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대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자본가부터 거리의 노숙인까지 '인문학'을 말합니다. 유명 대학에서는 대기업 임원 등을 타깃으로 한 '인문학 코스'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예전에 테일러를 추종하며 드러커를 읽던 재벌 회장은 이제는 공자, 노자를 읽고 헤겔, 마르크스를 인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의 인문학'이 아닌 '절망의 인문학'을 외치는 인문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 절망의 시대에 인문학을 말할 수 있는가?" 이들은 섣부르게 '희망'을 말하기 전에, 지금 여기 절망의 세상에 시선을 돌리고자 합니다. 이런 절망을 제대로 직시할 때 비로소 거짓이 아닌 진짜 희망의 몸짓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은 지금 여기에서 인문학의 존재 조건을 묻는 이들과 '절망의 인문학'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 차례 던진 불온한 질문에 인문학자의 치열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절망의 인문학-1] '스티브 잡스 인문학'의 정체는?
미스터 잡스, 이제 그만하면 됐거든요!
실제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발끈하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새로운 자본주의가 인문학을 끔찍이 애호한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는 엉뚱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일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애플'이 있었다고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 그런 수준의 발언은 지난 수십 년간 이름난 경영 구루의 입에서 나날이 쏟아지는 상투적 발언이란 것은 눈치 밝은이들은 죄다 알고 있다. 그러나 아이패드라는 값비싼 장난감을 자랑하기 위해 잡스가 꺼내놓은 인문학 타령은 가뜩이나 인문학으로 밥 벌어 먹기가 어려워진 이들에게는 호재처럼 보였던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의 학문 시장에서 인문학이 고사될까 걱정하던 이들은 이 때다 싶어 스티브 잡스의 발언을 두둔하고 선전하고 나섰다. 물론 그것은 상당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에 빚졌다고 말하는 것은 이를테면 문·사·철을 합해놓은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란 이미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 변신한 경영학과 기술에 관한 지식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굳이 철학과 문학 따위에 신세를 질 이유가 없다. 그것은 그 자체가 이미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정신을 집약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비판의 두 얼굴
프랑스의 베버주의 사회학자인 뤼크 볼탕스키는 "근본적으로 존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연명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에토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시테(cité)'란 말로 부른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지배에 근거하기에 기원적으로 사악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 사악한 세계의 질서는 자신을 견딜 만하고 심지어 미더운 것으로 스스로를 보임으로써, 즉 자신을 정당화함으로써 존속하고 심지어 번창할 수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 자체의 역사적인 운명은 바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에토스에 따라 달라지고 변화한다.
볼탕스키는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에서 크게 두 가지가 득세하였다고 본다. 하나는 사회적인 비판이고 또 하나는 미적인 비판이다. 사회적인 비판이란 흔히 복지 국가라고 부르는 '사회 국가(the social state)'를 탄생시킨 독특한 자본주의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국가'라고 부를 만큼 자본주의는 마치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처럼 사회를 계급적인 분열로 치닫게 하는 듯이 보였다.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계급투쟁의 열풍은 자본주의가 언제나 반사회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듯이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사회주의적 노동자 운동의 등장은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진영으로 세계가 분열되어 있음을 생생하게 증명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 때 자본주의가 초래한 계급적인 분열과 적대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두된 주요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란 상상력이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스스로의 질서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전체로서의 세계란 생각은 분명 매력적인 것이었다. 계급적인 분열과 대립은 사회를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병리적인 현상처럼 여겨졌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제시했던 저 유명한 '연대'란 개념은 통합과 결속이란 관점에서 이제 막 등장했던 국민 국가 형태의 자본주의 세계를 '사회'란 이미지 속에서 응시할 있도록 하였다.
바야흐로 세계를 인식하고 상상하는 새로운 지평으로서 '사회'라는 독특한 시점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과 착취는 사회의 안녕과 건강을 해치는 '위험'이란 견지에서 해석되었고, 사회를 성장, 발전시키기 위해 이런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연금, 보험, 사회 보장 등)이 발명되고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에 관한 사회적 비평으로부터 탄생한 것이 복지 국가라 할 수 있다.
반면 볼탕스키는 이런 사회적 비평과 함께 끈질기게 병존했던 또 다른 자본주의 비평의 갈래가 미적인 비판이라고 꼽는다. 미적인 비판이란 거칠게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객체화, 획일화, 추상화를 통해 인간들의 삶을 소외시키는 질서라는 관점이다. 소외된 세계로서의 자본주의라는 초상, 즉 자신의 활동의 결과가 거꾸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바를 거꾸로 결정하는 소외된 세계야말로 자본주의라는 상상은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집요하게 존속하였다. 자본주의에 관한 미적인 비판은 한 번도 그 자체 유효한 정치적인 프로그램으로 자신을 실현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력했던 적도 없다. 되레 놀랍게도 동구권이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비판이란 것이 맥을 못 추고 패퇴한 자리에, 자본주의를 구원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미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때마침 자본주의를 뒤흔든 마지막 격변은 1968년의 혁명이었다. 비경제적인 억압과 지배를 격렬하게 성토하였던 이 격동을 떠받치고 있던 것은 바로 미적인 자본주의 비판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조직된 노동자 운동 및 사회주의 정당과 지배 집단 사이에 타협이 이뤄짐으로써 형성된 사회 국가는 이미 노쇠할 만큼 노쇠한 상태였다. 안정된 직장과 연금이 있었지만 세상은 따분하고 지루하였으며 멍청하고 아둔해보였다. 앙드레 고르와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사회'란 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앞 다투어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미적인 비판을 효과적으로 흡수한 것은 위기에 빠진 자본의 편이었다. 라이프스타일의 혁명, 새로운 자아 찾기로 전환한 자본주의 비판은 이제 자본이 자신을 구원할 이념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신자유주의 인간형 : 예술가로서의 기업가
흔히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가로지르는 에토스는 바로 이러한 미적인 비판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가 애호하고 장려하는 새로운 인간 모델을 기업가(entrepreneur)라고 할 때, 기업가란 인물의 모습은 예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가란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자발적이고 반규범적인 인물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회색 정장을 입고 중역 의자에 파묻혀 이윤에 골몰하는 '조직 인간'보다 기업가와 먼 인물은 없다. 이는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대한 경영 담론이 장려하고 선전했던 새로운 경제적인 인간형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때 말하는 경영 담론은 굳이 경영학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몰입형 영어 교육이란 말로 유명해진 저 '몰입'이란 말은 놀이에 몰두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자발적인 열정을 일터 안에 끌어들이기 위해 고안된 사이비 심리학 개념이다.
몰입이나 열정이란 개념은 '근면'이나 '성실' 같은 규율을 연상시키는 개념들과는 다르다. 경영 담론은 시간에 따른 인간 동작을 연구하고 '최선의 방식(the best way)'에 따라 표준적인 근로 방식을 도입했던 테일러주의를 격렬하게 배격한다. 조직, 관료제, 위계, 통제, 권위, 표준과 같은 말은 미적인 인간에게는 견딜 수 없는 가치이자 규범인 것이다. 새로운 경영 담론은 생산성과 능률보다는 탁월함(excellence)이란 가치를 찬미하였고, 이는 한국에서 우량 혹은 초우량이라는 일본식 번역어로 소개되더니 교육학을 통해서는 수월성이라는 더 희극적인 용어로 알려진 개념이 되었다. 이것이 경영 구루 가운데 피터 드러커와 쌍벽을 이루는 저 유명한 톰 피터스가 제창한 개념이란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새로운 경영 담론은 이제는 전과 같은 경직되고 고루한 지식의 모습을 취할 필요가 없다. 경영 담론은 거의 모든 인문학을 아우르고, 또 거기에서 생산된 지식을 수용한다. 당장 몰입, 자기 주도성, 창의성 같은 개념을 양산하고 새로운 심리 검사 모델을 도입하며 이를 교육, 경영, 행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정차시킨 심리학은 그 자체가 경영 담론이다. 물론 이를 거드는 문학, 예술,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인 지식 역시 새로운 자본주의가 요청하는 미적인 자기비판에 호응하여 왔다. 이때 여기에서 말하는 인문학이란 창의적이고 자율적이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정신박약 상태의 개인을 예찬하는 이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심미적인 인간으로서의 경제적 인간의 모델이 정보 통신 분야에서보다 더 요란하게 출현한 곳도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억만장자 자본가이기에 앞서 히피 성향의 괴짜에 외골수, 반사회적인 인물로 표상된다. 그들은 닷컴 열풍을 이끈 저 악명 높은 벤처 자본의 화신이다. 그것은 장래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줄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자본가는 이제 창의적인 예술가란 가면을 쓴 모험적인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혁신적인 상품은 전적으로 인문학적인 발상에 빚지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다. 가혹한 노동 조건을 견디다 못해 잇달아 자살을 택한 폭스콘 노동자의 처지는 애플이 만든 제품을 이야기하는데 아무 몫도 차지하지 않는다. 세련된 외장을 한 애플 숍에서 손바닥 속에 들어오는 '쌔끈한' 상품을 만지작거릴 때, 우리는 그것이 온갖 노동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사물이란 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 때 상품이라는 이름의 사물은 전적으로 그것을 고안하고 디자인한 인물들에게 소속된다. 매 시즌마다 유명한 디자이너, 예술가와 협력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자랑하는 상품들이 진열대를 채울 때, 우리가 상품 안에서 보는 것은 정작 사회화된 노동이 아니다. 우리는 그 안에 깃들어 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창의적인 개인의 열정과 상상력이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이 출판 산업이 만들어낸 상품이 아니라 한 소설가의 상상력과 조우하는 것인 듯 상상하듯이, 상품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작품과 같은 모습을 띠고 우리와 마주한다.
인문학은 죽었다!
그런 탓에 인문학이 노동이란 고역이 부재하는 것처럼 상상케 하는 우아한 차단막의 이름이라고 규탄한다고 해서 잘못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CEO를 위한 인문학 읽기" 프로그램 같은 것이 성행하고 경영 스쿨이 인문학 중심으로 교과 과정을 새로 짠다고 해서 기이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그럴 만하다고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문학 애호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문학은 이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득해야 할 에토스가 되었고, 이제 거의 모든 것에 스며든다.
이를테면 '서울형 복지'란 이름으로 고안된 신자유주의적 복지 정책은 '희망의 인문학'이란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물론 거기에서 말하는 인문학이란 "기업가 정신"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가라는, 저 악명 높은 노동 연계 복지(workfare)의 복음이 스며있다. 복지(welfare)란 개념을 대체한 노동 연계 복지라는 번역 곤란한 신조어는, 신자유주의적 복지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이는 사회적 연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책임을 공유한다는 종래의 복지를 철두철미 개인화한다. 급여, 후생, 복지 같은 '사회적인' 테크닉은 사라지고, 창업, 교육, 훈련과 같이 기업가처럼 행동하는 개인을 제한적으로 지원하는 신종 복지 테크닉이 그 자리를 메운다. 그리고 인문학은 바로 그 개인과 그의 경제활동을 매개하는 윤리로서 자리 잡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서야,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는데서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며, 기업가적인 인물이 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인문학을 공부하여야 한다!
그러나 세간에서 말하는 인문학이란 것이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사회화되는가를 응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유치한 알리바이라고 규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난 수십 년 전 유행하였던 "의식화"와 신세기의 "인문학 열풍" 사이에 놓인 거리를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의식화란 불온한 이념을 공부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학생은 물론 많은 이들이 이른바 불온한 사유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모든 사유와 정신 속에는 모순과 대립이 스며들어 있다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어떻게 실존하는가를 묻는 이 몸짓에서 실제로 우리가 얻은 것은 놀랍게도 세계를 더 투명하게 객관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자신을 주관화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폐소 공포증적 자기의 세계에 갇힌 채 세계를 망각하는 백치와도 같은 인문학적인 자아와 다른 인물을 만들어냈다. 사회과학의 시대였던 그 시기가 삭막하고 건조한 이념의 시대였다고 고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 시기가 또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눈부신 시의 시대이자 예술의 시대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이 융성한 시기에 우리가 정작 대면하는 것은 가장 역겨운 형태의 역설이다. 그것은 우리를 새롭게 주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여 버린다.
인문학이란 이데올로기로부터 인문학을 구제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인문학 자체란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세계를 달리 사유하는 방식들이 각축을 벌이는 지평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문학을 거부할, 아니 소멸시켜야 할 때이지 않을까. 인문학이란 물신이야말로 사유를 중단시키는 미끼이기 때문에 말이다.
2012-8-28 / 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절망의 인문학-2] 안철수는 인문학적 정치인인가?
이제 진실을 말하자! "안철수는 국민 자작극이다"
안철수 교수는 언젠가 '강남 좌파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웃으면서 내놓은 대답은 이랬다. "강남에 살지도 않고 좌파도 아닌데요." '안철수는 인문학적 정치인인가?'라는 물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꾸하고 싶다. "그는 인문학에 지적 주소지를 둔 사람도 아니고,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강남에 살지도 않고, 좌파도 아니지만 그를 '강남 좌파'라고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안철수는 인문학적인 정치인'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꽤 많다. 왜일까? '강남 좌파'가 강남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도, 좌파를 뜻하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싸이의 히트곡 '강남 스타일'의 주인공 '오빠'가 그다지 강남 스타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강남 오빠'를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런 사람을 만났다한들 그를 '강남 스타일'의 '싸나이'로 기억하진 않을 것 같다. 도대체 '싸나이' 자체가 전혀 '강남스럽지' 않은 단어 아닌가. '강남 좌파'는 어떤가? 안철수는 좌파스럽지 않기에 '강남'이고, 강남스럽지 않기에 '좌파'로 불린다.
결국 '강남 좌파'는 좌파 아님, 강남 아님이라는 이중의 부정을 통해서만 '강남 좌파'이다. "강남에 살지도 않고 좌파도 아닌" 안철수야말로 '강남 좌파'란 말에 들어맞는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적 정치인'이라는 이상한 말의 경우도 사정은 같다. 그는 '인문학적'이지도 않고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인문학적 정치인'일 수 있다.
안철수는 정치인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안철수는 인문학과 별 관련도 없었다. 이제껏 죽.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인문학적 정치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유력 대선 주자로서의 그의 인기의 상당 부분도 그의 인문학적 이미지―특히 '소통'과 '힐링'―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철수는 의과 대학 출신이고, 정보통신 업계 경영자로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이 이상한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소통'은 정보통신을, '치유'는 의사를 연상시키기 때문일까?
오늘날 인문학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소통'과 '치유'이고, 그때의 '소통'과 '치유'가 정보통신 기술과 의학과 자연스레 연결된다면, 이제 인문학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라 생체 테크놀로지로서의 인간을 다루는 학문으로 바뀌었다는 말인가? 이 이상한 상황에 '융합'과 '통섭'의 신화에 사로잡힌 우리 시대의 지적 혼란상이 있겠지만, 그건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강남 좌파'나 '인문학적 정치인'이란 말은, 4대강 사업을 '녹색 개발'이라 부르는 것처럼, 꿈의 언어―무관하거나 모순되는 이미지들을 욕망의 논리에 따라 하나로 압축한 것―이다. '강남 좌파'라는 증상적 언어는 어떤 외적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적 욕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문제는 강남 좌파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이전에 그런 말을 만들고 쓰는 집합적 주관의 상태다. 다루어야 할 문제가 바로 그 꿈의 작동이라면, '말이 안 된다', '꿈 깨라' 하고 야단치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지적'일 뿐이란 얘기다. '인문학적 정치인 안철수'라는 꿈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욕망에서 나온 말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안철수에 대한 기대와 인문학에 대한 호출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무한 경쟁, 승자 독식, 양극화, 사회의 정글화 등 시장주의의 추세로부터 벗어나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로 국가의 방향을 돌리고 싶어 하는, 그리고 지난 한 세대 동안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에서 누적된 피로―가계 부채에서 우울증에 이르기까지―에서 안전하게 벗어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소망이 있다고, 소박하게 해석해볼 수 있다.
예컨대 양극화 문제는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려온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아파트값 하락과 함께 중산층이 대거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면서 '1퍼센트 대 99퍼센트'라는 말이 광범위한 공감을 얻을 만큼 심각해졌다. 어쩌면 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알던 것을 알 때가 된 것'인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MB(멘붕 씨)의 통치 행태―사적 이익의 교활한 추구로 점철된 전과 14범이 마침내 국가라는 공적 질서를 자신의 수익 모델로 삼는 광경―에서 멘탈 붕괴를 경험하며 자신이 상상해왔던 자기 이미지가 실제로는 무엇인지 보았다. 마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에서 여주인공이 내심 꿈꿔왔던 마조히즘적인 판타지가 실제로 실현되었을 때 받는 충격이 이와 비슷할까.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는 정확히 MB(이명박)의 성공 신화―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아나 어렵게 공부해 명문대에 진학하고, 샐러리맨으로 입사해 기업과 함께 승승장구하다가 사장이 되고, 정치인으로 전환해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에 오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명박은 '대한민국'의 인격화이며 자화상인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그걸 믿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던 5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신화적 스토리에 동감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그걸 인정은 했었다. 방송 3사의 9시 뉴스에서 BBK 관련 동영상을 보고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준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그때 '없어진 주어'는 이명박이라는 주어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체성 자체였던 것이다.
이후 '나가수'를 비롯해 '나는―이다'가 유행어가 되어 홍수를 이룬 것은, 잃어버린 주체(주어)에 대한 뒤늦은 회복 시도가 아니었던가. 드라마 <추적자>의 마지막 장면은 유력 대선 후보의 범죄적 위선을 본 국민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달려가 그를 낙선시키고 징죄하는 것으로 돼 있다.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그 엔딩은 국민들 자신이 5년 전 저질렀던 과오―부정의와 부패에 대한 노골적 묵인―에 대한 상상적 만회가 아닌가. 이번 대선도 바로 그런 상상적 만회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들―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이 모두 나름대로 이명박과의 대척점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신화에 대한 갈망이며, 이러한 갈망에 가장 근사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안철수인 것 같다. 하지만 주의할 지점이 있다.
