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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영화 이야기

Q-English (영화속의 영어) - 안정효(경향 연재)

by Wood-Stock 2009. 8. 7.

Q로 시작하는 단어 몇 개 알고 있나요?

 

요즈음 사람들이 하는 영어 공부, 특히 말하기를 위주로 하는 ‘생활영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혀를 잘 굴려가며 멋진 발음을 열심히 배우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영어 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휘력으로 결판나고, 그 다음이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이다. “오, 예”나 “오 마이 갓”처럼 궁색한 단어 몇 가지밖에 모르면서 아무리 혀를 잘 굴려봤자, 예를 들어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과정 따위의 구체적인 문제에 관해 외국인과 대화를 하거나 한심한 한국 정치를 놓고 영어 토론을 벌이기는 힘겹다.

 

영어 실력, 그러니까 어휘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Q로 시작하는 단어를 몇 개나 알고 있나 확인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단어만들기 놀이인 스크래블(Scrabble)에서는 Q라는 패쪽이 하나뿐이고, 점수도 매우 높다.

 

이 연속물의 부제 ‘Quips and Quirks and Quotations’는 세 단어가 모두 Q로 시작한다. Q로 시작하는 단어를 필자가 무척 많이 안다고 잘난 체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제목을 붙였다.

 

제목이나 대화에서 이렇게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나란히 배열하는 문학적 기법을 ‘두운(頭韻·alliteration)’이라고 한다. 두운법은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자주 등장하니까, 영어로 말하기나 글쓰기를 하려면 꼭 알아두고, 가끔씩이라도 꺼내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어려운 Q로 두운법까지 구사했으니 ‘Quips and Quirks and Quotations’라는 제목은 정말로 대단한 언어의 묘기라고 하겠다.

 

이왕 잘난 체하는 김에 하나 더 자랑하자면, 몇 년 전에 필자는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에다 ‘Squints and Smirks’라는 고정란을 2년 동안 썼다. squint는 ‘곁눈질’이라는 뜻이고 smirk은 ‘능글맞은 웃음’으로서, 역시 S로 두운법을 사용한 이 제목은 “상대방이 화가 나지나 않았는지 슬금슬금 곁눈으로 눈치를 살피며 신랄하게 웃기는 얘기를 좀 해 보겠소”라는 장황한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두운법은 이렇게 멋지다. 그러니 잠시 두운법을 배워보기로 하자.

 

영화 ‘캣치-22’에서는 훈장 수여식에 나체로 참석한 앨런 아킨 대위를 보고 여군 운전병이 키득거리자 오손 웰스 장군이 smirk 두운법으로 야단을 친다.

 

“What are you looking at? Get back in the car, you smirking slut.”

(뭘 봐? 어서 차로 돌아가, 이 엉큼한 갈보 같으니라고.)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는 자만심이 가득한 케네드 브래노가 독자에게 답장을 쓰며 F로 두운법을 멋지게 구사한 quotation을 주인공에게 전해준다.

 

“Fame is a fickled friend, Harry.” (명성이란 변덕이 심한 친구라네, 해리.)

 

두운법이 퍽 어려운 기교처럼 여겨지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종”을 뜻하는 3D 즉 “dirty, difficult, dangerous(더럽고, 힘들고, 위험한)”이라는 표현도 훌륭한 두운법이다. ‘무적의 무법자’나 ‘이름난 이다도시’라는 식의 표현도 우리말 두운의 좋은 예가 되겠다.

 

하지만 번역을 할 때 이런 언어의 묘기가 그 빛을 잃는 경우가 많다.

 

MBC-TV에서 ‘정신병동의 뉴먼 대위’를 방영했을 때의 일이다. 많은 부하들을 출격시켜 죽게 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에 걸린 에디 앨버트 대령이 상담을 해주려고 찾아온 군의관 그레고리 펙 대위에게 두운법이 요란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I’m bored with being beleaguered by brainless benighted blockheads, and I’m bored with B’s.” (난 속이 비고 미개한 돌대가리들에게 시달리는 데도 넌더리가 났고, B에도 진저리가 났어.)

 

이 문장에서는 14개 단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개 단어가 B로 시작되었으니 B에 대해서 넌더리가 날만도 하다. 이런 식으로 쉴 새 없이 두운법을 구사하는 앨버트 대령의 대사를 우리말 ㅂ(B)으로 두운법을 살려 제대로 번역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대령의 말장난에 펙 대위도 같은 화법으로 응수한다.

 

“I didn’t come here for the purpose of providing a patronizing patient with a platterful of private pleasure.”

 

이 대사는 “잘난 체하는 환자에게 개인적인 즐거움을 한 사발 갖다 바치기 위해서 찾아온 건 아닙니다”라는 정도의 뜻이 되겠다. platterful은 ‘큰접시로 하나 가득’이라는 의미다. MBC에서는 이 말을 “하지만 허풍에 들뜬 환자의 흰소리나 들어주자고 헐레벌떡 달려온 건 아니니까요”라고 옮겼다. P로 시작하는 7개의 영어 단어 대신 ㅎ로 시작하는 우리말 단어들을 바꿔넣으며 애를 쓴 흔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대령은 신이 나서 소리친다. “Bravo! Seven P’s!”

이것도 MBC에서는 “히읗 소리가 다섯 개나 들어갔어”라고 멋지게 돌려막았다.

 

 

영화속의 절묘한 걸작 두운들

 

두운법은 영화에 나온 예문들만 가지고도 책을 한 권 따로 엮고 남을 만큼 흔하게 동원되는 기법이므로, 복습 삼아 조금만 더 익혀보기로 하자.

 

‘위대한 희극왕 채플린(The Funniest Man in the World)’을 보면 채플린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춤추면서 싸우는 묘기를 부리는 장면에 “comic ballet on wheels(바퀴가 달린 웃기는 발레)”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on wheels(바퀴가 달린)는 물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하는”을 뜻한다.

 

그리고 “the ballet of blows begins(주먹질의 발레가 시작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정관사와 전치사를 제외한 모든 단어가 b로 시작되는 두운이다. 이런 식으로 두운법은 책의 제목이나 광고문안 그리고 신문기사와 사진설명(caption)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데,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비중이 무거운 명사, 동사, 형용사 그리고 부사의 순으로 머리글자를 우선적으로 맞추는 것이 보통이다.

 

좀더 지나면 채플린의 무성영화 제목도 소개되는데, Dough and Dynamite다. 이것은 우리말 번역 제목도 “돈과 다이너마이트”여서 두 단어가 모두 ㄷ(d)으로 시작되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우리말에서는 자음뿐 아니라 첫 글자 전체가 같아야 제대로 된 두운을 구성한다.

 

‘백악관 탈출(The President’s Analyst)’에서는 대통령 전속의(專屬醫) 윌 기어에게 ‘SS’가 무엇의 약자냐고 제임스 코번이 묻자 정보부 간부가 “Security and safety”라고 설명한다. “안보와 안전”이라는 뜻인데, 이런 경우에는 절묘하게도 우리말 번역에서 두운을 살려낼 수가 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에서 영어로 발간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눈여겨보면 기사의 제목에서 두운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영화에 등장한 신문기사의 제목 가운데 절묘한 두운의 최고 걸작은 성탄절 고전영화인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 1947년 판)’에 등장하지 않나 싶다.

 

자기가 산타클로스라고 주장하는 노인 에드먼드 궨이 정신이상자로 몰려 재판소로 끌려가게 되자 이런 신문기사의 제목이 화면에 소개된다.

 

Kris Kringle Krazy?

Kourt Kase Koming

“Kalamity!” Kry Kiddies

 

한 단어도 빼놓지 않고 모두 k로 시작되는 이 제목에서 크리스 크링글(Kris Kringle)은 “아기 예수”를 뜻하는 단어 Christkindle(in)로부터 유래하는 산타클로스의 독일 이름(Kriss K.)의 영어식 표기다. 위 제목에서는 K로 두운이 맞는 주인공의 이름 크리스 크링글의 KK에 맞춰 c로 시작되는 다른 단어들의 철자도 닥치는 대로 모두 c와 발음이 같은 k로 바꿔 놓았는데, 장난을 치지 않고 올바르게 쓰면 이런 말이다.

 

“Kris Kringle Crazy?(크리스 크링글이 미쳤다고?)

Court Case Coming(법정에서 가려질 문제)

‘Calamity!’ Cry Kiddies(‘큰일났다!’고 아이들 아우성).”

 

calamity는 ‘재앙’이라는 말이고, kiddies는 kid(아이)의 구어체 kiddie(또는 kiddy)를 복수형으로 만든 단어다. 법정에서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이 나면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기막힌 재앙이 없겠다. 마지막 문장에서 “아이들 아우성”은 물론 미약하나마 우리말 번역에서도 두운법을 살려놓은 꼴이다.

 

필자가 대표적인 멍청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는 ‘특공 그린 베레(The Green Berets)’에서까지도 두운의 묘기는 나타난다. 전사한 영웅의 이름을 붙여놓은 갖가지 시설물에 과다한 관심을 보이는 프로보 병장은 자신이 죽고 나면 어느 건물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이름을 붙여줬으면 좋겠다고 존 웨인 중령에게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프로보가 전사하자 화장실에 이런 간판이 나붙는다.

 

Provo Privy

Named in Honor of Albert C. Provo, Sergeant Infantry

GREEN BERET.

“그린 베레 보병 앨버트 C. 프로보 병장을 기리기 위해 프로보 화장실이라고 명명했음”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존 웨인의 대사를 텔레비전에서는 “게다가 운이 맞네”라고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영어를 잘 모르는 일반 관객이라면 도대체 “운이 맞는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를 못한다. 번역문 어디를 찾아봐도 시적인 ‘운’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두운도 광범위한 의미에서 ‘운(韻, rhyme, rime)’에 속하기는 하지만, 영어의 운은 머리를 맞추는 두운(頭韻)이 아니라 꼬리가 같거나 유사한 미운(尾韻)을 뜻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영어선생님이 즐겨 인용하는 “East or West, Home Is Best(어디를 가 봐도 자기집만한 곳은 없다)”에서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번역대사에서는 Provo Privy의 두운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화장실, 변소 그리고 뒷간

 

첫 회의 모두에서 필자는 영어공부에서 어휘력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바가 있는데, 회화와 발음 위주로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난 주일 ‘특공 그린 베레(The Green Berets)’에 등장했던 Provo Privy(프로보 화장실)라는 두운의 묘기 또한 어휘력이 풍부하지 않고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이라면 고등학교는 물론이요, 하다못해 농촌의 ‘푸세식’ 뒷간 문짝에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W.C.라고 써놓고는 했었다. 어느 스님은 식당에 들렀다가 해우소(解憂所) 문짝에 써놓은 이런 글귀를 보았다고 한다. “다블유시(多不有時).” 물론 ‘W.C.’를 한자로 기발하게 표기한 솜씨다.

 

비슷한 여러 영어 단어에 대해서 우리말 단어를 달랑 하나만 알아두고는 아무데서나 그 단어를 들이대는 이런 습성은 정말로 위험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우리말에서 ‘화장실’과 ‘변소’와 ‘뒷간’이 저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듯이, 영어도 호텔의 화장실과 가정집의 변소, 그리고 농가의 뒷간을 가리키는 말이 저마다 다르니까, 잘 가려서 써야 한다. 위에서 지적한 W.C.만 해도 water closet(수세식 화장실)이라는 뜻이어서, ‘화장지’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생겨나기도 전, 옥수숫대나 새끼줄로 밑을 닦던 시절의 시골 뒷간에 그런 간판을 내거는 짓은 과장광고나 사기행위에 해당되겠다.

 

참고로 ‘수세식(water closet)’은 flush toilet이라는 표현을 한층 더 널리 쓰며, ‘변소’라는 뜻의 고상한 단어 lavatory는 수세식 변기에 손을 씻는 시설까지 갖춘 위생적인 곳이고, 같은 라틴어 어원에서 나온 latrine은 야전이나 공장 또는 학교 따위의 공공시설에 딸린 ‘화장실’이며, 가정집의 화장실은 완곡어법으로 washroom(세수실)이나 bathroom(욕실)이라고 한다. 호텔이나 역 또는 은행처럼 비교적 격식을 갖추려는 시설에서는 rest room(휴게소)이라고 딴전을 부리거나, 남녀를 구분하여 men’s room(남자들의 방)과 ladies’ room(여인들의 방) 또는 그냥 men이나 women이라고 문짝에 적어 놓는다. 공중화장실은 communal lavatory 또는 public comfort station(공공 해우소)이라고 점잔을 뺀다. 속된 말로는 john이나 loo 또는 convenience나 can이라고 한다. 선박이나 군함의 화장실은 head 또는 join이라 하고, 옥외에 따로 짓는 뒷간은 outhouse(바깥채)나 backhouse(뒤채) 또는 privy(은밀한 곳)라고 한다. 프로보 병장의 이름과 두운이 맞는 뒷간 하나를 영어로 찾아내는 데만 해도 이 정도로 거창한 어휘력이 필요해진다.

 

그러면 이제는 이런 기법이 실제 대화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 몇 가지 다양한 예를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두운은 제목과 광고문안뿐 아니라 속담이나 명언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인용문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고원의 방랑자(High Plains Drifter)’에서는 무책임한 겁쟁이 보안관이 목욕을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찾아와서 눈치를 보며 이런 말로 화해를 청한다.

 

“Forgive and forget―that’s our motto.”

“용서하고 잊어버리자 ― 그게 우리 좌우명이죠”라는 이 말에서 forgive and forget은 f로 시작하는 두운법이다.

 

‘알라모(The Alamo)’에서도 멕시코군과의 전투를 끝내고 나면 로렌스 하비 중령과 결투를 하겠다고 벼르는 리처드 위드막에게 존 웨인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You are not much for this forgive-and-forget business, are you, Jim?”

(자넨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일엔 별로 소질이 없겠지, 짐?)

 

이 문장에서 be much for는 “크게 관심을 갖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this는 “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거” 정도로 슬그머니 둘러댈 때 잘 쓰는 지시대명사다.

 

‘살인광시대(Monsieur Verdoux)’의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여자들을 등쳐먹는 푸른수염(Bluebeard)과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원제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푸르스름한’을 뜻하는 verdaud(베르도)와 비슷한 Verdoux(베르두)다. 그는 돈을 노리고 살해하려다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오히려 도와준 여자를 나중에 재회하는데, 군납업자와 결혼하여 부자가 된 그녀는 그의 흉악한 속셈을 알지 못하고 이런 소리를 한다.

 

“It’s an old story ― rags to riches. My luck changed after I met you.”

(예로부터 그런 말 있잖아요 ― 고진감래라고. 당신을 만난 다음에 내 운명이 바뀐 거죠.)

 

두운법을 구사한 from rags to riches는 “미국의 신화(American Dream)”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이므로 꼭 알아둬야 한다. 본디 의미는 “누더기(rag) 신세에서 떼부자(rich)로”라는

 

정도가 되겠는데, 때로는 “대박을 잡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생하여 자수성가를 이루다”라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from rags to riches만큼 대표적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개념은 e pluribus unum(from many, one)이라는 라틴어 표현이다. “여럿에서 하나” 즉 “여러 민족이 함께 이룩한 하나의 집단”을 뜻한다. 자주 쓰이는 표어(motto)니까 꼭 알아둬야 한다.

 

 

‘버리지도 먹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

 

두운법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일상에서 활용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평상시에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두운법이 애용되는 실용적인 현장으로서는 공연이나 행사가 벌어질 때 인물이나 상품 따위를 소개하고 선전하는 상황을 손꼽겠다. 그러니까 혹시 어떤 행사에서 영어로 사회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두운을 곁들인 이런 소개 방법을 잘 알아두었다가 써먹기 바란다.

 

레니(Lenny)에서는 야간업소의 진행자가 스트립쇼를 하는 여자(stripteaser=“옷을 벗어가며 약을 올리는 사람”이라는 뜻) 발레리 페린을 이렇게 소개한다.

 

“Here‘s the moment that you all have been waiting for, so without further ado, may we present Hot Honey Harlowe.”(여러분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되었으니, 더 이상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하고, 화끈한 아가씨 할로우를 소개하겠습니다.)

 

ado(야단법석, 소동, 노심초사)는 본디 중세영어 중에서도 북부 방언이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의 제목에 들어간 덕택에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much ado about nothing을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두고 벌이는 많은 소동”인데, “공연한 법석”의 의미로 굳어버린 표현이니까 그냥 한 덩어리로 알아두면 편하다.

 

Hot Honey Harlowe(화끈한 아가씨 할로우)는 H로 두운을 이루는데, 하워드 휴스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비행사(The Aviator)」를 보면 시사회장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도 그와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Sultry Southern tigress Ava Gardner dazzles the room tonight.”(오늘밤에는 뜨거운 남부의 맹수 에이바 가드너가 이곳을 빛내줍니다.)

 

여기서 sultry southern tigress는 “암호랑이처럼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남부 출신의 여배우” 에이바 가드너를 지칭한다. 그리고 “화끈한”이라는 표현을 기자는 sultry(후끈한)라는 단어를 hot 대신 썼다. 물론 뒤에 나오는 단어 southern과 s로 두음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짚고 지나가자. 요즈음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중요한 문제”나 “어려운 난관”이라는 뜻으로 “뜨거운 감자”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쓰는 경우가 퍽 많다. 영어에서는 본디 흔한 표현인 hot potato에는 보다 절묘한 뜻이 담겼다.

 

프랭크 캐프라의 명작 「존 도우를 찾아서(Meet John Doe)」에서 존 도우(개리 쿠퍼)라는 영웅적인 가공인물을 만들었다가 오히려 자신에게 위협이 되자 서둘러 그를 제거하려는 편집국장에게 여기자 바바라 스탠윅이 따진다.

 

“Not me. I would make a deal with him. When you get hold of this kind of a darling baby, you don’t drop it like a hot potato.”(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하고 타협을 해야죠. 이 정도로 귀여운 아기(=소중한 보물)가 생겼다면, 뜨거운 감자처럼 던져버려서는 안되죠.)

 

“뜨거운 감자”에서는 drop(버리다, 포기하다)이 핵심적인 개념이다. 배고픈 김에 큼직한 감자를 집어들기는 했는데, 그만 너무 뜨거워서 “앗 뜨거, 앗 뜨거!” 소리만 지르며 깨물어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좀 왜설적인 표현으로 “빼지도 못하고 박지도 못하는” 처지, 그것이 ‘뜨거운 감자’다. 그러니까 요즈음 사회문제가 된 아동성범죄나 정치인들의 부도덕성 같은 “민감한 문제(sensitive issue)”는 뜨거운 감자하고는 거리가 멀다. 영어공부에서는 이처럼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설익은 실력을 자꾸만 써먹으려고 하는 과시욕이 때로는 심각한 결함으로 작용한다.

 

성적인 암시가 담긴 두운법은 반항적 청춘영화「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에도 등장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해적 방송의 디스크자키인 주인공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별명이 Hard Harry인데, “단단한 놈(잔뜩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함)”이라는 뜻이다. 이 애칭도 두운을 갖췄으며, HH가 다니는 학교의 이름은 Hubert H. Humphrey High(휴벗 H 험프리 고등학교), 즉 HHHH다.

 

각종 공연을 선전하는 간판에도 웬만하면 두운이 모습을 보인다. ‘수중발레(water ballet)’라는 새로운 분야의 영화에서 전무후무한 존재인 에스터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영화 「백만불의 인어(Million Dollar Mermaid)」에서 공연장에 내건 광고문도 그렇다.

 

Wonder Woman of the Water (물속의 경이적인 여인)

 

그리고 이 영화에 소개하는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은 Fight to Finish다. “끝까지 싸우다” 또는 “끝까지 분투하다”라는 뜻이다. “Fight to the End”보다는 두운을 썼기 때문에 한 뼘가량 더 고상해 보이는 제목이다. 막강한 ‘군사력(軍事力)’을 military strength라 하지 않고 military might라고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 계산이 적용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두운

 

아직도 인종차별이 엄청나게 심했던 1950년대 후반 할리우드에서, 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제한적인 기간 동안이나마 대단한 활약을 벌였던 흑인 여배우의 생애를 그린 ‘도로티 댄드릿지의 영광과 좌절(Introducing Dorothy Dandridge)’을 보면, 댄드릿지가 가수로 활동하던 야간업소의 사회자가 그녀를 이렇게 소개한다.

 

“Ladies and gentleman, the Mocambo welcomes back the delicious, the divine, the delightful Dorothy Dandridge.”(신사숙녀 여러분, 모캄보 클럽에서는 맛지고, 멋지고, 애교 만점인 도로티 댄드릿지를 무대에 다시 모시기로 했습니다.)

 

인명이나 상품명에 이미 두운이 들어간 경우에는 여기에서처럼 그 두운을 고유명사의 앞에 나오는 모든 형용사에서 살리는 묘기 또한 자주 동원되는 기법이다. 이 예문에 나오는 delicious는 여성을 표현할 때 ‘유쾌한’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성감(性感)을 자극하는’이라는 속어적 표현으로 쓰였다. 우리말의 저속한 표현인 “그 여자 참 맛좋겠다”와 일맥이 상통한다.

 

divine(신성한, 성스러운)은 한때 여성에 대한 찬사로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입에 올리는 촌스러운 과장법으로 전락했다. “하나님 맙소사!” 정도의 의미가 담긴 표현 “Holy mackerel(거룩한 정어리)!”에서 holy만큼이나 타락한 어휘다. 정어리가 거룩해 봤자 얼마나 거룩하겠는가?

 

위 영화의 원제에 나오는 introducing이라는 말은 이 영화에서 처음 소개하는 ‘신인(新人)’이라는 뜻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 자막으로 자주 나타나는 표현이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어떤 모임에서 사회자가 소개할 때, 또는 정치적인 집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을 과장하여 찬양하는 경우에 자주 사용하는 두운법으로는 one and only라는 표현이 있다.

 

‘유혹(Young at Heart, MBC)’에는 음악가 집안이 등장하는데, 세 딸(도리스 데이, 에텔 배리모어, 도로티 멀론)의 연주를 지휘하고 난 아버지가 흐뭇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하더라도 우린 오직 하나여야 해.”

 

텔레비전에서 덧녹음(dubbing)을 해놓아 영어 대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밑줄 친 부분은 one and only를 그렇게 번역해 놓았으리라는 짐작이다. 그렇다면 오역이다. one and only도 much ado about nothing처럼 덩어리를 이루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34번가의 기적’에서 ‘산타클로스’를 법정에 세운 검사가 변호사 존 페인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이런 요구를 한다.

 

“I request Mr. Gailey to submit the authoritative proof that Mr. Kringle is the one and only Santa Claus.”(본인은 게일리씨에게 크링글씨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산타클로스임을 증명하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one and only는 한 덩어리가 되어 ‘유일하게 하나뿐인(唯一無二)’ ‘독보적인’ ‘전무후무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따따따 따따따 나팔붑니다”(‘어린 음악대’)에서 “동네 안에 제일 가지요”가 바로 one and only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유혹’에서 아버지 지휘자가 “오직 하나”라고 한 말은 “제일 가는 악단”이라고 해야 옳겠다.

 

‘릴리의 사랑(Lily in Love)’에는 타임스 스퀘어에 내걸린 극장 간판에서 ‘My one and only’라는 제목이 보인다. 이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당신뿐”이라는 뜻이다.

 

전기영화(biopic=biographical picture의 약자) ‘불멸의 제임스 딘(Forever James Dean)’에서는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서 단역으로 공연했던 여배우 스테피 시드니가 나와서 제임스 딘을 이렇게 회고한다.

 

“I mean, he was one of a kind.”(내 얘긴, 그가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뜻이죠.)

one of a kind는 “하나만으로 한 가지 종류를 이루는 유일한 존재”의 개념을 담아서, one and only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숫자가 늘어나 two of a kind가 되면 의미도 조금 달라진다. ‘옥토푸시(Octopussy)’에서 제임스 본드가 옥토푸시한테 키스를 한 다음 “You are right. We are two of a kind”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당신 말이 맞아. 우린 한 통속이야”라는 뜻으로서, two of a kind는 두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냐(또는 한 통속이냐)”는 소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포커를 하면서 똑같은 패가 석 장 들어오면 대부분 triple(삼겹)이라고 말한다. 옳지 않은 표현이니까 쓰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three cards라고도 하지만, 정식 명칭은 three of a kind(한 가지 종류가 셋)다.

 

청춘영화 ‘유혹’에서는 당시만 해도 신인가수였던 프랭크 시내트라가 도리스 데이와 함께 감미로운 노래를 여러 곡 부르는데, 노랫말은 대부분 시어로 되어 있어서 두운을 비롯한 갖가지 문학적 기법을 널리 구사한다. 다음 주일에는 노랫말에서 두운이 맡는 기능을 설명하겠다.

 

 

 

카이사르와 스핑크스는 ‘W’했다

 

18년 동안이나 공동작업을 했던 미국의 작사가 앨런 제이 러너와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리츠 뢰베는 ‘지지(Gigi)’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는데, 그들의 첫 성공작이었던 환상적 음악극 ‘브리가둔(Brigadoon)’의 도입부에 해설을 겸해 소개하는 노래를 들어보면 왜 그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Brigadoon blooming under sable skies, There my heart forever lies.”

(검은 하늘 밑에서 꽃피는 브리가둔 내 마음은 영원히 그곳에 가 있노라.)

 

이 노래에서는 첫 행에 Brigadoon과 blooming(만발하는) 그리고 sable skies 이렇게 두 종류의 두음이 나란히 나온다. sable은 ‘흑색’과 ‘상복’을 뜻하는 시어(詩語)다. ‘흑색 하늘’이라면 쉬운 말로 ‘밤하늘(night sky)’이겠는데, 굳이 문어(文語)적인 표현을 쓰려면 night는 nocturnal, 그리고 sky는 firmament라고도 한다. 하지만 skies의 s와 두운을 맞추기 위해 그런 단어를 선택했다. 윤기가 흐르는 sable(검은담비)의 털로 뒤덮인 밤하늘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그뿐이 아니라 첫 행의 마지막 단어 skies와 2행의 마지막 단어 lies는 ies로 운(rime)까지 맞춰 couplet(2행 聯句)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에서 이런 주옥 같은 시어를 함부로 쓰면 다른 단어들과 궁합이 안 맞아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워질 때가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집으로 간다”는 말 대신에 “주거지로 행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러너와 뢰베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틴 2세가 공동작업한 고전 뮤지컬 ‘오클라호마(Oklahoma!)’에 등장하는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남자라고만 하면 상대가 누구이건 가리지 않고 사족을 못 쓰며 마구 달려든다. 그리고 그레이엄은 그 이유를 셜리 존스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I like it so much when a fella talks pretty to me, I get all shaky from horn to hoof.”(난 남자가 예쁜 말만 하면 환장을 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덜덜 떨린다니까.)

 

고전 작품일수록 영화는 화법이 문학적이고, 그래서 예술적인 두운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사람들은 흔히 from head to toe(머리끝부터 발끝까지)라고 말하지만, 해머스틴은 일부러 두운을 찾아내어 from horn to hoof(뿔에서부터 발굽까지)라고 돌려 붙인다.

 

등장인물이 작가인 경우에도 영화의 대사를 들어보면 성격 구성(characterization)을 위해 문학적인 말투를 여기저기 삽입하게 마련이다. ‘고독한 곳에서(In a Lonely Place)’를 보면 경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준 앞집의 무명 여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에게 영화작가 험프리 보거트가 이런 두운을 쓴다.

 

“When you first walked into the police station, I said to myself: There she is. The one that is different. She‘s not coy or cute or corny. She’s a good guy. I‘m glad she’s on my side.”(당신이 처음 경찰서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난 이런 생각을 했지. 저 여자 좀 보라고. 뭔가 달라. 애교를 떨거나 귀엽거나 촌스러운 구석이 없잖아. 좋은 녀석이야. 저런 여자가 내 편이라니 고맙기도 하지.)

   

두운으로 뽑아낸 coy, cute, corny는 일반적인 여성을 조금쯤은 비하하여 유형화한 표현으로서, “여성의 3C”라고 해도 되겠다. coy는 내숭을 담은 교태를 의미하고, cute는 ‘귀여운’이다. 본디 여성을 묘사하던 이 형용사 cute는 요즈음 남성에게도 많이 적용한다. 위 예문에서 ‘남자’를 뜻하는 guy가 여성에게도 쓰이게 된 것과 똑같은 unisex(성적 무차별) 현상의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현상은 20세기 중반 여성해방운동에서 비롯되었다.

 

corny는 할리우드 코미디의 한 분야를 지칭하는 cornball(촌뜨기, 고리타분하고 감상적인 사람)과도 같은 의미다. ‘싸구려’나 ‘진부한’ 생각이나 행동 따위에도 이 표현을 쓴다. corn(옥수수)을 시골사람에게 비유한 화법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방인을 ‘감자’에 비유했던 편견과 같은 맥이다.

 

생일선물로 독일로부터 폭탄을 날려 보내줘서 고맙다고 히틀러에게 공개편지를 썼을 정도로 장난기가 심했던 에이레의 극작가 조지 버너드 쇼의 1899년 희곡을 영화로 만든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에는 시에 가까울 정도로 두운을 한껏 활용한 대사도 등장한다. 카이사르(클로드 레인스)가 어둠 속에서 스핑크스에게 하는 말이다. “I wander, and you sit still. I conquer and you endure. I walk and wander, you watch and wait.”(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너는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구나. 나는 정복하고, 너는 인내한다. 나는 걷고 돌아다니지만, 너는 구경하며 기다리기만 한다.)

 

세 번째 문장에서 네 개의 w가 두운을 맞추는가 하면, 세 문장이 모두 대비법의 균형을 이루고, 두 번째 문장에서는 conquer(정복하다)와 endure(인내하다)가 운까지 맞는다. 역시 대가다운 솜씨다.

 

 

같은 개념 중복하는 ‘꽁치빵치 두운법’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이 원작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에서 아셴바하 교수(더크 보가드)에게 친구가 음악의 화음(chord)에 대해서 예술적으로 설명한다.

 

“You have before you an entire series of mathematical combinations, unforeseen and inexhaustible. A paradise of double meanings in which you, more than anyone else, romp and roll about like a calf in clover.”(자네 앞에서는 예견하지 못했던 무한정의 수학적 조합의 총체가 통째로 전개되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되는 이중적인 의미로 넘치는 이 낙원에서 자네는 토끼풀 들판의 송아지처럼 어느 누구보다도 더 즐겁게 뛰놀겠고.)

 

참으로 난해한 관념적 설명이기는 하지만, 밑줄 친 부분에서 romp는 장난꾸러기나 말괄량이 청소년이 시끄럽게 ‘뛰놀다’라는 의미고, roll은 ‘뒹굴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 두운적 표현은 한 단어처럼 굳어버렸기 때문에 쓸 때도 늘 함께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be (또는 live) in the clover는 “호화롭게 산다”는 뜻의 비유(比喩)다. “제철을 만나다”라는 우리말 표현도 잘 어울릴 듯 싶어서, 위 예문의 경우에는 “제 세상을 만난 송아지”라고 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말로 이해하거나 번역하는 방법에서는 이렇게 자신만의 색다른 표현을 만들어내는 실험도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로 글쓰기의 비유법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두 가지 종류는 metaphor(隱喩, 暗喩)와 simile(直喩, 明喩·‘시밀리’라고 발음)다. metaphor는 ‘왕과 나(The King and I)’에서 율 브리너와 춤추며 데보라 카가 부르는 노래에서 “Shall we dance on a bright cloud of music?”(우리 눈부신 음악의 구름 위에서 춤출까요?)라는 대목에서처럼 A와 B를 은근하게 비유하는 기법이고, simile는 첫 예문에서처럼 like(~와 같이)나 as(~하듯이) 따위의 연결어를 넣는 방법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최희준의 노래에서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직접 비유한 대목은 metaphor고, 이것을 “나그네길 같은 인생”이라고 약간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물러나서 표현하면 simile가 된다.

 

다시 두운 얘기로 돌아가자면, ‘쿤둔(Kundun)’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를 침공한 중국군을 피해 망명길에 오르기를 거부하며 “My first and foremost duty is to protect my people. I am going back”(나에게는 나의 백성을 보호하는 일이 최우선의 의무다. 난 돌아가겠다)이라고 말하는데, 두운이 강조 효과를 내는 first and foremost라는 표현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romp and roll처럼 한 단어로 기능한다.

 

romp and roll이나 first and foremost. 그리고 그보다 앞서 살펴본 one and only와 forgive and forget은 and를 가운데 넣고 두운으로 균형을 잡은 흔한 표현으로서, 그 모양이 꼭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꽁치빵치(seesaw)를 하는 아이들처럼 다정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first and foremost에서처럼, 널뛰기 표현은 같은 개념을 중복시키며 점증시켜 나름대로의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foremost는 fore(앞)에서도 most(가장) 앞이어서, first라는 말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한 단어처럼 굳어버린 흔한 꽁치빵치 표현 중에는 safe and sound(아무 탈 없이, 무사하게)도 활약이 크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에서는 독일군을 피해 낡아빠진 배로 마을을 벗어나며 험프리 보가트가 캐서린 헵번을 안심시킨다.

 

“So far so good. Here we are safe and sound, you might say.”(여기까지는 꽤 좋았어요. 여기서라면 안전하니까 안심이 된다고 하겠죠.)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에서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과속운전을 하다가 경찰을 따돌리고 숲길로 들어가 숨은 다음 겁을 내는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Oh, safe and sound”라며 안심시킨다.

 

safe and sound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in one piece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사전들을 찾아보면 이것을 “이은 데가 없이”라고 풀이했는데, 실제 문장에서 이 표현이 그런 의미로 쓰인 예를 필자는 아직 본 적이 없다.

 

in one piece는 위험한 모험을 하러 길을 나서거나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말로서, 퍽 처참한 의미가 담겼다. return in one piece라고 하면 지뢰나 포탄 때문에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여러 토막으로 귀국하지 말고, 상처 하나 없이 몸뚱어리 “한 덩어리가 통째로 말짱하게” 돌아오라는 말이다.

 

두운법은 일상적인 회화에서 재치를 부려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도 자주 동원된다. ‘브로드캐스트 뉴스(Broadcast News)’를 보면 민완기자 앨버트 브룩스가 요령에만 익숙한 앵커맨 윌리엄 허트를 파티에서 만나 말솜씨를 부린다.

 

“Pretty peppy party, isn‘t it pal?”(무척 흥겨운 파티 아닌가, 이 친구야.)

peppy는 peptic과 마찬가지로 pep(원기·기력)이 새끼를 친 단어다. 여기에서의 ‘원기’는 지구력이나 근력하고는 좀 거리가 멀어서, 일시적으로 팍 튀는 그런 힘을 뜻한다. 회사 직원들이 절망감에 빠져 있거나 할 때 삼겹살이라도 사며 사장이 “기운내라”고 한마디 격려의 말을 한다면, 그것은 pep talk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Pepsi Cola의 이름이 무엇을 암시하는지도 쉽게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한다.

 

 

세 치 혀 칼날처럼 휘두르는 ‘언어 결투’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등 이른바 ‘쥐떼(Rat Pack)’라는 유쾌한 별명으로 한때 할리우드에 군림했던 인기 배우들을 총망라한 ‘오션과 11인의 전우(Ocean’s Eleven, 1960년)’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치는 걸작 영화였다. 그리고 이 작품을 새로 만든 ‘오션스 일레븐’은 원작 못지않게 화려한 출연진뿐 아니라 불꽃 튀는 대화가 돋보인다.

 

감옥에 간 사이에 변심하고 앤디 가르샤의 애인이 되어버린 아내 줄리아 로버츠를 식당에서 만난 조지 클루니가 로버츠에게 아주 고상한 화법으로 시비를 건다.

 

“I always confuse Monet and Manet. Which one married his mistress?”

(난 모네와 마네가 늘 헷갈려. 숨겨두었던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 누구지?)

 

정절을 지키지 못한 아내 로버츠를 은근히 힐난하는 의미로 클루니는 한때 즐겁게 데리고 놀아나던 정부(情婦)와 끝내 결혼해버린 화가를 느닷없이 입에 올려 “당신도 그런 부류의 여자”라고 슬그머니 견준다.

 

눈치가 9단인 로버츠는 “Monet”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그냥 넘어가려 하지만 클루니는 “지저분한 인간”이라는 주제를 계속 물고 늘어진다.

 

“And Manet had syphilis.”(그리고 마네라는 친구는 매독에 걸렸고.)

 

참다 못해 로버츠가 침착하게 한 마디 한다.

 

“They also painted occasionally.”(그 사람들 가끔 그림도 그렸지.)

 

로버츠가 이 얘기를 한 까닭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당신처럼 인간의 지저분한 면만 보려고 하는 남자라면 숨겨놓은 여자와 매독에나 관심이 쏠리겠지만, 나처럼 고상한 여자는 화가라고 하면 예술부터 생각하지”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의 공박을 재치있게 넘기거나 몰상식한 상대를 고상한 말로 은근히 놀리는 경우에 quip이라는 표현이 제격으로 어울린다. 이른바 “도수가 높은 화법”이기 때문에 감각이 무딘 사람은 클루니와 로버츠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행간을 읽어내기가 힘들겠고, 그래서 화법이 세련되지 못한 사람은 누가 비꼬아 놀리면 그 반어적(反語的)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해서 모욕을 당하고도 바보처럼 히죽거리며 웃기가 십상이다.

 

quip이 어떤 화법인지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같은 영화에 나오는 다음 대화를 살펴보기 바란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인 모네와 마네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로버츠는 어느새 슬그머니 열을 받고, 그래서 노골적인 공격을 감행한다.

“You’re a thief and a liar.”(당신은 도둑에 거짓말쟁이잖아.)

 

결혼할 때 자신의 ‘직업’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던 클루니가 수세를 취한다.

 

“I lied about being a thief. I don‘t do that any more.”

(도둑이라는 사실을 내가 속이기는 했지. 요즈음에는 그런짓 안 해.)

 

로버츠가 묻는다. “Steal?”(도둑질을 안 한다고?)

