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이 흔히 하는 '중독진담'이 있다. "카프리를 보기 전에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된다." 카프리(capri)는 맥주 브랜드(cafri)가
아니라 섬 이름이다. 카프리는 장화를 닮은 이태리 반도의 발등에 해당하는 나폴리 앞바다에 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
스가 별장을 지어 활용했고 2세 황제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복잡한 정치문제를 세야누스에게 위임하고 10년을 보냈던 지중해의
환상적인 섬이다.
카프리가 국내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관광업계에서마저 폼페이 찍고 소렌토 턴하여 나폴리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명 나폼소다. 이러한 비경이 여행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이제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만만한 여행지가 아니다.
카프리를 가? 말아?
우선 물가가 비싸다. 하룻밤 묵는데 500유로 이하의 호텔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리 돈으로 1백 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배낭여행객들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당일 빠져 나오는 일정을 잡아야 경제적이다.
카프리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나폴리에서 페리를 타고 카프리에 들어가 소렌토로 나오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그 역순이다. 예외로 시칠리아에서 들어가거나 시칠리아로 나오는 방법이 있다. 굳이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변산에서 배를 타고 위도에 들어갔다가 군산으로 나오는 것과 흡사하다.
▲ 베스비오전철 나폴리와 소렌토를 연결하는 순환전철이다 ▲ 타소광장 소렌토에서 제일 큰 광장으로 이 고장 출신 시인 타소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
폼페이에서 소렌토행 경전철을 탔다. 냉방이 되지 않은 전철은 후덥지근했고 이태리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소렌토 행 전철은
베스비오 순환전철로 이태리 남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세미토플리스 차림이고 남자들도
웃통을 벗은 사람이 많다.
소렌토에서 페리를 탔다. 물살을 가르던 배가 바다로 나아갔다. 잔잔한 지중해 바닷물이 유난히 푸르다. 오렌지 나무와 레몬
나무를 뒤로 하고 절벽 위에 지어진 크고 작은 집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나폴리를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라고 한다지만 소렌토가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먼 바다로 나가자 어디에선가 '돌아오라 소렌토' 선율이 들려오는 것 같다. 소렌토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Toma A Surrieto To)의 본고장이다.
▲ 소렌토 항구 바다에는 호화 유람선이 떠있고 해변은 해수욕객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 마리나그란테 카프리의 중심항구다
소렌토라는 지명은 옛 로마인들이 작은 어촌마을이었던 이곳을 수렌툼(Surrentum)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수렌툼은 시레나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레나는 달콤한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전설의 여인이다.
30분 정도 달리던 페리가 카프리 마리나 그란테에 닿았다. 부두에서도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해발 585m 산에 올라 지중해를
조망할 것인지? 인어의 자궁이라 일컬어지는 푸른 동굴 행 티켓을 끊어 작은 배를 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몬테솔라로 결정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단 1인용 리프트가 있는 산중턱까지 가야 한다.
미니버스 푸니쿨라를 탔다. 마주 오는 차가 비켜서기도 어려운 절벽 위의 좁은 골목길을 잡담을 하며 마구 달리던 운전기사가
절벽을 가리키며 "1년에 이곳에서 3~4대의 버스가 추락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절벽이 아스라하다.
오금이 저린다.
▲ 세지오비아 1인용 리프트로서 이용 요금은 11유로다.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게 한 미니버스가 비토리아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서 얼마가지 않아 1인용 리프트 세지오비아를 탔다.
아나카프리 마을을 지나는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꾸며 놓았다. 조금 더 오른 산자락에는 이름 모를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밧줄과 닻을 장식해 놓은 것으로 보아 바다에 나간 남편이나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리프트에서 내려 정상에 올랐다. 어지간해서는 바다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산 정상이다. 동방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해서일까?
코발트빛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일 년 중 3분의 2가 구름이나 안갯속에 갇혀 있다는 몬테솔라로 산
정상이다. 운이 좋았나 보다.
▲ 몬테솔라로 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중해. 쪽빛 바다가 숨이 막힐 것 같다 ▲ 몬테솔라로 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중해. 코발트빛 바다가 숨이 막힐 것 같다
콧속을 드나드는 지중해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앞 뒤로 확 트인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것만 같았다. 쪽빛 바다가
눈부시게 시리다. 바다 위에 유람선과 요트가 떠있다. 6백 미터에 가까운 절벽에서 바라보는 지중해는 가히 절경이었다.
여행자들의 '중독진담'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났다.
지중해는 수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