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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Sports Record

Choo & Ryu

by Wood-Stock 2013. 6. 1.

류현진과 추신수의 기적 - 단둘이서 메이저리그를 찜쪄먹는구나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딱 두 명의 한국인 야구 선수가 있습니다. 엘에이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과 신시내티 레즈의 붙박이 1번 타자인 추신수입니다. 류현진과 추신수의 최근 성적은 놀랍습니다. 류현진은 시즌 11번째 선발 등판 만에 무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했고, 추신수도 메이저리그의 모든 1번 타자 가운데서도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펼치고 있는 승부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는 전형적인 '미국 스포츠'다. 한해 전체 관중(2012년 7585만명)의 97%를 미국 내에서 끌어모으고 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미국이 아닌 나라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팀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 토론토 블루제이스 한 팀이다.

각 팀 선수의 국적을 따지면 메이저리그는 미국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올해 개막전 로스터(출전 가능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 856명(부상자 명단 106명 포함) 가운데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선수는 241명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선수가 89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베네수엘라(66명), 캐나다(15명) 차례다.

양적 전성기 2006년·양보다 질 2013년

메이저리그의 '해외 선수' 241명 가운데 한국 출신은 단 두명에 불과하다. 모두 13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은 물론, 콜롬비아(4명)나 파나마(4명), 네덜란드령 퀴라소(3명)보다도 적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0.24%에 불과하다. 메이저리그와 함께 미국 4대 프로 스포츠로 불리는 엔에프엘(NFL·미식축구)과 엔비에이(NBA·미 프로농구), 엔에이치엘(NHL·미 아이스하키) 소속 122개 팀으로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한국 출신 선수는 여전히 이 두명뿐이다.

한국 야구는 1994년 박찬호의 엘에이(LA) 다저스 입단을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2006년 박찬호, 김병현, 김선우, 최희섭, 서재응, 류제국 등 모두 6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함으로써 '양적 전성기'를 누렸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단 두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활약은 그 어느 해보다 강렬하다. 2006년과 달리 '양보다 질'로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야구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1982년생 타자 추신수(31·신시내티 레즈)와 1987년생 투수 류현진(26·엘에이 다저스)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산 '괴물' 류현진은 5월29일(한국시각) 엘에이 에인절스를 상대로 2피안타 무사사구 완봉승(3-0)으로 이미 팀 내 최다승인 시즌 6승(6승2패, 평균자책점 2.89)을 거뒀고, 신시내티의 중견수인 추신수는 타율 2할9푼5리, 출루율 4할4푼9리, 홈런 10개(5월31일 기준)로 메이저리그 30개 팀의 1번 타자 가운데서도 가장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새 역사를 열고 있는 류현진, 추신수 두 선수의 빛나는 경쟁력과 장단점,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짚어봤다.

고2때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로 2차 2순위로 한화 입단한 류현진
데뷔 첫해 트리플 크라운 달성 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다

2000년 시애틀 합류 뒤에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추신수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돼 자신과 꼭 맞는 출루형 1번타자로 우뚝 서기까지 7년이 걸렸다


류현진은 인천 동산고 시절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이미 프로팀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야구 선수로서의 탄탄한 미래를 예약해둔 것처럼 보였던 류현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무 일찍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왼팔에 무리가 온 탓에 '토미 존 서저리'로 불리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아야 했다. 토미 존 서저리는 팔꿈치 부위의 다친 인대를 새 인대로 교체하는 큰 수술이다. 수술 기법이 점차 전문화·고도화되며 이제는 토미 존 서저리를 겪고 난 뒤에도 녹슬지 않은 활약을 펼치는 투수가 많다.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과 엘지(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 봉중근이 대표적이다.

류현진이 수술 대상이었던 2004년만 해도 투수가 팔꿈치 수술을 받는다면, 일단 걱정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고교 시절부터 수술대 위에 올랐던 선수는 좋은 대접을 받기 어려웠다. 류현진은 1차 지명에서 연고지 팀인 에스케이(SK) 와이번스의 외면을 받았고, 2차 지명에서도 1순위 롯데 자이언츠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2006년 계약금 2억5000만원을 받고 2차 2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같은 해 기아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한 한기주는 국내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금액인 10억원을 받았으니, 류현진은 같은 고졸 신인이었던 그에 견줘 딱 4분의 1만큼의 가능성만 인정받은 것이다.

