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곡 2번’
“어떻게 해야 클래식과 친해질 수 있나요?” 당신은 자꾸 그렇게 물어요.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늘상 같지요.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 들으세요. 그러다보면 그 음악의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그 곡은 ‘당신의 클래식’이 된답니다.” 그러면 당신은 또 고개를 갸우뚱해요.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난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천만에요. 당신은 아주 많은 클래식을 알고 있어요. 기분 좋을 때는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선율을 떠올리기도 하지요. 다만 그 곡이 ‘누가’ 작곡한 ‘무슨’ 곡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 곡을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하지요. 당신은 적어도 수십곡의 클래식 음악을 이미 알고 있어요. 또 지금도 계속해서 ‘어떤’ 음악을 만나고 있지요. 때로는 어둑한 영화관에서 가슴 서늘케 하는 선율을 만나고, TV 화면을 스치는 CF 속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을 만나기도 하지요.
오늘 만날 음악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이지요. 최근 몇년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한 클래식은 아마 이 곡이었을 겁니다. 영화 때문이지요. ‘텔미 썸딩’이라는 영화에서 염정아가 심은하에게 들려주던 음악이 바로 이 곡이었어요. ‘번지점프를 하다’(사진)에서는 이병헌과 이은주가 노을을 배경으로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지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지요. 이 엽기적이고 난해한, 게다가 야하기까지 한 영화에서도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세박자의 슬픈 선율을 만날 수 있답니다.
왈츠는 춤곡이지요. 하지만 경쾌한 세박자를 타고 흘러가는 이 곡의 선율은 슬프고 어두워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처럼 요란하고 화려한 비엔나풍이 아니랍니다. 역시 쇼스타코비치답지요. 그는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에서 ‘인민에게 음악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아마도 생태적으로 ‘모더니스트’였던 것 같아요. 내성적인 그는 줄담배를 즐겼고, 표정은 언제나 완고했지요. 그의 음악은 무겁고 어두운 데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아요. 그리고 행간(行間)에는 차가운 유머가 숨어 있지요.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은 국내에 편집음반으로 여러 종 나와 있답니다. 하지만 클래식의 맛에 슬슬 빠지기 시작한 당신에게 권할 만한 음반은 도통 눈에 띄지 않네요. 좀더 본격적인 음반으로 두 종을 권해드릴게요. 하나는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이 러시아 춤곡들을 연주한 ‘Ballets Russes’(EMI)랍니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했고,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합창단이 참여했습니다. 제대로 된 관현악 편성으로 ‘재즈 모음곡 2번’을 들을 수 있지요. 또 하나는 테오도르 쿠차르가 지휘한 우크라이나 국립 심포니의 연주랍니다. ‘Jazz&Ballet Suites’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발매했어요. 국내에도 수입됐답니다. 매끄럽고 세련된 맛은 없지만, 질박함이 오히려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당신의 클래식] 영화 ‘피아니스트’& 쇼팽
그 남자의 이름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입니다. 피아니스트죠. 유대계 폴란드인입니다. 1911년에 태어나서 20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 산 편이지요. 우리 나이로 치자면 아흔까지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죠. 나치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으니까요. 독일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콘서트홀에서 ‘히틀러 만세’를 선창할 때였고,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필하모닉을 지휘해 베토벤의 ‘합창’을 ‘무시무시한 폭풍’처럼 연주할 때였지요.
오늘 당신과 함께 들을 음악은 ‘쇼팽’입니다. 당신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삶을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를 DVD로 보고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지요. 스필만을 연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의 열성팬이 된 당신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곡들의 제목이 뭐냐고 저한테 물었지요.
첫장면을 떠올려보세요. ‘1939년 바르샤바’라는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던 곡. ‘녹턴’(Nocturne)이랍니다. ‘야상곡’이라고도 하지요. 쇼팽은 21개의 야상곡을 썼습니다. 그중 18개가 생전에 발표됐고 나머지는 유작이지요. 당신이 들었던 곡은 유작 가운데 하나인 ‘20번 C샤프 단조’랍니다. 쇼팽의 여러 야상곡 중에서 특히 사랑받는 애틋하고 서정적인 곡이지요. 영화 속에서 스필만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페허의 바르샤바. 아사(餓死) 직전의 스필만은 폭격당한 빈집으로 숨어들지요. 구정물과 감자 두 개로 죽음을 벗어난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주방을 뒤지다가 통조림 깡통을 찾아냅니다. 벽난로 옆에 놓여있던 부삽으로 깡통을 따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그러다가 깡통이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그 자리, 깡통이 멈춘 자리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였지요. “여기서 뭘 하나?” 장교가 묻습니다. “깡통을 따려고…” 스필만은 죽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지요. “무슨 일을 하나?” 교사 출신의 장교가 다시 묻습니다. “저는…” 머뭇거리던 스필만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답하지요. 물끄러미 스필만을 바라보던 장교가 한숨을 푹 내쉽니다.
한겨울입니다. 스필만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젠펠트가 “연주해 봐”라고 말합니다. 굶주림에 두 눈이 퀭한 스필만은 곱은 손가락으로 ‘발라드 1번 G단조’를 연주하지요. 4분의4박자 느린 라르고를 힘겹게 짚어나가던 손가락이 점차 빨라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클라이막스. 오른손의 화려한 아르페지오가 폭발하면서, 스필만은 억눌려왔던 음악가의 열정을 결국 터뜨리고 말지요. 그 다음날부터 호젠펠트는 스필만의 다락방으로 몰래 음식을 나릅니다. 러시아군에 밀려 철수하기 직전, 그는 ‘마지막 빵’을 스필만에게 건네며 외투를 벗어주지요. “전쟁 끝나면 뭘 할 거야?” “연주를 해야죠.” “이름은?” “스필만”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네.”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Best Beloved Chopin’(EMI)입니다. 당신에게 잊지못할 감동을 선사했던 ‘발라드 1번’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야상곡 20번’을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연주합니다. 참,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투병속 걸작 만들어낸 베토벤
얼마전 EBS TV를 통해 방영된 ‘제3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머리카락’(Beethoven’s Hair)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지요. 혹시 보셨나요? 음악가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자주 만드는 래리 와인스타인 감독의 수작(秀作)입니다. 2005년도 작품이지요.
이 다큐멘터리는 후세에 남겨진 베토벤의 머리카락 몇 올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사인(死因)을 밝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의 머리카락에서 일반인보다 100배가 넘는 납성분이 검출된 사실에 주목하지요. 결국 이것이 그를 괴롭혔던 귓병, 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괴팍한 성품도 납중독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짐작하지요.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발견됩니다. 병마와 싸우며 고통에 신음하다 죽어간 베토벤.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곤 했던 그의 머리카락에서, 놀랍게도 모르핀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모르핀, 그것은 진통제랍니다. 그래요. 베토벤은 차라리 육신이 찢기는 듯한 고통과 싸울지언정,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죽는 순간까지 ‘맑은 정신’으로 음악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운명에 맞선 처절한 투쟁이었지요. 1802년부터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살았던 베토벤은 그해 10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써서 두 동생 앞으로 남긴답니다. 하지만 그는 자살하지 않았어요. 세상을 떠난 1827년까지, 적어도 25년이 넘는 세월을 병마와 싸우며 음악을 향한 열정을 남김없이 불태웠지요.
오늘 당신과 들을 음악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이른바 ‘운명’이랍니다. 33세였던 1803년에 머릿속에 악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1807년 본격적으로 작곡에 돌입해 이듬해에 완성했지요. 귓병이 악화돼 청각을 잃기 시작하던 시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의 병이 깊어지면서 불멸의 음악이 태어난 것이지요. 그의 걸작들은 대부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의 곡들이랍니다.
누구나 이 음악을 알고 있어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클래식일 겁니다. ‘딴딴딴 따’하는 시작부, 소위 ‘운명의 동기’라고 말하는 첫 주제를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지요. 하지만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온전히 들으면서 감동에 젖어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답니다.
교향곡 역사에서 이처럼 격렬하게 문을 여는 1악장은 드물어요. 오케스트라 총주(總奏)가 운명의 동기를 1주제로 제시하고, 이어서 호른과 바이올린이 2주제를 노래하지요. 긴장감 넘치는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은 부드럽고 어둡게 흘러갑니다. 이를테면 ‘긴장’과 ‘이완’인 셈이지요. 3악장에선 한층 더 가라앉다가, 마침내 4악장에서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지요. 마치 고통을 뚫고 솟아오른 햇살처럼, 뜨거운 환희가 울려퍼집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말했지요? 같은 곡을 반복해 들으면서 그 곡의 ‘구조’를 느껴보라고요. 특히 베토벤 ‘5번’은 구조의 미학이 탄탄한 걸작입니다. 2년 전 타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1974년 빈필하모닉을 지휘했던 녹음을 권합니다. 70년대 최고의 명연으로 꼽히지요.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영화 ‘사랑도…’와 베르디 ‘운명의 힘’
최근에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Combien tu m’aimes?)라는 프랑스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터넷 영화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서울과 수도권 인근을 통털어 경기도 부천에 있는 영화관 두 곳에서만 상영하더군요. 국내의 620개가 넘는 스크린을 ‘괴물’이 장악했답니다. ‘한반도’ 역시 25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지요. ‘괴물’에 치이고 ‘한반도’에 받힌 영화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였습니다. 결국 ‘사랑도…’를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대한민국에는 보고싶은 영화를 선택할 ‘자유’가 거의 없더군요.
모니카 벨루치의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안달이 났다구요? 뭐, 전혀 관심 없는 건 아니지만, 꼭 그것 때문에 이 영화가 ‘땡긴’ 것은 아니랍니다. 물론 이 영화가 ‘남자들의 욕망’을 건드리면서, 그것을 대리 충족시켜주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요. 남자주인공 프랑스와는 평범한 월급쟁이랍니다. 어느날 홍등가 술집에서 창녀 다니엘라를 만나지요. 그녀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샐러리맨들이 꿈꾸는, 섹시하고 도발적인 여자랍니다. 평범한 월급쟁이의 아내로 살면서 눈가에 주름은 점점 늘어나고 허리 사이즈마저 대책없이 증가하는 ‘마이 와이프’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다니엘라의 섹시함에 넋이 나간 프랑스와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고 ‘뻥’을 칩니다. 한달에 10만 유로씩 줄테니, 당첨금 400만 유로가 바닥날 때까지 같이 살자고 제안하지요. 물론 다니엘라는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영화랍니다. 평범한 남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프랑스식 코믹터치로 그려나가는,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인 셈이지요. 더 애기하다간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다만 한가지, 프랑스와가 다니엘라와 꿈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납니다. “다니엘라는 내 여자”라고 주장하는 암흑가의 보스, 샤를리입니다. 작년에 은퇴설을 흘렸던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샤를리로 등장하지요. 바야흐로 삼각관계의 시작입니다.
‘사랑도…’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음악 때문이었지요.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1980년대 중반에, ‘마농의 샘’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적이 있답니다. 영화의 줄거리와 음악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던 수작(秀作)이지요. 이 영화에서 시종일관 흘러나오던 아름답고 비극적인 선율.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의 서곡이었습니다. 원래 관현악 편성으로 작곡된 곡을 하모니커 한 대로 연주하지요. 불행한 곱추 ‘장’으로 분한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하모니커를 불다가, 그가 죽은 후 홀로 남은 딸 마농이 하모니커를 물려받습니다.
‘마농의 샘’은 무거운 비극입니다. 하지만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늙으막에 출연한 ‘사랑도…’는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발랄한 영화인 듯합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도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이 가벼운 영화의 이곳저곳에 오페라 아리아들을 적절하게 깔아놓습니다. 베르디, 푸치니, 벨리니 등이 작곡한 아리아들이 거의 10분 간격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도 베르디의 ‘운명의 힘’을 만날 수 있지요. 2막에 나오는 ‘성모님, 자비로우신 성모님’이라는 아리아입니다. 격렬한 감정을 토해놓는, 드라마틱한 곡이지요. OST에서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노래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꿈 속의 고향’(Going Home)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나요? 꿈 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다,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좇아서 즐기었건만…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배웠던 노랩니다. 음악 선생님은 마치 두고온 고향을 떠올리기라도 하듯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이 노래를 부르셨지요. 당신이 만약 40대 이상이라면 이 노래가 기억에 생생할 겁니다. 30대라면 형이나 누나가 부르는 것을 적어도 한두번쯤은 들어봤겠지요.
향수에 젖은 듯한 이 아름다운 선율은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E단조’에 등장합니다. 흔히 ‘신세계 교향곡’이라고 얘기하지요. 부제(副題)를 좀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독일어로 ‘Aus der Neuen Welt’, 즉 ‘신세계로부터’라고 옮겨야 옳습니다. ‘꿈 속의 고향’은 두번째 악장에서 흘러나오지요. 6마디의 서주가 끝난 후 잉글리쉬 호른이 이 애틋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드보르작의 제자인 미국인 피셔가 스승이 작곡한 멜로디에 가사를 입혀서 미국인들의 애창곡이 되었지요. 까까머리 시절에 이 노래를 배웠던 것은 미국의 노래가 우리나라 음악 교과서에 유난히 많이 수록됐던 탓이기도 합니다.
체코의 드보르작(1841~1904)이 미국으로 떠난 것은 51세였던 1892년이었습니다. 미국의 내셔널음악원 학장으로 초빙됐던 것이지요. 드보르작은 뉴욕 동부의 방 다섯 개짜리 아파트에서 교향곡 9번을 작곡했습니다. 당시의 그는 미국의 민속음악, 특히 흑인음악에 적잖이 심취했던 모양입니다. 내셔널음악원 학생이었던 바리톤 H.T. 벌레이가 드보르작의 집에 들러 흑인영가를 불러주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연유에서일까요. 93년 12월 뉴욕필하모닉가 카네기홀에서 초연했던 교향곡 9번에는 흑인음악의 이디엄들이 곳곳에 담겨 있지요. 특히 드보르작은 ‘Swing Low Swing Charriot’라는 흑인영가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귀가 밝은 사람들은 1악장에서 플루트로 연주되는 이 곡의 선율을 만날 수 있지요.
1악장은 마치 동이 터오는 듯한 느낌으로 문을 열지요. 첫 주제는 펜타토닉(5음계)와 싱코페이션(당김음)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흑인영가와 가스펠, 블루스, 재즈 등 여러 장르의 흑인음악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음악적 요소들이지요.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은 목가적인 전원시를 연상시키지요. 3악장은 춤곡의 느낌이 강합니다. 4악장도 누구에게나 익숙하지요. 교향곡 9번 전체를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2악장과 4악장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드뭅니다. 현악기의 힘찬 서주에 이어 ‘빰빰빠 빰빠빠’ 하고 터져 나오는 호른과 트럼펫의 주제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지요. 응원가로 연주되는 경우도 잦고, TV의 각종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하는 위풍당당한 선율입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이미 당신에게 익숙합니다. 낯익은 선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덕택에, 지루함 없이 빠져들 수 있는 교향곡이지요. 바츨라프 노이만이 체코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을 필청음반으로 꼽고 싶습니다. 1981년 녹음, 체코의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나왔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타계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필하모니아를 지휘해 연주한 EMI의 음반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2장의 CD에 7, 8, 9번을 모두 수록했습니다. 중저가 음반이지만, 속은 꽉 찼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톨스토이와 ‘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소설이 있지요. 포즈드니셰프라는 남자가 기차에서 만난 ‘나’에게 아내를 살해한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대사가 아주 많은 데다가 소설이 그닥 길지 않아서, 맘 먹고 손에 잡으면 금세 읽을 수 있는 중편(中篇)이지요.
남편과 다툼이 잦았던 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사랑에 빠집니다. 질투심에 눈 먼 남편은 결국 아내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말지요.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마음이 흔들렸던 아내, 그녀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답니다. 어느날 트루하체프스키와 파티장에서 함께 연주를 하지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를 연주합니다.
톨스토이는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답니다. 그런데 그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소설 속에서 포즈드니셰프의 입을 빌려 이 곡을 비난합니다. “이 소나타, 끔찍합니다. 음악이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말은 거짓이라구요! 이게 어디 숙녀들이 앉아 있는 응접실에서 연주할 곡입니까?”
원문에선 더 장황하지만 분량을 조금 줄였습니다. 어쨌든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를 ‘위험한 음악’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사람을 흥분시키고, 불륜을 부추기는 타락한 예술쯤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 소설은 톨스토이가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시기, 그의 나이 61세였던 1889년에 썼던 작품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겠네요. 어쨌든 톨스토이의 소설 탓에, ‘크로이처 소나타’는 ‘불륜 남녀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음악’, ‘치명적인 사랑을 부추기는 음악’ 등의 수식어를 얻게 됐지요. 어떠세요? 갑자기 이 음악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베토벤은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답니다. 그중 9번 ‘크로이처’는 5번 ‘봄’과 더불어 가장 사랑받는 곡이지요. 이 곡은 시작부터 격렬한 낭만성으로 들끓어요. 가슴을 온통 진동시키는 느낌으로 문을 엽니다. 간간이 온화한 선율이 섞이기도 하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유령처럼 떠돌지요. 반면에 2악장은 우아합니다. 특히 피아노 반주에 실린 두번째 변주, 32분음표로 쪼개지는 선율은 온몸의 솜털이 일어설 듯한 감흥을 전해줍니다.
