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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과학, 기술, 환경

살아있는 한반도 - 생명의 땅 (한겨레 연재)

by Wood-Stock 2009. 11. 7.

[살아있는 한반도 - 생명의 땅]

 

(1)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 ~ 생명 융단이 소청도에서 10억년 전 숨을 쉬었다

 

애초 지구 산소 첫 원천인 남조세균 흔적 확인
대리석 채취와 문양석 가공공장으로 곳곳 훼손

 

 

지구가 태어난 뒤 나이의 절반을 먹을 때까지도 세상은 황량했다. 식물이 없는 바위와 모래 언덕이 끝없이 이어졌고 요동치는 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산소가 없는 대기를 뚫고 해로운 자외선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약 20억 년 전 중대한 변화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났다. 얕은 바다 밑바닥을 초록 융단이 뒤덮었고, 거기서 뽀글뽀글 공기 방울이 솟아올랐다. 바로 지구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은 산소다. 초록 융단을 만든 주인공은 최초로 광합성을 한 원시 미생물인 남조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다.
 
다시 10억 년이 지난 원생대 후기, 현재의 인천시 옹진군 대청면 소청도가 될 해변에도 초록 융단이 깔려있었다. 육지엔 아직도 풀 한 포기 없었고 바다에도 껍데기를 가진 몸집 큰 생물은 없었다.
 
남조세균은 여전히 강한 자외선을 막기 위해 점액을 뿜어냈다. 점막층에 주변의 퇴적물이 들러붙었고, 여기에 세균이 배출한 탄산칼슘이 엉겨 시멘트처럼 굳었다. 남조세균은 햇빛을 향해 마치 고층아파트를 올리듯 켜를 이루며 위로 성장했다. 이 건축물을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부른다.

 

켜켜이 쌓인 게 스트로마톨라이트…열과 압력 따른 변성 덜 받아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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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이광춘 상지대 교수(지질학)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는 소청도를 찾았다. 섬으로 접근하자 남동쪽 해안을 따라 하얗게 분칠을 한 것처럼 보이는 분바위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분바위는 거대한 대리암 암벽이었다. 새하얀 대리암 절벽은 홍합과 굴이 다닥다닥 뒤덮은 흑갈색 해변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 교수는 “대리암은 바다 밑에 퇴적한 석회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긴 암석”이라며 “대리암 표면이 풍화돼 흰 가루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분바위 꼭대기에는 진흙이 굳어 생긴 암석이 종이를 구겨놓은 것처럼 뒤틀린 습곡이 있다. 지각변동의 흔적이다.
 
Untitled-3 copy.jpg하지만 소청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지난 10억 년 동안 열과 압력에 의한 변성작용을 덜 받은 선캄브리아 시대 지층이 남아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분바위를 돌아 작은 만으로 들어서자 소나무 껍질 같은 무늬를 한 바위들이 눈길을 끌었다. 안에 가느다란 켜가 촘촘히 들어있는 주먹 크기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무언가에 짓눌린 듯 일그러져 빽빽하게 뭉쳐있는 모습이었다.
 
이성주 경북대 교수는 김정률 한국교원대 교수와 이광춘 교수와 함께 이곳 스트로마톨라이트에서 남조세균의 화석을 발견해 2003년 학계에 발표했다.
 
이 원시세균은 나선 형태, 얇고 긴 머리카락 모양, 공 모양 등 다양했는데, 이 가운데는 세포가 두 개로 분열하던 도중 화석으로 굳은 것도 있었다. 연구진은 나선형 화석을 근거로 지층의 연대를 원생대 후기, 약 10억 년 전으로 추정했다.
 
김정률 교수는 “빗방울 자국, 물결무늬와 바닥이 갈라진 흔적이 함께 화석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소청도는 얕고 따뜻한 바닷가 조간대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생업 방해될까 천연기념물 반대…세계지질공원 지정 필요
 
소청도와 같은 선캄브리아 시대 지층은 황해도 등 북한으로 이어지고 20억 년 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북한에서 보고된 적도 있다. 남한에서는 소청도 이외에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강원도의 약 5억 년 전 고생대 석회암 지층과 경북 등의 약 1억 년 전 중생대 호수 퇴적층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는 자연유산 가치를 인정받기 훨씬 전부터 훼손돼 왔다. 일본 강점기 때에는 이곳의 대리암을 대량으로 채굴했고,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무늬를 이용한 문양석 가공공장이 1980년대 초까지 섬에서 가동했다.
 
화석 산지의 바위에는 쇠말뚝과 굴착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 교수는 “좋은 화석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보존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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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보존 목소리는 10여 년 전부터 나왔지만 문화재청은 지난달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김태회 대청면 소청출장소장은 “문양석을 캐는 일은 이제 전혀 없다”며 “그러나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생업에 방해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춘 교수는 “지질유산이 풍부하고 서로 가까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묶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을 받아 보존과 동시에 지역사회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소청도(인천)/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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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란
 
Untitled-4 copy.jpg‘양탄자처럼 깔린 암석’을 뜻한다. 남조세균이나 남조류 무리가 층층이 쌓여 굳은 석회암의 하나로서, 생물이 만든 퇴적구조를 갖는 암석이다. 모든 지질시대에 걸쳐 나타나지만 특히, 선캄브리아 시대의 것은 지구 생명 탄생의 비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가장 오랜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필바라에서 발견된 것으로 35억년 전의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분포한 것은 12억 5천만년 전이고,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들어서면 전성기의 20% 수준으로 줄어든다.
 
현재 염도가 너무 높거나 환경이 나빠 다른 생물은 살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브라질, 멕시코 사막, 바하마 등에서 형성되고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 생물의 역사 가운데 8분의 7에 해당하는 기간에 산 가장 생명력이 강한 생물이 만들었다. 또 광합성을 하는 이들이 산소를 방출해 인간을 포함해 산소를 호흡하는 생물이 지구에 살 터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미생물이 분비하는 탄산칼슘과 퇴적물이 켜를 이루며 자라 반구형, 돔형, 가지형, 기둥형 등 여러 형태를 이루며, 1m 이상으로 자라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첩층석(疊層石)’으로, 일본에서는 영어발음 그대로 쓴다. 우리나라에서도 쉬운 우리말로 바꾸려고 시도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어 길지만 영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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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세균이 준 선물, 철광석 ~ 호주나 미국 미네소타 등 수백m 두께 수십㎢ 걸친 철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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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마톨라이트를 만든 원시 박테리아는 철광석이란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다.

 
남조세균이 처음 광합성을 시작하던 무렵 지구의 대기와 바닷물엔 산소가 거의 없었지만 철은 풍부했다. 지구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무거운 철은 가운데로 모여 핵을 이루었지만 상당량이 지각과 맨틀에 남아있었다. 철은 아직도 지각의 5%를 차지한다.

 
산소가 없는 선캄브리아 시대 바닷물에는 다량의 철이 녹아 있었다. 철은 물과 만나면 쉽게 녹슬지만 이때 산소가 필요하다. 남조세균이 광합성을 시작하면서 산소에 목마른 바다에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물에 녹은 철 이온은 가장 먼저 산소를 가로채 산화철 형태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황량한 지구를 점령한 남조세균은 전세계 바다에 번창했고, 그 덕분에 산화철의 침전은 무려 7억년 동안 계속됐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 미네소타 등지에 수백m 두께의 철광층이 수십㎢에 걸쳐 펼쳐진 거대한 철광산을 형성했다.

 
Untitled-2 copy.JPG철광층은 산화철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바닷물 속 산소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철이 퇴적하지만, 그 이하에선 철은 침전하지 않고 대신 점토나 모래가 쌓인다. 결국 철광층과 퇴적층이 교대로 층을 이루는 이른바 호상철광층이란 모습을 띤다.

 
호상철광층에 고정된 산소의 양은 현재 대기 중 산소의 양보다 20배나 많다. 약 26억~19억 년 전 사이에 쌓인 호상철광층은 오늘날 연간 10억t이 채굴되는 철광의 9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철광석의 55%를 차지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필바라 노천 철광도 이런 호상철광층이다. 필바라의 샤크 만에서는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볼 수 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소청도 선착장에 닿는 쾌속선의 철판에는 초창기 지구에 산소를 불어넣었던 원시 박테리아의 숨결이 살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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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삼엽충의 고향 ~ 태백산 분지, ‘5억년 전 흔적’ 바다 냄새 ‘솔솔’

 

당시엔 얕은 바다로 삼엽충 등 다양한 생물 살아
평창과 영월 사이 중간쯤이 없는 것은 ‘수수께끼’


고생물학자들은 강원도 태백, 영월, 평창, 정선으로 둘러싸인 태백산 분지에서 바다 냄새를 맡는다. 약 5억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얕은 바다였다. 해안에는 따가운 햇볕에 졸여진 소금결정이 반짝였고, 바다 속에는 삼엽충들이 조개와 오징어의 조상 사이로 꾸물꾸물 돌아다녔다. 5억년이 얼마나 먼 과거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길이로 환산하면 된다. 1년이 1㎝라면 5억년은 5000㎞,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의 거리이다. 요즘 학생들에겐 1원과 서울의 중형 아파트 값으로 비교하는 편이 쉽다는 지질학 교수도 있다.

 

당시 태백산 분지는 적도 부근에서 막 오스트레일리아와 헤어져 북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태백산 분지가 올라탄 북중국 땅덩어리에는 오늘날의 북한 평남 분지, 중국의 산둥, 만주, 시안이 함께 있었다(남중국과 함께 있던 경기지역과는 한참 뒤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만난다). 수천㎞에 걸쳐 산이라고는 없는 평탄한 땅과 얕은 대륙붕이 멀리 뻗어나간 독특한 곳이었다.

 

 

» 구문소에서 출토된 삼엽충 화석. 크기가 꽤 크다. 사진 제공 화석수목전시관 소장 / » 삼엽충이 살던 고생대 바다밑 가상도.

 

»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구문소 근처 황지천 변에서 발견된 삼엽충의 꼬리 부분 화석.

고생대 초 얕은 바다였던 이곳에선 조개와 오징어 조상 등 다양한 생물 화석이 나온다.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

 

지난 3일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구문소를 찾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5억4천만년~4억6천만년 전) 사이 태백산 분지에 쌓인 약 1200m 두께의 퇴적층 가운데 최상부에 가까운 곳이다. 지층이 비스듬히 누워 있어 여기서 남동쪽으로 갈수록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태백시가 짓고 있는 고생대 자연사박물관 터 아래 황지천변에 짙은 회색의 펄이 굳은 ‘셰일’이 깔려 있었다. 동행한 박태윤(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씨가 단단한 암석표면을 가리켰다. 완족류와 두족류와 함께 세 쪽으로 나뉜 몸과 빗살무늬의 마디가 선명한 삼엽충 화석이 들어 있었다.박씨는 “이곳은 태백산 분지에서도 화석이 가장 풍부한 곳”이라며 “얕은 바다였던 곳이어서 삼엽충과 함께 필석, 완족동물, 조개류, 복족류, 두족류, 개형충 등 다양한 동물 화석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하류로 50m쯤 내려오자 암반이 흰 돌로마이트로 바뀐다. 셰일 층보다 약 1천만년쯤 전에 퇴적한 석회암의 일종이다. 층층이 가지런하게 쌓인 돌로마이트를 마구 헤집어놓은 수많은 저서생물의 흔적과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거나 물결이 남긴 자국 화석이 당시 환경을 말해 준다.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구문소는 적도의 태양 아래 증발이 많고 염분이 높은 조간대의 특성을 보여 오늘날의 페르시아만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태백산 분지 퇴적층의 더 먼 과거를 보기 위해 경북 봉화군 석포리 석개재로 향했다. 석개재 임도를 따라 고생대 초기 지층이 펼쳐져 있다. 구문소보다 2천만~3천만년 전 조금 더 깊은 바다 밑에 쌓인 퇴적층이다.

