝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김 위원장에게 평생 ID 카드를 증정했다.

 

해외에서 김동호 위원장의 명성은 국내보다 더 높을 정도라는 것이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따르면 해외 영화제에서 열리는 각종 리셉션에는 '미스터 킴'(김동호 위원장)의 참석여부는 파티의 면모를 바꾼다고 한다.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나 면면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해외 인사들이 올해 대거 부산을 찾은 것도 이런 점과 연관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명성과 지명도에도 때로는 영화제 기간 중 수모를 겪어야 했던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2회 영화제 때 일부 젊은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당한 일.

 

당시 강동원 주연 영화 <M>의 기자회견장이 협소하자 몰려든 기자들 중 일부가 경호원들의 저지에 김동호 위원장에게 항의하며 대들었다. 김 위원장은 서른 살 남짓 아들뻘 되는 기자들의 거친 행동에도 별다른 화를 내거나 맞서 않고 감내했다. 당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가슴이 피멍이 드는 기분"이었다며 노 위원장이 당한 수모에 가슴 아파했다.

 

인내심도 많고 대인 관계가 원만해 적이 없는 것이 김 위원장은 특징이라지만 지난해 이런 장점이 도리어 좌파 공격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보수 원로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가 좌파 영화제"라면서 이른바 "좌파 영화인들과 친하게 지내니 김 위원장도 좌파 아니냐"며 온갖 비난을 하고 다닌 것.

 

이 같은 공세에 김동호 위원장은 오죽했으면 지난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노사모가 아닌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는다"며,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는지까지 밝히기도 했다. "아무렴 내가 고등학교(경기고) 대학교(서울대) 선배를 찍었지 다른 사람 찍었겠냐"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몸 사리고 위축된 모습

 

하지만 외부의 공세와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안팎으로 부산영화제에 대한 압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동호 위원장 역시 많이 위축된 모습이 엿보였다. 그는 지난해 영화인 시국선언에 부산국제영화제 일부 관계자들이 참여한 것에 대해, 상근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을 '내부의 적'이라고 표현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기획실장이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사표를 던졌을 만큼 영화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당시 위원장님의 표현이 과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상황적으로 예민해지다 보니 그런 발언이 나왔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 안팎의 상황이 안 좋아져 영화제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으나 예전과 비교할 때 정권 차원의 압박을 느꼈기 때문인 듯 상당한 몸 사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반면 지난 2003년 교육부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추진하자 정보인권에 반한다는 영화인들이 반대 성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김동호 위원장의 이름이 올라있고,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영화인 성명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서명했음에도 당시 정권 차원의 불이익을 당하거나 압박을 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었다.

 

거장 감독 주제로 다큐 영화 만들어 보고 싶어

 

한편 김동호 위원장은 15일 결산 기자회견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은 조금 쉴 생각이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면서 미술공부를 하고 책도 더 쓰고 싶고 1~2편 정도의 영화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영화제로서 갖는 아쉬움에 대해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아 좌석이 많은 부산극장을 활용 못해 좌석수가 줄어든 부분"을 꼽고 "내년 전용관 두레라움이 완공되면 주변에 극장들이 많이 생겨날 계획이라 이 같은 어려움이 해소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허남식 시장이 제안한 명예위원장에 대해 총회에서 논의될 사안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부산을 위한 일이라면 도움 되는 자세로 임하겠다며 사실상 수락 의사를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영화를 제작자로서 만들 것인지 아니면 감독으로 만들 것인지 궁금하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폐막작 <카멜리아>를 제작하면서 프로듀서를 해보니 자금도 구해야 하고, 진행상황도 체크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큐가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면서 세계 거장 감독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자본이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의 삶과 영화에 대해 파고 들어가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난 셈이다.

 

2010.10.16 - Ohmynews 성하훈(doomeh)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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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영화 도시’로 만든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ㆍ“부산영화제 다른 도시서 시작했다면 실패”

아주 특별한 인터뷰였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이 조금 특별한(?) 인터뷰이긴 하지만 이번 것은 그 특별한 중에서도 특별했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성과 한자는 다르지만 동호가 동호를 만난 것이다. 내가 나를 만난 것인 양 묘하다. 초면이지만 남다른 라포르(raport)가 만들어진 것이 우선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인터뷰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을 시작하거나 한창 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 게 보통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7일 이번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 7~15일)를 끝으로 15년 동안 맡았던 집행위원장의 짐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했다. 뜨는 해도, 중천에 떠 있는 해도 아닌, 지는 해를 바라는 해바라기는 없지 않은가.

김 위원장이 그 때문에 더 주목 받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특별한 점이다. 인터뷰 일정을 잡기조차 쉽지 않았다. 일요일인 지난 9월 12일 오후 6시 반 이후 시간에 겨우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였다. 피아니스트 노영심씨와 촬영 일정을 마치는 시점이었다. 노씨의 양해를 얻어 저녁 자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간신히 허락을 얻어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일식집 ‘어도’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김 위원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요리사 배정철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일요일 저녁에 특별하게 차린 음식을 먹으며 ‘신동호가 만난 사람’에도 나왔던 유명인(본지 888호 노영심 편)까지 덤으로 게스트로 모시고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함은 충분하다.

특별한 게스트 덕에 김 위원장의 말문이 저절로 트였다. 이번 영화제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배우 줄리엣 비노쉬를 꼼짝없이 오게 한 비화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작년에 공연하러 와서 동숭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잖아요. 그때 쳐들어가서 단독으로 별실에서 만났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 와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오고 싶다는 거예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이자 세계적인 영화제로 도약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줄리엣 비노쉬 같은 거물을 오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 가서 지아장커(賈樟柯) 감독의 시사회 때 다시 만났어요. 나도 한두 번 만난 사람을 다 모르는데 그도 당연히 모를 거잖아요. 1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 만났던 김 아무개라고 하니까 아, 안다는 거예요. 금년에 부산에 꼭 와달라고 다시 부탁하니까 일정을 한번 보겠다면서 제 명함에다 자기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어요.”

김 위원장의 친화력은 국내외 영화계가 알아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운도 따라야 한다. 그는 지난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심사위원에 선정됐다. 심사위원 만찬에 초대된 그는 그 자리가 아프리카 말리에 극장을 짓기 위해 마련된 것임을 알았다. 마침 줄리엣 비노쉬가 그 캠페인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름으로 극장의 객석 하나를 후원해 줄리엣 비노쉬의 관심을 끌었다. 이 대목에서 노영심씨가 대신 질문을 해주었다.

