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 Culture/영화 이야기

부러진 화살

by Wood-Stock 2012. 1. 16.

사법부를 제대로 쏜 정지영의 화살

영화 ‘부러진 화살’ 13년만의 작품 ‘젊은 노련미’
‘석궁테러사건’ 실화 통해 법에 짓밟히는 인권 고발

 

 

이 영화를 보며 든 첫번째 생각은, ‘도대체 노감독은 13년간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참았을까’였다. 사법부가 관람하면 분명 ‘붉으락푸르락’할 내용을 힘있게 건드리면서도, 유머있게 풀어내는 ‘젊은 감각의 노련미’가 번뜩인다.

 

배우 안성기, 박원상의 캐릭터가 충돌하고 화해하며 빚어내는 기묘한 호흡은 극의 활력을 심는다. 제한된 예산(순제작비 5억여원)과 적은 등장인물로도, 극에 몰입시키는 힘은 결코 작지 않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국 사법부의 행태를 목도하게 해 ‘기가 찬’이란 표현이 적합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감독은 진보진영 인사인 배우 문성근에게 ‘보수꼴통 판사’ 역을 맡기는 ‘이질적 캐스팅’의 묘미도 즐기는 듯하다.

 

4년 전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석궁테러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내년 1월19일 개봉)이 지난 19일 언론시사회를 열었다. 사법부의 위선을 강도 높게 고발한 사회성 짙은 영화이면서, 대중성을 놓치지 않은 실화영화다. 정지영(65) 감독이 <까>(1998년)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복귀작이기도 하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교수지위 확인소송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맞혔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4년간 복역하고 최근 만기출소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실제 사건을 다룬다. 김 전 교수는 대학시험 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에서 김 전 교수는 ‘김경호’(안성기)로, 그를 변론한 실제 박훈 변호사는 ‘박준’(박원상)이란 인물로 등장한다.

 

실제 공판기록을 토대로 한 영화는, 사건을 ‘사법테러’로 규정한 뒤 쏘지 않았다는 피고 김경호의 주장을 묵살하는 ‘재판부의 맨얼굴’을 비춘다. 김 전 교수가 부장판사의 배를 맞힌 혐의를 입증할 ‘부러진 화살’도 현장에 없었을뿐더러, 부장판사 옷에 묻은 ‘혈흔’이 누구 것인지 조사도 하지 않았으며, 겉옷과 속옷 사이 와이셔츠에만 혈흔이 없다는 데서 비롯한 증거 조작설 등에 대한 ‘합리적 의심’들을 보여준다. 안성기가 맡은 김경호는 실제 김 전 교수처럼, 법정에서 여러 법조항을 인용하며 판사·검찰과 설전을 벌이고 “(제발) 법대로만 해달라”고 촉구한다. 사법부를 겨눈 시선은 영화 <도가니>보다 더 날카롭다. 영화는 사법부의 견고한 동맹이 정당한 법 집행과 한 인간의 권리를 어떻게 묵살할 수 있는지 들춰낸다. 법정에 달걀을 던지는 장면, “사법부의 오만함이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주인공들의 날선 대사도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김 전 교수를 위한 박준 변호사의 최후변론에는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언급된다. 박준은 “유대인 포병장교 드레퓌스가 프랑스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진범과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어도 사법부 권위를 위해 이를 묵살한 1800년대의 일이 지금의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정지영 감독은 “사법부 관계자들이 영화를 보면 많이 아플 것”이라고 했다.

 

2011.12.20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

 

정지영 감독님, 'BBK사건'도 영화화해주세요

 

수학과 법. 둘이 상관관계가 있을까? 수학 문제는 공식대로만 풀어나가면 술술 답이 나온다. 그걸 알기에 그 많던 공식들을 무수히 외워대곤 했었다. 법도 마찬가지 아닐까? 법조문에 나온 조항대로만 해석하면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나올 것이다. 그것이 수학과 법을 똑같은 잣대로 보는 견해다.

 

 

 

모든 사건이 수학공식대로만 풀린다면 우리나라는 진정한 법치국가일 것이다. 헌데 좋지 않는 관행은 어떻게 볼 것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적용하는 몽매한 법 판결 말이다. 판사가 주문한 심판을 모두 신뢰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판사든 검사든 그들의 명예는 직책의 무게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신뢰의 비중에서 나온다. 그건 이 땅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법원과 판사와 검사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생각게 한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34세의 조교수는 1995년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가 틀렸다는 것을 최초 지적했는데, 이후 사법부 판사의 불신을 바르게 잡으려고 석궁을 가져가서 위협했다. 하지만 그는 판사에게 석궁을 쏜 사실이 없다. 사건일지를 토대로 기록된 이 영화에서는 둘 사이에 몸부림 끝에 우발적으로 화살이 아파트 벽면으로 날아갔고, 그로 인해 화살은 부러졌다.

 

모든 영화는 대립구도를 명확하게 그려갈 때 인기를 얻는다. 물론 이 영화는 고의로 그걸 부각시킨 건 절대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합리적 보수주의자와 '꼴통 진보주의' 변호사가 한통속이 되고, '석궁교수'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와 박준 변호사(박원상 분)와 언론도 한 뜻을 품는다. 그런데 언론은 대법원 선고 직전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입을 다물고 만다. 윗선이 개입했음을 모두가 직감으로 알 수 있는 바였다.

  

 

반전 없는 영화... 속 시원한 '석궁교수'의 막말

 

모든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흥행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전이 없다. 단 하나, 있다면 최초의 주심 판사가 사표를 낸 것이다. 헌데 더 강력한 '보수 꼴통'이 주심판사로 등장한다. 그것으로 반전을 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그걸 유지한다. 순진한 다윗과 야만족인 골리앗을 둘러싼 힘겨운 싸움 말이다.

 

인간애도 모든 영화의 중심 주제다. 이 영화에서도 가족이 겪는 아픔은 그대로 드러난다. 석궁교수의 아내는 항소심 공판 때마다 입이 타고 피가 솟구친다. 구치소로 이송되기 직전 차 밖에서 아버지를 껴안던 석궁교수의 아들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판사를 향해 달걀 투척을 한 사람들에게서도 묘한 인간애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것이다. 법리해석을 완전 배제시키는 판사들의 자기 식구 감싸기와 검찰의 은폐를 강력하게 고발한 것, 정의와 진실에 대해 판사까지도 꾸짖고 고발하는 석궁교수의 활약은 관객들의 눈높이에 충분히 맞추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그리고 하나, 석궁교수의 4년 구속 판결은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로 규정된 보복성 판결이었다는 것.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요."

 

석궁교수가 재판부를 향해 거침없이 쏟아낸 막말이다. <부러진 화살> 속의 대사 중에서 가장 속 시원하게 들린 말이었다. 그 말처럼 이 땅의 공의가 수학공식처럼 정말로 되살아 난다면 얼마나 좋으랴. 정지영 감독은 변호사 박준이 보는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이명박, BBK 문제되면, 대통령직 걸겠다'는 걸 보여줬는데, BBK와 관련된 사건도 영화화 하여 이 세상의 진실을 한번쯤 파헤칠 뜻은 없는 걸까?

 

2012.1.6 / 오마이뉴스

-----------------------------------------------------------------------------------------------------------------

 

관객 쾌감 명중시킨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한 장편 <부러진 화살>은 영화인들 사이에 화제였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일정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이창동 감독, 김유진 감독, 제작자 이춘연씨를 김해공항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이구동성으로 문제작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기자 시사회를 다녀온, 필자와 같은 학교의 교수이기도 한 황규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를 볼 때의 흥분을 느꼈다며 꼭 보라고 강권했다.

 

직접 내 눈으로 본 <부러진 화살>은 솔직히 말해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전개는 투박하고 출연진의 연기 수준도 고르지 않으며 사건을 축조해가는 방식과 주변인물들을 그 사건에 연관 짓는 방식도 낡았다. 이를테면 주인공 김경호를 변호하는 변호인과 김경호를 취재하는 기자 사이를 선후배의 연으로 묶고 플롯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식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에 강력하게 ‘한 방’ 먹이는 게 있었다. 그 한 방에는 누구도 저항하기 힘들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석궁테러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진 이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주인공을 영웅화하지 않았다. 안성기가 연기하는 전 대학교수 김경호는 괴짜 수준의 인물이 아니라 속된 말로 ‘진상’으로 부를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으면 아주 피곤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인데,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부조리한 법정의 복판에 서자 굉장한 극적 흥분을 만들어낸다.(게다가 이것은 실화이다.) 그는 민사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석궁을 쏜 혐의로 형사법정에 서게 됐으면서도 법대로 하라고 판사와 검사를 몰아붙인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를 모두 고소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국가권력의 잘못된 전횡에 김경호가 대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배운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가 타고난 유전자의 반제도적인 기운 덕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의 돌연변이 행동은 관객에게 쾌감을 준다. 감독은 김경호를 플롯의 주인공으로 삼았을 뿐 영웅화하진 않았는데 도저히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인물을 우리는 좋아하게 된다. 그건 이 인물에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경호는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죄의 일부를 인정하지만, 실제로 화살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 화살을 쐈다고 주장하는 반대편 논리의 허점을 주장하는데도 그에 관한 증거를 채택하지 않는 재판부와 검찰을 규탄한다. 캐릭터에 대한 미시적인 집중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낸다. 캐릭터가 하도 매력적이어서 <부러진 화살>이 좀더 법정 장면에 집중하는 쪽으로 드라마를 만들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판사 역으로 나온 문성근과 이경영의 존재감도 훌륭했다. 문성근의 유들유들하고 강고한 행동이 어떤 공격에도 상처받지 않는 기득권자들의 우월감을 생생하게 각인시킨다면, 애매한 표정과 망설임으로 일관하지만 자기 태도를 바꿀 의지는 전혀 없는 이경영의 판사 연기도 잊기 힘들 것 같다. 영화는 결국 이런 인상들의 고정점을 남겨주는 데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몇몇 이미지의 잔해를 불타는 채로 관객에게 넘겨주고 생각하게 만든다. 쓰고 보니 내가 애초 매긴 평점보다 훨씬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2012.1.15 /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