 

클루니가 당장 보복의 반격을 한다. “Lie.”(거짓말을 안 한다고.)

 

도둑질은 그가 오랫동안 열심히 솜씨를 갈고 닦아 와서, 퍽 자랑스러워 하는 멋진 직업이기 때문에 클루니로서는 포기할 수가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로버츠에게 접근하는 까닭은 그녀의 애정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지노를 털려는 계획에 그녀를 끌어넣으려는 욕심에서다. 하지만 “거짓말은 안 한다”는 말은 이제 그가 도둑이라는 것은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어서 거짓말을 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클루니는 무엇 하나 달라지지도 않았고, 물러서려는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에 줄리아 로버츠는 조지 클루니에게 다시 얄미운 반격을 감행한다.

 

“You know what your problem is? You’ve met too many people like you. I’m with Terry now.”(당신은 뭐가 문제인지 알아? 당신은 자신과 똑같은 부류하고만 너무 많이 어울려. 난 이젠 테리가 좋아졌어.)

 

앤디 가르샤(테리)에게 아내를 빼앗긴 클루니가 따진다.

 

“Does he make you laugh?”(그 친구 [나처럼 당신을] 잘 웃겨?)

 

로버츠가 quip한다. “He doesn’t make me cry.”([당신처럼 나를] 울리지는 않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다수가 quip이라는 단어를 난생 처음 구경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전을 찾아봤다면, 이 정도의 설명이 나온다 ― 명사의 경우 “경구, 명언; 빈정거리는 말, 신랄한 말; 회피의 말, 둔사(遁辭), 핑계; 기묘한 것”, 그리고 동사의 경우 “빈정거리다, 비꼬다, 놀리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여기에서처럼 예문을 통해서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전의 ‘풀이’에서는 낱단어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구체적인 모습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세 가지 상황에서 보면, 두 인물이 신랄하고 긴장된 분위기에서 흥미진진하게 언어의 공방전을 전개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세 치의 혀로 칼날처럼 찔러대는 결투를 quip이라고 한다.

 

 

재치와 재미가 묻어나는 말 솜씨

 

quip을 하는 사람, 즉 quipster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면 “잘 비꼬는 사람” 또는 “기발한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알 듯 모를 듯, 사전에 나오는 설명들은 이렇게 별로 크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quipster는 joker나 humorist, 또는 satirist하고 어떻게 다를까? satirist는 신랄한 ‘풍자가’요, humorist(해학가)라면 웃기는 ‘만담가’ 계열이어서 서로 활동 분야의 성격이 다르고, joker는 그냥 장난삼아 ‘농담하는 사람’이다. 농담을 행동으로 옮겨 ‘장난을 치는 사람’은 practical joker 또는 prankster라고 한다. one-liner(한 줄짜리 재담)를 흔히 gag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comedian이라는 말을 gagman이라고 대체하여 왕성하게 잘못 사용하는 중이다. jest(익살)는 joke나 gag와 사촌간이며, jester는 jest를 부리는 ‘익살꾼’이지만, 중세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집에 데리고 살던 전속 연예인 clown(어릿광대, 까불이)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quipster에 대한 정의는 ‘007은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에 나온다. 긴 여행 끝에 방금 도착해서 잔뜩 지친 신무기 제작자가 귀찮게 농담을 걸어오는 007에게 짜증을 부린다. “I’m in no mood for your juvenile quips.”(난 자네의 어린애 같은 말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전혀 아냐.)

 

능글맞게 슬그머니 약을 올리는 숀 코너리의 ‘말장난’에서 나타나는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면 quip의 속성이 무엇인지 웬만큼 이해가 가리라는 생각이다. 예문에 나오는 juvenile(어린애 같은)은 childish보다 연령층이 조금 높다. 고무줄 끊어버리기나 ‘아이스께끼’는 childish prank에 속하지만 juvenile delinquency는 “청소년의 범죄(나 비행)”를 뜻한다. ‘청소년’은 ‘어린애’보다 나이가 많다.

 

juvenile delinquency는 대단히 어려워 보이는 말이지만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니까 잘 알아두기 바란다. 청소년 비행을 자주 저지르다가 더 나이를 먹으면 강력계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기 쉬운데, 우리나라 경찰에서는 ‘강력계’를 serious crime이라는 초보영어로 흔히 표현한다. 진짜 영어로는 homicide(살인계)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람들이 quip하는 솜씨를 두루 살펴보기로 하자.

 

지그문트 롬버그의 오페레타를 뮤지컬로 만든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에드먼드 퍼돔 왕자가 평민 학생들의 합창단에 들어가자 워낙 걱정이 많은 신하가 개인교수 에드먼드 궨에게 수선을 부린다.

 

“But you permit His Highness to contaminate himself with the rabble.”(하지만 당신은 전하께서 천민들과 어울려 오염이 되도록 그냥 내버려 두잖아요.)

 

궨 교수가 태연하게 quip한다. “When His Highness retires tonight, Lutzy, you can burn his clothes and fumigate him.”(오늘밤 전하께서 잠자리에 들고 나면 말일세, 럿찌, 전하의 옷을 모두 태워버리고 몸은 훈증소독을 하게나.)

 

‘훈증소독’이라니? 필자는 그 단어를 70이 다 된 평생에 지금 처음 접했고, ‘훈증(薰蒸)’이 “유독 가스를 발생시켜 병균 및 해충을 죽임”을 뜻한다는 사실도 방금 ‘국어대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연막소독’이라거나, ‘연기소독’이라고 했다면 훨씬 쉽게 사람들이 알아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불을 때면 피어오르는 보통 ‘연기’는 smoke다. smoke가 fog(안개)와 결합하면 smog(매연)라는 새로운 단어가 된다. 그렇다면 smoke를 오염시키는 fog는 나쁜 안개일까? 그런 것 같다. 항해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안개는 fog이고, 그래서 선박들이 오리무중에서 충돌을 피하려면 서로 위치를 알리기 위해 foghorn(霧笛)을 울린다.

그렇다면 좋은 안개는 없나? 있다. 새벽 호숫가의 물안개나 계곡의 골안개처럼 낭만적이고 시적인 안개는 mist라고 한다.

 

다시 ‘연기’ 얘기로 돌아가자. smoke는 gas(기체)다. 그리고 기체(氣體) 가운데 성질이 유독성이거나 냄새가 짙은 gas를 fume이라고 한다. 자동차의 배기가스(exhaust gas)도 fume에 속한다. fume은 perfume(향수)에서도 진한 냄새를 풍긴다.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오는 단어 fumigate는 fume의 움직씨꼴이다. 그러니까 ‘연기소독’이라고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fumigate하는 차량인 fumigator도 우리는 그냥 ‘소독차’라고 한다. 여름에 골목골목 연기를 뿜고 돌아다니면 동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연기를 쫓아다니는 ‘방역차’가 영어로 fumigator다.

 

그러면 ‘황태자의 첫사랑’ 예문은 어째서 quip인가? 신하가 contaminate라고 했을 때는 천민들과 어울려 다니면 그들의 천박한 언행과 습성이 황태자를 정신적으로 그리고 무형적으로 ‘물들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궨 교수는 그 단어를 (참뜻을 알면서도 일부러 오역하여) ‘오염시키다’라는 고지식한 의미로 구사하여, “전하를 훈증소독하자”고 농담을 한 것이다. 정신적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몸을 소독한다는 발상이 웃긴다.

 

재치있고 재미있는 표현을 이렇게 한없이 길게 설명하고 나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진다. 하나 quip은 일종의 언어적 순발력이다.

 

 

빤히 알면서도 딴전 부리며 웃기기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못난 마법사에게 주디 갈란드가 따진다. “You’re a very bad man.”(아저씨는 아주 나쁜 사람예요.)

 

마법사가 quip한다. “No, my dear, I’m a very good man. I’m just a very bad wizard.”(아니란다, 얘야, 난 아주 좋은 사람이야. 형편없는 마법사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bad는 같은 단어이면서도 의미가 서로 조금씩 다르다. 첫 bad는 인간으로서의 ‘성품’을 따지고, 나중 bad는 인간의 부수적인 ‘속성’ 즉 ‘솜씨’를 의미해서, 그들의 대화는 일종의 동문서답을 이룬다. 예를 들어 bad professor라고 하면,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학생들에게 강의조차 하지 않고 무단결근을 하는 그런 ‘나쁜’ 교수도 있고, 성미가 ‘못된’ 교수도 있고, 실력이 모자라는 ‘못난’ 교수도 있다. 같은 단어의 여러 의미를 구사하여 pun(곁말)을 활용하는 quip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살펴보기로 하겠는데, 어쨌든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단숨에 치고 옆으로 빠지는 이런 quip의 기법을 우리는 ‘오션스 일레븐’에서 “도둑질이 아니라 거짓말을 그만두었다”는 조지 클루니의 궤변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빤히 알면서도 딴전을 부리는 웃기기 기법은 유쾌한 영국 영화 ‘앞으로만 가는 여자(I Know Where I’m Going)’에서도 나온다. 언제쯤 날씨가 걷히겠느냐는 웬디 힐러에게 바닷가 마을의 뱃사람이 quip한다.

 

“How long will the gale last? Just as long as the wind blows, my lady.”(폭풍이 언제까지 불 꺼냐고? 바람이 부는 동안밖에는 안 불어, 이 아가씨야.)

 

폭풍도 가지가지지만, gale은 초속 13.9~284m로 바다에서 부는 강풍을 뜻한다.

‘도로티 댄드릿지의 영광과 좌절’에서 대리인 얼 밀스가 좌절감에 빠져 지내던 그녀를 오랜만에 찾아온다. 비위가 상한 댄드릿지가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You got so old. When did you get so old?”(당신 폭삭 늙었구만. 언제 그렇게 늙었어요?)

 

밀스가 경쾌하게 받아넘긴다. “This morning.”(오늘 아침에.)

 

논쟁에서 고지식하게 화를 내는 화법(話法)은 참으로 미련하다. 목에 힘을 주면 힘 주는 사람만 피곤하다. 감정을 통제하고 말을 길잡으면 자신의 품격이 고상해지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서 화를 안 내는 사람은 언쟁에서 이기기가 훨씬 쉽다.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에서 세상물정을 하나도 모르면서 가출한 18세 철부지 아가씨가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만만하다고 큰소리를 친다. 빙 크로스비 신부는 목에 힘을 주고 훈계하는 대신 우회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You know, when I was eighteen, I thought my father was pretty dumb. After a while, I got to be twenty-one and I was amazed to find how much he learned in three years.”(나도 말이지, 열여덟살 땐 우리 아버지가 상당히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시간이 좀 지나서 스물한살이 된 나는 그 사이에 아버지가 얼마나 똑똑해졌는지 깨닫고는 무척 놀랐단다.)

 

물론 3년 사이에 ‘똑똑’해져서 세상물정을 알게 된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크로스비 자신이었다. “네까짓 게 그 나이에 세상을 뭘 아느냐”고 면박을 주는 대신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quip이 돋보인다.

 

논쟁에서는 논리와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화법으로 이기는 설득도 가능하다. 인내심이 없고 마음이 각박한 요즈음 세상에서 자녀교육에 적용해 볼만한 변칙이다. “그 나이”에는 아무리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해도 이왕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선인장꽃(Cactus Flower)’에는 “그 나이”의 청년이 등장한다. 옆집에 사는 극작가 지망생 릭 렌츠가 골디 혼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I write very advanced plays. All the actors keep the clothes on, and public is not quite ready for that yet.”(난 아주 진보적인 희곡을 씁니다. 배우들이 모두 옷을 입은 채로 나오는데, 일반 대중은 아직 그런 연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죠.)

 

렌츠의 화법은 뒤집어서 거꾸로 말하는 sarcasm(비꼬기)이다. 진보적인 작품이라며 너도나도 옷을 홀랑 벗고 나오는 배우들이 대단히 ‘실험예술적’인 체하는 풋내기 세태를 렌츠는 꼬집는다. 그러니까 그는 ‘진보적’이 아니라 지극히 보수적(conventional, conservative)인 정통 극작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한다. sarcasm에서 악의적인 비꼬기의 요소를 제거하면 humor(해학)가 된다.

 

필자는 어릴 적에 ‘웃음보따리’라는 책에서 이런 얘기를 읽었다. 여인숙에 손님이 들었는데, 주인이 지어준 밥에 돌이 많아서 자꾸 손님이 우지끈 씹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만 해도 우리나라 쌀에는 돌이 많아서 밥을 짓기 전에 밥상에 쏟아놓고 우선 돌부터 골라내고는 했었다. 어쨌든 미안해진 주인이 손님에게 “밥에 돌이 많죠?”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손님은 “아뇨, 쌀이 더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만일 이때 손님이 화가 나서 악의적으로 그 말을 했다면, 그것은 sarcasm이다. 하지만 주인이 미안해할까봐 그냥 웃어 넘기기 위해 같은 말을 했다면, 그것은 humor다.

 

 

 

‘싸구려 계집’과 ‘물컹물컹한 놈’ 둘다 Tomato

 

세실 B. 드밀 감독의 대작 곡마단 영화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에서 장군 차림의 라일 베트거는 코끼리를 타고 함께 공연하는 사이에 글로리아 그레이험에게 “내 마음에 불이 붙었다”는 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레이험이 재빨리 quip한다. “Well, simmer down, General, before you melt your mettle.”

 

그레이험의 말을 고지식하게 번역하면, “그럼 진정하시죠, 장군님, 당신의 기개가 녹아버리기 전에요”가 된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참으로 멋대가리가 없는 대사다. 하지만 원문에 사용된 언어의 곡예를 알고서 살펴보면, 살코기만큼이나 씹히는 맛이 우러난다. simmer down은 물론 “마음을 진정시키다”라는 뜻이다. simmer는 본디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라는 말인데, 여기에 down(내린다)을 받치면 끓어오르던 물이 식어내리는 꼴을 취한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모습이 참으로 시각적인 표현이다.

 

simmer는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말이지만, 같이 쌍자음으로 받는 비슷한 모양의 단어 sizzle은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다”는 뜻의 의성어다. 이렇게 모양이나 의미가 비슷한 단어들을 무더기로 엮어서 외우면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무더기로 단어를 배우는 첩경은 어떤 단어 하나를 찾아볼 때, 사전에서 이왕 펼쳐놓은 두 쪽을 소설처럼 읽어내려가는 방법이다. 사전을 소설처럼 읽는 습성은 공부를 즐거움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시 예문으로 돌아가서, 문장의 뒷부분 melt your mettle을 보자. 물론 두운법이다. mettle은 metel(=metal)의 변형으로서, put on one’s mettle(철갑을 두르다)은 “용기백배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high-mettled(혈기왕성한)나 a man of mettle(기개 높은 사람)도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같은 영화에서 베티 허튼에게 청혼을 하려고 코넬 와일드가 여성 단원들이 숙소로 쓰는 트레일러로 들어가자 허튼이 기겁한다.

 

“What are you doing in no man’s land?”(당신 금남구역에서 뭐하는 거예요?) no man’s land는 생긴 모양을 고지식하게 보면 “금남(禁男)의 땅”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 또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처럼 적과 아군이 중간에 남겨놓은 “무인지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흔히 쓰인다. 이렇듯 아무리 같은 단어나 표현이더라도 그것이 지닌 두 가지나 세 가지 의미를 안다면, 그것은 한 단어가 아니라 두 단어 또는 세 단어를 아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스튜어트는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여서 광대로 분장하고 곡마단에 숨어 지내지만, 화재가 나서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다가 결국 의사라는 신분이 탄로 나서 체포된다. 수갑을 차고 끌려 나가던 그는 관중석의 소녀에게 그의 개를 선물로 주며 주의사항을 얘기한다. “Don’t feed him too much popcorn, or he will pop.”(팝콘을 너무 먹이면 강아지가 배 터져 죽을 거야.)

 

popcorn은 “corn(강냉이)을 pop(펑 튀기다)한다”는 말이어서 pop을 어원으로 삼는다. 마치 두 형제 단어가 한 문장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묘기를 부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슷한 두 단어가 묘기를 빚어내는 경우야 흔하겠지만, 아예 똑같은 하나의 단어가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quip을 위해 동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기법을 pun(同音異義)이라고 한다.

 

트루먼 캐포티 원작의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 pun의 묘미를 좀 알아보기로 하자. 이 영화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분류하기가 힘든 여자다. 골이 좀 빈 여자답게 극중 인물의 이름도 Holly Golightly다. 성탄절 장식용으로 쓰이는 holly(호랑가시나무)는 여자의 이름으로도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물론 holy(거룩한)라는 반어적 용법으로 쓰였다. 그러니까 Holy Golightly는 “세상만사 가볍기만 한 거룩한 아가씨”다.

 

돈 많은 남자라면 무작정 좋아하는 헵번은 Sing Sing에서 복역 중인 조폭에게 면회를 가서 일기예보를 알려주고 용돈을 번다. Sing Sing(노래하자 노래해)은 뉴욕주 Ossining에 있는 교도소 이름인데, Ossining이 Sing Sing으로 둔갑하여 pun스러운 장난기가 보이는 별명이다. sing은 뒷골목 은어로 “고자질하다”나 “밀고하다”라는 뜻이기도 해서, ‘밀고자’는 노래를 잘 부르는 canary(카나리아)라고도 한다.

 

헵번이 내용도 모르면서 Sing Sing에 가서 전해주는 ‘일기예보’는 “마이애미에 태풍이 몰아친다”는 식으로 조직의 소식을 비유하여 전하는 pun형 암호다. 결국 그녀는 연락책으로 의심받아 경찰에 체포되고, 신문에 이런 제목이 나타난다.

 

“Tomato’s Tomato Pinched by Cops”(또마또의 정부 경찰에 걸려들다) Tomato(또마또)는 복역 중인 조폭 두목인데, 이탈리아계 마피아식으로 붙인 이름이다. 두 번째 Tomato는 “싸구려 계집”이다. pinch는 남자들이 술집 같은 곳에서 여자의 궁둥이를 “꼬집어준다”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경찰에게 “몰리다”라는 pun으로 쓰였다.

 

‘록키(Rocky)’에서도 매니저가 주인공을 ‘토마토’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는 ‘물컹물컹한 놈’이라는 뜻이었다. tomato처럼 간단한 단어에도 이렇게 복잡한 여러 의미가 담겼다.

 

 

스타들은 밤이 와야 뜬다

 

대부분의 pun은 quip을 내장한 단어여서, 특히 stand-up comedy(1인 만담)에서 단발성 gag(익살)로 자주 동원되며, 영화대사에서는 alliteration만큼이나 널리 쓰이는 기법이니, 그 성격을 잠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모감보(Mogambo)」에서 quip하는 pun을 찾아보자. 아프리카로 그녀를 초청한 인도인 백만장자가 급한 일이 생겨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에이바 가드너는 오지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불청객이 된 그녀를 무전취식시켜야 할 처지가 된 사냥 안내자 클락 게이블이 못 마땅해 하자 가드너가 오히려 화를 낸다.

 

“Look, buster, don‘t you get overstimulated with me. I’m the little gal who flew all the way from New York to this lousy place in Dark Continent. only I expected to find a man with a flashlight.”(이봐요, 거지같은 양반아, 나 때문에 너무 열 받지 말아요. 난 멀고먼 뉴욕에서 암흑대륙의 이 더러운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불쌍한 아가씨란 말예요. 그래도 난 손전등을 든 남자 정도는 만나리라고 기대했고요.)

 

여기에서 dark(깜깜한)은 “잘 알려지지 않은”이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고유명사 “Dark Continent(*우리말로는 ‘암흑대륙’이라고 했음)”는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인들이 ‘오지(奧地)’로 간주했던 아프리카를 지칭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dark은 ‘어두운’이라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는 단어이고, 그래서 “어두운 대륙”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녀에게는 flashlight(손전등)를 밝혀주는 남자라면 백마를 타고 온 왕자님만큼이나 반가운 존재이리라. dark이라는 한 단어가 두 가지 의미로 쓰이는 식의 이런 말장난을 pun이라고 한다.

 

참고로, 가드너의 말에서는 감각의 농도를 나타내는 세 가지 표현이 나타난다. 우선 첫 문장에서 don’t you get이라는 명령형에 그냥 don’t get(overstimulated)이라 하지 않고 you라는 주어를 넣음으로 해서, “너 섣불리 까불지 말라”고 훨씬 강력한 의미가 된다. 우리말에서도 “이러지 마”와 “너 이러지 마”는 어감의 차이가 확연하다. 보다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Don’t go”라고 할 때는 “가지 마세요”라고 부탁하는 차원이지만, “Don’t you go”는 “너 멋대로 갔다가는 골로 갈 줄 알아” 정도의 협박이 된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명령형에서는 손가락으로 삿대질까지 곁들이면 제격이다.

 

두 번째 문장에 들어간 정관사 the (little gal)는 “진짜로 화를 내야 마땅한 사람은 바로 little gal,” 즉 가드너 자신이라고 강조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부정관사 a를 썼을 때보다 훨씬 당사자나 발언의 주체를 마구 들이대는 화법이다.

 

세 번째 문장의 첫 단어 only는 “모르면 몰라도 이것만큼은”이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것만큼은”이라고 역시 도드라지게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주제가「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 「나는 비밀을 안다(The Man Who Knew Too Much)」의 첫 장면에서는 아버지 제임스 스튜어트와 어머니 도리스 데이와 함께 대낮에 아프리카의 공항에 도착한 소년이 “컴컴한 대륙(Dark Continent)이 왜 이렇게 환해요?”라고 순진하게 묻기도 한다. metaphor(은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어린 아이가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pun이다.

 

우리말 제목을 정말이지 꼴불견으로 한심하게 붙인 「어게인스트(Against All Odds)」에서는 악덕 변호사의 여비서 스우지 컷츠가 제프 브릿지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Mrs. Wyler’s real business is real estate.”(와일러 부인이 진짜로 정진하는 사업은 부동산예요.)

 

변호사라는 직업보다 부동산 투기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두 개의 real은 pun으로 하는 quip을 멋지게 달성한다.

 

닐 사이먼 희곡이 원작인 「베벌리 힐스의 사생활(California Suite)」에서는 유명한 배우들이 모여 사는 베벌리 힐스에 도착한 월터 매타우가 집 주위를 둘러보며 형에게 묻는다. “Where are the stars? I don’t see any stars yet.”(스타들은 다 어딜 갔어? 나 아직 스타라고는 하나도 못봤어.)

 

형이 quip한다. “They come out at night.”(밤이 되어야 나오지.)

낮에 star(별)가 보일 리가 없다는 pu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극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You Can‘t Take It With You)」에서 귀족들의 만찬 자리에 합석한 가난뱅이 처녀 진 아더에게 훌륭한 가문을 뽐내는 멜빌 경이 묻는다. “Well, Miss Sycamore, have you a family tree?”(시카모어 양, 당신 집에도 족보가 있나요?)

family tree는 우리나라에서처럼 꼭 책으로 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가문의 영광을 나타내는 계보를 의미하며, genealogical tree라고도 한다. 계보를 나무(tree)처럼 그려놓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다. ‘혈통’이나 ‘가계’를 뜻하는 말은 pedigree라고도 하며, 동물의 순수한 혈통을 나타내는 ‘족보’인 경우에는 family tree가 아니라 pedigree라고 한다.

 

평범한 집안의 딸인 아더가 그 질문을 받고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제임스 스튜어트가 pun이 담긴 quip으로 그녀를 멋지게 도와준다. “My dear sir, don’t you know that sycamore is a tree?”(선생님께서는 시카모어가 나무인 줄 모르셨나요?) 아더의 성 Sycamore는 ‘무화과나무’이고, 아더의 성이 나무 이름이고 보니 그녀의 family에는 분명히 나무 한 그루가 무럭무럭 자란다. pun을 잘 쓰면 이렇게 대단한 fun이 된다.

 

 

 

수작 거는 남자 한 방에 날린 ‘말 대꾸’

 

‘실버 스트리크(Silver Streak)’에서 급행열차의 비타민 판매원으로 undercover(변장 근무) 중인 FBI 요원 네드 베이티가 식당차에서 젊은 여자에게 묻는다. “Are you going all the way?”(끝까지 가십니까?) 여자가 그에게 반문한다. “Are you in heat?”(열 나세요?) 괄호 안의 번역은 MBC-TV의 솜씨인데, pun의 경우 대부분 그렇듯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대화에서 두 사람의 말에는 모두 번역문에 나타나지 않은 복선이 깔렸다. go all the way는 얼핏 보면 “종착역까지 가느냐?”는 질문 같지만, 베이티는 수작(작업)을 거느라고 운을 띄운 말이니까, “혹시 그거 하고 싶은 생각 없나?”라는 의사 타진이 노골적이다. go all the way는 남녀 관계에서 육체를 허락하는 “마지막 단계(線)까지 넘어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응수에서도 in heat은 짝짓기철에 짐승이 “발정한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시청자를 붙잡고 차분히 납득시킬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장면이 바뀌는 영상번역에서는 이런 긴 설명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음 장면으로 연결해주기 위해 예문에서처럼 어중간하게 옮겨놓았다. 다음 장면에서 여자는 베이티의 heat(열)을 식혀주느라고 그의 바지를 잡아당겨 벌리고는 사타구니에 얼음을 잔뜩 쏟아붓는다.

 

그래도 조금 더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베이티의 대사를 “우리 한 번 끝내 볼까요?”라 하고는 여자의 응답을, 좀 야한 표현이지만, “어디 뜨끈뜨끈해요?”나 “좀 식혀줄까요?”라고 했어도 괜찮을 듯싶다.

 

‘애봇과 코스텔로 프랑켄슈타인을 만나다(Abbott and Costello Meet Frankenstein)’에서는 궤짝 속에 드라큘라가 누워 있다고 자꾸 우기는 코스텔로에게 애봇이 정신 차리라고 야단친다. “I’m gonna get the other crate. And no back talk.”(내가 다른 궤짝을 가지러 가겠어. 그러니까 말대꾸 그만하라구.) 혼자 남아서 기다릴 생각에 겁이 난 코스텔로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부탁한다. “Hurry back.”(빨리 돌아와.)

 

back talk는 ‘말대꾸’이지만, 억지로 우긴다면 “back에 대한 talk”이나 “back이라는 말이 들어간 얘기”도 된다. army talk이 “군대 얘기” 또는 “군대에서 잘 알려진 얘기”를 뜻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코스텔로는 back talk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Hurry back”에 back이 들어갔으니까 back talk을 슬쩍 하고 넘어간 셈이다.

 

‘사브리나(Sabrina, 1995)’의 마지막 부분. 프랑스로 떠난 줄리아 오몬드를 어서 쫓아가라고 부추기는 동생에게 회사에서 한창 회의를 주재 중이던 해리슨 포드가 반박한다.

 

“You expect me to just drop everything and walk out of here?”(넌 내가 그냥 다 훌훌 털어버리고 여길 떠날 줄 알았니?) walk out은 실제로 “걸어서 나간다”는 의미보다 “무책임하게 현장을 떠나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하지만 동생 그렉 키니어는 이 표현을 “걸어나간다”로 돌려 pun을 한다. “Running would be better.”(걸어나가기보다는 뛰어나가는 편이 더 좋겠어.)

 

walk out과 관련된 얘기 하나. 1997년 우리나라가 이른바 ‘IMF 위기’를 맞았을 때, 언론과 경제계에서는 ‘워크아웃’이라는 말을 일상어처럼 빈번하게 사용했다. 좋은 우리말 표현이 있어도 영어 단어 하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우리말은 얼른 내다버리고 너도나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그 영어 단어를 아무데서나 함부로 남용하는 현상은 ‘워크아웃’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회사에 외국인 기업가가 투자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 방문했을 때 한국인 간부가 자랑스럽게 “우린 지금 워크아웃하는 중”이라고 말했고, 그랬더니 외국인이 놀라서 도망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었다.

 

한국인이 한 말은 workout(구조조정)을 한다는 뜻이었지만, 외국인은 walkout(파업)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이 회사가 당장 망하는 모양이라고 오해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work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워낙 어려워서 walk라고 하기가 쉽고, 이렇게 의사 전달이 어려운 말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편이 본전이나마 되겠다. workout은 본디 운동 따위로 ‘살빼기’를 한다는 말이다. ‘구조조정’은 restructuring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사브리나’의 앞 부분에서는 사업밖에 모르는 해리슨 포드에 대해 유럽에서 돌아온 줄리아 오몬드가 운전기사인 아버지에게 묻는다.

 

“What was he like in his childhood?”(그 사람 어렸을 땐 어땠어요?) 아버지의 명답이다. “Shorter.”(작았지.) 변한 것이 전혀 없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그 모양”이라는 암시가 담긴 말이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기

 

‘젊은 날의 링컨(Young Mr. Lincoln)’에서 갓 변호사로 개업해 사무실도 마련하지 못한 헨리 폰다(링컨)에게 마을 사람이 묻는다. “Where is your office, Abe?”(에이브, 당신 사무실은 어디 있나요?) Abe는 에이브레햄(Abraham)의 애칭이다. “In my hat.”(내 모자 속에요.)

 

“필요한 모든 ‘기능’이 머릿속에 담겨 있다”는 재치 넘치는 대답이다. office는 건물의 공간(사무실)이기도 하지만, ‘관직’이나 ‘임원’처럼 기능을 뜻하는 추상적인 말로도 쓰인다. 그러면 사무실조차 구하지 못한 신참 변호사 헨리 폰다가 법정에서 위증을 일삼는 워드 본드를 어떻게 약올리는지 살펴보자.

 

“You say your name is J Palmer Cass.”(당신 이름이 J 파머 캐스라면서요.)

 

서양 이름에서는 우리 ‘이름’에 해당하는 first name을 이렇게 약자로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영국의 시인 T S Eliot(Thomas Stearns Eliot)이나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Scott Fitzgerald(Francis Scott Fitzgerald)처럼 말이다. 이것은 집안의 family tree가 대단해서 “마포의 최 부자”처럼 family name만 들어도 웬만한 사람은 거룩한 인상을 받는 지경이니까 개인의 이름쯤은 안중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하찮은 사람이 잘난 체 하느라고 첫 이름을 일부러 약자로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증인 워드 본드는 물론 후자에 속한다.

 

“Yeah.”(그래요.) “What does J stand for?”(J는 무엇의 약자인가요?) “John.”(존요.) “Anybody ever called you Jack?”(잭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나요?)

 

Jack은 John의 애칭이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John F Kennedy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Jack Kennedy라고 했다. Jimmy(James) Carter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본드는 역시 잘난 체 하느라고 격식을 차려 자기 이름을 꼭 John이라고 밝힌다.

 

“Yes….”(그러기도 하지만….) “Why do you call yourself J Palmer Cass? Why not John P Cass?”(왜 당신은 자신의 이름을 J 파머 캐스라고 고집하나요? 존 P 캐스라고 하면 안 되나요?)

 

영어 이름에서는 last name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중간에 오는 middle name은 어머니 집안의 성을 따르며,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 중간 이름은 약자로 쓴다. 그러니까 J Palmer Cass보다는 John P Cass가 훨씬 일반적이다.

 

“Well….”(그거야….) “Anything matters with John P?”(존 P라고 하면 큰일이라도 납니까?) “No, but….”(그건 아닙니다만.) “You say J Palmer Cass for anything to conceal?”(혹시 뭐 숨길 일이 있어서 J 파머 캐스라고 하는 건 아닌가요?) “No!”(아닙니다!) 증인 본드가 펄쩍 뛴다. “Well, if it’s all the same to you, I will just call you Jack Cass.”(자, 아무 이름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당신이 생각한다면, 난 증인을 그냥 잭 캐스라고 부르겠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중간 이름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생략해 약자로 쓰거나, 아예 빼버린다. 지금 대화를 주고받는 헨리 폰다와 워드 본드 두 배우의 이름에서처럼 말이다. 그래서 잭 캐스라고 부르면 가장 자연스러울텐데, 영화에서는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온다.

 

왜 그랬을까? Jack Cass를 빨리 발음하면 jackass처럼 들린다. jackass는 cad나 마찬가지로 “천박한 촌놈”이라는 뜻이다. 이런 경우는 pun이 아니라 (나중에 살펴보게 될) homophone(homonym, 同音異義語)으로 분류해야 옳겠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오는 Holly Golightly나 Tomato 그리고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의 Sycamore처럼, 이름만 가지고도 pun 놀이가 만만치 않다. ‘맨발의 백작부인(The Barefoot Contessa)’에도 그런 예가 나온다.

 

감독으로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해 욕구불만 속에서 살아가는 영화사 홍보담당자 험프리 보가트는 스페인의 후진 술집에서 발굴한 무희 에바 가드너를 선전하기 위한 자리를 마지못해 마련한 다음 사장에게 이런 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다.

 

“I invited the highest international movie brass I could find in Rome ― Mr. Black of America, Mr. Blue of France and Mr. Brown of England.”(로마에서 찾아낼 수 있는 영화계 최고의 국제적인 거물들을 초대했는데 ― 미국의 블랙 선생, 프랑스의 블루 선생, 영국의 브라운 선생이죠.)

 

미국의 Black이라면 당시로서는 별로 존경스러운 계층이 아니었던 “미국의 흑인”이겠고, 프랑스의 Blue(푸르딩딩·슬픈·우울한)는 걸핏하면 감상적인 ‘우울증’에 빠지는 위인이겠으며, brown은 영국 속어로 “감쪽같이 속이다”라는 뜻이다. 보아하니 초대 손님들의 본명은 분명히 아니겠고, 심통을 부리며 즉석에서 지어낸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brass는 ‘황동(놋쇠)’이라는 뜻으로 가장 널리 쓰이지만 빛깔(黃)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뻔뻔스러운 철면피’나 ‘갈보’를 뜻하기도 하다가, 여기에서처럼 앞에 정관사 the가 붙으면 ‘고위 장교’나 ‘고관대작’ 또는 ‘거물급 인사’가 되는 파란만장한 단어다.

 

 

 

냉큼 말하거나 총으로 쏘거나

 

셜리 템플 영화 ‘서니브룩 농장의 레베카(Rebecca of Sunnybrook Farm)’에 등장하는 어느 청년은 여가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아 “Lola, there’s something I’ve been wanting to tell you”(롤라, 난 벌써부터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라는 말밖에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답답해진 여가수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Let’s have it. Shoot.”(우리 속 시원하게 해결합시다. 쏘세요.) 이 말을 듣고 총을 꺼내 여자를 쐈다가는 큰일이 난다. 우리말에서도 ‘쏜다’가 한턱을 ‘낸다’는 속어로도 쓰이듯이, 영어에서는 shoot이 속어로 쓰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이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증인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친 젊은 날의 링컨 말고도 언어의 희롱을 한 대통령이 몇 명 더 있는데, ‘거짓 속의 진실(Wrong Is Right)’에 나오는 미국 대통령 조지 그리자드는 위 예문에 소개한 shoot의 용법으로 pun을 한다. 솔직하게 의견을 말해도 되겠느냐는 CIA 국장에게 대통령은 “Shoot, Jackie, and aim at Mallory.”(그래, 재키, 하지만 겨냥은 맬러리한테 하라고.)라고 한다.

 

이 장면에서도 CIA 국장은 권총을 뽑지 않는다. shoot이 속어로 “어서 냉큼 말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shoot에서는 “총으로 쏴서 죽이다”라는 의미도 유효하다. 그러니까 그리자드의 말은 “쏴 죽이는 건 좋지만 총은 맬러리를 겨눠”라는 제2의 의미가 담긴 pun이다. 맬러리는 야당 대통령 후보 레슬리 닐슨의 극중 이름이다.

 

알라모 요새 앞에서 유세를 할 때도 그리자드 대통령은 21발의 축포가 울린 다음, 비록 pun은 아니지만, shoot이라는 단어로 (빗나간) 겨냥에 대해서 또다시 quip한다. “Twenty-one shots, by golly, and they missed me every time.”(맙소사, 스물한 발이나 쏘면서도 날 한 번도 맞히지 못하는구먼.) 독자들도 잘 알겠지만, 축포는 살상용이 아니다.

 

인기 특파원 숀 코너리가 캐더린 로스에게 장난스러운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도 같은 영화에 나온다. “I was an actor, and a coal miner, and a bartender, and a sailor, and a soldier of misfortune.”(난 배우에, 광부에, 바텐더에, 뱃놈도 했고, 병정놀이도 좀 했어.)

 

영어의 말장난을 우리말로 옮기는 고충은 soldier of misfortune 같은 경우가 좋은 표본이겠다. 영어에도 아예 없는 이런 단어를 우리말로 만들어내야 하니 말이다. soldier of misfortune이라니까 얼핏 “불운의 병사”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이것은 soldier of fortune을 장난스럽게 뒤집어놓은 조어적(造語的) 표현이다.

 

soldier of fortune은 ‘용병(傭兵, mercenary)’이라는 뜻인데, fortune에다 mis-라는 부정형 접두어를 붙여놓은 코너리의 말투로 미루어보아 그의 용병 경력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필자는 번역에서 “제대로 군인 노릇을 못했다”는 의미로 ‘병정놀이’라는 표현을 써보았다. soldier of fortune에는, fortune이 adventure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혈기 왕성한 모험가(adventurer)’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misadventure 또한 접두어 mis-가 붙는 단어 가운데 매우 재미있는 단어에 속한다. misadventure를 영한사전에서는 ‘불운한 일’이나 ‘불행’ 또는 ‘재난’이라고 풀어놓았는데, 그보다는 훨씬 감칠맛이 담긴 말이다. adventure(모험)를 하고 싶기는 한데 하는 일마다 재수가 옴이라도 붙었는지 사사건건 비틀어지는 경우를 misadventure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낭패’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mischief(짓궂은 장난)도 참 맛나는 mis-단어다. 그리고 프랑스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바바렐라(Barbarella)’에서는 지구 대통령이 화상통화를 하며 41세기 나체의 여전사(adventuress) 제인 폰다에게 mischievous(짓궂은) 작업을 건다. “One day, Barbarella, we must meet in the flesh.”(언젠가 기회가 되면, 바바렐라, 우리 직접 한번 만나야 되겠어요.) in the flesh는 ‘실물’이나 ‘장본인’이라는 뜻이다.

