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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Tour - World

그리스(아테네, 산토리니) - 터키(이스탄불)

by Wood-Stock 2009. 6. 24.

 

지중해, 내 푸른 로망

한겨레 남종영 기자
» 지중해, 내 푸른 로망
당신의 로망의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유럽의 중심 파리, 남미의 파타고니아, 브라질의 이구아수 폭포, 옥빛 바다 타히티 아니면 지중해의 하얀 마을 산토리니? 실제 가지 못할지언정 로망의 여행지를 가슴에 품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여행지가 소개된 기사를 꼬깃꼬깃 접어두거나 사진 한 장을 바탕화면에 깔고 ‘언젠가 그곳에 가고 말테야’ 하는 것. 그러면 일상은 조금이나마 위로받습니다. 지중해 또한 일생에 한번 갈 수 있을까 말까 한 곳입니다. 중세 이후 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중해는 그들에게 세상의 끝이었고 다른 세상과 통하는 연결로였으며 영원한 변방이었죠. 그래서 지중해에는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세상의 시원에 닿는 듯한 신기함과 기묘함이 흐릅니다. 한국의 배낭여행자들에게도 지중해는 멀었습니다.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런던과 파리를 찍고 남유럽으로 내려가면서 로마와 아테네를 두고 고민하다가 대개 로마를 선택합니다. 아테네 거쳐 지중해 섬까지 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최근 지중해의 하얀 섬 산토리니는 한국인들의 새로운 신혼여행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값이 비싼 편이지요. 하지만 신혼여행은 로망을 실현할 단 한차례 기회여서 사람들이 산토리니를 많이 찾는다고 여행사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지중해를 가 보니 산토리니뿐만이 아니더군요. 아테네 아나피오티카의 숨은 골목길, 원시적인 낭만이 흐르는 크레타섬, 그리고 독특한 그리스식 리조트들이 로망을 부추겼습니다. 지중해를 최대한 값싸게 여행하는 방법도 살폈습니다. 로망의 여행지 지중해를 다룬 이번 호 〈esc〉를 꼬깃꼬깃 접어두세요.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 당신의 로망의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 실제 가지 못할지언정 로망의 여행지를 가슴에 품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 지중해에는 세상의 시원에 닿는 듯한 신기함과 기묘함이 흐릅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따라해 볼까 크레타 스타일

 

활기찬 아름다움과 원시적 순수성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조르바의 고향, 크레타섬

 

 

» 기원전 6천년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 크노소스궁. 미노타우로스와 이카로스 신화가 전해지는 미궁이다. 궁전의 북쪽 출입구. 뿔을 들이대고 돌진하는 황소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크레타섬 미노스왕은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를 아내로 두고 있었다. 파시파에는 소와 부정을 저질러 반인반우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미노스왕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 다이달로스를 시켜 크노소스성을 짓고 미노타우로스를 궁에 가둔다. 크노소스성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미궁이다. 미노스왕은 매년 도시국가 아테네의 젊은 남녀 7명씩을 조공받아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미궁에 넣어준다. 아테네의 젊은 영웅 테세우스는 조공 대상으로 위장한 뒤,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그리고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를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다.’


크노소스궁에 잠자코 앉아 미궁 신화를 소처럼 되새김했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힌 곳은 어디였을까.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어느 회랑을 따라 이어졌을까. 하지만 크노소스궁은 미로이기 전에 폐허였다. 20세기 초반 크노소스궁을 발굴한 아서 에번스가 일부 복원하긴 했지만, 몇 개의 방과 기둥만 흔적을 말해 줄 뿐. 궁전 구조의 원형을 추정한 조감도를 봐선 미로이긴 했으나, 미노타우로스가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이카로스가 날개를 달아 탈출해야만 할 정도로 그렇게 복잡하진 않았다.

 

 

» 리흐노스타티스의 크레타 민속박물관. 크레타 전통 양식의 주택과 각종 소품을 전시했다.