 

‘석궁’ 교수 “법원이 정의의 보루? 한마디로 개소리”

영화 ‘부러진 화살’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교수 - “4년형 억울하지 않아…실제로는 재판부가 나에게 혼쭐 난것”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 

 

2007년 1월15일 저녁,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의 판사 공격 사건이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사람을 활로 쏘다니. 언론은 “석궁테러”라는 수식어를 달아 연일 속보경쟁을 벌였다. 김 교수는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던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엽기 테러범으로 전락했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전국법원장 회의를 열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징역형이 내려진 듯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알려진 것과 다른 사실들이 드러났다. 먼저 김 교수가 아파트 복도에서 쐈다며 박홍우 당시 서울고법 민사2부 판사(현 의정부지방법원 법원장)가 경찰에 맡긴 화살이 사라졌다. 경찰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게다가 증거로 제시된 박 판사의 혈흔이 이상했다. 박 판사가 입고 있었던 조끼와 양복, 속옷에 모두 묻어 있는 피가 유독 와이셔츠에는 묻어 있지 않았다. 박 판사는 당시 속옷 상의, 내복 상의, 와이셔츠, 조끼, 양복 상의 순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증거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 ‘석궁’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교수.

 

궁지에 몰리게 된 건 김 교수가 아니라 박 판사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2008년 1월28일 3차 공판에서 김 교수 쪽의 혈흔감정 요청을 거절했고, 대법원은 2008년 6월12일 김 교수에게 징역 4년형의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김 교수는 별 수 없이 4년형을 살아야 했다. 그는 2011년 1월23일 새벽 출소했다.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는가 싶던 ‘석궁사건’이 영화 <부러진 화살>의 19일 개봉을 앞두고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한겨레>는 김 전 교수를 지난 4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찻집에서 이뤄졌다.

 

그는 만나자마자 “나를 더 이상 억울한 사람처럼 그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김명호가 억울하다? 이런 식으로 쓰지 마세요. 절대로. 저는 (석궁사건 재판이 얼마나 부당했는지) 이미 (재판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밝혔기 때문에 만족해요. <부러진 화살> 영화에서 안성기가 마지막에 웃잖아요. 저도 그런 심정이었어요. 내가 막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재판부가 나에게 혼쭐이 난겁니다.” 


실제 김 전 교수는 재판 내내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재판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호통쳤다. 재판부가 김 교수의 증거신청을 터무니 없는 이유로 기각하는 등 상식 이하의 판단을 계속할 때마다 방청객들은 분노했다. 급기야 2008년 3월 대법원에서 열린 석궁사건 항소심 재판에서는 판사들에게 계란을 던지는 방청객도 있었다. 김 전 교수는 ‘재판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오히려 사법부가 테러를 가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라고 믿는 듯 했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의 누리집 (http://seokgung.org/) 에 석궁사건 재판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먼저 석궁사건을 묻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날(2007.1.15) 박홍우 판사 집에 석궁을 들고 간 이유가 뭡니까. 

“그냥 겁주려고 했습니다. 판사들이 그렇게 법을 묵살하면서 (시민에게) 재판 테러를 하는 경우 너희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었어요. 교수 지위 확인소송에서, 법대로 판결하지 않고 권력자의 편에서 판결을 내린 것을 경고하고 싶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는 1995년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학교 쪽과 관계가 틀어진 뒤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 전 교수는 1995년 10월 법원에 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냈으나 당시 법원은 ‘교수 임용은 대학의 자유재량’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응용수학 관련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1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원이더라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하거나 법원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자 3월에 귀국해 다시 교수 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2007년 1월 다시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김 전 교수는 이 판결이 잘못 됐다고 주장했다. 1977년 교수 재임용 관련 판결문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이 예정된 걸로 본다’라고 돼있는데 87년에 법률해석을 변경해서 ‘재임용은 학교자유 재량이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전 판결을 뒤집으려면 법원조직법 제7조 1항의 3에 의해 전원합의체를 거쳐야 해요.(그는 법원조직법 항목을 줄줄이 외웠다. 인터뷰 내내 법원판례 번호 등을 외워서 답했다.) 그런데 이 87년 판례는 전원합의체가 아니었거든요. 제가 2005년에 재판을 받으면서 이걸 지적해 이용훈 대법원장 앞으로 공개질의서를 보냈더니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77년도 판례는 한양대 교수가 사고로 죽으면서 손해배상을 다툰 것이고 87년건은 재임용건이라 사건명이 다르다.” 하지만 두 건 다 사립학교법에 대한 해석을 다룬다는 점은 같아요. 더 웃기는 것은 77년도 판례가 (인쇄물로 된) 판례집 총람에는 요지가 나오는데 대법원 홈페이지에서는 요지가 사라졌어요. 이런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에 교수라는 사람들이 400여명씩이나 당하고서도 아무런 저항이 없어요. 다 바보같이 당한 거예요.“

   

- 그래도 판사의 집을 찾아가 위협한 것은 정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박홍우 판사의 판결이 있기까지 1년6개월동안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활용해 나의 의견을 피력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청와대, 교육과학기술부, 대법원에 진정서와 탄원서를 넣었어요.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1년 가까이 휴일만 빼고 매일 1인 시위도 했어요. 그런데 박 판사는 나에게 판결테러를 가해 사회적으로 생매장시켰습니다. 그럼 뭘 더 할 수 있었겠어요. 국민저항권 차원의 정당방위였습니다. 나로서는 최수의 수단이었어요. 후회 없습니다.”

 

- 정말 석궁을 쏘지 않았습니까.

“안쐈어요. 그냥 순진하게 겁을 줄 생각으로, 석궁을 들고 대체 이렇게 판결한 이유가 뭐냐면서 다가갔는데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박홍우 판사가 내 석궁활대를 잡은 거에요. 쏠 생각도 없었어요. 쏠 생각 있었다면 당연히 멀리서 조준해 쏘고 말았겠지 그걸 들고 그 앞으로 다가갔겠어요?”

 

- 그럼 박홍우 판사가 화살에 맞아 입은 상처와 혈흔은 뭔가요. 조작됐다는 건가요.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죠. 석궁전문가도 석궁으로 생길 수 있는 상처가 아니라고 얘기했고. 경찰의 석궁 실험에서도 활을 쏘면 15cm 뚫고 지나가게 나왔는데, 대체 그 상처가 어디서 낫겠어요. 자해밖에 없어요. 그래서 혈흔 감정을 해보자고 했는데 재판부는 내 주장을 묵살했어요. 그래서 내가 1심 법정에서 ‘세상에 이런 개판 재판이 없다’고 소리쳤어요.”

 

(박홍우 판사는 2007년 8월22일 1심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몸을 일으켜세울 무렵에 화살 하나를 잡았다”며 “화살은 부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출동한 119 대원이 쓴 ‘구급활동일지 평가 소견란’에는 상처 크기가 ‘지름 0.5cm 정도 창상 有’라고 돼있다. <한겨레>는 박 판사의 해명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박 판사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 박홍우 판사가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박 판사가 입고있던 옷가지에 박 판사의 혈흔이 묻어 있으나 중간에 껴입은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다.

 

김 전 교수는 사법부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 사법부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법원장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놈’들은 법을 안 지켜요. 법원이 최후의 정의의 보루? 이런 것과는 구만리라고 해야 되나. 한 마디로 ‘개소리’입니다. 제가 석궁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건 판사들이 법을 안지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도 국민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에서 석궁조작 사건 같은 게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석궁사건은 단지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증거조작이 일어난 것 뿐이지 다른 사건들에서는 교묘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판사, 검사 모두 사법고시에 붙는 순간 ‘법을 위반할 자격증’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헌법재판관과 법원장, 대법관, 검찰총장 등을 모두 선거로 뽑아야 해요. 그거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도가니법처럼 법 100개 만들면 뭐합니까. 지키지 않는데. 국민이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선거가 유일합니다.”