 

‘물랭 루즈(Moulin Rouge)’를 보면 전람회장에 툴루즈-로트렉이 나타나자 화상(畵商)이 “Here he is, in the flesh”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in person, 즉 그분이 “몸소 왕림하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바바렐라’ 예문의 in the flesh는 “육체의 만남”이라는 암시가 담긴 용법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 in flesh(살쪄서, 뚱뚱해져서)는 in the flesh와 의미가 크게 다르다. 사람들은 정관사나 부정관사를 하찮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에 나오는 대통령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하자. 핵전쟁이 터질 위기를 맞아 대책회의를 하던 중에 조지 C 스캇 대장과 소련 대사가 몸싸움을 벌이자 피터 셀러스 미국 대통령이 야단을 친다.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여러분, 여기선 싸우면 안 됩니다. 여긴 상황실이에요.)

 

대통령의 말이 웃기는 까닭은 ‘상황실(war room)’을 고지식하게 번역하면 “전쟁의 방”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방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어디서 싸우라는 말인가?

 

 

 

허풍떠는 정치에 대한 조롱

 

우리나라 의회정치를 보면 쓰레기 집하장을 방불케 하고, 사실 따지고 보면 정치의 더러운 꼬락서니는 범세계적인 현실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프랭크 캐프라의 고전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까지만 해도 아직 의회에서 이상주의적 정의가 실현되는 우화적 환상이 잘 보인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농락당하던 순진한 젊은이 제임스 스튜어트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filibuster(議事進行妨害者)로 돌변한다. 발언권을 장악한 그의 연설이 끝도 없이 자꾸만 길어지자 다른 의원들은 얼굴을 가린 채로 신문이나 잡지를 보기 시작하고, 머리를 떨구고 졸거나 등을 돌려 face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스튜어트가 시끄럽게 휘파람을 불고, 모두 깜짝 놀라서 머리를 돌려 그를 주목한다. 스튜어트가 일갈한다.

 

“That’s all right. I just wanted to find out if you still had faces.”(됐습니다. 난 그냥 여러분들이 아직도 얼굴을 갖고 있는지 확인만 하고 싶었으니까요.)

 

이렇게만 번역해 놓아도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겠지만, 예문의 had face는 단순히 “얼굴이 달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pun을 곁들인 quip이다. 여기에서의 face는 ‘체면’이나 ‘면목(面目)을 의미한다.

 

save face(체면을 지키다)는 중국이나 한국을 무대로 한 소설을 여럿 발표한 펄 벅이 작품에서 무척 애용하던 ‘동양적’ 표현이었다. save face의 반대인 lose face(체면을 잃다)의 예문은 ‘함장 호레이쇼(Captain Horatio Hornblower)’에서 발견된다.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혀 파리로 압송되는 마차 속에서 부하들에게 그레고리 펙 함장이 (결국은 나폴레옹에게 영국이 승리할 테니까) “You know you will never need to lose face”(여러분은 절대로 체면을 잃는 짓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격려한다.

 

pun은 아니지만 정치를 비꼬는 표현은 ‘리우로 가는 길(Road to Rio)’에도 나온다. 게일 손더가드의 최면에 걸린 도로티 라무어는 밥 호프와 빙 크로스비가 밀항자라고 선장에게 고발한다. 라무어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사과한다.

 

“I don’t know what came over me. I was saying things and I didn’t know why I was saying them.”(내가 무엇에 홀려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그런 소리를 하긴 했는데, 도대체 왜 그런 헛소리를 늘어놓았는지 모르겠어요.)

 

호프가 일침을 놓는다. “Look, why don’t you just run for the Congress and let us alone, uh?”(이봐요, 국회의원 출마나 하고 우리들은 그냥 내버려두는 건 어떨까요?) “국회의원이란 밥 먹고 헛소리만 늘어놓는 사람들”이라는 빈정거림이다.

 

‘후보자(The Candidate)’에서는 피터 보일이 로버트 레드퍼드를 찾아가 상원의원에 출마하라고 부추기자 옆에 있던 레드퍼드의 동료가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정의를 내린다. “Politics is bullshit.”(정치는 쇠똥이야.)

 

bullshit은 ‘허풍’이나 ‘거짓말’ 또는 ‘개수작’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 보일 왈― “I was wondering what it was.”(난 또 (정치가) 뭐 대단한 건 줄 알았지.) 마치 전혀 몰랐다가 무슨 대단하고 새로운 진리라도 발견한 듯 짐짓 깜짝 놀라는 말투로 구사한 피터 보일의 화법은 되받기 응수의 quip이다.

 

‘후보자’에서는 로버트 레드퍼드와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현직 상원의원이 정치를 이런 보수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 “Now and then when I hear the barking and baying of those who would knock our system down, I’m reminded of the last days of the great Roman Empire. They argued about what vices they could legalize.”(우리의 기존 질서를 때려 부수겠다고 설치는 자들의 헛소리를 들어보면 가끔 나는 위대한 로마제국의 몰락기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들은 어떤 악습들을 합법화하면 좋을지만 열심히 궁리했죠.)

 

두운이 맞는 barking과 baying은 둘 다 개가 짖는 소리다. 모양이 비슷한 braying은 당나귀가 우는 소리로서,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당나귀는 heehaw라고도 울며, 바보같은 웃음소리도 heehaw라고 한다. 말은 whinny라고 울며, 그래서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마인족(馬人族)을 Houyhnhnms(whinnim이라고 발음)라고 한다.

 

정치인에 대한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의 시각도 재미있다. 흑인 종업원이 카페 주인에게 그의 당찬 포부를 밝힌다. “You wait and see. I will be the mayor, the most powerful man in Hill Valley, and I’m gonna clean up this town.”(두고 보시라고요. 난 힐 밸리에서 가장 막강한 인물이 되어, 이 마을을 깨끗하게 쓸어내겠어요.)

 

예문에서 will be the mayor를 번역하지 않고 남겨놓은 이유는 따로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mayor(長)라는 단어를 보면 무조건 ‘시장’이라고 번역하는데, 아무리 영어로는 같은 mayor라고 해도 city인 경우에만 ‘시장’이고, town의 장은 ‘읍장’이나 ‘면장’ 정도가 되겠다. village의 mayor는 ‘이장’이다. 영어 실력의 차이는 바로 이렇게 우리말로 옮길 때의 미세한 정확성에서 크게 좌우된다.

 

어쨌든 종업원의 정치적인 야망에 별로 주눅이 들지 않은 카페 주인은 빗자루를 내주며 한마디. “Sure. You can start by sweeping the floor.”(아무렴. 그럼 가게부터 깨끗하게 쓸어보지 그래.)

 

 

그녀의 Hip, 그녀는 짝궁둥이?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slapstick을 ‘엎치락뒤치락하는 희극’이라고 정의했다. slapstick이라면 선방(禪房)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죽비처럼 나무 막대기 두 개를 묶은 딱딱이로, 희극 공연에서 서로 때리더라도 소리만 크고 별로 아프지 않은 무대 소도구였다. 그래서 자칫 slapstick이 시끄럽기만 한 ‘저질 코미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특히 할리우드 희극의 경우, 우리는 눈으로 동작만 보면서 그런 오해를 하기 쉬운데, 귀로 잘 들어보면 이들 ‘죽비 희극’의 대사 역시 상당히 차원이 높은 지적 문학성을 과시한다.

 

slapstick의 대가로서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막스 브러더스 영화 ‘풋볼대소동(Horse Feathers)’을 예로 들겠다. 신임 대학 총장 그라우초 막스에게 여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와서 전한다. “The Dean of Science says he’s tired of cooling his heels out there.”(바깥에서 기다리다 ‘발뒤꿈치가 얼겠다’고 이과대학장님이 그러시네요.)

 

cool [one’s] heels(발뒤꿈치가 식어버리다)는 구어로 면회나 면담을 위해 ‘지겹도록 오래 기다리다’, 그러니까 ‘진이 빠져 죽겠다’라는 뜻이다. 총장실 안에서 두 명의 교수를 불러다 앉혀놓고 한참 혼을 내던 그라우초가 cooling heels라는 표현을 그대로 되받아 여비서에게 pun으로 quip한다. “Tell him I’m cooling a couple of heels in here.”(나도 여기서 두 사람 ‘발뒤꿈치 얼리느라’ 바쁘다고 전해.)

 

그러나 여기서 ‘얼리는 발뒤꿈치’는 완전히 뜻이 달라서, cool은 속어로 ‘죽이다’ 또는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는 뜻이고, heel은 ‘비열한 녀석’이나 ‘못된 놈’을 가리킨다. 잠시 후에는 얼음을 들고 들어온 하포에게 그라우초가 꾸짖는다. “That’s a fine way to carry ice. Where are your tongs?”(한심하게 얼음을 들고 다니다니. 집게는 어디 두고 말야?) 야단을 맞은 하포가 “어디 두긴, 여기 있는데”라는 뜻으로 혓바닥을 내밀어 보인다. homophone(동음이의어)인 tong(집게)과 tongue(혓바닥)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하포가 헷갈린 것이다.

 

중요한 주의사항 하나. tong은 단수로 쓰면 한자 ‘당(黨)’에서 연유한 단어로서 ‘조합’이나 ‘결사’ 따위의 비밀단체를 가리킨다. 커다란 가위처럼 생긴 얼음집게는 꼭 복수형으로 tongs라고 써야 한다. scissors도 마찬가지여서, 꼭 복수형으로 써야 옳고, scissor는 ‘가위질하다’라는 동사나 ‘가위의’라는 형용사다. ‘바지’도 가랑이가 둘이어서 꼭 trousers라고 해야 하며, 그냥 trouser라고 하면 바지의 한 쪽 가랑이를 뜻하거나 ‘양복 바지의’라는 형용사가 된다. 안경 또한 알이 둘이어서 glasses라 해야 하고, 단수로 glass라고 쓰면 ‘유리’나 ‘술잔’이라고 의미가 달라진다. 역시 ‘안경’을 뜻하는 spectacles도 단수로 쓰면 ‘구경거리’가 된다.

 

정말 웃기는 한국 영어는 ‘힙’이다. 엉덩이는 두 개가 한 쌍이어서, 외국인과 얘기를 나눌 때는 꼭 복수형으로 hips라고 해야 한다. 엉덩이가 한 쪽뿐인 짝엉덩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냥 hip이라고 하면 속어로 ‘유행에 밝은(fashionable 또는 stylish)’이라는 엉뚱한 의미로 변한다. 한국사람들끼리 매우 자주 사용하는 수많은 국산 ‘영어’ 단어 가운데 하나인 ‘매너’도 마찬가지다. manner는 그냥 ‘방법’이라는 말이고, ‘예절’은 꼭 복수형으로 manners라고 해야 옳다.

 

또다른 장면에서는 그라우초가 서명이 없는 계약서를 보이며 하포를 꾸짖는다. “This is illegal. There’s no seal. Where’s the seal?”(이건 법적 효력이 없어. 날인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도장 어디 뒀지?) 그랬더니 하포가 나가서 물개를 안고 다시 들어온다. seal은 ‘도장’이면서 ‘물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임금님들이 국가의 상징으로 삼았던 ‘옥새’도 (royal) seal이며, 낙관(落款) 역시 seal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론 하포가 안고 들어온 ‘물개’도 seal이다.

 

노예선으로 끌려갔던 벤허가 해전이 벌어지는 동안 퀸터스 아리우스 제독의 생명을 구해주고 양자가 된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 복수를 위해 메쌀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seal이 무엇인지를 모처럼 구경할 기회를 얻는다. 선물로 멋진 단검을 받은 메쌀라가 “퀸터스 아리우스에게 아들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라고 하자, 벤허가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You are wrong, Messala”(자네가 잘못 알았지)라고 말하고는 필기판을 집어들어 손가락에 낀 반지를 콱 찍어 보여주며 묻는다.

 

“You know his seal?”(아리우스의 seal은 자네도 알아보겠지?) seal(封印)은 중요한 편지나 서류를 남들이 뜯어보지 못하게 붉은 밀랍을 녹여 봉한 다음에 찍는 ‘도장’을 의미하는데, 퀸터스 아리우스가 양자 벤허에게 물려준 것처럼 반지에 조각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문서답이 던져주는 재미

 

막스 브러더스 영화 ‘풋볼대소동’의 신임 총장 취임식 장면에서 그라우초 막스에게 아들 제포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Dad, let me congratulate you. I’m proud to be your son.”(아빠, 축하를 드리고 싶군요. 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그라우초가 즉석에서 quip한다. “My boy, you took the words right out of my mouth. I’m ashamed to be your father. You’re a disgrace to our family name of Wagstaff.”(얘야, 넌 내 심정을 정말로 정확하게 표현했어. 난 너 같은 아들을 두어서 창피하거든. 넌 우리 왝스태프 가문의 수치야.)

 

take the words right out of one’s mouth는 매우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내가 할 말을 내 입에서 네가 빼앗아가서는 대신 말했다”는 의미다. “내가 할 말을 네가 속 시원하게 다했다”거나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난 할 말이 없어졌다”는 식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두번째 문장은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기를 서슴지 않는 slapstick의 전형적인 quip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넘쳐나는 이른바 ‘네거티브’(smear campaign이 정확한 영어표현임)나 마찬가지로, 실생활에서는 가급적 삼가야 하는 공격적 표현이다. 세번째 문장에 나오는 이름 Wagstaff는 staff(선생님이 교실에서 사용하는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의 꼬리처럼 wag(삿대질을 하듯 좌우로 흔들다)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어떤 종류의 가문인지 쉽게 이해가 되겠다.

 

그라우초 총장과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던 델마 토드가 황홀한 마음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I would go on like this, drifting and dreaming forever. What a day. Spring in the air.”(꿈을 꾸며 떠내려가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황홀한 하루예요. 하늘에는 봄기운이 가득하고요.)

 

drifting and dreaming은 물론 두운이며, 세번째 문장에 나오는 in the air의 번역 때문에 필자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여기에서처럼 air를 ‘하늘’로 번역하면 쉽게 해결이 나는 경우가 많다. on the air는 ‘방송중’이고, on air는 ‘쾌활하게’다. 몽상에 빠져 토드의 말 끝마디만 들은 그라우초가 동문서답을 한다. “Who, me? I should spring in the air and fall into the lake?”(나더러 말인가요? 공중으로 튀어올랐다가 호수로 떨어지라고요?) spring은 계절로는 ‘봄’이요, 기계공은 ‘용수철’로 사용하고, 동사가 되면 용수철처럼 ‘튕겨오른다’다.

 

치코와 하포가 방에 갇히자, 치코는 마루바닥을 톱으로 동그랗게 뚫고 탈출하려다 우당탕 아래층으로 떨어진다. 무색해진 치코가 하포에게 pun으로 quip한다. “Well, partner, I think we made a grand slam.”(보라구, 여보게, 우리가 대성공을 거두었지.)

 

멀거니 번역하면 이렇게 하나도 우습지 않지만, 원문의 맛은 다르다. grand slam은 브리지놀이에서의 ‘압승’, 야구에서의 ‘만루 홈런’, 그리고 골프나 정구나 스키에서 주요한 대회를 모두 석권(싹쓸이)하는 경우를 뜻하고, 구어로는 ‘대성공’이라는 말로 통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고, ‘와장창 큰소리(grand slam)’만 내며 떨어져 아래층 방에 다시 갇히고 말았다. 반어적 pun의 quip이다.

 

speakeasy(미국 금주법 시절의 무허가 비밀 술집)의 주인이 문지기로 취직한 치코에게 지시한다. “Don’t let anyone in without the password. Swordfish is the password.”(암호를 모르면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암호는 ‘황새치’야.)

 

술을 마시러 찾아온 그라우초가 peephole(문에 뚫린 구멍)로 들여다보며 출입시켜달라고 부탁하자 치코가 암호를 대라면서 슬쩍 도와준다. “I’ll give you a hint. It’s the name of a fish.”(힌트를 주지. 암호는 물고기 이름이야.)

 

‘힌트’는 우리말로 무엇일까? cigar가 우리말로 ‘여송연’이라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몇명이나 될까? 옛날옛적 우리나라에서는 tennis를 ‘테니스’라 하지 않고 ‘정구’라고 했으며, handball은 ‘핸드볼’이 아니라 ‘송구’라고 말하며 창피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라우초가 귀띔(힌트)을 살려보려고 노력한다. “Is it Mary?”(메어리인가?) “That’s no fish.”(그건 물고기가 아냐.) “Yes, she is. She drinks like one.”(왜 아냐? 메어리는 물고기처럼 마시는데.) drink like a fish는 우리말로 “고래처럼 마신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술고래’는 그냥 ‘고래’나 마찬가지로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동물이다.

 

그라우초 총장이 기숙사를 허물어버리라니까 다른 교수가 묻는다. “Where will the students sleep?”(그럼 학생들은 어디서 잠을 자나요?) “They always sleep in the classroom.”(공부시간에 항상 잠을 자니까 상관없어.)

축구시합 중에 여송연(시가)을 피우는 그라우초 총장에게 심판이 불평한다. “What are you doing with that cigar in your mouth?”(여송연을 입에 물고 뭐하는 겁니까?)

 

“Why, do you know another way to smoke?”(왜 그래? 입에 물지 않고도 여송연을 피우는 다른 방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래도 ‘풋볼대소동’을 그냥 “엎치락뒤치락하는 저질 코미디”라고 깔보겠는가.

 

 

목 안에 개구리가 산다?

 

‘풋볼대소동’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도박사가 상대편 축구선수를 납치하러 가는 치코에게 묻는다. “Now how do we catch’em?”(그런데 놈들을 어떻게 잡아오지?)

 

하포가 파리를 잡는 대형 끈끈이를 보여주자 기가 막힌 도박사가 핀잔을 준다. “Oh, that’s for catching flies. Baseball players catch flies. We look for football players.”(그건 파리를 잡는 데 쓰는 물건이야. 야구선수들이나 파리를 잡지. 우리가 찾는 건 축구선수들이고.) 물론 두 번째 문장의 flies는 ‘파리’가 아니라 ‘뜬공’이다.

 

‘막스 4형제의 선상 대소동(Monkey Business)’에도 웃기는 파리들이 등장한다. 파리잡이 끈끈이를 깔고 앉아있는 치코를 보고 그라우초가 점잖게 타이른다. “Would you mind getting off that flypaper and giving the fly a chance?”(그 파리잡이에서 일어나 파리가 살아날 기회를 좀 주면 어떨까?)

 

치코는 충고를 받아들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그라우초의 말이 말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주저앉는다. “Oh, you are crazy. Flies can’t read papers.”(자네 미쳤구먼. 파리들이 어떻게 신문을 읽는단 말이야.) flypaper(끈끈이)는 fly(파리)의 paper(신문), 즉 “파리들이 읽는 신문”이라는 식으로 읽기도 가능하다.

 

밀항자를 잡으러 찾아다니는 항해사가 취사실로 들어와서 “I’m looking for a couple of mugs”(난 두 명의 못된 놈들을 찾아다니는 중인데)라고 하자 하포가 족기 두 개를 내놓는다.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족기’도 mug이고, ‘불한당’도 역시 mug다. mugger는 강도(robber)와 같은 말이며, mug shot은 현상범을 잡으려는 ‘수배 사진’을 뜻한다. 범죄자가 체포되면 번호판을 들고 다짜고짜 찍는 사진 말이다. 영국 속어로는 mug가 완전히 다른 신분으로 바뀌어, ‘공부벌레’가 된다.

 

소심해 보인다는 델마 토드의 말에 변호사 행세를 하던 그라우초가 반박한다. “You bet I’m shy. I’m a shyster lawyer.”(수줍고 말고. 난 수줍음이 많은 변호사거든.) 하지만 shyster는 youngster(젊은 사람)이나 gangster와 닮은 모양이어서 -ster(~하는 사람)라는 결합사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만 “수줍음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따름이고, 사실은 ‘책사(策士)’나 ‘사기꾼’이요, 구어로는 ‘악덕변호사’다. 겁 많은 사람은 shyer나 shier라고 한다.

 

놓친 개구리를 잡으러 찾아다니던 하포는 옆에서 목이 잠긴 환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 “I got a frog in my throat.”(내 목구멍에 개구리가 한 마리 들어앉았어요.) 하포가 얼른 환자의 입을 벌리고 들여다보지만, 개구리는 물론 없다. frog은 구어로 ‘쉰 목소리’고, have a frog in the throat은 “목이 쉬었다” 또는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는다”는 소리다.

마지막으로 ‘선상 대소동’의 재치가 넘치는 대사 한 마디만 더 들어보자. 폭력배 두목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초청을 받은 그라우초가 겁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Do you call this a party? The beer is warm, the women are cold, I’m hot under the collar.”(이따위 파티가 어디 있어? 맥주는 미지근하고, 여자들은 차갑고, 난 열을 받았단 말야.)

 

온도를 나타내는 세 단어 warm, cold, hot이 mismatch(궁합이 안 맞는 조합)를 이루어 웃음을 자아내는 표현이다. 맥주는 시원하고, 여자는 화끈(hot)하고, 손님은 기분이 느긋(cool)해야 하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엌에서는 하녀처럼, 외출하면 귀부인처럼, 침실에서는 창녀처럼 처신하는 아내를 얻으려던 남자가 부엌에서는 귀부인처럼, 침실에서는 하녀처럼, 그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하면 창녀처럼 행동하는 아내를 얻었다는 농담을 연상시키는 화법이다. 우리 문학에서도 이런 부조화의 화법은 애용되어서, 조선시대의 소설 ‘축빈설(逐貧設)’의 주인공 유비자는 “붓으로 밭을 갈고, 마음으로 천을 짜고, 벼루에 밥을 먹었다”고 한다.

 

hot under the collar는 “화가 나서” 또는 “흥분(당혹)하여”라는 구어체 표현이다. warm은 날씨를 나타낼 때, ‘따뜻한’이 아니라 ‘더운’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도입부에서 공항에 도착한 독일군 소령에게 클로드 레인스 경찰국장이 “You may find the climate of Casablanca a trifle warm”이라며 눈치를 살피는데, 이것은 아프리카 “카사블랑카의 기후가 약간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군요”가 아니라 “좀 덥겠군요”라는 의미다.

 

흑인 문학의 고전을 영화로 만든 ‘월터의 선택(A Raisin in the Sun)’에서 처음 집으로 찾아온 시누이의 남자 친구에게 루트가 하는 말에서는 그런 용법이 더욱 확실하다. “Warm, ain’t it? I mean for September. Just like they say about Chicago weather: If it’s too hot or cold for you, just wait a minute and it’ll change.”(덥지 않아요? 9월 치곤 말예요. 시카고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말마따나, 너무 덥거나 추울 때는 그냥 잠시 기다리기만 하면, 날씨란 바뀌게 마련이죠.)

 

 

 

코끼리가 내 잠옷을 입다니

 

double talk(겹대화)에 관해서는 필자가 따로 책을 펴낸 적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간단히만 언급하겠는데, 이것은 pun으로 quip하는 대화들 가운데 어떤 문장을 일부러 오역해서 사람들을 웃기는 기법이다. 그러니까 실수로 하는 동문서답이 아니라, 맹구나 영구 식으로 똑똑한 바보짓을 하는 해학이다. 오늘은 막스 4형제의 영화에 나오는 대화를 다루는 마지막 대목으로서, 바로 이 겹대화의 예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둔 희극을 재탕하여 1930년에 영화로 만든 ‘동물비스킷(Animal Crackers)’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How much would you want/to/run into an open manhole?”

 

이 문장은 to의 앞에서 끊어 번역하면, “자넨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지기를/얼마나 원하는가?”라는 뜻이다. 제대로 번역하자면, “자넨 뚜껑이 없는 맨홀에 빠지고 싶은 생각은 없겠지?”라고 묻는 말이다. 하지만 to의 다음에서 문장을 끊으면, “자넨 뚜껑이 없는 맨홀에 빠지는 대가로/얼마를 받고 싶은가?”라는 엉뚱한 말이 된다.

 

중·고등학교에서 문장을 잘못 잘라놓고 억지로 해석하면 의미가 삼천포로 빠지는 예를 영어시간에 몇 가지쯤은 공부를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에서도 “아버지가 방에 들어간다”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간다”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위 예문을 듣고 영화에서는 이런 대답이 나온다. “Just the cover charge.” 우리나라 사전들을 찾아보면 cover charge를 “레스토랑 등의 서비스료”라는 식으로 풀이해 놓았는데, “식대와 술값에 붙어 나오는 고정된 금액”이기 때문에 “기본요금”이라고 해야 알아듣기가 더 쉽겠다. 나아가서 이 말은 “원가(만 받겠습니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double talk로 “덮는 가격,” 즉 (맨홀을 덮는) “뚜껑 값”이라는 말도 된다.

 

“뚜껑 값만 주시면 기꺼이 빠지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받아서 겹대화는 이런 말로 이어진다. “Well, drop in some time.” 물론 이것은 “그렇다면 만족할 만한 조건이니 나중에 한 번 들르게”라는 뜻이다. drop in이 “시간이 날 때 방문하다”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렇다면 언제 한 번 구멍에 빠져보게나”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동물비스킷’에는 이런 double talk도 나온다. “One morning I shot/an elephant/in my pajamas. How he got into my pajamas* I’ll never know.” (* 앞에서 hips, trousers, glasses의 경우를 설명했지만, pajama 역시 복수형으로 써야 한다. 영국영어에서는 pyjamas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끝난 ‘올림픽’도 경기나 행사를 말할 때는 꼭 Olympics라고 복수형으로 써야 한다. Olympic은 ‘올림포스 산의’나 ‘올림픽 경기의’ 또는 ‘올림피아 평원의’라는 형용사이고, 명사로는 ‘올림포스의 신’을 뜻한다. 경기를 뜻하는 명사는 Olympics나 Olympic games 또는 Olympiad라고 해야 한다.)

 

예문에서 첫 문장은 elephant의 앞과 뒤에서 문장을 자르는 차이에 따라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옷 바람으로 나가 코끼리를 총으로 쐈다”와 “어느 날 아침 나는 내 잠옷을 걸친 코끼리를 쏘았다”라고 의미가 달라진다. 웃기기 위해서 영화는 두 번째 의미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코끼리가 어쩌다 내 잠옷을 입었는지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이라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풋볼대소동(Horse Feathers)’에는 이런 double talk이 나온다. “There’s a man outside with a big black moustache.”(덩치가 크고 검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밖에 와 있는데요.)

 

집으로 찾아온 사람은 “검은 콧수염을 기른 방문판매원”이다. 하지만 속성을 나타내는 전치사 with를 짓궂게 오역하면 “크고 검은 콧수염을 가지고 어떤 남자가 밖에 와 있는데요”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런 웃기는 대답이 나온다. “Tell him I’ve got one.”(나 벌써 있다고 그래.) 번역 내용이 무슨 소리일까 싶어할 테니까 설명하겠는데, one은 a big black moustache를 뜻한다. 그래서 이런 번역이 가능하다. “나도 검정 수염은 있으니까, 안 산다고 그래.”

 

‘경마장의 하루(A Day at the Races)’에서는, double talk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지만, 비슷하게 웃기는 대화도 나온다. 흥분한 여자가 애원한다. “Closer…hold me closer…”(더 꼬옥…나를 더 꼭 안아줘요…) “If I hold you any closer, I’ll be in back of you!”(더 끌어안았다가는 내가 당신 뒤쪽으로 뚫고 나가겠어!)

 

 

 

은근히 약 올리는 되받아치기

 

quip은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서 못지 않게 약을 올리는 재주로도 활동하는데, 은근하고도 완곡하지만 공격적으로 쓰이는 quip 화법 가운데 하나가 retort(받아치기)이다.

 

‘반박(refutation)’ ‘말대꾸’ ‘앙갚음’ ‘역습’ ‘보복’을 의미하는 retort에서 재귀성(再歸性) 접두어인 re-를 떼어낸 tort는 법률용어로 ‘불법행위’를 뜻하기도 하지만, ‘비틀다(twist)’라는 의미의 라틴어가 어원으로서, distort는 글이나 말 따위의 내용을 ‘왜곡하다’ 그리고 contort는 얼굴 표정 따위를 ‘일그러뜨리다’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retort(되꼬다)는 모욕적인 행위나 epithet(모멸적인 말)를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 비슷한 모욕 행위나 모멸적인 말을 그대로 되돌려 (갚아)준다는 의미다.

 

‘천국의 사도(Heaven Can Wait)’에서는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사후세계로 잘못 끌려간 워런 비티가 방금 죽어 아직은 쓸 만한 타인의 몸을 빌려 세상으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적당한 대상을 찾아내기가 힘들어 자꾸 짜증을 낸다. 고생스럽게 함께 ‘마음에 드는 시체’를 찾아 헤매던 천국의 안내자도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고, 그래서 결국 비티에게 화를 낸다.

 

“I can’t even think of how to retort something as ridiculous as your turning down the body.”(자네가 몸뚱어리를 거부하는 행동처럼 그렇게 한심한 태도에 대해서 뭐라고 말대꾸를 하면 좋겠는지 난 생각조차 못하겠어.)

 

괄호 안의 번역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가능한 한 일부러 ‘직역’을 해놓았는데,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은 이런 식이 되겠다. “송장(=몸뚱어리)을 놓고 좋다 싫다 자네처럼 말이 많으면 난 도대체 어떻게 짜증을 부려야 좋을지 모르겠구먼.” 이렇게 ‘말대꾸(retort)’를 ‘짜증’으로 바꿔 번역해야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은 retort가 짜증이나 화가 난 상황에서 자주 활용되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에일리언 2(Aliens)’에서는 이러한 retort 화법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살펴보자. 근육질의 여성 전투대원에게 남성 해병이 노골적으로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Have you ever been mistaken for a man?”(혹시 당신을 남자라고 잘못 보는 사람은 없던가요?) 그러자 여성 대원이 짤막하고도 통쾌하게 retort한다. “No. Have you?”(아뇨. 당신은 어때요?)

 

여성대원의 반박에서는 ever been mistaken for a man(혹시 남자라고 잘못 보는 사람이 하나라도 없었나)이라는 긴 내용이 생략되었다. 그래서 이 짤막한 retort에는 “너도 불알은 달렸다고 자기가 남자인 줄 아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여자만도 못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좀팽이(wimp)여서,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너를 여자라고 생각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누가 널 남자로 잘못 보는 경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라고 비꼬는 깊은 뜻이 담겼다.

 

이렇게 상대방이 한 말을 의미만 뒤집어서 그대로 반복하여 되쏘는 retort는 1950년대 할리우드 활극영화에서 대단히 애용되던 되받아치기 기법이었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그런 받아치기에 해당되겠다.

 

‘기찻길 아이들(The Railway Children)’에서 아버지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가족이 시골로 이사한다. 그런데 역으로 그들을 마중 나온 마부가 말끝마다 “I daresay”(감히 말씀드리자면=아마 그렇겠죠=여부가 있겠습니까)라는 소리를 하자 짜증이 난 어머니가 retort한다. “If you say ‘I daresay’ once more, I will have hysterics, I daresay.”(당신이 “감히 말씀드리자면”이라는 소릴 한 번만 더 하면 내가 돌아버리겠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어요.)

 

종교인의 독선과 위선을 충격적으로 묘사하여 단편소설이면서도 걸작 고전이 된 서머셋 모옴의 ‘비(Rain)’를 영화로 만든 ‘비에 젖은 욕정(Miss Sadie Thompson)’에서, 환락가의 여인 리타 헤이워드를 첫눈에 보고 못마땅해하는 선교사 호세 페러가 친구들에게 독설을 시작한다.

 

“I know the look of immorality when I see it.”(난 부도덕은 한눈에 알아보지.) 페러를 늘 못마땅해하는 의사가 옆에서 빈정거린다. “And I know the sound of intolerance when I hear it.”(그리고 난 편협함의 소리는 한 번만 들어도 알아.)

 

선교사가 말끝(tag)에 붙인 when I see it과 그 말을 그대로 흉내 낸 의사의 when I hear it은 대화에서 앞부분의 진술 내용을 강조하는 뜻으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니까, I know ~ when I see(hear) it이라는 문장 형식을 잘 알아두기 바란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요즈음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는 오락물을 보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어휘와 표현을 뒤집고, 변형시키고, 튀겨내어 대화를 이어나가는 젊은이들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것은 혼자서 말솜씨를 부리는 웅변이나 서술적 수사학보다는, 대화에서 타인들이 전개하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즉흥적 기교를 필요로 하는 화법이다.

 

이런 주고받기 화법 가운데 하나인 예측불허 retort의 걸작 예문들이 가득한 영화를 꼽자면 ‘캐치-22(Catch-22)’가 대표작이 되겠다. 이 영화의 원작인 조셉 헬러 소설의 제목으로 쓰였던 ‘catch-22’라는 말은 이제 보통명사가 되었는데, 영한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희생자는 보상받지 못한다는 딜레마, 곤경, 꼼짝 못하는 부조리한 상황”이라는 식으로 풀어 놓았다. 하지만 catch-22는 그렇게 간단한 설명으로 이해가 갈 만한 표현이 아니다.

 

우선 catch라는 단어에 어떤 catch(함정)가 꼭꼭 숨어 다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거의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catch에도 “붙들자, 잡다, 쥐다”라는 기본적인 의미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활용되는 몇 가지 다른 용법이 있다. 이렇게 말이다.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에서는 딸 나탈리 우드가 워런 비티와 결혼하기를 바라면서 어머니가 “He’d be the catch of a lifetime, dear”라고 말한다. “그 애를 잡으면 일생일대의 횡재나 마찬가지란다”라는 뜻이다.

 

catch는 낚시에서 “잡은 물고기”를 뜻하고, catch of a lifetime은 “평생 최고의 대어(大漁)”다. 향토문화를 다루는 방송에서는 큰 물고기를 보면 젊은 방송인들이 무작정 ‘월척(越尺)’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우리말도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월척’은 붕어 오직 한 가지 물고기에만 적용된다. 뱀장어나 바닷고기는 작은 새끼들 중에도 ‘월척’이 부지기수여서, ‘월척’이라는 명칭이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어쨌든 위 예문에서도 catch는 잡거나 낚는다는 개념에서 발전한 ‘대박’의 의미가 강하지만, ‘백악관 탈출(The President’s Analyst)’에서는 그 성격이 좀 달라진다. 대통령이 심한 긴장감에 시달린다는 백악관 전속 정신과의사 제임스 코번의 얘기를 듣고 그의 무식한 애인 조운 딜레이니가 걱정한다. “Anxieties ―are they catching?”(불안감이라는 그거―혹시 전염되는 건가요?) 이것은 사람이 병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병이 “사람을 잡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나 catch의 여러 의미 속에 숨겨진 가장 기막힌 catch는 catch-22에서 발견된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catch인지를 설명하겠다.

 

미국에서 말론 브랜도, 폴 뉴먼, 제임스 딘이 반항의 시대를 열어가던 1950년대에 영국에서는 Angry Young Men(성난 젊은이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영국 반항아의 이기적이고 소외된 삭막한 삶을 통렬하게 그려낸 소설이 존 브레인(John Braine, 1922~86)의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브레인이 57년에 발표한 대표작을 영화로 만든 ‘산장의 밤(Room at the Top)’에는 돈과 출세밖에 모르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로렌스 하비는 중년의 유부녀 시몬 시뇨레와 관능적인 불륜의 관계를 계속하면서도 출세의 기회를 노리며 부잣집 딸과 결혼하기 위해 해더 시어스를 끈질기게 유혹한다. 이런 사악한 의도를 파악한 시어스의 아버지가 로렌스 하비를 단둘이 만나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자 하비가 묻는다. “Is there a catch somewhere? Are you trying to buy me off?”(무슨 함정이라도 숨겨져 있나요? 날 돈으로 매수할 속셈인가요?) 여기에서 catch는 미끼 속에 숨겨진 낚싯바늘이나 생선을 먹다가 목에 걸리는 가시처럼, 자칫하면 톡톡히 손해를 보게 만드는 상황이나 물건, 즉 “걸고 넘어가는 숨겨진 함정”을 뜻한다.

 

낭만적인 희극 ‘휴가(Holiday)’에서도 catch의 비슷한 용법을 선보인다. 인생을 어느 만큼은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캐리 그랜트가 캐서린 헵번에게 털어놓는다.

 

“I want to save a part of my life for myself. And there’s a catch to it, though. It’s got to be a part of the young part.”(난 인생에서 나 자신을 위해 한 토막은 떼어두고 싶어. 그리고 거긴 조건이 하나 따라붙지. 그 토막은 젊은 시절의 한 토막이어야 한다는 거지.) 이쯤 되면 catch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까다로운 조건”임이 분명해진다.

 

한 가지 예를 더 들겠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A Matter of Life and Death)’에서 불타는 비행기와 함께 추락하던 데이빗 니븐이 지상에서 근무하는 미국 여군 킴 헌터와 무전 교신을 한다.

 

“Yes, June, I’m bailing out, but there’s a catch. I‘ve got no parachute.”(그래요, 준, 난 뛰어내려야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난 낙하산이 없어요.) 이 ‘문제’는 정말로 예사롭지 않은 문제다. 낙하산이 없는 니븐은 뛰어내려도 죽고, 뛰어내리지 않아도 죽어야 할 상황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catch-22다.

 

 

미칠 수도 정상일 수도 없어

 

‘캐치-22’에서 군의관 잭 길포드가 주인공 앨런 아킨 대위에게 반문한다. “You can’t let crazy people decide whether you’re crazy or not, can you?”(누가 미쳤는지 아닌지를 미친 사람들더러 스스로 판단하라고 할 수야 없는 노릇이잖아?) catch-22 라는 겹개념의 골자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포드는 아킨에게 이런 식의 설명도 한다. “There’s a catch. Sure. Catch-22. Anyone who wants to get out of combat isn’t really crazy, so I can’t ground him.” (함정이 있지. 있고 말고. 캐치-22 말야. 전투에서 빠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진짜로 미친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난 그 사람을 지상근무로 빼낼 수가 없어.)