마지막 3악장도 서주부터 격렬하지요. 톨스토이적으로 묘사하자면, 치명적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브레이크 없는 차를 타고 질주하는 격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추락하는 느낌으로 끝나지요. 그래요. ‘마지막’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마지막도 오래도록 쌓인 필연의 결과겠지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과 협연한 음반(필립스, 1962)이 오래 사랑받은 수작(秀作)입니다. 오이스트라흐는 이 곡의 격렬한 낭만성을 두툼하고 에너지 넘치는 연주로 녹여내지요. 이자크 펄만과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협연한 음반(EMI, 1998)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바이올린보다 피아노가 더욱 열정적으로 연주를 이끌지요. 또 하나 권해드릴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요지프 시케티와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1944년 실황입니다. ‘뱅가드 클래식스’에서 발매된 이 음반에선 지글거리는 잡음이 좀 들려오지요. 하지만 60여년의 세월을 건너온, 또 다른 음악적 열락(悅樂)을 전해줍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4장의 CD에 수록했는데요,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없이 선택할 만합니다.
[당신의 클래식] 모래시계&파가니니 소나타 12번
이번 주에 ‘해변의 여인’이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고현정이 ‘문숙’ 역으로 등장하지요. 그녀의 출연작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를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옛날이네요. ‘모래시계’의 ‘혜린’과 ‘해변의 여인’의 ‘문숙’ 사이에는 11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청순했던 고현정이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지요. 이제 그녀는 삶의 무게가 녹아있는 연기를 펼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냉정한 ‘시험대’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시청률 64%를 넘기며 ‘귀가시계’로 불렸던 ‘모래시계’. 이제 추억 속에 아스라한 이 드라마는 고현정을 명실상부한 스타로 만들었지요. 동해안 정동진역에 그녀의 이름을 딴 ‘고현정 소나무’까지 생겼고, 음반가게에서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격동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던 태수(최민수)와 혜린의 러브스토리. 두 사람의 이별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던 바이올린 선율은 바로 파가니니의 음악이었지요.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였지요.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교, 사람들에게 좀체 드러내지 않았던 사생활 등으로 인해 숱한 소문을 낳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느니, 사탄의 아들이라느니…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대부분 부패한 교회에서 흘러나왔음직한 음해성 루머들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바이올린 비르투오조의 ‘전설’로 남아있는 파가니니. 그의 음악들은 진지하거나 철학적이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답게, 노래하는 듯한 느낌으로 충만한 바이올린 명곡들을 여럿 남겼지요. 그가 그려낸 멜로디 라인은 선명하고 밝습니다. 바이올린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는 현란한 프레이징도 적지 않지요. ‘모래시계’의 주제가 격이었던 ‘혜린의 테마’도 그렇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E단조’입니다. 어떤 음반에서는 이 곡을 소나타 12번이라고 표기하지요. 또 다른 음반에서는 소나타 6번으로 적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 맞냐구요? 둘 다 맞답니다. 작품2에서 이미 6곡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를 썼기 때문에 ‘6번’과 ‘12번’이 혼용되는 것이지요. 대개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와 동행하기 마련인데, 이 곡은 기타를 파트너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파가니니가 사랑했던 여인이 기타를 좋아했답니다. 파가니니는 그 여인을 위해 기타를 열심히 연습했고, 기타곡을 100곡이 넘게 만들기도 했지요. 그래서 추측해봅니다. 아마 이 곡에도 그 여인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배경으로 깔려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지요.
‘모래시계’ 열풍과 함께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던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35)의 연주였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나왔지요.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의 음색은 따뜻하면서도 매끄럽습니다. 기타리스트 외란 쇨셔와 함께 연주하는 이 음반은 녹음도 정교하고 맑지요.
하지만 너무 선명한 음질 때문에 오히려 안 좋아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사라장(장영주)이 99년 EMI에서 내놓은 ‘Sweet Sorrow’입니다. 이제 막 클래식에 눈떠가는 당신, 바이올린의 맛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면 이 음반만큼 적절한 게 없습니다. 파가니니 외에도 비탈리의 ‘샤콘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의 2악장 등, 그야말로 당신을 위한 선곡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벌거벗은 소녀는 ‘죽음’을 꼭 끌어안고 있습니다. 필사적인 포옹입니다. 살짝 열린 소녀의 입술이, 검은 나신(裸身)의 죽음에게 키스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뭉크(1863~1944)의 ‘죽음과 소녀’라는 그림이지요. 생사(生死)에 대한 시니컬한 응시, 관능과 공포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죽음’이란 대개 노인의 것이지요. ‘소녀’가 죽음의 골짜기에 당도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종종 죽음과 소녀를 결부시키지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1740~1815)라는 독일의 서정시인이 있습니다. 그도 ‘죽음과 소녀’라는 시를 남겼지요. 그러나 그 소녀는 뭉크의 그림처럼 죽음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가세요. 아, 지나가세요. 무서운 죽음이여! 제발 나를 만지지 마세요’라며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지요. 하지만 죽음은 소녀를 내버려둘 태세가 아닙니다. ‘네 손을 다오.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녀여! 편안해지거라. 내 품에서 편히 잠들거라’라며 소녀의 손목을 움켜쥐려 하지요.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뭉크의 그림과 클라우디우스의 시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슈베르트(1797~1828)의 현악4중주곡 ‘죽음과 소녀’를 듣기 위해서지요.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답게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여 ‘죽음과 소녀’라는 가곡을 썼습니다. 이 가곡을 모티브 삼아 현악4중주곡을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였던 1826년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지요.
당시의 그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그야말로 거지처럼 살았지요. 156㎝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를 한 이 착하고 여린 남자는, 친구와 맥주를 무엇보다 좋아했던 낭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번듯한 작업을 한번도 갖지 못했어요. 집이나 재산이 있을 턱이 없었죠. 심지어 피아노조차 갖고 있지 못해서,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곤 했답니다.
슈베르트는 현악4중주곡을 15곡이나 남겼지요. ‘죽음과 소녀’라는 부제를 가진 ‘14번 D단조’는, 죽음을 눈앞에 둔 슈베르트가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소녀’처럼 발버둥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처럼, 강렬한 ‘동기’를 제시하면서 문을 열지요. ‘빠~암 빰빰바~’ 하는 이 동기는 1악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죽음과의 투쟁’을 형상화합니다. 1악장의 마지막에서는 마치 삶을 체념한 것처럼 선율이 잦아들지요.
곧바로 이어지는 2악장은 장송곡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얹힌 바이올린 선율은 슬프기 그지없지요. 두번째 변주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위치를 바꿉니다. 바이올린이 뒤로 빠지고 첼로가 앞으로 나서면서 또 한번 슬픈 선율을 ‘노래’하지요. 바로 이 2악장이 가곡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차용하고 있어서, 이 현악4중주곡은 동명(同名)의 부제를 갖게 되었답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 악장답게 템포가 빠르지요. 드디어 ‘죽음과의 무도회’를 시작하려나 봅니다. 4악장은 아예 타란텔라 풍의 춤곡이지요. 격렬하게 몰아치는 리듬 속에서, 자꾸 뭉크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이 마지막 악장은 2주 전에 당신에게 들려줬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의 마지막과 흡사하지요. 기억나나요? 질주하다가 추락하는 느낌. ‘죽음과 소녀’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EMI에서 라이선스로 발매한,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의 연주를 필청음반으로 권합니다. 흔히 ‘송어’라고 부르는 ‘피아노5중주 A장조’도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어느새 가을이네요. 영화 ‘샤인’에서 미친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라흐…, 세르지 라흐”라며 영어식으로 더듬더듬 발음하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생각납니다. 그래요, 가을은 그의 음악을 듣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러시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지요. 지휘도 했습니다. 팔방미인이었어요. 게다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지요. 크게 쌍꺼풀 진 눈에 이마가 시원합니다. 하지만 얼굴 중앙에 큼직하게 솟은 매부리코가 그의 인상을 왠지 딱딱하게 보이게 하지요. 어쨌든 인상적인 외모입니다. 게다가 몸집도 건장했지요. 손도 큼직하고, 손가락도 남들보다 훨씬 깁니다.
이런 ‘외형’적 특성은 그의 음악에도 일정한 특징을 형성하지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아주 넓게 사용하는 규모의 호방함, 또 피아니스트들을 자주 괴롭히는 어려운 테크닉 등이지요. 특히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4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난곡(難曲)으로 꼽히는 데다, 연주시간이 45분이 넘는 대곡(大曲)입니다. 영화 ‘샤인’은 데이비드 헬프갓이 바로 이 곡을 연주하다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설정하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곡은 ‘3번’이 아닌 ‘2번’입니다. 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미 당신에게 아주 익숙한 곡이기 때문이지요. 특히 2악장의 감미롭고 슬픈 아다지오 선율은 그동안 숱한 영화 속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했지요. 재즈와 대중음악에서도 종종 차용하는 선율입니다. 듣는 순간에 곧바로, ‘달콤한 슬픔’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지요. 그야말로 가을의 우수(憂愁)를 전해주는 음악입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품고 있는 서정과 슬픔은 신경증적 불안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게 하지요. 이 자의식 강한 매부리코의 작곡가는 ‘2번’을 완성하기 몇해 전부터 심각한 신경쇠약에 시달렸습니다. 1897년 발표한 ‘교향곡 1번’이 심한 혹평을 받았던 탓이지요. 작곡가로서 자신감을 잃었던 그는 꽤 오랫동안 정신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만난 구세주가 니콜라이 다알 박사였지요.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도움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병에서 벗어났고, 이듬해인 1901년에 ‘2번’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이 곡을 다알 박사에게 헌정했지요.
이 곡은 1악장 도입부터 매혹적입니다. 피아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조화가 아름답지요. 느린 2악장의 슬픔과 서정이 잦아들고나면, 3악장에서 다시 웅장한 규모와 파토스적 격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격정과 파워마저도 왠지 처연하게 들려오는 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2번’이지요.
이번 가을에는 라흐마니노프 2번의 ‘가요적 통속성’에 한번 빠져보세요. 현란한 건반의 울림, 짜릿한 테크닉도 ‘별미’로 맛볼 수 있습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1959년에 녹음했던 음반이 오랫동안 명반으로 꼽혀왔지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연주도 80년대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젊은 거장’ 소리를 듣는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한 녹음(2005, EMI)입니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했네요. 참, 데이비드 헬프갓이 연주한 음반은 워낙 ‘특이해서’, 당신에게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클래식]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98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논장’이라는 서점이 있었지요. 4평 남짓했던 이 작은 책방에는 ‘불온한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끔씩 경찰들이 들이닥쳐 그 책들을 압수해가곤 했지요. 하지만 ‘추억’은 때때로 역설적인가 봅니다. 가끔 그 시절의 ‘논장’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책을 뒤적이던 젊은이들의 온기가 가득했던 공간. 저 역시 그곳에서 하릴없이 책장을 넘기며 친구를 기다리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쇼스타코비치’를 만났습니다. 녹음 테이프였지요. 스무개 정도 되는 녹음 테이프가 카운터 옆에 쌓여 있었습니다. ‘교향곡 5번 D단조’였지요.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아직 건재하던 그 시절에, 20대 청년의 눈에 가장 먼저 빨려들어온 단어는 ‘혁명’이라는 부제(副題)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테이프가 다 닳아서 더이상 돌아가지 않을 때까지 ‘혁명’을 듣고 또 들었지요. ‘빠암~ 빠밤’ 하면서 고음과 저음의 현(絃)이 대구처럼 펼쳐지는 1악장 시작부터, 왠지 가슴 두근거리는 감흥을 느끼곤 했습니다. 음악이란 그렇게, 개인적 체험과 상상력으로 재구성되는 ‘시간예술’이지요. 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일본 도쿄의 메이지대학 앞에 있는 레코드점에서 이 곡을 CD로 구했습니다.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연주였지요.
사실 ‘혁명’이라는 부제 자체도 쇼스타코비치가 붙인 것은 아닙니다. 즉 표제음악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정작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곡의 주제는 인간성의 확립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적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나는 그 중심에 서서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에 대해 생각했다. 피날레에서는 이제까지 등장한 모든 악장의 비극적 긴박함을 해결하고, 밝은 인생관과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상통하지요. 한 인간의 역경과 고뇌, 이를 극복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전개되는 환희와 승리의 피날레는 베토벤 5번을 고스란히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피날레가 하늘이 환하게 열리는 듯한 느낌인 것에 비해, 쇼스타코비치의 4악장은 여전히 절망의 늪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지요. 1936년은 쇼스타코비치가 정치적 ‘벼랑’ 끝에 서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해 혹평을 퍼붓고 있었지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이 혹평은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1936년 1월28일, 나는 프라우다를 사러 역에 나갔다. 신문을 넘기다보니 ‘음악이 아니라 황당무계’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구절을 영원히 가슴 속에 새겼다. 이것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구절이 될 것이다.”
이 내성적인 작곡가는 37년에 교향곡 5번의 작곡에 돌입, 그해 가을에 곧바로 완성합니다. 아주 빠른 속도였지요. 또 그는 이 곡에 대해 ‘당국의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이라고 스스로 언급합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적으로 복권되지요.
마지막 4악장의 다소 허풍 섞인 팡파레를 들을 때마다 ‘인간’ 쇼스타코비치가 받았을 상처와 스트레스, 혹은 불안감이 떠오릅니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15년에 걸쳐 연주해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EMI)을 권하고 싶네요. 모두 10장으로 구성됐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합니다. 지휘자 얀손스의 ‘작가주의적 열정’이 가득한 컬렉터 아이템입니다.
Mravinsky conducts the Leningrad Philharmonic (4악장)
[당신의 클래식] 비발디 ‘사계’
당신이 가장 먼저 들었던 협주곡은 아마 이 곡이었을 겁니다. 이탈리아의 열정과 생동감이 넘치는 음악. 작곡된 지 어언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가운데 하나지요. 클래식을 거의 듣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 곡을 모르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묘사하고 있는, 비발디의 ‘사계’라는 곡이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재로 삼은 음악은 많습니다. 하이든은 오라토리오 ‘사계’를 남겼고, 차이코프스키의 낭만적인 피아노곡 중에도 ‘사계’가 있지요.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발레음악 중에도 ‘사계’가 있습니다. 좀더 현대 쪽으로 내려오면 아르헨티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계’ 중에서도 비발디의 ‘사계’야말로 최고의 인기곡이지요.
독일에서 바하가 활약했던 시절, 이른바 바로크 시대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렐리, 비발디, 타르티니 같은 작곡가들이 창작에 매달리고 있었지요. 바하가 건반을 위한 명곡을 여럿 남긴 것에 비해, 당시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주로 현악기를 위한 곡을 많이 썼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대체로 화사하고 밝습니다. 우아한 선율과 풍부한 양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곡들이 많지요. 역시 지중해에 발을 담고 있는 이탈리아 음악답습니다.
비발디는 ‘작품 8’이라는 번호를 붙여 1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지요. 이중에서 1곡부터 4곡까지를 ‘사계’라고 부릅니다. 각각 3악장으로 이뤄져 있지요.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3악장에서 다시 빨라집니다. 음악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성이지요. 게다가 비발디는 친절하게도 각 곡의 첫머리에 계절을 묘사하는 ‘소네토’(14행의 짧은 시)를 일일이 붙였습니다. 곡의 중간에도 이 소네토가 들어가 있지요.
그래서 ‘사계’는 작곡가가 제목을 붙인, 표제음악인 셈이지요. 또 이 곡은 묘사음악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선율과 화성으로 그려낸 풍경화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1곡 ‘봄’. 새들이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면서 1악장이 시작됩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다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지요. 느리고 평화로운 2악장에서는 구름이 걷히고 푸른 목장에서 목동들이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습니다. 3악장에서는 아름다운 요정이 나타나 양치기의 피리에 맞춰 춤을 추지요.
세번째 곡 ‘가을’도 인기가 많습니다. 1악장에서 수확의 기쁨에 취한 농부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네요. 아주 흥겨운 분위기입니다. 느린 2악장은 서늘한 가을밤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지요. 잔치를 끝낸 마을사람들이 조용히 잠자리에 듭니다. 3악장은 동트는 새벽이지요. 총과 뿔피리를 챙겨들고 개를 끌고 사냥터로 떠난 사람들이 짐승의 뒤쫓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칼 뮌힝거가 지휘하는 슈투트가르트 챔버오케스트라의 1950년대 녹음이 명반으로 손꼽힙니다. 한국에서는 이탈리아의 실내악단 이무지치의 연주가 인기음반이었지요. 바이올린 연주자 파비오 비욘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는 속도감 넘치는 공격적인 ‘사계’를 녹음했습니다. 다들 나름의 개성을 품고 있지요. 하지만 오늘 권하고 싶은 음반은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사계’입니다. 현대악기와 원전악기를 오가는 탁월한 연주자. 그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는 귀와 가슴을 짜릿하게 흥분시키지요. 디지털 시대의 명반으로 꼽히는 수작(秀作)입니다.