 

그렇다고 김 전 교수가 법 회의론자는 아니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입니다. 2005년부터 제가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논리가 딱딱 맞고 모순이 없는 거예요. 딱 한 가지만 빼고. 판사들이 법을 위반하면서 소송을 진행하면 이걸 막을 방법이 없어요. 명백히 법을 어긴 판사를 검찰에 고발해도 다 막아주고.”

 

김 전 교수는 이 말을 꺼내면서 “절대 기사에 주장했다고 표현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주장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건 사실이기 때문에 지적했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모든 판사가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춘천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소 건물에 석면을 사용했다고 고발했어요. 그 사건을 담당한 전상범 판사는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세 번이나 교도소를 방문했어요. 결국 판사이동으로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제가 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판사였어요. 내가 불합리한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판사들을 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해 듣기로는 판사 중 5%정도만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런 판사들은 서울 근처에 오지도 못합니다.”

 

그는 판사들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이상훈 대법관도 웃기는 사람이에요. 원래 내 교수확인지위 소송 서울고법 민사재판이 이상훈 판사 담당이었어요. 그런데 법대로 판결했다가는 내가 이기니까, 그래서 문제 생길 것 같으니까 내가 2005년 10월18일 재판을 접수했는데도 4개월동안 놀고 있다가 2006년 2월 다른 곳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이 되어) 도망가버렸어요. 그러다 2006년 론스타 경영진 문제 처리하려고 4인 회동하고 그랬죠.”

 

이상훈 대법관은 2006년 법원의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잇딴 영장기각을 놓고 검찰이 반발하던 상황에서 서울중앙지법 민병훈 영장전담판사와 함께 박영수 당시 대검 중수부장과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을 비밀리에 만나 ‘부적절한 만남’ 논란을 빚었다. 재판 업무중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송 관계자를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만나선 안된다는 법정윤리조항 등을 어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대법관은 지난 달 정봉주 전 의원의 징역 1년형을 확정판결하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는 좌와 우가 없다. 그는 스스로를 좌도 우도 아닌 합리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법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하는 판사는 좋은 판사고, 그렇지 않은 판사는 나쁜 판사라고 생각한다. 김 전 교수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해 소신발언을 해 주목받고 있는 판사들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을 이어갔다. 

 

“한미FTA니 뭐니 떠드는 판사들도 다 쓰레기라고 봐요. 판사들이 지금도 법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우리 헌법 119조에 “국가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유지를 위해 시장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어요. 한-미FTA 조약은 국내법과 같지요. 한미FTA는 독소조항 ISD(투자자소송제도) 때문에 헌법을 위반하는 조약이지요. 그럼 판사들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 돼요. 그건 안하고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합니다.” 

 

김 전 교수는 이어 한-미FTA 관련 소신 발언으로 에스엔에스(SNS) 상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이정렬 판사를 콕 집어 비판했다.

 

“이정렬 판사도 위선자입니다. 한-미FTA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어서 칭찬받는데 이 판사는 내 교수확인지위소송에서 박홍우 판사랑 같이 재판했던 사람입니다. 박 판사가 말도 안되는 판결할 때 끽 소리 안하고, 법원에 와서는 법원의 잣대로 해야 한다

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김명호 전 교수 교수확인지위 소송 고등법원 판사는 이우철, 이정렬, 박홍우 등 3명이다)

 

- 박홍우 판사가 정봉주 전 의원에게 징역 1년형 판결한 2심 판사여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 판사가 석궁사건을 겪으면서 법원이 해야 할 더러운 판결에 다 개입하게 된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 나라 법원은 명판결을 내려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는 판사가 없거든. 다 윗사람 눈치를 잘 봐야 승진을 합니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판결은 그래서 안 맡으려 하죠. 서울 고법 같은 데는 80% 이상이 서울대 출신 판사들인데 나머지 비서울대 출신에게 논란이 되는 판결을 맡겨요. 그 사람들에게는 이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서울대 출신도 가끔 사회적 논란이 되는 재판을 맡는데 박 판사는 석궁사건 거치면서 법원의 조작 판결로 은혜를 입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박 판사는 (서울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사건을 맡는 겁니다. 문국현 유죄판결을 끌어내 그에게 정치 사망 선고 내린 것도 박 판사에요. 그렇게 정봉주 전 의원 판결까지 맡게 된 것 같아요.”

(박홍우 판사는 현재 의정부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정봉주 전 의원 판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홍우 판사를 비롯해 이상훈 대법관까지 안기부 엑스파일 판례를 뒤집어 판결했습니다. 정 전 의원이 비비케이 관련 폭로가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유죄라는 건데 대법원은 엑스파일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한 책임을 노회찬에게 지울 수 없다고 판결했었습니다. 1964년 미국에서 있었던 뉴욕타임즈 대 설리반 사건이라는 판례를 그대로 따른 것인데 이번에 이걸 뒤집어버렸어요. 무슨 변학도식 ‘니 죄를 니가 알렸다’인가요? 국민의 입을 봉쇄하려는 수작이에요. 긴급조치 시대로 가겠다는 거지.”

 

- 4년동안 감옥에서 지냈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영화에선 감옥에서 강간당하는 장면도 나오던데요.

“강간은 아니지만 성추행 비슷한 걸 당했어요. 2010년 춘천교도소로 이감했을 때 알몸 검신을 당했어요. 2008년 없어진 제도인데 당한 겁니다. 나는 거부했지만 거의 강제로 옷을 벗기다시피 해서 당했어요. 그 뒤 징벌방에 가게 됐어요. 징벌방에는 늘 못된 방장놈들이 있는데 그들이 알아서 괴롭힙니다. 그럼 교도관은 손 하나 대지 않고 맘에 안드는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어요. 내가 강간을 당한 건 아니지만 2009년 원주교도소에 있었을 때 누가 강간당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어요. 해당 교도소는 강간범을 이감시켜버린 뒤 조사도 제대로 안했어요. 교도소 비리가 왜 바깥으로 안나오는지 아세요? 교도관들이 수형자들의 편지를 전부 뜯어보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얘기 있습니까.

“국민들이 판사들을 모시려고 해선 안돼요. 그러니까 저놈들이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겁니다. 내가 1심 때 김용호 판사에게 김용호씨라고 말했다가 3일 감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헌법 제1조 2항에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돼있어요.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의 봉사자라고 돼 있어요. 우리는 판사에게 재판권을 위임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판사는 법의 입에 불과한 국민의 머슴이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이 말좀 꼭 써주세요.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일) ‘원색적 법관 비난에 단호히 대처 하겠다’고 하던데 양 대법원장과 공개 법리 논쟁하고 싶어요. 양 대법원장이 원하는 사람들 다 끌고 와도 좋아요. 나는 박훈 변호사 한명이면 됩니다. (양 대법원장은) 개소리좀 그만하라 그러세요.”

 

김 전 교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법원에게는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재심 청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차라리 법원장을 선거로 뽑는 운동을 통해 사법부를 개혁하는 게 더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지난 11일 김 교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늘 뭐했냐고 묻자, 한 언론과 인터뷰를 마친 뒤 정지영 감독(부러진 화살) 과 술을 마실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언론과 인터뷰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가 곧 발간할 책에 억울하게 성균관대에서 쫓겨난 사건과 이후 석궁 사건 재판과정, 우리 사회 온갖 썩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명을 숨기지 않고 모두 담아냈다고 했다. 우리 사회 부조리를 겨눈 화살이 다시 한번 장전된 것이다.

 

“내 책에는 욕을 많이 써놨어요. 교수라는 사람이 교양도 없이 욕한다고 할 수 있는데,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읽어도 좋아요. 우리 사회는 개판입니다.”

 

2012.1.16 /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

 

영화 ‘부러진 화살’ 실제 사건과는 어떤 차이?

 

 

법관 집 앞에 석궁을 들고 찾아간 교수의 실화를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극중 내용과 당시 사건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직 개봉(1월19일) 전이지만 대법원이 공보판사 등에게 미리 해명자료를 배포하는 등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교수지위 확인소송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는 혐의로 구속됐다가 4년간 복역한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영화는 김 전 교수를 모델로 한 김경호 교수(안성기)가 박준 변호사(박원상)와 함께 판사·검사와 설전을 벌이는 항소심 재판정이 주요 무대다.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실제 이름은 박훈이었다.

 

영화는 김 교수가 실제 석궁을 쐈고 그 화살에 부장판사가 맞았는지를 두고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두 주인공에 대해 묵살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법부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희망과 좌절을 오가며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위선적인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관객 앞에 풀어놓는다.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정지영(65)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실제 공판기록을 토대로 사법부의 위선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교수가 현직 법관에게 석궁을 쏜 혐의로 붙잡힌 실제 사건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왔다. 재판에서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듣지 않는 재판정의 평소 행태가 사법불신을 불러왔다는 주장이 한 축이었고 반대로 각종 다툼을 판단하는 ‘마지노선’ 역할을 하는 재판관에 대한 재판 당사자의 직접 위해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른 한 축이었다.