 

미국이 아니고서는 출판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반전소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캐치-22’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공군 폭격 비행대대의 온갖 미치광이들에 관한 얘기다. 계속 늘어나는 의무적인 출격 횟수 때문에 점점 죽음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칠 지경이 된 그들은 전투 임무에서 면제되기를 바라는데, 군법에서는 Catch-22가 바로 그 면제 조건에 관한 조항(catch)이다. 그렇다. catch에는 ‘항(項)’이라는 뜻도 있다.

 

아킨이 설명하는 22항의 내용을 들어보자. “In order to be grounded, I’ve got to be crazy. I must be crazy to keep flying. But if I ask to be grounded, that means I‘m not crazy anymore, and I have to keep flying.” (지상근무를 하려면 내가 미쳐야 하는군요. 비행을 계속한다면 난 분명히 미친놈이죠. 하지만 지상근무를 신청한다면, 난 더 이상 미친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비행을 계속해야 하고요.) “You got it. That’s Catch-22.”(맞았어. 그게 22항이야.)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자에게 22항에 담긴 catch(함정)의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미쳤다”고 증명할 만큼 논리적이라면, 그 사람은 전혀 미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미쳤음’을 증명하는 사람은 출격 임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면제를 받으려면 본인이 스스로 미쳤음을 증명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22항의 다람쥐 쳇바퀴 논리다.

 

이 영화에서 부관으로 근무하는 오손 웰스 장군의 사위는 워낙 말참견이 심해서, 웰스 장군이 그에게 핀잔을 주는데, 여기에서도 catch-22 화법이 나타난다. “When I want an answer from you, I’ll look at you, which will be as seldom as possible.”(귀관에게서 대답이 듣고 싶어지면 내가 눈길을 주겠는데, 가능하면 최대한 그런 불상사는 없도록 노력하겠네.)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을 비비 꽈서 전하는 쳇바퀴 의사표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무능함이 탄로날까봐 두려워서 밥 뉴하트 소령은 동료 장교들을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고 창문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가 늘 이리저리 도망다니는데, 그의 괴팍함에 대해서 군목 앤토니 퍼킨스 대위는 앨런 아킨 대위에게 catch-22 식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You can see him when he isn’t there. That is, he’ll see you but only in his office and only when he is not there. The other times, when he’s in, he’s not, uh … there … to be seen except when he’s out.” (그가 사무실에 없을 때만 사람들은 그를 만날 수 있어. 무슨 뜻이냐 하면, 그는 사무실에 있지 않을 때만, 그것도 사무실에서만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거야. 다른 때는, 그가 사무실에 있을 때는, 뭐냐 … 그 친구가 사무실에 없기 때문에 … 외출했을 때가 아니고는 그 친구를 사무실에서 만날 길이 없지.)

 

그리고 “안녕하냐?”고 묻는 앨런 아킨에게 앤토니 퍼킨스는 역시 catch-22식 대답을 둘러댄다. “Except for a slight head cold. Had it for about a week. Can’t seem to shake it.”(감기에 걸려 약간 두통이 나는 이외엔 별일 없어. 한 주일이나 앓았구먼. 이놈의 감기가 통 떨어지려고 해야 말이지.)

 

한 주일이나 감기에 시달렸다면 절대로 ‘안녕’한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희한한 catch-22 대화는 미국의 위대함을 과신하는 아더 가펑클(*가수 아트 가펑클. Art은 Arthur의 애칭임)과 이탈리아인 늙은 포주가 주고받는다.

 

이탈리아인 포주의 주장이다. “Italy will certainly come out on top again, if we succeed in being defeated.”(우리들이 만일 패배하는데 성공한다면, 이탈리아는 분명히 다시 이기고 말 거예요.) 이것이 무슨 뚱딴지 같은 논리인지는 다음 주일에 설명하겠다.

 

 

 

진짜 솜으로 만든 솜사탕

 

‘캣치-22’에서 미국의 위대함을 과신하는 아서 가펑클은 “패배해야 승리한다”며 뒤집어지는 논리를 펼치는 이탈리아 노인을 “미친 사람 같다”고 코웃음 친다. 노인은 이탈리아가 승리하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I live like a sane one. I was a fascist when Mussolini was on top. Now that he has been deposed, I am antifascist. When Germans were here, I was fanatically pro-German. Now I am fanatically pro-American.”

 

(난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간다고. 무솔리니가 이길 땐 난 파시스트였어. 그 친구가 쫓겨났기 때문에 난 파시스트의 적이 되었지. 독일군*이 이곳에 진주했을 땐, 난 열광적으로 독일을 지지했어. 지금은 난 열광적으로 미국 편이고.) *전쟁 영화에서는 Germans를 ‘독일인들’보다 여기에서처럼 ‘독일군’이라고 번역해야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애국심이 투철한 아서 가펑클은 항상 이기는 편에 붙는 이탈리아 노인을 힐난한다. “You’re a shameful opportunist. What you don’t understand is that it’s better to die on your feet than to live on your knees.” (당신은 치사한 기회주의자예요.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무릎을 꿇고 살아가기보다는 당당하게 서서 죽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에요.) “You have it backwards. It’s better to live on your feet than to live on your knees.”(자넨 거꾸로 알고 있구먼. 서서 살아가는 편이 무릎을 꿇고 살아가기보다 낫다는 얘기겠지.)

 

국제 암시장 신디케이트를 운영하는 존 보이트 소위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독일군에게 뇌물을 주어 아군 부대를 폭격하게 만드는 짓까지 불사하는 인물인데, 잔뜩 사놓은 솜을 처분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솜에다 초콜릿을 발라서 병사들에게 팔아먹으려는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앨런 아킨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They’ve got to learn to like it. Look, I saw this great opportunity in Egyptian cotton. How was I supposed to know there was gonna be a glut? I’ve got 100 warehouses stocked with this stuff all over the European theater. I can’t get rid of a penny’s worth. People eat cotton candy, don’t they? Well, this stuff is better. It’s made out of real cotton.”

 

(병사들이 그걸 좋아하도록 길을 들여야만 합니다. 말이죠, 난 이집트 솜이 큰 돈벌이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공급 과잉이 발생하리라는 걸 내가 도대체 어떻게 알았겠어요? 난 유럽 전투지역 여기저기 100군데 창고에 이 물건을 꽉꽉 비축해 놓았어요. 그런데 난 그걸 한 푼어치도 처분할 길이 없답니다. 사람들은 솜사탕을 먹잖아요? 한데 이건 솜사탕보다 훨씬 좋아요. 진짜 솜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보이트의 대사 가운데 gonna(=going to)는 wanna(=want to)와 더불어 구어체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니까 꼭 알아둬야 한다. 하지만 별로 고상한 말은 아니니까 점잖은 자리에서는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란다.

 

‘보다(to see, view)’를 뜻하는 그리스어 theatron이 어원인 theater(극장, 영국영어에서는 theatre라고 적음)는 “사건이 벌어지는 모든 곳”으로서, 종군기자들의 글에서는 “여러 작전이 벌어지는 곳(scene of operations)”을 의미한다. 군대를 잘 모르는 여성 번역가들이 자주 실수를 하는 대목이지만, 전투는 그 규모에 따라 명칭이 모두 달라서, 소대 이하의 작은 ‘교전’은 skirmish나 firefight라 하고, 중대 규모의 ‘전투’는 combat이고, 중대 이상의 ‘작전’은 operation이고, 대규모 전투는 battle이며, operation의 책략을 tactic(전술)이라고 하는 반면, 대규모 전투를 위한 ‘전략’은 strategy다.

 

다국적군이 참가하는 정도의 국부적인 전쟁은 campaign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가운데 일본군이 벌인 ‘태평양 전쟁’은 the Pacific Campaign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전투가 벌어진 유럽의 모든 지역은 the European theater가 된다. 이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만, 여기에서는 이왕 선을 보인 theater의 두 가지 경우만 짚고 넘어가겠다.

 

‘두상의 적기(Twelve O’Clock High)’에서 병력 보충을 요구하는 그레고리 펙 비행대대장에게 사령관이 반박한다. “Every theater commander is screaming for crews and equipment.”(모든 전투지의 지휘관이 장비와 인원을 보충해 달라고 아우성이야.)

 

theater가 어떻게 달리 번역이 가능한지도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의 자막 해설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We tell a story out of one of the wildest theatres of World War I ― the snow-capped Alpine peaks and muddy plains of northern Italy.”(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지 가운데 한 곳 ―북부 이탈리아의 질퍽한 평원과 백설로 덮인 알프스 정상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한 가지를 전하려고 한다.)

 

 

재치 넘치는 빗대어 표현하기

 

신문로의 어느 돼지고기집 간판을 보니 옥호가 ‘돈이돈이’다. “돈(豚·돼지)이 돈(錢)이다”라는 뜻인 듯싶다. ‘돈’이 곁말하면서 두운까지 자동적으로 맞는 절묘한 표현이다. 어느 일간지의 기사 제목을 보니 “제철 만난 현대제철 ‘철 박사들’”이다. 역시 곁말의 묘기다. 그리고 어떤 전화 광고에서는 아버지가 “너 대통령 되면 나 뭐 시켜줄래?”라고 물었더니 일곱 살 아들이 “탕수육!”이라는 명답을 한다. 이렇게 우리말에서도 조금만 신경을 써서 둘러보면 곁말의 재치가 사방에서 앞다툰다.

 

‘히피가 된 변호사(I Love You, Alice B. Toklas)’에서는 초보 히피 피터 셀러스가 새로 단장한 집의 bar에 간판을 걸어 놓았는데, “Loading Zone”이라고 했다. loading zone은 본디 화물차나 기차나 항공기 그리고 선박 따위가 “짐을 싣는 곳”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사용된 곁말로는 “술 퍼마시는 곳”이라는 뜻이 된다. 속어로 load가 “한껏 마신 양의 술(jag)”이나 “엄청나게 많은 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문으로 확인해 보자.

 

‘육체와 영혼(Body and Soul)’에서 고민에 휩싸여 술을 잔뜩 마시고 길거리를 방황하던 권투선수 존 가필드가 집으로 찾아가자 여가수 헤이즐 브룩스가 걱정한다. “It’s the night before the fight, 3 a.m., and you’re loaded.”(지금은 시합 전날 밤 새벽 3시인데, 당신은 아주 곤드레만드레로군요.)

 

제목부터가 참으로 노골적인 희극영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How to Marry a Millionaire)’에서 마릴린 먼로가 돈많은 남자들의 행태에 대해 로렌 바콜에게 이런 도움말을 준다. “They’re getting more and more nervous, especially the loaded ones.”(남자들, 특히 엄청부자들은 점점 더 신경이 예민해지는 모양이에요.)

 

‘카이버 결사대(King of the Khyber Rifles)’의 원제에도 곁말이 담겼다. King이라니까 카이버 소총대(小銃隊)의 ‘왕’이라는 소리 같지만, 사실은 주인공 타이론 파워의 극중 이름이 ‘킹’이다.

 

‘겟 쇼티(Get Shorty)’에서는 대니 드비토가 유명한 배우 Martin Weir(마틴 위어)의 역을 맡았는데, 그의 자서전 제목이 Weir’d Tales다. “위어의 이야기들”이라는 이 제목은 weird tales(불가사의한 이야기들)를 겨냥한 곁말이다.

 

정말 촌스러우면서도 weird하게 감동적인 음악영화 ‘도시의 카우보이(비디오 제목임)’는 원제가 Pure Country다. “진짜 컨추리 음악”이라는 뜻과 “순수한 시골”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기막힌 제목이다.

 

미래모험극 ‘바바렐라(Barbarella)’를 보면 Ping 박사가 pen을 달라고 하니까 천사 Pygar가 그의 날개에서 깃털을 하나 뽑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영문일까?

 

잉크를 금속 촉으로 찍어서 글을 쓰는 ‘펜’은 이제 옛시대의 유물이 되어서, 지금 아이들은 pen(펜촉)이 무엇인지도 모를 듯싶다. 그리고 pen이 생겨나기 전인 중세에는 사람들이 quill을 펜으로 사용했었다. quill은 꿩이나 닭 같은 조류의 깃에서 털이 가지런히 달라붙은 부분으로, 뼈처럼 단단하고 속이 빈 ‘대’를 뜻한다. 그래서 drive the quill이라 하면 “글을 써내려간다”는 뜻이고, ‘문필가’를 고상한 영어로 quiller라고 한다.

 

날개(wing)는 깃털(feather)로 이루어졌고, feather의 깃대가 quill이라는 뜻인데, plume 역시 ‘깃털’이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깃털인 듯싶어도 영어로는 plume이라고 하면 feather나 quill과 조금 의미가 다르다. plume은 장식용 깃털의 의미가 강해서, 삼총사가 멋을 내려고 모자에 달고 다니는 그런 깃털을 plume이라고 한다. 사람에게는 달려 있지 않은 새의 깃털을 뽑아 달고 다니며 잘난 체하는 꼴이 우스워서인지 borrowed plumes(빌려온 깃털)는 “빌려 입은 옷”이나 “남에게서 빌린 지식”이라는 의미가 된다. 신정아 사건에서처럼 가짜 학위로 행세를 하거나 표절한 글을 내돌리는 행위, 그리고 성형수술을 한 얼굴이나 심지어는 짙은 화장을 한 사람도 모두 borrowed plumes 집단이라고 하겠다.

 

‘오스틴 파워스(Austin Powers: International Man of Mystery)’의 도입부에서는 명첩보원인 주인공을 영국 국방부 Cyrogenic Storage Facility(냉동 저장소)에서 되살려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여자가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Stage Five, evacuation begins.”

 

희극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첩보영화에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관객은 evacuati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피’나 ‘피난’ 또는 ‘후송’이라는 군대용어를 자동적으로 연상한다. 하지만 벌거벗은 마이크 마이어스는 변기를 향해 돌아서서 오랜 냉동기간 동안 몸속에 얼어서 축적되었다가 녹아내린 소변을 좔좔 쏟아낸다. evacuation에는 ‘배설’이나 ‘배출’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evacuation의 어간을 이루는 동사 vacate(비우다)는 자리를 비우고 “vacation(휴가)을 가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의도하지 않은 음담패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이 원작인 희극물 <아바나의 첩보원>(Our Man in Havana)에서 대책없는 알렉 기네스를 첩보원으로 발탁했다가 낭패를 본 영국 정보부가 고민에 빠지고, 직원 노엘 카워드는 랄프 리처드슨 국장에게 이런 보고를 한다. “Loss of those two, sir, will create a little vacuum.”(그 두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국장님, 공백이 좀 생기겠군요.)

 

국장이 그를 빤히 쳐다보자 카워드가 당황해서 재빨리 사과한다. “I’m most frightfully sorry, sir, I haven’t really intended to make a pun.”(굉장히 끔찍하게 죄송합니다, 국장님, 정말이지 전 말장난을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카워드가 난처해진 까닭은 그들이 실수로 포섭했던 엉터리 사기꾼 첩보원 기네스의 직업이 vacuum cleaner(진공청소기) 판매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우발적인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계획하지 않았던 웃음을 자아내게 되는 상황을 unintended joke(의도하지 않은 농담)라고 한다. 때로는 이런 뜻밖의 실언이 상대방에게는 대단한 모욕으로 전해지기도 하니까 조심해야 한다.

 

이런 unintended joke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한국 여성이 해외여행을 하느라고 출입국관리소에서 서류를 작성하다가 ‘sex(性別=gender)’라는 항목을 보고 냉큼 적어 넣었다. “Twice a week.”(일주일에 두 번.)

 

혹시 재수가 좋아서 상대방이 호응을 하는 경우에 수작을 걸어보려는 엉큼한 떠보기 속셈으로 sex(ual) joke(성적인 주제를 다룬 농담)를 하는 치사한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그런 사람(특히 남자)들이 은근한 음담패설을 할 때는, 거절을 당하더라도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너무 야해서 역효과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조심하는 태도로 내던지는 음담패설은 intended joke(계산된 농담)에 속한다.

 

그런 농담에서는 nuance(미묘한 뒷맛)가 복잡한 얼개 속으로 잠복하는 어려운 화법이 진가를 발휘한다. 암시적인 요소가 강한 nuance와 비슷한 화법인 innuendo(비꼬기)는 “무엇인가를 암시하기 위해 머리를 끄덕인다”는 뜻의 라틴어 innuere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부정적인 측면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빈정거림’을 의미한다. innuendo와 비슷한 insinuation(넌지시 비치는 암시)은 누군가의 호감을 사거나 모함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다. 단어의 한가운데 박힌 sin의 의미를 참조하기 바란다.

 

sin과 동족인 crime(범죄)으로부터 파생한 incrimination(죄를 씌움)은 insinuation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모함하려는 의도적인 적대행위다. 그리고 법정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self-incrimination은 증언 따위를 잘못해서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는 경우”를 뜻한다.

 

지금까지 소개한 어휘군과 모양이 퍽 비슷한 intimation 역시 ‘넌지시 비춤(hint)’을 뜻하는데, intimate(친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귀띔’을 연상하면 되겠다. 영화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과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서 주인공들이, 그리고 필자를 포함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암송하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시는 제목이 <어린 시절 추억의 불멸성이 남긴 자취(=흔적·intimations)에 대한 송가>(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다.

 

어휘력키우기(proliferation)에 열중하다 보니 얘기가 삼천포까지 흘러와버리고 말았는데, 아무튼 엉큼한 작업을 거는 화법이라면 007 제임스 본드를 누가 당하랴 싶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에서 숀 코너리는 훔친 카세트 테이프를 질 세인트 존의 비키니 아랫도리 엉덩이에 몰래 찔러 넣으며 능글맞게 말한다. “Your problems are all behind you, you know.”(당신의 모든 골칫거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 알겠죠?)

 

무엇인가를 “behind(뒤)에 남겨둔다”는 말은 흔히 고민거리 따위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하자”는 암시를 담은 표현인 경우가 많다.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일대기를 그린 <로즈>(The Rose)에서 마약을 주사한 자국이 팔에 없다고 보여주는 베트 미들러에게 기획자 앨런 베이츠가 “That’s all behind us, see?”라고 한 말은 “그건 우리에겐 모두 과거지사야, 알겠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코너리의 엉큼언어로는 behind you가 “당신 궁둥이에 붙었다”는 뜻이다. behind는 완곡한 구어로 ‘엉덩이(뒤쪽)’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마 레이>(Norma Rae)에서는 흙장난하는 아들을 샐리 필드가 이렇게 야단친다. “Look at your behind. Dirty.”(네 엉덩이 좀 봐. 더럽잖아.) 007 엉큼언어는 다음주에도 계속된다.

 

 

야릇한 뒷맛 남는 인체 곁말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어느 장면을 보면 바닷가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자에게 숀 코너리가 능글맞게 말한다. “There’s something I’d like to get off your chest.”

 

참으로 아리송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have(=get) ~ on one’s chest(~을 가슴에 얹어놓다)는 구어로 “마음에 걸리다” 또는 “~을 부담스럽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off one’s chest라면 “마음에 걸리던 ~를 훌훌 털어버리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예문은 “당신 마음에서 털어내고 싶은 무엇이 있는데”라는 뜻이어서, “당신에게 무언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말로 풀이가 된다.

 

하지만 엉큼한 코너리의 사전에서는 틀림없이 “당신 가슴에 얹힌 무엇, 즉 브래지어를 벗겨보고 싶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된다. 007은 여자의 브래지어를 풀어서 목을 조이며 정보를 대라고 다그친다. 여자로서는 참으로 좋다가(?) 말았다.

 

같은 영화에서 얼핏 지나가는 장면인데, 도박장에서 “나한테 카드를 달라”는 뜻으로 어떤 손님이 “Hit me”라고 했더니, 뒤에서 어떤 남자가 덮쳐 주먹질(hit)을 한다. 자신의 브래지어로 목이 졸리는 여자만큼이나 황당한 처지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에서는 마이크로필름을 사겠다는 제임스 본드에게 늘씬한 소련 여첩보원 트리플 X를 가리키며 이집트 술집의 주인이 능글거린다. “It seems you have a competition, Mr. Bond, and I fancy you’ll find the lady’s figure hard to match.”(보아하니 당신한테는 경쟁자가 생겼는데요, 본드씨, 내가 보기엔 아가씨가 제시하는 액수를 당신으로서는 당하기가 어렵겠는데요.)

 

figure는 돈의 ‘액수’라는 말이지만, 이 경우에는 곁말로 여성의 ‘몸매’를 암시한다. 만일 여첩보원이 몸(figure)을 제공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아무리 많은 액수의 돈(figure)을 제시하더라도 남자인 코너리로서는 match(경쟁상대)가 되기 어렵다. 예문에 등장하는 동사로서의 fancy는 ‘몽상하다’라는 뜻이어서 이런 야릇한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여기에서 생략된 that을 뒤에 받아서) think나 presume 또는 suppose 대신 자주 쓰이고는 한다.

 

<네트워크(Network)>에서는 출세밖에 모르는 냉혈 여인 페이 더너웨이가 야심찬 계획을 설명하고 나서 정부(情夫) 윌리엄 홀든이 별로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I don’t think you fancy my suggestions”(내 제안을 신통치 않다고 생각하는 눈치구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fancy가 단순히 “좋아하다” 또는 “마음이 끌리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인체에 관한 곁말의 야릇한 뒷맛을 조금 더 음미하겠다면, <성탄절에 생긴 일(A Christmas Story)>에서, 벌거벗은 여자의 다리처럼 생긴 전등을 상으로 탄 아버지가 그것을 자랑스럽게 창가에 내놓은 다음에 주인공이 해설하는 말을 들어보라. “The entire neighborhood was turned on.”

 

“온동네가 turned on”했다는 얘기인데, turn(ed) on이 여기서는 참으로 종잡기 어려운 뜻이다. 우선 온 동네가 “환해졌다(=불을 밝혔다)”는 뜻이 성립된다. 전등이 길거리까지 비추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발기하다’라는 뜻도 유효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동네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야릇하게 빛나는 나체 여성의 하반신을 보게 되었으니 신체적인 반응이 ‘일어날’만도 하겠다.

 

<그리프터스(The Grifters)>는 약간 끔찍한 인체 곁말을 선보인다. 술집 같은 곳에서 쩨쩨한 사기만 치다가 깡패들에게 걸려 배를 심하게 얻어맞고 장파열로 입원했던 존 쿠색에게 두목의 돈까지 잘라먹을 만큼 간이 큰 안젤리카 휴스턴이 비아냥거린다. “You haven’t got the stomach for it.”(넌 그런 일을 할 만한 배짱이 없어.)

 

물론 여기에서는 장파열을 일으킨 배(stomach)를 빗대어서 한 곁말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파열이 되지 않을 만큼) 뱃가죽이 훨씬 든든해야지”라는 소리다.

 

<흑수선(Black Narcissus)>에서는 낮은 직책을 받아 다른 수녀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분원장 데버러 커에게 족장의 대리인 데이빗 파라가 stomach을 걸고 빈정거린다. “Will you be able to stomach that? Stiff-necked, obstinate creature like you?”(당신이 그걸 참아낼 수 있을까요? 당신처럼 완고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stiff-necked는 우리말로 “목이 빳빳한”이나 “목에 힘주는”이라고 직역하더라도 뜻이 잘 통한다.

 

데버러 커는 <비수(悲愁, Beloved Infidel)>에서 그레고리 펙(=<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역)에게 먼저 사귀던 남자에 대해서 “I cannot stomach Donegal”이라고 말한다. “도네갈 그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뜻인데, stomach은 이렇듯 목구멍으로 일단 넘긴 다음 뱃속에서 무사히 받아주느냐 아니냐 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소화가 잘 된다.

 

 

 

채플린 영화속 ‘아이스께끼’

 

<로미오와 줄리엣>을 뮤지컬로 만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에서 푸에르토리코 남자의 티를 내느라고 걸핏하면 여성을 비하하는 조지 차키리스에게 애인 리타 모레노가 쏘아붙인다. “Sometimes I don’t know which is thicker ― your skull or your accent.”(자기 꼴통하고 억양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형편없는지 난 가끔 판단이 안 선다니까.)

 

skull(두개골)은 head(머리)나 brain(두뇌)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thick-skulled는 thick-headed나 마찬가지로 우둔한(thick) ‘돌대가리’를 가리킨다. numbskull도 numb(멍청한) 돌대가리를 의미하며, numb에서는 b가 본디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numskull이라고도 쓴다.

 

<셔레이드(Charade)>에서는 비싼 우표를 놓고 승강이를 벌이던 제임스 코번이 캐리 그랜트에게 참으로 화려한 멍청이 명칭에 대해 구사한다. “You greenhorn, why you thick-skulled, hare-brained, half-witted greenhorn, you block-headed jackass, you a nincompoop!”(너 중뿔난 날탱이 자식, 그래 너 돌대가리, 토끼대가리, 반푼이 풋내기, 너 꽉 막힌 바보, 너 이 등신아!)

 

이 다채로운 명칭 가운데 greenhorn은 이제 겨우 손가락만한 뿔이 자라나기 시작한 ‘풋내기(green)’ 동물을 가리키고, jackass는 멍청하기로 대표격인 ass(당나귀)의 수컷이다.

 

멍청과 똑똑의 기준이 되는 brain은 mind라고도 하는데, <밤을 즐겁게(Pillow Talk)>에서는 임시로 전화를 연결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동안에 사이가 나빠진 바람둥이 작곡가 록 허드슨이 은근히 호감(사랑)을 암시하는 실내장식가 도리스 데이에게 약을 올린다. “Is that all you have in your mind?”(당신은 그런 생각밖에 안 하나요?) 이에 대한 데이의 반격에서는 곁말의 재치가 빛난다. “Never mind my mind.”(내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신경 끄시죠.)

 

<뉴욕으로 간 왕(A King in New York)>에서는 가난한 망명생활을 하는 찰리 채플린에게 텔레비전 광고에 나가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을 해야 한다고 광고회사 여직원 도운 애덤스가 조언한다. “Nonsense. A little lift here and there and you could look quite young.”(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조금 저기 조금씩만 손을 대면 상당히 젊어 보이실 텐데요.)

 

채플린이 반박한다. “What do you think ― my face is a skirt?”(무슨 소리야 ― 내 얼굴이 치마인 줄 알아?) lift(=face-lift)는 “(성형수술로) 주름살을 없앤다”는 뜻도 있지만, 본디 ‘들어 올리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채플린 영화에서 “치마를 들어 올리다”라니, 미국에도 “아이스께끼”가 있었던가?

 

<우리 아빠 야호!(Parenthood)>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산부인과 대기실 벽에 걸린 사진을 보여주는데, 나란히 앉혀놓은 아기들의 발가벗은 엉덩이를 뒤쪽에서 찍은 사진에 이런 설명을 붙였다. “A healthy bottom line.”(건강한 볼기짝의 곡선.)

 

“왈가왈부 아무리 따져봤자 다 소용없고, 어쨌든 아기는 낳고 보자”는 뜻의 이 표어는 as clean as a baby’s bottom이라는 표현을 연상시킨다. 엄마가 반들반들하게 닦아놓은 “아기 볼기짝처럼 깨끗한”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진설명의 bottom line은 물론 ‘최종적인 결론’이나 ‘중요한 요점’ 또는 ‘결정적인 계기’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의 곁말이다. bottom line의 더 일반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싶으면 <카지노(Casino)>에 나오는 조 페씨의 해설을 들어보라. “The stinking bottom line here is ― cash.”(거지 같은 이곳에서는 현금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이 말씀이야.)

 

같은 영화에서, 손버릇이 나쁜 도박장 감독을 해고한 로버트 드 니로를 텍사스 실력자가 찾아와서 다시 취직시키라고 몸집으로 협박한다. 드 니로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He’s weak, he’s incompetent, he jeopardizes the whole place. The bottom line is, he cannot be trusted.”(그 친구는 마음이 약하고, 무능하고, 사업을 몽땅 말아먹게 생겼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믿을만한 친구가 아니라 이거예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에서 흑인 하녀를 칼질한 제시카 월터와는 어떤 관계인지를 형사가 꼬치꼬치 캐어묻자 짜증이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화를 낸다. “What boils down to is, I am getting kinda sick of your questions.”(요점을 말씀드리자면, 난 당신이 하는 질문에 비위가 좀 상하려고 그러는군요.)

 

what boils down to(무엇인가를 물에 푹푹 끓여서 맨 나중에 남는 결과물)는 bottom line과 비슷한 표현이니, 알아두면 편하겠다. kinda는 kind of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구어체다. sorta(sort of), willya(will you), Injun(Indian), whatcha(what do you), gotcha(got you)도 모두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구어체 단어군이니, 눈여겨두기 바란다.

 

 

 

질문의 뜻 잘못 짚은 답변

 

앞에서 우리는 <젊은 날의 링컨>에 나오는 이름 Jack Cass와 jackass(촌놈),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Tomato(골 빈 남자)와 Holly Golightly(골 빈 여자), 그리고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의 ‘가족나무’ Sycamore(무화과나무)처럼 고유명사가 곁말놀이에 이용되는 경우를 살펴보았는데, 이것 또한 아주 흔한 장난에 속한다.

 

<졸업(The Graduate)>에서 순진한 청년 더스틴 호프먼은 음탕한 유부녀 앤 뱅크로프트와 만나 한낮의 정사를 벌이러 호텔로 간다. 첫 경험이라 어색해서 여기저기 서성거리는 벤저민에게 호텔 종업원이 친절하게 묻는다.

 

“Are you here for an affair, sir?”(정사를 벌이러 여기 오셨나요, 손님?) 지레 발이 저린 벤저민이 놀라서 “What?”(뭐라고요?)이라며 기겁한다. “The Singleman party, sir.”(독신자 파티 말입니다.)

 

하지만 호텔 종업원이 언급한 affair는 흔히 생각하는 love affair(정사)가 아니라 ‘행사(event)’라는 뜻이었다. 호텔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 가운데 한 곳을 찾아온 손님이 장소를 못찾아 두리번거리는 줄 알고 안내해 주려는 착한 마음에서 묻는 말이었다. 호프먼이 single man party(독신자 파티)라고 잘못 들은 말도 사실은 “싱글맨(Singleman) 댁에서 개최하는 행사”였다.

 

<내추럴(The Natural)>에서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려고 고향을 떠난 로버트 레드퍼드가 기차 안에서 바버라 허시를 만나고, 그녀는 이런 질문을 한다. “Have you ever read Homer?”(혹시 호머를 읽어봤나요?) “Homer? The only homer I know is four bases.”(호머라고요? 내가 아는 호머는 4루뿐인데요.)

 

두 등장인물의 문화적인 수준을 극적으로 대비한 대화다. 허시의 Homer는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이고, 레드퍼드의 homer는 3개의 base를 지나 home base까지 들어오는 home-run hit이다.

 

고유명사 하나로 두 사람의 지적인 수준을 이와 비슷하게 대비시키는 장면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에도 나온다. 휴 그랜트와의 거북한 관계 때문에 출판사를 그만두고 텔레비전 방송국에 취직하러 간 르니 젤웨거에게 면접시험을 담당한 직원이 묻는다. “What do you think of the el Niphenomenon?”(엘 니뇨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Well, I think, basically, lots of music is on its way out.”(글쎄요, 제 생각엔 퍽 많은 음악이 쇠퇴일로에 들어선 것 같은데요.)

 

에스파냐어 el Ni는 영어로 the Boy로서, ‘아기 예수’를 가리킨다. 차가운 페루 해류에 이상 난류가 흘러드는 이변 현상이 성탄절 무렵에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젤웨거는 ‘엘 니뇨’라는 생소한 시사용어를 처음 듣고 가수 이름쯤으로 잘못 짚고는 아는 체를 한다. phenomenon(현상)이 연예계에서는 ‘한류(韓流)’의 ‘류’에 해당하기 때문에 el Niphenomenon이라고 하면 마치 ‘엘 니뇨 열풍’이라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엘 니뇨라는 가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잠깐 반짝 했다가 사라진 연예인쯤으로 짐작하고는 그런 대답을 했다. 차라리 모른다고 잠자코 있었더라면 절반이나 갔겠지만, 이 대답을 하고 젤웨거는 즉석에서 잘린다.

 

적도 부근 동태평양에서 해면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은 에스파냐어로 (엘 니뇨와 대비시켜) 라 니냐(la ni)라고 한다. 영어로 the girl(계집아이)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희극왕 채플린(The Funniest Man in the World)>에 자막으로 나오는 대사다. “Clean out the oven. It’s Ash* Wednesday.”(*표를 붙여놓은 단어는 글로 적어놓기 전에는 첫 글자가 대문자인지 소문자인지 알 길이 없다.)

 

위 예문에서 첫 문장은 “화덕을 청소하라”는 뜻이고, 두 번째 문장은 “오늘이 ash Wednesday(재를 치우는 수요일)”라고, 화덕을 청소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물론 ash Wednesday라는 그런 특정한 날은 없고, 그냥 웃자고 한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대문자로 쓴 Ash Wednesday는 가톨릭 사순절(四旬節)의 첫 날인데, 옛날에는 이 날 참회자의 머리에 재를 뿌리는 관습이 있었고, 그래서 ‘재(灰)의 수요일’(*한때는 ‘聖灰水曜日’이라고도 했음)이라고 부른다.

 

무엇이 타고 남은 ash는 죽음 따위의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서 형용사꼴(ashen)은 핏기가 없는 ‘창백한’을 뜻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서 비비언 리가 주책없이 사랑하는 유부남 레슬리 하워드의 극중 이름은 Ashley Wilkes다. 그의 연약하고 창백한 얼굴이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반면에 비비언 리의 극중 이름은 Scarlett O’Hara다. 화려한 scarlet(주홍, 진홍)은 황제나 고위성직자 등을 상징하는 빛깔이어서, 영화 <진홍의 도적(The Crimson Pirate)>은 그 제목이 ‘해적의 제왕’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scarlet woman이 ‘창부’를 뜻한다.

 

 

 

같은 뜻 다른 의미

 

<겨울의 끝(Sarah, Plain and Tall: Winter’s End)>에서 처자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 잭 팰런스는 난생 처음 보는 손녀에게 묻는다. “What is your father’s name?”(아버지 이름이 뭐니?) “Papa”(아빠요).

 

서양에서는 가족 간에 명칭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father의 이름이 귀에 익은 호칭 Papa라고 오해한 손녀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기야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별명이 Papa Hemingway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Papa처럼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인지 헷갈리는 단어를 일부러 배합한 묘기는 <애정이 꽃피는 양지(A Hole in the Head)>의 예고편에 나오는 유명한 선전문 “Very Frank Capra Look at Life!”에서 발견된다.

 

이 영화에서는 Frank Capra가 제작과 감독을 맡았다. 그래서 선전문을 아무 생각도 없이 읽으면, very Frank Capra look(그 유명한 프랭크 캐프라의 시각)이 된다. 하지만 Frank를 소문자로 바꿔 very frank Capra look이라고 가정했을 때는, “아주 솔직한 캐프라적 시각”이 된다.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정신없는 광고문이다.

 

위의 두 가지 해석의 경우에는 Frank가 고유명사 Francis의 애칭인가 아니면 형용사 frank(솔직한)인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데, 광고문안의 Frank가 대문자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느 쪽인지 가려내기가 힘들다.

 

잠깐,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공부를 하나 하고 지나가자. 광고 문안뿐 아니라 영화나 소설 및 논문 등의 제목에서 도대체 어떤 단어를 대문자로 시작하고 어떤 단어는 소문자로 시작해야 되는지를 학교나 학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원칙은 알고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소유격을 포함한) 모든 명사와 대명사, 형용사와 부사처럼 비중이 큰 단어는 대문자로 시작한다. 접속사와 전치사 그리고 관계사와 의문사처럼 부속적인 성격을 지닌 단어는 Whereupon이나 Throughout처럼 네 글자가 넘는 경우에만 대문자로 시작한다. 네 글자인 경우에는, 예를 들어 from이나 From처럼, 두 가지 모두가 맞지만, 관사는 꼭 소문자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첫 단어는 품사에 관계없이 항상 대문자로 시작된다.

 

원제에서 쓰인 hole in the head(대갈통에 뚫린 구멍)라는 표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말 한심한 무엇”을 의미하는데, 역시 감칠맛이 느껴지는 멋진 표현이지만, 교과서와 입시학원에서 경직된 표현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퍽 생소하게 느껴지리라고 생각된다.

 

<양키 두들 댄디(Yankee Doodle Dandy)>에서 연예기획사를 함께 경영하는 친구를 도와주라는 아내에게 제임스 캐그니가 코웃음을 친다. “He needs me about as much as he needs a hole in his head.”(그 친구한테는 내가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필요하지 않아.)

 

그리고 hole in the head의 변형된 용법이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rce)>에 등장한다. “자동차를 사 주면 내 딸이 좋아하겠느냐”는 조운 크로포드의 질문에 함께 식당을 경영하는 이브 아덴은 이렇게 대답한다. “If she doesn’t, she ought have her head examined for a hole.”(좋아하지 않는다면, 걔 혹시 머리에 구멍이나 뚫리지 않았는지 병원에 가서 진단이라도 받아야 할걸.) “미쳤어도 단단히 미쳤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frank look(솔직한 시각)의 frank는 어떤 솔직함일까? 그것은 예를 들면 honest look이나 candid look 또는 truthful look과 어떻게 다른 시각일까? 사람들은 우리말로 ‘솔직한’이 하나의 단어이니까 영어로도 ‘솔직한’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하나뿐이라는 잠재의식적인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왜 위험한 생각인지 설명하겠다.

 

<거짓 속의 진실(Wrong Is Right)>에서 로벗 웨버 국장이 야당 대통령 후보 레슬리 닐슨을 지지한다고 털어놓자 언론인 숀 코너리가 코웃음을 친다.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 이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칼렛 오하라를 버리고 떠나며 렛 버틀러가 남긴 명대사의 quotation(인용)이다. (당신의 불행 따위는) “솔직히 얘기해서 난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이 내용은 화자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면이 가미된 시각을 frank라는 단어로 나타낸다.