영화계와 담을 쌓고 지내던 김지미씨를 움직여서 이번에 회고전을 열잖아요. 두 분 중에 누굴 오게 하는 게 더 힘들었나요.
“다 어렵지만 줄리엣 비노쉬를 오게 하는 건 굉장히 힘든 거죠. 다행히 이번 칸영화제에서 (비노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잖아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증명서>)를 갖고 탔는데, 키아로스타미가 우리 아시아필름아카데미 교장으로 오거든. 그러니까 잘 된 거지. 그 영화를 초청해서 감독과 배우를 함께 엮으면 되니까. 키아로스타미한테는 비노쉬가 온다, 비노쉬한테는 키아로스타미가 온다, 양쪽에다 그러니까 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해서….(웃음)”

이야기가 무르익는 찰나에 음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이 “이 집은 저보고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는 집이니까 마음 놓고 드세요”라고 말했다. 종업원이 술 주문을 받으려고 할 때 가까스로 질문할 기회를 잡아 김 위원장에게 물었다.

요즘 약주는 좀 하십니까.
“원래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술꾼이었는데 2006년 1월 1일에 끊었습니다.”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우리 나이로 70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망년회까지는 왕창 마시고….(웃음) 두 해라도 더 살아야지 노영심씨 같은 사람을 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2년이라도 더 살기 위해 딱 끊었어요.”

70이 되는 해에 술 딱 끊고, 집행위원장도 15년 하고 딱 그만두고…. 무슨 일이든 시기를 정해놓고 딱 끊는 그런 성격입니까.
“그동안 몇 번 그만둘 시기를 찾았어요. 원래 10회 정도 하고 그만두면 딱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용관인 부산영상센터 건립이 불투명한 때라 도저히 그만둘 상황이 아니었어요. 작년에 그만두려다가는 부산시장께서 극력 만류하는 바람에 1년 연장했고요. 금년에는 아예 연초부터 국내외에 공언을 하고 다녔죠. 회유당하지 않으려고 허허허.(웃음)”

그동안 공직을 비롯해 많은 자리를 맡았는데, 항상 떠날 때를 생각하고 준비했습니까.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 언젠가는 그만둘 텐데, 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많은 분이 기왕에 영상센터를 추진해왔으니까 내년 개관까지 보고 그만두라고 해요. 저는 내년에 준공된다지만 아마도 내후년 정도 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죠. 기회를 놓치면 모양이 이상하게 될 것 같고, 또 하나는…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영상센터 건립을 계기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게 되거든요. 그 준비 과정은 새로운 사람의 몫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젊고 에너지가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는 게 제 소신이에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김 위원장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것 같습니다. 신문에 사설로까지 김 위원장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는데….
“여러 가지가 겹친 착잡한 기분인 건 사실이에요. 부담을 던 셈이니까 시원하기도 하고, 젊은 분한테 맡기니까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아무래도 좀 홀가분하죠.”
김 위원장의 퇴임을 마음 졸이며 기다린(?) 사람이 있다. 바로 옆에 앉은 노영심씨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그의 퇴임 때 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다. 인터뷰가 조금 진지한 분위기로 흐르는 듯해서 말머리를 돌렸다.

(노씨에게) 김 위원장께 선물 드렸습니까.
노영심: “어떤 선물요? 가시는 선물요?”
“(김 위원장이 말을 받아서) 옛날에 많이 받았어요. 원래 전공이 선물이니까.”

아직 안 드린 모양인데, 어떤 선물을 준비했는지 미리 공개하면 안 되겠습니까.
노영심: “이번에요? 곡을 만들었어요. 위원장님 퇴임 기념…(웃음) 버전이 두 가지예요. 아름다운 발라드와 청년 김동호의 미래를 위한 힘찬 노래….”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김 위원장의 고별연을 폐막 전날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요청도 있고, 김 위원장을 너무 민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후배 영화인들의 뜻에 따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서 폐막식 때 고별사를 하고 카펫 위를 걸어서 나가는 것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는 의식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공식 임기는 내년 초로 예정된 총회 때까지 유지된다.

공직에 있다가 뒤늦게 영화계에 투신해 큰 족적을 남겼는데, 영화를 안 했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벌써 손주나 보고 뭐 그러겠죠.”
노영심: “영화를 그만두면 바텐더를 한다고 그랬잖아요. 바의 주인이 돼서 사람들한테 칵테일을 만들어 준다고… 제가 캐나다에 갔는데 호두 까는 기계가 있더라고요. 바텐더가 술만 만드는 게 아니라 호두도 까주는 게 아닐까 해서 제가 샀어요.”
“그거 하나 가지고 있어요. 선물해줘서.”
노영심: “진짜 생각 많이 하고 샀어요. 위원장님한테 선물한다고 하면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요. 성직자한테도 그래요.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 스님한테 선물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요. 항상 남에게 많이 주시는 저런 분한테 뭘 드려야 할지….”
“그러니까 나보고 바텐더 하라고 그걸 줬구먼.”

진짜 바텐더 할 생각을 했습니까.
“하도 술 많이 먹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칵테일 만드는 건 잘 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술을 끊었잖아요. 내가 만든 칵테일 맛을 못 보니까 이제는 안 되겠죠.”
노영심: “위원장님, 그러면 지압이나 하세요.”(다 함께 웃음)
“술도 그렇지만 결국 돈이 문제가 되는 거죠. 또 하나의 취향이 있다면 서울 시내 같은 데 북카페를 하는 게 괜찮을 것 같거든요. 외국을 죽 다니면서 제일 많이 모아놓은 책이 미술 카탈로그예요. 어느 화가들보다 제가 많을 겁니다. 전시회 보고 난 다음에 이걸 기억하고 후에 저런 스타일의 그림을 언젠가 한번 그려보겠다 생각을 하고 사 모은 거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걸 내가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고 그 많은 걸 다 버릴 수도 없잖아요. 북카페 같은 걸 만들거나 조그마한 미술관을 겸한 미술자료관을 만들거나 뭔가를 해야 되는데 돈이 없어가지고 허허허….(웃음)”
김 위원장은 경기고·서울법대를 나와 문화공보부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우리 사회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력을 보면 공직에 몸담은 다음해인 1962년 국전 서예부문에 입선했다. 문화공보부에서는 문화국장·보도국장·국제교류국장·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차관까지 역임했다.