 

약 5억년 전 지층은 회색 석회암과 황토색 셰일이 교대로 쌓여 시루떡 같은 모습이었다. 생물활동이 왕성해 석회암이 쌓이다가 무언가의 이유로 중단되고 펄이 쌓이는 일이 수백만년 동안 계속됐다. 이 임도를 따라 한 시간을 걸으면 적어도 5천만년 동안의 퇴적층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암석 곳곳에는 연구자들이 화석 등을 연구하기 위해 흰 페인트로 채집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동안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보다 10배나 높았다. 온실효과로 기온이 높았고 풍부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탄산칼슘 골격을 만드는 삼엽충, 완족동물 등 생물이 번창했다. 전 세계에 걸쳐 막대한 양의 석회암이 이때 형성됐다.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이다.

 

1억5천만년 동안 퇴적층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려 

 

태백산 분지에서 1924년 처음으로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이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은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특히 고바야시 도쿄대 교수는 1931~1971년 동안 연구결과를 보고해 한반도 삼엽충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1990년대 들어서야 최덕근 서울대 교수 등 한국인에 의한 삼엽충 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1995년에는 영월의 삼엽충을 연구한 최초의 국내 박사가 배출됐다. 최 교수는 “어떤 삼엽충이 있나를 넘어 삼엽충의 진화와 발생, 고환경 복원으로 연구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백과 영월의 삼엽충이 왜 다른지는 흥미로운 관심거리이다. 캄브리아기의 4천만년 동안 두 곳에서 서식한 삼엽충 가운데 같은 종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오르도비스기로 가면 공통종이 나타난다.

   

» 오르도비스기의 조간대가 말라 갈라진 흔적인 건열 화석(위)과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지도.

 

 

최 교수는 캄브리아기에 좀더 깊은 바다였던 영월이 오르도비스기에 들어 퇴적작용으로 수심이 낮아지면서 태백과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영월과 태백의 중간쯤 되는 수심을 가진 지역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 것은 미스터리다.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 중엽인 4억4천만년 전부터 석탄기에 이르는 1억5천만년 동안 퇴적층이 전혀 없는 ‘대결층’도 수수께끼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와 북중국에서 나타나는 이 현상이 “해수면이 하강해 태백산 분지가 육지가 됐지만 퇴적물을 공급할 높은 산지가 없었고, 곤드와나 대륙에서 떨어져 대륙이 이동하는 과정이어서 퇴적층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밝혔다.

 

» 화석에 침투한 황철광이 미처 녹슬지 않아 반짝이고 있는 금빛삼엽충(왼쪽)과 바다 밑바닥 생물들이 퇴적층을 뒤적인 흔적을 보여주는 구문소의 생흔화석.

» 석개제 임도에 드러난 고생대 퇴적층. 셰일과 석회암이 번갈아 퇴적돼 있다.

 

◇ 삼엽충이란

 

» 포식자를 피해 공처럼 몸을 만 삼엽충의 화석(왼쪽)과 더듬이까지 생생하게 보전돼 있는 미국 버제스셰일에서 출토된 삼엽충.

 

 

캄브리아기 초인 5억2천만년 전부터 페름기 말인 2억5천만년 전까지 고생대 전시기에 걸쳐 약 3억년 동안 생존했던 절지동물의 조상이다. 삼엽충이란 이름은 머리를 위로 두고 세로로 놓았을 때, 세로로 머리, 가슴, 꼬리 세 부분으로 나뉘고, 가로로도 중심과 양옆 부분으로 나뉘는 ‘세쪽이’인 데서 왔다. 키틴질과 방해석으로 된 껍질로 부드러운 몸과 다리를 보호한다. 크기는 1㎜에서 72㎝까지 다양하나 보통 3~10㎝ 크기이다.

 

모두 2만종이 밝혀졌으며 해마다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00여종이 기록돼 있다. 삼엽충은 새우나 게처럼 자랄 때 탈피를 하고 죽은 뒤 쉽게 몸이 조각나 많은 양의 화석이 조각 형태로 발견된다. 온전한 형태의 화석은 드물다.

삼엽충은 동물 가운데 처음으로 정교한 눈을 발달시켰다. 많은 종이 투명한 방해석 렌즈가 모인 겹눈을 지녔으며, 이중렌즈로 구면수차를 해결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광학자 호이겐스보다 3억년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달한 눈은 포식자의 움직임을 알아채기 위한 것으로, 위험에 닥치면 쥐며느리처럼 몸을 공처럼 마는 습성이 화석으로 드러났다. 몸에 가시나 사슴벌레처럼 뿔이 난 것도 있다. 고생대 초인 캄브리아기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고생대 중기부터 쇠퇴하다 페름기 말 지구적인 대멸종 사태와 함께 사라졌다. 가장 가까운 현생동물은 투구게와 전갈이다.

 


◇염산이 드러낸 삼엽충의 비밀

 

» 태백산 분지의 석회암을 염산으로 처리해 얻은 여러 종의 삼엽충 화석 조각들. 사진 제공 박태윤

 

강원도 영월과 태백에는 1960년대 일본인 화석수집가들이 몰려와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삼엽충 화석을 사들이기도 했을 만큼 온전한 화석이 적지 않았다. 좋은 화석 구하기가 힘들어진 요즘, 화석 연구자들은 단단한 퇴적암 속에서 삼엽충 화석을 캐내느라 애를 먹는다. 화석이 든 암석을 망치로 쪼갰더니 절개면에서 화석이 활짝 모습을 드러내는 운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대개는 석공이나 조각가처럼 전동 드릴, 진동기, 압축공기 등을 이용해 화석을 가린 암석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힘겨운 작업을 해야 한다.

 

2006년 박태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대학원생은 화석이 든 석회암을 염산으로 녹이는 기법을 태백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규소가 암석에 침투해 화석이 규화됐을 경우, 화석만 빼고 주변 석회암을 녹여 없앨 수가 있다.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해 온 방법이지만 화석이 규화될 확률이 워낙 낮아 국내에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화석이 든 석회암을 7% 농도의 묽은 염산에 하룻밤 담가놓으면 이튿날 석회암은 다 녹아버리고 삼엽충 화석만 남는다. 주먹 만한 석회암 2~3개를 녹이면 수백 개의 삼엽충 화석 조각이 나오기도 한다. 염산 기법은 삼엽충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알에서 깨 유생 단계를 거쳐 성체로 자라는 과정을 화석으로 확인할 수 있어 삼엽충의 발생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할 수 있게 됐다.

 

박씨는 지난 7월 미국의 저명한 고생물학술지인 <진화와 발생>에 삼엽충의 가장 큰 분류집단인 아사피다 무리의 구분법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을 실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태백시 사군다리에서 염산 기법으로 확보한 화석에서 발생과정을 추적해 삼엽충의 주요한 계보가 잘못됐음을 밝힌 것이다. 또 영월군 상동면 직동리에서는 사슴처럼 뿔이 달린 삼엽충을 이런 방법으로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염산으로 녹이는 방법은 모암이 석회암인 태백에서만 활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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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구 첫 원시림의 선물, 삼척탄좌 ~ 3억년 전 원시림의 선물, 석탄

 

바다 출생 생물이 30억년만에 상륙해 숲 이뤄
1억년 삶의 흔적 미라로 있다가 불로 ‘환생’


바다에서 태어난 생물들에게 육지는 넘보기 힘든 곳이었다. 메마르고 온도 변화가 큰데다 자외선이 강하게 쪼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생물이 바다에 나타난 지 30억년이 지나도록 육지는 텅 빈 상태였다.
 
약 4억 2천만년 전 마침내 물가에 교두보를 마련한 원시 식물은 빠르게 진화해 육지를 초록으로 덮기 시작했다. 리그닌(목질소)의 발명은 두번째 도약을 촉발했다. 식물 조직을 단단하게 만드는 리그닌을 벽돌 삼아 최초의 나무가 탄생했다. 중력에 짓눌려 땅바닥을 기던 식물은 하늘을 향해 키자람을 시작했다. 물과 양분을 나를 관다발과 뿌리, 잎이 잇따라 등장했다. 육지에 나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약 3억5천만년 전 고생대 석탄기에 이르면 지구 최초의 원시림이 펼쳐진다. 바닷가 늪지대에 고층아파트 높이의 소철, 석송, 나무고사리가 삐죽삐죽 서 있는 사이로 비둘기보다 큰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지구엔 어떤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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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 석탄기에서 페름기에 걸쳐 1억년 가까이 적도를 중심으로 지속된 거대한 숲의 시대는 인류에게 석탄을 남겼다. 삼척탄전 등 강원도의 무연탄도 이 시대의 유산이다. 국내 최대의 탄광인 강원도 태백시 장성탄광에서는 오늘도 수백명의 광부가 지하 1000m 깊이에서 1인당 하루 9t꼴로 무연탄을 캐낸다. 이들은 서민의 구들장을 데우는 연탄을 만들거나 동해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쓰인다. 유시근 대한석탄공사 개발부장은 “탄광에서 석탄은 시루떡의 팥고물처럼 층을 이루고 있는데 지각변동을 받아 45~70도 기울어진 모습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다량의 석탄이 부존된 지층이 형성된 지질시대를 석탄기라고 부른다. 영국의 지질학자 윌리엄 코니베어러와 윌리엄 필립스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22년 지은 것으로 최초의 지질시대 구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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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호주 등에 막대한 탄층을 형성시킨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지구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석탄기와 페름기에 걸친 3억~2억5천만년 전 지구는 유럽, 그린란드, 시베리아, 북미, 북중국 등으로 이뤄진 로라시아 대륙과 남극, 아프리카, 인도, 호주, 남미 등을 포함한 곤드와나 대륙이 초대륙 판게아를 형성하던 참이었다. (그림 참조)
 
게임 프로그램 팩맨이 동쪽으로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의 판게아 대륙은 남극에 두터운 얼음에 뒤덮혔지만 적도에 있던 고 테티스 해 주변에는 따뜻하고 얕은 바닷가 습지가 광대하게 분포했다.
 
판게아 대륙의 한가운데는 히말라야 산맥에 버금가는 커다란 산맥이 있어 적도 일대에 강우벨트가 형성됐고, 비에 씻긴 엄청난 양의 퇴적물이 강을 따라 하구에 쌓여 삼각주와 습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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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상승속도가 조금만 빨랐거나, 조금만 느렸어도…
 
박석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석탄지질학)는 “죽은 식물이 미처 썩지 않은 상태에서 토탄층을 이룬 뒤 해수면 변화로 퇴적층에 묻히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땅속에서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석탄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삼척탄전에서는 모래가 굳은 30~40m 두께의 사암층 위에 평균 2m 두께의 석탄층이 있고 그 위에 5~10m 두께의 펄이 굳은 셰일층이 놓여있는데, 이런 탄층이 6개나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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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박사는 “장성탄광에서 두께 4m인 석탄층이 10㎞ 길이로 연장돼 있는데, 이 정도 두께의 탄층이 형성되려면 처음 퇴적층의 깊이가 적어도 40m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Untitled-6 copy.jpg당시의 지형과 기후는 대규모 탄층이 형성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었다. 열대 해안의 강 하구와 석호의 습지에는 지름 1.5m에 높이 30m에 이르는 석송류와 지름 30~60㎝에 키 20m짜리 나무고사리, 30m 높이의 소철 조상 등이 무성했다. 죽은 나무는 서서히 상승하는 바닷물에 잠겨 썩지 않고 토탄이 됐다. 만일 해수면 상승속도가 너무 빨랐다면 습지가 사라졌을 것이고, 너무 느렸다면 죽은 식물은 토탄이 되지 않고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죽은 식물이 2m 이상 쌓여있는 인도 갠지즈 강 하구나 미국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의 디스멀 습지는 석탄 층 형성 당시와 비슷한 환경을 보여준다. 낙동강 하구의 옛 하상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는 것도 땅에 묻힌 식물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생대처럼 많은 양은 아니지만 석탄은 지금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석탄기와 페름기는 거대 곤충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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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곤충을 꼽으라면 흔히 남미산 장수풍뎅이나 아프리카 골리앗풍뎅이를 든다. 길이가 10~13㎝나 된다. 무게로 치면 뉴질랜드의 원시 귀뚜라미인 자이언트 웨타가 70g이나 되고, 나뭇가지처럼 가늘지만 말레이시아의 대벌레가 55㎝로 가장 길다.
 
