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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과학, 기술, 환경

까막딱따구리의 숲 - 김성호

by Wood-Stock 2011. 7. 17.

액션·멜로영화 같은 ‘까막딱따구리의 사생활’

딱따구리에 빠진 식물학자, 은사시나무숲의 멸종위기종

새벽 5시부터 분단위로 쫓아 감동적 번식·육아 등 2년 기록

 

»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딱따구리인 까막딱따구리. 천연기념물 242호. 수컷은 머리 위 전체가, 암컷은 일부분이 빨간색이다. 초여름 짝을 지어 새끼를 낳아 헌신적으로 기르는 새. 긴장하게 되면 머리 빨간 부분이 솟아오른다.

 

5년 전, 김성호(50)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지리산 자락에서 새 한 쌍을 만났다. 하얗고 검은 무늬에 머리 위가 빨간 오색딱따구리였다. 정성껏 둥지를 짓고 있는 그 새들에게 홀린 듯 마음을 빼앗긴 김 교수는 50일 동안 오색딱따구리를 관찰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전공은 식물학이었지만 앞으로 평생 딱따구리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사는 딱따구리는 모두 6종. 그는 이 여섯 가지 딱따구리의 부화와 육아를 모두 기록하는 데 자기 인생을 다 쏟아 붓기로 결심했다.

 

김 교수는 그 뒤 오색딱따구리를 쫓아다니며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2008)란 책을 썼다. 그리고 이 작업을 하면서 오색딱따구리의 빈 둥지에서 만난 동고비에게 다시 매료되었고, 휴직까지 하면서 이 작은 새의 번식 과정을 80일 동안 관찰한 책 <동고비와 함께한 80일>(2010)을 펴냈다.

 

처음 김 교수가 딱따구리에 일생을 바치기로 한 다음 가장 마음 두었던 딱따구리는 까막딱따구리였다. 이젠 한국에서 멸종된 크낙새와 비슷한 까막딱따구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딱따구리로, 천연기념물 242호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가장 크고 가장 멋진 이 딱따구리를 그러나 그는 바로 찾아가지 않았다. 충분한 준비를 하고 만나는 것이 까막딱따구리에 대한 예의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새에 대한 책 두 권을 낸 다음에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김 교수는 그를 사로잡은 최고의 딱따구리, 까막딱따구리를 만나러 산으로 들어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강원도 화천의 한 은사시나무 숲. 희귀 보호새가 둥지를 튼 이 숲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 원시림이 아니라 한 노부부가 30년 동안 버섯재배를 하면서 가꿔온 숲이었다. 재질이 물러 딱따구리가 둥지를 파기 좋은 은사시나무 숲이 자리를 잡자 우리나라에 사는 여섯 딱따구리 가운데 다섯 종류가 날아왔다. 김 교수는 이 숲에 두 차례, 모두 6개월 동안 머무르며 까막딱따구리 부부의 사랑, 그리고 새끼의 탄생, 눈물겹도록 헌신적인 육아와 처절한 생존을 지켜봤다. 김 교수의 새 책 <까막딱따구리 숲>은 그가 2년에 걸쳐 묵묵히 바라본 까막딱따구리의 번식, 그리고 은사시나무 숲에서 벌어지는 자연 생태를 옆에서 들려주는 드라마 같고 동화 같은 이야기 다큐멘터리다.

 

김 교수가 은사시나무 숲으로 간 것은 까막딱따구리의 번식기인 6월 초순. 새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까막딱따구리 둥지에서 알맞게 떨어져 위장 둥지를 만들고, 그 속에서 까막딱따구리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새벽 5시부터 하염없이 카메라 망원렌즈를 들여다보며 기록을 시작했다.

 

딱따구리들은 숲의 건축가다. 이들이 판 나무 구멍 둥지는 모든 새들과 다람쥐들의 안식처가 된다. 번식철이 되면 까막딱따구리 부부는 장맛비가 쏟아져도 빗물이 들이치지 않는 방향으로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진흙을 발라 천연 황토방 둥지를 만든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단 한순간도 둥지를 비우는 법 없이 교대로 알을 품고 새끼를 돌본다.

 

지은이는 이 과정 하나하나를 매일, 그리고 분 단위로 기록해 숭고하고 신비로운 까막딱따구리의 생태를 편안한 입말로 전달한다. 주연인 까막딱따구리와 함께 악역 파랑새와 호반새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소쩍새와 원앙새, 오색딱따구리가 등장하고 역시 멸종 위기종인 하늘다람쥐와 다람쥐가 카메오처럼 눈을 사로잡는다. 까막딱따구리 부부가 둥지를 빼앗으려는 난폭한 침략자 파랑새와 호반새와 때론 피하고 때론 싸우며 둥지를 지키는 과정은 액션영화처럼 긴장되고, 조금이라도 더 알을 따듯하게 품기 위해 배 아래 깃털을 뽑아 맨살을 드러내 부화하는 모습은 인간의 자식 사랑 못잖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중간에는 예상을 깨는 반전도 튀어나온다. 잔잔한데 빨아들이는 문체와 생생하고 진귀한 사진들이 죽죽 책을 읽어나가게 만든다.

 

아빠 엄마의 고되디고된 보호 속에서 살아남은 까막딱따구리 새끼들은 드디어 둥지를 떠나 날아갈 채비를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엄청난 위기가 이들을 덮친다. 과연 이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날아오를 수 있을까?


운명처럼 새를 사랑하게 된 이 식물학자는 번식지 보호를 위해 까막딱따구리의 보금자리인 은사시나무 숲의 위치를 책에서 밝히지 않았다. 이 진객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면 행여 까막딱따구리마저 크낙새처럼 이 땅에서 사라질까 두려워서다.

 

 

은사시나무숲의 조연들

 

파랑새 : 여름철새답게 색상이 화려하고 예쁘지만 공격적인 숲속의 폭군.
까막딱따구리보다 작지만 더 빠르다. 까막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기 위해 늘 공격을 해댄다.

 

호반새 : 파랑새 못잖은 난폭자로 까막딱따구리 둥지를 노리는 또다른 적.
오렌지색 부리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수컷이 개구리를 물어와 암컷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

 

다람쥐 : 땅속 굴이 위험해지면 딱따구리가 떠난 둥지를 집으로 삼는다.
나른한 오후에는 뒷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온몸을 활처럼 쭉 펴서 스트레칭을 한다.

 

원앙 : 천연기념물 327호. 오리 종류지만 숲 나무 구멍에 알을 낳기 때문에 번식철에는 숲이나 산에서 볼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먹이도 도토리여서 숲과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새.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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