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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과학, 기술, 환경

낮은 한의학(이상곤) - 프레시안 연재(1)

by Wood-Stock 2009. 9. 23.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현대 한의학의 아버지 조헌영 ~ "장금이는 열등생 아니다"

기사입력 2009-08-26 오전 9:14:40

 

세상에는 두 종류의 한의사가 있다. 사회 정의를 위해 의료를 시행하는 유의(儒醫)와 사리사욕을 위해 의료를 이용하는 일반의(세의)가 그것이다.

유의는 자신의 정체성을 선비에 둔다. 이들은 사회 정의의 방편으로 의료를 연구하고 실천했다. 반면 일반의는 임상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의술을 습득하는 데 치중할 뿐만 아니라, 작은 의술도 일종의 사유재산으로 보면서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둘 중 한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유의다. 일반의가 대대로 전해져오는 비방에 근거해 진료를 할 때, 유의는 가족, 지인의 건강을 보살피면서 다양한 임상 경험을 수집하고, 여러 학문 전통을 습득해 나름의 의학 체계를 추구했다. 이런 유의의 활동의 결과 여러 가지 저서가 나왔음은 물론이고, 한의학도 소멸되지 않고 생명력을 가지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 조헌영(1900~1988). ⓒ프레시안
이런 유의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유성룡, 정약용이다. 근대 한의사 중에는 오늘 소개하는 조헌영(1900~1988)을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시인 조지훈의 아버지인 조헌영은 한의사이기 이전에 우국지사였다.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 후까지 신간회 동경지회장, 조선어학회 표준말사정위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 제헌국회의원 등의 경력은 그 증거다.

이런 사회 참여의 배경에는 유학에 기반을 둔 선비 전통이 있다. 조헌영은 경상북도 영양군에 터를 잡은 퇴계 이황의 영향을 받은 남인 계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을미년 항일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승기다. 그는 이런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었다. 그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했다.

조헌영이 한의학에 입문한 것은 삼십대로 늦은 나이다. 그는 <통속한의학원론>에서 늦깎이 한의학 연구자가 된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랑하는 애인이 폐결핵에 걸렸는데, 이를 치료해주고자 한의학을 공부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라는 것. 실제로 그는 1934년 <폐병치료법>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내가 한의학에 관한 저서를 쓴다는 것은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삼십이 되어서 한의학 책을 처음 펴보게 된 것은 한의학이 대중 의료에 가장 공헌이 많은데도 쇠퇴해 가는 것이 애석하기 때문이다."

조헌영이 한의학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는 가난하고 병든 민중의 삶을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935년 <신동아>에 기고한 그의 글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양의는 훌륭한 진단 기계를 많이 갖추어야 하고 약품도 대규모의 설비로 제제해야 하므로 돈이 많지 않으면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한의는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치료도 하등의 설비를 필요로 하지 않아서 민중 의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렇게 민중의 아픔을 구제하고자 유의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런 민중이 늘 그를 기쁘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글에서 환자에 대한 불평도 늘어놓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남의 바쁜 시간은 생각지도 않고 병 이야기를 두세 시간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말 없는 말 다해가며 처방을 얻어가지고 가면서 미안하거나 감사하다는 표정도 없이 가는 무례한 사람이 있으니 이는 유의학자들의 인술에 어린 양하던 민중의 버릇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헌영이 저술한 <통속한의학원론>은 현대 한의학의 시작을 열었다. 전통적인 한의학에서 벗어나 현대 의학과 접합점을 찾았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진리는 단지 다른 모습으로 나누어진 것일 뿐,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원칙하에 서양의학을 염두에 둔 현대 한의학의 설명 틀을 만든다.

일본 한의학이 서양 의학과 일원화된 이후의 의료 변화는 조헌영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 한의학은 급속히 서양 의학으로 흡수되었다. 증상에 따라 개인의 차이를 무시하고 같은 약물을 치료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였다. 그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의학이 합쳐졌을 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1950년 정부의 보건의료행정법안에 대항해 한의학을 지켰다.

한국전쟁 때 납북됐지만, 북에서도 한의학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동의보감>은 우리가 내세우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이 <동의보감>을 제대로 번역하려면, 단순히 한문을 번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 음식, 관제, 복식, 의료 등의 전반적인 삶을 고증해서 오늘날에 맞게 살려야 한다. 북한의 <동의보감> 번역본이 국내에 소개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바로 이 <동의보감> 번역본이 가능하도록 노력한 이가 바로 조헌영이다.

조헌영이 생각한 한의학 개혁의 마지막은 유의의 부활에 있었다. 의료의 사유화가 아니라 보편적, 대중적이며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유의(儒醫)적 한의사야말로 민족의학의 희망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한의사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우리의 모습이 두렵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다시 덮치는 역병의 공포 ~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의 비밀…열쇠는 솔잎? 

기사입력 2009-09-03 오전 8:55:38

 

신종플루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르면서 많은 사람이 공포에 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플루의 치료약인 타미플루가 주목을 받고 있다. 소아, 임신부, 노인 등은 타미플루를 제때 복용하지 못하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네 사람이 잇따라 사망해 많은 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타미플루가 충분히 공급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타미플루의 특허를 쥐고 있는 스위스의 제약 업체 로슈가 공급 물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공급을 충분히 한다고 하더라도 신종플루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는 구입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류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전염병 앞에서 돈벌이라니!

▲ 타미플루. ⓒ프레시안
이렇게 타미플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지만, 타미플루가 한약재 대회향(大茴香)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회향 속에 들어 있는 시킴산(shikimic acid)으로부터 합성한 물질이 바로 타미플루다. 대회향은 오래 전부터 베트남, 중국, 티베트 등에서 요리에 넣어서 고기 냄새를 없애는 데 쓰였다.

한의학자들도 오래 전부터 이 대회향을 주목했다. 중국의 유명한 한의학자 도홍경은 이것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냄새나는 고기를 삶을 때 이것을 넣으면 냄새가 사라지고, 장(醬) 류의 부패한 것에 이것의 가루를 넣어도 향이 난다. 그래서 '회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한의학자도 옛날부터 이 대회향이 전염병에 효과가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한의학의 고전 <본초강목>을 보면 전염병에 회향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학질에 발열이 심해 목 부분 등으로 열이 오르면 회향을 짓이겨 즙을 복용한다."

1542년 발간된 <간이벽온방>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전염병을 예방하고자 다음과 같은 처방을 제안한다.

"설날에 파, 마늘, 부추, 염교, 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 음식을 먹어라.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어라. 칠석날 모두가 모여 팥을 먹어라. 배추를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솔잎을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한의학의 시각에서 보자면, 옛 사람들은 '더운' 음식이 전염병 예방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았다. 실제로 타미플루의 원료인 대회향도 '더운' 음식이다. 솔잎을 권유한 것도 놀랍다. 타미플루의 원료가 되는 시킴산은 대회향뿐만 아니라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에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간이벽온방>의 세시풍속엔 이런 옛 사람의 지혜가 들어 있었다.

지금은 한의학이 보약을 짓는 데 주력하는 대체 의학으로 전락했지만, 애초 한의학은 전염병에 대응하고자 등장했다. 한의학의 원조는 화타, 편작이 아니라 장중경이다. 장중경의 <상한론>은 모든 한의학 처방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중경은 <상한론>의 서문에서 그가 왜 의학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놓고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종족이 많아서 전에는 200명이 넘었다. 그러나 건안 원년 이래 10년도 못돼 3분의 2가 죽었다. 상한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그 중의 10분의 7이었다. 이 책이 모든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병의 근원을 파악해 절반 정도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상한병은 천연두,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의학은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가족, 이웃을 지키려는 몸부림에서 발생한, 현실적인 치료 의학인 것이다. 일찌감치 대회향의 효능을 간파해서, 전염병 치료에 활용했던 옛 사람의 지혜도 이런 치열함에서 나왔으리라.

하나만 덧붙이자. 설사 신종플루에 감염이 되더라도 모두가 바이러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타미플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연 치유된다. 바로 면역의 힘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숙면을 취하고, 균형 있는 영양을 섭취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즐거운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확실한 전염병 예방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동의보감>과 치아 ~ "쥐 뼈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기사입력 2009-09-09 오전 9:01:46

 

농암 김창흡은 그의 저서에서 치아가 빠진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한탄했다.

"숙종 44년 내가 예순여섯 살이 되던 해이다. 갑자기 앞니 하나가 빠져 버렸다. 그러자 입술도 일그러지고, 말도 새고, 얼굴까지 한쪽으로 삐뚤어진 것 같았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니 놀랍게도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 하였다."

지금이야 임플란트로 빠진 치아를 채워 넣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옛날에는 어떤 방식으로 치아를 치료했을까? 쥐를 이용한 처방들이 우선 눈에 띈다. 좀 흉측하지만 치아가 흔들리는 증상에 사용되는 '고치산(固齒散)' 처방이 있다. 이 처방은 쥐의 등뼈에 여러 가지 약물을 혼합해 만들었다.

'낙치중생방(落齒重生方)'이라는 엽기적인 처방도 있다.

"치아를 자라나게 하고, 치아를 다시 나오게 하는 데 숫쥐 뼈를 가루로 만든다. (뼈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다.) 쥐를 잡아서 껍질을 벗긴 다음 노사라는 약물로 문지르면 3일이 지나서 살은 다 헤지고, 뼈만 남는다."

▲ <동의보감> 등은 쥐의 뼈가 치아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프레시안
옛 사람들은 쥐의 뼈가 성장판이 닫히지 않아 계속 자라는 걸 보고서 치아 치료에 쥐 뼈를 활용할 생각을 한 듯하다. 실제로 <동의보감> 곳곳에서는 이렇게 쥐 뼈를 치아 치료에 이용하는 갖가지 처방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치과의사들이 보면 실소를 하면서 옛사람의 무지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런 처방만 있는 게 아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풍치 처방이 있다. 잇몸이 패여서 치아가 흔들리는 현상을 되돌리려면, 염소의 다리뼈와 몇 가지 약재를 조합해서 쓰라는 것. 언뜻 들으면 또 다른 엽기적인 처방으로 들리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염소의 다리뼈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은 인산칼슘이다. 이 염소의 다리뼈에는 불소도 들어 있다. 치아의 구성 성분이 칼슘, 인, 불소 등인 것이나, 또 인산칼슘이 몸에 흡수돼 치아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사실 등을 염두에 두면 이 <동의보감>의 처방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봐도 상당히 그럴 듯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버드나무 껍질로 치통을 치료하는 처방도 나온다. 버드나무 껍질, 잎을 끓인 물을 입에 머금었다 뱉으면 어금니의 아픈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 아스피린의 원료는 살리실산인데, 이는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해 얻을 수 있다. 진통제의 원조가 아스피린인 것을 보면, 이 역시 현대 과학의 상식과 맞닿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나 역시 잇몸 질환 치료를 위해서 몇 가지 처방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처방을 고민하면서 늘 머리에 떠나지 않았던 것이 바로 <동의보감>의 쥐 뼈를 이용한 엽기적 처방이다. 또 아는가? 앞으로 쥐 뼈가 치아 질환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확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동의보감>은 8월 31일 제9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자문위원들은 "<동의보감>은 독창적이면서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양 의학보다 우수하다고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 내부는 이런 사실을 놓고 혹시 현대 의학이 폄훼당하지 않을까, 한의학을 깔보지는 않을까, 이런 데만 몰두하는 듯하다.

<동의보감>은 서양 의학, 한의학을 가릴 필요도 없는 우리 공동의 유산이다. 서양 의학은 서양 의학대로, 한의학은 한의학대로 이 <동의보감>에 실린 갖가지 유산을 잘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게 지금 필요한 일 아닐까? 가장 '실용'을 지향해야 할 의학마저도 왜 이리 이념 과잉인가?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佛手散 처방 ~ "자연분만을 원하세요? 여기 주목!"

기사입력 2009-09-16 오전 8:58:07

 

'불수산 지으러 갔다 금강산 구경'이란 고사가 있다. 조선시대 기인으로 꼽히는 정수동의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부인이 산고를 겪는 것을 보고 '불수산' 약을 지으러 가다 길에서 친구를 만나 그만 금강산을 구경하고 왔다는 이야기다. 불수산은 예전에 출산을 위해 먹던 가장 보편적인 한약 가운데 하나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시쳇말로 간이 크다 못해 부은 분이다. 그래도 덕망이 상당해 추사 김정희와 깊이 교유하며 시집 <하원시초>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만해 한용운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불수산을 지으러 갔다가, 일본 경찰에 쫓기자 사립문에 불수산을 걸어놓고 출가해 버렸다. 독립 만세운동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변절해도 끝까지 지조를 지킨 분다운 '처절한' 선택이다.

▲ 자연분만은 산모, 아이의 심신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프레시안
세월은 변해 제왕절개술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37.7%에 이른다. 병원도 마취도 수술도 없는 옛날에 어떻게 산고를 이겨냈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 의료 수준으로 볼 때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 해답이 "부처님 손처럼 부드럽게 아기를 낳도록 도와준다"는 뜻의 불수산이다.

이 처방의 다른 이름이 개골산(開骨散)이다. 풀이하면 현대 의학적 의미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출산에 관련된 하복부의 치골결합을 열어서 산도(아기가 태어날 때 지나는 길)를 넓혀 준다는 뜻이다.

이 처방에 포함된 약물은 당귀와 천궁이다. 당귀는 당귀부(當歸夫)의 준말이다. 임신하지 못해 신랑 곁을 떠나야 했던 불임 여성의 자궁을 튼튼하게 한 뒤, 다시 남편에게 돌려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 실험 결과도 이런 작용과 효과를 뒷받침한다. 임신한 개를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자궁 근육에 대부분 수축 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출산을 돕는 게 증명됐다. 그리고 임신 전의 개의 자궁 근육을 이완시켜, 피를 잘 돌게 해 국소의 영양을 좋게 하고, 자궁 발육을 돕는다.

당귀는 곱고 붉은 꽃을 피운다. 이것은 붉은 혈을 상징하고, 매끄러운 기미로 물의 본성을 띤 혈의 성질을 내포한다. 한의학적으로 간장, 심장, 비장에 필요한 혈을 생산해 채워줌으로써 혈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려보낸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천궁(川芎)은 물속의 바람이다. 바람이란 에너지의 다른 표현으로, 혈을 잘 움직여 흐르게 한다. 실제로 천궁 가지를 잘라 가로로 심어도 마디마다 뿌리가 나와 싹이 돋는다. 이렇듯 천궁은 무성한 생명력인 양기를 가졌기 때문에 막힌 것을 모조리 퍼뜨리며 도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 바로 혈을 활발하게 움직여 여성성의 근원인 자궁을 튼튼하게 하는 약물인 셈이다.

필자도 한의학의 진리를 확인하고자 첫째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불수산을 투여했다. 처가가 산고를 많이 겪는 집안인 탓에 덧붙여 '달생산'이라는 처방까지 8개월쯤 복용시켰다. 달생산은 '축태음'이라고 불리는 처방으로 요즘 말로 태아를 다이어트해 쉽게 산도를 빠져나오도록 도와주는 약이다.

출산하고 보니 키는 보통 애보다 훨씬 컸지만, 체중이 3.2㎏ 남짓 마른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때 찍은 사진을 증거삼아 보관하고 있다. 직접 처방의 효능을 확인하고 나서는 가까운 지인에게도 권유해 대부분 만족했다.

인생에서 겪는 많은 고통 가운데 남자가 겪을 수 없는 유일한 고통이 산고이다. 자연 분만보다 더 좋은 출산법이 없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산고를 덜어주려던 옛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조선 최초의 예방 접종, 종두법 ~ 지석영? 조선 시대부터 예방 접종 있었다!

기사입력 2009-09-23 오전 9:03:41

 

조선 시대 민중을 가장 괴롭힌 질병은 천연두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고열·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2주 정도를 버티면 흉터만 남기고 사라지지만, 많은 이들은 그 전에 죽었다.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를 보면, 4세 이전의 영아 40~50%가 천연두로 사망했다.

이렇게 무서운 질병이다 보니, 천연두는 예로부터 두창, 마마, 손님, 포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 중 백세창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일생에 한 번은 겪고 지나가는 병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우리 조상 역시 한 번 걸리면 재발은 없다는 '면역'의 기능을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이다.
 
▲ 국내에 천연두 예방 접종, 종두법을 처음 시행한 것은 지석영이 아니다. 그 전에 종두법의 하나인 인두법이 널리 보급되었고, 정약용은 우두법도 소개했다. ⓒ프레시안

흔히 지석영이 19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천연두 백신이라고 할 수 있는 종두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의학사에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임을 아는 이런 오류가 여전히 상식처럼 알려져 있으니 그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천연두의 예방 접종을 통칭하는 종두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영국의 제너가 도입한 우두법이다. 소의 천연두라고 할 수 있는 우두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해, 사람의 천연두 면역을 얻도록 하는 게 우두법이다. 다른 하나는 천연두를 앓은 이로부터 시료를 얻어서 사람에게 접종해 면역을 얻도록 하는 인두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이 인두법이 이미 널리 실시되었다. 인두법의 핵심은 시료를 채취하는 방법이었다. 자칫하면 천연두가 감염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한의사 등은 이 시료 채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시료 채취 방법이 동원되었다.

기록을 보면, 환자로부터 직접 채취해 쓰는 법, 환자의 옷을 입히는 방법, 고름·딱지를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는 법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한의사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런 방법은 갖가지 부작용이 있기는 했으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인두법은 천연두의 예방 접종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역사 속에서 허준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바로 천연두 때문이다. 허준이 양예수를 제치고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된 것은 바로 광해군의 천연두 때문이었다. 허준은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함으로써 선조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었고, 결국 <동의보감>을 쓴 명의로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실제로 허준은 천연두를 다른 전염병과 명확히 구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석영이 도입했다는 우두법의 존재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바로 정약용이 그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 천연두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러 명의 아이를 이 병 때문에 잃은 정약용은 종두법 전반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는 인두법뿐만 아니라 최초로 우두법을 소개했다. (그가 우두법을 직접 시행했다는 설도 있다.)

서양 의학은 천연두를 몰아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이 전염병과 싸워온 노력이 깔려 있다. '종두법의 첫 도입자', 이런 찬사를 지석영이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대장금의 진실 ~ 장금이는 정말로 '명의'였을까?

기사입력 2009-10-01 오전 7:06:45

 

최근 드라마 <대장금>이 아시아를 넘어서 러시아에서 방송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드라마에서 대장장 역을 맡았던 배우 이영애의 결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의 힘 때문에 허준과 함께 한의학의 상징처럼 된 대장금은 과연 실존 인물일까?

<조선왕조실록>에 대장금의 기록이 나오는 걸 보면 그가 실존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시 여의의 처지를 염두에 두면 드라마의 내용이 과장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여기서는 대장금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그를 둘러싼 진실을 한 번 살펴보자.

대장금이 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중종 10년(1515년) 3월 8일이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가 그해 2월 25일 원자(12대 인종)를 생산하고 숨을 거둔다. 이 때 원자인 인종의 생명도 위험에 처했는데, 이때 장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관례대로 조정 대신은 왕후의 죽음을 놓고 장금을 비롯한 의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건의한다. 중종은 수차례에 걸친 건의에도 불구하고 장금에게 끝까지 죄를 묻지 않았다. 원자를 생산하는데 큰 공을 세운 장금에게 죄를 묻는 건 옳지 않다는 것.

1533년 1월 9일 중종은 종기를 앓아 고생한다. 이때 내의원은 그전에도 수차례 중종의 병을 치료하는 데 공을 세운 장금을 견제한다. 기록을 보면 내의원 장순손은 이렇게 중종에게 건의한다.

▲ 대장금은 과연 실존 인물일까? 그는 과연 명의였을까?
"대체로 종기를 앓을 때는 젊은 여자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종기가 터진 후에도 더욱 부인을 기피해야 합니다."


장금이가 중종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견제 탓이었는지 중종은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장금이 약을 쓴 뒤에야 상태가 호전된다. 중종은 자신의 생명을 살린 장금에게 쌀 15석을 하사했다.

장금이는 1544년 10월 26일 다시 등장한다. 이 무렵, 중종의 병은 매우 악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종을 둘러싼 기록을 보면 이상한 게 한두 대목이 아니다. 우선 내의원 제조가 중종의 병을 진단하기는커녕 그에게 증세를 묻는다. 의사가 환자에게 증세를 물어본 것.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중종은 이렇게 답한다. "내 증세는 여의가 안다." 그 여의가 바로 장금이다. 중종은 마지막까지 장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다가, 결국 11월 15일 목숨을 거뒀다.

죽기 전까지 중종을 특히 괴롭혔던 질병은 산증이다. 산증은 하복의 통증이 위로 치받쳐 오르는 통증이다. 중종은 자신의 병을 이렇게 설명한다.

"요즈음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많은 한기가 배로 들어가 냉기가 쌓여 대소변이 편안하지 못하다."

장금은 여러 번에 걸쳐서 반총산이라는 처방을 투여한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극적인 처방을 구사한다. 바로 밀정(蜜釘)을 사용한다. 밀정은 꿀로 관장하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바로 관장을 통해 대변을 배출하도록 한 것이다. 중종에게 직접 관장한 것을 보면 장금과 임금과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여의의 삶이 모두 다 장금처럼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여의(의녀)가 생겨난 것은 사대부 부인이 남자 의원의 진료를 거부하면서부터다. 태종 6년에 처음 구성된 의녀는 주로 관비 출신이었다. 의녀가 되는 것은 아주 극소수여서, 태종 18년의 기록을 보면 7명뿐이었다.

3년간 교육을 받은 의녀는 그 능력에 따라 내의녀, 간병의녀, 초학의녀 세 등급으로 나뉘었다. 내의녀는 진료와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고, 간병의녀는 간병을 주로 담당했는데, 조산의 역할이 포함되었다. 초학의는 간병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는 것이다.

여의의 지위는 역대 왕의 관심에 따라 부침이 심했다. 특히 전문성을 위주로 진료하는 여의들을 창기와 같은 역할로 끌어내린 것은 연산군이다. 연회에 내의원의 의녀를 부르면서 약방기생으로 만들었다.

이후 의녀가 사대부의 잔치나 관원의 유희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제자리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중종의 의녀에 대한 대우는 파격적이다. 중종 5년에는 연산군 때 생긴 폐습을 없애고자, 관원의 연회에 의녀를 부르는 것을 엄금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장금과 비슷한 이름은 실록에 여러 번 나타난다. 성종 때에도 의녀 개금, 덕금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장금 역시 천출이었음이 틀림없다. 장금은 시작도 끝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진 여의다.

기록만 놓고 보면, 대장금이 과연 국내는 물론 외국까지 한의학의 상징처럼 여겨질 정도로 의술을 보유한 이였는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중종에게는 가장 신뢰하고 마지막까지 위로받고 싶었던 '최고의 의사'였다.

오늘날 어떤 의사가 환자로부터 이런 전폭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신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환자를 둔 대장금은 가장 유능한 의사는 아니었을망정, 가장 행복한 의사였을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첨성대의 진실 ~ "덕만공주가 첨성대에 집착한 진짜 이유는?"

기사입력 2009-10-07 오전 9:15:58

 

햇살이 눈부신 추석날 오후, 드라마 <선덕여왕> 때문에 북적이는 경주를 둘러보았다. 특히 눈길이 머문 곳은 분황사와 첨성대. 분황사와 첨성대는 샛길로 걸어서 10분 내외의 아주 가까운 거리다. 분황사는 '향기 나는 황제의 절'이란 뜻으로 선덕여왕이 자신의 절임을 분명히 한 곳이다. 첨성대 역시 선덕여왕이 만든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로 알려진 곳이다.

이 두 곳은 선덕 여왕이 건립한 것 말고도 유사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건축 양식이 모두 인도 양식을 따랐다. 암석을 벽돌 형태로 절단해 쌓는 이런 인도 양식은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보통 공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선덕여왕은 왜 이런 인도 양식을 고집했을까? 기록을 염두에 두면, 선덕여왕의 건강 상태 때문인 듯하다.

선덕여왕은 질병을 심하게 앓았다. <삼국사기>를 보면, 636년(선덕여왕 5년)에 선덕여왕은 병을 심하게 앓았으나 기도가 통하지 않자 황룡사에 승려를 모아서 독경을 시켰다. <삼국유사>에도 선덕여왕의 병이 깊어서 흥륜사의 스님 법창에게 치료를 의뢰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해, 결국 밀본법사의 독경으로 완치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신라에서는 불교와 의학이 결합된 승려의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잘 알다시피 승려의학은 인도 의학에서 유래한다. 당시 인도 의학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의학이나 중국의학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내, 외과학 모두 상당한 수준의 의학이었다. 이것이 불교 의학으로 확립되었는데, 신라의 의술은 바로 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신라 의학을 염두에 두면, 선덕여왕이 분황사, 첨성대를 건립하면서 인도 양식을 고집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은 원시 불교에서 탑을 숭배했던 것처럼, 자신의 병을 비롯한 공사의 근심을 호소할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자 인도 양식으로 분황사, 첨성대를 건립했던 것이다. (분황사 부처는 약사여래불이다!)

▲ 드라마 <선덕여왕>. ⓒ프레시안
그렇다면, 첨성대는 과연 별을 보는 장소였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전에 당시 천문학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부터 살펴보자. 당시 천문학은 오늘날의 천문학과는 초점 자체가 달랐다. 하늘을 관찰하긴 했지만, 그 변화 자체보다는 그런 변화가 농사를 짓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관심사였다.

하늘이 어떤 상태일 때 씨를 뿌리고, 물을 대주며, 추수를 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하늘의 변화에 따라서 농사를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땅의 절대자'인 왕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수단이었다. 선덕여왕 역시 천문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다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첨성대는 최초의 천문대였다. 실제로 첨성대는 석단 27단 위에 井자 모양의 단을 합해 모두 28단으로 이뤄져 있다. 이 28단은 농사와 긴밀한 28절기를 상징하는 28개의 별을 상징한다. 첨성대를 쌓은 돌의 수는 361개 반으로 음력으로 따진 1년의 일수와 일치한다. 첨성대 꼭대기는 각 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이렇게 첨성대를 천문대라고 규정하면 늘 따르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별을 어떻게 관찰했을까? 많은 이들은 첨성대의 규모가 크지 않음에 적잖이 실망하면서 이런 의문을 품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어차피 망원경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첨성대와 같은 천문대 자체가 굳이 필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첨성대 자체는 인도 양식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일종의 상징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선덕여왕 자신의 건강과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고, 천문학을 관장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 말이다. 특히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자신의 권위를 백성에게 세울 만한 상징이 필요했을 테고, 첨성대야말로 제격이었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전혀 쓸모가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아폴로13호>를 보면, 표류하던 우주인들은 지구를 찾고자 우주선 안의 모든 등을 끄고 우주 공간을 직시한다. 땅에서 별을 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광공해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들에겐 골칫거리다.

신라 때라고 광공해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경주 인근에 약 수십만 명이 모여 살았고, 그 대부분은 궁궐 주위에 모여 있었다. 첨성대 역시 언제든지 왕이 둘러볼 수 있도록 그 한가운데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주변의 빛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첨성대의 원통은 바로 그런 공간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첨성대는 천문대였다. 하지만 그 역할은 오늘날과 같이 관측에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가설 하나를 더 말해보자. 신라에 들어온 불교는 토착 신앙인 북두칠성을 숭배하는 신앙과 갈등을 빚었을 가능성이 크다. 선덕여왕은 북두칠성을 관측하는 불교 양식의 상징 첨성대를 통해 이 둘의 화해를 도모한 게 아니었을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자하거의 효능 ~ 왕도 모르고 먹었던 그 약은 바로…

기사입력 2009-10-14 오전 9:13:21

 

태반은 임산부의 자궁 안에서 태아와 모체 사이의 영양 공급, 호흡, 배설을 주도하는 조직이다. 고대에는 태반을 인간이 최초로 몸에 걸치는 가장 좋은 옷이라고 여겨 신선의(神仙衣)라고 불렀고, 부처가 입는 옷이라고 불가사(佛袈裟)라고도 불렀다. 한약재로 쓰이는 태반의 정식 명칭은 자하거(紫河車)다.

자(紫)색은 일종의 보라색으로 붉은색과 검은색의 혼합이다. 검은색은 생명 이전의 세계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태어난 이후의 세계를 상징한다. 보라색은 바로 이 두 세계의 경계를 상징한다. 자궁을 세상과 잇는 경계라고 할 수 있는 태반을 상징하는 색을 보라색으로 본 것이다.

예로부터 태반에는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태반을 약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정작 한의학에서 이를 약재로 사용하기 쉽지 않았다. <본초강목>은 태반을 약재로 사용하는 것을 놓고 현실과 (유학) 이념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유구국(오키나와)에서는 부인이 출산하면 반드시 태반을 먹는다. (…) 광서성 만(蠻)족은 남자를 생산하면 친족이 모여서 태반을 먹는다. (…)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면 이런 오랑캐와 다를 게 뭔가."

▲ 임신 13주차 태아의 모습. ⓒ프레시안
그러나 현실이 이념을 이겼다. 유학 이념이 득세했던 조선 시대에서도 태반을 복용한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기묘사화 등을 거치면서 심하게 앓는다. 이런 중종에게 어의가 처방한 약재가 바로 태반이다. 이들은 중종에게 이렇게 사후 보고한다.

"상의 건강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처음 편찮으셨을 때, 자하거(태반)라는 약을 처방했습니다. 이 약은 신통, 영험한 약이나 환자가 알지 못하게 먹여야 한다는 방문에 따라서 별도로 처방 사실을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유학 이념이 득세했던 명나라 때, <본초강목>을 쓴 이시진이 태반을 약재로 사용하는 것을 망설였다면, 청나라 때는 태반이 '천하의 명약'으로 널리 알려졌다. 청대의 비방을 보면 '보천하거대조환'이라는 처방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태반을 약재로 사용한 것이다.

이 처방은 몸이 허약해져 사지에 힘이 빠지면 원기를 보충하고자 태반을 넣은 약재를 복용하도록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의학에서도 태반을 인삼, 녹용을 능가하는 대단한 약재로 규정한 것이다. 허준 역시 <동의보감>에서 태반의 여러 가지 약효를 기록해 이런 흐름에 동참한다.

<동의보감>을 보면 태반의 여러 가지 약효가 나온다. 우선 남성의 성 기능 장애, 여성의 불임 치료에 태반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현대 약학에서도 태반의 성분이 성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런 기록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동의보감>은 더 나아가 결핵, 천식과 같은 질환이나 혹은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정한 심신을 다스리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동의보감>의 기록을 포괄하는 태반의 약효는 바로 면역력 향상이다. 아기와 모체를 잇는 태반의 기능을 고려하면, 이런 약효를 짐작할 수 있다.

태반은 여러 가지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우선 태반은 모체의 몸속에서 태아를 이물질로 여겨 면역 작용을 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또 태아의 세포가 모체로 침투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또 모체의 몸에서 태아의 몸으로 각종 바이러스, 세균이 들어가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태반이다 보니,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저항성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물질이 포함된 태반을 복용하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태반의 약효는 생명의 신비를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해구신 ~ <선덕여왕> 고도가 먹었던 '그것'의 진실은?

기사입력 2009-10-21 오전 9:24:32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드라마 속에서 공주 덕만의 호위무사로 감초 역할을 하는 고도가 옥연적과 해구신을 맞바꿔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해구신은 정력제로 잘 알려진 물개의 음경과 음낭이다. 실제로 해구신은 신라의 특산품이었다. <본초강목>을 보면 해구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해구신은 신라국의 바다에 사는 개의 외부 성기다. 해구는 밤낮 해저에 들어가 있으며 번식기에만 섬에 올라 새끼를 낳는다. 새끼가 조금 자라면 다시 새끼와 물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좀처럼 포획이 어렵다. 엄동설한에 날씨 좋은 날, 해구가 무리를 지어 바위 위에서 햇볕에 몸을 쬐므로 그 때 잠든 틈을 타서 허리를 두드려 잡는다."

<해동석사>에도 똑같은 언급이 나온다.

"신라 해구신은 강원도 평해군에서 나는데 아주 귀하여 구하기 어렵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편에도 강원도에서 나는 약물 중에 해구신이 기록된 것을 보면 동해에서 해구가 많이 잡힌 것은 사실이었다. 단, 세 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듯이 해구신은 아주 귀했다. <선덕여왕>에 나오는 것처럼 장터에서 해구신을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리라.


신라 시대의 토우를 보면 신라인의 성의식을 알 수 있다. 번영을 기원하고자 만든 토우라지만, 성애 중인 두 남녀의 모습이 정말로 사실적이다. 이들을 빚은 신라인의 마음속은 어떤 것일까? 손 하나, 팔 하나에 사랑과 체험을 담았으리라. 아마도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날까지 이어져내려오는 정력과 관련된 속설은 대개 신라 의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법사방>, <신라법사비밀방> 들이 바로 문제의 책이다. '비밀방'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방중술의 비법을 적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책은 전해지지 않고 내용만 일부 전해진다. 특히 일본인 단파가 쓴 <의심방>이라는 책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정력제 중에서 해구신 외에 또 유명한 것이 노봉방이다. 노봉방은 말벌집이다. 8월 중순에 채취해 말려서 성기에 바르면 비아그라만큼 효과가 있다는 설이 신라 시대 때 널리 퍼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렇다면 노봉방이 과연 그런 효과가 있을까?

노봉방은 치통이나 종기에 외용으로 쓰이는 약재다. 외용약으로 쓸 때는 달인 물로 씻거나 가루내서 기초제에 개어 바른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사전>을 보면, 하루 3~10그램을 물로 달여서 혹은 볶아서 먹는 방법도 나온다. 외용약이든 복용약이든 노봉방의 독성을 완화하는 방법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노봉방을 성기에 발랐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해구신, 노봉방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보신 문화는 독특한 데가 있다. 한국은 물론 인근 국가의 뱀, 코브라, 곰쓸개가 씨가 마를 정도니…. 최근에는 비아그라를 염두에 두고 중국산 비아그라까지 횡행할 정도다. 삼척 지방에서 물개가 자취를 감춘 것도 이런 전통의 보신 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 한의원으로 해구신을 들고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달라는 요청이 있다. 대부분이 사슴 생식기나 소의 힘줄을 급조해 만든 가짜다. 예전에도 가짜가 많이 성행한 듯하다. <선덕여왕>에서 고도가 먹었던 해구신도 틀림없이 가짜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귀의 복수 ~ '천하무적' 김 과장이 쓰러진 까닭은? 

기사입력 2009-10-28 오전 9:38:15

 

내원하는 많은 난청·이명 환자를 보면, 그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 특히 갑작스럽게 난청·이명이 찾아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는 더욱더 그렇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난청·이명이 찾아온 이들은 대개 3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의 남성이다. 어떤 이들인지 그 면면을 한 번 살펴보자.

대기업 부사장 ○○○ 씨. 그는 기획 업무, 노사 관계 등 회사의 온갖 일로 쉴 틈이 없다. 골프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이다 보니, 사장의 중국 골프 여행에도 따라 나섰다. 그는 밤낮을 접대로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작스러운 난청을 경험하고 쓰러졌다.

또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 씨도 살펴보자. 그는 아내와의 결혼 기념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일을 마무리하고자 밤을 샜다. 제주도에서도 편했을 리 없다. 계속 어린 아이를 안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 나선 장인, 장모의 수발은 물론이고, 자동차 운전까지 도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귀가 멍하더니 사이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경호원으로 일하는 ○○○ 씨의 예도 있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훤칠한 키와 다부진 몸의 누구나 부러워하는 남자 중의 남자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마초'였다. 그러나 그 역시 몇 주일을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리다 결국 심한 어지러움과 함께 난청이 찾아와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렇게 갑작스런 난청을 호소하는 남자들은 공통적으로 완벽주의자 미초다. 그들은 일에 매진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당연히 책임감이 강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과중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피로, 고통, 불면과 같은 몸의 경고를 무시한다. 기쁨, 분노와 같은 일상적인 감정을 추스르는 것도 뒷전이다.

야근, 회식, 음주, 골프가 이어져도 본인의 체력만 믿고, 설사 체력이 안 된다면 정신력으로라도 버텨야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금 피곤하다고 쉬는 것은 나약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더욱더 무리하게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 지독한 난청·이명 환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난청·이명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이런 인식을 버려야 한다. 이런 이들이 건강을 놓고 가장 착각하는 것은 운동 능력과 항병 능력을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운동 능력이 남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그것이 꼭 항병 능력이 우월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이렇게 운동 능력을 항병 능력으로 착각해서 낭패를 본다.

난청·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생활 습관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우선 자신을 채찍질하는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한 마디로 '어깨 힘을 빼고', '좀 더 마음 편하게' 사는 게 필요한 것이다. 특히 지나치게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스트레스로 축적돼 귀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둘째,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고쳐야 한다. 식사, 수면 시간이 흐트러지면 귀에 가장 큰 영향을 지닌 자율신경의 조화가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난청·이명 환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귀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오는 가장 공통적인 증상이 바로 밤잠을 설치는 일이었다.

▲ 침을 놓기 전후 환자의 귀 주변의 체열 변화를 찍은 사진. 오른쪽(침을 놓기 전)과 왼쪽(침을 놓은 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갑산한의원
셋째, 몸이 보내는 경고를 알아야 한다. 공복감, 피로감을 무시하고 무리하다 보면 결국은 심신의 고장을 초래한다. 넷째, 운동을 비롯한 취미 등으로 지친 심신을 재충전해야 한다. 단, 스트레스를 핑계로 한 대, 두 대 더 태우기 마련인 담배는 귀 건강의 가장 큰 적이다. 니코틴은 전신의 혈관을 수축시켜 혈액의 흐름을 나쁘게 하는데 귀는 바로 영향을 받는다.

이런 나쁜 생활 습관은 귀 인근의 신경을 자극한다. 이것은 난청·이명 환자에게 침을 놓으면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침을 놓기 전후의 환자의 귀 쪽의 체열을 측정한 것이다. 침을 놓기 전과 후에 귀 주변의 체열의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앞에서 열거한 생활 습관의 변화야말로 근본적인 난청·이명 예방 방법인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신종플루 예방법

기사입력 2009-11-04 오전 8:53:44

 

1922년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은 세균을 배양 중인 샬레에 콧물을 떨어뜨렸다. 2~3일 후 샬레를 살펴본 그는 깜짝 놀랐다. 세균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 일을 통해서 플레밍이 발견한 것이 바로 눈물, 콧물, 침 등에 들어 있는 라이소자임이다. 라이소자임은 세균을 죽이는 효소이다.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감기에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이 있다. 흔히 감기에 강한 사람을 놓고 우리는 면역력이 세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면역은 우리 몸에 침범하는 이물질을 방어하는 작용이다. 우리 몸의 최전선에서 이런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콧물과 같은 점액이다.

이런 면역 기능은 대체로 점액의 분비 기능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대장균, 살모넬라균과 같은 세균뿐만 아니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을 우선 막는다. 점액은 해로운 외부 물질을 씻고, 라이소자임과 같은 그 안의 효소는 외부 물질을 없애기도 한다.

한의학과 서양 의학은 그들의 문화적 전통 위에서 발전했다. 서양 의학은 '보이면 쏜다', 이런 수렵 전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서양 의학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서양 의학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찾아 죽여서 신체를 위기에서 구한다.

반면에 한의학은 농경문화와 관계가 깊다. 마치 밭을 가는 것처럼 자신의 신체를 일궈서 바이러스, 세균의 침입으로부터 견디도록 하는 게 한의학의 대응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감기에 걸리면 서양 의학이 항생제,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하는 것과 달리 한의학은 체온을 높이고 땀을 내는 약을 써서 몸의 자연스러운 회복을 돕는다.

한의학이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법도 이런 전통을 따랐다. 몇 차례 소개했던 장중경의 '상한론'이 그것이다. 상한(傷寒)은 찬 기운 탓에 인체의 체온 조절 기능이 망가졌다는 전제 하에서 치료를 하였다. 고추처럼 맵고 따뜻한 약이나 계피처럼 달고 매운 약 등을 사용해 체온을 높임으로써 몸이 스스로 병을 이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상한론의 전통 속에서는 습도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청대에 한의학의 전염병 치료학인 '온병학'이 출현해 이런 상한론의 한계를 극복했다. 온병학의 시조는 오국통(1758~1836)이다. 상한론의 시조인 장중경이 가족의 죽음 앞에서 절실한 마음으로 전염병에 맞설 방법을 찾았듯이 오국통도 사촌의 죽음을 계기로 전염병 치료에 착수한다.

오국통은 전염병을 '상한'과 '온병'으로 구분하고, 둘 사이의 차이를 찾는 데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온병에 걸릴 경우 땀을 내는 방법을 사용하면 치료는커녕 병이 악화하리라고 보았다. 습도 즉 점액의 분비 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땀을 내면 몸이 더욱 건조해지면서 방어 능력에 더 결함이 생길 것이라고 본 것이다. 즉, 점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온병학의 시각을 염두에 두면, 나이든 사람과 비교했을 때 면역력이 강한 젊은 사람이 신종플루에 곧잘 걸리는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나이든 사람이 시들어가듯이 몸의 점액이 마르는 반면, 젊은 사람은 스트레스와 같은 내부의 열 때문에 몸의 점액이 마르는 경우가 있다.

불규칙한 생활 습관, 바쁜 일정,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인기 가수는 이렇게 몸의 점액이 마르는 전형적인 예다. 몸이 이런 상태에 놓이면 신종플루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의 침입자는 아무런 장애물 없이 몸을 장악한다. SS501의 김현중, 2AM의 조권, 샤이니의 종현 등 인기 아이돌 가수들이 잇따라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한의학은 자신의 신체를 갈아 일구는 농경의학인 만큼 예방에 그 본류가 있다. "명의는 병이 나기 전에 치료하고 보통 의사는 병이 나야 고친다," 이런 <황제내경>의 말은 분명한 예방 의학의 메시지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점액의 생산과 분비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이것은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현재 시점에서 되짚어야할 중요한 이슈다.

점액은 진액, 혹은 정기로도 쓴다. 정기(精氣)에는 쌀 미(米)자와 채소를 뜻하는 푸를 청(靑)자가 포함되어 있다. 바로 따뜻한 밥과 채소가 정기의 근원임을 암시한 것이다, 생활 속에서 보충할 수 있는 것은 더덕, 황기 등을 차로 마시거나 오미자, 매실을 이용한다. 검은 깨와 검은 콩도 좋다.

더 중요한 것은 체내의 음기를 자연스럽게 생산하는 것이다. 음기의 원천은 깊은 숙면이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이 푸석해 보이는 것은 점액의 분비가 줄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침입하며 코가 바로 대문 역할을 한다. 코를 촉촉하게 매끈하게 만들어야 바이러스는 일차관문에서 걸러진다. 참기름, 꿀, 알로에 액으로 촉촉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작지만 큰 예방법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엿 ~ 대한민국 '고3'들, '엿' 먹어라!

기사입력 2009-11-11 오전 7:56:20

 

옛말에 머리가 우둔한 사람을 두고 "엿을 열섬이나 버리고도 방에 붙지 못하는 놈"이라고 비웃었다. 요즘도 입시 때면 어김없이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한다. 최근에는 엿 대신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이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건전지를 선물로 주자는 광고까지 등장했다.)

이런 풍속 뒤에는 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 뇌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뇌는 인간의 몸무게에서 고작 2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20퍼센트에 육박한다. 이 정도의 에너지는 근육 전체가 사용하는 것과 맞먹는 양이다. 이렇게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근원은 포도당이다. 엿이나 초콜릿은 뇌가 사용하는 당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엿이든 초콜릿이든 수험생에게는 큰 차이가 없을까? 아니다. 한의학은 다른 차원에서 엿의 효능을 설명한다. <본경소증>의 흥미로운 한 대목을 살펴보자.

"술은 누룩으로, 엿은 엿기름으로 만든다. 누룩과 엿기름은 모두 보리로 만든다. 누룩은 보리를 가루로 만들고 나서, 뚜껑을 덮어서 발효를 시킨다.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탓인지 술은 화를 자극한다. (반면에) 엿기름은 (보리의) 싹이 터 기가 풀린 것을 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기가 순조로워 화를 진정시킨다."

▲ 엿은 뇌 활동에 필요한 당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시험 전 스트레스로 생길 수 있는 복통 등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다. ⓒ프레시안
이 대목으로부터 엿의 약효를 유추할 수 있다. 시험을 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긴장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위장이다. 스트레스로 자율신경의 조화가 깨지면, 위를 둘러싼 혈액의 흐름이 나빠지고, 위벽을 지켜주는 점액의 분비량이 줄어든다. 위산이 점액이 부족한 위벽을 자극하면, 복통이 생기고 밥맛을 잃는다.

수험생을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것도 시험 당일 갑자기 배가 아픈 것이다. 심한 긴장이 복통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이급(裏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로 이 이급을 다스리는 데 엿이 효과가 있다. <중약대사전>을 보면 엿은 "비위의 기를 완화하고, 원기를 회복하며, 진액을 생성하고, 속을 촉촉히 한다."

실제로 엿은 한의학의 처방에도 쓰였다. 엿 성분이 가장 많이 든 처방은 '소건중탕'이라는 처방이다. "빈혈이 있어서 쉽게 피로하고, 복통을 호소하고, 손발이 화끈거리고 목이 건조할" 때 이 처방을 사용한다. 이 처방은 어린이의 체질 개선에도 쓰이는데, 바로 이것을 응용한 것이 '키디'와 같은 약이다.

엿의 원료로는 찹쌀, 멥쌀, 좁쌀, 황정, 백출 등의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약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찹쌀을 최고로 치며, 다음으로 좁쌀을 사용한다. 한약으로 사용하는 엿은 이(飴)라고 하며 맑고 형태가 유연한 것이고, 끈적끈적한 것은 당(餳)으로 주석과 같이 무르면서 딱딱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조금 더 딱딱하면서 탁한 것은 포(餔)라고 한다.

엿의 종류는 많다. 특히 유명한 것은 울릉도의 명물 호박엿이다. 호박엿은 원래 '후박엿'이었다.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 기능을 돕는 후박나무의 껍질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이 후박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호박을 쓰다 보니 오늘날의 호박엿으로 변한 것이다. 후박나무와 엿의 효능이 조화를 이룬 후박엿은 위장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었을 것이다.

몸에 가장 좋은 엿은 무엇일까. 무술관이라는 엿이다. 노란 수캐를 삶아 그 고기 국물을 엿에 넣으면 보신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술주와 더불어 소개되어 있다. 엿의 이런 효능을 안다면 수험생을 위한 선택은 분명하다. 초콜릿 (혹은 건전지) 대신 꼭 엿을 사주자!

대한민국 '고3'들, 엿 먹어라!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야콥슨기관의 경고 ~ 콧대 높은 당신은 사랑의 '루저'?

기사입력 2009-11-18 오전 8:56:15

 

후각은 힘이 세다. 사람이 후각을 잃으면 미각도 문제가 생긴다. 부패한 음식도 알아채지 못한다. 생사와 연결된 중요한 판단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후각은 기억 보조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예를 들면 연어, 거북이가 산란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물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후각은 동물의 생사도 좌우한다. 개, 토끼가 태어나면 귀여운 새끼를 절대로 만지지 않아야 한다. 어미가 인간의 냄새와 뒤섞인 새끼를 물어뜯는 끔찍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도 냄새는 각별하다. 된장, 볏짚 냄새는 지독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냄새가 기억과 관계되다 보니, 후각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은 종종 치매를 앓는 일도 있다. 인간이나 동물에게 후각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루소, 디드로가 지적한 것처럼 후각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대다수 동물은 냄새로 교미 상대를 결정한다.

▲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1.5킬로그램(㎏) 송로버섯. ⓒ프레시안
세계 3대 진미로 알려진, 송로버섯을 찾는 과정은 이런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참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이 버섯은 1미터(m) 깊이에 묻혀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귀한 버섯을 찾을 때, 돼지를 이용한다. 암퇘지는 송로버섯이 묻혀 있는 곳에 다가가면 즉시 발정이 난다. 귀를 세우고, 등을 낮추고, 엉덩이를 든다.

1982년 독일의 연구자들은 송로 버섯의 향과 수퇘지의 침샘에서 똑같은 호르몬을 찾았다. 최상품 송로 버섯에는 혈기 왕성한 수퇘지가 풍기는 페로몬의 두 배가 들어 있다.

페로몬은 호르몬의 일종이다. 동물은 페로몬을 분비해서 동류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이성을 유혹한다. 간혹 이 페로몬은 송로 버섯과 암퇘지처럼 동류가 아닌 사이에서도 작용한다.

페로몬을 인식하는 곳은 어디일까? 페로몬을 감지하는 곳은 냄새를 인식하는 코 내부의 깊은 곳이 아니다. 페로몬은 콧대에 위치한 야콥슨기관에서 감지한다.

