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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 Art

by Wood-Stock 2009. 4. 21.

섹스가 없다면 예술이 있었을까

음악, 소설뿐이겠는가, 과학자들도 성적으로 왕성한 시기에 가장 정력적인 활동 펼쳐

 

문학과 예술, 과학을 잉태하는 원동력은 섹스다?

 

“그는 똑똑하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어요, 호호.” 어느 인터뷰에서 백남준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가 ‘인간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질문에 한 대답이다. 만약 이 말을 덴마크의 과학 저널리스트 토르 뇌레트라네르스가 들었다면, 그는 ‘남성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며 그것이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라고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성적 억압을 투영하는 게 예술? 오, 노!

 

그는 자신의 저서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에서 예술가들이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를 ‘섹스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단언한다. 1997년 영국의 전자음악가이자 음악이론가인 브라이언 이노가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창작하지 않는 인간 무리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예술을 창작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러한 충동의 본성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는 “인간은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남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연의 진화는 인간에게 사치스러울 만큼 거대한 뇌를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이 없다면 예술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그림들과 서점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소설들. 이 예술작품들의 대부분은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예찬하고, 사랑에 절망한다. 극장과 전시장,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인들이며(여기에는 결혼한 부부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음악회나 전시회의 주된 고객이 미혼의 커플들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돈과 시간을 겸비한 노부부들이 더 많다), 흥미롭게도 예술작품을 왕성하게 창작하는 예술가들 역시 사랑과 섹스가 아니었다면 그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섹스 에너지가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100년 전,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승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예술과 과학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창조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성적 에너지가 왕성한 데 비해 그것을 발산하고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었거나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분의 에너지를 예술을 창조하고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자신의 책 <메이팅 마인드>에서 했던 주장은 프로이트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그는 인간이 억압된 성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예술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선택받고 섹스를 즐기기 위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그는 대부분의 문화적 표현은 성선택이 당면 과제인 시기에 가장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세상의 모든 화가와 재즈 연주자, 소설가들은 배우자 선택이 코앞에 닥친 2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초반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걸작을 남긴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가장 활력이 넘치고 놀라운 재주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섹스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밀러가 덧붙인 유머가 걸작이다. 밀러는 대중이 볼 수 있는 모든 공연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공연자는 성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에 있는 젊은 남성입니다.’

 

평생 연구하려면 결혼하지 마라?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섹스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고 소설을 쓴다는 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예술가는 많지 않겠지만, 자신의 창작 에너지가 섹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이론의 문제는 여성의 창작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술적인 창조성이 여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주장에는 진화심리학자들도 동의하기 어려울 텐데, 그렇다면 여성들이 걸작을 남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사회학과의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는 밀러의 이같은 주장이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280명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는 그들이 가장 왕성한 연구활동을 보인 시기가 언제인지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성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진화와 인간 행동>이란 저널에 발표된 이 논문의 결과를 여기까지만 본다면, 성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시기가 지적으로도 가장 왕성한 시기이며 또한 이 시기는 ‘박사후 연구원과 조교수’ 시기와 맞물려 종신재직권을 얻기 위해 가장 열심히 연구를 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니 섹스나 결혼과 결부시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더욱 놀랍게도 미혼인 경우에는 노년기까지 생산적인 생활을 유지했으나 기혼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수록 연구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결혼을 한 뒤에는 더 이상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이유가 없어 과학자들이 굳이 열심히 연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첨언하자면, 사실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위대한 연구는 대부분 선행 연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노벨상을 탄 업적을 낸 연구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흔히 20대 젊은 나이에 이루어졌을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36~38살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결혼을 한 과학자들, 너무 상심 마시라.

 

가난한 예술가와 센스 없는 부자 중 고른다면

 

한편, 남성 예술가들의 뛰어난 창조성이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앤젤레스 소재)의 마티 해즐턴 박사는 사랑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데, 제프리 밀러와 함께 ‘창조성의 구애능력이론’을 검증한 바 있다. 이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다양한 남성상에 대한 설명을 들려준 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짝을 고르도록 했다. 개중에는 창조적인 예술가적 기질이 있지만 가난한 남자가 있는가 하면, 돈은 많지만 예술적인 재능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성들은 돈이 아닌 예술가적 재능에서 매력을 찾았다는 것이 그들의 연구 결과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토르 뇌레트라네르스가 든 비틀스의 예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비틀스 초기 공연 시절의 전기작가였던 마크 헤르츠가드의 글을 이렇게 전했다. “비틀스는 하룻밤에 예닐곱 명의 여자를 돌려가며 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존이 ‘다음!’이라고 외치면 각 멤버는 명령에 따라 파트너를 바꾸었다.” 우리의 위대한 비틀스가 그처럼 영감 어린 곡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 진정 이런 이유 때문이란 말인가!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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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남자는 모르는 237가지 비밀…그녀는 왜 하는가?