[당신의 클래식]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크스키(사진)가 34세 때의 일입니다. 가까운 친구였던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1834~1873)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소르크스키보다 다섯 살 많았던 친구였지요. 39세의 아까운 나이에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소르크스키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지요.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나 개, 쥐 같은 동물들도 살아 있는데, 하르트만이 죽다니!”
이듬해에 친구들의 주선으로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수채화와 건축 설계도 등 약 400점의 작품이 전시됐다고 합니다. 물론 무소르크스키도 이 전시회에 다녀왔지요. 당시의 그는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의 대하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해 막 초연을 끝냈을 때였습니다. 연주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을 써냈던 무소르크스키가 곧바로 작곡에 돌입한 작품은 의외로 규모가 아담한 곡이었지요. 바로 친구의 유작 전시회에 다녀온 직후 작곡을 결심한 ‘전람회의 그림’이었습니다.
무소르크스키는 친구의 유작 가운데 10작품을 음악으로 옮겨놓지요. 따라서 이 곡은 묘사음악으로서의 성격이 짙습니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은 곡의 사이 사이에 서주와 간주의 성격을 갖는 ‘프롬나드’를 배치하고 있는 점이지요. 프롬나드(Promenade)라는 것은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를 뜻합니다. 옛날 우리 선비들이 시를 조용히 읊조리면서 천천히 걷는 것을 미음완보(微吟緩步)라고 했지요. 프롬나드라는 것은 바로 ‘완보’라는 뜻입니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무소르크스키는 전시회장에 들어선 관람객의 느릿한 발걸음을 함께 묘사하면서, 단순히 그림을 음악으로 옮겨놓는 것 이상의 ‘입체적 공간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 다시 말해 관찰자의 주관성까지 아울러 묘사하면서 음악적 울림이 한층 커지는 것이지요.
첫번째 프롬나드는 소박하면서도 힘찬 건반의 울림으로 전시회장에 들어선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어서 뒤뚱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과 서글픈 비애가 어우러지는 1곡 ‘난장이’(Gnomus)가 흘러나오지요. 그리고 또 한번의 프롬나드. 이번에는 첫번째보다 좀더 부드럽고 느긋합니다. 이어지는 2곡 ‘고성’(古城)은 ‘전람회의 그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지요. 하르트만이 그린,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 밑에서 음유시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10곡 중에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곡은 마지막으로 연주되는 ‘키에프의 대문’이지요. 당시 키에프시는 도심에 웅장한 문(門)을 건설할 예정이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화가 하르트만은 이 대문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겨놓았지요. 러시아식의 둥근 지붕과 뾰족한 첨탑, 말을 타고 성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무소르크스키가 ‘전람회의 그림’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듯이 작곡한 ‘키에프의 대문’은 러시아적 선율미와 웅혼한 기백이 넘치는 스펙터클이지요. 특히 이 곡은 피아노 독주보다는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편성으로 들을 때 그 감흥이 배가됩니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한 좋은 음반들은 아주 많습니다. 굳이 한두 개를 골라야 한다면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1976, DG), 첼리비다케가 뮌헨 필하모니를 지휘한 실황(1993·94, EMI)을 권하고 싶네요.
[당신의 클래식]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
때는 2054년, 장소는 미국 워싱턴 D.C.입니다. 수조 같은 공간에 3명의 예지자들이 둥둥 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무당이지요. 마치 시신처럼 물 위에 떠 있는 그들의 뇌는 범죄예방수사국의 화상모니터에 연결돼 있습니다. 무당이 앞날을 예언하는 것처럼, 3명의 예지자들도 앞으로 일어날 살인을 예고하지요. 범죄예방수사국의 존 앤더톤 팀장(톰 크루즈)은 모니터에 떠오른 핏빛 이미지 조각들을 분석해 살인이 일어날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2002년에 만든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이지요. 50년 후를 상상하는 이 영화에서, 살인은 예고될 뿐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래의 살인범들’은 범죄예방수사국의 요원들에게 체포돼 감옥에 갇히고 죽을 뻔한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아가지요.
하지만 이 설정은 아주 위험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지자들의 예고가 틀렸을 경우입니다. 예지자들은 모두 세 명.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다른 의견을 내놨을 경우, 그 ‘소수의 예고’는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이지요.
범죄예방수사국의 수사실. 존 앤더톤이 엽기적 장면으로 가득한 살인화상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정말 뜻밖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 바이올린과 목관이 어우러지는 그 낭만적인 선율이,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살인현장의 엽기적 이미지들과 겹칩니다.
황당했지요. 왜 하필이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슈베르트의 음악을 저런 영화에 끌어들였을까. 스필버그의 취향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앤더톤이 영상을 분석해 범죄현장을 찾아낼 때마다, 심지어 앤더톤이 직접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예언을 맞대면하는 순간에도 이 선율을 계속 깔아놓습니다. 게다가 수조에 떠 있는 예지자들을 관리·감독하는 앤더톤의 부하직원쯤 되는 인물은,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시니’를 오르간으로 직접 연주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니지요. 아들을 잃은 앤더톤이 가족들과의 즐거운 한때를 추억하는 장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이 흘러나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단순한 미래영화가 아니더군요. 그것은 사심(私心) 많은 권력자가 ‘과학기술’을 장악했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경고하는, 나름의 메시지를 갖춘 영화였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은 예지자들이 보내주는 살인영상의 불완전함, 혹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기계적 세계관이 결국 비극을 낳고 말 거라는 복선으로 읽혀집니다.
1악장은 베이스와 첼로의 장엄한 서주로 문을 열지요. 이어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선율에,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함께 어울리지요. 약간 우울하면서, 동시에 감미로운 낭만성으로 가득한 선율이지요.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도 이 선율이 자주 흐릅니다. 이어서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짧은 16분음표를 배경으로, 어떤 비극성 같은 것이 점점 부풀어오르지요. 그 비극성은 1악장 종결부에서 마침내 폭발합니다.
반면에 2악장은 고요하지요. 마치 꿈결에서 듣는 듯한 목가풍 선율입니다. 이 부드러운 선율과 함께 내면의 고뇌를 상징하는 듯한 무거운 선율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지요. 그래서 ‘미완성’은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뉴욕필하모니, 혹은 카를 뵘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라면 더 이상의 선택은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의 클래식]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한니발 랙터라는 인물이 기억나시나요?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였지요. 차갑고 이성적이며,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마를 완벽하게 연기해낸 앤소니 홉킨스의 명연(名演)을 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랙터가 탈출하는 장면, 교도관의 얼굴을 늑대처럼 물어뜯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패는 순간에,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오지요. 정말 기발하고 독특한 ‘조합’입니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필라델피아’라는 휴먼스토리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지만, 컬트영화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온 감독입니다. 엽기적 살인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나로 묶어낸 것은 역시 그다운 발상이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하나의 주제(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뤄진 음악입니다. 원래는 피아노의 원조격인 클라비어코드를 위한 음악이었지요. 요즘엔 피아노로 많이 연주됩니다. 가끔 현악3중주로 편곡되기도 하지요.
‘양들의 침묵’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은 첫곡 아리아입니다. 명상적 분위기가 가득 담긴 단순한 선율이지요. 보통 사람으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상성격자 랙터에게, 살인은 어쩌면 ‘경건한 명상’이었던 모양입니다. 1991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상에서 5개 부문을 석권했지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영화가 있어요. 이 영화도 잊을 수 없는 수작(秀作)입니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이지요.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양들의 침묵’과 달리 이 영화는 가슴이 아릿하게 젖어옵니다. 2차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사하라의 모래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사랑 이야기. ‘불륜’이라는 단어로 욕할 수 없는 사랑의 진실 때문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영화입니다. 이탈리아의 낡은 수도원에서 한나(줄리엣 비노쉬)가 먼지 쌓인 피아노로 연주하던 음악, 그 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지요. 아리아와 첫번째 변주가 낡은 피아노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음악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바흐는 50세가 좀 넘은 나이에 이 곡을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당시 드레스덴에 주재했던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이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소 그의 신세를 많이 졌던 바흐가 ‘수면용 음악’으로 작곡해서 선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는 알 수가 없지요.
첫곡 아리아와 25번째 변주 같은 곡들은 잠을 청하는 데 꽤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잠을 깨우는 곡들도 적지 않지요. 특히 글렌 굴드가 피아노로 연주한 버전들은 지나치게 뚱땅거리는 느낌이 강해서 살포시 찾아온 잠마저 달아날 지경입니다.
굴드의 연주의 폄훼할 뜻은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개성넘치는 연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새 장을 열었던 피아노의 귀재였지요. 음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뽑아올리는 듯한 터치와 강렬한 리듬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55년의 첫번째 녹음, 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었던 81년의 마지막 녹음도 연주가 빼어납니다. 반도 란도프스카 여사가 쳄발로를 연주한 음반은 역사적 권위를 인정받은 명반이지만, 1945년 모노 녹음이지요. 이제 막 클래식에 눈 뜨는 당신에겐 조금 벅찹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정격연주도 마찬가지이지요. 최근에 제가 들어본 음반 가운데, ‘가에데 트리오’의 음반을 권합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현악3중주 편성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네요. 현악기의 울림이 아름답고 풍성합니다. 음질도 훌륭하네요. 독일의 ‘TACET’ 레이블에서 발매, 국내의 알레스뮤직에서 수입합니다.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소리없이 그려낸 고난의 심포니-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잠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당신 생각뿐이오. 내 불멸의 연인이여.’
베토벤이 죽었습니다. 1827년의 일입니다.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은 그의 장례식으로 시작하지요. 베토벤이 남겨놓은 유품 속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이, 어떤 여인을 ‘불멸’이라 칭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넘긴다는 편지였지요. 베토벤의 친구였던 안톤 쉰들러가 편지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여인의 존재를 찾아 나섭니다.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허구’라는 점이지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베토벤의 연애사건들과 괴팍한 성격들은 상당히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거짓부렁’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적어도 이 영화는 베토벤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형극(荊棘)의 삶을 살았다는 ‘진실’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도 그려내고 있듯이, 그 형극의 정점에 교향곡 9번 ‘합창’이 우뚝 서 있습니다.
줄거리를 좀더 따라가 볼까요. 쉰들러는 베토벤과 사랑을 나눴던 여인들을 하나하나 만납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불멸의 여인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지요. 베토벤은 도대체 어떤 여인을 가슴속에 묻어놓고 평생 사랑했던 것일까요?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집니다. 베토벤은 죽은 동생의 아들, 즉 조카인 칼을 애지중지 아끼지요. 동생이 죽자 법적 후견인이 되어 자신이 직접 키웁니다. 게다가 어린 칼을 ‘위대한 음악가’로 만들려고 애를 쓰지요. 이 과정에서 베토벤이 보여주는 광기어린 집착, 그것은 조카에 대한 일반적인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화는 결국, 칼이 베토벤의 실제 아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베토벤이 잊지 못했던 그 여인은 바로 동생인 카스퍼의 아내 조안나였다는 것이지요. 이 허구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베토벤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국엔 그의 동생과 결혼하는 ‘비극의 주인공’ 조안나를 상당히 부각시킵니다.
베토벤이 동생의 아이를 직접 키운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칼이 베토벤의 진짜 아들이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베토벤은 1817년부터 인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합창’을 구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토벤에게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이듬해부터 귀는 아예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카인 칼은 불량소년이 되어갔고, 행실이 좋지 않았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 칼의 생모와 양육권을 둘러싼 법정공방까지 벌여야 했지요. 게다가 당시 빈의 음악계는 베토벤의 음악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너무 심오하고 무거웠던 탓이지요. 이 화려한 감각의 도시는 좀더 발랄한 음악을 원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베토벤이 지지했던 공화주의가 위축되고, 메테르니히가 집권해 보수반동이 득세했습니다.
교향곡 9번 ‘합창’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1824년 5월7일, 빈의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이 곡이 초연됐을 때, 베토벤도 바로 그 무대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 없던 그는 허공에 대고 지휘봉을 휘저었을 뿐이었지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 움라우후의 지휘봉을 보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열광의 파도가 휘몰아칠 때, 누군가 객석을 향해 베토벤을 돌려세우지요.
마에스트로, 보입니까? 정말 엄청난 환호였지요. 이 역사적 감동은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1951년 푸르트뱅글러가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지휘한 녹음이 명반으로 꼽히지요. 오늘은 조지 셀이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한 58년도 녹음을 권합니다. 우리가 아는 조지 셀을 훨씬 뛰어넘는, 당당한 카리스마와 폭풍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좋아하는 사람한테 첼로 연주를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지인들로부터 가끔 그런 식의 질문을 받습니다. 가을이 되면서부터 부쩍 늘었습니다. 저로서는 반가운 일이지요. 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물어오는 ‘당신’의 취향을 정확히 모르는 탓도 있지만, 자칫 잘못 얘기했다가 오해나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광활한 클래식의 바다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밝고 단순하다든가, 말러 음악은 어렵고 복잡하다는 식의 편견 말입니다.
말러(사진)를 듣고 싶다고요? 당신은 “너무 어렵지 않나요?”라면서 걱정부터 앞섰지요. 결론부터 애기하자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말러를 향해 걸어가는 징검다리를 순차적으로 밟을 필요가 있지요. 이를테면 처음부터 ‘교향곡 8번 Eb장조’를 듣는 것은 무리입니다. ‘천인 교향곡’으로 불리는 이 곡은 엄청난 규모에 구조적으로도 복잡하지요.
말러와 사귀려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권하는 음악은 대개 교향곡 1번과 4번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이 두 곡에서 출발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일단 길이가 적당하니까요. 두 곡 모두 연주시간 50분가량입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짧지요. 게다가 인상적인 모티브와 선율이 자주 등장합니다. 두어번만 들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요. 또 교향곡 5번도 말러와의 초반 데이트에 유용합니다. 특히 4악장의 느린 아다지에토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지요.
위험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말러의 음악을 이해하는 핵심은 대립되는 두 가지 양면성을 하나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죽음과 삶, 진지함과 농담, 숭고한 아름다움과 유행가의 통속성, 고전적 형식과 민초들의 자유스러움, 직관적 낭만주의와 차가운 이성의 대립각 같은 것들입니다. ‘그까이꺼 대충’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던 말러는 이렇게 서로 부딪히는 것들을 평생 끌어안고 살았지요.
그는 삶을 사랑했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들판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고, 달콤한 디저트를 즐겼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도 곧잘 했습니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주머니에 넣고 들로 나가 그것들의 재롱을 지켜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지요. 말러에게 사신(死神)의 존재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의 그는 14명의 형제 가운데 8명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사랑하던 큰딸 마리아가 어린 나이에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은 심장병에 시달리면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자, 이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번을 들어봅니다. ‘거인’(Titan)이라는 부제에 처음부터 너무 신경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A음의 긴 지속음으로 시작하는 1악장은 조금씩 동이 트는 느낌, 전원의 새벽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뻐꾸기 울음처럼 퍼져나가는 목관 소리가 아주 인상적이지요. 2악장은 춤입니다. 왈츠풍의 부드러운 무곡이 흥겹게 펼쳐집니다. 3악장은 듣는 순간 곧바로 당신을 매료시킬, 장송행진곡 풍의 악장이지요. 허무한 느낌의 보헤미아 선율, 함께 어울리는 오보에의 대선율(對旋律)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표정을 연출합니다.
4악장은 남은 에너지를 모두 폭발시키는 것처럼 강렬하지요. 마지막 악장에서 지나치게 발산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말러가 20대 시절에 쓴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인지 브루노 발터는 ‘거인’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콜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을 권합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음반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Gustavo Dudamel - La Scala Philharmonic Orchestra
[당신의 클래식]그리그 ‘피아노 협주곡A단조’
노르웨이는 세계지도의 가장 북쪽에 놓여 있습니다. 약 15만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갖고 있지요. 그중 약 2,000개의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비틀스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에서 묘사했듯이,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숲의 나라입니다. 또 2만㎞가 넘는 해안선을 가진, 바다의 나라이기도 하지요. 빙하가 만들어낸 피요르드의 절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한여름엔 백야(白夜)가 펼쳐지고,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낮에도 어둠이 깔리는 여명의 나날이 계속되지요.
아쉽게도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상상해보는 거지요. 머릿속에 그려보는 노르웨이의 풍경 속에서, 바로 그 사람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누굴까요? 힌트는 장발에 콧수염, 바로 작곡가 그리그(1843~1907)입니다.
노르웨이는 14세기부터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지요. 19세기에 이르면 스웨덴으로 주인이 바뀝니다. 바로 이 시기에 노르웨이를 대표했던 세 명의 예술가가 있지요. 화가 뭉크와 극작가 입센, 그리고 음악가 그리그입니다. 세 명은 동시대에 활약했지요. 특히 입센과 그리그는 젊었던 시절에 서로 소 닭보듯 했다고 전해지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입센이 노르웨이 설화를 바탕으로 희곡을 써서 그리그에게 작곡을 의뢰하지요. 그렇게 탄생한 음악이 바로 ‘페르귄트 모음곡’입니다. 기억나시지요? 가련한 여인 솔베이지가 역마살 낀 남편 페르귄트를 애타게 기다리는 노래. 바로 ‘솔베이지의 노래’라는 애절한 곡이 유명하지요.