류현진의 그 팔꿈치 수술은 전화위복이었다

일찌감치 받은 팔꿈치 수술은 전화위복이었다. 나중에 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지 모를 위험요소를 미리 제거해버린 결과였던 것이다. 어린 선수라면 수술을 마친 뒤 체계적으로 재활하는 과정에서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투구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에 입단한 뒤 류현진은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2006년 데뷔 첫해에 그는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 3개 부문 타이틀을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역대 두번째(첫번째는 선동열) 투수가 됐으며,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신인이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을 함께 거머쥔 선수는 두명 있는데, 모두 타자들로 그 가운데 한명이 일본 출신의 스즈키 이치로다.

류현진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에서의 7년간 다섯 차례 탈삼진 1위에 오르며 리그를 지배했다. 7시즌 통산 성적은 98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그리고 그는 지난해 12월 6년간 최대 4200만달러(약 454억원·기본 연봉과 옵션 금액 포함), 포스팅금액(원소속구단에 지급하는 이적료)까지 합치면 총액 6000만달러가 넘는 파격적인 몸값으로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배출했던 다저스의 부름을 당당히 받았다.

부산고 시절의 추신수도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였다. 2000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추신수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투수로서 발군의 기량을 뽐내며 대회 엠브이피(MVP)에 올랐다. 추신수에게 일찌감치 눈독을 들인 메이저리그 구단은 시애틀 매리너스였다. 2000년 계약 당시 시애틀이 추신수에게 건넨 입단 보너스는 135만달러였다. 이는 그해 열린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자들이 받은 보너스 평균(180만달러)과 큰 차이가 없는 금액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추신수에게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애틀에 합류하고 나서야 팀이 정해놓은 자신의 미래는 투수가 아닌 타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1997년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할 당시 타자로 선택받은 줄 알았으나 투수가 된 봉중근과 정반대였다. 고졸 신인 선수로서 90마일(145㎞)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잡이를 마운드에 올리지 않은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추신수의 운동능력은 투수를 시키기에는 너무나 뛰어났다. 기본적으로 빼어난 타격 실력에 빠른 발, 외야 먼 곳에서 포수 미트까지 일직선으로 공을 꽂아 넣는 강인한 어깨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물론 투수로서는 키가 약간 작다는 사실 또한 영향을 미쳤다. 추신수의 키는 프로필을 기준으로 할 때 180㎝인데, 메이저리그 투수의 평균 신장은 191㎝이다. 메이저리그 타자 평균은 185㎝이다.

2004년 트리플A에서 좋은 활약을 하며 팀 올해의 마이너리그 선수로 선정된 추신수는, 2005년 4월22일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생활은 그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추신수는 대타로 한 타석에 들어선 뒤 마이너리그로 돌아갔다. 5월 초에도 대타로 두 타석에 나선 뒤 복귀. 로스터가 25명에서 40명으로 늘어난 9월에 다시 올라왔지만,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은 좌완 에이스를 상대해야 하는 경기에 상대적으로 좌투수에게 약할 수밖에 없는 좌타자 추신수를 선발로 내보내는 등, 신인 선수에 맞는 배려를 일절 하지 않았다. 10경기에서 18타수1안타. 이듬해 다시 4경기에서 11타수1안타에 그치자, 시애틀은 2006년 7월 추신수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했다. 당시 스즈키 이치로와 라울 이바녜즈가 외야의 좌우에서 건재했던 시애틀에는 추신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시애틀은 추신수에게 다시 투수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실망스런 제안을 하기도 했다.

