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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노래 이야기

블루스에 대한 야부리 - 신대철

by Wood-Stock 2013. 3. 27.

난 블루스를 집착하듯 좋아한다. 그건 블루스가 바로 록큰롤이기 때문이다. 

블루스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 하는건 너무 공허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늘어 놓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이 될거다. 

생각해 보니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단 생각도 든다.

블루스에 대한 나의생각을 적당한 선에서 써 보겠다.
물론 페친 중에는 음악관계자, 평단관계자, 등이 계시기에 부담스럽지만 나의 생각을 전한다는 맘으로.. 
또 종이책에서 못하는 유튜브 링크가 면상책 에서는 가능하니까.
지금부터 Blues에 대해 기술한다. 매우 길지도 모른다.
야부리란 말은 중.고딩때 쓰던 은어다. 뻥친다의 비슷한 말일텐데.. 
그렇다고 거짓말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맘껏 시부리는 뜻이있다.

 

 

Chapte1 유래

 

뭐 할수없다. 뭔가 썰을 풀려면 해야된다. 역사 유래 .. 그러나 이걸 모르면 근본을 모르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블루스? 한마디로 노동요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Slave Song이다. 
미국에 잡혀온 아프리카 흑인들은 그냥 노동자가 아니다. 노예였다. 그들에게 인권이 있을리가 없다. 사고 팔고 채찍으로 맞고 죽여도 돼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견디겠나.. 노래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공업이 발달한 미국의 북부와는 달리 농업이 중심 이었던 남부는 노예제도가 산업의 핵심이었다. 광활한 토지에 작물을 재배한 남부의 농장주들은 지속적으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현장에서 착취할때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구호를 외치게 하는거다.
오래된 전통 아닌가. 하루종일 부려먹으려면 박자에 맞춰 움직이게 하는거다.
시키는 자들은 백인이었지만 아프리칸 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조로 했던거다.

어떻게 아냐고?
John Lomax 와 Alan Lomax라는 사람이 있었다.(뒤에 다시 언급하겠슴) 둘은 부자 지간인데 민속 연구가이자 민요 수집가다.

1930년대부터 미 전역을(주로 미남부지역)을 돌아 다니며 구전되는 민요를 수집했다. 픽업에 녹음장비를 싣고 시골을 돌아다니며 노래좀 하는사람을 찾아 다녔다. 예를들면 
"여기서 노래좀 하는사람이 누구요" 라고 시골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음.. 여기서 남쪽으로 20마일쯤 가면 농사짓는 멕킨리 모건필드 라는 녀석이 있는데 그친구 노래좀 합죠" 그러면 찾아간다.
"당신이 멕킨리요?"
"그 ..그렇소만.. 무슨.." 아마도 해꼬지 하러온 백인이 아닐까 두려워 하지만 ..
로맥스는 마이크와 녹음장비를 설치하고 그에게 노래를 청한다. 
기타를 맨 맥킨리는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후에 이사람은 Muddy Waters로 알려지며 시카고 블루스의 위대한 BluesMan으로 기억 된다.
영화 Cadillac Records 앞부분에 이내용이 나온다. 머디를 찾아와 녹음해 가는 사람이 바로 John Lomax다.
로맥스 부자는 이런방법으로 수천곡의 민요를 수집하고 수 많은 블루스 아티스트를 발굴한다. 
이뿐만 아니라 흑인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노역을 할때 부르는 여러종류의 'Prison Song' 도 녹음했다. 이걸 들어보면 노예시대에 시작된 노동요 로서의 블루스 원형을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아냐고?
구전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3O3vEOwFuOo [Good God Almighty 1933]

http://www.youtube.com/watch?v=0NTa7ps6sNU [Rock Island Line 1934]

http://www.youtube.com/watch?v=vbm_uWVasNU [Whoa Buck 1940년대 초 노래미상]

http://www.youtube.com/watch?v=C-zlSq4mWiE&list=PL1C34BC4375F9AB99 [요기에 무더기로 있네요]

대충 들어 보시면 알거다. 공통적으로 관통하는것이 바로 스케일(음계)이다. 아프리칸 들이 사용하는 스케일.. 그건 누군가 창조한게 아니다. 그들의 어머니, 또 그위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구전되어온 그들의 D.N.A인 것이다. 
스케일은 변하지 않는다. 집단으로 사용하는 스케일, 그건 정체성이다. 
다시말해 같은 민족은 같은 음계를 사용한다. 선택적으로 혹은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음계가 존재한다.

우리의 아리랑이 100년전에는 달랐을까? 아니다 그대로다. 백년전에 같았다면 200년 300년 전에도 같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들로부터 구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구전되는것은 변하지 않는다. 
"자장 자장 우리아가 잘도잔다 우리아가" 이노래를 아실거다. 이런 노래는 변하지 않는다.
몽골리언 들이 사용하는 공통적인 스케일이 있다. 5음계다. 수천 수만년전에 몽골리언 들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대륙에 진출했다. 일부는 북미에 정착하고 어떤이들은 계속 이동해 중남미에 또 남쪽으로 남쪽으로 아마존 까지 수천년간을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에 따라 먹는 음식도 달라졌을 것이고 생활방식,의복,언어도, 달라졌겠지만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 바로 스케일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우리와 같은 5음계를 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그 순수성도 외부의 문화와 충돌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음악의 화학적 결합이다. 몽골리안계통의 훈족이 유럽을 침공하고 정착한 곳이 헝가리다. 헝가리란 말 자체가 훈가리 즉 훈족의 나라라는 뜻이라 한다. 우리의 한겨례와 같은말 이지 않을까?
그래서 헝가리의 오래된 민요는 5음계가 기본이다. 그러나 유럽인 들과 결합하고 이후에 집시들이 유입된다. 이런 과정에서 음악의 화학적 결합이 일어난다. 때문에 헝가리는 유럽이면서도 동양적 정서가 묻어있는 집시 스타일의 독특한 음악이 만들어진다.

오래전 인도의 북부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한다. 이들을 후에 집시라고 불렀다. 유럽전역으로 퍼졌지만 특히 많은 수가 정착한곳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이다. 이곳의 유명한 음악과 춤을 일컬어 Flamenco라 한다. 그 지방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면 독특하게도 프리지안 스케일을 닮았다. 프리지안 스케일 이란 mode 즉 교회선법에서 유래된 스케일체계다. 이건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면 알텐데 너무 전문적인거라 설명은 않겠다. 

플라멩코가 그런 특징을 가진것은 집시들이 음악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그들 조상이 사용하는 음계가 그와 닮았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인도에서 왔으니까. 인도 전통음악을 들어봤다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집시들이 정착하면서 그들도 역시 토착민들과 혹은 침략자들과 음악의 화학적 결합이 만들어졌다. 아랍인,유대인,유럽인 등..그 화학적 결합의 결과가 지금의 플라맹코다.

노예무역이 활발했던시기에 아프리카 노예들이 북미에만 온것이 아니다. 남미에도 팔려갔고 쿠바,자마이카 같은 곳도..
이쯤에서 이해 하시리라 본다. 남미에도 같은 아프리카출신의 노예가왔지만 음악의 화학적 결합으로 인한 결과물은 다르다. 남미에는 쌈바와 보싸노바 .. 또 쿠바음악 자마이카 음악이 있다. 다 그 곳의 도착민, 지배계급 과의 화학적 결합으로 생긴 결과물이다. 남미에는 플라맹코의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배하지 않았는가..

수소원자 두개와 산소원자 하나가 결합하면 물이된다. 배웠으니 알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같은 산소라도 산소 두개와 탄소 하나가 만나면 이산화탄소가 된다. 이것도 배웠으니 알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냐고.. 

 

 


2)HILL BILLY.

 

힐빌리.. 지금의 컨트리 웨스턴 음악을 옛날에는 이렇게 불렀다.
바로 노예의 주인들의 음악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다름아닌 영국 사람들 아닌가.. 영국에서 건너온 민요풍의 노래를 신대륙에 정착한 백인들이 부르는..

힐빌리는 쉽게말해 목동의 음악이다. 카우보이~ 
옛날에는 주말의명화(오래전…KBS) 시간에 서부영화 많이 해줬다.
존 웨인! 
아무튼 이런 영화할떄 꼭 한번씩은 나오는게 단체로 춤추는 장면이다. 남자 여자 서로 마주보고 줄을 쫙~ 음악이 시작되면 경쾌하게 팔장을 끼고 빙빙도는 .. 아마도 아시리라..
이런 거 나올 때 나오는 음악이 힐빌리다.

화성적 구조? 간단하다. 유식하게 말하면 Tonic, Sub Dominant, Dominant, 이 세가지로 이뤄져 있다.

쉽게 말하면 그냥 기타코드 C, F, G 만 알면된다.
노예들이 처음 백인에게서 들은 음악이 이런 류다.
그래서 블루스도 C ,F ,G 만 알면 할 수 있는거다. 그런데 음악교육을 받았을 리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음계는 분명 단조(완벽한 단조라 할 수는 없다. 나중에 설명..)풍인데 장조코드 C F G 를 조지며 노래를 했다. 그래서 이런 독특한 음악이 탄생한다.
또 나온다. 음악의 화학적 결합!
스케일만 존재하던 흑인들의 음악에 드디어 ‘화성’ 이라는 게 생겼다.

음악좀 아시는 분 이라면 이 대목에서 의문을? 
“록큰롤의 탄생이 블루스와 컨트리의 만남으로 이뤄진 거라며?”
야부리는 요럴 때 쓰는 말이다. “야부리 까고있네!” 요렇게..
그런데 분명 맞다. 록큰롤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래서 록큰롤을 초기에 ‘RockaBilly’라고도 했다.
하지만 블루스가 탄생한 것도 컨트리 음악덕분이다. 
단어만 있어서는 대화가 안됨다. 문법을 알아야지 말임다!
S + V + O 요거 아시자나.. 주어+동사+목적어. 요래해야 말이되지.. 

문법을 알게된 블루스. “이제는 말할수있다.” 그런데 말할 곳이 없네.. 휴~ 
“니들은 노예자너! 닥치고 일이나 해!” 
이게 그들의 현실 이지만 백인 중에서 그래도 양심있는 사람도 있었다. 
종교다!
그들에게 교회를 허락한 백인주인들이 있었다. 아마도 19c 초부터 흑인교회가 성립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1주일에 하루는 그들의 문법대로 말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연상되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바로 흑인영가(Negro Spiritual, Slave Spiritual).
이것과 블루스는 사실 같은 음악이다.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사’ 뿐이다.
Jesus~ Oh My Lord~ 요렇게 부르면 찬송가고
Pretty Girl~ Oh My Baby~ 요렇게 부르면 블루스다. ^^

http://www.youtube.com/watch?v=5Udwf3rpNM0&playnext=1&list=PL2608B02B614F899F&feature=results_main (대충 확인해 보시라)

음악을 전공한(실용음악) 사람이라면 Blues 라는 단어에 12마디 진행을 떠올릴 것이다. 원래부터 그랬을까? 물론 절대 아니다. 
형식으로서의 12 Bar Blues.. 이건 후대에 음악을 공부한 전문 음악가들이 만든 형식이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래 가장 혜택을 본 것은 다름아닌 음악이다. 축음기 발명 이전의 시대에 음악을 알리는 길은 악보 출판과 무대연주 이외에는 없었다.

아마도, 최초로 블루스란 이름의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W.C. Handy(1873-1958)라는 흑인 음악가이다. 그는 트럼펫 연주자 이자 밴드 콘닥터 였다. 즉, 음악을 공부한 직업 음악인 이었다. 1917년 헨디와 그의 오케스트라는 [St. Louis Blues] 라는 블루스 넘버를 (아마도) 최초로 녹음했다. 이 외에도 구전 돼오던 많은 블루스 넘버를 악보로 채보하고 정리한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dmFUXYaZIMk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재즈의 느낌이 난다. 음악을 전공한 분이라면 12bar(마디)진행 이란 것도 금방 아실거다.
이 당시 재즈는 발생초기였고 흑인 재즈밴드를 모방한 백인 재즈밴드가 나오던 시기다

블루스는 원래 성악을 위한 음악이다. 즉 노래를 부르기 위한 음악이다. 반주를 위해 기타나 벤조가 필요 했을뿐.. 
노예시대 이후로는 떠돌이 류의 블루스맨이 많았다. 떠돌아 다니며 간혹 중요한 만남도 이루어지곤 했다. 
Leadbelly 와 Blind Lemon Jefferson 의 만남 혹은 Son House 와 Robert Johnson 의 만남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기에 후에 언급할거임) 같은 것이다. 이들은 서로의 노래를 공유하고 연주법도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엄청난 기타리스트 이기도 했다. 쏠로가 아닌 듀오나 트리오로 연주를 하려면 약속이 필요하다. 즉 형식.. 형식을 체계화 한 것은 합주 때문이다. 남부 딕시랜드에 나타나기 시작한 큰 규모의 브라스밴드가 연주하려면 당연지사. 체계화된 뭔가가 필요했다.