오늘 들을 곡은 ‘피아노 협주곡 A단조’입니다. 노르웨이의 풍경과 서정을 음표로 옮겨놓았던 그리그의 작품들 가운데, ‘페르귄트 모음곡’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지요. ‘북유럽의 쇼팽’으로 불렸던 그리그의 섬세한 낭만성이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그리그는 소프라노 가수 니나와 24세에 결혼, 한창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이 곡을 썼지요. 자신감 넘치는 25세 청년의 싱싱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이 곡은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들으면 됩니다. 워낙 선율이 아름다워서, 처음 듣는 사람마저도 곧바로 매혹시키지요. 팀파니의 트레몰로 연타에 이어지는 피아노 독주가 아주 강렬합니다. 1악장 도입부터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지요. 이어서 목관이 첫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첼로가 제시하고 피아노가 받지요. 단조의 악장이지만 우울하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안을 덮쳐오는 검은 파도가 연상되는, 격정적 선율과 화성이 잇따라 펼쳐집니다. 피아노 독주자에게 엄청난 에너지와 뛰어난 기량을 요구하는 악장이지요.
2악장 아다지오는 차분하게 절제된 분위기입니다. 그리그를 왜 ‘북유럽의 쇼팽’이라고 부르는지 분명히 알게 해주는 악장이지요. 차분하게 절제된 현(絃)으로 시작해, 단아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꿈결처럼 이어집니다. 반면에 3악장은 변화가 많은 화려한 악장이지요. 노르웨이 민속리듬에 몸을 실은 피아노가 환상곡 분위기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그렇게 화려함을 뽐내던 피아노가 한순간 꺼질 듯 잦아들지요. 그러다가 다시 한번 춤곡풍의 리듬을 활기차게 연주합니다. 열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피아노,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포효하는 총주(總奏)로 화답하면서 피날레를 맞이하지요. 그 종지부는 사뭇 영웅적이고 비장합니다.
피아니스트 디누 라파티가 1940년대 후반에 남긴 녹음이 명연으로 꼽히지요. 루빈스타인이 RCA빅터심포니와 협연한 음반도 추천할 만합니다. 게자 안다가 라파엘 쿠벨릭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한 74년 녹음, 크리스티안 침머만이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한 82년 녹음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영화 ‘엘비라 마디간’ 과 모차르트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눕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하지요.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마리가 나풀나풀 날아옵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가지요. 그녀가 나비를 마악 손에 잡으려는 순간 화면은 멈춥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갑니다. 참으로 지독한 낭만주의였지요. 1967년도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은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소녀였습니다. 육군 중위 식스텐과 사랑에 빠지지요. 전쟁을 혐오하는 식스텐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엘비라와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도피행각을 쫓아가지요. 그 도피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합니다. 두 사람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세어보고, 허기에 지친 엘비라는 토끼풀을 뜯어 먹기도 하지요. 국내 모기업의 CF에 등장했던 유명한 장면, 서로 다투던 남녀가 ‘미안하다’는 쪽지를 적어 시냇물 아래로 흘려보내던 모습도 바로 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지요.
당시 17살이었던 스웨덴의 발레리나 피아 데게르마르크는 이 영화 한 편으로 단숨에 스타가 됐지요.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외모의 그녀는 67년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이듬해에 또 한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엘비라 마디간’으로 남겨놓은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탓인지 그 영화는 이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데게르마르크는 딱 두 편의 영화만 남겨놓고 자신의 본업인 발레리나로 돌아갔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빌보드 톱10에까지 올라갔을 정도였지요. 모차르트는 모두 27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곡이 바로 ‘21번 C장조’인 듯합니다. 60년대에 보기 드물었던 인상파적 영상미를 연출했던 영화.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흐르던 2악장 안단테의 선율은 관객의 청각을 온통 사로잡았지요. 행진곡풍의 1악장 때문에 ‘군대’라고 불렸던 이 협주곡의 별칭을 ‘엘비라 마디간’으로 바꿔놓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CD가게에서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 하면, ‘피아노협주곡 21번’을 꺼내 줍니다.
모차르트가 28세 때 작곡했던 이 협주곡의 1악장은 당당하게 시작합니다. 음악학자 아인슈타인은 이 위풍당당한 서주에 대해 “젊은 혈기가 아름답게 녹아있다”고 극찬했지요. 반면에 2악장 안단테는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창가의 성애처럼 흐릿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린, 모차르트 특유의 애상(哀想)이 잔잔하게 녹아 있지요. 3악장은 다시 경쾌한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당당하게 시작해서 슬픔을 유영하다 다시 경쾌해지는 구성이지요. 어느 협주곡이나 그렇지만,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는 피아노와 관현악이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감상에 도움이 됩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애청되는 음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하고 프리드리히 굴다가 피아노를 맡은 74년 녹음입니다. ‘20번 D단조’가 함께 수록돼 있지요. 영화 ‘엘비라 마디간’ OST에서 연주했던 피아니스트는 게자 안다(1921~76)입니다. 모차르트 연주에 능했던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였지요. 그의 연주(DG)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음악 풀어가는 코드 ‘인문학’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의 처녀들이여, 우리 모두 감동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전으로 들어가자.’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에게’(An die Freude, 1785)의 시작 부분입니다. 작곡가 베토벤이 이 시를 읽었던 것은 20대 초반 무렵이었지요. 베토벤은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에 그 감동을 온통 쏟아붓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꼽히는 ‘합창’은, 말하자면 실러의 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문학과 음악이 교감한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에서 받은 감동을 장편소설 ‘파우스트 박사’로 옮겼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음악으로 번역하고자 했습니다. 영화가 20세기 예술의 꽃으로 등장하면서부터는 문학, 음악, 영상이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니벨룽의 반지’나 ‘파르지팔’ 같은 바그너의 서사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다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으로 연결되지요.
서두가 공연히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음반이 아닌 책 한 권을 권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제 책상 위로 배달된 우편물들 가운데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지요. 이 특이한 제목은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았던 하나의 음악적 논쟁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작곡가 살리에르가 ‘음악이 첫째, 말은 둘째’라는 오페라로 촉발시켰던 이 논쟁은 ‘음악’과 ‘가사’ 가운데 어느쪽이 더 중요하냐는 대립이었지요. ‘시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 다른 예술이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측과 ‘문학이란 음악의 옷을 입어야 진정한 예술로 태어난다’는 측의 오래된 논쟁입니다.
책을 쓴 이는 30대 중반의 음악컬럼니스트 정준호씨입니다. 그는 ‘말’을 ‘음악’보다 앞쪽에 놓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 책에서, 문학이나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음악을 풀어나가지요. 그것은 음악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인문학의 도로를 닦는 일처럼 보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무모한 짓일 수 있지요. 인문학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고, 대학가에서는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는 자신의 음악 편력기를 센티멘탈한 필치로 주절주절 늘어놓는 책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서 부피만 잔뜩 늘여놓은 1,000여쪽짜리 장서용 서적도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재미있는 독서는 아니지만, 바흐에서 토마스 만, 셰익스피어에서 쇤베르크를 오가면서 음악의 또 다른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줍니다.
‘신화와 성서’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1부는 그리스·로마신화와 성서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음악과 문학 작품들을 다룹니다. 2부 ‘세상의 노래’는 괴테와 슈베르트, 드보르자크와 롱펠로우, 렘브란트의 ‘야간비행’과 말러의 7번 교향곡 등 예술 장르간의 영향관계를 밝힙니다. 3부 ‘파우스트의 편력’은 음악과 문학으로 묘사된 인생의 통과 의례, 4부 ‘사랑의 변주곡’은 음악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보여준 탄탄한 주제의식이, 10년 쯤 후에 10권짜리 대작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당신의 클래식]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비올레타는 고급 사교계에서 웃음을 파는 여잡니다. 18세기 초반의 파리, 가난한 시골 출신인 그녀는 ‘타고난 미모’로 뭇 남성들을 사로잡으며 사교계의 꽃이 됩니다. 알렉산더 뒤마의 원작에서 ‘동백꽃 마담’으로 불렸던 여인. 작곡가 베르디는 ‘비올레타 발레리’라는 이름의 그 여인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무대에 세워놓습니다.
베르디는 사회성 짙은 오페라들을 많이 썼지요. 어떤 사람들은 ‘라 트라비아타’ 만큼은 사회성과 무관한 ‘순수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적 작풍(作風)은 여전합니다. 시골 출신의 창녀 비올레타와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의 아들 알프레도. 그들의 사랑은 신분의 벽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극중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레타에게 “내 아들과 제발 헤어져 달라”고 애원하고 협박합니다.
당신이 아직 ‘오페라’라는 장르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다면, ‘라 트라비아타’는 그 첫걸음을 떼기에 상당히 적절한 작품입니다. 일단 이 오페라는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요. 만남과 사랑, 갈등과 이별,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마는 스토리 라인이 비교적 간결하지요. 등장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파리의 친구들을 비롯한 적잖은 앙상블 배역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그리고 아버지 제르몽의 행보만 부지런히 좇아가면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오페라입니다.
오페라의 전주곡은 해당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지요. ‘라 트라비아타’는 주인공 비올레타의 비련과 죽음을 귀뜸하듯이, 가냘픈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왁자지껄한 파티가 벌어지지요. 그 화려한 파티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비올레타입니다. 프로방스 지방 지주의 아들인 알프레도는 ‘축배의 노래’를 선창하고, 이어서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해왔다”고 고백하는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날’을 부릅니다. 비올레타는 그의 고백에 처음에는 도리질을 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사랑에 빠져들면서 ‘아 그 사람인가’를 노래하지요.
2막은 파리 교외에 있는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보급자리입니다. 만난지 3개월도 안 돼 ‘동거’에 들어갔으니, 속도가 엄청 빠르네요. 그동안 비올레타가 재산을 처분해 생활비로 써왔다는 걸 알게 된 알프레도가 ‘나의 비겁함이여’를 부르면서 파리로 돈을 구하러 떠나지요. 이어서 아버지 제르몽이 들이닥칩니다. 노래로 주고받는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대화가 음악적으로 대단히 볼만하지요. 비올레타는 결국 제르몽에게 당신의 아들과 헤어지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알프레도는 갑자기 마음이 변한 비올레타에게 분노하지요.
3막은 비올레타의 죽음입니다. 사육제 날의 아침. 뒤늦게 찾아온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폐병이 심해진 비올레타는 자신의 초상화가 박혀있는 목걸이를 알프레도에게 건네주고 숨을 거두지요. 요즘 최고의 테너로 꼽히는 롤란도 비야손이 알프레도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비올레타를, 토마스 햄프슨이 아버지 제르몽을 연기한 DVD가 인기가 높습니다. 현대적이고 심플한 무대, 네트렙코의 뛰어난 미모와 연기가 한창 화제에 올라 있습니다. 도이치그라모폰 발매.
[당신의 클래식]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두달째 열애 중인 여인이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잡니다. 이제 겨우 24세의 젊디 젊은 여인이지요. 처음엔 나이가 꽤 든 줄 알았는데, 프로필을 확인해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이름은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 1983년 독일 뮌헨 출생입니다. 아버지는 독일 토박이고 어머니는 슬로바키아 혈통이라고 합니다. 요즘 그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아리따운 독일 아가씨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3년 전이었습니다. 그해 봄에 로린 마젤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브람스의 ‘더블 콘체르토’를 연주했던 적이 있지요. 더블 콘체르토는 말 그대로 ‘2중 협주곡’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합니다. 당시의 첼리스트는 한국 출신 장한나였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율리아 피셔였지요. 당시 두 연주자와 로린 마젤의 협연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극찬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장한나와 율리아 피셔는 닮은 점이 적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 언론들은, 첼로와 바이올린에서 차세대를 이끌 연주자로 두 사람을 맨 앞에 거론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두 아가씨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조숙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저는 1년 전 장한나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도대체 이 어린 연주자의 내면에 어떤 노인이 들어앉아 있는 걸까’라고 적었습니다.
율리아 피셔도 그렇습니다. 음반으로 처음 접했던 그녀의 연주는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였지요. 젊은 연주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재기 넘치는 연주가 아니었습니다. 테크닉을 뽐내는 치기 어린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담담하고 우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서른은 족히 넘었을 거라고 상상했지요.
두번째로 만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세의 율리아 피셔는 이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곡을 연주하면서, 결코 가벼운 감상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지요. 하지만 그 산의 높이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인데다 숱한 명연(名演)이 녹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가장 먼저 하이페츠(1901~87)의 녹음이 떠오릅니다. 소위 명반으로 꼽히지요.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한 시카고 심포니와의 협연입니다. 예민하고 격정적인 연주로 유명했던 나단 밀슈타인(1904~92)은 72년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과 역사적 명연을 남겼지요. 두 연주자 모두 구소련 출신의 거장입니다. 이밖에 한국이 낳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안네 소피 무터 등의 연주도 오래도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지요.
하이페츠의 연주는 살을 벨 것 같은 검기(劍氣)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율리아 피셔의 바이올린은 음의 모서리가 훨씬 부드럽지요. 그녀는 나단 밀슈타인 유의 격정과도 거리가 멉니다. 얼핏 안네 소피 무터의 옛 모습이 떠오르지요. 하지만 무터가 ‘신동’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에 비해, 율리아 피셔는 이미 원숙하고 기품 있는 숙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야코프 크라이츠베르크가 지휘하는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이 음반에는 실내악적 정교함과 부드러운 열정이 담겼습니다. 펜타톤 발매, 국내의 알레스뮤직이 수입했습니다.
Brahms Violin Concerto - Julia Fischer - Michael Tilson Thomas (NDR Sinfonieorchester )
[당신의 클래식]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3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는 ‘당신의 클래식’에서는 아무래도 브람스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자주 거론될 작곡가입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지난해 베토벤에 이어 올해에는 브람스 교향곡 전곡과 실내악곡을 연주합니다. 또 지난 1일 막 올려 오는 23일까지 계속되는 ‘2007 교향악축제’에서도 브람스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있지요. 게다가 11월 내한하는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뮌헨필하모닉도 브람스를 연주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브람스냐 브루크너냐’로 고민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브람스(사진)는 낭만시대를 살았던 ‘고전주의자’였지요. 참 재미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의관(衣冠)을 갖추고 점심시간까지 작업에 몰두했지요. 그야말로 ‘성실’과 ‘신중’ 그 자체였습니다. 원래 음악이라는 것이 적당히 데카당스가 녹아들어야 감각적으로 재밌는 법인데, 이 브람스라는 양반, 거의 구도자처럼 살았지요. 허풍이나 과장을 스스로 용납 못하는 완고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태어났던 토마스 만이라는 독일 작가가 있지요. 이 사람도 좀 비슷합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서재로 들어가 소설을 썼지요. 점심 먹고 또 서재로 들어갑니다. 오후 5시가 되면 자신의 서재에서 ‘칼’퇴근했지요. 모름지기 예술가들이란 기질적으로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울 터인데, 브람스나 토마스 만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북독일’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브람스는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요. 토마스 만은 그보다 더 북쪽인 뤼베크 출신입니다. 함부르크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걸리는 곳이지요. 브람스나 토마스 만이 보여줬던 완고함의 이면에는 ‘북독일’이라는 지리적 코드가 내재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오늘 권할 음악은 브람스가 남긴 네 곡의 교향곡 가운데 ‘1번 c단조’입니다. ‘등 뒤에서 쫓아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를 의식하면서 21년이나 걸려 완성해낸 대작이지요. 그 ‘거인’은 바로 베토벤입니다. 내향적인 브람스는 자신의 교향곡이 베토벤의 그것에 비해 너무 초라하지 않을지 무척 마음졸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이, 1악장 서두부터 강렬한 팀파니의 연타를 터뜨립니다. 장대하고 비극적인 표정을 연출하는 이 첫 번째 악장은, 베토벤의 넓이와 깊이를 따라잡으려는 브람스의 고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소박하고 우수어린 2악장에서 오보에가 연주하는 선율, 평화로운 목가풍에 간간이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3악장에서 호른이 뽑아내는 선율도 기막히게 아름답지요.
마지막 4악장에서 다시 규모가 커집니다. 느릿하고 무거운 서주에 이어 바이올린이 급박한 피치카토를 토해냅니다. 긴장감이 점차 상승하다가 관악기와 팀파니가 어울리면서 폭발하지요. 그러다가 다시 목관이 서정적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호른이 그 유명한 알프스풍 선율을 연주합니다. 강약과 완급이 반복되는 다소 복잡한 구조이지만, 남성적 로맨티시즘의 만끽할 수 있는 악장이지요. 1876년 초연 당시 4악장의 주제가 베토벤의 ‘합창’과 비슷하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브람스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며 일축했다고 합니다. 교향곡 전곡을 수록한 음반으론 칼 뵘이 빈필을 지휘한 1970년대 녹음을 권합니다. 브루노 발터가 컬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한 음반도 훌륭합니다. ‘1번’만 수록한 음반을 찾는다면 프루트뱅글러가 베를린필을 지휘한 52년 실황을 빼놓을 수 없지요.