 

김 전 교수가 석궁을 들고 항소심의 박홍우 부장판사를 찾아간 때는 2007년 1월15일 저녁이다. 당시 있었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모든 진실을 다투는 사건이 그렇듯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영화에서 다룬 것을 뒷받침하는 부분과 동시에 몇가지 다른 정황들이 눈에 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2008년 6월12일 김 전 교수에게 유죄를 확정하고 징역 4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영화에서도 핵심 쟁점이 된, 실제로 김 전 교수가 박홍우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느냐에 대한 부분에서 재판부는 “목격자의 진술, 물적 증거 등 객관적 또는 직접적인 증거의 존재”를 이유로 그렇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현장에서 체포된 현행범이고, 범행 직후 피해자 박홍우의 비명을 듣고 범행 현장으로 달려온 목격자도 2명 있다”며 “서로 몸싸움하던 피고인을 위 피해자로부터 격리시킨 다음 위 피해자의 옷을 들추니까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뤄 김 전 교수가 석궁을 쐈다는 범행의 증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김 전 교수에게 몇가지 불리한 정황들도 있었다. 김 전 교수가 △범행에 앞서 1주일에 1회 정도 발사 연습을 한 점 △앞서 일곱 차례에 걸쳐 박 판사 집 앞을 찾아간 점 △화살을 재장전하려 한 점 △당시 가지고 간 석궁 가방에 회칼이 들어 있었던 점 등이다. 김 전 교수는 회칼에 대해 재판부에 “2007년 1월27일 노량진 수산시장 근처로 이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리용) 회칼을 미리 구입해 우연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당시 재판장이 첫 여성 대법관으로 전향적인 판결을 다수 내렸던 김영란 대법관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그러나 대법원 역시 영화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룬 부분들은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김 전 교수 쪽이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한 ‘부러진 화살’은 대법원 재판부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석궁 공격을 받았다는 박홍우 부장판사는 1심 공판에서 자신을 쏜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즉 부러진 화살은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보고서나 검찰의 증거물 가운데 부러진 화살은 없었다. 김 전 교수 쪽은 이를 바탕으로 ‘증거 조작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범행현장에서 증거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였다고 볼 여지는 있다”면서도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을 수사기관이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없으므로 이를 증거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러한 경우 위 화살 1개라는 증거물이 없는 상태에서 나머지 검사 제출의 증거에 의하여 범죄의 증명이 있는가를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의 중요한 의혹 가운데 하나인 박 판사의 옷가지 혈흔에 대해서도 역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박 판사는 속옷 상의, 내복 상의, 와이셔츠, 조끼, 양복 상의 순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증거로 제출된 박 판사의 옷에는 화살이 관통한 구멍이 나 있었고 속옷 상의와 내복 상의 그리고 조끼에는 구멍 주위로 피도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입었던 와이셔츠만 깨끗했던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에 대해 “와이셔츠의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속옷과 내의에는 복부 부위에 다량의 출혈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조끼에는 육안으로 혈흔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흔적만 보이는 점, 처음 위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은 위 피해자의 옷을 들추니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출혈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2012.1.16 /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

 

‘철창’ 안에 갇힌 ‘수학자의 꿈’

김명호씨 재임용 탈락 ‘응어리’ 재판부에 ‘발사’… 사법부 불신으로 ‘외골수 법정투쟁’

 

“가해자는 내가 아닌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국민 저항권리에 의거해서 심판한 것이다. 법을 안 지키고 재판하는 사람에게 법을 맡길 수 없다. 국민들이 법을 지키는 나라가 되도록 살신성인할 것이다.”

1월 15일 현직 판사에게 석궁을 쏴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밝힌 심경의 일단이다. 법치국가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을 공격한 행동, 그것도 재판 결과에 대한 불복의사 표현의 한 방법으로 담당재판관을 테러한 행위가 그토록 당당한 일일까. 그렇다면 김명호씨도 ‘개인적 사안’을 ‘공적인 거대담론’으로 포장하는 데 능숙한 ‘사악한 지식인’의 전형적 행태를 보인 것인가.

한때 최고학부 교육자였던 그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없다. 어린 시절 그는 집안의 ‘기대주’였다. 서울고와 서울대 수학과 재학 시절, 수학적 두뇌가 뛰어난 수재로 주목을 받았다. 미국 미시간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그는 마치 ‘수학자의 길’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난의 시작은 12년 전부터 시작됐다. 학자로서 당연한 문제제기가 발단이 된 것이다. 그는 지난 1995년 1월 성균관대 대학입시 본고사 시험문제 중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그해 출제교수들과 대학당국의 보복조치로 두 차례나 부교수 승진 탈락과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1996년 2월 끝내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교수 재임용제에 의한 성균관대 역사상 첫 사례였다. 물론 학교당국은 ‘성균관대의 실수’를 지적한 사안을 문제삼지 않았다. 김명호씨가 제출한 논문의 부적격 평가와 교수로서의 품위 손상이 해직 이유였다.

그러나 김명호씨를 잘 아는 교수들은 그의 학문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연구실적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받은 논문이 미국의 권위 있는 논문분류 기관인 SCI(과학논문 인용색인)에 등록됨으로써 대학당국의 징계가 정당했느냐는 의문을 낳게 했다. 전국 189명의 수학자들도 “이 정도의 연구실적으로 부교수 승진에 탈락했다면 국내 수학자 중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명호씨도 “논문 부적격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학문적 능력 갖춘 ‘괴짜 교수’

다만 그는 성균관대의 ‘괴짜 교수’로 통했다. 그의 거친 입담 때문이다. 그는 자기 본분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자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생각을 강요했다. 재판과정에 논란이 됐던 그의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에게 학생의 본분은 학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고지식함은 수강생의 학점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어떤 학기엔 ‘김명호 교수’의 수강생 3분의 1 가까이가 F학점을 받은 일도 있다. 그는 이와 관련,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않고 학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취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리는 한국 대학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점처리였다. 이같이 타협하지 않는 그의 학자적 신념은 나름대로 결실을 얻기도 했다. 성대가 수학과 설립 이후 처음으로 포항공대 대학원 입학생이 나와 교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명호씨는 “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공부 이외에는 학생들과 자주 어울렸다. 사실 그는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축구와 족구를 자주 즐겼다. 간혹 운동 뒤 편한 복장으로 수업을 하는 일도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이같은 원리주의적 사고는 결국 학생 및 학교당국과도 부딪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수업 중에 “수업에 빠지고 데모하는 학생은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또 심지어 수업시간에 1995년 당시 입학시험 출제자를 지칭하며 욕설을 해 학생들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명호씨가 ‘내가 학과장이 되면 과 내 서클과 학생회를 모두 없애버리겠다’ ‘(학부생들에게) 성대 대학원은 쭉정이니 절대 오지 말라’ ‘자신(교생실습을 나간 학생을 지칭)들이 공부하기 싫어 가는 것이니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얘기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는 재판과정에서 교수 부적격 사유로 학교당국과 학생들이 밝힌 김명호씨의 발언이다. 교수 지위확인 소송의 항소심에서 주심을 맡았던 이정렬 판사는 “소송의 핵심은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그와 그의 가족은 1995년 낸 ‘부교수직 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대법원 판결 1997년 12월 23일)한 뒤 1998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라는 불명예는 적도 너머 뉴질랜드까지, 태평양 건너 미국에까지 그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뉴질랜드와 미국 등에서도 그가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은 자원봉사뿐이었다. 일자리라는 게 고작 무보수 연구교수였다. 그의 연구여건 역시 최악이었고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다. 성대 문제가 그의 발전 장애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해 기자와 만난 김씨는 “학문적 성취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보수도 없었지만 열심히 일했다”면서 “그러나 나에게 ‘재임용 탈락’의 상처가 너무 컸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가족 생계도 늘 걱정거리였다. 아내인 김모씨가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아내에 대해 “내가 할 얘기가 뭐가 있겠느냐”면서 “재판에 지면 모든 게 끝장이다.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면목이나 있겠는가”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지적했던 1995년 성대 수학문제.

 

2001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생활은 뉴질랜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현재 21세)을 미국 뉴저지주에 남겨둔 채 2005년 3월에 김명호씨는 귀국했다. 아내는 베이비시터 등 잡일을 하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김씨는 가족에게 “다시 재판을 하겠다”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도 재판하고 있지 않느냐”고 설득했다.

귀국한 김명호씨는 2005년에 ‘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그가 다시 소송을 낸 까닭은 2005년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개정 법률에는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 제기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 연구논문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한 김민수 서울대 교수가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게 용기를 낸 또 다른 이유다.

그는 다시 사법부와 외로운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법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입시오류 지적 때문에 김명호씨가 대학당국으로부터 미움을 샀다고 인정하면서도 “입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학교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다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학문을 위한 양심만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복직운동이 사법부 저항운동으로

 

1심에서 패소한 뒤 그의 재판관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단적으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변호사도 없이 ‘나홀로 투쟁’을 하게 된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김명호씨는 “한 동문 변호사는 나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사람은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게 마련이다. 그런 불신은 ‘나홀로 법정투쟁’에서 ‘외골수 사법투쟁’으로 점점 바뀌게 만들었다. ‘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내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그는 1인시위 과정에서 “판사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면서 “나에 대한 관심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처음에는 다른 해직교수들과 공동투쟁을 했지만 그들과 곧 헤어졌다. 자신의 복직운동이 사법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바뀐 것도 이 무렵이다.