좀더 기술 하자면..
노예시대에 채찍과 함께한 스케일이 있었다.
링컨의 노예해방(1863)으로 인해 남부군은 해체된다. 음악에 재능있는 흑인 음악가들이 음악을 공부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노예시대에도 흑인 음악가는 존재했다. 주인들의 음악을 듣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들.. 음악의 천재들은 항상 있어왔다. 천재를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배우지 않고도 아는 혹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모차르트를 보라. 불과 5살(정확하지 않음)때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나?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 정도는 아니라도 엄청난 능력의 천재들은 음악계에 즐비하다. 노예의 후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Scott Joplin(1867-1917)이 그런 사람이다. 
조플린은 클래식을 공부한 사람인데 클래식을 노예의 방식(?)으로 만들더니 ‘랙타임’ 이 되더라….
음악의 화학적 결합! 
영화 [Sting]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The Entertainer](1902)가 그의 작품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fPmruHc4S9Q 

랙타임은 후에 재즈가 탄생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재능 많은 흑인 음악가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들어온 음악을 노예의 방식으로 연주 했더니
‘Jazz’ 가 되더라…
블루스는 성악을 위한 음악인 반면 재즈는 기악을 위한 음악이다. 
W.C. Handy가 했던것 처럼..

 

 

잃어버린 것을 찾는 노력.. 이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부족한 습관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이게 편하다. 
어떤이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미지의 무엇을 찾아다닌다. 그것이 뭔지도 모른채. 
그 노력의 결과를 우리는 당연한 혜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혜택이 너무커서 가늠하지도 못하면서..

 

 


Chapter 2 연결고리

 


1)Leadbelly 

Leadbelly(1885-1945).. 이 사람은 중요하다. 완전 터프가이다. , 한번의 살인 혐의, 1번의 살인 미수혐의로 교도소를 갔지만(그 외에도) 두번 다 사면 된 인물이다.
20세기 초 그 역시 떠돌이 악사였다. 남부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전되는 노래를 익혔다. 음악에 재능이 많은 인물들이 그렇듯이 여러악기를 달룰줄 알았다.
하모니카, 기타는 기본이고.. 아코디언, 피아노, 만돌린, 바이올린... 이런 사람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 깨우치는 천재형 외톨이? 

 

 


1910년대에 중요한 만남이 이뤄졌다. 
나중에 텍사스블루스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Blind Lemon Jefferson(1893-1929). 짧은 생애를 살다간 이사람. 
이름에서 알수 있지만 그는 맹인이다. 
떠돌이 레드벨리는..15살때 이미 동내에서 겨룰 기타리스트가 없었다는.. 
아마도 자기가 기타좀 친다고 생각 했을거다. 
그런데 B.L.J도 강호에서 기타좀 친다는 소문이?..
레드벨리 내심 대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완전히 발렸다. ^^ 
B.L.J 가 구사하는 Thumb Pick Bass Walking 주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였다.

후대의 나 홀로 블루스맨 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다. 레드벨리에게도.
전설같은.. 
1910년대 레드벨리와 B.L.J 는 순회공연도 같이 다녔다. 
하지만 레드벨리는 거친녀석!
B.L.J 는 착실한 녀석!.. 
사고쟁이 레드벨리는 음지로, 착실이 B.L.J 는 양지로..

B.L.J 는 블루스 싱어이자 엄청난 기타리스트였다. 
20년대에 레드벨리가 교도소를 전전하며 음지에서 헤매고 있을때 B.L.J는 20년대 블루스 스타가 된다. 
B.L.J 는 20살 무렵부터 달라스의 매음굴에서 연주를 했다.
밤 8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매일같이 헐~ 
못본다고 겁나 부려먹었구먼..
저렇게 열심히 했으니 소문이 날만하다. 
파라마운트와 계약하게 되고 그의 음반은 인기를 끌었다. 
26년부터 29년까지 80여 장의 싱글을 발표한다. 
사실상 20년대의 최고 블루스 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대해 여러 썰이 있다. 여친에게 독살설. 거액의 인세를 지불하기 싫어한 파라마운트의 살해설. 심장마비설..
거친시대다.. 

T-Bone Walker에게 기타를 가르쳤고 B.B King은 B.L.J 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후대의 전설들.. 썬 하우스, 로버트 존슨, 라이트닝 홉킨스.... 등 거의 모든 블루스맨 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다. 
어떻게 아냐고?
책에 써있다. 
그리고 로버트 존슨 같은 천재도 B.L.J 의 연주법과 노래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다. 아니 거의 흉내내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들어보면 안다.

떠돌이 블루스맨들.. 이들을 누가 보호해 주겠는가. 
자기몸 자기가 지키지. 호신용 잭나이프, 총 한자루 정도는 가지고 다닌다. 
어디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정당방위 차원에서 ... 아님 내가 죽자너.. 

레드벨리는 1918년 부터 6년간..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방랑 생활을 했지만.. 역시 이 형은 거칠어.. 
1930년 살인미수혐의로 두번째 빵에간다.

인생은 새옹지마~ 여기서 로맥스 부자의 눈에띄게 된다. 

그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힐빌리 스타일의 노래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노예들이 처음 힐빌리 스타일의 음악을 익히고 했을법한 노래들..
노예가 목동의 포크쏭을 부르면 [이렇게 된다] 라는 걸 증명 해준 인물이다. 
음악의 화학적 결합! 의 그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모습이 그의 음악에 담겨있다.
만약 그가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면 블루스의 진화과정을 연구하는데 커다란 공백이 생겼을 것이다. 
마치 예수가 13세 부터 29세 까지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없는것과 비슷한?..

다음 노래를 들어보시라. 레드벨리가 부르는 카우보이노래를..

http://www.youtube.com/watch?v=zd0tLZ5cvYs (cow cow yicky yicky ya)

그리고 원래의 컨트리 스타일의 카우보이쏭

http://www.youtube.com/watch?v=rmNVBMUIhxo (비교해 보시라)

http://www.youtube.com/watch?v=XG-OL9Jb5q8&list=PL815048037E0AC932&index=1(looky looky yonder레드벨리)

http://www.youtube.com/watch?v=46h56pidCiE&list=PL815048037E0AC932 (Cotton Fields 레드벨리)

http://www.youtube.com/watch?v=-xh-_54Gh5c (The Highwaymen, Cotton Fields 컨트리포크 스타일)

그가 처음 수감생활을 할때(아마도 20년대 초) 우연히 텍사스의 주지사가 그의 노래를 듣게 된다. 
“어라! 깜둥이가 옛 카우보이 노래를 하네?” 
주지사도 어릴때 듣던 그 노래들.. 
‘기특한 놈...’ (요건 내 생각임.. 그러지 않고서야 왜 사면해주나.) 
그 후 주지사를 위해 여러차례 노래를 부르게 된다.

1930년대 초 두번째 빵에 있을때 로맥스 부자가 드디어 이 사람을 발견한다. [Huddie Ledbetter]..이게 그의 본명이다.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로맥스 부자는 의회 도서관에 보관할 민요들을 수집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민요들.. 
그런데 레드벨리의 그 방대한 레퍼토리.. 
걸어다니는 민요 주크박스였다. 
그를 정말로 좋아 하게된 로맥스 부자는 사면을 청원한다. 
34년에 결국 사면된 레드벨리는 뉴욕으로.. 
이때부터 Leadbelly 란 이름을 사용한다.
로맥스가 녹음한 레드벨리의 음반은 후에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관됐고, 1991년 [Leadbelly : The Library Of Congress Recordings]라는 제목으로 6장의 CD로 발매됐다.

레드벨리는 자칫하면 잃어버릴뻔한 중요한 연결고리와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다. 바로 블루스에 대한 고대와 중세를 연결하는 ..
그의 작품은 놀랍다. 그의 목소리는 짓눌린 영혼의 대변자처럼 들린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외모 만큼이나 힘있게 들리지만 그 내면의 목소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의 울림같다.

NIRVANA가 언플러그드에서 불렀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이 레드벨리의 작품 이란건 많이 알려져 있다. 64년 영국의 ANIMALS 가 불렀던 [House Of The Rising Sun] 도 레드벨리의 작품이다. 혹시 모르는 분을위해 링크한다.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http://www.youtube.com/watch?v=_XQlYxyTNEA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Leadbelly)

http://www.youtube.com/watch?v=mcXYz0gtJeM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Nirvna)

http://www.youtube.com/watch?v=y5tOpyipNJs (House Of The Rising Sun : Leadbelly)

http://www.youtube.com/watch?v=wDlrRQ6Yzis (House Of The Rising Sun : ANIMALS)

레드벨리는 죽을때 아무런 재산이 없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위대한 유산으로 남았다. 적어도 그의 노래를 부른 백인 가수들은 모두 백만장자가 됐으니까...

 

 

음악은 울림이다. 그래서 장벽이 없다.
국경도 인종도 시간 마저도 장벽이 되진 못한다.


2)델타의 종결자 Robert Johnson

 

 


Robert Johnson(1911-1938) 로버트 존슨.. 델타 블루스의 왕님! 지존님!
컨트리 블루스 혹은 델타 블루스.. 사실은 같은 뜻이다.
숲의 정령이 사는곳.. Voodoo의 땅..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곳.. 
남부의 미시시피이자 델타 라고 부르는 곳이다.
로버트는 가장 위대한 블루스맨으로 꼽힌다. 
오늘날 까지 수많은 후대의 록 블루스 뮤자션들에게 추앙 받아왔다..
그러나 그를 말 하기전에 반드시 언급해야할 또 한명의 천재가 있으니. .

Skip James(1902-1969) 
에릭 클랩튼이 불러 유명해진 [I’m So Glad] 가 바로 스킵의 작품이다. 
1931년 스킵은 음반을 녹음한다. 
당시 블라인드 레먼(지난회에 언급)의 죽음(1929)으로 파라마운트는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다. 
슈.스.블! 오디션을 했는데.. 어머나.. 엄청난 녀석이 나타남..
스킵은 최고의 기타 실력 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최고... 
노래? 묻지를 마!!.. 한마디로 능력자!
이 인물이 나타나자 파라마운트는 뭐 당장 “We Should a Contract !!”
“어여 녹음 스케쥴 잡아!!” 일사천리..

Bentonia 기타 주법? 들어보셨는가?
델타의 흔한 주법임? 
델타 블루스맨 들은 김삿갓류.. 혼자 맞짱뜨는 스퇄~ 
나 홀로 반주와 노래를 해결했다.
요즘이야 밴드가 우~~하고 같이 다니는 일진시대지만 그시대에 그런게 어딨나..

그저 삿갓쓰고 방랑하고 사람모인 곳이 있으면 노래한자락 뽑는 삿갓류 시대.
앰프와 전기기타가 나오기 전 시절이다.
그래서 만들었다. 
그러나 원래는 컨트리 스타일의 연주법에서 파생된거임.

엄지는 5번 6번 줄을 튕기며 베이스를 워킹..
나머지 손가락으로 화성을 만들고 혹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튜닝은 물론 레귤러하지 않다.
오픈 E minor 혹은 오픈 D minor 또는 오픈 D major ^^
요건 블라인드 레먼이 했던거..?
그런데 스킵이 요걸 너무 잘했다는..그래서 완성체라는..
벤토니아? 사실은 스킵이 태어난곳이다. 미시시피 유역의 ...
그래서 벤토니아 스타일이라 한다.

스킵은 31년 2월에 이틀 동안 녹음을 한다.
첫날은 기타반주로 18곡을. 둘째 날은 피아노 반주로 8곡을.
물론 26곡 모두 자작곡 이었고 본인의 연주와 노래들이다.
언제 들어도 놀랍다!

그가 앨범을 녹음하고 받은 돈은 무려 40$ 이었다.. 4만원 ㅠ
그게 끝.
대 공황의 여파로 얼마후 회사는 파산한다.
그의 음반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30여년 동안이나.

그가 다시 발견된건 63년 이었다. 요양원에서 병든 노인으로.
64년 뉴포트 포크페스티벌. 이곳에 드디어 행불자였던 스킵이 모습을 나타냈다.

 

스킵 제임스(오른쪽) 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에 나가기 직전 연습하고있다. 왼쪽의 인물은 미시시피 존 허츠


65년. 스킵의 연주다.
http://www.youtube.com/watch?v=nYk4MTSq6uA [Devil Got My Woman]

옆에 썬글라스 쓰고있는 덩치가 하울링 울프다. 뒤에 모자쓴 작은 노인네가 미시시피 존 허츠.. 레전드들의 반상회.. 
그의 연주를 보면 로버트 존슨의 모습이 보인다.

스킵은 이당시 암환자였다. 

http://www.youtube.com/playlist?list=PLDAA5A59C4FF3D0AB 

[스킵의 31년 음반의 곡들 ..링크]

음악이 음반으로 나오면서 좋아진게 있다.
직접 그를 만나지 못해도 연주법을 읶힐 수 있다.
듣는거 만으로도..
이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헨드릭스는 죽었지만 전세계의 후배들은 여전히 그의 연주스퇄을 사랑하고 있으며 흉내 내고 있다.
만난적도 없는데.. 

