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 Culture/과학, 기술, 환경

Watt Balance

by Wood-Stock 2013. 6. 29.

1에 대한 재정의당신의 질량이 달라진다

한국형 와트저울’ 2015년 완성

 

한치의 오차도 없이 1킬로그램을 재려는 와트밸런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2015년초부터 본격적으로 와트저울을 구동해 측정값을 낼 예정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보관돼 있는 질량(킬로그램)원기. 프랑스 파리 국제도량형국(BIPM) 금고에 들어 있는 원본을 복제한 복사본이다. 공기와 접촉을 막으려 여러 겹의 유리 뚜껑이 덮여 있다. 그럼에도 질량원기 원본과 각국에 보급돼 있는 복사본의 질량에 미세한 차이가 발생해 과학자들이 질량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에 나섰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올해 말 완공 예정인 대전 대덕연구단지 안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첨단동에는 무게 수십톤의 콘크리트 블록이 설치된다. 콘크리트블록 밑에는 사람 발걸음같은 미세한 움직임조차 흡수해 진동 제로를 만들 초정밀 에어스프링이 깔린다. 이 육중한 콘크리트블록 위에는 내년말까지 정확히 1킬로그램()의 값을 구하려는 와트밸런스(저울)’가 완성될 예정이다. 와트저울을 이용한 새 질량원기 구축 프로젝트책임을 맡고 있는 표준과학연구원의 김진희 박사는 “2015년초부터 본격적으로 와트저울을 구동해 측정값을 내기 시작하면 다다음 국제도량형총회가 열리는 2019년에는 앞서 연구를 시작한 다른 나라 연구팀과 어깨를 견줄 만한 결과값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표준과학연구원의 와트저울 연구는 2011년부터 시작됐다. 미국 국립표준연구소(NIST)20여년 전, 프랑스 국립실험연구소(LNE), 스위스 연방계량인증국(METAS) 등이 10여년 전에 시작한 데 비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와트저울 연구의 출발점은 가깝게는 1988, 멀게는 1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말 길이 1미터(m)가 프랑스 파리를 지나는 지구 자오선의 북극에서부터 적도까지 거리를 1000만분의 1로 나눈 값으로 정의되고, 1m100분의 1을 각 변으로 하는 입방체에 채운 증류수의 질량이 1g으로 정의됐다. 1901년에 열린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질량의 단위를 킬로그램()으로 바꾸고, 백금과 이리듐을 91로 섞은 합금을 국제킬로그램원기(국제질량원기)로 만들어 파리 근교 국제도량형국(BIPM) 금고에 보관했다. 질량원기는 높이와 지름이 각각 39인 원기둥(실린더)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표면적을 가지면서도 운반 등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각 나라는 이 원기의 복사본을 받아 국가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대한제국 시절과 1990년대에 들여온 3기의 원기가 있으며, 이 가운데 하나를 국가원기로 쓰고 나머지를 보조원기로 활용하고 있다. 표준과학연구원 금고에 들어 있는 원기는 일년에 한번 점검을 위해 꺼내어지거나 눈으로만 확인하며, 정기적으로 프랑스로 보내져 점검을 받는다.

 

와트저울은 질량을 나타낼 수 있는 상수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됐다

2015년이나 2019년에 질량의 재정의가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국제질량원기는 지금까지 네 번 금고 밖으로 나왔다. 문제는 마지막 외출인 1988년 때 발생했다. 원기와 복사본을 비교해보니 질량 차이가 점점 벌어져 최대값이 100(마이크로그램·1100만분의 1g)에 이르렀다. 원인은 공기 중 가스나 불순물이 달라붙거나, 애초 합금에 있던 기공이 빠져나가서일 것으로 추정된다. 손가락이 남기는 지문의 질량이 50정도인 걸 보면 일상에서 이 정도 차이가 말썽을 일으킬 일은 없다. 하지만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측정과학자들로서는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국제적으로 측정의 기본단위로 삼은 7개 국제단위계(SI) 가운데 길이(m), 시간(·s), 온도(켈빈·K), 전류(암페아·A), 물질량(·), 광도(칸델라·) 등은 이미 변할 수 있는 원기 대신에 불변의 자연상수를 바탕으로 재정의됐다. 가령 애초 질량원기처럼 합금으로 만든 길이원기를 기준으로 하던 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정의가 바뀌었다. 지구를 원기로 삼아 평균태양일(지구가 한번 자전하는 평균시간)86400분의 1”로 정의됐던 초는 세슘(Cs)-133 원자의 바닥상태에 있는 두 초미세 준위 간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9192631770 주기의 지속시간으로 바뀌었다.