문화부에 근무하기 전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관심보다는 보는 걸 좋아했고요. 서예를 하다보니까 자연히 그림에도 관심이 있었죠. 전시회는 참 많이 다녔습니다. 국내에서는 동양화 쪽에 관심을 가져서 청전(靑田)·소전(素筌)·여초(如初)·일중(一中)의 글씨나 그림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림도 그려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하긴 욕심이 너무 많아 가지고…”

퇴임 후에 영화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간 1988년부터 사실상 영화계에 죽 있었던 셈인데 언젠가 영화 한두 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동안은 계속 카메라 갖고 다니면서 사진만 찍어왔지만 앞으로는 HD 카메라를 하나 사가지고 돌아다닐 생각이거든요. 한 두어 달만 배우면 무비카메라 조작할 수는 있으니까 내년에 영화제 가게 되면 거장 감독들을 찍고 싶어요. 당신의 생애에 있어서 영화란 무엇인가, 이런 인터뷰를 계속 찍어나가면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고, 그걸 갖고 잘 편집을 하면 다큐멘터리 정도 하나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것부터 착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노영심: “내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겠군요.(웃음) 제가 <오드너에 대하여>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사진작가를 팔로잉하면서 친구가 찍은 거예요.”
“임권택 감독 보고는 제가 102번째 영화 만들 때는 카메라 들고 쫓아다니면서 촬영하겠다고 했어요.”

집행위원장에서는 물러나지만 영화판 자체를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군요.
“항상 관심을 갖고 성원할 것은 성원해야죠. 부산국제영화제는 제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줘야 되지 않겠어요. 어차피 영화계에 발 들여놓았으니까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한국 영화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 가든가 그런 생각이에요.”

요즘 ‘세컨드라이프’라든가 ‘인생 이모작’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김 위원장께서 그런 점에서 롤모델이 될 것 같습니다. 공무원에서 영화인으로 새 출발을 한 게 환갑을 앞둔 나이였으니까….
“저야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영화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고, 지금도 모르죠. 지금 73세에 (영화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저는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하나의 실천하는 예술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서예도 배우고 유화도 배우고 영화도 만들어보고 새로운 제3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니, 인생을 이모작이 아니라 삼모작을 하려는 것이로군요.
“그렇게 도전해보는 거죠. 포르투갈의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이 있어요. 지금 만으로 103세인데 이 분이 3년에 두 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요. 만드는 영화마다 베니스영화제라든가 칸영화제에 상영이 됩니다. 103살에도 그렇게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30년 아래인 제가 새로 시작하더라도 거기 반 정도 수준의 영화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한 인터뷰는 특별하게 끝맺는 게 맞지 않을까. 인터뷰는 계속되고 김 위원장의 영화인생도 진행형이지만 지면은 한계가 있다. ‘부산영화제를 부산이 아닌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 위원장은 갑자기 정색을 했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어진 답변으로만 이 인터뷰 기사를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그 정신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어지리라고 보고 생략하겠다. 대신 노영심씨의 코멘트를 우리 시대가 낳은 한 거장 영화인의 퇴장에 대한 헌사로 갈음하고 싶다.
“위원장님! 내년부터가 더 흥미롭겠네요.”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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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부산국제영화제 마지막 스타, 김동호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어제 막을 내렸다. 9일 동안 67개국의 306편이 상영되었고, 18만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다. 올리버 스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허우샤오시엔, 카를로스 사우라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이 축제에 동참했고, 어느 대회보다도 내실 있게 진행되었다니 반갑다. 부산영화제의 저력을 확인하고 세계적인 영화제로 반석에 올랐음을 실감하는 바다. 이러한 성과와는 달리 부산영화제를 성공시킨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퇴임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김 위원장은 제1회 때부터 영화제를 이끌어왔다. 한 영화제의 수장이 물러나는 것에 국내외 영화인들이 이렇듯 깊이 아쉬워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연일 그간의 업적과 노고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부산영화제의 마지막 스타는 단연 김동호 위원장이었다.

부산영화제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영화제로 우뚝 선 것은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수준 높은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다. 또 부산광역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밑거름이 되었고, 해마다 눈에 띄는 특별전을 기획하여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점도 주효했다. 거기에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들의 활약 등이 어우러져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유연한 사고와 열정이 없었다면 이런 성공 요인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15년 동안 김 위원장은 한번의 잡음도 없이 집행부를 효율적으로 이끌어왔다.

김 위원장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작별파티에는 국내외 영화인 500여명이 몰려와 그간의 노고를 기렸다.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부산영화제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마침 작별파티에는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도 참석했다. 조 위원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난 6월 임시국회에 돌렸던 인사말 자료를 그대로 제출하여 국감장에서 쫓겨났다. 최근에는 그 탓을 영진위원들에게 돌리며 보직사퇴서를 내게 했다. 물의를 일으킨 것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모두 남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동안 ‘영화진흥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숱한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감투를 틀어쥐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떠나가는 김 위원장의 아름다운 퇴장을 보니 조 위원장의 밥그릇 끌어안기가 심히 가소롭다.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김동호 위원장이 있어 행복했다. 앞으로도 옷소매를 붙잡는 영화인들의 바람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2010.10.1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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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흥행 성공 PIFF, 지속 성장 위한 내실 다져야

부산국제영화제, 김지미만 빼고 다 좋았다 

 

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15일 저녁 막을 내렸다. 김동호 위원장 퇴임과 함께 1회부터 이어오던 수영만 시대도 마무리됐다. 내년 16회부터는 전용관(두레라움)에서 막을 올린다.

 

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퇴임하는 김동호 위원장에 대한 영상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김동호 위원장과 수영만 시대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도우려 했던 듯 올해 영화제는 지난해 보다 더 높은 관심으로 전년과 대비해 규모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수는 더 늘어나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제 측 발표대로 내실과 질적 성장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올해 영화제가 이렇듯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일단 영화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한 규모였다는 것이 1차적인 이유로 평가된다. 실제로 부산영화제가 안정적으로 치러낼 수 있는 적정 규모는 280~300여 편 정도다. 올해 상영작은 모두 306편으로 이런 조건에 부합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공식 집계된  영사사고는 1건으로 무난한 운영이 가능했다.