 

반면에 honest(정직한)는 비교적 소극적인 수비에 가까운 개념이다.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에서 전직 보석 도둑 캐리 그랜트가 로이드 보험회사 간부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In this business, you can’t do things the honest way. Remember that.”(우리 사업에선 정직한 방법으로 해선 되는 일이 없어요. 그걸 잊지 말라고요.)

 

그런가 하면 candid는 ‘노골성’으로 기울고, truthful은 ‘진실성’으로 기운다. 따라서 이들 네 단어는 우리말로 같은 뜻이기는 하더라도 영어로는 서로 의미가 다른 단어가 된다. candid와 truthful 두 단어의 예문은 지면 관계상 다음주에 제시하겠다.

 

 

 

어휘력은 ‘양’아닌 다양한 표현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여러 가지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가 ‘어휘력’의 의미다. 사람들은 어휘력을 흔히 ‘가짓수’라고 쉽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람’ ‘우정’ ‘민주주의’ 따위, 그것도 특히 명사(noun)를 많이 알면 그것이 곧 어휘력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동차’ ‘사람’ ‘우정’ ‘민주주의’가 영어로 automobile, man, friendship, democracy라고 짝을 지어 암기하고 “내 어휘력은 4개 단어”라고 점수를 매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런 식으로 우리말 한 단어에 영어 한 단어만 달랑 암기하는 식의 공부는 겉핥기로 끝난다. 그 깊이도 지극히 표피적이다. 그러나 “어휘가 풍부하다”는 말은 “표현이 다채롭거나 다양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같은 단어나 표현을 얼마나 다양하게 구사하느냐에 따라 어휘력의 판가름이 난다.

 

지난주에 우리는 frank라는 단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어휘들을 살펴보았고, 오늘도 계속해서 ‘솔직한’ 얘기를 해보겠다.

 

<집에 가고 싶어(I Want to Go Home)>에서 파리 만화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미국 만화가 아돌프 그린은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어머니와의 동거에 들어가기에 앞서 물어본다.

 

“If I’m overly intimate, overly candid, you kick me out. Don’t explain, just kick me out.”(만일 내가 지나치게 친밀하면, 그러니까 지나치게 솔직하면, 당신이 날 내쫓아버려요. 설명할 필요없이, 그냥 내쫓으라고요.)

 

그린이 사용한 단어 intimate(친밀한)는 성적인 관계에서 ‘노골적’이라는 뜻이고, 뒤에 나오는 candid(솔직한)는 intimate를 부연한 설명이기 때문에, candid에는 우리말로 ‘노골적’이라는 표현이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다. 따라서 candid는 “노골적으로 솔직한” 개념이 된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에서는 쿠르트 유르겐스의 지하도시로 잡혀간 007이 공중에 매달린 감시 카메라를 가리키며 소련 여첩보원에게 설명한다. “You are on the Candid Camera.”(당신은 ‘솔직한 사진기’에 출연 중입니다.)

 

사진을 얘기할 때의 candid는 “포즈를 취하지 않고 꾸밈없는”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는 온갖 난처한 상황에 일반 시민들을 노출시킨 다음 그들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반응을 살펴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개그맨 이경규씨가 흉내 내어 국산화한 것이 ‘몰래카메라’다. 그러니까 candid는 행동 따위가 꾸밈이 없는 그런 솔직함을 의미한다. 반면에 truthful은 더욱 진지한 면모를 지닌다.

 

인간의 진실성을 탐구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정사(L’Avventura)>의 첫 장면에서 아버지가 레아 마사리에게 ‘솔직함’에 대해 일종의 고백을 한다. “After 30 years of never telling the truth, I might as well speak truthfully to my own daughter now.”(30년 동안 진실이라고는 단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으니, 이제는 내 딸 앞에서만이라도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이야.) 외교관 생활을 하느라고 항상 상대방에게 꼬리가 잡히지 않을 만한 말만 하다 보니, 평생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그런 ‘솔직한’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를 배우들이 제작하는 과정을 그린 알 파치노의 걸작 <리처드를 찾아서(Looking for Richard)>에서는 셰익스피어 학자가 배우들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This language is a language of thoughts. In a theatre, to do this you have to speak loud. And then very few actors can speak loud and still be truthful.”(이 언어는 생각의 언어입니다. 극장에서 이 대사를 말하기 위해서 연기자는 큰 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큰 소리로 말하면서도 여전히 진실성을 전할 능력을 갖춘 배우는 정말로 드뭅니다.”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가성(假聲)이 과장된 기분을 주기 때문에 감정이 살아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쯤되면 truthful이라는 솔직함이 ‘진실’의 범주로 넘어간다는 확인이 가능하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들여다보면 ‘솔직한’은 이 경우에 ‘진실한’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말에서 ‘솔직한’과 ‘진실한’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단어이듯이, 영어에서도 frank와 truthful은 완전히 다른 단어다. 그러니까 흔히 비슷한 단어를 서너 개씩 알아두면 비경제적인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단어를 연관지어 무더기로 알아두면, 특히 유사한 단어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그 작은 차이를 잘 알고 있을 때는,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한 빛깔 좋은 표현력이 생겨난다.

 

이밖에도 ‘솔직한’ 단어들을 살펴보면, candid 계열의 straightforward(꾸밈없는)와 aboveboard(사실대로)를 거쳐 fair and square(공명정대하게)이 나오고, 가지를 쳐서 나간 truthful 계열에서는 true와 trustworthy(믿을만한), 그리고 true-to-life(사실적인)와 factual, actual, real, legitimate 등으로까지 비약한다.

 

이렇게 어휘력은 고리를 이루며 갖가지 단어를 쾌로 엮어가는 사이에 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한 단어에 우리말 한 단어” 또는 “우리말 한 단어에 영어 한 단어”식으로 약삭빠르게 계산하는 학습방법은 결국 자신에게 손해다. 언어 학습은 궁극적으로 어휘력 싸움이다.

 

 

 

창조의 create, 때론 꼴불견

 

<프렌치 커넥션 2(French Connection II)>에서는 악당들이 마약을 과다하게 주사해서 갑자기 중독된 진 해크먼이 회복을 위한 치료 중에 야구에 대해서 프랑스 형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의도하지 않은 double talk(동문서답)이 튀어나온다.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mother tongue(모국어)이 서로 다르고 문화적인 차이가 심해서 발생한 오해 때문이다.

 

“Southpaw?”(남쪽 손요?) ‘남쪽 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프랑스 형사가 묻는다. southpaw는 1885년 경 시카고의 야구장에서는 투수의 왼손이 남쪽을 향했기 때문에 생겨난 표현이다.

 

해크먼이 설명한다. “Yeah, he was a lefty.”(그래. 왼손잡이였다구.) lefty라니까 ‘좌익(leftist)’을 연상한 프랑스인이 반문한다. “You mean a communist?”(그럼 공산주의자란 말인가요?)

 

우리나라 사전에서는 대부분 communist와 Communist를 혼용하는데, 원칙적으로 ‘공산주의자’는 소문자로 시작하고, ‘공산당원’은 특수 단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고유명사로 삼아 대문자로 시작해서 Communist라고 쓴다. 대문자로 시작한 Democratic을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민주당원’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그러니까 프랑스인은 분명히 communist라고 ‘소문자’로 말했는데, 해크먼은 ‘대문자’ Communist라고 잘못 듣고는 이렇게 말한다. “No, he was a Republican.”(아냐. 그 친구 공화당원이었어.)

 

같은 영화에서는 영어에 대한 오해가 우리말로 오역을 낳기도 했다. 프랑스 수사관에게 미국 초콜릿을 먹어보라고 권했던 진 해크먼은 프랑스인이 안 먹겠다니까 핀잔을 준다. “It’s not good for frogs. Makes them jump backwards.”

 

한국 텔레비전에서는 이 말을 “개구리나 먹어대는 너희들이 미국 초콜릿을 맛보면 뒤로 점프할걸?”이라고 번역했다. 우리말 번역문이 영어 원문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힘들어 보인다.

 

frog은 속어로 프랑스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good for frog을 그대로 번역하면 “개구리에게(for) 좋다”는 뜻이어서, ‘먹어대는’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원문에 없는 말을 억지로 끼워 맞춰 놓으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오역이 나온다.

 

그리고 “뒤로 점프하다”는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고, 무슨 뜻일까? ‘점프’는 jump의 한글 표기는 될지언정 번역이 아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한글’과 ‘우리말’의 차이조차 모르는 경우가 퍽 많다. jump backwards는 “펄쩍 뒷걸음질을 치다”, 그러니까 “기겁해서 도망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문은 “프랑스 놈들은 미국 초콜릿을 우습게 본다니까. 보기만 해도 질겁을 한다구”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frog의 경우는 오역의 씨앗이 되었지만,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pun(곁말)은 잘 살리면 재치가 넘치는 문장이 된다. <깊은 잠(The Big Sleep)>에서 사립탐정 험프리 보가트가 길거리에서 건너편 집을 감시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는 근처의 고서점으로 들어가 여점원 도로티 멀론에게 작업을 건다.

 

“You know, it just happens I have a bottle of pretty good rye in my pocket. I’d rather get wet in here.”(뭡니까, 마침 내 호주머니에 상당히 좋은 호밀위스키가 한 병 있는데요. 이왕이면 난 이 안에서 젖고 싶군요.)

 

just happen(s)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하필이면 지금 ~하다”라고 둘러대는 말이고, get wet(젖다)은 “술에 흠뻑 취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비를 맞아 젖느니 여기서 아가씨하고 놀면서 술에 젖어보고 싶다”는 표현이 된다. 마침 퇴근 시간이 다 되었던지라 멀론은 냉큼 문을 닫아걸고 창가리개를 내린다.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곁말놀이 몇 가지만 더 찾아보기로 하자. <살인광시대(Monsieur Verdoux)>에서 집을 사러 온 돈 많은 황혼기 여자를 유혹하려던 연쇄살인범 찰리 채플린이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진다. “I must have slipped.”(내가 발을 헛디딘 모양이군요.) 채플린이 서둘러 상황을 수습하려고 한다.

 

늙은 여자한테 아첨을 떠는 채플린을 보고 눈꼴이 사나웠던 부동산업자가 지체없이 화답한다. “No doubt.”(맞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부동산업자가 이 말을 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단어는 slip(미끄러지다)이 아니라 slip(실수하다)이었다. 그러니까 “실례했고 말고요”라는 뜻이다. slip of tongue은 “헛나간 말,” 즉 “말의 실수”다.

 

<이창(裏窓, Rear Window)>의 그레이스 켈리는 상류사회 여성이지만 문화적인 소양이 부족하고, 그래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가 뒷집에서 들려오자 이렇게 감탄한다. “Where does a man get an inspiration to write a song like that? I wish I could be creative.”(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영감을 얻어 저런 음악을 작곡할까요? 나도 창의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잡지사 사진기자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Oh, sweetie, you are. You have a great talent for creating difficult situations.”(이봐요, 아가씨, 당신 실력도 만만치 않아요. 당신은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대단하잖아요.)

 

create(창조하다)라면 한국인들은 긍정적인 미덕으로만 생각하는데, 영어에서는 나쁜 일도 열심히 create(일으키다)한다. create a scene이라고 하면 공공장소에서 부부싸움을 벌이거나 아무한테나 무례를 범하는 따위의 ‘꼴불견’에 적용하는 표현이다.

 

 

속셈이 있는 비유법

 

<길을 가는 두 사람(Two for the Road)>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이 사 준 음료수의 유리잔 위쪽 허공을 오드리 헵번이 손으로 더듬는다. 왜 그러느냐고 앨버트 피니가 묻자 헵번이 대답한다. “Just trying to discover what strings are attached.”(무슨 끈들이 달려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요.)

 

음료수 잔에 무슨 끈이 달렸다는 얘기인지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pull the strings는 인형극에서 꼭두각시를 사람이 손으로 “줄을 당겨 조종한다”는 말이어서, “뒤에 숨어 배후에서 움직인다”는 뜻이 되었다. 그리고 attached strings(연결된 줄)는 꼭두각시에 달린 줄이나 마찬가지로 어떤 작용을 하는 배후의 원동력(agency, factor)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선물이나 뇌물 따위를 제공하면서 “노리는 호의(나 속셈)”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그러니까 누가 선심을 쓰면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그래서 헵번은 무슨 복선(strings)을 깔고 피니가 음료수를 사줬는지 확인하려고 ‘끈’을 더듬어 찾아보려고 한다.

 

‘속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intangible) 개념을 ‘끈’처럼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비유를 통해서 실감나게 표현하는 literary technique(문학적 기법)을 figure of speech(비유의 화법)라고 한다.

 

figure of speech가 무엇인지 그 성격을 <노 웨이 아웃(No Way Out)>에서 알아보자. 파티에서 만난 해군 정보장교 케빈 코스트너 중령과 육감적인 여성 숀 영의 첫 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Wanna dance?”(춤 추실래요?) “The twist? No thank you.”(트위스트 춤요? 생각 없는데요.) 코스트너가 그녀의 젖가슴을 힐끗 내려다보고 말한다. “We don’t have to twist.”(꼭 트위스트를 추자는 건 아니에요. 그러자 영이 발끈 화를 낸다. “No meant no.”(싫다면 싫은 거예요.)

 

코스트너가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음악은 트위스트가 나오더라도 다른 춤을 추면 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런데 왜 영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twist가 지닌 10여 가지 중요한 의미 가운데 “헷갈리게 만들거나, 불쾌한 오해를 일으키게 만든다”라는 뜻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약간 비약시키면 “우리 내숭은 떨지 맙시다”라는 소리가 된다. 그러니 화를 낼 만도 하다.

 

코스트너가 공격을 계속한다. “It wasn’t a figure of speech.”(둘러대서 한 말이 아닌데요.) 이 경우의 figure of speech는 “비비 틀어 얘기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코스트너는 “나 정말로 ‘꼭 트위스트를 추자는 건 아니다’라는 의미로 한 말이니까, 공연히 넘겨짚지 말라”는 뜻이 된다. twist(꼬인다) 해도 정말 심하게 꼬인 대화다. 그리고 이른바 ‘원어민’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듯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즉석에서 이런 내용을, 군대 용어로, “0.5초 내”에 모두 알아듣는다.

 

<메리 포핀스(Mary Poppins)>에서는 두 아이가 실이 끊어진 연을 잡으러 쫓아가다가 길을 잃자, “또 없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이 아이들을 찾았다며 은행원 아버지를 안심시킨다. “In a manner of speaking, sir, it is the kite that ran away, not the children.”(돌려서 얘기하자면, 달아난 건 아이들이 아니라 연이라고 해야 되겠죠.) 이 경우의 in a manner of speaking도 figure of speech처럼, “둘러서 얘기하자면”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헷갈리는 둘러대기에서라면 누가 막스 브러더스를 당하겠는가. <풋볼대소동(Horse Feathers)>에서 축구 얘기를 하다가 그라우초 막스 학장이 말한다. “I don’t wanna be hasty. You can just sleep on it.”(난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고 싶진 않아. 너도 내일까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

 

sleep on~은 “~에 대해서 오늘 하룻밤 보내며 잘 생각해 보다”라는 소리다. 하지만 치코의 단순한 머리는 언제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이런 명답을 낸다.

 

“I don’t think I can sleep on a football.”(난 축구공 위에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은데.) football은 ‘축구’이기도 하지만 ‘축구공’도 된다. on은 “~에 대해서”이기도 하지만 “~ 위에서”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치코는 공을 깔고 공중에 떠서 잠을 청하는 상황이 참으로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임 학장 그라우초 막스가 강의실로 불쑥 들어오자 어느 교수가 묻는다. “What brings you here?”(여긴 어떻게 오셨나요?) “A bicycle. But I left it in the hall.”(자전거를 타고 왔지. 그리고 자전거는 복도에 세워두었어.)

 

또 어느 장면에서는 여자 사진을 벽에 걸어놓은 하포에게 그라우초가 묻는다. “Is this your picture?”(이거 네 사진이야?) 사진의 소유권에 대해서 묻는 이 질문에 하포 역시 명답을 낸다. “I don’t think so. It doesn’t look like me.”(아닌 것 같은데. 날 안 닮았잖아.)

 

 

 

동음어로 말장난하기

 

지금까지 우리는 의도적이건 우발적이건 간에 같은 하나의 단어가 지닌 여러 의미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를 많이 접했는데, 이제부터는 곁말(pun)이 아니면서도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homophone으로 엮어진 언어적 희롱의 형태를 찾아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라고 하지만, 그리스어 homos가 어원인 homo-가 ‘동일한’을, 그리고 -phone은 ‘음(音)’을 뜻하는 결합사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냥 ‘동음어(同音語)’라고 하겠다.

 

homophone(同音語)이란 son(아들)과 sun(태양), hymn(송가)과 him, Dane(덴마크인)과 deign(황공스럽게도 ~을 하시다), rain(비가 내리다)과 reign(다스리다), 그리고 plate(접시)과 plait(땋아내리다)처럼 발음은 같아도 철자와 의미가 다른 단어들을 지칭한다. 이 고정란의 제목을 “Q-English”라고 한 이유를 앞에서 “Quips and Quirks and Quotations”의 머리글자를 땄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또한 Q가 cue와 발음이 같은 homophone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니까 Q-English는 “cue(신호)만 제대로 받으면 재깍재깍 잘 풀려나가는 영어”라는 암시를 주려고 붙인 이름이다.

 

동음어의 용법은 앞에서도 이미 두 차례 언급했다. <젊은 날의 링컨>에서 Jack Cass라는 이름을 jackass(멍청이)와 연결 지은 경우와 <풋볼대소동>에서 tong(집게)과 tongue(혀)으로 장난을 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영화 <패치 애덤스(Patch Adams)>를 보면 목축업자들의 모임이 열리는 행사장 문간에 “Nice to Meat You”라는 인사말을 써 붙였다. 물론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표현에서 meet을 동음어 meat으로 바꿔친 말장난이다. 우리말로도 삼겹살집 입구에 “맛나서(=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써 붙인다면 똑같은 효과가 나겠다.

 

meat(쇠고기)을 거래하는 업자들의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면 “Shanks for the Memories”(추억거리를 만드는 정강이살)라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shank(s)는 양이나 소의 ‘정강이살’을 뜻하는데, 현수막의 글은 밥 호프의 출세작 <아름다운 추억 고마워요(Thanks for the Memory, 1938)>의 제목을 가지고 역시 thanks-shanks 동음어를 활용한 예이다. 호프는 세계 각처로 위문공연을 다니면서 이 영화의 주제가를 자주 부르고는 했다.

 

그리고 쇠고기 행사 도중에는 “Meet Miss Meat”(쇠고기 아가씨를 소개합니다)이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완벽한 M-M-M 두음에 동음어까지 함께 구사한 솜씨가 빼어나다.

 

<꼬마돼지 베이브(Babe)>에서는 주인공 돼지가 어두운 우리 안에 갇힌 동물에게 “What are you?”(너 누구냐?)라고 묻는다. What are you?와 Who are you?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 나중 질문은 이름을 알고 싶어 하는 경우인 반면에, 첫 질문은 성별이나 직업 따위, ‘성분’을 묻는 말이다. 그래서 암양이 대답한다. “I am ewe.”(나 암양이야.) 꼬마돼지는 그 말을 “I am you”(나는 너야)라고 하는 소리로 잘못 듣고 혼란에 빠진다. 이 또한 동음어로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설정이다.

 

ewe 말고도, “I♥U”의 U 역시, 널리 애용되는 you의 ‘동음어’다. 필자는 강화로 낚시를 오가면서 국제적인 동음어도 몇 차례 보았다. 궤짝차 뒷문에 써놓은 “I♥乳”의 재치가 웃음을 자아낸다. 미국에서 길거리에 세워놓은 중고차 앞창에서 자주 발견되는 “4Sale”도 “For Sale(賣物 = 파는 차)”의 동음어다.

 

homophone에서도 막스 브라더스는 역시 한 가닥 분명히 걸치고 넘어간다. <풋볼대소동>에서 발성 연습을 열심히 하던 델마 토드가 “I have a falsetto voice”(내 목소리는 가성예요)라고 털어놓는다. 가짜 음악선생 행세를 하던 치코가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That’s funny. My last pupil had a false set of teeth too.”(거 참 이상하구먼. 지난번에 내가 가르치던 학생도 의치를 했던데.) 음악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치코는 falsetto(假聲)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false set of teeth(틀니 한 벌)라고 착각했다. false set of teeth를 빨리빨리 발음하면 falsetto라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멜 브룩스의 장난기가 난무하는 <프로듀서(The Producers>에는 히틀러의 이런 대사가 나온다. “I liebe you, I liebe you. Now leave me alone.”(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해. 그러니 날 귀찮게 하지 말라고.) liebe는 독일어로 ‘사랑한다’는 말이고, 그 유사성 동음어인 leave는 ‘내버려두다’라는 뜻이다. 가히 다국적 동음어라 하겠다.

 

 

 

동음어 잘못쓰면 낭패

 

<양키 두들 댄디(Yankee Doodle Dandy)>에서 조지 코핸이 아내 메리를 위해 지은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My mother’s name was Mary;(우리 어머니의 이름은 메리였네) Because her name was Mary,(어머니의 이름이 메리여서) She calls me Mary Two.”(나더러는 2번 메리라고 했다네)

 

우리 이름에는 항렬과 돌림자가 따로 있지만, 서양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이름이 같은 경우가 많다. 가문의 영광을 자랑 삼는 집안 사람들은 때때로 똑같은 이름을 대대로 물려받아 아무개 3세나 4세라고도 한다. 위 노래에 나오는 코핸의 아내와 장모는 이름이 같은 모양이다. 하지만 Mary 2는 “Mary too(역시 메리)”라는 동음어로도 의미가 성립된다.

 

숫자가 붙은 이름에 대해서 주의할 점을 하나 설명하겠다. 로마자를 쓴 Mary II는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한 Mary 2와 발음이 완전히 달라진다. 만일 부자(父子)가 이름이 똑같은 경우에는 숫자가 아니라 글로 풀어서 쓸 때 George Cohan, Sr.와 George Cohan, Jr.라는 식으로 표기한다. Sr.(=Senior)는 아버지, Jr.(=Junior)는 아들을 뜻한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조지 코핸 1세”나 “조지 코핸 2세”라고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만, 정작 영어로 적을 때는 Mary 2라는 식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쓰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이름이 같은 왕을 지칭할 때는 William 1이나 William 2가 아니라, I이나 II라고 로마 숫자를 사용하는데, 이때는 one이나 Two라고 읽지 않고 the First나 the Second라고 읽어야 한다. “헨리 8세”라면 “여덟 번째 헨리”이니까 “The Eighth Henry”가 된다는 식으로 알아두면 편하다. 8 Henry(s)는 “여덟 명의 헨리”를 뜻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못말리는 로빈 후드(Robin Hood: Men in Tights)>에서 부하들이 로빈 후드를 구해서 달아난 다음, 사형집행인이 끊어진 밧줄 올가미를 손에 들고 이런 동음어를 구사한다. “You know what they say ― no noose is good noose.”(사람들 얘기가 맞아. 없는 올가미가 좋은 올가미라고.) noose는 교수형을 시키기 위해서 만든 ‘올가미’를 뜻하지만, 집행인은 No news is good news(무소식이 희소식)라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동음어를 동원한다.

 

“다 함께 봉기하자”고 주민을 선동하는 로빈이 “내 말 좀 들으라”는 뜻으로 말한다. “Lend me your ears.”(귀 좀 빌립시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귀를 떼어 던져준다. lend(꾸어주다)라는 단어를 literal interpretation(고지식한 해석)한 pun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선물로 가져온 멧돼지를 누가 존 왕자의 앞 식탁에 던져주자 로빈이 말한다. “That’s a wild boar.”(멧돼지로구나.)

 

치안관은 멧돼지가 아니라 존을 가리키며 비웃는다. “That’s a wild bore.”(저 친구 못말리게 따분한 양반이지.)

 

<어느 박람회장에서 생긴 일(State Fair)>에서 진 크레인의 아버지가 키운 엄청나게 큰 돼지를 보고 이웃 총각이 감탄한다. “Wow, the biggest boar in the world, I’ll bet.”(우와, 세상에서 제일 큰 돼지겠구나.)

 

총각을 늘 못마땅해하는 진이 쏘아붙인다. “Well, that depends how you spell it.”(글쎄, 철자법에 따라 그 말이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겠구먼.) 역시 boar-bore 동음어의 짝짓기다. bore라고 쓰면 돼지가 아니라 (따분한) ‘사람’을 뜻한다.

 

<허드서커 대리인(The Hudsucker Proxy)>의 원제에 나오는 회사명 Hudsucker에서 뒷부분 sucker는, “어수룩하게 잘 속아넘어가는 사람”을 뜻하는 구어체 보통명사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팀 로빈스는 회사가 쫄딱 망해 주가를 떨어뜨리려는 음모에 따라 앉혀놓은 허수아비(proxy) 사장이다. 하지만 로빈스의 단순한 사고방식 때문에 회사가 떼돈을 번다. sucker(멍청이)가 sucker(빨아들이는 사람) 노릇을 한 셈이다.

 

야심만만한 민완 여기자 제니퍼 제이슨 리가 허드서커의 이상한 성공을 취재하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비서로 취직한다. 그리고 팀 로빈스는 멋도 모르고 여기자를 사랑하게 되어, 두 사람이 전생에 gazelle(가젤영양)과 ibex(야생 염소)였었다고 상상하다가 이런 말로 비약한다. “Well, at least, can I call you deer?”(글쎄요, 그럼 당신을 ‘사슴’이라고 부르게는 해주겠어요?) deer의 동음어인 dear는 ‘여보’라는 뜻이다.

 

 

단어 재구성의 묘미

 

<허드서커 대리인>에서 여비서로 위장 취업한 민완기자 제니퍼 제이슨 리를 deer(사슴)라고 불러서 dear(여보)로 만들었던 팀 로빈스는 지극히 단순한 장난감 훌라후프를 발명해서 유명해진 다음 회견장에서 기자들에게 말한다. “Well, frankly, I don’t think anybody expected this much hoopla.”(글쎄요, 솔직히 얘기해서, 이 정도로 시끌벅적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듯싶은데요.)

 

로빈스의 우발적인 재담에 기자들이 폭소를 터뜨리고, 자신의 ‘재치’를 뒤늦게 깨달은 로빈스가 한 박자 뒤늦게 따라 웃는다. 머리가 단순한 로빈스가 이 상황에서 hoopla라는 단어가 어떤 묘미를 얻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만도 하다.

 

‘고리던지기 놀이’나 ‘대소동’ 또는 ‘요란한 광고’ 따위를 뜻하는 hoopla의 어원은 프랑스어 houp-la다. houp는 ‘야’ 또는 ‘어이’라고 아이를 부르는 소리이며, la(거기, 저기)와 결합하면, 아기에게 걸음마를 시키거나 귀찮은 아이더러 “저리 가”라고 말할 때 쓰는 명령어가 된다.

 

그리고 영어 hoopla는 역시 의성어적인 비슷한 단어 ballyhoo(떠들썩한 선전)나 hullabaloo(시끄러운 소리, 난장판) 그리고 어느 흑인 여배우가 장난스럽게 이름으로 선택한 whoopee*(우와, 신난다, 잔치, 소동)와 같은 의미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로빈스의 hoopla는 고유한 익살을 담는다. 하와이의 특산품인 hula-hula(또는 hula) 춤의 엉덩이 돌리기와 연관지어 이름지은 Hula-Hoop의 철자를 분해하여 재조립한 형태의 단어가 hoopla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단어를 망가뜨려 다른 단어로 만드는 놀이를 jumbles(범벅)라고 한다.

 

homophone에 이어 jumbles까지 구사한 팀 로빈스 멍청사장은 pun 솜씨도 제법 쓸 만하다. 위장취업 여비서 제니퍼 제이슨 리가 허드서커의 이상한 성공을 취재하여 폭로한 모욕적인 기사를 읽고, 화가 난 로빈스는 편집자에게 보낼 편지를 ‘범인’인 여비서 리에게 받아쓰라고 한다.

 

“Take this down. Dear Miss Archer…, I call you Miss because you seem to have missed the ball completely on this one.”(이 말을 받아 적어. 친애하는 미스 아처에게…. 내가 당신을 ‘미스’라고 부르는 까닭은 이 문제에 있어서 당신이 완전히 공을 ‘미스’했기 때문입니다.) miss the ball(공을 놓치다)은 miss a catch나 마찬가지로 “잘못 짚었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로빈스의 훌라후프 성공에 대한 방송에서는 두운이 나타난다. “Barnes is the great inventor of America’s craziest craze - the Hula-Hoop - winning the heart and hips of every youngster in America.”(반스는 미국에서 전례가 없는 희한한 물건인 위대한 훌라후프를 발명하여 미국의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과 엉덩이를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Hula-Hoop도 두운을 붙인 상품명이고, craziest craze도 두운이 맞지만, heart and hips 역시 두운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두 짝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hips를 복수로 썼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every youngster는 우리말로 “모든 어린이”여서 복수처럼 여겨지지만, everyone(모든 사람)이나 everybody처럼 단수로 기능한다. 그러나 all men이라고 하면 같은 의미이면서도 복수가 된다. 그래서 단수 every youngster에 종속되는 heart는 단수가 되고, hips는 복수형이면서도 단수 노릇을 한다.

 

그뿐이 아니다. <허드서커 대리인>에는, 비록 quotation(인용문)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문학적인 기교도 선보인다. 술잔을 놓았던 신문지에 생긴 젖은 동그라미를 보고 신상품 훌라후프를 구상한 팀 로빈스가 폴 뉴먼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Not that I claim to be a great genius. Like they say, inspiration is 99 percent perspiration.”(내가 뭐 대단한 천재라고는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말마따나, 영감은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고요.) inspiration은 perspiration과 -spiration이라는 rime(韻)이 찰떡처럼 맞아떨어진다. 훌라후프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을 이렇게 돌리고 돌리면 어휘들과 문장들이 덩달아 따라 돌고 돌면서 참으로 맛진 묘미를 제공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에 관한 사족을 하나 붙이면서 오늘 얘기를 마무리하겠다. 혹시 길을 가다가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줍거나 하면 사람들이 신이 나서 외치는 소리가 바로 “Whoopee!”다. 그런데 여배우 우피의 성(姓)을 보면 gold로 시작된다. 황금을 발견하면 물론 “우피!” 소리가 저절로 나겠다.

 

그리고 gold는 유대인의 이름에 자주 나타나고, 특히 어미가 -berg인 성은 거의 틀림없이 유대인의 것이다. -man(n)이나 -stein 또한 유대인의 이름에 자주 나타난다. 그래서 미국의 금융가에서 얼마전 시끌벅적했던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나 유명한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Goldman-Sachs), 그리고 뉴욕시장 블룸버그(Bloomberg)의 핏줄은 유추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우피의 조상은 유대인이 소유했던 노예였을까? 미국의 흑인 노예는 백인 주인의 성을 따랐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다. 우피의 본명은 Caryn Johnson이다. 어쨌든 장난스러운 이름으로 출세한 우피는 1998년에 출판사로부터 자서전을 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600만달러의 선금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그럴 때 사람들은 외친다. “Whoopeeeeeee!”

 

사족에 붙이는 사족 - 고무로 만들어 사람이 앉으면 방귀 소리를 내는 ‘뿡뿡방석’은 영어로 whoopie cushion이라고 한다.

 

 

 

난감한 동음어 표현

 

빙 크로스비와 프렛 아스테어가 주연한 영화 <홀리데이 인(Holiday Inn, 1942)>은 두 가지 ‘원조(元祖)’의 기록을 자랑한다. 이 작품이 성공하자 호텔업자가 영화 제목을 사다가 쓰는 바람에 지금은 ‘홀리데이 인’이라는 간판이 세계 각처에 내걸렸고, 주제가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는 <홀리데이 인>을 비스타비전 방식의 첫 작품으로 다시 만든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그리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오스카상을 받은 작곡가 어빙 벌린은 그 노래의 인기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애절한 무엇을 좋아하는 어떤 심성이 있나 봐요.”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애절한 심성보다 지저분한 음담패설을 좋아하는 취향이 사람들에게는 더 강한 듯싶다. 성인용 희극의 범주에 속하는 오스틴 파워스 영화가 줄줄이 성공하는 까닭을 그렇게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겠다.

 

<오스틴 파워스 3>에서 닥터 이블(惡博士)에게 아들 스캇이 청한다. “I’d like some chocolate arse cream.” arse 또는 ass는 ‘궁둥이’나 ‘항문’이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나오는 ‘크림’은 ‘응가’다. 아무리 초콜릿을 씌워 준다고 하더라도 참으로 지저분한 먹을거리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들은 ice cream을 원했을 따름인데, 발음을 약간 영국식으로 하다 보니 그렇게 지저분해지고 말았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동음어(homophone) ‘응가’ 말장난이 있는데, 가수 조영남이 한때 잘 써 먹던 농담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항문(학문)을 열심히 닦아야 한다”고.

 

잠시 후에 아들 스캇이 다시 아버지 악박사에게 말한다. “Preparation H does feel good on the hole.” “예비계획 H는 구멍에 닿는 느낌이 좋다”는 뜻인데, on the hole은 물론 on the whole(전체적으로 볼 때)의 동음어 표현이다.

 

닥터 이블은 도쿄만(東京灣)으로 진입하는 잠수함에서 부하들에게 “Welcome to my new submarine lair”라는 환영의 말을 한다. lair는 짐승들이 사는 ‘소굴(den)’이나 ‘잠자는 곳’을 의미하지만, layer(‘층’ 또는 ‘켜’)와 발음이 같으며, layer가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속어 lay는 성교의 상대역인 여성을 뜻하는 속어로, 1950년대에 대단히 널리 쓰였던 우리말 ‘깔치’와 같은 뜻이다. ‘깔치’가 무슨 뜻인지는 쉽게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한다.

 

악박사는 그 말에 이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It is long and large and full of seamen.”(나의 새로운 잠수함 소굴은 길고, 크고, 수병들이 잔뜩 탔다.)

 

하지만 여기에서 seamen(수병들)을 동음어 semen(정액)으로 바꿔놓으면, 악박사의 설명은 영락없이 (길고, 크고, 정액이 가득 담긴) ‘음경’이 된다. 그뿐 아니라 제목에 나오는 Goldmember도 “황금처럼 대단한 음경”을 뜻한다. member가 cock(수탉)이나 dick과 마찬가지로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비속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 트래볼타와 세 명의 수병이 잠수함에서 바지를 벗고 사타구니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그곳’이 황금처럼 번쩍번쩍 빛난다.

 

<오스틴 파워스> 1편을 보면, 호텔방에서 오스틴과 여성 보조원 바넷사가 가방 속의 물건들을 꺼내 점검하는데, 오스틴의 권총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데린저(Deringer)만큼이나 작은 반면에, 바넷사의 권총은 더티 해리의 매그넘만큼이나 큼직하다. 이것은 물론 오스틴의 성기가 빈약함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다음에 오스틴이 가방에서 꺼내 든 물건이 확대기(enlarger)이기 때문이다. 오스틴의 확대기는 플라스틱 대롱 속에 음경을 넣고 펌프질을 하여 크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리고 확대기에는 한때 ‘성의 천국’이라고 불렸던 스웨덴의 깃발을 그려넣었다.

 

아직도 확대기와 오스틴의 작은 권총이 무슨 관계인지를 모르겠다면 다시 설명하겠는데, gun은 속어로 남자의 성기를 뜻한다. 그래서 “당신만 보세요(For Your Eyes only)”라는 야릇한 원제가 붙은 어느 007 영화의 포스터에서는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선 여자의 사타구니를 올려다보며 로저 무어가 권총을 겨눈 그림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외국 포스터의 그림에서는 결국 ‘총’의 각도를 조금 옆으로 돌리게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자의 아슬아슬한 부분을 까맣게 칠해서 가리는 편법을 써야 했다.

 

<오스틴 파워스 3>에서는 걱정거리가 생겼다고 걱정하는 아들 마이크 마이어스에게 휴지를 꺼내 보이며 마이클 케인이 안심시킨다. “If you got an issue, here’s a tissue.”(너한테 문제가 있다면, 여기 화장지가 있다.)

 

우리말로는 말 같지도 않은 이 말이 영어로 재미있는 까닭은 issue와 tissue가 rhyme(운)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두운(alliteration)은 말머리가 맞아떨어지지만, 운은 말끝이 맞아떨어진다. 아무리 그렇기는 하더라도, ‘문제’에 ‘휴지’를 들이대면, arse(학문?) cream을 닦아주겠다는 말인지 뭔지, 원 참.

 

 

 

‘서키 좀 드릴까요?’

 

<오스틴 파워스 3(Austin Powers in Goldmember)>에서는 autograph(사인)를 해달라는 일본 여자에게 오스틴 파워스가 싱글벙글하면서 명찰을 확인한다. “Oh, I see, your name ‘is’ Fook Mi.”(아, 그렇군요. 당신 이름이 진짜로 후쿠미로군요.)

 

is에 작은따옴표를 쓴 까닭은, “장난으로 한 얘기인 줄 알았더니 진짜로 그렇군요”라고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처음에 여자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이름을 Fook Mi라고 태연하게 밝혔을 때 오스틴은 “Fuck me”(그거 해줘요)라는 유혹적인 말의 동음으로 잘못 듣고 깜짝 놀랐었다. 잠시 후에 밝혀지지만, Fook Mi의 쌍둥이 자매는 이름이 Fook Yu다.

 

세 편의 오스틴 파워스 영화에서는 이런 식의 음란한 말장난이 매우 심하며, 등장 인물들의 이름 또한 하나같이 짓궂다. 예를 들면 악당 닥터 이블(Dr. Evil), 즉 악박사(惡博士)의 여비서는 일본 여자처럼 행동하는 서양 여자로서, 얼라타 클리비지(Alotta Cleavage)가 이름이다. alotta는 a lot of(굉장히 많은)의 구어체 줄임꼴이고, cleavage는 여성의 두 젖가슴 사이에 파인 ‘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굉장히 많이 보여줄게”라는 이름만 보더라도 이 여자는 자발적인 노출이 대단히 심한 성격임이 분명하다.