로버트 존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분명 스킵의 연주를 들었고 영향 받은게 확실하다. (공식적으로 만났단 기사는 발견못함)
뭘 물어봐? 들으면 아는걸.
연주법 뿐 아니라 보컬 마저도.. 작곡 스타일 마저도.. 

1911년 태어난 로버트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와 그의 주변의 스토리는 항상 미스터리하다.
신화적 인물은 항상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그 역시 가난한 남부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흑인들이 성공하는 방법은 ?
별거없다. 가수가 되거나 운동선수가..그때는 아니구나...
그도 역시 하모니카와 기타를 배웠다.

딴따라는 예나 지금이나.. 그도 부모몰래 악사들 모이는 Juke Joint(남부전역의 농장노동자를위한 공연장소) 로 나 다녔다.
거기서 그도 역시 중요한 만남을 가졌다. 
바로 Son House (1902-1988) 와의 만남. 아 무슨 무협지도 아니고..
선 뿐만 아니라 Willie Brown(1900-1952) 과도 만난다.
그들의 숨막히는 연주를 본 로버트..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 !! 쪈다”

그들의 연주를 흉내내기 시작한 로버트. 자신도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설익은.. 결국 무대에 서 봤으나 온갖 야유와 욕설을 들으며 쫒겨났다.
“야이 개쉐이~내려가” “애송이가 어디.. 젖이나 빨엇!”....

크게 낙담한 로버트.. 
기타를 않은채 교차로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흐느끼는듯.. 
그런 어린 로버트를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봐 왔는지도 모른다. 
자정을 넘긴 시간 고개를 떨군 로버트 앞에 덩치 큰 누군가가 나타난다. 
로버트는 누군가 자신앞에 있다는걸 느꼈지만 이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는걸 깨닫는다. 
고개를 든 로버트 순간 숨이 멎을듯이 놀랐다. 섬칫했다. 그는 악마다.
“이봐 로버트 나와 거래하지 않겠나?”
로버트는 순간 Voodoo의 전설을 떠 올렸다. 
“당신은?”
“흐흐흐 그래 니가 생각하는 ..”
로버트는 아무말 하지 못했다.
“블라인드 레먼도 나와 거래했었지..어떤가 자네도 최고가 되고 싶지 않나”
“블라인드는 죽었잖아요”
“그래 내가 다시 데려갔을 뿐이야”
.... 
“너무 겁먹지 말게 친구”
“나와의 아주 작은 약속만 지키면 된다네.. 아주 쉬운거라네”
“그.. 그게 뭔가요?”
“나 와의 거래를 절대 밝혀서는 안돼.. 단지 그것 뿐이야..어때 쉽지 않은가?”
“그.. 그럼 그 대가로 전 뭘 얻나요?”
“MOJO!. 물론 자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할 수있는 기타실력과 목소리를 얻게되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로버트...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너의 영혼은 내가 가져가지”
...
“자네의 기타를 내게 주게나. 내가 직접 조율해 주겠네.. 그러면 우리의 거래는 이루어지는거야”
로버트는 떨리는 손으로 기타를 건낸다....

요런 이바구가 전설같이 전하고 있다는거지.

Son House(1902-1988) 슬라이드 기타의 선구자. 
로버트존슨의 실제 스승이자 Muddy Waters의 스승이기도 하다.
선 하우스가 최초의 슬라이드 연주자 라고도 알려졌지만 사실은 Charley Patton(1887 or 1891-1934) 이 먼저다. 
찰리 위에 누가있는지는 모르겠다.
찰리는 윌리 브라운에게 슬라이드 주법을 가르쳤다.
윌리는 선 에게 가르치고 선 은 로버트 존슨에게 ...
또 머디에게도..
휴~ 계보정리.

 

 

Son House & Muddy Waters

 


*슬라이드주법 

찰리-->윌리-->선-->로버트

* 벤토니아주법 (스킵을 만난적 없지만)

블라인드레먼-->스킵-->로버트

결론 : 로버트는 두가지 스타일을 다 마스터했다.

소림과 무당의 양대문파의 지존으로 등극하고 비룡구식(飛龍九式)의 비급과 파천황신검(破天荒神劍)을 손에 넣은 로존! 
강호의 초절정고수들 겨우 탄지신공의 일합을 버티지못하니 천하가 앞다투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경배하더라. 
비룡능추(飛龍凌追)의 경공술은 하루에 천리를 내달으니 천하의 객잔이 지존을 영접하지 않는곳이 없더라.
무림에 그의 무공을 당할자가 없으니 스스로 일컬어 유아독존 이니라...

로버트는 18살때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트래비스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일설엔 게이란 설도 있지만..(확인안됨) 
그러나 결혼 후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정착은 커녕 역마살 돋는 남편...
Juke Joint로 출동.. 그 와중에도 마누라는 임신을 했네..
여기저기 돌아 댕기다 집에 왔더니 아 글세 아내는 애낳다가 저세상으로..ㅠㅠ
딸 있으믄 이런사람한테 절대 시집보내면 안뒤야!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멸씨를 받는다. 왜 안그러갔어.
그는 한쪽눈이 조금작다. funny eyes..
그녀의 가족들은 퍼니아이스의 존슨이 자신의 결함 때문에 악마적 순회방법(Devilish Intinerant ?)으로 어린 아내를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로존도 사람이다. 그에게도 상당한 충격 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자식의 죽음이후 화물기차를 타고 또는 먼거리를 걸으면서 여행과 연주를했다. 이무렵 부터 여러개의 이름을 사용했다.
로버트 스펜서, 로버트 제임스, 로버트 바스로우, 로버트 삭스, 로버트 키드... 그리고 로버트 존슨.

로존은 남부의 여러 도시를 전전했다. 이발소 앞이나 식당 앞 .. 
거리에서 연주와 노래를 했다. 한번 들은 노래는 절대 잊지않는 천부적인 재능은 팁 주는 사람에게 어떤 신청곡도 노래해줄수 있었다.
점점 소문이 난 로존. 1936년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서 첫 녹음을 한다.
그리고 1년후 달라스에서 두번째 녹음을 한다.
그리고 1년 후 사망한다.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에릭 클랩튼은 “로존은 내 음악인생에 있어서 가장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러하다” 라고했다.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쳐드가 로존의 음반을 첨 들었을 때 “그런데 뒤에서 기타치는 또 한사람은 누구지?” 라고 물었다고 한다.
혼자 연주했단 사실을 알게 되고 경배하라~!
머디워터스 역시 로존의 음악을 흉내내며 시작한거나 마찬가지다. 
레드제플린..등등…
나는 어제도 들었다. 크림버전 으로 어느 학생이 연주하고 있었다.

“I went to the crossroad, fell down on my knees~~” 
80년전에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아직도 울려퍼진다.

총 29곡의 노래. 두장의 사진. 그게 그에대해 알려진 거의 전부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일화도 정확한건 없다. 
어느 댄서를 열라 꼬시다 완전 빡친 댄서의 남편이 위스키에 독약을 타서...독살했다라는.
심지어 그의 무덤도 확실치 않다. 세곳에 묘비가 서있다. 

1938년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 27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4년 후 그가 즐겨 사용하던 가명중 하나인 James란 이름을 가진 
James Marshall Hendrix로 다시 환생했다…. .. .?

지금 뭐하냐고? 야부리 까자너...

http://www.youtube.com/watch?v=GsB_cGdgPTo
[Robert Johnson- CrossRoads]

http://www.youtube.com/watch?v=-a2P-fJhN7U 
[Robert Johnson- Preaching Blues] 이곡은 꼭 들어보시길..오 Rock”n Roll 믿기지 않는 연주 ㅠㅜ

http://www.youtube.com/watch?v=XrExBI7PtLc 
[Robert Johnson- Traveling Riverside Blues]

http://www.youtube.com/watch?v=JXC1jjRCXtg 
http://www.youtube.com/watch?v=h3yd-c91ww8 
블라인드 레먼 제퍼슨의 음악도 들어보세요..

 

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왜냐하면 음악인들은 서로 경쟁자 이자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40년대 이후의 음악을 논하는건 복잡한 작업이다..
음악의 화학적 결합 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전 시대보다 몇배나 다양하고 복잡한 결합이 일어난다.
따라서 방대한 분량을 다룰수 밖엔 없다. 
그리고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그리 길지 않은 글인데도 길게 보인다…잘게 토막 내야돼..

 

Chapter3 진화

1)어쿠스틱 에서 일렉트릭 으로

본명 맥킨리 모건필드. 
Muddy Waters(1913 또는 1915-1983)로 알려져있다. 
머디라는 이름은 그의 할머니가 어릴때부터 진흑탕놀이를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지어준 애칭이다. 
선 하우스와 로버트 존슨으로 이어지는 델타의 계승자이다. 

대부분의 블루스맨들은 대개 미시시피 출신이다. 머디역시 ..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도 경제적 파산의 위기에 이른적이있다. 
30년대에 불어닥친 경제대공황..
남부의 빈농들 .. 희망이 없었다.
대부분 농사꾼 출신인 흑인 블루스맨들..
땅파봐야 먹을것 없고 별 볼일없는 시골..
두가지의 선택이 있다. 남을꺼냐? 떠날거냐?

도시로의 탈출러쉬!
남부 농사꾼들의 종착역 시카고..
로맥스를 만난 이후 자신감이 생긴 머디..
그가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http://www.youtube.com/watch?v=pgoq6cKeCoo 
[Muddy Waters - Field Recordings 1941 & 1942]
앨런 로맥스에 의해 녹음된 머디의 최초의 녹음물이다.

 

  

Muddy Waters 50년대로 추정. Fender Telecaster를 안고있다. / Muddy Waters 50년대 초반으로 추정. Gibson Les Paul 을 안고있다.

 

Muddy Waters. 1960년 Newport 페스티발에서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실제 60년 사진인지는 모르겠다. Gibson L-5로 추정되는 기타를 연주하고있다.

 

시카고는 폴란드출신의 이민자가 특히 많이 살았다.
Leonard Chess (1917–1969).. 레너드와 필립 형제는 20년대말 시카고에 정착한 폴란드 유대인 출신 이민자였다.
(캐딜락 레코드라는 영화에는 동생인 레너드 얘기만 있지만..) 금주령 시대에 주류산업으로 한목 잡은 체스형제..
그들은 39년 시카고 남부지역에 Macombo라는 클럽을 연다.. 이곳에서 블루스 뮤지션들이 출연하게 된다.
당연히 이곳에서 블루스를 접하게된 체스형제.. 그런데 제대로된 그들의 음반이 없다는걸 알게된다.
그래서 체스형제는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1946년 Aristocrat 레코드를 설립.
이곳에서 머디를 비롯한 여러 어반 블루스맨들이 탄생한다. 그리고 1950년에 Chess Records 란 이름으로 다시 출범한다. 
무슨 음반사이름이 체스여? 장기음반? ..


Chess Records의 대표 Leonard Chess. 영화 캐딜락레코드에서는 잘생긴 애드리안 브로디가 연기했지만 실제로는 머리가...


체스는 사실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시카고 블루스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록큰롤을 만들어냈다.

시카고블루스의 특징?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큰 대도시중 하나다. 도시는 세련되고 자극적이다. Urban!~..
시골에서 하던게 통할리가 없잔아.. 대도시에 취향에 맞는 자극적 트렌드는 뭘까?

청기 내리고 백기 올려! 어쿠스틱 내리고 일렉트릭 올려!

대도시는 시골과는 확연히 다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넓은 사교장과 나이트클럽과 댄스 홀이 있다.
40년대의 대도시는 빅밴드의 차지였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빅밴드의 연주가 울려퍼졌다.
어쿠스틱기타는 소리가 작아서 빅밴드에서? 존재감이 없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콰앙~ 하고 터트리는거다..

일렉 기타를 첨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30년대에 활동한 위대한 재즈 기타리스트 Charlie Christian(1916-1942).
25살에 요절한 천재는 이후 재즈 기타리스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십명이 연주하는 빅밴드의 브라스.. 그 음량을 당할수없는 기타의 한계..
그걸 극복한 것은 다름아닌 앰프에 연결한 일렉기타였다.

거의 최초의 일렉기타 사용자인 Charlie Christian.
사진은 4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빅밴드에서 연주하는 모습이다. 뒷줄에서 기타치는 사람이 찰리. Gibson ES-150으로 추정되는 기타를 연주하고있다.

 


여기서 잠깐!
일렉트릭 기타의 역사를?

1909년 Leo Fender(1909-1991)가 태어난다. 어릴 때 라디오를 가지고 놀았다. 학업보다 전기제품 갖고놀기를 좋아했던 레오.. 1940년경에 캘리포니아에서 전파상~
순돌이 아빠하던 레오. 어느날. 어느손님의 의뢰로 어쿠스틱기타를 일렉으로 개조해 달란 부탁을 받는다.