클리블랜드는 추신수에게 곧바로 주전 우익수 자리를 내줬다. 추신수도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또다른 고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 아파온 팔꿈치였다. 결국 추신수는 같은 해 9월 결국 수술대 위에 올라 타자로서는 드물게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9개월여의 재활 끝에 2008년 6월 추신수는 메이저리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팀의 핵심타자가 됐다. 2001년 루키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지 정확히 7년 만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는 공을 배트에 맞추는 타격 능력과 파워는 물론 수비, 송구, 주루 능력 등 야수가 가져야 할 다섯가지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파이브툴 플레이어'로 통한다. 3할 타율 10회, 골드글러브 수상 10회, 30도루 10회를 달성한 스즈키 이치로는 타격과 수비, 송구, 주루 등 네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에 올랐지만 파워만큼은 많이 모자랐다. 메이저리그에서 175개 홈런을 때려낸 마쓰이 히데키는 타격의 정교함과 파워만 뛰어났고 그 이외에는 평범했다.


 

1번을 맡기 위해 태어난 듯한 추신수

2009~2010년 추신수는 2년 연속 3할 타율과 20홈런-20도루에 성공했는데, 이는 1901년에 창단한 클리블랜드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0년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외야수 가운데 가장 많은 주자를 외야 송구로 잡아냈고, 2011년에는 아메리칸리그 감독들로부터 리그에서 세번째로 수비를 잘하는 외야수에 꼽혔다.

추신수의 많은 야구 재능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최고의 출루 능력이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2008년 이후 3할8푼9리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평균 출루율은 3할1푼9리였으니, 추신수는 그들보다 7푼이나 높은 출루율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간 600경기 이상을 나선 메이저리그 선수 132명 가운데 추신수의 출루율은 9위에 해당했다. 지난 시즌 1번 타자들의 통합 출루율 2할5푼4리로 골머리를 앓은 신시내티 레즈가 추신수에 눈독을 들인 것은 당연했다.

출루율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는 타자들은 대부분 홈런 타자들이다. 장타를 맞느니 볼넷을 내주고 만다는 식의 '피해가는 볼넷'을 많이 얻기 때문이다. 발이 빠른 타자는 이런 '부수입'을 얻기 힘들다. 대다수 투수는 발이 빠른 선수의 출루를 허용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노력한다. 일단 그들을 내보내면 투수는 도루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장타력과 빠른 발을 동시에 갖춘 추신수는 투수 입장에서 대단히 난감한 존재다. 볼넷을 주더라도 어렵게 승부하자니 도루를 걱정해야 하고, 볼넷을 피하려고 과감하게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자니 심심찮게 홈런을 때려댄다. 골칫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장타가 많이 나오지 않던 시절, 1번 타자는 많은 도루를 할 수 있는 타자들의 자리였다. 이후 홈런 시대가 열리면서 3, 4번 타자들이 투런 이상의 홈런을 날릴 수 있게끔 베이스를 채워주는 '출루형 1번 타자'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활약한 에디 요스트(통산 타율 2할5푼4리, 출루율 3할9푼4리)가 대표적인 출루형 1번 타자였다. 1980년대 메이저리그에는 마침내 1번 타자의 '모범 사례'가 등장했다. 출루-도루-장타 능력이 모두 최고 수준인 리키 헨더슨이 나타난 것이었다.

헨더슨 이후 많은 1번 타자가 헨더슨을 뛰어넘기 위해 도전했다. 다만 꾸준한 선수는 없었다. 추신수의 클리블랜드 시절 동료였던 그레이디 사이즈모어는 부상에 쓰러졌고, 1번 타자를 넘어서는 파워를 가진 핸리 라미레스(엘에이 다저스)는 결국 더 어울리는 자리인 3번으로 갔다.