 

이와 관련,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결산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인 영사 사고 외에 경미한 사안들이 여러 건 보고되기는 했으나 작품 관람에 큰 지장이 생기거나 하지 않아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막작 상영이 15분 간 지연돼 옥에 티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상영 사고 없는 완벽한 영화제는 어느 영화제고 쉽지 않다는 점에서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 영화에 더해 감독 배우 만남 유익

 

13일 <증명서> 상영 후 무대에 앉아 관객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프랑스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

 

우선 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우호적이다. 관객들의 의견이 모이는 영화제 홈페이지 게시판을 살펴봐도 작품에 대한 불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간혹 외국 평론가들이 작품 수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관객들에게 있어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은 모습이다.

 

영화 <스트로베리 클리프>를 관람했다는 김미향씨는 "영화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소재도 흥미롭고 긴장감도 있어 꽤 좋았다"고 말했다. 관객 김정민씨는 "콜트기타 노동자들을 다룬 <꿈의 공장>이 좋았다"면서 "올바른 소비가 무엇인가와 공정무역 같은 것과도 일맥  상통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평하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감독에게 고맙고, 노동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관객들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영화 제작 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월드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작품들이 전체 작품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해 개막전부터 흥미를 유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영화 상영 후 감독과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관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혀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부 해외 스타들의 수준 높은 관객 대응과 국내 감독 배우들의 적극적인 관객 만남도 여기에 일조했다. 세계적인 스타 배우 줄리엣 비노쉬는 13일 <증명서> 상영 후 있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무대에 걸터 앉아 질문 하나에 풍성하고 진지한 내용으로 답변해 큰 박수를 받았다.

 

신순영씨는 줄리엣 비노쉬의 성실한 영화제 참여는 정말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영화 <이끼>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만남에도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김준배 등 주연배우들이 대거 참석해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무삭제판 <악마를 보았다>를 관람한 주재천씨는 "삭제된 부분은 조금만 더해지고 도리어 엄청난 장면이 통째로 삭제돼 무삭제가 아닌 재편집본이 맞을 것 같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김지미 한국 영화 회고전은 완벽한 미스 캐스팅"

 

15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한국영화 김지미 회고전. 영화계 후배들을 향한 비난 발언 등으로 인해 젊은 영화인들의 비판이 일었다

 

이렇듯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김지미씨의 작품을 조명한 한국 영화 회고전은 올해 가장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회고전을 준비한 영화제 측 보다는 김지미 씨의 자세에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김동호 위원장의 퇴임을 맞아 영화계 신구세대와 보혁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회고전에서 김지미씨는 보수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배 영화인들을 잇달아 비난해 젊은 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더구나 회고전에 동행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특급호텔 객실 30여개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일었다. 영화제 측과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객실 15개와 지인들을 위한 전세버스 1대 제공으로 절충됐다고는 하나 오만한 행동에 대한 영화인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김지미 회고전에 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부산영화제를 안팎에서 비난하고 다니던 원로 영화인들인데, 저런 사람들을 위해 굳이 비싼 돈을 들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필요 이상의 부담을 떠안았다는 지적이었다.

 

영화평론가 백건영씨도 "모름지기 스타란 팬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바침으로써 스타는 제 위치를 찾게 된다, 그러나 김지미씨의 행보는 모든 이를 발아래 놓겠다는 오만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은 완벽한 미스 캐스팅"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김지미씨가 보수 언론들과 한 인터뷰를 보고 솔직히 많이 당혹스러웠다"며 김지미씨 발언 때문에 "영화제 측도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원로 영화인들에 대한 배려에 대해 "원래 1박 2일 정도 초청하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였는데 김지미씨 회고전 때문에 올해는 3박 4일로 늘어나게 됐다"고 말하고 "영화제는 축제의 하나이니 밖에서 뭐라 말하고다니든 모두 포용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정시입장제, 완화 아닌 사실상 폐지...관객 불만 높아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이 영화 상영후 이어진 감독 배우와의 만남에 열중하고 있다

 

영화제 운영 면에서는 예전에 비해 많은 안정이 이뤄졌지만 15년이 흘렀음에도 관객 수요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나 아직도 후진적인 시스템을 활용하는 부분과 인력 구조 등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보완해야 할 사안으로 여겨진다.

 

올해 인터넷 예매 과정에서는 동시 접속자수가 3만 8천 명에서 5만 7천으로, 전년 대비 2만 명 가까이 늘어나 예전에 없던 불편이 생겨났다. 5만 명을 예상하고 구축했던 시스템이 느려지며 한 건당 처리 시간이 길어졌던 것이다. 포털 서버를 사용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지난해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해마다 증가하는 영화제에 대한 관심도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부산영화제 강성호 사무국장은 "예측 범위를 넘은 관객들이 몰려 예매 초기 시간이 더뎌진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하고 "내년에는 예매 시스템을 조금 더 개선해 포털사이트 서버 활용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후원업체가 뒤늦게 포털사이트 '다음(Daum)'으로 결정되면서 현실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정시입장 완화는 올해 관객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이었다. 완화되기 보다는 폐지됐다는 것이 관객들의 중론으로 사실 영화제 시작 전부터 우려됐던 사안이었다. 일부 상영관에서는 상영 시작 1시간 이후까지 입장시켜 영화 관람을 방해받았다는 관객들의 불만이 가득했다. 이 부분은 소비자 약관 규정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정시입장제를 고수하던 과정에서 생기던 지연 입장 관객들과의 마찰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영화제 측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인다. 

 

심야 상영인 '미드나잇 패션'에서는 매점들이 문을 닫아 새벽 시간 배가 출출해진 관객들이 영화 관람에 어려움 있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른 영화제들의 경우 심야 상영 때 관객 편의를 위해 야식이나 간식을 제공해 주는 것에 비한다면, 부산영화제는 이런 작은 배려가 약해 보인다. 관객들은 사소한 것에 감동받는다는 점에서 영화제 측의 관심이 조금 더 필요한 사안으로 여겨진다.

 

문화운동 지향도 좋지만 안정된 구조도 필요

 

 

 

다음으로 스태프의 안정적 운영은 핵심적 사안 중 하나다. 영화제 기간에 맞춰 2~3개월 정도 일하는 단기 스태프 위주로 가는 현실은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보인다. 영화제 핵심 인사들의 인식이 현실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만든 인사들은 문화운동의 한 방편으로서 영화제를 생각했고 지금도 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안정된 직장으로서 영화제를 원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부분에 대한 차이가 좁혀질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퇴임 이유 중 하나로 "영화제 조직이 많이 안정됐다"고 말했지만 대외적인 수사일 뿐 조직적 안정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지난해 영화제 이후 팀장급 3분의 1 가량이 그만뒀고,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적인 않은 데다, 영화제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생활을 꾸려나가기 만만치 않다는 것이 스태프들이 갖는 고충이다.