Leo Fender Fender 기타의 창립자 이다. 1965년 CBS방송국에 회사를 매각해서 펜더기타는 64년형 까지 알아주는 편이다. 사진은 완전 순돌이 아빠..


-이미 30년대에 깁슨에선 일렉기타와 앰프가 있었다..
물론 할로우바디의.. 음.. 속이 텅빈 형태의.. 쉽게 말하면 통기타에 픽업단 모습. 깁슨의 ES-150 이란 기타가 찰리가 사용한 기종-

이후 흥미를 느끼기시작한 레오는 45년 Kauffman & Fender를 설립. 카우프만은 독일출신의 엔지니어.. 
30년대 최초의 기타앰프 발명가중의 한명이다. 일렉기타는 앰프없인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초기의 일렉기타회사들은 앰프도 같이 만들었다.

그뒤 46년 카우프만이 떠나고 이때부터 Fender라 했다는..
50년부터 Esquire 라는 모델을 양산. 근데 요거 문제있슴.. 넥 휘어지고.. 중국산 같은..


레오는 사실 기타를 연주할줄 몰랐다. 그래서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데.. 절치부심! 요걸 보완한 모델이 만들어지는데 51년에 나오는 Broadcaster 라는거다. 근데 Gretsch 라는 회사에서 그 이름 우리가 먼저 썼슴!~ 판매금지.. 그래서 나온게 지금도 사랑받고 머디가 애용하기 시작한 Telecaster 인 것이다.

이 무렵 솔리드바디(속이꽉찬) 일렉기타가 나오기시작함..


신생 펜더의 위협에 자극받은 Gibson 도 52년에 솔리드바디인 Les Paul을 만들어낸다.. 일렉기타의 히스토리도 재미지는데..담에,


1943년 시카고에온 머디. 별볼일 없었다. 그런데 45년 어느날 그의 삼촌이 일렉기타를 선물한다.
(아마도 Glbson L-5로 추정.사진참조) 그때부터 그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한다.

머디는 그의 스승 선하우스만큼 노래를 잘 하지도 로버트 존슨만큼 기타를 잘 치지도 못했다.’
하지만 시대를 읽는 안목이 있었다. 그리고 운도...
머디는 일렉트릭 블루스의 창시자이자 록큰롤의 할아버지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ZzdsfnS8g6U 
[Muddy Waters -Gypsy Woman .1947] 

http://www.youtube.com/watch?v=NdgrQoZHnNY
[Son House -Death Letter Blues]

http://www.youtube.com/watch?v=QA8-ZOuKetU
[SON HOUSE - Grinnin' In Your Face ]


 

당대의 라이벌은 항상 존재한다. 
60년대의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지미헨드릭스와 에릭 클랩튼.
70년대의 레드제플린과 딥퍼플. 등등.. 
그런가하면 파트너도 존재한다. 
같은 밴드인 비틀즈 내에서도 폴 맥카트니와 존 레넌은
파트너이자 라이벌 이었다. 
이런 관계는 재밌는 루머도 만들지만 훌륭한 예술적 성취도 이뤄낸다.


2)라이벌과 파트너

50년대 초. 머디는 시카고의 방주였다. 소위 넘사벽..
53년에 시카고를 기웃거리던 촌녀석이 있었는데..노래좀 하네? 
그를 발견한 머디.. 
"어이~ 나는 머디라고 하네. 자네 이름이 뭔가?"
"아~~후~~~늑대 입니다."
"헐.." 
머디는 그의 거친 야성이 맘에 들었나보다.
"어이 오갈데 없으면 우리집에 와있어"

Howlin’ Wolf(1910-1976)
아~우~~ 늑대의 울음소리. 그 걸쭉한 목소리의 주인공 그게 그의 이름이다.
영화 캐딜락 레코드에선 처음 만남부터 날선 신경전을 보여 주지만 ..
실제로는?
초창기에 두 사람은 친했던것 같다. 하울링의 재능을 발견한 머디는 여기 저기 클럽에 소개도 시켜주고 
"인사드려" "앞으로 얘좀 잘 봐줘" 
"잘 부탁함다. (굽신굽신).."
선배답게 잘 보살펴 줬다. 실제론 하울링의 나이가 많았지만..
잘나가던 머디의 땜빵질로 시카고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두사람과 체스 레이블을 언급하려면 반드시 등장해야하는 사람이있으니.
Willie Dixon(1915-1992) ..1950년 체스형제는 체스레코드로 재 출범한다.
이때 고용한 작곡가이자 베이스 연주자가 복서 출신의 윌리다.

그역시 미시시피의 촌에서 태어나 농장에서 일했다.
어릴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윌리.
1936년 그 역시 가난한 촌을 떠나 시카고로 향했다.
2m의 키에 110kg 이 넘는 거구였던 윌리. 
대도시에서 생존하는 방법으로 첨 택한것은 복싱이었다. 
37년 일리노이 주 골든글러브 헤비급 챔피언이기도 했다.
본격 복서로의 길을 갈뻔한 윌리. 
당대의 전설적 복서인 조 루이스의 스파링 파트너도 했으나 메니저에게 사기당한후 복싱계를 떠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는 음악의 길로 들어선다.

머디나 하울링이 전설이 될수있었던 건 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다 작곡능력이 있었지만 윌리의 곡은 서로 받으려 했다.
수 많은 명곡을 만들어 냈으며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재능많은 아티스트들을 수도없이 발굴했다.ㅜ

머디와 하울링은 이 유능한 작곡가 덕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또 다른 음악적 파트너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된다.
음악가들이 음악적 파트너를 갖게 되는건 대단한 행운이다.
머디에게는 하모니카 연주자 리틀월터가 있었고 하울링에게는 기타리스트 허버트 썸린이 있었다.

Little Walter(1930-1968) 
루이지에나 출신의 이 말썽쟁이는 불과 12살에 가출한다. 
떠돌이 생활 끝에 1948년시카고에서 머디를 만난다.
1950년 체스의 일원이 된 리틀..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최초로 앰프를 사용한 하모니카 연주자 였기 때문이다.
보통 블루스 연주자들은 '블루스하프'라고 부르는 작은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참고로 하모니카는 다이아토닉 즉 반음이 없는 10홀 짜리와 반음계로 이루어진 크로메틱 이 두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블루스에선 다이아토닉을 사용한다.




여기서 잡깐! 
음악은 저마다 조성이 있다. 다장조 바장조.. 요건 우리식 표현이고 일반적으로 C장조 F장조..
이걸 KEY라고 표현 하는데 블루스하프는 12개의 조성에 맞는 각자의 키를 가진 하모니카가 따로있다.
C Key 에는 C Key 하모니카를 D Key에는 D Key 하모니카를..
그러나 블루스를 연주할때는 다른키를 사용한다. 
블루스에서는 보통 4도 위의 키를 가진 하모니카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특유의 블루스 스케일 때문이다. 
예를들면 C Key의 곡에서는 4도 위의 스케일을 가진 F Key 하모니카를 사용한다.
그러면 하모니카의 3번 홀을 근음으로 사용하는데 이렇게 연주하면 제 7음이 플렛이 되면서
믹소리디안 스케일이 된다. 이러면 메이져 블루스 스케일을 사용하는 블루스의 음계를 충실히 연주할수있다.
그런데 리틀 월터는 장2도 아래의 하모니카를 사용했다.
가령 A Key의 곡에서 G Key의 하모니카를 사용하는것이다.
이러면 하모니카의 4번홀의 들이 마실때 내는 음정인 '레' 로 근음을 사용한다.
이러면 제 3음과 제 7음이 플렛이 되어 도리안 스케일이 된다.

너무 나갔나?

어쨋든 리틀월터는 이런 포지션으로 능수능란한 연주를 해냈다.
그가 마이크를 기타 앰프에 연결해서 하모니카에 대고 연주했던 것은 
오늘날 블루스하프 연주자들에게 정석으로 남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G-QWzJsJByg
LIttle Walter+Muddy Waters-Walkin on 
머디와 리틀월터의 절묘한 하모니를 들려주는 곡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p3cKJ42HAd0
Little Walter - My Babe 그가 차트정상을 차지한 곡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UzRgVFVlrXw
리틀월터가 사망하기 1년전 영상이다.



Hubert Sumlin(1931-2011) 
역시 미시시피 출신의 이 기타리스트가 하울링을 만나건 10대 시절이었다.
허버트는 불과 10대 후반에 하울링의 밴드에 합류한다. 그의 연주실력은 머디도 탐을 냈을 정도로 발군 이었다.
하울링도 역시 기타를 연주했지만 머디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모니카 연주를 즐겼다. 
쿨 한 밴드를 만들려면 쿨한 기타리트가 필요하다. 허버트같은..
악기 연주법에서 음을 꺽고 비트는 그래서 음정의 변화를 주는연주.. 이런걸 Bending이라고 한다.
기타로 치면 쵸킹, 쵸킹다운, 비브라토 .. 뭐 이런걸 벤딩주법이라 하는데 그걸 가장먼저 사용한(슬라이드주법 빼고) 사람중의 한명이 허버트다. 그래서 그가 위대한 연주자로 꼽히는 이유다.

http://www.youtube.com/watch?v=REGLhKbj3zg
Howlin' Wolf & Hubert Sumlin - "Don't Talk About Me"
레드제플린이 표절한 리프를 잘 들어보시라.. 

http://www.youtube.com/watch?v=yvwVuOM7aFQ&list=PL4E1D2091D5C5565C
HOWLIN' WOLF ~ Killing Floor 

레드제플린은 이 두곡을 표절해 Lemon Song을 만든다.. ^^;;

http://www.youtube.com/watch?v=Rb8bzRZCGDY&list=PL4E1D2091D5C5565C

http://www.youtube.com/watch?v=urF7vIXyxWM

http://www.youtube.com/watch?v=9XrFiiDm6mo

머디와 하울링 .. 이 두사람의 라이벌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머디의 입장에선 잘 키운 개 한마리가 어느날 보니 늑대더라..
언제부턴가 서로 악수도 안하는 관계로 발전한(?) 두사람.
후발주자 하울링의 선전은 눈 부셨다. 

그들은 오늘날 소위 콤보 형태의 밴드의 전형을 만들었다.
빅 밴드가 유행하던 시절 드럼,베이스,피아노,하모니카에 일렉기타가 추가된 최소 인원의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다.
이런 구성이 현재의 밴드구성의 전형으로서 남게 된다. 그리고 곧 태동하는 록큰롤의 기초를 만들었다.

 

도구는 인간이 발명하지만 결국은 도구가 인간을 지배한다. 
그 이유는 규격 때문이다.
도구는 우리에게 편리함과 가져다주고 삶의 질을 향상 시켜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꾸기를 요구하는 표준적 규격이 있다. 
나아가 집단적 사고의 편린 까지도 간섭한다.
때론 그 결과가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컴퓨터가 나왔을때, 인터넷, 스마트폰이 나왔을때를 기억해보시라.
우리의 모든 행위는 그 규격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의 페북도 ..

 


Chapter4 또다른 여정

1)재즈는 어떻게 분화되었는가

SP . LP. EP 이런 말을 알고계시는지? 
처음으로 상용화된 음반의 형태가 SP다. Standard Play..
1분당 78회전의 이 디스크에는 12인치 한면에 최대 4분 30초가 기록이 된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음반에 음악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4분 30초 이내여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초기의 음악가들은 그것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4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LP(Long Play 분당 33.3회전 한면에 22분정도)와 EP(Extended Play 분당 45회전, 도너츠판이라불렸던.. 한면에10분정도기록)가 나온다.

50년대 시카고 블루스를 열라 파다가 잠시 시계를 돌려 20세기 초로 다시 가본다. 
재즈는 어떻게 만들어 졌나?
아직 다루지 않았던 음악의 거대한 조각인 재즈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다.

Dixieland (딕시랜드)..미국의 남부연합을 말한다. 원래는 루이지에나의 늪지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 루이지에나의 중심이자 무역항 New Orleans(뉴 올리언스)..
재즈의 고향이다.

노예해방이후 실업자가된 남부군 군악대의 악기가 헐값에 시장에 나온다.

최초의 흑인 브라스밴드들은 중고시장에 나온 악기들 덕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대부분의 책에서 이렇게 서술함)
컨트리블루스의 기타맨들이나 또는 피아노맨들..
이들은 혼자서도 잘해요! 전에도 주장했지만 김삿갓류!.
그럼 관악기는? 단음 악기인 트럼펫, 클라리넷, 트럼본.. 이런 관악기들은 여럿이 앙상블을 이뤄야 비로소 음악이 된다.… 
몰려다니는 일진류!. 
아 물론 쏠로로 맞짱뜨는 아름다운 모습도 있지만.. 