 

2011년 측정과학자들은 질량도 변하지 않는 물리기본상수로 재정의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길이나 시간이 빛의 일정한 속도를 기준으로 재정의되고 빛의 속도를 10-16까지 측정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질량의 기준이 될 만유인력 상수(G)는 현대 기술로 정밀하게 측정하기가 힘들다. 과학자들은 질량의 정의를 킬로그램은 질량의 단위이며,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과 같다에서 킬로그램의 크기는 Js(·) 단위로 나타낸 플랑크 상수의 값이 6.626068……×10-34가 되도록 고정하여 정한다로 바꿨다. 생략된 숫자(……)와 새로운 정의를 실현할 기술은 공백 상태다. 표준과학연구원의 와트저울 연구는 이 공백 메우기 작업의 하나다.

 

질량원기를 대체할 과학자들의 아이디어 가운데 유력한 대안으로 좁혀진 것은 아보가드로 상수 방식과 와트저울 두 가지다. 2005년 국제도량형위원회(CIPM)는 질량 재정의를 위한 세가지 조건(가이드라인)을 내걸었다. 핵심은 두 가지 방식에서 비슷한 결과 값이 나와야 한다는 것과 오차가 1억분의 2 정도로 정밀한 값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보가드로 상수는 실리콘으로 1짜리 공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실리콘 원자 개수를 정하자는 발상이다. 영국, 독일, 캐나다 등이 중심이 돼 연구했지만, 실리콘 원자에 세가지 동위원소가 존재하고 이들의 비율을 정확히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벽에 부닥쳤다. 과학자들은 옛 소련의 우라늄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실리콘 동위원소 가운데 하나(Si28)를 농축한 공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제작비가 너무 비싸 여러 국가의 과학자들이 연합한 뒤에야 실리콘 공 2개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방식으로 도출한 값은 현재 국제도량형위원회의 제시값에 많이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와트저울은 중력이 하는 일과 전기가 하는 일을 비교해 질량을 나타낼 수 있는 상수를 측정해내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됐다. 와트(W)는 단위시간 동안 한 일의 양을 나타내는 일률의 단위를 의미한다. 저울 한쪽에 질량을 잴 물체(분동)를 놓는다. 이로 인해 생긴 중력 때문에 저울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전자기력을 발생시켜 평형을 이루게 한다. 질량은 만유인력 상수를 몰라 측정하기 어렵지만, 질량과 상쇄된 전자기력은 현대의 기술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와트저울로 하려는 일은 중력과 전자기력이 균형점을 이룰 때의 고정값인 플랑크 상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국립표준연구소는 국제도량형위원회의 값에 근접한 결과를 내어놓았다. 과학자들은 이르면 2015년이나 2019년에 열리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질량의 재정의가 채택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뒤늦게나마 와트저울 연구에 나선 것은 이런 국제적 논의와 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김진희 박사는 표준과학연구원이 세계 7대 표준기관으로 평가받으면서도 기본 단위 논의에 기여한 점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참여국마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 2015년보다는 2019년에 질량의 재정의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고, 그때까지 우리가 플랑크 상수를 제시할 수 있게 되면 측정과학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질량의 재정의가 이뤄진 뒤에도 그 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와트저울이 필요하다. 우리 손으로 와트저울을 완성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장벽들이 적지 않다. 우선 무진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립기초를 만들어야 한다. 주변에 지하수가 없는 11m 깊이의 암반 위에 완충지를 만들고 기초를 세워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형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안으로 찾은 것이 콘크리트블록과 진동흡수 에어스프링 방식이다. 미국의 원통코일 방식은 예산문제로 도입하기 어렵다. 초전도자석 냉각제로 헬륨을 쓰는데 유지비만 연간 50만달러다. 헬륨값이 우리의 3분의 1 수준인데도 그렇다. 우리 연구팀은 자장의 균일도가 높은 1테슬라짜리 영구자석을 만들어 대체하려 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5932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