1975년 미시간주립대학에서 포유류에서 이 야콥슨기관의 중요성이 확인되었다. 이 대학의 연구자들은 야콥슨기관을 제거한 수컷 햄스터와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짝짓기 행동을 비교했다. 야콥슨기관을 없앤 쪽은 짝짓기 행동에 심각한 장애를 보였다.

한의학 역시 콧대를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콧대가 생식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코를 보면서 남녀의 정력을 따지는 것은 다 이런 한의학의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현대에서 코는 미용 때문에 함부로 다뤄지고 있다. 미용을 위해서 콧대는 대수롭지 않게 수정된다. 만약 이 과정에서 야콥슨기관이 손상을 받는다면 어떡할 것인가? 이성의 페로몬 신호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코 성형 수술 열풍은 전 세계에서도 대단하다. 너도 나도 코 성형을 하다보면, 정말로 내 남자, 내 여자를 감지하는 능력에 심각한 손상이 오지 않을까? 어느 나라보다 급격하게 느는 이혼이 예삿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조선왕 독살은 가능한가 ~ 사약 마시는 죄인에게 안주 권한 기막힌 사연

기사입력 2009-11-25 오전 9:19:51

 

당나라 고종 때 제정된 '당률'을 보면 대표적인 독약을 기록하고 있다. 짐독, 오두·부자독, 치갈(治葛)이 그것이다.

오두와 부자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 같은 독성 식물을 다르게 일컫는 말이다. 흔히 이 식물의 모근을 오두, 그 곁가지인 자근을 부자라고 한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이 소리에 한을 더하고자 독약을 먹고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먹은 것이 바로 부자이다.

실제로 일본의 유명한 부자 전문가 다쓰노(龍野)는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적고 있다. 자기가 구내염이였을때 진무탕이라는 처방에 부자를 넣어서 복용하였다. 과량 복용한 탓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빈혈 증상을 느꼈다고 보고하면서, 장기 복용시는 실명 가능성을 경고했다.

부자의 맹독성은 예전부터 사냥에도 이용되었다. 북반구의 원주민은 부자 뿌리에서 화살독을 만들어 새나 짐승을 잡았다. 중국에서는 그 즙을 달인 것을 사망(射罔)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독은 정작 사냥한 새와 짐승에서는 분해돼 저독성으로 바뀌고, 조리를 하면 아예 없어진다는 것이다.

부자는 그 독성으로 인하여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독의 꽃', '악마의 뿌리', '살인자' 등이 있으며, 심지어는 일본식 이름으로 '골짜기를 못 건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아코니틴으로 불렸는데, 그리스의 아코네라고 하는 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리스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아코니틴에 의해 사망했으며, 영웅 테세우스를 독살하기 위해 메디아가 사용한 약물도 바로 아코니틴이다.

그럼, 짐독은 무엇일까? 바로 짐새의 독이다. 짐새는 중국 남해에 사는 새를 일컫는다. 그 새의 털을 술에 담가두면 사람을 죽일 정도의 독주가 된다. <본초강목>을 보면 짐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꿩과에 속하는 이 새의 형태는 공작과 비슷하다. 목은 검고 부리는 붉으며 뱀을 통째로 삼키며 이 새가 물을 마신 곳에서는 모든 벌레가 전멸한다. 오직 코뿔소의 뿔만이 이 짐독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나 그 실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아 다만 독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전해질 뿐이다."

▲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는 장면.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사약으로 사람의 목숨을 뺐는 일은 쉽지 않았다. ⓒ프레시안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사약을 내리는 사사 장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장면의 압권은 역시 서른여덟 살 조광조의 사사 장면이다. 사약을 받자 자신의 사사가 진실인지 여부를 알기 위해 의금부 도사 유엄에게 심정(沈貞)의 지위를 묻는다. 그러고는 거느린 사람에게 말한다.

"내가 죽거든 관을 얇게 만들어라 .먼길 가기 어렵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거듭 독주를 가져다가 많이 마시고 죽었다"라고 적힌 대목이다. 거듭 마셨다는 것은 사약을 먹었는데 죽지 않은 것이다. 다른 기록에 이 부분을 보충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사약을 마셔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나졸들이 달려들어 목을 조르려 하였다. 그러자 조광조는 "성상께서 이 머리를 보전하려 사약을 내렸는데, 어찌 너희들이 감히 이러느냐"라고 소리 지르며 독한 술을 더 마시고 죽었다.

송시열의 졸기도 마찬가지다. 늘 바가지를 들고 다니면서 어린애의 오줌을 마신 탓으로 여든세 살까지 살았던 그로서는 부자독이 쉽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세 잔을 달아 마신 뒤에야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었다.

중종 때 임형수의 죽음은 더욱 힘들었다. <유분록>의 기록을 보면, 짐주 열 여섯 사발을 마셔도 죽지 않자 다른 독주를 더 가지고 오게해서 먹었다. 그때 집종 하나가 울면서 안주를 가져오자 "이 술이 어떤 술인데 안주를 먹느냐"라고 물리치면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죽었다.

이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TV에서 보아온 사약과 달리 독약으로 쉽게 사람을 해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자연적인 독소는 인간에게 선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른바 조선 왕의 독살설의 상당수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독성이 큰 것은 약성도 크다. 부자도 삶거나 구워서 독성을 약화시키면 손발이 차고 냉하면서 성기능이 떨어지는 데 특효약이다. 부자의 약성은 몸을 데우는 것으로 양기를 북돋운다. 대부분 불기운은 상승하는데 부자는 어떻게 아랫배를 데우는 약효를 지닐까.

한의학의 설명은 이렇다.

"촛불 양쪽에 불을 붙여서 상하를 타게 하다가 먼저 밑불을 끄면 한줄기 짙은 연기가 중심부로 올라온다. 이 연기가 윗부분 촛불에 도착하면 상부 불은 연기를 따라 내려와 하부 촛불에 다시 불이 붙는다."

부자가 들어간 대표 처방은 팔미지황환으로 야간 소변과 양기 부족에 특효약이다. 원리는 이렇다. 노인들의 야간 소변은 방광에 모여든 오줌이 체내에서 모아진 물이므로, 36.5도로 데워야 한다. 아랫배의 양기가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데울수 없어서 자주 내보내서 자신의 조직이 차가워지는 것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사약이 어르신들의 성약으로 돌변하는 아이러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공진단의 비밀 ~ "양귀비가 허리에 차고 다녔던 그것은…"

기사입력 2009-12-02 오전 10:11:08

 

'공진단(供辰丹)'은 널리 알려진 보약이다. 사실 공진단은 '공신단'으로 읽어야 맞다. 공진단의 처방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위역림이 이 약을 황제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공신(供辰)'은 뭇별이 북극성을 향한다는 뜻으로, 사방의 백성이 황제의 덕을 칭송하며 복종함을 의미한다.

공진단의 치료 목표는 '수승화강(水升火降)'이다. 이 말의 의미를 알려면, 한의학의 설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비가 와서 우산이 없으면 사람은 비를 피하고자 머리를 가리고 뛴다. 무엇이 머리에 있기에 무의식중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것일까? 바로 머리꼭대기에는 백회라는 혈이 있기 때문이다.

백회는 모든 양기(陽氣)가 모이는 곳이다. 비 때문에 백회가 식으면, 결국 몸의 체온이 내려가 감기에 걸리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백회의 온기를 보호하고자 손을 머리 위에 올리는 것이다. 이런 설명처럼, 한의학에서는 얼굴과 머리에 인체에서 가장 뜨거운 화가 있다고 전제한다.

반면에 하체는 차갑다. 물이 낮은 곳에 고이듯이 하부에 혈액이 충만해 계속 데워야 할 양기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결국 뜨거운 열기는 위쪽을 향하고 차가운 한기는 아래쪽으로 내려서 불균형 상태가 되는 것이다. 머리는 차갑게 하되 발은 따뜻하게 하라, 이런 건강 격언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은 가장 이상적이다. 머리가 아래에 있고 다리가 위쪽에 있다 보니, 위에서 기가 내려오고 밑에서 기가 올라가는 상호교류가 일어난다. 사람, 동물이 잠을 잘 때 머리를 내리고 자는 모습은 자궁 속 태아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행동의 한 단면으로 보는 것이 동양의 사유다.

머리의 양기를 아래로 내려주는 데는 사향(musk)이 가장 좋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향은 종교 제례에 쓰였다. 사향의 향기로 가득한 신전에서는 마음이 경건하고 차분해진다. 이런 사향의 사용은 아무래도 사향노루의 삶과 겹친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사향지로>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향노루는 늘 혼자 다닌다.

▲ 양귀비. 양귀비가 현종을 유혹하고자 허리에 사향을 차고 다녔다는 얘기가 전한다. ⓒ프레시안
교미를 위해서 1년에 한 번 정도 암수가 만나는 것 외에는 고독한 생활을 즐긴다. 사향노루가 걷는 길은 늘 험한 길이다. 히말라야의 척박한 땅과 바윗길로만 다닌다. 사향노루는 늘 수척하고 깡마르다. 더구나 봄이 되면 사향은 가장 소중한 사향주머니를 스스로 버린다. 이런 사향노루의 모습에서 옛사람은 수도자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나 화로 인하여 머리의 열기를 없애는데 가장 큰 효능이 있다.

사향의 품질도 여러 등급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스스로 적출한 사향이 유향으로 일등급이며 극히 구하기 힘든 것이다. 두 번째는 제향으로 포획하여 도살 채취한 것이다. 세 번째는 심결향인데 떨어져 죽은 사향노루의 피가 심장에서 비장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향기 전체에 영향을 미친 하품이다.

귀한 만큼 위조품도 당연히 많다. <본초강목>은 "대부분이 위조품"이라고 단언하며, 강이에서 산출되는 것이 진품으로 양질의 것이라 하였다. 강이는 중국의 서북 변경 지방으로 지금의 티베트 지역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사향의 주성분인 무스콘 함량을 기준으로 그 진위와 가치를 구분한다.

사향과 관련해서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일화도 종종 회자된다. 양귀비가 허리에 사향을 차고 다녀서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홀렸다는 것이다. 양귀비가 죽은 후에, 그의 무덤에 도둑이 출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둑들이 무덤을 파헤쳐 사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공진단은 본래 간을 보하는 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보간환으로도 불린다. 위역림은 "기존의 몸(간)을 보하는 약들이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사향처럼 황제만이 구할 수 있는 귀한 약물로 강력한 약효의 공진단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오늘날도 공진단이 최고의 보약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약물은 약물이며 한쪽으로 에너지를 모우고 증폭시킨다. 건강은 균형이다. 약 먹고 건강하기보다는 음식으로 적절하게 돕고 운동하며 인체의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우황청심환의 비밀 ~ 우황청심환 잔혹사'를 아십니까?

기사입력 2009-12-09 오전 9:23:36

 

조선시대 궁에서는 구급약으로 쓸 환약을 만드는 날도 따로 정했다. 동지가 지난 후 세 번째 술일이 그날이다. 이렇게 내의원에서 환약을 만들면 왕이 가까운 신하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일이 잦았다. 신하들이 가장 선호했던 최고의 인기 품목은 바로 우황청심환이다. 기사회생의 신약으로 인기가 높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22년 승정원에서 내의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우황청심환을 제작하는 것을 문제삼는다. 승정원은 "청심환을 의정부, 육조, 의금부 등에서 제작해 집집마다 간직하니 혜민국, 전의감에서 만든 것들은 다 팔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이미 그 때 우황청심환이 널리 복용됐던 것이다.

대부분 우황청심환은 중국이 원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기록을 살펴 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김조순이 지은 <열양세시기>도 이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 중 하나다.

"북경 사람들이 사신으로 왔을때 최고 인기 품목은 우황청심환이다.우리나라의 사절로 오면 왕공부터 귀인에 이르기까지 앞을 다투어 이것을 얻으려 했다. 왕왕 그 성화에 못이겨 약방을 중국에 가져가서도 만들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연경에는 우황이 없고 낙타황으로 대용하기에 설사 약방에 따라 만들어도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황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중국에서는 소 외에도 낙타, 야크, 물소 등 다양한 소과 동물에서 우황을 얻었다. 기록에 언급된 낙타황은 타황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우황청심환의 원료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품질은 역시 황우에서 얻은 것. 삼국사기에도 신라에서 인삼과 더불어 외국 사신의 선물로 우황이 선호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 우황청심환. ⓒ프레시안
우황은 소의 담낭, 담관 속에 생긴 결석이다. <본경소증>에서는 이것의 생성 원인을 놓고 이렇게 설명한다.

"봄철에 전염병(바이러스성)이 돌면 소도 독을 마신다. 독은 육체와 정신의 빈곳으로 공격한다. 소는 튼튼한 육체와 고삐가 낀 순종하는 마음으로 틈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정기를 모아 독을 진압한다. 독은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모하고 내부에서 응결한다. 이런 힘의 정수가 우황이다.이 튼튼한 힘의 정수는 정서장애나 열성경련을 치료한다."

옛사람은 우황이 든 소를 어떻게 구별했을까. 다시 <본경소증>을 살펴보자.

"소의 몸속에 우황이 있으면 밤에 몸에서 빛이 나고 눈에 핏발이 있으며 수시로 반복해서 운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물에 자기 모습을 잘 비춘다. 동이에 물을 받아서 소한테 대주면 웩웩거리다가 물에 우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렇게 외관만 봐서는 우황이 있는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황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기록이 곳곳에 등장한다. 숙종의 일화는 대표적이다. 숙종은 평생 온갖 질병을 안고 살았다. 시쳇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심해지자 재위 39년 생우황을 대궐 안으로 들이라고 명령한다.

수백 두의 귀한 소가 도살되었지만 그래도 우황을 구해지지 못했다. 결국 이 때 아닌 소 학살을 보도 못한 신하들이 만류하는 상소를 올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황에 집착했던 왕은 숙종뿐만이 아니었다. 역시 병치례가 잦았던 정조도 우황을 좋아했다. 그는 우황을 먹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우황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약물 성질에 근거한다. 지방은 가장 분해하기 힘든 것이다. 담즙은 본래 인체에서도 지방을 분해한다. 소의 농축된 담즙인 우황은 침투력이 가장 강하다. 엄지 손톱에 침을 묻혀서 우황에 손톱에 그으면, 손톱 속으로 약물이 침투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황청심환의 기원은 <태평혜민화제국방>이라는 책에서 기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의보감>을 처방의 기준으로 삼는데 약량이나 약물 구성이 차이가 약간씩 있다. 약량에서는 <동의보감>이 <태평혜민화제국방>의 10분의 1 정도 양이고, 약물 구성에서는 경면주사가 첨가되어 심신의 안정 작용이 강화되었다. 이 점은 허준이 <본초휘언>이라는 책을 참고한 덕분이다. "우황은 심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주사와 함께 쓰면 안정시키는 기능이 더욱 커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황청심환의 구성 약물은 29가지에 이를 정도로 많다. 대부분 구급약으로만 알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크게 보면 세가지 처방을 합해서 만든다. 대산여원중(산약, 감초, 천궁, 행인, 맥문동, 방풍, 백작약, 백출, 백복령, 시호, 길경, 신곡, 당귀, 대두황권, 계피), 자감초탕중(감초, 생강, 계지, 대추, 인삼, 맥문동, 아교), 구미청심원중(포황, 서각, 황금, 우황, 영양각, 사향, 용뇌, 석웅황, 금박)이 그것이다.

대산여원은 질병 후에 기가 회복되지 않았을때 쓰는 보강 약물이고 자감초탕은 심장의 힘이 떨어져 생기는 부정맥에 사용하는 처방이여서 공격적이지 않다. 최근에 중독성이 있는 약물은 모두 제외되었다. 여기서 중금속으로 알려진 석웅황과 주사의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서각은 코뿔소의 뿔인데 포획이 금지되어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청심환은 구미청심원의 처방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열 받는 세상에 우황청심환은 좋은 약이다. 최근의 청심환은 우리가 근심하는 만큼 강하거나 공격적이지는 않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왕과 온천 ~ 왕들이 온천을 좋아한 진짜 이유는?

기사입력 2009-12-16 오전 9:31:59

 

온천욕은 본래부터 의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온천욕 치료는 신라 진성여왕이 두창(천연두)을 치료하고자 온천욕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오래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게 왕들이 온천욕에 집착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군신 사이의 갈등도 심했다.

태종 즉위 2년(1401년) 9월 19일, 사간원에서 왕의 온천 행차에 파투를 놓았다.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던 호랑이왕 태종의 온천욕에 신하들이 딴죽을 건 것이다. 그 어조도 사뭇 도전적이다.

"전일 외부로 행차한 것도 잘못되었는데, 또 온천으로 가는 것은 (왕이)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나이가 젊으니 병환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건강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냥과 위락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태종은 길길이 날뛴다. 군신의 대화가 꼭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를 보는 듯하다.

"내가 옛날에는 종기가 나지 않았는데 금년에는 종기가 열 번이나 낫다. 의관 양홍달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깊은 궁중에서만 있어서 기운이 막혀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온천행을 명한 것이다. 내가 놀고 싶어서 온천을 간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나이가 젊으면 병이 없다고 하였는데, 나이 젊은 사람은 병이 없는가?"

선조도 마찬가지다. 온천욕을 하겠다는 왕의 결정에 딴죽을 건 것은 임진왜란의 명신 류성룡이다.

"온수로 목욕하는 것은 땀으로 진액을 크게 소모하는 것이니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선조는 이렇게 발끈했다.

"온천욕은 선대왕도 늘 했던 일이다. 당신의 말은 듣지 않는 것이 좋겠다."

조선의 신하, 특히 유학자들이 왜 왕의 온천욕을 반대했을까? 거기에는 온천욕의 효과를 둘러싼 견해차가 들어 있다. 온천에는 유황이 들어 있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유황은 뜨거운 성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독성이 있다. 약으로 사용할 때는 독성을 없애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다.

온천욕에 부정적인 이들은 유황이 포함된 온천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왕과 같은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다고 보았다. 특히 화로 인한 종기에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신경통과 같은 근육 질환이야말로 온천욕이 안성맞춤의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정작 실제로 온천욕으로 가장 효과를 보는 질환은 피부 질환이었다. 이 역시 한의학의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온천에 녹아 있는 유황은 '화(火)'이다. 한의학에서는 내부를 보호하는 피부는 '금(金)'이다. 쇠는 불 속에서 불순물과 분리돼 순수해진다. 즉, 온천욕을 통해서 피부의 각종 노폐물이 제거되리라 본 것이다.

실제로도 유황천은 피부의 각질층을 녹여서 탄력성을 높인다. 또 피부의 물질대사를 높여서 새로운 세포의 형성을 빠르게 한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피부 질환으로 고생을 한 왕들은 앞 다퉈서 온천을 찾았던 것이다. 이런 효과에 주목하는 이들은, 온천이 진물이 나는 피부 질환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보았다.

▲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이 온천을 찾은 기록이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프레시안
종, 선조 외에도 온천을 즐겨 찾았던 세조, 세종은 이런 온천의 효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왕이다. 만성적인 가려움증과 같은 피부 질환으로 평생 고생했던 세조는 전국의 온천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했다. 하도 세조가 피부 질환의 고통을 호소해, 이때는 신하들이 적극적으로 온천욕을 권했다.

반면에 조선의 왕 중에서 온천욕을 가장 즐겼던 세종은 평산, 온양, 이천 등의 온천을 열심히 찾으며 자신의 지병인 일종의 자가 면역 질환인 강직성 척추염 증상으로 나타나는 허리와 어깨 강직을 치료했다. (이 강직성 척추염으로 세종은 시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세상을 떴다.)

세종은 하도 온천을 좋아해서 뒷말도 많았다. 온천행이 잦다 보니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민폐가 심했다. 이 때문에 세종은 경기도 인근의 온천을 찾으려 애를 썼다. 특히 부평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몇 번이나 온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온천을 못 찾자 세종은 주민이 자신의 방문을 기피한다고 생각해 부평부를 현으로 강등했다.

<지봉유설>을 보면 우리나라의 온천 중 온양, 이천, 평산, 연안, 고성, 동래 온천이 가장 유명했다. 특히 세종은 온천의 물을 길어와 무게를 측정해서, 그 효과를 짐작했다. 기록을 보면 이천의 갈산 온천에서 길어온 물이 가장 무거웠는데, 실제로도 세종은 이 온천을 방문해 큰 효험을 보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구당 김남수에게 묻는다 ~ 장진영의 봄날은 '왜' 갔는가?

기사입력 2009-12-23 오후 1:49:28

 

김남수 옹의 최신 저서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이상호 지음, 동아시아 펴냄)를 보면 몇 달 전 위암으로 세상을 뜬 배우 장진영 씨의 치료 기록이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초기에 암 치료하고 난후에 4기에서 2기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남은 종양을 가지고 한참을 치료했는데 위(胃)가 문제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멍든 것이 발견됐다. 피를 응고하는 혈소판이 줄어들어서 혈소판 수혈을 받는다고 하였다."

김남수 옹의 말에 따르면, 침술 2500회, 뜸 시술 1만 회가 넘게 이루어졌다. 과연 이 김남수 옹이 장진영 씨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결론을 얘기하기 전에 김남수 옹이 고집하는 뜸이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자.

뜸의 한자는 구(灸)이다. 마치 구들장에 불을 넣은 것처럼 몸을 불로 지져서 몸 안의 따뜻한 양기를 북돋아 달아오르게 만다는 게 뜸의 기본 원리이다. 김남수 옹은 뜸이 모든 병에 무해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모든 치료에는 음양의 양편이 있다. 이익이 있으면 손해가 있다.

뜸의 재료는 쑥이다. 김남수 옹은 "뜸에 쑥을 쓰는 것은 그 성분이 아니라 발화점이 낮게 형성되기 때문이다"라며 "(성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의사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한의사가 "약장사"라서 그런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쑥은 인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예로부터 몸을 따뜻하게 열기를 돋우는 데 쑥을 사용한 것도 이런 사정을 옛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쑥뜸에 쑥을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대부분의 식물에 불을 붙이면 위로 타오르지만, 쑥은 아래로 타내려간다. 뜸에 3년 묵힌 쑥을 사용하거나, 양기가 성한 3월 삼짇날 쑥을 뜯는 것, 강화도 쑥이 최고로 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쑥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즉, 김남수 옹의 얘기와 다르게 쑥 자체가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의학의 시각에서 보면, 양의 성질을 가진 쑥은 음의 성질을 가진 병을 치료하는 데 적합하다. 장진영 씨의 목숨을 앗아간 암은 한의학에서는 '적취'라고 하는데, 내부에 한기가 쌓인 음의 성질을 가진 병으로 여긴다. 편작이 저술한 <난경>을 보자.

"차가운 한기에 의해 음기가 순환하지 않으면 혈류가 나빠지고 정체되어 덩어리가 생긴다. 이를 적취라고 하며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시각을 염두에 두면 장진영 씨의 암에 쑥뜸 시술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김남수 옹은 큰 실수를 했다. 몸이 허약할 때는 함부로 뜸을 떠서는 안 된다. 내 주장이 아니다. <상한론>, <금궤요락> 등의 의서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강조한다.

"허한 증상에 실증을 몰아내는 방법을 사용하면 혈(血)이 맥 속으로 흩어진다. 화기(火氣)는 비록 미세하지만 내부로 쳐들어가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 김남수 옹은 오랜 투병 생활로 극도로 몸이 약한 장진영 씨에게 뜸을 1만 번이나 넘게 시술하는 일을 감행했다. ⓒ프레시안
이처럼 김남수 옹이 암으로 몸이 쇠할 대로 쇠한 장진영 씨에게 1만 번 넘게 뜸을 시술한 것은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어기는 것이다. 더구나 장 씨는 위암뿐만이 아니라 지혈 작용에 관여하는 혈소판이 부족해서 고통을 겪고 있었던 듯하다.

장진영 씨의 병력을 소상히 알지 못하니, 장 씨가 원래 혈소판이 부족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투병 생활로 혈소판 수치가 떨어진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위암을 앓고 있는 장 씨의 몸 상태가 지극히 약해 있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김남수 옹은 이런 지경에 있는 장진영 씨에게 뜸을 시술했다. 인체의 혈관은 뜸과 같은 열에 풍선의 고무처럼 확장한다. 오랜 투병 생활로 체력이 바닥인 장 씨의 얇은 혈관이 무려 1만 번 넘는 뜸을 뜨면 혈관이 늘어나 얇아지면서 잘 터지게 되고 더욱 혈소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남수 옹은 심지어 혈소판이 줄어드는 것도 뜸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새로운 혈 자리를 찾아서 더욱더 뜸 치료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무식한' 행동이다. 장 씨의 봄날이 가는 데 김남수 옹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같다.

김남수 옹의 호는 구당이다. 구당은 '뜸뜨는 집'이라는 뜻이다. 김남수 옹이 창안했다고 자랑하는 뜸의 결정판은 무극보양 뜸이다. 그가 1984년에 펴낸 <뜸의 이론과 실제>라는 저서를 보면, 무극보양 뜸을 '보건 뜸'이라고 불렀다.

보건 뜸은 1934년 일본군이 만주 침략과 함께 보급한 '국민보건구(뜸)'의 아류이다. 당시 일본군은 약품, 의료인이 부족하자 일반 사병의 체력, 식욕, 수면 증진을 위해서 이 뜸 법을 보급했다.

김남수 옹이 이 일본군이 보급한 뜸 법을 어디서 배웠을까? 김남수 옹의 젊은 시절 이력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자전적 기록에서 "일제시대 면사무소에서 후생 담당을 했다"고 말했다. (<무극보양뜸을 통해 본 구당 김남수의 의학 사상>)

당시 면사무소 후생 담당이란 일제시대 노동, 보건을 담당했던 직책이다. 일제시대 말기에는 정신대, 징용자를 송출하는 업무를 맡았던 친일 부역자들이다. 김남수 옹은 <침뜸과의 대화>에서 일본의 한 박사가 뜸으로 결핵을 치료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데, 바로 자신의 뜸이 어디에 맞닿아 있는지 드러낸 것이다.

김남수 옹의 자격증에는 더욱더 의문이 많다. <신동아> 2005년 5월호를 보면 그는 "28세 때 남수침술원을 개원해 지금까지 한 번도 침을 놓지 않았다"고 인터뷰를 했고, 그 이후에도 여러 언론에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김남수 옹은 2008년 다른 언론에서는 "1983년 남수침술원을 개원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자격 자체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취득했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횡설수설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임상 대목으로 들어가면 지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김남수 옹은 감기의 원인이 '열'이라며 "이열치열로 뜸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감기는 한의학에서는 상한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차가움에 인체가 손상된 것이다. 영어로도 '감기에 걸렸다'를 'catch the cold'라고 하는 것처럼, 이것은 전 세계에서 범부도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감기 때문에 뜸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기로서니 이렇게 무식한 얘기를 해도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침술의 달인인 허임을 사사하는 입장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 <침뜸과의 대화>에서 김남수 옹은 허임의 보사법을 언급한다. 그는 몇 가지 보사법을 설명하면서 결론적으로 "보사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김남수 옹의 대답에 저자는 이렇게 한술 더 뜬다. "실제로 허임 선생도 부분적이지만 보사 이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실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김남수 옹이 언급한 보사법과 허임의 보사법은 전혀 다르다. 책을 읽었는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김남수 옹의 뜸처럼 만병을 통치하는 비술이 아니다. 허임 스스로 <침구경험방>에서 침구 치료의 의의를 "허실을 가려 보사를 함으로써 기혈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균형 감각에서 독자적인 그의 3단계의 제삽보사법이 나온 것이다.

만약 허임이 현존해서 위암에 걸려서 장진영 씨가 찾았다면 섣부르게 침을 놓는 일은 안 했을 것이다. 아마도 양의를 찾아가 현재의 상태를 엄밀하게 진단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설사 한의사의 관점에서 치료를 했더라도, 몸을 보하는 것과 같은 가장 효과적인 (하지만 결코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치료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우유,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 "왕들은 우유를 좋아해?!"

기사입력 2009-12-30 오전 8:44:10

 

우유를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마셨을까? 우유 섭식의 역사는 의외로 길었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을 보면 백제인 지총에 대한 기록이 있다. "지총은 외내전, 약전, 명당도 등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 왔다. 효덕천황 때 우유를 진상한 공로로 새로운 성 '화약사주'를 하사받았다." 이미 이때부터 우유를 먹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옛사람도 요즘처럼 우유를 마셨을까? 아니다. 생우유의 음용은 없었다. <농정전서>를 보면 그들이 우유를 어떻게 먹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소에서 짠 젖, 즉 '우유'를 일단 끓여서 농축한다. 이것을 냉각해 걸러서 생락(酪)을 만들고, 다시 건락을 만든다. 이 건락을 물에 타서 먹었다. 여기서 '낙'은 오늘날의 치즈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젖소가 아닌 소에서 어떻게 우유를 얻었을까? <임원십육지>는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송아지가 빨아서 얻는 양보다 많은 양을 얻으려면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새끼를 낳자마자 곡물이 든 죽을 먹인 암소를 사흘 정도 후에 네 발을 묶고 뒤집는다. 소의 꼭지를 쥐어 짠 다음, 유방을 발로 여러 차례 찬다.

생각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암소의 젖줄이 터졌다. 이런 작업을 거치고서야 한우에서 우유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젖 짜는 일은 3월부터 9월까지 목초가 풍성할 때만 가능했다. 다른 때에는 암소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젖을 얻더라도 그 질이 낮았다.

▲ 옛사람에게 우유의 효능은 신비 그 자체였다. ⓒ프레시안
옛사람에게 우유의 효능은 신비 그 자체였다. 왕실 이외에는 감히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소의 젖을 짜는 '유우소'는 동대문 근처의 낙산(酪山)에 있었는데, 소속된 관원이 200명이나 될 정도로 컸다. 성종 이전까지는 70두 정도의 암소가 우유를 공급했으나, 성종 이후 이를 18두로 줄였다.

우유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는 영조의 교서를 봐도 알 수 있다. 영조는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자격까지 분명히 규정했다. 영조는 "예전에는 대전, 대비전, 세자궁 이외에는 낙죽을 들이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동궁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며 왕손에게도 우유를 금지하라고 명했다. 이 유우소가 폐지된 것은 조선 말 철종 때였다.

우유를 먹는 사람을 이렇게 엄격히 제한했던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우에서 우유를 얻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아지가 먹을 것을 빼앗아 이용하다 보니 늘 양은 부족했다. 한편, 유우소의 규모를 축소한 성종 등은 농업의 위축을 우려했다.

그러나 태종, 세종 등 왕들은 유(낙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들은 우유가 신비한 효과를 내리라 믿었다. 한의학은 우유의 효능을 다양하게 설명한다. 우선 우유는 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진액을 만들어 장의 활동을 돕는다. 당연히 당뇨, 변비 등의 질환에 효과가 있다. 특히 마늘과 함께 서너 차례 끓여서 먹으면 몸의 냉기, 쇠약을 없앤다.

가끔 우유를 소화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보통 두유를 찾곤 하는데, 마늘과 함께 우유를 끓여서 마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단, 우유가 맞지 않는 이들이 있다. 배가 차고, 설사가 잦거나, 구토가 잦은 사람은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사람이 우유를 복용할 경우 배 안에 딱딱한 경물을 만든다고 경고한다.

우유에 관한 옛 기록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도 남아시아의 물소가 들어온 기록이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연나라에 말, 곰을 선물로 보내자 물소로 화답했다. 고려 때도 송나라 상인이 물소 두 마리를 왕에게 바친 일이 있었다. 조선 세조 때는 오키나와의 물소를 비원에서 기르기도 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백호의 해, 심판의 해 ~ "호랑이가 운다"

기사입력 2010-01-13 오전 9:04:45

 

2010년은 백호의 해이다. 오행상 두 개의 호랑이를 뜻하는 금(金)기가 겹쳤기 때문이다. 경인(庚寅)년의 '경'도 오행상 금이고 '인'도 금이다.

금은 가을의 기운을 상징한다. 가을은 잎이 떨어지며 열매를 맺고 추수하는 계절이다. 잎이 떨어지고, 겉은 건조하지만 안은 충실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나무는 자신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나뭇잎을 제물로 바치며 자신의 생명력을 내부로 갈무리한다.

오행에서는 이런 의미를 담아 '심평'한다고 말한다. 공평하게 심판하여 죽을 것은 죽고 살 것은 살게 하는 '심판의 계절'이인 것이다.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면, 백호의 해는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하는 한해이다. 옛 말에 백호가 나타나면 권력자는 몸을 낮추고, 부자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을 담고 있다.

금기가 겹쳐서 강해지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금은 오장육부 중 폐를 뜻한다. <난경>은 이렇게 말한다.

"폐가 지나치게 수렴하여 차가워지면 기가 순환하기 힘들다. 폐가 병들면 기운이 가라앉기 쉬우며 항상 비관하고 푸념을 늘어놓고 아이들은 훌쩍인다. 폐기의 순환이 어려워지면서 신체가 차가워져 콧물이 잘 나온다. 이럴 때는 매운 맛이 나는 것을 먹어 신체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 폐는 기백이 있는 기관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굳세게 하고 좀 더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기의 순환이 좋아진다."

한의학에서는 간간이 호랑이를 약물로 사용하였다. 전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앞다리뼈를 약재로 썼다. 그중에도 수컷의 앞다리뼈를 귀하게 여겼는데 호랑이의 힘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주로 관절질환에 많이 이용되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포획량이 적어서 암시장에서 표범의 뼈나 곰의 뼈가 대용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앞다리뼈 외에 가장 각광을 받는 것은 호랑이의 눈이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호랑이의 눈은 좌우의 기능이 다르다. 한쪽은 광채를 발하고 한쪽은 물체를 구별한다. 약효는 무엇일까? 신경을 진정시켜 소아의 간질이나 정신이상을 치료한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기록된 내용이다. 자신이 잡지 않은 것은 모두 가짜라는 것. 이수광의 <지봉유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호랑이가 영험한 자연 치유 능력이 있다. 호랑히는 독화살을 맞았을 때 푸른 진흙을 찾아 먹고 독을 푼다."

호랑이는 서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영물이다. 관악산 옆 삼성산에 있는 호압사라는 절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서울이 수도로 등장한 것은 조선왕조 때부터다. 태조 이성계는 궁궐을 짓기 위해 박차를 가했는데 자꾸만 호랑이 같은 괴수가 나타나 궁전이 무너지는 불운을 겪었다.

서울을 포기하고자 할 때 한 늙은 사람이 와서 호랑이 꼬리를 누르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는데 그곳이 바로 호압사 자리다. 이 점은 서울이 호랑이의 기운을 타고 나서 호랑이 기운을 누르고서야 정착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그외에 인왕산 호랑이나 태종 때 궁궐 속 근정전에 호랑이가 나타난 무수한 사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서울의 상징은 호랑이가 아닌 해태가 되었다. 해태의 등장은 서울 관악산의 화기를 눌러야 한다는 풍수설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박제형의 <조선근세정감>에 잘 나와 있다.

"대원군이 풍수설을 믿어 궁궐이 화재가 자주 나는 것은 관악산이 화기를 띠기 때문으로 믿었다. 이에 수성의 신수인 해태를 설치하여 불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해태는 중국의 순 황제 때 법관인 고도가 만든 법의 상징일 뿐이다. 실제로 서울의 상징은 호랑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호랑이해, 서울에서 호랑이가 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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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만병통치 뜸'은 없다 ~ 사스·에이즈를 '뜸'으로 치료한다고?

기사입력 2010-01-20 오전 8:13:44

 

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치료일까? 뜸은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이용해온 요법 중 하나다. 다들 무릎, 어깨가 아플 때 자가 요법으로 쑥뜸을 떠오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치료를 '아시혈 치료'라고 부른다. 병을 앓아 통증이 있을 때 그 부위를 누르면, 입에서 튀어나오는 감탄사 '아(阿)'와 '맞다'는 의미의 '시(是)'를 섞어 만든 말이다.

이런 치료는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나름의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적당히 아픈 자리에 뜸을 놓아 상태의 호전을 꾀하는 방법과 전문가의 뜸은 다르다. 예를 들면 한의사는 인체의 오장육부와 연결된 경혈을 찾아서 뜸을 뜬다. 경혈에 뜨는 뜸은 인체의 허실 상태를 조정해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을 북돋운다.

한의학은 우주와 인체를 동일시하여 인체를 소우주라 한다. 전신의 경혈 수는 361개이다. 바둑판도, 음력 1년도 361이다. 바둑의 한 수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부분, 부분이 전체와 밀접하다. 평생 이런 경혈에 침을 놓아 한국, 중국, 일본을 막론하고 동양 최고의 침의로 추앙받았던 허임은 누구보다도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취혈을 강조했다. 마치 바둑에서 한 수를 잘 못 둬 패배를 자초하는 것처럼, 경혈 한 곳에 침, 뜸을 잘못 놓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게 큰 해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뜸(灸)은 글자 그대로 불기운을 몸의 양기를 북돋우는 훌륭한 치료 수단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가령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2단은 되어야 주전자의 물이 끓는다고 하자. 그런데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1단밖에 안 된다면 당연히 화력을 2단으로 올려야 한다. 바로 이렇게 1단에서 2단으로 올려 물을 끓게 하는 역할을 바로 뜸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따져봐야 할 조건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주전자의 물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만약 주전자에 물이 너무 비어있으면, 화력을 1단에서 2단으로 올리자마자 물이 끓기는커녕 다 증발해 버릴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이런 상태를 '물이 부족하다' 하여 '음허(陰虛)'라고 말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뿐만 아니다. 본래 양기가 왕성한 사람이 있다. 이럴 때 뜸을 뜨면 자칫 화력을 2단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3단까지 올려, 물이 끓어서 넘치거나 주전자를 태울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이런 상태를 '양기가 넘친다' 해서 '양성(陽盛)'이라고 말한다. 뜸을 뜰 때는 혹시 몸이 이런 두 가지 상태가 아닌지를 세심히 점검해야 한다.

뜸 치료가 어떤 사람에게는 '명약'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맹독'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경고한다.

"맥이 부하고 열이 심한데, 도리어 뜸을 뜨면 실한 것을 더 실하게 하는 것이고, 허한 것을 더 허하게 하는 것이다. 불기운 때문에 기가 동하면 반드시 목구멍이 마르고 피를 토하고 뱉는다."

▲ 정확한 진단이 전제되지 않은 뜸은 '명약'이 아니라 '맹독'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사진=자료)
<동의보감>뿐만이 아니다. 구술로 전해져 내려온 화타의 의술을 채록한 고대의 <중장경>부터 현대의 한의학 교과서까지 한목소리로 이렇게 경고한다. "음기가 모자라거나나(물이 적거나), 양기가 많으면(불이 많으면) 뜸을 뜨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뜸을 잘못 떳을 때, 환자에게 새로운 질환을 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요즘 뜸이 대세다. 특히 구당 김남수 옹은 많은 이들이 뜸의 치료 효과에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이런 뜸의 치료 효과를 매스컴에서 부각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더욱더 쏠렸다. 구당은 자신의 '무극보양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수차례 반복한 얘기를 그대로 옮기면 이처럼 요약할 수 있다.

"무극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고, 보양은 건강을 증진시켜준다는 뜻이다. 8개 경혈, 12개 혈 자리에 집중적으로 뜸 치료를 하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무극보양뜸은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

필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1년에 1만 명 이상의 환자에게 침을 놓은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침이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은 없다,'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아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라면 누구나 이런 필자의 마음에 공감을 할 것이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치료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의학> 5000년의 역사, 어느 문헌을 들여다보아도 '12개 혈 자리를 꾸준히 떠서 건강해진다', 이런 무극보양뜸의 근거를 찾기가 힘들다. 굳이 찾자면, 이와 비슷한 뜸 치료를 1934년 만주 침략과 함께 일본군이 '국민 보건 요법'이라는 이름으로 보급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전장에서 '젊은' 사병의 체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자 뜸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만약 이런 전시의 뜸 치료를 현대인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 부작용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현대의 보통 사람은 체력은 비교적 좋은 반면,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이 많다. 이렇게 화기가 넘치는 이들에게 뜸을 떠주는 게 과연 좋을까? 체육관에서 수천 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음양허실의 진단도 없이 뜸을 만병통치약처럼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부적절하다.

중국, 일본까지 눈을 돌려보면 무극보양뜸과 비슷한 경우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몸의 정해진 자리 4곳에 꾸준히 뜸을 떠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전해진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이 방법을 놓고 논란이 많았던지, 조선의 사신으로 일본을 찾아온 18세기 조선의 명의 조숭수에게 그 타당성을 물었다. 그의 대답 역시 나와 똑같았다.

"음기가 많거나 양기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뜸 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렇게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끊임없이 가장 적합한 대응을 하는 것이야말로 의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 만병통치약을 믿는 사람을 의료인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수차례에 걸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전염병도 뜸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말문이 막힌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비빔밥과 스시 ~ 일본 사람이 '스시'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기사입력 2010-01-27 오전 8:25:19

 

2009년 타계한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에 차이는 있어도 우열은 없다"고 말했다. 비빔밥과 스시도 한국과 일본의 체질에 맞춤한 먹을거리로 보아야지 우열을 따져서는 안 된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의 체질의 각각 불과 물로 상징된다. 평균적인 체질을 살피려면 질병을 따지는 게 편하다. 한국인은 대체로 화병이 많다. 화병의 화는 불을 상징한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을 '수독'에서 찾았다. 수독의 원인은 바로 물이다. 현대 의학으로 치면 체액의 조절이 안 됐을 때, 병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일본인은 위장이 약해서, 위장의 수분 대사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병(위내정수)이 잦았다.

이런 사정은 한국과 일본의 약재의 양의 차이에도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약재 50~60그램을 한 첩의 분량으로 정한 반면, 일본은 20~30그램에 불과하다. 중국은 한국보다 두 배 정도 많다. 중국과 일본의 약재의 분량 차이를 놓고 가이바라 에키겐은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인은 일본인보다 위장이 튼튼하다."

한국인 역시 일본인보다 위장의 능력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본은 불교의 영향이 커서 근대 이전까지는 육식을 즐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육식을 하더라도 생선이 주였다. 더구나 생선은 원래 위장에 부담이 큰 찬 음식이다.

▲ 일본인이 즐기는 '스시'는 그들의 체질에 가장 맞춤한 먹을거리다. ⓒ프레시안
바로 스시는 이런 문화와 체질을 염두에 둔 먹을거리다. 스시는 원래 삭힌 고기다. 붕어를 잡아서 내장을 꺼내고 나서 씻고 절인 것이 스시의 원형이다. 일본에서 '스시를 담근다(漬)'고 표현하는 것이나, 주방을 '스케바(담그는 곳)'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스시'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가이바라 에키겐이 처음으로 정의했다. '스'는 새콤한 산미를 말하고, '시'는 어조사인데 본래 표제어는 지(漬)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도 김치를 '지'라고 했다. 채소를 소금물에 담그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숙성한 생선을 최고로 친다. 숙성은 위장이 할 일을 미리 하는 것이다. 이런 숙성을 한의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부숙수곡(腐熟水穀).' '부'는 삭인다, '숙'은 찐다는 뜻으로 위장이 하는 일이다. 즉, 숙성은 약한 위장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조리법이었던 것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 입맛에는 갓 잡은 생선이 최고다. 내 인생 최고의 생선은 어린 시절 배 위에서 회쳐 먹었던 바로 잡은 가재미였다. 한국과 일본의 체질 차이가 이렇게 음식 문화에도 반영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비빔밥의 기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한솥밥설이다. 한국에서는 한솥밥이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실제로 첩을 들이면 한솥밥을 먹이지 않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비빔밥은 자손을 조상과 연결하는 매체다. 이것을 '신인공식(神人共食)'이라고 한다. 제사 후에 여러 가지 제물을 비벼서 먹은 것이다. 이 때 음식이 서로 섞여서 하나가 되면서, 조상(신)과 후손(인간)도 이어져 하나가 된다.

비빔밥은 각각의 재료가 고유의 맛을 내면서도 잘 어울러져야 제 맛이다.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것, 바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미래상이 비빔밥에 있는 게 아닐까? 비빔밥은 우리 체질에 근거하면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정체성을 암시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해부학 교실 ~ 허준은 진짜 '해부'를 했을까?

기사입력 2010-02-03 오전 8:25:26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든 과목은 해부학이다. 해부학 교수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이론, 실습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평균 점수에 못 미쳐 F학점을 받기 십상이다. 일단 F학점을 받으면 해부학 수업을 1년간 다시 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난다.

최근에 일부 대학생이 해부 실습용 시신, '카데바(Cadaver)'로 장난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렸다. 의학 발전을 위해서 기증된 숭고한 시신을 소홀히 다루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해부학 실습생에게는 이상한 징크스도 있다. 함부로 카데바를 대하면 사고를 당한다는 것.

한의학에서는 해부가 언제부터 이뤄졌을까? 드라마 <허준>을 본 많은 이들은 스승으로 등장한 유의태의 살신성인과 얼음골의 해부 장면을 인상적이라고 꼽는다. 비록 이런 내용은 허구이긴 하지만 허준의 <동의보감>의 첫 장이 '신형장부도'라는 걸 염두에 두면 전혀 뜬금없는 설정은 아니다. 신형장부도는 신체 내부를 묘사한 한의학식 해부도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웬 일인지 해부학은 발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해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후한서> '왕망전'을 보면, 해부가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황제내경>에는 장부의 크기, 무게도 기록돼 있는데, 식도, 창자의 길이 비율이 근대 해부학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국의 해부도는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연라도'이다. 도교의 영향 아래 제작된 것이지만, 그 내용은 의학적이다. 이 연라도에 사형수 구희범을 해부하면서 사실적인 부분을 가미한 것이 '구희범오장도'인데, 이것이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현존하지는 않는다.

12세기 초 안휘성에서 죄인을 참형한 군수가 지금까지의 오장도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보충해 다시 그린 것이 '존진도'이다. 연라도에서 구희범오장도가 나오고, 다시 수정 보완해 존진도가 나온 셈이다. 이것을 기본으로 한의학의 인체도인 명당도, 맥결도, 장상도 등으로 분화되어 가면서 한의학 해부도의 기본 바탕이 마련됐다.
 
▲ <전체신론>(1851)에 실린 인체 해부도. ⓒ동은의학박물관
허준의 신형장부도는 존진도를 바탕으로 그려진 인체 해부도이지만 당대의 중국 의학과는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척추 위주의 그림이다. 척추를 옥침관, 녹노관, 미려관으로 표시하여 정기신의 운행 통로로 강조한 것이다.

"등쪽에 삼관이 있으니 뇌의 뒤가 옥침관이요. 협척을 녹노관이라 하고 아래를 미려관이라 하는데 모두가 정기의 승강 왕래하는 도르래이다."
 
허준은 척추를 따라 움직이는 척수액이 '정기신(精氣神)'의 본질이라고 파악했다. 정기신의 요지는 이렇다. 정이 땅의 정수요 기는 사람의 정수이며 신은 하늘의 정수가 되는 물질이다. 하늘 땅 사람으로 이어지는 허준 의학의 본질이며 특징이다. 신형장부도에는 유교적인 한의학을 배제하고 도교적이며 한국적인 의학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일본의 해부학은 동양 의학에서 서양 의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 수입된 네덜란드 해부학 책의 정교함에 매료된 일본 의사들의 지적 욕구가 근대 학문과 서양 문화 도입에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일본의 의사들은 네덜란드의 의학서를 최초로 번역 1774년에 <해체신서>라는 제목의 서양 의학서를 선보였다.

<해체신서>를 주로 번역한 의사 스기라는 알파벳도 몰랐지만, 4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서양 의학서를 출간했다. 이렇게 대중에게 선보인 <해체신서>는 결국 일본 근대화의 토양인 난학(네덜란드학)의 길잡이가 되었다. 일본 근대화를 호기심이 많았던 해부학을 공부하려는 한의사가 연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두피 건강 ~ 탈모와의 전쟁, 백전백패라고?

기사입력 2010-02-10 오전 9:29:56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머리털이 많은 사람과 머리털이 없는 사람. 한 친구는 최근 인사 방법을 바꿨다. 머리를 공손히 숙였다가 직장 상사로부터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마 부분이 훤히 드러난 사실을 들킨 것이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새로운 인사 방법을 직장 상사가 시연했다. 얼굴을 들고 허리만 숙이는 이른바 '배꼽 인사.'

최근 탈모로 고민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스트레스가 많고, 먹을거리가 바뀐 탓이 크다. 탈모로 고민하던 이들은 예전에도 많았는데, 예를 들면 청나라 말기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서태후는 대표적인 예다. 그 역시 권력의 정점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고, 먹는 음식도 고지방 음식이었을 테니 현대인과 생활 습관이 다르지 않았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기본 요소를 두 가지로 본다. 바로 '기'와 '혈'이다. 머리의 정상 부분인 가마는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다. 마치 태풍의 눈과 같다. 앞에서 언급한 기본 요소를 염두에 두고 한의학은 이런 가마의 모습을 이렇게 해석한다. '양기가 머리끝으로 빙글빙글 뻗쳐오르고 있다고.'