브라스밴드들은 말 그대로 관악중심으로 구성되어있는 밴드다.
뉴올리언스의 브라스밴드들..
작은 도시인 뉴 올리언스는 음악의 도시다. 적은 인구에 비해 무수히 많은 밴드들이 존재했었다. 
초기의 브라스 밴드는 마칭밴드(Marching Band)였다.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 군악대가 하던 것이었으나 남북전쟁이후 부재한 그 빈자리를 그들이 차지했다. 
축제나 장례식에 이들이 천천히 행진하며 연주한다.
지금도 그런 풍습이 뉴올리언스에 전해온다.

http://www.youtube.com/watch?v=klIuL654rdc
http://www.youtube.com/watch?v=dU5Lyxfpdek
(아주 오래전 자료는 아니지만 짐작해 보시라)

루이지에나주의 뉴 올리언스는 미국에서도 프랑스의 영향이 큰 곳이다. 17세기에는 프랑스령 이었고 올리언스란 이름도 18세기에 프랑스 도시인 오를레앙 에서 따온 것이다. 오를레앙의 쟌다르ㅋ~!!

19세기초에 프랑스가 미국에 팔아서 현재 뉴 올리언스가 되었다.
노예무역의 중심지였고 재즈의 발상지 이다.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발생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인종의 시장같은 곳이다. 오래전 부터 스페인계, 프랑스계,영국,이탈리아,독일,슬라브인, 그리고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칸 들이 뒤엉켜 사는 곳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했다. 물론 초기의 컨트리블루스와 흑인영가 역시 혼재한..
앵글로색슨 계통의 촌스런 힐빌리와는 다른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유럽음악이 있었다.
역시 이곳에서 '음악의 화학적 결합' 이 일어난다. 블루스의 음계가 뒤섞인 유럽풍의 행진곡! 이게 재즈발생의 시초다.

독일의 저명한 작가이자 평론가 Ernest Bornerman 은
"재즈는 블루스를 유럽음악에 적용한 것이거나 그 반대인 경우일 뿐이다." 라고 했다.(The Jazz Book 인용)

재즈라는 말에 Charlie Parker, Dizzy Gillespie, Miles Davis 를 떠 올리는 분이라면 재즈 마니아가 틀림없다. 재즈가 표현하는 극한의 예술적 경지를 이룩한 대가들이지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40년대 Be Bop 이후의 재즈와 이전의 재즈는 다르다. 하물며 초창기의 재즈가 지금 같을리는 없다.

최초로 뉴올리언스 양식의 재즈를 녹음한 밴드는 백인으로 이뤄진 'Original Dixieland Jass Band' (1917)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은 이미 이전부터 존재하던 흑인 마칭밴드를 흉내낸 백인밴드다.

이들이 재즈의 창시자라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이 백인이라 먼저 기회가 온 것이다.
그후에 역시 백인으로 이루어진 'New Orleans Rhythm King' 이 있다. 뭐 대동소이…

 


처음으로 딕시랜드 재즈라고 대도시에 소개되어 한때는 백인 재즈를 딕시랜드재즈라고도 했다.

또 이후에 소개된 흑인 재즈를 뉴올리언스 재즈라고 지칭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초기 재즈는 스스로 흑인혼혈이라고 자칭하는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를 들어야 비로소 짐작할수 있다. Creole이란 말이 프랑스계의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이란 뜻이다. 크레올은 아메리칸 니그로들과는 차별된다. 주인이 프랑스계나 스페인계의 노예들은 앵글로색슨계의 노예들에 비해 훨신 자유로웠다. 
크레올은 스스로도 아메리칸 니그로들과 차별을 두려고 했고 그들을 경멸하기 까지했다. 
뉴 올리언스에는 남북전쟁 이전에 자유의 몸이된 크레올이 많았다. 상업에 종사하며 부자가된 크레올 들도 많았는데 자식들을 교육 시킬수 있는 여건이 가능한 흑인들.. 또는 교육받은 프리 니그로 들의 도시가 뉴 올리언스였다.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의 20년대 초의 녹음물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iWiad8TXwM4
http://www.youtube.com/watch?v=aM3JJHLcwn8
http://www.youtube.com/watch?v=JdKfUgCnMxw
http://www.youtube.com/watch?v=JdKfUgCnMxw

잘 들어보면 블루스를 연주하고있다. 대개 경쾌한 빠르기의 음악 들이다. 그러나 스윙 느낌의 드럼연주나 워킹베이스는 아직 없다. 
Fox Trot 스타일로 연주하고있다. 
트로트?
그렇다. 20세기초에 미국에서 유행하던 춤의 형태다. 
춤이 있어서 음악이 나왔다고? 
NO! 음악이 있으니까 춤이 나오지.. 
4/4 박의 이 음악의 형태는 1박과 3박에 악센트가 있다.
지금의 재즈와는 반대다.. 2,4박에 악센트를 주니까..
어디서 유래된 걸까?
랙타임? 
그렇다. 랙타임도 같은 악센트를 준다. 좀더 나가면?
Polka! 
그렇다 유럽에서 들어온 경쾌한 춤 음악이다.
폴카는 1박 3박에 악센트가 있다. 우리나라의 뽕짝 이 그렇다.
뽕짝은 일본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어온 폭스트로트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왜 뽕짝 이냐고?
그렇게 들리잖아! 리듬이 뽕짝뽕짝…..
이거 잘못된 표현이 아니다. 
음악의 장르 이름은 대개 의태어나 의성어로 되어있다는 
놀라운 사실..

그런데 아까 크레올 어쩌구의 재즈음악은 원래부터 경쾌한 음악이었을까??
아니다. 이보나 훨신 느린 속도의 늘어지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왜?? 
기다려봐!!

JAZZ 란 말의 유래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다. 어느것도 정설은 없지만 이참에 가장 그럴듯한 야부리 하나를 제시해 본다.. 

20세기 초..뉴 올리언즈는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 정부에서 군항으로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군사기지 근방의 모든 엔터테이너 활동을 금지한다. 졸지에 실업자가된 악사들.. 뭐 있나? 떠나는거지..
북쪽의 대도시로 탈출러쉬.. 

King Oliver(1885-1938)와 그의 크레올들도 시카고에 정착한다.
남부에서온 최고의 연주자들을 가만 둘리가 없잖아.
올리버 왕님 계약합시다!

밴드들이 녹음하러 갔다. 
"어여들와"
"사장님 안녕하세요!!"
밴드들이 죽 둘러앉아 준비에 들어간다.
"자!자! 그럼 리허설 해볼까?"
사장님이 지시를 내린다.
밴드가 연주에 들어가는데 .. 
남부에서 하듯이 느릿하게 축축하게 연주했다.
근데 길어..
"엥? 뭐야 10분이 넘잖아!!"
우리 사장님 화났어요….
음반에 수록 하려면 4분이 넘으면 않되는데..
10분이나 돼다니..
이일을 어쩌나? 
이때! 머리 잘돌아가는 오퍼레이터가 있었다.
"저기요! 혹시 빨리연주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장님 화색이 돌며 무릎을 탁 친다.
"오! 넌 천재야! 어서 진행시켜!!"
신난 오퍼레이터.
"자 여러분 두배 이상 빠르기로 연주해 주세요! 'jass' 알쟈너~"
"헐"

야부리라 해도 할말은 없지만 나름 근거있슴다….. 
'jas' 혹은 'jass' 라는 속어가 있다. 스피드나 힘을 극대화 또는 성행위등을 '빨라지게한다'라는 뜻이다. 
그들의 음악을 원래부터 재즈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어느날 부터 유럽음악에 적용한 블루스를 빠르게 연주한다 라는 뜻으로 Jas >jass >jaz >jazz로 불리게 되었다는..

20세기 초에는 음반 한면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4분여에 불과했다.
초기의 재즈밴드들도 블루스를 연주했다. 
킹올리버스크레올재즈밴드의 레퍼토리 대부분은 블루스였다.
블루스는 원래 느릿한 음악이지 않은가…근데 음반에 못담어..
도구가 허용하지 않는다는데 사람이 바꿔야지..

그리하여 슬로우템포의 음악은 경쾌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는..
이런게 하나의 전형으로 남았다. 모두다 이렇게 연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음반을 내잖아..또 춤추기도 좋고!
엔터의 꽃은 춤이잖아!!

 


또 하나의 야부리 이론을 제시한다.
프랑스령 이었던 뉴 올리언스는 영어보다 크레올랭귀지 라고해서 불어, 스페인어 아프리카어가 혼재된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했다.
기본이 되는 언어가 불어였는데 불어중에 'Jaser'란 말이있다.
발음이 '쟈줴'.. 발음 잘하세요…
'수다떤다' 라는 뜻이다. 즐겁게 수다떤다… 
뉴 올리언스 재즈 스타일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매우 수다스럽다. 
당췌 쉬는 악기가 없다. 
주로 3종의 선율악기가 등장하는데 트럼펫(혹은 코넷)트롬본, 클라리넷 이 저마다 교차하며 수다떨듯이 연주한다. 
주 선율은 주로 트럼펫이 담당한다. 대조적인 색갈인 트럼본이 저음부로 화답한다. 그사이를 클라리넷이 종횡무진 내달으며 각자 떠든다. 소위 자유대위법 이라고 하는 연주형태를 보인다. 
각자 자유롭게 임프로비제이션 하는 연주법..
불어문화권이라 이런 형태의 음악을 수다떠는 모양세로 인식해서 Jaser라고 하다가 영어식 표기로 Jazz 라 하지 않았을까?

뭐 정설이 없으니.. 내 말이 정설이닷!!

그들에게 블루스는 단순히 형식이 아니었다. '에티튜드' 였다.


 

위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한 사람들 중에는 정작 자기 자신은 그 혜택을 못 누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몇몇 예술가의 경우도 그렇다. 
고흐는 자기 작품이 이렇게 비싸질줄 알았을까?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그가 죽은 이후에 비로소 알려졌다.
카프카의 소설도 그가 죽은뒤에 출판됐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것은 명예로운 일이지만 
영화도 함께 누리는 사람은 정말 운좋고 복 많은 사람일지도... 

 

2)Boogie Woogie 의 탄생

1920년대는 Bessie Smith(1895-1937)의 시대였다. 
당시에 수백만장의 음반을 팔아치운 진정한 스타였고 고전 블루스의 여왕이다. 
돈도 엄청 벌었으나 펑펑 쓰기도 잘했다.
시골 장막무대나 서커스에서 노래를 불렀던.. 지질히도 가난하던 언니..
이런분들이 어느날 갑자기 때돈이 생기면 관리를 못해 ㅠ 나쁜 형아가 이 언니 많이 등쳐먹었쓰~




베시는 아마도 블루스와 재즈의 경계선.. 그 접점에서 분화되는 과정의 출발점 이었다.
블루스 가수였지만 그녀의 노래는 이후의 재즈싱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기악 중심의 재즈.. 비로소 노래하는 법을 알려준 베시..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20년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디바!

http://www.youtube.com/watch?v=zCrtErmipXE
[Bessie Smith -- Baby Won't You Please Come Home 1923]

http://www.youtube.com/watch?v=jaJQIfZfNMk
[Bessie Smith -Empty Bed Blues, 1928]

http://www.youtube.com/watch?v=b0TDNR3NEY0
[Bessie Smith - I'm Wild About That Thing (1929)]

http://www.youtube.com/playlist?list=PLACC03B016B3310C8

당시의 블루스 와 재즈는 아직 투비트(Two-Beat Jazz) 음악 이었다.
아직 랙타임의 영향권..20년대 까진 [SWING]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스윙은 두가지의 뜻으로 사용한다.
쩔뚝쩔뚝 하는 듯한 리듬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었으나 이후 재즈에서 4비트(Four-Beat Jazz) 스윙 리듬을 도입(?) 하면서 
재즈를 스윙이라고 하기도 한다. 8분음표를 3잇단음표로.. 
/3\
♩♪ 

30년대 부터 재즈는 스윙을 했다. 다시말해 스윙한 리듬..쩔뚝쩔뚝 리듬.
그래서 재즈는 스윙을 해야 재즈고 스윙은 재즈를 말한다!! 라는.. 
전에 말씀 드렸자나여~ 음악의 장르의 이름은 의태어 의성어!
근데 누가 시작했지?

Pinetop Smith(1904-1929) Clarence Smith 라는 본명보다 파인톱 스미스 라는 이름으로유명하다.
(베시 스미스와는 아무 관계도 아님 그냥 같은 쓰씨여)
그에 대해 알려진건 거의 없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서..
25살에 총기사고로 사망한 것과 부기우기를 세상에 알린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 라는것...사진도 전해지지 않는다. 
아마도 피아노계의 로버트 존슨? 물론 로존은 10년후에 나타났지만..
햐!! 평행이론인가?




그는 앨라바마주 트로이 라는곳에서 태어났다. 20년대에 피츠버그에서 민스트럴쇼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민스트럴쇼는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벌이는 희극쇼다.
주로 흑인들을 희화해서 표현하는 인종차별쇼이며 미국의 대중 문화에있어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초창기 재즈가 발전하는 계기가 된것이 민스트럴쇼라고 할수있다. 
특히 이후의 브로드웨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1850~70년대에 그 인기가 절정이었다. 