비록 안철수는 이명박과 반대되는 퍼스낼러티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성공 신화를 가진 인물―게다가 경영자 출신―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안철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의 한편은 변화이지만 다른 한편은 여전히 성공한 자, (부와 학력 등의 자본을) 가진 자로 자신을 재현, 대표하고 싶은 욕망이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성공한 자가 아니라, 공정한 룰에 따라 '모범적으로' 성취를 이룬 자를 바라며 이번에 덕성과 인간미까지 갖추기를 바란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건전한 시장주의', '따듯하고 인간적인 자본주의', <조선일보>가 (일종의 알리바이, 아니면 '이미지 세탁' 차원에서) 밀고 있는 '자본주의 4.0' 같은 것을 욕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인 냉혹한 이윤 추구 기계에서 하루아침에 그 정반대의 이미지, 따듯하고 인간적이며 공정한 신사로 변할 수도 있다면, 그래서 자본주의 1.0, 2.0, 3.0, 4.0, 5.0…으로 무한히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 이 경우 자본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 문명과 동의어인가? 아니면 인간들이 거기에 적응하고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벗어날 수는 없는 자연환경 같은 것일까? 이러한 자본주의의 자연화는 무엇을 뜻하는가?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뜻인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가?
우리에게 절박한 현안으로 도착한 이 물음이 대선의 이슈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어지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 복지, 정의, 공정,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제 민주화, 공공성의 회복 등등의 이슈들 배후에는 자본주의적 시장주의에 대한 강력한 회의가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대선 주자들의 공통된 공약들이나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그 부제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이다―의 기본적 방향과 어조는, 2008년 금융 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반-시장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배척되던 것들이 아닌가. '경제 민주화'니 '동반 성장'이니 하는 말들에 대해 재벌 회장들이 보여준 불쾌한 반응―"공산주의 하자는 것인가", "그런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등등―은 사태의 본질을 오히려 잘 드러내주지 않는가.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대선을 전후로, 그간 억지로 틀어막고 악화시켜왔던 한국 사회의 문제들―특히 부동산과 가계 부채 문제―이 배탈 난 사람 설사 터지듯 급격히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구제 금융을 받게 되든 아니든, "IMF 시즌 2"라 불릴 만한 공황적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도 매우 농후하다. '우리에겐 공황이 이미 진행 중이다, 내내 진행 중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문제는 그에 대한 대응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이다. 그런 맥락에서, 안철수 현상에는 기대를 걸어볼 만한 아주 독특한 면이 있다. 국민들이 '관전'만 하고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지점, 안철수의 유보적 침묵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출마 선언 및 선거 운동―정당을 구성하거나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는 것―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보일만한 비유적 행보만 있을 뿐이다.
신비주의 전략인가?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오히려 거기서 새로운 정치, 모바일 네트워크에 기대는 새로운 시민 정치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고 싶어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고 또 성공적으로 대선 국면을 이끌게 된다면, 정당 정치나 대의 정치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런 기대가 있다는 정도다. 나는 다른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안철수가 인문학적 정치인이냐는 물음이 주목해야할 지점도 여기일 것이다.
언론은 안철수의 유보적 침묵에 안달을 내지만, 정작 안철수 자신의 자신을 호명한 어떤 소리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총선이 예상치 않게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다시 커지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열망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 무겁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철수의 생각>, 5쪽)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호명한 까닭을 묻고 있다. 정치 공학적인 연출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것 같다. "왜 나를 부르는 겁니까? 나한테 원하는 게 무엇이죠?" 그는 국민을 큰 타자처럼 대한다. 이런 자세, 이 물음의 진지함이, 여러 실망스런 지점들―그의 명예 타령, 사실이더라도 굳이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하다니 낯간지럽다고 여겨지는 생의 이력들, 역사의식의 깊이, 한국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모범생' 같은 답변 뒤에 있어야 할 고뇌나 배제된 자들에 대한 공감의 결여 등등―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현상'에 어떤 기대를 갖게 한다.
어떤 기대냐면,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잘하겠다는 기대가 아니다. 그가 대선에 나온다면, 그리고 혹시 대통령이 된 후에도, 기성 정치판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사태들, 연출되지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안철수 현상의 핵심에는 태풍의 눈 같은 '빈곳'이 있다. 안철수가 채우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그 '빈곳'을 통해, 사람들이 비로소 정치적 소통이란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은 타자의 장에서 발생하며, 기존의 상징계가 깨어지는 간극에서 나타난다. 시쳇말로 멘붕 상태에서 떠오르는 말이다. 그런 물음이 발생하는 '빈곳'은 인문학적 사유가 돌아가는 바퀴축의 구멍 같은 것이다. 정치적 영역에서 그런 구멍이 유력 대선 후보의 입을 통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 징후적인 사태다.
그는 자신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울림통"으로서의 소임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안철수 현상을 통해 분명히 입을 벌린 한국 사회의 저 정치적 '빈곳'이 앞으로도 계속 열려 있어야 하며, 우리는 바로 그 '빈곳',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펼쳐지는 장에 개입해야 한다.
"열패감에 사로잡혔던 20~40대들이 서울시장 선거 등을 거치면서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는 분석이 있던데, 이런 변화에 약간은 기여를 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안철수의 생각>, 51쪽)
이 적절한 말을 이렇게 고쳐 이해하고 싶다.
'안철수 현상을 만든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체에 뚫린 거대한 상처이고 구멍이다. 안철수가 섣부른 출마 선언과 공약들로 그것을 채우는 대신 유보적 침묵과 조심스런 물음을 통해 그 구멍을 '무대'로 만들어주었다. 정치적 주체가 되어 그것을 채워야 할 사람은 우리이며 우리의 삶-정치이다. 안철수는 그런 기여를 한 것에 보람을 가질 자격이 있다.'
안철수 현상은 국민 자작극이며, 서막을 훌륭히 소화한 안철수에 이어 무대에 오를 자는 안철수가 아니라 국민 자신이다. 비극이 될지, 사이코드라마가 될지, 서사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2012-9-4 / 한보희 연세대학교 강사
[절망의 인문학-3] 대하소설은 여전히 가능한가?
사람들이 <토지>·<태백산맥> 안 읽는 진짜 이유는…
밤을 새워가며 <태백산맥>(조정래), <장길산>(황석영), <지리산>(이병주), <임꺽정>(홍명희), <토지>(박경리) 같은 소설들을 읽던 때가 있었다. 한 권으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서, 얼마만큼을 읽은 다음 책을 놓아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 가다 보면 이게 누구였더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묻게 되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인물들이 많고,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태백산맥>은 등장인물이 200명도 넘는다). 몇 번 같은 일을 경험한 후에는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가며 소설을 읽기도 했다. 벌써 20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다.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이런 소설 한두 편씩을 읽고는 했다.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들에 이끌리고, 역사책에 한두 줄 언급된 것들을 생동감 넘치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실감하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사는 곳이 달라 가까이서 들을 수 없는 옛말과 토속어들에 휘둘리면서 이런 소설들에 눈길을 주고는 했던 것이다.
소설을 집어 들게 한 충동은 일률적이지 않았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배어 있었는가 하면, 특정한 시대의 삶과 현실을 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은 지적 욕구와, 체제 전복적인 삶을 살았던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현실에서 얻지 못한 것을 대신 얻어 보고자 하는 욕망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만큼 재미있는 오락거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들은 문학 작품이면서 역사서이고 교양서이고 사상서이고 오락물이었던 것이다.
몇 권 이상이라고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보통의 장편보다는 긴 이런 소설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대하소설. 대하 역사 소설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엄밀한 의미의 양식 개념은 아니다. 그저 "사건의 연면한 지속과 시간의 장구한 흐름"(<한국 현대 문학사>(권영민 지음, 민음사 펴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대개는 우리가 경험했던 과거의 중요한 어떤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겠다.
소설을 읽고 비평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단편을 비중 있게 다루는 문단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처럼 이런 종류의 소설들이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단편 위주의 문단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장편 소설 대망론이 대두될 정도였으니, 그보다 몇 배나 긴 대하소설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글이 짊어지고 있는 물음은 대하소설은 여전히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당겨서 답해 보자면, 그럴 것 같지 않다. 문단 안과 밖을 두루 살펴보고 문학을 둘러싼 여러 환경들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답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오늘날 소설이 서사를 전달하는 다른 여러 매체들과 경쟁하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영화나 TV 드라마와의 경쟁에서 소설이 승리할 수 있을까.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문단 내부의 논의에서 작가와 비평가들은 다른 매체들과 공약 불가능한 어느 지점에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무엇(문학적인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다른 매체들과 공약 가능한 가장 뚜렷한 요소가 이야기에 있고 보면, 여러 소설 형태 가운데서도 이야기적 요소가 가장 강한 대하소설은 문학적인 것에서 가장 거리가 먼 양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재현을 바라보는 최근의 입장들도 대하소설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대하소설은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들, 우리가 흔히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소설들의 한 극점에 있다.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폭넓게 그리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지만, 이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거나 권력의 입맛에 맞게 윤색되고 변형되어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폭로해야 하는 현실인 경우가 많았고, 작가들은 당대 역사학계의 성과들을 두루 섭렵하고 발품을 팔아 소설 속 무대를 직접 답사하고 나서야 소설 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소설의 사실(史實) 왜곡, 예를 들자면 <장길산>에서 상업 자본의 형성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이 실제에 비해 한 세기나 앞서 있다는 식의 비판이 가능했던 이유는, 작가와 독자 모두 소설이 사실의 진실된 재현이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하소설은 역사적 사실들을 복원하고자 하는 열정이 만들어 낸 양식이다. 독자들도 이러한 명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읽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은 누구도 이런 식으로 역사 소설을 쓰거나 읽지 않는다. 가령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비롯하여 인물들이 남한산성에 갇혀 있는 현실은 당대 동아시아 정세와 역학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가 소설에서 목도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지닌 잠재적 가능성이 어떤 특수한 상황과 마주치면서 현실화되는 광경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 놓인 개별적 현실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장소로서 선택된 보편적 현실이다. 이는 문학적으로 의미 있을 수는 있어도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공간이다. 사료를 근거로 했다고 해서 이런 주장이 부정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형상화로는 대하소설 식의 서사적 확장은 거의 불가능하다(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것이 미학적 가치 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 근대 소설사에서 대하소설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였다. 대하소설과 같이 긴 형식이 필요했다는 것은 기존의 서사 형태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뜻이겠다. 이를테면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충분히 담아내는 데 제약을 느꼈거나 시대 현실을 좀 더 폭넓게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는 것.
이런 인식에 이르게 된 데는 대중의 출현도 한몫했을 성싶다. 많은 대하소설들이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민중은 몇몇 예외적인 개인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통해 그 모습이 좀 더 잘 드러난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넷이 민중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대하소설이 적절한 형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역으로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민중들의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현실을 넓고 깊게 그리는 데 민중들의 일상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중들에 대한 관심이 대하소설을 쓰게 하고,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서 민중들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중은 역사의 주체일 수 있을까. 프랑스의 비평가 루시앙 골드만은 문학 작품의 진정한 생산 주체는 작가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계급 전체라고 보았다.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관인데, 이 세계관은 개인의 생산물이 아니라 집단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골드만은 나중에 세계관 개념을 매개하지 않고 소설과 사회 구조의 상동성을 직접 설정하게 되는데, 그가 세계관 개념을 폐기하게 된 데는 노동자 계급의 몰락이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골드만은 이런 맥락에서 알랭 로브그리예의 소설을 읽었고, 거기서 인간의 수동성과 사물의 자율성, 비인간화 같은 주제들을 발견했다.
골드만의 이런 분석이 우리의 논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과 노동 운동이 거의 아무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라면 대하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열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인물 군상을 집단적으로 형상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하소설은 보통의 장편과 비교할 때 서사가 크게 확장되어 있다. 서사의 확장은 서사 시간을 길게 하거나 공간을 확대하는 것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글로벌한 시대, 자유롭게 세계를 오갈 수 있는 시대, 누구라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세계의 정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대다.
공간의 확장이라는 면을 염두에 둘 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대하소설을 쓰기에 유리하고 또 대하소설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는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대하소설이 쓰이고 있는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서사를 최대한 확장한 형태인 대하소설이야말로 이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서사 형태는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다. 지금 우리의 경험이 구성되는 방식 속에서는, 대하소설이야말로 절대로 쓰일 수 없는 그런 서사 장르인 것처럼 보인다. 글로벌한 시대에 우리 경험이 구성되는 방식과 대하소설이 가능한 조건은 상이하다는 이야기.
대하소설이 쓰이기 위해서는 서사의 확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으로서의 서사적 중심, 이를테면 다양한 인물들이 펼쳐내는 개별적인 서사들을 묶어 놓을 수 있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1970년대에 대하소설과 더불어 우리 소설의 특징적인 경향으로 지목되고 있는 연작 소설은 바로 이 점에서 대하소설과의 친연성이 있다.
연작 소설에서 개별적인 서사들을 묶어 주는 중심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최인훈)처럼 육체적인 자기 동일성을 지닌 한 개인이 될 수도 있고, <우리 동네>(이문구)나 <원미동 사람들>(양귀자)처럼 인물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대하소설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가령 <태백산맥>이 그토록 다양한 인물들과 서사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 그 모든 이야기들이 '벌교'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면 이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다양한 공간들로 확산되어 가는 <아리랑>의 경우도, 결국 그 이야기의 출발점은 군산이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미의 중심, 주체가 없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의 확장은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스펙터클을 경험하게 하고 다양한 풍광들을 감상하게 하는 역할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들은 다만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이어져 있을 뿐 이어져야 하는 내적인 근거가 없이 이어져 있는 그런 공간들일 뿐이다.
책임질 수 없는 공간, 책임지지 않아도 좋은 공간. 그에 비해 대하소설이 우리에게 펼쳐보여 주었던 세계는 가능한 세계, 공감할 수 있는 세계이고, 서로에 대해 충분한 정도의 책임을 질 수 있고 져야 하는 세계, 그렇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는 누군가를 윤리의 이름으로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가능한 세계다. 책임져야 할 타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그들의 고통이 우리를 우울증적 상태로 내모는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세계다.
공간이 확장된 만큼 서사 역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확장될 수 있는 서사는 우리가 대하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그런 공간들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타전되어 오는 고통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 많은 고통들로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해 낼 수 있을까.
무수한 고통들은 우울증을 낳고, 도처에 널린 고통들을 수용하되 반응하지 않게 만든다. 무수한 고통들을 화면으로 불러들이면서 그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마저 모니터에 위임하고 있다고나 할까. 우리에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새로운 주체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자를 대상화하고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마땅히 해체되어야 할 존재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공간들을 연결하고 관계 맺게 하는 중심으로서의 주체, 소통의 매개가 될 수 있는 주체. 이에 비하면 대하소설이 여전히 가능한가 하는 물음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소설가 김주영의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동행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인터뷰를 하게 된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객주> 완결 편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10권을 쓴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미 1년 전부터인데, 내년쯤에는 작품을 볼 수 있을 모양이다.
그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소설가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이 완간되어 나왔다. 모두 9권. 처음 나왔을 때부터 2권이 더 늘었다. 애초에 쓰려 했으나 자료의 미비로 할 수 없었던 광주 학생 운동 이야기를 최근의 관련 연구들을 참고하여 덧붙였다는 후문이다. 이 두 작품으로 대하소설은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하게 된 셈이다.
대하소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이리라는 데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일단 이런 이야기들은 젖혀두고 우선은 시간과의 길고 질긴 싸움에서 승리한 두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2012-9-11 / 정영훈 문학평론가
[절망의 인문학-4] 현대 동양 철학은 가능한가?
언제까지 공자·노자·석가의 노예로 살 것인가?
인문학의 위기라는 주장이 나온 지 꽤 오래되었다. 그 중에 철학이 더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다.
문학은 한국 현대 문학이 전문가와 일반인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고 동시대의 작가들이 현대 문학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사학계에서는 역사를 과거로만 한정시키는 시각을 교정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고등학교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집필하여 수업을 진행하며 현재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이와 달리 철학은 현실과 교육의 영역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어떠한 제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철학이 역사의 일정 단위와 만나면 고대 철학, 중세 철학, 근대 철학 그리고 현대 철학 등의 조어가 생겨난다. 이 중 '현대 철학'이 다시 특정 지역과 결합하면 서양 현대 철학, 동양 현대 철학, 동아시아 현대 철학, 한국 현대 철학 등의 조어가 생겨난다. 우리는 '서양 현대철학'에 익숙하고 또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 반면 나머지 조어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 가능 세계에 있는 듯하며 낯설고 또 그것에 대해 배울 만한 뭔가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동양 철학의 경우 역설적인 현상이 있다. 사람들은 '동양 현대 철학'에 낯설어 하지만 '동양 고전'에 반가워한다. 동양 현대 철학은 몰라도 좋지만 동양 고전은 알아야 하므로 배우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동양 철학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고전'으로 환영받지만 현대 철학 중의 하나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 철학자들은 일반 대중과 다른 분야 전공자의 사랑을 두루 받고자 하지만 현대 철학이 부재한 탓에 그 사랑이 마니아와 일시적인 유행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 철학이 없다는 것은 동양 철학의 다양한 전공 중의 하나가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현대(인)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동양 철학이 과연 고전을 넘어서 현대 철학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따져볼 만하다. 현대 철학이 없다면 동양 철학은 빛나는 문화유산으로서 정리와 해설의 대상으로 남게 될 것이고, 현대 철학이 있다면 동양 철학은 현대 사회로 옮겨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개념의 정의가 필요하다. '동양 현대 철학'은 전통 철학의 학적 맥락과 현대 사회의 상황을 대결시켜서 현대인과 현대 사회에 비판적 사고와 정당화 가능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도록 재구성된 철학을 말한다.