이처럼 아무리 큰 곤충이라도 다른 동물에 비하면 왜소한 편이다. 혈액이 혈관 밖으로도 흐르는 개방 혈관계이어서 몸이 너무 크면 산소가 몸 구석구석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 속 산소농도가 높아지면 몸도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석탄기와 페름기 초에 걸쳐 일어났다. 거대한 습지대가 형성되고 죽은 나무가 썩지 않은 채 쌓여 토탄층을 이루자 대기조성에도 큰 변화가 왔다. 당시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3배나 높은 800ppm에 이르렀지만 숲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나무로 바꾼 뒤 토탄이 돼 땅속에 묻혔다. 이산화탄소가 격감하자 대기 중 산소 비율은 현재의 21%보다 훨씬 높은 35%에 이르렀다.
 
산소 농도가 높아지자 산불이 잦아졌고 거대한 곤충과 양서류가 등장했다. 지구상 최대의 나는 곤충이었을 날개 폭이 75㎝인 잠자리가 속새류 거목이 들어찬 습지에서 작은 곤충이나 양서류를 노렸다. 길이 1.8m의 노래기, 길이 70㎝ 전갈을 비롯해 하루살이와 바퀴의 조상도 몸집을 키웠다. 물속에는 이들을 노리는 길이 6m짜리 보트만한 양서류가 잠복해 있었다.
 
페름기 말에 이르면 날씨가 춥고 건조해지면서 열대의 늪지대도 사라졌다. 이와 함께 거대 곤충과 거대 소철, 속새류는 모두 사라지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담한 크기의 곤충, 양서류, 양치류 등이 진화의 끈을 이어갔다.

 ◇ 석탄의 나이는 갈탄-유연탄-무연탄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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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탄은 기후변화가 세계적으로 화급한 과제가 떠올랐지만 당분간 중요한 에너지원 자리를 차지할 전망이다. 전세계 산업부문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전력생산 과정에서 약 30%가 나오는데, 석탄화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석탄화력발전은 전체 설비용량 가운데 33.2%로 전체 가장 비중이 큰 발전용 에너지원이었다. 1980년대까지 겨울철 주종연료이던 무연탄은 이제 서민용으로 명맥을 잇고 있지만, 석탄은 아직도 전등 3개 가운데 하나꼴로 밝히고 있다. 정부의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22년에도 석탄발전의 비중은 29.2%로 원자력발전 32.6%에 이어 두번째로 중요한 발전원이다.
 
우리나라는 유연탄을 화력발전, 제철, 시멘트 산업용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수입한다. 지난해 그 양은 9300만t으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았다.
 
우리나라의 석탄 생산은 1988년 2429만t으로 정점에 이르렀으나 1989년부터 석탄산업합리화 조처 이후 급격히 줄어 지난해 277만t에 머물렀다.
 
석탄공사가 소유한 장성, 도계, 화순 탄광과 61개 민영탄광이 채광을 하고 있으며, 150개 탄광이 합리화 조처로 채굴할 수 있는 석탄이 있는데도 문을 닫았다. 전국의 석탄 매장량은 약 15억t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채굴한 석탄은 주로 동해화력발전소의 연료와 시설원예농가, 서민층의 연탄으로 쓰인다. 연탄을 쓰는 서민은 약 28만 가구에 이른다. 연탄 1개의 가격은 812원이지만 정부가 40%를 보조해 소비자 가격은 489원이다.
 
땅에 묻힌 토탄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갈탄-역청탄(유연탄)-무연탄 순으로 변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채굴하는 석탄은 모두 무연탄이다. 세계적으로 무연탄은 석탄 가운데 1%에 지나지 않는다. 무연탄은 열량은 높지만 휘발성분이 적어 느리게 타, 연탄용으로는 좋지만 발전용 연료로는 부적합하다.
 
석탄 분자 사이에는 메탄가스가 결합돼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탄층에서 메탄가스를 뽑아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석탄층가스(CBM) 개발은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연료로 활용하는 청정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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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화호 공룡계곡 ~ 수십만 년 대대로 이어온 공룡 알자리 

 

12개 지점에서 둥지 29개와 180여 개 화석 확인
송산-마도 16㎢ 개펄 걷어내면 알·뼈 쏟아질 듯

우기가 끝나기만 기다리던 암컷 초식공룡은 비가 그치자 마음이 바빠졌다. 다른 공룡들이 몰려들기 전에 계곡 근처 하천변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아야 한다. 개울가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고 육식공룡의 접근을 미리 알 수 있는 높고 좋은 자리는 누구나 탐낸다.
 
어미 공룡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강줄기를 건너 높은 산 골짜기에서 퇴적물이 부채꼴로 흘러내린 선상지로 향했다. 이미 수많은 다른 공룡들이 둥지를 파고 알을 낳고 있었다. 배설물 냄새가 코를 찌르고 파리와 모기의 조상뻘이 피를 빨기 위해 덤벼들었다. 하늘에선 익룡이 거대한 날개를 펴고 호시탐탐 알을 채갈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여기만큼 먹이가 풍부하고 포식자가 닥칠 위험이 적은 곳을 찾기는 힘들다. 벌서 수십만년 동안 공룡들이 알을 낳으러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이다.
 
갑자기 날이 어두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울이 범람하고 공룡알 둥지가 돌과 흙더미에 묻혔다. 해마다 우기 끝물에 벌어지곤 하는 ‘작은 비극’이었다.
 
홍수로 쓸려온 토사에 눌려 깨졌을 가능성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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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1억년 뒤,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에선 탐방객들이 붉은 사암 속에서 윤곽을 드러낸 공룡알 화석을 신기한 듯 들여다 보고 있었다.
 
공룡알 화석은 시화호가 방조제로 막히면서 육지가 된 시화호 남쪽 간척지에서 1999년 처음 발견됐다. 이후 학계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를 비롯해 삼존리에서도 공룡알이 발견되는 등 모두 12개 지역에서 둥지 29개와 181개의 공룡알과 그 껍데기 파편이 확인됐다.
 
지난달 17일 국내 최대 공룡알 화석 산지인 고정리를 찾았다. 중생대 백악기의 붉은 사암으로 이뤄진 작은 섬들이 누렇게 마른 띠의 평원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동행한 이융남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룡이 살 당시 이곳은 하천 상류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공룡알이 발견된 곳은 많지만 모두 강 하류나 호숫가였다.
 
퇴적층을 자세히 보면 가는 모래가 곱게 쌓여있던 곳에 굵은 자갈이 섞인 토사가 쏟아져 들어와 하천 단면을 메운 흔적이 선명하다. 또 자갈들이 물살에 밀려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 있는 모습도 있다. 매끈한 자갈 대신 거칠고 크기가 고르지 않은 돌조각이 많다는 것도 하천 상류였음을 가리킨다.
 
시화호 공룡알은 적게는 3개, 많게는 12개가 직경 약 1m의 둥지에 담겨 있다. 알의 상당수는 윗 부분이 열려 있고 그 껍데기 파편이 돌조각과 함께 알 속 바닥에 담겨 있다. 홍수로 쓸려온 토사와 돌에 눌려 깨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공룡알은 여러 층으로 포개져 있어 거북이나 악어처럼 땅을 파고 알을 낳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공룡알은 퇴적 시기가 다른 10개 층에서 나와, 오랜 기간 공룡이 이곳을 번식지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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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뼈보다 연악한 알이 더 많이 화석으로 남은 까닭
 
그렇다면 시화호는 어떤 공룡의 고향이었을까. 이 박사는 “알 속에서 태아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정확히 어떤 종인지 알 수 없다”며 “현재까지 발견된 공룡알은 모두 3종인데 초식공룡인 용각류와 육식공룡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정리 개미섬과 여기서 4㎞ 떨어진 삼존리 공사현장에서 2006년 발견된 공룡알은 껍질이 유독 두꺼워 눈길을 끈다. 부피가 270㎤인 이 알의 껍질 두께는 4.2㎜에 이른다. 멸종한 사상 최대의 새 마다가스카르코끼리새는 알의 부피가 7300㎤이지만 두께는 3.8㎜에 그친다. 이 박사는 “이 정도의 알을 깨려면 300㎏ 이상의 하중이 필요하다”며 “어미 공룡이 악어처럼 알껍데기를 살짝 물어 깨뜨려 새끼의 부화를 도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 화석지에서는 2002년 육식공룡의 갈비뼈가 발견됐다. 지난해에는 전곡항 방조제에서 머리 부분을 뺀 하반신 뼈가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초식공룡 프로토케라톱스 류의 화석이 발견돼, 1억년 전 시화호 일대에 다양한 공룡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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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알이 단단한 뼈보다 더 많이 화석으로 남은 까닭은 뭘까? 이 교수는 움직일 수 없는 공룡알은 쉽게 퇴적물에 묻힌 반면 공룡은 하천 범람을 피해 도망쳤으며, 사고로 죽은 공룡의 주검도 빠른 물살을 타고 하류로 흘러갔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시화호 일대의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은 화성시 송산면과 마도면 일대 16㎢에 이르지만 대부분이 개펄에 덮혀 있어, 장차 발굴을 확대한다면 엄청난 양의 공룡알과 뼈 화석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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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화석 추출 작업실의 풍경
 
Untitled-3 copy.jpg작업장에는 미세한 돌가루 먼지가 떠다녔다. 확대경을 들여다 보며 암석 덩어리에서 좁쌀 크기로 암석을 떼어내는 공기파쇄기를 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공룡이 먼지를 털고 7천만년 동안의 잠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경기도 화성시 시화호 공룡알 화석지 방문자센터 1층에 가면 유리창을 통해 흰 작업복과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암석 덩이에서 공룡화석을 파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성시가 지난 2006년부터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몽골 등의 연구자와 함께 해마다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굴한 암석에서 공룡화석을 추출하고 있는 것이다.
 
방 한가운데는 1차 탐사 때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굴한 ‘타조 공룡’ 갈리미무스의 화석이 원래 골격 모습을 대부분 드러내고 있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 옆에는 가느다란 갈비뼈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갈비뼈 안에는 소화를 돕기 위해 삼킨 작은 자갈(위석)이 들어있다.
 
특히 척추나 머리뼈처럼 복잡한 형태의 화석을 추출하는 데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전등을 밝힌 작업대에서 확대경을 보며 압축공기를 불어넣고 붓으로 털어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한 작업자는 “주먹만한 돌에서 이암을 떼어내는 데 한 달까지 걸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루함을 덜기 위해 전자부품 조립공장처럼 화석 작업장 스피커에서는 대중음악이 흘러나왔다.
 