파인톱이 활동하던 20년대는시들해질 무렵이었으나 아직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것 같다.
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인 [THE JAZZ SINGER]에도 나온다. 

http://www.youtube.com/watch?v=UYOY8dkhTpU 
[jazz singer영화중]

유태인 집안의 어느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유대교에서 예배중에 노래를 부르는 선창자 자리를 물려받는 위치였으나 
재즈싱어가 되기위해 민스트럴쇼에서 노래를 한다는 내용의 스토리다.. 그 쇼가 벌어지는 곳이 브로드웨이였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민스트럴쇼의 영향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진짜 흑인들이 출연하는 민스트럴쇼도 생긴다.
파인톱은 민스트럴 쇼에서 연기자로도 활동한다. 
또 댄서로 가수로 코미디언까지.. 그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민스트럴쇼에서 코미디언을 하던 파인톱.. 어느날 공연이 끝나고 홀로 무대에 있었다.
점점 민스트럴쇼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파인톱.
'아..지겨워..'
무대위에서 홀로 피아노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그가 어릴때 듣던 음악이 아련히 떠오른다.
앨라바마의 시골의 베럴하우스에서 듣던 블루스..
왼손의 베이스 운지가 경쾌하게 움직이던..
상념에 잠긴 파인톱..예전의 그 기억을 더듬어본다.
왼손으로 [도 도 미b 미, 도 도 미b 미…]
오른손으로 블루스 노트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진 파인톱.. 
이번에는 템포를 빨리해본다.
두두두두 부기우기 부기우기!!! 쩔뚝쩔뚝…

우연히 파인톱의 연주를 듣게된 선배 피아니스트
"Cow Cow" Davenport(1894-1955)
"브라보! 짝짝짝.. 이보게 파인톱! 
자네연주 정말 신나는구먼. 이거 뭐라고 하는겨?"
"아! 글세요… 뭐 부기우기랄까?" 멋적은 파인톱.
"오 쪄는구먼" 암소암소씨는 감탄했다.
"이보게 자네는 여기서 썩기는 아까운 친구여, 
시카고에 한번 가보지 않겠나?'
"시카고요? 거긴 아는사람도 없는걸요.."
"아나~! 이사람이 속아만 살았나? 내가 줄 놔줄껴"
".."
"시카고에 가면 Vocalion이라는 음반사가 있어. 
거기가 아주 끝내주지.듀크 엘링턴도 거기서 음반을 냈다고 
내가 사장님도 아는데 소개시켜줄껴!!"

내가 지어낸 야부린거 아시져?

그가 피츠버그에서 민스트럴 쇼 단원으로 있을때 최초로 부기우기를 연주했다고한다. 
주위에서 Vocalion 음반사를 만나길 권유했다. 그래서 1928년 시카고로 이주하게 된다. 
기회의 도시 시카고에서 마침내 [Pine top's Boogie Woogie]
[Pine Top Blues] 라는곡을 레코딩을 하게 된다.(1928,12,29)

1929 년 3월 13일 파인탑은 Driving Wheel Blues 이라는 미발매 앨범을 녹음한다. 
그러나 이틀 후, 25 세의 그의 운명은 멈추고 만다. 
파인톱은 우연히 댄스홀에서 데이비드 벨이라는 미친놈에 의해 실수로 총에맞아 숨을거둔다.
왜 총에 맞았는지는 몰라.. 오발탄?

자 부기우기가 뭘까요?
[부기우기부기우기 댄싱슈~ㅈ Keep Me Dancing All Night~]
뭐 요런노래가 70년대 말에 유행했었다. 요런 디스코는 아닐테고 뭘까여?

바로 Rock'n Roll 이전 시대의 Rock'n Roll 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록큰롤은 그냥 편의상 부르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름이란 마력이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이름을 달리 붙히면 의미가 달라진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면 당분간은 변화가 없지만 세월이 지나면 달라지게 되어있다.
블루스, 부기우기, 리듬앤블루스,록큰롤이 그렇다.

지금부터 부기우기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여러분 따라하세요!
"부기우기 부기우기 부기우기 부기우기"

자 거기 뒤에도 따라하세요
"부기우기 부기우기 부기우기 부기우기"

자 이제 이음악을 들어보세요!
마음속으로 "부기우기"를 왜치면서.

http://www.youtube.com/watch?v=fDp9cOLxYv0&list=PLAFFD4AC9A1CE8BB4
[Pinetop's Boogie Woogie]

http://www.youtube.com/watch?v=RRyWftECMl0
[Pinetop´s Blues]

http://www.youtube.com/watch?v=QoP-zZqF3CM 
[Jump Steady Blues]

아마도 이해 하셨으리라.. 부기우기의 등장은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 블루스나 재즈나 대부분 "뿜짝뿜짝"스타일이다.
초기 재즈의 선구자였던 크레올 피아니스트 Jelly Roll Morton(1890-1941)도 렉타임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햇고 "뿜짝뿜짝" 리듬 위에서 즉흥연주가 이루어졌다.
20년대 까진 유럽풍의 색채가 강했지만 부기우기가 등장하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드디어 롤링한 느낌의 Walking Bass가 등장한 것이다.
블루스와 재즈는 이때부터 부기우기 스타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재즈는 물론 스윙의 시대로~

물론 부기우기를 파인탑이 발명한 것은 아니다. 
부기우기를 배럴하우스뮤직(Barrelhouse Music) 이라고 한다. 
배럴.. 술통이자너.. 술통에서 직접 술을 따라 마시는 싸구리 술집. 흑형들이 모여서 놀던곳이다. 
옛날 사진을보면 피아노 한대 있는 곳에 흑형들 모여서 놀고있다. 춤도추고.. 마시고..
이런데서 연주하던 피아노 블루스의 한 형태였던 것인데 파인톱의 연주가 뜬거지..





George W. Thomas(1885-1930) 의 1923년의 작품인 [The Rocks]에서 랙타임과 부기스타일의 중간쯤 돼 보이는 작품을 선보인다.


http://www.youtube.com/watch?v=dVIMeG7Xe34

또있다. Jesse Crump의 23년 작품 [Golden West Blues] 요런게 전형적인 배럴하우스 뮤직~

http://www.youtube.com/watch?v=MTotdPKQ0nw

Clarence Williams(1893-1965) 의 1928년 작품인 [Organ Grinder Blues]에서 중간템포의 워킹베이스가 등장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DqzYy2QNWk&playnext=1&list=PLECACBEEC7AA97B48&feature=results_main

파인톱의 등장으로 빠른 빠르기의 자극적 블루스가 등장했다.
지금들어도 신나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자극적이었을지 짐작된다.
죽은자는 말이 없지만 부기우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된다.
이런 영향으로 부기우기는 JUMP 한다.!!

파인톱의 영향으로 많은 연주자 들이 부기우기를 연주한다.
Cripple Clarence Lofton, Speckled Red, Cow Cow Davenport, Jimmy Yancey , 
Meade Lux Lewis, Albert Ammons,Pete Johnson 이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28_wHq8MsjU
[Meade Lux Lewis - Boogie Woogie]

http://www.youtube.com/watch?v=mIVJw8yX6GY
[Boogie Woogie Dream : Albert Ammons & Pete Johnson]

부기우기를 도입한 재즈계 에서는 소위 Jump Blues가 유행한다.
점프블루스? 이름 그대로 방방뛰는 블루스다. 

블루스는 '처지는음악'이다 라는 선입견을 깨는 신나는 블루스…
이전의 랙타임 스타일에서 벗어난 ROLLING!! 한 부기우기 스타일로 변모!
마침내 빅밴드에서도 부기우기와 점프 스타일을 연주한다.
점프블루스는 이후 '리듬앤블루스'라고도 불리게 된다.
이름 참.. 블루슨데 리드믹해!! 그래서 리듬과 블루스야..

쫌만 기다려 "롹킹 앤 롤링~~"

 

음악은 나무같이 생겼다. 
같은 종 이라도 똑같이 생긴 나무가 있던가?
어느건 구불구불하거나 또 어떤건 곧바르거나..
하도 특이해서 괴목이라 하는것도 있는법!
하지만 같은 나무다. 열매가 같다.
감동이라는 열매 ..



Chapter5 로큰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1)의외의 출발점

뮤지션은 반드시 어릴때 듣던 음악에 영향을 받는다. 
어릴때 듣던 음악을 커서 하게 되어있다. 물론 그대로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자양분으로 이용하고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 적용시킨다. 역사에 기록되는 뮤지션은 모두 그렇다.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화성인 같은 사람은 항상있다.
도무지 배경이 뭔지 저런 착상은 어디서 나온건지 가늠하기어려운.. 하지만 캐보면 다 나온다.

Race Music(레이스뮤직)이란 말이 있다. 
자동차경주 할때 나오는 음악 말고 '인종음악'이란 뜻이다. 40년대 중반까지 흑인음악을 이렇게 불렀다.
음악에 무슨 인종이 있고 차별이 있을까? .. 그건 요즘 생각이고.
노예제도가 있던 미국에서 유색인종의 음악을 통칭하는 의미로 이렇게 불렀다.
블루스, 혹은 리듬앤 블루스 같은것들..
우리는 리듬앤블루스 약칭해서 R'n B 라고 하는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대개 목소리를 겁나 꺽으면 알앤비라고 한다. 좀더 나가서 '흑인필'좀 내면 알앤비 라고 한다.
맞는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음악에도 유전자가 있다. 같은 DNA를 공유하는 음악.
블루스에는 [블루스DNA]가 있다. 블루스의 미토콘드리아DNA!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자다. 블루스도 모계 유전자다.
우리 인류가 무려 60억명이 넘지만 그 뿌리를 찾아가면 최초의 공통선조가 있다.
그건 아프리카의 인류기원으로 귀결된다.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존재한다.
블루스도 현대음악에 있어서 최초의 모계유전인자다.
이것 역시 아프리카태생의 ..

백인들이 레이스뮤직이라고 차별해서 부른 까닭이 있다.
블루스 계보의 음악들 .. 그것은 백인들의 그것과는 태생이 다른것이었다.
자신들이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오만한 백인들..
하지만 그들도 감동이란 열매를 따 먹으며 감화되기 시작했다.
좋은 영향을 받으면 행동도 바람직하게 변한다.
그것에 감화된 백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DNA와 아낌없이 결합한다. 
그리고 모두가 공유하는 인류의 유산으로 발전했다.

최초의 록큰롤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꼭 지목해야하는 사람이있다.
Louis Jordan(1908-1975) 30년대에는 빅밴드에서 앨토 색소폰을 불던 재즈 뮤지션이었다.
왜 록큰롤을 언급하는데 척베리나 빌 헤일리, 앨비스가 아니고 재즈뮤지션이냐고?
쫌만 들어보셈.


루이스는 아칸사스주 브링클리 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미시시피 서쪽지역이고 남쪽으론 루이지에나주가 있고 동쪽으론 미시시피와 테네시주가 있다.
서쪽으론 텍사스.. 태어난곳을 언급하는건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토양을 먹고산다. 태어난곳의 배경은 중요하다. 
적어도 분석을 하려면..

남쪽으론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가 있고. 동쪽으론 블루스의 향기가 가득한 미시시피가있다.
동북쪽으론 컨트리음악의 중심지 내슈빌이 있다. 서쪽으론 카우보이의 고향 텍사스..
북쪽으론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로 가는 길목이다. 충청도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음악가였다.

30년대초 뉴욕으로 진출한 루이스는 몇몇 유명 밴드에 가입한다.
그러다 36년 뉴욕의 Savoy Ballroom 오케스트라에 가입한다. 
비슷한 시기인 30년대 후반이 되면서 사보이볼룸에서 메인 싱어로 

Ella Fitzgerald(1917-1996) 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에 재즈의 여왕으로 칭송받은 엘라..
39년 사보이의 밴드리더였던 Chick Webb 이 사망한 이후 밴드는 "Ella and her Famous Orchestra"
'앨라와 그녀의 유명밴드' 라는 촌스런 이름으로 개명하더니 앨라의 밴드로 재편된다.

빅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한 루이스는 자신의 재능을 깨닫기 시작한거같다.
그는 연주 뿐 아니라 노래도 하기 시작했다. 앨라와도 듀엣을 했을정도니까..
사보이볼룸을 떠난 루이스.. 30년대 후반 부터 자신의 밴드를 이끌며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Louis Jordan과 Tympany Five] 40년에 발표된 [You're My Meat] '넌 나의 고기야' 헐~
이후로 줄줄이 성공가도로 진입하기 시작한 루이.. 45년 발표한 [Caldonia]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그는 진정한 탈랜트였다. 음 악가 배우 코미디언..
루이는 최초로 흑백인 모두에게 사랑받은 레이스뮤지션이 되었다.