머리는 양기의 정점이다 보니 열이 많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머리털은 마치 인체의 혈을 밀고 올라오는 기의 모습이다. 머리털을 일컫는 '발(髮)'은 본래 '뺄 발(拔)'에서 유래한 것이다. 길게 뻗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길게 뻗은 머리털은 위로 치솟는 불꽃의 모양과 흡사하다.

▲ 최근 탈모로 고민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스트레스가 많고, 먹을거리가 바뀐 탓이 크다. ⓒ프레시안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머리털은 모내기할 때 모판의 모와 비유된다. 모판의 모는 열이 올라서 마르면 죽는다.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흥분하면 혈관이 수축해, 열이 오른다. 이렇게 열이 오르면, 머리털은 모판의 모처럼 말라죽기 십상이다. 스트레스가 탈모를 부추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치료하는 약물 중 대표적인 것은 측백엽과 향부자다. 모든 나무는 햇볕을 향하는데 측백나무는 서쪽을 향한다. 한의학의 시각에서 보면,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 기가 꺾여서 내려가는 곳이다. 그래서 상승하는 양기를 하강하도록 꺾어 내리는 작용을 한다. 실제로 측백엽은 혈액이 역행해서 생기는 코피와 토혈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

향부자는 위에서 잎이 무성하게 펼쳐지고, 아래도 실 같은 뿌리가 많이 나온다. 이렇게 아래 위가 모두 무성한 것은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향부자의 이런 속성은, 내부에 몰린 기를 외부로 발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향부자는 기가 몰린 상태를 잘 흩어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탈모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음정의 부족이다. 모발은 초목처럼 성장, 퇴행을 반복하며 사계처럼 순환한다. 땅이 기름져야 초목이 잘 자라듯이 모발은 피지선에서 분비된 피지 덕분에 수분을 지키면서 광택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모발을 지키는 것과 같은 기름진 물질을 바로 음정이라 하는데, 배꼽 아래 신장이 그 근원이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적고 있다.

"정기가 위로 올라가면 털이 윤기가 나면서 까맣게 된다. 48살이 지나서는 정기가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수염과 머리털도 말라 바스라지면서 회백색을 띠게 된다.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미리 정혈을 보하는 약을 먹어서 이런 것을 막는다. 정혈을 보하면 희어졌던 머리털도 검게 된다."

<동의보감>에는 이런 상황을 막는데 쓰이는 여러 가지 약물이 소개돼 있는데, 가장 재미있는 처방은 '장천사초환단'이다. <동의보감>은 그 효능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익살스러운 과장은 그만큼 약효에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약을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져서 바람을 따라갈 것 같다. 흰 머리털이 뿌리부터 검어지는데 믿지 않으면 흰 고양이에게 1달 동안 먹이면 검게 변한다."

또 다른 처방은 '하수오'다. 이름 그 자체가 치료 효과를 설명하는 약물이다. 어찌 하(何), 머리 수(首), 검을 오(烏). <본초구진론>이라는 책을 보면, 이 하수오의 약효를 놓고 "신음(음정)을 보하며 머리털을 검게 한다" 이렇게 적고 있다.

먹을거리 중에서 탈모 방지에 이용되는 것은 검은 콩, 검은 깨, 다시마 등이다. 검은 깨, 검은 콩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은 원래는 빨간 색소이지만 그 함유량이 늘면 빨강이 보라로, 보라가 더 짙어지면 검정으로 변한다. 이것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관 속의 노폐물을 청소해준다. 실제로 검은 색 먹을거리는 체온 유지 효과도 크고, 체중 감량에도 효과적이다.

검은 콩, 검은 깨는 안토시아닌이 있어서 지방을 잘 태워주며 간 속에 들어 있는 지방을 분해하여 지방간이나 간경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특히 간과 신장을 보하여 머리털을 만드는 원료인 음정을 보충해주고 머리에 생기는 풍기를 없애주므로 그야말로 맞춤한 탈모 예방 먹을거리다. 검은 콩과 검은 깨는 하루 동안 물에 담근 후, 찌고 말려 가루를 내 먹는다.

탈모를 방지하는 먹을거리로 빠질 수 없는 것은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다. 갑상선은 모낭 활동을 촉진하여 휴지기에서 성장기로 전환을 유도하면서 머리털 성장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크다.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요오드는 해조류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검은 콩, 검은 깨, 다시마 등으로 환약을 만들면 탈모에 효과가 크다(오현환).

들깨도 탈모 예방에 좋다. 일본에서는 탈모를 예방하고자 들깨에 꿀을 타서 먹는 방법이 유행한다. 들깨의 기름은 불포화 지방산이다. 포화 지방산이 혈관벽에 달라붙어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반면 들깨의 지방산은 그 매끈한 성질로 혈관 속의 노폐물을 청소하면서 배출한다.

올리브유가 튀기면 건강과 비만의 적이 되지만 생기름은 오히려 건강식이 되는 이유와 비슷하다. 들깨를 장복하고 흰머리가 검은머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논리 때문이다. 그러나 불포화 지방산은 열이나 압력 때문에 쉽게 변성된다. 그래서 좋은 지방산을 섭취하려면 들깨를 갈아 생것으로 복용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두피 건강에 빠질 수 없는 적은 먹는 음식에 포함된 기름기이다. 튀김류나 삼겹살 같은 기름기 많은 고기류를 섭취하면, 가려움이 심해지고 비듬이 생기면서 머리카락이 다발로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머리털이 빠지는 것을 걱정하던 서태후가 탈모 방지를 위해 썼던 처방은 무엇이었을까?

기록을 보면 서태후는 '국화산'과 '민두수' 등의 처방을 애용했다. 국화산은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감국, 만형자, 측백엽, 천궁, 백지, 세신, 상백피, 한련초의 뿌리, 줄기, 꽃, 잎으로 같은 양을 달여서 머리를 씻는 방법이다. 이것을 머리에 바르면 머리털이 검게 되고 윤기가 난다고 기록돼 있다.

서태후가 자주 사용한 또 다른 방법은 민두수였다. 국화, 조협, 박하, 형개, 백지, 백강장, 곽향 등의 한약을 넣어 끓여서 식힌 뒤 용뇌를 넣어 만든 물에 빗으로 적셔 빗으면 효험이 크다고 적혀 있다. 이런 국화산과 민두수를 이용한 후, 서태후는 머리털에 윤기가 생기고 건강해졌다고 한다.

머리털을 빗는 것은 전통적인 두피 관리 방법이다. <황정경>에는 머리를 많이 빗어야 거풍하고 눈이 밝아지며 뇌신이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거풍이란 환기를 시키는 것이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머리털을 길게 기르던 옛날에는 머리털이 빽빽해서 환기가 되지 않아 모근이 숨을 쉬기 힘들었다.

또 두피의 바닥은 밭과 같다. 적당한 자극이 필요하고 고랑을 갈아줘야 모근이 잘 자랄 수 있다. 숱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은 머리 손질도 다르게 해야 한다. 숱이 많고 굵은 머리카락 빗살의 길이가 길고 크기가 넉넉해야 하고, 숱이 적고 가는 머리카락은 빗살의 길이가 짧고 촘촘한 것이 좋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소금물 세척 ~ 코 막혀 '킁킁'…'뻥' 뚫리는 방법은?

기사입력 2010-02-17 오전 9:35:42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압록강에서 만난 유성룡을 보고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먹을거리를 가져오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성룡이 이여송의 손에 쥐어준 것은 소금이었다. 이여송은 조선의 소금 맛을 본 후에는, 다시는 먹을거리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최치원의 격문으로 유명한 황소의 난도 소금과 관련이 깊다. 고대 중국에서 소금은 국가 통제 물품이었다. 그런데 이 소금이 갑자기 비싸지자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 틈을 비집고 난을 일으킨 사람이 황소인데, 이 황소는 원래 소금을 몰래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소금 장수였다.

소금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바닷물을 말려서 만든 대염과 육지에서 채취하는 암염으로 나눈다. 이 외에도 흔하지는 않지만 소금 성분이 있는 나무에서 추출해낸 목염, 특이하게 풀에서 채취하는 초염도 있다. 이런 소금 중에도 가장 으뜸은 이여송이 한반도의 갯벌에서 나는 소금 같은 대염이다.

▲ 국내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소금이다. ⓒ프레시안
바닷물을 말려서 만드는 대염은 보통 5월에서 9월 사이에 채취한다. 밤 기온이 15도를 넘는 4월 초순부터 10월 초순이 대염을 제조하는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대염인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에 가둬 햇빛과 바람으로 건조시킨다. 이때는 햇볕이 너무 강하지 않고 바람이 살살 불어서 최고의 소금이 생산된다.

바닷물을 염전에 가둬놓으면 먼저 물 표면에 얇은 소금막이 형성되고 나서, 조금씩 커지면서 소금결정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소금꽃이라 부른다. 이 결정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사각형 모양이 형성되는 것을 소금이 살찐다라고 하는데, 이 때 채취해 소금 창고로 옮긴다. 1년간 간수를 빼내면 쓴 맛이 빠져나가면서 밥상에 오르는 소금이 완성된다.

한의학에서는 소금에 따뜻한 성질이 있다고 본다. 겨울이 되면 강과 같은 하천은 얼지만 바다는 얼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바다가 얼지 않는 데는 염분이 때문인데,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소금에 따뜻한 성질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런 소금을 <동의보감>은 이렇게 기록했다.

"서북쪽 사람은 적게 먹어서 흔히 오래 살고 병이 적은데, 동남쪽 사람은 소금 먹기를 좋아하여 오래 살지 못하고 병이 많다. 그러나 물고기와 고기를 절이면 오래가도 상하지 않으며 베나 비단에 적시면 쉽게 썩고 헤어진다. 그러므로 각기 적당한 것이 좋다."

그러나 소금은 우리 신체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잘 활용하면 곳곳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비염 환자에게 유용하다. 비염이 생기면 맑은 콧물이 나오다 차츰 누런 콧물이 생기며 답답하다. 바로 이런 코를 뚫는 데 소금물이 큰 효과를 발휘한다.

코에 염분 농도가 높은 세척액이 들어가면 코 혈액을 압박해서 수분을 추출해 묽은 콧물이 나오는 것을 돕는다. 이런 콧물은 코 안을 세척하고, 찌꺼기를 녹여 낸다. 이런 방법을 코 세척 요법이라고 하는데, 약 100년 전부터 영국의 왕립병원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진 치료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허준이 '적당한 것이 좋다'고 했듯이, 이 코 세척 요법을 계속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주변 모세혈관이 말라서 비염이 악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도 조절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0.9퍼센트 생리식염수를 사용하지만, 효과가 없다면 약간 농도를 높여야 한다.

오랫동안 콧병이 계속되고 항생물질을 사용하면 코의 섬모세포 활동이 떨어진다. 따뜻한 소금물 세척은 섬모세포의 활동을 도와 이물질 제거에 큰 도움을 준다. 만약 차가운 물을 사용하면 혈관 과민성이 증대되어 재채기 콧물이 더욱 심해지고 부어오를 수 있다. 약간 따뜻한 물이 더 효과적이다.

만성 비염에 누런 코가 계속돼 고통스러울 때 진하게 우려낸 녹차를 시원한 상태로 식히고 거기다 소금을 조금 넣은 후 그 물로 콧속을 씻으면 더욱 효과적이다. 차의 쓴맛이 소염효과를 강하게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경옥고의 비밀 ~ <아바타>에서 '전설의 명약'을 떠올리다

기사입력 2010-02-24 오전 8:48:03

 

'경옥고(瓊玉膏)'는 정조가 운명하기 전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리고자 먹었던 약으로 유명하다. 허준이 그의 평생 후원자인 유희춘에게 선물했던 약으로도 유명하다.

'경(瓊)'은 아름답다(붉다), '옥(玉)'은 구슬, '고(膏)'는 고은 액체를 뜻한다. 풀어 보면, 붉은 구슬 같은 고약이다. 해석을 가미하면, 옥구슬처럼 소중한 생명의 물을 뜻한다. 이런 경옥고의 이름은 도교 전통의 신화와 맞닿아 있다. 옛날 황제(黃帝)가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오는 꿀 같은 옥액을 먹으며 영생을 얻었다는 얘기는 전형적이다.

곤륜산(崑崙山)은 곤륜(昆侖), 곤륜(崐崘)이라 불리는 전설상의 산(山)으로 본래 굉장히 높은 산이었다. <회남자>에 적혀 있는 산의 높이를 보면 산기슭부터 꼭대기까지가 1만1000리다. 신화 속에서 하늘과 지상을 잇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거대한 산이다. 옛날에는 황하(黃河)도 여기서 발원(發源)했다고 믿어졌다.

이 곤륜산은 신화 속의 산으로 황제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을 때 머무는 곳이다. 이 곤륜산은 사실 지금도 곳곳에서 활용된다. 예를 들면,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나오는 공중에 떠 있는 산은 모두 다 이 곤륜산의 변형이다.

▲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나오는 공중에 떠 있는 산은 모두 다 이 곤륜산의 변형이다. ⓒ프레시안

이 곤륜산의 아래에는 약수라는 깊은 물이 산을 휘감아 흐르고 있고 그 둘레에는 또 불꽃이 이글거리는 큰 산이 있다. 그 불꽃 속에는 기이한 나무가 한 그루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건목이다. 불꽃 속에서도 타버리지 않는 나무는 바로 그곳이 속세와는 구별되는 성스러운 장소라는 것, 신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이곳에는 누가 뭐래도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여신, 서왕모가 살고 있다. 그는 곤륜산에 살면서 사람의 수명을 다스리는 불사약을 갖고 있다. 서왕모 주최로 열리는 곤륜산 요지의 복숭아 축제에는 신선 세계의 온갖 신들이 몰려온다. 이 불사약이 바로 황제가 상식한 경옥고의 원형이다.

이런 신화는 당연히 상징이다. 곤륜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머리를 상징하고 서왕모는 여자로 정혈을 의미하며 붉은 복숭아는 신장 중에 오른쪽에 있는 명문 단전의 타오르는 생명의 불길을 상징한다. 머리와 명문 그 속에 깃들인 생명 물질인 정혈이 삶의 근원인 것을 표현한 신화인 것이다. 이처럼 경옥고는 신이 복용한 명약으로 여겨졌다.

경옥고는 지황, 꿀, 인삼, 복령 등으로 만든다. 이 중 핵심은 지황이다. 지황을 1년만 길러도 땅이 마른다. 지황을 심은 땅은 거의 황무지로 변해서 10년이 지나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지황의 알짜는 속에 들어 있는 기름이다. 이 기름은 영양이 풍부해서 피, 뼈, 근육할 것 없이 몸에 좋다.

꿀은 오장을 매끄럽게 하는데 특별한 효능이 있다. 예를 들면, 질병이 들어서 허약해지면 대변이 굳어서 변비가 생긴다. 이 때 관장을 할 때 꿀을 이용한다. 꿀로 항문을 매끄럽게 해서 대변이 잘 나오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런 꿀은 지황과 더불어서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토종벌과 양봉의 꿀은 차이가 있다. 더위에 습도가 높아지면 벌집의 유충이 죽는다. 이것을 막고자 일벌이 날개를 떨어서 환기를 시킨다. 양봉은 머리를 벌집 밖에 내놓고, 꼬리를 벌집 안으로 넣어 날개를 떤다. 토종벌은 머리를 안에 꼬리를 밖으로 내놓고 날개를 떤다. 토종벌의 환기가 더 효과적이어서 꿀도 좋다. 이 토종꿀은 경옥고의 효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의 일종이다. 한의학에서는 이 복령이 음의 성질을 가진 것을 양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소나무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그것의 기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라기 때문이다. 경옥고에서는 지황, 꿀의 음의 성질을 양의 성질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인삼은 알려진 것과 같다. 햇빛, 바람을 싫어하는 인삼은 음의 기운을 갖는 차가운 체질의 사람과 궁합이 잘 맞는 양의 성질을 가진 식물이다. 이런 인삼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장기를 튼튼하게 돕는다. 지황, 꿀, 복룡에 인삼이 더해진 경옥고가 최고의 영약으로 꼽히는 것은 이런 각 약재의 특징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경옥고를 만드는 작업도 아주 정성스럽다. 먼저 지황을 꿀과 같이 끓여서 비단으로 걸러내고 인삼과 복령을 가루로 만들어 골고루 섞는다. 여기에다 각자의 노하우에 따라 침향, 맥문동 등의 약물을 넣는다. 뽕나무로 3주야를 끓이는데 물이 줄어들면 물을 보충해야 한다. 물을 보충하고자 잠들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어렵게 만든 약이니 만큼, 옛사람은 먹는 것도 까다로웠다. 먼저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고 한 회 한두 숟가락씩 따뜻한 술과 함께 복용했다. 술 대신 뜨거운 물에 끓여서 복용하기도 했는데, 소화가 힘든 이들이 특히 이런 방법을 애용했다. 경옥고를 복용할 때는 파, 마늘, 무, 식초 등을 꺼려야 효과가 커진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코 뻥 뚫리는 법 ~ 김연아의 '콧물'은 이제 그만!

기사입력 2010-03-03 오전 10:24:14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은 한국미의 극치다. 한국의 아름다움은 유려한 곡선이다. 박경리가 지적했듯이 버선의 코, 도자기의 곡선 등이 한국미의 결정이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후, 한국미의 DNA가 흐른다, 이렇게 언론에서 이구동성으로 논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후 그가 보여준 눈물은 국민 모두를 울렸다. 그 눈물은 한국미의 화룡정점이다.

여기서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눈물 대신 콧물에 주목하자. 김연아의 경기를 눈여겨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김연아는 항상 코를 풀고 경기를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기쁨의 눈물이야 같이 흘려야 마땅하지만, 콧물은 흐리지 않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뼈에는 공기가 차 있는 굴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굴은 코와 연결돼 있는데, 이것을 바로 부비동이라고 한다. (특히 축농증 등과 관계있는 부비동은 양쪽 위턱에 위치한 상악동이다.) 이런 부비동의 존재 이유를 놓고 여러 가지 설명이 있는데, 한의학에서는 이것이 뇌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뇌는 우리의 몸무게 중 4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산소 소비량의 4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당연히 쉽게 열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것을 부비동이 식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코가 막히면, 즉 부비동이 막히면 두통이 오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콧물로 부비동의 외부 환기 구멍이 막히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김연아가 무표정하게 아사다 마오를 비롯한 경쟁자의 경기를 지켜보다가, 코를 풀고 경기에 나오는 것도 최상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김연아의 코 풀기는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 김연아가 경기 전에 항상 코를 푸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우면 코의 온도를 유지하고자, 점막의 모세혈관으로 피가 모인다. 당연히 코의 점막이 부풀고, 그만큼 공기의 통로가 좁아진다. 이렇게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 공기는 더 따뜻하고 습해져서 폐 속으로 들어간다. 이 흡입된 공기는 폐에 도달했을 때는 36.5도로 체온과 비슷할 만큼 데워진다. 이 과정에서 코 점막의 점액 분비가 늘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콧물이다.

이렇게 콧물이 흐르는 것을 놓고서, 서양 의학은 코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전체적인 몸 상태를 염두에 두고 코의 상태를 살핀다. 예를 들면, 코에 맑은 콧물이 생기면서 막힐 때, 배에 핫팩을 올려놓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막힌 코가 뚫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한의학은 몸 전체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코 건강법을 제시한다. 김연아가 경기 전에 배에 핫팩을 안고 있거나 엉덩이에 핫팩을 깔고 앉았다면 코가 뻥 뚫려 굳이 경기하러 나갈 때 코를 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코가 막혀 있는 분들은 지금 당장 시도해 보시라!)

코가 계속 막히는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파 뿌리가 있다. 파는 잘 죽지 않는다. 바람과 햇빛에 말라도 흙이 닿으면 다시 자란다. 바로 이 파의 잘 살아나는 기운은 양기다. 파줄기 내부는 끈끈한 진액으로 내부의 양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빈 곳에 갇힌 양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한 상태이므로 파의 흰 뿌리는 양기를 대표한다.

파 뿌리는 코에서도 찬 기운을 밖으로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 대추 생강을 먼저 달인 후 마지막으로 파의 흰 뿌리를 2~3개 달여서 자주 음용하면 코가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민간에서 자주 사용되는 또 다른 약물은 목련 꽃봉오리다. 약재로 이용되는 것은 벌어지기 직전의 꽃봉오리다.

나물로는 방풍나물이 있다. 방풍은 글자처럼 바람을 막는다. 마치 병풍처럼 막아준다. 매운 맛으로 내부에서 외부로 기를 내보내 외부의 방어 능력(온도 조절 능력)을 단단히 하고 뒤에 나오는 단맛으로 다시 돌아와 위장을 보호해주는 묘한 속성이 있다. 봄에는 방풍나물로 코를 건강하게 하자.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소현세자 죽음의 진실 ~ 돌팔이 의사가 앗아간 <추노>의 꿈

기사입력 2010-03-17 오전 8:03:54

 

요즘 드라마 <추노>를 즐겨 본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낮은 사람들의 염원이 절절히 녹아 있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안타까운 일이 한 가지 있다. <추노>의 배경이 되는 인조 때야말로 조선이 살 마지막 기회였고, 그런 기회를 살리지 못한 데에는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추노>의 시대…조선이 '살' 결정적 순간?)

이런 소현세자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드라마 <추노>는 물론이고, <조선왕조실록>도 소현세자의 죽음이 독살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다. 먼저 인조 23년 6월 27일 기록부터 살펴보자.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다.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다. 검은 멱목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과 같았다."

소현세자의 진료를 맡았던 의관 이형익을 둘러싼 사정을 살피면 독살 의혹은 더욱더 깊어진다. 우선 소현세자 죽음과 깊이 연루된 것으로 여겨지는 인조의 후궁 조소용부터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의 6월 27일 기록을 보면 세자 내외가 인조의 후궁 조소용과 알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의 행희(후궁) 조소용이 세자와 세자빈과 사이가 좋지 않아 밤낮으로 왕 앞에서 세자를 헐뜯었다. 그는 세자 내외가 대역부도의 행위를 하면서 (왕을) 저주했다고 참소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또 다른 대목을 보면 조소용과 이형익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소용의 어미와 이형익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언급한다. 조소용의 어미를 통해서 조소용과 이형익이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이형익이 조소용의 어미 집에 치료를 위해 왕래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추잡한 소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형익은 누구인가? 이형익은 정식 의관이 아니다. 충청도 대흥 지역에서 활약한 침의인데 인조 11년에 임시로 채용되었다. 실록을 편찬한 사관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흥 땅에 이형익이란 자가 있어 약간 침법을 알아 사기를 다스린다고 세상 사람을 현혹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형익의 진찰 능력에 쇄기를 박는 결정적인 말도 있다.

"세자가 앓아 오던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아서 이형익에게 진맥을 받았다. 이형익은 '이 병은 사기이므로 침을 놓아야 한다', 이렇게 주장했다. 인조가 세자에게 침을 맞으라고 하자, 세자는 '이것은 감기인데 무슨 사질입니까' 하고 강하게 거절했다. (침을 맞지 않았는데도) 세자는 금방 나았다."

심지어 홍문관에서는 검증 결과까지 열거하며 이형익에게 치료를 받지 말 것을 주장했다.

"이형익은 스스로 괴이한 방법과 신통한 비결로 사람들에게 자랑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사대부 중에 그의 침술을 쓰는 자들이 효험을 본 사람은 없고 더러는 해가 따랐다."

심지어 침 자리를 잘못 잡는 일도 있었다. 인조 11년 10월 7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형익에게 번침 치료를 자주 받았는데 혈이 좌우에 차이가 있어 확인하였다."

소현세자의 병환은 학질에서 시작되었다. 인조 23년 4월 23일 어의 박군이 소현세자가 학질에 걸린 사실을 판정하였다. 4월 27일 기록에는 치료 2~3일 만에 세자가 죽고 말았다는 기록과 함께 이형익에 대한 질타가 잇따른다.

"의관 이형익이 사람됨이 망령되어 괴이하고 허망한 의술로 세자가 오한증(몸이 오슬오슬 춥고 떨리는 증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증세 판단 없이 침만 놓았으니 국문하소서."

소현세자가 걸린 학질은 무서운 병일까? 학질은 조선 시대에 아주 흔한 병으로, 학질을 앓고 나야 사람이 된다고 할 정도였다. 세간에서는 학질을 '하루 걸이' 병이라고도 불렀다. 하루 걸러 발열과 오한을 반복하는 삼일열 말라리아의 증세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이 삼일열 말라리아의 치사율은 소아를 제외하면 별로 높지 않았고 보통 자연 치유가 되었다.

이형익은 이 학질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도 정통 치료와는 다른 (잘못된!) 방법을 썼다. 오한증은 양기가 허약한 것으로 내부의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다. 이럴 때는 <동의보감>에도 약만 쓰고 침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이렇게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형익은 자신의 침술만을 내세우면서 원기를 훼손한 것이다.

이형익의 자랑하는 침 법은 번침술로 전해진다. 번침은 침을 불에 달구는 것으로 화침이라고도 불린다. 침을 불에 빨갛게 달군 후 잽싸게 시술한 부위에 꽂았다가 빨리 뽑아주는 치료 방법을 말한다. 이형익의 번침은 소현세자의 병을 치료하기는커녕 악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 인조 시대 망해가는 조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민초들의 꿈을 그린 드라마 <추노>. 드라마에서 말하는 대로 소현세자는 과연 독살당했을까? ⓒKBS

그렇다면, 이형익이 소현세자의 독살에도 관여했을까? 안타깝게도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만약 조선 시대에 어떻게 독살을 규명했는지 살펴보자. 조선시대 법의학 서적인 <증수무원록>을 보면, 독살의 검증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은비녀를 이용한다. 은비녀를 조각자라는 약물로 씻고 시체의 목구멍에 넣어 입을 밀봉하고 난 뒤 한참이 지난 후 꺼내 조각자로 다시 씻는다. 그 색깔이 푸르거나 검으면 독살로 판정한다.

둘째, 백반을 이용한다. 백반을 죽은 사람 목구멍에 넣고서 한두 시간 기다렸다가 백반을 넣어 밥을 삶은 뒤 닭에게 주면 닭이 죽어야 독살로 증명한다.

셋째, 찰수수밥을 이용한다. 쌀 석 되로 밥을 짓고 찰수수 한 되를 베 보자기에 담아 쌀밥 위에서 찐다. 달걀을 깨 흰자를 꺼내 찰수수밥에 버무려 쌀밥 위에 올려놓았다가 주먹밥을 만든다. 이것을 시신의 입, 귀, 코, 항문에 붙여 막고 끓인 초에 솜을 적셔 시신을 적시면 독기가 찰수수밥에 배어 나온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독약에는 무엇이 있을까. <증수무원록>에 기록된 독약은 고독, 과실, 금석독약, 서망초독, 비상, 야갈독이 있다. 세자가 7개 구멍에 피를 쏟으면서 죽는 증상을 나타내는 독약은 서망초다. 서망초는 목련과에 속한 협엽회향으로 양자강 중하류에서 자란다. 독성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고, 피부병에 개어서 붙이는 약물이다.

소현세자의 죽음 후에도 인조는 세자의 시신 상태를 몰랐던 것으로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인조 스스로 세자의 독살을 방조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조가 소현세자의 죽음 후 더 적극적으로 이형익을 비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형익이 인조 앞에서 거침없는 언행을 하는 바람에 신하들의 지적도 몇 차례 받는다.

특히 이형익은 은밀히 인조에게 말해 형제와 자식에게 모두 관직을 제수하는가 하면, 궁궐의 저주를 푼다고 인조에게 밤중에 뜸을 뜨는 해프닝을 벌인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면의 정치적인 맥락이야 알 수 없지만, 돌팔이의 폐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마저 앗아갔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출산과 유산 ~ 낙태, 왜 가장 중요한 일은 침묵하나?

기사입력 2010-03-26 오전 9:21:02

 

생명은 본래 평등하지 않은 것 같다. 태어나면서 출산이라는 환영을 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낙태를 통해서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차별 받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산부인과의 낙태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유산 이후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동의보감>도 당연히 유산을 거론하고 있다.

"해산은 밤이 다 익으면 밤송이가 저절로 벌어져서 밤송이나 밤톨이 아무런 손상도 없는 것과 같다. 유산은 아직 채 익지 않은 밤을 따서 그 밤송이를 비벼서 껍질을 손상시킨 뒤에 밤톨을 발라내는 것과 같다. 자궁이 손상되고 탯줄이 끊어진 뒤에 태아가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산했을 때는 열 배나 더 잘 조리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런 비유를 염두에 두면, <동의보감>에 나오는 옛사람의 난산 처방도 이해가 된다. 난산에는 '삼퇴산'이라는 처방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에는 뱀의 허물, 매미의 허물 등이 들어간다. 이 처방에는 뱀이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자궁에서 태아가 떨어져 나오도록 해 난산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동의보감>의 비유는 그럴 듯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하고, 그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것이 임신이다. 태아를 감싸는 태반과 자궁은 10개월 동안 영양과 노폐물을 주고받는다. 출산은 태반이 나오는 것으로 끝나는데, <동의보감>의 비유대로 밤톨이 발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동의보감>에는 유산 방법도 기재돼 있다. (만일을 위하여 처방은 적지 않고 의미만 적어 한의학의 접근 원리만 설명한다.) 대표적인 것은 누룩을 넣은 처방이다. 날 것으로 발효하는 것과 쪄서 발효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간장은 쪄서 익혀 발효한 것으로 원기를 도와 변한 것이 막힌 증상을 치료한다. 예를 들면 피부 상처나 종기 후에 세포가 재생되지 않을 때 사용한다.

누룩은 날것인 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뚜껑을 덮어 발효시킨 것이다. 이것은 원기를 돕는 작용보다는 스스로 변하게 하는 힘이 세다고 본다. 옛사람은 누룩이 변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누룩이 태아의 변화시켜 유산을 하게 한다고 본 것이다.

느릅나무 껍질도 있다. <재기(載記)>라는 고서는 느릅나무 껍질의 약효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흙탕 느릅나무에서 죽은 토끼를 찾았더니 흐물흐물하고 미끄러웠다." 태반도 흐믈흐물하게 하고 종기가 뜬뜬해진 것도 흐물흐물하게 연화시켜 치료하는 효능을 나타낸다는 원리다.

<동의보감>에는 우슬(牛膝)을 넣은 처방도 기록돼 있다. 우슬은 본래 무릎이 아픈데 쓰는 최고의 약이다. 이름 그대로 소 무릎처럼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하체는 살이 많고 혈액이 전신의 60퍼센트나 저장돼 있어서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에 해당한다. 무릎이 병들어 굳는 것은 물의 찬 기운이 너무 심해진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불의 기운을 이용해서 치료를 도모한다. 우슬은 하얀 즙이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쓴 맛 때문에 불의 기운도 포함된 것으로 간주된다. 태아는 자궁이라는 양수 속에서 기르는 생명의 불꽃으로 물속의 불이라 할 수 있다. 우슬로 불을 이끌어 아래로 향하면 생명의 불씨가 흘러내릴 것으로 보았다.

허준은 친절하다.<동의보감>은 부부 생활에서 삼가야 할 것도 상세히 적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고 번개와 벼락이 치는 날, 지진이 있는 날을 피하고 부부 관계를 피하라고 당부한다. 해, 달, 별, 불빛 아래나 사당, 절간, 우물, 부엌, 뒷간, 무덤 옆도 부부 관계를 해서는 안 될 곳이다. 이런 금기를 피하면 복덕이 있는 인물이 태어나 집안이 융성해진다고 한다.

유산은 당연히 자궁에 부담을 준다. 기구를 이용해 자궁 내부 점막을 긁어내는 것은 혈관의 손상을 불러온다. 자궁의 내막은 연약한 피부 점막이다. 내부 점막이 상처가 나면서 상처 후유증의 나쁜 혈액들이 정체되어 병적인 상태가 된다. 이것을 정의해 한방에서는 어혈이라 한다.

낙태를 둘러싼 논란에서 정작 여성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빠져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여성이 더욱더 건강한 삶을 누리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건강한 여성이 늘어난다면, 굳이 정부에서 낙태를 하느니, 마느니 보채지 않아도 출산율은 늘어날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다이어트 ~ 10㎏이 쏙! '검은 콩 다이어트'의 비밀은?

기사입력 2010-03-31 오전 9:01:21

 

갈수록 비만 환자가 늘어나는 탓에 다이어트가 시대의 화두이다. 얼마 전 한 방송국에서 '검은 콩 다이어트'가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설명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검은 콩으로 다이어트를 했더니 살이 10킬로그램 이상이 빠지는 효과를 보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검은 콩을 물에 몇 시간 담가 두면 붉은색 물이 우러난다. 여기에 묘한 이치가 있다. 한의학에서 검은색은 신장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불(火)을 상징한다. 물속의 불(水中火), 이것은 신장 안에서 양기를 간직한 '명문'을 가리킨다. 명문 혹 단전은 한의학에 문외한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좀 자세히 살펴보자.

신장은 본래 가장 음의 성질을 띠는 기관이다. 그러나 이 신장이 균형을 잃고 음의 기운을 너무 많이 띄면 신진대사에 큰 문제가 생긴다. 소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설사, 불임, 정력 감퇴, 무릎 시림 등의 병이 생긴다. 이렇게 신장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보일러처럼 양의 기운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명문, 단전이다.

한양방의 통합을 꾀했던 조헌영은 이 명문을 부신이라고 보았다.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코티졸은 인체의 가장 뜨거운 보일러다. 인체는 에너지를 만들고자 당을 사용한다. 그런데 몸에 당이 적을 때는 몸속에 저축해 있던 지방을 당으로 전환해서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 때 코티졸과 같은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부신의 기능이 떨어지면 몸속에 저장된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지 못하고, 저혈당 상태가 지속돼 식욕을 증가해 비만으로 이끈다. 물속의 불, 검은 콩은 바로 부신, 즉 명문의 기능을 북돋아 몸의 혈당이 균형 상태를 가지도록 도와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이어트를 돕는다.

▲ 검은 콩, 마황 등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것은 한의학에서 '명문'이라고 부르는 부신의 기능을 돕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자료)
검은 콩은 남녀를 막론하고 이른바 '물살' 때문에 속을 썩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런 물살은 대부분의 여성과 일부 남성에게서 발견되는데, 대개 생활습관이 비슷하다. 이들은 우선 운동량이 적고, 음료수를 많이 섭취한다. 이런 생활습관은 몸을 차갑게 하고, 에너지 소비가 적어져 비만을 촉진한다. 검은 콩은 몸을 데우는 역할을 해서 비만을 막는다.

검은 콩뿐만 아니라 마황도 부신을 자극해서 신진대사를 도와 살을 뺀다. 그러나 마황의 효과는 폭발적이어서, 그만큼 위험하다. 미국 등에서 마황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황은 푸른색으로, 눈이 와도 그 위에는 쌓이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기운을 품고 있다. 마황을 많이 사용하는 처방은 소청룡탕이다. 마황의 푸른색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그렇다면, 마황이 이렇게 부신 자극 효과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한의학에서는 마황 열매가 가운데가 검고 결이 붉다는 데서 출발한다. 마황의 열매도 '수중화'로 명문의 기능을 돕는다는 것이다. 인체 내부에서 마황은 진액, 혈액을 끓게 해 결과적으로 살을 빼는 부수적 효과를 낳는다. 마황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황을 사용할 때는 섬세한 진단이 필요하다. 나는 가끔 마황을 알러지성 비염 치료에 사용한다. 이 때문에 환자에게 체중을 물어본다. 표준 체중에 미달되는 환자에게는 사용에 신중을 기한다. 또 피부를 만져보기도 하는데, 피부가 두껍고 탄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지 않은 사람은 한 첩만 먹고도 꼬박 밤을 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얕은 잠을 자는 사람에게도 마황의 사용을 주의해야한다.

배를 만지는 복진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뱃가죽이 얇거나 딱딱한 사람은 내부 기관의 혈액량이 부족할 때가 많으므로 마황의 부작용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월경이 곤란한 여성도 마찬가지다. 마황을 복용하면 자궁으로 흘러들어가는 혈액의 양이 줄어들어서, 월경 장애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고혈압 환자가 마황을 복용하면, 수축압의 상승이 이완기 혈압보다 높아져 증상 악화의 우려가 높다. 고혈압 약과 마황을 함께 사용한 경우에는 심장 박동에 분란을 유발할 수 있다. 갑상성 기능 항진증 환자도 조심해야 한다. 이 환자는 가만히 있어도 운동한 것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데, 여기에 마황을 더하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위장이 허약한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위장이 허약한 사람은 대부분 침이 잘 나오지 않고 입안이 깔깔한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위장의 점액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마황은 인체의 땀을 냄으로써 수분을 말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위장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도 마황에서 추출한 에페드린이 함유된 천식 약을 복용하는 이들도, 마황을 섭취하면 동일 성분을 과다 섭취할 우려가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카테콜아민제처럼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을 마황과 복용하면 더욱더 흥분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복용을 같이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마황을 쓰는 것은 마황만큼 훌륭한 효과를 내는 약을 발견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약에 의존하는 다이어트는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다. 부신 즉 명문의 기능을 서서히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다이어트 비법이다. 식욕이 당기고, 살이 찐다면 부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게 먼저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냉이와 녹내장 ~ <동이>의 숙종, 결국 눈이 먼 사연은?

기사입력 2010-04-07 오전 8:14:39

 

드라마 <동이>에서 숙종은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나온다. 그 카리스마를 유지하려는 고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스트레스는 당연히 화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숙종실록>을 보면, 1704년(숙종 30년) 12월 11일 이렇게 숙종은 이렇게 자신의 화병을 설명한다.

"나의 화증이 뿌리 내린 지 이미 오래고 나이도 쇠해 날이 갈수록 깊은 고질이 되어 간다. 무릇 사람의 일시적 질환은 고치기 쉽지만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것은 화증이다. (…)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면 화염이 위로 올라 비록 한겨울이라도 손에서 부채를 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 화병을 달고 살았던 숙종은 눈병으로도 고생했다. 1717년(숙종 43년)에는 글을 보기 어려워 장지에 간략하게 보고하도록 하였으며, 왕세자의 결혼식 후 인사를 왔을 때는 왕세자빈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어 "내가 눈병이 이와 같으니 왕세자빈의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구나" 이렇게 탄식했다.

한의학의 시각에 보면, 눈은 본래 불의 통로다. 사물을 포착하는 시력은 모두 불의 작용에 의한 것이며, 두 눈은 불이 들락거리는 통로다. 화병은 이런 불의 통로인 눈에 불의 기운을 더해서 균형을 깨뜨린다. 그 결과 눈의 신경을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시력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 드라마 <동이>의 숙종은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 크리스마를 유지하고자 숙종은 평생을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 스트레스는 결국 시력을 앗아갔다. ⓒMBC
시력이 떨어지는 숙종을 위해서 내의원에서 사용한 약물은 공청(空靑)이다.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귀한 약물이다. 공청의 약리 작용은 이렇다.

"간에 화가 있으면 피가 뜨겁고 기가 위로 치솟아 오르므로 혈맥이 통하지 않게 된다. 간의 열을 내리면 오장이 안정되어 눈의 여러 가지 증상이 회복되는데 공청의 찬 맛은 쌓인 열을 없애준다."

옛날부터 눈이 나쁘면 소간을 먹는 것처럼 간과 눈은 서로 이어진다. 공청은 <신농본초경>에 청맹과니를 치료한다고 기록한다. 청맹과니는 현대적으로 말하면 녹내장의 증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실제로 녹내장에 공청은 큰 효과가 없다. 숙종도 공청을 써서 효과를 본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바로 봄철에 가장 흔한 냉이야말로 답이다.

냉이는 음력 8월 중추에 싹을 틔운다. 가을은 여름 내내 왕성하게 흐르던 물도 마르고, 풀과 나무도 물기를 버리며 시들어 간다. 시들고 죽어가는 곳에서 씨앗을 틔우는 냉이는 가장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생기가 강한 식물로 여겨졌던 냉이는 간의 기운(생기)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시각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고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다.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산에 매달리는데 날마다 낮이 되면 독수리가 날아와서 간을 쪼아 먹는 고통을 당한다. 신기하게도 밤이 되면 간은 다시 재생된다. 그래서 간의 이름은 영어로도 'liver'이다.

냉이의 이름인 석명자(菥蓂子)는 냉이의 효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석'은 나무를 깨서 나눈다는 뜻이고, '명'은 어둡다는 뜻이다. 눈이 캄캄하고 어두운 것을 깨어서 없앤다는 의미이니, 냉이가 눈 질환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냉이 씨의 효능은 좀 더 구체적이다. <동의보감>은 "사물을 볼 수 없는 질환을 치료한다"고 기록한다.

눈 속 수정체와 각막 사이에도 눈물인 방수가 흐른다. 방수는 혈액에서 걸러져 나온 것인데, 이 액체의 흐름이 나빠지면 눈의 압력이 높아져서 시신경에 손상을 준다. 안구 속에 고이면서 눈 속의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시세포가 눌려 장애를 일으키고 시력이 저하된다. 또 각막이 부어오르고 안개가 낀 것처럼 눈이 흐려지면서 눈이나 머리까지 아파진다. 냉이는 방수를 배출하는 작용이 있어서 이런 녹내장에 효과적이다.

50세 이상에서 안내압이 높은 사람은 약 3퍼센트다. 실제로 높은 안압으로 발생하는 녹내장은 50세 이상의 여성에 많다. 갑자기 안압이 높아지면 망막의 혈관이 파괴되기 때문에 눈이 충혈된다. 이런 녹내장에도 냉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현대 실용중의약>을 보면, 냉이는 "지혈, 자궁 출혈, 유산 출혈, 월경 과다, 두통, 안통, 망막 출혈 치료"에 효과가 있다.

냉이를 '호생(護生)초'라고도 부른다. 냉이를 이불 밑에 두면 벼룩이 사라지고 마루 밑에 넣으면 좀이 슬지 않는다. 또 냉이의 줄기를 호롱불의 심지로 쓰면 나방이나 발벌레가 덤벼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살생을 금하는 불가의 입장에서 냉이의 줄기로 호롱불의 심지를 돋았다.

냉이는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갖고 있어서 자라는 곳이 다양하고 종류도 많다. 습기가 없는 곳에는 다닥냉이가 자라는데 강심 작용이 커서 호흡 곤란에 쓴다. 산속 냇가에는 구슬 갓냉이가 자라는데 기침과 기관지염에 사용한다. 들판에 자라는 것은 말냉이인데 자궁 내막염으로 오는 냉대하에 쓴다.

동네 어귀 냇가에 많은 것은 큰황새냉이인데 녹내장이나 눈을 밝히는데 사용한다. 눈에 효험이 큰 석명자의 석은 큰황새냉이를 말한다. 냉이의 싹, 잎은 뿌리와 더불어 이른 봄을 장식하는 나물이다. 냉이국은 뿌리도 함께 넣어야 참맛이 난다. 또 냉이를 데워서 우려낸 것을 잘게 썰어 나물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굼벵이의 비밀 ~ "굼벵이 더럽다 욕하지 마라, 너는…"

기사입력 2010-04-14 오전 9:04:55

 

동작이 굼뜨고 느린 사람을 흔히 '굼벵이'라고 부른다. 굼벵이는 매미, 풍뎅이, 하늘소와 같은 딱정벌레목의 애벌레를 통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매미의 애벌레를 일컫는다. 매미는 고작 2~3주를 산다. 이런 매미가 굼벵이로 사는 기간은 3년에서 17년이나 된다. 굼벵이로 생의 대부분을 사는 것이다.

굼벵이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농촌에서 가축의 똥오줌, 볏짚을 섞어서 만드는 두엄이다. 이 두엄을 계속 쌓아두면 퇴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봄에는 보통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그 밑을 보면 아주 많은 굼벵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굼벵이는 가장 더러운 곳에서 맑은 기운을 축적해 매미가 된다.

실제로 굼벵이의 배를 갈라 보면 볏짚이 들어 있다. 두엄과 같은 더러운 곳에서 살면서 온갖 지저분한 것을 섭취하지만, 그것을 몸속에서 깨끗하게 소화를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더러운 것을 깨끗한 것으로 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 흥미롭게도 굼벵이의 이런 성질은 약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추에서 미를 이끌어내는 대표적인 식물은 연꽃이 있다. 이런 연꽃에서 나온 연자육은 당뇨의 치료에 사용하는 청심연자음의 재료로 사용된다. 연꽃과 아주 흡사한 굼벵이도 유용한 약재로 쓰인다. 그러나 그간 굼벵이는 흉한 외모 탓에 약재로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대신 민간에서 입소문으로만 이러쿵저러쿵 여러 가지 처방으로 남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의학에서 굼벵이의 약효를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예전부터 그 약효는 잘 알려져 있었다. <명의별록>을 보면, 굼벵이의 눈병 치료 효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굼벵이는 맛이 짜고, 기는 차고, 독이 있다. (…) 눈 속에서 자라는 막이나, 청예, 백막을 치료한다."

굼벵이의 약효를 기록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본경소증>에도 비슷하게 굼벵이의 약효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굼벵이는 나쁜 피가 기를 막아 기운이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에 적합한 약이다. 양쪽 눈이 어두워지며 피가 마르는 증상에 쓴다."

굼벵이는 기본적으로 간의 기능을 북돋는다. 예로부터 간염, 간경화 등에 굼벵이를 사용했다. 이것도 더러운 것에서 깨끗한 것을 낳는 굼벵이의 모습에서 연상할 수 있는 기능이다. 간이야 말로 몸 안의 온갖 독소를 해독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굼벵이도 연꽃처럼 당뇨에 효과가 있다. 특히 당뇨 때문에 발생하는 눈병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당뇨가 생기면 혈당이 높아지면서 당 성분이 혈관 벽에 잔류한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눈과 같은 모세혈관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기존의 혈관은 막히고,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경향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눈의 수정체에 문제가 생기면 시력이 저하된다.

굼벵이는 기본적으로 간의 기능을 북돋기 때문에 혈당 조절에 도움을 준다. 이런 효과가 결과적으로 당뇨로 인한 눈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굼벵이는 간 질환으로 생기는 각막 이상을 치료하는 데도 쓰이며, 눈물이 마르는 질환에도 효과를 나타내곤 한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굼벵이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사실 굼벵이처럼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채근담>이 이렇게 굼벵이를 찬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굼벵이 더럽다 욕 하지 마라!"

굼벵이는 더럽지만
매미로 변하여 가을 바람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반딧불로 변해서 여름밤을 빛낸다.
깨끗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항상 어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갑상선과 곤포 ~ 여성 덮치는 갑상선암이 무섭다면…

기사입력 2010-04-21 오전 8:15:12

 

40대 초반의 남성인 안희용(가명) 씨는 얼마 전 종합병원에서 5년 만에 건강 검진을 받은 결과, 갑상선에 작은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작은 종양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갑상선암이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안 씨는 앞으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갑상선 질환은 스트레스가 중요한 원인이다. 갑상선은 감정에 반응해 쉽게 붓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서는 신혼 생활을 하는 새색시의 목 굵기를 재어 신혼의 만족도를 확인하는 풍습이 있었다. 감정에 반응하는 갑상선의 특징을 헤아린 옛사람의 지혜였다.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갑상선 질환의 원인을 어디서 찾았을까? 우리는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더라도, 얼굴까지 싸매는 경우는 드물다. 얼굴이 몸과 비교했을 때 열이 많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얼굴에 양의 성질을 가진 기가 집중된 것으로 여긴다. 특히 갑상선은 열을 만드는, 즉 기를 만드는 기관으로 여겼다.

옛사람은 이런 갑상선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이곳에 생기는 종양을 양의 성질을 가진 기가 응결된 것으로 보았다. 기름이 식으면 굳듯이 기가 응결된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갑상선 종양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긴다. 특히 해조류에 주로 포함된 요오드 섭취가 부족한 지역에서 갑상선 종양의 빈도가 높다.

실제로 요오드가 부족하면 갑상선 호르몬 합성이 저하돼 갑성선 기능 저하증이 생기고, 종양의 빈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오드를 직접 섭취하는 것은 자칫 과잉 섭취로 이어져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바로 이 때 섭취해야 할 것이 바로 해조류 중에서도 곤포이다.

해조류에는 미역, 다시마, 모자반(듬북) 등이 속하는데, 곤포는 모자반의 하나다. 곤포는 해곤포, 윤포(綸布), 해대(海帶)로도 불린다. 곤포는 미역, 다시마처럼 띠 모양으로 생겼으며, 물살이 약한 바다에서 자란다. 동해에 널리 분포돼 있는 이 곤포는 주로 갑상선 질환에 사용한다.

▲ 곤포. ⓒ프레시안
곤포로 약재로 사용한 것은 역사가 깊다. 나름의 귀한 특산품이다. <경사증류대관본초>에는 "신라의 깊은 바다에서 채취한 곤포는 스트레스로 생긴 영류(종양)를 치료한다"고 적고 있다. 고려의 풍속을 기록한 <고려도경>도 "고려에서는 해조, 곤포 등을 귀천 없이 즐겨 먹는다"라는 언급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곤포는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 기록돼 있다.