그가 지난 4월 17일 재판관들을 상대로 ‘2006 형제24637 사건에 대한 맞고소 및 국제적 망신, 성대 입시부정 은폐방조하는 판사들 고소(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라는 제목의 고소장을 냈다. 그 고소장에 “1995년도 성대 입시부정 사건의 진상을 밝힘으로써 첫째 공공의 이익과 사회정의를 세우고, 둘째 개인적으로는 성대에 복직 등의 행복추구권리(헌법 제10조)를 행사하고자 합니다”라고 고소이유를 적고 있다.

 

1월 15일 피습당한 서울고법 박홍우 판사가 강남구 서울의료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또 대법원의 ‘교수재임용법’ 해석이 지나치게 임용권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판례연구를 통해 만든 ‘20년간 양심적인 교수들을 대학에서 축출한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의 문제점’이라는 긴 제목의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를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임용은 임용권자의 자유재량행위’라는 대법원의 재임용법 해석이 양심적인 교수들을 강단에서 몰아낸 대학의 법적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요 요지다. 김명호씨는 또 이와 관련, 헌법소원도 낼 예정이었다.

김명호씨는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대법원장이 지난해 11월 지방법원 순시 과정에서 검사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박홍우 부장판사를 습격한 지난 1월 15일 이 고발사건과 관련해 김명호씨가 고발인 조사를 받고 난 뒤 ‘해서 안될 방법’을 동원해서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김명호씨의 억울함은 성대 당국과 학교임용제를 두둔하는 사법부를 동일시했다. 그것이 사법부에 대한 적대감이 외연화한 것이다.

2007.1.30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

 

이정렬 판사, “판결문 봤다면 테러 없었을텐데”

 

고법 부장판사 석궁 테러 사건의 발단이 됐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교수지위확인 청구 소송의 주심 판사가 17일 재판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상세하게 공개했다. 서울고법 민사 2부 이정렬 판사는 ‘박홍우 부장판사님의 쾌유를 빌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제기한 대학입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과 오류 지적에 관한 보복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점을 모두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판사의 글로서는 이례적으로 고법 배석판사로 발령되기 전부터 이번 사건을 맡기까지의 개인적인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술하며 김 전 교수에 대한 판결에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 판사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오류 지적이 원고의 징계 및 이 사건 재임용 거부 결정의 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원고가 용기있고 정당한 행동을 할 것이면 그와 더불어 교원으로서 덕목도 함께 갖추고 있는지를 원고 스스로 살펴 보았어야 한다’고 적시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판결의 기본적 구도는 ‘학자적 양심이 있으나 교육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의 재임용 탈락의 적법성 여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힌 뒤 “원고가 학자적 양심이 있다는 점은 쟁점도 되지 않았고, 재판부에서도 그 점을 인정했다”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교육자적 자질을 따지는 심리과정에서 원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보복을 당하였다는 점뿐이었다. 당시 학과장이나 학생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할 때 원고는 반대 신문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은 ‘전문지식을 가르칠 뿐이지 가정교육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는 진술까지 했다”고 공개했다.

 

이 판사는 “심리 과정에서 부장판사는 김 전 교수를 위해 상당한 배려를 했다”며 “원고의 청구 취지가 1996년 3월1일자 재임용거부 행위의 무효를 구하는 것인데 공휴일이어서 청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도 이 점을 바로 잡기 위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변론을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고는 이 점을 모르고 청구 취지를 그대로 유지해 부장판사가 3월1일에 재임용거부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툼없는 사실로 정리해주기도 했다. 편파적으로 심리를 진행했다고 취급되는 점에 대해 재판부는 통분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 전 교수는 판결 정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만을 알고 테러를 감행했다고 파악되고 있다. 저희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판결서를 작성했는데 내용도 보지 않고 결과만으로 테러를 감행한 것을 보고 당사자 설득을 위한 판결서 작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관해 깊은 회의에 빠져 든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2010-4-4 / 헤럴드경제 박정민 기자(bohe@heraldm.com)

 

-------------------------------------------------------------------------------------------------------------------------------------------------------

 

 

‘석궁 사건의 진실’ 쟁점① 재임용 탈락… 괘씸죄냐 자질 문제냐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 부러진 화살 > 이 26일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람객들의 폭발적 반응에는 사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영화 속 상황과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진실공방도 달아오르고 있다. 영화 제작진은 "98% 이상 진실"이라고 밝혔지만 법원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석궁 테러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사건의 단초가 된 김명호 전 교수의 재임용 거부가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데 따른 '괘씸죄'인지, 김 전 교수의 자질문제인지가 1차 쟁점이다. 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뭔지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도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3번째 쟁점은 영화의 빌미를 제공한 재판 절차상의 문제다.

 

석궁 사건은 1996년 2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한 데서 시작된다. 영화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정확히는 이보다 앞선 사건이 있다.

김 전 교수는 1995년 1월 대학별고사 '수학2' 과목 주관식 7번 공간 벡터 증명 문제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학과장인 채영도 교수와 이 문제 출제자인 이우영 교수는 모범답안을 만들어 따르라고 한다. 이를 거부한 김 전 교수는 채점위원에서 배제된다. 반년쯤 뒤인 같은 해 5~7월 수학과 교수들은 성균관대 교원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청원한다. 징계 사유는 학습 방해와 욕설, 비방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관련된 것들이다. 수학문제 오류 지적 과정에서 김 전 교수의 태도가 문제라는 대목도 들어있다. 교원징계위원회는 정직 3개월을 결정했다. 이듬해인 1996년 2월 성균관대 교원인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김 전 교수를 재임용 대상에서 제외한다.

김 전 교수는 재임용 탈락이 성균관대 수학과의 보복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법원이나 학교 측의 입장은 다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재임용 탈락의 진짜 이유였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수업시간 중 시위로 인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자 "저런 새끼들이 학생이냐" "저런 놈들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리고 싶다"고 했다고 돼 있다. 또 "내가 내년에 학과장이 되면 과내 모든 서클을 없애버리고, 학생회도 없애버리겠다"고 말한 내용도 들어있다. 김 전 교수는 또 학칙에는 수업시간의 3분의 2 이상을 출석해야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기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학점을 준 일도 있다.

 

 

이렇게 끝날 뻔한 사건에 의외의 변수가 등장했다. 2003년 2월 헌법재판소가 사립학교법 일부 조항에 문제가 있다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사립교원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려면 구체적인 기준과 요건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조항을 문제 삼았다. 국회는 헌재 결정에 따라 2005년 사립학교법을 개정했다.

법이 바뀌자 김 전 교수는 같은 해 3월 성균관대를 상대로 재임용 탈락 취소 소송을 냈다.

새 사학법 규정을 소급 적용할 경우 학교 측의 사전 통지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측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보면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봤다. 같은 해 9월 1심 법원은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장인 이혁우 부장판사는 소송 상대방인 성대 출신이다.

김 전 교수 측은 이것이 패소의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김 전 교수는 항소했다. 그러나 2007년 1월12일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교수에게 다시 패소 판결한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은 " '연구실적 및 전문영역의 학회활동' 기준에는 적합하지만 '학생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 능력과 실적, 품위유지' 기준에 현저하게 미달한다"고 패소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 판결 사흘 뒤인 15일 박홍우 부장판사의 집앞에서 석궁 사건이 일어났다. 영화 속 석궁 사건의 발생 원인과 실제 법정에서 일어난 상황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석궁 사건의 진실’ 쟁점②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공방

사건의 본질인 석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좀 더 복잡한 문제다.

김명호 전 교수는 2007년 2월 기소됐다. 그의 혐의는 일부에서 알고 있는 살인미수가 아니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상해)이다. 김 전 교수는 1심·항소심 공판이 진행된 15번의 재판 과정에서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판결문과 공판조서, 법원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1심에서 김 전 교수는 석궁으로 박홍우 부장판사를 맞히긴 했지만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상해 혐의는 과실은 처벌하지 않으므로 고의가 없으면 무죄가 된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는 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와 김 전 교수도 직접 심문 절차에 참여했다.

 

 

영화는 항소심에 집중돼 있다. 항소심과 영화에서 김 전 교수는 석궁이 박 부장판사를 맞힌 사실이 없다고 했다. 박 부장판사에게 생긴 상처는 자해한 것으로 의심했다. 내의와 조끼에는 혈흔이 있는데 중간에 있는 와이셔츠에 핏자국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증거물인 박 부장판사의 옷에 묻은 피와 실제 피를 대조해봐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법원 관계자들은 "설령 자해를 했더라도 옷에 묻은 피는 박 부장판사의 피다. 김 전 교수는 혈흔 대조를 통해 무엇을 밝히려는 것인지도 설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보면 재판 막바지에 변호사가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김 전 교수 측 변호인은 "박 부장판사가 병원에 가서야 와이셔츠에 피가 묻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누군가에게 시켰는데 허둥대다가 실수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법원 관계자는 "(법률 전문가인) 박 부장판사가 상처와 증인만으로도 범죄가 입증된다는 걸 뻔히 아는데, 한참 뒤에 위험 부담을 안고 거짓 증거물을 만들겠느냐"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항소심에서 석궁으로 박 부장판사를 맞힌 일이 없다고 했다. 영화에서 김 전 교수의 변호사는 '석궁이 제대로 맞을 경우 수십㎝ 두께의 돼지고기를 뚫고, 잘못 장전되면 발사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다. 화살이 빗나가 벽을 맞히면 화살촉이 뭉툭해지고 화살이 부러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전문가들은 "석궁의 시위를 당기는 2개 손가락에 균일하게 힘이 분배돼야 하지만 초보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기 힘들다. 이렇게 장전하면 화살이 부러지거나 쪼개지고 심지어 사과도 관통하지 못할 정도로 위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냈다.