 

<오스틴 파워스(Austin Powers: International Man of Mystery)>처럼 장난이 심한 영화는 영어를 제대로 알아들으며 보면 화면에 슬쩍 지나가는 간판에 적힌 이름이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장난에서까지도 자질구레한 즐거움을 맛보지만, 그런 ‘즐거움’의 번역은 보통 난처한 일이 아니다. 온갖 어휘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여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인 오스틴 파워 식 장난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얼라타 클리비지는 발가벗고 같이 목욕을 하다가 오스틴에게 요상한 정보를 제공한다. “In Japan, men come first and women come second.”(일본에서는 남자가 먼저이고, 여자는 두 번째랍니다.)

 

이 말은 물론 서열이 남녀가 유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come은 성교를 하다가 절정에 올라 ‘사정(射精)’한다는 뜻으로도 널리 쓰인다. 따라서 클리비지의 말은 “남자가 먼저 절정에 올라 사정한 다음 여자는 기다렸다가 나중에 그런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목욕을 끝내고 본격적인 행사에 돌입하기 직전에 클리비지가 묻는다. “Care for some sucky?”(서키 좀 [해]드릴까요?) suck(빨다)은 입으로 행하는 성행위의 일종이다. 그래서 오스틴은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흐뭇해하며 “좋아!”라고 외친다. 그러자 클리비지는 미리 뒤에 준비해 놓았던 sake(사케·정종)를 가져다 한 잔씩 따른다. 이때 오스틴이 치사하게 실망하는 표정이 가관이다.

 

내친김에 sex 얘기를 몇 마디만 더 하고 지나가자. <길을 가는 두 사람(Two for the Road)>을 보면, 지중해 해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남편 앨버트 피니가 이상한 궁금증을 털어놓는다. “I don’t understand sex. Why do we enjoy it more and it means less?”(난 섹스를 이해할 수가 없어. 사람들은 섹스를 더 즐기면서도 왜 그 의미를 깎아내리는 거야?)

 

“섹스보다는 사랑이 더 고귀하다”고 외치는 수많은 위선자들이 찔끔해질 만한 질문이다. 하지만 오드리 헵번은 명답을 알고 있다. “Because it isn’t personal any more.”(이젠 그 은밀함이 다 없어졌기 때문이겠지.)

 

<덩굴장미(Rambling Rose)>에서 로라 던이 루카스 하스 소년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섹스의 은밀한 신비감이 어디까지 갔는지가 잘 보인다. “Sex don’t mean nothin’ to me, Bobby. It ain’t nothin’ but a mosquito bite. Girls don’t want sex. Girls want love.”(나한테는 섹스가 아무 의미도 없어, 바비. 그건 모기한테 물리는 거하고 같아. 여자들은 섹스를 바라지 않아. 여자들은 사랑을 원해.)

 

위 문장에서 sex는 3인칭 단수인데 don’t로 받았고, don’t와 nothin’은 이중부정이 되어 긍정의 뜻이 되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것은 화자가 무식한 사람임을 뜻하는 화법이다.

 

<작아지는 엄마(The Incredible Shrinking Woman)>에서는 신제품에 붙인 향수의 이름을 보고 직장 상관이 여주인공을 칭찬한다. “Sexpotter is a direct honest approach.”(‘섹스파터’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이에요.)

 

sexpotter는 1950년대 후반에 생겨난 조어 sexpot에서 다시 만들어낸 단어다. sexpot(섹스 항아리)은 ‘섹스 덩어리’라는 뜻이다. pot(항아리, 독, 냄비)은 소중한 물건을 모아두는 그릇으로서, honeypot(꿀단지)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sexpot이라는 영어 단어가 생겨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했던 외설적인 고전은 제목이 <꿀단지>와 <벌레먹은 장미>였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무지개가 땅에 닿는 곳을 파면 pot of gold(금단지)가 나온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다.

 

sexton은 단어의 생김새와는 달리 sex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절에서 궂은 일을 하는 불목하니처럼 교회에서 잡일을 하고 종을 치는 머슴을 sexton이라고 한다. Sexagenarian은 “섹스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육순 노인’이라는 말이다.

 

 

 

남자는 칼로써 여자를 차지한다?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의 명작 <라쇼몽(Rashomon·羅生門)>이 베네치아 영화제의 대상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간결하고 문학적인 뛰어난 자막 번역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산적에게 강간당한 여자에 관한 스님의 증언을 이런 식으로 번역해 놓았다.

 

“A human life is truly as frail and fleeting as the morning dew.”(인생은 정말로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입니다.) ‘덧없는’을 두운에 맞춰 frail and fleeting(연약하고 무상한)이라고 옮겨놓은 솜씨를 보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인 번역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런데 그만 어느 한 대목에 이르면 예기치 못했던 폭소가 터져 나온다. 남편(시무라 다카시)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적(미후네 도시로)에게 강간을 당한 여자(교 마치코)는 두 남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맞고, 그래서 산적과 남편에게 칼싸움을 붙여 살아남는 남자를 선택하겠다며 이런 말을 한다.

 

“A man has to make a woman his by his sword.”(남자는 칼로써 여자를 차지해야 합니다.) ‘칼’에는 워낙 종류가 많아서, 널리 알려진 knife나 razor 이외에도 도적들이 무기로 삼는 blade, 군용 bayonet(단검), 이국적이고 멋진 단검 stiletto, 간편한 무기인 dagger(단검), 스코틀랜드의 단검인 dirk, 911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의 전사가 비행기에서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한 cutter, 정글에서 휘두르는 machete(벌목도, “마셰티”라고 발음), 멋쟁이 sabre, 알라모에서 최후를 마친 서부의 사나이 짐 보우이가 결투용으로 개발한 Bowie knife, 그리고 중국 요리사들이 사용하는 직사각형의 넓적한 칼 meat-cleaver 따위가 널리 쓰인다.

 

그런데 하고 많은 칼 가운데 무사들의 무기인 sword(劍)는 유별나게도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속어로 맹활약을 벌인다. 그래서 <라쇼몽> 여자의 말을 직설적으로 번역하면 이런 민망스러운 표현이 된다. “남자는 여자를 성기로 정복해야 합니다.” 번역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작업인지를 잘 보여주는 이런 unintended pun(의도하지 않은 곁말)을 피하려면 sword 대신 swordsmanship(칼솜씨) 따위 다른 말로 둘러대야 할 필요가 생긴다.

 

필자가 영어로 소설쓰기를 공부하던 대학시절에는 ‘시사영어’ 잡지에, 황순원 선생의 작품이라고 기억되지만, 한국 고전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서 실었는데, “수탉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는 대목을 “The cock strutted around rooster”라고 옮겨놓았다. 오스틴 파워스의 goldmember 대목에서 설명했듯이 cock 역시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번역문은, 점잖은 신문에 이런 표현을 쓰기가 멋쩍기는 하지만, “×대가리가 까딱거리며 돌아다녔다”는 뜻이 된다. 이때부터 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수탉’은 cock이 아니라 무조건 rooster라는 말로 번역하라고 열심히 권한다. rooster가 까딱거리며 돌아다니는 건방진 꼴은 동물의 의인화(擬人化, personification)에서 대표격이겠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마치 제가 알을 낳기라도 한 듯 얼른 지붕으로 날아올라가 목청껏 울어대는 수탉의 행태를 보면, <진정한 용기(True Grit)>에서 애꾸눈 술주정뱅이 치안관 존 웨인의 이름이 왜 Rooster Cogburn인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 극중인물의 이름은 “수탉 아저씨”라고 번역했어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Laramie)>에서 목장의 여주인이 보안관에게 제임스 스튜어트를 감옥에서 내보내 달라며 “Tom, let this rooster out of here”(톰, 이 수탉을 여기서 좀 내보내주지 그래요)라고 했을 때도 같은 의미로 쓰인 용법이다.

 

cock의 형용사 꼴인 cocky는 ‘수탉 같은’에서 ‘건방진’으로 의미가 발전했다.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에서 정신 상담을 받지 않으려고 버티는 맷 데이먼에게 로빈 윌리엄스가 하는 말이다.

 

“Look at you. I don’t see any intelligent, confident man. I see a cocky scared lonely kid.”(자네 꼴을 보라고. 자네 딴에는 자신이 꽤나 지적이고 자신만만한 남자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보기엔 건방지고 겁이 잔뜩 난 외로운 아이에 불과한데 말이야.)

 

cock을 자동사로 쓰면 권총이나 장총을 격발하려고 “공이치기를 뒤로 당기다”나 모자 따위를 “삐딱하게 치켜올리다”라는 뜻이 되는데, 역시 삐딱하고 발딱 일어서려는 수탉의 속성을 반영한 의미다. 그래서 cockeye(d)는 ‘사팔뜨기(의)’로부터 ‘비뚤어진’이나 ‘가당치도 않은’으로 의미가 진화했다.

 

<콜로라도의 사나이(The Man From Colorado)>에서는 강도단 두목이 된 옛 부하를 찾아간 윌리엄 홀든이 광산회사 습격에는 가담하지도 않은 어린 동생을 교수형 위기에서 구해주라고 충고한다. “But Johnny is kinda young to die for nothing but cock-eyed loyalty to his brother. Who will pay the bill, Jericho, you or Johnny?”(하지만 자니는 형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하나 때문에 죽기에는 좀 어린 나이잖아. 그 죗값은 자네 제리코와 자니 가운데 누가 갚아야 되겠나?)

 

cocktail(닭꼬리)이 어쩌다 술 이름이 되었는지에 대한 가설은 여러 가지인데, 이런 ‘닭꼬리’도 있다. <13구역을 수비하라(Assault on Precinct 13)>에서 불량배들이 마지막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지붕에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경찰서를 지키던 경위가 말한다. “Molotov cocktails. They’re going to set this damn place on fire.”(몰로토프 칵테일이야. 녀석들이 여길 불바다로 만들려고 그러는가봐.)

 

소련 정치가의 이름을 딴 Molotov cocktail은 에스파냐 내전 당시 대전차용 화염병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한때 대단히 많이 사용되었던 모든 ‘화염병’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그래, 너 팔뚝 굵다”

 

<오스틴 파워스>는 동음어(homophone)의 묘기를 넘어 곁말의 용법에서도 ‘성인용’으로 일관한다. 도입부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양쪽 젖꼭지에 장착한 총구(銃口)로 경비원들을 사살하는 시범을 보이자 오스틴이 던지는 한마디부터가 그렇다. “I like to see the girls of that calibre.”

 

예문을 고지식하게 옮기면 “저런 총구가 달린 아가씨들을 보면 난 기분이 좋아”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그 말을 해놓고 오스틴은 자신의 야한 농담에 대해서 눈치가 보여서인지 얼른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By ‘calibre’ I mean, of course, both the size of their gun barrel and high quality of their characters.”(내가 말하는 ‘구경’은 물론 총열의 크기뿐 아니라 인격의 드높은 자질에도 적용되는 얘기야.)

 

calibre(미국 영어에서는 caliber라고 표기함)는 ‘구경(口徑)’ 즉 ‘총구의 직경’을 뜻한다. 그러니까 ‘총구멍의 직경(굵기)’을 따지는 말이다. 우리말에서 “그래, 너 팔뚝 굵다”라고 비아냥거릴 때의 ‘(팔뚝) 굵기’가 곧 caliber에 해당되겠다. 나아가서 ‘사람 됨됨’을 따지는 단위로서의 ‘바탕’이나 ‘그릇’이 바로 caliber여서, a man of great caliber(거대한 총구의 사나이)라면 “굉장히 대단한 인물”이라는 의미다.

 

<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에서는 20년 동안 보물을 추적해온 시드니 그린스트릿 탐정이 험프리 보가트에게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기에 앞서서 분위기를 잡는다. “This is going to be the most astounding thing you’ve ever heard, and I say this knowing the man of your caliber, in your profession, find few things astounding.”

 

이 문장은 자주 쓰이는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악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This is going to be the most astounding thing you’ve ever heard는 “지금까지 자넨 이렇게 놀라운 얘긴 들어본 적이 없어”라는 뜻이다. and I say this knowing (that) ~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양해를 구하는 화법이다.

 

나머지 문장은 “자네가 종사하는 직업(사립탐정)에서 자네 정도의 관록(caliber)을 자랑하는 인물이라면 무슨 얘기를 듣더라도 놀랄 일이 별로 없으리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find는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식으로 해독해야 한다. 따라서 전체 문장은 이런 번역이 가능하다. “자네 정도의 명탐정이라면 무슨 얘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겠지만, 이건 진짜로 놀랄 만한 일이라네.”

 

여기서 caliber는 ‘관록’이나 ‘정도’ 또는 ‘수준’이나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때의 caliber(굵기)와 비슷한 용법으로 널리 쓰이는 ‘높이’도 있다. stature(키, 능력)가 그것이다.

 

<뉘른베르크의 재판(Judgment at Nuremberg)>에서 전범 재판을 시찰하러 온 상원의원이 스펜서 트레이시 재판장에게 “It is good to have a man of your stature here”라고 말했을 때는 “당신처럼 키가 큰 사람이 이런 일을 맡아줘서 다행”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트레이시는 키가 퍽 작은 배우다. 여기서 your stature는 your caliber나 마찬가지로 ‘관록’을 뜻한다.

 

stature를 그냥 ‘키’라 하지 않고 “키가 큰”이라고 번역한 까닭은 caliber나 마찬가지로 stature 역시 무엇인가 보통을 능가하는 ‘대단한’ 수준을 함축적으로 암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쿼바디스(Quo Vadis)>에서 네로 황제(피터 유스티노프)가 로마에 불을 지르는 이유를 설명할 때는 stature가 일반적인 수준(차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I must exceed the stature of man in both good and evil. only then will I be the supreme artist.”(나는 선과 악에 있어서 다 같이 인간의 차원을 능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최고 예술가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아서(Arthur)>에 등장하는 오만한 재벌 2세 더들리 무어는 spoiled brat(“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라는 흔한 표현)이다. 가난한 라이자 미넬리를 처음 만나서 그가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의 stature(인간 됨됨)가 빤히 드러난다. “It’s been a distinct pleasure meeting you.”(당신과의 만남은 특이한 기쁨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spoiled brat치고는 참 예의가 바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한 distinct는 ‘진귀한’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아니라 ‘독특한’이라는 말을 나쁜 쪽으로 사용한 euphemism(완곡어법)이다. 그것이 나쁜 완곡어법이라는 사실은 stature를 언급하는 다음 말을 들으면 분명해진다. “Usually one must go to a bowling alley to meet a woman of your stature.”(당신 같은 차원의 여자를 만나려면 볼링장을 가야 하는 경우가 보통이죠.)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볼링장이라면 상당한 status(신분)에 이른 사람들의 고상한 사교장이라고 여겨졌지만, 서양에서는 당구장처럼 “아무나 가는 서민들의 놀이터”를 뜻한다. 그러니까 무어는 미넬리가 “천박한 여자”라는 말을 spoiled brat(나쁜 자식)답게 sarcasm(꽈배기 화법)으로 구사한 것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여자한테 그런 잔인한 소리를 하다니, 정말로 못된 녀석이다.

 

 

 

정말 바보같은 장난이야

 

우리말이건 영어이건 음담패설은 신체 부위, 특히 여성의 민감한 부위를 동식물이나 다른 사물에 비유하는 엉큼한 화법을 자주 동원하는데, <오스틴 파워스>에서도 그런 장난은 빠질 줄 모른다. 영화 후반부에서 악당의 인공위성이 격추를 당하고, 그 장면이 텔레비전 방송을 탄다. 그런데 레이더에 잡힌 인공위성의 윤곽이 젖가슴 곡선을 그대로 닮았다.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어머니가 소리친다.

 

“What a booby joke!”(정말 바보 같은 장난이구만!) booby(=boobie) 또는 boob은 에스파냐어의 bobo(명사 ‘바보’ 또는 형용사 ‘어리석은’)가 어원으로서 ‘얼간이’나 ‘얼뜨기’ 또는 ‘멍청한 짓’을 뜻한다. 그래서 “교양이 없고 무식한 부류”를 booboise라고 한다. 이 말은 물론 bourgeoisie를 변형시킨 표현이다. 흔히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라고 하는데, 이것도 stupid cabinet이나 fool’s box가 아니라, 진짜 영어로는 운을 맞춰서 boob tube(부웁 튜웁)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문에서 booby joke라는 말이 웃기는 까닭은 booby의 곁말 때문이다. boob나 boobie는 아기들이 쓰는 말로 ‘찌찌’라는 뜻이다. hip(s)나 마찬가지로 물론 이 단어도, 두 쪽을 하나로 계산하여, 대부분의 경우에 복수형으로 써야 옳다. 그리고 boobs라는 말을 어른들이 쓸 때는 ‘젖탱이(=젖퉁이=젖통)’ 정도의 천박한 표현이기 때문에, 알아두기는 하더라도 생활영어에서 활용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어쨌든 예문을 보다 실감나게 번역한다면 이런 말이다. “정말 젖탱이처럼 웃기는구만!”

 

버트 레이놀즈 같은 연예인이라면 boobs에 관한 booby joke를 좀 하더라도 무방하겠다. 그는 로니 앤더슨과 결혼한 직후에 자니 카슨이 진행하는 심야 프로그램(The Tonight Show)에 출연해서, 그가 받은 점궤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었다.

 

“I’m going to marry a blonde* with big boobs.”(나더러 젖통이 큰 금발과 결혼하리라고 그러더군요.) *blonde의 형용사꼴은 -e가 없는 blond(금발의)다. 두 단어의 발음이 같으니까,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주로 텔레비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앤더슨의 유명한 가슴 크기가 궁금하다면, 인터넷에서 Loni Anderson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booby joke은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틴 2세의 고전 뮤지컬 <남태평양(South Pacific)>에서도 선보인다. 해군과 해병을 위한 위문공연에서 간호장교 밋지 게이너가 수병복 차림으로 부르는 노래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I am her booby, she is my trap.”(나는 그녀를 보면 바보가 되고, 그녀는 나를 잡는 덫이라오.)

 

얼핏 보면 이 노랫말에서는 I am her booby가 “나는 그녀의 젖통이오”라는 소리여서 웃긴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joke은 엉뚱한 곳에 따로 숨어 있다. 앞부분의 booby와 뒷부분의 trap을 엮으면 booby trap(위장 폭탄)이 된다. 전쟁터에서 전사한 시체나 건물 따위에 수류탄 같은 폭발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낚싯줄로 연결하여 잘못 건드리면 터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를 booby trap(바보의 덫)이라고 하며, 그래서 위 노랫말은 군인들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에 잘 어울리는 말장난이다. 학교에서 교실 문짝 위에 물을 담은 양동이를 올려놓아 멍청한 학생이나 선생이 멋도 모르고 문을 열다가 물벼락을 맞게 하는 장난도 booby trap이라고 한다.

 

boobs처럼 천박한 말이나 표현을 고상한 자리에서 big word(어려운 단어)로 바꿔 넣는 둘러대기 화법을 euphemism(완곡어법)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은밀한 예식(Secret Ceremony)>에서 근친상간적 성향이 농후한 의붓아버지 로벗 밋첨이 미아 패로우의 어머니 노릇을 하는 엘리저베드 테일러에게 털어놓는다. “My wife was well bred and rather frail ― except for her famous mammilae. Excuse me, that’s a private joke in questionable taste.”

 

첫 문장은 “내 아내는 출신 성분이 고상하고 몸이 연약한 편이었는데 ― 그 유명한 유두(乳頭)만큼은 예외였죠”라는 뜻이다. mam(m)ila(e)는 보다 널리 쓰이는 nipple(젖꼭지)과 의미는 같아도 출신 성분만큼은 대단히 고상한 라틴어다.

 

그래도 어쨌든 여성의 신체 부위를 놓고 말장난을 했으니 미안하다며 밋첨이 사과하는데, 물론 “별로 취향이 바람직하지 않은 은밀한 농담이어서 황공하긴 하지만요”라는 두 번째 문장도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꽈배기 화법이다. questionable은 ‘직역’을 하면 “문제로 삼을 만한”이라는 뜻이다.

 

<여자의 이별(Shirley Valentine)>의 원작자이기도 한 극작가-작곡가 윌리 럿셀의 무대극을 영화로 만든 <리타 길들이기(Educating Rita)>는 천박한 신분의 여자 줄리 월터스가 교육을 통해 품위를 갖추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내용을 담은 슬픈 희극이다. 개인교수를 받으러 마이클 케인 교수의 연구실에 간 그녀는 벽에 걸린 여자의 나체 그림을 보고 한 마디 하는데, “문제로 삼을 만한” 언어문화적 ‘밑천’이 당장 드러난다.

 

“That’s a very nice picture. So erotic. Look at those teats. Do you mind me using words like that?”(저거 아주 멋진 그림이군요. 정말로 색정적예요. 저 젖꼭지 좀 보라구요. 나 이런 말은 쓰면 안 되는 거죠?) ‘이런 말’이란 mamilae를 속칭한 teat(s)을 의미한다. tit(s)도 teat(s)와 여러 모로 동족이다. 하지만 젖병의 꼭지는 teat이라 해도 책을 잡히지 않고, 이유를 잘 알겠지만, 단수로 써도 된다.

 

 

 

“당신 참 끔찍하게 착한 여자야”

 

모두(冒頭)에서 밝혔듯이 이 연재물을 준비하느라 필자는 5년에 걸쳐 2500편가량의 영화를 소탕했는데, 그 과정에서 영어 공부에 어떤 종류의 영화가 좋은지를 자연스럽게 확인했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계열은 브루스 윌리스, 스티븐 시걸, 아널드 슈워제네거 같은 근육질 배우들이 주연하는 멍청 영화로, 싸움박질·주먹질·칼질만 바쁘고 별로 대화를 주고받을 줄 모르기 때문에 두세 시간 귀를 곤두세우고 이를 잡듯 뒤져도 쓸 만한 문장은 두 개를 건지기가 어렵다. 활극 중에서는 그나마 서부극에 받아치기(retort) 기법의 좋은 대사가 많고, 웅변적 수사학이 발달한 사극은 그보다 한 단계 높다.

 

재치가 번득이는 문장은 희극에서 많이 나오고, 일반적으로 희극적 성향이 강한 음악극(musical)은 그보다 한 수 위로 올라간다. 노랫말이 갖가지 문학적 기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스탠리 도넨과 진 켈리가 함께 연출한 고전 음악극 <춤추는 대뉴욕(On the Town)>을 보면, 노랫말이 아닌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homophone(동음어) 같은 기법이 마구 춤춘다.

 

곰 가죽만 몸에 두른 박물관의 원시인 납인형(蠟人形)과 똑같이 생긴 수병 줄스 먼신을 보고 첫눈에 반한 인류학자 앤 밀러가 소리친다. “I really love bear skin.”(난 진짜로 곰 가죽을 좋아해요.) 곰 가죽을 좋아하다니 참으로 취미도 distinct(특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밀러가 좋아하는 bear skin은 bare skin(맨살)의 동음어다. 그러니까 엉큼하게도 “홀랑 발가벗은 몸이 좋다”는 뜻이다.

 

마릴린 먼로에게 “What do you wear when you go to bed?”(잘 때는 무얼 입나요?)라고 기자가 물었더니 “Chanel 5”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샤넬 5 향수만 바르고 발가벗은 채로 잔다”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wear가 “(옷 따위를) 입다”와 “(화장품 따위를) 바르다”라는 의미로 함께 쓰인다는 점을 활용한 기막힌 pun이다.

 

<진홍의 도적(The Crimson Pirate)>에도 wear의 곁말놀이가 나온다. 영국 귀족으로 가장하고 총독의 만찬에 참석한 벙어리 해적 닉 크라밧에게 귀부인이 묻는다. “What does the Queen wear when she goes out these days?”(왕비께서는 요즈음 외출할 때면 무슨 옷을 입나요?)

 

닉 크라밧이 수화로 대답하자 그 내용을 버트 랭카스터 해적선장이 ‘번역’한다. “The Count says, the Queen wears the King out.”(백작께서 말씀하시기를, 왕비는 왕을 입고 나가신다는군요.)

 

물론 위 번역은 일부러 wear(입다)와 out(나가다)을 억지로 직역한 꼴이다. 하지만 두 단어를 붙이면, <남태평양>의 booby trap처럼, 완전히 다른 뜻이 된다. wear(닳다)와 out(밖에)이 결합하면 “(잔소리 따위로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든다”라고 뜻이 바뀌어서, 해적선장이 한 말은 “백작께서 말씀하시기를, 왕비가 진을 빼는 통에 왕이 넌더리를 친다는군요”라는 소리가 된다.

 

<춤추는 대뉴욕>에서는 줄스 먼신 수병이 박물관에 조립해 놓은 공룡의 뼈대를 실수로 무너트리고 도망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를 잡으러 다니는 경찰관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까지 쫓아가서 먼신과 함께 휴가를 나온 진 켈리와 프랭크 시내트라에게 묻는다. “Have you seen another sailor hanging/around/here?”(당신들 말고 다른 수병 한 사람 이 근처에서 못 봤어요?)

 

이 번역문은 hanging around를 붙여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경우다. 하지만 around를 앞에 나온 hanging이 아니라 뒤따라 나오는 here에 붙여서 번역하면, “이 근처 어디엔가 매달린 수병을 혹시 못 봤느냐?”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는 경찰관들이 보지 못하게 먼신이 담벼락 너머로 켈리와 시내트라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이 영화에서는 열정적인 택시운전사 베티 개럿이 프랭크 시내트라에게 반해서 과격하게 애정을 표시하며 열심히 쫓아다닌다. 주눅이 든 시내트라 수병이 그녀에게 노래로 심경을 털어놓는다. “You are awful.”(당신은 끔찍해.)

 

개럿의 표정이 사나워진다. 시내트라는 토라진 그녀를 달래주려고 한 마디 덧붙인다. “―awful nice to be my girl.”(내 애인이 되어주다니, 당신 참 끔찍하게 착한 여자야.) 뒤따라 나오는 설명 때문에 awful은 형용사에서 부사로 품사가 바뀌면서 의미 또한 ‘끔찍한’에서 ‘굉장히’라고 슬그머니 뒤집힌다.

 

잠시 후에 시내트라의 노래가 이어진다. “You’re boring.”(당신은 따분해) 그리고 다시 내용이 뒤집힌다. “― boring into my heart to stay.”(당신은 내 마음 속으로 뚫고 들어와서 떠나지를 않네.) ‘뚫다’와 ‘따분하다’라는 의미를 함께 지닌 겹말 bore를 가지고 뚫는 pun이다.

 

 

 

“이 몸은 기분파라는 이름의 전차”

 

<춤추는 대뉴욕>에는 진화한 동음어도 등장한다. 박물관에서 줄스 먼신 수병이 공룡의 뼈대를 무너트렸으니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연락이 순찰차에 무전으로 전달된다. “Calling Car 44. Report to Museum of Anthropological History and investigate the collapse of dinosaur.”(44호 순찰차는 응답하라. 인류사 박물관으로 출동하여 무너진 공룡에 대해서 조사하기 바란다.)

 

무전을 받은 경찰관이 놀라서 동료에게 말한다. “Collapse!”(기절하다니!) 경찰관은 collapse(무너지다)를 collapse(기절하다)라는 말로 잘못 들었다. 그래서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줄줄이 오해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Why, that’s terrible. She’s my favorite singing star, that Dinah Shore!”(이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나. 그 여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인데. 다이나 쇼어 말이야!) collapse를 ‘기절하다’라고 착각했으니, ‘기절’의 주인공 dinosaur(다이너소어)를 여가수 Dinah Shore라고 연상(聯想)한 제2의 착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춤추는 뉴욕에서는 pun도 계속 춤춘다. 사랑하는 “지하철 아가씨” 비라-엘렌이 도망간 다음 상심한 진 켈리 수병에게 프랭크 시나트라 수병이 위로의 말을 한다. “We’re your pals, pal. I’ll be right with you and you can count on me.”(우린 자네 친구들이라네, 친구여. 난 자네 곁에 꼭 붙어 있을 테니까, 자넨 날 믿어도 되네.)

 

그리고는 count on(의지하다)이라는 단어로 곁말놀이를 한다. “As the adding machine once said, you can count/on/me.”(언젠가 계산기가 말했듯이, 자넨 나한테 의지해도 된다네.) 여기에서는 on이 앞 단어 count에 달라붙어 “의지하다”라는 의미를 이룰 때와는 달리, 뒤따라 나오는 me와 짝을 맺으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count) on me는 “내 몸을 두드려라,” 그러니까 “나(계산기)를 사용(해서 계산)하라”는 뜻이다.

 

사랑에 저돌적인 택시 운전사 베티 개럿도 켈리 수병에게 똑같은 화법을 구사한다. “I’ll stick to you.”(난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냉큼 이렇게 덧붙여 노래한다. “As the flypaper told the fly, I’ll stick to you.”(끈끈이가 파리한테 말했듯이, 난 당신한테 찰싹 달라붙을 거예요.)

 

그리고 <춤추는 대뉴욕>에서는 allusion(인유)의 기법도 선보인다. 인유(引喩)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나 고전의 내용 또는 널리 알려진 어떤 다른 개념을 끌어다가 빗대어 하고 싶은 얘기를 과장하거나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문학과 영화에서 흔히 활용된다.

 

인유가 무엇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쌤의 아들(Sam’s Son)>을 보면 허약한 주인공이 머리를 몰래 기르다가 걸려 교장선생에게 끌려가 꾸중을 듣는다. “Let me get it straight. You don’t want to have your hair cut, because you don’t want to lose your strength.”(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따져보자. 그러니까 넌 기운이 빠지지 말라고 머리를 깎지 않겠다 이 얘기냐?)

 

주인공은 성경에 나오는 삼손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힘이 솟아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영화의 원제 Sam’s son을 줄이면 Samson이라는 표기도 가능하다. (영어 이름에서는 예를 들어 Johnson은 John’s son, Richardson은 Richard’s son, Peterson은 Peter’s son이라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성서를 인유한 경우를 biblical allusion이라고 한다. 성경 구절을 직접 인용하는 biblical quotation과의 차이를 명심하기 바란다.

   

<춤추는 대뉴욕>에서는 세 명의 수병이 모처럼 휴가를 받아 군함에서 내려 뉴욕을 돌아다니며 애인을 구하는데, 진 켈리 수병이 사소한 오해 때문에 비라-엘렌과 헤어져 저녁시간을 같이 보낼 여자가 없어진다. 그래서 서둘러 켈리와 짝이 될 여자를 시나트라가 구하기는 하는데, 막상 나타난 여자 앨리스 피어스를 보니 못생겨도 정말 못생겼다. 그러나 멋쟁이 수병 켈리와 인연을 맺게 된 피어스는 혼자 신이 나서 외친다.

 

“Hildy can tell you I’m just Streetcar Named Impulsive.”(힐디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이 몸은 기분파라는 이름의 전차랍니다.) 피어스의 공격적인 별명은 물론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명한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를 변형시킨 allusion이다. 그리고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켈리 수병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피어스가 내처 묻는다.

 

“Did you see ‘The Lost Weekend’?”(<잃어버린 주말>을 보셨나요?) 4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빌리 와일더의 명작 <잃어버린 주말>은 1944년에 찰스 잭슨이 발표한 소설이 원작으로서, 술 중독자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못생긴 기분파 아가씨의 질문에 켈리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See it? How I resent it.”(봤느냐고요? 난 정말로 그게 서럽다고요.)

 

여기에서 see는 ‘경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고, the lost weekend는 헛되게 보낸 주말 휴가를 가리킨다. 그리고 resent는 ‘섭섭하다’거나 ‘후회가 막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켈리 수병이 한 말은 “이렇게 주말을 잃어버리게 생겼으니 내 신세가 정말 처량하다”는 뜻이다.

 

 

“Who, who, who?” “너 부엉이냐?”

 

<코쿤(Cocoon)>의 흄 크로닌 영감은 우주의 정기를 받아 회춘 되는 바람에 정력이 넘친다. 그래서 밤 늦도록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자꾸 귀찮게 보채지만, 늙은 두 친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집에 가겠다며 고집하는 돈 아미치에게 심통을 부린다. “So good night, you worriers. Boy, talk about a wet blanket.”(그렇다면 어서 가 봐, 이 겁쟁이들아. 정말 밥맛 떨어지는구먼.)

 

여기서 worrier(걱정만 하는 사람)는 warrior(용감한 역전의 용사)와 완전히 반대 의미를 지닌 동음어다. wet blanket(젖은 담요)은 불을 끌 때 사용한다. 그래서 한참 화끈 달았을 때 완전히 흥을 깨트리는 사람을 wet blanket이라고 한다.

 

<가프가 본 세상(The World According to Garp)>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아내가 대학원에 강의를 나가게 된다. 어린 아들은 graduate school(대학원)을 gradual school이라고 잘못 듣고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장난기가 발동한 아버지의 설명이다. “A gradual school is where you go and gradually find out you don’t want to go to school any more.”(점점학교는 입학을 하고 나면 더 이상 학교가 다니기 싫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는 그런 곳이란다.)

 

어휘력이 짧아서 잘못 알아듣고 어린아이가 엉뚱한 말을 만들어내는 위 경우와는 반대로, 의도적인 homophone은 대부분의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삼아 만들어낸다.

 

막스 4형제와 쌍벽을 이루었던 할리우드의 희극배우 집단 세 얼간이(The Three Stooges=Larry Fine, Mo Howard, Jerry ‘Curly’ Howard)의 어느 텔레비전 촌극에서는 세탁 당번인 컬리 수병이 제독의 옷을 훔쳐 입고 파티에 간다. 독일 첩자가 동료 여간첩더러 ‘제독’에게 접근하여 쓸 만한 정보를 빼내라고 지시하자 여자가 만만하게 장담한다.

 

“Don’t worry. I’ll get the information if it’s womanly possible.”(걱정 말아요. 여성으로서 가능한 일이기만 하다면, 내가 꼭 정보를 알아낼 테니까요.)

 

이 말이 웃기는 까닭은 womanly의 용법이 무식한 사람의 문자쓰기처럼 이상하기 때문이다. womanly possible을 정확히 번역한다면 “여성답게 가능한”이라는 어색한 표현이어서, 말도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womanly는 humanly와 동음어에 가까울 정도로 비슷하게 들린다. 그래서 womanly를 humanly와 교체하여 if it’s humanly possible이라고 하면, “만일 그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기만 하다면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을 해 내겠다”는 아주 흔한 관용구가 된다.

 

어쨌든 여간첩은 컬리에게 접근하려고 말을 건다. “Admiral Taylor.”(테일러 제독이시군요.) 컬리 수병이 놀라서 묻는다. “How did you know I was a tailor?”(내가 재봉사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여자는 컬리의 명찰에서 Admiral Taylor라는 이름부터 확인한 반면에 컬리는 훔쳐 입은 옷의 임자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double talk이다. 그리고 동음어 Taylor와 tailor는 pun을 만들어낸다.

 

Taylor와 tailor는 사실 동음어라기보다는 ‘양복장이’를 뜻하는 같은 단어다. 서양 인명에는 이렇게 직업을 나타내는 이름이 많다. Fisher(어부), Miller(방앗간 주인), Smith(대장장이), Baker(빵장수), Hunt(=Hunter, 사냥꾼), Marshall(사령관), King(왕), Wagner(=Waggoner, 마부), Wheeler(짐수레꾼), Warden(감독), Shoemaker(구두장이), Gardner(정원사) 같은 이름도 그래서 자주 곁말놀이에 등장한다.

 

이름을 이용한 동음어 말장난은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도 난무한다. FBI 요원 멜 깁슨이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용의선상에 오른 투숙객들에게 질문을 하는데, 저능아 제러미 데이비스가 말을 더듬으며 묻는다. “Who, who, who?”(누구-누구-누구요?)

 

깁슨이 짜증을 부린다. “What are you, an owl? The dead man Israel Goldkiss.”(너 부엉이냐? 죽은 사람 이스라엘 골드키스 말이야.) 부엉이 울음소리를 영어로는 whoo, whoo 또는 whoop, whoop이라고 표기하는데, 데이비스가 Who, who, who라고 더듬는 말이 영락없는 부엉이 소리다. 그래서 깁슨은 “너 부엉이냐?”라면서 핀잔을 준다.

 

그러자 데이비스가 말한다. “Izzy.” 이 호텔 투숙객들 사이에서는 Israel이 이지(Izzy)라는 애칭으로 통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깁슨은 Izzy를 Is he라는 말로 잘못 듣고 되묻는다. “Is he what?”(그 친구가 뭘 어쨌단 말야?) 데이비스가 부연하여 설명한다. “Izzy…was he.”(그 친구…이름이 이지라고요.) “Izzy. Right.”(이지라고. 알았어.)

 

이어서 데이비스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Geronimo.”(제로니모요.) 인상이 인디언 같아 보여서 별명이 제로니모인 지미 스밋츠를 만나보라는 뜻이다. 깁슨이 다시 짜증스러워진다. “Whatever.”(그냥 넘어가자고.) 깁슨이 그런 반응을 보인 까닭은 Geronimo를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라고 놀리는 소리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Too times ten!” 유치한 말장난

   

빔 벤더스의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 double talk(동문서답)을 위한 pun(곁말)으로 쓰였던 고유명사 제로니모는 유명한 아파치족 인디언 추장의 이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널리 애용하는 짝퉁 영어 “Fighting!”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극기 훈련을 받으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따위의 위험한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자야!”라며 애인 이름을 외치듯이, 미국인들은 힘을 내기 위해 “제로니모!”라고 힘껏 외치고는 한다.

 

“Geronimo!”는 이렇게 “내가 나가신다!”라는 일반적인 뜻 말고도 “어려운 일을 참 잘 해냈다”는 격려의 말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밀리언 달러 호텔>의 멜 깁슨은 말더듬이에게서 칭찬을 듣고는 몹시 기분이 상한 눈치다.