곤포를 비롯한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에는 요오드가 많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해조류를 통해서 요오드를 섭취하면, 몸이 필요한 양의 요오드만 취한 후 나머지는 배설되기 때문에 요오드 과잉 섭취의 위험이 없다. 북한 자료를 보면, 곤포 600그램을 자루에 담아서 맑은 술 3리터에 담갔다가, 걸러서 한 번에 20~40밀리리터씩 세 번 먹으면 효과를 본다.

실제로 필자의 고향에서는 곤포를 반찬으로 많이 먹는다. 여름이 되면 채를 썰어서 갖은 양념에 무쳐 먹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한다. 곤포에 밀가루를 묻혀 밥 위에 얹어 쪄 먹으면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이렇게 곤포를 먹는 방법은 요오드 섭취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좋다.

다이어트에 목매는 이들이 보면 솔깃한 대목이 <동의보감>에 있다. "곤포는 기를 내리기 때문에 오랫동안 먹으면 살이 빠진다. 나물을 무쳐서 늘 먹는 것이 좋다."

이밖에도 북한 자료를 보면, 곤포는 뼈의 성장 발육을 촉진시킨다. 갑상선 호르몬이 기초 대사, 성장을 조절하는데 관여하므로 이런 효과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흰쥐 마흔여덟 마리를 실험군, 대조군으로 나누고 나서 실험을 해봤더니, 곤포를 먹인 쥐는 20퍼센트 이상 칼슘이 늘어나 뼈의 성장 발육 및 골화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참고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갑상선 질환에는 종양 외에도 기능 이상이 있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면 더위를 타고, 체중이 감소한다. 이런 질환을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고 한다. 이런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는 하고초가 사용된다. 이 풀은 여름에 꽃이 피고 나서 곧 죽는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걸린 환자는 가만히 있어도 오뉴월 뙤약볕에 서 있는 것처럼 땀이 나고 열이 난다. 이런 환자에게 하지가 되면 바로 마르기 시작하는 하고초가 도움이 되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다. 여러 환자에게 적용한 결과, 하고초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 뿐만 아니라 고혈압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집에서 하고초를 사용할 때는 차로 먹는 것이 좋다. 아홉 번 찌고 말리는데, 술에 담궈서 찌는 것이 약효를 가장 잃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지인 중에 갑상선 질환으로 고생하는 팔순의 노모에게 하고초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증세가 아주 호전되어 효도를 했다고, 좋아한 적이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며 소먹이 풀 베러 다닐 때 보라색 꿀풀에서 달작 지근한 꿀물을 빨아 먹곤 하였는데 이게 바로 하고초다. 지천으로 있던 것들이 귀해져서 국산을 보기 힘들다. 위에서 언급한 곤포도 이제 생산량이 줄어서인지 다시마로 대용하여 어머니가 반찬으로 내놓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자율신경부조증과 이명 ~ 우아한 골드미스 덮치는 '매미 소리', 원인은…

기사입력 2010-04-28 오전 9:27:43

 

오전 진료를 마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대부분 여성 환자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이명 환자는 갱년기 환자나 이른바 '골드미스'가 많다. 왜 이런 여성이 많을까? 이명 질병의 배후에 몸속 곳곳에 자리 잡은 자율신경의 조화가 깨지는 자율신경부조증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자율신경의 중추는 뇌의 시상하부에 있다. 이곳을 둘러싸고 식욕중추, 체온중추, 수분대사 중추가 모여 있는데, 이곳이 문제가 생기면 여러 가지 장애가 나타난다. 특히 호르몬의 분비가 시상하부에 영향을 준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생리, 임신, 출산 등 생식 기능에 따라서 그 분비량이 달라지는데, 바로 이 에스트로겐이 자율신경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보통 20대는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높아지고, 갱년기에는 이것의 분비가 떨어진다. 그러나 골드미스는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호르몬 조절의 균형이 깨지기 십상이다. 일정하지 않은 여성호르몬의 분비량이 자율신경에 영향을 미치면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추웠다 더웠다 하며, 가슴이 답답하고, 불면증이 찾아온다.

이외에도 자율신경을 자극하는 일은 몇 가지 더 있다. 분만 후의 자율신경부조증이다. 습관성 유산, 중절이 이 병을 불러오기도 하고, 육아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출산을 했다는 허탈감, 산후에 수유 등으로 체력이 떨어지면서 오는 경우도 많다. 난소를 절제하거나 기능이 소실되는 경우도 상실감으로 인해 심하게 자율신경부조증이나 이에 따른 이명이 나타난다.

자율신경은 전신의 장기. 기관에 구석구석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도 다양하다. 크게 전신 증상과 국소 증상으로 나뉘는데 전신 증상으로는 불면, 피로, 식욕 부진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에 더해서, 초조, 불안, 우울한 감정이 나타난다.

국소 증상은 말 그대로 온몸에서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눈의 피로, 통증, 목이 막히는 느낌이나 그와 유사한 불쾌감, 두통, 어깨 결림, 목 부위의 강직이 나타난다. 심장, 폐, 혈관에서는 과호흡, 흉부 압박감, 현기증, 저림, 상기증이 생긴다. 위장에서는 구역질과 위통, 변비, 설사가 생기고 방광에서는 소변이 자주 마렵다든지 배뇨 때 불쾌감이 나타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일찌감치 이런 질병의 특징을 기록했다. <동의보감>을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옛날에도 일종의 골드미스와 유사한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사별하고 혼자 사는 여성이었다. 오늘날 골드미스가 한의원을 찾는 증상과 놀랍도록 흡사해서 나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은 '억울(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생기는데 잠깐 열이 났다 추웠다 하고 얼굴이 붉으며 가슴이 답답하다. 혹 때로 절로 땀이 나기도 한다. 홀아비나 과부가 남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가슴이 아프고 땀이 나며 볼이 붉으면 연잎을 쓴다. 연잎을 잘 짓이겨 물에 걸러서 찌꺼기를 버리고 먹으면 곧 낫는다."
 
한의학에서는 태극기에서 붉은 부분과 푸른 부분처럼 정신과 육체가 서로에게 안겨 있다고 보고 정신은 양, 육체는 음이라고 규정했다. 한의학의 일차적인 치료 목표는 바로 이 음양의 조절에 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의학은 오랫동안 정신과 육체 사이에 어떤 통로가 있을지를 탐구했다. (이것은 서양 철학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神)'이다. <동의보감>은 신(神)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神)은 음과 양에 모두 통하고 있으면서 섬세한 것까지 살피며 문란한 것이 없다."

이 '신'을 현대 의학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면 자율신경의 기능에 해당한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 자율신경이 있어서 육체의 피로와 고통을 정신에 전가하고, 정신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육체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 자율신경의 조화가 깨지는 것이야말로 바로 정신과 육체의 조화가 깨지는 것이다.

자율신경은 생명을 유지하는 자동 제어 장치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둘로 나눈다. 심장이나 위장의 작용, 땀을 내는 한선, 내장이나 혈관의 수축, 확장 또는 호르몬 분비 등 생명의 유지와 관련되는 모든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교감신경은 양의 성질을, 부교감신경은 음의 성질을 가졌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예를 들면 교감신경이 긴장하면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고, 부교감신경이 긴장되면 반대로 심장의 고동은 느려진다. 놀라거나 분노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교감신경이 긴장 상태에 놓인 것이며, 안정되면 부교감신경의 작용이 커져 박동도 평상시로 돌아간다. 이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면 몸에 이상이 온다. 특히 교감신경이 문제다.

교감신경의 불균형은 싸울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싸울 때는 긴장한다. 말초혈관도 긴장하여 수축하고 몸에 있는 털이 서며, 말초에 있던 혈액은 심장으로 집중되어 펌프질이 힘들 정도가 돼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긴장하면 당연히 밥맛이 없어지고 대변을 보는 것도 힘들어진다. 싸우면서 잠들기는 더욱 어렵다(불면증).

뇌로 올라가는 혈류량도 줄면서 뒷목의 근육이 긴장하고 어지럽거나 이명이 생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 열 개라도 버텨내기 힘들어지며 피로가 덮치고 심하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면 이렇게 무섭게 인체에 부담을 떠안기며 붙특정 다수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교감신경의 발동은 스트레스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므로 두통이나 어깨 강직, 경련, 현기증, 손발이 저리거나 복통, 변비, 설사 등이 차차 엄습해 와서 병의 정확한 원인이 헷갈릴 정도다. 자율신경부조증에 걸린 사람의 빈도를 보면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특히 부수적으로 나타난 이명 증상은 치료도 어렵고 까다롭다.

이명과 현기증을 호소하는 경우는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 치료한다. 본태성인 경우는 허약체질이나 저혈압에서 잘 생기는데, 스트레스보다는 자율신경 기능의 허약이 문제가 된다. 신경증형의 경우는 노이로제 형으로 신경과민으로 자신의 몸 상태에 매우 민감한 경우다. 심신증형은 노력하고 근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서 생긴다. 우울형은 만성적으로 오래되어 체력이 고갈되어 생기는 것이다.

한의학적 치료법은 정기신의 보강에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 인체는 정기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과 기가 충분하면 신(신경)은 안정된다. 정과 기가 부족해지면 신이 불안정해지며 의식이 탁해진다. 또 몸의 각 기관이 위의 설명처럼 온갖 이상을 일으킨다. 정이 더 약해지면 신이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해 이상하게 행동하게 되는 결과로도 나타난다.

치료에는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승양산화법은 화산처럼 속에 있는 화를 들어 올려 날리는 방법이고, 청열법은 열을 식히는 방법이다. 자음강화법은 여름에 찬물을 먹으면 시원해지는 것처럼 찬 약을 넣어서 화를 내리는 방법이며, 허약해서 생기는 열은 보하여 열을 내린다. 마지막 방법은 소통이다. 관장처럼 아래를 뚫어서 전체의 열을 내리는 방법이다.

옛 사람의 지혜는 자율신경부조증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병의 다양한 치료법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문제적 인간' 영조 ~ <동이>는 진짜 숙종의 아이를 낳았을까?

기사입력 2010-05-05 오전 9:23:20

 

조선 시대 여러 왕 중에서 가장 '문제적 인간'은 누구일까? 나는 영조를 꼽고 싶다. 무수리 출신의 아들로 신분 콤플렉스에 맞서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며 평상심을 유지해 여든세 살까지 천수를 누린 인물. 당쟁의 폐해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그것을 극복할 탕평책을 제시한 인물.

몇 가지만 열거해도 영조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삶을 살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을 형인 경종의 살해범으로 규정한 '임인옥안'을 작성한 소론 세력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부분이다. 그가 만약 소론 세력을 척살했다면, 탕평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으리라.

어머니 숙빈 최 씨가 무수리 출신이다 보니 영조의 출생을 놓고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는 진짜 숙종의 아들이었을까? 아니면, 최숙빈과 유난히 가까웠던 김춘택이 진짜 아비는 아닐까? 많은 야사는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큰 근거는 영조의 외모가 숙종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 <동이>의 최숙빈이 낳은 영조는 숙종의 진짜 아이가 맞을까? ⓒ프레시안
실제로 영조는 특별했다. 그는 아버지 숙종, 형 경종은 물론이고 아들 사도세자, 손자 정조와 성격이 전혀 달랐다. 또 그는 여든세 살까지 살아 조선 시대 왕 중에서 가장 장수했다. 비교적 단명하는 왕이 많았던 것을 염두에 두면 이 역시 특별한 일이었다. 체질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흥미롭다.

몇 차례 살펴봤듯이 조선 시대의 왕이 불같은 성질을 이기지 못해 화병을 앓았고, 심지어 화병의 결과인 종기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부터가 그랬다. <조선왕조실록>은 숙종14년(1688년) 7월 16일 숙종의 건강 상태를 이렇게 전한다. 전형적인 화병 증세다.

"이 때에 왕의 노여움이 폭발하고 점차로 번뇌가 심해져, 입에는 꾸짖는 말이 끊이지 않았고, 밤이면 또 잠들지 못하다, 마음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번뇌가 심했다."

숙종이 평생을 두고 호소한 질병은 산증이다. 산증은 아랫배에 병이 생겨서 배가 아프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은 증상이다. <동의보감>은 이 병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형적인 화병의 증상이다.

"대체로 성을 몹시 내면 간에서 화(火)가 생긴다. 화가 몰린 지 오래되면 내부가 습기로 차가워지며 통증이 심해진다."

숙종의 장남 경종도 아버지의 체질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경종2년(1722년)에 이런 기록이 있다. 그 역시 화병을 앓은 것이다.

"왕이 도승지의 공사를 읽다가 화열이 오르고 심기가 폭발하였다."

더구나 영조는 화병을 앓는 이들에게 상극인-영조의 손자 정조가 화병을 앓다 인삼 처방을 잘못 받아 죽은 것을 보라-인삼이 든 처방을 가장 애용했다. 그가 노년에 10년 동안 복용한 인삼이 100근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영조 41년(1765년)의 기록을 보면, 매일 8.8돈(30그램)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인삼을 복용했다.

영조가 다른 왕보다 스트레스를 덜 앓았던 것도 아니다. 이복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평생 안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도 엄청났으리라.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죄책감은 또 어떤가. 평범한 인간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평생 시달렸다.

그렇다면, 영조는 정말로 이 씨 자손이 아닌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가계도를 분석하면 영조의 손자였던 정조는 숙종, 경종 등 전대 왕과 똑같은 체질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세자도 마찬가지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불러서 왜 사람을 죽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마음에 화증이 나면 견디지 못해 사람을 죽이거나 닭 같은 짐승이라도 죽여야 마음이 풀어지기에 그랬습니다."

손자인 정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화를 내리는 가미소요산, 우황, 금은화를 밥 먹듯이 먹었다. 또 화기가 많아서 소량의 인삼도 극도로 경계해 복용하지 않았다. 그가 죽는 순간까지 인삼을 기피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인삼이 결국 그의 생명을 꺾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영조는 숙종과 최숙빈 중에서 어머니의 체질이 도드라진 이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영조의 체질은 소음인으로 짐작되는데, 그 이유는 평생에 걸친 그의 식습관이다. 그는 소식은 기본이고, 기름진 음식과 술을 피하는 절제된 식습관을 평생 고수했다. 소화 기능이 약한 소음인 체질 때문에 자기한테 맞춤한 식습관을 실천한 것이다.

영조는 숙종과 동이라는 남다른 재주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행운아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건강 체질을 물려 받는 또 다른 행운을 누렸다. 이런 행운이 겹치면서 그는 왕으로서는 드물게 자기 절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조선의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물론 그 르네상스는 손자 정조 때 꽃 피자마자 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어린이의 심인성 난청 ~ 어린이의 복수…"우리 애 귀에서 매미가 산대요!"

기사입력 2010-05-12 오전 9:01:49

 

어린이들이 난청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7세의 김현욱(가명) 군은 갑작스런 청력 장애로 내원했다. 여러 가지 질문 끝에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애를 너무 야단치지는 않았어요?" 곧바로 답이 왔다. "아이가 장남이어서 작은 잘못에도 엄하게 꾸중하고 간섭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원인이 짐작됐다. 아버지의 꾸중을 거부하는 현욱이의 뇌의 지향성이 청력 장애를 유발한 것. 귀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 데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회피하고 싶을 정도로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바로 이 때 귀가 들리지 않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청력 장애 증상을 흔히 '심인성 난청'이라고 한다.

대개 사람들은 청각 장애보다 시각 장애를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각만큼이나 청각은 훨씬 더 중요하다. 청각은 물고기의 측선계와 비슷하다는 것이 진화론적 입장이다. 측선계는 물의 파동 자극을 통해 몸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인데, 청각이 바로 이런 기능과 흡사한 것이다.

청력이 손상되면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손상을 우리 몸에 미친다. 청력을 잃은 사람이 대체로 집중력이 떨어진 듯한 표정인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린이의 심인성 난청과 같은 청각 장애가 심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청각 장애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더욱더 그렇다.

한국 사회의 조기 교육을 둘러싼 광풍은 어린이의 신체에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공부를 독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부를 못하면 끝장이라는 수준의 경고가 어린이에게는 부모에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어린이의 심인성 난청과 같은 청각 장애로 이어진 것이다.

더구나 어린이는 문제를 명확히 해서 언어화하는 능력이 미숙하다.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을 어린이는 신체를 통해서 표현한다. 어른도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욕 감퇴, 불면 증상 등이 오는 것처럼 어린이는 훨씬 더 극적인 방식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청각 장애는 그 한 예다.

청각은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반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에 따라 반응하는 양식에도 차이가 있으며 당연히 치료도 달라진다. 나는 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고 타인의 생각을 우선하는 타인 우선군이다. 어릴 때부터 손이 가지 않는 착한 아이로 반항기가 없는 경우다. 자기 주장보다는 부모의 뜻대로 자라온 아이로 아이다운 생생함이나 역동성이 없고 틀에 짜인 학원 생활에 과적응한다. 단체 생활의 피로감, 친구 관계의 어려움이 많으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지 않다. 이런 유형은 난청과 같은 청각 장애의 자각률도 낮다.

둘째. 자기를 우선시하는 자기 우선군이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거나 알아차리기 힘들어 문제 행동으로 가기 쉽다. 주의 집중 곤란, 과잉 행동, 부주의 등을 보이며 야뇨, 몽유병, 경기, 불면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비판적 언어를 무시하기 위해 타인의 말을 차단하는 심리적 경향에서 이런 증상이 오는 것이다.

셋째, 열등한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욕구를 신체가 대변하는 갈등군이다. 양친의 이혼이나 부모의 사망률이 높고 부부관계가 나쁘면서 경제적인 기반이 약한 경우다.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심리적 문제를 신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나이가 들수록 히스테리 성향이 심해지고 난청의 정도도 높아진다.

한의학에서 어린이는 봄으로 상징되며 나무와 같다. 나무는 곡직(曲直)한다. 좌우로 구불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좌와 우로 굽는 것은 자기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기다려야 한다. 좋든 나쁘든 자기 나름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지 아버지나 어머니의 세계와 같은 세계는 없다. 조화는 하지만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和而不同).

심지어 사법시험을 합격한 분이 판, 검사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어머니한테 물어보고" 이렇게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난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아동복지센터의 조사를 보면, 한국 어린이 청소년이 삶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54퍼센트로, 선진국의 85퍼센트와 큰 차이를 보였다. 어린이 난청 환자를 보는 마음이 무겁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오래된 지혜 ~ 수천 년의 비밀…'반야바라밀'의 진실은?

기사입력 2010-05-26 오전 8:30:33

 

사람들이 수천 년 전에 태동한 부처, 예수에게 여전히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지혜'에서 답을 찾고 싶다. 부처의 가르침이든, 예수의 가르침이든 그 안에는 인간사를 꿰뚫는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한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이런 지혜를 따르지는 못하는 법이다.

한의학자의 입장에서, 이런 수많은 지혜 중에서 늘 되씹어 보는 것이 있다. 바로 불교의 지혜 중 하나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다. 반야바라밀에 담긴 지혜를 헤아려보면, 그것이 전통 의학의 핵심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하긴, 전통 의학 역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유산이니 둘이 통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나씩 따져보자. '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것인데, 그 본래 뜻은 '지혜'이다. 그런데 그 한자를 따져 봐도 원래 뜻과 통한다. 돌아올 '반(般)', 같을 '야(若)'는 모두 동그라미를 상징한다. 동그라미, 원은 자연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도형이다. 즉, 동그라미는 다양성 속에 자리 잡은 단순성을 상징한다.

재벌이나 서민의 삶이 서로 달라보여도 먹고, 자고, 싸는 모습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에서 단순한 진리를 파악하는 것은 미혹(迷惑)을 끊고 지혜를 얻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지혜를 뜻하는 반야를 상징하는 도형이 동그라미인 것은 이 때문이다.
 
동그라미는 순환을 상징한다. 순환은 세상을 설명하는 또 다른 지혜다. 곰곰이 따져보면 모든 것이 순환한다. 생명 원리의 핵심은 순환이다. 얼핏 보면 생명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직선의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보면 한 생명의 죽음은 곧 다른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동그라미는 항상 내부와 외부로 나뉜다. 생명 원리 역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짓는 데서 시작한다. 또 외부와 내부는 서로에게 의존한다. 생명 역시 외부와 내부의 물질 교환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되,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 즉 서로 의존하는 관계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동그라미는 또 '공(空)'과도 통한다. 공은 단순히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뜻하는, 즉 '허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공의 핵심은 '중용'이다. 우리 몸의 생명 현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넘치거나 부족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생명은 정교한 신호, 관리 체계를 통해서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런 '중용'을 추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넘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욕심을 버리려면 시쳇말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 '공'이 '중용'과 통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라밀(波羅蜜)' 역시 수행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것이다. 이 말 역시 한자를 뜯어보면, 생물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누에가 실을 뽑아서 실타래를 완성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런 과정 역시 수행이라는 본래 뜻과 일맥상통해서 눈길을 끈다.

더구나 이런 비유는 생명 현상과도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몸의 근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서 실타래를 완성하는 것과 흡사하다. 생명 현상 하나하나가 지혜를 찾아서 떠나는 수행의 과정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바라밀은 곧 생명 현상 자체다.

지혜를 찾는 수행을 뜻하는 '반야바라밀'을 나름대로 넓게 해석해 보았다. 반야는 생명 자체를, 바라밀은 그 생명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이라고. 이처럼 수천 년을 견딘 부처의 분명한 가르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다. 어쭙잖은 지식에 의지하는 우리는 옛사람보다도 훨씬 더 어리석은 것은 아닌가?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게 독살 사건 ~ <동이> 장희빈의 아들, 게 맛보다 죽었다고?

기사입력 2010-06-02 오후 1:48:12

 

드라마 <동이>의 숙빈 최 씨의 아들인 영조는 과연 그의 형, 즉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을 독살했을까? 이 얘기를 할 때는 게장과 생감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의 한 토막을 살펴보자.

영조 31년(1755년) 신치운은 이렇게 자백한다. "신은 영조 즉위년인 갑진년(1724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신의 역심입니다." 이에 영조는 손으로 그의 살을 짓이길 정도로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영조가 왕으로 즉위한 지 한 세대가 지나도록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에 시달렸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영조는 같은 해 10월 9일 이렇게 해명한다.

"경종에게 게장을 보낸 것은 내가 아니라, 어주(御廚)에서 공진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하인들이 고의로 사실을 숨기고 바꾸어 조작했다."

경종은 생감에 게장을 먹은 지 5일 만에 죽었다. 그렇다면, 왜 게장이 문제인가? <본초강목>은 게장과 생감을 상극이라고 기록한다. '감나무'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실제 경험까지 기록한다.

"감과 게를 함께 먹으면 사람이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한다. 왜냐 하면, 감과 게는 모두 찬 음식이기 때문이다."

왕구의 <백일선방>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혹자가 게를 먹고 홍시를 먹었는데 밤이 되자 크게 토했다. 결국 토혈까지 하게 되었으며 인사불성이 되었다. 목향으로 겨우 치료할 수 있었다."

게의 성질이 차다는 사실은, 이것을 옻의 독을 해독할 때 쓰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옻은 가을에 줄기가 빨간 데서 알 수 있듯이 더운 성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속이 찬 사람이 옻닭을 고아 먹으면 설사를 멈추는 데서도 그 더운 성질을 알 수 있다. 옻닭이 정력에 좋다며 보양식으로 찾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옻이 맞지 않는 이들은 열이 솟구쳐 피부에 두드러기가 난다. 이럴 때, 게장을 바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게는 뱃속 부분이 달(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런 사실에 근거해 차가운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게의 차가운 성질이 옻의 더운 성질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 드라마 <동이>에서 라이벌로 나오는 장희빈(이소연)과 동이(한효주). 훗날 희빈 정 싸의 아들인 경종이 갑자기 죽자 숙빈 최 씨(동이)의 아들인 영조가 왕위를 잇는다. ⓒMBC

그렇다면, 이런 게와 감을 같이 먹는 것이 정말로 위험할까? 실제로 게장에 감을 먹는 일이 평범한 사람이 위험에 빠뜨릴 만큼 위험하지 않다. 다만, 평소에 지병이 있거나 특히 소화기 계통이 약한 사람에게는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경종이 바로 그랬을지 모른다.

경종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희생자다. 열네 살 무렵에 생모인 희빈 장 씨가 사약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후 벌어진 정치 상황은 보통의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을 주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경종4년(1724년) 8월 2일의 기록을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서 드디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이 생겼다. 해가 갈수록 더욱 고질이 되어 화열이 위로 오르면서 때때로 혼미하다."

외부로 열이 흘러나오면 내부는 차가워진다. 몸이 덥고 땀이 나면 오히려 배탈이 난다. 여름에 찬 음식보다 삼계탕, 개장국을 먹는 이유도 더위가 배를 차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종의 치료를 담당한 어의는 이공윤이다. 그는 경종의 열을 없애고자 설사시키거나 아주 찬 약을 위주로 공격성 강한 약물을 처방했다.

기록을 보면 도인승기탕, 시호백호탕, 곤담환 등의 약물을 처방했다. 이런 약물에는 석고처럼 아주 찬 약이나 설사시키는 대황 같은 약을 썼다. 이런 처방은 비위가 허약하고, 설사를 하였던 경종의 증상과는 맞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남은 위장의 기운마저 깎아내리는, 위험한 약물을 처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장과 생감을 동시에 경종에게 먹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경종에게 게를 준 것은 분명히 암살 의도가 있어 보인다. 영조가 곤혹스러운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경종의 죽음의 배후에 영조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경종의 최후를 자세히 살펴보면, 영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영조가 마지막으로 인삼, 부자를 투여한 것은 타당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경종은 8월 20일 게장과 생감을 먹고 나서 복통을 호소했다. 21일에는 곽향정기산을 복용하며 22일에는 황금탕을 복용한다.

23일에는 설사로 혼미하고 피로하여 탕약을 정지하고 인삼율미음을 마셨다. 24일에는 더욱 맥이 낮아지고 음성이 미약해 졌는데 이공윤이 나서서 설사를 멈출 수 있다고 하면서 계지마황탕을 복용한다. 이 처방은 패착이었다. 마황은 허약한 사람에게는 결코 투여할 수 없는 약물이기 때문이다.

마황의 별명은 청룡이다. 용처럼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땀을 내는 무서운 약이다. 마황을 잘못 쓰면 폐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고, 근육이 떨리며 가슴이 두근거려 심장을 감싸 안으며, 위장이 허약한 사람은 밥맛이 없어지는 등 위장의 기능을 꺾는다. 이런 무서운 약을 함부로 처방한 것이다.

당장 부작용이 나타났다. 계지마황탕을 복용한 날, 저녁이 되자 경종의 병세는 위급해졌다. 영조는 인삼, 부자를 써 양기를 북돋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공윤은 반대 입장을 강력히 견지한다. 영조는 이공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에게 인삼, 부자 등을 먹였다. 실제로 영조의 처방에 경종의 병세는 잠시 안정되는 듯했으나, 결국 8월 25일 세상을 뜬다.

후세 사가는 영조의 처방을 놓고 입방아를 찢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공윤의 처방보다 영조의 처방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아예 처음부터 이공윤보다 영조의 처방을 따랐더라면 경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게장과 생감이라는 깊은 암수는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코골이 ~ 코골이 탓에 이혼? 병부터 고쳐야지…

기사입력 2010-06-09 오전 7:57:07

 

예전에는 코골이가 깊은 잠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골이가 이혼 사유가 되었다는 외국 소식이 들려올 정도로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더구나 코골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병으로 여겨야 한다. 코골이를 방치해뒀다가는 자칫하면 생명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골이가 심하면 호흡량이 줄어서 산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서, 혈중 산소 농도가 떨어진다. 당연히 혈액을 빨리 순환시키기 위해서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는데, 이 때문에 혈관 압력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은 평소 건강 상태에 따라서 동맥 경화, 뇌졸중, 심근 경색 등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코골이는 왜 생길까? 코골이의 가장 일차적인 원인은 잠을 자는 동안 아래턱뼈를 움직이는 근육과 혀의 근육이 이완되면서, 혀가 코 뒤쪽과 입 뒤쪽의 공기 통로를 막는데 있다. 이렇게 통로가 막히면 입과 코 뒤쪽 사이에 기압차가 발생하는데, 이렇게 생기는 공기의 흐름이 진동하면서 코골이가 나는 것이다.

흔히 비염, 비만이 있는 이들이 코골이가 심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앞의 코골이가 생기는 이유를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염이 걸리면 코가 붓고, 내부가 좁아져서 공기 통로를 막는 원인이 된다. 비만도 마찬가지다. 코 내부가 살이 찌면서 호흡 통로가 좁아져 코골이가 생기는 것이다.

코골이의 원인을 한의학적으로 설명하려면, 숨 쉬는 것에 대한 근원을 고민해야 한다. 숨 쉬는 것을 호흡이라고 하는데, 한의학은 이를 음과 양으로 구분했다. <난경>이 "호는 양적인 것으로 심장과 폐가 주관하며 팽창하여 밖으로 나가려는 성질이 있고, 흡은 음적인 것으로 수축하여 안으로 움츠러드는 성질이 있다"고 기록한 것은 그 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호기가 괴로운 것은 양기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흡기가 괴로운 것은 음기가 부족한 탓이다. 코골이는 내부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흡기(음기)가 약해서, 안간힘을 쓰다가 목젖이 강하게 떨리는 것이다. 코골이를 몸의 음기가 부족한 탓에 생기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음기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음양을 설명할 때 잘 드는 예가 남녀다. 부부 관계에서 남자는 외부로 팽창하여 뱉어내고, 여자는 내부로 수축하여 삼킨다. 결혼 후에는 남자들이 코를 고는 경우가 많다. 양생가들의 지적을 염두에 두면, 부부 관계가 지나쳐 음기인 정과 액이 배설되어 소모되기 때문이다. 방사가 음액을 배설하여 생긴다고 본 것이다.

음식이나 약물에도 음기를 줄이는 것들이 있다. 마늘이나 고추는 맵고 더운 음식으로 몸의 양기를 북돋는다. 당연히 음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근에 유행하는 커피도 음기를 줄인다. 신경계를 흥분시켜 각성시키는 효과는 당연히 양기를 늘이고 고요한 음기를 줄일 수밖에 없다.
 
홍삼이나 인삼의 과량 복용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술을 먹으면 코골이는 심해진다. 술에 내재된 더운 양기 탓이다.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스트레스다.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숨이 가빠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근심 걱정이 많아지면 한숨이 나온다. 내부의 화열이 쌓이면서 음기가 줄어드는 탓이다.

어린아이의 코골이는 코와 목 사이의 접합부인 편도가 지나치게 부어서 코를 고는 것이다. 이 질환은 후유증이 더욱 심하다. 산소 부족에 의해 뇌를 불안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장 호르몬이 야간에 분비되지 않아서 성장의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가 숨을 쉬지 못하면 발버둥치는데, 이것은 여러가지 신경계 질환의 출발점이 된다.

음기를 북돋는 약은 무엇이 있을까?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더덕이다. 더덕은 액이 많다. 뿌리 속에 물을 지닌 것도 있다. 줄기를 자르면 흰 즙이 나온다. 그 즙이 양의 젖 같다고 양유라고도 부른다. 흰 즙이 나오는 식물은 젖이 부족한 여인에게 좋다. 예로부터 여성의 음부가 액이 줄어들어 가려움이 생기면 더덕을 가루로 먹곤 했는데, 바로 음기를 북돋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요리에서도 더덕을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다. 음기가 강해서 소화 능력을 떨어뜨릴까봐 고추의 맵고 더운 양기를 보강해서 먹는 것이다.

둥글레는 시원하다. 대나무와 닮은 점이 많다. 대나무 잎이 시원하듯 둥글레 잎도 시원하고 대나무가 마디가 있듯이 둥글레도 마디가 있다. 둘 다 땅속 뿌리줄기로 번식을 한다. 그래서 옥죽(玉竹)이라 한다. 옥은 옥액을 간직한 대나무인 것이다. 둥글레 뿌리는 옥액같은 점액질이 많다. 음기를 보강해주는 것이다. 더덕 60그램에 둥글레 뿌리 10그램을 가루로 만들어 꿀에 재웠다가 하루 5그램씩 먹으면 좋다.

이외에도 오미자나 맥문동도 유효하다. 사실 한방에서 직접 쓰는 약물은 현삼 즉, 검은 인삼이다. 검은 인삼이 콩팥을 자극해 음기의 근원을 북돋는 것이다.

침도 좋다. 신장 경락인 복류혈을 보하면 음기가 보충되어 호흡이 길어진다. 코골이가 심하다고 목젖을 절제하곤 한다. 과연 올바른 대응일까? 음기가 부족하여 코골이가 심한데 소리만 없애려고 목젖을 절제하는 것은,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져서 빨간불이 온다고 전기 신호를 끊어 빨간불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성욕과 기력 ~ 마라도나의 "경기 전 성관계 OK"…약일까, 독일까?

기사입력 2010-06-16 오전 9:36:31

 

의외로 한의학적 사유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하는 경우가 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성관계를 맺으면 에너지가 소비돼 해롭다는 믿음이 그렇다. 이런 믿음을 놓고 현대 의학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이렇게 딱지를 붙이고 무시한다. 내일(17일) 우리와 일전을 앞둔 아르헨티나의 감독 마라도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마라도나의 뜻을 대변하는 전속 의사 로나트 발라니 씨는 "선수들이 굳이 성관계를 참을 필요는 없다"며 "(경기 전이라도) 선수들이 부인이나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즐길 수 있다"고 밝혔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금기를 깨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이런 마라도나의 도전은 성공할까?

▲ 경기 전 선수의 성관계를 허용한 아르헨티나팀 마라도나 감독. 17일에도 웃을 수 있을까? ⓒ뉴시스
한국에서는 "(경기 전에) 성관계를 맺으면 다리가 풀린다"는 믿음이 선수들 사이에 퍼져있다. 한의학에서는 남자의 성기능을 신장과 연결시켜 이해했다. <황제내경>은 신장을 "생명의 정을 간직하는 부위"로 여겼다. 이 신장이 지배하는 영역을 '하초'라고 부른다. 구체적으로 배꼽부터 발까지를 가리키는데, 이 하초가 무기력한 상태를 시쳇말로 "다리가 풀렸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심장이 양을 상징하는 기관이라면, 신장은 음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양이 외부로 팽창하는 따뜻한 기운이라면, 음은 내부로 수축하는 차가운 한기다. 이렇게 '음 중의 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장의 기능을 한의학에서는 한마디로 '작강지관(作强之官)'이라고 설명한다. 먼저 일본의 한의사 시바라키의 설명부터 들어보자.

"신장은 몸을 긴장된 상태로 유지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습격을 막고자 정기를 저장하는 기관이다. 또 몸이 늘 긴장해 있도록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

작강(作强)이란 무엇인가? 신장은 물과 불 중 물을 상징한다. 물은 산중에서 발원하여 바다까지 흐르면서 자신을 끝없이 정화한다. 바다는 물의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으로 음 중의 음이다. 바로 신장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바다는 흐르지 않고도 스스로 쉬지 않고 운동하여 자기를 정화하므로 썩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작강지관 중에서 '강(强)'의 뜻인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의미다. 바다는 흐르지 않으므로 소란스럽지 않다. 고요한 가운데 쉬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는 힘, 바로 이것이야말로 시바라키가 추론한 신장의 기능이다. 이런 신장의 기능을 염두에 두면 경기 전 성관계를 맺지 않는 일이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동의보감>의 제1장은 '정'에 대한 총론이다. 정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장이 간직한 소중한 물질이다. 정액도 정을 간직한 액이라는 뜻이다. 이 부분의 핵심 내용은 "성욕을 절제하여 정액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생서를 보면 이런 내용이 흔하다.

"마흔 전에 성생활이 지나치면 마흔이 지나서 갑자기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쇠약해지면 여러 가지 질병이 생겨나고 오래도록 낫지 않으며 나중에는 구원할 수 없다. 한 번 억제하면 일어나려는 불을 한 번 끄고 기름을 한 번 더 친 것이 된다. 만약 억제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정액을 내보내면 기름불이 꺼지려는데 기름을 쏟아 버리는 것과 같다."

영국팀 감독 카펠로는 자국 선수에게 월드컵 기간 중에 금욕 생활을 강권했다. 아르헨티나팀과 브라질팀은 자유분방한 개인 생활을 허용했다. 우리가 아르헨티나와 맞붙을 경기장은 고지대로 공기가 희박하다. 산소가 희박하면 어지러움이 생기고, 당연히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고지대의 일전을 앞둔 선수들이 더욱더 금욕 생활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성욕을 자제하는 것 외에도 고지대의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기력에 도움이 되는 먹을거리는 무엇이 있을까? 일단 몸속에 액을 보충하면서, 호흡하는 힘에도 도움이 되는 더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르헨티나 전을 앞둔 선수들의 식단에 더덕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산후풍을 아십니까? ~ '산후 조리' 신경쓰는 당신은 미개인? 글쎄…

기사입력 2010-06-23 오전 6:07:30

 

의사와 한의사 사이에 가장 엇갈리는 판단이 바로 산후 조리다. 특히 현대 의학은 '산후풍'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검사를 해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넌지시 신경정신과를 찾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가 겪는 고통은 이런 의사의 진단과는 상관없이 심각하다.

내가 아는 지인은 출산을 하고 나서 고열을 내린다며 산부인과 병원에서 등에 얼음 찜질을 했단다. 그는 그때부터 뼈를 파고드는 냉기를 이기지 못해 한여름에도 내복을 입고, 뜨거운 찜질을 하는 바람에 신랑과 각방 생활을 한다. 아마 독자들 중에도 산후 조리를 잘 못한 탓에 평생 고생한다며 푸념하는 여성을 주변에서 봤을 것이다.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현대 의학과 한의학 사이에 차이가 있다. 현대 의학에서 분만은 아기를 낳는 과정이다. 수축이 시작돼 자궁목이 확장되는 단계, 아기가 나오는 단계, 태반이 나오는 단계, 이렇게 3단계로 구분해 기계적으로 설명한다. 그 이후의 단계인 출산 후 조리 과정을 놓고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조적으로 한의학은 산고를 겪고 나서 산모의 건강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출산에서 산모의 몸은 비유를 하자면 뜨거운 여름과 같다. 태반 속의 태아를 있는 힘껏 밀어내다 보니 근육도 늘어나고 인대도 늘어나고 심지어 뼈와 관절마저 늘어난다. 골반이 늘어나면서 출산하는 과정을 보면 이런 지적은 더욱 생생하다.

출산 후 조리 과정은 이렇게 이완된 신체 조직을 본래대로 수축시키는 과정이다. 출산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서, 이완된 조직에 필요한 것은 얼음이나 물이 아니라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보충하는 일이다. 출산 후에 산모의 몸은 퉁퉁 부어 있으면서 축 늘어져 있다.

수건이나 이불이 젖어 물기가 있으면 축 처진다. 축 처진 천을 본래대로 수축시키기 위해서는 물기를 짜내고 햇볕에 말려서 다리미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산 후 이완된 몸도 수분을 쫓아내고 열을 가해야 정상 상태로 수축하여 근육과 관절이 제자리로 천천히 돌아간다.

산후풍이란 말은 몸에 바람이 든다는 표현이다. 이것과 비슷한 말로 '무에 바람이 든다'는 표현이 있다. 무에 왜 바람이 들까. 김장용 무는 보통 꽃대가 생기지 않으나 꽃대가 올라오면 무는 바람이 든다.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굵고 튼실한 뿌리에 촘촘히 박힌 영양분을 끌어올린 탓에 조직이 푸석하고 꺼칠한 섬유질만 남기 때문이다.

막 출산을 한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2세를 출산하기 위해 자신의 내부 혈액과 기운을 너무 많이 소모하여 내부 영양분이 빠져 나간 탓에 외부 온도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사지관절에 한기가 들어와 굳어지고 차가워지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출산한 여성이 산후풍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산후풍의 원인은 네 가지다. 첫째, 혈액이 모자라는 혈허형. 출산 시나 산후에 출혈이 과다하거나 평소 혈액이 부족한데 다시 출산해 경맥, 관절이 혈액 공급을 받지 못해 굳어지는 것이다. 둘째, 외감형. 산후에 몸이 허약하고 관절이 늘어난 상태에 감기처럼 차가운 기운을 만나거나 바람을 쐬어서 생기는 경우다.

셋째, 어혈형. 어혈형은 분만 과정에서 형성된 피 찌꺼기가 몸 안에 축적되어 도랑에 수초가 낀 것처럼 혈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다. 피부가 검푸른 색이거나 아랫배가 아프고 오로가 그치지 않는다. 넷째, 신허형은 부신의 기능이 떨어져 있는데다 출산이 인체에 많은 부담을 준 것이다. 신의 경락이 통과하는 허리 무릎 발꿈치에 통증이 잘 일어나고 귀에 소리가 나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경우다.

산후풍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약물은 익모초(益母草)다. 이름 그대로 부인들 특히 산모를 위한 약이다. 물가에서 잘 자라며 여름이 되면 시들어 간다고 '하고초'라는 별명도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흙도 타들어 가지만 물은 도리어 무성하다. 인체도 출산 시에는 열이 나고 진액을 소모하지만 부기가 생겨 물이 무성해진다.

익모초는 물가에 자라므로 부종을 내리며, 여름이 되면 수렴하여 시들므로, 몸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떠오르는 양기를 수렴한다. 그래서 전통 민속 풍속에는 유두(음력 6월 보름)에 익모초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유래가 있으며, 한여름 더위에 입맛이 없으면 익모초 생즙을 마신다.

당의 측천무후는 익모초를 갈아서 더운 얼굴을 서늘하게 만들고 촉촉한 윤기를 더하는 특효약으로 사용하였다. 막 태어난 아이의 가려운 피부염에도 열을 식히는 익모초 물을 달여서 목욕을 시킨다.

산후풍은 인체가 느끼는 고통 중 산고라는 가장 큰 부담을 겪은 이후의 질병이다. 꾸준한 관리와 주변 가족들의 배려가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산모의 고통을 감히 누가 안다고, 산후풍은 없다, 이런 소리를 하는가?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메밀의 효과 ~ 여름엔 냉면이 최고? 냉면의 진실은…

기사입력 2010-07-07 오전 9:43:59

 

평창에 살고 있던 토박이가 메밀 알레르기가 심했다.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인근 읍내로 피신해 여관방을 전전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망했다. 원인은 여관의 베게에 들어있는 메밀껍질 때문이었다.

메밀껍질은 베갯속으로 가장 각광받는 재료다. 머리에 열이 오르면 해롭다. 메밀껍질에는 찬 성분이 들어있어서 메밀 베게는 머리의 열을 잘 흡수해서 베갯속으로 가장 좋다. 껍질 사이사이로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머리와 베개가 닿는 면 사이로 통풍 작용까지 덤으로 준다.

메밀은 찬 만큼 소화에는 약간 부담을 주는 음식이다. 당나라 초기의 명의 맹선도 <식료본초>에 "메밀은 냉물로서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사실 메밀이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파되는 데도 흥미로운 설이 있다. 북쪽 오랑캐(만주 여진족)들이 한민족의 잠재된 힘을 약화시키고자 선심을 쓰는 척 메밀을 전파해 배탈을 유발하여 체력을 약화시키고자 했다는 것.

이런 그들의 의도는 성공했을까? 아니다. 옛사람들은 무를 이용했다. 무는 맵다. 매운 성분이 메밀의 찬 성분을 중화시켜 소화 흡수를 돕는 것이다. 냉면을 겨울에 떨면서 동치미 국에 말아먹는 것도 바로 무의 성분을 이용한 것이다. 제주도의 빙떡도 메밀전병을 얇게 부쳐서 그 속에 양념을 한 삶은 무를 넣고 전병을 돌돌 말아서 만든 것이다. 사상의학에서도 체질적으로 열이 가장 많은 태양인이 열을 식힐 목적의 음식으로 무를 분류했다.

▲ 대표적인 여름 음식으로 알려진 냉면은 사실은 겨울 음식이다. 냉면의 원료인 메밀의 찬 성질을 염두에 두면 겨울에 뜨거워진 속을 다스리는데 냉면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뉴시스

메밀의 씨는 검은빛을 띤 갈색으로 약간 긴 세모 모양이다. 이 씨를 갈아서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낸 것이 메밀가루다. 메밀을 가루로 만들면 원래 양의 70~75퍼센트만 가루로 만들어 진다. 메밀을 가루로 만들 때 중심부만을 가루로 만든 것은 빛깔이 희다. 그 주변부의 껍질에 가까운 곳까지 가루로 만들면 빛깔은 검어진다.

옛날에는 제분 기술이 미숙해 맷돌로 갈면서 껍질 부분을 없애지 못한다. 그래서 소화에 더 부담이 되었다. 냉면은 중심부의 흰색 가루로 만든다. 냉면과 달리 막국수는 검은 색이 촘촘히 보인다. 백미와 현미처럼 냉면이 메밀의 중심부를 이용하였다면 막국수는 현미처럼 도정기술이 떨어져 주변 부위를 포함하여 만든 것이다.

현미가 소화하기 힘들듯이 막국수도 소화에 부담은 더 될 수 있지만 오히려 영양 과잉의 현대인에게는 막국수가 더 좋다. 내부의 독소를 씻어내 동맥 경화 등에 좋기 때문이다. 많은 임상 연구 자료를 보면, 동맥 경화에 메밀은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속이 차고 냉한 사람은 피해야 한다.

메밀은 차갑다. 본래 찰진 끈기가 있으나 열을 가하면 끈기를 잃는다. 바로 현대에 필요한 차갑고 찰진 것은 음기가 가득한 음식이다. 음기는 내부로 수축하여 탄력을 유지하고 양기는 외부로 팽창하여 늘어난다. 마을 부녀자나 처녀들이 겨울밤에 메밀묵 추렴을 곧 잘하는 것도 이런 탓이다. 메밀을 먹으면 젖가슴이나 허벅지등 오방의 속살이 탄력이 생기고 예뻐진다는 속설도 음기를 이용한 또 다른 미용 방법이다. 메밀묵을 먹으면 요즘 유행하는 꿀벅지도 잘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여름은 땀이 나면서 겉이 뜨거워지고 겨울은 겉이 차가워지면서 소변이 잦아진다. 여름은 에너지가 겉으로 나오면서 내부가 차가워지고 겨울은 내부로 에너지가 들어가면서 외부는 차가워진다. 이열치열은 여름에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 에너지를 내부로 집중시키면서 겉의 온도를 식히는 것이다.

냉면이나 막국수의 메밀은 성질이 차므로 겨울에 뜨거워진 속을 식히는데 더 적절하다. 실제로 <동국세시기>도 냉면을 '겨울 음식'으로 꼽았다. <의림찬요>도 봄이 지난 이후에 메밀이 든 음식을 먹으면 냉기가 동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메밀은 겨울이 더 제격인 것 같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부부 금실을 좋게 하는 방법

구미호에 홀린 대한민국…여우가 부부 금실을 좋게 해?

 

기사입력 2010-07-14 오전 8:17:42

 

이명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환자의 내면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 이명은 자신이 내는 소리다. 소리는 대부분 외부에서 들려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스스로 소리를 낸다. 바람이 대나무 밭에 가면 대나무 소리가 나고 소나무 밭에 가면 소나무 소리가 나듯이, 외부의 음원은 몸속에서 자율신경과 함께 나만의 소리를 만든다.

예를 들면, 조용하다는 것도 자신의 신경이 20데시벨 이내로 귓속의 유모세포를 흔들면서 뇌가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신경이 유모세포를 더 빨리 흔들거나, 더 늦게 흔들면 뇌는 곧바로 시끄럽다고 인식한다.

이렇게 유모세포를 자극하는 자율신경이야말로 내 마음의 본질이다. 자율신경은 본래 내것이지만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 자율신경은 왜곡된 주파수를 보이면서 빠르게 혹은 느리게 유모세포를 움직인다. 이런 환자의 심리적 고통을 가장 아픈 주파수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명이다.

이명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 중 가장 흔한 것은 부부 갈등이다. 평범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비범한 위인도 그 고통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전라도 순천에 살았던 이함형의 부부 갈등을 놓고 퇴계 이황이 편지로 자신의 경험담을 토로한 이야기는 우리 같은 범인에게 위로가 된다.

"나는 일찍이 재혼을 했으나 한결 같이 불행이 심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각박하게 대하지 않고 애써 잘 대하기를 수십 년이나 했다네. 그간에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웠네."

따지고 보면 부처님도 예수님도 공자님도 소크라테스도 세계 4대 성인 중 아무도 부부 금실이 좋은 사람이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가장 위대한 성인도 이루지 못한 일을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부부 금실이 힘들다 보니 요즘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틈새시장도 있다. 얼마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 바로 여우 생식기다. 이것을 차고 다니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탓에 몇 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소식이였다. 하도 떠들썩하기에 한의학 고서를 찾아보았다.