Otto Klemperer - Philharmonia Orchestra Rec. 1958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7번 -봄기운 약동하는 리듬-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인왕스카이웨이 양 옆으로 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벚꽃은 이미 만개했고 목련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조시간이 길어지면서 수은주의 눈금이 점점 올라가면, 사람들은 대개 리듬감 넘치는 음악을 찾게 되지요. 음악을 찾는 마음도 결국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모양입니다. 천지의 기운이 사그라지는 가을녘에는 나직하고 느린 음악에 마음이 쏠리지요. 하지만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는 약동하는 리듬과 화려한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떠오른 음악이 베토벤 교향곡 7번이지요. 특히 1악장과 4악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박력 있는 리듬이 일품입니다.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휘저으며 ‘엉터리 지휘’를 하게 만들지요. 저도 가끔 스피커 앞에서 두 손을 마구 휘저어댑니다. 7번은 그렇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이 곡을 수록한 음반이 요즘 음반가게에서 꽤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한데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드라마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흔히 ‘일드’라고 줄여서 부르는 일본 드라마 한 편이, 뜻밖에도 베토벤 7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드라마입니다.
보셨나요? 장소는 일본의 어느 음악대학. 최고의 음악가를 꿈꾸는 젊은 음대생들의 방황과 사랑, 도전… 뭐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내용은 좀 유치하지요. 하지만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일본문화의 ‘넓이’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7번은 이 드라마의 오프닝곡이지요. 남자 주인공 치아키가 난생 처음 포디엄에 서서, 사방에서 ‘삑사리’를 내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연습하던 곡이 바로 7번이었지요. 음대의 말썽꾸러기들로 이뤄진 오케스트라는 결국 연주회를 치러냅니다. 기립박수가 쏟아지고 치아키는 유명해집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노다메. 며칠씩 목욕을 하지 않아 냄새를 풀풀 풍기는 데다 매사에 덜렁대기 일쑤인 여주인공 노다메도 치아키의 열정에 자극을 받지요. 그녀는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치아키와 동행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합니다. 이 콩쿠르에서 노다메가 턱하니 우승을 차지했다면, 이 드라마는 아마 재미없었겠지요. 당연히 노다메는 미끄러집니다. 하지만 ‘동행’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세상에는 또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잘 생긴 치아키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곡도 7번입니다. 듣는 이를 단박에 흥분시키는 이 격동적인 교향곡이 드라마의 시종(始終)을 장식하면서 극적 재미를 이끌어내는 셈이지요. 7번의 파토스적 격렬함, 혹은 극적인 효과 때문인지, 실제로 이 곡은 젊은 지휘자들의 데뷔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데뷔 앨범도 베토벤의 7번과 5번을 수록하고 있지요.
1813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 곡을 공개초연하던 베토벤은 지휘 도중 펄쩍 뛰어오르며 괴성을 질렀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4악장에서 그랬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술주정뱅이의 음악’이라고 혹평했지만, 당시 청중의 열광은 대단했다고 하지요. 2004년 타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빈필을 지휘했던 1976년도 음반을 권합니다. 생전의 클라이버는 레코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고, 당연히 남겨놓은 음반도 소수에 불과하지요. 어떤 이들은 ‘희소성’ 탓에 클라이버의 음반이 과대평가됐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베토벤 7번을 거론할 때 1순위로 거론되는 음반입니다.
[당신의 클래식]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지난 가을과 겨울, 모차르트만 내내 들었습니다. 베토벤도 말러도 브루크너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한 곡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 탓에, 밤 11시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앰프의 파워 버튼을 누르곤 하지요. 오늘은 무슨 곡을 들을까? 진공관을 예열시키는 약 3~4분 동안 부지런히 LP나 CD를 뒤적거립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과 겨울, 손에 잡히는 음반은 거의 다 모차르트였습니다.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지난 가을 노모(老母)가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겨울이 되자 형님이나 진배없는 선배 한 분이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씩 찾아오는 강펀치를 연달아 두대 맞은 격이었지요.
모친의 뇌수술은 4~5시간 걸리는, 만만치 않은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실 문앞에서 망연자실 서성이다가 병원 바깥 벤치에 나와 앉았지요. 언제나 보이는 풍경, 바쁘게 지나치는 행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허무가 밀려왔지요. 그 순간, 거의 무의식중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짓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전화번호를 입력할 생각을 했는지 딱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손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에 4시간이 절로 흘러갔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2라운드는 곧바로 찾아왔습니다. 선배의 간에 침투한 암은 이미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진행됐다고 했습니다. 형수는 “살려야 한다”며 제 팔을 잡고 오열했지요.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념이 오락가락했습니다. 최고의 명의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인드 컨트롤이었습니다. 상상했습니다. 햇살 따스한 봄날, 선배를 모시고 꽃 피는 등산길에 오르는 상상을 날마다 했습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그렸던 ‘희망’이 결국 현실이 됐지요. 간 절개 수술 후, 선배는 건강해진 몸으로 퇴원했고 3월부터 지금까지 가벼운 산행을 2번이나 했습니다.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는 책이 있습니다. 시인이자 문화비평가, 오디오 애호가인 김갑수씨의 에세이집이지요. 그와는 20년 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의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습니다. 삶이 괴로운 사람이 어떻게 음악을 듣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감히 말하건대, 삶이 괴로울 때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있었습니다. 바로 모차르트였습니다.
묘한 체험이었습니다. 머릿속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차 있던 순간, 어떤 음악도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던 시간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음악만은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과 겨울,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줄창 들었습니다. 칼 라이스터가 연주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차르트의 ‘위대함’을 깨달았지요.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간 모차르트는 자신의 영육(靈肉)을 태워 ‘괴로움의 위안’을 지상에 남겼습니다. 비유법으로 말하건대, 그는 ‘예수’였습니다. 모차르트가 인류에게 남긴 600여곡의 위대한 유산. 오늘은 그 중에서도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를 권합니다. 세상 떠나기 두달 전에 완성했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입니다. 병고와 궁핍에 시달리던 말년의 모차르트를 도와줬던 친구, 안톤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했다고 전해집니다. 슈타틀러는 당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였다고 하지요. 아마 당신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왔던 2악장 아다지오 선율을 기억할 겁니다. 제가 즐겨듣던 칼 라이스터와 베를린필하모닉(라파엘 쿠벨릭 지휘)의 음반은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의 클래식]로스트로포비치 연주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 B단조’
그의 애칭은 ‘슬라바’였지요. 풀네임은 므스티슬라프 레오폴도비치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Leopol’dovich Rostropovich). 무척 길고 발음하기도 어렵지요. 그래서인지 로스트로포비치 본인도 ‘슬라바’라는 애칭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슬라바는 ‘영광’이라는 뜻의 러시아 말이지요.
지난 4월27일 저녁, 슬라바가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첼리스트 장한나와 서둘러 통화를 했지요.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부고(訃告) 기사를 급히 써야 했으니까요. 널리 알려진 대로 장한나는 슬라바의 애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장한나는 스승의 타계 소식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기사를 쓰면서 약간 헤맸지요. 손끝이 술술 풀리질 않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떴다는 게 왠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음악에 빠져들었던 10대 후반 무렵부터 가장 가까이 접해온 첼리스트가 바로 그였지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슬라바가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B단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1985년도 녹음, 프랑스 에라토(Erato)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입니다. 일본 출신의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하는 보스톤 심포니와의 협연이지요. 열흘 전 런던의 노팅힐 거리를 헤매다가 중고음반점에서 5파운드에 산 LP입니다.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슬라바가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첼로를 켜고 있고, 오자와는 맞은편에 앉아 한없이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대가(大家)를 바라보고 있지요.
피아노도 능숙하게 다뤘던 슬라바는 유난히 손이 컸습니다. 그의 첼로 소리는 힘이 좋고 울림이 풍부하지요.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슬라바 특유의 박력을 찾기가 힘듭니다. 오자와의 지휘도 시원스럽게 뻗어나가질 못합니다.
슬라바가 남겨놓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 명연(名演)은 따로 있지요. 69년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필과 녹음했던, 도이치그라모폰 음반이 아마도 그것일 겁니다. 그의 나이 41살 때, 그야말로 전성기였지요. 어떤 이들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한 음반을 더 수작으로 꼽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녹음에서 슬라바가 보여주는 도도함과 당당함에 훨씬 마음이 끌리곤 하지요.
당시의 카라얀은 정말 대단했지요. 자타가 공인하는 음악계 최고의 권력자였으니까요. 한데 아제르바이젠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성장한 이 40대 초반의 연주자는 대놓고 카라얀과 맞먹습니다. 1악장 시작부터 그렇지요. 호른이 두번째 주제를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총주(總奏)가 끝난 다음, 드디어 등장하는 첼로 솔로를 한번 들어보세요. 아, 그 느긋함이라니! 정말 느리지요. 당시 음악계의 ‘황제’ 카라얀에게 “나는 이렇게 연주할 텐데,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고 있습니다. 소처럼 느릿한 이 운궁(運弓)은, 참으로 벅찬 감흥을 전해주는 장면이지요. 이 연주에는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가 숨어 있습니다.
슬라바는 이밖에도 숱한 명연을 남겼지요.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84세의 고령이었을 때 함께 연주했던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2번’(DG),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이 피아노를 맡았던 68년의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데카)가 떠오릅니다. 그는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갔지요. 80년, 84년, 96년으로 기억합니다. 이제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겠네요. 하지만 그가 있어서 오랜 세월 행복했지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겁니다. 고맙게도 훌륭한 녹음을 수없이 남겼으니까요.
Rostropovich - Dvorak Cello Concerto - Carlo Maria Giulini and the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당신의 클래식]슈만 교향곡1번 ‘봄’ ~ ‘나는 언젠가 완전히 미쳐버릴 것이다.’
슈만은 늘 불안했을 겁니다. 그는 20대 초반이었던 1833년 무렵부터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누나인 에밀리에는 이보다 8년 전에 강물에 뛰어들어 세상을 떠났지요. 슈만은 자신의 몸 속에,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악마’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불안함이 술과 여성 편력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지요. 일설에는 성병도 앓았다고 합니다. 매독이라는 구체적 병명까지 거론되곤 하지만, 이 ‘설’의 진위를 확인하긴 어렵지요. 지난해 8월 음악전문지 ‘도이치그라모폰’에 게재된 제레미 니콜라스의 글은, 슈만의 병명을 ‘조울증’으로 지칭하면서 흔히 주장되는 매독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고 있습니다.
1840년은 슈만의 인생에서 단 한번 찾아왔던 ‘화창한 봄날’이었지요. 그는 마침내 아름다운 클라라와 ‘합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이었던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이었지요. 슈만이 스승의 집에서 클라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고작 아홉살이었습니다.
비크는 슈만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창간해 낭만주의를 함께 설파했던 ‘음악적 동지’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딸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슈만과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꼭 나이가 어려서였을까요. 결혼 얘기가 나왔을 무렵, 클라라는 이미 성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아마 핑계였을 겁니다. 비크는 이미 슈만의 ‘정신적 불안’을 눈치챘던 것이지요.
초상화로 확인할 수 있는 클라라의 미모는 정말 대단합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며 결혼에 골인했지요. 그해가 바로 1840년이었습니다. 슈만은 이듬해 2월에 교향곡 1번 ‘봄’을 완성하지요. ‘봄’이라는 제목은 슈만 스스로 붙인 것입니다.
이 교향곡을 거론할 때 흔히 등장하는 ‘신혼의 단꿈’이나 ‘봄날의 화사함’ 같은 어휘는 반쪽의 진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슈만의 불안, 현재의 행복이 언젠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前兆)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지요.
트럼펫의 힘찬 울림으로 막을 여는 1악장은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금관은 태양처럼 빛나고 현(絃)은 활기찬 리듬을 합주하지요. 목관은 나비처럼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굵고 낮은 현악기들의 음색은 왠지 쓸쓸합니다.
1악장 마지막의 폭발적인 고조 이후, 느리고 섬세한 2악장 라르게토(Larghetto)는 교향곡 ‘봄’에서 가장 정제된 악장이지요. 활기 넘치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 다시 나비가 춤을 추고, 마지막 4악장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잘게 쪼개지면서 춤의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목관의 음향은 마치 새의 지저귐처럼 들려오지요.
그러나 교향곡 ‘봄’의 즐거움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리듬은 활기차지만 색조는 어둡고, 음악적 구성도 왠지 어수선합니다. 고전과 낭만으로 이어지는 교향곡의 역사에서 이 작품은 ‘수작’이나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지요. 당시의 슈만은 상처입은 영혼을 지닌 31세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교향적 어법은 아직 설익은 상태였지요. 그는 44세에 라인강에 몸을 던졌고, 46세에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습니다.
푸르트뱅글러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했던 1951년 실황이 역사적 명연으로 꼽힙니다. 제가 즐겨 듣는 음반은 엘리아후 인발이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70년 녹음이지요. 푸르트뱅글러 같은 강렬함이 느껴지진 않지만, 비교적 안정감 있는 연주에 녹음 상태도 좋습니다. 요즘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CD 중에는 네빌 마리너 경이 슈투트가르트 라디오심포니를 지휘한 음반을 권합니다. 슈만의 교향곡 1번부터 4번까지, 전곡이 담겼습니다.
[당신의 클래식]오펜바흐 `뱃노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 1997)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았던 영화였지요. 때는 1930년대 말, 유태인 ‘귀도’는 아들 ‘조슈아’와 함께 나치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엄마 ‘도라’는 유태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들을 따라가지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은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힌 귀도는 찰리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면서 쓰레기통에 숨은 조슈아에게 윙크를 보냅니다. ‘조슈아, 아빠는 지금 이 아저씨와 게임을 하는 중이야. 너는 끝까지 잘 숨어 있어야 해. 게임에서 1000점을 따면 진짜 탱크를 선물로 준다고….’ 조슈아는 쓰레기통의 작은 구멍으로 아빠의 윙크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지요. ‘알고 있어요,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이 가슴 아픈 유머의 영화는 오펜바흐가 작곡한 ‘호프만의 이야기’ 가운데 ‘뱃노래’를 두 번 들려줍니다. 귀도가 어떤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따라 들어간 오페라극장. 마침 극장에서는 ‘호프만의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유명한 아리아 ‘뱃노래’가 흘러나오지요. 음악에 푹 빠져 있던 여인은 바로 도라였습니다. 그녀는 귀도와 결혼하지요.
후반부에서 또 한번 ‘뱃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수용소에 갇힌 귀도와 도라는 격리되지요. 생사가 궁금한 상황입니다. 어느날 귀도는 축음기가 있는 방으로 숨어들어가 ‘뱃노래’를 크게 틀어놓습니다. 목숨을 건 송신(送信)이었지요. 수용소 곳곳에 울려퍼지는 그 아름다운 2중창은, 어딘가에 있을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나하고 조슈아는 잘 지내고 있어. 당신도 버텨야 해’라는, 간절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도였지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트로츠키는 1940년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의 손에 죽음을 맞지요. 그는 죽기 직전에 남긴 유언장에서 ‘…인생은 아름답다.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는 글을 남깁니다. 이 마지막 글은 연초록색 나뭇잎과 화사한 햇살, 청명한 하늘의 아름다움을 함께 예찬하지요. 혁명가로 평생을 살다가 시인의 영혼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은 셈입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트로츠키의 유언에 착안해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전해집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코미디로 만든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겠지요. 미국의 역사학자 라울 힐버그는 ‘유럽 유태인의 절멸’이라는 책에서 나치 학살로 인한 유태인 희생자를 510만명으로 추정합니다. ‘홀로코스트 백과사전’은 560~586만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약간의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끔찍한 비극을 웃음과 눈물의 코미디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지요.
파리에서 활약했던 유태인 작곡가 오펜바흐(1819~1880)는 소규모의 희가극(喜歌劇) ‘오페레타’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극장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던 ‘흥행의 귀재’였지요. 그런 오펜바흐가 인생 말년에 작품성이 뛰어난 걸작을 만들어보겠다고 마음 먹고 달려들었던 작품이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는 오페라를 완성하기 직전에 눈을 감지요. 그의 사후에 18세 연하의 작곡가 에르네스트 기로가 작곡을 마무리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뱃노래’는 2막(3막으로 바뀌기도 함)에서 베네치아의 ‘섹시한’ 아가씨 줄리에타와 호프만의 친구 니클라우스가 부르는 유명한 2중창입니다. 앙드레 클뤼탕스가 파리 국립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니콜라이 게다, 빅토리아 로스 앙헬레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등 호화 배역이 포진한 EMI 음반이 콜렉터 아이템으로 손꼽히지요.
[당신의 클래식]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히틀러가 군중을 선동할 때도 저 스피커를 사용했대요.”
방송인 황인용씨가 한쪽 벽을 채우다시피한 커다란 스피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육중한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그 스피커의 이름은 클랑필름(Klangfilm)입니다. 1940년대를 주름잡았던 독일산 명기(名器)이지요. 이제 빈티지 애호가들이나 기억하는 고색창연한 이름이 됐습니다.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파주 헤이리의 ‘카메라타’에 가면 이 스피커를 만날 수 있지요. 가정용 스피커라기보다는, 대중이 모여들던 공공장소에서 사용했음직한 대형 기종(機種)입니다. 히틀러가 속사포 같은 선동을 쏟아내던 광장에서,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히틀러 만세!”를 외치던 극장에서 이 스피커를 사용했을 겁니다.