 

영화제에 대한 애정과 의무감이 그들을 묶어두고 있다지만 경험 많은 스태프들의 이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제로서도 큰 손실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영화제 간부진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문화운동은 개개인의 헌신이 요구되는 부분이지만, 스태프들에게 헌신만을 강요하기에는 현실적인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제 간부들의 고민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부산국제영화제 강성호 사무국장은 이 같은 지적에 수긍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지금 형태로 내년 전용관(두레라움)으로 옮겨지는 영화제를 치르기에는 힘들 수 있을 것 같고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으로 생각된다"며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화제의 힘은 관객이라는 사실, 잊지 말아야

 

새로운 시스템 활용에 더딘 것 역시 영화제 자체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사안으로 보인다.  일례로 상영시간표를 짤 때 일일이 종이에 영화 이름을 적어 붙여 놓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실무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시스템을 활용하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을 아직도 옛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제 핵심 인사들의 인식과도 직결돼 있다. '예전에도 그렇게 했는데 굳이 새롭게 할 필요성이 있냐'며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고, 변화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6회 때부터 시작된 인터넷 예매가 7년이 지난 12회 때 가서야 겨우 안정을 찾는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예매 시스템 개선에 나섰던 실무 관계자는 "만일 문제가 생기면 사표를 내겠다는 심정으로 나섰던 것인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스마트폰 어플의 경우 원하는 메뉴가 모두 들어 있어 상당히 호평을 받았으나 "핵심 인사들은 이 같은 기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중요성에 대해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영화제 한 실무 관계자는 전했다.

 

무엇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제의 힘은 관객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열정적인 관객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늘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망] 이용관 위원장 단독체제로 가는 부산국제영화제 앞날은?

 "김동호 자취 간직하면서 업그레이드 하겠다"

 

"15회 부산영화제는 독립영화 지원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독립영화 지원에 소극적인 것과 대별된다. 무엇보다 이 위원장의 이 말은 독립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말로 풀이된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끝으로 김동호 위원장 체제가 마감됐다. 내년부터는 이용관 위원장 단독체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향후 영화제 운영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진다. 무엇보다 김동호 위원장만큼 이 위원장이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 김동호 위원장은 15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창설 멤버"라며 "지난 4년간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일해왔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용관 위원장은 "김동호의 자취을 간직하면서 영화제를 업그레이드 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동호체제에서 이용관체제로 이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용관 위원장은 영화제 창업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워낙 부담을 많이 느껴 김동호 위원장의 퇴임을 계속 만류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김동호 위원장에게 몇 년만 더 버텨달라고 당부했지만 이에 김 위원장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외부인사 영입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단독보다는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인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보다는 학자로서 학문연구에 더 관심이 많다며, 영화제 일보다는 학교에 전념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었다는 것. 

 

또 일부에서는 지난해 영화제에 대한 좌파 공세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심적 부담을 가중시킨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당시 진행된 감사원 감사도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난하는 보수 원로영화인의 대표 격인 정진우 감독이 김동호 위원장과는 개인적으로 화해했으나, 이용관 위원장에게는 "계속 미워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를 책임질 이용관 위원장의 어깨는 무겁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가진 소신대로 영화제를 운영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영화계 안팎은 전망하고 있다.

2010.10.1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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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극장뎐] 젊은 영화인의 냉소와 김지미의 미소

 

김지미가 15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 참석했다. ‘그녀가 허락한 모든 것: 배우 그리고 김지미’라는 제목의 영화제 공식 행사였다. 그녀가 명품 브랜드로부터 증정받은 디렉터스 체어에 왕비처럼 올라앉아 환하게 웃었다. 김지미의 미소. 이는 올해 부산영화제가 소망했던 오랜 응어리의 살풀이였다. 이 장면은 10년이 넘은 영화계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혹은 적어도 화해의 기회가 남아 있음을 알리는 상징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회고전이 갖는 매우 소박한 정치적 목적이었다. 그러나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김동호 위원장은 “신구세대 영화인이 대립과 보혁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김지미 회고전을 준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1998년, 김지미 이사장이 이끄는 영화인협회는 문성근, 명계남 등 젊은 영화인들의 구성체인 충무로포럼과 대립했다. 충무로포럼은 영화인회의로 이어졌고,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의 충돌에서 영화인회의가 우세하게 되면서 협회는 영향력을 거의 잃게 된다.

 

본격적인 갈등은 영화진흥위원회 인선과 관련해 터져나왔다. 영진위는 영화진흥법 개정에 따라 기존의 영화진흥공사를 폐지하고 1999년 5월 출범했다. 집행부는 10명의 진흥위원이 결정했다. 초대 위원장에 신세길, 부위원장에 문성근이 선임됐다. 10명의 진흥위원 가운데 정지영, 문성근 위원은 영진법 개정을 주장했고, 조희문, 김지미, 윤일봉(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위원은 반대해왔다. 싸움은 예정된 것이었다.

 

결국 김지미, 윤일봉 위원이 “우리는 문화부의 진흥위원 위촉을 수락한 적이 없으니 현 집행부는 불법”이라며 문제를 제기한다. 이 사건은 ‘영진위 사태’라는 이름으로 꽤 오랫동안 신문 사회면을 표류하게 된다. 결국 신세길, 문성근이 사퇴하고 박종국, 조희문 집행부가 새로 조직되지만 상황은 진정되지 않았다. 갈등 끝에 새로 선임된 유길촌(유인촌 현 문화부 장관의 형) 위원장은 “전 위원회가 뽑은 조희문 부위원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신임을 의결한다. 이 모든 진흙탕을 뒤로하고 2000년 6월, 김지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다시 15회 부산영화제로 돌아와보자. 한때 영진위에서 쫓겨나왔던 조희문은 영진위원장이 되었다. 김지미는 회고전 참석을 위해 그날 이후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애초 영진위 무용론을 주장했던 조희문 위원장이 이를 실증이라도 하려는 듯 거의 소설 같은 수준의 무능력을 보여주며 영화계 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는 가운데, 신구 갈등의 중심이고 산증인이었던 그녀가 부산영화제에 참석해 화합을 논한다는 것. 그야말로 우리가 원로에게 바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김지미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였다. 여기서 그녀는 작정한 듯 “선배가 잘못했다고 너희 다 물러가라 이런 식이면 공산당과 뭐가 다른가” “우리보고 인사도 안 하는 애들이었다” “영진위 사건은 영원히 못 잊는다. 용서가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이 재미없는 무협의 세계에서 장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언제나 멸절사태에 불과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말았다. 나이가 많다고 원로가 되는 게 아니다. 원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원로를 자처하며 합리에 저항할 때 세상의 체계는 초라해진다. 회고전은 의미없이 화려했고 젊은 영화인들은 냉소를 보냈다. 15년 동안 영화제를 유례없이 모범적으로 운영해온 김동호 위원장의 마지막 한 방은, 그렇게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허지웅 영화칼럼니스트 (201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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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