한의학에서 여우 생식기가 금실을 좋게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여우는 한자로 '호(狐)'다. 호는 '고(孤)'다. 외롭게 혼자 다니는 짐승이라는 뜻이다. 여우의 본성은 의심이 많고, 이러니 같은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여름 극장을 장식하는 구미호다.

전설 속 요물인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는 본래가 한국산이다. <산해경>은 아래처럼 적고 있다. 인용에서 나오는 청구가 우리의 옛 지명임을 생각하면 구미호의 고향은 한반도인 셈이다. 이렇게 여우의 본질을 구미호 전설로 일찍부터 간파한 나라에서 근거 없는 여우 생식기 열풍이 돌다니…. 우리의 부부 금실에 심각한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청구(靑丘)의 산, 여우가 있으며 구미(九尾)로 능히 사람을 먹는다."

▲ 최근 시작한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 구미호는 한국에서 유래한 요물로 전해진다. 옛사람이 의심 많은 여우의 속성을 나름대로 형상화한 셈이다. 이런 여우가 부부 금실에 좋다는 속설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kbs.co.kr

<동의보감>의 잡방에 여우에 대한 얘기는 없지만,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처방이 있다. 두 가지 처방이 있는데 원앙 고기로 죽을 끓여서 알지 못하게 먹이거나, 음력 5월 5일에 뻐꾸기를 잡아 다리와 머리뼈를 차고 다니는 것이다.

이런 처방은 원앙의 금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원앙은 암컷이 총을 맞고 쓰러져도 수컷은 암컷의 곁을 떠나지 않는 등의 속설과 함께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새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원앙은 그다지 '원앙스럽지' 않다는 게 전설이다. 실제로 원앙은 매년 상대를 바꾸는 바람둥이다. 허준의 '앗 나의 실수'인 셈이다.

원앙을 넘어선 것은 원앙어다. 조선 후기 학자 김려가 <우해이어보(牛海異語譜)>에 기록한 내용이다.

"이름은 원앙어라고도 하고 해원앙이라고 한다. 생김새는 연어와 비슷하나 입이 작고 비늘은 비단처럼 곱고 아가미는 붉다. 꼬리는 길고 몸통은 짧은 것이 마치 제비처럼 생겼다. 이 물고기는 암컷과 수컷이 항상 붙어 다니는데 수컷이 달아나면 암컷이 수컷의 꼬리를 물고 죽어도 놓아주지 않는다.

낚시꾼은 원앙을 낚게 되면 반드시 쌍으로 낚는다. 이 고장 토박이의 말에 따르면 원앙어의 눈을 뽑아서 잘 말려가지고 남자는 암컷의 눈을 차고, 여자는 수컷의 눈을 차고 다니면 부부간의 금실을 좋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김려는 경험담도 적었다. 이웃집 젊은이가 거제도 앞바다에 가서 물고기를 낚아 가져 왔는데 물고기가 절반쯤 말랐는데도 오히려 꼬리를 물고 떨어지지 않는 채로 있었다고 묘사한다. 이런 원앙어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부부 금실이 좋은 어류는 무엇이 있을까?

최근에 밝혀진 결과로는 아귀가 백년해로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귀 중에도 심해어인 초롱아귀가 그렇다. 암컷의 몸에 지느러미처럼 작게 달라붙어 있는 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컷이다. 깊은 바다에서 같은 종족끼리 만날 가능성이 적어서인지 악착같이 수컷은 암컷의 피부에 달라붙는다.

작지만 번식기가 되면 아비 역할을 해내 자손을 남긴다. 원앙어는 구하기 힘들고 초롱아귀도 구하기 쉽지는 않다. 여우도 아니고, 원앙어도 초롱아귀도 구하기 힘드니 어떻게 할까? 그저 아귀찜을 안주로 소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술기운을 빌려 4대 성인만큼은 하고 있는 자신을 위안할 뿐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복날, 삼계탕에 열광하는 이유는… 복날에 삼계탕 먹은 당신은 '퇴마사'?

기사입력 2010-07-21 오전 9:32:54

 

복날에 삼계탕집 앞은 하루 종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렇게 사람들이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를 알려면 '복(伏)날'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이렇게 적고 있다.

<한서(漢書)>에서 이르기를, 음기가 일어서고자 하나 양기에 눌려 상승하지 못하는 날이 바로 복날이다. 화제(和帝·89~104년) 때 처음으로 온종일 복폐를 명령했다. 그 주에 이렇게 일렀다. "복날에는 온갖 귀신들이 다니니, 온종일 문을 닫고 다른 일에 간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서 귀신은 바로 더위에 체력이 떨어져 질병을 일으키는 역귀다. 옛날에는 이를 돌림병이라고 불렀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균성 혹은 바이러스성 질환의 전염병일 것이다. 더위에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역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최선은 체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동의보감>도 <황제내경>도 질병과의 싸움에서 예방을 금과옥조로 내세웠다. 내 몸이 튼튼하면 병마가 침투하지 못한다. 실학자도 같은 견해를 내세웠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귀신의 기운이 몸의 허약한 틈을 타서 침입하는 것은 이치에 당연하다"며 허약한 체질을 강화해야 돌림병을 예방한다고 강조하였다.

몸을 어떻게 튼튼하게 할 것인가? 병을 귀신이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으니 당연히 주술적인 성격의 처방이 없었을 리 없다. 닭이 바로 그 처방이었다. 닭은 때에 맞춰 새벽을 알린다. 옛사람은 이렇게 때를 아는 닭을 하늘과 통한 동물로 간주하며 신령스럽다고 여겼다. 하늘과 통하는 영물이니 당연히 주술의 힘도 강하다고 여겼다.

<오행지(五行志)>에는 닭이 능히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고 했으며, 도홍경은 산중에서 도를 닦는 사람은 흰 닭이나 흰 개를 길러야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권했다. 실제로 닭은 정신 질환 처방에도 이용되었다.

스스로 성현으로 착각하고 오가는데 분주하여 그치지 않는 정신 질환 환자는 흰 수탉을 국이나 죽으로 먹는다.

옛날 선비들은 이런 닭을 다섯 가지 덕을 갖춘 짐승으로 평가하였다. 첫째는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서 문(文), 둘째 발에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서 무(武), 셋째 적과 잘 싸우는 용기가 있으므로 용(勇), 넷째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가르쳐 주므로 인(仁), 다섯째 때를 알려주므로 신(信)이라 하였다.

▲ 삼계탕. 삼계탕은 인삼, 황기와 같은 몸을 강화하는 최고의 약재와 귀신을 물리치는 동물이라는 닭에 대한 옛사람의 믿음이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보양식이다. ⓒ뉴시스

일반적으로 보면 몸을 강화하는 데는 인삼, 황기, 녹용 등이 좋다. 그러나 이런 약재는 값이 비쌌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인삼 한 쪽이 금 한 쪽과 거래될 정도로 비쌌다. 심지어 인삼을 상품으로 둔갑하고자 인삼 내부를 파고 도라지를 넣어 아교풀로 붙인 기록도 실록에 전해진다.

삼계탕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비싼 약재가 들어간 귀한 음식이다 보니 대중들이 접근하기 힘든 음식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대중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예전에는 삼계탕에 무엇을 넣었을까? 황기를 넣은 닭이 최고의 보신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은 황기닭을 여름 보양식으로 즐긴다. 물론 효능은 약간 다르다. 황기는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 좋은 약물로 피부 장벽 기능을 강화한다.

인삼이 몸을 강화하는 데다 귀신은 물리치는 닭의 영험까지 더했으니 복날의 음식으로는 삼계탕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이 기가 세듯이 한국 닭도 기가 세 약용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것일까? <본초강목>은 우리나라 닭에 대한 특별한 찬사를 보탠다.

닭은 조선의 평택에서 서식한다. 조선은 현토 낙랑의 땅을 말한다. 약용으로는 조선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본초강목>은 이어서 다른 닭과 구별하고자 몇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는 친절함도 보인다, 조선 닭은 장미계로 꼬리가 길어서 3~4척(尺) 이며 요동산은 식계, 각계로 맛이 좋다. 남월산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늘 운다. 특히 남해산 석계는 물 때를 알아서 조수가 만조되면 운다.

조선 닭의 명성이 알려진 탓인지 중국 사신이 오면 한결같이 요구한 것은 수탉의 붉은 벼슬을 요리한 계관육이다. 이것은 수탉의 양기와 붉은 벼슬의 양적인 힘이 더해진 정력을 강화하는 최고의 음식으로 여겼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아그라' 정도로 여긴 듯하다. 이런 계관육을 대접 받은 사신은 어떤 트집도 잡지 않았다는 웃지못할 기록도 전한다.

삼계탕은 단순한 보양식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영약인 인삼과 세계 최고의 닭이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여름 건강이다. 최고의 약용 닭인 전래종은 어떤 특성이 있었을까? 1910년 국권 침탈 당시 일본의 기록을 보면, 지금의 육계와는 다른 전래종에 대한 기술이 나온다.

한국의 재래종 닭은 그 털이 '갈색 레그혼'과 흡사하고 체질이 강건, 활발하다. 비상력이 강하고 부화육추를 잘한다. 체중은 1.8~2.5킬로그램 내외이며 산란력은 떨어져 1년간 겨우 90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화타 이야기 ~ "감히 내 머리를!"…조조가 죽인 화타의 진실은?

 

기사입력 2010-07-28 오전 8:30:24

 

한의학에도 외과 의학이 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화타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조조의 머리를 쪼개서 치료하겠다는 대담한 발상이 <삼국지연의>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화타의 신기에 가까운 외과 의학의 전통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화타의 의학은 그저 전설일 뿐일까?

이런 수수께끼를 풀려면 불교 경전을 살펴야 한다. 불교 경전에는 지바카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인도 문명의 발상자인 인더스 강 상류에 고대 도시 타키시라가 있었다. 이 도시에는 뛰어난 의사 지바카가 있었다. 이 의사의 치료 일화는 불교 경전 곳곳에 수록돼 전해진다.

구섬미국 장자의 아들이 병에 걸려 죽었다. 상여에 실리고 나서야 지바카가 도착했다. 그는 시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이 사람은 죽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예리한 칼로 배를 갈라 장의 꼬인 부분을 드러내 부모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마차 타기를 좋아하여 장이 꼬인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장을 본래대로 해 놓고 피부를 꿰매고 약을 발랐다.

이런 개복술과 더불어 개두술도 나온다. 지바카는 머리가 아파서 죽었다는 아가씨의 집으로 가서는 칼로 머리를 파헤쳐 내부의 벌레를 잡고 고약을 발라 꿰맸다. 불경 곳곳에는 오늘날의 외과 수술을 연상하는 이런 지바카의 설화가 여러 차례 반복돼서 나온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고대로부터 상당히 수준 높은 외과 수술이 시행되었다.

이런 인도의 외과 의학을 뒷받침한 것은 수술용 도구다. 수술용 도구는 둔기와 예기로 나뉘는데, 둔기가 101개 예기가 20종류가 될 정도로 많았다. 이런 수술용 도구는 실제로 인도에서 외과 수술이 일상적으로 이뤄졌으며, 그 수준 또한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고대 인도 의학의 특징을 염두에 두면, 화타의 의학은 인도 의학이 중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화타 의학의 기원을 중국 전통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학의 전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스위스 의사학자 지거리스트의 이야기는 나름 해답을 준다.

"어떤 세기에 수준 높은 외과 지식이 있었던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문헌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 지식의 근원은 알기 어렵다. (…) 의학적 관념을 어떤 문화로부터 다른 문화로 옮길 수 없다. 그러나 외과 기술은 그렇게 될 수 있다. 운하나 건축물처럼 수술은 다른 나라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수술 지식이 대륙에서 고루 퍼질 수 있었다."

또 다른 증거도 있다. 앞에서 살펴본 고대 인도의 명의 지바카의 설화는 중국에서 화타나 그와 더불어 최고의 명의로 불린 편작의 설화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이들 설화에는 죽음, 장례, 기사회생의 삼단계가 공통적인데, 다음과 같은 편작의 설화는 그 전형을 보여주는 예다.

"편작이 괵나라를 지나가는데 괵의 태자가 죽었다. 죽은 지 반나절이 되지 않아 도착한 편작은 쇼크사로 규정하고 침을 찔러 기사회생시킨다."

▲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화타의 외과 의학은 전설일까? ⓒmoneydj.com

화타 역시 마찬가지다. <삼국지연의>에는 화타의 진료 기록이 스물한 군데 나온다. 이 중에는 지바카 설화의 개복술과 같은 치료 기록도 있다.

병이 덩어리가 되어 안에 있는데도 침이나 약이 그것에 미치지 못하여 수술해야만 하는 사람은 마비산을 마시고 있으면 바로 취하여 죽은 듯이 알지 못한다. 이때 갈라서 병 덩어리를 꺼낸다. 병이 장속에 있으면 장을 갈라 병 덩어리를 꺼내고 씻고서, 배를 꿰매고 고약을 바른다.

이런 병을 앓는 사대부가 있었다. 화타가 말하기를 "당신은 병이 심하다. 마땅히 배를 갈라야 한다. 그렇게 병 덩어리를 빼면 당신은 10년은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진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사대부는 화타의 의견을 따랐다. 화타가 손을 대 아픈 곳을 찾아내 고쳤고, 그 사대부는 10년이 지나 죽었다.

관우의 기록도 대표적이다. 관우가 독화살로 한쪽 팔을 쓸 수 없게 되자 화타는 칼로 살을 쪼개고 독을 긁어낸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역시 조조의 기록이다. 두통이 심하여 견딜 수 없게 되자 진맥한 화타가 이렇게 조조에게 수술을 권한다.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도 위험한 두 개술이었다.

"대왕의 머리가 아픈 것은 머릿속에 바람이 일기 때문입니다. 병의 뿌리가 골을 싸고 있는 주머니 안에 있으니 약으로는 고칠 수 없습니다. 마비탕을 드시고 잠든 후에 머리를 쪼개 그 안에 바람기를 걷어 내야 합니다."

화타가 말한 마취약인 마비산은 어떤 약일까. 마비산은 대마와 만다라화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마는 의서의 곳곳에 향정신성 약으로 기록돼 있다. <신농본초경>은 "많이 먹으면 사람이 귀신으로 보여 달아난다"고 했고, <명의별록>은 "인삼에 섞어 먹으면 앞일을 미리 안다"라고 말했다.

<중약대사전>을 보면, 만다라의 마취 약효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만다라는 독이 있는데 종자의 독성이 특히 강하다. 가지과의 식물로 흰독말풀 종류이다. 세 알만 씹어도 중독이 될 수 있으며 맥박이 빨라지고 동공이 확대된다. 다량으로 먹으면 혈압이 내려가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조조는 암살의 공포로 평생을 떨었던 사람이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치료법으로 머리를 쪼갠다는 말을 들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예상대로 화타를 옥에 가뒀다. 측근들이 살려줄 것을 간청했지만 조조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화타는 죽임을 당했다. 화타는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의술을 적은 책을 옥리에게 건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옥리도 법을 두려워하여 책을 불태웠다. 한의학에서 외과 의학의 명맥이 끊긴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병세가 깊어지는데다 아들까지 요절하지 뒤늦게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탕액, 침구, 진맥에서 벗어난 이단의 의학은 그렇게 집권층의 무지에 의해서 사라져 버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사상 의학의 뿌리는 조선 성리학

사상 의학 창시한 이제마…과연 '태양인'이었을까?

 

기사입력 2010-08-18 오전 9:35:31

 

체질 의학은 분명히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환자들이 오면 한결같이 자신의 체질을 물어본다. 질병에 집중해서 진찰을 하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고자 이런 농담을 한다. "아무래도 환자분의 체질은 잡상인 같습니다." 같이 웃지만 사실 이런 내심 뼈 있는 대답을 한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한의학의 기본 목표는 음양의 '조화'다. 몸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건강'이다. 반면에 체질 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적 특성'은 음양이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깨졌을 때 잘 나타난다. 대다수 건강한 사람의 체질이 이것인 것도 같고, 저것인 것도 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사상 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삶을 다룬 한국방송(KBS)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체질이 분명한 것보다는 이것도 같고 저것도 같은 잡상인이 가장 좋은 체질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체질 의학, 사상 의학에 혹하는 것일까? <태양인 이제마>와 같은 드라마로 더욱더 유명해진 체질 의학 혹은 사상 의학은 한의학 역사상 가장 이단적인 학문이다. 특히 한국 한의학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중국의 많은 사대부 유학자는 의사들의 단편적 경험을 모아 이것을 중국 의학의 이론으로 승화했다. 반면에 한국의 유학자는 한의학을 깊이 연구하여 이론으로 승화시킨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의학을 이론화한 사상 의학은 한국 한의학의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다.

수차례 언급했듯이 음양오행은 한의학의 핵심이다. 사상 의학은 이런 음양오행의 '중심'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틀을 만들었다. 사상 의학이 이 논쟁을 제기하기 전까지, 한의학자는 대개 "빈 것이 모든 것을 살린다(無用之用)"는 노자의 견해를 따랐다. 인체에서 빈 곳은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긴 소화관이며 오행상 '토(土)'이다.

노자의 견해를 내세웠지만 이런 생각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팽이가 축을 중심으로 돌다가 균형이 무너지면 쓰러지듯이 인체의 중심에 있는 소화관에 문제가 생기면 몸의 균형이 깨져서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여겼던 것이다. 소화관의 끝인 항문을 뚫는 처방(변비약)인 승기(承氣)탕의 이름이 끊어진 기를 이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의학은 바로 이런 생각에 딴죽을 걸었다. 사상 의학은 '심(心)'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이런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선의 성리학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성리학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심(心)+생(生)'이다. 심은 사유 능력이나 판단 능력을, 생은 태어나면서 갖는 자연스런 욕구 본능을 의미한다.

성리학에서 중국의 이기론과 조선의 이기론은 차이가 있다. 중국 유학은 우주의 생성 변화를 이해하고 그 일부로서 인간의 성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조선 유학은 애초에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의 정신 작용을 설명하고, 그것에 따른 판단과 행위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 초점을 맞춘 조선 유학은 그 정신 작용의 근본이 되는 심((心)을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보았다. 사상 의학이 체질 불변의 법칙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 활동의 중심인 것처럼, 체질 역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변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학습에 따라서 '심'이 달라진다고 보면서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 것과 대조적이다.)

사상 의학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은 형표기리(形表氣裏)이다. 속에 있는 기가 외부 형태를 좌우한다는 이야기다. 체질을 감별할 때 상체나 하체의 크기를 비교하고 머리나 팔의 길이를 비교하는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여기에도 심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심의 기가 외부로 나타나는 것이 형태라는 논리의 일관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 논리를 제공한 이는 한말 전라도의 거유인 노사 기정진이다. 그는 심을 인체 기의 가장 순수한 뿌리인 정상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기가 샘처럼 솟아난다고 보았다. 이제마가 100년 뒤 자신의 의학이 빛을 볼 것이라 예언했듯이, 기정진도 자신의 논리를 적은 문서를 100년 뒤에 꺼내 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그의 학문적 뿌리로는 운암 한석지가 꼽힌다. 그가 가장 아꼈던 <명선록>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살펴봤듯이 사상 의학은 조선 유학의 성리학의 바탕 위에 한의학의 논리를 재구성해 인본주의적 사상으로 구현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도교의 영향을 받은 서경덕 학파의 논리 속에서 '정기신' 론을 내세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토종 의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 의학은 과연 성공했을까? 그 답은 다음에 찾아보자.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양동 마을의 무첨당 ~ 집이 곧 그 사람의 본모습이거늘…

기사입력 2010-08-25 오전 10:38:47

 

지난 7월 31일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택이 있어 아름다운 양동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기계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삼거리가 있다. 포항에서 안강으로 차를 몰다보면 이 삼거리 신호등 앞에 머무른다.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두 물이 만나는 편안한 풍광이 아주 멋스럽게 펼쳐진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가 하나를 만나면 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사다. 그러나 물은 아무런 말이 없다. 기계천과 형산강의 두 물줄기도 서로를 아우르고 다독이며 더 큰 흐름을 만들면서 조용히 낮은 곳으로 흐를 뿐이다. 물이 더 많아졌는데 그러니까 기세가 더 세졌는데도 흐름이 오히려 느려진 것도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물은 둥근 모양이 되고,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이 된다. 이렇게 늘 모양을 바꾸면서도 물은 자기 정체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불 난 데는 건질 물건이 있지만, 물이 지난 데는 건질 물건이 없다는 말처럼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정화한다.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 마을 전경. ⓒ뉴시스

양동 마을로 들어서면 멋스런 고택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나는 외관의 풍경보다 고택에 깃든 정신에 주목하고 싶다.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가옥 구조와 가옥 주인은 서로 닮는다. 그러고 보면 집 짓는 이의 마음이 사람들의 사고와 심리를 지배하고, 결국에는 문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인만의 질병인 화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원래 불같은 속성을 가진 한국인은 그를 보완하고자 열린 가옥 구조를 선호했다.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소쇄원(瀟灑園)과 식영정(息影亭)은 자연을 향해서 열린 건축의 대표다. 이곳에는 사람과 자연이 동화하려는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쇄'와 '식영'에 담긴 교훈도 구조와 다르지 않다. '소쇄(瀟灑)'는 송나라 때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두고 "가슴에 품은 뜻이 맑다"고 한 말을 양산보가 옮겨 놓은 것이다. <채근담>의 "바람과 꽃의 소쇄로움이나 눈과 달의 맑음은 자연의 참모습을 닮은 고요한 자의 것이다"란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식영(息影)'은 노자(老子)가 언급하는 자연과의 동화다. 목적으로 치닫는 삶은 잊고 그림자마저 쉬게 하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려는 염원이다. 전라도의 소쇄원과 식영정에서 노자 스타일의 물아일체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양동 마을의 고택 무첨당에서는 유가 스타일의 미를 확인할 수 있다.

무첨당의 아름다움도 소쇄원, 식영정에 못지않다. 금방이라도 꽃이 필 듯 윤기가 오른 배롱나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연륜이 쌓일수록 운치를 자랑하는 매화나무, 여기에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소리, 기왓장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소리, 산새의 노랫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인공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다.

무첨당(無添堂)의 '무첨(無添)'은 "태어난 그대로의 심성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으로 천진난만한 본심을 일컫는다. 집 이름에 당이 들어간 것은 집이 곧 자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완당(阮堂)으로 호를 정한 것도 집을 자신의 육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첨당에는 끊임없는 수양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결국 집도 자기 자신을 닮으리라는 혹은 '무첨당'이라는 이름처럼 살겠다는 선비 정신이 담겨 있다. 이런 무첨당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집에서 사리사욕만 따지는, 집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는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서 무첨당을 지은 옛 조상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인셉션>과 '호접몽' ~ 프로이트를 비웃은 <인셉션>…결말의 비밀은?

기사입력 2010-09-01 오전 10:37:51

 

영화 <인셉션>을 지탱하는 두 축은 동서양을 가로지른다. 서양에서 온 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나눈 프로이트의 심리 치료다. 동양에서 온 것은 삶 자체가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물음이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줄거리를 얘기해 보면 이렇다. 남의 꿈에 접속해 생각을 훔치는 주인공 코브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도망 다니다 사이토를 만난다. 사이토는 라이벌 기업의 후계자의 생각을 바꿔달라는 제안을 한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죄를 없애준다는 엄청난 보상이 따른다.

기계로 연결된 사람들이 꿈을 공유하고, 타인의 꿈을 설계하며, 꿈을 통해 의식을 바꾸는 과정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문법 속에 버무려졌다. 제목처럼 이런 줄거리를 관통하는 핵심은 '인셉션'이다.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읽고, 그것에 개입해 타인의 생각을 변화시킬 것인가?

<인셉션>에서 중요한 장면은 후계자인 피셔가 아버지의 금고를 열어 바람개비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바람개비는 피셔가 어려워했고 두려워했던 아버지와 자신과의 애정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속 유언이 들어있으리라 예상했던 곳에서 아버지와 자기가 같이 만든 바람개비를 보면서, 피셔는 아버지와 화해한다.

ⓒinception2010.co.kr
이것은 전형적인 프로이트의 심리 치료의 한 전범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마음은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 의식은 "현실 사회에 적응해서 일상을 살아가는 의식할 수 있는 나"이다. 무의식은 내가 모르는 나이다. 프로이트는 의식의 힘이 느슨해져 있을 때, 꿈을 통해서 이 무의식이 실체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무의식에 대해서 아는 일("무의식의 의식화")을 통해서 마음의 병의 원인을 파악하면 심리 치료가 가능하리라고 보았다. <인셉션>에서 피셔가 어린 시절 무의식에 각인돼 있었던 아버지의 애정이 담긴 바람개비를 보면서, 아버지와의 뿌리 깊은 불화를 극복하는 것은 바로 이런 프로이트식 심리 치료 과정이다.

그렇다면, 동양의 흔적은? 역시 <인셉션>에서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는 꿈인지 현실인지를 판가름하는 팽이가 쓰러질듯 말듯하면 결말을 내리기 때문이다. 코브가 겪은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묻는 것이다. (코브를 모험으로 이끈 사이토가 일본인(동양인)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굳이 장자의 "호접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꿈속의 꿈'이라는 화두는 동양의 여러 사람을 사로잡았다. 예를 들자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이슬로 태어나 이슬로 사라지는 내 운명이로다. 오사카의 영화는 꿈속에 꿈이던가."

일본과 조선의 수많은 백성을 전쟁의 고통으로 이끌던 권력욕의 화신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수많은 전쟁으로 얻었던 권력이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분명한 깨달음과 함께,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엇인지 묻는 허망함이다.

오다 노부나가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156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만찬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인생은 덧없는 꿈, 태어나서 죽지 않는 자 그 어디 있으랴."

도쿠가와의 대답은 좀 더 현실적이다.

"서쪽은 십만억토로 아득하고 먼 세상이지만 이 곳 역시 내가 사는 불국의 나라다."

이렇게 일본 전국시대를 풍미한 세 사람 모두 비슷한 철학을 공유한 것이다.

이런 시각은 <채근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요한 밤, 종소리가 꿈속의 꿈을 깨라고 부른다."

마치 <인셉션>에서 꿈을 깨고자 충격을 주는 장면을 연상하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불교적 관점이다. 일체가 고요한 가운데 마음의 바탕을 깨우치면 삶이 꿈에 불과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삶이 꿈이므로 깨어서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얘기다. 부처라는 말도 바로 대각자 즉, 크게 깨어있는 자라는 뜻 아닌가.

이처럼 <인셉션>에 나타난 동서양의 두 관점은 꿈에 대한 양측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서양은 몸과 마음을 구별한 다음에, 마음을 그 자체로 분석한다. 그러니 남의 마음에 개입해서 심지어 다른 의식을 심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적 관점은 다르다. 이 모든 일이 허망한 꿈일 뿐이라는 결론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꿈을 어떻게 파악할까? 예로부터, 한의학은 몸과 마음이 함께 작용한 결과가 꿈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꿈을 마음만의 작용으로 본 서양의 관점과는 명백히 다르다. <동의보감>의 꿈의 해석을 보면, 이런 입장을 잘 대변한다.

"간의 기운이 실하면 화내는 꿈을 꾸고, 간의 기운이 허하면 버섯이나 산의 풀이 보인다."

즉, 오장육부라는 신체적 허실이 꿈의 내용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 질환에 많이 쓰이는 약이었던 용골, 모려는 어떤 원리로 처방된 것일까? 여기서도 심신일치의 관점이 강조된다. 용골, 모려는 '정(精)'을 만들고 보존하는 약이다. 정은 육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고도로 집적된 것이다.

즉, 몸의 에너지를 보충함으로써 정신 질환을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던 한의학의 관점이 잘 드러난다. 문명이 안겨준 각종 환상 때문에 현실과 꿈의 경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때야말로, 바로 이런 관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녹용의 효능 ~ 녹용에 집착한 김 부장, 쓰러진 이유는…

기사입력 2010-09-08 오전 10:52:34

 

녹용의 효능

세간에서 권하는 모든 보약은 녹용에서 시작된다. 녹용은 몸을 보양하는 약의 상징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양'이란 양허증을 치료하는 것을 뜻한다. 양허증은 몸에서 '양'이 모자라는 것을 뜻하는데, 추위를 몹시 타는 것, 허리·다리·무릎에 힘이 없는 것, 배가 자주 아픈 것, 설사를 자주 하는 것, 오줌이 자주 마려운 것, 정력이 약해지는 것, 몽설과 유정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렇다면, 보양을 하는 데 으뜸으로 쳤던 녹용은 아무나 먹을 수 있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녹용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다. 태종 17년 5월 9일자 기록이다.

"녹용은 사냥을 해도 열에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또 (녹용을 자르는 시기인) 5월에는 (녹용을 구하는 일은) 농사에 방해가 되고, (녹용은) 절실히 필요한 약도 아니니 (나라에 바쳐야 할 녹용의) 숫자를 감해 주십시오."

정조 8년에도 같은 녹용 구하기의 어려움을 탄식한 비슷한 기록이 나온다.

"공물로 바치는 녹용 한 대의 값이 거의 200금에 가까운데 그 근원의 폐단을 캐봐야 합니다."

이런 상소를 감안하면 녹용은 일반 백성에게는 언강생심 '그림의 떡'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녹용의 품질도 문제가 되었다. 녹용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을 보자.

"약원에 올린 용재(녹용)를 보면 (상태가 안 좋아서) 번번이 얼굴이 찌푸려져서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지를 못하겠으니, 이런 용재를 놓고 어찌 신령한 효과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이렇게 구하기도 어렵고, 막상 구한 녹용도 그 품질을 의심받는 상황에서도 녹용에 대한 집착은 계속되었다. 도대체 녹용의 보양 효과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앞에서 살펴본 '보양'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녹용의 보양 효과는 정력 강화의 의미가 크다. 한의학에서는 녹양의 보양 효과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선, 사슴은 예로부터 정력이 센 동물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자면, <포박자>나 <본초강목>에 언급된 다음 내용이 그렇다.

"종남산에 사슴이 많은데 항상 한 마리의 수컷이 수십 마리의 암컷과 교미한다." <포박자>

"사슴은 성질이 아주 음탕하다." <본초강목>

특히 사슴의 뿔에 주목한 까닭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세상의 수많은 동물의 뿔 중에서 뿔 속에 피가 흐르는 것은 녹용밖에 없다. 뿔은 머리뼈의 연장으로 차갑고, 피는 따뜻하다. 이렇게 차가운 뼈를 뜨거운 피가 밀어서 튀어나온 모습은 양적인 힘이 아주 강한 것을 상징한다.

실제로 녹용은 뼈를 강하게 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한의학에서 양기가 부족해서 생긴다고 보는 골다공증, 허리 통증, 소아의 성장 부진에 녹용이 유효하다. 녹용의 양기를 채워지는 효과는 혈액이 쏠리면서 팽창하는 남성의 발기에도 좋다고 여겼다. 남녀를 막론하고 녹용이 최고의 보약인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녹용에 집착한 것은 동양뿐만이 아니었다. 제정 말기 러시아의 라스푸틴은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병세를 녹용으로 호전시킨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괴승으로 고려 때 신돈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치료 능력, 예지 능력 등으로 왕과 왕비의 신임을 얻지만, 난잡한 행실로 제정 러시아의 최후를 재촉했다.

라스푸틴이 괴승으로 유명해진 것은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 때문이다. 그를 러시아의 적으로 규정한 귀족들이 독약이 든 음식을 먹였음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심지어 총을 쏘고 강에 던졌는데도 사인은 익사로 밝혀질 정도로 생명력이 강했다. 어쩌면 그런 괴력은 그가 처방했던 시베리아산 녹용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녹용은 숫 사슴의 갓 자란 뿔을 채취 가공하여 말린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녹용은 매화록, 마록, 뉴질랜드산 등이 있는데 <본초강목>의 기록에 따르면, 마록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마록은 원용으로도 불리는데 가장 효능이 뛰어나며 열이 있는 사람은 약간 띵한 느낌이 올 정도로 약효가 강하다.

엄밀하게 구분하면 녹용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녹용을 오래 두어서 차츰 칼슘이 침착돼 굳어진 뿔은 녹각이라 한다. 뿔이 돋아나온 이듬해에 저절로 떨어진 것은 낙각이다. 녹용, 녹각, 낙각은 용도는 비슷한데 녹각이 녹용보다 훨씬 못하고, 낙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효가 떨어진다.

사슴뿔을 푹 고아 우러난 물을 다시 졸여서 엉기게 한 것을 녹각교라 하고, 그 찌꺼기를 가루로 만든 것이 녹각상이다.

녹혈에 대한 이야기도 <본초강목>은 적고 있다.

"녹혈주는 사생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가 약초 채취를 위하여 산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다. 사슴 한 마리를 포획하여 채혈한 다음 피를 음용하고 나니, 집에 돌아올 때 기혈이 충성하여 통상인과 다른 점이 있었다."

녹용에 대한 재미있는 기록은 또 있다. <본초강목>은 은중감의 말을 빌려 "사슴 중에 흰 사슴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이수광의 <지붕유설>에도 흰 사슴의 기록이 있다. 백록담이라는 이름은 이런 전설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한라산에는 사슴이 많다. 여름밤이면 사슴들은 시냇가에 나가서 물을 마신다. 한 사냥꾼이 시냇가에서 숨어보니 몇 천 마리 가운데 한 마리 사슴이 으뜸이고 빛깔이 흰데 그 등위에는 머리털이 하얀 늙은이 하나가 타고 있었다. 이 말은 자순 임제의 '남명소승'에 나오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녹용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머리에 열이 많은 사람, 흔히 소양인이나 태양인 체질로 분류되는 사람에게는 혈액이 용솟음치는 녹용은 독에 가깝다. 정력에 좋다고 무조건 녹용 타령을 하다가는 큰 일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아무리 좋은 약도 상황에 맞지 않는 처방은 독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콧물을 찾아서 ~ 노란 콧물이 사라진 세상…"내 코를 살려줘!"

기사입력 2010-09-15 오전 10:32:33

 

여름이 끝나고 가을바람이 불면 불안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이다. 사시사철 막힌 코를 달고 다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에 잠시 코가 뚫렸던 사람도 맹맹한 코와의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그 많은 노란 콧물은 사라지고 맑은 콧물이 흐르는 알레르기만 우리를 괴롭힐까? 소설가 김주영의 옛추억 이야기를 읽다 보면, 콧물에 대한 이야기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김주영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콧물은 우리가 요즘 보는 맑은 것이 아니라 노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싯누런 콧물을 줄곧 인중에 매달고 다녔다.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 두 줄기의 콧물이 입술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 하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아이들은 훌쩍 숨을 들여 마셨다. 그러면 두 줄기의 콧물은 잽싸게 콧구멍 속으로 퇴각해서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고 인중에는 두 줄기의 콧물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린 하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나 콧속으로 들어간 콧물은 어느새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인중을 타고 내린다. 시달리다 못한 아이가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하여 옷소매로 인중을 쓱 문지른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의 윗도리 양쪽 소매는 말라붙은 콧물로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지금은 이런 노란 콧물을 거의 보기가 힘들어졌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손수건을 반드시 명찰 근처에 매달던 모습도 사라졌다. 지난 수십 년간 거리 풍경뿐만 아니라 코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 20년간 내가 치료한 환자의 모습을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의원을 시작해서 코를 치료한 지 20년이 넘는 동안, 손수건을 들고 학교에 입학했던 환자가 어른이 되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20년 전만 해도 치료의 대세는 바로 노란 콧물, 즉 축농증을 없애는 것이었다. 옛날에도 비슷했다. <동의보감>에도 노란 콧물을 치료하는 처방이 다수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축농증을 치료하는 외용약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부비동에 있는 콧물을 빨아내는 과체산이다. 과체는 참외의 꼭지를 가리키는 약재 용어다. 참외 꼭지를 비롯한 네 가지의 약물이 들어가는데 코에 넣으면 강력한 배농 작용이 있어서 노란 콧물이 흘러내리면서 축농증 증상이 완화된다. 이 과체산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20년 전에 필자가 환자를 치료하던 경상북도 안강과 포항 사이에는 해병대 초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어서 이 해병대 초소에서 검문을 받아야 포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멋있는 헌병이 버스 승객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앞뒤 자리를 확인하는 모습은 젊은 여성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근엄한 헌병에게 웃음 폭탄을 안겼던 것이 바로 코 밑에 붙인 하얀 반창고였다. 과체산 탓에 쏟아지는 콧물을 막고자 코 밑에 하얀 솜을 넣고 반창고로 고정시킨 환자가, 헌병을 보자마자 "암호명 갑산입니다!" 하고 외쳐서 헌병은 물론이고 버스 안의 사람이 다 웃었다는 것이다.

영천 시장 등에는 과체산을 몰래 만들어서 파는 사람도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손자가 콧물을 흘리는 것을 보다 못해 이 과체산을 구했다. 집으로 간 할아버지는 손자가 자는 코에 대고 가루를 불어넣었는데, 양을 조절하는데 실패한 나머지 과체산에 기도가 막혀서 손자가 죽었다. 노란 콧물이 사람을 잡은 것이다.

물론 요즘도 가끔씩 노란 콧물이 흘러내리는 환자가 온다. 이런 환자들 때문에 참외 꼭지를 사다가 과체산을 만들어 보았는데 약효가 예전만 못하다. 참외 꼭지가 중국산이어서 그런가 생각해서, 집에서 먹는 국산 참외 꼭지를 직접 말려서 과체산을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약효가 없었다.

왜 그럴까? 요즘은 참외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다보니, 참외 꼭지가 제대로 쓴맛을 내지 못하는 탓이다. 참외 꼭지는 자연 햇빛을 받아야 쓴 맛이 강해지고, 이 쓴 맛을 내는 성분이 배농 작용을 한다. 상당한 파장의 빛을 비닐이 반사, 흡수하니 참외 꼭지가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참외 꼭지의 약효가 예전만 못해도 요즘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노란 콧물 때문에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20년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요즘에 한의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다. 사실 많은 한의사들이 알레르기성 비염에 나름의 치료 방법을 내놓았다.

그 중 대표적인 처방이 소청룡탕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에 이것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몇 년 전부터 많은 한의원들이 "비염 전문" 간판을 내걸고 환자를 모은다. 그러나 이 소청룡탕 처방은 반쪽짜리 치료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알레르기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는 인체의 면역 체계가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인체의 면역 반응을 겉으로 드러나는 생리 현상을 놓고 보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체온을 높여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접근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점액을 분비해서 씻어내는 것이다. 전자는 양기와 관계가 있고, 후자는 음기가 관련이 있다.

소청룡탕 류의 처방은 체온을 높여서 콧물을 없애는 식의 양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소청룡탕으로는 음기를 다스릴 수 없다. 코가 건조해서 생기는 알레르기, 즉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심한 증상을 다스리는 데 소청룡탕이 효과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의 점액이 마르면서 생기는 알레르기는 점액 분비와 관계되는 음기를 다스려야 한다.

그렇다면, 음기는 줄어들면서 점액이 사라지는 현상은 왜 나타난 것일까? 음기가 줄어든 것은 곧 반대편인 양기가 과잉된 것이다. 우선 현대인의 식습관이 고추, 마늘, 커피, 인삼, 양파 등 양기를 북돋는 먹을거리에 많이 노출된 탓이 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현대인의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다.

몸속의 점액과 알레르기성 비염과의 관계는 또 다른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코가 마르면서 발생하는 비염 때문에 한의원을 찾는 환자는 대개는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토피성 피부염 역시 점액이 피부에서 분비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면, 이 질환의 정체를 한 번 더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콧물이 사라지면서 알레르기가 유행한다는 견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면역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일본의 타다 도미오의 견해도 이와 유사한다.

"왜 알레르기가 늘었을까? 즉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환경의 변화다. 대기오염과 영양 과다, 스트레스의 증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황산가스, 오존, 자동차 배기가스 등도 확실히 기도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이 알레르기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어린이의 코와 목구멍의 감염증이 변화한 것이다. 내가 어려서는 아이들이 늘 노란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소매끝으로 닦고 있어서 소매 끝은 늘 반질반질해 있었다. 노란 콧물에는 녹농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세균이 있었고 그것이 분포하여 면역계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노란 콧물이 사라진 세상은 바로 음기가 소진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등도 새로운 치료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노란 콧물이 왜 사라졌을까, 그 대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한의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마음을 씻는 송편 ~ 백발 노인이 솔잎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기사입력 2010-09-23 오전 10:59:53

 

어제(22일)는 한가위였다. 이날의 상징은 송편이다. 그렇다면, 송편을 찔 때 솔잎을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사람이 송편을 찔 때 솔잎을 넣었던 첫 번째 이유는 '벽사' 기능이다. 옛사람은 두창(천연두)이 유행하면 이른바 '마마 귀신'의 침입을 막고자 솔잎을 넣은 싸리 바구니를 처마에 매달았다. 또 집안에서 출산을 하면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고자 대문에 금줄을 치는 풍속이 있었다. 이 금줄에도 솔잎을 꽂았다. 모두 솔잎의 벽사 기능을 염두에 둔 풍속이었다.

이런 벽사 기능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근거가 있다. 솔잎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여러 가지 살균 물질을 배출한다. 이런 살균 물질은 부패를 유발하는 세균도 죽인다. 더위가 여전한 음력 8월 15일의 날씨를 염두에 두면, 냉장고가 없던 예전에는 떡의 빠른 부패가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솔잎은 바로 떡의 부패를 막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소나무에는 시킴 산(shikmic acid)이 들어있다. 이 시킴 산을 주원료로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치면 항바이러스제를 제조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2009년 신종 플루가 유행했을 때 주목을 받았던 타미플루다. 실제로 시킴 산을 추출하는 대회향이 약재로 오랫동안 쓰인 사실을 염두에 두면 솔잎에 벽사 기능이 있다고 믿었던 조상의 풍속이 예사롭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소나무도 예전부터 약재로 쓰였다. 복령(복신), 호박이 대표적이다.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 공생하는 외생 균 덩어리를 말하는데, 심신을 안정시키고 입맛을 돋우고 구역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이 복령은 흔히 '총명탕'에 기본 약재로 처방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건망증을 낫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하는데도 효과가 있다.

호박은 송진 따위가 땅속에 묻혀서 단단히 굳은 것을 일컫는다. 호박은 복령(복신)보다 좀 더 향정신성 약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호박이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헛것에 들린 것을 치료한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서 확인된다. 이런 호박의 기능에서도 옛사람이 소나무를 벽사 기능과 연결시킨 이유를 알 수 있다.

또 솔잎은 신선이 되는 음식으로도 알려졌다.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를 살펴보면, 중국의 갈선공은 솔잎을 상식하여 변화술의 묘리를 얻어 장수한 선인이다. 신선전의 황초평도 복령과 송진만 먹고 나중에 적송자라로 불린 장수한 선인이다. 이런 설화 탓인지 솔잎은 요즘에도 신선이 먹는 음식이라며 선식의 주성분이다.

 
솔잎을 장기간 생식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흰 머리가 검어지며, 힘이 생겨서 추위나 배고픔을 모른다는 것.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런 효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솔잎의 옥시팔라민이라는 성분이 젊음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 내가 주목하는 것은 솔잎이 주는 '청정한 여유'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의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언제든지 솔잎과 함께 찐 송편을 구입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단지 돈뿐이지 솜씨, 노력, 정성이 아니다. 이런 송편에서 추석 먹을거리 구석구석에 깃든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실 속에서 우리는 경제적 풍요와는 반대로 마음의 허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집중 호우와 교통 체증을 뚫고 고향으로 가는 것도 바로 이 허기를 채우려는 이유 때문이 아닌가?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솔잎과 함께 찐 송편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왕들의 건강법 ~ <동이> 숙종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장희빈이 아니라…

기사입력 2010-09-29 오전 9:37:09

 

조선 시대의 왕은 한 '개인'이 아니다. 하늘, 땅, 사람을 이어주는 천명의 계승자다. <설문해자>는 왕을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에 문자를 만들 때 세 번 줄을 그어서 그 가운데를 연결시키는 것을 왕(王)이라고 한다. 삼(三)은 하늘, 땅,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당연히 왕의 건강, 질병, 치료는 국가의 안위를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다. 왕의 건강 관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학문적 시스템도 마련했다. 왕을 치료하는 어의에 숙련된 궁중 의사뿐만이 아니라, 세간의 뛰어난 명의를 포함시킨 것은 그 예다.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 의사만 참여한 것도 아니다. 어의들의 다양한 치료의 타당성은 유학자인 제조들이 검증했다. 질병 해석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선을 선택한 열린 의료 체계였던 것이다. 이런 식의 '협진' 체계는 오늘날 동서양의 의료 모두 눈여겨봐야 할 모습이다.

질병과 치료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도 수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향약'이라 불렸던 토속 의료가 주류 의학에 체계적으로 편입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검증한 향약이 숙련된 의사와 유학자를 통해서 의학으로서의 가치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국내 의학의 성과에 중국 의학을 접목해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이용은 제한적이었다. 17세기 조선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하멜 표류기>가 "의원은 고관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일반 백성이 의원을 부를 여유가 없다"고 꼬집은 것은 그 한 예이다.

최고의 의료를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왕이 무병장수를 누린 것도 아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에 불과하다. 그들은 왜 단명했을까? 답은 바로 오늘날에도 만병의 근원인 과로와 스트레스다. 특히 스트레스는 대부분의 왕들이 토로하는 가장 기본적인 병이었다.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종은 "본인은 본래 병이 있어서 밤이며 마음속으로 번민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세종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한 의원은 "전하의 병환은 맥의 상부는 성하고 하부는 허하므로 정신적으로 과로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세조도 질병이 끊이지 않아서 꿈속에서 본 칠기탕(七氣湯)에 현호색을 복용했다.

칠기탕이 기가 막혀서 발생하는 질환 즉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처방이었음을 염두에 두면, 세조 역시 화병이 이었던 것이다. 세조뿐만 아니라 연산군, 광해군, 중종 또 최근 드라마 <동이>에 등장하는 숙종도 한결같이 속에 화가 있는 화병에 시달렸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또 다른 골칫거리는 종기였다. 이것은 세종, 문종과 같은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가장 지긋지긋한 질병이었다. 효종은 종기를 치료하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숨을 거뒀고, 정조 역시 종기를 치료하다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바로 이 종기의 원인도 바로 '화(火)'다. <동의보감>을 보자.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흔히 이런 병이 생긴다." "아픈 것, 가려운 것, 창양, 옹저, 저, 진, 유기, 멍울이 생길 때 속의 답답함이 심한 것은 다 화열에 속한다. 이때 불에 가까이 해서 약간 덥게 하면 가렵고 몹시 뜨겁게 하면 아프다. 불에 닿게 하면 헌데가 생긴다. 이것은 다 화의 작용이다."

스트레스가 종기를 유발하거나 안질 등 다른 질환의 내재적 원인이었다면, 과로로 생긴 피로는 육체적으로 가하는 고통이었다. 조선의 왕은 근본적으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추구하였다. 내적으로는 성인 같은 인격을 완성하고 외적으로는 왕다운 왕 노릇을 하라는 규범이다.

성인 같은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 학문에 매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연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매일 신하들과 학문에 대해 토론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일 수밖에 없다. 업무와 공부가 반복되고 신하에게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 잠까지 줄이면서 건강에는 붉은 경고등이 켜진다. 초조감이 쌓여 잠을 잘 수 없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게다가 잦은 술자리와 잠자리는 무장의 후예인 강철 같은 그들의 체력을 소진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세조의 경우는 단적인 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어렸을 때 방랑한 혈기로서 병을 이겼는데 여러해 전부터 질병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왕위에서 쫓겨난 이들은 장수했다. 정종은 어렸을 때부터 허약해 주변의 걱정거리였지만,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는 63세까지 살았다. 태조 이성계도 왕을 내놓고 74세까지 장수했다. 광해군도 재위 기간에는 화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을 호소했으나 폐위된 후에는 67세까지 살았다.

이런 예를 보면 뛰어난 명의, 신경 쓴 음식이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과로를 피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법임을 알 수 있다. 건강에는 요행수가 없다. 진실이 이런 데도 '한 방'에 건강을 보장해주는 비법을 내세우고, 이에 혹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뻔히 보이는 건강의 진실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국화 옆에서 ~ 눈·코 탓에 괴로운 당신…"커피 대신 국화차를!"

기사입력 2010-10-06 오전 10:06:27

 

국화(菊花)의 '국(菊)'은 '궁(窮)'의 뜻으로 풀이된다. 궁은 무궁화에서 쓰이는 것처럼 끝까지 간다는 뜻이다. 국화가 만개하는 가을은 꽃이 필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이니 '마지막 꽃'이라는 이런 풀이가 그럴 듯하다. 거기에는 끈질기게 풍파를 이겨낸다는 뜻도 들어있는데 이는 국화의 생태와도 부합한다.