미궁에 앉아 미노타우로스의 신화를 되새기다

 

미노스왕은 크레타섬의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14㎞ 떨어진 아르하네스에 여름궁전을 지었다. 아르하네스는 미노아문명의 폐허보다는 아름다운 마을로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시골마을로 선정됐고, 마을 보존을 위해 유럽연합의 기금도 지원받는다. 그리스 정부 관광국의 알렉산드로스 콘스탄티노는 “가장 크레타적인 마을”이라고 평했다.

 

아르하네스는 예뻤다. 산토리니가 은은한 어촌마을이라면 아르하네스는 활기찬 농촌마을이었다. 마을을 굽어보는 바위산 기우크타스(Mt. Giouchtas)의 장엄한 기풍, 중세풍으로 포장된 울퉁불퉁한 골목길, 마을 광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카페, 광장에 번지는 짙은 그리스 커피향.

 

아르하네스는 예쁘지만 기묘했다. 가령 이런 기묘함들이다. 타베르나(그리스의 선술집풍 카페)는 좀먹은 양복을 입은 노인들이 뿜어대는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불과 몇 십 년까지만 해도 타베르나에는 여성이 들어오지 못했다. 거리의 개들은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달려들어 컹컹 짖어댄다. 한번은 새끼 길고양이를 둘러싸더니, 한 놈이 나서 낚아채고 거리를 질주했다.

 

기묘함은 어쩌면 원시적인 것들이다. 그럼 크레타는 야만을 표상하는가? 적어도 미궁 신화는 그렇다. 이집트 문명은 크레타를 거쳐 그리스 문명으로 전파됐다. 당시 그리스는 이집트보다 열등했다. 즉 크레타의 미노타우로스와 미노스왕은 덜 개화된 문명을 의미하며, 이를 물리친 아테네의 테세우스는 개화된 문명을 상징한다. 야만에 대한 지성의 승리, 동양을 추월한 서양, 자부심 넘치는 그리스 문명의 태동을 은유하는 것이다.

 

 

» 아르하네스는 남성적인 분위기의 시골 마을이다. 타베르나에는 담배 피우는 노인들이 가득하다.
사실 크레타는 유럽 문명의 탯줄인 미노아 문명을 잉태했지만, 3천년 동안 유럽 문명의 변방에 가까웠다. 크레타는 아랍과 베네치아,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국 그리스에 포함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점령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크레타인들은 독립운동을 벌였다.

 

최근 들어 그리스 사람들은 ‘크레타 스타일’을 주목한다. 대표적인 게 크레타 다이어트다. 크레타 사람들의 심장질환 및 암 사망률은 낮기로 유명하다.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30여분 떨어진 말리아의 ‘칼립소 레스토랑 앤 호텔’은 크레타 요리 강습으로 유명하다. 주방장 크리스토포로스 베네리스(59)는 크레타 음식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일과 야채, 산나물이 주식이지요. 그 다음 생선을 즐겨 먹고, 고기는 삼가는 게 크레타 음식의 특징이에요. 올리브 기름을 많이 사용하고요.”

 

리흐노스타티스의 크레타 민속박물관에 가면, 크레타의 전원적 생활양식을 볼 수 있다. 크레타의 현악기 리라, 계피로 담은 카넬라다, 그리고 청포도밭이 있다. 야니스 매카티스(43)는 “크레타 사람들은 집집마다 청포도를 재배한다”며 “중앙정원에 포도를 길러 덩굴을 올리면, 포도덩굴은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을 가려준다”고 말했다. 크레타 포도는 신맛이 전혀 없고 달콤했다.

 

 

» 크레타는 서양적이되 동양적이고 원시적이되 이성적이다. 크레타의 민속춤.

요즘 뜨는 크레타식 다이어트

 

크레타 스타일에 주목하는 건 이성의 미궁에서 헤매는 현대인들이 원시적 순수를 찾는 건지 모른다. 크레타가 고향인 그리스인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크레타인 조르바를 절대 자유의 원형으로 등장시킨다. 조르바는 원시적이되 가장 지성적이고, 가볍되 가장 무거운 사람이다. 조르바는 말한다. “행동이 나를 삼켰지만, 나는 그게 좋아.”