부기우기의 영향을 받은 점프블루스인 칼도니아는 이후에 '최초의 롹캔롤~' 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PR6pHtiNT_k 
[Caldonia - Louis Jordan]





들어보면 초기 로큰롤의 모든 문법이 들어있다. 뿐만아니라 최초이 랩퍼이기도하다.
발차기도 나온다.

다음은 얼마전 팔순을 맞이한 퀸시존스와의 인터뷰다.
파티장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라 오래하진 못했다.

나: 안녕하세요 퀸시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퀸시; 여~ 오랜만이군~고맙네! 그동안 잘 있었나?
나: 네 처음뵙겠습니다.
퀸시: ..
나: 최초의 로큰롤은 뭐라고 생각 하십니까?
퀸시: ㅎㅎ 뭐 간단하지..누가 뭐래도 루이스 조던이라고 생각해.
나: 루이스 조던이요? 그에 대해 설명해 주셔여.
퀸시: 그는 괴물이었어. 부기에다 백비트를 혼합했지.. 로큰롤의 모든요소를 그가 만들었다고~
나: 하지만 그는 원래 재즈뮤지션 아니었나요?
퀸시: 물론 그랬지. 아마도 그는 최초의 크로스오버 아티스트였다고. 아마 랩도 제일 첨에 했을꺼야.
나: 랩을 했다고요?
퀸시: 응. 하도 주절주절..그때는 랩이란 말은 안썼지만 일종의 semi-spoken 보컬이라고 했지.
요즘 래퍼들이야 루이를 모르겠지만 최초로 하긴했어.
그리고 당시에는 가사가 음란하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지. 
"Show Me How To Milk The Cow" 뭐 이런 은유적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말이 많았어.
나: 퀸시님은 루이스를 만난적이 있으신가요?
퀸시: 하! 만났냐고? ..뭐..음..어..지나다? 하지만 56년 이었을꺼야. 내가 칼도니아를 프로듀스해서 재녹음했지.
Mickey Baker 라는 로큰롤 기타리스트와 녹음을 했었지. 요즘도 시디로 나와있다고.
나: 꼭 사겠슴다.
퀸시: 흐 고맙구먼.. 여기 보노도 와 있는데 소개해 줄까?
나: 인터뷰 감사합니다. 전 바빠서 이만 가겠슴다.
퀸시: 알았어 위아더월드~

http://www.youtube.com/watch?v=_A2pRVyBmOY&list=PL1CF20EFB35EBD88D
[Choo choo ch'boogie - Louis Jordan]

http://www.youtube.com/watch?v=xrsfdccS_Lo&list=PL1CF20EFB35EBD88D
[You Gotta have a Beat - Louis Jordan] 
진짜루 래퍼라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zs17EsoT99Q
[Salt Pork West Virginia - Louis Jordan]

바로 이런거다.
이런 자양분은 이후세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백인들 마저도…
이런음악을 레이스뮤직 이라고 하다가 어느 평론가가 47년 즈음하여 '리듬앤블루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50년대 중반까진 리듬앤블루스로 통칭되었다.
그리고 5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종의 벽이라는 거대한 차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있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기도 하지만 서로 공유하는게 많아지면 비슷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결혼한다면 우습지만 서로다른 장르의 음악이라도 오래동안 동거하면 비슷해진다.

Chapter5 로큰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로커빌리의 출발점

나의 친구들 이야기를 해 보겠다. 
일본에서 오래산 영국인 친구가 있다.
그는 저널리스트이다. 일본의 모 언론사에서 주로 스포츠와 음악관련 컬럼을 썼다. 
또 한친구는 한국인 여성인데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근데 둘이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했다.
재밌는건 이 영국친구는 한국어를 못하고 한국친구는 영어를 못한다...
골때리는건 둘이서는 일본어로 대화를 한다.
그들과 같이 만나면 3개국어가 믹스된 이상한 언어가 통한다.
일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서양인과 한국어와 일어를 섞어서 말하는 한국인..
그들에게 딸이하나있다. 지금은 한 8살쯤 되엇을까? 그 아이는 벌써 3개국어를 한다.

블루스와 컨트리도 사실은 부부같은 관계다. 적어도 오랜동안 연인관계였다. 
그래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블루스란 여인의 연에관계는 복잡하다.

좀 음란해!
아무나 사겨!
오래전 유럽에서 건너온 세련된 놈씨와 들러 붙더니 재즈란 녀석을 낳았자네~
그러다 힐빌리란 촌녀석과 놀아나더니 결국은 Rockabilly 라는 녀석도 낳았지..
근데 그전에 'Honky Tonk' 라는 녀석도 낳았어.
.. 피구왕 통키는 물론 아니지~

'Honky Tonk' 이말의 어원을 알기란 쉽지않다. 
거위의 울음소리란 말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싸구려 선술집을 말한다. 
서부영화의 한장면~
카우보이들이 말타고 가다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말에서 내린다.. 그리고 어디론가 들어간다. 술집으로.. 
새끈한 언니들과 카우보이들이 우글거린다.
한쪽엔 피아노치는 엉아가 랙타임같은 음악을 연주한다. 여기가 바로 홍키통크.

Honky 란 말은 흰둥이라는 뜻이 있다. 흑형들이 백형들을 비하해서 부를때 쓰는말. 
세네갈 같은 서아프리카 출신의 노예들의 언어인 월로프어(Wolof) 중에 붉은색을 뜻하는 단어인 'xonk' 가 있다.
X를 발음할때 H 에 가깝게 발음한다고 한다.
'붉은 귀' 라는 뜻으로 'Xonk-nopp'라는 말이 있는데 이말은 백인들을 경멸하는 뜻으로 쓰는 말이라 한다.
초창기 노예시대부터 일반적으로 쓰던 단어라는 설이 있다.
그들의 노래중에 이런대목이 있다.

"게으른 도둑 홍키는 일하길 원치않지
그래서 내가 모든일을하지
그는 그냥 앉아있길 원할뿐이야
그의 귀는 붉은색이야
왜냐하면 신이 그를 미워하기 때문이지"

Tonk 란 단어는 사전에 찾아보면 '여자같은 남자' '호모'를 뜻하는 속어라 하는데 글세..?. 

좀더 조사해 봤더니 1899년에 제작된 피아노의 이름이라 한다.
한때는 피아노를 지칭하는 대명사였을까? 그렇담 흰둥이가 치는 피아노? 
백형이 부기우기를 연주하자 그걸본 흑형이 "헐~ Honky가 Tonk하네~"

신대철은 자신의 학설이라 주장하는 음악장르의 *의태의성작명론 에 의해 홍키통크란 홍키통크의 
셔플리듬을 흉내낸 의성어다. 라는 주장도 한다. 

사실 홍키통크는 부기우기에서 유래된 음악이다.
백인들이 연주하는 블루스.. 거기에는 힐빌리가 섞여있다. 유전적으로 그럴수 밖에 없다. 
가령 다른나라의 언어를 배울때 처음부터 발음이 완벽할수는 없다.
자신이 쓰는 억양이 섞여 있을 수 밖에없다. 반기문 유엔총장의 유창한 영어발음같이..

음악적인 표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슨음악을 하던 소위 '뽕끼' 가 묻어있듯이..
홍키통크는 웨스턴 스윙으로 발전했고 현대 컨트리 음악의 토대가 되었다.

원래 ROCK 'N' ROLL은 흑인들의 음악이다. 엄밀히 말하면 BLUES 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BOOGIE WOOGIE 와 같은 이름이고 RHYTHM 'N' BLUES의 또다른 표현이기도하다.

그런것이 백인들의 표현법인 홍키통크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즉 백인들이 흑인들이 하던 로큰롤을 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백인들의 힐빌리가 섞여있었고 그래서 
Rock'n roll 과 Hillbilly가 섞인 'Rockabilly' 라 불렀다.

그 로커빌리의 원조격이라 할 인물이 있다.

Hank Williams(1923-1953) 
행크 윌리암스는 컨트리음악의 아이콘이다. 25살에 슈퍼스타가 되었고 29살에 사망했다. 
한큐있는 인물들은 항상 이런식이지만.. 
그는 현대 컨트리음악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알라바마에서 태어난 행크.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Rufus 'Tee-Tot' Payne..(?-1939) 행크의 스승이자 멘토인 이름없는 흑인 블루스연주자다. 
행크의 증언에 의하면 12살에 그를 처음 만났고 그에게 기타와 블루스를 배웠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모든 능력은 Payne이 준 것이다 라는 절대적 존경을 표한적도 있다.
루퍼스 페인.. 일명 'Tee-Tot' 은 항상 자기가 담근 술과 차를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데 '티톳' 이란 말은 
'금주자' 라는 뜻이라는데 실제 티톳은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티톳이 행크에게 기타와 블루스만 가르친건 아닌것 같다.



"어이~ 행크왔니~"
"네 폐인샘 여기 레슨비로 술 가져왔어요"
"크~하! 고맙구먼~ 어뗘~ 너두한잔 할려~"
"헤헤 저는 아직 12살인데여~"
"ㅎㅎ 난 9살때 부터 마셨다고~ 이봐 블루스를 하려면 
취해 봐야 한다고ㅋㅋㅋ"
"네 그럼 한잔만 주세염"
.......
"어떠냐?"
"ㅋ 존데여~"
"ㅎㅎ 그려 .. 그럼 한수혀볼까~"
--야부리니까-.';;';./.,';';

행크는 나중에 스타가 되어서도 항상 술문제가 있었다. 알콜중독자였고 결국 오래 살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가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티톳이 1884년 생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레드벨리와 같은 세대인데 음악도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형적인 포크 블루스에 힐빌리가 가미된..
그의 영향으로 행크는 컨트리 음악가 이면서도 블루스를 했다.
아니 어쩌면 블루스 음악가 였지만 컨트리를 했는지도 모른다.

행크는 내쉬빌에서 음악인생의 돛을 올리게 된다.
내쉬빌은 음악의 도시다. 내쉬빌을 컨트리 음악의 중심지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컨트리와 블루스가 공존 하는 곳이다.
흑인 음악가들도 컨트리 음악을 했고 백인 음악가들도 블루스를 했다.
같이 살면 닮아가는 법이다! 이후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내쉬빌은 사실상 로큰롤의 탄생지 이다.

행크가 47년에 발표한 노래 [Move It on Over] 가 있다.
이곡은 12마디 블루스 진행이다. 후대의 로커빌리가 차용한 구조다. 
53년에 Bill Haley & His Comets 에의해 발표되어 로큰롤의 성가가 된 [Rock Around the Clock] !
전세계적으로 2500만장 이상 팔려나간 상징적인 바로 이곡.
이노래는 행크의 [Move It on Over] 의 영향이 느껴지는 노래다. (사실은 표절에 가깝다)




http://www.youtube.com/watch?v=-Lza3NVH6Ig
[Move it on Over - Hank Williams]

http://www.youtube.com/watch?v=-mZLpDuuf40
[Rock Around The Clock - Bill Haley]

행크가 48년에 발표한 [Honky Tonk Blues]도 들어보자. 요들이 작렬하는 노래들도 나온다. 
요들은 힐빌리 음악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컨트리 음악의 카타고리에 속한다. 
그러나 중요한점은 그의 음악은 블루스의 문법을 따른다는 점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3pHlSX_zbwY
[Honky Tonk Blues - Hank Williams]

http://www.youtube.com/watch?v=95aP0OWx4jY
[Hey Good Lookin' - Hank Williams] 

http://www.youtube.com/watch?v=JczEyQHBLEw
[Long Gone Lonesome Blues - Hank Williams]

물론 그가 블루스만 한건 아니다. 팝 발라드도 많이 불렀다. 그래서 전국적 스타로 성장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음악인생 뒤에는 통제불가의 사생활이 있었다. 항상 취해 있었고 만취 상태로 무대에 오른적도 많다.
1951년 테네시주 네쉬빌인근에서 사냥여행을 하다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다. 
그 이후 몰핀과 각종 진통제에 의지해 살다 결국 53년 1월1일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간 유작은 아이러니하게도 "I'll never get out of this world alive"였다.

전에 믹재거 형이 하는말을 들었는데 "사실 나하고 키스(Keith Richards)는 컨트리음악을 좋아했지..
그 중에서도 행크 윌리암스는 최고였다고~ 행크의 노래중에 Honky Tonk Blues를 듣고 우리도 만들었잖아.. 
그게 Honky Tonk Woman 이라고"

http://www.youtube.com/watch?v=5e1_K-JDfOk
[Rolling Stones - Honky Tonk Woman]


반어법의 대가가 있었다. 참고로 그는 안해본게 없다.
어느날 그는 대중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이거 다 그짓말인거 아시죠"
그는 역시 대가다. 그의 반어적 사고와 어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였지만 그의 반어법적 이데아와 자의식 과잉과의 충돌로 말미암아 도출된 사회적 현상은 다원주의적 대안에 경도하기 이르렀다.
비로소 대중은 진실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원적이다 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에 영향을 받아 대중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여러분 이거 다 야부린거 아시죠"
진실은 야부리적 사고와 어법으로 밝혀진다.