꽃을 피울 때 대부분의 식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과정에서 성장이 느려지고 시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화는 잎, 줄기가 시들어도 계속 개화 상태를 유지하는 끈질긴 생명력이 특징이다. 꽃꽂이를 할 때 국화를 다른 꽃과 꽂으면 다른 꽃이 일찍 시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국화의 생명력에 다른 꽃이 치이기 때문이다.

한편, 사군자(매화·난초·국화·대나무) 중에서 국화는 가을의 덕을 상징한다. 특히 가을 서리 속에서 노랗게 피어나는 모습은 모진 시련을 무릅쓰는 선비의 모습과 겹친다. 여름의 더운 열기를 거두어 가을에 화사한 꽃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갑고 서늘한 기운도 연상한다.

국화의 이런 특징을 두고 <신농본초경>은 국화가 안구 건조증("눈이 빠질 것 같고 눈물이 흐르는 증상을 치료한다")을 치료한다고 보았다. 한의학의 논리로 설명하면, 눈은 불의 통로다. 불의 통로인 만큼 눈물이 잘 마를 수 있다. 눈물을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기름과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맹물과 같은 것이다.

안구 건조증은 기름과 같은 눈물이 마른 것이다. 이 눈물은 점액의 증발을 방지하면서 외부의 자극을 완충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외부 변화(온도, 습도, 먼지 등), 스트레스 등에 예민해진다. 안구가 건조하면 툭하면 가려워서 손이 가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의원을 찾은 안구 건조증 환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모래 같은 이물질이 있는 것 같고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난다", "지하철의 먼지가 느껴져 지하철이 두렵다", "햇빛은 물론이고 형광등 밑에서도 눈을 뜨기 힘들다" 등의 증상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안구 건조증을 치료하려면 인체의 뿌리인 신장에 저장된 액을 눈까지 끌어올려 눈물샘을 채워줌으로써 열을 잠재워야 한다. 잎, 줄기가 시들어도 뿌리에서 진액을 끌어올려 개화 상태를 유지하는 국화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특징을 가진 국과가 안구 건조증에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안구 건조증에 국화가 효과가 있다.

국화는 쉽게 구할 수 있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차를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국화차를 자주 마시면서, 덤으로 역시 분류상으로 국화과에 속하는 감국으로 우려낸 차를 냉장고에 넣었다 식혀서 눈에 한두 방을 넣어주면 눈이 훨씬 편해진다. 한의원에서는 여기다 황련이라는 찬 성질의 약을 더해서 점안 약으로 처방한다.

국화차는 안구 건조증뿐만 아니라 알레르기 비염에도 좋은 효과를 보인다. 바람, 온도와 같은 외부 변화에 대해 콧물, 재채기, 가려움 등으로 대응하는 내부의 조절 작용을 돕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국화가 바람, 서리를 오히려 생기로 바꿔서 꽃을 피우는 것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 국화는 머리로 열기가 솟구쳐 눈이 붉어지고, 귀가 울리며, 머리가 어지러운 증상도 완화시킨다. 국화가 뿌리에서 진액을 꽃까지 올리듯이, 맑고 찬 진액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열기를 식혀준다고 본 것이다. 국화꽃을 말려서 베개 속에 넣고 자면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이런 효과 때문이다.

이런 국화의 약효 탓인지 예로부터 그것은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식물이었다. 현대 의학에서도 국화는 중추 신경 진정 작용, 혈압 강하 작용,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달라도, 한의학이 오랫동안 국화의 약효를 확인해온 것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가을이 오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을 많이 암송하지만, 내가 보기에 국화의 본질을 잘 표현한 시는 김용택의 '국화'이다.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됩니다 (…)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바람이 불면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음향 대포 ~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음향 대포가 무서운 진짜 이유는?

기사입력 2010-10-14 오전 8:59:37

 

좋은 일도 생각보다 나쁘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상계동에 사는 한 할아버지 환자의 경우다.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 때 밴드 공연이 있었다. 하필이면 바로 옆자리의 할아버지 귀에 강렬한 밴드 음악이 작렬한 것이 문제였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삶이 달라졌다.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는 것은 물론이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어지러운 증상도 생겼다. 얼굴은 붉어지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난청도 같이 왔다. 칠순 잔치가 지옥 잔치로 변한 것이다.

귀를 강하게 맞거나 귀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있거나 해서 내이의 신경이 장해를 받아 생기는 것이 '음향 외상'으로 이른바 '급성 감음 난청'이다. 헤드폰을 끼고 크게 음악을 듣거나 나이트클럽 등에서 큰소리에 귀가 손상을 입게 되면, 그 직후 강한 이명이 생기면서 감음 난청이 생기는 것이다. 때로는 귀에 통증이 있기도 한다.

이런 감음 난청의 가장 많은 원인은 역시 총소리다. 소리이비인후과 팀이 지난해 병원을 찾은 20~30대 남성 가운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성 난청 환자 165명의 발병 원인을 조사한 결과 41% 가 소음으로 인한 난청이었고, 이 중 70%인 47명은 군에서 총성에 의한 음향 외상 난청을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리는 사실 마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공포 영화에서 소리를 빼면 '팥소 없는 찐빵'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명·현기증은 초조, 불안, 공포 등의 정신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내원했던 남해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도 이런 괴로움 탓에 음독을 해 필자의 마음을 섬뜩하게 했다. (다행히 치료를 하고 나서 많이 호전되어 안심했다.)

이런 이명 등이 야기하는 정신 불안은 여러 가지 심각한 증상을 낳는다. 예를 들자면, 한 번 심한 이명과 현기증을 경험하면 '또 그런 이명(현기증)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할 경우에는 이명이 오지 않을 때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거나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몰려버리는 환자도 있다.

'이대로 미쳐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의 심한 이명·현기증을 겪고 나면, 가벼운 이명과 현기증만으로도 패닉 상태에 빠져 구급차를 타는 경우도 있다. 또 검사를 받아도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안심하면 괜찮지만 '중대한 질환인데도 의사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며 의료 쇼핑을 반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이렇게 이명과 현기증이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에게 많다. 이런 사람은 이명과 현기증에 대한 강한 집착이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어 거듭 이명과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음향 외상 이명은 다른 이명의 치료보다 훨씬 어려워, 이런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음향 외상 이명은 소리를 감지하는 가느다란 신경세포인 유모세포가 직접 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이명의 치료보다 훨씬 부담이 크다.

최근에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서 '음향 대포(지향성 음향 장비)'를 도입한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다행히 경찰이 도입을 유보하기로 했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명, 현기증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를 생각하면 그것이 도입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예상돼 지금도 아찔하다. 질서 유지의 궁극적인 목적도 국민의 행복이라고 경찰이 생각한다면 음향 대포 도입은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건강 비법의 허와 실 ~ "하루 여덟 잔 이상 물을 마시면 건강해!" "정말?"

기사입력 2010-10-20 오전 9:19:34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왜 굳이 한의사를 지망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솔직히 하나를 얘기하자면 농사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 집안일을 도와서 하는 농사일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들판 한가운데서 하루 종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나처럼 농촌에서 자란 이들은 잘 알겠지만, 농사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모내기였다.

틈틈이 농사일을 도왔던 나는 모를 심는 대신 양 옆에서 못줄을 맞추는 일을 맡았다. 모를 한 줄 다 심고 나면 "어이" 소리와 함께 줄이 옮겨지고 다시 한 줄을 심는다. 해 뜨면서부터 시작된 이 괴롭고 지루한 과정은 해가 뒷산을 넘어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이 되어서야 끝났다.

보리 짚단이나 벼 짚단을 쌓는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볏짚은 한 단씩 쌓고 나서, 양쪽 끝에서 방향을 달리해 대각선으로 한 단씩 쌓았다. 힘들더라도 이렇게 한 단씩 차곡차곡 쌓지 않으면 순식간에 이때까지 쌓아놓은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모내기부터 볏짚 쌓기까지 지루한 반복 속에서 한철의 농사일이 끝난다.

뜬금없이 힘든 농사일 타령을 한 것은 최근의 세태가 수상해서다. 한국 사람의 일에 대한 집중력과 성취욕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몇 백 년에 걸친 선진국의 산업화 과정을 불과 수십 년 만에 따라잡은 한국 경제나 최근의 정보통신(IT) 산업, 영화 산업 등은 그 결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 법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이런 집중력과 성취욕이 낳은 결과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걱정도 된다. 이 과정에서 바로 모든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렇게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코, 귀에 이상이 생긴 이들이니 더욱더 그렇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의 병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태도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단시간에 집중적인 치료를 원한다. 환자를 현혹하는 많은 이들이 침 한 방에, 뜸 한 방, 약 한 첩에 병의 치료를 호언장담하니 환자들이 이렇게 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의사도 알고 환자도 안다. 그런 한 방 치료는 불가능하다.

모두에서 농사일의 예를 들었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순서를 밟아야 하는 법이다. 병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몸이 건강했는데 갑자기 병이 찾아온 것처럼 얘기를 하는 환자가 있다. 그러나 이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수십 년, 수년간 병을 키워온 사실을 결국 확인하곤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키워온 병을 치료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건강을 찾는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은 보조일 뿐이다. 식습관이 병을 키웠다면 식습관을 고치고, 술이 잦았다면 술을 줄이고, 운동을 멀리했다면 매일 동네라도 산책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으면서 볏짚을 쌓듯이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한 의학 전문 기자가 하루에 물을 몇 리터씩 꼭 마셔야 한다는 요지의 건강 비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때부터 물 마시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들이 많다. 참 딱한 일이다. 물은 일반적으로 섭씨 4도다. 잘 알다시피 몸은 36.5도를 항상 유지한다. 이런 몸에 찬물을 과하게 섭취하는 게 과연 좋을까?

특히 몸이 약해서 몸속의 물을 제대로 데우지 못하는 이들은 이렇게 벌컥벌컥 마시는 찬물이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비타민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양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지만, 남는 것은 결국 간, 신장에서 처리해야 할 노폐물이다. 이 노폐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역시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반복하지만 건강은 침 한 방, 뜸 한 방, 약 한 첩, 물 한 컵, 비타민 한 알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농사일 아니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이 건강을 지키는 일도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이다. '대박'으로 얻은 성공이 모래로 쌓은 성처럼 항상 불안하듯이, 건강에도 '대박'은 없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반신욕 ~ 황장엽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진짜 이유는…

기사입력 2010-10-27 오전 8:06:12

 

황장엽 씨가 반신욕을 하다가 영면한 것이 지난주다. 지난주 <주간동아>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의미 있는 기사를 게재했다.

"1997년 귀순 직후에는 오리고기 등을 하루에 두 번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식사 횟수를 줄이고 매일 아침 2시간씩 거르지 않고 반신욕을 했다."

반신욕이 유행할 때, 필자는 대학의 한방 병원에 근무했었다. 한방 병원에는 뇌졸중(중풍), 구안와사 질환으로 찾는 환자가 많은데, 그 해에는 유독 구완와사 환자가 몰렸다. 환자와 상담해 보니, 상당수가 반신욕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구완화사 환자의 상당수는 반신욕의 부작용 탓이었다.

반신욕으로 하반신을 따뜻하게 하면, 하반신으로 돌았던 혈액이 데워져서 상반신으로 향한다. 열기에 혈관이 팽창하는 혈액의 순환도 원활하다. 이렇게 올라온 다량의 혈액은 심장을 거쳐서 다시 온몸을 순환하는데, 이 혈액의 열기가 뇌신경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한의학에서는 기가 넘친다고 하며, 바로 이렇게 생기는 질환을 '풍'으로 정의한다.

구안와사를 '와사풍'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상태가 심해지면 중풍, 그러니까 뇌졸중의 우려도 생긴다. 앞에서 소개한 기사의 뒷부분은 이런 추정에 더욱더 힘을 실어준다.

"특히 10월 1일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화색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지난 10일 별세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얼굴에 '생기가 돈' 것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신욕의 부작용으로 위로 솟은 화기가 회광반조처럼 불꽃을 피운 것이 비전문가의 눈에는 "화색이 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람은 보통 직립의 자세로 서 있다. 중력을 염두에 두면 당연히 피가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아래로 흐른 피를 위로 퍼 올리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반신욕을 하면 일시적으로 혈관이 팽창해 하반신의 데워진 피가 상반신으로 원활하게 흐른다.

온몸의 혈액 순환이 개선되면 심장을 거친 깨끗한 피가 몸 전체로 흐르게 되니 머리가 맑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많은 (데워진) 혈액이 올라오는 것은 오히려 심장과 뇌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몸이 변화에 바로바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 노인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심장에만 집중해 봐도 이런 위험을 쉽게 알 수 있다. 심장은 펌프처럼 외부로 혈액을 밀어내야 한다. 혈액이 심장에 집중되면 팽팽한 풍선처럼 늘어나며 수축하기 힘들어져 펌프질 자체가 힘들면서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 이렇게 심장에 부하가 걸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고인은 평소에도 늘 긴장 상태였다. 고인이 반신욕에 의지한 것도 이런 긴장 상태를 이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긴장 상태에서는 보통 몸 전체의 혈관이 수축된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신의 혈관만 팽창해서 피가 위로 평소보다 빨리 흐르면 심장과 상반신의 혈관에는 더 큰 부담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고인의 주치의였다면 반신욕이 아니라 걷기를 강조했을 것 같다. 긴장 상태에서 발생한 스트레스와 그것에서 비롯된 각종 지병을 개선하려면 우선 하반신의 힘을 기르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걷기를 통해서 하반신의 근육이 충실해지면, 자연스럽게 하반신의 혈관도 튼튼해진다.

이렇게 되면 굳이 반신욕과 같은 일시적인 대증요법이 아니라도 하반신뿐만 아니라 몸 전체의 혈액 순환이 개선되는 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하반신 근육이 줄어들면서, 혈관도 줄어들고, 혈액 순환이 상반신에만 집중돼 심장병, 뇌일혈이 생기는 것을 걷기를 통해서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것이다.

최근에 천천히 걷기 열풍이 부는 것도 이런 건강의 본질을 파악한 집단지성의 지혜다. 이것은 상부의 이상은 하부에서 고치고, 하부의 이상은 상부에서 찾는다는 한의학적 지혜와도 일맥상통하다. 고인이 이런 지혜까지 두루 살피지 못하고 반신욕 같은 대증요법에 의존했던 일이 안타깝다.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다음번에는 걷기 외에 하체를 강화하는 한의학의 처방을 한 번 살펴보겠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발바닥을 아십니까? ~ 발 건강의 가장 큰 적은 '하이힐'이 아니라…

기사입력 2010-11-03 오전 10:25:08

 

지난주에 하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폈다. 이런 지혜는 이황의 <퇴계집>을 보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1549년 퇴계 이황이 넷째 형 이해에게 보낸 안부 편지에서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 마찰의 효과를 상부인 심장의 '화(火)'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묘사하였다.

"용천혈은 발바닥 가운데 있는데 모든 맥이 모이는 곳으로 심장과 통한다. 무릇 열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심화가 위로 타오르고 신수(腎水)가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모든 열이 발생하면 즉시 손으로 두 발바닥 가운데를 마찰한다. 혹 두 발바닥을 마주하여 서로 마찰하기도 한다. 힘이 들면 건장한 종을 시켜도 좋다. 천 번 만 번을 비벼 온몸에 흥건히 땀이 흐를 때까지 하면 비록 요원의 불길과 같은 열도 한 번에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퇴계의 조언을 이해하려면 한의학의 상식이 필요하다. 한의학에서는 손바닥에 '불(火)'을 상징하는 심장과 연결된 혈인 '소부'가 있고, 발바닥에는 '물(水)'을 상징하는 신장과 연결된 혈인 '용천'이 있는 것으로 본다. 아래로 향하는 물과, 위로 치솟는 불이 우리 몸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발바닥의 용천혈은 신장과 연결된 곳이다. 예로부터 신장은 "정신과 원기가 생기는 곳으로 남자는 정액이 담겼고 여자는 자궁이 매달린" 기관으로 간주했다(<난경>). 결혼하면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풍속도 발바닥의 용천혈과 연결된 신장을 자극해 신랑의 정력을 북돋우려는 한의학에 기반을 둔 생활의 지혜였다.

이런 한의학의 논리를 염두에 둔 처방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동의보감>을 보면 '축양비방(縮陽秘方)'이라는 처방이 있다. 거머리, 사향, 소합향으로 왼쪽 발바닥 한가운데를 문지르면 음경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처방인데, 따져 보면 옛사람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거머리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성분인 히루딘이 혈액의 응고를 방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옛사람은 혈액의 응고를 방해하는 거머리가 몸속의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런 논리를 따라서 혈액이 한 곳에 모인 발기 상태를 원래대로 회복하는데 거머리가 도움이 되리라고 본 것이다.

거기다 사향이나 소합향은 일종의 각성제 효과가 있다. 즉, 이것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성욕을 가라앉히는데 효과가 있는 약재인 것이다. 이것을 모아서 발바닥 한가운데를 문지른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발바닥이 남자의 정기와 연결이 되었다는 한의학의 논리에 기반을 둔 것이리라.

실제로 축양비방은 종종 처방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자면, 말기 당뇨 증상 중에 '강중(强中)'이 있다. 색욕에 탐닉하거나 혹은 종유석과 같은 약물을 사용하면 계속 발기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강중이라고 불렀다. 요즘의 예로는 비아그라를 잘못 사용해 발기가 지속되는 경우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럴 때의 처방이 축양비방이었다.

최근에 발바닥과 관련해 부쩍 늘어난 질환은 족저근막염이다. 족저근막은 발뒤꿈치 뼈에서 발가락 뼈에 부착되는 질기고 단단한 막이다. 이 막은 발바닥의 스프링 역할을 하면서 발바닥을 보호한다. 그런데 바로 이 막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아침에 잠에서 깨 첫발을 디딜 때 발에 통증이 심하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족저근막염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체중이 급격히 늘어난 사람, 오래 서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 하이힐로 발바닥에 부담을 많이 준 사람, 갑작스럽게 걷기 운동을 시작한 사람 등이 족저근막염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 족저근막염은 어떻게 치료할까?

한의학에서는 이 족저근막염을 치료할 때도 신장에 주목한다. 발바닥뿐만 아니라 발바닥의 뼈와 뼈를 이어주는 근막도 신장과 연결이 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족저근막에 염증이 생기는 것은 신장이 허약해진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신장을 보하면 자연스럽게 족저근막의 염증을 자가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장을 약하게 만드는 이유는 많다. 스트레스, 잠을 적게 자는 것, 출산 이후의 심각한 체질 변화, 양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 등 여러 가지다. 좀 더 구체적인 원인과 그에 따른 대응 방법은 다음에 한 번 더 살피도록 하겠다. 한 번 더 강조하자. 신장은 단순히 혈액을 걸러서 오줌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보신(補身)과 보신(補腎) ~ 산수유에 비아그라 섞은 사기꾼 "난 죄 없소!?"

기사입력 2010-11-10 오전 9:39:38

 

보신(補身)과 보신(補腎)의 개념은 비슷하게 쓰였다. 보신은 '몸을 보한다'는 일반적인 뜻이지만 보신은 '간, 심, 비, 폐, 신 중의 하나인 콩팥을 보한다'는 뜻이다.

지난번에도 언급하였지만 한의학의 논리 속에서 신장은 "생명의 정을 간직하는 부위로 정신과 원기가 생겨나는 곳이며 남자는 정액을 간직하고 여자는 포(胞) 즉 자궁이 매달린 곳"(<난경>)이다. 이렇게 신장을 생명 활동의 근간이자, 생식 활동을 주관하는 곳으로 여긴 탓에 보신(補身)의 핵심이 보신(補腎)이라는 말과 통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기(氣)의 형태 중 신장이 저장하는 것은 정기(精氣)다. 흔히 육체와 대비되는 말로 쓰이는 정신(精神)은 '신장이 저장하는 정기(精氣)를 바탕으로 사유 활동인 신(神)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력(精力) 역시 '정기(精氣)를 바탕으로 생식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한의학의 논리 속에서 신장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 의학에서도 신장은 단순히 피를 걸러서 오줌을 만드는 곳만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에서 동양 의학의 대가인 야카즈 도메이(矢數道明)는 현대 의학의 성과를 염두에 두고 "신장은 비뇨기 작용만이 아니라 부신의 작용, 내분비, 뇌하수체의 기관을 통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부신은 무엇인가? 신장 옆에 붙어 있어서 '부신'으로 불리는 이 기관은 몸속에서 보일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잘 알다시피, 인체는 항상 섭씨 36.5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바로 이 작용이 부신에서 비롯된다. 뇌의 시상하부가 센서 역할을 하면서 체온이 떨어지면 부신에 명령을 내려서 열(에너지)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부신에 이상이 생기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알레르기 질환이 생기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해 피로감을 느끼며, 참을성이 없어지거나 울화가 치밀고 정신 집중이 안 된다. 그래서 부신을 연구하는 의사들은 아래 유형의 사람을 부신 기능, 즉 신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지목한다.

"① 출산이나 수술 후 체질이 변했다. ②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이 찌고 체형이 변한다. ③ 이전에 없던 알레르기나 만성 알레르기가 생긴다. ④ 평생 이런 감기 처음이라고 한다. ⑤ 배고프면 허기를 참기 힘들다."

▲ 신장을 보하는 가장 중요한 약물은 '육미지황환'이다. 이 처방에 들어가는 자양강장제로 유명한 산수유. ⓒ프레시안

그렇다면, 이렇게 신장에 문제가 생긴 이들에게 좋은 처방은 무엇일까? 신장을 보하는 가장 중요한 약물은 '육미지황환'이다. 나이 70이 되어 3일 동안 놀음을 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는다는 전설의 한약이다. 옛날 어른들이 토끼 쥐똥같이 생긴 환약을 지어 늘 장복하던 약이 바로 이것이다.

육미지황환은 흔히 만성 요통, 뼈마디 통증, 성 기능 쇠약, 당뇨병, 전립선 질환, 식은땀, 귀에 소리가 나는 것 등에 좋다. 이 처방에 기재된 중심 약물은 지황인데 다른 이름이 '지정(地精)'이다. 땅의 정기를 모조리 뽑아 올리는데 착안한 이름이다. 마, 산수유도 신장을 보해 정기를 채우는 작용을 돕는다. 나머지 세 약, 목단피, 택사, 백복령은 신장의 정기가 허한 결과로 생긴 허화를 없앤다.

특히 산수유는 대표적인 자양강장제다. 몇 년 전 법원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산수유가 정력에 효과가 있는지 전화로 문의를 받았다. 중국산 산수유로 만든 제품 속에 비아그라 복제품을 섞어 놓아서 기소했지만, 산수유도 자양강장제라고 우기는 통에 불법 유무를 판단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수유가 정력에 좋긴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만큼 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은 아니다. 산수유는 적금처럼 꾸준하게 약을 복용하여야 효능을 볼 수 있다. 또 신장의 기능이 과열된 사람이나 염증으로 소변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산수유에 비아그라를 타 '즉각 효과' 등을 얘기했다면 그것은 사기다.

보신을 통해 우리는 한의학의 또 다른 사유를 알 수 있다. 약이어서 내 몸에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좋은 것이 바로 약이라는 것이다. 보신에 좋다면 앞뒤 안 가리고 먹고 보는 이들이라면, 이 점을 꼭 기억하면 좋겠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귀가 막힌 것과 기가 막힌 것 ~ '귀 막힌' A씨가 '기막혀' 절망한 사연

기사입력 2010-11-17 오전 8:57:35

 

'기막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놀랍거나 언짢아서 어이없을 때 쓴다. 필자의 한의원에서 1년 동안 귀가 막힌(이관폐쇄증) 병을 치료한 환자 A씨가 최근에 기막힌 일을 당했다.

이 환자가 이관폐쇄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은행원이었던 이 환자는 자기 은행을 살리고자 미국 출장을 오가며 무리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귀가 막히고 팽창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병원을 전전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한의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서 상당히 호전된 상태다.

이렇게 건강을 찾아가던 이 환자는 최근에 잦은 병가로 정리 해고를 당했다. 귀가 뚫리려던 참에 기막힌 일을 당한 것이다. 은행을 살려보겠다고 과로를 한 탓에 병을 얻었는데, 그 병 때문에 정리 해고를 당하다니….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 같아서 환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씁쓸했다.

이렇게 귀가 막히는 느낌은 왜 생기는 것일까? 현대 의학은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귀가 막히는 느낌은 이관의 개폐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관은 귀와 코 사이에 연결된 통기관으로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음식을 삼키면 관이 열려 공기가 교류하면서 귀 내부의 공기압과 외부의 공기압이 같아지게 된다.

고막은 귀 내부와 외부의 공기압이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잘 진동하여 음을 알아듣기가 쉽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관이 열리고 닫히면서 귀 내부의 공기압을 조절한다. 그러나 이관의 개폐에 문제가 생겨 닫혀 있거나 계속 열려 있는 경우가 있다. 계속 닫혀 이관이 막혀버리는 것을 이관협착증, 계속 열려 있는 것을 이관개방증이라 한다.

이관협착증은 코와 목에 염증이 있어서 이관의 개폐가 원활하지 않아 닫혀버리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외계보다 귀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고막이 안쪽으로 당겨져 고막의 진동이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고막은 음의 미묘한 진동을 포착하기 힘들어져 저음성 난청을 일으킨다. 낮은 음이 잘 들리지 않거나, '붕' '웽' 하는 저음성 이명이 나고, 귀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고, 자신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서 들리고 귀를 찌르는 듯한 증상도 있다.

이관개방증은 이관이 계속 열려서 고막이 과잉으로 진동되어 난청과 이명, 자신과 타인의 음성이 울리는 증세가 나타난다. 또 자기의 호흡음과 고막이 움직이는 소리가 이명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관개방증은 선천적으로 이관이 열리거나 고막이 엷은 사람에게 많은 병이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로 이관 주위의 지방이 얇아지면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가 현대 의학의 견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기계적 해석이 아니라 전통적 기(氣)의 관점에서 스트레스나 과로로 이 질환이 생겼다고 바라본다. <황제내경>에서는 "소양경인 담(膽)이 열을 받으면 귀가 통증이 생긴다"며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 점은 우리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나면 귀가 막히는 먹먹한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증상으로 한의원을 찾은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명 정도가 스트레스 이후 귀가 불편해졌으며, 이 중에 8명이 이관협착증과 같은 증상의 고통을 호소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스트레스, 과로 이후에 귀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귀가 막히는 것을 이렇게 풀이한다.

"오장의 기가 궐역(厥逆)하여 귀로 들어가 귀가 꽉 막혀(痞塞) 들리지 않는데 이때는 어지럼증이 동반한다."

'궐(厥)'은 기(에너지)가 다해서 소진된 상태를 말한다. '역(逆)'은 그것을 회복하고자 무리한 반전을 꾀하는 상태다. 이것은 계속 언급한 신장 부신과 관계가 있다. 부신의 기능이 떨어지면 몸은 에너지를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열(火)'이 솟구친다. 스트레스, 과로로 '열'이 나는 게 바로 이런 상태다. (이것을 한의학에서는 '허열'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은 이런 상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귀로 기가 궐역하면 귀 안에 기가 가득차고 열이 몰려 귀 안이 훈훈하거나 화끈거린다."

이처럼 한의학에서 귀는 신장과 관계가 깊다고 보았다. 신장이 사계절 중 겨울을 상징하듯이 귀도 찬 기관이다. (손을 불에 데었을 때 귓바퀴로 손이 가는 것도 이런 사정을 말한다.) 신장의 기능이 정상일 때는 귀가 차갑게 응축돼 소리가 명징하지만, 신장 기능이 허약해서 부신이 제 기능을 못하면 열과 바람(風)이 생긴다.

이 때에 귀는 풍선에 바람을 넣은 상태처럼 내부가 막혀 귀 주변까지 먹먹한 느낌으로 불쾌해진다. 부신 연구자는 이렇게 입을 모은다.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장기간으로 진행되면 부신의 힘이 고갈된다. 이렇게 부신의 힘이 고갈되면 이전에는 전혀 무리라고 여기지도 않은 사소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 점을 생각하면 귀가 막히는 일이 기막힌 일이 사실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나저나 기막혀 귀가 막힌 증상을 호전해놓았더니, 다시 기막힌 일을 당한 저 환자의 아픔은 누가 살필지 걱정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침술과 불임 ~ 머라이어 캐리-셀린 디온의 '특별한' 임신? 진실은…

기사입력 2010-11-24 오전 8:54:18

 

지난주 머라이어 캐리와 셀린 디온의 임신 소식이 보도되었다. 기사를 읽다가 두 사람 모두 침술의 도움을 받아서 임신한 사실을 밝힌 점이 눈에 띄었다.

이 보도를 보면, 캐리의 남편은 "2008년 결혼하고 나서 유산으로 캐리가 힘들어하며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다시 임신을 시도하고 나서 캐리는 매일 한 차례씩 침을 시술받았는데 이런 처방이 그녀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임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디온도 한방 치료를 겸해서 임신에 성공했다. 침술 시술을 병행하면서 어렵게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한 것이다.

이 보도는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셀린 디온처럼 시험관 아기 시술의 성공률을 높이고자 침술 시술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방에서는 여성 불임의 원인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떤 침술 치료를 시도할까. 일단 <동의보감>에서는 불임의 원인을 '음혈(陰血)'의 부족으로 인식한다.

"부인에게 음혈이 부족하면 부부 관계를 해도 자궁에서 정액을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임신하지 못하며, 임신이 된다 해도 태아를 양육하지 못한다." "임신하지 못하는 부인은 자궁에 혈이 부족하므로 음을 돋워 주고 혈을 보해야 한다."

음혈은 양기와 반대되는 말이다. 양기가 태양을 상징한다면 음혈은 땅의 물과 같다. 한의학에서는 몸에 혈액을 보충하는 대사 과정을 간, 비장(췌장), 신장이 주도하는 것으로 본다. 간, 비장, 신장 이 세 기관의 기가 만나는 혈 자리가 '삼음교'다. 이 삼음교에서 음혈을 만들어서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것이다. 한복을 입을 때, 삼음교를 대님으로 꼭 잡아매곤 했는데, 이것은 고된 노동에도 삼음교를 자극해 혈액이 계속 공급되도록 하는 지혜였다.

▲ 최근 침술 시술의 도움으로 임신에 성공한 머라이어 캐리. ⓒtaramtamtam.com

삼음교와 임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인 이시노(石野信安)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시노는 삼음교에 뜸을 뜨고 나서,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였다. 삼음교를 자극하는 치료가 다리가 부은 증상을 완화하고, 진통을 완화하며, 분만할 때 출혈 감소 효과, 분만 시간 단축을 가져와 태아의 발육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일본동양의학회지> 제10권 제1호)

이뿐만이 아니다. 자궁에 잘못 자리 잡은 태아가 삼음교 자극을 통해서 스스로 회전해 올바론 위치로 돌아오기도 했다(<일본동양의학회지> 제1권 제3호) 다른 기록에서 다카오카는 삼음교에 피내침을 붙여서 월경통을 호전한 사례도 발표했다(<산부인과의 세계> 제10권 제8호).

<동의보감>은 근본적인 불임 치료를 놓고도 침·뜸 시술을 권한다. 습관성 유산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꼽 밑 3촌 부위에 있는 관원혈 좌우 2촌 부위에 있는 포문과 자호혈에 각각 50장의 뜸을 떠주라는 것이다. 관원혈이 단전으로 대표되는 원기의 창고인 점을 생각하면 근본적으로 자궁을 튼튼하게 하는 방법인 셈이다.

한의학에서 임신은 남자의 양종(養種)과 여자의 택지(擇地)가 기본이다. 양종은 남자가 씨앗을 잘 뿌리는 것이고 택지는 건강한 임신 조건을 유지하는 여성의 몫이다. 여성을 기준으로 보면, 자궁을 밭으로 보기 때문에 밭이 기름지고 따뜻해야 씨앗이 잘 자란다고 보았다. 밭이 메마르면 씨앗이 말라 죽고, 차가우면 얼어 죽고, 기름지면 녹아버린다.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자궁 자체가 허약한 경우가 밭이 메마른 경우고, 비만하여 기름기가 많아서 기의 소통을 막는 경우가 지나치게 질퍽하여 기름진 경우다.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불임이 왔다고 밝혔다. 한방에서는 스트레스로 생기는 불임을 '간기울결'이라고 정의한다. 혈액을 공급하는 간기가 맺혀 소통되지 않은 경우로 생리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고 생리양이 적으며 생리 전에 가슴이 아프고 생리통도 있으며 기분이 우울한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머라이어 캐리는 침을 맞으면서 임신 유지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섭취했다. 양·한방 협진의 결과로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침학을 보유한, 침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에서 협진을 통한 불임 진료가 없다는 점은 오늘 우리 의학계의 관용 정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한약의 위기, 한의학의 위기

中 공격에 한의학은 속수무책, 마지막 파수꾼은?

기사입력 2010-12-01 오전 8:47:59

 

1980년대만 해도 한의원에는 한약재를 들고 와서 직접 파는 농민들이 많았다. 한의사들이 탐을 내는 약재 중 하나가 반하다. 반하는 보리농사가 끝나고 나서 보리밭을 갈아엎을 때 수확한다. 이 반하는 속이 미식거릴 때, 토할 때 또 위산 과다, 불면증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데, 국산 반하는 효능 면에서 더 뛰어나 각광을 받았다.

이 반하는 약성이 큰 만큼 독성도 커서 생강을 버무리곤 했다. 아무튼 농민이 반하를 가져오면 일단 약성(독성)이 큰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입으로 씹어보는 것이다. 햇살이 뜨거운 어느 여름 오후, 한 할머니가 반하를 들고 한의원으로 들어왔다. 외양으로는 진짜가 분명했지만, 그래도 폼을 잡고자 한입에 깨물었다.

그 반하를 깨물자마자 입에 불이 나고 목구멍이 따가워서 오후 내내 괴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만상을 찡그린 나를 보는 그 할머니의 온화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반하뿐만 아니라 칡뿌리인 갈근, 산추라 불리는 백출, 천궁, 작약 등은 늘 한의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이 농민인) 환자들과 약초상들이 수급을 조절했다.

지금도 이런 약재는 많지만, 햇살과 바람으로 말려 하나하나 껍질을 벗긴 그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약재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 약재와, 기계를 통해서 말린 약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햇볕으로 말리면 겉은 마르지만 속에는 진액이 축적돼 고유의 약성이 보존되지만, 기계로 말리면 내부의 진액조차 날라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렇게 진액이 날아간 약재가 예전만큼 약효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태양초 고추를 그토록 주부들이 찾는 것도 바로 이런 생활의 지혜 때문이다. 이처럼 지역 농민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한약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어졌다. 최근에 <맛있는 식품법 혁명>(김영사 펴냄)을 펴낸 송기호 변호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1995년 정부와 이익집단이 주도해서 더 많은 한약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틀을 짰다. 또 국산 한약재의 이력추적제도 폐지했다. 중국산 한약재가 국내에 들어와 국산 한약재로 둔갑해 팔리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조장한 것이다. 그 결과는 한약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국내 한약재 농가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관련 기사 : GMO는 합법, 개고기는 불법? 식품법의 '추악한 진실'!)

▲ <향약집성방>. ⓒ프레시안

그러면 역사적으로 국산 한약재에 대한 평가는 어땠을까? 국산 한약재는 예로부터 '향약'이라고 불렸다. 향약에 대한 효능 연구와 중국 약재와의 비교는 <향약집성방>에서 완성되는데, 이를 완성하고자 수많은 의관들이 중국에 가서 국산 한약재를 중국 약재와 대조 검토하면서 끊임없이 확인과 개선을 꾀했다.

세종 12년 노중례가 명나라에 가서 수십 종의 약재를 비교 검토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이런 향약에 대한 집착은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향약집성방>에 인용된 고려 의서도 향약에 대한 오랜 연구와 경험이 누적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이런 향약에 대한 인식은 <향약집성방>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대개 백 리나 천 리쯤 서로 떨어져 있으면 풍속이 서로 다르고 초목이 생장하는 것도 각각 적당한 곳이 있고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도 또한 습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옛 성인이 많은 초목의 맛을 보고 각 지방의 성질에 순응하여 병을 고친 것이다."

이렇게 최근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역'에 대한 관점이 <향약집성방>에 담겨 있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신토불이(身土不二)', '지역 먹을거리(local food)' 등에 대한 관심과 일맥상통하다. 그리고 이런 <향약집성방>의 정신을 최근까지 실천했던 이들이 바로 한약재를 생산하는 우리 농민이었다.

최근에 소비 수준이 높아진 중국에서는 한약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산 한약재의 가격도 폭등하는 추세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한약재를 중국산에 의존하면서, 국내의 생산 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런 현실은 큰 위기다. 그나마 인삼, 당귀, 천궁, 작약, 황기, 산약 정도가 넉넉할 뿐이다.

중국인은 감기가 걸려도 한약을 먹고 치료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중국산 한약재의 원가가 치솟는 상황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몸에 딱 맞는 국내산 한약재뿐만 아니라 질이 낮다고 업신여겼던 중국산 한약재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한의학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의사는 우리의 파트너인 농민을 돌보지 않았고 그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다. 더 늦기 전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자본의 논리보다 상생의 논리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상생'의 원리로 의학을 실천하는 한의사들이 모르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가위눌리다 ~ "어제도 가위눌렸어?" 허준 선생의 비법은…

기사입력 2010-12-08 오전 8:44:04

 

 

자주 가위눌리는 증상 탓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가위눌리는 증상을 '수면 마비'라는 일종의 수면 장애로 본다. 잠자고 있는 동안 긴장이 풀린 근육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식만 깨어나 몸을 못 움직이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이 증상을 어떻게 볼까?

가위눌리는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귀염(鬼魘)'이라고 한다. 귀신이 압박하는 증상으로 본 것이다. 예전에도 가위눌리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모양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잠들었을 때는 혼백이 밖으로 나가는데 그 틈을 타서 귀사가 침입하여 정신을 굴복시키는 것"이라며 이 증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관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냉방에서 자다가 헛것에 홀려 생기는 증상으로, 껄껄 웃는 소리만 들리고 곁의 사람이 큰 소리로 불러도 깨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가위에 눌리는 것이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사향, 서각, 영양각, 소합향, 호랑이 머리뼈로 안정을 취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동의보감>은 이런 약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 쓸 수 있는 긴급 대응 방법도 소개한다.

"불을 비추거나 앞에서 갑자기 부르면 죽을 수도 있다. 이때는 오직 그 사람의 발뒤꿈치나 엄지발가락 발톱 근처를 아프게 깨물어 준다."


현대 과학은 죽음을 생명의 끝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는 삶과 죽음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했다. <삼국유사>, <금오설화> 등을 비롯한 많은 설화, 전설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야기하면서 이승에 살던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저승으로 가는 것으로 여겼다. 또 그 양쪽으로 오갈 수 있는 존재, 예를 들자면 저승사자의 존재도 믿었다.

이런 사정은 유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학자는 <논어>에서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며 귀신의 존재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삶과 저승에서의 삶의 연관관계를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서 인정했다. 제사를 지낼 때, 마치 조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문안하고 밥상을 챙기는 것은 한 예이다.

조상들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단지 고인을 기억하거나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 지내는 후손과 제사를 받는 고인이 연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 연결고리가 바로 고인의 혼백이다. 한의학에서는 오장과 연결된 다섯 가지 영혼, 혼신의백지(魂神意魄志)가 있다고 보았는데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속에 묻힌다.

그렇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서 왜 잠을 자면 혼백이 밖으로 나간다고 <동의보감>은 이야기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서 천지인은 하늘과 땅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늘은 인간의 마음을 만들고 땅은 인간의 육체를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하늘을 닮아 맑은 순수를 꿈꾸고 인간의 육체는 다양한 변화와 욕구를 낳는다.

낮이 되면 양인 하늘의 태양과 음인 육체가 서로 만나고 밤이 되면 음인 땅과 양인 영혼이 서로 만난다. <동의보감>은 밤에는 낮에 잠든 영혼이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잠이라고 보았다. 이런 생각의 연장이 가위눌림을 바라보는 한의학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사람은 꿈을 꾸고 불안해지는 가장 큰 원인을 혈기의 부족으로 보았다. 혈기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손상 받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태극기의 음양처럼 서로 이어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꿈을 많이 꾸는 경험을 자신의 사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 가지 더! 가위눌린 사람이 가장 주의할 점을 <동의보감>은 이렇게 경고한다. 손을 가슴에 얹어서 자는 것인데 이 자세가 시신을 염하는 자세로 귀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축산병 ~ 소도 침 맞고 한약 먹었던 그 때 그 시절은…

기사입력 2010-12-16 오전 8:38:15

 

소에 구제역이 번져 체온 상승, 식욕 부진이 생기면서 도살되는 끔찍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런 병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소에 번진 전염병을 뜻하는 우역(牛疫)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중종, 영종, 인조, 현종, 숙종, 영조, 고종 등에서 194건이나 나타난다. 조선 시대에도 전염병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현종 4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올해 우역이 매우 참혹하게 번져 앞으로 종자가 끊길 염려가 있습니다. 일찍이 정축년에 우역이 있을 때 소를 죽인 자는 사람을 죽인 것과 똑같은 죄를 적용하기로 영갑에 기재하였으니, 지금도 이 법에 의거하여 통렬히 금하도록 하소서."

일본인이 쓴 <조선의 축산>을 보면, 조선 시대에 소 전염병이 번졌을 때 어떤 조치를 했는지 자세히 나온다. 물론 조선의 모든 것을 폄훼해서 보려던 일본인의 시각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구제역이 번지면 도살과 소독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데, 조선 시대 때도 상황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종래의 관습으로 우역이 발생하여 유행하면 다른 건전한 소를 격리된 장소로 옮기고 차단해 다른 소의 출입을 금지한다. 또 춘하기에는 전염된 소를 들에 방치하고 생사를 하늘에 맡긴다. 격리차단의 취지는 좋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실시는 철저하지 못하여 병독을 만연시켜 그 피해를 더욱 크게 하고 있다.

병든 소는 태워서 묻지 않고 흙에 파묻고 소독해 병독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데 실패할 우려가 있다. 또 단지 병든 소의 뿔을 염색하고, 뿔에 자물쇠나 고추를 다는 등 주술적인 방법을 신뢰하거나 지지기, 침 등을 사용하여 병독을 오히려 만연시키는 등 그 대응이 유치하다."


▲ 최근 구제역이 발생한 경상북도 안동에서 돼지, 소 등을 살처분했다. ⓒ뉴시스

우리나라의 농업은 소가 가장 중요한 가축이었다. 한우는 체구가 크고 성질이 온순하여 체질도 강건하였다. 특히 농번기를 맞이하면 소를 빌려 감당하기 어려운 삯을 주고서라도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수의학은 고위 관리도 관심을 갖는 중요한 분야였다. 조선의 개국 공신인 조준, 김사위, 권중화, 한상경이 엮은 <신편마의방우의방>은 현존하는 최고의 수의서다.

여기에는 우역에 대응하는 처방도 나온다. 크게 직접 복용하는 처방과 태워서 향기를 맡게 하는는 처방이 있다. 직접 복용하는 처방은 석창포 담죽엽, 갈분, 울금, 녹두, 창출을 같은 분량으로 만들어 파초의 자연즙 3되에 넣고 꿀 1냥과 황납 두 돈을 함께 넣어 조제하여 먹인다.

태워서 향기로 치료하는 약물은 백출, 천궁, 세신, 창포, 여노 등으로 처방한 약물을 태워서 코로 향기를 맡게 한다. 소가 귀한 만큼 고가의 약물도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인삼 분말 73g을 물 5되에 넣어 끓인 후 따뜻하게 식힌 후 먹인다. 당시 인삼의 가격을 생각하면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뜸의 처방도 있다. 전염병이 처음 발생할 때 두 뿔 안쪽 우묵한 가운데 피부를 침으로 절개하고 3일에 한번씩 7번 뜸을 뜨면 좋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한방수의학은 누가 만들었고 어떤 원리였을까? 한방수의학은 한의학과 같이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질병의 생로병사를 설명한다.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 내경이 황제와 기백의 문답식으로 된 것처럼, 수의학의 경전인 <원형료마집>은 황제와 마사황(馬師皇)과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의학도 의학처럼 그 기원이나 원리를 음양오행 원리를 기초로 자연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 황제(黃帝)로부터 그 원리적 기초를 서로 묻고 답하면서 설명한다. <속시사(續始事)>라는 책에는 "황제 때에 마사황이라는 사람이 있어 신험한 듯이 말의 병을 잘 보았다. 마의는 이때부터 시작하였다"라고 하여 마사황의 존재를 부각하고 있다.

얼마 전에 왔던 환자 한 분이 침 치료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하였다. 개가 디스크에 걸려 치료를 받았는데 수의사가 개 허리에 침을 놓고 단박에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도 예전부터 소에 침을 놓는 전통 수의사들은 많았다. 그러나 전래되는 침 법은 더 이상 직접 전수되지는 않았다. 소침쟁이라는 멸시 탓이었다.

정작 많은 고관대작들이 수의학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지만 기술 천시의 풍토가 전통 침 법 전승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지금은 잊혔지만 어릴 때만 해도 소가 병들면 약초를 구해 약물을 먹이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소를 물에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듯이 소에게 한약을 먹이는 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입을 벌리고 약을 먹이는 장면은 시골에서 늘 보는 장면이었다. 이제 이런 약초를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사라졌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더 먼 날은 전통 수의학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동지 팥죽 ~ 동지에는 팥죽? 왜 먹는지 알고 먹자!

 

기사입력 2010-12-22 오전 10:16:55

 

오늘은 동지다. 옛날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왜 팥죽을 먹을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가 나온다. 영조 46년 10월 8일에 왕은 이렇게 말한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뜻이 비록 양기의 회생을 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문에다 뿌리라는 공공씨(共工氏)의 설은 정도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만두라고 명하였다. 이제 듣자니 내섬시에서 아직도 진배를 한다고 하니 이 뒤로는 문에 팥죽 뿌리는 일을 제거하여 잘못된 풍속을 바로 잡으려는 나의 뜻을 보이도록 하라."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팥죽은 먹었을 뿐만 아니라 문에 뿌리기까지 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공공'은 누구인가? <형조세시기>에 그 설명이 나온다. '공공'의 아들이 동지에 죽었는데 역병(마마)을 퍼뜨리는 역귀가 되었다. 생전에 아들이 팥을 싫어한 사실을 기억한 공공이 팥죽을 쒀서 역병을 막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공공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이다. 공공에 관해서는 이런 신화가 전한다. 하늘나라에서 북쪽 지방을 다스리는 신 '전욱(顓頊)'과 물의 신 공공이 하늘나라의 황제 자리를 놓고 싸웠다. 공공은 용맹스럽게 싸웠지만 결국 전욱에게 패배했다. 패한 공공이 분을 못 이겨 하늘의 기둥이 부러뜨렸다.

이 충격 때문에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었다. 덩달아 일월성신도 서북쪽으로 기울었다. 또 땅도 서북쪽은 높고, 동남쪽은 내려앉게 되었다. 물이 동남쪽으로 고이는 엄청난 지각 변동도 낳았다. 이런 공공 설화는 오늘날 중국 땅이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이유, 해와 달이 서쪽으로 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화로 읽힌다.

이렇게 공공 때문에 세상이 기울게 되었다는 인식은 옛사람이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주도 기울어서 운행하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긴다는 것이 우주를 바라보는 <주역>을 비롯한 동양학의 시각이다. 동지에는 황도 상을 운행하는 태양이 북반구의 하늘 위에서 1년 중 가장 낮게 뜬다.

그래서 옛사람은 동지에는 양기가 음기에 묶여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공공이 물의 신, 또 차가운 겨울을 지배하는 신인 것도 일맥상통한다. 앞에서 영조가 "팥죽이 양기의 회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기를 회복하고자 먹는 게 왜 하필이면 팥일까?

대개 콩과 식물은 늦은 봄에 생기를 모아서 초가을에 결실한다. 그런데 팥은 한여름에 종자를 심어 가을이 끝날 무렵 결실한다. 이런 팥의 생장을 보면서 옛사람은 그것이 겨울에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차가운 겨울을 따뜻한 봄으로 바꾸는 온기를 준다고 보았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은 바로 그 온기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팥은 양기를 보하는 효과가 있다. 우선 신장의 소변 기능을 돕는다. 팥의 가장 큰 효력은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붓기를 없애는 것이다. 임신하고 나서 붓기가 있는 이들이 팥을 먹으면 효과가 크다. 팥을 씻어서 내방을 버린 붕어나 잉어와 함께 먹으면 임신 부종에 큰 도움이 된다.

팥은 술이 깨는 데도 효과가 크다. 연말 애주가도 팥죽 한 그릇이 좋은 보양식이 될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헛개나무 vs 칡 ~ 숙취 해소 '헛개나무'…"최선입니까?"