 

크레타의 수도 헤라클리온에는 카잔차키스의 무덤이 있다. 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조르바 같을까.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크레타의 신비는 지극히 깊다. 이 섬에 발을 디디는 모든 사람은 핏속으로 따스하고 온화하게 퍼지는 신비한 힘을 의식하고, 영혼이 자라기 시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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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과 푸른색의 단호한 유혹

재앙의 역사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모시킨 산토리니
한겨레 남종영 기자
» 산토리니 앞바다. 하얀 마을이 분화구 절벽 사이로 층층이 형성됐다.
그러니까 산토리니에는 하얀색과 파란색밖에 없다. 에게블루(Aegean blue)와 그릭 화이트(Greek white). 두 색의 대비에서 약간의 채도와 명도를 가감해 변환할 뿐이다. 포카리스웨트 같은 색깔, 그리스 국기 같은 색깔이 태양빛을 맞고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마을 뽑기 대회를 연다면, 분명히 메달권에 들어갈 산토리니는 에게해의 작은 섬(76㎢)이다. 크레타섬의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쾌속정을 타고 두 시간이면 가는 곳, 아테네의 피레우스항에서는 네 시간이면 닿는 곳.

 

아티니오스항(카페리가 정박하는 신항구)에 내리면, 산토리니는 스핑크스처럼 거대한 바다 절벽으로 떠 있다. 버스는 여행자를 모아 스위치백으로 절벽을 기어오른다. 그리고 빠짐없이 두 마을로 향한다. 산토리니의 가장 큰 마을 피라(그래봤자 인구는 2천명) 그리고 이아, 700명이 사는 산토리니의 전형적 풍경을 선사하는 마을.

 

 

» 구 항구에서 피라 마을로 오르는 계단. 당나귀를 타고 오른다.

화산과 쓰나미, 지진으로 얼룩진 지중해의 파괴자

 

사실 산토리니는 지중해의 말썽꾸러기이자 파괴자였다. 크레타섬의 미궁 크노소스궁을 잿더미로 만든 것도 바로 산토리니였다. 기원전 1650년 산토리니는 수차례의 화산을 내뿜었다. 30㎢를 뒤덮을 만한 마그마를 배출한 뒤, 섬은 스스로 붕괴했다. 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지중해로 번져나갔다. 이스라엘까지 번진 파도는 크레타섬도 휩쓸었다. 미노아 문명도 그때 스러진 것이다.

 

이렇듯 산토리니는 인간친화적인 곳이 아니다. 기원전 3000년부터 시작된 섬의 문명도 지진에 의해 사라졌으며(아크로티리에서 유적이 발견된다), 기원전 236년과 197년, 그리고 726년에도 산토리니는 불의 구덩이였다. 불과 50여년 전인 1956년에도 리히터 규모 7.8의 지진으로 섬은 요동쳤다. 마을은 또다시 폐허가 됐다. 산토리니의 상징인 이아 마을도 인구가 9천명에서 500명으로 서서히 줄었다.

 

 

» 산토리니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중해 문명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그리스 신화의 석상들.
하지만 그 뒤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폐허를 복구하면서 자신의 집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몄다. 기하학적 대칭과 단순화한 건물, 그리고 하얀색과 파란색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색을 사용해 산토리니는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아는 물론 피라 마을은 ‘산동네 리조트 타운’으로 발전했다. 다닥다닥 붙은 절벽의 집들엔 수영장이 들어서고, 그 안엔 동굴을 판 스위트룸이 탄생하고, 골목은 카페 테라스로 변모했다. 피라와 이아의 집들은 모두 에게해만을 바라본다.