기사입력 2010-09-17 오후 6:45:46

 

지하철에서 이 책을 꺼내 읽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라는 기이한 제목을 단 책을 탐독하는 변태로 여겨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의 시간에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데이비드 버스 지음,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공저자이자 내 스승인 미국 텍사스 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버스를 언급하면서 정작 그의 최신 저서가 얼마 전에 번역·출간되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책 제목만 들은 학생들이 그 제자인 나까지(?)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여자든 남자든 섹스를 하는 이유는 빤하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쾌락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을 사랑해서, 혹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다.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성의 성애를 연구하는 심리생리학자 신디 메스턴과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5년에 걸쳐 3000명이 넘는 피험자를 조사한 대규모 협력 연구를 통해 여성의 복잡하고 다양한 성적 동기 237가지를 밝혀냈다.

빈번하게 언급된 동기로서 "섹스가 즐거워서", "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상대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외모에 반해서" 등이 있었다.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동기로서 "에이즈나 헤르페스 같은 성병을 옮겨주기 위해", "두통을 없애려고",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직업을 얻기 위해", "관계를 끝장내려고", "섹스를 하면 돈을 준다기에", "내기에 져서", "강제로 복종 당하고 싶어서",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경쟁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이어트 하려고", "나 자신을 벌주기 위해", "남편이 하도 들볶아서" 등이 있었다. 이 책은 다채롭기 그지없는 여성의 성행위 동기 237가지를 상대방의 특성, 성적 쾌감, 정서적 유대, 정복, 질투, 의무감, 자부심 상승, 교환 등 열한 가지 묶음으로 크게 나눈 다음, 각각의 묶음들을 진화 이론, 임상 의학, 심리학, 생리학 등의 이론 틀로 상세하게 분석한다.

▲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신디 메스턴·데이비드 버스 지음,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실제로 섹스를 한 이유를 생생하게 털어놓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실으면서 심리생리학과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분석을 절묘하게 맞물려 놓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저자들은 일반인 독자가 어렵고 생소한 과학 설명에 지레 움츠러들지 않고 구체적인 실제 사례와의 접점을 스스로 깨우치게끔 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자원을 얻는 대가로 섹스를 허락하는 교환 행위의 한 가지 예로 저자들은 다음 반응을 든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반대할 것 같으면 섹스를 해 줍니다. 그를 설득하거나, 방임 하에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 수를 쓰는 거죠." – 이성애자 여성, 31세 (271쪽)

"여자라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배우자를 성적으로 즐겁게 해 줘야 하는 상황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어디 가서 저녁을 먹을지 결정하는 일부터 말이죠." – 이성애자 여성, 25세 (272쪽)

이토록 생생한 목소리를 들은 독자들은 성을 매개로 자원을 얻는 교환 행위는 정직한 연애 혹은 매춘으로 딱 부러지게 경계를 짓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결론에 기꺼이 동의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의도가 여성이 왜 섹스를 하는가 살펴보기 위함이니만큼, 여성의 성행위 동기들을 열한 가지로 세분한 다음에 장마다 설명을 담는 형식이 아마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인지 필자로선 이 책이 하나의 단일한 이론 틀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야무지게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

특히, 두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저술한 게 아니라, 각자 업무를 나누어 어떤 장은 메스턴이 맡고 어떤 장은 버스가 맡는 바람에 진화심리학과 심리생리학의 유기적인 결합은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어떤 장은 진화심리학 설명이 대세이고 다른 어떤 장은 심리생리학 설명이 대세임을 눈치 챘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진화심리학과 심리생리학이 번갈아 나오는 코스 요리이지, 두 학문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상승효과를 내는 창조적인 퓨전 요리는 아니다.

성적 희열과 오르가슴을 논의하는 2장('그 짓의 즐거움')을 예로 들어보자. 저자들은 (사실은 메스턴)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하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부, 젖가슴, 생식기, 음핵, 질의 생리적 변화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오르가슴에 따른 심리적 변화, 오르가슴을 잘 느끼는 방법, 일부 여성들이 오르가슴 장애를 겪는 까닭도 친절히 알려준다.

하지만,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한 진화적 설명은 2장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두세 쪽에 걸쳐 언급될 뿐이다. 그전의 심리생리학 부분에서 나오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예컨대 여자는 삽입 성교보다 음핵 자극을 통해 훨씬 더 쉽게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오르가슴을 누리는 방법을 열심히 학습해야 한다 등–을 그냥 나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 사실들을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할지 함께 논의했더라면 더 유익했을 것이다.