기사입력 2010-12-31 오전 9:52:42

 

술 하면 생각나는 선배가 있다. 회식 후 이튿날 앞니가 완전히 깨진 채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평소 집 앞에 있던 전봇대가 갑자기 두 개로 보였다는 것이다. 중간으로 가야겠다고 걸었는데 전봇대와 정면으로 부딪혀 앞니가 나갔다. 한 번은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물었더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스팔트가 번쩍 일어나서 자기 빰을 때렸다는 변명.

연말연시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음주로 인한 건강의 적신호다. 특히 소주는 지금도 우리가 많이 마시는 술이지만 예전에도 경계 1호의 술이었다. <지봉유설>을 보면, 소주가 원나라에서 온 술이며 오직 약으로만 쓰고 함부로 마시지는 않았다라고 풍속을 해설했다. 그러면서 소주 독의 무서움을 경고한다.

"명종 때 김치운(金致雲)은 교리(校理)로서 홍문관에서 숙직을 하다가 임금이 내린 자소주(紫燒酒)를 지나치게 마셔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소주의 독은 참혹하다."

"술은 독이 될 수 있다. 평상시에 내섬시(內贍寺)에는 술을 빚는 집이 있다. 그 집 위에 덮은 기와는 쉽게 낡아 몇 해에 한 번씩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까마귀나 참새 떼가 모여들지 않는다. 이것은 술의 독한 기운이 서리기 때문이다."

술은 본래 약재로 쓰였다. 고의서 <양생요집>을 보면 술의 약효를 이렇게 설명한다.

"술은 약재로 적당히 마시면 모든 맥을 조화시키고 나쁜 독을 물리치며, 차가운 기운을 제거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장위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습기를 제거한다."

실제로 의사의 '의(醫)' 자도 술과 관련이 깊다. 밑받침이 '닭 유(酉)' 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에 '물 수(水)' 자를 더하면 '술 주(酒)' 자가 된다. 이런 탓에 의사들은 신체 이상에 약재 대신 술을 가지고 치료하기도 했고 또 <양생요집>의 얘기처럼 술을 백약의 으뜸으로 평가했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술의 성질은 더운 것이다. 술을 마시면 불꽃이 치솟는 것과 같은 열기가 올라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마신 이튿날에는 몸이 차갑게 식는다. 술은 알코올과 물로 빚는 것인데, 열기의 원인인 알코올이 분해되고 나면 몸속 위장에는 찬 성질을 가진 물만 남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 매운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먹고 사우나를 하는 것도 바로 위장에 남는 차가운 물을 데워서 혈관 속으로 빨리 흡수해 위장의 따뜻한 생리 기능을 되돌리려는 의도이다. 이런 원리를 염두에 두면, 각종 숙취에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가릴 수 있다.

칡은 예전부터 음주 후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칡이 차가운 물을 흡수 발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칡은 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심지어 칡을 캘 때 포클레인으로 캐내야 할 정도다. 그러나 그 줄기는 다른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햇볕을 독점해 다른 나무를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칡의 줄기와 잎이 뿜어내는 물의 양은 엄청나다. 한 시간에 두 양동이 정도의 물을 뿌리에서 끌어올려 잎에서 증발시킨다. 이런 칡의 특성 탓에, 그것은 인체에서도 가장 깊은 위장에서 물을 끌어올려 가장 높은 목 뒤의 뻣뻣함이나 열감을 식혀주고 풀어준다. 이런 약성으로 칡은 술독으로 생긴 위장의 차가운 물을 끌어올려 입이 마르는 갈증을 해소한다.

콩나물이 술독을 잘 푸는 것도 거의 같은 이유다. 콩은 콩나물로 자랄 때 물을 흡수하고 배설하면서 위로 자라 오른다. 위장에 있는 차가운 물기를 잘 배설하여 위장의 온기를 되돌린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해장술도 존재한다. 술로 차가워진 속을 데워야 위장의 온기가 되살아나면서 인체의 신진대사가 정상으로 되돌아간다고 믿은 것이다.

▲ 최근 헛개나무 열매로 만든 각종 기능성 음료가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최근에 술 깨는 약의 대명사가 된 헛개나무는 어떤 약성을 가지고 있을까? 헛개나무의 열매는 지구자(枳椇子)다. 육기(陸機)의 글을 보면, 이 헛개나무와 관련해서 이런 얘기가 있다.

"강남에서는 이것(지구자)을 맛있는 것이라 하여 나무 꿀 즉 목밀(木蜜)이라고 한다. 술맛을 삭혀버리는 것으로 이 나무는 기둥으로 만들면 그 집안에 있는 술은 모두 산패한다."

어떤 남방인이 주택을 수선하면서 이 나무 한 조각을 술 단지에 떨어뜨렸더니 그 술이 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헛개나무의 약효를 기록한 의서를 좀 더 살펴보면, 이것은 숙취에 효과가 있기보다는 과도한 음주 탓에 열이 쌓여 입이 마르면서 소변이 자주 나오는 만성 알코올성 신체 이상 증상에 유효하다.

헛개나무가 왜 숙취 해소에는 별 도움이 안 될까? 앞에서 말하듯이 숙취의 핵심은 위장이 차가워지면서 신진 대사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헛개나무 열매는 위장 온기를 되살리는 매운 맛은 없다. 위장의 습기를 배설하는 이뇨작용과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본초강목>의 요지다.

그렇다면, 최고의 술 깨는 약은 무엇일까? 한의학 의서를 보면, 갈화 즉 칡꽃이다. 처방 이름으로 '갈화해성탕(갈화로 만드는 술 깨는 처방)'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다. 칡꽃은 보라색으로 여름 초입에 흩뿌려지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지금 연말에는 이 꽃이 있을 리 없다. 몸에 맞게 마시고 삼갈 따름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토끼의 지혜 ~ 토끼가 알려준 천연 비아그라, 그 정체는…

기사입력 2011-01-12 오전 9:48:28

 

하얗게 눈이 내리면 나는 눈 덮인 산에서 토끼몰이 하던 생각에 빠지곤 한다. 여럿이 산 위에 올라서 산 아래로 소리를 내며 좁혀 들어간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아서 위로 도망가는 것은 능숙하지만 아래로 달리다가는 그대로 처박히거나 쩔쩔매다가 오도 가도 못해서 잡힌다.

앞다리가 짧은 토끼는 대신 아랫다리가 발달해서 하체가 풍성하다. 토끼의 앉은 모습은 여성의 앉은 모습과 같다. 그래서 토끼는 음과 양 중 음을 대표하는 동물로 분류한다. 특히 십이지 중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 모습도, 음을 상징하는 달에 사는 토끼의 본질을 나타낸 것이다.

토끼 고기도 음의 작용을 한다. 특히 소갈이수(消渴羸瘦)라 하여 목이 말라서 물을 찾으며 몸이 마르는 증상을 잘 치료한다. 의서를 보면, 극히 중증인 것도 불과 두 마리 정도를 고아먹으면 좋아질 정도다. 현대 의학을 염두에 두면, 당뇨 증상을 치료하는 것으로 보면 정확할 것 같다.

불같은 양기를 식혀서 성욕을 줄인다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양기가 약한 사람은 먹어서는 안 될 고기다. 그렇다면, 용왕이 얻고자 했던 별주부전의 토끼 간은 어떨까? 실제로 토끼 간은 눈을 밝게 해준다. 특히 결명자를 넣어서 환약을 만들어 복용하면 눈을 밝히는 것으로 적고 있으니 용왕이 탐낼 만도 했다.

토끼가 즐겨먹는 식물 중 토사자(免絲子)가 있다. 토사자는 새삼씨를 부르는 다른 말이다. 예로부터 양기를 북돋우는 최고의 약물로 각광을 받았다. 이름에 얽힌 일화가 흥미롭다. 옛날 주인의 토끼를 기르던 하인이 잘못해 토끼 허리를 부러뜨렸다. 주인의 질책이 두려워 콩밭에 숨겼는데, 토끼가 죽기는커녕 팔팔하게 뛰어다녔다.

콩밭에 있던 식물을 먹고 다 나은 것이다. 토끼를 치료한 이 식물을 관찰한 하인은 열매를 얻어 허리 아픈 아버지의 병환을 치료하였다. 그러고는 약초 이름을 지었는데 토끼의 다친 허리를 치료했다고 '토', 잡초의 줄기가 실타래처럼 얽혔다 하여 '사', 이렇게 토사자라고 불렀다.

영조 때 유중림이 지은 <산림경제>는 토사자를 놓고 이렇게 적고 있다.

"토사자를 가루를 만들어 참새 알 흰자와 함께 환약을 빚어 70알씩 따뜻한 술로 먹는다. 남자의 정액이 차고 맑아서 정자가 없는 것을 치료한다. 이것을 먹으면 정액이 자궁에 바로 흘러들게 할 수 있어서 자식을 얻는 신비한 처방이다."

이수광도 <지봉유설>에서 이런 약효를 그대로 언급하며, 토사자를 기운을 북돋는 약물로 설명한다. 이수광은 너무 많이 먹으면 열이 올라와서 종기가 생기는 부작용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신농본초경>도 똑같이 약효를 설명한다. '주속절상(主續絶傷)' 즉 '골절상으로 부러지거나 끊어진 상처를 이어준다'는 것. 이렇게 국내의 여러 의서에서 약재의 효능을 적고 있듯이, 토사자는 국산이 최고다. 중국의 본초서인 <명의별록>도 조선의 냇가나 연못, 밭, 들판에서 토사자가 산출하는 것으로 적고 있다.

신묘년(辛卯年)의 '신(辛)'은 자루가 두껍고 끝이 날카로운 단검의 모습이고, '묘(卯)' 또한 가을의 금기를 상징해 살 것과 죽을 것을 심판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연초부터 심상치 않은 정국을 보니, 늘 조심하며 지혜롭게 사는 토끼의 모습에서 배워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구완와사 ~ 악! 아침에 거울을 보니 눈과 입이 삐뚤삐뚤…

기사입력 2011-01-27 오전 9:24:06

 

눈과 입이 삐뚤어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구안와사. 지난주만 해도 심형래, 남희석, 김민희 등 유명인들이 이 병을 앓았다고 고백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안면 신경 마비의 일종인데 발견자의 이름을 붙여 '벨 마비'라고 한다.

찰스 벨은 어떤 사람인가? 예술가 지망생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벨은 특히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표정의 변화를 정확히 잡아내고자 해부학, 특히 근육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눈과 입이 삐뚤어지는 현상에 흥미를 느꼈다.

벨은 당나귀의 안면 신경을 귀의 전방에서 절단하면 턱을 제외한 안면근 전체가 마비되는 현상을 확인함으로써, 안면 마비 증상이 신경계 질환임을 입증했다. 이 업적으로 안면 마비 증상의 공식 병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의 연구의 근간이 예술에 있었다는 것은 그의 책 <회화에 나타난 표정의 해부학적 시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병의 원인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람세이헌트증후군이 있다. 어릴 때 감염된 수두 바이러스가 신경절 속에 숨어 있다가 면역 기능이 약해지면 신경계를 자극하면서 안면 마비 증상을 나타낸다. 바이러스성 질환의 특성인 수포가 곳곳에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눈과 입이 삐뚤어지는 전형적인 안면 마비 증상인 벨 마비는 주로 신진 대사 기능이 떨어졌을 때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에어컨, 선풍기 바람을 쐬거나, 찬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잠을 자다가 안면 마비 증상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안면 마비 증상은 쉽게 잘 낫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한의학은 안면 마비 증상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한의학은 안면 신경 마비를 위(胃)장의 기능과 연관을 지어서 설명한다. <동의보감>은 '구안와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입과 눈이 삐뚤어지는 증상은 위(胃)에 속한 근맥에 병이 든 것이다. 위장 경맥은 입을 끼고 입술을 둘러쌌기 때문에 이 경맥에 병이 생기면 입이 삐뚤어지고 입술이 찌그러진다."

안면 마비 증상을 오늘날 소화 기관의 하나로만 여기는 위장과 연결을 짓는 이 <동의보감>의 논리를 이해하려면 옛사람들이 소화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야 한다. 우선 <장자>에 나오는 설화를 한 편 살펴보자. '토(土)'를 상징하는 '중앙'의 왕인 '혼돈'에 대한 이야기다.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흘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라고 했다. 숙과 흘은 혼돈의 땅에서 서로 만났는데, 혼돈은 그들을 융숭히 대접했다. 그래서 숙과 흘이 서로 의논하여 혼돈의 덕을 갚으려 했다. 그러나 숙과 흘이 혼돈에 구멍을 하루 하나씩 뚫어 7일째가 되니 혼돈은 죽고 말았다."

이 설화에서 혼돈은 소화기를 담은 몸통이고, 그 혼돈에 뚫린 일곱 구멍은 두뇌를 상징한다. 두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한 설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옛사람은 두뇌를 소화기의 연장으로 보았을까? 그 이유를 짐작하려면 뇌의 진화를 설명한 라이언 왓슨의 다음 얘기를 들어보자.

"하등 동물 히드라는 온몸이 소화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입과 항문을 겸하는 위쪽의 구멍 주위를 신경세포가 둘러싸고 있다. 동물의 신경세포는 뇌와 관련이 있으므로 히드라의 신경세포 같은 것이 위쪽으로 뻗어 뇌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 물이나 펄에 사는 원시 동물에게 있어서 미각과 후각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진흙 속에서 영양 물질과 접촉함으로써 감각이 생겼고, 그 후 좀 더 효율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영양 물질을 감지할 필요성에 의해서 후각이 생겼다. 이어서 청각과 시각이 발달한 것은 물론이다."

이런 현대 과학의 추론은 뇌가 소화 기능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의학이 뇌와 그것을 감싸는 머리가 위장의 영향 하에 있다고 본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었다. 몸을 구성하는 기관의 진화를 전혀 알지 못했던 옛사람들이 현대 과학의 결론과 비슷한 추론을 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논리 속에서 <동의보감>은 안면 마비 증상을 예방, 치료하기 위해서 위장 기능을 보강하는데 주력한다. 그런데 이런 처방도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봐도 터무니없지 않다. 몸통 속 위장 운동은 뇌의 지령을 받지 않고 자율신경계를 통해서 조절된다. 스트레스, 피로가 쌓이면 자율신경계의 조절 작용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부교감신경의 영향을 받는 안면 신경은 음식물의 소화를 책임지는 위장의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안면 신경 마비를 앓았던 환자의 상당수가 스트레스 후에 증상이 왔다고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스트레스와 위장 기능, 안면 마비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면 신경 마비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찾아온다. 상당수 환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거나, 양치질할 때 물이 새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발견 후 수 시간 내에 증상이 약간씩 악화 경로를 밟는다. 때로는 혀 앞부분의 미각 상실이나, 귀의 청각 과민도 나타난다.

마비 전에 약간의 징조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목 뒤가 뻐근하든지 귀 뒤에 있는 높이 솟은 뼈에 이상하게 불쾌한 느낌이 있다. 그 이전에도 위장이 먼저 불편해진다. 잘 얹힌다든지 가스가 생겨 빵빵한 느낌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이런 조짐이 보이면 속을 따뜻하게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죽이나 소화시키기 쉬운 것을 먹고 뜨거운 팩을 배에 올려서 위장 기운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참고로 마비의 단계를 이렇게 나누어 보면 자신의 경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상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지구의 체온 vs 인간의 체온 ~ 한파·폭설…"몸살 앓는 지구의 마지막 경고!"

기사입력 2011-02-09 오전 9:09:38

 

올 겨울 갑작스러운 한파와 폭설로 우리 모두가 떨고 있다. 이런 날씨를 접하면서 많은 이들은 이런 푸념을 하곤 한다. "지구가 더워진다는데 왜 이렇게 춥단 말인가?"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높은 탓에 그곳의 찬 공기가 통제되지 못하고 남쪽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자의 설명을 듣고도 선뜻 수긍이 안 된다.

'지구가 감기 몸살을 앓는구나!' 나는 올해 한파로 떨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한의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명백한 이상 기후가 꼭 감기 몸살의 증상과 같기 때문이다. 감기 몸살의 초기 특징은 바로 오한과 발열이다. 바로 지구가 오한과 발열을 겪고 있는 모습이 요즘의 이상 기후 아닐까?

잘 알려져 있듯이,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전제를 깔고 지구 환경을 설명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가이아 이론은 한의학의 세계 인식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다음과 같은 <동의보감>의 구절을 러브록이 읽었다면, 무릎을 치면서 탄복했을 것이다.

"하늘에 일월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눈이 있다. 하늘에 낮밤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수면과 활동이 있다.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콧물과 눈물이 있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은 천지가 호흡하는 것으로 하루 두 번씩 오르내릴 뿐이지만 사람은 하루에 1만9500번 숨을 쉰다. 그래서 천지 수명은 오래고 끝이 없지만 사람 수명은 아무리 길어도 100살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맥이 급하면 성질이 급하고 맥이 느리면 성질도 느리다. 대체로 맥이 완만하고 느리면 오래 살고, 맥이 급하고 빠르면 오래 살지 못한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 소설 작가 중 한 사람인 막심 샤탕은 이런 가이아 이론의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소설(<가이아 이론>(이원복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을 썼다.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가이아 이론을 바탕으로 한 편의 긴박감 넘치는 추리 소설로 재탄생시킨 샤탕은 이 소설의 첫 장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다 지배하려는 욕심 때문에 지구는 몸살에 걸렸고, 그 몸살을 만든 세균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몸살에 시달리는 것이 세균, 바이러스 탓이라면, 지구가 몸살을 앓게 한 원인인 인간이야말로 지구(가이아) 입장에서는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라는 통렬한 지적이다.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두면, 온난화 현상에 따른 이상 기후야말로 인간이 감기에 걸렸을 때의 발열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은 불쾌하고 힘들지만 다 이유가 있다. 진화생물학자는 열이 나는 현상을 감염에 대한 생물의 방어 작용의 하나로 설명한다. 새끼 토끼는 감염이 되면 스스로 열을 발생할 수 없어서 체온을 올려줄 만한 따뜻한 곳을 찾는다. 변온동물인 도마뱀도 감염이 되면 체온을 2도 가량 올려줄 만한 곳을 찾는다.

외부로부터 침입한 세균,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열이 나는 것이다. 일찍이 한의학도 이런 점을 인식해서 감기가 걸리면 매운 음식처럼 열을 나는 음식을 권했다. 더 나아가서 한의학은 환자가 열이 나는 증상을 유심히 관찰해 그것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한의학은 인체에 여섯 개의 방어막이 있다고 보았다. 태양, 소양, 양명, 태음, 소음, 궐음이라고 불리는 '육경(六經)'이 그것이다. 이 중 태양, 소양, 양명 세 가지는 양의 성질을 띤 방어막이고, 나머지 태음, 소음, 궐음 세 가지는 음의 성질을 띤 것이다. 실제로 각각의 방어막은 다른 식의 모습을 보인다.

첫 번째 방어막은 오한과 발열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두 번째 방어막은 더웠다가 추웠다가를 반복하는 한열왕래의 형태이다. 세 번째 방어막은 일방적으로 열을 내면서 달아오르는 형태이다. 나머지 음의 성질을 띤 방어막은 대개 열이 오르고 나서 체내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다. 열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저장된 영양분을 20%나 빨리 써 내부 에너지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가이아 이론을 염두에 두고 지금 지구의 상태를 몸의 상태에 빗댄다면 어떤 단계일까? 열 받은 지구는 나름의 균형을 찾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이고, 이것이 국지적으로는 발열과 오한의 상태를 반복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겪는 이상 기후의 진실인 것이다.

올 겨울의 한파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이런 식이라면 지구에서 인간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 말이다. 프란츠 부케티츠는 <자연의 재앙, 인간>(박종대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에서 이렇게 말했다.

"칼 세이건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으로 묘사했다. 우주탐사선이 해왕성 궤도 밖에서 찍어 보낸 사진을 보면 지구가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본 지구는 참으로 외롭고 볼품없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우주가 이 조그마한 한 점에 사는 한 '털 없는 원숭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렇게 열망하는 것은 얼마나 병적인가."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통큰 치킨 ~ '통큰 치킨', 알고 보면 '변비 치킨'이라네!

기사입력 2011-02-16 오전 8:14:36

 

최근 갑작스럽게 모 방송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통이 크다'의 의미를 분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대충의 의미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맞는지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통이 크다'라는 말에 대한 기록은 동양 삼국에서 모두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통이 크다'와 '통이 좁다'를 '위구불소(胃口不小)', '위구흔소(胃口很小)'로 표현한다. 글자 그대로 위장의 구멍이 작지 않다가 '통이 크다'이고 위장의 구멍이 작다가 '통이 좁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통이 크다'를 '腹つ大'로 표현하는데 '배가 크다' 즉 위장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위장은 왜 '통이 크다'는 말의 핵심이 되었을까. 위장은 음식물을 담는 큰 그릇이다. 또 음식물을 담지만 금방 비워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내 것이지만 남인 음식물이 지배하는 공간인 것이다.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내 것과 남의 것을 따지지 않는 관용 정신에 바탕을 둔 기관이 위장이며, 이런 위장의 기능을 염두에 둔 말이 바로 '통 큰'이라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육체에 집착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허공이 인간을 먹여 살린다. 말기 암 환자가 되어 집중 치료실에 들어간다면 인체의 요관, 호흡관, 배변 기관, 기관지 등의 관들은 모두 외부의 관으로 이어진다. 이 순간 바로 인간이 관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중에 관이 하나라도 막힌다면 생리 활동에 엄청난 지장을 받는다. 있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이 나를 살린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은 바로 이런 사실의 명확한 표현이다. 특히 소화관은 이런 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관이다. 구강에서 항문까지 총 8m나 되는 소화관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뉴시스

노자의 도덕경 11장과 6장은 '무용지용'과 '현빈지문(玄牝之門)'에 대해 상징과 해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위장의 존재와 그 작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1장부터 살펴보자.

"수레바퀴에 달린 30개의 살이 모두 바퀴의 안쪽 테인 곡으로 모이고, 그 곡의 한가운데 뚫려있는 빈 구멍에 축을 넣어야 수레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어도 그 속이 마땅히 비어야 그릇이 쓰임새를 얻고, 벽을 뚫어 문과 창을 내고 방을 만들어도 텅 빈 안이 있어야 방의 쓰임새를 얻는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이로움으로 삼고 없는 것은 쓰임새로 삼는다."

이 대목은 비어있는 관, 즉 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화관이 축이 되어 인체가 생리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11장이 위장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라면 6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위장의 기능을 설명한다. 특히 '현빈지문(玄牝之門)'의 '현빈(玄牝)'에 주목해야 한다.

'현(玄)'은 '적(赤)+흑(黑)'이다. 검은 것은 어둠으로 죽음의 문이고 붉은 것은 밝음으로 생명의 문이다. '빈(牝)'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음식물은 생기를 축적한 채로 입으로 들어갔다가 생기를 잃고는 항문으로 나온다. 들어가는 것은 생(生), 나오는 것은 사(死)로 이런 생사의 문을 출입하는 관을 바로 위장이라고 본 것이다.

'통이 크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위장의 크기와 관계되는 말이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이익에 집착하거나 내 것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같이 들어 있다. 한의학의 고전 <본경소증>에서는 과식에 대한 경고를 다음처럼 기술하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음식이 필요하다. 곡식이 위로 들어오면 소화를 통해 전신에 음식물의 영양을 퍼뜨린다. 과식으로 소화 작용이 원활치 못하면 기(氣)가 막히고 응결하여 위장의 맥락이 약해진다. 위장에 힘이 없어져서 배가 고프지 않고 항상 포만감과 막힘을 느끼면서 모든 이상이 일어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대형 할인점이 소비자를 혹하고자 내놓은, '통큰 치킨'은 통이 큰 치킨이 아니다. 먹기만 하고 내놓지 않으면 변비가 되어 <본경소증>의 경고처럼 인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기업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으기만 하고 내놓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통이 크다'의 말에 들어있는 핵심 가치는 '관용'과 '절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부럼의 효과 ~ 피부 미인·아토피 환자의 가장 큰 적은?

기사입력 2011-02-23 오전 9:54:23

 

정월 대보름에 먹는 땅콩, 호두, 잣 등이 부스럼을 예방한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부스럼은 피부에 나는 종기를 통칭하는 병명이다. 종기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대부분의 왕을 공포에 떨게 한 질병이다. 그렇다면, 이 질환을 종기라고 하지 않고 굳이 부스럼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의보감>은 부스럼의 원인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여름철에 땀을 지나치게 흘려 피부에 좁쌀 같은 것들이 붉게 돋은 것을 땀띠라고 한다. 이것이 짓무르고 헤져서 부스럼이 된다."

<동의보감>의 이런 설명은 피부 질환의 원인과 관련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땀이 많이 나면 피부에 있는 지질(기름기)이 씻겨 나가 피부가 외부 자극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동의보감>은 바로 이런 상태의 피부에 부스럼과 같은 질환이 생긴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즉, 부스럼의 원인을 피부의 지질 부족으로 설명한 것이다.

기름기는 지금에 와서는 기피 1호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는 과자나 음식 냄새가 기름기가 내는 고소한 냄새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원래 기름기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피부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도 지질을 포함한 각질층의 역할이다.

각질층은 각화라는 변화를 일으키며 죽은 표피세포가 15~20층을 이룬 것이다. 땀은 각질층에 수분을 공급한다. 또 피지선으로부터 나온 지방과 습기가 섞여 각질층 위에 피지 막을 만들어 천연 크림과 같은 역할을 한다. 크림은 마치 코팅 처리와 같은 방어막을 형성한다. 여름에 땀이 많이 나오면 피지가 씻겨 나가면서 이런 피부의 방어막 기능이 약화된다.

각질층의 지질의 피부 보호 기능은 잘 알려져 있다.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자유지방산 등으로 구성된 각질층의 지질은 여러 가지 외부 물질의 투과를 억제하는 장벽 기능을 담당하며 일종의 피부 코팅 역할을 한다. 특히 세라마이드는 각질증의 수분 유지에 영향을 주는데 노화가 진행될수록 줄어든다. (보습 화장품의 상당수는 세라마이드가 주성분이다.)

특히 세라마이드는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경우에도 적다. 아토피성 피부염의 치료에 피부 장벽 기능을 하는 지질의 역할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최근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성 피부의 경우도 세라마이드가 적어서 피부가 건조한 것이다. 이런 사정 탓에, 한의학의 피부 질환 치료에는 기름이 많이 쓰였다.

ⓒ프레시안

<향약집성방>을 보면 어린이의 각종 피부 질환에 호두를 직접 처방한 기록이 나온다. 호두는 기름이 59.18%나 포함된 것이다. 기름이 40~50%나 되는 땅콩도 각종 피부 질환의 처방 중 하나였다. 예로부터 잣도 피부를 곱게 하면서 지질을 보충하는 처방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일화자본초>를 보면, 잣은 허한 것을 보하고 여윈 것을 살지게 하며 오장의 기능을 돕고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지질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자운고'라는 연고도 등장했다. 자운고는 진실공(陳實功)의 저서인 <외과정종>의 '백독창(白禿瘡)' 항에 기록되어 있는 윤기고라는 처방이 기원이다. 건선, 습진, 무좀, 원형탈모증 등에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부스럼 부위가 크지 않거나 분비물이 밖으로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조건을 지키면 만능이라고 할 정도이다.

참기름, 돼지비계기름에 당귀, 자근을 넣은 자운고는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살갗을 빨리 재생시켜 상처 흔적과 색깔의 변성을 막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약국 제제로서 허가되어 있는 한방외용약이 4종인데 그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판매량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자운고다.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 중 귀밝이술에 대한 부분이 가진 논리적인 근거는 지난해 이 칼럼에서 설명하였다.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염두에 두면, 정월대보름에 잣, 땅콩, 호두 등 지방이 많이 포함된 부럼을 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본 조상들의 풍속 역시 나름의 논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지혜와 경험의 산물인 세시풍속을 우리 것으로 온전히 소화할 때, 거기서 현대 의학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지 모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선조의 귀울림 ~ <드림하이> 송삼동 앓던 '이명', 선조도 앓았다?

기사입력 2011-03-02 오전 8:16:12

 

최근 가수 지망생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의 주인공(송삼동)이 이명을 앓아, 이 질환이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이명은 예전부터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질환이다. 조선의 선조 역시 '귀울림' 즉 이명(耳鳴) 증상을 호소했다.

선조는 1595년(선조 28년) 8월 8일 두통, 귀울림의 증세를 처음 호소하였다. 이듬해(선조 29년) 5월 11일에도 "왼쪽 귀가 심하게 울리고 들리지 않아 침을 맞지 않으면 낫지 않을 듯하다"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1604년(선조 37년) 5월 14일에는 귓가에 마비증이 와서 형방패독산을 복용했다. 1606년(선조 39년)에도 이명 증세로 고통을 호소했다.

선조가 이렇게 이명으로 고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명은 사실 보통 사람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피로가 누적, 수면 부족일 때 이명과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은 많다. 이렇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이명 증상은 잠시 쉬면 금방 낫는다. 그러나 피로, 수면 부족이 계속돼 심신의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이면 결국 이명, 현기증이 만성 질환으로 발전된다.

▲ 가수를 꿈꾸는 10대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드림하이>의 주인공 송삼동(김수현). ⓒKBS
심신의 스트레스가 이명, 현기증을 어떻게 일으키는지 그 메커니즘은 아직 확실하게 해명되어 있지 않지만, 만성적인 이명과 현기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상태를 심리 테스트 등으로 검사해 보면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우리의 몸은 교감 신경을 긴장시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태세로 들어간다.

예를 들어 밤길에 갑자기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면 교감 신경이 긴장이 되고 얼굴의 혈관은 수축하여 안색이 파랗게 되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입은 마르게 되고 피부에는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자극의 원인이 제거가 되면 긴장 상태는 해소되고 교감 신경의 긴장 역시 이완된다.

그런데 일이나 인간관계가 원인이 되어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경우는 어떨까? 교감 신경이 쭉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는 몸이 몇 개라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교감 신경의 긴장을 이완하는 스위치가 작동한다. 대뇌 피질의 대뇌변연계에 바로 이런 브레이크가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아주 강하거나 너무 장시간 지속되면 대뇌 피질의 이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교감 신경을 이완시키는 스위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교감 신경, 부교감 신경으로 이뤄진 자율 신경의 균형이 깨져 특별한 원인 없이 신체의 이상 증상들이 나타난다.

스트레스와 관계있는 질환으로는 두통, 어깨 결림, 소화성 궤양, 만성 위염, 고혈압증, 자율 신경 실조증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선조는 이런 질환을 평생에 걸쳐서 앓았다.

소화 불량은 청년 시절부터 자주 나타난 질환이었다. 1574년(선조 7년) 1월 7일 선조가 자주 체해서 의관의 진찰을 받은 사실 외에도 양위진식탕, 가미응신산, 생마죽, 생맥산 등의 위장 약의 처방 기록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같은 해 1월 10일의 기록이다.

"유희춘이 비위를 조리하는 법과 식료 단자를 써서 아뢰다."

유희춘이 누구인가. 바로 허준의 평생 후원자이자 허준의 진료를 받은 호남 유림의 거목이다. 선비로 대표되는 유의들이 가진 한의학적 소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젊은 날의 선조는 신하들의 기세에 눌려 소화 불량 증세만 호소할 뿐 본인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끙끙 앓기만 한 듯하다. 본인의 질환을 놓고도 선조는 "심장에 열이 있다", "심병이 생겼다" 등의 표현으로 우회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반면 1604년(선조 37년)에는 꽁꽁 내면에 눌러둔 스트레스를 그대로 표출한다.

"의관에게 내 병은 심증에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더니, 의관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선조는 도대체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국내외의 온갖 문제에 시달린 선조였지만, 평생을 짓누른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바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통성 문제였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 선조가 즉위하기까지 선왕의 직계 아들이 아닌 임금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조의 아버지는 중종과 창빈 안 씨 사이에서 난 두 번째 아들 덕흥군 이초(중종의 7남)다. 선조의 어머니는 정인지의 친손자인 정세호의 딸이었다. 선왕인 명종의 조카뻘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선조는 조선 왕들 중에서 직계 혈통이 아닌 방계 혈통으로 왕이 된 최초의 사례였다.

서울 동작구 동작동의 국립현충원 안에는 동작릉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이 릉의 주인이 바로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 씨(1499~1547년)다. 창빈 안 씨는 손자인 선조가 왕이 되면서, 선조 이후의 조선 왕들을 모두 다 후손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이 릉이 최고의 명당 자리 중 하나로 꼽히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이준경을 비롯한 신하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해서 얻은 왕위인 만큼 선조는 신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정권을 장악한 사림의 본격적인 붕당 정치,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7년 전쟁 등의 격랑을 거치면서 선조의 스트레스는 최악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이명을 비롯한 온갖 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선조는 주로 침으로 이명을 치료했다. 심지어 선조는 1606년(39년) 4월 25일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귓속이 크게 울리니 침을 맞을 때 한꺼번에 맞고 싶다. 혈(穴)을 의논하는 일은 말만 많다. 만약 침의가 간섭을 받아 그 기술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을 테니 약방은 알아서 하라."

이렇게 선조의 신임을 받던 당시의 침의는 누구였을까? 당연히 허임이었다. 허임이 <침구경험방>에 이명을 치료하는 혈로 꼽은 부위는 이명의 원인을 자율 신경의 이상으로 보는 현대 의학의 관점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다. 매번 이명 환자에게 침을 놓으면서, 허임의 탁월함에 놀라고 또 놀란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허준의 진실 ~ 진짜 허준은 진정한 '까도남'?

기사입력 2011-03-09 오전 10:07:30

 

허준은 과연 명실상부한 조선 시대 최고의 명의였을까? 당대의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였을까?

허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설적인 면모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방송과 드라마를 통해 본 허준의 모습과 실제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이나 그의 평생 후원자였던 유희춘의 <미암일기>를 통해 본 그의 모습은 어땠을까?

야사(野史)로 전해오는 이야기 중 '난리탕' 처방을 둘러싼 허준의 대응이 나온다. 그가 당대의 명의로서 어의가 되자 당연히 몸이 아픈 많은 사대부가 왕진을 청했다. 비록 어의였지만 사대부와 의관의 신분 격차는 엄청난 것이었다. 진료 청탁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그로서는 자신이 각기병에 걸려서 왕진하기 힘들다는 뜻을 전했다.

각기병은 "다리가 불편해서 거동이 불편하다"는 식의 면피용 질병명이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모두가 몽진을 떠나고자 허둥대며 임금을 모시고 대궐을 나섰다. 이 때 허준이 제일 앞장서서 종종걸음으로 앞서 나간 모양을 보고 오성 이항복이 건넨 한마디가 바로 난리탕이다. "어의 허준의 각기병에는 난리탕이 최고요." 진료 청탁을 거절한 허준을 비꼰 말이다.

▲ 드라마 속 허준(전광렬)의 모습은 진짜 허준과 얼마나 비슷할까? ⓒMBC
실제로 허준은 이렇게 진료 청탁을 거부했을까? 기록은 반대다. 그의 평생 후원자였던 유희춘의 <미암일기>에는 많은 진료 청탁과 이 부탁을 정성껏 수행하는 허준의 모습이 곳곳에 나타난다. 우선 유희춘부터 허준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1569년 유희춘은 나주에 사는 그의 아들 나덕명의 병을 진찰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이런 인연으로 유희춘은 이조판서 홍담에게 1569년 6월 3일 내의원에 허준을 천거한다. 그는 청탁을 잘 들어준 덕분에 드라마와 달리 과거를 거치지 않고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다. 그 후에도 유희춘은 자신의 병은 물론 부인의 병 치료를 부탁했다. 또 서울 근교에 사는 송순의 병을 진료 청탁한 기록도 나온다.

그렇다고, 허준이 모든 진료 청탁을 쌍수 들고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렸던 모양이다. 선조 사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선조가 죽자 사간원은 허준을 강력히 비난한다. 어의로서의 자질뿐만 아니라 품성 자체를 문제 삼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허준이 본시 음흉하고 범람한 사람으로 약을 씀에 있어 많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저질러 망령되이 극히 찬 약을 써서 마침내 선왕께서 돌아가셨다."

일부 사대부의 왕진 청탁을 거절하였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허준이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은 점은 광해군 또한 인정한 바다. 1608년 광해군은 사간원이 허준의 석방 명령 환수를 주장하자 이렇게 답한다. 고집 센 그의 소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약을 처방함에 있어 허준의 치료 능력을 잘 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대로 옳다고 생각하면 시행하며 정성껏 처신하는 그 뜻을 감안하여 석방한다."

실제로 허준이 선조에게 처방한 "극히 찬 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선조가 직접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1607년(선조 40년) 10월 9일 새벽 왕세자가 문안을 하고자 동궁에서 나오다 선조의 병세가 위급하다는 전언을 받는다. 선조가 방 밖으로 나가다 넘어져 의식을 잃자 한꺼번에 청심원, 소합원, 생강즙, 죽력, 계자황, 구미청심원, 조협가루, 묵은 쌀죽 등의 약을 올렸다.

정신을 차린 선조는 청심환, 구미청심환, 죽력 등의 찬 약제를 한꺼번에 집중 투여한 사실을 알고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의관들은 풍증이라고 말하나 내 생각에는 필시 명치 사이에 담열이 있는 것 같다. 망령되이 너무 찬 약제를 쓰다가 한 번 쓰러지면 다시 떨치고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미음도 마실 수 없으니 몹시 우려된다. 다시는 이처럼 하지 말라."

10월 26일 선조는 지속적으로 복용하던 약물이었던 '영신환'을 다 시 한 번 거부한다.

"새로 지은 영신환을 복용한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나 그 약 속에는 용뇌 1돈이 들어있다. 용뇌는 기운을 분산시키는 것이니 어찌 장복할 수 있는 약이겠는가. 더구나 지금처럼 추운 시기이겠는가. 요즈음 먹어보니 서늘한 느낌이 들어 좋지 않다. 의관들이 필시 오용하였을 것이다."

선조는 12월 3일에는 허준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진료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린다.

"사당원(砂糖元)을 들이자마자 또 사미다(四味茶)를 청하니 내일은 또 무슨 약과 무슨 차를 계청하려는가. 허준은 실로 의술에 밝은 양의(良醫)인데 약을 쓰는 것이 경솔해 신중하지 못하다."

이러다 선조가 죽었으니 사간원이 허준을 겨냥해 들고 일어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의 허준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당연히 찬사 일색이다.

"고금의 의료 서적에 널리 통달하여 약을 쓰는데 노련하다." (선조)
"허준은 내가 어렸을 대에 많은 공로를 끼쳤다. 근래 나의 질병이 계속되어 그를 곁에 두고 약을 물어서 쓰고 싶다." (광해군)

그러나 이런 허준의 능력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에 대한 인간적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다. 심지어 "허준이 성은을 믿고 교만을 부리므로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기록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추측하면 역시 진료 청탁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점과 호불호가 분명한 점, 자신의 진료에 타협하지 않는 외곬의 성격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나 그가 진료 청탁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면 <동의보감>을 비롯한 수많은 저작들은 나올 수 있었을까.

일본의 저명한 학자가 우리나라에 노벨상이 나올 수 없는 이유를 주변 관계를 중시하는 "나이트 라이프" 때문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허준의 삶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좋은 목소리의 조건 ~ 여색에 빠진 선조의 목소리가 갈라지자…

기사입력 2011-03-16 오전 10:20:44

 

선조 시대는 사림들이 장악했다. 유학도 조선 초기와 달리 송나라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이었다. 왕위 계승의 근처에도 가기 힘든 선조가 왕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사대부였다. 사대부의 역할이 커진 만큼 왕권에서 신권으로 권력의 균형추가 움직였다.

이 와중에 사림은 선조를 성리학의 이상적인 군주로 키우려고 교육에 나섰다. 이황, 이이, 기대승 등 듣기만 해도 대단한 유학의 거장이 모두 선조의 경연 강사로 나섰다.

성리학의 연구가 도덕성명(道德性命)에 편중되어 실제 현실의 문제에 대한 연구는 적고, 교조적이며 도덕적인 문제에 치중한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관점은 당연히 의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도덕적 관점에서 사람의 성욕을 절제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한의학의 모든 대가는 성(性)과 건강과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해왔다. <좌전>에서 전국 시대 명의 의화(医和)가 진후(晉侯)의 병을 논하면서 "그 병은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절도에 맞지 않고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진단한 것은 한 예다. 선조 시대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더 심해졌다.

선조의 질병에 대한 기록은 여색 절제에 대한 말로 시작된다. 1573년(선조 6년) 1월 3일 선조의 목소리가 끊어지고 책 읽는 소리가 이상하다는 지적을 신하들이 한 적이 있다.

"옥음이 정상이 아닌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어도 낫지 않으니 신하로서 누구나 걱정이 됩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선조의 목소리에 대한 근심스런 논의가 계속되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모두 자제한다. 이런 가운데 율곡 이이가 포문을 열었다. 이이의 성격을 두고 <조선왕조실록>은 "쾌직(快直)하다"고 표현한다. 거침없이 직설적이라는 뜻이다.

"소신이 병으로 오래 물러가 있다가 오늘 옥음을 듣건대 매우 통리(通利)하지 않으시니 무슨 까닭으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여색을 경계하는 말을 즐겨듣지 않으신다하니 성의(聖意)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맑지 못한 것이 여색을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선조를 책망한 것이다.

선조는 이런 지적에 "그대가 전에 올린 상소에서도 그렇게 말하였으나, 사람의 말소리는 원래 같지 않은 것인즉 내 말소리가 본디 그러한데 무슨 의심할 것이 있나"라고 답변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이 때 "옥색이 자못 언짢아하며"라고 선조의 불편한 심기를 자세히 묘사했다.

그렇다면 선조의 목소리 이상을 지적한 이이를 비롯한 신하들의 지적은 맞을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선조는 즉위할 때부터 공부 부담과 정치적 결정에 대한 압박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으면 외향적인 사람은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부교감신경이 흥분한다. 선조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부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미주신경 과긴장증이 오는데 발성 장애로 쉰 목소리가 생기거나 위장 운동 장애가 생긴다. 목소리의 이상을 호소하고 나서 선조는 위장 장애로 위장약을 복용하거나 소화 불량 증상을 지속적으로 호소했다. 이이를 비롯한 신하들이 성호르몬과 목소리의 관계를 논한 한의학의 이론적인 부분만 보다가 스트레스를 유발한 자신들의 책임은 망각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목소리를 관장하는 부분의 첫 구절을 "목소리는 신장에서 나온다"로 시작한다. 현대는 자기표현의 시대다. 말을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도 부지기수다. 교수, 교사, 가수, 성우, 상인에 이르기까지 그 직업군도 다양하다. 말로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며 살다보니 성대가 피로해지는 것 당연한 일이다.

성대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목이 마르고 건조해져 결국에는 쉰 목소리, 갈라진 목소리로 고생한다.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윤택하고 탄력있게 할까. <동의보감>은 좋은 목소리를 내는 법으로 이런 방법을 권장한다. "말하거나 와우거나 읽을 때 언제나 기해(배꼽 아래 있는 혈 이름) 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운 목소리를 내는 약물도 거론하였다. 껍질을 벗긴 살구씨, 졸인 우유, 꿀을 반죽하여 알약을 만들거나 곶감을 물에 담갔다가 늘 먹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흔히 달걀을 먹는데 흰자는 성질이 서늘해서 인후두의 열을 식히고 염증을 없애서 목소리를 좋게 한다고 생리적으로 설명하였다. 노래 부르기 전에 먹는 날달걀도 속설이 아닌 근거 있는 정설인 셈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인삼과 일본 ~ 그 일본인이 인삼 먹고 목매 죽은 까닭은…

기사입력 2011-03-24 오전 9:40:55

 

"인삼을 마시고 목매어 죽는다(人蔘呑んで首括る)!"

이 일본 속담은 병을 치료하거나 몸을 보신하겠다는 일념에 비싼 가격은 생각지 않고 과소비한 결과 빚 감당이 안 돼 자멸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 편으로는, 이 속담은 인삼의 가치를 잘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 유곽에는 부모의 병을 치료하고자 인삼 값 대신 몸 팔러 나온 처자들이 많았다.

인삼이 일본에서 얼마나 귀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있다. 인삼의 약효에 매료된 일본인은 인삼의 재배에 전력투구했다. 1793년 6월에는 한국 인삼의 일본 재배에 성공하기도 했는데, 이 기념비적인(?) 사실을 기리고자 인삼 두 뿌리가 상자에 보관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또 일본에서는 귀한 인삼 대신 인삼의 잎을 분말로 만들어 '인삼산'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서민에게 보급시켰다. 설명문을 보면, "인삼 잎의 분말의 효능은 완전히 인삼과 똑같고 약간 약할 뿐이라서 비위를 보하며, 원기를 더하고 피로 회복에 좋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일본 인삼은 이후 약효 면에서 낙제점을 받아서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중요한 약재인 만큼 조선과 일본 사이의 인삼 밀무역도 기승을 부렸다. 특히 일본을 방문하는 통신사들이 이 밀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 때문에 인삼을 10냥 이상 소지하고 있으면 목을 베기로 할 정도였다. 10냥이면 375g정도로 지금의 인삼 한 통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실제로 신유한의 <해유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1718년(숙종44년) 10월 7일 역관 중 권흥식의 행장 속에서 인삼 12근을, 오만창의 행장에서 인삼 한 근을 찾아냈다. 사신 행차에 인삼과 화물을 몰래 무역하는 것은 국법에서 금하고 있으므로, 사신을 따라온 모든 역관도 금령을 범하면 10냥 이상은 곧 목을 베기로 경연에서 결정했었는데 이 무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법령을 어겼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도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 방사성 독성 물질의 체내 흡수를 막는다는 요오드 함유 식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한의학에서도 방사성 물질에 대한 보호 효능 약물에 대한 연구가 북한 자료에서 보고된 적이 있다.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발행한 <보약>을 보면, 인삼의 방사성 물질에 대한 보호 효능 연구가 나온다. 연구 결과는 세 가지 정도의 효능으로 정리된다.

첫째, 인삼은 방사선을 쪼이기 직전에 주입하거나 혹은 쪼이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서 주입해도 보호 효능이 나타난다. 보호 효과는 정상적으로 먹이를 줄 때보다 인삼만을 먹일 때 더 분명하다. 똑같은 방사선을 쪼인 실험동물이 30일까지 살아남은 수를 대비한 결과 인삼을 먹인 군에서는 65%, 대조군에서는 30%였다. 먹이를 끊고 인삼만을 먹인 실험군에서는 84%(생존 일수 27.4일), 굶긴 대조군에서는 8%(생존 일수 18.8일)였다.

둘째, 방사성 독성 물질 산물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요오드, 세슘, 스트론튬이다. 이 중 스트론튬은 몸 안에 흡수되는 양의 90~95%가 뼈 조직에 침착되어 오랜 시간 머물러 있으면서 엄중한 병적 반응을 일으키는데 인삼은 이를 막는 데 효과를 보인다. 인삼이 뼈 조직에 침착한 스트론튬을 빼내어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셋째, 방사선 피해를 받고 나서 인삼을 주면 동물의 생존율이 높아지며 몸무게가 덜 줄고 적혈구, 혈색소, 백혈구수도 잘 줄어들지 않는다. 방사선 노출에 의해 억제된 망상내피세포 계통의 기능을 일정하게 높이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역사상 가장 귀하게 여겼던 약재가 지금의 재난 속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인삼의 약효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연구가 시급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늦게 피는 열꽃, 갱년기 ~ "코는 지끈 귀는 멍멍", 아줌마 병의 특효약은?

기사입력 2011-03-30 오전 9:05:06

 

갱년기로 인한 질병의 범위는 아주 넓다. 이 때문에 갱년기에 대한 이해는 복잡한 여성 질환의 맥을 짚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 작가 야마다 가나코의 단편 소설집의 제목인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인하다"라는 말을 재미있게 표현한 제목이다. 그런데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에 진짜 차이가 존재할까?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생명체도 자신의 몸에 가지고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한 생명체라도 생의 단계에 따라서 자원을 쓰는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아가씨는 자궁과 유선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최상의 짝을 고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를 덜 분배하는 손, 발, 다리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아줌마는 다르다. 아줌마는 더 이상 자궁, 유선과 같은 여성성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다. 아이를 먹이고 키우며 보호하는 데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에게 진화의 흔적을 남기는 데 결정적인 기간이었던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 있을 때는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이야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통해서 가족의 형태가 지속되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수컷(남성)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암컷(여성)들을 임신 시킨 후 도망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뱃속의 아이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아이가 제몫을 할 때까지 키워야 하는 일을 짊어진 아줌마는 이제 남성처럼 강인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갱년기는 여성성이 남성성으로 전환되는 극적인 시점이다. 한의학으로 볼 때 여성이 음(陰), 남성이 양(陽)이라면, 갱년기는 음의 성질인 여성성이 줄어들고 양의 성질인 남성성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즉, 몸의 양기 때문에 열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에 빗댄다.