개화파와 위청척사파의 대립과 그 이후
전근대 학문은 경사자집(經史子集)과 그 하위 단위로 분류되었다. 철학은 그 중에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잘 아시다시피 철학(哲學)은 일본의 니시 아마네가 19세기 중반에 'philosophy'를 번역하면서 탄생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엽에 이정직과 이인재가 각각 칸트 철학과 서양 고대 철학사를 다루면서 '철학'을 처음으로 사용한 걸로 밝혀졌다. 특히 이정직은 '철학'을 일본으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 아니라 량치차오(梁啓超)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philosophy는 어원에 따르면 애지(愛知), 즉 지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에 대한 앎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학계는 2000년 무렵에 자신의 학적 전통에 philosophy가 전제하고 탐구하는 앎이 있는지 없는지 논쟁을 벌였다. 이 중에 거자오광(葛兆光)은 전통 학문에는 philosophy에서 전제하는 순수하고 추상적인 앎이 없고 지식과 실천 사이의 연계가 중요하게 나타나므로 철학 대신에 사상(思想)을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도 전통 시대의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 활동을 실제로 '사상'으로 의식하고 있었느냐 하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적으로 앎의 의미를 좀 더 넓게 이해한다면 philosophy는 <논어>에 나오는 호학(好學)이나 호모(好謀)에 가장 잘 대응한다고 생각한다. 양자는 어원과 의미에서 상당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 호학과 호모의 전통 학문은 철학으로 대체되기 이전까지 사회 질서의 원칙으로서 개인과 사회를 규제하는 원리로 기능했다.
서세동점의 파괴와 더불어 19세기에 이르면 그러한 기능이 단순한 내부적인 토론과 변신이 아니라 근원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서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일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개화파는 전통과의 단절만이 신세계를 열어줄 것으로 보았고 위정척사파는 전통의 수호만이 양이(洋夷)와 왜이(倭夷)로 표상되는 야만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다고 보았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은 호학과 호모의 학문 활동이 철학의 이름으로 대체된다는 전환을 상징하고 이후에 나타난 학문 활동의 특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첫째, 호학과 호모로서 '동양 철학'은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 이후에도 더 이상 사회 질서의 원칙으로서 전면적인 기획과 주장 그리고 실천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즉 호학과 호모는 새로운 생활 세계의 도래와 함께 현실을 규제할 접점을 상실하게 된 것이었다.
둘째, 호학과 호모를 대체한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과 대등하게 정립하지 못하고 서양 철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철학' 중의 하나로서 자생의 기반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동양 철학은 늘 서양 철학(또는 철학)을 기준으로 삼아서 스스로 무엇임을 주장하지 못하고 "얼마나 (서양) 철학적인가?"를 밝혀야 했다. 예컨대 후스(好適)와 펑유란(馮友蘭)은 철학사를 집필하면서 동양 철학에 "얼마나 과학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것인 있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그래야만 철학의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서양 철학자들은 동양 철학에서 쓰는 용어가 맞는지 따지는 검열자의 노릇을 하려고 든다.
셋째, 주류의 위치를 차지한 (서양) 철학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는 약자(동양)가 배워서 강자(서양)와 같게 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철학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다양한 서양 철학이 소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진화론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는 데에서도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서양철학이 삶(세계)에 대한 철학적 재구성이나 대응 과정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새로운 경전으로 간주되면서 그것은 우리가 열위에서 학습하고 존경하는 대상이지 대등한 지위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했다. 철학이 새로운 정학(正學)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민지화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학의 영역을 개인과 그 내면에 한정시켜서 철학과 삶(세계)의 연계성을 외면하게 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여성 불교가 현대의 남성 실존주의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 이후에 우리는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 즉 철학 모두 홍윤기의 표현에 따르면 "철학의 내재적 동력으로서 철학함"과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괴리를 막을 수 없었다.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들
한국의 철학을 두고 여러 가지 자조적인 목소리가 있다. 완제품을 수입해서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가르친다거나 철학의 학계를 종합 상사의 한국 지사나 출장소로 낮추어 말하기도 한다. 또 서구의 철학 풍조가 바뀌면 한국의 철학 연구자들이 기존의 철학에 대한 어떠한 반성 절차 없이 새로운 전공으로 갈아탄다고 비아냥거린다. 이는 20세기 초에 '철학'이 소개된 이래로 많게는 1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한국의 목소리를 담은 자체 철학을 만들어내지 못한 실상을 신랄하게 꼬집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비관의 소리가 높지만 희망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에 서양 철학이 수용되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정리할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 걸쳐서 식민지의 해방과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철학적 작업을 진행했던 철학자의 공과를 밝혀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 실천 철학'과 '한국 현대 철학'이 커다란 출발을 위한 주춧돌이 놓이고 있다.
김석수는 강단 철학이 겪는 악순환의 고민을 토로하고 있다. "내가 배운 철학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헤겔, 마르크스 등 서양의 철학자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이들의 이론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이 땅의 현실을 담은 철학을 하지 못했듯이 내게 배운 학생들 역시 이 땅의 현실을 담은 철학을 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다원주의, 시민사회론, 지방의 문제, 자치의 문제 등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 실천 철학의 전개 양상을 재검토했다.
씨알학회와 근현대 한국 사상사 연구 모임은 "한국에서의 철학 연구는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주로 강대국(중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사상들 가운데 주류로 알려진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한국에서 동양과 서양을 분명하게 분리하는 태도는 20세기 초 일본의 동양 통합론에 의해 더욱 확산되고 습관화되었다." 이러한 동서 분류의 관행에도 불구하고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은 소개와 모방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비주류이자 비체계적인 가치관으로 치부되어 왔던 근 100년간의 한국 사상사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하여 발간하는 것은 한국 사상계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에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면서 한국 현대 철학의 본격 연구를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홍윤기는 "동아시아 현대 철학의 최대 과제는 서양 철학에서 수용된 '이성 구도'를 동양 철학의 '도·리(道·理) 기획 및 동아시아 현대사의 경험과 접합하여 철학함의 내공을 확실하게 다지는 일일 것이다"라는 제안을 통해 동아시아 현대 철학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양 철학 연구자들은 동양 현대 철학의 가능성을 얼마나 진지하고 검토하고 있을까? 타이완을 중심으로 일찍이 전근대 유학의 가치를 현대에 확대 적용하기 위해서 '현대 신유학'이란 일군의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들은 정학(正學)과 사학(邪學)의 이분법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채 유학의 전근대적 요소(삼강, 삼종지도 등)와 근대적 요소(성선, 인간의 관계성 등)를 구분해서 후자와 현대의 접점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보면 동양 철학의 연구자가 학문 활동의 방향과 목표를 동양 현대 철학의 정립에 두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가장 지배적인 유형은 근본주의와 환원주의의 양상을 나타낸다. 환원주의는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을 탈맥락적으로 동양 철학의 개념, 인물, 사상과 유비시켜서 그것의 만능성을 주장하는 형태를 드러낸다. 예컨대 공직자의 부패가 문제되면 청백리를 소환하고, 가족의 패륜 범죄가 일어나면 효(孝)를 해결책으로 들먹이고, 권리의 충돌이 주제가 되면 도의(道義)를 강조하고,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면 화합의 가치를 역설하고, 환경과 생태 문제가 등장하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철학적 논증은 유비로, 엄밀성은 장황한 열거로 대체된다. 더 나아가 유비와 열거는 정식화가 아니라 구호로 정리된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는 일이 잘 된다."
이러한 환원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 근본주의의 성향이다.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는 서양 철학 또는 서구 문명의 한계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동양 철학으로 돌아가 그 가치를 존중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 문화에 친숙한 사람들에게 득의에 찬 만족과 위안을 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심어주게 된다. 이 때문에 김용옥과 같은 슈퍼스타가 동양 철학의 현재적 가치를 설파하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만 그 열기는 금세 식어버린다.
동양 현대 철학을 위해서
동양 철학이 동양 현대 철학의 정립을 위해서 고전의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환원주의와 근본주의의 만능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양 고전에 머무른다면 철학자가 동양 철학의 테제를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동양 고전에 대한 과잉 기대이다. 과잉 시대인 만큼 폐해가 적지 않다. 왜냐하면 동양 철학이 고전의 지위에 있는 한 연구자는 뒤로 물러나고 고전이 앞에 등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고전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그이는 경서(고전)를 풀이하는 해설사이니 텍스트와 싸우면서 대화하는 철학자가 될 수는 없다.
환원주의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동양 철학자들은 필요에 따라 이미 밝혀진 결론을 끄집어내는 게으른 탐구자가 될 뿐이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돌아보지 않고 현대인의 게으름을 질타한다. 동양 철학에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을 치유할 해답이 다 들어있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그것을 들추어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본주의는 그것의 현실화를 추진할 정치 동력을 갖지 못하면 한갓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는 동양 철학이 결코 엄밀한 논리적 사유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
동양 철학이 동양 현대 철학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두 가지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자기 변신의 과정으로서 철학사 읽기이다. 동양 철학은 경서(經書)의 주석 형식으로 진행되어온 탓에 사람들은 철학의 역사가 곧 동일성의 재연이라고 생각한다. 주석이 학문의 중요한 방법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주석 달기가 기존의 반복과 답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후배는 선배와 다른 주석을 경서에 밀어 넣어서 경서의 의미를 뒤흔들어놓았다. 예컨대 주희와 정약용의 사서 해석을 비교해보라. 주희는 주관의 극단적 확신이 가져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서의 곳곳에 규범의 객관성으로 해석하는 장치를 매설했다. 반면 정약용은 눈부신 광휘를 내뿜는 객관적 규범이 도덕적 개인과 도덕적 사회를 만드는 데에 무기력하다는 점을 비판하고서 경서의 여러 곳에서 규범의 인격성을 들추어내고 있다.
주석 이외에도 학습과 토론의 공론장의 강학(講學), 자유로운 학술적 글쓰기의 논(論)과 원(原), 논적과 쟁점을 다투던 서(書) 등 방법이 있었다. 그들은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종횡으로 사용하면서 철학사의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홀로서기를 오롯이 새롭게 밝혀낸다면 동양 철학이 다시금 현대에서 철학으로 홀로서는 방법과 내용을 갖추게 될 것이다.
둘째, 중심과 주변의 재배치이다. 철학사를 보면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도 그 주제와 현안이 교체되곤 했다. 세계의 근원으로서 기(氣)와 리(理), 도덕의 근원으로서 심(心)과 성(性), 인간의 자연성으로서 성(性)과 욕(欲) 등은 지배적인 왕좌에서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는 중심과 주변을 새롭게 조정함으로써 현대 철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최한기의 길은 현대화를 위한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는 서양 과학의 영향으로 인해 오행과 음양의 과도한 물질성과 상징성이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지도 규정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울러 그는 초월과 내재의 모순을 지닌 리를 기의 내재적 규칙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지평을 마련했다. 이로써 리와 기 사이의 중심과 주변 관계에 역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성 차별, 신분 차별, 아동 학대 등 억압과 부자유를 자연 질서로 당연시하던 세계관을 전복시키기 위해서 근대성과 호응하는 리(理)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동양 현대 철학'은 동양 철학이 당대의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동양 고전의 틀에서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현대 철학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자기 변신을 할 수 없는 죽은 학문이 된다는 것이다. 이 상태는 동양 철학이 더 이상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가진 문헌으로서 고전(古典)이 되지 못하고 오래된 침전물로서 걷어내야 할 대상으로서 고전(古澱)이 된다.
누가 동양 현대 철학의 출현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제 동양 현대 철학의 가능성을 현재성으로 바꾸기 위해서 작은 걸음을 시작할 때이다. 이제 신채호의 외침에 대답할 때이다.
"우리는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낳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낭객의 신년만필')
2012-9-13 /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교수
[절망의 인문학-5] 비평의 소통, 소통의 비평
비평가는 작품을 좀먹고 사는 벼룩인가?
1980년대 초에 김현은 1970년대 비평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제야말로 문학 비평가가 정말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 문학 비평은 문학 비평이 문학 비평으로 남을 수 있게 싸워야 한다. 그 싸움과 동시에 문학 비평은 문학 비평이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 비평이란 무엇일 수 있을까. 1980년대의 앞자리에 나는 그 질문을 나에게 되풀이하여 던진다." ('비평의 방법', <전체에 대한 통찰>(나남출판 펴냄, 1990년), 213~214쪽)
이런 질문은 매우 근본적인 것이어서 언제든지 비평가들로부터 제기됨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김현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거듭 되물어진, 그만큼 오래된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과 그 이후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소회는 매우 곡진하다. 김현이 타계한 1990년 이후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고, 또 20여 년이 지난 요즘은 더욱 절박한 문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정보 자본주의와 소비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위력 앞에서 그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불연속적인 것과 연속적인 것이 얽히고설킨 나날의 삶은 존재의 불확정성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파시스트적인 속도로 질주하는 문화 변동은 문화 지체라는 말조차 무색하게 여겨질 정도다. 공유하는 인간 경험과 문화 체험의 정도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에 따라 개개인의 삶과 의식은 더더욱 파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겉보기에는 이전보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다채로워 보이지만, 정작 인간의 내면적 행복 지수나 문화적 감동 지수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작은 인간, 왜소한 인간들의 불안감이나 피로감, 존재 박탈감들이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작은 인간들은 나날이 상품을 소비하며 살지만, 소비의 주체인 자신마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더 큰 타자에 의해 소비되거나 소진된다.
비평으로 좁혀 말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실의 전체적 지형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와 문학의 전체적 지형도를 그릴 수 있는 '전체에 대한 통찰'을 갖춰 지니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비평가 개인의 성실성 여부에서만 생겨나는 문제가 아니다. 매우 복합적이고 혼돈스런 현실은 이미 가장 성실한 비평가에게조차도 그런 예지와 종합에의 꿈을 앗아갈 정도로 위력적이다. 아주 오래 전에 헬렌 가드너는 유행이라고 하는 파괴의 물결 앞에서 탁월한 작가들을 보호해 주는 것(<The Limits of Literary Criticism>)이 비평의 임무라고 말했는데, 그 임무를 다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문학적 전망 제시에 힘을 실을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또한 비평가 자신의 문학에 대한 새롭고 독자적인 의견을 전개하여 그 비평 자체에 예술적인 창조성을 부여하는 비평 행위 역시 활발한 것 같지 않다.
그렇기보다는 여러 경로에서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비평가들이 문학적 진정성과는 별개로 상업주의나 저널리즘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내지 강화하기 위한 소아적 분파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많은 작품들을 읽지 않거나 읽더라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 비평가의 비평적 판단력이나 감식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 비평적 평가 기준이 모호하거나 타당하지 않다는 것, 문학 텍스트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앞세운 발언만을 하거나 문학 생산이나 문화 수준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지엽말엽적인 논의로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 기생적인 주례사 비평에 머문다는 것, 등등 여러 의혹과 추문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이런 의혹의 시선이나 추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가들에 의한 불만은 예로부터 많이 있어 왔다. 콜린스를 "작품을 좀먹고 사는 벼룩"으로 혹평한 테니슨의 말이나, "시인을 평가하는 것은 오로지 시인만의 임무이며, 그것도 모든 시인의 임무가 아니라, 최상의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 벤 존슨의 지적을 비롯해, "악의에 찬 평자들은 시시한 작가들의 하위 서열 중에서도 이류에 속한다"(쉘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평자들은 생산 능력을 잃어버린 환관들의 모습을 발견한다"(조지 스타이너), "심지어 가장 저급한 시도 그 시에 대한 언급과 같거나 더 나을 수밖에 없다"(그레이) 등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E. M. 포스터 역시 "비평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비평이 한 번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고, 대신 해서는 안 될 것만 지적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학 비평의 전제>(현대미학사 펴냄, 1998년)에서 이런 사례들을 원용하면서 루스벤은, 평자들은 항상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들로부터 평가 지침을 받음으로써 평가 기준의 하향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으로 인해서 항시 부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젊은 작가들을 미리 규정된 원칙에 의거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마치 뒷거울을 보면서 운전하는 것과 같으며, 기껏해야 앞에 놓인 현재의 상황과 충돌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 '비평가 없는 예술과 독자 없는 비평가'라는 시사적인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비평가 메리 프랫은 "대부분의 예술 작품에 대해 사실상 비평이 쓰이지 않고 있는 형편이고" "대부분의 비평이 읽히지 않고 만다"(<비평이란 무엇인가>(예림기획 펴냄))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김현이 비평가가 정말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던 무렵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의혹의 시선들이 시비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에 대한 시비보다는 발본적 성찰을 통해, 문학 비평이 무엇으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할 때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비평은 어떻게 그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문학과 현실의 전체적 상황과 맥락의 성찰을 위한 비평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두루 아는 것처럼 정보/소비 자본주의가 만개한 가운데 현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생태계의 전면적 균형 상실과 아울러 생명의 전체성에 대한 인간 감각의 파괴와 상실 경향 심각하다. 그런 가운데 문화 일반은 비속화 일로에 있으며, 상징적이거나 실제적인 폭력으로부터 인간 삶은 자유롭지 못하다. 새로운 세계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계급 문제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성찰은 물론 한반도 내적으로 분단 문제, 민족 문제 역시 비평적 성찰의 긴장을 요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무한 경쟁 시대의 타자의 윤리학이나 디지털 시대의 윤리학에 대해서도 우리는 적극적인 성찰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 일상생활 그 자체도 얼마나 문제적인가. 근대의 이성이 의심받고 전체성이 회의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나, 우리는 여러 가지 맥락에서 그것들을 의심하고 회의하면서도 현묘하게 새로운 시대의 윤리 감각에 대해 역동적으로 성찰할 필요를 느낀다. 현실과 문화, 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과 전면적 성찰을 바탕으로 문학과 인문 문화의 건강성을 추구하고, 세계의 생명력의 불꽃을 다시 지필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 현실적 맹목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으로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새롭게 굴릴 수 있는 비평적 긴장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니까 비평의 종언은 없다. 문제가 깊고 넓을수록 비평적 주제도 심화될 수 있는 법이다.
둘째, 해설과 비판의 담론을 넘어 비평은 생산과 창조의 담론을 지향해야 한다. 물론 기존에 비평이 견지했던 해석과 비판의 담론은 그 자체로 새로운 창조와 생산을 위한 기획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생산과 창조의 담론이 될 수 있을 때 비평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터이다. 불연속적이고 불확정적인 현실에서 인간 의식의 신명에 상응하는 상상력을 회복하는 방향은 어디에 있을지, 새로운 문학 지도 그리기를 위한 가능 세계 탐색의 가능성과 방향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해, 비평이 창조적인 지혜를 보여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경험된 세계이거나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세계에 대한 상상적 공동 제작자라는 자의식을 비평이 지닐 수 있을 때, 비평은 창작의 진정한 타자가 될 수 있을 터이다.