물론 이 시커멓고 육중한 ‘괴물’이 나치의 연설만 쏟아냈던 건 아닙니다. 광장이나 극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음악도 들려줬을 겁니다. 주로 바그너(1813~83·사진)의 음악이 울려퍼졌겠지요. 특히 음악극 ‘탄호이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이 빈번하게 흘러나왔을 겁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히틀러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였지요. ‘순례자의 합창’은 나치 시절에 독일 국가로까지 사용됐던 음악입니다. 가스실로 끌려가던 유태인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들어야 했던 ‘숭고미’ 넘치는 선율이 바로 ‘순례자의 합창’이었지요.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지지 않은 그 기억 때문에, ‘탄호이저 서곡’을 들을 때마다 공연히 마음이 불편합니다. “클랑필름으로 바그너 음악 한번 들어볼까요?” 하는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다가 쑥 들어가 버렸지요.
어떤 이들은 히틀러와 바그너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 뿐, 어떤 의미적 연관성은 없다는 항변이지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히틀러가 바그너에 푹 빠졌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요. 바그너는 기독교에 짓눌려 ‘이교도의 문화’로 폄훼됐던 게르만의 신화와 전설을 ‘장대한 음악극’으로 되살려놓습니다. 작곡만 한 것이 아니라 대본까지 직접 썼지요. 이른바 독일의 후기 낭만시대, 음악을 통해 ‘게르만 민족주의’를 부활시켰던 작곡가가 바로 바그너였습니다. 1889년생인 히틀러는 음악을 미친 듯이 좋아했고, 바그너를 들으면서 민족적 센티멘털리즘에 젖어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요.
오페라와 음악극의 ‘서곡’은 작품 전체를 함축합니다. ‘탄호이저 서곡’도 마찬가지이지요. 탄호이저라는 이름의 기사가 사랑하고 방황하다가 구원 받는다는 줄거리를 요약해 보여줍니다. 이 음악은 모두 세 덩어리로 이뤄지지요.
먼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을 관악기가 주선율로 연주합니다. 이어서 현악기군이 이 주제를 받아서 연주하다가 트롬본이 등장합니다. 트롬본으로 연주되는 ‘순례자의 합창’은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성스럽고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지요. 가히, 서곡의 백미(白眉)입니다.
이어서 음악이 알레그로 템포로 바뀌면서 이른바 ‘환락의 동기’가 등장하지요. 여신 베누스베르크의 요염한 아름다움에 탄호이저가 유혹 당하는 장면입니다. 말하자면 정신과 육체의 분리, 성(聖)과 속(俗)의 대비인 셈이지요. 탄호이저는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어렵게 벗어납니다. 순결한 여인 엘리자베스의 희생 덕분이지요. ‘서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순례자의 합창’이 들려오면서 탄호이저의 방황과 타락은 구원으로 마무리됩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는 ‘탄호이저 서곡’을 오프닝 테마로 사용했지요.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던 영화 ‘래리 플랜트’에서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사장인 주인공 래리 플랜트가 법정으로 들어서는 순간, ‘장엄하게’ 울려퍼지던 음악도 바로 이 곡입니다. 제가 주로 듣는 것은 게오르그 솔티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입니다. 애호가들의 여러 이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들을 만한 레코딩입니다.
[당신의 클래식]모차르트 ‘레퀴엠’
1791년 여름, 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온통 시커멓습니다. 검은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까지 뒤집어 썼지요. 왠지 불길한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하지만 한창 돈에 쪼들리던 모차르트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지요. 검은 가면의 사내는 “가장 이른 시간에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는 주문과 함께 선금(先金)을 던져주고 사라집니다.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이, 조만간 다시 오겠다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지요.
‘레퀴엠’(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합니다. 신의 영광과 위엄을 찬미하면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음악이지요. 검은 옷의 사내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주문했던 ‘레퀴엠’은 결국 모차르트의 유작(遺作)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차르트는 그해 12월5일 0시55분, ‘레퀴엠’ 중에서도 가장 애통한 감정이 끓어오르는 ‘라크리모사’(Lacrimosa, 눈물의 날)의 작곡을 중단한 채 눈을 감지요. 그는 이 곡의 여덟번째 마디까지 써놓고 영원히 펜을 내려놓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는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쥐스마이어(Suessmayer)가 후반부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밀로스 포먼이 연출했던 1985년도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죽음이 바로 이 ‘레퀴엠’과 상당히 관련돼 있음을 암시합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영화 이전에 연극 ‘아마데우스’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순서겠지요. ‘에쿠우스’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가 대본을 쓴 이 연극은, 오랫동안 세간을 떠돌았던 ‘모차르트 독살설’을 모티브로 삼고 있지요. 밀로스 포먼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날 사신(死神)처럼 모차르트를 찾아왔던 ‘검은 남자’, 연극과 영화는 그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군림했던 살리에르(1750~1825)의 하수인으로 묘사합니다.
살리에르는 ‘검은 남자’를 모차르트에게 보내기에 앞서 ‘하녀’로 위장한 스파이를 먼저 투입하지요.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누가 급료를 주는지도 모르는 하녀를 집안에 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지만,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공짜로 하녀를 쓸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며 살림을 떠맡깁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대판 싸움까지 벌이지요. 물론 영화 속의 얘깁니다.
모차르트는 서양음악사에 기록된 불멸의 작곡가들 중에서 첫번째 ‘프리랜서’였지요. 그는 권력자 밑에서 굽실거리며 일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이었지요.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당돌함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작곡 노동자’ 모차르트의 모습을 부각시킵니다. ‘독살설’을 영화로 구성했음에도, 실제로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시대와의 불화, 혹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극심한 노동을 간과하지 않지요.
영화의 후반부, 모차르트의 장례식은 초라합니다. 공동묘지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인부들은 커다란 보자기에 담긴 시신을 그대로 구덩이에 던져 넣지요. 그 위로 하얀 석회가루가 뿌려집니다. 폭풍우치는 소리와 함께 모차르트 최후의 걸작 ‘레퀴엠’이 장엄하게 울려퍼지지요.
영화 속에서 죽음을 사주했던 인물로 지목되는 살리에르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악장이었지요. 베토벤, 리스트 등에게 음악을 가르쳤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베토벤은 살리에르 앞으로 ‘당신의 제자 베토벤’이라고 밝힌 짧은 편지를 남기기도 했지요. ‘검은 사내’는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의 심부름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은 아내의 1주기에 맞춰, ‘레퀴엠’을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연주할 요량이었다고 하지요. 저작권 개념이 미비했던 당시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LP시절의 명반으로는 브루노 발터가 뉴욕필하모닉과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을 지휘한 56년도 녹음(CBS)이 꼽힙니다. 하지만 이 녹음은 모노럴입니다. 스테레오로 녹음된 왕년의 명반으로는 칼 뵘이 빈필하모닉과 빈국립오페라합창단을 지휘한 71년도 녹음(DG)이 꼽히지요. 몇년 전부터는 지휘자 아르농쿠르가 당대연주로 되살려 놓은 ‘레퀴엠’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지난해 연주했던 실황음반(RONDEAU)도 최근의 수작(秀作)이지요. 며칠 전 국내에서도 발매됐습니다.
John Eliot Gardiner conducts the English Baroque Soloists and the Monteverdi Choir
[당신의 클래식]드뷔시 ‘달빛’
‘무성했던 잎들은 사라져버리고, 아름다움은 백설에 덮여버렸네. 도처에 불모가 휩쓸고 가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에서 늙음에 대해 그렇게 묘사했지요. 지난 5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도 이 글귀가 머릿속에 어른거렸습니다. 올해 74세의 피아니스트 타마슈 바샤리. 그는 힘겹게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허리는 굽었고 몸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지요. 객석은 청중으로 가득 찼습니다. 쇼팽의 음악을 즐겨 듣던 지금의 40, 50대들은 바샤리의 명성을 여전히 기억하지요. 1970년대에 성음에서 라이선스로 발매됐던 도이치그라모폰의 음반, 바샤리가 쇼팽의 ‘녹턴’과 ‘발라드’를 연주했던 이 음반은 불티나게 팔렸던 베스트셀러였지요. 그런 바샤리가 피아노 앞으로 위태롭게 걸어나와, 바로 그 음악, 쇼팽의 피아노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곡은 ‘환상 폴로네이즈’였지요. 이어서 ‘발라드’와 ‘마주르카’, ‘녹턴’과 ‘스케르초’였습니다.
실연(實演)으로 처음 만난 바샤리의 연주였지요. 하지만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느덧 늙어버린 그의 육신은, 청중이 기대했던 노련하고 섬세한 음악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연주’는 결국 해석과 기교의 만남이고 정신과 육체의 합일인 셈이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바샤리의 신경은 무뎌진 듯했고 손가락도 적잖이 굳은 것 같았습니다. 노쇠한 육신이 ‘억지로’ 건반 위를 달려나가다 미스 터치가 튀어나오기도 했지요.
1부 연주가 끝나고 로비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한 후배 기자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마음이 아플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였지요. 2부에서 연주된 ‘프렐류드’ 전곡을 들으면서 답답함은 점점 커졌습니다. 노장(老將)은 지쳐 보였고 연주는 계속 위태로웠습니다. 차라리 연주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지요. 아, 나이듦이란 저런 것이구나, 그가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잡생각들이 오락가락하면서, 피아노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바샤리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피아노의 여음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저는 한숨을 내쉬었지요.
거기서 모든 게 끝났다면 오늘 이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요. 바샤리의 연주가 별로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청중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바샤리는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면서 깊이 허리 숙여 청중에게 인사했지요. 건강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그는, 인사하는 자세조차 위태로웠습니다. 그는 몇 번인가 무대로 걸어나와 허리를 숙였고 마침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지요. 드디어 바샤리의 첫번째 앙코르곡이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드뷔시의 ‘달빛’이었지요. 10m 앞에서 바라봐도 덜덜 떨리는 모습이 감지되던 그의 손가락 끝이 ‘달빛’을 부드럽게 훑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청중의 응원에 고무된 것일까요? 내내 위태로웠던 바샤리의 섬세한 피아니즘이 드디어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달빛의 잔잔한 파문(波紋)이 번져나가면서 연주회장을 고즈넉이 감싸안기 시작했지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드뷔시의 초기 작품인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세번째 곡 ‘달빛’. 이 곡은 테크닉적으로 어렵진 않지요. 하지만 음악적 뉘앙스를 살려내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안단테 템포로 흘러가는 느리고 조용한 곡이지만, 창가에 내려앉은 달빛의 은은한 시정(詩情)을 오롯이 표현해야 하는 음악이지요. 헝가리 태생의 노장 피아니스트 타마슈 바샤리에게, 그날 앙코르로 연주한 ‘달빛’은 더없이 어울리는 선곡이었습니다.
바샤리가 드뷔시의 피아노곡들을 연주해 음반으로 내놓은 것은, 그의 나이 36세였던 1969년이었지요.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왔습니다. ‘달빛’이 포함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외에 ‘두 개의 아라베스크’도 담겨 있지요. 특히 ‘아라베스크 1번’은, 이제 클래식에 막 눈 떠가는 당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곡입니다.
Fantasia ~ Walt Disney
[당신의 클래식]슈만 피아노협주곡 a단조
지난 4월, LG아트센터에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66)를 처음 봤습니다. 1994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내한했던 이후, ‘13년만에 찾아온 피아노의 여제(女帝)’라며 꽤나 떠들썩했던 연주회였지요. 하지만 이 ‘화제의 연주회’는 좀 싱겁게 끝났습니다. 한일문화교류 차원에서 마련됐던 그 연주회에서, 아르헤리치는 그저 ‘원 오브 뎀’이었을 뿐이었지요. 일본의 피아니스트 이토 교코와 비올리스트 가와모토 요시코, 한국의 정명화, 이성주 등 ‘여러’ 연주자들이 그 연주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아르헤리치만의 무대’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금 제 손에는 아르헤리치의 DVD 한 장이 들려 있습니다. 지난해 6월 1~2일, 독일 라이프치히의 유서깊은 연주회장, 게반트하우스(Gewandhaus)에서 공연했던 실황입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지요. 최근 국내에 라이선스로 출시된 이 DVD는,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아르헤리치의 최신 연주입니다. 게다가 레퍼토리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그야말로 군침이 돌만하지요. 이 곡은 아르헤리치의 대표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녀는 그동안 바츨라프 노이만,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마이클 틸슨 토마스 등 많은 지휘자들과 이 곡을 레코딩했지요. 리카르도 샤이와는 벌써 두번째 녹음입니다.
샤이는 솔리스트를 충분히 배려하지요. 이번 녹음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르헤리치가 주도하는 연주라고 봐도 무방할 성싶습니다. 아르헤리치의 ‘파워’는 젊은 시절에 비해 다소 주춤하지만, 그래도 당당한 보무(步武)는 여전합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금의 아르헤리치’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50년 관록에서 우러나오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겸비했으니까요.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했던 탁월한 피아니스트 에드윈 피셔(1886~1960)는, 슈만 음악의 요체를 ‘비감(悲感)의 그늘’과 ‘축제의 불꽃’으로 묘파합니다. 슈만이 남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인 ‘a단조’는 이 두 개의 대립항이 뜨겁게 몸을 섞는 음악이지요. 특히 1악장이 그렇습니다. 관현악과 피아노의 강렬한 서주(序奏)로 음악의 문이 열리자마자, 오보에가 뽑아내는 첫번째 주제가 쓸쓸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가능하다면 당신은 이 단순하고도 슬픈 선율을 입속으로 몇번쯤 되뇌이는 게 좋습니다. 잠시 후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도 첫번째 주제와 비슷하게 흘러가지요. 피아노와 관현악은 이 두 개의 주제를 계속해서 변형하고 발전시킵니다.
그렇게 격렬하게 불타오르던 음악이 어느 한 순간 잦아들지요. 그 순간부터 음악은 ‘안단테’로, 즉 ‘느리게’의 속도로 흘러갑니다. 그 템포의 변화가 확연해서 당신도 금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개부’로 들어선 것이지요. 피아노, 클라리넷, 플룻이 한데 어울려 느린 속도로 주제를 다시 연주합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흘러가는 이 부분은, 슈만 음악의 서정성을 톡톡히 맛볼 수 있는 ‘명장면’이지요.
‘재현부’로 들어서면서 피아노는 다시 격렬해집니다. 이 격렬함은 1악장 종지부로 달려가면서 ‘알레그로 몰토’(Allegro Molto)로 더욱 급박하게 템포를 밀어붙이지요. 에드윈 피셔의 어법을 또 빌리자면, 1악장 마침표는 축제의 제단에서 산화하는 불꽃을 닮았습니다. 아름답고 장렬하며, 동시에 허무한 뒷맛을 남기지요.
점점 클래식에 눈 떠가는 당신은, 세 개의 악장을 한꺼번에 듣는 것보다 1악장을 몇번 반복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2악장은 평화로운 목가풍(牧歌風)이고, 마지막 3악장은 빠르고 리드미컬하지요. 1악장의 진미(珍味)를 톡톡히 맛본 후 2, 3악장으로 넘어가면 음악의 윤곽이 더욱 또렷해질 겁니다.
Lipzig Gewandhaus Orchestra - Riccardo Chailly Tilson-Thomas/SFSO
[당신의 클래식]푸치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승리의 아리아 ‘네쑨 도르마’-
며칠 전이었습니다. 폴 포츠라는 36세 영국 남자가 인터넷에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휴대전화 판매원이었지요. 한눈에 봐도 ‘세련됨’과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옷차림은 후줄근했고 배가 볼록 나온데다가 치열마저 둘쭉날쭉했지요. 말투도 어눌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추어들의 노래 경연장입니다.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두 3회에 걸쳐 실력을 겨루는 영국 ITV의 인기 프로그램이지요. 예선은 14일에 있었습니다. ‘촌스러운’ 폴 포츠가 주눅든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오자 관객과 심사위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요. 세 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아만다라는 여성 심사위원이 “뭘 할 거예요?”라고 묻습니다. 잔뜩 긴장한 폴 포츠의 입에서 “오페라를 부르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어눌하게 흘러나오지요.