크루즈 승객이 내리는 구 항구, 피라 스칼라부터 계단을 세면서 골목을 올랐다. 계단에는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숫자가 써졌다. 모두 587계단이다. 당나귀도 계단을 오른다.(절벽이기 때문에 항구에서 마을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없다) 피라의 골목은 아테네 아나피오티카보다 소담하고 어지럽지만 단아하고 원색적이다. 하얀 담장에 핀 장미는 빈 캔버스에 장미를 그려놓은 것 같다. 마네킹은 잉크블루빛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전기계량기에 옷이 걸려 있고, 연노란 담벼락에는 울긋불긋한 숄이 진열돼 있다. 이럼으로써 골목의 벽과 에게해는 각각 하얗고 파란 캔버스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거기에 물건을 걸어두거나 꽃을 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이아 마을의 해질녘 풍광. 지중해의 늙은 햇살이 하얀 마을을 감싼다.
피라에서 북쪽으로 11㎞로 떨어진 이아 마을은 피라보다 아담하다. 이아의 집들은 피라보다 더 위태롭게 절벽에 붙어 있어서, 마치 낭떠러지에 둥지를 튼 갈매기를 연상시킨다. 지그재그로 난 절벽의 골목길을 여행자들은 산양처럼 오른다. 늦은 오후 이아의 골목길에서 흐느적거리다가 지는 해를 확인하고 피라로 돌아가는 게 산토리니 여행자들의 일상이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레스토랑 테라스에서의 정찬, 타베르나(그리스식 카페)에서 맥주 한 잔, 기념품 가게와 부티크 숍의 아이쇼핑. 가을 저녁, 피라의 하얀 골목길은 누런 백열등을 맞고 몽환적인 빛을 연출한다.

 

 

산동네 리조트 타운에 여행자들의 낭만이

 

그리스는 잔혹할 만큼 적나라한 빛을 과시하는 나라다. 산토리니는 그리스적 색채를 과장한 테마파크다. 마을 사람들은 따로, 또 같이 색을 칠했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마을 뽑기 대회에서 산토리니는 분명 금메달을 따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재앙의 역사가 산토리니에게 준 전화위복이자,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자, 낭만적인 여행자들의 덕택일 것이다.

 

 

» 산토리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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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공중변소 구경하세요
파르테논에서 플라카 벼룩시장까지 아나피오티카 골목길을 따라 2천년을 산책하다
한겨레 남종영 기자
» 새하얗게 달궈진 모습으로 전개된 하얀색 그리스의 절정은 아크로폴리스다. 파르테논 신전과 에레크테이온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등이 모여 있다.
아테네는 아무 매력 없이 소란하기만 했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로버트 캐플런은 아테네를 “새하얗게 달궈진 모습으로 전개된, 병적으로 성장한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혹평했다.
 

2천년 전에 지은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아테네를 굽어보지만, 사실 아테네의 대부분은 200년이 채 안 되는 신도시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 된 이래 2천년 동안 번영한 시기보다 쇠락한 세월이 길었고, 1834년에는 300채의 가옥밖에 없는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아테네는 신화를 머금은 하얀 폐허의 기둥과 내력 없는 콘크리트 단층 건물로 구분된다. 고대와 현대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이 바로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 산동네 아나피오티카 골목길이다. 아테네에서 가장 그리스다운 산동네를 헤매다 무작정 내려가면 중심가인 플라카다.

 

아나피오티카 골목길 산책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아크로폴리스 유적으로 출발해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므로 개장시간을 기다려 들어가는 게 현명하기 때문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아나피오티카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그러니까 아크로폴리스에 서면 아테네 시내의 어디든 내려다볼 수 있고, 아테네 시내 어디서든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볼 수 있다. 빠른 걸음으로 아침 운동을 나선 노부부, 바닥을 쪼아대는 부지런한 비둘기 그리고 비둘기를 쫓는 검둥이들이 아침 아크로폴리스 언덕길의 풍경이다.(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때다. 반드시 아침의 한적함을 즐겨보라!)

 

 

» 파르테논에서 플라카 벼룩시장까지.

아침 8시, 문을 열자마자 아크로폴리스는 관광객들로 분주해진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불의 문과 프로필라이아 그리고 니케 신전을 거치면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나타난다. 기원전 432년 전 페리클레스 시대 때 천재 조각가로 불린 페이디아스가 15년 동안 만들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모신 곳. 기둥밖에 남지 않은 게 그리스 유적의 대부분 모습이라 이 정도면 꽤 완결된 형상을 갖춘 편이다.