나아가 문학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해서도 창작자 이상으로 고민과 지혜를 생산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비평과 창작과의 관계에서 비평이 사후성(事後性)에만 머물지 말고, 비판과 반성의 사후성은 물론 새로운 창조와 생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동시성이나 사전성(事前性)의 영역까지 포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동시대의 의미심장한 주제들에 대한 예민한 탐색과 첨단 감각, 오랜 인문적 지혜와 교양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생산된 비평들은 독자들과 행복한 소통의 지평을 알게 될 것이다.
셋째, 자설(自說)적인 비평 이론을 계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살아있는 비평적 쟁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대화적 비평을 모색해야 한다. 가벼운 인상 비평이나 가십성 비평이나 주례사 비평 등이 만연하면 비평은 점점 왜소화되고 주변으로 밀려날 운명에 처할 것이다. "작품을 좀먹고 사는 벼룩" 신세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또 소비 자본주의의 쳇바퀴에 휘말려 가볍게 소비되거나 소진될 여지마저 있다. 무엇보다 이미 이루어진 창작물에 대한 기생성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터이다.
비평이 자기 정체성과 존재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우선 비평 이론에 대한 심화된 성찰이 요구된다. 20세기 후반에 서구에서 많은 비평 이론들이 개진되고 실험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형식주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 비평, 정신분석 비평, 독자 반응 비평, 신화 비평, 탈구조주의 비평, 탈식민주의 비평, 페미니즘 비평, 신역사주의 비평, 생태주의 비평 그리고 또 다른 이름의 많은 비평 방법들을 우리는 학습했다.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루카치, 골드만, 마슈레이, 미하일 바흐친,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프로이트, 융, 라캉, 푸코, 들뢰즈, 가타리, 지젝, 지그문트 바우만, 조르조 아감벤과 그 밖의 많은 논자들을 탄력적으로 주목한 바 있다. 여기에 노장 사상이나 불교의 윤리 감각, 유가의 사상이나 퇴계학 등 동아시아의 담론들을 보태고 융합하고 새롭게 성찰하면 수용을 넘어선 새로운 비평 이론의 구상도 가능할 것이다.
비평 이론의 틀이 넉넉하고 튼튼할 때 비평 담론의 적절성 및 정당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비판적 대화나 논쟁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비평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전작 비평의 저작도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단편 소설 중심의 근대 소설사가 어느덧 당당한 장편 소설의 시대를 맞이했다. 비평도 자기 체계를 명실상부하게 갖춘 전작 장편 비평의 시대를 열어나갈 때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노드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1957년) 같은 경우를 떠올려 보기로 한다. 현대 미국 문학 비평을 개관하는 자리에서 윌튼 리츠(프린스턴 대학 석좌교수)는 새로운 비평의 시대의 전주곡으로 노드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를 주목했다. 프라이에 와서야 비로소 비평가는 자신의 특별한 지식과 힘을 가지고 더 이상 예술가의 시종이 아닌 동료가 되었다고 리츠는 지적한다.
인간성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프라이는, 비평가가 자신의 독자적인 창조력을 가지고 어떻게 예술가와 독자 사이에 위치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비평의 해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조직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리츠의 견해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프랭크 커모드도 1958년에 쓴 서평에서 "이 책은 핵심적이고 자주적이고 윤리적이라는 면에서 하나의 문학 작품이 되어 버린 비평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라고 적은 바 있다.)
넷째, 문학 교육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비평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 비평은 예로부터 폭넓은 의미에서 문학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인문 문화적 가치를 계발하고 보존 전승하며, 비판적 시민을 교육하며, 문화적 능력을 함양한다는 측면에서 문학 교육과 비평은 실질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문학의 위기, 비평의 위기, 문학 교육의 위기는 서로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문학 교육 현장은 수준 높은 문학 교양과 비판적 안목을 지닌 독자 내지 예비 창작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이 목표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때 한 사회의 문화적 능력은 향상된다. 진정한 문학과 비평의 생산과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도 그 기반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문학 교육이 잘되기 위해서는 교육 재료가 충분해야 한다. 좋은 작품과 그것을 읽고 판별하고 해석하고 비평할 수 있는 안목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비평가들이 그런 실질적인 교육 재료를 폭넓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 교육 현장에 양질의 재료와 동시대의 문제적 측면들에 대한 살아있는 쟁점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평의 사회적인 영향력도 증대될 것이며, 독자 없는 비평의 불우한 운명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섯째,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안팎이라는 양 방향으로 열려 있다. 한국 문학과 그 담론을 세계에 널리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 그 하나라면, 세계 문학의 수준에 비춰 한국 문학이 부단히 혁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10여 년 전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문학 교수와 대화를 나눌 때의 일이다. 내가 라캉과 지젝 이야기를 하니까, 그녀는 그런 담론은 자신도 잘 아니 자기가 모르는 동양/한국의 다른 담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작년(2011년) 가을 멕시코 과달라하라 국제 도서전에서 한국 문학 이야기를 하는데, 에스파냐 어 독자들은 한국 문학의 맥락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잘 만드는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 이야기의 다양한 맥락을 알고 싶어 했다.
세계 문학적 보편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심화된 담론을 정립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참으로 많다. 드라마나 영화,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가 문학으로 심화될 때, 한국적인 가치의 세계화는 그 진정한 깊이를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세계 문학의 첨단 감각에 대한 감식안을 바탕으로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과 탄력적으로 소통하고 혁신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혜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우리 시대 비평가들의 몫이다. 번역이나 홍보의 문제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번역되고 홍보될 것의 심미적 가치를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겠기 때문이다.
여섯째, 전위적인 실험 정신으로 비평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흔히 언어는 소리와 침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창작 텍스트도 그렇듯이 비평도 실험된 영역과 실험되지 않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실험된 고답적인 비평 언어와 관점, 스타일로는 새로운 시대의 비평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실험되지 않은 영역에서 새로운 비평의 탄생을 부단히 꿈꾸어야 한다. 구축, 해체, 재구축의 과정을 반복해 왔던 담론의 질서와 계보를 헤아리면서, 정녕 새로운 비평 언어와 관점, 스타일로 문학과 비평의 역사를 새롭게 열겠다는 다부진 정념과 지혜가 요구된다.
우리 시대 비평의 과제는 그밖에도 더 많을 것이다. 요컨대 나는 비평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여전히 꿈꾸고 싶다. 비평이 사회 문화의 주요한 조감도나 나침반 역할을 담당하고, 인문 문화의 신경 중추가 되어 문화 대중들과 폭넓게 소통하는 꿈을 말이다. 의미심장한 문학 담론으로 한국과 세계의 문학/문화 지도를 역동적으로 바꾸어나갈 소망을, 비평의 이름으로 견지하고 싶다.
창작 텍스트를 추수하는 소박한 해설자를 넘어서서 비평으로 문학의 꿈을 새롭게 꾸고, 인문적 지혜의 벼리를 알게 하려는 역동적 기획을, 추구하고 싶다. 인문 문화의 전위가 되고, 인문 문화의 소통을 통해 문화 대중들과 위안과 행복의 감각을 교감할 수 있는 그런 담론의 공간으로서 비평의 자리를 모색하고 싶다. 그러니까 새로운 가능성을 탐문하는 도전으로서의 비평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12-9-18 / 우찬제 문학평론가
[절망의 인문학-6] 인문학의 스타가 된 사도 바울
기독교 성자 바울의 진짜 정체는?
네바 강을 건너는 사도 바울
'절망의 인문학'은 고약하다. 그것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장사가 안 된다는 우는 소리에서 시작해서 인문학 붐과 함께 웃는 표정을 지으며 물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확산의 길을 가고 있는 이 인문학은 어떤 인문학이며 사람들은 왜 그것을 원하는가? 이것은 혹시 조기 영어 교육, 웰빙, 헬스, 사교댄스 같은 삶의 보약 또는 더 고약하게는 기업가의 숨겨진 수익 창출 비결 같은 것인가? 그것은 뇌관이 제거된 인문학이 아니던가?
우리는 머리에 달린 심지에 불꽃을 매단 다이너마이트 같은 인문학자들을 기억한다. 소크라테스의 이름으로, 스피노자의 이름으로, 니체의 이름으로 출현한 이 폭약과도 같은 인문학은 사회에 통용되는 가치를 학습시키는 대신에 기존의 가치들의 어두운 얼굴을 드러내 그것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위험한 일에 손을 대는 인문학, 고유한 비판 정신으로 자신을 지켜 온 인문학이 무장 해제된 채 고작 '클리세이(cliche)의 전도사'로 나선다면 어떨까? 그 때 인문학은 아무리 널리 확산되더라도, 고약하게도 '절망의 인문학'이란 정당한 명칭으로 불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에 관심을 쏟는 일은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바울에 관한 책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느낄 당혹감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의 이름이 종종 교회, 도덕적 규율, 사회적 보수주의 등 그리스도교의 가장 제도적이고 가장 폐쇄적인 측면들과 결부되어 있어 한층 더 의심쩍은 이 '사도'가 왜 필요한 것일까?"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는 폐쇄적인 보수주의를 더 잘 익혀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정말 바울은 기존의 가치를 계속 통용시키려는 보수주의자였는가?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로 돌아가 보면 오히려 그는 자기 종교의 문을 닫고 새 종교를 창시하는 혁명을 완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인문학―만일 이 성자의 사상을 인문학의 하나로 편입시키는 불경이 허락된다면 잠시 이렇게 부르자―을 자기가 안락하게 몸담을 수도 있었을 공동체의 주도적인 가치에 봉사하도록 하지도 않았다.
투옥됐습니다.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파선을 당해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녔죠. 강도에게 위협을 당했고, 주리고 목마르고 추위에 헐벗었습니다.
'고린토 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이야기다. 바울의 저 초상화는 당대의 법과 가치를 수호하는 관료의 모습이 아니라, 한쪽 주머니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넣고 다른 쪽 주머니엔 브라우닝 권총을 집어넣은 채 네바 강을 건너던 또 한 사람의 사도, 레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구체적 일상을 혁명의 제물로 내주려는 계획
국내에서 몇 해 전부터 사도 바울에 관한 깊이 있는 현대 철학 연구서들이 번역 소개되면서 그의 혁신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늘 날 진보적인 철학적 사유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바울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서로 바디우의 <사도 바울 : 보편주의의 수립>(현상환 옮김, 새물결 펴냄), 조르조 아감벤의 <남겨진 시간 : 로마서에 관한 강의>(강승훈 옮김, 코나투스 펴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슬라보에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김정아 옮김, 길 펴냄) 역시 기독교 전반을 다루며 바울을 중요한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아울러 최근 국내 소개된 주목할 만한 강의록들이 바울을 다루고 있는데, 마르틴 하이데거의 <종교적 삶의 현상학>(김재철 옮김, 누멘 펴냄) 그리고 야콥 타우베스의 <바울의 정치 신학>(조효원 옮김, 그린비 펴냄)이 그것이다. 전자는 1920년과 21년에 걸친 프라이부르크 대학 겨울 학기의 강의록이고, 후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1987년 투병 중 행해진 강의를 정리한 것으로 강연 직후 사망한 타우베스의 유언과도 같다.
과연 사도 바울이 인문학의 영역에서 해방의 출구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을까? 아마도 한 가지 유명한 구절을 통해 사도 바울의 진보성의 핵심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십시오. (…)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Ⅰ 고린토' 7 : 29~31)
소명을 받았을 때 '마치 ~가 아닌 것처럼 살아라' 하는,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삶의 형식은 서구 사유의 역사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들어갔는가? 가령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의 참다운 의미를 잃고 있는 비본래적 상태로부터 본래적 실존으로 나아가고자 하면서, 본래적 실존을 이렇게 설명한다.
"본래적인 실존이라는 것도 추락해 있는 일상성 위를 떠다니는 어떤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실존론적으로 단지 이 일상의 변양된 장악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본래적 실존은 비본래적인 일상적 삶의 자리와 완전히 다른 것이기보다는, 이 일상적 삶은 다른 방식으로 장악하는 데서 성취된다. 바울 식으로 이야기하면, 비본래적인 일상적 삶을 비본래적이지 '않은 것처럼' 장악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치 ~아닌 것처럼'은, 객관적인 질서의 변화 없이 정신 안에서만 변혁을 이루는 안일한 보수주의로 얼핏 오해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이 주석하듯 "현세적 상태의 폐지(~아닌 것처럼 만드는 것)는 현세적 상태를 그 자체로부터 해방시켜 현세적 상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일상을 혁명에게 내어주는 일이다.
니체와 바울 : 서로 경쟁하는 두 파괴자
바울이 지닌 폭발력으로 인문학의 비판 정신을 다시 젊게 하려는 노력은, 니체의 해석으로부터 바울을 빼앗아 온다는, 나아가 니체의 선구자로 바울을 발견한다는 철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니체는 바울을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힘을 원한이나 가책으로 변질시키는 사제로 보고 자신의 최대 적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그러나 여러 철학자들이 즐겨 발견하듯 니체 안에는 바울이 있다. 바디우가 말하듯이 "니체는 바울의 적이라기보다는 경쟁자이다. 두 사람 모두 인류 역사의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동일한 염원, 인간은 극복될 수 있고 또 극복되어야 한다는 동일한 확신, 죄의식 및 율법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동일한 확실성을 공유하고 있다."
니체 저작의 중요 대목에서 우리는 바울에 대한 흥미로운 패러디를 만날 수 있다. 가령 니체는 자신이 영원회귀의 영감을 어떻게 받았는지 '위대한 정오'라는 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하나에서 둘로 /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지나갔다."
이렇게 갑작스런 영감을 받는 니체에게서 우리는 바울의 다마스쿠스 체험을 발견한다. 타우베스가 <바울의 정치 신학>에서 지적하듯 "니체가 자신의 경험을, 즉 영원회귀의 신화를 환각적 경험으로 해석했다는 사실, 더욱이 바울의 다마스쿠스 체험을 묘사할 때 썼던 바로 그 은유들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사실"과 우리는 맞닥뜨리는 것이다.
바울은 니체와 마찬가지로 긍정의 사상가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Ⅱ 고린토' 1 : 19)
또한 바울은 현행적인 가치들을 보호하는 도덕법들을 전복하려 했던 니체와 마찬가지로 율법을 해체하려 한 자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갈라디아' 3 : 13)
현재의 가치들 앞에서 니체가 망치를 들어 올렸다면, 바울은 당대의 율법 앞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전복'이 바울이 최근 인문학에게 갖추기를 호소하는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힘이다.
법의 폐지 또는 프루스트적 바울
니체가 이미 <아침놀>의 68절에서 세세히 분석하고 있는 바울의 주제가 있다. 비판 정신으로 무장한 현대 사상가들을 매료시키는 바울의 이 주제는 가치의 전복, 바로 '율법의 폐지'로써, 바디우와 아감벤 같은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기 위해 매달렸다. 바디우는 말한다.
"바울의 계획은 보편적인 구원론은 어떠한 법과도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도라는 사건은 본질적으로 단지 죽음의 제국일 뿐인 율법에 대한 폐지이다."
왜 율법의 폐지는 우리를 해방으로 인도할까? 바울은 쓰고 있다.
"율법에 비추어 보지 않고서는, 나는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에 '탐내지 말라' 하지 않았으면, 나는 탐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이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내 속에서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는 것입니다. 전에는 율법이 없어서 내가 살아 있었는데, 계명이 들어오니까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로마서' 7 : 7∼10)
욕망이 어떻게 부정적으로 법에 예속되는지 이보다 더 탁월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율법이 없었다면 욕망은 율법이 금지하는 대상과 연결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율법의 출현과 더불어 욕망은 율법이 금지하는 대상을 자신의 목표 지점으로 가지게 된다. 애초에 욕망과 특정 대상이 연결되어 있어서 법이 욕망에게 그 대상을 금지시킨 것이 아니라, 법의 금지 때문에 욕망이 그 금지의 대상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서 정체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율법이 욕망을 죄짓도록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구원은 무엇보다 기존의 법의 폐지를 통해서만 전망해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아감벤이 율법 비판과 관련하여 바울에게서 주목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시간관'이다. "모든 것은 메시아 안에서 반복된다"('에페소' 1 : 10)는 말이 알려주듯 바울의 시간이란 바로 '반복'의 시간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반복과 만회(Gjentagelse), 니체의 영원회귀, 하이데거의 반복(Wiederholung) 등 서구에서 출현한 빛나는 반복 사상들의 가장 앞자리에 오는 바울의 반복은 물론 계절의 순환 같은 자연의 반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어떤 반복인가?
바울은 말한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라는 계명이 있고 또 그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3 : 9∼10)
여기서 과거의 율법은 현재 메시아의 가르침인 '사랑' 속에서 '반복'된다. 사랑이라는 이 메시아적 현재 속에서 반복되면서 과거의 율법은 비로소 제대로 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반복은 아감벤이 말하는 것처럼 '즉결 심판(summary judgment)'이라 불리만 하다. 과거의 율법들이 '심판(judgment)'을 받아 사랑이라는 참다운 의미로 '요약(summary)'되니 말이다. 헤겔식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이는 율법의 '지양(aufheben)'인데, 지양은 철폐와 보존 두 가지 모두를 뜻한다. 과거의 율법을 '철폐'하고 그것을 사랑의 형태로 '성취'하는 일.
이러한 바울의 반복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근 활발히 새로 번역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르침을 참조해야 될 것이다. 바울의 반복이야말로 가장 프루스트적인 의미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일'이니까 말이다. 시간을 되찾는 프루스트의 작업은 한 마디로 무엇인가?
과거의 사건이 지닌 참다운 의미는 당시에는 몰랐다가, 지금 다시 기억해낼 때, 즉 지금 반복하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레오니 고모 집에서 맛보았던 마들렌과 홍차의 의미는 '그 당시엔 결코 알 수 없고 지금 다시 반복될 때에야 비로소 주어진다' 바울의 율법도 마찬가지다. 지금 메시아가 출현한 시간에 율법은 사랑이라는 형태로 반복됨으로써 참다운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지, 구약의 시대에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과거의 율법을 폐지해 역사를 두 동강이 내고 현재의 시대를 열건, 과거의 율법을 심판해 사랑이라는 메시아 시대의 의미를 얻어내건, 율법 철폐라는 바울의 작업은 인문적 정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 것인지 가르침을 열어준다. 그것은 절망, 무기력, 타성, 두려움이 발목을 잡을 때마다 망치를 꺼내들고 삶을, 그러므로 역사를 수리하라는 가르침이다.