최고의 출루 능력과 수준급의 스피드, 적당한 장타 능력을 두루 갖춘 추신수는 1번을 맡기 위해 태어난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추신수가 올 시즌 최고의 출발을 하고 있는 배경을 분석할 때, 일부 전문가는 그가 타자에게 유리한 홈구장을 갖고 있는 뛰어난 팀에서 뛰어난 동료들을 만났고, '예비 프리에이전트(FA)'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모두 일리있는 분석이다. 다만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추신수가 신시내티에서 비로소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추신수가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목표이기도 한 25홈런과 25도루, 그리고 4할 출루율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면, 이는 그가 이미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 타자로 우뚝 섰다는 확고부동한 증거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성적은 네번의 20홈런 시즌과 23번의 20도루 시즌, 15번의 4할 출루율 시즌을 만들어낸 리키 헨더슨조차 딱 한 차례(1990년)만 성공했을 뿐이다. 헨더슨 이후에는 2000년 대린 어스태드, 2008년 핸리 라미레스 등 단 두명만이 이 성적을 넘어섰다. 물론 25홈런-25도루-4할 출루율 등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한다는 것은 추신수가 한국 선수 가운데 역대 최고의 '에프에이 대박' 주인공이 될 자격을 갖춘다는 뜻이기도 하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달러의 에프에이 계약을 맺은 박찬호도 뛰어넘을 수 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평속인 90마일 던지는 보통 투수지만
공 던질 때 수준급 숨김동작으로 98마일처럼 보이는 90마일 던져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투구해 경기 후반에 체력 문제 커지기도

장타력과 빠른발 갖춘 추신수는 5년간 출루율 3할8푼9리 기록
2009~2010년에는 3할 타율과 20홈런·20도루 성공했다
동갑내기 아오키 노리치카와 최고의 1번 타자 경쟁중


평균 이상 빠른 공·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다. 메이저리그의 높은 야구 수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 미국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그가 지난 7년간 국내 프로야구 무대를 지배했다고 하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는 많은 아시아 투수들에게 좌절의 공간이기도 했다. 5월29일 무사사구 완봉승으로 시즌 11번째 선발 등판 만에 6승을 수확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한국 무대에서 류현진은 좌완으로서 평균 143㎞(89마일)짜리 빠른 공을 뿌리는 '괴물 투수'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의 류현진은 평균 90마일(145㎞)을 던지는 평범한 투수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의 평균 구속은 91마일이었으며, 류현진이 주로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의 평속은 92마일이었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봤을 때 류현진은 공이 빠른 투수는 아니다. 하지만 다저스 구단을 포함한 메이저리그 구단 관계자들은 류현진의 '빠르기'를 걱정하지 않았다. 투수에게 중요한 것은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이 아니라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 구속이기 때문이다.

투수의 손끝을 떠난 공은 홈플레이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17여m를 날아온다. 시간적으로는 0.17초에 불과한 그 짧은 시간 동안 타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정보는,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을 뿌리는 그 장면을 기가 막히게 숨기는 투수들이 있다. 과거 구대성이나 빌리 와그너, 최근의 제러드 위버(엘에이 에인절스)나 클리프 리(필라델피아 필리스) 등은 공을 마지막까지 몸 뒤에 숨겼다가 갑자기 뿌리는 동작으로 유명한데, 타자들은 이들의 공이 실제 구속보다 더 빠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류현진 역시 공을 쥔 왼손이 몸 뒤에 가려져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류현진의 이러한 숨김 동작을 수준급으로 판단하고 있다.

류현진은 빠른 공의 '상하 무브먼트'에서도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빠른 공의 위아래 움직임이 좋다는 말은, 타자들이 예측하는 하강 각도보다 덜 떨어진다는 것으로, 이 경우 타자들의 방망이는 공 아래의 허공을 가르게 된다. 바로 솟아오르는 속구, '라이징 패스트볼'의 효과다. 여기에 직구처럼 오다가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류현진이니 빠른 공의 움직임은 그 위력을 더할 수밖에 없다. 류현진의 빠른 공을 가리켜 뉴욕 메츠의 전담 해설가는 '98마일처럼 보이는 90마일짜리 공'이라고 했을 정도로, 류현진의 빠른 공은 구속 이상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류현진의 또다른 장점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으로 확인된 제구력과 함께 '네가지 구종을 가진 투수'라는 것이다. 뉴욕 양키스 시절 2년 연속 19승을 올렸던 대만 출신의 왕젠민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싱커를 던지는 투수였다. 그러나 왕젠민은 오로지 싱커만 뛰어난 투수였는데, 그렇다 보니 싱커가 좋지 않은 날에는 크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부상 이후 싱커의 각이 무뎌지자 한순간에 메이저리그에서의 경쟁력을 잃었다.