메스턴과 버스는 종종 미묘한 불협화음도 낸다. 저자들이 머리말에서 밝히는 대로, 오스틴 소재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건물에서 메스턴 심리생리학 실험실과 버스 진화심리학 실험실은 바로 이웃해 있다. 두 저자는 무척 친한 사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신디 메스턴은 여성의 성행동 장애를 주로 탐구하는 심리생리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일 뿐, 인간 심리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자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메스턴이 주로 쓴 것으로 보이는 몇몇 장들에서 진화적 설명은 그저 고만고만한 여러 설명 가운데 하나로 건조하게 취급될 뿐이다. 예컨대 6장('의무감')에서 저자는 대개 남편이 아내보다 섹스를 더 바란다고 전제한 다음에 "남자들이 더 높은 성 충동을 갖도록 진화했고, 섹스를 주도하면서 더 편안함을 느끼도록 사회화되었다면 불가피하게도 여자들은 원하지 않는 섹스에 응해야 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205쪽)라고 설명한다. 다른 곳에서 저자는 "여성들은 보살피는 사람이 되도록 사회화된다"(209쪽)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인간 행동을 설명하고자 할 때 본성과 양육의 이분법을 일단 높이 설정하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설명 방식이다. 즉, 성 충동을 만드는 호르몬이나 뇌의 배선 양식은 어느 정도 생물학적 진화에서 기인할지 몰라도 본성의 영향력은 거기에서 멈춘다. 인간이 정작 어떤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사회화되느냐에 따라 최종적인 행동 결과물은 양육에 의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른바 '빈 서판 주의(Blank slatism)'이다.

메스턴은 인간 행동이 사회화나 학습, 문화에 의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할 연구 대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섹스를 주도하게끔 사회화되기 쉬운지, 왜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을 잘 보살피게끔 사회화되기 쉬운지는 궁극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에서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할 현상들이다.

진화심리학자인 필자로서는 데이비드 버스가 주로 쓴 것 같은 장들이 어쩔 수 없이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인간 성행동의 진화심리학 연구 내용은 버스의 저서 <욕망의 진화>(전중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같은 여러 책을 통해 국내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지식이 또 재탕 되지나 않았을까 봐 우려되어 책을 선뜻 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다행히, 버스는 배란 주기에 따른 여성의 욕망 변화 같은 최신 연구 성과들을 충실히 반영하여 여성의 성행동에 대한 한층 더 새롭고 흥미로운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다. 특히 1장('여자는 무엇에 흥분하는가?')는 국내에 번역된 다른 어떤 진화심리학 대중서보다 여성의 배우자 선호에 대해 가장 신선하고 업데이트된 설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성들은 연인을 고를 때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는다든지, 여성들은 어깨 대 엉덩이 비율이 높은 이른바 V자형 몸통에 성적으로 끌린다든지, 노래 잘하는 남성보다 바리톤의 그윽한 저음 목소리를 가진 남성에 더 끌린다든지 등의 발견들은 남녀 독자들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공할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여성이 섹스하는 수많은 이유들에 대해 진화 심리학과 심리 생리학의 관점에서 유쾌한 설명을 제공한다. 두 학문적 시각이 완전히 섞이고 어울리기보다는 종종 서로 데면데면하게 따로 논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모두 궁금해 하는 주제에 대해 부담 없이 한 번 쭉 훑어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물론 버스나 지하철에서 대놓고 펼쳐 읽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한국 여성 100명에게 '왜 하느냐' 물었더니…

"왜 섹스를 합니까?"

이 도발적인 질문에 한국의 20~40대 여성의 46%는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라고 답했다.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을 확인하기 위해서"(36%), "남편, 남자친구가 졸라대서 할 수 없이"(22%),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서"(20%) 등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프레시안 books'와 사이언스북스가 여론조사 전문 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20~49세 여성 100명에게 '여성이 섹스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 조사는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출간에 맞춰 이뤄진 것이다.

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들이 섹스를 하는 이유로 많이 답한 응답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46%),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 확인을 위해서"(36%), "남편, 남자친구가 졸라대서 할 수 없이"(22%),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거나 표현하기 위해"(20%) 등이 많았다.

이런 한국 여성의 응답은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에서 많이 언급된 성적 동기와 일부 겹친다. 버스, 메스턴 교수의 연구에서도 여성은 "상대에게 애정을 느껴서",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등의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한국 여성의 소수 응답도 흥미롭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6%), "아이 출산을 위해서"(3%), "화해하기 위해서"(2%), "스트레스 해소"(2%). "남편과의 유대감 강화, 부부의 삶을 유지해 주는 수단이므로"(2%),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1%), "다이어트"(1%), "나도 여자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1%) 등의 응답이 있었다.

연령대별로 살펴본 성적 동기의 차이도 흥미롭다. 20대 여성은 "육체적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51.6%), 30대 여성은 "남편, 남자친구와 애정 확인을 위해서"(45.7%), 40대 여성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11.8%)라고 답한 비율이 다른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40대 여성은 다른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섹스를 하는 이유도 좀 더 다양하게 응답했다. "화해하기 위해서"(5.9%), "스트레스 해소"(5.9%), "남편과의 유대감 강화, 부부의 삶을 유지해 주는 수단이므로"(5.9%)와 같이 섹스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9일에서 11일 사이 20세에서 49세 여성 100명(20~29세 : 31명, 30~39세 : 35명, 40~49세 : 34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이들 100명은 질문("여자가 섹스를 하는 이유")에 복수로 응답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9.8%P이다.

/전중환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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