 

다시 아나피오티카로 내려오면 제우스 신전이 기다린다. 세밀한 코린트식 기둥이 쓰러져 있거나 남아 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골목 산책을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곳은 중앙 돔을 얹은 에카테리니 성당이다. 11세기 중엽에 지은 성당 앞 중정은 아테네의 강한 햇살을 피해 앉아 있기 좋다.

 

언덕 위로 올라붙었다가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내려간다. 골목은 옴팡 붙은 하얀 집과 구불구불한 계단, 그리고 원색의 그라피티로 채워졌다. 얌전한 얼룩고양이들은 골목에서 얼쩡거리고 검둥이들은 모여 낮잠을 자는 게 아나피오티카의 일상적 풍경이다. 기원전 334년에 지은 코레고스(고대 비극의 제작자) 기념비, 성 요한 성당, 성 시몬 성당을 지나는 동안 위로는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고 아래로는 플라카가 펼쳐진다.


오렌지색 작은 건물은 베네치아 통치 시기 건축된 아테네 대학이다. 투르크 지배 시대에는 관공서로 쓰였고 1837년부터 41년까지 아테네 대학으로 쓰였다. 클렙시드라 카페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 로만 아고라다. 1세기에 세워진 도리아 기둥 사이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로만 아고라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제우스 신전처럼 기둥만 남겨 실망스러운 유적들보다 낫다. 1세기에 지은 공중변소도 확인할 수 있으니까. 트리톤 형상의 풍향계가 있었다는 바람의 탑, 신전의 입구와 여러 상점의 초석도 남아 있다.

 

골목은 모나스티라키 광장에서 끝난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광장 옆에는 벼룩시장이 있다. 옛 지폐들과 쌍안경, 녹슨 자물쇠와 열쇠, 빛바랜 모나리자 그림,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 클래식 물품들이 가득 찼다.

 

고급 부티크 상점이 있는 플라카 거리엔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여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과 고급 부티크가 즐비한 중심가 플라카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2천년을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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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아래 우아한 야외 정찬을 ~ 지중해 리조트 즐기는 법 
한겨레 남종영 기자

 

» 지중해식 휴가는 말괄량이보다는 느림보에 가깝게 즐기라. 리조트 타운의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는 관광객들.
동남아 리조트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지중해풍 리조트는 낯설다. 국내에도 ‘지중해풍’을 지향하는 리조트와 워터파크가 많이 있지만, 본향은 바로 산토리니와 크레타섬이다.
 

최근 유행하는 지중해풍 리조트는 리조트를 마을처럼 구성한다. 마치 아테네의 아나피오티카의 골목길처럼 방갈로와 객실이 미로 속에 있다. 골목 사이로 테라스와 야외 자쿠지, 수영장이 숨어 있다. 물론 리조트는 하얀색이다. 수영과 스노클링을 포기하고 지중해 햇살을 맞으며 그리스식 정찬을 즐기는 게 지중해 휴가법이다. 그리고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산토리니는 지중해에서 한국인이 붐비는 유일한 지역이다. 이곳의 허니문 리조트의 모든 객실에선 지중해가 내려다보인다. 이오스여행사 남윤경씨는 “동굴 속을 파고 객실을 꾸며 놓아 독립성이 보장되고, 펜션 같은 느낌이 난다”고 설명했다. 5년 전 출시된 이래 산토리니 허니문 상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사 한 곳에서만 한 해 1천여 쌍 이상을 보낼 정도. 산토리니 리조트는 소규모라서 원하는 곳에 자기 위해서는 최소 4~6달 전에 예약하는 게 필수다. 이오스여행사에서 300만원 안팎(5박7일·항공 및 유류할증료 포함)에 판다.

 

크레타섬과 아테네 근처의 해변도 리조트 타운이다. 아직 국내에서 여행상품이 판매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발빠른 리조트족이 찾아 내고야 말 곳이다. 크레타 헤르니소스의 크노소스 로열빌리지(aldemarhotels.com)는 지중해의 어촌마을처럼 구성돼 매력적이다. 헤라클리온의 아미란데스(amirandes.com)는 호텔 중앙에 라군을 설치하는 등 디자인이 훌륭하다. 아테네 근처 라고니시 해변의 그랜드 리조트 라고니시(grandresort.gr)도 유럽 리조트족의 관심을 모으는 럭셔리 리조트다.