김 전 교수도 검찰 조사 때 "다다미를 걸어놓고 연습할 때 어떤 곳은 1㎝ 정도 꽂히고 다다미가 풀려진 곳은 좀 더 깊이 꽂혔는데 그렇게 치명적인 위력을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김 전 교수가 유죄를 선고받은 이유는 또 있다. 가령 사건 한 달 전부터 김 전 교수가 박 부장판사의 집을 찾아가 귀가 시각을 확인했고, 사건 일주일 전에 구입한 회칼을 석궁가방에 넣고 있었다. 김 전 교수는 석궁을 연습한 이유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연습한 장소는 박 부장판사의 집근처 공터였다고 법원 측은 밝혔다.

 

 

‘석궁 사건의 진실’ 쟁점③ ‘재판이냐, 개판이냐’ 공판 절차 문제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영화 < 부러진 화살 > 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대사이다. 이런 항변은 모두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 사건 항소심에서 나온다.

석궁 사건 항소심은 영화의 초점이 되는 대목이면서, 법원과 입장이 가장 엇갈리는 부분이다.

김 전 교수는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부에 많은 요구를 하지만 대부분 미뤄지거나 기각된다.

영화는 이런 점 때문에 당시 재판이 부당했으며, 법원이 형사소송법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주장하는 것은 박홍우 부장판사 옷가지에 묻은 피가 실제 박 부장판사 피가 맞는지에 대한 증거신청이 기각된 것이다. 김 전 교수 측은 옷가지 혈흔을 확인해달라며 박 부장판사의 혈액을 압수라도 하라고 한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거부한다. 이에 김 전 교수 측은 박 부장판사가 자해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법원이 외면한다는 입장이다.

 

 

법원 측은 재판이 부당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법원 관계자는 "김 전 교수는 현행범이고, 수많은 증거와 증인이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거듭 조사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가 "화살이 배에서 튕겨나왔다"고 했다가 "빼냈다"고 하는 점에서 위증 가능성이 큰데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했다. 법원 관계자는 "1심에서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를 증인으로 불러 직접 신문했고, 9차례 재판에서 가능한 주장을 모두 펼친 만큼 피해자를 거듭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위증 주장도 근거가 없어 더욱 부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석궁이 발사되는 와중에 피해자가 자세한 것을 기억할 수 없다. 오히려 큰 줄거리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소한 것을 두고 위증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박 부장판사가 맞았다는 '부러진 화살'이 없는데도 재판을 종료한 것 또한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상해 사건에서 피해자의 증언과 상처가 있고, 의사의 진단서, 목격자들이 있는데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증거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죄가 선고될 수는 없다. 범인이 칼로 피해자를 살해한 후 칼을 깊은 강물에 버려 칼을 못 찾게 만들어버리면 피해자의 시신, 의사 진단서,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는데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느냐"고 했다.

영화와 관련, 정영진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26일 법원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 사건은 어느 형사 사건보다 피고인 측 증거 신청을 많이 받아 준 사건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종전에 진행된 공판 내용들은 대거 생략하고, 피고인 측 증거 신청이 기각되는 장면들만 과도하게 부각시켰고, 재판부의 판결 이유 고지 장면까지 생략한 채 재판부가 재판을 잘못한 것처럼 묘사하였다"고 말했다.

2012.1.26 <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

-------------------------------------------------------------------------------------------------------------------------------------------------------

 

석궁사건의 항소심 제2차 공판 녹취 기록 (박훈 변호사)

 

http://blog.naver.com/hunpk1/70129085413

 

-------------------------------------------------------------------------------------------------------------------------------------------------------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 <부러진 화살>로 돌아온 ‘석궁테러’ 사건

 

2007년 1월 중순경 언론기사는 퇴근길에 석궁으로 쏜 화살을 복부에 맞은 모 판사 얘기로 도배질되었다. 재임용에 탈락했다가 교수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김명호 전직교수가 패소하자 담당재판장이던 박홍우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찾아가 이른바 ‘석궁테러’를 가했다는 얘기였다. 전국의 법원장들은 이를 ‘사법테러’라 규정하고 강력대응을 선포하였지만, 위치로나 직업으로나 가까이 있던 나로서도 사건의 실상은 좀체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주는 망각의 틀에 이 사건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로 나를 다시 찾아왔다. 중상을 당했다는 그 고법 부장판사는 서울 근교의 법원장으로 승진했고,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 교수도 지난해 1월에 만기출소를 하였으니,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호들갑 떨던 언론기사만큼이나 사라진 것일까?

 

수학과 교수 김경호(안성기)는 대입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학교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다 교수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김 교수는 재임용탈락의 근거가 된 종전 사립학교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귀국하여 교수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다. 결과는 조작된 증거와 부실한 증거조사 끝에 내려진 패소판결. 김 교수는 재판을 담당한 박봉주(김응수) 부장판사를 찾아가 위해를 가하려 하고 뒤엉켜 싸우던 과정에서 석궁으로 쏜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로 김 교수는 구속기소되어 형사법정에 서게 된다.

 

석궁으로 위협하기는 했지만 화살을 쏜 적이 없다며 항변하며, 벽에 맞아 부러진 화살은 어디 있는지, 혈흔이 박 판사의 것이 맞는지, 속옷과 겉옷에는 피가 묻었지만 중간에 껴입은 옷에는 왜 피가 묻지 않았는지, 사람 몸에 쏜 석궁이 깊이 15cm까지 들어가지만, 박 판사의 상처 깊이는 왜 1cm도 안되는지 되물으며 증거조사를 신청하지만, 1심 재판부도, 항소심 재판부도 이를 외면한다.

 

적당하게 변론하려는 변호사를 즉석에서 해임하고 독학으로 ‘나홀로 소송’을 전개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런 그에게 스스로를 ‘노동자 피 빨아 먹는 변호사’라고 말하는 박준(박원상) 변호사가 합류한다. 그렇다고 재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보수꼴통 판사로 등장하는 신재열 판사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김 교수와 박 변호사의 각종 노력을 번번이 가로막는다. ‘이미 검찰에서 조사 다 했잖아요’라며. 그렇게 김 교수의 재판은 맥없이 끝난다. ‘항소를 기각한다’는 짧은 결론만 남기고.

 

석궁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 채듯 이 영화는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영화 속 김경호 교수는 실제 사건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이고, 박준 변호사는 창원지역에서 노동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진 박훈 변호사이며, 테러를 당했다는 피해자 박봉주 판사는 당시 박홍우 고법 부장판사이다. 이 정도면 이미 감독은 상상이 아니라 사실에, 허구가 아니라 진실에 의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 신재열(문성근 분) 부장판사의 이름도 실제 인물 이름에 가까운 것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현실의 김 교수가 영화에서처럼 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 속 김 교수는 구치소로 접견하러 온 박 변호사에게 “법은 아름답다. 하지만 법률가의 지배는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심지어 김 교수는 “법엔 빈틈이 없다. 법은 수학처럼 딱 딱 들어맞는 예술이다.”고 말한다. 이 영화 속 김 교수의 다른 모든 대사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정작 이 대사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법률가의 지배는 그렇다 치더라도 법도 아름답다고? 법에 빈틈이 없다고? 그렇지 않다. 법은 이 사회 탐욕과 오욕과 피와 눈물과 힘겨루기가 빚어낸 짬뽕 아닌가. ‘정의’라는 이름을 걸고, ‘공평’이라는 분을 바르고. 그래서 법률가의 지배는 추하되 법은 아름답다는 얘기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곤혹스럽다. 더구나 법은 엉성하기 짝이 없는 허술한 그물망과 같다. 숭숭 구멍이 뚫려있지 않다면 론스타가 어떻게 몇 조를 챙겨 ‘먹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가 법을 얘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법을 다루는 법률가, 더 구체적으로는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법부를 다룬 영화다. 그 사법부의 오만과 편견과 아집과 집착을 다룬 영화다. 석궁 사건이 발생한 순간 재판의 결론은 정해졌으며, 남은 것은 어떻게 해서든 별 탈(?) 없이 재판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게 사법부의 수장들이 내심 합의한 약속일 것이다. 항소심 재판장이던 이태우(이경영 분) 판사는 고뇌하다 사직하는 사람이지만, 신재열 판사는 이를 꿋꿋하게 수행하는 우리 시대 끝장 판사의 전형이다. 그런 사법부 아래서 깐깐하고 원칙에 충실한 자칭 ‘합리적 보수’의 김 교수가 설 자리는 없다. 명색이 명문 사립대의 교수였던 사람조차 이럴진대,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할 능력이나 재주가 없는 사람이나, 제대로 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만큼 재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저 요행과 은전을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직업으로 법정을 들락거리면서 나 스스로도 적법절차와 진실발견이라는 대명제를 무디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샌가 영화의 흐름과 앞으로 나올 일들이 이미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분노와 절망의 공감은 서서히 떨어졌다. 그 대신 한 때 잘 나가던 김 교수가 이런 운명에 빠지게 된 배경이 더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영화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김 교수의 운명은 교수들을 마음대로 통제하고자 하는 사립대학의 지배욕과 이를 편들어왔던 사법부의 판결들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사정부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던 1987년 6·10 민주대항쟁을 하루 앞둔 날, 대법원은 20여 년간 전국 400여 명의 교수를 해직으로 이끈 악명 높은 판결을 내린다. 대구 계명기독대학의 한 교수가 임용기간 만료 후 재임용을 거부당하자 소송을 거는데, 대법원은 교원의 재임용은 재단의 자유재량행위이고, 사립학교법상 임용기간이 만료되면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당연퇴직된다고 판결을 내린다. 그 이후 이 판결은 모든 사립대학 교수들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사슬이 되고, 때로는 수백 명의 목을 자르는 망나니의 칼이 되었다.