2012-9-20 / 서동욱 서강대학교 교수
[절망의 인문학-7]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인문학을 파는 사기꾼을 고발한다!
철학과 학생 때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을 읽었다. "철학자가 촛불 앞에서 세계에 대해 꿈꿀 때는 모든 것을, 폭력이나 평화까지도 꿈꿀 수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접하고 촛불을 켰다. 왜? 모든 것을 꿈꿀 수 있다지 않은가. 그러나 폭력이나 평화의 꿈은커녕 꾸벅꾸벅 졸다가 속칭 개꿈만 꿨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철학자가 아니었고 세계에 대해 꿈꿀만한 지적(知的) 그릇도 아니었다.
내가 다닌 대학에 '결혼 준비 특강'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담당 교수는 외국인 신부(神父)였다. 이른바 캠퍼스 커플 학생들만 수강할 수 있다는 뜬소문에 빈정 상한 내 생각은 이러했다. '결혼 경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여우의 신포도였던 것. 그러나 그 강의는 학교 바깥에까지 소문이 퍼지며 큰 인기를 끌었고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촛불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내 모습은 <촛불의 미학>이라는 텍스트와 상관하다가 '촛불'이라는 대상으로 넘어가버린 희극 또는 비극의 한 장면이다. 세상 모든 게 텍스트, 그러니까 '촛불'도 텍스트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인문'학'의 활동 무대와 대상은 말과 글, 즉 언어 텍스트다. 인문학은 직접 대상과 상관하기보다는 텍스트와 상관하는 일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결혼 준비 특강'을 한 신부 교수는 다년간 부부들을 상담하며 결혼 생활에 관해 경청했다. 결혼에 관한 폭넓은 자료 텍스트를 섭렵했다. 결혼 생활은 결혼의 인문학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지만, 결혼에 관한 텍스트는 필요조건이다. 텍스트 기반 없이 자신의 결혼 경험을 쓰고 말해본들 학(學)에 도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인문(人文)을 글자 그대로 '사람의 무늬'라고도 한다. 그러니 인문학을 인생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시도하는 것)이라 보기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생에 대한 물음과 해답이지만 어디까지나 인생에 관한 텍스트를 붙잡아야 한다. 문학 텍스트, 역사 텍스트, 철학 텍스트 그러니까 문사철(文史哲)이란 '문사철 텍스트'의 줄임말이다. 인문은 '사람과 텍스트' 또는 '인생과 텍스트'다.
그렇다면 텍스트를 가지고 뭘 할까? 텍스트를 가지고 인문학이 무엇인지,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되묻는 게 인문학의 가장 인문학다운 일이다. 텍스트 없는 물음은 맹목이고 물음 없는 텍스트는 공허하다. 배움과 생각 중 하나라도 소홀하면 아니 된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했다. 배움이란 텍스트를 배우는 것이다. 생각이란 텍스트에 질문을 던져 텍스트의 얼개를 맞춰보고 뜻을 풀이하는 가운데 피어오른다. 텍스트와 생각의 관계는 이웃하여 서로 따르며 함께 가는 사이, 서로 수반(隨伴)하며 변증하는 사이다. 인문학은 사람과 텍스트(人文) 사이에서 사람에 관해 묻고(人問) 사람의 말을 경청(人聞)한다.
철학을 예로 들자면, 철학의 역사는 철학 텍스트를 바탕으로 철학이 뭔지 묻고 답하며 논해온 역사, 자기가 하는 일을 되물어 온 역사다. 칸트는 짜임새가 탄탄하고 자리가 넓은 비판 철학 체계를 세우며 '철학의 혁명가'가 되었다. 그 혁명의 시작은 그 때까지 이루어진 철학적 성과를 뿌리부터 비판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일이었다. 세계를 해석하는 철학에서 세계를 변혁시키는 철학으로 철학의 사명을 바꾸려 한 마르크스, 철학의 전체 역사를 언어의 미망(迷妄)이라 일갈하며 언어 분석의 죽비를 내린 비트겐슈타인도 예가 되겠다.
인문학을 되묻는 책들, 인문을 앞세우는 책들이 적지 않다. 먼저 인문을 앞세우는 책들 가운데 정진홍의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공병호의 <고전 강독>,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 고전 독서법'을 표방하는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속의 책들은 인문학이 아니다. 그런 책들에서 인문 텍스트들은 자기 계발 주체의 상품 가치를 제고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의 수단이며 인문이라는 말도 상표로 나부낄 뿐이다. 그런 책들과 저자들이 각광받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 시의적절한 인문학적 성찰의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문의 상략적(商略的) 활용 현상에 대한 인문적 성찰' 정도 제목이면 좋을 듯하다.
대략 2010년을 기점으로 제목에 '인문학으로~', '인문학~' 등이 붙은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어떤 주제든 '인문' 또는 '인문학'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시류(時流)가 사뭇 강하다. 광고도 인문학으로 해야 하고(<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마흔 살에는 인문학을 만나야 하며(<마흔, 인문학을 만나라>), 2, 30대에는 인문학으로 스펙을 다져야 하고(<인문학으로 스펙하라>) 주식 투자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며(<인문학, 주식 시장을 이기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자 반열에 올랐다(<CEO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자 스티브 잡스를 말하다>). '도서 제목 인문 트렌드의 현실과 배경 그리고 문제점' 정도의 언론 대학원 석사 논문 하나 쯤 나와도 되겠다.
거슬러 올라가보자. 단적으로 말해서 인문학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의 의미 있는 발제들 가운데 1번 타자로 나는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통나무 펴냄, 1986년)를 꼽고 싶다. (민음사판이 먼저 나왔으나 판매 추이와 저자 인지도 확산 계기 측면에서 통나무판을 '사실상 초판'으로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모두 여섯 부분으로 이뤄진 이 책에서 '첫째 글, 우리는 동양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와 '둘째 글, 번역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은 제도로서의 동양학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동양학이라는 것의 의미, 동양학 방법론 등을 고전 번역이라는 주제 축을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용과 논지 그리고 문장의 결기 측면에서도 김용옥은 긍정적인 의미의 폭로자(muckraker, debunker)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책이 큰 인기를 끌면서 김용옥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제도권 학계와 멀어져 일종의 '브나로드 지식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로 김용옥을 '지적(知的) 엔터테이너'라 지목하지만, 인문학 고전 텍스트 번역의 중요성과 의미, 방법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방향을 제시했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나는 그를 내내 인문학자라 부를 것이다.
인문학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의 2번 타자는 김영민의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민음사 펴냄, 1996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문학을 둘러 싼 제도와 관행의 문제점, 인문학자들의 정체성과 자의식, 글쓰기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문제 상황과 실천 방향까지 두루 비판적으로 되새기며 '인문학 현장 비평'의 보기 드문 한 사례가 되었다. 그 현장성의 증좌 하나는 김영민이 먼 바다 건너 긴 세월 건너 사람들보다 바로 지금 여기 사람들의 글과 말을 따져 묻는다는 점이다.
김영민은 철학과 문학 그리고 일상을 버무린 일련의 에세이('수필 문학'으로서의 에세이가 아닌)를 다작하며 표현으로서의 철학(매체로서의 메시지와 유비시킬 수 있다)과 철학으로서의 표현을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저서 대부분에 인문학 담론이 스며있지만 역시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가 본격적이고 분명한 인문학 담론이다. 특히 그의 '기지촌 지식인'과 '논문 중심주의'라는 말은 그 비판의 내용과 함께 인문학, 아카데미즘, 지식인에 관한 뜻 깊은 술어가 됐다.
김영민의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조동일의 <인문 학문의 사명>(인문학 연구 총서 1, 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 1997년)은 국문학사 연구자로서 조동일이 역설해왔던 인문학의 세계사적 보편성 문제를 중심으로 학문의 위기 진단, 학문 연구의 실제 상황, 인문 학문의 위상 설정, 한국 학문과 세계 학문 등을 다룬다. 비(非)유럽 문명권에서 근대 이전에 발전시켜 온 인문학의 능력을 되살려 동과 서는 물론 인문학 내부의 다양한 분과를 회통시키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조동일의 지론이다. 이렇게 볼 때 다분히 거시적인 학문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김영민과 조동일의 저서에 뒤이어 1998년에 번역되어 나온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펴냄)는 몇 단락을 제대로 읽어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오역(誤譯)과 비문(非文)으로 독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번역된 책이었다는 점에서, 인문학에 대한 공적(公的) 지원의 현실과 의미를 반성케 하는 뜻밖의 공효(功效)를 발휘했다. 다행히 이 책은 같은 제목으로 다른 번역자가 제대로 번역하여 다른 출판사에서 2011년에 출간됐다(이은정 옮김, 동녘 펴냄).
카우프만은 이 책에서 1970년대 미국 대학 인문학계가 처한 위기, 즉 인문학 연구자의 구직난과 프로젝트 지원 중심의 연구 경향을 진단, 비판하면서 인문학자를 그 기본 자세에 따라 저널리스트형, 사변가형, 소크라테스형 등으로 나누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인문학자들 대다수가 협소한 전공 분야만 파고드는 사변가형이 되었으며, 시대의 신념과 기성 가치관을 문제 삼는 소크라테스형은 찾기 힘들어졌다고 지적한다. 고전 텍스트에 대한 불충실을 주요 근거로 한나 아렌트를 '저널리스트형'으로 지목하여 비판하는 것에서, 카우프만이 '텍스트 엄숙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카우프만은 인문학자들의 에토스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2011년에 나온 <불온한 인문학>(최진석·문화·정정훈·이진경·손기태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과 루돌프 파이퍼의 <인문 정신의 역사>(정기문 옮김, 길 펴냄)는 인문학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의 극히 다른 두 가지 모습이다. <인문 정신의 역사>는 원제 "History of Classical Scholarship From 1300 To 1850"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 고전 문헌학의 역사다. 텍스트를 매개로 던지는 인간에 대한 질문, 텍스트를 바탕으로 인문학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번역서 제목은 결코 기만이 아니라 오히려 적확하다.
20세기 최고의 서양 고전 문헌학자로 일컬어지는 루돌프 파이퍼의 역작이라는 사실은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확' 다가온다. 명불허전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책에 실린 고전학자 안재원의 해제, '서양 인문학의 전통과 그 수용 과정'이다. 동아시아가 서양 고전을 수용하는 과정, 동아시아 고전을 서양이 수용하는 과정에 대한 개괄과 함께 향후 연구 과제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편, 지식 담론 소비 시장과 출판계에서 제법 유력한 브랜드인 '수유+너머'가 '따로 또 같이' 성찰한 결과라 할 수 있는 <불온한 인문학>은 거칠게 말하면 '인문학의 정치사회적 올바름, 정치사회적 올바름의 인문학'을 논한다. "인문학과 싸우는 인문학"이라는 부제목이 사뭇 중의적이다. 인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지만 사실은 허울로서의 미명(美名)뿐인 '이른바 인문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고, 현실과 인문학의 거리를 가늠하며 인문학의 정체성을 되물은 기록이기도 하다.
"이제 행복과 희망의 인문학, 화해와 위로의 인문학을 넘어서 불편하고 낯선 반(反)인문학을 말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반인문학, 또는 인문학에 저항하는 인문학.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불편함과 낯섦을 창출하는 힘이며, 그 힘을 우리는 불온하다고 부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산해야 할 인문학의 존재 양태, 어떤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응답은 바로 순응하지 않는 인문학, 즉 불온한 인문학에서 찾아져야 한다." ('2장, 인문학에 저항하는 불온한 사유를 시작하다')
양피지로 필사본으로 초기 인쇄본으로 유구하게 전해 내려오는 고전 텍스트에 대한 고도로 전문적인 연구의 역사. 바로 여기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인문학화하고 인문학을 현실화하기 위한 현실 밀착형 성찰의 기록. 여기에 한 권만 더하자. '인문학 파르티잔' 강유원이 기울여 온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할 '미국 대학 교양 교육 핵심 과정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 안내' <인문학 스터디>(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 라티오 펴냄, 2009년).
사뭇 긴 부제목이 내용 성격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이 책은 전문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의 '인문학 텍스트 자율 학습' 의욕과 노력을 돕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달달한 인공 첨가물이 잔뜩 버무려진 채 훌쩍 삼켜도 목 넘김이 좋은 소프트 인문학 세트 메뉴에 대한 요구가 다수인 가운데, 단단한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수습해 깨물어 잘 씹어야 하는 인문학 천연 견과류에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도 소수지만 분명 있다는 사실. 의미가 심장한 이 사실에 부응하는 책이다.
정리해 보자. 인문학 제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자 인문학 방법론으로 각각 고전 번역, 글쓰기, 학문 보편성을 핵심 주제로 하는 김용옥, 김영민, 조동일의 저서들이 있다. 각각 인문학자의 정체성, 지금 여기의 인문학 현실과 방향, 고전학으로서의 인문학과 인문 정신, 그리고 인문학 자율 학습을 다룬 카우프만, 수유+너머, 파이퍼, 강유원의 책들이 있다. 그밖에 '인문학에 관한 인문학' 냄새가 나는 책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연구 프로젝트 지원에 따라 대학에서 생산된 '프로젝트 최종 결과물 보고용'이다. 물적 토대를 지원해주는 갑(甲)과 지원받는 을(乙) 사이에서 철저하고 절실한 되물음이 이뤄지는 일은 매우 드물다.
나는 지금까지 거론한 몇몇 책들이 '인문학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라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인문학 3대 의무론에 반대한다. 인문학은 반드시 알기 쉽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인문학의 소통 의무. 인문학은 반드시 공적(公的)으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인문학에 대한 보호 의무. 인문학은 다른 분야에서 토대 구실을 하거나 써먹을 수 있고 또 꼭 그래야 한다는 인문학의 유용성 의무. 알기 쉽지 않고 보호 육성되지 않으며 어디다 써먹기도 힘든 인문학을 도대체 왜 공부할까?
비평가 김현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문학' 앞에 글자 '인'(人) 하나를 더해 바꿔본다.
"유용함은 인간을 억압한다. 인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쓸모 없는 인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다."
이것이 대답으로 충분하지 않다면(아마 그럴 것인데), 다시 묻고 경청하며 텍스트를 조회할 도리밖에 없다. 인문학은 무엇이며, 왜 공부하는가? 이 화두에 대한 돈오(頓悟)는 없으며 점수(漸修)만 가능하다.
2012-9-25 / 표정훈 출판평론가·한양대학교 교수
[절망의 인문학-8] 사회과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악취 나는 인문학, 쪼그라든 사회과학 따라 하기?
"인문학의 시대"를 사는 사회과학자로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반가움, 질투심, 열패감, 기시감이 엉킨다. '닥치고 무엇' 따위에 휘둘리지 말라는 조언이 반갑지만, 사회과학이 아닌 다른 것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부럽다. 사회과학이 '시대정신'을 읽지도, 시대의 키워드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열패감이 생기고, 무엇보다 기시감을 느낀다.
내 대학 동기 중에 멋쟁이가 있었다. 당시 파격적이던 파마머리에 범상치 않은 더블재킷을 소화해내던 그 친구가 애용하던 아이템은 책이었다. 불심검문에 걸리지는 않을 정도의, 그러나 '의식'을 보여주는 한두 권의 사회과학 도서들, 그것으로 자신의 매력을 완성하였다. 과거 '사회과학의 시대'에는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가 인기가 높았다. 매력은 외모와 돈만이 아니라 의식과 사상으로도 표현되어야만 했다.
오늘날 인문학의 열풍에서 내가 느끼는 기시감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사회과학의 자리를 이어받은 인문학의 겉모습이 돈과 결합하는 모습!
사회과학의 시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 사회과학의 부침을 돌이켜 보면 새로운 시대, 즉 인문학 열풍의 사회적 맥락을 따지는 데 유용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인문학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에 비해 사회과학의 그것은 짧고 초라하다. 그러나 대선배를 감히 가르칠 수 있는 이유는 사회과학의 태생적 특성과 압축적 경험 때문이다. 그것에서 현재 열풍을 겪는 인문학에게 제공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을 추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더불어 사회과학의 전략도 챙겨보려 한다.
먼저 밝힐 점은 사회과학에는 다양한 분과들이 속해 있다는 것이다. 모두 고려할 수는 없는 노릇, 해서 나는 사회학의 출생만을 염두에 둘 것이다. 친숙한 사안이기에 다루기 쉽고, 그럼에도 비교 대상인 인문학과 자연과학과는 구별되는 사회과학의 특성적 차이(differentia specifica)를 또렷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회학의 출생 시기는 대략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당시 두 세력이 지식 세계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다. 한 쪽엔 지식 세계의 전통적 귀족인 인문학적 지식인들이, 다른 한 쪽엔 젊지만 힘센 신흥 세력인 자연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포진했다. 양 세력의 가장 큰 차이는 세계를 보는 관점이었다.
전통적 귀족들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하는 세계에 두려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세계는 몰락하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삶이 풍요해지는 만큼, 정신세계는 더 빈곤해졌고 전통은 파괴되었다. 인간과 정신과 전통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원흉은 자연과학과 기술이다. 인문학적 지식인들의 고민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고삐를 만드는 데 있었다.
신흥 강자들은 '이미 와 있는 그러나 아직 널리 펴져 있지 않은' 미래를 '지금 여기'에서 실현하고자 조바심을 냈다. 세계의 발전은 '법칙적'으로 명백하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결과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임이 분명하다. 이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번영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과거의 세력이 방해한다. 신흥 강자의 고민은 새로운 세계의 실현을 방해하는 자들을 추방하는 데 있었다.
두 세력이 언제나 격전을 치르는 것은 아니었다. 두 세력의 반목을 "두 문화", 즉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립으로 묘사한 C. P. 스노는 양 세력 사이에 거대한 바다가 있다고 말했다. 넓고 넒은 바다에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아직은 제도화되지도 체계화되지도 못한 사회학은 바다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바다라서 힘들지만 양 편을 모두 살피면서 배울 수 있었던 사회학은 사회라는 전혀 새로운 대상을 가지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나름의 방식으로 조합하려는 꿍꿍이를 꾸몄다.