 

 

 

저가항공과 카페리를 공략하라

 

호화 크루즈로 알려진 지중해 섬 싸게 여행하기

 

아직까지 지중해는 단일 목적지로 많이 찾지 않는다. 유럽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거쳐 가거나, 300만~400만원대의 지중해 크루즈 상품으로 이용됐을 뿐이다. 하지만 자유여행으로도 지중해를 여행할 수 있다. 이스탄불과 아테네를 기점으로 지중해를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하는 저가항공과 카페리를 이용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저가항공은 미리 예약하면 카페리보다 싸다.

 

⊙ 어떻게 기점을 잡을까=여행의 기점은 이스탄불이 좋다. 이스탄불 또한 지중해의 인접 항구로 지중해의 아시아적 풍광을 둘러볼 수 있다. 유럽 항공사의 인천~유럽~아테네 구간을 사느니, 터키항공의 인천~이스탄불~아테네 왕복 구간을 사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다. 터키항공은 매주 월·수·토요일 인천을 오후 3시40분에 출발해 이스탄불에 밤 8시45분에 도착한다. 이스탄불~아테네 구간은 날마다 운항한다. 인천~아테네 75만~80만원 안팎. 유류할증료 및 세금은 60만원 이상 예상해야 한다. 이스탄불에 머무르더라도 스톱오버 수수료는 없다. 터키항공 한국사무소 (02)777-7055.

 

⊙ 저가항공과 카페리를 이용하라=아테네와 크레타, 산토리니에는 저가항공도 수시로 다닌다. 에게항공(aegeanair.com)은 아테네~헤라클리온(크레타), 아테네~산토리니 구간을 띄우고 있다. 두 달 전에 예약하면 30유로(편도. 1유로=1750원) 아래서 살 수 있다.

 

카페리도 지중해를 거미줄처럼 잇는다. 미노안라인(minoan.gr)은 페리우스에서 헤라클리온까지 야간페리(40유로)를 운항한다. 밤 9시에 출발해 아침 6시에 닿는다. 헤라클리온에서 산토리니(2시간), 피레우스에서 산토리니(11시간)까지도 각각 쾌속정과 야간 페리가 다닌다. 이 밖에 미코노스, 로도스, 사모스 등 다른 지역과도 촘촘히 연결된다. 하지만 4~10월을 제외하고는 파도가 높아 결항이 잦으므로, 겨울에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낫다.

 

⊙ 유레일패스를 이용하라=유럽 장기배낭여행자가 이용하는 유레일패스를 사면 지중해 일부 구간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테네에서 30분 걸리는 피레우스 항구에서 헤라클리온까지 20%를 할인받는다. 블루스타 페리의 경우 그리스 국내노선은 25~30% 할인된다. 이탈리아를 함께 둘러볼 경우, 이탈리아 안코나와 바리에서 그리스 파트라스까지 슈퍼패스트 페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호텔팩도 경제적이다=항공과 호텔을 묶은 자유여행 상품도 일부 판매된다. 아테네, 산토리니, 메테오라, 이스탄불 등을 8~15일 동안 둘러볼 수 있는 상품이 있다. 비수기에는 200만원대 미만에서도 판매되지만, 유류할증료를 고려해야 한다.

 

이오스여행사(ios.co.kr, 02-511-1584), 에오스여행사(eostour.co.kr, 02-514-7775) 등에서 판매한다. 이 밖에 자유여행자를 위한 그리스 여행정보는 그리스관광청 홈페이지(visitgreece.kr)를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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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역사 도시 전체 펼쳐진 터키 이스탄불 …

폐허의 비애마저 씁쓸한 듯 달콤한...