40여개 세계 영화제가 한 권의 책에 담겨

 

15년 간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고 영화의 바다를 항해하던 김동호 위원장이 선장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지난 세월을 정리한 흔적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책 제목은<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일인 15일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90년대 국제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됐는데, 세계 어떤 영화제들이 있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김동호 위원장이 정리한 세계 영화제 기행은 그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이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영화제를 찾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1년의 반을 해외 출장으로 보내는데, 그 대부분을 세계 각 영화제에서 보낸다.

 

어떤 면에서 영화제라는 것은 축제의 마당이면서 영화계의 외교 무대이기도 하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술 한 잔에 울고 웃고 토론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의 매력이다. 그가 세계 각지의 국제영화제들을 찾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한국영화를 알리고 세계 영화계의 인맥을 쌓는 등 '문화 외교'를 펼쳤던 것은 그가 당연히 맡아야 할 소임이기도 했다.

 

김동호 위원장에 따르면 영화제는 저예산 독립영화인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선보이는 좋은 무대이지 소중한 요람이며, 중견 감독들에게는 영화를 향한 의지를 재확인 시키는 단단한 땅이, 거장들에게는 열정적인 관객을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프로그래머들은 결과에 초조해 하는 수험생처럼 관객이나 평론가들의 혹평에 좌절당하고 호평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좋은 무대이자 단단한 땅, 열정적 관객을 만나는 장소

 

김 위원장이 처음 해외 영화제를 찾은 것은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인 1988년 몬트리올 영화제 때였다. 그는 당시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가 경쟁 부문에 선정돼 주연 배우 신혜수씨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모습을 현지에서 지켜봤다. '영화에 문외한이었지만 영화인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임권택 감독은 회고한다.

 

이듬해 8월에는 모스크바 영화제에 참석했는데, 이때도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바라아제>가 경쟁에 진출해 주연을 맡은 강수연 씨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이 김동호 위원장이 영화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인 셈이다.

 

그가 본격적인 영화제 순회의 시작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던 1996년 홍콩과 칸 영화제의 참석이었다. 초기에는 해외 영화계 인사들을 초청하는 데만 몰두하던 것이 부산영화제의 입지가 높아지면서 해외 영화제 방문은 그 범위가 넓어졌다. 처음에는 하와이, 로테르담, 싱가포르, 후쿠오카 영화제 등으로부터 심사위원으로 초청받기도 했는데, 세월이 흘러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18개 영화제를 방문했다. 15년의 세월 동안 그는 영화제의 순례자가 돼 있었다.

 

초창기와 비교할 때 현재 달라진 대우는 격세지감이다. 칸 베를린 등 주요 영화제에서 처음 갔을 때는 초청은커녕 숙박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는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고급호텔이 제공되는 것은 물론 공항에 도착하면 전용차량까지 제공된다고 한다. 모두가 부산의 입지가 높아진 덕분이었다. 200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그가 다른 영화제 위원장들과는 차원이 다른 의전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의 방문을 원하는 영화제들이 늘어났는데, 김 위원장은 각 영화제들의 초청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해외 영화인들과 돈독한 교분을 쌓아 나갔다.

 

책으로 둘러보게 해 주는 세계 주요 영화제 안내서

 

15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세계 영화제를 다니며 찍은 사진을 모아 '김동호의 열정' 사진전을 연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가 펴낸 세계 영화제 기행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에는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이름난 영화제부터 아시아에서 경쟁하고 있는 홍콩, 상하이, 도쿄 영화제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모로코 마라케시, 스페인 라스팔마스, 스위스 프리부르 영화제 등 주요 국제영화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대서양의 외딴 섬 스페인 라스팔마스는 한국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이기도 한 데 2009년 라스팔마스 영화제에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남녀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는 주상영관 안이 총영사와 교민회장을 비롯한 초만원을 이뤘고, 상영이 끝난 후 밤샘 술자리가 이어졌다고 한다.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가 많이 소개되면서 영화제가 한국 교민의 최대 문화 축제가 됐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는 각 영화제의 역사와 특성을 비롯해 개최되는 도시의 풍경, 주요 인물에 대한 소개, 한국 영화에 관련된 에피소드, 부산국제영화제와의 비교 등이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수록 돼 있다. 책 한 권으로 전 세계 영화제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충실한 국제영화제 안내서인 것이다.

 

15회 영화제를 끝으로 퇴임을 공언해 온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 기행 발간을 주요한 과제로 꼽아 왔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해 낼 수 없는 일"이라며 "영화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실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책에 대한 의의를 부여했다. 

 

책 내용이 꼼꼼하게 구성돼 있어 그의 말대로 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제를 다니며 짬짬이 모아 놓았던 그의 자료가 쉽게 얻기 힘든 부분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때마다 국내 영화제들을 다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해외 영화제들에 대한 시선을 넓힐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책에서 주요 국제영화제의 매력이 물씬 풍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호 위원장은 서문을 통해 "방문했던 많은 영화제 중 40개 영화제를 수록했으나 중요한 30개 영화제는 책 분량 상 다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향후 증보판을 낼 기회가 생기면 좀 더 충실한 세계 영화제 기행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15년 간 공들였던 그의 열정을 한 권의 책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책에서 얻게 되는 가장 큰 보람이다.

 

2010.10.1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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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모든 것을 바친, 김동호 위원장의 20년의 기록!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위원장인 김동호가 쓴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지, 지구상의 영화들이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지 같은 여러 문제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영화제가 단순히 영상을 쏘아 스크린에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행사가 아님을 알려준다. 영화를 생산한 사람들과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이들 사이에 나름의 성격을 지닌 교류가 이루어지는, 영화를 매개로 펼쳐지는 지극히 현대적인 축제가 바로 영화제이다.