 

<못말리는 람보(Hot Shots! Part Deux)>를 보면 특공대원들이 차례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며 “제로니모!”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인디언이 뛰어내리며 외친다. “Me!”(나!) 아마도 그 인디언의 이름이 제로니모였던 모양이다.

 

<못말리는 람보>의 전편(前篇)에 해당되는 <못말리는 비행사(Hot Shots!)>에서는 여자를 놓고 삼각관계에 처한 찰리 신과 다른 조종사가 아이들처럼 입씨름을 벌인다. “Not, not, not, not, not!”(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찰리 신이 반격한다. “Too, too, too, too, too! Too times ten!”(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곱하기 10!) 두 조종사가 도대체 무슨 말장난을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not과 too가 대결하는 특이한 대화에 숨겨진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사막의 꽃(Desert Bloom)>에서는 13살 소녀 안나베트 기시가 어떤 남자 배우를 좋아한다고 얘기하자 자존심이 상한 남자 친구 제이 언더우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코웃음을 친다. “I think he was just a stand-in, though.”(내가 보기엔 그 사람 시시한 대역 배우밖에 안 되는 것 같더구만.)

 

기시가 반문한다. “He was?”(그래?) 언더우드가 고집한다. “Of course.”(물론이지.) 기시가 반박한다. “He was not.”(그렇지 않아.) 소년이 재반박한다. “He was too.”(내 말이 맞아.) “He was not.”(안 맞아.) “He was too.”(맞는다니까.) “He was not.”(안 맞는다니까.) “He was too.”(맞는다고.)

 

이렇게 not과 too는 어떤 문제를 놓고 서로 고집을 부릴 때 쓰이는 화법이지만, 아이들(중에서도 특히 계집아이들)이나 잘 쓰는 말투다. 나중에 아버지 존 보이트를 너무 미워해서 같은 집에서 살기 싫다며 가출해버린 기시가 할머니를 찾아가겠다니까 언더우드가 또 코웃음을 친다.

 

“To Reno? In the middle of the night? You can’t go on to the desert like that.”(리노까지 말이야? 이런 한밤중에? 사막에는 아무나 가는 게 아냐.) 여기에서 like that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 그렇게 간단히”라는 뜻이며, just like that이라고 할 때도 많다. 그리고 이 말을 할 때는 흔히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말로 “손바닥을 뒤집 듯 그렇게 간단히” 정도의 뜻이 된다.

 

기시는 이번에도 똑같은 화법으로 반박한다. “I can too!”(내가 못 가긴 왜 못 가!) 이 정도면 not과 too의 대칭 용법은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찰리 신이 들이대던 Too times ten은 무엇일까? “Too 곱하기 10”이니까, 일일이 too 소리를 열 번 하기는 싫어서 한꺼번에 하겠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two times ten(2×10)이라는 99단 homophone 장난이다. 정말로 유치한 어른들의 말다툼이다.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은 현실과 환상의 충돌 상황이 감동적인 주제를 제공한다. 결혼에 실패한 모린 오하라는 어린 딸 나탈리 우드에게 산타클로스 따위의 허황된 얘기(想像)를 믿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성탄절 대목에 오하라가 일하는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 노릇을 하라고 고용된 에드먼드 그웬은 그와 상반되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Imagination is a place by itself. A separate country. You heard of the French nation, the British nation. This is the image nation.”(상상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마을이 된단다. 따로 떨어진 하나의 나라 말이다. 프랑스 나라와 영국 나라에 대한 얘긴 너도 들어봤겠지. 이건 상상 나라라는 곳이야.) image nation은 물론 그웬 노인이 상상해낸 imagination의 homophone이다.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님 따위는 상상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을 받은 어린 우드는 같은 아파트먼트에 사는 또래 계집아이들이 곰 흉내를 내면서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고 “They play silly games”(쟤들은 바보 같은 놀이를 하잖아요)라며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결국 우드는 산타클로스 노인과 함께 원숭이 흉내를 내는 장난을 하다가 엄마한테 들키고는 야단을 맞는다.

 

노인은 이 흉내놀이가 make-believe라고 우드에게 가르쳐준다. make와 believe라는 지극히 초보적인 두 단어로 이루어진 이 표현은 자칫 촌스러운 말이라고 푸대접을 받기 쉽지만, 널리 쓰이는 영어 단어이니 애용하기 바란다. 다만, ‘백일몽’이나 어린아이들의 상상력 차원의 imagination이라는 점만 유의하기 바란다. 노인과 우드의 원숭이 흉내 장난은 mimicry나 pretending이라고도 한다.

 

 

“어디서 거지같은 자식을 만나서…”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클로스 노인을 prosecute(기소)한 검사 남편에게 아내가 “왜 선량한 노인을 persecute(박해)하느냐”면서 따진다. homophone은 아니지만, 아내는 비슷한 두 단어를 혼동한 눈치가 역력하다. 그리고 아내는 “(당신처럼 나쁜 남자가 아니라) 차라리 plumber(장돌뱅이)하고 결혼할 걸 그랬다”고 불평한다.

 

필자가 plumber를 대부분의 영한사전에서처럼 ‘배관공’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장돌뱅이’라고 한 데는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하다. 지체 높은 검사의 부인이 왜 하필이면 plumber라는 직업에 견주어 남편을 비하하려고 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우리말로 ‘배관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설명부터 하자면, plumber는 부엌에서 물이 빠지지 않거나 하수도가 막히는 등 집 주변의 허섭쓰레기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생활해결사’라고 하겠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plumber가 어떤 특정한 분야의 직업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에 어떤 특정한 인물의 신분을 비하하는 token(상징성)을 지닌 명칭으로 통한다. 이 또한 영어공부를 위해 꼭 이해해야 할 수많은 문화적 기호들 가운데 하나이니, 잠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을 보면 “부잣집 망나니 딸”이라는 소리를 듣기가 싫어진 여상속인 클로데트 콜베르가 가출한 다음 만난 신문기자 클라크 게이블에게 신세한탄을 한다. “I’d change places with a plumber’s daughter any day.”(난 당장이라도 차라리 배관공의 딸과 신분을 바꿔 가졌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부러워할 ‘부잣집 딸’과 가장 상반되는,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한심한 신세를 상징하는 인물로 이곳에 제시된 개념이 ‘배관공의 딸’이다. 그러니까, 명예훼손이라며 배관공들이 항의하는 뜻으로 시위라도 벌여야 할 노릇이지만, ‘배관공’은 사회적으로 가장 밑바닥 계층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이왕 직업 자체를 지칭하지 않는 비유적 용법에서라면, 어려운 한자로 된 ‘배관공’보다는 귀에 익은 ‘장돌뱅이’가 훨씬 실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뱅이’가 사람을 낮춰 부르는 접미사이고 보니 더욱 그렇다.

 

1962년 판 <케이프의 공포(Cape Fear)>를 보면 로버트 미첨이, 복수를 하고 싶은 이유를 변호사 그레고리 펙에게 설명하면서, 그가 형무소에 수감된 다음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이 박살났다”는 얘기를 이런 식으로 한다. “She met a plumber and they wound up with a litter of kids.”(아내는 배관공하고 결혼해서 애들까지 낳았더군요.)

 

괄호 안의 번역은 텔레비전에 나온 자막이었는데, 악당 미첨이 한 말은 그렇게 얌전한 내용이 아니다. 우선 plumber는 단순한 ‘배관공’이 아니라 “이 세상에 아무리 사내새끼가 없기로서니 하필이면 장돌뱅이 같은 자식하고 결혼했느냐”는 혐오감이 가득 삼투한 단어이고, litter 또한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한배에 낳는 새끼들’을 지칭하는 집합명사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원작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를 보면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도 모자라서인지 “another in the oven(뱃속에 하나 더 담은)” 며느리를 보고 시아버지가 역겨워서 아들 폴 뉴먼에게 이런 소리를 한다. (another in the oven은 “또 애를 뱄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별로 점잖지 못한 표현이다.)

 

“She’s a good breeder. She will probably drop a litter.”(걔는 아이를 잘 낳는 기계야. 이번에는 아마 한꺼번에 대여섯 마리 깔 모양이구먼.) 이렇게 litter는 단순히 “아이를 낳는다”가 아니라 토끼처럼 “새끼를 잔뜩 깐다”는 의미를 담으며, 동사로 쓰면 “지저분하게 어지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런가 하면 breeder는 가축이나 짐승에 잘 어울리는 단어여서, 역시 며느리에 대한 시아버지의 역겨운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짐승은 breed(새끼를 친다) 하고, 사람의 경우에는 give birth to나 have a child 또는 deliver a child라는 고상한 표현을 쓴다.

 

미첨이 한 말 가운데 wound up도 혐오의 감정이 잔뜩 묻어나는 표현이다. wind up은 “~한 식으로 끝장을 본다”는 의미로, 여기에서는 “무턱대고 어쩌다 보니 그런 꼴이 되었다”는 뒷맛을 남긴다. 따라서 마첨이 한 말을 좀 실감나게 번역한다면 이런 식이 되겠다. “그년은 어디서 거지 같은 자식을 만나서는 새끼만 수두룩 깠더군요.”

 

<유혹(Young at Heart)>에서는 모범적인 음악가 집안의 맏딸이 진짜 배관공과 눈이 맞는데, 이것은 계급 타파를 상징하는 상황으로 설정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가난뱅이 음악가 프랭크 시내트라와 부잣집 딸 도리스 데이가 힘겨운 사랑을 한다.

 

<34번가의 기적>에서 산타클로스 노인을 기소한 검사는 이렇게 긴 사연을 거쳐 “거지 같은 자식”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고, 그래서 검사가 참다못해 아내에게 화를 낸다. “I am not persecuting him. I am prosecuting him. If I lose this case, you may get your wish.”(난 그 영감을 박해하는 게 아냐. 기소하는 거지. 이번 사건에서 내가 패하고 나면, 당신은 장돌뱅이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망을 실천으로 옮겨도 좋아.)

 

이 예문에서 may에는 검사가 아내에게 ‘허락’해 준다는 의미가 담겼다. 그리고 모양이 비슷한 persecute와 prosecute 두 단어를 혼동하는 여자라면 아닌 게 아니라 ‘장돌뱅이 마누라’ 수준이겠다.

 

 

 

‘죽여주는 여자’라고?

 

장난꾸러기 멜 브룩스의 영화 <젊은 프랑켄슈타인(Young Frankenstein)>에서 괴성(怪城)으로 가는 길에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여조수 테리 가는 친절한 ‘안내’를 한다. “Werewolf.”(늑대인간이에요.) werewolf(‘위어울프’라고 발음함)를 “Where wolf(늑대 어디 있어요)?”라는 말로 잘못 듣고 진 와일더가 묻는다. “What?”(뭐라고요?) 사팔뜨기 꼽추 조수 마티 펠드먼이 손으로 가리키며 보충설명을 한다. “There, wolf. There, castle.”(저기 늑대 있어요. 성은 저기 있고요.)

 

괴성에 도착하니 성문에 굉장히 큰 문드리개가 달려 있어서, 와일더가 감탄한다. “What a knocker.”(정말 대단한 문두드리개로군요.) knocker는 놋쇠 따위로 만들어 손님이 밖에서 두드리면 안에서 주인이 듣고 나와 문을 열어주는 초인종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조수는 그 말이 그녀를 “죽여주는 여자(knocker)”라고 감탄하는 소리라고 오해하고는 혼자 즐거워한다. “Thank you, doctor!”

 

Frankenstein이라는 이름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도 하나 풀고 넘어가야겠다. <작은 전쟁(The War)>에서 지저분하고 불량한 이웃 아이가 자기몸에 상처가 많다고 동생에게 참으로 지저분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I got more scars than Frankenstein.”(내 몸에는 프랑켄슈타인보다도 흉터가 많아.)

 

<달빛 아래서(Houseboat)>를 보면 너무 바빠 오랜만에 집으로 온 아버지 캐리 그랜트가 미워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반갑게 맞아주기를 거부하며 막내아들이 심통을 부린다. “I hate everybody. I hate everybody in the whole wide world.”(난 사람들이 다 싫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미워.) whole wide world는 물론 www 두운이다.

 

막내의 심통스러운 불평을 듣고 큰아들이 꾸짖는다. “You give me the creeps.”(너 정말 밥맛없는 애야.) 그리고는 여동생에게. “Leave this little Frankenstein here. Come on, let’s go down.”(이 꼬마 프랑켄슈타인은 여기 있으라고 해. 자, 우린 내려가자.)

 

위 두 영화의 대사를 보면, 프랑켄슈타인이 마치 “흉터가 많은 괴물”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애봇과 코스텔로 프랑켄슈타인을 만나다(Abbott and Costello Meet Frankenstein)>에서 버드 애봇이 읽어주는 책자의 안내문 내용은 이러하다. “The scientist named Frankenstein made a monster by sawing together parts of old dead bodies.”(프랑켄슈타인이라는 과학자가 오래된 시체의 여러 부분을 서로 꿰매어 붙여서 괴물을 만들었다.)

 

그렇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시체로 괴물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은 과학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밝힌 애봇과 코스텔로 영화의 제목 자체도 오류다. 이 영화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전혀 안 나오고, 두 사람은 무서운 괴물만 자꾸 만난다.

 

<커버 걸(Cover Girl)>에서는 Broadway Tattler(연예가 수다쟁이)라는 신문 고정란에 실린 글의 제목을 소개한다. “FLASH! Over night heat wave hits town!”(번쩍! 밤새도록 뉴욕을 강타한 혹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1944년)에만 해도 over night을 두 단어로 떼어서 썼지만, 요즈음에는 붙여서 overnight라고 한다. ‘고층 건물’을 뜻하는 high rise도 요즈음에는 high-rise 단계를 거쳐 highrise로 바뀌는 추세이며, 이런 식으로 두 단어가 결합해 새로운 한 단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flash(번쩍·섬광)는 ‘긴급 소식’이라는 언론 전문용어다. 외국 통신사가 기사를 타전할 때는 그 중요성에 따라 제목 위에다 bulletin(속보)이나 urgent(지급) 따위로 구분해, 각 언론사에서 쉽게 기사의 비중을 판단하고 선별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flash가 실린 같은 신문에는 이런 글도 나란히 나온다. “You’ll see the current Vanity cover in the flesh. And what flesh!”(여러분은 최근호 <배니티>의 표지를 직접 보게 됩니다. 살 냄새가 뭉클 나는 표지를!)

 

flesh(살·육체)는 flash와 homophone이고, in the flesh(살덩어리로)는, 전에 한 번 설명한 바가 있듯이, 어떤 대상을 직접 보거나 만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쥬라기 공원 3(Jurassic Park III)>에서 샘 닐에게 섬으로 안내를 부탁하며 국제적인 갑부가 “You’ve seen these animals in the flesh”(당신은 이 동물들을 직접 봤겠죠)라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렇게 직접 ‘살덩어리로’ 접하는 대상이 동물이나 사물이 아니라 인간이면 in the flesh 대신 in person이라고 해도 된다.

 

앞에서 언급한 <배니티>의 표지에는 육감적인 여자의 사진이 실렸고, 그래서 what flesh(대단한 육체·죽여주는 몸뚱어리)라는 pun을 교묘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말장난은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에서도 나타난다.

 

다니엘라 비앙키가 007을 직접 만나 정보를 넘겨주고 싶어 한다니까 숀 코너리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하며 의문을 제기한다. “Suppose when she meets me in the flesh and I don’t come up to her expectations.”(그 여자가 날 직접 만나보고는 그녀의 기대에 내가 못 미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요.)

 

그리고 불가리아 첩보원들의 거점을 잠망경으로 살피던 코너리는 비앙키의 ‘실물’이 눈에 띄자 생각이 달라진다. “I’d like to see her in the flesh.”(저 여자 직접 한 번 만나보고 싶군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묘하게도 in the flesh가 “육체로 만나고 싶다”는 소리로 들린다.

 

 

 

“RUOK?”

 

만화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에서 쐐기벌레가 묻는다. “O-R-U?” 이것은 4Sale이나 I♥U의 경우처럼, 비록 온전한 단어는 아니지만 저마다의 글자가 어휘 노릇을 하는 homophone이다. 이런 기호 표현법은 희극물이나 개인끼리의 서신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 외계어에서 자주 동원되는 기법이다. 위에서 쐐기벌레가 ORU라고 묻는 말은 “Who are you?”(너 누구냐?)라는 ‘소리’다.

 

근래 영화로는 「L.A. 스토리(L.A. Story)」가 이 기법을 한껏 활용한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나서 쩔쩔매는 스티브 마틴에게 글자로 말을 걸어오는 길가의 전광판에 이런 ‘암호’가 나타난다. “RUOK?”

 

마틴은 한참 걸려서야 그것이 “Are you okay?”(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라는 뜻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틴이 전광판에게 대답을 하면서 대화가 이어지고, 전광판은 계속해서 “L.A. WANTS 2 HELP U”(로스앤젤레스는 당신을 돕고 싶어요, L.A. wants to help you)라고 말한다. 전광판은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관리하는 시설물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전광판은 마틴을 만날 때마다 “U WILL KNOW WHAT 2 DO”(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당신도 알잖아요, You will know what to do) 따위의 homophone 문자를 열심히 내보낸다.

 

그리고 오해와 우여곡절 끝에 빅토리아 테난트와의 사랑에 드디어 성공한 스티브 마틴에게 전광판이 마지막으로 올려주는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THERE ARE MORE THINGS N HEAVEN AND EARTH HARRIS THAN ARE DREAMT OF N YOUR PHILOSOPHY.”(이 천지간에는 말일세, 해리스, 자네의 철학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많다네.)

 

이것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 5장에서, 유령을 만난 다음 햄릿이 호레이쇼한테 얘기한 66~67행의 대사를 quotation(인용)한 것이다. 원문과의 차이점이라고는 in을 동음어 N으로 표기하고, Horatio라는 이름을 그와 비슷한 Harris를 바꾼 정도다.

 

한때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텔레비전 연속물 <형사 콜롬보(Columbo)> 가운데 “정객의 범죄(Candidate for Crime)” 편에서는 정서 불안의 치과 의사가 피터 포크의 치아를 살펴보다가 “Too bad”라면서 수선을 부린다. 놀란 형사 포크가 걱정이 되어 묻는다.

 

“What’s too bad? What do you mean too bad? You mean two bad t-w-o, or too bad t-o-o?”(뭐가 잘못됐어요? 뭐가 그렇게 잘못됐느냐고요? 이빨 두 개가 썩었단 말인가요, 아니면 하나가 너무 심하게 썩었단 말인가요?)

 

괄호 안의 번역은 물론 two와 too의 동음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기를 한 임시변통의 사례다. 겹말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번역자가 시청자를 위해 영상물 대사의 내용을 어떻게 바꾸면 되겠는지 그 한 가지 가능한 방법을 예시한 것이다.

 

pun과 double talk의 번역에서는 이처럼 감각과 순발력 그리고 대단한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다음 경우에는 concrete라는 단어를 어떤 방법으로 번역해야 좋겠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형사 콜롬보>의 “살인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Murder)” 편에서는 실종된 텍사스 재벌 포레스트 터커를 신도시 건설을 지휘하는 건축가 패트릭 오닐이 살해하여 암매장했으리라고 피터 포크가 의심한다. 그래서 형사 포크는 시체를 찾아내려고 공사장의 콘크리트 기초를 파헤치기까지 하지만, 끝내 실패한다. 난처해진 형사 포크가 건축가에게 멋쩍은 설명을 한다. “I figure I gotta come up with something concrete.”

 

I figure는 I think, 즉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군요”라고 꼬리를 빼는 회피적인 말투다. come up with는 “여봐란 듯 내놓다”라는 의미고, concrete는 건축 자재 ‘콘크리트’와 ‘구체적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인’과 ‘콘크리트’라는 겹뜻을 담아낼 만한 하나의 단어는 무엇일까? ‘콘크리트’ 대신 ‘내놓다’를 중복시켜서 필자가 만들어낸 이런 표현은 어떨까? “증거를 못 내놓으면 콘크리트 값이라도 내놔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나 잡아봐라(Try and Catch Me)” 편에서는 냉혹하고 늙은 여성 추리 작가 루드 고든이 조카사위를 금고에 가둬 살해한다. 조카사위는 질식해서 숨을 거두기 전에 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리는 쪽지를 숨겨놓은 곳을 알려주기 위해 금고 안에 Y라는 글자를 새겨 남긴다. Y가 무슨 단서를 제공하려는 암호인지를 형사 콜롬보가 풀어내기 시작하자 고든은 그를 헷갈리게 만들려는 마음으로 식 homophone 설명을 보탠다.

 

“A Y. Maybe it’s a cosmic question Why. Dear Edmund in the safe questioning the meaning of life.”(Y라고요. 어쩌면 그건 ‘왜’냐는 영원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르죠. 금고 속에 갇힌 착한 에드먼드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었나 봐요.)

 

 

 

“좀도둑 해도 좋겠군요”

 

피터 포크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텔레비전 연속 추리극 <형사 콜롬보>가 누렸던 폭발적 인기에 대해서는 당시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매회 유명한 배우들이 범죄자로 출연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나 리처드 콰인 같은 명감독이 돌아가며 연출을 맡아, 규모나 짜임새가 어떤 극장 영화(feature) 못지 않게 훌륭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범죄의 구성과 해결 단계를 분리시킨 탄탄한 구조도 시청자를 압도하는 데 분명히 한몫을 했다.

 

포크가 그려낸 주인공의 인물구성(characterization)은 특히 화제였다. 잠을 자다가 방금 부스스 일어난 듯 후줄근한 옷차림에 새 둥지처럼 헝클어진 머리, 걸핏하면 사고를 일으키는 낡은 자동차와 그가 처음 ‘입장’할 때의 구름처럼 자욱한 여송연 연기, 강력반장답지 않게 어눌한 화법과 입에서 떠나지 않는 아내 얘기, 못생기고 다리가 짧은 애완견…. 누구든지 만나면 “Sir”라는 경칭을 써야 하는 불리한 입장의 약자로 부각된 그는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친근한 서민층을 대변했다.

 

그런 어수룩한 수사관이 고상한 상류층의 지능범들을 줄줄이 잡아들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일반 시청자들은 ‘부럽고도 미운 가진 자’를 궁지로 몰아넣는 달콤한 복수의 대리만족을 만끽했다. 하지만 콜롬보의 인기를 확실하게 뒷받침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주일에 잠깐 선을 보였던, 그 빛나는 대사의 꼬불꼬불한 묘미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서로 다른 신분이나 계층이 대립하는 얼개에서 약자가 강자에 맞서기 위해 가장 애용하는 무기는 뒤통수를 때리는 풍자(satire)다. 그리고 풍자 중에서도 웃음 속에 가시가 돋아난 sarcasm(비꼬기, 빈정거림)이 특히 효과적이다. sarcasm의 어원인 그리스어 sarkasmos는 “개처럼 살을 물어뜯다”라는 뜻이니, 그 악착 같은 치열함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이 가리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강자의 반격은 지적인 냉소주의(cynicism)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본디 ‘견유주의(犬儒主義)’를 지칭하는 cynicism의 라틴어 어원 키니코스(cynicos)는 “개와 같은”이라는 뜻이어서, sarcasm과 cynicism의 대결은 가히 “개들의 대결” 그러니까 ‘개싸움(鬪犬)’이라고 해도 되겠다. 서로 개처럼 물어뜯는 그런 사례들을 콜롬보 화법에서 잠시 찾아보기로 하자.

 

<형사 콜롬보>의 ‘마지막 노래(Swan Song)’ 편에서는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콜롬보 경위가 문도 두드리지 않고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오자 짜증이 난 부흥회 가수 자니 캐시가 비아냥거린다.

 

“Lieutenant, if that police career of yours ever fizzles out, you can always make it out as a cat burglar.”(경위 양반, 그 알량한 경찰 생활이 혹시 별 볼일 없어지면, 당장 좀도둑으로 직업 전환을 해도 좋겠군요.)

 

that은 뒤따라 나오는 of yours(=your ~)와 결합하여 “그따위 알량한”이라고 비하시키는 의미를 나타내고, 의성어 fizzle(s) out(피시식 꺼지다)은 “흐지부지 한심하게 끝나다”라는 뜻이다. cat burglar(고양이 도둑)는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창문으로 살금살금 넘나드는 그런 좀도둑을 가리키는 말인데, ‘순사’를 하필이면 ‘도둑놈’에 비유한 가수 캐시의 원시적 sarcasm에 담긴 공격적 의도가 빤히 엿보인다.

 

‘완전한 살인의 각본(Make Me a Perfect Murder)’에서는 sarcasm의 차원이 약간 높아진다. 둘러대기의 명수인 콜롬보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다가 그의 꼬치꼬치 질문이 personal(개인적인, 사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자, 살인 혐의를 받는 여성 텔레비전 연출자가 발끈 반격을 가한다. “Whenever anyone says it’s not personal, that’s exactly when it’s very personal.”(사람들이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할 때 보면, 그건 진짜로 아주 개인적인 얘기더군요.)

 

그리고 ‘진정한 친구(A Friend in Deed)’ 편에서는 humor(웃음)를 곁들인 sarcasm이 선보인다. 평생 뻔질나게 감옥을 드나들어 ‘나랏밥’을 먹고 살아온 살인 혐의자에 대해서 동료 경위가 콜롬보에게 quip한다. “That’s almost 30 years of state hospitality, give or take a few vacations on the outside.”(바깥에서 보낸 몇 차례 휴가를 제외하면, 국가로부터 후한 대접을 거의 30년이나 받은 셈이라고 하겠죠.)

 

state hospitality는 “나라에서 (밥도 먹여주고 잠까지 재워주며) 고맙게도 베풀어준 형무소 생활”이다. 우리말로 곁말을 하자면 “형무소밥을 그야말로 밥 먹듯 했다”는 소리다. give or take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여론조사를 하면서 흔히 “플러스 마이너스”라고 표현하는 화법으로, “약간의 첨삭은 있겠지만”이라는 ‘조건부’에 해당된다. vacation(s)은 길고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 갖는 여유의 시간인데, 여기서는 감옥살이가 정상적인 ‘일상’이고 석방된 기간은 ‘잠깐’이라고 빈정거리는 의미를 담는다.

 

A Friend in Deed라는 제목도 예사롭지가 않다. 이것은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궁할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속담에서 파생되었다. 물론 이 속담에서는 -eed라는 운이 묘미를 준다.그리고 하나의 단어인 부사 indeed(실로, 참으로, 진정으로)를 in deed라고 잘라 놓으면, “행동으로서”라는 부사구로 형태가 바뀐다. 명사 deed가 ‘행위’나 ‘실질적인 행동’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구’는 리처드 카일리 경찰국장과 살인범이 서로 상대방의 범죄를 ‘행동’으로 도와 교환 살인을 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friend in deed는 “행동에 있어서의 친구”라는 표면적인 의미보다 ‘진정한 친구(friend indeed)’를 겨냥한 cynicism이다.

 

 

 

“못 견딜 정도로 내가 좋아요?”

 

형사 콜롬보의 영어 화법에서도 마찬가지지만, sarcasm과 cynicism에서는 논리적인 타당성을 벗어날 정도로 부풀려 덧붙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유리하게 깎아 말하기를 일방적인 편법으로 삼는다. 그리고 부풀리기와 에누리는 둘 다 중심에서 양쪽으로 멀어지는 과장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장법에서 일반적으로 편리하게 널리 활용되는 단골 기법은 밑으로 내려가는 understatement(에누리, 축소법)와 위로 올라가는 overstatement(부풀리기, 뻥튀기법)다. 어떤 statement(발언, 진술)를 할 때 줄여서(under-) 하면 understatement가 되고, 과장해서(over-) 하면 overstatement가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기법은 흔히 euphemism(완곡어법)에서 지렛대 역할을 한다.

 

‘이중노출(Double Exposure)’ 편에서 형사 콜롬보가 광고영화 제작자 로버트 컬프에게 “광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냐고 묻자, 컬프는 정색을 하고 반박한다. “Well, lieutenant, I don‘t make commercials. I’m a motivational research specialist.”(이보세요, 경위님. 난 광고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녜요. 난 동기연구 전문가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일반화된 사회현상이지만, 컬프는 부풀리기 명칭을 써서 신분상승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motivational research specialist(動機硏究專門家)라고 컬프가 독창적이고 일방적으로 미화시킨 과대포장 명칭은 “사람들의 동기를 연구하여 광고영화에 그 철학을 응용하는 전문가”라는 의미인데, 그가 하는 일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광고영화 연출가’와 전혀 다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도 영어로 자신의 직업을 밝히면 신분과 직업이 높아진다는 착각에 따라 ‘미용사’의 호칭을 hair stylist(모발설계사?)라고 바꾸거나 ‘좀도둑질’을 아무리 ‘생계형 범죄’라고 개칭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수행하는 일의 특성과 본질은 좀처럼 달라지는 바가 없다. 생계를 위해 밤잠을 못 자며 고생하는 24시간 편의점 주인을 강탈하는 ‘생계형 범죄’ 행위는 아무리 완곡어법을 써도 ‘날강도질’이다.

 

에누리와 부풀리기 화법은 그러나 사실을 과대포장하려는 탈현실적인 목적보다 정신적인 여유를 도모하는 데 훨씬 더 자주 동원된다. ‘살인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Murder)’ 편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건축가 패트릭 오닐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사무실에서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는다. 남자 직원이 오닐 사장의 여비서에게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저러느냐”니까 여비서 왈, “He doesn‘t have bad moods. Let’s just say that he is less happy.”(기분이 나빠서 그러는 게 아녜요. 그냥 기분이 덜 즐거워서 그런다고 해두죠.)

 

bad mood와 less happy는 무게가 똑같아도 느낌이 달라지는 표현이다. “A와 B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단정적인 진술과 “A와 B는 무관하지 않다”는 회피적인 진술을 비교해 보면 그 상대적인 무게의 차이가 쉽게 느껴진다.

 

이런 표현은 ‘기다리는 여인(Lady in Waiting)’에서 euphemism의 차원에 이른다. 콜롬보가 여송연을 푹푹 피우며 연기를 구름처럼 몰고 미용실로 들어서자 뜻밖의 공해에 난처해진 안내원이 정말 미용실적으로 아름답게 어휘를 가다듬어가며 완곡하게 부탁한다. “The fragrance is not, uh, compatible.”(그 향기가 말이죠, 뭐랄까요, 이곳하고는 비친화적인데요.) 전자 상품이 보편화한 요즈음에는 ‘호환적인’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는 compatible은 이질적인 두 물건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경우를 서술하는 형용사다.

 

무게는 같고 모양만 다른 less의 용법은 ‘마술사의 정체(Now You See Him)’ 편에서도 선보인다. Great Santini(위대한 산티니)라는 이탈리아 이름으로 알려진 마술사 잭 캐시디는 그가 공연하는 카바레에 자꾸 나타나서 어슬렁거리는 경찰관들이 신경에 거슬려 콜롬보에게 불평한다.

 

“You and your men are snooping around. Now, is there any chance that you could be a little less conspicuous?”(당신과 부하들이 자꾸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잖아요. 당신들이 눈에 좀 덜 띄는 그런 가능성은 혹시 없을까요?) less conspicuous는, 그 속셈을 따져보면, “아예 눈에 안 보이는 그런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여자를 만나 식사하는 곳까지 콜롬보가 쫓아오자 캐시디가 여전히 참을성을 보이며 완곡하게 묻는다.

 

“Lieutenant, what is it about me that you find so irresistible?”(경위님은 내가 어느 구석이 그렇게 못 견딜 정도로 좋은가요?) irresistible은 남자나 여자가 이성의 매혹에 ‘저항하기 어려운’ 또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겠는’ 상황을 서술하는 형용사로 자주 쓰인다. 그러니까 이 말은 콜롬보더러 “내가 아무리 좋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졸졸 따라다닐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둘러대는 화법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캐시디의 나치 전력을 의심하는 콜롬보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쫓아다니자 캐시디가 묻는다. “Why are so preoccupied to find out my real identity?”(당신은 왜 내 진짜 정체를 알아내려고 그렇게 열심인가요?) preoccupied는 irresistible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몰두하거나 열중하여 ‘정신이 팔린’ 상태를 의미한다.

 

 

 

“춤이라면 난 젬병이에요”

 

‘온실의 비밀(The Greenhouse Jungle)’ 편에서 형사 콜롬보는 함께 일하라고 서장이 보낸 고지식한 형사를 사건 현장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요즈음 식 표현을 쓰자면 콜롬보는 감각과 영감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형사인 반면에, 신참 보조는 경찰학교 모범생 출신으로 과학수사를 추구하는 디지털 수사관이다. 두 사람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거북해하는 신참을 콜롬보가 안심시킨다.

 

“I‘m sure he just wanted to expose me to some modern techniques.”(서장님이 아마 나를 현대적 기술과 접목시켜 보려는 건설적인 생각에서 자넬 나한테 보냈을 거야.)

 

sarcasm이나 cynicism과는 달리 이런 quip(가벼운 빈정거림)에서는 악의적인 요소가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를 않는다.

 

‘정객의 범죄(Candidate for Crime)’에서도 quip이 선보인다. 경찰관이라고 신분을 밝힌 콜롬보의 고물 자동차를 수리해 준 다음 정비공이 한심하다는 듯 그에게 묻는다. “What are you - uh - undercover or something?”(댁은 정체가 뭐요? 혹시 위장근무나 무슨 그런 거시기요?) 문장 끝에 나오는 ~ or something은 a sort of ~ 또는 kind of ~와 같은 용법으로 쓰이며, “뭐 그딴 거”라고 막연하게 어림짐작하는 표현이다.

 

undercover에서 cover는 한때 우리나라 운동권 학생들이 노동 현장에 침투하기 위해 ‘위장’ 취업을 했던 경우처럼, 특수 임무를 수행하려고 위장하는 ‘가짜 신분’이다. 그리고 그 앞에다 under-(下에서)를 붙이면 명사의 경우, 그런 가짜 신분으로 위장하고 수행하는 ‘임무’ 또는 밀정(密偵) 따위의 ‘공작원’을 뜻한다.

 

경찰 undercover는 흔히 걸인이나 마약중독자 따위의 하층민으로 위장하고 활동하는데, 초라한 옷차림으로 고물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콜롬보라면 영락없는 거렁뱅이다.

 

하지만 콜롬보는 정비공이 놀리는 말을 넉살 좋게 under-를 써서 quip으로 받아넘긴다. “No. I’m underpaid.”(아뇨. 월급이 워낙 쥐꼬리 같아서 그래요.)

 

팔불출처럼 걸핏하면 아내 얘기를 하던 형사 콜롬보의 엄청난 인기에 얹혀서 한때 <콜롬보 부인(Mrs. Columbo)>이라는 텔레비전 연속물도 등장했었는데, ‘황혼의 여배우(Forgotten Lady)’ 편에서 콜롬보는 뮤지컬 명배우였던 존 페인에게 아내와 자신을 이렇게 비교해서 설명한다. “My wife is a terrific dancer and a very good singer, but I got two left feet when it comes to dancing.”(집사람은 춤을 굉장히 잘 추고 노래도 아주 잘 부르지만, 춤이라고 하면 난 젬병이에요.)

 

have two left feet(왼쪽 발만 둘이다)는 “~이 매우 서툴다”라는 뜻이며, 이와 비슷한 재미있는 표현은 ‘지능범의 최후(The Bye-Bye Sky High I.Q. Murder Case)’에도 등장한다. 살해된 시그마 클럽 회원이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했느냐는 콜롬보의 질문에 살인범은 동업자에 대한 그의 혐오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Burt had a tin ear. He understood nothing and liked everything, Tchaikovsky included.”(버트는 귀가 깡통이었어요. 그 친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엇이나 다 좋아했는데, 차이코프스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죠.) ‘깡통’은 우리말로도 ‘젬병’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지능범의 최후’에서는 지능지수에 따라 똑같은 개념을 표현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달라진다. 콜롬보의 화법은 이런 식이다. “I hate to say this, sir, but Mr. Hastings might have been doctoring those accounts.”(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좀 뭣하지만, 선생님, 헤이스팅스 씨가 그 계좌들을 조작한 모양입니다.)

 

doctor를 동사로 쓰면 주사위 따위를 ‘조작하다’ 또는 술 따위를 ‘섞음질하다(adulterate)’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가 하면 머리가 좋은 지능범은 똑같은 내용을 이런 식으로 sarcasm을 써서 구사한다. “He must have suspected that his partner was engaged in some creative bookkeeping.”(보아하니 그 친구는 동업자가 어떤 창조적인 방법으로 장부를 정리했다고 의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전세계 총인구 가운데 지능지수가 상위 2%에 속하는 살인범은 콜롬보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마지막 장면에서 이런 인상적인 고백도 한다.

 

“Most people don‘t like smart people.(대부분의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Most children despise smart children.(대부분의 아이들은 똑똑한 아이들을 경멸하고요.) So early on I had to hide my so-called gift.(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일찌감치 이른바 재능이라는 걸 숨기며 살아야 했어요.) Painful, lonely years.(고통스럽고 외로운 나날이었죠.) All those early bitter memories had something to do with my recent discovery that I simply no longer care even for my fellow intelligentsia in this club.(어린 시절의 그 모든 괴로웠던 기억으로 인해서, 나는 이 클럽의 다른 지성인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무런 관심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요.) I find them eccentric bores.(난 그들이 따분하고 괴팍한 인간들이라는 생각만 들어요.)”

 

 

“굶주린 배는 악마의 놀이터”

 

이 연재물을 위해 필자는 1971~1978년에 걸쳐 제작된 콜롬보 영화 총 65편 가운데 40편에서 참고가 될 만한 대화를 솎아냈는데, 사실 <형사 콜롬보> 시리즈만으로도 영어 공부를 위한 종합적인 교과서 기능을 충분히 하는 자료가 되리라는 생각이다. 콜롬보 대사는 다양한 기법을 스스로 구사할 뿐 아니라 멋진 문학적 표현과 인용문을 차용하는 allusion과 quotation의 사례도 적지 않다.