사회학의 눈에 인문학은 인간과 역사를 대상으로 "삶의 정향(定向, Lebensorientierung)", 곧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필요한 지식, 좌표를 정하고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밝혀주는 지식, 즉 정향지(定向知) 생산에 주력한다. 자연과학은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는 기술적, 공학적 지식 생산에 전념한다. 두 문화와 다른 세 번째 문화를 세우려는 사회학은 사회 문제 해결에 필요한 공학적 지식은 물론이고, 정향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요컨대, 사회학은 자신이 삶과 세계의 의미를 제공하는 사회 공학이기를 기대했다.
앞서 말한 바처럼 두 문화가 대륙에 진영을 구축했다면, 세 번째 문화인 사회학은 바다에 둥지를 틀었다. 태풍이 몰아치면 바다는 위험하다. 그럴 때는 기상 조건이 더 나은 대륙 한 편에 잠시 피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학은 상황에 따라 진자(振子) 운동을 한다.
제도화가 시작된 당시에도 사회학은 이미 진자 운동을 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학이 자연과학의 모델에 기대어 나름의 길을 모색했다면, 독일의 사회학은 인문학에 근접한 곳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꾀했다. 이는 사회적 수요와 동맹의 문제다. 신흥 세력과 함께 전통적 귀족에 대항하는 것이 유리하고 과학적 특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높을 경우에는 첫 번째 전략을, 전통적 귀족과 동맹을 맺는 것이 유리하며 정향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을 때는 두 번째 전략을 선택했다.
사회학의 출생 과정에서 포착할 수 있는 사회과학의 특성적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두 문화와 구별되는 사회과학의 과업은 정향지와 공학적 지식의 '연금술적' 결합이다. 둘째, 하지만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기반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양 측을 오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10년 이상의 시차가 있지만 한국과 서구에서 있었던 사회과학의 전성기는 첫 번째 특성적 차이가 빛을 발한 때다. 1960년대와 70년대 서구의 국가들은 사회 공학적인 지식을 크게 필요로 했다. 미국은 냉전 체제의 중심축으로서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또 성장을 위해 더 발전적이고 안정적인 사회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서유럽의 국가들은 전쟁의 폐허를 물질적이며 제도적으로 재건해야만 했다. 특히 미국과 소비에트에 비해서 낙후된 정치, 교육, 사회 제도 전반의 리모델링이 절실했다. 물론 사회과학이 각광을 받은 이유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는 풍족해졌고 제도는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특히 대학생들과 젊은 노동자들은 물질적 번영과 안정 이상의 것을 원했다. 자신들을 옭죄는 권력과 권위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현실 이상의 것, 해방을 원했다. 사회과학은 이 욕구를 채워 줄 수 있었다. 모든 과거의 소원을 실현한 듯 보이는 현실이 실은 조작임을 폭로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권력과 권위의 비밀도 폭로했다. 결정적으로 새롭고 해방되고 자유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아쉽게도 사회과학이 제공한 두 지식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다른 두 문화와의 동맹 없이도 홀로 꿋꿋이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1980년대 한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권위적 국가는 경제적 성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사회 공학적 기술들이 필요했다. 정향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커졌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많은 이들은 자신과 사회의 좌표를 세우고 정하는 데 쓸 수 있는 지식들을 필요로 했으며, 사회과학은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전성기를 경험한 한국의 사회과학은 1990년대에 갑작스레 쇠락한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의 모델에 기대는 정도, 즉 과학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은 사회과학의 두 번째 특성적 차이인 진자 운동의 모습이다. 사회과학이 과학으로 방향을 튼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회과학이 제공하던 정향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적 정향지의 현실태인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그것의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사회과학이 제공할 수 없는 새로운 정향지에 대한 요구들이 커졌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일종의 문화적 자유주의라 말할 수 있는 이 요구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권위주의와 공동체 압력에 대한 개인들의 반발이었다. '이제 내 뜻대로, 내 멋대로 살고 싶다!'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후에 환상임이 밝혀질 자부심은 소비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소비주의적 개인과 그것의 '더미'에 불과한 사회를 완성했다. 내 삶의 의미는 오로지 소비로만 답할 수 있다.
소비, 육체, 쾌락 이외의 정향지를 필요치 않은 사회에서 사회과학은 사회 공학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 문제는 잘게 쪼개지고, 연구 방법은 과학적 엄밀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어야만 했고, 연구 결과는 숫자와 수식과 통계로서 표현되어야 했다.
1997년에 이미 시작한 21세기는 생존주의(김홍중)와 자기 계발(서동진)의 시대였다. 이제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만 했다. 아무리 생존이 어렵더라도 이미 자유와 소비에 세례를 받은 터라, 과거의 '규율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비록 생존을 위해 가혹한 규율, 즉 자기 계발을 선택하는 도리밖에 없었지만, 그 선택은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것이거나 그처럼 보이는 것이어야만 했다.
이 시기에 사회과학 내부의 분과적 균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제도화된다. 경제학과 경영학 그리고 심리학은 '기타 사회과학'과 완전히 결별한다. 경영학은 자기 계발을 정향지로 삼고 현실적 문제 해결(취업)을 위한 최고의 '생존' 공학이 된다. 경제학은 가장 과학적인 '수학' 공학으로서 위용을 뽐내고, 더 나아가 비용과 편익 계산만이 유일한 삶의 좌표임을 설파하는 정향지를 사회에 유포한다.
심리학은 의학과 연계하여 새롭게 태어난다. 심리학은 위의 두 학문과의 차별화 전략으로서 '의학' 공학이기를 원했다. 그렇게 심리학은 생존 경쟁에 지쳐 질병에 시달리는 개인들을 '치료'하고자 한다. 심리학은 또한 '시대에 걸맞은' 정향지 제공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삶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문제는 당신 안에 있다!'
사회 공학이라는 한 쪽 날개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회과학은 세 학문의 분가로 더 옹색해 졌다. 특히 세 학문의 상품들이 정향지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는 바람에, 사회과학은 그곳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과학은 더 과학적으로 되었다. 사회적 사안에 대한 관심은 '과학적' 연구와 교육을 방해할 뿐이다. 이렇게 사회과학자들은 대학에, 연구소에 칩거하였다.
언제나 그렇듯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 반골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21세기가 시작하고 10년가량 지난 현재, 정향지를 수공업적으로 생산하는 반골들의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인문학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생존주의와 자기 계발의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사회가 강요하는 정향지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사는 이유가 정말 성공밖에 없는 걸까? 죽도록 자기 계발한다고 내 삶이 나아지기나 할까? 세상은 왜 이리도 정의롭지 못한 걸까? 왜 그런 것들이 문제조차 될 수 없는 거지? 대체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인문학에 관심이 뜨거워진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기존의 정향지에 환멸을 느끼고 대안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대중의 거세진 요구 때문이다.
현재 인문학 열풍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사회과학이 등장하던 시기와 사뭇 달라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모습이다. 후자의 위세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문학의 위세는 이제 보잘 것 없다. 자연과학의 강해진 힘은 인문학의 과거 영토를 정복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자연과학은 이제 기술적이며 공학적인 영역을 넘어 정향지의 영역마저 점령할 태세다. 종교에 대한 최근의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과학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에 간섭한다.
인문학은 애초의 세력권인 정향지 영역에서 반격에 착수했고, 놀랍게도 사회 공학적 영역에서도 활발히 활동을 시작했다('희망의 인문학'). 수많은 "인문학 행상인"들이(표정훈)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정신"(서동진)에 부합하는 '인문' 공학적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서 사회과학에서 분가한 세 학문과의 향기, 혹은 악취가 난다. 생존, 수학, 의학 공학과 새로운 자본주의의 입맛에 딱 맞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정향지를 인문학은 '섹시'하게 치장하고 포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사회과학은 이제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과거의 사회(과)학의 창설자들이 기대했던 것, 즉 사회 공학과 정향지 생산을 결합하는 것이다. 결합이 힘들다면, 두 가지 사회적 요구를 분업으로 응하면 될 것이다.
분업은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회과학 내부의 분업이다. 감히 판단컨대, 사회 공학의 요구에 더 부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적 지식을 이미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당장 보완이 필요한 것은 정향지 생산이다. 둘째, 인문학과의 분업이다. 과제가 너무 막중하기에, 또 경쟁자들이 너무 강하기에, 사회과학이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분업에 기초한 인문학과의 동맹도 생각해 봄직한 옵션이다.
2012-10-11 / 전상진 서강대학교 교수
[절망의 인문학-9] 심리학은 뇌 과학에 자리를 내어 주나?
"할아버지는 친모를 죽인 사이코패스! 나도 혹시?"
심리학보다는 뇌 과학이라는 외계인
나는 꿈에서 외계인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날 화제 거리는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빨간색 외계인은 마음의 위치가 '배'라고 주장했다.
"아니 왜요?"
놀란 나는 신분도 망각한 채 다른 외계인보다도 먼저 물었다. 빨간색 외계인은 짐짓 여유를 부리며 대답했다.
"인간들은 공복일 때는 만사에 예민해지고 포만감을 느낄 때는 만사태평입니다. 그리고 배에 청진기를 대고 들어보면 일정한 패턴이 없이 계속 이상한 소리가 나지요. 그런 것으로 봐서 복잡한 인간의 마음은 배에 있습니다."
주변의 외계인들이 의심스러운 눈짓을 보내자 빨간색 외계인은 1970년대 심리학 책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 책에는 윌리엄 셸던과 에른스트 크레치머 등의 체형과 심리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소개되어 있었다. 비만한 사람은 온화하고 사교적인 반면에, 마른 사람은 예민하고 내성적이며, 근육질의 사람은 강인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외계인들은 즉각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자신들이 잡아서 관찰한 지구인들을 보면 체형 심리학 이론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어느 외계인은 마른 체형으로 외향적이고 재기발랄한 코미디언이 많아서 아예 자신은 마른 지구인을 먼저 잡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혹시 나까지 잡아갈까 싶어 몸을 사리는 사이에 파란 외계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 낡은 심리학은 이제 버려야 해요. 요즘은 뇌 과학의 시대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뇌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뇌를 연구하면 곧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거추장스럽게 심리학 연구 방법이나 이론을 끼워서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파란 외계인은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이 1994년에 내놓은 저서 <놀라운 가설(The Astonishing Hypothesis)>에서 한 말을 인용했다.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 의지는 사실 신경 세포와 그 관련 분자들의 거대한 집합체의 행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파란 외계인은 기원전 4세기 히포크라테스도 이미 뇌가 인간의 정신 기능을 담당한다고 알고 있었으며, 고대 철학자 플라톤도 최고의 덕목인 지혜의 위치를 머리(뇌)로 비유할 만큼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으니 새삼스럽게 요란을 떨 것 없는 당연한 결론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1848년 미국 버몬트 철도 공사의 현장 감독으로 일하다 사고로 쇠막대기가 뇌의 전두엽 부분을 관통해서 성격도 변한 피니스 게이지와 같은 사람들의 사례도 줄줄 읊었다. 평생 "Tan"이라는 말만 했던 실어증 환자의 뇌를 부검해서 왼쪽 뇌 전두엽 부분이 언어능력과 관련 있음을 밝혀낸 폴 브로카의 연구를 시작으로 뇌의 각 부위가 각각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인간의 뇌에는 최소 1000억 개에서 1조 개의 뉴런이 있으며, 1초당 뇌에서 만들어지는 신호는 1년간 전 세계 국제 통화의 단어 수보다 1000배 더 많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인간의 복잡한 마음은 곧 뇌의 활동으로 환원시켜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파란 외계인이 줄기차게 쏟아내는 숫자와 예시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파란 외계인은 '심부 자극술'과 관련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뇌에 심어 놓은 신경 조정 장치로 전기 자극을 줘서 도파민을 활성화시켜 파킨스 병에 걸린 환자의 떨림을 억제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다음에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여성은 전두엽에 심부 자극 시술을 받아서 우울한 마음이 들 때마다 자신의 손으로 버튼을 눌러 전두엽을 자극하는 장면이 나왔다. 파란 외계인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연구한 이후 우울증 치료에 기나긴 정신 분석 상담이 필요함을 주장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뇌에서 우울증과 관련된 패턴이 보이면 곧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어요. 가설적인 개념인 내면 아이(inner child)를 발견해서 상처를 치유하느라 시간을 들일 필요나 인지 행동 수정 등 다양한 상담 훈련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지금 보신 장면처럼 뇌를 직접 진단 및 제어하면 됩니다."
여태까지 파란 외계인의 말에 수긍하며 신기해했지만, 우울증 사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나도 모르게 발끈하며 몸을 드러냈다.
"그게 말이 되나요?"
뇌와 마음의 관계
뇌 과학의 발전과 일반 대중의 관심 증가로 언론에서도 뇌 과학 연구 소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덕분에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 후두엽, 시상하부, 해마 등의 뇌 부위와 PET, fMRI, ERP, MEG, SPECT 등의 진단 도구와 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많아졌다. 그러나 뇌 과학 연구와 용어가 많이 퍼질수록 뇌와 마음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기보다는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는 양상이다. 학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자 중에는 새로운 뇌 과학 연구 방법으로 심리학을 포함한 기존 학문의 이론을 검증해서 심리 현상을 곧 뇌의 활동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려는 뇌 결정론자가 있다. 프랜시스 크릭, 라마찬드란, 패트리샤 처칠랜드 등 대중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신경 과학자들이 대부분 이에 속한다.
이들은 심리 과정이 곧 뇌 과정이며, 마음의 물리적 기반인 뇌와 신체 기관 신경계의 구조와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해 없이는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론을 만들 수 없음을 주장한다. 그래서 때로는 기존의 심리학은 틀린 이론이거나 적어도 더 이상 필요 없으며, 뇌 과학으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뇌 결정론자들은 때로는 뇌의 특정 요소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는 주장을 과감하게 펼치기도 한다. 마르코 야코보니는 저서 <미러링 피플>에서 거울 뉴런(mirror neurons) 덕분에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다며 역사적 사례를 모두 거울 뉴런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다양한 학문이 여러 변인이 작용하여 만들어낸 변화라고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것을 그는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 소량 존재하는 신경 세포의 작용으로 설명한 것이다. 다른 뇌 결정론자가 쓴 대중서나 연구에 대한 언론 보도도 신경 세포나 부위, 신경 전달 물질 등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러한 과감한 주장의 태도는 동일하다.
한편, 뇌 과학이 심리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보다 우위를 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마음에 대한 이해를 위한 협력의 대상임을 강조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마이클 가자니가와 브루스 후드 등이다. 그런데 이들이 무조건 다른 분야에 대해서 수용적인 것은 아니다. 혈액형이나 체형과 심리의 관계를 논하는 심리학과 같이 일반적 직관에 의존한 통속 심리학(folk psychology)는 몰아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강성의 뇌 결정론자의 주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모든 심적 활동이 뇌에 의해서 결정이 되고, 모든 것을 뇌의 작용으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뇌 결정론자와는 큰 차이가 있다. 마이클 가자니가의 저서 <뇌로부터의 자유>(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에 나오는 "자유 의지와 책임은 개인의 뇌 자체가 아니라 둘 이상의 뇌가 상호 작용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창발된다"는 주장은 이러한 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미국의 신경 과학자 짐 팰런은 사이코패스 살인자들의 뇌를 연구하던 중 그들의 뇌에서 안와피질의 활동이 결여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와피질과 극악한 범죄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전 팰런은 자신의 뇌와 살인자들의 뇌를 비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의 뇌가 살인자의 뇌와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뇌 결정론에 따르면 살인자가 되었어야 하는 운명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가계의 역사를 살펴보니 실제로 조상 중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도 있었다. 그는 바로 미국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모친 살해범이었으며, 다른 조상 중에서도 일곱 명의 살인자가 더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제공한 좋은 양육 환경과 자신의 노력으로 살인자가 되지 않고 명석한 신경 과학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뇌의 역할보다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이후에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뇌 결정론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에게도 팰런이나 가자니가와 같은 두 번째 부류의 학자들처럼 뇌를 넘어선 변인을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들은 실험실의 뇌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학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인문학적 성찰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자를 고르는 것처럼 세심하게 취사선택해서 껴안으려 한다.
이 밖에도 여러 부류의 학자들이 뇌 과학에 대해서 각기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목소리를 높여 떠드는 사람이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실제보다 더 많고 주도권을 가진 것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 본의 아니게 오도되지 않으려면 현재의 뇌 과학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영국 워릭 대학교 지안펭 펭 팀의 2011년 연구의 경우 우울증 환자와 일반인의 뇌를 fMRI(기능성 자기 공명 장치)로 찍어 비교해서 우울증 환자가 분노 표출과 관련된 신경 회로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은 것을 밝혀냈다.
이와 다르게 국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창준 팀은 2012년 9월 우울증에 대한 놀라운 연구를 발표했다. 그 동안 뇌 과학자가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뇌 신경 세포가 아닌 비신경 세포를 연구한 결과, 비신경 세포가 직접 신경 전달 물질을 뿜어내 신호 전달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즉, 신경 전달 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TREK1(트렉1)이라는 통로를 빠르게 지나서 분비되면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 결과를 읽은 독자는 사람의 뇌를 머리에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창준 팀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쥐를 거꾸로 매달아 처음에는 벗어나려 아등바등 대다가 결국 포기할 때까지 우울증을 유발시킨 다음에 쥐의 뇌를 관찰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다른 생물과 동일하게 세포로 이뤄져 있고, 세포는 동일한 물리학 법칙의 지배를 받으니 인간 뇌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쥐의 뇌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조작한 것이 정말로 인간이 처한 사회적 환경 속의 우울증과 본질적으로 맞아떨어지는가와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 증가를 곧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내 꿈에서 나온 파란 외계인이 '심부 자극술'을 설명하면서 보여준 동영상의 주인공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자. 만약 그녀가 아버지의 폭력과 엄마의 히스테리에 지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나 기대가 없으며, 굳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가지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다가 결국 만성적인 우울증에 빠져 들었다면 그녀의 우울증의 원인을 설명하는 적절한 변인이 어릴 적의 심리적 상처일까, 아니면 현재 그녀의 전두엽의 패턴일까? 우리는 간단하고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는 뇌에 마음을 빼앗겨 정말 봐야 하는 것에는 점점 눈을 감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일찍이 100년 전 유럽 중심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로 마음과 환경의 본질을 명백히 말했지만, 최첨단의 기술로 무장한 일부 뇌 결정론자들은 일부 뇌의 요소의 합으로 전체 마음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뇌 결정론자의 주장은 사진기의 부품으로 사진의 예술적 가치 전체를 논하려는 잘못을 연상시킨다.