 

그런데 2003년 헌법재판소는 재임용과 관련하여 객관적인 기준의 재임용 거부 사유, 교원의 진술 기회, 재임용 거부 사전 통지, 불복절차 등에 관한 보완규정을 두지 않은 것 사립학교법이 헌법 제31조 제6항을 위반하였다며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였고, 국회는 헌재의 결정취지를 반영하여 사립학교법을 개정한다. 영화 속 김 교수가 뉴저지에서 머물다 재임용의 희망을 안고 귀국하기로 한 것도 중간에 이런 법 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이 개정되자 해직되었던 교수 한 명이 군산기독학원을 상대로 교원재임용에서 자신을 제외한 결정이 무효라며 소송을 걸지만, 2006년 3월 9일 대법원은 사립학교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임용기간이 만료된 사립학교 교원은 임용기간 만료로 대학교원 신분을 상실한다”고 판결한다. 이 대법원 판결은 김 교수가 제기한 교수지위확인소송의 판결에 그대로 투영된다. 영화 속 박봉주 판사를 통해. 그 대법원 판결의 주심 대법관은 지금 대법원장이 되었고, 현실 속 박홍우 판사는 서울 근교의 법원장이 되어 있다. 물론 지난 연말 대법원이 선고한 정봉주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판결의 항소심 재판장도 박홍우 판사였다. 세상 좁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은 이렇게 운명 지어지지 않는가?

 

오늘도 서초동 법원 앞에는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목에 걸친 1인 시위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판사’가 문제가 아님을 알 때다. 법원을 신성의 영역에 두고 있을 이유도 없다. 법원 역시 시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통제하고, 시민들이 선임하고, 시민들이 감시하며, 시민들이 법원의 큰 구조를 짤 때다. 민주사회에서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대법원장은 2일 시무식에서 법원에 대한 원색적 비난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다. 김명호 교수의 소위 석궁 사건이 벌어지자 판결을 앞두고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라며 엄벌하겠다던 전국 법원장회의의 공표가 오버랩되는 것은 내가 신경과민인가, 아니면 역사의 반복인가? 이든 저든 시민들도 이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사법피해자가 내가 안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엘리트 사법부가 결정하는 나의 운명에서 벗어날 때다. 운명을 바꿀 때이다.

 

2012.1.3 / 미디어오늘 / 황희석 변호사

-------------------------------------------------------------------------------------------------------------------------------------------------------

 

변호사가 본 <부러진 화살> - 금태섭 / 변호사

 

변호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겪은 일.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의뢰인은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반대로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은 의뢰인이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역시 강력하게 반박을 했다. 변호인으로서 의뢰인의 편을 들고는 있지만 진실이 어느 쪽인지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상황. 법정에서 엉뚱한 사태가 벌어졌다. 의뢰인과 치열하게 다투던 피해자들이 증인석에 서서 너무나 뻔한 일에 대해서 입을 맞춘 듯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소한 부분이긴 했지만, 사건이 유죄로 판정이 되든 무죄로 결말이 나든 그 부분의 증언은 객관적인 자료에 비추어볼 때 위증이 될 수 있었다.

 

신성한 법정에서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해대는 모습에 판사가 벌컥 화를 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을 법대 앞에 세워놓고 준열히 꾸짖었다. “여러분은 얼마 안 있어 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다시 서게 될 겁니다. 위증을 하고도 처벌을 면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피해자들은 잘못했다고 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피고인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뢰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얼마 후 예상과 달리 의뢰인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항소에 대해서 의논을 하던 의뢰인은 판사가 피해자들과 주고받은 말을 증거로 내자고 했다. 법정에서 재판장이 피해자들에게 위증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야단을 치고 피해자들이 잘못을 인정한 것만큼 강력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 진행상황을 기록하는 공판조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재판장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증인들을 세워놓고 위증죄로 처벌될 것이라고 야단을 쳤더라도, 보기에 따라서는 부적절했다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의 발언을 기록으로 남길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의뢰인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그런 중요한 일이 어떻게 기록에서 빠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법에 재판하면서 한 말을 적으라고 되어 있지 않나요?” “, 물론 법에는 증인의 진술을 적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관행상 판사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빼지요.” “법대로 재판 하는 거 아니었나요? 판사 맘대로 하는 건가요? 그리고 판사가 그렇게 멋대로 하면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그건설명하려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법에는 증인의 진술을 적게 되어 있다. 조서가 정확하게 작성되지 않으면 변호인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증인이 한 말을 뺐고, 변호사인 나도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걸 의뢰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재판이 법대로만 되는 건 아니라고? 판사 비위를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고? 하지만 재판이야말로 법에 정해진 그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변호사가 법에 정해져있는 이의를 제기하면서 판사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법대로가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따라 재판을 해온 것일까.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느낀 의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찾아가서 석궁을 쐈다는 뉴스를 봤을 때 법률가로서(그 당시는 검사였다) 처음 든 생각은,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판사를 활로 쏘다니. 그러려면 애초에 소송을 제기하지 말았어야지 결과가 맘에 들면 가만히 있고 그렇지 않으면 판사를 공격한다면 도대체 재판을 왜 받느냐 말이다. 나중에 그 교수가 재판 과정에서 이런 저런 주장을 한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관심도 없었다. 법치주의의 정반대쪽에 선 사람의 말이라고 치부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서형이 쓴 <부러진 화살>이란 책을 보면서, 그리고 이번에 정지영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문제의 교수는 석궁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판사를 활로 쏘는 게 말이 되는 짓이냐고 비난을 하려면, 활을 쐈다는 사실은 확인이 되어야 한다. 피고인은 그 핵심적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사 그 사실이 아무리 당연해 보인다고 해도 검사가 증거를 제출해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 증거라는 것이 이상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부러진 화살을 보았다고 했다. 화살이 여러 발 발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일 판사가 화살에 맞았다면 그 부러진 화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화살의 종적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재판을 법대로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점이다. 판사를 활로 쏠 정도의 사람이라면 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없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법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무기를 들게 된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교수는 오히려 법대로 재판을 하자고 부르짖은 것이다.

 

법률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영화에 나오는 교수의 법률적주장 중에는 황당한 것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는 선뜻 틀렸다고 보기 힘든 것들도 상당히 있다. 어떤 주장은 명백히 옳은 것도 있다. 우선 석궁을 압수한 절차가 위법하다고 주장한 부분이다. 압수를 하면서 작성한 서류의 작성 시간은 사건 직후인 640분으로 되어 있는데 증인으로 나온 형사가 그때 작성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검사는 범행 현장의 급박한 사정상 서류를 작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형사를 두둔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따진 건 그게 아니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 왜 허위로 서류를 작성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무도 답을 하지 않는다.

 

법원을 직접 공격하기도 한다. 피고인은 재판 과정을 녹음하고 녹취록을 남겨달라고 신청하지만 재판장이 거절한다. 녹취록을 만들면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녹음 신청을 받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피고인은 법전을 흔들면서 법대로 하자고 하는데 법원에서 안 들어주는 것이다. 판사를 활로 쏜, 법의 가장 반대편에 선 사람은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법의 대변자인 판사는 그것을 거절하는 장면. 바로 여기가 법률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다.

 

판사들이 이 영화를 보면 화가 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석궁을 들고 판사의 집을 찾아갈 만큼 법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탄식이 나올 것이다. ‘뼛속까지 법률가인나는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석궁 교수가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법을 지켜왔을까. 사법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악독한 범죄자가 법원에 대고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광경이 더 황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 요구에 당당하게 대답을 하지 못 하는 법원의 모습이 더 서글픈 것일까. 실제로 그 교수가 주장하던 내용 중 일부가 몇 년 지나지 않아 법원의 판례로 인정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우리는 도대체 어떤 재판을 해온 걸까. 상영 시간 내내 몸을 뒤척이게 만드는 불편한 영화였다.