 

‘기다리는 여인(Lady in Waiting)’ 편에서 콜롬보는 수잔 클라크에게 레슬리 닐슨의 증언을 상기시키며 범죄 사실을 시인하도록 압박한다. “He heard the shots first, then the alarm. That’s the cart before the horse.”(그분은 총성을 먼저, 그런 다음에 경보기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그렇다면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얘기죠.)

 

put (get, set, have) the cart before the horse(마차를 말보다 앞에 세우다)는 “말이 마차를 끌지 마차가 말을 끄느냐”는 의미로서, 앞뒤(本末)가 뒤바뀐 상황을 꼬집는 속담에서 유래하는 표현이다.

 

‘온실의 비밀(The Greenhouse Jungle)’ 편에서는 레이 밀랜드가 조카 브래드포드 딜먼의 아내를 찾아가서 납치범한테 돈을 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Blood is thicker than martinis.”(피는 술보다 진하니까.) 이것은 물론 Blood is thicker than water(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의 변형이다. “이웃 사촌이 가족보다 낫다”는 우리 속담과 상반되는 주장이겠다.

 

‘뒤집힌 사진(Negative Reaction)’ 편에서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총성을 들었다는 주정뱅이 증인을 만나러 무료급식소로 찾아간 콜롬보를 걸인으로 오해한 수녀가 갖가지 격언을 인용해가면서 힘겨운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다. “A man’s worth is not judged by the size of his purse.”(인간의 가치는 그가 가지고 다니는 지갑의 크기로 결정되는 게 아니랍니다.) “An empty stomach is the devil’s playground.”(굶주린 배는 악마의 놀이터이고요.) 나중 속담은 “먹고 살기가 워낙 힘들면 어쩔 도리가 없이 온갖 나쁜 짓을 하게 마련이다”라는 뜻이다.

 

‘포도주 살인사건(Murder Under Glass)’ 편에는 프란스 뉴옌이 fortune cookie를 콜롬보에게 주는 장면이 나온다. 번역 영상물을 보면 흔히 fortune cookie를 ‘행운의 과자’라고 옮기고는 하는데, 여기에서의 fortune은 ‘행운’이 아니라 ‘점괘(占卦)’나 ‘운세(運勢)’를 뜻한다. 신문에 실리는 ‘오늘의 운세’처럼 재미로 점을 보는 과자가 fortune cookie다. 작은 만두처럼 생긴 점치는 과자의 딱딱한 껍질을 깨트리면 오늘의 운세를 적은 종이가 나온다. 콜롬보의 운세는 내용이 이러하다.

 

“Cheer up. There’s more than one fish in the sea.”(힘내세요. 바다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뿐은 아니니까요.) many fish in the sea는, 속된 우리말로 하자면, ‘많고 많은 게 여자’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콜롬보의 점괘는 “오늘 혹시 여자한테 차였더라도, 길거리에 나가면 다른 여자가 얼마든지 많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격려의 말이다.

 

그날 저녁에 콜롬보는 프랑스인 요리비평가 루이 주르당이 복어의 독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밝혀내려고 일식집으로 그를 찾아간다. 같이 식사를 하던 여비서가 눈치도 없이 콜롬보에게 복어 독에 관한 설명을 자꾸 털어놓자 불안해진 주르당이 말을 가로막는다.

 

“I don‘t think our guest is interested in fish stories.”(우리 손님께서는 생선 얘기엔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fish는 단수형과 복수형이 같을 뿐 아니라, 형용사 fishy(수상한, 의심스러운)와 동음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르당의 ‘생선 얘기’는 ‘수상한 얘기’처럼 들린다.

 

어쨌든 수상한 정보를 확보한 콜롬보는 물러가면서 주르당에게 상기시킨다. “As the Chinese say, there’s more than one fish in the sea.”(바다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뿐은 아니라고 중국인들이 그러죠.)

 

여기에서도 그렇지만, as the Chinese say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there’s more than one fish in the sea가 과연 정말로 중국에서 유래하는 표현일까?

 

서양인들은 동양적 또는 불교적 ‘지혜의 말씀’을 인용할 때는 무턱대고 ‘중국인’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흔히 그것은 “다들 그러는데, 어쩌고저쩌고”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하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서도 “그건 공자님 말씀”이라고 할 때, 그것이 정말로 공자가 한 말이라기보다는 “세상이 다 아는 당연한 얘기”라는 뜻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번역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해 꼭 이해해야 하는 문화적 차이란 언어나 표현 방법의 차이뿐 아니라,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과 심리의 얼개까지도 포함된다.

 

 

걷는 거위가 떼로 날았다?

 

<형사 콜롬보> ‘떨어지는 별을 위한 진혼곡(Requiem for a Falling Star)’ 편에서는 몰락한 여배우 앤 백스터에게 그녀의 비밀을 아는 연예기자 멜 페러가 은근히 협박한다. “That would be like disposing the goose who owes me a golden egg.”(그건 나한테 황금알을 갖다 바쳐야 하는 거위를 내다버리는 꼴이 되겠지.)

 

이것은 우리나라 방송인들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해서 식상해버린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을 활용한 인용법의 한 형태다. goose(거위)는 여배우 백스터를, golden egg는 백스터가 기자의 입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갖다 바쳐야 하는 돈을 의미한다.

 

kill the goose that lays the golden egg는 “눈앞의 작은 이익을 노리다가 앞으로 얻게 될 큰 이익을 잃는다”는 뜻으로,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말이다. 아이소포스(영어로는 ‘이솝’)의 우화를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은 운 좋은 남자가, 하루에 알을 하나씩만 낳는 거위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뱃속의 알을 한꺼번에 모두 꺼내려고 거위를 죽인다. 물론 뱃속에는 창자밖에 없었다.

 

goose 얘기는 “마음 속의 칼날(Dagger of the Mind)” 편에도 나온다. Scotland Yard(런던 경찰청)를 방문 중이던 콜롬보는 셰익스피어 배우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 사건을 해결해 보려고 나서지만,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를 않는다. 그래서 허탕을 친 콜롬보에게 영국 경찰 고위 간부가 놀린다.

 

“So your bird has flown.”(그럼 당신이 잡으려던 새가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군요.) 여기서 날아간 새는 goose다. 그에 대한 설명이 바로 뒤따라 나온다.

 

콜롬보를 놀리던 경찰 간부는 “그래도 재미는 있었으니까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At least it has been an amusing chase of an American wild goose for a change.”(미국 기러기를 잡겠다고 쫓아다니다 보니 적어도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잖아요.)

 

이 말은 wild-goose chase(기러기 쫓아가기)라는 표현을 응용한 농담이다. wild-goose chase는 맨손으로 잡으려고 쫓아가던 기러기가 하늘로 높이 날아가 버리는 황당한 상황을 뜻한다. 우리 속담으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에 해당되겠다.

 

2009년 1월에는 goose 때문에 참으로 희한한 사고가 일어났다. 승객 154명을 태운 미국 중형 여객기가 뉴욕의 라구아디아 공항을 이륙한 지 2분 만에 허드슨강으로 불시착한 영웅적인 사고였는데, KBS TV에서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하루 종일 반복해서, 이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며 “(여객기가) 거위 떼와 충돌한 듯”하다고 보도했다.

 

거위는 오리나 닭처럼 하늘을 날지 못하는 가금(家禽, fowl)이다. 그러니까 거위 떼와 충돌하려면 문제의 미국 여객기는 땅바닥까지 내려와 거위를 들이받고 재빨리 다시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가 허드슨강으로 내려앉았다는 얘기다. 조종사가 참으로 바빴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희한한 사건이었다.

 

goose(복수형은 geese)는 ‘거위’뿐 아니라 ‘기러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다. 철새 기러기는 wild geese라고 굳이 밝히기도 하지만, 그냥 geese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 무성의한 번역 때문에 <동물의 세계>와 다른 수많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자연기록물에서는, KBS TV 뉴스에서처럼, 수많은 ‘거위’들이 하늘에서 날아다니다가 비행기를 추락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단어를 절반만 이해하거나 아예 잘못 알고 텔레비전에서 엉뚱한 의미로 남용하는 실수의 심각성을 필자는 기회가 날 때마다 지적하고, 따로 책까지 펴낸 적도 있지만, 여기에서도 잠시 그런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찾아보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춤추는 대뉴욕>에서 줄스 먼신 수병을 보고 첫눈에 반한 인류학자 앤 밀러가 I really love bear skin(난 진짜로 곰 가죽을 좋아해요)이라고 소리쳤을 때는 동음어 bear(곰)와 bare(발가벗은)의 바꿔치기 작용으로 “홀랑 발가벗은 몸(bare skin)이 좋다”는 뜻이 된다고 앞에서 설명한 바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앤 밀러가 스킨십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어를 좀 안다는 한국인은 물론이요, 영어와 별로 인연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영어’ skinship이 무슨 말인지를 누구나 다 잘 안다. 하지만 정작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서양 사람들에게 skinship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일까?

 

skinship은 어느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영어’ 단어다. 이것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출간된 어느 한 권의 책에서만 사용된 1회성 조어(造語)였다. 그런데 인격 개발을 돕는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어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너도나도 skinship을 애용하여 유행시키다 보니, 정작 원어민은 모르고 한국인만 잘 아는 이상한 ‘영어’가 되고 말았다.

 

 

 

“총알 한 방에, one shot!”

 

지난 주일에 필자가 지적한 내용이 사실인지 궁금해서 ‘영어’ 단어 skinship을 사전에서 일부러 찾아본 독자가 있다면 퍽 놀랐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해괴한 ‘영어’는 무수히 많아서, 텔레비전 오락물에 나와 방송인들이 입에 올리는 영어 대부분이 짝퉁이다. 그리고 이런 민망한 변칙 연예인 영어가 텔레비전에서는 몇 분에 한 번씩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예를 들면 일본 영어를 개조해서 수입해 사용하는 ‘파이팅’을 위시하여 ‘레포츠’ ‘-노믹스’ ‘럭셔리’ ‘필’ ‘대시’ ‘프러포즈’ ‘리필’ ‘메들리’ ‘벤처’ ‘게이트’ ‘기네스’ ‘내레이터 모델’ ‘다이어트’ ‘신드롬’ ‘엑기스’ ‘마니아’ ‘할리우드 액션’ ‘징크스’ ‘매너’ ‘치어걸’ ‘커닝’ ‘멘트’ 따위가 하나같이 영어와 빛깔만 비슷한 방송용 된장영어다.

 

‘골 세리머니(goal ceremony)’라는 말도 그렇다. ceremony가 되려면 골을 하나 넣고 나서, 모든 선수가 늘어서서 애국가를 부르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따위를 엄숙하게 갖춰야 제대로 ceremony가 된다. goal ceremony는 진짜 영어로 celebration이라고 한다.

 

<황태자의 첫사랑>을 보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특활 단체에 가입하는 자리에서 에드먼드 퍼돔(실제 목소리는 마리오 란자)이 “부어라, 마셔라” 술노래를 부르는데, 이 서양식 권주가를 부르기 전에 2000㏄짜리 맥주 한 족기를 마시던 퍼돔이 잠깐 숨을 돌리려고 손을 내린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술집 아가씨 앤 블라이트가 귀띔을 해준다. “Drink down in one breath.”(단숨에 쭉 들이켜야 돼요.)

 

이런 경우에 한국인들은 “One shot!”이라고 외친다. 이것도 skinship이나 -mania 그리고 goal ceremony처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된장영어다. shot은 족기(mug)가 아니라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를 마시는 작은 잔을 가리키는 말이며, one shot은 “잔 하나”라는 뜻이지 “Cheers(위하여)!”나 “Bottoms up(乾杯)!”, 또는 swig(들이켜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one shot이 ‘한 방에’라는 뜻으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술하고는 아무 인연이 없는 표현이다. 지난 총선에서 흑색선전을 전문으로 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상대편 후보를 “한 방에 보내버리겠다”고 장담했을 때, 또는 “총알 한 방으로 처치한다”는 험악한 화법에서라면 one shot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냥 one shot이 아니라 one single shot이라고 하여, single과 함께 써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느 전직 장관이 신문에 쓴 글을 보니, 한국계 흑인 미식축구 선수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로 초청하여 환영 파티를 열어준 영부인께서 이렇게 ‘영어’로 권했다고 한다. “One shot!” 그리고 one shot은 요즈음 love shot이라는 새끼(私生兒)도 쳤다. love shot이라니, ‘성행위를 하기 전에 맞는 주사’라는 뜻일까?

 

영어를 가르치는 이들은 흔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거나, “영어는 하면 할수록 발전한다”는 격려의 말을 자주 하지만, 그것은 초등학생의 초보영어 공부에 해당되는 도움말로서나 통하는 ‘원칙’일 따름이어서, 지체가 높은 분들이 국제적인 만남에서 ‘생활영어’를 지나치게 애용하는 습관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칫 영어 실력의 지나친 과시는 통역을 시키는 경우보다 훨씬 망신스러울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one shot 영부인 이전의 어느 대통령은 이른바 ‘IMF 사태’로 어려워진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을 방문해서는 한·미 경제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통역을 쓰지 않고 직접 영어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 국가 원수의 영어 연설 한 토막이 텔레비전 뉴스에 잠깐 나오기에 들어봤더니, “한국 정부는 venture enterprise(벤처 기업)를 열심히 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말과 영어가 뒤엉킨 ‘벤처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언제부터인가 ‘최첨단 기업’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였다. 그리고는 너도나도 skinship처럼 열심히 입에 올리던 이 용어의 참된 의미를 따지는 사람들이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떤 경제학자는 high risk, high profit(부담이 크고, 수익성도 큰)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라는 개인적인 학설을 내놓기까지 했다.

 

‘벤처 기업’은 된장영어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첨단(high-technology) 기업’이라는 뜻과는 달리 본디 그 용어는 ‘투기성 기업(speculation)’이라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high risk, high profit이라는 설명은 ‘투기’에 대한 설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살인광시대(Monsieur Verdoux)>의 찰리 채플린은 돈 많은 여자들과 결혼한 다음 그들을 차례로 죽이고는 재산을 가로채는 방법으로 돈벌이를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벤처 기업’에 대해서 이렇게 회상한다.

 

“But let me assure you that the career of the Bluebeard is by no means profitable. only a person with undaunted optimism would embark on such a venture. Unfortunately, I did.”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푸른수염 식의 직업은 어느 모로 보나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굴의 낙관주의자만이 그런 ‘벤처 기업’에 착수하게 마련이다. 불행히도 나는 그런 사업에 손을 대고 말았다.)

 

우리 언어에 워낙 깊이 침투한 어휘인 까닭에 ‘벤처’에 대한 설명은 다음 주일에도 계속하겠다.

 

 

 

“자네는 한낱 협잡꾼에 불과해”

 

‘벤처 기업’이라는 특이한 표현으로 한국 땅을 누비며 찬란한 활동을 벌여온 venture라는 단어가 그리 ‘첨단’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대장장이 일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하는 핀 소년에게 해비샴 노부인이 이렇게 묻는다.

 

“Why are you so glum? Are you not excited with your new venture?”(왜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이냐? 네가 시작하게 될 새로운 ‘벤처 기업’을 생각하면 신나지 않니?)

 

명사 및 동사 venture(투기사업, 모험하다)는 더 널리 사용되는 adventure(모험, 모험하다)와 모양부터가 동종의 단어로서, 어원도 같다. 그 구체적인 용법을 몇 가지 확인해 보자.

 

<태양제국의 멸망(The Royal Hunt of the Sun)> 도입부에서 에스파냐 왕의 신하가 탐험대장 로버트 쇼에게 쓴소리를 한다. “In the eyes of the crown, you’re still an adventurer.”(폐하의 눈에 자네는 한낱 협잡꾼에 불과해.)

 

adventurer(모험가)를 ‘협잡꾼’이라고 옮긴 괄호 안의 번역은 EBS TV의 솜씨다. 우리는 모험가나 개척자를 영웅이라고 생각하는데, ‘협잡꾼’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린가 궁금하겠지만, 위 번역은 정확하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연히 추측하는 ‘콘셉트’와 영어의 진짜 개념이 엉뚱하게 빗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adventure의 동생뻘인 venture도 바로 그런 단어다.

 

<위대한 피츠카랄도(Fitzcarraldo)>에서는 클라우스 킨스키에게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아마존 밀림의 대농장주가 이렇게 충고한다. “We’ve thought about building a road across those mountains but that would be an impossible venture.”(우린 저 산들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도로를 건설할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불가능한 모험이라고 해야 되겠죠.)

 

그렇다면 영어의 모험(venture)과 결합된 ‘벤처 기업’이라는 ‘다문화’ 표현에서 우리말 ‘기업’을 영어로 옮긴 enterprise(기업)는 과연 또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을까?

 

<위험한 관계(Dangerous Liaisons)>에서 글렌 클로스는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남자에게 복수를 하려고 존 말코비치를 불러서 부탁한다. “Do you know why I summoned you here this morning? I need you to carry out a heroic enterprise.”(내가 오늘 아침 왜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는지 알겠어요? 난 당신에게 영웅적인 과업을 하나 맡기고 싶어요.) 여기에서의 enterprise는 어떤 ‘모험적인 계획’이나 ‘모험(심),’ 즉 venture를 뜻한다.

 

<시계장치 오렌지(A Clockwork Orange)>에서는 형무소를 둘러보던 내무장관이 건방진 맬컴 맥도웰을 실험 대상으로 선발하는 이유를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He’s enterprising, aggressive, outgoing, young, bold ― and vicious.”(그 친구는 모험심이 강하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이고, 젊고, 대담하고 ― 악착같아요.)

 

여기에서도 enterprising은 adventure 및 venture와 비슷한 속성을 나타낸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분쟁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미국 최초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의 이름이 왜 Enterprise인지, 텔레비전 연속물로 시작하여 여러 편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만큼 유명한 <스타 트렉(Star Trek)>에서 우주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탐사선의 이름이 왜 Enterprise인지, 그리고 미국 최초의 우주왕복선 또한 이름이 왜 Enterprise인지 이제는 쉽게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윌리엄 인지의 희곡이 원작인 <피크닉(Picnic)>을 보면 한때 잘 나가던 운동선수 출신인 건달 윌리엄 홀든이 부잣집 아들 대학 동창 클리프 로버트슨에게 취직을 부탁하러 찾아가 야무진 enterprise 꿈을 털어놓는다.

 

“Something in a nice office where I wear a tie, have a sweet little secretary and talk over the telephone about enterprises. I gotta get some place in this world.”(넥타이를 매고 멋진 사무실에 앉아, 귀엽고도 예쁘장한 여비서를 두고, 전화로 사업 얘기를 나누는 그럴 듯한 직장 말이야. 나도 출세를 좀 했으면 좋겠어.)

 

여기에서는 enterprise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모험적인) ‘사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기야 통닭집에서 안경점에 이르기까지, 무슨 사업을 하려고 해도 이 세상에 위험한 ‘모험’이 아닌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큰 회사의 이름이 Bean Publishing Enterprises처럼 Enterprises라는 단어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에서는 독재자 찰리 채플린이 침공 계획을 의기양양하게 발표한다. “This was made possible by the enterprise and genius of Herr Marshal Herring.”(이 침공이 가능해진 것은 헤링 원수의 진취성과 천재성 덕택입니다.)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보면 enterprise라는 단어 속에 이미 venture가 담겨 있고, venture는 enterprise와 동서간임이 밝혀진다. 그래서 joint-venture라고 하면, 뒤에 굳이 company 따위의 설명을 붙이지 않더라도, 합작투자 ‘회사’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venture와 enterprise가 중복 사용된 venture enterprise는 “투기회사 투기사업”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한국 정부는 venture enterprise를 열심히 육성하여 투기를 조장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는 동안 외국인 청중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탁구 그만하고 나가서 한 판 붙을래?”

 

one shot(총알 한 방)을 외국 손님에게 권했던 영부인이 청와대를 떠난 다음에 우리 국민이 선출한 차기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여름 별장을 둘러보던 길에 우리 대통령이 구사했던 영어에 대해서 어느 신문 1면 꼭대기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시원스럽게 실렸다.

 

“한국 대통령 ‘Can I Drive?’ 카트 직접 운전, 부시 대통령 엄지 세우며 ‘파인 드라이버’ ”

 

한국의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멋진 영어를 구사했다고 찬양하는 듯한 인상을 주느라고 일부러 영어까지 섞어서 쓴 이 제목에서 무엇이 이상한지를 설명하려면 약간의 예절 상식이 필요하다.

 

어느 성장영화를 보면 초등학교 교실에서, 갑자기 소변이 급해진 사내아이가 손을 들고 여선생에게 묻는다. “Can I go to the bathroom?”(저 화장실에 갈 수 있나요?) 여선생이 단호하게 꾸짖는다. “Yes, you can, but you may not.”(그래. 갈 수는 있지만, 가면 안 된다.)

 

이 말의 의미는 “그래, 너는 두 다리가 멀쩡하니까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능력)야 있겠지만, 예절바른 표현을 쓰기 전에는 안 보내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한국 대통령이 “Can I Drive?”라고 미국 대통령에게 한 말은 “제가 운전 좀 해봐도 (허락)되겠습니까?”가 아니라 “나는 운전을 할 줄 아는가요?”라고 묻는 말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허락을 받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할 때, Can I?라는 표현은 무례하기 때문에 May I?라고 정중하게 말해야 한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예절을 일찌감치 초등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Can I 대통령은 취임식을 마친 다음 밤이 되자,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민들과 어울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면서 “파이팅!”이라는 환호에 여러 차례 동참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대표적인 된장영어 fighting은 그냥 “치고받고 싸운다”는 뜻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는 단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수입하여 애용하는 가짜 영어인데, 그나마 일본에서는 ‘화이또(fight)’라고 제대로 된 동사형으로 사용하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fighting은 동명사인지 진행형인지 도대체 그 품사조차 알 길이 막막한 one shot 영어로서, 억지로 번역을 한다면 ‘싸우장’ 정도가 될 듯싶다.

 

지금은 지도자로 활동하는 한국의 유명 여성 탁구인이 국제대회에 나가서, 열심히 경기를 하는 틈틈이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쳤더니, 심판이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탁구인은 심판이 왜 경고까지 하면서 fighting을 말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마도 심판은 한국 선수의 불끈 쥔 주먹과 fighting이라는 외침을 “우리 탁구경기는 집어치우고 저기 나가서 한 판 붙을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리라는 생각이다.

 

이제는 대통령에서부터 초등학교 아이들, 남녀노소 모두 텔레비전에 나와 ‘파이팅’이나 ‘화이팅’을 외치고, ‘홧팅’이라는 약어까지 만들어 온갖 묘기를 부리는가 하면, <도전 골든 벨>에서는 아예 학교에서 (필시 영어선생을 포함한) 수많은 선생들이 버젓하게 학생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우리말사전에도 ‘파이팅’을 외래어로 당당히 올리고는, 일본에서 나온 <외래어사전(最新カタカナ語辭典)>의 ‘화이또(ファイト, fight)’ 항에 붙여놓은 ‘「がんばれ!」という意味’라는 설명을 그대로 옮겨 이렇게 실어놓은 실정이다.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자기 편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구호. 순화어는 ‘힘내자!’ ”

 

하지만 fighting은 “잘 싸우자(fight well)”가 아니라 그냥 “싸우장”이라는 뜻일 뿐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연구원의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에서는 ‘파이팅’을 “아자!”라고 순화하자는 권고안을 내놓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한 술 더 떠서 “아자! 아자! 파이팅!”이라고 줄기차게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KBS2 TV의 <우리말 겨루기>가 생겨난 초기에 함께 진행을 맡았던 젊은 여성 방송인도 걸핏하면 출연자들에게 “파이팅!”이라고 격려했는가 하면, 외화를 전문으로 번역하는 사람들까지도 예외가 아니어서, KBS TV가 방학 특선으로 내보낸 영화 <빅 그린(Big Green)>에서 경기를 하러 나가는 어린 선수들에게 여주인공이 영어로 “Let‘s go!”라고 외치는 말까지도 우리말로 “파이팅!”이라고 옮겨놓았으며, MBC TV의 <자연은 살아 있다>에서는 사냥을 하느라고 바쁜 엄마 치타한테 “엄마 파이팅!”이라고 새끼 치타들이 응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벤처’ 잉글리시가 발달하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멋진 표현도 등장하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Fighting one shot!”(너 한 방에 죽을래!)

 

영부인의 one shot이나 대통령의 venture enterprise 그리고 fighting 같은 짤막한 표현을 놓고 이토록 장황하게 따지는 까닭은, 아무리 사소한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원수의 실수는 한 나라의 위상을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면 아슬아슬한 영어 솜씨를 과시하기보다는, 품위를 지켜 당당하게 우리말로 연설을 하고, 영어는 영어를 맡은 사람에게 맡겼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다.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영국으로 간 콜롬보의 goose chase(기러기 쫓아다니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만 샛길로 한참 빠져버린 느낌이 들고, 그래서 이제부터는 <형사 콜롬보>가 구사하는 갖가지 기법을 다시 살펴보겠다.

 

남의 글을 몰래 베껴먹는 범죄 행위 표절과는 달리, 타인의 멋진 말을 적절히 차용하여 자신의 화법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인유(引喩, allusion)와 인용(引用, quotation)은 글쓴이의 교양과 지식이 바탕을 이루어야 하며, 그런 글은 읽는 사람에게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그런 예를 <형사 콜롬보> ‘박물관의 살인(Old Fashioned Murder)’ 편에서 찾아보자면, 지적인 노처녀 박물관장이 오빠에게 신세한탄을 하다가 남의 말을 자기 말처럼 인용한다.

 

“Compliment is something like a kiss through a veil.”(칭찬은 베일을 쓰고 하는 입맞춤과 같아요.) 문화적 수준이 비슷한 오빠가 그 인용문의 출처를 짐작하고는, 죽을 맞춘다. “Oscar Wilde?”(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이냐?) “Victor Hugo.”(빅토르 위고요.)

 

잠시 후에 박물관장이 오빠에게 다시 compliment라는 같은 말이 담긴 명언을 절반쯤 엮어 넣어서 자신의 절박하고 솔직한 심경을 어느 정도 희석시키며 토로한다. “Nowadays we are so hard up that only pleasant thing to pay is―a compliment.”(요즈음엔 생활이 너무 궁핍하다 보니, 줄 만한 즐거운 선물이 칭찬밖에 없군요.)

 

오빠가 묻는다. “Victor Hugo?”(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냐?) “Oscar Wilde.”(오스카 와일드인데요.)

 

‘살인의 줄거리(Murder by the Book)’ 편에서는 트로이 도나휴가 쓰는 소설의 내용이 타자기에 꽂힌 종이에 이렇게 찍혀 나온다.

 

“J’accuse,” said Mrs. Melville, pointing at the doctor.

 

Mrs. Melville(멜빌 부인)은 애거타 크리스티가 창조해낸 미스 마플(Miss Jane Marple)을 연상시키는 아줌마 명탐정이다. 그리고 그녀가 손가락으로 의사를 가리키며 외친 “J’accuse”(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 군부의 비리를 폭로한 포병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무고하게 투옥된 다음, 그의 결백을 주장하며 구명운동에 나선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의 첫 문장에서, 그리고 뒤이어서 후렴처럼 거듭거듭 반복하는 말인데, 워낙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니까 프랑스어 그대로 알아두기 바란다.

 

드레퓌스 사건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언급하고, 졸라와 절친했던 작가 아나톨 프랑스의 풍자물 <현대사(Histoire contemporaine)> 총서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영화 <에밀 졸라의 생애(The Life of Emile Zola)>에서는 극적인 기둥줄거리를 이룬다.

 

영화에서 레이몬드 매씨(졸라 역)는 신문에 이런 글을 싣는다. “I accuse the War Office of having viciously misdirected public opinion and cover up the sins.”(나는 그들의 죄를 은폐하려고 여론을 사악하게 오도한 국방성을 고발한다.) 졸라가 되살아나 여의도에 와서, 조폭처럼 패를 지어 날이면 날마다 싸움질을 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보았더라면 아마 이런 소리를 했으리라. “I accuse you for pretending to be politicians!”(정치가라고 사기 치는 네놈들을 고발한다!)

 

<형사 콜롬보> ‘나 잡아봐라(Try and Catch Me)’ 편에 등장하는 여성 추리작가 루드 고든은 그녀의 범죄 사실을 알고 은근히 협박해오는 비서 매리에트 하틀리의 환심을 사려고 일찍 퇴근시키며 유명한 인용문을 동원한다. “Tomorrow is another day, isn’t it?”(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내일 해도 괜찮으니 오늘은 집에 가서 쉬라는 말이다. 어떤 일을 꼭 오늘 할 필요가 없고, 내일로 미뤄도 되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평범한 의미가 담긴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말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언으로 인용되는 까닭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때문이다.

 

힘든 일에는 관심이 없고 공주 대접을 받으며 남자들과 어울려 놀기만 좋아하는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입버릇처럼 그 말을 반복하고, 소설과 영화 모두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그녀의 말로 끝난다.

 

번역과 연관 지어 다른 곳에서 이미 지적한 바이지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수입되었을 때는 주인공의 성격을 한 마디로 부각시키는 이 간단한 문장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식으로 잔뜩 멋을 부려 자막에 옮겨 놓았다.

 

이 화려한 번역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요즈음에도 마치 그것이 원문의 내용 그대로인 줄 잘못 알고 열심히 암기하여 인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쩐지 과잉 충성을 하는 간신이 득세하여 나랏일을 망치는 현상을 연상시키는 듯 싶어서 뒷맛이 별로 좋지가 않다.

 

 

 

“하느님 속셈은 알다가도 몰라”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allusion과 quotation의 대상 원전은 성경이 아닐까 싶다. <형사 콜롬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마지막 노래(Swan Song)’ 편에서는 어두운 과거 때문에 약점이 잡힌 가수 자니 캐시가 부흥회 전도사인 아내 아이다 루피노에게 쥐여살기가 지겨워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는 아내를 살해할 의도를 성경을 인용해가면서 은근히 내비친다.

“I seem to remember a little Bible myself, Edna. Vengeance is mine, saith the Lord.”(성경 말씀이라면 나도 좀 알지, 에드나.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잖아.)

 

saith의 -th는 직설법을 만드는 고어체 접미사(suffix)다. -th는 동사의 3인칭 단수 현재형을 나타내는 -(e)s에 해당하여, says는 saith, has는 hath, does는 doth, works는 workth라는 식으로 쓴다. 시어체로도 자주 동원되는 고상한 어법이어서, 성경이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같은 고전에서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의 ‘천사 이스라펠(Israfel)’의 첫 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In Heaven a spirit doth dwell/‘Whose heart-strings are a lute’. ” (‘마음의 현이 음악을 울리는’ 성령이 천국에 살고 있나니.)

 

그리고 ‘흥행의 귀재’로 명성을 떨쳤던 로저 콜맨이 1963년에 만든 영화의 동명 ‘원전’이었던 또 다른 포의 우울하고 슬픈 시 ‘까마귀(The Raven)’에는 Quoth the Raven, “Nevermore.”(까마귀가 말했노라.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고.)라는 유명한 구절이 다섯 차례(48, 84, 90, 96, 102행)나 반복된다. 하지만 이 quoth는 3·단·현이 아니라, said(말하였다)라는 과거형의 고어체다. 이 단어는 1인칭이나 3인칭 주어의 앞에 나오며, 인용(어)문을 목적격으로 받는다.

 

-th는 ‘마지막 노래’에서처럼 격언이나 진리 따위를 인용할 때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잘난 체하는 사람의 현학적 화법을 비꼬는 표현으로도 자주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놓고 만일 뒤에다 saith I 라는 말을 tag ending(말미)으로 붙이면, 웃기려고 어울리지 않게 어려운 문자를 쓰거나, 거들먹거리는 수탉 화법이 된다. “맹구 가로사되”에서 바보 맹구와 고어체 ‘가로사되’가 어울려 어떤 상승효과를 내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쨌든 ‘마지막 노래’에서는 남편 캐시의 도전에 전혀 기가 죽지 않은 전도사 아내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자신감을 보이며 반박한다. “It is also written: the Lord works in the mysterious ways.”(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나오지. 주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이 ‘성경’ 구절은 (as) the Chinese say(중국인들 가로사되)만큼이나 자주 인용되는 말미 표현으로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많은 종교인들이 입에 올려 핑계 없는 무덤 노릇을 여기저기서 열심히 한다.

 

‘요크 상사(Sergeant York)’에서도 순진한 시골 청년 개리 쿠퍼가 조운 레슬리의 변덕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하느님의 핑계를 댄다. “The Lord sure do move in mysterious ways.”(정말이지 하느님 속셈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포도주 살인사건(Murder Under Glass)’ 편에서 피터 포크가 루이 주르당에게 “As the Chinese say, there’s more than one fish in the sea.”(바다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뿐은 아니라고 중국인들이 그러죠.)라고 한 대목에서, as the Chinese say는 정말로 중국에서 유래하는 표현이 아니라, “다들 그러는데, 어쩌고저쩌고”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하다고 설명했지만, “하느님의 속셈”도 역시 우리말 표현의 “그건 공자님 말씀”이라는 경우와 의미가 비슷하다.

 

<숀 코너리의 신문(The Offence)>을 보면 미성년 성추행범으로 잡혀온 이안 배넌이 숀 코너리 형사에게 “너도 똑같은 변태”라면서 약을 올린다. “Ah, like Confucius said: lie back and enjoy it.”(아, 공자님 말씀마따나, 이왕이면 발랑 누워서 즐겨야죠.)

 

lie back and enjoy it은 “주려면 아예 홀랑 벗고 줘라”고 하는 상스러운 우리말 표현과 같아서, “마지못해 도와주는 경우라도 이왕이면 확실하게 도와주라”고 하는 충고다. 물론 공자가 그런 천박한 소리를 했을 리는 없고, 공자까지 동원한 이 말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소리”를 뜻한다.

 

 

“값을 물으면 형편이 안된다는 뜻이죠”

 

지난 주일에는 lie back and enjoy it이라는 표현의 출처가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고 지적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이라고 믿는 the Lord works in the mysterious ways 또한 정작 성경을 찾아보면 어디에서도 나타나지를 않는다.

 

필자는 온갖 자료를 이용하여 성경에서 문제의 인용문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수월치가 않았고, 그래서 바티칸 성서대학(Pontificio Istituto Biblico)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수녀인 내 딸은 “mysterious 같은 단어는 히브리어로 존재하지도 않을 듯싶다”고 전제하면서, 문제의 인용문과 가장 비슷한 구절은 이사야 55장 8~9절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 인용문은 이러하다.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saith the Lord.”(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기 때문이니라.) ― 8절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9절

허무맹랑한 인터넷 괴담 같은 ‘헛소문’은 이렇게 공자님 말씀과 하느님 말씀까지도 제멋대로 희롱한다.

 

하지만 정확하고 적절한 인유와 인용은 어떤 사람의 화술을 풍요하게 뒷받침하며, 문학이나 연설에서는 재치가 넘치는 하나의 문장이나 표현을 넘어, 때로는 어떤 상황과 사건 전체를 차용하기도 한다. 이때 흔히 동원되는 원자재가 일화(逸話=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얘기)다.

 

‘일화’는 영어로 episode나 anecdote라고 하는데, 그 두 가지 분야는 개념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문학에서 훨씬 더 보편적으로 쓰이는 anecdote의 어원 anekdotos는 그리스어로 “책으로 엮어지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떤 개인에 대해서 역사나 전기를 통해서 공식적으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흥미 있고 짤막한 얘기”가 anecdote이며, 설화나 전설에 가까운 내용이 되겠다.

 

반면에 정통성이 더 뚜렷한 episode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두 개의 코러스를 연결하는 삽입 부분으로서 어떤 작품의 큰 흐름에 끼어들어가 삽화 노릇을 하는 토막을 뜻한다. 그렇다면 <형사 콜롬보>에 등장하는 다음 두 가지 ‘일화’가 어째서 episode보다는 anecdote라고 해야 옳은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죽음의 소곡(Etude in Black)’에서 지휘자 존 캐사베티스는 연주를 앞두고 아내 안자네트 코머와 장모 머나 로이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You know that Tchaikovsky got so nervous before a concert, he had hallucinations and once he was so sure that his head was about to fall off he held it on with his left hand and conducted with the right hand.” (두 사람 다 알다시피 차이코프스키는 연주를 앞두고 너무나 신경이 예민해져서 환각에 빠지고는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머리가 떨어져 나가리라고 너무나 굳게 믿었던 나머지, 왼손으로 머리를 받쳐 들고는 오른손으로 지휘를 했답니다.)

 

before a concert에서 정관사가 아니라 부정관사를 쓴 까닭은 어떤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 습관적인 현상이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위기의 포도주(Any Old Port in a Storm)’ 편에서 콜롬보는 포도주 회사의 사장 도널드 플래전스에게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했다고 사과하는 체하면서 함정에 빠트리려는 속셈으로, 사장과 여비서를 최고급 식당으로 초대하여 불러낸다. 그리고 콜롬보는 이런 조건을 붙인다.

 

“I want you to pick out the restaurant and I want to pick up the check.”(사장님께서는 식당을 고르시고,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pick이라는 단어로 곁말놀이를 한 이 예문에서 pick up the check은 “계산서(tab)는 ~가 맡는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래서 막상 최고급 식당에 가서 보니 차림표에 가격을 밝혀놓지 않았고, 그래서 불안해하는 콜롬보를 보고 플래전스 사장이 (최근의 경제 환란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경제계 인물의 일화를 소개하며 여유를 부린다.

 

“J. P. Morgan was once asked how much his yacht would cost. His reply, if I remember correctly, was: If you have to ask the price, you can‘t afford it.”(전에 누군가 J. P. 모건에게 그의 요트 값이 얼마나 나가느냐고 물었답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가격을 꼭 알아야 할 사람이라면 그런 돈을 낼 만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죠.”)

 

예문의 첫 문장은 수동태로서, was asked는 “~에 의해서 물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수동태를 별로 쓰지 않아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누군가’라는 불특정 주어를 집어넣고 능동태로 바꿔 번역했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이른바 ‘번역체’를 우리말답게 옮기는 한 가지 간단하고도 편리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