경박한 뇌 과학보다는 진중한 심리학을 선택하는 지구인
심리학이 뇌 과학에 자리를 내어주려면 우선 뇌 과학이 월등하게 과학적인 가치를 가져야 한다. 현재 뇌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뇌의 신비를 정확히 추적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연구 간에 상충되는 결론이 혼재하는 등 안정화된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도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렇다고 심리학이 온전히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도 빨간 외계인이 빠진 것과 같은 통속 심리학에서 벗어나, 마음의 비밀을 찾을 수 있는 과학적 객관성과 엄밀함, 명확성을 꼭 갖춰야 한다. 그래야 심리학은 마음의 비밀을 밝히는 학문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사이비 과학으로 몰려서 내준 자리가 좌뇌 학습법, 우뇌 학습법, 전두엽 촉진법과 같은 단어를 쓰도록 놔두는 경박한 학문이라면 더 땅을 치고 후회해야 할 일이다.
학자는 과학적 태도를 가져야 하겠지만, 대중도 노력이 필요하다. 아주 구체적인 숫자와 데이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과 믿음을 전파하는 경우가 많은 뇌 과학 연구에 대한 기사는 더더욱 경계를 해야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뇌 결정론자의 주장이 구체적이라는 이유로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지적한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에 쉽게 빠지는 듯하다.
뇌의 각 부위가 담당하는 역할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거나 보편적인 뇌의 지도가 완벽하게 그려져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특정 세포나 요소의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구체적으로 보여도 사실은 가설이나 의견을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심리학이 뇌 과학에 자리를 내어주기 힘든 이유는 과학적 가치가 아닌 마음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음은 뇌라고 하는 물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 이것은 뇌의 진단 도구가 나오기 전인 초기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2년 그의 저서 첫 번째 챕터의 첫 장에 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물리적(신체적) 기초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마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컴퓨터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어느 하나로 모두를 설명할 수 없듯이, 마음도 하드웨어로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친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스마트 폰을 켜서 친구의 아이콘을 보고 전화하는 세상에서는 특히 개인의 뇌에만 제한시켜서 마음의 범위를 생각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자극을 받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도 하고, 메모지나 스마트 폰에 일정을 정리하는 대신 자신의 뇌는 구체적 사실을 기억하는 부담을 덜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마음이 작동하는 자리를 단지 자기의 뇌에 국한시키지 않고 자신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인공물(artifacts)로 이미 분산, 확장시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메모지나 일반 컴퓨터가 아니라 태블릿PC나 스마트 폰으로 글을 써야 생각이 잘 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의 생각을 만드는 것은 온전히 뇌로만 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기로 봐야 하는 것일까?
융합적으로 마음을 연구하는 인지 과학자들은 이미 '분산된 인지(distributed cognition)'이라는 개념으로 뇌의 범위를 넘어선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뇌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신한 시도가 아니라 무모한 시도로 머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확실한 것은 진공 상태에서 자신의 뇌만을 의지해서 사는 이상화된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연구자가 조작한 것대로 움직여야 하는 쥐처럼 사는 경우도 많지 않다. 걸출한 러시아 학자인 레프 비고츠키는 <사회 속의 마음(Mind in Society)>에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마음이 먼저 발휘가 된 다음에 개인의 인지 체계가 작동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뇌 결정론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의 인지 체계가 투사되어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갖고 있는 지구인이다. 그러나 어떤 때보면 사람들은 마치 인간 사회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외계인으로서 인간의 마음을 보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여러분의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그냥 뇌에 저장된 것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상징으로 표현된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그냥 수동적 입력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상큼하게 쓴 단어도 퍽퍽하게 읽을 정도로 능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지식수준에 따라 이해하는 바가 달라, 글에 나온 인명이나 개념어를 검색하며 글을 읽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눈을 통해서 후두엽의 시각 피징에 들어온 정보를 해마에 저장된 정보와 비교해서 전두엽에 투사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설명하고 말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다채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여러분이 파란 외계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문학은 '삶의 조건을 꼼꼼히 따지는 학문'이다. 삶의 조건은 다양하며, 조건들이 결합해서 낼 수 있는 조합의 수도 다양하다. 그런데 단순성과 구체성의 유혹에 빠져 특정 조건만을 따지는 것은 인문학을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빈곤하게 할 위험이 있다. 뇌는 인간이 마음을 작동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중의 하나이다. 다른 조건인 환경, 인공물, 사회적 자원을 보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뇌 과학자이든, 심리학자이든, 인문학자이든, 대중이든 말이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자리를 내주고 외계인에게 마음의 위치를 묻는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2012-10-16 / 이남석 심리학자
[절망의 인문학-10] 인문학, 지옥에 가다
MB 5년은 지옥? 그럼, 12월 19일 천국이 도래하나?!
지옥에 가서 벌을 적게 받으려다가 가장 혹독한 벌을 받게 되었다거나, 여러 나라 사람들의 나쁜 점만 골라 조합한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내용의 유머는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에 관한 것도 빠지지 않는다. 그 중 하나는 나라와 남녀 별로 줄을 서서 염라대왕 앞에서 판결을 받는데, 도무지 줄어들지 않은 줄이 하나 있어 봤더니, 바로 한국 여자의 줄이라는 이야기. 염라대왕 앞에 출두한 여자 얼굴이 태어났을 때와 하도 달라져서 염라대왕이 얼굴 확인에 애를 먹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 이래서 성형 수술의 나라, 한국은 지옥에도 이름을 널리 알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지옥 코스 가운데 또 하나의 긴 줄. 그건 바로 한국 남자가 서있는 줄이다. 뜨거운 열탕에 들어가서 도무지 나오려고 하지 않는 한국 남자들 때문에 지옥의 절차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한국의 목욕 문화는 또 다시 유명해진다.
지옥의 두 가지 경계선
지옥은 천국과 짝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죽음 이후의 세상으로서 죽음 이전의 세상과 역시 짝을 이룬다.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완전히 같거나 다르다면 짝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옥은 천국과 비슷한 점이 있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지옥은 죽음 이전의 세상, 즉 산 자들의 세상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지옥의 경계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삶과 죽음을 나누는 선(線)이고, 다른 하나는 천국과 구별하는 선이다.
앞에서 언급한 유머를 듣고,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지옥의 두 가지 경계선을 넘을 경우에 우리가 기대하던 이질성을 여지없이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저 세상에 갔다고 하면, 우리는 이 세상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의 여인네들은 지옥에 가서도 이승과의 끈질긴 연결을 드러내며, 염라대왕을 당황케 만들고 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은 끔찍한 형벌을 당하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의 남정네들은 고통은커녕 열탕을 즐기고 있다. 즐기는 자 앞에서는 당할 자, 아무도 없다. 한국의 여(女), 남(男)은 지옥에 가서, 함께 힘을 합쳐 지옥을 교란시키고 있다. 이 기세라면 지옥이 뒤집혀서, 우리가 생각하는 상투적인 지옥이 아니라, 다른 곳이 될지도 모른다.
지옥과 천국의 이분법
지옥과 천국은 짝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 이후에 전개된다고 하는 지옥과 천국은 상반된 가치와 이미지를 지닌다. 지상을 기준으로 지옥은 땅 아래, 천국은 땅 위의 하늘에 위치하며, 지옥은 어둡고, 천국은 밝다. 또한 지옥이 고통이 가득한 곳인 반면, 천국은 기쁨과 행복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어떤 절차와 기준에 의해 지옥에 이런 부정적인 가치가 배당된 것일까? 그것은 저 세상에 관한 생각과 함께 망자(亡者)에 대한 심판의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사후 심판에 대해 가장 오래된 문헌은 지금부터 약 4000년 전에 기록된 이집트의 <사자(死者)의 서(書)>다. 이에 따르면, 망자는 태양신 라(Ra)의 배를 타고 오시리스(Osiris) 신이 다스리는 곳에 도착하여, 재칼의 머리 모습을 한 아누비스(Anubis) 앞으로 인도된다.
아누비스는 오시리스 신이 보는 앞에서 저울의 한쪽 접시에 망자의 심장을 올려놓고, 반대쪽 접시 위에는 진실의 여신 마아트(Maat)의 머리 장식 깃털 하나를 올려놓는다. 심장의 무게가 무거워 저울이 아래로 내려가면, 살아있을 때 죄를 지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곧바로 저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암미트(Ammit)의 먹이가 된다. 암미트는 머리는 악어, 위쪽 몸통은 사자, 그리고 아래쪽 몸통은 하마 모습을 한 암컷 괴물이다. 암미트가 망자를 삼켜버리면 망자의 여행은 끝이 난다. 반면 심장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볍게 판명된 망자는 갈대밭이라는 의미의 천국 아아루(Aaru)에 가서, 불멸(不滅)을 얻기 위한 여행을 계속한다.
이집트의 심판 이야기에서 지옥은 바로 괴물 암미트의 뱃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지옥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 심판의 과정이 보다 자세해지고, 선악의 가치가 뚜렷하게 강조되는 것은 기원전 5세기경부터 문헌에 등장하는 조로아스터교 전통이다. 조로아스터교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철저한 이분법적 관점, 선신과 악신 사이의 종말론적 싸움, 그리고 불의 정화(淨化)를 숭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기독교의 사탄 신앙과 종말론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살았을 때 행한 선행과 악행이 각각 저축한 것과 부채(負債)로서 계산되어 대차대조표처럼 계산된다. 흑자를 낸 망자는 천국으로 안내되고, 적자를 낸 이는 지옥에 떨어진다. 이들은 3000년 동안 계속된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악신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혹은 Ahriman) 사이의 싸움이 결판 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결국 아후라 마즈다가 승리하고, 그 신을 대리하여 세상을 완전하고, 불사의 곳으로 만들기 위해 구세주가 등장한다.
그 구세주는 예언자 조로아스터(Zoroaster 혹은 Zarathustra)의 씨를 받아 동정녀가 낳았으며, 사오쉬안트(Saoshyant) 혹은 소쉬안스(Soshyan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선신을 대리하여 천국과 지옥에서 머물던 망자를 모두 일어나게 하여 최후의 심판을 내린다. 구원받은 이의 육신은 부활되고, 영혼은 정화되어 선한 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불사의 존재가 된다. 지옥은 불에 타서 완전히 사라지며,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는 서로 낮거나 높아져서 평평하게 되고, 하늘과 땅이 만나, 새 하늘 새 땅이 펼쳐진다.
조로아스터교가 아브라함의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 끼친 영향은 슬쩍 보기만 하여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기독교의 지옥 관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마태복음>에는 임박한 종말론과 함께 사후 심판에 관한 언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불구덩이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살아있을 때 악행을 일삼은 자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영원한 형벌이 구원을 받은 자가 누리는 영원한 생명과 대조되면서, 지옥의 불길 속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독사의 족속"이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일단 지옥에 떨어지면 아무리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이미 저주를 받아 사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사탄은 신에게 대항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지 못했으나, <신약>에서는 신과 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나타나는 것도 사탄의 이런 위력에 힘입은 것이다.
초기 기독교 당시는 세상의 종말이 곧 닥쳐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의 종말과 최후 심판의 시기에 간격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후 심판의 날이 점차 연기되면서, 개인의 사후 심판과 최후 심판 사이에 시간적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다. 사후 심판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은 자가 최후 심판에서 어떤 상태에 있게 되느냐의 문제도 이런 맥락 속에서 나타났다. 주류의 관점은 한번 지옥에 떨어지면 영구히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지만, 오리게네스(Origen, 185~254년)처럼 지옥의 형벌은 신과 최후의 화해가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 일뿐이라는 소수파의 견해도 있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지옥을 영구적인 형벌의 장소라고 확인하고, 종부(終傅)성사 없이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지고 지선한 신의 이미지와 영원한 저주라는 것이 서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논란이 벌어졌다. 이 문제는 13세기 연옥(煉獄)의 개념이 두드러지게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지옥"(地獄)이라는 말은 산스크리어의 '나라카(Naraka, 奈落)' 개념이 인도에서 중국 문화로 들어가 불교 용어로 정착된 것으로, 해탈을 할 때까지 생명을 가진 뭇 존재가 계속 돌아야 하는 여섯 가지 영역 가운데 하나다. "육도(六道) 윤회"라는 말은 바로 중생이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여섯 영역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지옥은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기는 해도,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다음의 윤회까지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중생의 순환은 살아있을 때,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되어 그 결과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여기에 심판은 등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10세기 이후의 당(唐)나라에서 시왕 신앙이 성행하게 되면서 사후 심판의 개념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시왕(十王) 신앙은 사람이 죽은 후, 열 명의 왕에게 차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으로, 생전의 죄에 따라 각각 특정의 지옥에서 형벌이 행해진다. 사후 49일이 될 때까지 7일마다 일곱 번의 심판이 있고, 100일, 1년, 그리고 3년째 모두 열 번의 심판이 내려지고 죄의 대가를 치룬 다음에 다시 태어날 곳이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염라대왕은 열 명의 왕 가운데 하나로서, 열 개의 지옥 중 하나를 주재한다. 포르노그래피의 정의를 "지나친 자세함"으로 내릴 수 있다면, 열 가지 지옥을 묘사하는 지옥도는 그야말로 "포르노"에 다름이 아니다. 거기에서는 오장육부가 뽑히고, 끓는 기름에 튀겨지며, 맷돌로 짓이겨지고 톱으로 잘리는 이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그려져 저절로 몸서리를 치게 만든다. 물론 그런 지옥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 없을 리 없다. 한쪽으로 몰아갈 때는 다른 쪽 출구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한 날에 정해진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죄를 면하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신앙이나,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해탈할 때까지 자신의 성불(成佛)을 미루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따르는 신앙이 등장하였다. 우리 주변의 웬만한 절에는 명부전이 있고, 거기에서 지장보살과 시왕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옥과 천국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경우
지옥과 천국의 존재 조건은 사후의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긍정과 부정적 가치의 양극에 배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구원의 개념이 성립하는 데, 지옥에 빠지지 않고 천국으로 이끌어준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구원의 전문가가 등장하게 되고, 이들이 종교 조직을 관장하면서, 종교 엘리트와 평신도의 구분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이 항상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후 세상이 한 덩어리로 여겨지거나,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구분 자체도 분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대교의 '스올'이 그런 곳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지만, 형벌도 없다. 일본의 '요미노쿠니(黃泉國)' 그리고 우리의 '저승'도 비슷하다. 여기는 천국의 밝음이나 지옥의 어두움이 아니라, 회색빛을 띠고 있으며, 망자라면 모두 가는 것으로 간주된다. 마치 추수가 끝난 다음에 황량해진 농경지와 같은 모습이다. 종종 저 세상의 구분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구분조차 뚜렷하지 않게 나타나기도 하다.
지옥과 천국의 사이를 두는 경우
천국에 가는 필수 조건으로서 세례와 종부성사 받는 것을 정착시킨 가톨릭 교회는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구약 시대의 아담과 이브, 족장, 예언자 그리고 소크라테스 같은 현인들이 지옥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죄를 지을 틈도 없이 죽은 순진무구한 아기들도 지옥에 처하게 된다.
조선 시대 가톨릭을 믿게 된 신자들의 최대 고민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조상들이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는 점도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림보(limbo)'인데, 이곳은 죄옥의 형벌을 받지 않은 채 최후 심판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이다. 림보는 가톨릭의 공식 교리로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교회가 금지하지도 않았다.
초기 기독교에 팽배했던 임박한 종말의 기대가 차츰 수그러들면서, 개인의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의 기간에 관심이 모아지게 되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 망자는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망자가 속죄의 시련을 거치면 최후 심판에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하게 존재했지만, 지옥 및 천국과 구별되는 하나의 장소로서 구체화된 것은 12세기였다.
바로 연옥(煉獄)이라는 아이디어의 등장이었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결정적인 심급(審級)이 남아있으므로, 개인이 죽은 다음에 받은 첫 번째 심판으로 영원히 지옥에 빠뜨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 커다란 죄가 아닐 경우에는 시련을 거쳐 죄를 씻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옥은 망자가 죄를 정화(淨化)하는 곳이며, 최후 심판 때의 구원을 기다리면서 잠정적으로 머무는 곳이다.
연옥은 지옥의 절망이 아니라,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데, 가톨릭교회는 이 희망을 이용하여 신자들에게 커다란 권력을 휘두르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종교 개혁이라는 소용돌이를 자초하게 된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옥, 메타포로서의 지옥
근대에 접어들면서 서구 사회의 사상가들은 지옥의 부조리함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은 유한한 죄에 무한한 형벌을 내리는 것, 최후 심판 이후의 형벌이 지닌 무의미함 그리고 신의 자애로움과 영원한 고통의 부여가 지닌 모순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복수에 혈안이 된 무시무시한 신의 모습에서 신민(臣民)들에게 겁을 주어 순종케 하려는 통치자를 보았다.
그래서 지옥은 억압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지옥은 통치자의 심사를 거슬렸을 때, 떠올려야 하는 공포의 고문실이 되었다. 그리고 근대 세계에서는 사후의 저 세상이라는 생각 자체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어 후미진 곳에 처박히게 되었다. 이래서 지옥은 특정한 공간을 점유한 장소가 아니라, 이 세상의 일을 가리키는 메타포로서 이제 땅 밑에서 벗어나 지상에 거하게 되었다.
먼 하늘 속에 있던 천국도 처지는 마찬가지여서, 어서 지상으로 추락해야 했다. 유리 가가린(1934~1968년)이 했다고 하는 말, "여기(우주 공간)에서 도무지 신을 찾아볼 수 없다"는 하나의 재미있는 삽화일 뿐이다.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사상 처음으로 지구 궤도를 벗어나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볼 수 있었던 우주 비행사, 가가린, 그가 정말 그 말을 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흐루시초프가 반(反)종교 캠페인을 위해 인용하여 유명해졌다는 것이 의미 있을 뿐이다.