류현진에게는 왕젠민의 싱커에 해당되는 구종이 없다. 그러나 빠른 공과 함께 적절히 섞어 던지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커브가 모두 평균 이상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매 경기 승부구로 사용하는 구종도 바꾸고 있다. 데뷔 초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체인지업 대신 슬라이더로 타자들의 허를 찌른 류현진은, 7이닝 1실점을 기록한 5번째 선발 등판 때 빠른 공으로 타자들을 압도했다. 또한 12개의 삼진을 잡아낸 6번째 경기에서는 커브의 진수를 선보였으며, 8번째 경기는 체인지업 위주의 피칭을 통해 무려 13개의 땅볼아웃을 만들어냈다. 무사사구 완봉승으로 경기를 혼자 끝내버린 5월29일 11번째 등판에서는 다른 날과 달리 최고 구속 95마일(153㎞)까지 나온 패스트볼을 무기로 타자를 윽박질렀다. 경기마다 그날 컨디션 등에 따른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최강 체인지업에 가려져 있던 류현진의 숨겨진 장점이었다.

경쟁자들, 아오키 노리치카와 다르빗슈 유

류현진의 초반 질주를 바라볼 때 우려가 되는 지점이 없지는 않다. 현재 류현진은 1회부터 경기 후반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일정한 구속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과 달리 투구의 강약 조절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다 보니,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 문제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체력 저하는 구속의 감소가 아닌 제구력의 문제로 나타난다. 실제로 류현진의 일부 경기를 보면 6회부터 공이 뜨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높은 피안타율로 이어지고 있다.

투구 전 숨김 동작에서 오는 강점 또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라지거나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컷패스트볼을 던지는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나 싱커를 구사하는 구로다 히로키(뉴욕 양키스),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매리너스)처럼 빠른 공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보완재'를 가져야 한다. 국내 무대에서 류현진을 대표했던 체인지업은, 역시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결정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재 '탈삼진구'가 아닌 '유인구' 또는 '땅볼 유도구'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슬라이더와 커브가 점점 더 타자들의 눈에 익어갈 것임을 생각하면 류현진은 앞으로 체인지업을 좀더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

두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눈부신 활약이 흥미진진한 이유는 또 있다. 두 선수 모두에게 선의의 경쟁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추신수가 경쟁 상대로 꼽을 만한 선수는 같은 1982년생으로, 일본 프로야구 시절 '리틀 이치로'로 불렸던 아오키 노리치카다. 지난해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아오키는(지난해 신인왕 투표 5위), 마침 1번 타자 겸 외야수로서 추신수와 좋은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두 차례 200안타 시즌을 만들어냈던 아오키는, 홈런을 많이 치는 추신수보다는 이치로 스타일(단타와 빠른 발)에 좀더 가까운 타자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1번 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치는 두명의 아시아 출신 타자의 등장은 한국과 일본 야구 팬에게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1987년생 류현진에게도 1986년생인 다르빗슈 유라는 높은 수준의 경쟁자가 있다. 류현진처럼 국내 무대를 지배한 뒤 메이저리그에 1년 앞서 등장한 다르빗슈는 현재 최고의 탈삼진 능력을 자랑하며 일본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따내지 못한 타이틀인 사이영상에 도전하고 있다. 좌완과 우완이라는 차이 외에도 두 선수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다르빗슈가 강속구와 뛰어난 구위로 많은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낸다면, 류현진은 좀더 안정적인 제구를 통해 많은 스탠딩 삼진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이와 메이저리그 경력에서 1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둘은, 앞으로도 양국 팬들의 오랜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Cincinnati Reds Shin-Soo Choo (17) is greeted at home plate after hitting a walk-off home run off Atlanta Braves relief pitcher Craig Kimbrel in the ninth inning, Tuesday, May 7, 2013, in Cincinnati. Cincinnati won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