여성의 자궁은 음의 성질을 가진 혈액이 머무는 곳이다. 음의 성질을 가진 찬 기운이 한 곳에 머물면 굳기 마련이므로, 혈액은 순환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리 현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월경이다. 그리고 여성의 몸 안의 양기는 이런 순환을 하는 힘의 근원이다. 그런데 갱년기가 되면 자궁에 머물러야 할 혈액이 줄어들면서, 이런 순환이 멈추게 된다.

몸에서 용도가 없어진 양기는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갱년기 여성이 남편과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은 것도 이렇게 양기가 뻗치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긴다. 귀에서는 이명, 어지럼증, 얼굴에서는 안면 홍조가 생기고 두통, 흥분, 열감으로 고생하며 그 결과 식은땀, 불면증이 생긴다.

인체의 상하 중 위로 열이 몰리면서 아래는 차가워지고 기능이 떨어지면, 방광에 소변을 저장하지 못하는 빈뇨 증상, 시원스레 내보내지 못하는 불쾌감, 성기능 저하, 변비 등 여러 가지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증상에 가장 적합한 약은 무엇일까? 보통 '가미소요산' 처방이 으뜸으로 꼽힌다.

<한방치료백화>의 한 장('矢數道明')은 이 처방에 대한 치료 효과를 여러 차례 검증한 결과를 보여준다. 갱년기 장애에 가미소요산을 43례에 걸쳐 투여했더니 유효 25, 불명확 8, 악화 3, 중지 7의 결과를 얻어냈다. 절반 이상의 환자에게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본 것이다. 가미소요산을 처방은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기술한 내용도 나온다.

"머리가 지근지근해서 어지럽고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고, 전차 안에서 특히 어깨가 심하게 뻣뻣해, 상태가 심할 때는 전신에 땀이 흘러나오는 정도로 기분이 나빠지고 몸이 웅크려진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 기(氣)가 역상해서 흥분하며 주변 일에 신경이 쓰인다."

이 환자는 가미소요산의 10일분 복용으로 호전되었다. 특히 이 책은 "이 처방은 '화제(和劑)'일 뿐"이라며 "병을 확실히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라고 과신을 경계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화병을 심하게 앓는 정조가 강명길의 도움으로 이 처방을 복용하고 나서 많은 효험을 보았다.

흔히 갱년기 질환을 치료하고자 무조건 여성 호르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가미소요산은 이런 여성 호르몬의 과용을 막고, 갱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처방이다. 나 또한 이 처방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여성의 알레르기 비염, 이명, 어지럼증 등 이비인후과 질환의 배후에 갱년기 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음을 오랜 경험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비염, 이명, 어지럼증 등으로 고생하던 중년 여성이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단 몇 천 원의 가미소요산 처방만으로도 큰 효과를 본 예가 수없이 많다. 수천 년의 지혜가 축적된 한의학의 힘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황사와 삼겹살 ~ 황사에 삼겹살은 미신? 진실은 이렇다!

기사입력 2011-04-06 오전 9:41:56

 

탄광촌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으며 진폐증의 공포를 이기고자 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전통과 과학적 의구심 사이의 시각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심한 황사가 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돼지고기를 찾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언론은 "무식한 일"이라며 핏대를 세운다.

그렇다면, 황사와 돼지고기의 진실은 무엇일까? 손이 더러워지면 물로 씻듯이 호흡기에 붙은 이물질을 흡착해 씻어내는 것 역시 물이다. 물론 이렇게 이물질을 흡착하는 물은 인체의 점액처럼 기름기가 있는 물이다. 이 점액은 비강, 부비동, 이관, 기관지의 점막 표면을 덮고 있는 끈끈한 젤 층이다.

이 점액층은 섬모 끝에 놓여 있어서 섬모 운동에 의해 컨베이어벨트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점액층도 두 층으로 되어 있다. 밖은 끈끈하고, 내부는 덜하다. 밖의 끈끈한 점액층은 몸으로 들어오는 공기 속의 여러 가지 이물질을 흡착하는 역할을 하고, 내부의 층은 섬모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

콧속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하루에 1~1.2ℓ 이상으로 엄청난 양이다. 코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점액층에 흡착되어 여러 가지 살균 물질로 처리되기 때문에 후비공(코 안쪽)에서는 거의 세균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코에서 외부 이물질을 방어하고 살균하는 역할은 모두 콧속 점액의 역할이다.

인체의 오장은 모두 점액을 분비한다. 간은 눈물, 심장은 땀, 비장은 타액, 폐는 콧물, 신장은 정액을 분비한다. 액은 두 종류다. 기본 점액은 앞에서 설명한 기름(이 함유된 물)이고, 반응성 점액은 기름이 거의 없는 보통 물에 가깝다. 기본 점액의 분비를 담당하는 것이 바로 신장이다.

<황제내경>은 "모든 물의 분비는 오장이 맡고 있지만 물의 기본적인 관리와 분비는 신장이 담당한다"고 정의한다. 신장에서 분비하는 기름기의 또 다른 표현인 '윤기'는 젊음과 건강의 상징이다. 머리카락도 얼굴도 피부도 반지르르한 윤기가 흘러야 좋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기야말로 건강의 상징이고, 바로 그것을 신장이 담당하는 것이다.

이제 돼지고기를 살펴보자.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돼지는 겨울(음기)을 상징하며 신장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성질은 차다. 그래서 양기의 상징인 뱀과 돼지는 천적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무인도를 사서 농지로 개간하려 했는데 섬이 뱀의 천국이었다.

돼지를 10마리 사서 섬에다 풀어두고 다시 돌아오니 뱀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통통하게 살이 찐 돼지들이 반갑게 인사했다는 것이다. 뱀은 차고 습기 있는 음지를 다니며 뜨거운 자신의 내부를 식히며 움직인다. 뱀으로 몸보신을 하겠다는 남자들의 욕구도 바로 뱀 속의 뜨거운 양기로 자신을 채우겠다는 심보다.

돼지의 차가운 성질과 뱀의 뜨거운 성질이 정반대여서 한 쪽이 다른 쪽의 밥이 되는 천적관계로 돼지의 본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한약과 금하는 것도 바로 차고 냉한 성질이 위장의 기능을 떨어뜨려 약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본초강목>에서도 "오랫동안 복용하면 약효를 감소하는 풍(風)을 통하게 하고 질병이 발생한다"라고 경고했다.

물론 약효도 있다. 특히 돼지비계와 관련해서 약효를 설명한 사람은 여럿이다. 위염정은 "신장으로 들어가서 음액을 자양하고 체표로 뚫고 나와서 사기를 흩어 버린다", 주우재는 "마른 것을 윤택하게 한다", 가운백(柯韻伯)은 "돼지 진액은 피부에 있다. 허해서 상초로 떠오른 화(火)를 치료한다"고 하였다.

삼겹살의 효능이 신장을 힘을 북돋아 몸의 코, 목 부분의 점액을 보충하고 외부 이물질을 없앤다는 약효를 설명한 것이다. 돼지비계나 기름을 코 치료 처방에 쓴 기록도 있다. <동의보감> 코 치료 외용약 방문에는 '세신고'라는 처방이 있는데, 맑은 코가 끊임없이 나올 때 돼지기름에 몇 가지 약을 더해서 코에 발라주는 외용약으로 처방했다.

다시 말하자면, 돼지고기가 황사에 효과가 있는 것은 그 기름이 황사 먼지를 직접 씻어서가 아니라 신장의 기능을 북돋아 점액의 생산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서양 의학에 익숙한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는 자꾸 몸을 부분으로 나누고 사고한다. 전체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매실 ~ 몸에 좋은 매실, 생각없이 먹다간 큰일 난다!

기사입력 2011-04-13 오전 10:14:25

 

'매화 매(梅)' 자의 고문(古文)은 '某'다. '살구나무 행(杏)' 자를 뒤집어 쓴 것이라는 설도 있다. 매화나무와 살구나무가 모두 장미과에 속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옛사람도 매화를 살구의 한 종류로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화는 살구꽃과 비슷하며, 열매도 살구와 비슷하다.

살구 씨에는 시안산이 포함되어 중독 증상이 자주 보고된다. 그러나 살구 씨를 조금 복용하면 체내에서 천천히 분해되어 미량의 시안화수소산(hydrocyanic acid, 청산이다!)이 만들어져 오히려 호흡 중추의 작용을 진정시켜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독이 약의 효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살구 씨를 짜서 기름을 내어 콧속에 바르면 비염 증상도 완화시킨다.

매실도 풋 익은 푸른 매실을 이용해 여러 가지 원액을 만들거나 백매, 오매를 만든다. 그 속에는 살구 씨처럼 시안산이 함유되어 있다. 아직 설익은 푸른 매실은 풋사과처럼 배탈이 나거나 중독 증상을 일으키게끔 되어 있으며, 그것은 매실이 2세(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독소이다. 그 독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불에 굽고 말리거나 해서 약물로 쓰는 것이 바로 백매와 오매다. 또 설탕물을 이용하여 삭인 것이 매실 원액이다.

매실의 효능은 과학에 의해 새롭게 재조명되어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는다. 매실에는 구연산이 19%, 사과산이 1.5% 포함되어 있으며 구연산이 피로 회복에 좋고 알칼리성으로 체질 개선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매실이 소화 불량과 위장 장애를 없애고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하여 그 효능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

매화는 사군자 중의 하나로 매서운 추위를 뚫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선비의 지조나 ,늙을수록 농밀한 향기를 풍기는 오래된 우정을 상징한다.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의미도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주위의 반대나 역경을 극복하고 불변의 마음, 더 나아가서는 매가 남녀를 맺어주는 '중매(媒)'나 아이를 배는 '임신 매(腜)' 자와 연결되어 상대에게 던져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거나 몰래 만나는 암호로도 사용되었다.

<한의학> 의서에서 매실의 효능을 기록한 문장은 한편의 시(詩)와 같다.

"봄이 오기 전에 매(梅)는 꽃을 피우며 얼음과 눈을 흡수하여 스스로를 적신다. 따라서 매화나무는 얼음처럼 차가운 한수(寒水)로 불꽃같은 욕망인 상화(相火)를 억제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입이 마른 것을 촉촉하게 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없애준다."

<본경소증>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갈증을 느낄 때 매실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나온다. 매실은 가장 빠르게 진액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진액은 공짜가 아니다. 내부에 있는 액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내부의 액은 우리 몸의 액의 근원인 신장에 있는 생명의 액이다. 자꾸 액을 끌어올리면 신장 기능이 허약해지며 그 결과 신장이 주관하는 치아가 손상된다. 근육도 상하고 위장도 부식하여 허약해진다.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치아가 약해지면 호도 육을 씹어 먹어라."

한의학에서는 음식도 약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섭생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이런 특징은 감기를 앓을 때 잘 드러난다. 감기에 권장하는 음식은 콩나물국, 김칫국, 파뿌리 등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설을 촉진하여 바이러스를 땀이나 대소변으로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음식을 바라보는 한의학은 식의학에 가깝다. 예부터 전해지는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은 '몸에 좋은 것을 먹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병의 치료나 예방에 효과가 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적극적 의미의 치료다.

식품이 약에 가까울수록 식품을 먹어서 좋은 사람과 안 될 사람의 편차는 당연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효험을 봤다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한의학적인 견해에 대해 귀 기울이고 식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고민과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매실은 보여준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코털의 미학 ~ 코털, 자를까? 뽑을까?

기사입력 2011-04-20 오전 9:56:48

 

코털 손질을 어떻게 해야 할까? 환자들 중에 코털을 뽑는 것이 좋을지, 자르는 것이 좋을지를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코 털이나 세포 겉의 가는 털(섬모)은 일종의 방풍림과 같다. 동해안의 월송정이나 송도에는 소나무가 멋지게 바닷가에 서 있다. 풍광을 위해 심은 것 같지만 사실은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강한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것이다. 코털도 소나무처럼 호흡기의 전면에 서서 보호막 역할을 한다. 바로 기관지와 폐의 보호막이다.

먼지나 꽃가루 같은 이물질이 콧속의 좁은 길을 통과하여 기관지나 폐에 접촉하면, 그것을 내보내고자 인체는 엄청난 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이물질은 한번 호흡할 때마다 20만 개나 된다. 미세한 것은 점액이 접촉하여 제거하고, 다소 큰 것들은 코털이 필터 역할을 한다. 만약 점액, 코털이 없다면 그런 이물질이 곧바로 폐까지 들어올 것이다.

코털은 온도를 조절하는 작용도 돕는다. 이것은 백인과 흑인의 코털 차이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춥고 습기 찬 지역에 사는 백인들은 코에 털이 자라서 바람이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흑인들은 빨리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코털이 작다. 실제로 환자를 치유하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적이 있다.

최근 한의원에 흑인 프로 농구 선수가 코가 막혀서 내원했다. 코 내부를 살펴보니 코털이 거의 보이지 않아 진실을 확인했다. 2미터(m)가 넘는 키여서 누울 베드조차 없어서 에어컨에 연결하여 치료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키 큰 사람이 싱겁다고 침에 대하여 공포심은 대단했지만, 무사히 치료하고 숨 쉬는 것도 많이 호전되었다.

공기는 콧속의 좁고 구부러진 길을 통해 따뜻해지고 습한 상태로 폐에 도달한다. 코의 점막에는 혈관이 많이 모여 있다. 자율신경 작용으로 혈액의 양을 조절하여 부풀거나 수축하면서 공기의 온도 습도를 조절한다. 코를 후비거나 코털을 뽑으면 코의 점막을 자극해, 코가 막히는 일을 유발할 수 있다.

코털을 뽑은 자리에 염증이 일어나면 다른 질병도 유발할 수 있다. 코 앞부분을 포함한 이 부위의 염증 때문에 생긴 혈전이 코 주위의 모세혈관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위험 삼각'이라고 부른다. 특히 그런 혈전이 안정맥을 막으면 안구가 튀어나오거나, 심하면 얼굴이 부어올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응급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니 항상 코 주위를 청결히 하고 코털은 손으로 뽑지 말고 자연스럽게 가위로 자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동의보감>을 살펴보자. <동의보감>은 코털을 이렇게 언급한다.

"콧속의 털은 항상 잘라(去) 없애야한다. 그것은 코가 신기(神氣)가 드나드는 문호이기 때문이다."

신 기라는 것은 마음을 넓게 상징한 표현이다. 코털이 마음이 드나드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징적이지만 <구약>부터 살펴보자. 시편을 보면, "인생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호흡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아담의 탄생 또한 흙으로 만든 사람 모양에 코로 숨을 불어 넣음으로써 삶이 시작되었다. 생명의 출발이 코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식적인 자아는 잠시 숨을 멈출 수는 있지만 숨을 끊을 수는 없다. 남방 불교의 수행법은 신기와 관련한 진실을 분명하게 예시한다.

남방 불교는 기본 수행법이 들숨날숨이다. 길게 들이쉬고 짧게 들이쉬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생명은 바로 나의 것이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자아가 통제하는 것이며 이것을 관찰함으로써 진정한 자아, 오래된 나를 관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동의보감>의 저 구절은 코털이 이런 마음의 고요를 방해하지 않도록 항상 단정히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한 번 더 강조한 것이다. 코털로 한 사람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착상, 얼마나 기발한가?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마황의 두 얼굴 ~ 살 빼는 약 '마황'의 진실

기사입력 2011-04-27 오전 8:13:10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팔리는 마황에 대한 독성 검증이 화제다.

마황(麻黃)의 별명은 용사(龍沙)이다. 마황이 든 약의 처방명도 소청룡탕, 대청룡탕이다. 청룡이라는 것은 마황의 색깔이 푸르면서 격렬한 약효를 가진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잘 알다시피, 용은 전설상의 동물로 물속에 잠겨 있다가 하늘 높이 날며 불을 뿜고 비를 내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연에서 가장 낮은 물속에 잠겨 있다가 가장 높은 하늘로 치솟는 이런 모습 때문에 용은 거대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인체에서 가장 낮은 신장(부신)의 에너지를 가장 높은 폐로 전달해서 격렬한 양기를 만드는 약효를 가진 식물인 마황을 이런 용에 비유한 것이 그럴 듯하다.

<동의보감>을 보면 이런 비유가 더 잘 이해가 된다. 인체의 에너지는 정·기·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 의학을 염두에 두면, '정'은 부신에 저장된 호르몬이고, '기'는 에너지, '신'은 에너지를 쓰는 정신 활동이다. 부신에 저장된 호르몬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일으키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강력한 약재인 마황을 용에 빗댄 것은 이런 한의학의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다.

ⓒhorizonherbs.com
마 황이 자라는 곳에는 겨울에 눈이 내리자마자 곧바로 녹을 정도로 양의 성질이 강하다. 한의학의 맥락에서 보면, 마황은 이렇게 음의 성질이 강한 곳에 양기를 퍼뜨리기 때문에 차가운 한기가 모이지 못하게 한다. 현대 의학을 염두에 두고, 그 약효를 살피면 일종의 각성제다. 정신을 흥분시키고, 심장 박동을 늘려서 혈액 순환을 돕고, 땀을 내거나 코를 뚫는다.

마황은 한의학 처방의 최고 고전인 <상한론>에도 언급될 정도로 오랫동안 약재로 쓰였다. <상한론>의 저자 장중경은 소설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시기에 살았던 의학자였는데, 당시 유행했던 전염병의 치료제로 바로 이 마황이 각광을 받았다. 당시 상한(전염병)이 유행하여 10년도 못되는 사이에 장중경의 일족 200명 가운데 3분의 2가 사망했다.

그 사인의 70%가 '상한'이었는데, 바로 이 전염병을 치료하고자 만든 처방을 기록한 것이 바로 <상한론>이다. 마황은 이 책 처방의 주약물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처방이 되는 갈근탕, 마황탕, 소청룡탕, 대청룡탕, 월비탕 등 마황이 들어간 많은 처방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한의학 초기에 마황처럼 효과가 있는 약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마황에 내재된 강력한 약성은 현대 의학도 부정하지 못한다. 일본 도쿄 대학 나가이 나가요시가 마황에서 에페드린을 발견했고, 1923년부터 이것은 현대 의학에서 천식과 기침의 치료제로 이용되었다. 에페드린은 각성제와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합성한 메탐페타민은 각성 쾌감 작용을 일으킨다.

즉, 마황은 현대 의학에서도 호흡기(肺)와 신경 계통(心)에 강력하게 작용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이 마황 즉 에페드린을 사용한 점이다. 미국에서 에페드린이 피부의 땀구멍을 열어주고 열량 소비를 촉진하는 것을 이용하여 약품이 아니라 건강식품으로 사용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전염병을 치료할 정도로 강력한 약을 의사가 아니라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여 과용하거나 남용한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본경소증>은 마황의 과용,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이렇게 설명한다. ①폐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고 근육이 떨리며 ②심에 영향을 주어 가슴이 두근거려 손으로 감싸려 하고 ③신에 영향을 주어 배꼽 밑이 뛴다. 이런 부작용도 마황을 상징하는 용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가 된다.

용이 깊은 물속에 숨어 있다가 하늘에 비를 내리는 것은 몸속의 진액이나 혈액을 부글부글 끓여서 땀내는 것과 같다. 마황으로 땀을 내게 되면 땀의 원료로 사용되는 혈액 역시 소모한다. 혈액량에 변화가 오면 심장의 혈액은 공백이 생기고 허혈 상태로 박동을 계속하여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으며 손이 떨리는 증상을 일으킨다.

이처럼 마황의 사용과 금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많다. 그래서 한의학자도 마황이 들어간 약을 처방할 때는 환자의 상태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표준 체중 이하이거나 생리 양이 적거나 소변 양이 적은 사람, 갑상선 기능 항진증 환자에게는 복용을 주의하는 지침을 내린다.

내 가 이 처방의 위력을 알게 된 것은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면서 마황이 들어간 소청룡탕을 처방했을 때 보인 효과 때문이었다. 알레르기 비염을 치료하였는데 비만이 개선되고 식욕도 떨어졌다는 호소 아닌 호소를 들으면서였다. 실제로 사상 의학을 염두에 두고 치료를 하는 한의사들은 뚱뚱한 태음인의 체질 개선 약으로 마황을 처방한다.

약과 독의 경계는 적정한 체질의 환자에게 적정한 용량을 처방하는 데 있다. 약은 인체가 위기에 빠졌거나 그런 징조가 명백할 때 마지못해서 쓰는 것이다. 신체의 이상이 안 나타나고 또 그 원인도 막연한 상태에서 복용하는 건강식품과는 다르다. 마황을 건강식품으로 취급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그것을 무조건 독성 물질로 몰아붙이는 것도 잘못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북두칠성 ~드라마 <49일>, 왜 하필 '49'인가?

기사입력 2011-05-04 오전 8:03:48


 

요즘 드라마 <49일>에 눈이 간다. 10대들이 좋아할 판타지, 할리퀸 소설의 설정을 빌린 이 드라마에 새삼 눈길이 가는 까닭은 바로 숫자 '49'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숫자 '49'에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49(7×7)는 한민족의 삶을 상징하는 숫자다. 우선 7은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강원도 아리랑의 가사 중에 "칠성당에 아들 딸 낳아 달라고…"가 있다. 옛사람은 삶의 시작이 (북두)칠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애를 낳았을 때도 7일이 일곱 번 즉 49일이 될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49일 이전에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으면 관 바닥에 칠성판을 깐다. 칠성판을 통해서 하늘의 문을 통과한다고 보았다.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인 천추성 쪽으로 머리를 놓고 일곱 번째 별인 요광성 쪽으로 다리를 향하게 하여 땅에 묻었다. 상두꾼이 방울을 흔들며 묘지로 인도한 것도 하늘의 자손이 땅에 들렀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 선조는 하늘과 땅을 자신의 동반자, 혹은 삶의 거울로 여겼다. 특히 그들은 천문을 살핌으로써 하늘의 진리가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신약>의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체화했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북두칠성은 천체 운행의 기준점이었다. 옥상에 올라가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축으로 도는 무수한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옛사람은 이런 북두칠성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해, 그것이 사계절의 질서 즉 인간사의 질서를 주관한다고 여겼다.

<동의보감>에서 북두칠성을 놓고 "하늘은 북두칠성을 기틀로 삼고, 사람은 마음을 기틀로 삼는다"라거나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은 모두 북두칠성의 힘으로 돌린다"고 말하는 것은 옛사람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두칠성을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집행하는 별이라는 뜻의 '칠정(七政)'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음양오행도 북두칠성과 관계가 있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운행을 주관한다고 여긴 옛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일곱 개의 별을 꼽았는데, 그것이 바로 해, 달,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일월오행'이고, 일월이 음양을 상징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음양오행'을 가리킨다.

이 런 북두칠성은 우리 전통 곳곳에 녹아 있다. 윷놀이도 한 예다. 29개의 점 중 중앙의 1개를 제외한 28개는 28수 별자리를 나타낸다. 28개의 점은 네 방향으로 각각 7개의 점으로 나뉘는데. 이 숫자 '7'은 북두칠성을 그린 것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자모의 수도 28개인데 이 역시 칠성을 사계절에 재배치한 숫자이다.

그 렇다면, 북두칠성에서 유래한 49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옛사람은 북두칠성의 정기로 태어난 생명이 칠성의 첫 번째 별에서 일곱 번째 별까지 돌면서 삶의 본래 면모를 비로소 찾는 것으로 여겼다. 또 죽은 사람 역시 칠성의 인도에 의해서 생전에 집착했던 온갖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여겼다.

49일 동안 자신의 삶을 되찾아야 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얽혀 있었던 관계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이야말로 이런 옛사람이 생각했던 북두칠성의 통과 의례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다. 몇 회 안 남은 드라마 <49일>이 시청자로 하여금 북두칠성의 지혜를 한 번쯤 되새기게 하는 속 깊은 결론으로 끝나길 바란다.

황사 때문에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 하늘이, 마치 삶을 성찰하지 않고 무조건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오늘은 황사가 걷힌다니 한 번쯤 북쪽 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아보면 어떨까? 옛사람들이 그랬듯이 북두칠성을 하나씩 헤아리면서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자.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지금 한의학은 몇 시인가? ~ 노태우 미스터리, 한의학의 대답은…

기사입력 2011-05-11 오전 10:05:58

 

노태우 전 대통령 몸속에서 침이 발견되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은 한 주였다. 이번 의료 사고는 한의사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노 전 대통령의 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서 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질환은 자율 신경계의 이상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은 "2002년 미국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 자율 신경계에 이상이 와 말과 행동이 느려졌다"고 보도했다.

자율 신경은 뇌의 활동과 더불어 인체의 신경 활동을 주도하는 중요한 생명 유지 장치다. 예를 들어, 숨을 쉬는 것을 멈추면 죽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호흡은 자율 신경계가 관장하기 때문이다.

자율 신경계는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항상'이란 상태가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변화되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런 자율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가지 이상 증상이 생긴다. 예를 들어, 귀를 놓고 보자. 귀 속에서 소리를 내는 유모세포가 20데시벨에 반응할 때, 자율 신경은 뇌에 정상 상태라고 전달한다. 20데시벨 이상으로 반응하면, 자율 신경은 뇌에 '시끄럽다'는 신호를 준다. 그런데 자율 신경에 이상이 생기면 20데시벨일 때도 계속 뇌에 '시끄럽다'는 신호를 준다. 이것이 바로 자율 신경 이상에서 오는 이명과 같은 증상이다.

▲ 노태우 전 대통령. ⓒ프레시안
자율 신경을 강화하는 건강법은 환원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자율 신경이 소화 기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여긴다. 자율 신경 부조증이 야기되면 구토를 하거나 속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소화 기관을 자극함으로써 자율 신경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어떤가? 노 전 대통령의 침은 기관지에서 발견되었다. 즉 옆구리에서 폐 쪽을 향한 시술이었다. 그곳은 자율 신경 치료와 연관이 있는 소화 기관의 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다. 즉, 한의사라면 그런 곳에다 침을 놓지는 않는다.

더욱 의아한 것은 침의 손잡이 부분인 침병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내부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침이 떨어져 있다가 찔려서 몸속으로 들어갔다고 추측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거의 없다. 손으로 찔러도 들어가기 힘든 침이 혼자 서서 피부를 뚫고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렇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갖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상상, 추론을 해도 뾰족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입맛이 씁쓸한 것은 치료자가 한의사가 아닌 무자격자로 윤곽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의학은 수천 년간의 한의학의 경험의 집대성을 염두에 두고, 논리적인 설명을 도모하며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려는 학문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여전히 화타, 편작 같은 신적인 존재에 열광한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침 한 방, 약 한 첩에 만병통치를 호언장담하는 사이비들이 질병에 지쳐 있는 절박한 대중의 심리를 공략한다.

그들은 한의학의 전체 체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경전의 한 구석을 떼어내 어설프게 자신의 진료 능력을 과시하기에 급급한다. 그러다 보면, 온갖 무리한 시술이 성행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치명적인 의료 사고로 이어진다. 진실이 드러나겠지만, 결국 이번 일도 그런 정황 아닌가?

여기서 돌아봐야 할 것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한의사가 무엇을 했느냐이다. 환자들에게 상당수 한의사들의 진료가 이런 사이비와 다르지 않아 보이기에 그들이 기세등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서, 이제는 기의 부족보다는 면역력을 이야기해야 하고, 정기 부족보다는 호르몬 이상을 말해야 고개를 끄덕이는 시대다. 그러나 상당수 한의사들은 여전히 도교, 유교 전통에 바탕을 둔 경전의 옛 용어들을 그대로 읊고 있으니, 그야말로 시대와의 불화 아닌가?

과연 한의학은 시대 변화를 탄력적으로 수용하였는가? 아무리 좋은 진리일지라도 시대에 적응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번 일을 한의학이 좀 더 자신을 낮춰 대중성과 보편성으로 무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프레시안 books]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정조 독살은 헛소리! 홍삼의 불편한 진실!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이 책을 펼치면서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평소 진료를 받으면서 느꼈던 저자 이상곤의 인품이 오롯이 담긴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의학계에서도 명망 높은 한의사가 전문가적인 오만을 버리고 낮은 자세로 환자와 소통하며 환자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서, 환자의 몸이 말하는 징후를 진실하게 듣고 체질에 맞는 처방을 내려준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내 지병으로 수년 동안 진료를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조언해 주는 그에게 늘 감사했고, 여러 모로 많은 것을 배웠다.

더구나 그는 "스님, 의학이 전쟁 때 장군이라면 음식은 평화로운 세상의 재상과 같습니다. 전쟁은 드문 일이고, 일상생활에서 음식이 주는 메시지는 의약보다 더 울림이 큽니다" 하면서 사찰 음식을 전하는 내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몸의 지혜인 한의학이 음식처럼 개인의 몸과 마음을 살릴 수 있는 일상생활의 예방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의학의 본질적인 가르침이 개인의 체질과 상황에 맞는 질병 예방법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사찰 음식은 제철 음식과 개인의 체질에 맞는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려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이루는 약으로 먹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그와 한의학과 사찰 음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면서 의기투합한 적도 많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탄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빼어난 인문학적 소양에다가 우리가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께 들었던 자잘한 민간요법,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나물의 약효에 이르기까지 두루 꿰뚫고 있는 그의 해박함에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펴낸 <낮은 한의학>도 기대대로였다.

"한의학적 사유의 본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일화를 발굴해 한의학적 사유의 인문학적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 작고 분명한 목표에 예리한 솜씨를 보이는 현대 의학보다, 몸의 지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가는 한의학의 가치를, 그 사유의 깊음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 <낮은 한의학>(이상곤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그가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에는 환자와 소통을 추구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 인문학적 교양이 녹아 있다.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수많은 역사적·일상적 임상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한의학과 현대 의학의 접점을 모색한 이 책은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는 한의학의 핵심 논리를 드러내고자, 우리를 역사 속으로, 예를 들자면 왕들을 치료하는 임상 현장으로 안내한다. 소현세자와 정조 등 조선 왕 독살설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처방을 일일이 분석해 낸 점이 특히 흥미로웠는데, 실제로 그는 정조가 노론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정조 독살설은 허구"라고 지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 책에서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한의학 지식 없이 조선 왕 독살설을 내놓은 일부 학자나 저술가의 주장이 얼마나 부실한 논거에서 나온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절제, 금욕(禁慾)을 강조하는 잔소리만 늘어놓고 정작 왕의 건강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조선 시대 성리학자의 어리석음에 탄식도 저절로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가의 정기신(精氣神) 이론에 기반을 둔 허준의 <동의보감>이 탄생한 사상적 배경을 찾아 서경덕과 박지화로 이어진 경기도 파주 일대 재야 철학자의 서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 공진단, 경옥고, 우황청심환, 마황 등의 처방에 대한 명쾌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면, 이런 처방이 한의학의 지혜와 현대 의학의 지식이 결합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우상화된 홍삼의 부작용,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던 마황의 역사, 스트레스와 화병으로 고통을 받았던 조선 시대 왕들이 사랑했던 우황청심환의 감춰진 이야기 등을 읽노라면 왜 이 책이 지금에서야 나왔는지 저자가 원망스러워질 지경이다. 무작정 홍삼을 쌓아두고 먹는 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길!

이처럼 그는 한의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처방과 치료를 놓고 단호한 일침을 가한다. 사스는 물론 에이즈와 암까지 뜸으로 처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단체의 오류를 한의학의 사유에 기반을 두고 치밀하게 논박한다. 또 기존의 음양오행 이론이나 성리학의 틀에 안주한 채 한의학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 움직임도 철저하게 비판한다.

한의학을 신비화하는 주장이야말로 한의학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책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가 현대 의학이 이해할 수 없다고, 오류라고, 미신이라고 한마디로 무시하는 한의학의 논리, 동양에서 축적된 몸의 지혜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월 대보름에 먹는 땅콩, 호두, 잣 등이 부스럼을 예방한다는 이야기나 수험생에게 엿을 먹이는 이유 등의 세시풍속이 사실은 오랜 세월 건강에 대한 고민 끝에 생긴 것임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나 역시 얼마 전에 펴낸 책(<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 음식>)에서 세시 음식인 동지 팥죽에 이와 비슷한 내용을 쓴 적이 있기에 더욱 공감이 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연이 선물한 녹내장 치료제 냉이, 탈모를 막는 먹을거리, 다이어트 음식, 강인한 생명력을 비장한 한약재로 재탄생한 국화 이야기,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라는 메밀냉면의 약성 등 먹을거리에서 한의학의 지혜를 찾는 부분은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동안 '이 음식이 왜 약이 되나요' 하고 내게 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답 대신 이 책을 소개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이 책의 저자 이상곤은 아주 귀한 사람이다. 인품과 소신과 실력을 갖춘 참으로 진실한 의사이다. 그의 사상과 정신이 담긴 이 책을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추천하면서 이 책에서도 언급한 <수타니파타>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모쪼록 늘 지금처럼 바른 길을 무소의 뿔처럼 가시라는 축원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기사입력 2011-08-05 오후 6:08:48 / 선재 스님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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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도 뜸이 최고!" 구당, 30년간 '가짜' 자격증으로…

[인터뷰] 이상곤 원장 "구당 신화 벗겼지만 2년간 만신창이"

 

(구당) 김남수 씨가 "일제 시대에 취득한 침사 자격에 대하여 1983년 법원의 판결을 통해 적법하게 재발급을 받았다"는 것은 허위의 사실이다.

 

지난 2012119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구당 김남수(97) 씨의 침사 자격증이 '허위'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김남수 씨는 "1943년 침사 자격증을 딴 뒤 수십 년 동안 침과 뜸을 시술해 왔다"고 주장해 왔으나, 법원이 그런 김 씨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처음으로 판단한 것이다.

 

김남수 씨는 "그동안 일제 강점기인 1943년에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1983년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이 자격증을 재발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런 김 씨의 주장이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그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김남수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전라북도 군수서장이 침구사 추천을 해 도지사에게 올려 지난 1943년 침사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고 답변하였는데 이는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하였다는 1983년 법원 판결과 맞지 않다. 1915년 전라남도 광산군 안청리에서 출생한 김 씨가 한국 전쟁 전까지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는 친척, 심지어 자신의 증언이 있다.

 

김 씨가 자신의 고향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했다면 굳이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자격증을 재발급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또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하였다면 굳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라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하였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라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하였다고 인정할 자료도 없다.

 

법원은 이런 사정을 종합해 "김남수 씨는 일제 시대에 함경북도 또는 전라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한 사실이 없음에도, 경력 보증의 방법이 매우 허술하게 규정되어 있는 점을 이용하여 이북5도 도지사로부터 경력증을 발급받아, 이를 근거로 (1983년 정부를 상대로 한) 침사 자격 확인 소송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김 씨의 침사 자격증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런 법원의 판단은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김남수 씨는 자신의 '침사' 자격증을 내세우며 자신의 뜸 시술을 정당화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11124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71'김 씨의 뜸 시술은 사회 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한 데도 그의 침사 자격증 보유 여부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당시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 등 재판관 7명은 김 씨의 손을 들어준 근거로 뜸 시술은 가벼운 화상 외에 부작용이 거의 없고 침을 놓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침사는 뜸 뜨는 법도 당연히 알고 있어서 뜸 시술 시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도 못 돼 김 씨의 침사 자격증 자체가 '허위'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결을 할 당시, 이미 SBS <뉴스 추적>(2010113)·<주간동아>·<프레시안> 등에서 김남수 씨의 침사 자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었고, 이런 보도 내용을 놓고 김 씨와 SBS 사이에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91223일 자신의 기명 칼럼('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난을 통해서 김남수 씨의 뜸 시술의 위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그의 침사 자격에 의문을 제기했던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 교수)을 지난 1일 만났다. 그는 그 칼럼을 쓰고 나서 김 씨의 고발로 지난 2년간 경찰, 검찰에 불려다니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서울 서초구 소재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침의(鍼醫)이다. 구당도 가끔 언급하는 조선 최고의 침의 허임(1570~1647 추정)의 침법을 계승해, 20년이 넘도록 임상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그의 침법은 난치성 질환으로 알려진 이명, 비염 등 이비인후과 질환에 효과가 있어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환자가 찾아온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프레시안(손문상)

 

 

'가짜 자격증' 구당 옹호한 헌법재판소

 

프레시안 : 이번에 법원에서 구당 김남수 씨의 침사 자격증이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단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상곤 : 구당이 그동안 자신의 뜸 시술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이 침사 자격증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최초로 그 침사 자격증의 취득 경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구당이 그동안 자신의 지지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국민을 기만해 왔다는 것인데.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 않은 원로라면, 책임 있는 해명을 자진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프레시안 : 공교롭게도 법원이 구당의 침사 자격증을 '허위'라고 판단하기 두 달 전 헌법재판소에서는 "침사 자격증을 가진 구당의 뜸 시술은 문제없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상곤 : 구당의 침사 자격증에 대한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성급한 판결을 내린 게 아닌가 싶어서 아쉬웠습니다. 더구나 평생을 한의학 연구에 매진하는 처지에서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을 접하면서 낯이 뜨거워서 혼났습니다. 사실은 며칠 잠을 못 이룰 정도였어요.

 

우선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뜸 시술의 부작용을 둘러싼 판단을 헌법재판소의 판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서 한의사로서 한없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7명은 '뜸 시술은 가벼운 화상 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제가 평생 연구한 한의학의 지식에 비춰보면 사실이 아니거든요.

 

프레시안 : 반대 의견을 냈던 이동흡 재판관은 "뜸 시술은 잘못하면 피부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화상을 입거나 경혈을 잘못 짚으면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상곤 : 그런 이동흡 재판관의 주장이 바로 제가 아는 한의학의 상식입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비롯한 일반 시민에게 한의사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한의사의 식견이 이렇게 무시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이게 다 한의학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시민과 공유하지 못한 한의사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사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하면서 시민의 건강을 위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일이, 이렇게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한의학의 존재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헌법재판소 판결은 한의학이 처한 현재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구잡이 뜸, 사람 잡는다

 

프레시안 : '낮은 한의학' 칼럼을 통해서 여러 차례 지적하곤 했습니다만, 뜸 시술의 구체적인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이상곤 : 먼저 오해를 풀 게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한의사들이 일반인이 침, 뜸 시술을 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이 땅에서는 오랫동안 허리, 무릎, 발목 등 통증이 있는 부위에 직접 침, 뜸 시술을 해온 민간요법이 있어요. 그런 침, 뜸 시술은 실제로 통증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 시술 자체를 한의사들이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다른 한의사들이 구당 뜸 시술에 쌍심지를 켤 때도 저는 오히려 그들을 나무랐어요. 오랫동안 민간요법을 토대로 오랫동안 임상 경험을 쌓은 구당이 시민으로부터 호응을 얻는 일은 한의사 처지에서는 더 분발하라는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프레시안 : 구당이 문화방송(MBC)의 이상호 기자와 낸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동아시아 펴냄)를 정독하고 나서 <프레시안>에 비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관련 기사 : 장진영의 봄날은 '' 갔는가?)

 

이상곤 : 그렇습니다. 구당이 그 책에서 주장하는 뜸 시술은 통상적인 민간요법이 아니더군요. 구당은 '여덟 개 경혈, 열두 개 혈 자리에 뜸 시술을 하면 몸에 이로운 점은 있고, 해로운 점은 없다'는 한의사라면 누구나 깜짝 놀랄 주장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더군요. 그 뒤로 알아보니 체육관에 많은 시민을 모아 놓고서 무차별적으로 그런 뜸 시술을 하기도 했고요.

 

뜸 시술은 기본적으로 몸을 데우는 거예요. 한의학의 원리를 염두에 두면, 몸의 양기를 북돋는 치료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2단이 되어야 주전자의 물이 끓는다고 합시다. 그런데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1단밖에 안 된다면 당연히 화력을 2단으로 올려야 해요. 바로 이렇게 1단에서 2단으로 올려서 물을 끓게 하는 역할을 바로 뜸이 할 수 있어요.

 

주의 깊게 선택된 한두 개 혈 자리에 뜸 시술을 하면 치료 효과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꼭 주의할 게 있어요. 아까의 예를 염두에 두면, 우선 주전자의 물이 어느 정도 있는지 살펴야 해요. 만약 주전자에 물이 너무 비어 있으면, 화력을 1단에서 2단으로 올리자마자 물이 끓기는커녕 다 증발해 버릴 거예요. 나중에는 주전자 자체가 타버릴 수도 있고요.

 

프레시안 : 한의학의 표현을 쓰자면 '몸에서 물이 부족한' 상태일 때는 뜸 시술이 위험하다는 거군요.

 

이상곤 : , 한의학에서 '음허(陰虛)'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현대 의학의 시각에서 보면, 몸속의 혈액, 호르몬 등을 구성하는 수분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상태겠지요. 주의해야 할 점은 또 있어요. 본래 양기가 왕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때 뜸을 뜨면, 자칫 화력을 2단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3단까지 올려서 물이 끊어서 넘칩니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이런 상태를 '양기가 넘친다' 해서 '양성(陽盛)'이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뜸 시술을 할 때는 혹시 환자의 몸이 이런 상태는 아닌지 세심히 점검해야 합니다. 뜸 시술이 어떤 사람에게는 '명약'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맹독'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에요. 실제로 고대부터 현대의 한의학 교과서까지 한목소리로 이렇게 경고해요.

 

"음기가 모자라거나(물이 적거나), 양기가 많으면(불이 많으면) 뜸을 뜨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구당은 스스로 시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분이 '누구나 여덟 개 경혈, 열두 개 혈 자리에 집중적으로 뜸 치료를 하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뜸 시술은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지지자들은 이런 구당의 만병통치 뜸에 열광했고요. 그러니 한의사로서 나설 수밖에요. 물론 그 대가는 컸지만요.

 

이 대목에서 이상곤 원장은 1934년 만주를 침략한 일본군이 구당과 비슷한 뜸 치료를 '국민 보건 요법'이라는 이름으로 보급한 점을 지적한다. 당시 일본군은 전장에서 못 자고 못 먹은 '젊은' 사병의 체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자 전신 뜸 시술을 적극 권장했다. 뜸 시술이 마약처럼 활용되었던 것이다.

 

경찰검찰검찰법원, 만신창이 2

 

프레시안 : 그 비판 칼럼 때문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상곤 : 운이 좋아서 19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니며 집회할 때도 한 번도 붙잡힌 적이 없었어요. (웃음)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경찰, 검찰이 익숙해졌습니다. <프레시안>'낮은 한의학' 칼럼을 놓고서 구당이 동대문경찰서에 고발했어요. 그래서 수서경찰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세 군데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중앙지검에서 '혐의 없음' 판단을 내리니까, (구당의 진정을 받은) 서울고검에서 재수사를 하더군요. 재수사를 받는 동안에는 서울고검에 사흘 동안 세 번이나 불려 갔습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동안에는 별생각이 다 들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프레시안>에 비판 칼럼을 기고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칼럼 기고를 권했던 강양구 기자도 잠시 원망했고요. (웃음)

 

프레시안 : 모두 '혐의 없음'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당은 또 검찰의 그런 '혐의 없음' 결정을 다시 뒤집어 달라고 서울고등법원에 재정 신청(裁定 申請)을 했더군요.

 

이상곤 : 서울고등법원이 구당의 재정 신청을 최종적으로 기각했습니다. 이제 진짜로 끝났어요. 경찰, 검찰, 검찰, 법원. 정말 파란만장했군요.

 

프레시안 : 검찰에서 가장 집요하게 캐물었던 부분이 무엇입니까?

 

이상곤 : 검찰도 구당 뜸 시술의 문제점을 언급한 것은 전문가로서의 비판이라며 인정했어요. 다만, 구당의 침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의문을 표시한 부분을 문제 삼더군요. 이번 법원의 구당 침사 자격증 '허위' 판결을 염두에 두면, 구당이 저를 무고한 셈입니다만. 주변에서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 등을 권하기도 합니다. 그냥 웃고만 말았습니다.

 

애초에 구당의 뜸 시술을 비판하는 칼럼 자체가 구당 개인을 비판하기보다는 뜸에 대한 시민의 잘못된 이해를 막으려는 한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사회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거였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송사로 고생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진흙탕 싸움을 다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경찰, 검찰 조사도 좋은 인생 경험이었고요. (웃음)

 

神醫냐 돌팔이냐구당, 그저 웃었다(<조선일보> 20111224일자). 조선일보

 

구당 대리인으로 나선 그 기자들

 

프레시안 : 애초 이상곤 원장의 칼럼에는 구당을 인터뷰해 책을 냈던 이상호 기자가 반론을 썼어요. 한의사의 진지한 반론에 당사자인 구당 대신 한의학에 문외한인 이 기자가 반론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었지요. 그렇게 한두 차례 논쟁이 진행되다가, 구당이 해당 칼럼을 경찰에 고발하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상호 기자는 자신의 보도에 그런 식의 고소, 고발로 고초를 많이 겪었던 사람이거든요. 이 기자가 구당을 만류하지 않은 게 아쉬웠습니다. 그런 식으로 고소, 고발을 남발하다 보면 사실은 제대로 된 공론장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어요. 모든 사안을 경찰, 검사, 판사가 판단하면 도대체 논쟁은 왜 필요하고, 그런 논쟁을 위한 장(언론)은 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상곤 : 솔직히 말하면, 구당 비판 칼럼에 이상호 기자가 반론을 쓰는 걸 보고서 겁이 덜컥 났습니다. 영향력 있는 언론(MBC)의 영향력 있는 기자(이상호) 아닙니까? 주변에서도 뒷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이 기자와 논쟁을 하느냐고 만류했고요. 그런데 결국에는 구당이 고발을 하더군요.

 

'진실 보도'를 내세우는 이상호 기자는 평소에 존경하던 언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인연을 맺게 되어서 안타깝습니다. (관련 기사 : 구당 김남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최근에는 <조선일보>의 문갑식 기자가 구당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지요? 역시 영향력 있는 언론(<조선일보>)의 영향력 있는 기자(문갑식)네요. MBC 이상호 기자부터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까지 구당의 네트워크가 화려합니다. (관련 기사 : 神醫냐 돌팔이냐구당, 그저 웃었다)

 

이상곤 : '1등 신문'의 수준이 언제 그렇게 떨어졌나요? 문 기자가 그 기사를 쓸 때는 이미 SBS, <주간동아>, <프레시안> 등에서 구당의 행적과 시술의 문제점을 입체적으로 조망한 뒤였습니다.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그런 다른 동료 기자의 취재 결과를 접했을 텐데, 왜 그렇게밖에 인터뷰를 할 수 없었는지.

 

프레시안 : 구당 얘기를 그대로 받아쓴 인터뷰에요. <조선일보> 기자 중에서는 그런대로 '사실(fact)' 확인에 성실한 기자라고 생각해왔는데, 문 기자가 이번 법원의 판결문을 접하고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런 기사를 쓰고 나서, 판결문을 받아보았더라면 낯이 아주 뜨거웠을 것 같아요.

 

이상곤 : 그래도 그 인터뷰 기사를 보니, 구당이 이런 얘기를 했더군요.

 

문갑식 : 선생의 말을 들으면 침과 뜸이 만병통치인 것 같습니다.

 

김남수 : "만병통치는 아니죠. 옛말에 '사병(死病)에는 약도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칠 수 없는 병은 분명히 있습니다. 중풍은 두 번째까지는 완치시킬 수 있는데 세 번째 재발하면 치료가 불가능하잖아요. 더 나빠지지 않게 할 수는 있지만요."

 

바로 전까지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도 뜸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던 분이잖아요. 이렇게 구당의 생각이 바뀐 것 자체가 이번 논쟁의 성과예요. 그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한 편으로 혀를 차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 헛된 고생이 아니었어!' 이랬습니다. 그나저나 <조선일보>를 이렇게 비판해도 되나요? (웃음)

 

프레시안 : <조선일보>나 문갑식 기자가 그렇게 저열한 언론 또 언론인은 아니라고 믿어보지요. 경찰, 검찰에 불려다니며 시달리는 동안에도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낮은 한의학' 원고를 다듬어서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을 펴냈습니다. 책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요. '낮은 한의학' 연재는 언제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까?

 

이상곤 : <프레시안>에서 허락해 준다면 조만간 '낮은 한의학' 시즌2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최근에 영국에서 한 독자가 연락했어요. 타국에서 '낮은 한의학' 칼럼이 건강을 되돌아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연재가 끊겨서 아쉽다고요. 새삼 이게 단순한 신문 칼럼이 아니구나, 이런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낮은 한의학'의 문패에 맞게 아예 독자 참여 형으로 연재를 진행하려고요. 전 세계의 <프레시안> 독자들이 궁금한 점을 보내면, 그 질문을 추려서 칼럼으로 답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서 시민 건강을 증진하는 데 한의사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시민의 한의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깊고 넓게 하고 싶어요. 욕심 같아서는 '뜸 시술의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질문부터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 분들도 법복만 벗으면 온갖 질병 때문에 고민하는 평범한 시민 아닙니까? 제 앞에서는 다 침 맞기를 기다리는 환자일 뿐입니다. (웃음)

2012-02-07 / 프레시안 / 강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