이제 지옥은 저 세상의 지리적 영토를 상실하고, 이 세상의 상상계에 자리 잡아 살고 있다. 지하 속 형벌장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잔혹함을 빗대는 메타포의 직분으로 그리고 인간 정신 내부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지칭하는 신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폭력과 인간 정신 내부의 상처는 필연적으로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 연결점은 절망이고, 그것은 바로 지옥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단테는 지옥문 앞에 서서 그 문에 새겨진 구절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 문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포기하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는 연옥인가, 끝없는 절망의 지옥인가? 이명박 정부 5년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로 생각하는 자는 전자라고 할 것이다. 그와는 다른 계절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핵과학자들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모조리 절멸시킬 수 있는 핵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인류 최후의 날을 알리는 시계(Doomsday Clock)가 하루 중 마지막 5분만 남아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북한의 위협을 운운하는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가?
지금 제시된 핵발전소의 폐기물 처리 방식이라는 것이 미래 세대는 안중에도 없이 현재 우리만 편하면 된다는 그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임에도 당장 자신의 불편함만을 생각하는 우리가 과연 희망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서울역과 명동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이들의 지옥은 편협한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이지만, 우리의 지옥은 인간 멸종의 위험성에 대한 구제 불능의 둔감함에서 나타난다.
아마도 부실로 지어진 중국의 핵발전소 몇 개가 붕괴하여 한반도로 날아온 대량의 핵물질 덕분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정신을 차린 연후에야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2-10-18 /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절망의 인문학-11] 인문학은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나?
퇴임한 MB를 골방에 모셔 두고 책만 읽힌다면…
15년도 더 된 군대 얘기다. (축구 얘기는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뒤늦게 군대를 갔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꼬이고 꼬여서 결국은 강원도 산골의 한 부대에서 26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남자들 열댓 명이 마주보는 침상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일은 시쳇말로 '깨는'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일은 날마다 마주치는 진짜 '민중'의 모습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직한 수많은 일화가 있었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군대를 가기 직전만 하더라도 다소 규범적인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생활을 했던 터라서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성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고민을 해야 했던 터였다.
그런 내게 가장 곤욕스러운 순간은 오후 10시 불이 꺼진 후였다. 최고참이 입을 떼자마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혈기방장 남정네들이 자신의 끈적끈적한 경험담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놀랐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강간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그들의 고백이 모두 진실이라면, 그들은 모두 군대가 아닌 감방에 있어야 했다.
초코파이 하나에 눈빛이 욕망으로 번득거리고, 동료의 서툰 삽질 때문에 날아간 10분 휴식에 구타와 욕설로 답하는 이들이 과연 책에서 읽은 '혁명의 주체'란 말인가? 문득 경기도 인근의 공장에 투신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한 선배가 술만 마시면 입에 달고 다니던 얘기가 생각났다. "노동자가 쓰레기인데, 노동 운동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
그는 이어서 항상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정신적,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열댓 명의 남정네가 모여서 여자 가수의 몸매를 훑는 텔레비전 화면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어떤가. 시나 소설을 읽는 게 무리라면 최소한 뉴스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서야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 상식에 맞서,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겠는가?
결국 기회가 왔다. 입대한 지 1년 동안 고생을 한 덕분에 병장을 달기도 한참 전에 내무반 최고참이 되었다. 혼자서 읽던 <창작과비평>, <문학동네>에 실린 소설을 돌려 읽혔다. 점호 전 텔레비전 채널은 뉴스로 고정했다. 자기 전에는 뉴스를 본 소감도 말하게 했다. 일종의 인간 '개조'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인문학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인문학은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질문을 바꿔보자. 과연, 인문학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인문학의 특징을 '쓸모없음'이라고 주장하는 인문주의자, 예를 들자면 중국의 리링 같은 이들은 이런 질문 자체를 조롱할 것이다. 나도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 주제는 이 글의 초점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전 세계에 자신의 '녹색 성장'을 전파하고자 퇴임하고 나서 자전거 세계 일주에 나선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해 잠시 골방(!)에 모셔 두고 학습을 시킨다고 가정해 보자. 당대의 학자들이 나서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더 나아가 <녹색평론>의 빛나는 에세이를 읽히자.
그렇게 1년이 지난 다음에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생태주의자'로 변신할까? 그래서 도심에 마련한 '인공 어항'에 불과한 청계천과 멀쩡한 물길을 가로 막아서 '인공 호수'를 조성한 낙동강의 보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녹색 성장'이 사실은 '잿빛 성장'의 변주였음을 고백하는 게 가능할까?
무슨 그런 얼토당토않은 예냐고 쌍심지를 켜는 이들을 위해서 다른 예 하나 더. 개인적으로 아는 한 대기업의 임원은 신영복의 열렬한 팬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를 수차례 탐독한 것도 모자라서, 연말연시에는 자신의 부하 직원을 포함한 지인에게 사다 뿌린 책만 수백 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영복의 팬답게 그는 동서양의 인문 고전에도 밝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생전 처음 듣는 한시의 시구를 읊고,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대목을 적재적소에 인용한다. 최근에는 단테의 <신곡>을 탐독한다며, 다시 읽어볼 것을 권했다. (나는 단테의 <신곡>을 '다시' 읽을 게 아니라 '새로' 읽어야 할 처지다!)
그렇게 동서양의 고전을 귀동냥 삼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꼭 분위기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놓고서 얘기하다 (그는 공지영을 비롯한 그 또래 세대의 교양 결핍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화제에 올라서 그랬다. 그 자신 수십 년의 샐러리맨 생활을 했음에도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리 해고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예요. 온정주의에 휘둘려서 정리 해고를 부정하면 자본주의가 곧바로 멈춰서고 맙니다!"
이런 냉혹한 인식 속에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신영복이 말하는 '관계론'의 흔적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톨스토이를 따라 "바둥바둥 살아도 결국 땅 한 평에 묻힐 인간의 숙명"을 얘기하면서, 한국 사람의 더불어 사는 지혜 없음을 탓하던 그 인문주의자는 그 순간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지금 이 얘기를 읽는 이들 중에도 비슷한 예를 수없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선생님, 사장님, 남편, 애인, 상사, 동료 등….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문 교양의 많고 적음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인문학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면, 과연 노동자에게 인문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동자의 인문학'은 무엇인가?
가끔 노동조합, 진보 정당 등이 노동자를 상대로 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공지하곤 한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공장, 사무실에서 고된 노동을 한 이들이 퇴근 후 텔레비전 앞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술집에서 시시덕거리는 것보다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에서 결론을 내린 대로, 인문학이 사람을 바꾸는데 무력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과연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일까?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실용적인 강의들, 예를 들자면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교실' 혹은 '노동자를 위한 건강 교실' 같은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을 최우선에 놓는 노동조합 혹은 진보 정당의 교육 프로그램이라면, 과거나 현재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자 국가, 자본과 어떻게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상영이야말로 알쏭달쏭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잠시 과거로 눈을 돌려 보자.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인간 해방의 주체'로 봤던 저 혁명의 세기(19세기)조차도, 결코 노동자가 (지금 통용되는 맥락에서의) 인문주의자였던 적은 없었다.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과 같은 책을 보면, 그 때도 그들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아니라 왕이나 자본가를 풍자하는 멜로드라마풍의 극단에 열광했다. (간혹 그런 극단 공연은 흥분한 노동자의 폭동으로 이어지곤 했다!) 문자를 체득한 이들이 열광했던 읽을거리도 고전이 아니라 각종 사건을 '노동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수많은 정치 팸플릿이었다.
인문학이 노동자의 무기였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면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면) 도대체 노동자의 진짜 무기는 무엇일까? 역시 역사 속에 답이 있다. 19세기 노동 계급 의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교양 습득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밀집 지역의 선술집에서 음탕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장 사장이나 중간 간부를 도마에 올려놓고 험담을 하거나 축구 경기의 승부를 놓고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떠는 중에 그들은 노동자에서 노동 계급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공동의 의식이야말로, 공통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집합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노동 운동의 몰락이 얘기되는 지금 이 시점에,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소통의 경험이다. 유럽의 노동 운동, 사회주의 운동 초기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맨 처음 한 일이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민중의 집'과 같은 공간을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렇게 노동자가 소통의 경험을 공유하는데 인문학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의 인문학은 지금 얘기되는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문학'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노동자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기업 임원의 인문학과는 다른 즉 노동자의 '삶의 고양'에 초점을 맞춰서 재해석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인문학이 대다수 보통 사람의 삶과 유리된 채 유한계급의 문화 자본으로 전락했다면,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이런 재해석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동서양의 인문주의자들이 정리해 놓은 인문학의 정전들이 여전히 신주단지처럼 모셔지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이고.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혁명 이후의 삶을 상상하며 "오전엔 사냥, 오후엔 낚시, 초저녁엔 목축,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과 토론을 하는 사회"를 예고했다. 마르크스는 비록 서양 고전의 지적 전통 속에서 자신의 저작을 집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부르주아 문화와는 다른 대안적인 문화의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아는 인문학과 다른 '노동자의 인문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말할 재주가 내게는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고, 노동자든 민중이든 시민이든 다중이든 그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주체를 고민한다면, 그 시작은 그런 주체의 삶과 밀착된 대안 인문학을 말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 개조 프로젝트의 진실
짐작했겠지만, 군대에서 열댓 명의 후임을 상대로 진행한 인간 개조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제대 후 풍문으로 들어 보니, 내가 전역 신고를 한 그날 바로 점호 시간 전 텔레비전 채널은 뉴스에서 여자 가수의 뮤직비디오로 바뀌었다. 내무반 책꽂이에 꽂아둔 <창작과비평>, <문학동네>는 몇 개월째 굴러다니다 결국은 소각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 신병이 들어올 때마다,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야, 예전에 강 아무개라는 인간이 있었어. 그 인간은 글쎄 어떻게 갈군 줄 알아! 뉴스로 사람을 괴롭혔어. 뉴스로!" "뉴스로만 갈구면 나았게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설도 읽게 했잖아요. 효리 마음껏 볼 수 있는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
이제야 고백하건대, 나도 점호 전에 뉴스 대신 효리를 보고 싶었다. 1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2012-10-23 / 강양구 기자
[절망의 인문학] 인문학은 무엇이 아니어야 하는가?
지금 여기의 '신'을 죽여야 인문학이 산다!
인문학 전성시대, 우리의 현황
바야흐로 인문학 전성시대다. 온갖 대학, 지방자치단체, 영리기업, 사회적 기업, NGO, 기타 다종다양한 단체들이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거나 초빙하는 형태로 그 열풍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은 일단 긍정적인 현상이다. 대중들이 단지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서, 그 바깥에 있는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동시에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인문학 열풍이 부는 사회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스터디 모임이 열리는 사회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다.
국내에 이른바 '희망의 인문학'을 소개하며 인문학 강좌 열풍을 선도한 성프란시스 대학 인문학 과정의 경우, 2012년 10월 현재까지도 꾸준히 수업을 개설하고 본래의 취지에 맞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침으로써 '정신적으로 고양된 삶'을 제공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스스로 가난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그 목적에 맞게, 문학, 철학, 예술사, 역사, 작문 등의 강의가 충실한 시간표를 통해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실망스러운 경우도 없지 않다. 물론 수강자들의 관심과 참여도, 교육 수준 등을 고려해서 수업이 짜인다는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이전까지는 '백화점 문화 강좌'라는 제호 하에 진행되었을 법한 수업들이 고스란히 '인문학 강좌'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인문학과는 관련이 없는 수업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허브 키우기, 우클렐레 치는 법, 사진 잘 찍는 요령 등을 가르치고 배우기도 한다. 그것이 2012년 현재 성행하고 있는 '대중적 인문학'의 풍경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미 질리도록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온 사람들이 자신의 귀한 여가 시간을 활용해 술을 먹고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흔드는 대신, 이름부터 친숙하지 않은 서양 철학자 등의 케케묵은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여러모로 고무적인 일이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 지난 시대의 누군가가 남겨놓은 텍스트에서 현재를 향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쾌감을 사람들이 알아갈수록,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반은 탄탄해질 것이다.
두 개의 인문학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내가 모든 대중적 인문학 강의를 다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언론의 보도 및 해당 단체의 커리큘럼 등을 통해 검토해보면,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앞서 말했듯 굳이 '인문학'이라고 분류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일반적인 교양 강좌들이 한 묶음으로 크게 존재한다. 그 반대편에는 사실상 대학원 수준으로 진행되는, 고대 희랍어나 영화 비평에 사용되는 현대 철학 등에 대한 수업들이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교양 수업들이 작금의 '인문학 열풍'을 양적으로 보여준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전문적인 인문학 강의들은 그 열풍의 바닥에 잠재되어 있는 학문적 에너지의 질적인 측면을 표상한다.
문제는 그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이 서로 만나 상호 작용하는 대신, 일종의 평행 우주를 그리고 있다는 데 있다. 대중적인 '인문학'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틈틈이 '상아탑 속의 철학', '너무 어려운 외국어가 한가득 나오는, 우리의 삶과 관계없는 인문학' 등을 비난한다. 하지만 너무 어렵고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인문학은 비단 상아탑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아카데미로 대표되는 '대학교 바깥 인문학'의 전문적인 강의들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대학교의 체제 내에서 다 다루지 못하는 것들, 혹은 좀 더 심화 학습이 필요한 것들이 주로 커리큘럼에 오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문학의 대중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더 쉽고 말랑말랑하게 대중들에게 지식을 전달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간판을 걸고 온갖 종류의 수업이 진행된다. 그 중 대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인문학과는 그리 큰 상관이 없다. 인문학이 태동하고 발전해온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일천한 학문적 역사와, 어쨌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교양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는 수요 공급의 원리가 맞물려,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곧 인문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각광받는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인문학이다. 한국어의 현재 맥락 속에서 '인문학'이란 '사람 사는 이야기'에 가까운, 사실상 특정한 내포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 외연을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교양 수업들의 집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나는 그 현상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인문학의 시작과 역사
▲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en.wikipedia.org |
서양 고전학자 루돌프 파이퍼가 쓴 <인문 정신의 역사>(정기문 옮김, 길 펴냄)를 통해 그 내막을 살펴보자.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서구 세계는, 십자군 전쟁 이후 쏟아져 들어온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기존의 기독교적 질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롭고 인간적인, 즉 신 중심의 사고가 아닌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하는 내용들이 그 텍스트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내려온 문헌들을 해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들은 다양한 필사본의 형식으로, 결코 완전하지 않은 형태로, 개별적인 필사본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져왔다. 그러므로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원본 텍스트'를 확보, 혹은 확정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낼 것인가? 해석해낸 내용을 어떠한 방식으로 다른 이와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아 지식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할 것인가?
바로 그런 고민들이 모여 이른바 '고전 문헌학'을 태동시켰다. 그 출발점에 선 사람이 바로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이다. 그는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가 남긴 책을 토대로 자신의 역사책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행위를 통해, 그는 그의 동시대 및 이전 세대의 고전 연구자들과 다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그러나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역사책을 집필하면서 리비우스의 주요 주제들을 고르고, 베껴 쓰고, 보충하는 데서 머물지 않았다. 페트라르카가 직접 쓴 필사본이 발견되면서 그가 텍스트의 원본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할 때면 텍스트 자체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텍스트의 비판-편집(editio critica)의 부활을 선도하였다. 텍스트의 여백에 그가 단 주석은 다른 작품과 달리 단순한 예증이나 설명에 멈추지 않았다. 두 필사본을 대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다양한 독법(讀法)을 인내심 있게 기록하였고 여러 문장을 기교 있게 교정하였다. 그의 시대 학자 누구도 이런 작업을 해낼 재능이나 행운을 갖지 못했다. (19쪽)
우리가 아는 서양의 인문학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고전 텍스트, 특히 성경을 읽고 주석을 다는 비판적 독서는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지만, 원전을 읽고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사실상 원전을 '확립'해나가는 학문은 바로 저 시대에 출발한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고전 그리스 로마인들의 텍스트가, 마치 조각난 도자기를 흙에서 파낸 후 한 조각씩 섬세하게 이어 붙여 복원하듯, 되살아났다. 그 중 페트라르카를 포함해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고대 로마의 정치가인 키케로였다. "페트라르카는 키케로에게서 로마인이 그리스인을 단지 학문의 모델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사람다운 사람'(genus humanissimum)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배웠다."(30쪽)
그때부터 고전 문헌을 연구함으로써 지금까지 잊혀 왔던 '사람다움'을 탐구하는 학문이 자리 잡게 되었고, 당대의 사람들도 그것을 "인간에 대한 학문"(studia humaniati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맥락에서 인문학, 혹은 인문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리스 로마 고전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에서도, 20세기 초 독일의 김나지움에 다니던 학생 하이젠베르크가 기숙사 지붕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한 구절을 곱씹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서양에서 지속되어온 인문학의 역사와 전통이다.
지금 여기의 '신'과 싸우기 위하여
고전 문헌에 대한 비판적 독해와 더불어, 인문학을 인문학으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그 내용이었다. 인간을 만들었고 전지전능하여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의 말씀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를 살다가 죽었던 어떤 '사람'들이 쓰고 남긴 텍스트를 고전 문헌학자들은 연구했다. 그 속에서 그들은 낡았지만 새로운,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다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로저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제목의 책으로 과학 문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인문학자는 그들 손에 주어진 텍스트를 바로 그렇게 '새로운 아틀란티스'로 바라보고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인문주의자들에게 '인문학'이란 즉 '신학'이 아닌 그 무언가였다. 지금은 그 누구도 철학과와 신학과가 갈등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키케로는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기원전 106년에 태어나 예수가 탄생하기 전에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됐건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작가들은 '이교도'였고, 이교도의 글을 연구하고 읽고 흠모하고 애호하는 것은, 때에 따라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든 고대 문헌 연구자들, 인문주의자들이 다 이단으로 몰렸거나 고초를 겪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새로운 옛 사람'을 복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즉 자신들이 기독교적인 세계 속에서 '신학이 아닌 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한국에서 '인문학'은 과연 그렇게, 지금 여기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및 세계관과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있는가? 돈을 벌고, 성공하고, 출세하라는 자본주의적 계시 앞에서, 묵묵히 다른 텍스트를 읽어나가며 '새로운 옛 사람'을 찾아내는 그런 인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너무 쉽게만 흘러가고, 그저 많은 수강생을 확보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작금의 인문학 교실들은 바로 그 중요한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대중들과 소통하는 '쉬운 인문학'과, 상아탑에 자리 잡지 못하고 대중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어려운 인문학'이 서로 손을 잡을 때,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2-10-25 / 노정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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