방문자센터의 자연유산해설사 7명이 돌아가며 이 작업을 돕고 있다. 수장고에는 이들이 처리해야 할 화석 덩이가 컨테이너에 담겨 산처럼 쌓여있다. 고비사막에서 캔 화석은 석고를 입혀 반입한다. 골절 부위에 석고붕대를 하듯 외부충격에서 화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화석을 추출할 때도 진동을 흡수하기 위해 모래주머니 위에 석고화석을 놓고 작업을 한다.
 
공룡화석이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인구 48만의 작은 지자체로서는 거금인 25억원의 예산을 들인 5년간 탐사의 결과물이자 2015년까지 완공할 공룡박물관의 주요 전시물이기 때문이다.
 
박보현 화성시 투자진흥담당관은 “국내 어느 박물관보다 많은 진품 공룡화석을 갖추고 외국 박물관과 교환전시 사업을 벌이면 수도권의 명물이 될 것”이라며 “화석 추출이 마무리돼 학술연구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논문도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중생대 한반도는 공룡 천국
 
Untitled-7 copy.jpg공룡은 중생대(2억4800만~6500만년 전) 동안 남극에서 알래스카까지 모든 대륙에서 번창했다. 그러나 공룡화석은 이 시기에 육상에서 퇴적층이 쌓인 곳에서만 발견된다.
 
한반도는 중생대 초 대륙이 이동하고 충돌하는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한반도는 3개로 나뉘어 밀리고 회전하며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가 됐다. 이때 분출한 마그마는 북한산, 설악산 등 주요 산체를 형성한 화강암으로 굳었고 현재의 지체구조가 거의 완성됐다.
 
따라서 우리나라엔 백악기 초와 쥐라기의 지표 퇴적층이 적고, 이때의 공룡 화석도 거의 없다. 대신 중생대 말인 1억4400만년~6500만년 전의 백악기에는 경상남북도 대부분을 포함하는 경상분지에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고 여기로 흘러든 하천이 발달해 공룡의 천국이 펼쳐졌다. 또 단층선을 따라 지각이 열리면서 가라앉아 형성된 소규모 분지가 많이 만들어졌다. 시화호 주변의 남양분지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남한의 백악기 공룡화석은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만큼 풍부하다. 특히 경남과 전남 해안의 발자국 화석은 세계적 규모이다. 1만개 이상의 공룡 발자국과 500여개의 익룡 발자국, 새 발자국 화석이 다수 발견됐다. 또 공룡알 화석도 대규모 집단 산란지였던 전남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선소해안을 비롯해 경남 하동, 고성, 사천, 통영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화성/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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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대 익룡 고향 군위 ~ ‘하늘의 제왕’ 세계 최대 익룡들의 사냥터

 

앞발자국 길이 35.3㎝…1억6천만 년 ‘군림’
코끼리보다 큰 몸집으로 어떻게 날았을까

화석 찾기는 고생물학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3월 경북 군위에서 척추동물 화석을 찾아나선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은 몇 시간째 지표면에 드러난 암석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땅만 보고 걸어다녔다. 이 지역은 곤충과 어류 화석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다. 벌레와 물고기가 있다면 이를 잡아먹는 척추동물도 있을 터였다.
 
숨을 돌릴 겸 등산화끈을 매려고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바위에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공룡 발자국인가? 그게 아니어서 낙담하는 순간 “심 봤다!”라는 소리가 터져나올 뻔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익룡의 오른쪽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던 것이다. 무릎에 맥이 풀려 주저앉아 어른 손보다 2배나 큰 발자국을 더듬었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호숫가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1억년 전 동해 열려 일본이 떨어져 나가기 전 호숫가
 
아직 동해가 열려 일본이 떨어져 나가기 전, 경남·북과 전남 일대는 육지였고 커다란 호수가 여기저기 있었다. 따뜻한 열대기후 속에 소철과 속새가 번성했다. 이들을 먹는 작고 날렵한 초식공룡 힙실로포돈, 거대한 목 긴 공룡인 부경고사우루스, 그리고 이들을 노리는 육식공룡 메갈로사우루스가 호숫가를 어슬렁거렸다. 물속에는 원시악어가 거북과 함께 물고기를 사냥했다. 하늘에는 거대한 익룡이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며 유유히 날아갔다.
 
중생대 백악기 한반도 남부를 ‘공룡의 낙원’이라고 부른다면, 절반을 빠뜨린 셈이 된다. 당시 하늘을 지배한 익룡은 공룡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반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류의 익룡이 서식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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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박사가 군위에서 발견한 익룡의 앞발자국은 길이 35.3㎝, 폭 17.3㎝로 세계 최대의 화석이다. 3개의 발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군위의 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 발자국은 전남 해남군 우항리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발자국만으로는 어떤 익룡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임 박사는 “군위와 해남의 익룡은 모두 테로닥틸로이드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케찰코아틀루스라는 거대 익룡의 골격 일부가 미국 텍사스에서 화석으로 발굴됐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이 익룡의 날개 폭이 10~11m, 무게는 70~85㎏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한다.
 
영국 포스머스 대학 고생물학자 마크 위튼과 다렌 나이쉬는 지난해 국제학술지 피엘오스 원(PLoS onE)에 실은 논문에서 우리나라 우항리 발자국의 주인은 날개 폭이 10m가 넘고 키는 3m에 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거대 익룡의 키는 인도코끼리보다 크고 기린의 어깨 높이에 필적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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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도 선수, 네 발로 뛰다 박차고 날아올라

 
날개를 폈을 때 F-16 전투기 만한 거대 익룡의 무게가 이 정도에 그친 까닭은 현재의 새처럼 뼈의 내부가 비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어른보다 무거운 몸집으로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거대 익룡의 날개는 폭이 넓고 짧은 게 특징이다. 알바트로스보다는 콘도르에 가까운 형태이다. 따라서 거대 익룡은 독수리나 황새처럼 상승기류를 옮겨 타며 천천히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테로닥틸로이드 익룡의 상당수가 바다에서 먼 내륙에 서식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논란을 부른다. 해안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륙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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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익룡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들의 걷거나 뛰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는 날개를 접은 익룡이 지상에서 우수꽝스러운 몸짓으로 뒤뚱거리는 이제까지의 상상을 뒤엎는다. 새 이론의 유력한 증거가 바로 우항리의 발자국이다.
 
우항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443개의 익룡 발자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기록인 7.3m 길이의 보행렬이 발견됐다. 특히 이곳의 발자국은 익룡이 두 발뿐 아니라 네 발로도 경쾌하게 걸어다녔음을 보여준다.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과거엔 익룡이 육상에서 마치 우산을 겨드랑이 끼고 어정쩡하게 걷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우항리 화석을 통해 앞뒷발을 모두 이용해 자연스럽게 걸었음이 분명해졌다”며 “거대 익룡이 헬기가 이륙하듯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음을 발자국 화석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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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처럼 물가나 육상 성큼성큼 걸으며 먹이 낚아 채

 
거대 익룡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도 논란거리다. 거대 익룡 골격의 특징은 큰 두개골과 이를 지탱하는 길고 뻣뻣한 목뼈이다. 처음엔 이들이 죽은 공룡의 사체를 처분하거나 땅속에서 무척추동물을 잡아먹었다고 생각했다. 이어 턱을 물속에 잠근 채 바다 표면을 날면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엔 황새처럼 물가나 육상을 성큼성큼 걸으며 먹이사냥을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이들의 메뉴에는 작은 원시 악어나 공룡 새끼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Untitled-6 copy.jpg임종덕 박사는 “거대 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군위에서는 크지 않은 공룡 발자국과 물고기, 어패류, 곤충의 화석도 함께 발견되기 때문에 이곳이 익룡의 사냥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조상이 두 발로 서 인간이 되기까지 400만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익룡은 1억6천만년 동안 지구의 하늘을 지배했다. 그러나 익룡의 마지막 세대인 거대 익룡도 공룡을 몰락시킨 중생대 말의 대멸종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큰 덩치로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 공룡과는 다른 파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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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척추동물인 익룡은 공룡의 조상과 갈라져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다. 흔히 익룡은 하늘을 나는 공룡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룡과는 다른 파충류이다. 익룡과 공룡은 악어와 공룡 사이 만큼이나 진화의 간격이 벌어져 있다.
 
최초의 익룡은 중생대 초인 2억2천만년 전 등장했다. 이후 참새 만한 것에서부터 경비행기 크기에 이르는 수백종으로 분화했다.
 
중생대 초·중반인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의 익룡이 꼬리가 길고 이빨이 달린, 용 비슷한 형태라면 후기인 백악기 익룡은 비행의 균형을 잡아주던 꼬리가 사라지고 대신 날개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대형 익룡이 많아진다. 또 턱뼈에서 이빨이 사라져 새의 부리 비슷하게 바뀐 것들도 늘어났다.
 
익룡은 진화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온혈동물로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에서 발견된 털 달린 익룡의 화석은 보온의 증거이다. 더운 피를 가지면서 익룡의 기동성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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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룡은 턱의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기나 곤충을 잡기도 하고, 코뿔새처럼 열매를 먹기도 했다. 플라밍고처럼 턱에 난 수백개의 돌기로 물속의 작은 생물을 걸러먹기도 했고 저어새처럼 펄을 써레질하는 종류도 있었다. 북미의 프테라노돈은 바다에서 수백㎞ 거리를 순항하며 먹이를 찾는 떠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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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빈 뼈를 지닌 익룡은 좀처럼 화석으로 남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선 2001년 처음으로 경남 하동에서 익룡의 날개 뼈가 발견됐다. 이 익룡은 백악기 초 중국에서 번성했던 충가립테리스(Dsungaripterus)에 가까운 종으로 추정된다.
 
경북 고령에서는 길이가 7㎝인 대형 익룡의 이빨뼈가 발견됐다.
 
아시아 최초로 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전남 해남군 우항리를 비롯해 경남 사천, 하동, 거제시 등에서 백악기의 익룡 발자국이 확인됐으며, 앞으로 더 많은 화석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 익룡-새-박쥐의 차이 
 
익룡과 새, 박쥐는 모두 독자적으로 나는 능력을 획득했다. 이들이 지구상에 등장한 시점은 수천만년의 차이가 있지만 앞다리가 변한 길고 가는 팔뼈를 지닌 날개를 공통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세부적인 구조는 다르다(그림).
 
새는 손과 손가락뼈가 융합돼 있고 여기서 깃털이 난 반면 박쥐는 길고 가는 4개의 손가락과 짧은 엄지손가락이 피막을 지탱한다. 익룡은 한개의 손가락만 유독 길어져 피막을 지탱하고 나머지 3개의 손가락은 짧다. 긴 손가락과 몸통, 뒷발은 피부가 변한 막으로 덮여있다. 날개를 접고 걸을 때 땅에는 주로 날개 끝에 달린 3개의 짧은 손가락 자국이 남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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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후의 피난처, 여수 ~ ‘딥 임팩트’ 재앙, ‘최후의 날’ 공룡의 흔적

 

아시아 마지막 거처…가장 긴 걸음걸이 행렬
추도 등 인근 섬 지역 3500여 점 발자국 화석

 
초식공룡 한 무리가 얕은 호숫가를 두 발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메마른 황무지에 점점이 흩어진 호수와 골짜기를 따라 몇 달째 이동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다. 이곳엔 골짜기 강들이 간간이 범람하여 마르지 않는 물과 먹이 식물도 많았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자 공룡 무리는 고개를 들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거대한 목 긴 공룡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지만 육식공룡은 아직도 끈질기게 이들을 노린다. 안도하는 순간 하늘을 찢는 굉음이 땅을 울렸다. 화산재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발자국 화석에 풍부하게 담긴 살아있는 공룡 정보
 
마지막 공룡은 아마도 이런 고단한 삶 속에서 안식처를 한반도 남쪽에서 구했을 것이다. 지난 28일 공룡이 멸종을 앞두고 아시아 지역에서 최후의 흔적을 남긴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의 사도·추도·낭도를 찾았다. 이들 섬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마지막 시기에 쌓인 퇴적층이 해안에 드러나 있다.
 