오페라? ‘브리튼스 갓 탤런트’는 주로 팝을 부르는 프로그램입니다. 게다가 후줄근한 외모의 ‘아저씨’가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더듬거리며 말하자 심사위원들은 다들 황당하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경연 참가자들에게 독설을 퍼붓기로 유명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이 가소롭다는 듯이 “어디 한번 해 보세요”라고 한마디 툭 던지지요.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반전(反轉)됩니다. 폴 포츠가 ‘네쑨 도~르마, 네쑨 도~르마’ 하면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의 첫 부분을 노래하자마자 심사위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독설가 사이먼 코웰은 ‘이럴 수가!’라는 표정으로 폴 포츠를 바라보지요. 객석에서도 ‘난리’가 납니다. 아리아가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서 ‘빈체로, 빈체~로!(승리하리라!)’ 하는 순간 관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대지요. 어떤 관객들은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종양과 교통사고로 꿈을 접었다는 휴대전화 판매원 폴 포츠. 늘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그는 준결승에서 안드레아 보체리의 히트곡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부릅니다. 결승에선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다시 부르지요. 1등을 차지한 그는 상금 10만파운드(약 1억8000만원)를 받았고, 영국 여왕이 주최하는 ‘2007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UCC 동영상을 부지런히 퍼날랐지요. 처음 이 동영상을 봤을 때 혹시 연출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잠깐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하지만 폴 포츠의 간절하고도 긴장된 표정, 특히 1등으로 호명되던 순간에 그의 눈에 맺히던 이슬이 잠시의 의심을 거둬갔지요.
그가 불렀던 ‘네쑨 도르마’는 푸치니의 ‘투란도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입니다. 남자 주인공 칼라프가 3막에서 부르는 ‘승리의 아리아’이지요. 직역하자면 ‘누구도 잠들지 못하리’라는 뜻이지만 대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번역합니다. 칼라프는 모험심이 많은 데다 권력을 향한 욕망도 큰 인물이지요. 그는 투란도트 공주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에 도전합니다. 세 개를 모두 맞히면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왕국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라도 틀리면 죽음이지요. 칼라프는 3막이 열리자마자 ‘나는 공주를 차지할 것이다. 아침이 되면 승리자가 될 것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노래합니다.
‘네쑨 도르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기도 하지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로마에서 열렸던 ‘3테너의 콘서트’. 주빈 메타가 지휘했던 이 콘서트의 실황 음반은 불티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지요. 물론 이 무대엔 플라시도 도밍고도 있었고 호세 카레라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바로티가 부른 ‘네쑨 도르마’야말로 압권이었지요.
그는 지난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상업적 성악가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파바로티가 뛰어난 테너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지요. 그는 현재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막 클래식에 눈 떠가는 당신은 오페라 ‘투란도트’ 전곡 음반보다는 파바로티의 앨범으로 ‘네쑨 도르마’를 접하는 게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클래식]토스카니니 삶과 예술(上) -생은 괴팍했고 지휘는 완벽했다-
이탈리아 중·북부에 ‘파르마’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밀라노보다 조금 아래쪽입니다. 스탕달이 말년에 썼던 소설 ‘파르마의 수도원’(1839)의 배경이지요. 이 소설은 ‘파브리스’라는 남자 주인공의 굴곡진 인생을 묘사하면서 당대 사회상을 함께 그려냅니다. 특히 파브리스의 ‘변화무쌍한’ 사랑 이야기는 소설 읽는 재미를 톡톡히 맛보게 해주지요. 파브리스는 스탕달이 ‘연애론’(1822)에서도 강조했던 ‘솔직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남자입니다. ‘적과 흑’(1930)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과도 비슷하지요.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무모하고 이기적인….
‘20세기의 거장’으로 불리는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가 바로 이곳 파르마 태생입니다. 그는 소설 속의 파브리스처럼 정말 ‘대책없이’ 뜨거운 사람이었지요. 이를테면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며 지휘봉을 부러뜨린다거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심하게 타박하면서 악보를 집어던지는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한번은 단원 가운데 한 명이 날아온 지휘봉에 눈이 찔려 상처를 입기도 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그는 마음 내키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다가도, 심사가 뒤틀리면 인상을 팍 쓰고 묵묵부답이기 일쑤였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당연지사 거절이었고, 맘에 안드는 작곡가나 지휘자를 함부로 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지요. 리스트를 “진지하지 못하고 모양이나 부리는 인간”이라며 비난했고,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대해서는 “바보, 무식쟁이들이나 좋아하는 오페라”라며 으르렁댔습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겠지요. 특히 가족, 그 중에서도 토스카니니를 평생 내조했던 아내 ‘카를라’는 항상 노심초사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양반, 정말 심각한 ‘가부장(家父長)’이었지요. ‘아내는 평생 한 명이어야 하지만 애인은 많을수록 좋다’가 그의 지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카를라의 극진한 내조를 받으면서 유명한 스캔들을 몇 개나 터뜨렸지요. 그렇지만 저는 토스카니니를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음악가 토스카니니’에 대한 평가는 그의 괴팍했던 성품이나 이기적이었던 일상과 별개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평가의 잣대 가운데 하나는 올바른 정치적 선택이었고, 또 하나는 음악적 완벽주의였지요.
토스카니니의 ‘솔직한 열정’은 괴팍함이나 이기심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독재자 무솔리니에 대한 ‘불굴의 저항’으로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지휘봉을 든 예술가가 ‘총칼’을 접수한 권력자에게 대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의 지휘자로 재임했던 15년 동안 한번도 ‘죠비네차(Giovinezza, 청년)’를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파시스트의 당가(黨歌)였지요.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를 공연하던 중, 파시스트 당원들이 ‘죠비네차’를 연주하라고 고함치자 토스카니니는 아예 지휘봉을 꺾어버리고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초연했던 1926년 4월15일, 라 스칼라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지요. 극장 안에서는 토스카니니가 끝까지 ‘죠비네차’를 거부하며 오페라를 지휘했고, 분기탱천한 무솔리니는 극장 밖에 거대한 군중을 모아놓고 비가 퍼붓는 가운데 선동연설을 펼쳤습니다. 예술과 권력의 한바탕 격전(激戰)이었지요. 이 ‘치열한 전투’가 가능했던 것은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였기 때문입니다. 무솔리니가 당대의 권력자였다면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대통령’이었지요. 물론 무솔리니는 맘만 먹으면 토스카니니를 죽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민심과 세계 여론이 두려웠겠지요.
1929년 토스카니니는 결국 라 스칼라의 지휘봉을 내려놓습니다. 그 후 무솔리니와 파시스트가 무너질 때까지 조국 이탈리아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지 않지요. 이후의 주무대는 뉴욕이었습니다. 1931년 잠시 귀국했다가 볼로냐에서 파시스트 당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후, 그 ‘거부’의 마음은 한층 굳어졌지요. 이른바 ‘음악적 객관주의’, 주관적 착색(着色)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전달해야 한다는 토스카니니의 신념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Beethoven Symphony #5 - Toscanini & Furtwangler
[당신의 클래식]토스카니니 삶과 예술(下) -신념이자 지론 “악보 그대로 연주하라”-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는 한 시대를 동시에 질주한 쌍벽(雙壁)이었지요.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두 사람의 이름은 여전히 어떤 ‘권위’의 상징입니다. 토스카니니는 1867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나 1957년 세상을 떴고, 푸르트벵글러는 1886년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해 1954년 눈을 감았지요. 이 두 거장이 20세기 전반기의 지휘계를 양분했다는 것에 적잖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그런데 음악적 태도와 지휘 스타일은 사뭇 달랐지요.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의 음악을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남긴 음악을 듣노라면, 분명히 강물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지지요. 푸르트벵글러는 이 막힘없는 흐름이야말로 시간예술의 요체(要諦)라고 여겼던 듯합니다. ‘흐르면서 움직여라, 그것이 곧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관점이지요.
그래서 그의 음악은 때로 급류처럼 휘몰아치다가 때로는 아주 느릿하게 흘러갑니다. 이 극단적이면서도 절묘한 완급의 배합이야말로 푸르트벵글러 음악의 매혹 포인트이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을 잠시 빌리자면 강렬한 포스(force)가 느껴지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물론 그 때문에 낭만성이 지나치다거나 주관적이라는 비판도 가끔 받지요.
토스카니니는 그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악보대로 연주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적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언제나 ‘악보’였지요. “연주는 재현이 아니라 재창조”라고 강조했던 푸르트벵글러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푸선생’이 감성과 직관을 따랐다면 ‘토선생’은 이성과 논리의 음악을 들려줬지요. 이른바 즉물주의(卽物主義), ‘있는 그대로’ 연주하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음악의 템포를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적어도 토스카니니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조지 셸(1897~1970)은 “(토스카니니는) 한 세대의 지휘자들이 숱하게 범한 제멋대로의 해석을 바로잡아 놓았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 엄정한 객관주의는 토스카니니의 음악이 건조하거나 딱딱할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을 부채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진 않지요. 그의 고향인 파르마는 이탈리아에서도 ‘오페라 귀명창’들이 많기로 유명했던 곳이었습니다. 성악가들이 이곳에서 공연하는 걸 가장 겁냈다고 전해집니다.
토스카니니는 이 고향에서 노래의 세례를 흠뻑 받으며 성장했지요. 그는 현악이든 관악이든 모든 연주자들에게 “노래하라”고 주문하곤 했습니다. 다만 “네 멋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그의 지휘에는 탄력과 리듬감이 넘칩니다. 또 낭만주의 해석자들이 길게 늘여놓은 음악을 원상 복구시켜놓은 까닭에 오히려 음악의 템포가 빠르게 느껴집니다.
그의 지휘봉은 길었습니다. 47㎝의 지휘봉을 애용했지요. 성질이 불 같았기 때문에 부러뜨리기 좋은 긴 지휘봉을 좋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오버 액션을 경멸했던 토스카니니의 지휘폼은 상당히 경제적이지요. 특히 그의 왼손은 윗옷의 두번째 단추를 거의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무뚝뚝한’ 왼손과 긴 지휘봉을 든 오른손이 동시에 올라가는 순간, 마침내 음악은 남성적 기백과 박력을 당당하게 뿜어내지요.
소니비엠지가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토스카니니, 더 마에스트로’(RCA)라는 DVD는 그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되는 영상자료입니다. 특히 토스카니니가 말년을 함께 보낸 NBC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에스트로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지요. 어느덧 80세 무렵의 노인이 된 그들이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아, 그는 정말 무서웠어요. 폭군이었죠. 하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는 거인이었어요.”
[당신의 클래식]므라빈스키 에디션-‘정중동’지휘봉의 카리스마
음악깨나 듣는다는 사람치고 구소련의 국영 레이블 ‘멜로디야’(Melodiya)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수많은 음악의 거장들이 멜로디야의 목록을 빛냈습니다. 특히 냉전 논리가 팽팽했던 20여년 전, 멜로디야의 원반(原盤)은 한국 애호가들에게 호기심 어린 컬렉션의 대상이었지요.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합니다. 소비에트의 붕괴가 빠르게 진행되던 그 시절에 음반 외판원 한 분이 사무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전집류 책이나 음반을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할부로 팔던 시절이었지요. 머리가 살짝 벗겨진 쉰살쯤 돼 보이는 그분이 제 앞에 CD 카탈로그를 좌악 펼쳐놓았습니다. 바로 거기에 40장으로 이뤄진 멜로디야 전집이 떡하니 버티고 있더군요.
멜로디야의 음원을 일본 빅터가 CD로 리마스터링한 전집이었습니다. 저는 결국 낚이고 말았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지름신’이 강림(降臨)했던 겁니다.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이끌고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지요. 가격이 자그마치 65만원. 한 학기 대학등록금이 100만원 조금 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지르고’ 말았지요.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88)는 구소련을 대표했던 상징적 지휘자입니다. 1938년 소비에트연방 지휘자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최정예 연주자들로 구성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단숨에 임명되지요. 그로부터 50년 동안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놓지 않았습니다.
키가 훌쩍 크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그는 정중동(靜中動)의 지휘 폼을 갖고 있었지요. 두 손은 웬만해선 가슴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손목만 까딱까딱 한다든가, 아무 동작없이 눈빛만으로 지휘하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긴 팔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확 터주는 커다란 포물선을 그려냅니다. 번쩍 치켜올라간 지휘봉이 위에서 아래로 직각으로 내리꽂히는 모습도 짜릿하지요. 부드러운 곡선과 절도 있는 직선의 교차. 그야말로 절묘한 음양(陰陽)의 배합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많은 음반들이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가 최근 발매한 ‘므라빈스키 에디션’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음반입니다. 46년부터 87년 사이에 이뤄진 실황을 10장의 CD에 차곡차곡 담은 이 전집은 므라빈스키의 음악적 생애를 오롯이 관통하지요. 모두 31곡.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 글라주노프 등의 러시아 작곡가들을 비롯해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드뷔시, 바르토크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레퍼토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므라빈스키가 사랑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모두 6곡이 담겼습니다. 특히 ‘교향곡 5번’은 생전의 므라빈스키가 즐겨 연주했던 곡 가운데 하나지요. 여든살을 눈앞에 둔 82년 실황. 므라빈스키 스스로가 “더 이상 손볼 곳이 없다”고 자부했던 연주입니다.
브릴리언트의 ‘므라빈스키 에디션’에서 아쉬운 부분은 딱 하나지요. 수록된 31곡 중 일부는 음질이 과히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수십년 전의 실황녹음을 ‘해상도’라는 기준으로 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듯합니다. 게다가 저렴한 종이 케이스를 사용하는 등 일체의 거품을 뺀 브릴리언트의 ‘착한 가격’이야말로 이 전집의 머리를 쓰다듬게 만드는 미덕입니다.
[당신의 클래식]정경화 협주곡 음반들
“한국 출신 연주자들 가운데 기억나는 사람은?” 유럽이나 일본으로 출장을 가서 음악깨나 듣는다는 ‘선수’들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곧잘 던집니다. 가장 많이 듣는 답변은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입니다. 열에 일곱은 이렇게 답하지요. 압도적인 빈도입니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의 음반가게 ‘해롤드 무어스’(Harold Moors)에 들렀을 때도 그랬습니다. 70살쯤 돼 보이는 주인장은 1970~80년대 ‘데카’에서 내놓았던 정경화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죄다 꺼내 놓았습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지요. 그리곤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더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입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그녀가 내년이면 벌써 60살. 세월이 빠르지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양인들을 매료시켰던 ‘현(絃) 위의 열정’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당시 서양인들은 스물을 갓 넘긴 그녀의 날카롭고 정확한 운궁(運弓), 무대를 가득 채우던 신들린 듯한 에너지에 매료되었지요. 70년 영국 런던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있었던 유럽 데뷔 무대.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 D장조’를 끝내자 대부분의 청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날 쏟아진 기립박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지요.
음반사 ‘데카’(Decca)가 이 ‘보물’을 놓칠 리 없었습니다. 정경화는 무대에서 선보였던 차이코프스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데카의 스튜디오에서 다시 연주합니다. 이 녹음은 이듬해 음반으로 세상에 나오지요. 앙드레 프레빈은 ‘어린’ 정경화를 충분히 배려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사운드를 끌어냅니다.
정경화도 밀리지 않지요. 후에 술회했듯이 “거기서 밀리면 끝”이니까요. 유럽과 미국 매스컴이 ‘동양의 마녀’라고 불렀던 22살 정경화의 뜨겁고 절박한 숨결이 오롯이 담긴 음반입니다. 저는 여기에 수록된 두 곡 가운데 차이코프스키보다는 시벨리우스의 ‘D단조’를 즐겨 듣습니다.
정경화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D장조’를 듣고 싶을 땐 81년 리코딩을 꺼내들지요. 이 역시 데카에서 나왔습니다. 이 음반은 그동안 정경화가 세상에 내놓은 리코딩 가운데 전문가들이 첫 손가락에 꼽는 수작(秀作)이지요. 샤를르 뒤트와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와의 협연. 멘델스존의 ‘E단조’가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그녀의 나이 33세. 절정에 이른 기량을 뿜어내지요.
음반 전문지들은 이 음반에 수많은 별을 던집니다. ‘그라모폰’ ‘클래식 CD’ ‘CD 리뷰’ ‘스테레오 리뷰’ ‘오베이션’ 등 전문지가 모두 별 5개를 안기지요. 각국의 음반 평점 데이터를 종합한 ‘클래식 CD 월드 베스트 가이드’(97)는 이 음반을 ‘준(準)명반’(Best Performance)으로 규정합니다. ‘준명반’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고지가 아니지요. 1923년부터 95년까지, 7만여장의 음반을 분석한 이 방대한 자료집은 1만장에 가까운 ‘괜찮은 놈들’을 추려냅니다. 그중에 준명반의 반열에 오른 것은 어림잡아 2~3% 정도에 불과하지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정경화의 연주를 꼽을 때 브루흐의 ‘1번 G단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 서정미 넘치는 협주곡을 두 번 녹음했지요.
첫번째는 73년 데카 리코딩. 루돌프 켐페가 지휘하는 로열필하모닉과의 협연입니다. 두번째 녹음은 50대에 접어든 90년 리코딩이지요. 데카를 떠나 EMI에서 내놓은 음반입니다. 베토벤의 ‘협주곡 D장조’를 함께 연주했지요. 클라우스 텐슈테드가 지휘하는 로열 콘체르트헤보와의 협연. 차분한 품격이 느껴지는 이 연주에도 호평이 쏟아집니다. ‘그라모폰’ ‘팡파레’ ‘스테레오 리뷰’ 등에서 망설임없이 별 5개를 안기지요. 이 음반 역시 ‘준명반’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는 20대의 팽팽한 에너지가 전해지는 73년 녹음을 즐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안전한 선택’을 권하고 싶군요. 81년 데카와 90년 EMI에서 각각 내놓은 두 음반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수작입니다. 국내에서 CD로 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악성’ 이 갈구했던 세계-
‘전원, 베토벤이 얼마나 갈구했던 세계였던가.’