2010 유럽문화수도 정비 작업도 한창

한겨레 김은형 기자
» 대표적인 초기 교회 건축물로 알려진 아야소피아. 이스탄불 여행의 보편적인 출발지인 블루 모스크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이스탄불 여행은 시각이 아니라 청각에서 시작된다. 해 질 녘 도시 곳곳에 서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 ‘아잔’이 울려퍼지며 도시 전체의 공기를 감쌀 때 마음 급한 여행자라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나 흥미로운 기행문으로도 채울 수 없는 진짜 여행의 매력이 이스탄불에서는 이렇게 소리로 먼저 다가온다.
 

맥주와 이슬람, 아이팟과 히잡

 

청각적 체험은 풍경과 만나 그 낯선 매혹을 증폭시킨다.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엄숙하고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사원들이라면 그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간판 중 가장 흔한 건 ‘에페스’(EFES)라는 터키 맥주 로고다. 도심 한가운데서 담배를 물고 아이폰을 가지고 노는 이십대 청춘들 옆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헝겊으로 휘감은 또래의 얼굴들이 지나간다. ‘동서양 문화의 만남’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상투어가 어찌할 도리 없이 떠오른다. 한 도시의 경계 안에 유럽과 아시아라는 거대한 두 대륙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부터 여행자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시공간의 도착으로 느껴진다.

 

 

» 그랜드바자 외부에 위치한 조명 기념품점. 모자이크 장식이 화사한 조명등은 터키 특산품 중 하나다.

대부분의 여행 명소들이 모여 있는 유럽편은 이스탄불의 심장부인 갈라타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갈린다. 다리 왼쪽 편의 구도심에는 술탄아흐멧 사원과 아야소피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가 모여 있다. 비잔틴 시대에 세운 기독교 교회인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대표적 이슬람 사원 술탄아흐멧이 마주 보고 있는 광장은 전세계 여행자들이 어깨를 부딪히는 곳이다. 오래된 교회 건축물 중 하나로 4세기(360년)에 지은 아야소피아 한가운데에는 유명한 성 모자상 천장 모자이크화 아래로 코란의 경구들이 적혀 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기독교 중심지에서 이슬람 중심지로 바뀌었던 이 도시의 독특한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풍경이다. 5월 초 이곳을 찾았을 때 높이 56m에 이르는 천장의 돔 반쪽은 복원공사 중인 지지대에 가려 있었다. 2010년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된 이스탄불은 내년 본격적인 여행객 유치를 위해 이처럼 도시 곳곳의 문화재 정비와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아야소피아 옆으로 오스만 왕조의 지배자인 술탄들이 400년 동안 거주해오던 톱카프 궁전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 바로 서구의 여행자들을 흥분시켰고 또 이슬람 문화를 오해하게 만든 하렘이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의 열광적 호기심 때문인지 입장료를 따로 받는 하렘에서 가이드가 “술탄의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이 머물며 교육받던 곳”이라고 강조하는 데에서 이방인의 오해를 씻어내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 유명한 터키식 욕탕의 수도꼭지마저 마른 지금의 하렘을 빛나게 하는 건, 각 방의 벽들을 채우고 있는 정교한 문양의 타일들이다. 톱카프 궁전의 너른 정원은 색색깔의 튤립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흔히 네덜란드의 꽃으로 알려진 튤립은 터키의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영화로웠던 오스만 제국의 황금시대를 터키인들은 ‘튤립의 시대’로 이른다고 하며, 해마다 4월부터 5월 초까지 이스탄불에는 큰 규모의 튤립 전시회가 열린다.

 

 

» 톱카프 궁전 앞의 정원. 4~5월에는 시 전체가 튤립으로 뒤덮인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다. 갈라타 다리 위는 허름한 차림으로 바다에 낚싯대를 던지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다리 아래는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식당들이 즐비하다. 다리 위가 흑백이라면 다리 밑은 형형색색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이스탄불을 ‘흑백’의 도시로 묘사한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갈라타 다리 위 인파의 “빛바랜, 회색의 그림자 같은” 옷차림을 묘사하며 이 유서 깊은 도시에 “150년 동안 천천히 내려앉은 패배감과 상실감”을 적어 내려갔다. 신시가의 가장 큰 볼거리인 돌마바흐체 궁전은 어떤 극과 극, 화려함의 끝에 치달았던 오스만 제국의 영화와 그 몰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소라서 흥미롭다.