파도에 깎인 낭도의 남쪽 해안 절벽은 희거나 녹색인 사암과 어두운 회색 이암이 교대로 시루떡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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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보십시오.” 썰물로 드러난 바닥 암반에서 파래를 걷어내면서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한국공룡연구센터 소장)가 하트 모양으로 움푹움푹 패인 곳을 가리켰다. 초식공룡 한 마리가 두 발로 걸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니 공룡 발자국 화석은 곳곳에 있었다. 초식공룡의 발자국은 발가락이 두툼하고 양쪽 가장자리가 넓다면 육식공룡의 것은 새 발자국 모양이고 끝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남아있기도 하다. 절벽엔 퇴적물이 눌린 발자국 단면도 보인다.
 
이웃 섬인 추도에는 6마리의 조각류 초식공룡이 나란히 걸어간 84m 길이의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공룡 보행렬이다. 얕은 호숫가 바닥이 물결 모양을 이룬 연흔 위에 찍힌 발자국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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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뼈 화석 못지않은 정보를 준다”고 허 교수가 설명했다. 골격화석과 달리 발자국 화석만으론 어떤 종류의 공룡인지 가려낼 수 없다. 그러나 뼈 화석이 죽은 공룡의 모습을 간직한다면, 발자국 화석은 살아있던 공룡의 자취를 전달한다.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이동습성은 무언지, 집단생활을 했는지, 기후가 어땠는지 등 생태정보가 담겨있다.
 
사도에서 발견될 가능성 있는 소행성 충돌 흔적
 
Untitled-1 copy.jpg허 교수는 지금까지 추도 1759점, 낭도 962점, 사도 755점 등 모두 3500여 점의 발자국 화석을 여수 섬지역에서 발견했다. 82개 보행렬이 있는데, 이 가운데 65개가 두 발 초식공룡인 조각류의 것이고, 16개가 육식공룡인 수각류, 네 발 초식공룡인 용각류의 것은 1개에 그쳤다.
 
흥미롭게도 이곳 공룡발자국은 2개의 큰 방향성을 보였는데, 하나는 호숫가를 따라 걸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직각 방향인 호수 중심을 향한 것이다. 호숫가의 방향은 물결무늬 화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허 교수는 “발자국의 방향에서 일부 공룡이 호숫가를 이동 경로로 이용했으며 또 일부는 정기적으로 물을 마시러 호수에 찾아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발자국의 길이와 폭, 깊이, 보폭 등에서 공룡의 크기와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허 교수는 사도의 초식공룡이  엉덩이까지의 높이가 약 2m, 전체 길이 약 7m로 시속 2.8㎞의 속도로 천천히 걸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공룡은 중생대가 끝난 약 6500만년 전 멸종했다. 여수 낭도리의 섬들에는 약 7000만년 전 퇴적층에 공룡 발자국이 남아있다. 아시아 공룡화석 산지 가운데 최후기에 속한다.
 
사도 남쪽 해안에 가면 중생대 퇴적암 위에 화산재가 쌓인 위로 용암이 굳은 20여m 높이의 화산암 절벽이 펼쳐져 있다. 응회암 가운데는 불에 타 숯이 된 중생대 나무의 화석이 들어있다. 이곳이 중생대의 최후가 기록된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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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부경대 환경지질학과 교수팀이 화산암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사도 암석의 형성연대는 6820만~6550만년 전으로 나왔다.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층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이리듐이 많은 퇴적층의 띠로 확인된다. 백 교수는 “사도에서 그런 경계층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미 침식돼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기-건기가 되풀이된 반건조지대…간헐적인 화산활동 영향
 
여수의 섬들은 당시 쇠퇴하던 공룡의 마지막 피난처였을 가능성이 있다. 중생대 중기인 쥐라기를 풍미하던 거대한 몸집의 용각류는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들어서면 아시아와 유럽, 북미 등에서만 살아남고, 백악기 후기엔 거의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기가 오랜 마산 호계리와 창녕 등지에선 용각류가 적지 않게 확인되지만 백악기 말 극히 일부가 여수에서 발견될 뿐이다.
 

여수의 퇴적층은 이곳이 우기와 건기가 되풀이된 반건조지대였으며 간헐적인 화산활동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백인성 교수는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내륙처럼 땅속에 소금기가 많은 건조지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호수는 불어나고 줄어들었지만 물이 마르지는 않았고, 세쿼이어 같은 식물들이 무성했다. 마지막 공룡은 이곳에서 중생대를 끝낸 거대한 소행성의 충돌 여파와 그 재앙을 뚫고 살아남은 ‘나는 공룡’인 새들의 비상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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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공룡발자국 화석지

Untitled-4 copy.jpg1982년 경남 고성군 덕명리 해안에서 처음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이후 이 ‘위대한 흔적’은 1990년대 경남북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좋고 다양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학술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남 화순에서는 육식공룡이 40m 이상 걸어간 자국이 남아 있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해안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길이 1.27㎝의 소형 육식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다. 여기서는 또 발가락이 2개인 신종 육식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 티라노사우루스류의 육식공룡 말고도 벨로시랩터와 같은 육식공룡도 서식했음을 알 수 있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초대형 초식공룡 발자국과 해남이크누스 익룡발자국, 그리고 물갈퀴새발자국이 다수 발견됐다. 

경남 고성군 덕명리 남쪽 해안에는 화성암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곳에선 모두 4천개의 발자국이 보고됐다.

경남 고성군 영현면 대법리에 있는 사찰 계승사에서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뒷 발자국의 지름이 80㎝로 중간 크기의 목 긴 초식공룡인 용각류가 남긴 것이다.

바닷가뿐 아니라 경남 마산시 호계리 구마고속도로 내서인터체인지 부근에서도 용각류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들 공룡발자국 화석은 모두 중생대 후반기인 백악기 때 호숫가이던 남해안 퇴적층에 공룡이 남긴 것이다.

◈ 공룡은 왜 멸종했나
 
중생대 초인 2억3천만년 전 출현한 공룡은 6500만년 전 중생대와 함께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1억6천만년 동안이나 지구 전체에 군림했던 공룡의 멸종에 대한 이론과 논쟁은 수없이 많다.
 
가장 인기있는 설명은 월터 알베르즈가 1980년 내놓은 소행성 충돌설이다. 지름 5~15㎞의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 지름 180㎞의 칙술룹 화구를 남긴 대충돌이 거대한 화재와 ‘핵겨울’같은 기후변화를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충돌로 인한 먼지와 화재로 햇빛이 장기간 차단되면서 먹이사슬의 토대인 식물플랑크톤과 식물이 타격을 입었고, 그 영향은 연쇄적으로 육식동물로 번졌다. 유기물 부스러기를 먹고사는 곤충이나 달팽이, 이들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나 청소부 동물 등은 살아남았다. 몸집 큰 공룡보다 악어나 포유류, 조류 등 작은 동물도 생존에 유리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충돌로 대규모 멸종사태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거대산불이나 핵겨울의 증거가 없고, 또다른 소행성 충돌이 멸종을 일으켰다는 등의 반론도 장기 멸종설을 뒷받침한다.
 
중생대 말 활발했던 화산활동은 멸종의 큰 이유이다. 특히 지상 최대 화산활동의 하나로 꼽히는 인도 데칸고원에서는 중생대 말 약 3만년 동안 용암이 분출해 남한 면적의 5배인 50만㎢에 2㎞ 두께의 현무암을 쌓았다. 이때 뿜어나온 이산화황은 지구의 기온을 2도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생대 백악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의 6배에 이르고 지표의 온도가 현재보다 4도가 높은 18도에 이르는 등 지구온난화가 현저했다. 극지방엔 얼음이 없었고 해수면이 상승해 육지가 잠기면서 얕은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이런 상태에서 화산분출 등으로 기후가 바뀌고 지각운동으로 해수면이 낮아져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대륙붕이 사라지면서 대멸종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공룡은 대충돌 300만년 전부터 다양성이 줄어들고 몸집이 줄어드는 등 쇠퇴 조짐을 보였다. 허민 전남대 교수는 “전남 보성에서 공룡알이 200여 개 발견됐지만 태아는 전혀 없었던 것도 중생대 말 최후의 소행성 충돌 이전에 공룡의 번식에 이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암모나이트, 어류, 포유류도 중생대가 끝나기 훨씬 전부터 쇠퇴하고 있었다. 결국 운석충돌이 치명타가 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이전의 기후변화는 중생대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수/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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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생대 식물화석의 보고, 포항 ~ ‘기후변화’가 덮칠 한반도 숲 미래가 보인다 

 

동해 열리고 한반도서 일본 떨어져 나가
공룡 대멸종 시대 이후 신천지 증거 오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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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이대로 진행돼 앞으로 한반도의 숲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면, 포항에 가보면 된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금광리 야산에는 약 2천만 년 전 비교적 선선하던 때 한반도의 식물이 화석으로 굳은 셰일 층이 있다. 여기서 15㎞쯤 떨어진 포항시 북구 두호동 해수욕장의 바닷가에는 그로부터 약 1천만 년 뒤 아열대 기후로 바뀐 한반도의 모습이 절벽에 화석으로 남아있다.
 
일본 고유종인 금송은 과거 한-일 비슷한 식물상 증거
 
포항에는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생대 제3기 퇴적층이 있다. 호수와 바다에서 쌓인 약 1㎞ 두께의 이 퇴적층에는, 동해가 열리면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던 동안 벌어졌던 기후변화의 증거가 식물화석 형태로 오롯이 담겨있다.
 
6500만 년 전 중생대는 공룡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 대멸종 시대에서 살아남은 생물과 새롭게 진화한 생물들이 신천지를 채워나갔다. 고사리와 겉씨식물은 쇠퇴하고 그 자리를 꽃 피는 식물이 차지했다. 신생대가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이 땅을 뒤덮게 된 것이다.
 
김경식 전북대 생물과학부 교수가 최근 포항의 나무와 잎 화석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신생대 마이오세 초인 약 2천만년 전 포항의 숲을 재구성해 보자. 당시 포항은 지금의 동해를 길게 늘여놓은 모습의 호숫가에 위치했다. 일본은 아직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이다(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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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의 숲에는 희고 미끈한 수피를 지닌 자작나무류가 많았다. 사시나무, 가래나무, 느릅나무, 단풍나무와 비슷한 낙엽성 수목들도 흔했다. 이들은 모두 지금과 비슷한 온대 또는 냉·온대성 기후에 잘 자라는 나무이다. 산의 양지바른 남사면에는 낯익은 소나무들이 들어서 있다.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에 흔히 보는 소나무와 함께 둘로 갈라진 바늘잎이 부채처럼 돌려나는 또 다른 소나무가 있다. 바로 일본 고유종인 금송이다. 현재 일본 혼슈 중부와 남서부에 드문드문 분포하는 금송은 마이오세 동안 한반도에도 자생했다. 동해가 열리기 전 한국과 일본의 식물상이 비슷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한반도에 널리 자라던 너도밤나무가 거의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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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따뜻했던 호숫가와 골짜기에는 현재 베트남, 대만 등에 있는 넓은잎삼나무가 서 있다. 금광리에 가장 많은 나무는 너도밤나무 종류였다. 너도밤나무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대표적인 참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울릉도에만 분포한다. 신생대까지 한반도에 널리 자라던 이 나무가 거의 사라진 이유로 김경식 교수는 “동해가 형성되면서 습기가 많은 해양성 기후이던 포항이 그 후 겨울엔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포항시 북구 두호동은 금광리에서 지척이지만 시간으론 1천만년이나 뒤에 쌓인 퇴적층이 있다. 그 사이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 기다란 동해 호수가 바다와 만나면서 일본은 섬이 됐고, 포항은 바닷가에 놓이게 됐다.
 