이 책은 유럽, 아시아, 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5대륙에서 펼쳐지는 40개에 이르는 영화제를 소개하는데, 유명 영화제에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영화제를 우열없이 공평하게 다루고 있다. 덕분에 여기에는 일반 독자들이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작은 영화제가 여럿 소개돼 있다. 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한곳에 치중되지 않은 세계 영화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영화제 소개에 그치지 않고, 영화 상식이나 영화사 관련 에피소드, 영화감독 등에 관해 필요한 정보를 함께 구성해서 영화제 전반을 넘어서 영화라는 문화의 한 부분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 이야기해주는 영화제의 이모저모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 위원장이 지난 20여 년간 영화와 인연을 맺고 세계 각지를 돌며 기록한 영화제와 영화계 안팎의 이야기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를 문학동네에서 펴냈다. 이 책은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지, 지구상의 영화들이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지 같은 여러 문제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저자는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를 통해 영화제가 단순히 영상을 쏘아 스크린에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행사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그곳에선 사람이 모이고 만남이 생겨난다. 영화를 생산한 사람들(제작자, 감독, 배우 등)과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관객, 영화사 구매자(buyer), 언론사 기자 등)이 한데 모이고, 이들 사이에 나름의 성격을 지닌 교류가 이루어진다. 영화제란 영화를 매개로 펼쳐지는 지극히 현대적인 축제이다.

20세기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영상매체의 대표 주자이자, 산업과 예술의 반인반수 같은 기이한 존재인 영화가 있고, 영화를 둘러싸고 갖가지 욕망을 채우려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그곳이 바로 영화제인 것이다. 산업이자 예술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영화, 모두가 이 영화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영화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인 거대한 상업적 기제를 예민하게 인식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영화제는 영화란 매체의 예술적 가치를 인증하는 동시에 산업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다.

김동호 위원장의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시스템의 이면을 자연스럽게 확인시켜주면서, 영화 그 자체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까지도 구체적으로 그려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영화제들이 어떤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자신만의 풍경을 자아내는지, 저자는 수십 년간 영화제를 탐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관련 상식들과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상세히 풀어 이야기한다.

영화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지난 20년간의 기록’이자 ‘퇴임을 기념하는 책’
그의 퇴임은 올 2010년 부산영화제에서 단연코 최고 관심사이다. 어떤 자리에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왜 부산영화제는 유독 깊은 존경과 큰 아쉬움으로 보내면서 그와의 작별을 준비하는 것일까. 부산영화제의 성공에는 김동호란 인물이 있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국제 규모의 영화제를 세우고 그것을 성공으로 이끈 사람이라는 찬사에서 세계 영화제를 술로 재패한 사람 같은 장난 같은 표현까지, 그에겐 참 많은 수식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가 영화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는 차분함을 넘어 심지어 건조해보이기까지 하다. 그는 자신이 발 딛었던 영화제들을 아주 덤덤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데 치중하여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러면서도 그 마무리는 한결같이 한국영화의 미래로 모인다. 다리품을 팔아 세계 영화제를 주유했던 것이 말 그대로 놀고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영화와 부산에서 펼쳐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며, 그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큰 노력을 경주해왔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례이다.

이는 책의 서두에서 ‘세계 영화인들의 추천사’ 중 하나로 임권택 감독이 소상히 밝혀주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본문 8-10쪽). 관료사회에서 잔뼈가 굵어 제2대 문화부 차관까지 올랐던 그가 영화진흥공사 사장(현 영화진흥위원회)이 되면서 영화와 첫 인연을 맺고 오늘날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 축제로 만들기까지 거의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그는 세계 영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의 문화계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굳이 리더십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지닌 덕장의 면모는 ‘허우샤오시엔’(대만 영화감독), ‘티에리 프레모’(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피터 반 뷰렌’(네덜란드 영화평론가) 같은 이들이 그를 따르는 모임 ‘타이거클럽’(김동호의 이름 중 ‘호랑이 호’를 따서)을 만들게 하기까지 했다(본문 176쪽 사진을 참조하라). 그는 한국영화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자신의 성장을 일구어냈다. 책 속에는 그런 그의 면모가 곳곳에 배어 있다.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토론토 국제영화제까지, 5대륙 40곳에 이르는 영화제 소개
유럽, 아시아, 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5대륙에서 펼쳐지는 40개에 이르는 영화제가 소개돼 있다. 영화제의 수록 순서는 ‘가나다 순’을 따랐다(편집상 ‘영화명’은 영문 표기로 통일했다). 그것이 김동호 위원장의 바람이었다. 베니스, 칸, 베를린 같은 거대 영화제를 앞머리에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영화제 간에 어떤 우열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다루자는 제안이었다.

특히 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같은 이는 자신과 남다른 친분을 지닌 유명인사임에도 책의 뒤표지에 그의 추천사를 내걸어 거대 영화제의 후광을 입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이런 모습에선 모종의 윤리의식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이러한 신중한 마음가짐이야말로 그를 세계적인 영화인으로 끌어올리고 부산영화제를 성공시킨 제일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가 소개하는 세계 각지의 영화제들 역시 마찬가지의 성격을 지닌다. 영화제의 역사가 깊은 유럽이 절반이 좀 넘는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밖에 대륙들 영화제도 깊이 있고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그런 영화제에는 오히려 더 큰 관심을 쏟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나름의 개성을 지닌 작은 영화제들에 보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
이 책에는 일반 독자들이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작은 영화제가 여럿 소개돼 있다. 과거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에서 한국 교민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화합의 장으로 탈바꿈한 스페인의 한 섬에서 펼쳐지는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본문 36쪽), ‘웃음과 평화’ 시상부문을 만들어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감을 전해주는 ‘오키나와 국제영화제’(본문 268쪽), 남태평양 타이티 섬에서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곡진한 삶을 다루는 ‘타이티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본문 346쪽) 같은 영화제들은 우리가 처음 접해보는 영화제일 것이다.

그밖에도 28세 청년이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의 혁신과 젊음의 패기를 보여주는 동유럽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리는 ‘오프플러스카메라 국제독립영화제’(본문 130쪽), 정치적 억압 속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영화의 독립성을 지켜가는 이란의 ‘파지르 국제영화제’(본문 278쪽), 장난처럼 오간 말에서 시작된 아르메니아의 ‘예레반 국제영화제’(본문 90쪽), 지난 2002월드컵 이후 상처 입은 이탈리아인들의 민심을 달래고 한국문화를 올바로 알리기 위해 창설된 ‘피렌체 한국영화제’(본문 208쪽)같이 나름의 개성을 지닌 작은 영화제들도 인상적이다. 물론 세계 3대 영화제니 세계 8대 영화제니 하는 유수의 영화제들도 당연히 그 탐방의 기록을 남겨놓았다. 체코의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같이 유명한 영화제들의 경우에는 그 역사와 변천, 오늘의 위상과 그 미래까지 언급하여 머릿속에 선명한 지형도를 그려준다.