 

반드시 단체 가이드 투어를 해야 하며 모두 보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이 거창한 궁전은 오스만 제국을 무너지게 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궁전을 짓고 치장하는 데 무리하게 돈을 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마바흐체의 화려함은 숨이 막힐 정도다. 궁전을 구성하는 43개의 홀과 285개의 방은 강렬한 색감의 가구들, 위압적으로 느껴질 만큼 거대한 샹들리에, 유럽에서 선물받은 보물과 그림들로 꽉꽉 들어차 있다.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뒤 현대 터키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우리에게는 케말 파샤로 더 잘 알려진 초대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됐다는데 이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실내를 빠져나오면 담장 너머 보스포루스 해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푸른 바다만이 이 도시의 찬란하고 쓸쓸한 역사를 무심하게 지켜보는 듯했다.

 

 

» ‘터키시 딜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디저트 젤리.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이스탄불의 생명줄 같다. 이스탄불을 폐허와 비애의 도시로 명명한 오르한 파무크조차 “보스포루스에서 노니는 즐거움이란, 거대하고, 역사적이고, 방치된 도시 속에 살면서 깊고, 힘차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자유와 힘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자들에게 보스포루스 크루즈는 이스탄불을 짧은 시간에 스케치할 수 있는 기회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가량 바다를 가로지르면 유럽 쪽에는 유서 깊은 모스크들과 돌마바흐체 궁전, 갈라타 탑 등 주요 유적지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시아 쪽에는 고전적인 오스만 양식의 저택들과 새로 지은 주택·레스토랑, 놀이터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과 팬티 차림으로 자맥질을 하는 꼬마들까지 이스탄불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여행의 마지막 날 구시가와 그랜드 바자와 이집션 바자를 들렀다. 남대문 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랜드 바자는 4400여개의 가게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시장으로 스카프와 화려한 문양의 접시, 가죽 제품 등 기념품과 선물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정비가 된 그랜드 바자보다 전통적이고 규모가 작은 이집션 바자가 여행자들에게는 편하게 볼거리가 많다. 중세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했으며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도 등장한 빛깔 고운 디저트용 젤리 ‘터키시 딜라이트’와 갖가지 향신료 등을 만날 수 있다. 두 시장 모두 흥정을 해야 하는데, 부르는 값의 반부터 흥정해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 이스탄불의 심장부라고 일컬어지는 갈라타 다리. 가운데 뒤편으로 보이는 탑이 갈라타 타워다.

보스포루스 크루즈로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이스탄불에는 찾아가지 않아도 늘 따라다녀 잘 안 보이다가 도시를 떠나는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유적이 있다. 5세기 초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세웠다가 1453년 이슬람 정복의 날, 그 유명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때 무너진 성벽이다. 일부는 복구됐지만 무너진 채 500년의 시간을 견뎌온 성벽은 말 그대로 폐허와 비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스탄불을 다시 찾게 되는 여행자라면 박제된 화려한 시절보다는 시간의 더께가 쌓인 이 애잔한 풍경에 매혹됐음에 틀림없다.

이스탄불 여행수첩

 

환전은 그랜드바자에서

 

◎ 터키항공은 매주 월·수·금·일요일 밤에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터키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돼 있어 마일리지 연계를 할 수 있다. 대한항공도 매주 수·금·일요일에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 주요 유적지는 입장료를 받는데 보통 10예니터키리라(YTL) 정도 한다. 1YTL은 우리 돈으로 800원 남짓하며 환전은 달러나 유로화로 할 수 있다. 공항 내 환전소보다 그랜드바자 주변 환전소가 조금 더 좋게 쳐준다. 반드시 한 번은 타볼 것을 추천받은 보스포루스 크루즈는 배의 종류나 운행시간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데, 이 역시 10~15YTL이면 한두 시간 유람선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주요 유적지 중 일부는 월요일이나 화요일 휴관을 하니 확인해보고 방문할 것.

이스탄불=글·사진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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