두호동 해안에서는 요즘 전남 해남에서 볼 수 있는 상록활엽수인 구실잣밤나무, 가시나무, 육박나무, 후박나무 종류가 자랐음이 나뭇잎 화석을 통해 밝혀졌다. 이곳의 기후가 난·온대 또는 아열대 기후였음을 알 수 있다.
 
조개나 성게의 화석이 많이 묻혀있는 두호동 퇴적층은 꽤 깊은 바다 밑에 쌓인 펄이 굳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깊은 바다에서 나뭇잎이 나오는 걸까. 게다가 이곳 나뭇잎 화석은 물속벌레에게 먹힌 흔적도 없는 깨끗한 것이 많다.
 
이에 대해 백인성 부경대 환경지질학과 교수는 “정밀한 추가연구가 필요하지만, 당시 두호동의 지형이 산지가 곧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경사가 급한 해안이어서 홍수 때 산속에서 쓸려온 나뭇잎이 그대로 바다 밑에 퇴적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산림식생 변화 예측 소중한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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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가 열리고 일본이 떨어져 나가는 지각변동 와중에 한반도의 기후는 마이오세 초기 냉·온대성에서 마이오세 중기에는 난·온대·아열대성으로 바뀌었다.
 
흥미롭게도 포항에는 이런 기후변화의 중간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지질학적 현장이 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 신정리와 오천읍 세계리에는 석탄을 포함하는 2개의 지층이 있는데, 여기서 금광동층과 두호층 사이의 기후 변천을 보여주는 식물 목재화석이 나온다. 냉온대인 금광동층에 가까운 하부함탄층에서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많고, 난온대·아열대인 두호층에 가까운 상부함탄층에서는 난대성 구과식물인 낙우송, 동백나무, 조록나무 종류가 냉온대성 나무와 섞여서 나온다. 서늘한 기후에서 더운 기후로 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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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생대 식물화석 연구는 일본인 학자가 처음 시작한 이래 40여 년 동안 공백기를 거쳐 최근에야 다시 시작됐다. 일본이 19세기부터 연구해 신생대 들어 식물상이 6단계로 바뀌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경식 교수는 “포항은 한 곳에서 신생대 제3기의 여러 시기 지층이 드러나고 식물화석이 풍부해 일본보다 연구여건이 좋다”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산림식생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이므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의 식물화석지는 이제껏 별다른 보호를 받지 않았지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연구용역을 마치고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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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화석 나무의 고향
 
Untitled-8 copy.jpg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중국 허베이성에서 이상한 나무가 발견됐다. 이미 1천만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메타세쿼이아인 사실이 몇년 뒤 밝혀졌다. 세쿼이아 거목과는 먼 친척인 이 나무는 수형이 멋져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도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메타세쿼이아가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이유는 중생대 후기부터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이 나무의 화석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현생 종의 잎 모양은 당시의 모습 거의 그대로이다.
 
이 나무는 주로 신생대 제3기 때 번성해 북반구 중위도에서 고위도와 북극권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항 금관동층 등 제3기 퇴적층 어디서나 나온다.
 
그러나 제3기 마이오세에 이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메타세쿼이아의 화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 나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장소의 하나인 셈이다.
 
이 나무는 춥고 건조해진 기후변화 때문에 쇠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지막까지 생존을 이어온 중국의 자생지는 하천의 범람원 주변이나 계곡 아래로서 수분이 충분한 곳이다.
 
은행나무도 식물 가운데 유명한 살아있는 화석이다. 은행나무는 2억7천만년 전 고생대 페름기에 출현해 중생대에 세계적으로 번성한 가장 오랜 식물 가운데 하나다. 현재 지구상에는 아무런 친척이 없는 외로운 식물이기도 하다.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니며, 수나무의 꽃가루엔 정자가 있는 등 다른 나무와는 확연히 다른 것도 독특하다.
 
중국 동남부 저장성에서 자생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화석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여서 자생지인지 오랜 재배의 결과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생대 지층에서 은행나무 화석이 다수 발견됐고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신생대 제3기 지층에서 도 나왔다. 이후에는 화석기록이 없어 우리나라 자생종은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생하는 은행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 퍼진 것이다.
 
김종헌 공주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가 우리나라 은행잎 화석을 연구한 결과 중생대 초기에 4속 6종, 백악기에 3속 4종, 신생대 제3기에 1속 1종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생대의 은행잎은 대개 크고 잎이 가늘게 갈라져 있었던데 비해 신생대 은행잎은 작고 갈라진 잎이 서로 붙은 형태로 차이가 있었다.
 
이처럼 중국 남부지역에 메타세쿼이아와 은행나무 등 화석식물이 다수 생존한 이유로 김 교수는 “이 지역이 제4기의 빙하기에 대륙빙하나 계곡빙하를 피할 수 있었고, 티베트 고원을 중심으로 한 조산 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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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빙하기 유산 강릉 경포대 ~ 신생대 마지막 지질시대 대표적 해안경관

 

해수면 변동 따라 하천과 파랑으로 석호 생겨
8만~12만년 주기로 부활…훼손으로 ‘팍’ 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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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만8천년 전 빙하기가 마지막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북미와 북유럽의 대부분을 포함해 북반구 육지의 30%가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였다. 빙하가 한반도에까지 밀려오지는 않았지만, 그 영향은 오늘날의 경관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빙하기 동안 바다에서 증발한 수분은 눈과 얼음이 돼 육지에 쌓이기 때문에 해수면이 낮아진다. 지난 빙하기 때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다.
 
5천~6천년 전 해수면은 최고조에
 
최종 빙하기 동안 동해안에도 바다는 현재 해안선에서 멀찍이 물러났고, 태백산맥의 가파른 동쪽 사면을 흘러내린 하천은 상대적으로 높아진 땅을 거침없이 깎아냈다. 그 바람에 동해안의 해안선은 지금처럼 밋밋하지 않고 수십m 깊이의 계곡이 톱니처럼 삐죽삐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되자 해수면은 빠르게 상승했다. 5천~6천년 전 해수면은 최고조에 이르러 현재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 해안선은 골짜기를 따라 육지쪽으로 전진했다. 동해안의 깊게 파인 계곡 안쪽까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안처럼 바닷물이 찰랑댔다.
 
석호가 많은 강원도 고성에서 강릉까지 동해안의 기반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식어 굳은 화강암이다. 땅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다가 땅위에 드러난 화강암은 낮아진 압력 때문에 쉽게 풍화돼 모래를 만든다. 하천에 쓸려간 모래는 해안을 따라 흐르던 해류와 만나 하구를 차츰 가로막았다. 석호가 형성된 것이다(그림 참조).
 
126510326654_20100203 copy.jpg윤순옥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석호는 최종 빙하기와 간빙기 동안 해수면 변동이 일어나면서 하천과 파랑의 작용으로 형성됐으며, 신생대의 마지막 지질시대인 ‘홀로세’ 해안경관을 대표하는 독특한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농경 흔적이 나타난 것은 약 2천년 전
 
간빙기 때 탄생한 석호는 퇴적물이 쌓이면서 늪지를 거쳐 육지가 된다. 다시 빙하기가 와 바다가 물러나고 침식이 일어나면서 석호는 부활한다. 신생대 4기 동안 빙기와 간빙기가 되풀이되면서 석호의 탄생과 죽음은 8만~12만년을 주기로 일어났다. 동해안이 융기하고 있기 때문에 석호는 점점 바다쪽으로 전진하면서 생겼다. 윤 교수는 “화진포와 송지호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해안 석호는 거의 노년 단계”라며 “자연적 변화에 더해 지난 100년 동안의 인위적인 훼손으로 갑자기 늙었다”고 말했다.
 
경포호에 처음 농경의 흔적이 나타난 것은 약 2천년 전이다. 원주지방환경청이 최근 발간한 ‘동해안 석호 보전 및 복원을 위한 생태계 정밀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를 보면, 경포호의 퇴적층을 시추해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 2천년 전에 농경의 지표인 기장, 조, 옥수수 등 벼 과와 쑥 속 식물이 갑자기 번성한다. 꽃가루 연구는 또 경포호가 형성된 약 5천년 전부터 2천년 전까지는 개암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종류가 많아 상당히 온난습윤한 기후였고, 2천년 전 이후에는 참나무가 줄고 소나무가 급증해 인간의 영향이 크게 미쳤고 약간 쌀쌀한 기후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복원작업 시작돼 탄생 5천 년만에 ‘회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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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는 탄생한 지 약 5천년만에 ‘회춘’을 경험하고 있다. 석호의 복원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26일 찾은 경포호에서는 적어도 100년 전 석호로 되돌리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표적인 석호인 경포호는 일본 강점기 때까지 면적이 1.74㎢이었으나 1960~70년대 동안 농지와 도시개발을 위해 매립돼 현재는 절반 가까운 0.93㎢만 남아 있다. 1970년대 경포천을 직강화해 호수로부터 차단한 뒤 경포호는 악취와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물고기 떼죽음으로 몸살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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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는 지난해부터 경포호 유입하천인 경포천 주변에 배후습지 조성에 착수하는가 하면 바다와 연결부에 생태습지원을 만들었다. 특히 2005년부터 70억원을 들여 농경지 29만㎡를 매입해 습지로 돌리는 사업은 지자체 차원의 습지복원 사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조영각 강릉시 자연복원사업단 호수복원 담당자는 “농사를 중단했을 뿐인데 새로운 수초가 돋아나고 큰고니 25~26마리가 해마다 찾아오는 등 습지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며 “2011년까지 사업이 끝나면 경포천의 물이 흘러들어 원래의 기수호 상태로 바뀌고 호수면적도 30%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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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빙하기 황해는 사막이었다
 
신생대 제4기에 해당하는 지난 200만년은 기후변화의 시대였다. 약 7만~1만년 전까지 계속된 마지막 빙하기를 포함해 수십 차례의 빙기와 간빙기가 되풀이됐다. 특히 2만~1만8천년 전의 빙기는 가장 추웠던 시기로 ‘최종빙기 최성기’라고 부르며,  동해안 석호 탄생의 배경이 됐다.
 
마지막 빙기가 절정을 맞았을 때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자연환경은 어땠을까.
 
윤순옥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와 황상일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가 <한국지형학회지> 최근호에 낸 논문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최종빙기 최성기 자연환경’을 보면, 황해와 동중국해는 바다가 후퇴해 곳곳에 사막이 펼쳐진 육지였고, 차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넓게 펼쳐진 초원 위를 매머드가 무리지어 돌아다녔다.
 