영화제란 사람과 사람의 일상을 되살려내는 문화적 힘의 집적체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제들 중에는 오랜 시간 부침을 겪다 어렵사리 영화제의 위상을 회복하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는 그 위상에 따라 저절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바깥에서 막연히 보는 것과 달리, 영화제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사람이 바뀌면 영화제의 성격도 바뀐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소개된 40군데의 영화제에서 매번 영화제 창설자와 운영진들, 그리고 그에 참여하는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을 언급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라 할 수 있다. 로테르담이라는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참혹한 폐허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잿더미 위에서 새롭게 도시를 재건하고, 그곳에 영화제를 창설해 문화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렇듯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힘을 얻었던 사례들을 자주 인용한다. 그가 영화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파시즘 정권치하의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처럼 정치의 수단으로 영화제가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음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영화의 환상을 주는 것보다 더 크게, 사람이 주는 감동의 이야기
김동호 위원장이 소개하는 수많은 영화제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폴란드 크라쿠프 오프플러스카메라 국제독립영화제의 사례다. 영화제 개막을 일주일 앞둔 올 4월 10일 러시아로 향하던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와 최고위층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가 러시아 스몰렌스크 공항 부근에 추락해 96명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건 말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초에 폴란드를 침공한 러시아가 폴란드의 재건을 막기 위해 지도층 인사 2만2천 명을 처형했던 ‘카틴 숲 대학살’의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던 길이었다. 비극의 현장을 추모하려던 일정이 또하나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16일에 영화제는 개최하려던 영화제 개막은 19일로 연기되었다. 열흘로 예정된 영화제 기간도 일주일로 단축됐다. 설상가상 닷새 뒤인 15일에는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유럽의 하늘을 뒤덮었다. 영화제에 참석하려던 주요 게스트들은 ?줄이 일정을 취소했다. 필름 운송수단도 끊겼다. 김동호 위원장 역시 처음에는 불참을 통보했다. 그러나 좌절하고 있을 젊은 순박한 28세의 청년 집행위원장 시먼과 영화제 스태프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 결국 그는 항공기 결항이라는 악조건을 헤치고 폴란드의 작은 도시 크라쿠프까지 찾아간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지혜를 발휘했다. 상영관마다 디지털상영 기기들을 확보했고, 필름을 가져오는 일은 인공위성을 통해 파일로 전송받아 102편의 영화들을 성공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것이다. 국가적 재난과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속에서도 크라쿠 영화제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영화제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기능을 떠맡고 있는지를 보여준 값진 본보기라는 생각이 든다. 김동호 위원장은 이 신생 영화제에 불참을 통보해놓은 뒤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무조건 예정대로 길을 나섰다는 것이다. 고난과 역경에 주저앉지 않도록 젊은이들을 격려하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동기감응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2010년 크라쿠프 영화제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그곳에 참석한 김동호 위원장의 사진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만큼 그들에게도 김 위원장의 방문은 고마운 일이었던 것이다.

영화 관련 상식과 영화제 관련 정보를 수록한 작은 영화 백과사전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30여 개의 주요 영화제에 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수록된 영화제만으로도 세계 영화제 전체의 흐름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동호 위원장의 연륜과 경력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충실한 내용을 지닌 포괄적인 영화제 소개책자를 다시 만나기도 쉽진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에 관해 49년간 빼곡하게 메모를 해왔다는 그의 기록벽이 아니었다면 한국영화가 어느 영화제에 진출하여 어느 부문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그렇게 소상히 풀어낼 수 있었을까.

훗날 이 책은 세계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국내 저자의 첫 번째 책이자 한국영화의 세계 영화제 진출 성과를 기록한 유용한 사료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가치 외에도 각 영화제마다 관련 도판들을 실어 영화제 직접 발을 딛고 참석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흥겨운 축제의 마당인 영화제 특유의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해당 영화제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빠짐없이 덧붙였다. 또한 영화제 소개에 그치지 않고, 영화 상식이나 영화사 관련 에피소드, 영화감독 등에 관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짬짬이 따로 지면을 구성했다.

‘퍼블릭 시스템 시네마’ ‘극장 앞에서 줄서기’ ‘배지(badge)’ 등 영화제와 직접적으로 연련된 정보만이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잉마르 베리만’ ‘오가와 신스케’ ‘요리스 이벤스’ 같은 영화감독들의 필모그래프, ‘뤼미에르 영화의 체코 상영’ ‘브라질의 시네마 노보’ 등 영화와 영화사의 요긴한 정보들도 함께 수록해 독자들의 편의를 도왔다. 끝으로 책의 말미에는 ‘김동호 위원장이 소개한 세계 영화제’ 전부에 관한 압축적인 개요를 수록해 세계 영화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김동호 위원장의 정성과 손길이 가득한 이 책으로 영화와 영화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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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영화와 함께 울고 웃고 환호하며
세계 영화인들의 추천사 - 허우샤오시엔 외

1. 유럽의 영화제
프랑스 도빌 아시아영화제
스페인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제영화제/ 보스니아 사라예보 영화제/ 아르메니아 예레반 국제영화제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영국 에든버러 국제영화제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영화제
폴란드 크라쿠프 오프플러스카메라 국제독립영화제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러시아 제르칼로 국제영화제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프랑스 칸 영화제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프랑스 파리시네마 국제영화제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이탈리아 피렌체 한국영화제

2. 아시아의 영화제
대만 타이페이 금마장영화제/ 타이페이 국제영화제
일본 도쿄 국제영화제
일본 도쿄 필름엑스영화제/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 국제영화제
중국 상하이 국제영화제
일본 오키나와 국제영화제
이란 파지르 국제영화제
중국 홍콩 국제영화제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영화제/ 포커스온아시아 후쿠오카 국제영화제

3. 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영화제
멕시코 과달라하라 국제영화제
모로코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미국 선댄스 영화제
남태평양 타히티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부록 - 김동호가 소개한 세계 영화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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