음악평론가 이순열씨가 책을 냈습니다. 신문사 출판 담당기자의 책상 위에 1주일이면 수십권씩 쌓이는 신간 더미 속에서 그 책은 보일락 말락 조용히 숨어 있었습니다. ‘듣고 싶은 음악, 듣고 싶은 연주’(현암사)라는 단순하고 평범한 제목의 책이었지요. 자신의 주인을 닮았는지 덤덤하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자리로 가져와 이리저리 뒤적거렸지요. 그러다가 어느 페이지에선가 짧은 문장 하나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전원, 베토벤이 얼마나 갈구했던 세계였던가.’ 참으로 간단한 한마디였지요. 하지만 그 짧은 문장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굵은 연필로 밑줄을 그었지요. 누구나 쉽게 내뱉을 성싶은 평이한 문장. 하지만 말이나 문장의 ‘본질’은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달라지지요. 저는 이 책의 저자와 일면식도 없이 그저 1980년대 초반부터 그의 글을 읽어 왔을 뿐이지만, ‘평론가’라는 호칭조차 부끄러워 하는 그는 자고로 음악을 다루는 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던 음악계의 문사(文士)였습니다.
어느덧 73세에 이른 그는 ‘음악동아’의 편집장이었지요. 저도 80년대 초·중반에 이 잡지를 꽤나 열심히 읽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 잡지엔 수많은 필자들의 글이 실렸지요. 그중 가장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역시 ‘편집장 이순열’의 글입니다. 그것은 일본이나 미국 간행물에서 슬쩍 빌려온, 남의 글을 곁눈질한 ‘짜깁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글에는 무엇보다 체험에서 우러난 ‘진심’이 녹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그의 담백한 문체입니다. 음악듣기를 오히려 방해하는 요설(饒舌)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그 ‘담백함’은 진정한 애호가의 풍모를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그날 밤 오랜만에 베토벤의 ‘전원’을 들었습니다. 한 줄의 문장이 전해준 감흥이 여전히 혈관 속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브루노 발터가 수족(手足)과도 같은 콜롬비아심포니를 지휘하며 들려주는 ‘전원’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지요. 토요일, 일요일에도 ‘전원’을 들었습니다. 브루노 발터,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 조금씩 맛이 다른 그들의 ‘전원’을 들으며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주말을 보냈지요.
베토벤은 교향곡 5번 ‘운명’과 거의 동시에 6번 ‘전원’을 작곡했습니다. 귓병으로 한창 고생하던 1808년, 그의 나이 38세 때 써낸 음악이지요. 성격이 판이한 두 편의 걸작을 동시에 작곡했다는 사실 앞에서 ‘역시 베토벤’이라는 경외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5번은 ‘인간’의 드라마를 장중하고 영웅적으로 그려내지요. 반면에 6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성과 리듬으로 묘사합니다. ‘전원’이라는 제목도 바이올린 파트의 악보에 베토벤이 직접 써넣었습니다. 1악장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감정,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폭풍우, 5악장은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 모두 베토벤이 직접 표기한 악장 설명입니다. 본인은 “묘사라기보다 감정의 표현”이라고 강조했지만, 이 곡은 누가 보더라도 표제(表題)적이고 묘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요.
아마 당신도 이 곡을 여러번 들었을 겁니다. 1악장은 서두부터 상쾌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2악장은 물결치는 현악기로 막을 열고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새처럼 지저귀지요. 3악장에서는 농부들이 춤추고 노래합니다. 박력 넘치는 4악장에서는 저현(低絃) 악기들이 먹구름을 몰아오고, 팀파니와 트럼펫이 천둥치듯 작렬합니다. 마지막 5악장에서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로 돌아오지요.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콜롬비아심포니의 ‘전원’은 부드러운 서정미의 극치입니다. 토스카니니와 NBC심포니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정확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이 두 종의 음반을 다 들었다면, 푸르트벵글러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52년 연주를 맛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는 특유의 느리고 절제된 템포로 ‘숭고한 전원’을 창조합니다. 하나 같이 놓치기 아까운 명반들입니다.
[당신의 클래식]아바도가 지휘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6번 -‘비극’ 속에서도 당당한 열정-
드디어 연주가 끝났습니다. 지휘자 아바도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구스타프 말러가 스스로 ‘비극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교향곡 6번. 자그마치 89분에 달하는 긴 항해였습니다. 무대와 객석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포디엄에 선 아바도는 솟구치는 격동을 어쩌지 못하는 눈빛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바라봅니다. 울음을 겨우 참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렇게 10초가량의 정적이 흐르고, 객석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브라보!”를 외칩니다. 이어서 터지는 박수소리.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짜릿해집니다.
지난해 8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루체른에서 열렸던 연주회.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74)가 2003년 자신이 창단했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말러의 교향곡 6번을 연주했습니다. 저는 며칠 전 국내에 출시된 DVD를 통해서야 당시의 감동을 맛봤지요. 비록 현장에서 확인한 실연(實演)은 아니었지만, DVD를 통해서도 그 벅찬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아바도의 승리였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아바도는 2000년 위암 수술을 받았지요. 1989년 타계한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던 그는 건강 때문에 포디엄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아바도의 병세를 둘러싼 소문은 흉흉했습니다. 외신을 통해 가끔 접할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몰골’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깡마른 데다 두 눈이 퀭했지요. 하지만 그는 2001년 5월 프랑스 ‘르 휘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만이 나를 구해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 때문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처럼 아바도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말러’로 돌아왔지요. 아바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말러 스페셜리스트’입니다. 32살이었던 1965년 독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데뷔 무대에서 빈필하모닉을 지휘하면서 선보였던 곡이 바로 말러의 2번 ‘부활’이었지요. 89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후 첫 콘서트에서 연주했던 곡은 말러의 1번 ‘거인’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해마다 빼놓지 않고 말러를 연주했지요. 건강 탓에 베를린필의 예술감독을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게 됐을 때 고별 콘서트에서도 말러의 ‘7번’을 연주했습니다. 아바도는 그렇게 음악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말러와 함께 했습니다.
번호가 붙지 않은 ‘대지의 노래’까지 포함하면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입니다. 11번째 곡인 ‘10번’은 미완성입니다. 그중에서도 ‘6번’은 말러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걸작이지요. 관악기와 타악기의 배치가 유난히 두드러진 이 음악은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극’입니다. 행진곡풍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1악장 첫번째 주제에서 이미 ‘비극적 좌절’을 예견하지요.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2주제에서 돌연 환한 햇살이 비쳐들지만 결국엔 이 햇살마저도 고독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이 거대한 교향곡의 정점은 4악장이지요. 해머가 두 차례 커다랗게 작렬하는 순간, 삶은 순식간에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쾅! 하면서 지축을 울리는 듯이 터져나오는 해머의 격렬한 음향은 인생의 어느 길목에선가 느닷없이 만나는 운명의 타격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고령(高齡)의 아바도는 ‘암’이라는 운명의 강펀치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창 투병 중이던 2003년부터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매년 말러의 교향곡을 한 곡씩 연주했지요. 2번, 5번, 7번이 이미 DVD로 국내에 나와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6번’이 더욱 특별한 것은 아바도의 환한 표정 때문입니다. 속단은 어렵겠지만 그는 이제 병마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이제 ‘비극’을 지휘하면서도 당당합니다. 암을 이기고 포디엄에 다시 선 74세의 마에스트로. 그에게서 전해오는 정신의 강인함 때문에 음악의 감동이 한층 크게 울려옵니다.
Mahler - Symphony 6 - Claudio Abbado - Lucerne Festival 2007
[당신의 클래식]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무더위 확 날려줄 청량한 선율-
당신은 재즈도 듣는지요? 지금까지 주욱 클래식 얘기만 해온 ‘당신의 클래식’에서 “갑자기 웬 재즈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클래식과 재즈는 태생적으로 ‘갈 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클래식은 기본적으로 악보에 충실한 음악이지요. 말하자면 그것은 ‘작곡가의 음악’에 가깝습니다. 반면에 재즈는 순간의 감흥, 즉 즉흥(Improvisation)을 중시합니다. 다시 말해 작곡가보다 ‘연주자의 음악’인 셈이지요. 물론 클래식에도 즉흥곡(Impromptu)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슈베르트나 쇼팽의 ‘즉흥곡’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작곡가의 즉흥일 뿐, 연주자가 ‘내 맘대로’ 연주할 수 있는 즉흥은 아니지요.
저는 재즈를 종종 듣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폭염이 내리쬘 때 자주 듣습니다. 이럴 때 기타리스트 짐 홀(77)의 ‘유칼리’(Eucaly)를 들으면 한 잔의 아이스 커피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지요. 빠르게 반복되는 리듬의 폭포, 테니스광으로 알려져 있는 짐 홀의 힘찬 프레이즈가 열기에 휩싸인 몸에 찬 물을 부어주는 느낌입니다.
짐 홀은 생존해 있는 거장이지요. 며칠 전 드러머 맥스 로치가 82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이제 거장급으로 누가 살아 있나 헤아려 보면,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77)와 더불어 짐 홀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짐 홀이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와 함께 연주했던 ‘언더커런트’, 소니 롤린스와 함께 했던 ‘더 사운드 오브 소니’ 같은 앨범들은 재즈깨나 듣는다는 애호가들의 콜렉션에서 빠질 수 없는 음반들이지요. ‘유칼리’는 퓨전 스타일에 가까워 오히려 외면받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위를 날리는 데 이만큼 적절한 음악은 별로 없지요.
여름은 클래식의 불황기입니다. 연주회 횟수는 줄고 음반 매출도 떨어지는 계절이지요. 하지만 클래식에도 ‘시원한 음악’은 있습니다. 지난 4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아시아필하모닉의 연주회. 정명훈이 지휘하는 이날의 콘서트에서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이 연주됐지요. 오늘 당신에게 권할 음악이 바로 이 곡입니다. 여름날의 선곡으로 더없이 어울리는 음악이지요. 특히 트럼펫이 행진곡을 연주하듯 시원스레 뻗어가는 4악장은 가슴이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지난 14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도 이 곡이 연주됐습니다. 터키에서 온 안탈랴교향악단의 연주회였지요. 안탈랴는 터키에서 서너번째 규모를 가진 도시라고 합니다. 안탈랴교향악단은 터키의 다섯 개 국립교향악단 가운데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연주하는 드보르자크 ‘8번’은 섬세한 맛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쭉쭉 뻗어나가는 금관의 활달함은 상당히 들을 만했지요.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약간 흔들린, 관악기 위주의 사운드였습니다. 속단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투르크족 오케스트라의 ‘개성’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담배를 같이 피우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몇마디 얘기를 나눴지요. 한국과 터키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라고 하더군요. 23일 진주, 24일 경주에서도 연주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드보르자크 ‘8번’을 선곡한 것도 여름 때문이었을 겁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가운데 9번 ‘신세계로부터’에 이어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1악장은 첼로, 클라리넷, 호른의 선율로 시작합니다. 이 첫번째 주제에는 보헤미아적 우수가 담겼지요. 그러나 이 우아한 알레그로 템포는 잠시 후 저음의 현악기들이 뽑아내는 서늘한 행진곡풍 리듬으로 바뀝니다. 이어지는 2악장에는 숲속에 들어선 듯한 청량감이 가득하지요.
3악장 머리에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주제는 ‘8번’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구(樂句)입니다. 그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노래’에는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기고 말지요. 트럼펫에 이어 첼로가 춤추는 듯한 주제를 연주하는 4악장.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다 마침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콜린 데이비스가 런던심포니를 지휘한 필립스(Philips)음반, 라파엘 쿠벨릭이 베를린필하모닉과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 등을 지휘한 도이치그라모폰(DG)음반이 들을 만합니다. ‘8번’뿐 아니라 ‘7번’, ‘9번’이 함께 담긴 CD 2장짜리 음반들입니다. 드보르자크의 고국인 체코의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도 만나볼 필요가 있지요. 바츨라프 노이만이 체코필하모닉을 지휘했습니다.
[당신의 클래식]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연주자들
‘콘서트 고어’(Concert Go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주회장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반면에 음반을 수집하면서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을 ‘레코드 컬렉터’(Record Collecter)라고 부릅니다. 좋은 연주를 수록한 음반이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요. 음악 애호가 집단을 단순하게 구분한다면, 대략 이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콘서트 고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쓸데없는 짓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음악이란 결국 시간예술이고,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만이 감상의 정도(正道)라는 관점이지요. 연주자들 가운데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1964년에 36세로 요절한 재즈 관악기 연주자 에릭 돌피는 “연주가 끝나면 음악은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말했지요. 그는 자신의 레코딩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3년 전 타계한 명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녹음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요. 덕분에 그가 남겨놓은 베토벤 교향곡 ‘5번’ ‘7번’ 등은 ‘명반’ 혹은 ‘준명반’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물론 연주 자체도 훌륭하지만, 희소성이 한 몫한 덕분이기도 하지요.
레코드 컬렉터들 중에도 ‘오로지’ 음반으로만 음악을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연주회장의 실황보다는 음반과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더 빠져들지요. 수년 전 프랑스 파리의 음반 벼룩시장에서 한 50대 남성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을 재즈 애호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에게 “오늘 저녁에 올림피아 극장에서 소니 롤린스 연주회가 있던데요. 저는 거기 갑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 “난 연주회장에 가지 않아요. 오직 음반으로만 들어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군요.
저도 음반 수집과 오디오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30대 때였습니다. 한 10년 동안 오디오 바꿈질을 반복했고, 이른바 ‘오디오 파일용 음반’이라고 부르는 음질이 뛰어난 CD들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서 그만두었습니다. 첫번째는 경제적 이유였고, 두번째는 취향이 변한 탓이었지요.
그 10년 동안 저도 연주회장을 찾아다닌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즐겨 찾습니다. 그렇다고 오디오를 내다버린 것도 아니지요.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정착한, 저렴한 가격의 낡은 오디오를 애장하고 있지요. 음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요즘엔 음질 좋다는 CD에 별로 관심이 가질 않습니다. 직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있는 LP의 음색에 오히려 마음이 끌리지요. 또 기계적으로 잘 편집된 고해상도 음반보다는, 연주자의 실수와 객석의 기침소리, 박수소리와 환호성까지 생생하게 담긴 실황음반에 애착이 가곤 합니다.
최근 네덜란드의 ‘브릴리언트’에서 내놓은 ‘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연주자들’은 100장의 CD로 이뤄진 전집입니다. 그런데 반가운 것은 그 100장 모두가 실황 음원이라는 사실입니다. 러시아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유하고 있던 음원을 브릴리언트가 라이선스로 출반한 것이지요. 저는 요즘 이 CD들을 하루에 한 장씩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수록된 연주자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국보급’들입니다. 일단 러시아 피아니즘의 쌍벽으로 꼽히는 스바아토슬라프 리히터와 에밀 길렐스의 실황음반들에 먼저 손길이 갑니다. 두 사람은 네이가우스(피아니스트 부닌의 조부) 밑에서 피아노를 같이 배운 ‘동문’입니다. 서방세계로 먼저 진출했던 이는 길렐스였지요. 하지만 뒤이어 진출한 리히터가 오히려 더 인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소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경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 시대를 공존한 라이벌임은 분명합니다. 이밖에 3장의 CD에 담긴 라자 베르만의 리스트 연주, 1990년 카네기홀 공연 이후 서방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예프게니 키신의 10대 시절 연주도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음원들입니다.
피아노의 리히터와 길렐스처럼, 바이올린에서 쌍벽을 이뤘던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는 각각 10장의 CD에 담겼습니다. 물론 첼로의 라이벌도 있지요. 얼마 전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와 97년 세상을 떠난 다닐 샤프란이 그 주인공입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호방하고 음량이 풍부한 첼로를 들려준 반면에, 샤프란은 섬세한 ‘시인’의 연주를 들려줬지요.
당신이 ‘음질’을 중시한다면 이 전집을 선택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연주실황이 담긴 탓에 어떤 음원들은 음질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음질보다 러시아 거장들의 ‘생생한 육성’을 원한다면, 장당 약 2000원의 ‘착한 가격’에 이만한 연주를 만나기 어려울 성싶습니다. 국내시장에서는 이달 20일 이후에 판매된다고 합니다.
Lazar Berman - Chopin`s Polonaise op.44.Live 1992 Viktor Tretyakov plays Saint-Saens Rondo Capriccioso
CD 1 - 5 : Sviatoslav Richter, piano
CD 6 - 21 : Emil Gilels, piano
CD 22 – 28 : Lazar Berman, piano
CD 29 - 37 : Evgeny Kissin, piano
CD 38 - 57 : David Oistrakh, violin
CD 56 - 67 : Leonid Kogan, violin
CD 68 - 73 : Viktor Tretiakov, violin
CD 74 – 83 : Gidon Kremer, violin
CD 84 - 93 : Mstislav Rostropovich, cello
CDs 94 - 100 : Daniel Shafran, cello
~ 문학수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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