Chapter 6 Rock'n'Roll Age 

1)Rock and Roll 의 어원에대한 사회적 인종적 배경에 대한 고찰

Allen Freed(1921-1965) 앨런은 전설적인 미국의 방송 dj 다. 그는 원래 뮤지션 출신이다.(철수형마냥). 
스윙밴드에서 트롬본을 불던 앨런은 음악가로서의 야망도 있었지만 고질적인 중이염에 의해 곧 접어야했다.
2차대전중 미군방송의 DJ로 일하게 되면서 새로운 길을 가게되었다. 이후 클리블랜드의 라디오 DJ로 일하게된다.
첨에는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그러던 어느날 ..




레코드숍을 들른 앨런은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새파란 10대의 백인 청소년들이 RACE Music 이라고 불리던 리듬앤 블루스 음반을 즐겨 구매하는 것이었다.
파티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또래 아이들끼리 춤추기 좋은 리듬앤 블루스가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저번에 언급한 루이스조던, 또는 냇킹콜, 레이챨스, 팻 도미노.. 
등등의 음악들.. 재즈 이외의 모든 흑형들 음악을 알앤비라 불렀다. 

당시의 음악 ..스텐다드 팝 발라드류는 백인의 음악
리듬앤 블루스류는 레이스음악으로 분류해 흑인들의 음악..
음악챠트 뿐 아니라 방송국도 분리되어 있었다. 
이건 뭐 흰둥이 어른들의 바램.. 그런데 애들은 달랐다.

앨런은 직감했다. 앞으로 이런류의 음악이 주류가 될거라는거.
그때부터 리듬앤 블루스를 자신의 방송에서 틀기 시작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이 '앨런 프리드의 Moon Dog Show' 였다.
그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촌동내인 클리블랜드에서 54년 뉴욕으로 진출한 것이다. 
뉴욕에서도 역시 '앨런프리드의 문독쇼'를 진행했다. 그런데 뉴욕에는 진짜 Moondog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Moondog(1916-1999)그는 거리의 음악가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기인? 
뿔 달린 바이킹 모자를 쓰고 다녀서 6번가의 바이킹 이라고도 불렸다. 
구걸도 해서 그를 거지로만 알고있었다.
그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시각 장애인 이었는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번스타인이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같은 클래식 음악가 뿐 아니라 찰리파커나 베니굿맨 같은 재즈 뮤지션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문독은 앨런 프리드의 문독쇼에 대한 사용중지 소송을 해서 결국 승소했다. 자기 쇼의 이름을 빼았기자 다급해진 앨런은 고민고민하다 라디오쇼 이름을 'Rock'n'Roll Show' 라고 하게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틀던 알앤비 음악을 로큰롤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뉴욕의 Moondog 덕분에 Rock'n'Roll 이라는 이름이 통용된 것이다.

그는 dj로서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50년대 중반이 되면서 엄청난 로큰롤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앨비스 같은 백인 스타들~ 항상 그랫듯이 백인 아이콘이 등장하면 주류가 된다.
그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다. 그는 영화에도 출연한다. 인생이란~ 주연배우~

57년 ‘Mr Rock and Roll’
58년 ‘Go, Johnny, Go!’
ㅋ~

하지만 하늘을 찌르던 그의 인기도 먹구름이 뭉개뭉개.. Payola 스캔들이 터졌다...(59년)
쉽게 말하면 '촌지사건' .. 거기도 역시 사람 사는 곳 이였어.
pay 돈.. 유명 축음기 모델 이름인 Victrola 의 ola를 합친 합성어다. 돈주고 음악 틀어준다는..

결국 앨런은 몰락의 길로 직행 ..모든걸 잃고 홧병으로 술과 시름하다 43세의(65년) 나이에 세상을 떴다.
첨언하자면 59년은 많은걸 의미한다. 당시의 로큰롤 스타들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엘비스는 군대에 가고,제리 리 루이스 와 척 베리 는 유명한 성 추문으로 추락,..
리틀 리처드는 갑자기 목회자가 되겠다고 음악계를 떠남(나중에 다시돌아옴^^;)
버디홀리 죽음.. 그외 몇명 더 죽음.. 교도소도 가고.. 
뭐 다 59년에 사라지기로 약속한거?
54~5년에 등장한 록큰롤이 유행할때 그냥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라고 폄하하는 평론가가 많았다.
그런데 진짜 그랬다. 
-이 문제와 현상과 로큰롤의 전도는 이후에-

앨런은 자신이 Rock'n Roll 의 이름을 지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것도 맞다. 개념을 부여하고 이름을 짓는 일은 뮤지션의 몫은 아니다. 앨런이 처음으로 흑인들의 성적 은어인
Rock and Roll 이란 말을 음악장르로 정착 시켰다.논란이 많았다. 왜 하필 Rock'n roll 이냐고!! 
그래서 당시의 뮤지션이나 일반인들도 이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앨런도 이말의 의미를 모를리 없었다.

지금부터 로큰롤의 어원에 대해 술하겠다.
그런데 19금 이었다가 15금..(약간 수위조절했슴.. 미안함다)
그래도 애덜은 읽지 마시오.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받을 수 있슴..
자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 보겠슴다!

처음으로 rock 과 roll 이 등장하는 레코드가 있다.
찬송가다... 음?

http://www.youtube.com/watch?v=Lp1qU-_qPok
[THE CAMP MEETING JUBILEE - 1916 - LITLE WONDER ]

"Keep on rockin n' rollin in your arms...in the arms of Moses." I hope you enjoy this as much as I. And remember...Who built the ark?...Noah Noah...Who built the ark?...Brother Noah built the ark....Yeah! Who built the ark?...Noah Noah...Who done built that ark?...Brother Noah built the ark!

에디슨의 축음기 발명 이래로 최초로 기록된 Rockin' n' Rollin 이 등장하는 기록물이다. 
18세기 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기독교 천막집회가 'camp meeting' 이다.



노예해방직후 네쉬빌에 피스크 대학이라는 학교가 설립되었다. 최초의 흑인 들을위한 고등교육 기관이다. 
재정난으로 문닫을 위기가 있었다. 1871년 9명의 혼성 합창단을 만들어 기금마련에 나섰다.
그들의 이름이 'JUBILEE Singers'다. 이들이 미국은 물론 나중엔 유럽까지 돌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피스크대학이 존립할수 있었다. 그들이 흑인영가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1916년에 기록된 Little Wonder 가 그 오리지널 멤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왜 찬송가에 Rockin n' Rollin 이 나올까?

그래서 미국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프로듀서 Jake Chang에게 물어봤다.
그도 의아해 했다. 왜 찬송가에 롹킹앤롤링이 있을까?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제이크를 통해 미국의 어느 백인목사한테 물어봤다.

"Rockin N Rollin 은 기독교 적인 측면에서 봤을때 '계속해주세요 멈추지말고' 라는 뜻입니다. 위대한 일을 계속 진행하세요 !! 누가 방주를 지었나요 ? 노아입니다. 우리형제 노아가 방주를 지었습니다. rockin 은 대단한 일 큰일, 수고하다 뭐 이런 뜻 이고 rollin 은 계속 하세요 멈추지마세요 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를 주제로한것입니다"

라는 답멜이...
내 생각엔 .. 아닌것 같은데? 
제이크에게 다시 부탁했다. 
"야 흑인한테 물어봐 것도 할머니나 할아버지 살아계신 친구한테"
그래서 전화했다. 흑인뮤지션에게 물었더니 대번에 "100% SEX" 라 한다.

이 배경이 뭘까?
미시시피의 블루스 싱어인 Willie King(1943-2009)의 인터뷰 내용이다.

"노래가사중엔 이런게 많이쓰여 자신의 여자에 대해 말하는 음악 말이야..하지만 사실은 주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거지..여자에 대해 말하는 옛 블루스.. '아 ..그녀는 너무 못됐어..나에게 못돼게 굴어..내돈을 다 가지고 가버려' 뭐 이런게 다 주인에 관한 노래야. 이건 그들이 메시지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어.. 그니까 대놓고 불만을 말할수는 없었던 거야…안그러면 아침엔 나무에 목 매달린채로 발견될껄.."

그랬다.. 노예의 신분은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발달한게 고도의 은유 이다.

Rock'n'Roll 도 그런 은유의 하나였다. Slang 슬랭..은어와 속어들..
지난번에 Honky(Honkey)에 대해 썼지만. 자기들 끼린 암호같이 통하는 말이 있었다고.

Rock 이 뭐냐고? 단단한거 있자너.. 남자의 심볼. 바위처럼 단단한 놈..ㅋ
그런데 사전 찾아보면 '앞뒤(좌우)로 흔들리다' '진동' 의 뜻이 있다. 뭔말인지 알지? ㅎㅎ
Roll은? 뭐긴.. 돌돌 마는걸 롤 이라고 하자너.. 롤빵! 
뒹구는거지..침대에서 남녀가 배꼽 맞추면 뒹굴자너..ㅎㅎ
그래서 Rock'n Roll은 번식의 뜻이 있었지..

왜냐하면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소수자 이기 때문이야.
왕성하게 번식해라~ 그래서 쪽수를 채워라! 우리가 많아지면 백인들과 동등해진다..
지금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다. 줄줄이..

그렇다면 'Keep on Rockin n' Rollin In Your Arms' 가 해석이 된다.
keep on ;계속해라 
rockin'n rollin ;번식을 위한 행위를 
in your arms ; 당신 품안에서 
그래서 'in the arms of Moses' '모세의 품안에' 앞에 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이글이 야부리임을 감안하시길)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 느껴 지시나?

다시 말하면 Rock'n Roll 은 Sex 란 말의 넓은 의미의 관용적 표현이다. 적어도 아프리카계의 미국인들에게는..
백인 목회자에게 물어보면 'Rockin n' Rollin'이 '계속해주세요 멈추지말고'
정도로 밖엔 해석이 안되는데 흑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번에 안다. 원래 자기들 말이기 때문에. 
"그거이 참 거시기하네 " "가가 가가 가가" 뭐 이런거? 
아니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 까지는" = "죽을때 까지는"

그래도 종교집회에서 어떻게 그런 불결한 말을 하냐고? 얘네들이 유교사회냐고요~

그렇다면 Rock'n Roll 은 고어에 가깝다. 
적어도 19세기 이전부터 존재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면 처음으로 Rock 과 Roll 이 등장한 대중음악은? 아니 첨으로 Rock 과 Roll 이 녹음된 대중음악은?


Trixie Smith(1895-1943) 베시 스미스가 한창 날리던 20년대에 활동하던 또다른 스미스 성을 가진 블루스 재즈 여가수 중의 한명이다. 트릭시의 대표곡이자 데뷔곡인 My Man Rocks Me(With one Steady Roll)이 있다. (1922년) 
뭐 노래 자체는 그닥 특징이나 자랑할 만한 것은 모르겠으나 가사가 참 거시기 하다.ㅎ
한번 보실려우?

http://www.youtube.com/watch?v=hHtSz4BooMA

My Man Rocks Me (With one Steady Roll)

I feel so happy, I have a smile, [both all the while]
난 너무 행복해, 난 미소를 머금고, 우리 둘 모두다.

Since my man came back home to stay, night and day
내 서방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 , 밤 낮으로..

He's made life snappy . . .
그는 인생을 힘차게 만들어줘 

My man rocks me, with one steady roll
내 서방이 나에게 그짓을 해요~ 계속해서 

There's no slippin' when he wants take hold
그가 시작했다하면 미끄러지지 않아요(멈추지않아요)

I looked at the clock, and the clock struck one
시계를 봤어요. 1시에요.

I said now, Daddy, ain't we got fun
우리 너무 즐겁지 않나요? 라고 물었죠.

Oh, he was rockin' me, with one steady roll
오! 그가 그짓을 계속계속해여~

My man rocks me, with one steady roll

There's no slippin' when he wants take hold

I looked at the clock, and the clock struck six
시계를 봤어요. 6시에요.

I said, Daddy, y'know I like those tricks
그래서 말했죠, 내가 당신의 테크닉을 좋아하는거 알아여~?

Cause he was rockin' me, with one steady roll
닥치고 고고고 오예~

My man rocks me, with one steady roll

There's no slippin when he wants take hold

I looked at the clock, and the clock struck ten
시계를 봤어요. 오우~ 10시에요.

I said, glory, Amen
오! 영광이여~ 아멘~(100퍼 오르가즘의 표현)

My man was rockin' me, with one steady roll
아 이 짐승!! 아직도 계속해~ㅎㅋㅎㅋ

아나~ 1시부터 10시 까지 9시간 동안 ..이건 병이여..
사실 R'n'R 이란 말은 50년대 이후 음악 장르의 로큰롤로 사용 되지만 여러 노래에서 은유로 사용한다. 

70년대 등장한 하드록 밴드 KISS 의 대표곡 중 하나 [Rock And Roll All Nite]의 후렴구 가사다.

"I wanna rock n roll all night and party every day"

참 쉽지요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