126510326682_20100203 copy.jpg해수면이 100m 이상 하강하면서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가 됐고 일본과도 연결됐다(그림 참조). 이 시기 중앙아시아 카스피해부터 동중국해까지 반원형의 소규모 사막이 폭넓게 분포했음이 퇴적학 연구로 밝혀졌다. 중국 연구자들이 황해 해저를 시추조사한 결과 제주도 서쪽과 남쪽, 평안도 앞, 발해만, 양쯔강 하구 등에서 사막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 난류인 쓰시마해류가 동해로 유입되지 못하면서 동해는 커다란 내해가 됐고 수온도 현재보다 7~8도 낮았다.
 
이 논문은 당시 한반도 퇴적층의 꽃가루를 분석한 연구로 볼 때 한반도 동해안과 산지는 여름 평균기온이 현재보다 약 10도 낮아 추웠고, 서해안은 이보다는 덜 추웠지만 양쪽 모두 매우 건조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속초 영랑호 퇴적층에서는 이 시기 전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이깔나무 등 현재 백두산 근처에서 흔히 보는 한대성 수종이 분포했고, 경북 영양에서도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 종류가 우세했다. 충남 부여에서는 소나무가 많았지만 한랭기후를 가리키는 잣나무도 적지 않았다. 전반적으로는 몬순대가 일본 남쪽에 걸치면서 한반도를 완전히 빗겨나가 한반도는 나무보다는 풀이 많은 건조한 경관이 펼쳐졌을 것이라고 이 논문은 밝혔다.
◈ 고등어와 송사리가 함께 사는 한국의 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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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교수가 동해안에서 위성영상으로 확인한 면적 0.01㎢ 이상의 석호는 모두 57개로 주로 함경도와 강원도에 분포한다. 남한에는 18개가 있지만 호수 형태를 갖춘 곳은 11개에 불과하다.
 
강릉의 풍호는 무연탄재 360만t을 매립하면서 호수의 모습을 완전히 잃었고 양양군 군개호와 염개호도 사실상 호수가 사라졌다. 양양군의 쌍호와 고성군의 선유담도 유입수가 줄어 늪지가 됐다. 석호의 원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고성군 화진포호와 송지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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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강릉시의 경포호와 향호, 속초시 영량호, 고성군 화진포호, 송지호, 광포호, 양양군 매호를 중점관리석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석호의 환경은 변화무쌍하고 동적이다. 자연적으로 육지화가 진행돼 대개 평균수심이 1m 안팎으로 얕아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이가 극심하다. 또 홍수나 파도가 높을 때 호수와 바다의 연결이 확대되는 갯터짐 현상이 주기적으로 벌어져 염분농도가 급변하기도 한다. 하천 유입구 근처에는 붕어나 송사리가 살지만 갯터짐으로 고등어, 넙치, 강성돔, 전어 등이 대거 들어와 서식한다.
 
표층의 담수와 심층의 해수가 섞이지 않는데다 유기물과 무기염이 응집해 가라앉기 때문에 호수 깊은 곳에서는 여름철에 무산소 상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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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극단적인 환경변화와 수질오염이 겹쳐 부영양화, 물고기 떼죽음 등이 빈발한다. 또 생물다양성은 낮은 반면 기회를 만난 특정 생물이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일이 잦다.
 
과거 경포호에서는 부새우(곤쟁이)가 대번식해 주민들이 그물로 떠서 리어카에 가득 싣고 팔기도 했다. 2007년 원주지방환경청 조사에서도 송지호에서 ㎡당 1천 개체가 넘는 재첩이 발견됐고, 그해 12월 매호에서는 실참갯지렁이가 ㎡당 3787마리나 분포해 호수 전체로는 1억8천만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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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곰소만의‘떠다니는 섬’ ~ 한민족과 함께 태어나고 자란 서해안 갯벌

 

5천년 전 해수면 상승속도 줄며 퇴적물 쌓여
하굿둑-댐에 가로막혀 ‘영양실조’ 걸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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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완전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땅, 한민족과 함께 탄생한 땅,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땅…. 모두 갯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8일 우리나라에 남은 마지막 자연갯벌의 하나인 곰소만을 찾았다. 만의 들머리인 전북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에서 썰물에 드러난 갯벌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만을 가로지르는 갯벌의 폭은 약 5㎞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동행한 전승수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곰소만은 모래에서 펄까지 다양한 형태의 퇴적물을 모두 발견할 수 있는 드문 곳”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와 전남 갯벌이 펄 중심이라면, 서해 중부의 갯벌은 모래가 지배적인 곳이다.
 
이곳 갯벌에는 ‘셰니에’라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지형이 있다. 일종의 ‘떠다니는 섬’인 셰니에는 바람과 파도에 실려온 모래와 진흙 입자가 펄 위에 쌓여 이룬 소형 모래등이다.
 
파도로부터 해안 보호하는 ‘천연방파제’ 셰니에
 
만돌리 해안에는 길이 약 1㎞, 폭 약 30m의 셰니에가 마치 두 팔을 벌려 파도로부터 해안선을 지키려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안선과 셰니어 사이에는 파도가 잔잔해 입자가 가는 펄이 깔려있었다. 조개껍데기와 모래가 많은 셰니에를 건너 바깥 바다와 만나는 곳의 갯벌은 파도에 쓸려 심하게 침식돼 있었다.
 
전 교수는 “셰니에는 파도로부터 해안을 보호하는 천연방파제 구실을 한다”며 “사람이 물러나야 할 곳에서는 자연에 양보하는 지혜가 기후변화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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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니에는 살아 움직인다. 북풍을 받는 이곳에선 수백 년 동안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해 언젠가는 해안에 닿아 사구가 된다. 그러나 1990년대 말까지 곰소만에 있던 수백 년 동안 형성된 셰니에는 새우양식장을 만들기 위한 간척 때 손쉬운 둑으로 쓰이면서 사라졌다. 현재의 셰니에는 만들어진 지 10여 년 된 어린 지형이다.
 
셰니에뿐 아니라 갯벌 자체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갯벌은 여름과 겨울 사이의 힘겨루기가 낳은 소산이란 것이다.
 
양병천 캐나다 퀸스대 박사 등은 최근 서해 중부 갯벌에 관한 논문에서 상대적으로 파도가 약한 여름에는 가는 입자가 쌓이다가 거센 폭풍이 잦은 겨울을 거치면서 모두 쓸려나가고 그 위에 모래층이 덮는 현상을 밝혔다. 같은 곳이라도 여름에 발목이 푹푹 빠지던 갯벌이 겨울엔 모래가 쌓여 단단해지기도 한다.
 
또 갯벌의 위치에 따라 파도와 조류의 영향력이 다르다. 만 안쪽에서 밀물과 썰물이 갯벌을 좌우한다면, 바깥에선 바람에 의한 파도가 갯벌의 모양을 정한다.
 
추위 때문에 구멍에서 나온 게가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러나 서해비단고둥은 제철을 만난 듯 발 디딜 틈도 없이 갯벌 바닥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눈앞에서만 줄잡아 수백만 마리는 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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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갯벌과 달리 모래가 위, 펄이 아래

 
갯벌은 수많은 생물의 보금자리이지만 어느 나라 갯벌이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갯벌은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 동부해안, 북해연안, 아마존강 유역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꼽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갯벌에 기대어 생활한 역사를 가진 점에서는 독보적이다. 전 교수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 드물고 기껏 치어만 있는 외국 갯벌을 연구하던 전문가가 한국에 와서 놀랍게 왕성한 생물활동과 이를 이용하는 주민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이런 생물다양성은 갯벌은 높은 산소투과율과 퇴적층이 다채로운데 기인한다.
 
서해 갯벌의 탄생은 빙하기와 관련이 있다. 약 1만 8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기승을 부릴 때 해수면은 현재보다 120m나 낮아 황해는 완전히 육지로 드러났다. 현재 황해의 평균수심은 55m이다. 약 1만 2천 년 전부터 빙하기가 물러나면서 해수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9m 낮던 약 5천 년 전 해수면의 상승속도가 갑자기 느려지자 그때까지 씻겨나가던 퇴적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후 해수면이 안정되면서 큰 조차와 완만한 경사, 다량의 퇴적물 공급에 힘입어 한반도 서·남쪽에 갯벌이 형성됐다. 갯벌은 한민족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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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다른 갯벌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하지만 북해나 북미의 갯벌은 사주와 염습지가 발달해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외국과 우리 갯벌은 성장과정이 다르다. 결정적 차이는 퇴적물 공급량이다. 퇴적물이 많은 외국 갯벌은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퇴적층이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형성됐다. 반면, 퇴적물 공급량이 적은 우리나라에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갯벌이 육지 쪽으로 후퇴하면서 쌓인다. 그 결과 우리 갯벌은 위에 모래가 있고 아래에 펄이 나오지만 외국 갯벌은 반대이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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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뒤엔 동해안보다 넓은 모래해안으로 바뀔 가능성

 
우리 갯벌에는 펄이 적어 내만이 아니라면 바다 쪽으로 1㎞만 나가면 모래가 나온다. 또 해안 쪽으로 후퇴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보다 생물다양성이 높을지 몰라도 훼손에 매우 취약하다. 퇴적물 공급량의 감소는 치명적이다.
 
갯벌 퇴적물의 원천은 강에서 실려온 것, 해안이 깎인 것, 그리고 기존 퇴적물이 옮겨온 것 등 3가지이다.  하굿둑과 댐에 막혀 강이 공급하는 퇴적물이 막힌데다 대규모 해사 채취로 기존 퇴적물도 고갈되면서 갯벌은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릴 위기에 놓여있다.
 
특히, 한반도 서·남해 갯벌에 퇴적물을 공급해온 젖줄이던 새만금이 막히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가 관심거리이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 이후의 갯벌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은 “유속이 바뀌어 펄이 늘면서 조개를 잡아먹는 붉은어깨도요가 급감하는 대신 갯지렁이를 먹는 민물도요와 칠게를 잡아먹는 마도요가 느는 등 생태계가 바뀌고 있고 어민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며 “연근해 수산자원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도 퇴적물과 유기물을 공급하는 강 하구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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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전승수 교수는 “5천년 쯤 뒤에는 파도에 갯벌이 모두 씻겨나가 동해안보다는 넓지만 암반이 드러난 모래해안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펄 지대 ‘흑산니질대’
위성에서도 보이는 목포 앞바다 거대 흙탕물 띠

 
126631251054_20100217 copy.jpg한반도 남서부를 위성사진으로 보면, 전라남도 일대 근해가 넓은 범위에 걸쳐 부옇게 흐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겨울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는 이 거대한 흙탕물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다.
 
조성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등이 <지오사이언스 저널>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전북 고창의 곰소만에서 흑산도를 거쳐 제주도 북쪽 근해를 기다랗게 감싸는 활 모양의 펄 지대가 있는데, 그 규모는 길이 2050㎞, 폭 200㎞, 펄 깊이 최고 60m에 이른다. 이 거대한 펄 지대를 ‘흑산 니질대’라고 부른다. (그림 참조)
 
이런 거대한 퇴적물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학계의 오랜 수수께끼였을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해양경계 획정을 둘러싼 민감한 관심거리이기도 하다.
 
황해에는 흑산 니질대 말고도 황해 한가운데와 동중국해 등 3곳의 대규모 펄 지대가 있다. 양쯔강에서 흘러나오는 연간 5억t의 퇴적물은 대부분 중국 남쪽 해안선을 따라 동중국해로 이동한다. 연간 11억t에 이르는 황하의 퇴적물은 주로 황하 입구에 가라앉지만 일부는 황해로 이동해 퇴적된다.
 
그러나 흑산 니질대 근처에는 큰 강이 없어, 펄이 어디서 왔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강으로부터의 퇴적물량은 중국에 견줘 100분의 1에 그친다.
 
최근 지질학자들은 흑산 니질대의 퇴적물이 금강과 새만금에서 온 것임을 밝혀냈다. 특히 겨울철엔 강한 바람과 조류를 따라 퇴적물이 목포 앞바다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전승수 전남대 교수는 “금강 등에서 온 퇴적물과 해안을 침식한 토사가 미세한 입자가 돼 오랜 세월에 걸쳐 흑산 니질대에 쌓였을 것”이라며 “중국 쪽 퇴적물이 황해 중간에 펄을 남기지 않은 채 건너뛰어 흑산 니질대에 쌓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흑산 니질대는 물론 중국 쪽 펄 지대의 기원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다. 임동일 한국해양연구원 박사는 흑산 니질대에 중국에서 기원한 퇴적물이 일부 섞여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고, 나아가 황해 중앙부 퇴적물에도 한국 기원물질이 혼합돼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흑산 니질대는 다량의 유기물을 공급해 우리나라 수산자원을 살찌우는 구실도 하고 있다. 난류인 쓰시마 해류의 일부가 북상하다가 남하하는 연안해류는 이곳에서 만나 영양분이 많은 찬 바닷물이 솟아올라 천혜의 어장이 된다.

 ◎ 황해, 서해 도대체 뭐가 맞나요?
공식 명칭 황해…중국도 동해 아닌 황해라 불러
우리나라 ‘동해’는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있어서

 
한반도 서쪽 바다를 흔히 ‘서해’라고 부른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수산연구소처럼 공공 명칭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지도책이나 교과서를 보면 모두 ‘황해’로 돼 있다. 서해와 황해, 어떤 것이 옳은 명칭일까.
 
‘서해’란 말은 한반도 서쪽에 있는 바다란 뜻이다. ‘황해’는 중국 황하에서 연간 11억t의 황토를 쏟아내 누런빛을 띠는 바다란 뜻을 지닌다.
 
일반인에겐 ‘서해’가 익숙하고 쉽기도 하지만 공식명칭은 아니다. 내무부 국립건설연구소 중앙지명위원회는 1961년 4월22일 국무원 고시 제16호로 우리나라 지명 12만 4천 개를 일괄 고시하면서 ‘황해’로 표기했다. 이를 근거로 이후 모든 교과서와 법령 등 공식문서에도 황해로 표기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Yellow Sea’(황해)로 표기한다. 중국은 자기 나라 동쪽에 있는 이 바다를 ‘동해’라고 하지 않고 ‘황해’라고 부른다.
 
‘일본해’ 대신 ‘동해’를 써야 한다고 국제사회에 주장하는 정부의 입장과 ‘황해’란 표기가 모순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동해는 한반도 동쪽에 있는 바다란 뜻이 아니라 오래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바다이기 때문에 ‘동해’란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서해’를 고집하다간 ‘동해’란 명칭이 역사적 근거 없는 자국 중심주의의 반영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한국의 ‘서해’ 명칭 사용을 들어 ‘동해’를 ‘일본해’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남해도 국제적인 명칭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이 바다는 ‘동중국해의 북쪽 해역’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적으로 서해, 남해를 쓴다고 잘못은 아니지만 공식 용어로는 황해가 맞다.

고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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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단양 에덴동굴의 비밀 ~ 기후변화 ‘나이테’ 또렷, 온난화의 ‘미래’ 증언

 

40만년 동안 각각 6차례 빙하기·간빙기 흔적
고대국가들 주요 멸망 원인으로 유추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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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고대국가의 주요한 멸망 원인이란 가설이 점차 과학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 연구자들은 2007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서 호수와 해저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700~900년 사이 세계적으로 춥고 건조한 기후가 계속됐음을 밝혔다. 당나라가 몰락한 907년 무렵 마야문명도 붕괴했고 알프스의 빙하도 확장했다.
 
2008년에는 중국 과학자들이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수백년을 이어오던 중국의 5대 왕조 가운데 당, 원, 명 등 3개 왕조가 수십년 동안 여름 몬순이 갑자기 약해지고 춥고 건조한 겨울 계절풍이 강해진 직후 붕괴했다고 밝혔다. 강수량 부족으로 쌀생산량이 급감해 기근이 만연하고 사회적 혼란이 국가의 붕괴를 가져왔을 것이다. 반대로, 송나라 황금기 때는 여름 계절풍이 가장 강해 강수량이 풍부했다.
 
지난 50만년까지의 기후를 높은 해상도로 복원 가능
 
빙하, 심해나 호수 퇴적층, 산호초, 나이테 등의 단서에서 과거의 기후를 추론하는 고기후학이 기후변화의 수수께끼를 풀 학문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우경식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지구의 미래를 내다보려면 과거의 기후가 어떻게 변했는지 가능한 한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과학자들은 1300여년 전의 강수량 변화를 10년 단위로 알아낸 비결은 동굴에 있었다. 우 교수는 “석순 등 동굴생성물은 지난 50만년까지의 기후를 높은 해상도로 복원할 수 있는데다 세계 곳곳에 분포하고 데이터 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워 고기후학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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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에서 중국 과학자들의 논문을 논평한 기디온 헨더슨 영국 옥스퍼드 대 교수는 “고기후학에서 지난 20년이 시추한 얼음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20년은 동굴생성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는 급격하게 이뤄진다. 지난 100만년 동안 빙하기는 10만년을 주기로 찾아왔다. 지난 10만 년 동안의 기후변화를 살펴보면, 불과 수십년만에 급격하게 온난화가 진행되다 수백~수천년 동안 완만한 한랭화가 뒤따르고 이어 매우 급격하게 온도가 곤두박질치는 ‘톱니 그래프’ 모양의 기후변동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런 과거 기후를 적어도 1천 년 단위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동굴생성물은 계절 단위까지 기후변화를 기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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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관음굴 석순 200년 단위 분석해보니 6번 강수량 급감
 
석회동굴은 이산화탄소를 머금어 약산성을 띠는 빗물과 죽은 식물이 분해돼 생기는 유기산이 녹은 지하수 등이 탄산칼슘 성분의 석회암을 녹여서 형성된다. 석회동굴 안에서 지하수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동굴 공기속으로 빠져나가고 수분이 증발하면, 과포화 상태가 된 칼슘과 탄산염 이온이 방해석이나 아라고나이트 같은 탄산염 광물을 침전시킨다. 이 침전물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것이 석순, 종유석, 종유관 등의 동굴생성물이다(반응식 참조).
 
                                CO₂ + H₂O + CaCO₃⇔ Ca² + 2HCO₃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면서 평형 상태가 깨져 왼쪽 방향으로 화학반응이 진행되고, 탄산칼슘이 침전해 동굴생성물을 이룬다.)
 
Untitled-1 copy.jpg충북 단양의 에덴동굴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동굴생성물을 통해 과거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알아본 곳이다.  우 교수팀이 이곳에서 채집한 길이 20㎝, 직경 28㎝인 석순을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연대측정을 한 결과 53만7천년 전부터 9만6천년 전 사이에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석순이 약 44만년 동안 쉼 없이 똑똑 떨어진 물방울 속 탄산칼슘이 굳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약 35만년 전 지하수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그 바람에 석순은 11만년 동안이나 성장이 멈췄다. 당시 석순의 표면에는 오돌토돌한 동굴산호가 돋아 있었다. 우 교수는 “이 기간 동안 한반도가 빙하기 영향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석순의 성장선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약 40만년 동안 각각 6차례의 크고 작은 빙하기와 간빙기가 한반도에 닥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심해저 퇴적물의 유공층에서 밝혀진 세계적 빙하기 주기와 일치하는 양상이다.
 
강원 삼척시 관음굴 석순에 대한 연구는 9만년 전부터 2만년 동안 연속적으로 성장한 석순을 200년 단위로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6번에 걸쳐 강수량이 급감한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름철 몬순이 약해져 강수량이 줄어드는, 당나라 멸망 직전의 사태가 수천년마다 찾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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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용천굴 석순 ‘기후 돋보기’ 대보니 역사적 기록과도 일치

 
우 교수팀은 제주 용천굴에서 ‘기후 돋보기’를 더 바짝 들이댔다. 용천굴은 용암동굴이지만, 동굴 위 조개껍질 등이 쌓인 사구를 지나면서 탄산칼슘 성분을 머금은 빗물이 동굴 안으로 들어와 탄산염 광물로 이뤄진 동굴생성물이 자라는 세계적으로 드문 동굴이다.
 
약 1400년 전 삼국시대의 우리 조상 누군가가 무슨 이유에선지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왔다. 그가 집어던진 횃불 나무토막 위에 탄산칼슘이 든 물방울이 떨어져 석순이 자라기 시작했다.
 
Untitled-6 copy.jpg248개의 성장선이 드러나 있는 약 11㎝ 길이의 이 석순에는 놀라운 기록이 들어있다. 16세기 중반부터 약 100년 동안 극심한 건조기가 나타난 것이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는 세계적으로 소빙기가 찾아왔다. 조선시대에도 이 기간 동안 극심한 가뭄과 홍수, 냉해 등이 빈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조선 현종 때인 1670~1671년 ‘경신 대기근’ 때는 7월에 우박과 서리가 내리고 여름내 가뭄으로 들판이 타들어가다가 가을에는 초대형 태풍과 물난리가 덮쳐, 제주 목사는 “인육을 먹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장계를 조정에 올리기도 했다.
 
연구팀이 조사한 평창 섭동굴의 종유관에서는 2002년 이 지역을 강타한 태풍 루사와 이듬해에 빗겨간 태풍 매미의 기록이 대조를 이루며 남아있기도 하다. 기후 지시자로서 동굴생성물의 가치를 보여준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한반도에 어떤 양상으로 기후변화가 나타났는지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강원대의 동굴생성물 연구에 참여한 조경남 박사(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연수연구원)는 “최근 한반도의 온도 상승폭이 세계적으로 높은데 과거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알아야 한다”며 “동굴생성물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중국과도 다른 양상을 보여, 한반도의 독자적인 고기후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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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의 동굴 실태
 
남한에는 약 1천개의 동굴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회암이 널리 분포한 강원도 강릉, 삼척, 정선, 평창, 태백, 영월과 충북 단양에 석회동굴이 많이 있다. 이 밖에도 경북 문경, 안동, 울진, 평해, 전남 화순, 전북 익산, 무주의 석회암 지대에도 동굴이 분포한다.
 
제주도의 현무암 지대에는 다수의 용암동굴이 있다. 제주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는데, 특히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용암동굴에 스며든 석회 성분이 빼어난 경관을 이룬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석회동굴은 수백만~수천만년 전에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 5억년 전 바다 밑에서 퇴적된 석회암이 대륙이동 과정에서 지상에 노출된 뒤 지하수면 근처에서 동굴로 형성되는 정확한 시기를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반면, 용암동굴은 화산암을 통해 형성연대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제주도 용암굴의 연령은 10만~30만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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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굴 가운데 공개된 곳은 삼척 환선굴, 영월 고씨동굴, 울진 성류굴, 단양 고수동굴, 노동동굴, 온달동굴, 제주 만장굴과 협재·쌍룡굴 등인데 대부분 심각한 훼손과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동굴을 자연유산이 아닌 관광지로 개발함으로써 조명 때문에 이끼가 자라는 녹색오염과, 관람객이 만져 생기는 흑색오염, 전문 도굴꾼이 포함된 동굴생성물 훼손 등이 많은 동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삼척 대금굴에서 한정된 관람객을 상대로 한 가이드 관광을 하고 있으며 곧 개방될 평창 백룡굴에서도 탐방객을 하루 150명으로 한정하는 가이드 관광만 허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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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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