 

Cine21

----------------------

"영화는 영화일 뿐 '오버'하지 말자!"- <부러진 화살>은 허구다

1.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다큐멘터리도 진실의 모든 면을 담을 수 없는데, 하물며 극영화를 그대로 믿고 실제 있었던 일을 재단하려고 하는 것은 애초에 틀린 생각이다. 영화에 불과한 <부러진 화살>이 "씽크로율 98퍼센트"라고 하는 것도 오해를 부르기 딱 좋은 말이고, 영화와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공식 대응 자료를 내는 법원도 좀 오버가 아닌가 한다. 실제 사건이 아닌 극영화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게 말이 되는가.

2. 우선 "씽크로율 98퍼센트"를 주장하는 쪽에 대해서 비판하자면, 이 영화에 "객관적 사실"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한쪽의 얘기를 듣고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얘기"에는 사실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도 들어간다.

사실과 가치 판단을 분리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박훈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김명호 교수가 실제로 박홍우 판사에게 석궁을 쏴서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이 사건은 단순한 협박 및 폭행 사건"이라며 "이와 비슷한 사건의 경우 형량은 최대 300만원의 벌금형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다. (I unrespectfully disagree.)

3. "이와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있기나 했는지도 의문이지만(판사 집에 석궁 혹은 그와 유사한 흉기를 들고 찾아가서 협박한 사건은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실제 있었다면, 그게 어떻게 최대 300만 원 정도의 벌금 사안에 불과할 수 있는가(이 부분에 대한 박훈 변호사와 나의 의견 차이. 이것이 가치 판단이다.)

즉, 박훈 변호사가 "이 사건은 단순한 협박 및 폭행 사건"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에 관한 진술이라기보다는 '평가'다. '평가'를 듣고 만든 영화에 대해 씽크로율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에 대한 씽크로율이 아니라 (박훈 변호사를 비롯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씽크로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석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장소는 박홍우 판사가 살던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잠실에 있는 평범한 아파트인데 사건 당시 우연히 나도 동은 다르지만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보도를 보고, 만약 내가 퇴근했는데 내 결정에 불만을 가진 (당시 나는 검사였다) 민원인이 석궁을 들고 아파트 계단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상상해보았다. 김명호 교수는 위협을 하려 했을 뿐 절대 석궁을 쏠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화살 앞에 선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5. 당시 박홍우 판사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사람과 맞닥뜨렸다면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보다도, 짐승처럼 화살에 꿰어진 모습을 위층에 있는 가족들이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6. 판사의 오판이나 검사의 잘못된 결정은 가능한 없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설사 잘못된 판결을 했다고 하더라도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 앞에서 석궁 앞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김명호 교수 측이 주장하는 사실 관계가 그대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즉 석궁을 가지고 협박만 할 생각이었는데 옥신각신하다가 발사되었을 뿐이고 실제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징역 4년이 결코 지나치게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실제 사건에 대해서 "300만 원 정도의 벌금 사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만든 것이다. 당연히 "전체로서의 진실"이 될 수 없다.

7. 그러나 어쨌든 <부러진 화살>은 극영화일 뿐이다. 이 영화가 실제 재판 과정과 다르다고 보도 자료를 내는 법원이나 해명을 시도하는 판사도 극영화의 본질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는 애초에 영화가 100퍼센트 사실 그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전제에 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화가 될 수가 없다. 극영화에 대해서 해명을 시도하는 것은 영화의 내용을 '진실'의 한 후보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객관적 진실이 존재한다고 할 때 그 사건에 관여한 사람이, "실제 진실은 ①스크린에 나온 내용이 아니라, ②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이것입니다."라고 하는 순간, 극영화의 내용 혹은 발화자의 진술이 진실이 될 수 있는 선택지의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다. 대단히 현명한 대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8. 흔히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마지막 장면에,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This is a true story"라고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마저도 (허구인) 영화의 한 부분이다. "This is a true story"라는 자막 이전 부분은 모두 허구이고, 그 자막은 진실인가? 누가 그걸 보증하는가? 영화감독이?

영화감독 이 진실이라고 하면 모두 진실이 되는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생각해보라. 화자는 자신이 실제로 발견한 책에서 본 것이라며 얘기를 한다. 독자는 그 얘기를 믿고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마지막에 저자의 말에서 작가는 그 얘기도 허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도 허구일 수 있지 않은가.


9. <부러진 화살>은 좋은 영화이고 우리 사법부와 재판 현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사실 실제 재판을 하다보면,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현재의 영'이 되어서 존경하는 판사님들을 모시고 실제 법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부러진 화살>은 "현실에서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우리의 재판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실감나는 영화다. 그런 좋은 영화가, "영화는 사실과 100퍼센트 같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진실 공방"으로 소비되는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깝다.

10. 진실이 아닌 것이 명백하면서도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나 영화가 있다. 예를 들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나 필립 딕의 <높은 성의 사내>는 모두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놓고, 그럴듯한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물론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해서 잿더미가 된 것은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이 책들이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성의 사내>가 허구인 것처럼, 딱 그만큼, <부러진 화살>도 허구다. 때문에 <부러진 화살>의 싱크로율을 따지고 공방을 벌이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우기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다. 논리학에서 말하듯이 전제가 거짓(허구)이면, 모든 진술이 참이 되기 때문이다.

11. 그러나 허구인 것이 명백하지만, <비명을 찾아서>나 <높은 성의 사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러진 화살>이 실제 재판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다. <부러진 화살>이 우리 재판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은, 그것의 싱크로율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12. 영화의 감상과 해석은 관객(과 평론가)의 몫이다. 소재가 된 실제 사건에 관계했던 사람만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영화가 의미 없는 '진실 공방'에 쓸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2. 1.29 /프레시안 / 금태섭 변호사


---------------------------------------------------------------------------------------------------------------------------------

 

석궁 테러와 빗나간 엑소시즘. "법정 실화로 알려진 '부러진 화살' 사실은…"

'법정 실화'와 거리 먼 사법부 고발 영화, 올바른 개혁 위해 판사들이 용감하게 나서야

 

케이블 TV 에선가, 엑소시즘을 소재로 삼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무속인 등 퇴마사들이 악령을 퇴치한다고 애쓰지만, 그 악령 현상이란 게 애초 정신분열에 따른 환각이 아닌가 싶었다. 이걸 모른 체하며 엑소시즘 흉내를 내는 것이 우스웠다. 분별없는 상업방송이지만 정신치료가 급한 사람을 내세워 시청자를 기만하는 것은 범죄 행위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미리 보면서 빗나간 엑소시즘을 떠올렸다. 일부러 시사회를 찾은 것은 "석궁 테러 사건을 통해 사법부를 고발했다"는 홍보 캠페인의 근거가 궁금해서다. 사회 고발 문제작을 여럿 연출했다는 감독이 대법원 판결과 다른 진실을 밝혀내기라도 한 양 떠드는 게 의아했다.

첫 머리 석궁 테러 장면에 등장하는 주역 캐릭터부터 실제와 거리 멀다. 불안한 가해 대학교수 역할을 늘 편안한 국민 배우에게, 반대로 피해 부장판사 역은 음흉한 악역 배우에 맡긴 것은 법정 실화물의 정석을 뒤집었다. 선량한 피고인, 나쁜 판사의 선입견을 주기 쉽다.

영화는 '법정 실화' 간판이 무색하다. 공판기록과 사실에 입각해 각본을 쓰고 캐릭터를 설정했다는 감독의 말과 동떨어진다. 엇갈린 주장과 사실이 재판에 어떤 의미가 있고, 법적으로 옳고 그른지 일깨우는 설명은 없이 등장인물들의 황당, 코믹 언행으로 얼버무린다. 객관적 법률가의 성실한 자문을 구했는지 궁금했다.

사건의 발단인 대학교수의 재임용탈락 무효소송을 길게 되새길 겨를은 없다. 다만 패소 판결한 항소심 주심판사가 진보성향의 유명한 이정렬 판사라는 사실은 기억할 만하다. 석궁 사건 뒤 그는 판결문을 쓴 주심판사로서 깊이 고심한 판결 배경을 밝혔다.

이 판사는 "판결의 기본구도는 학자적 양심은 있으나 교육자 자질을 갖지 못한 사람의 재임용 탈락이 적법한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그 교수는 입시 출제 오류를 지적, 학교와 맞선 탓에 보복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갖가지 일탈 언행에 관한 증거를 토대로 교수 자질과 품위를 정한 재임용 기준에 미달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에 따르면, 교수는 사법부를 불신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또 불리한 증언에 반대신문도 하지 않고"출제 오류 지적은 옳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 때문에 당사자가 입증한 사실만을 근거로 판결하는 민사소송 원칙을 좇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석궁 사건 재판을 그린 영화의 몸통도 엄격한 법리와 거리 먼 수학교수의 '독학 법리'주장과 괴짜 변호사의 법정 밖 변론이 두드러진다. 재판의 핵심은 범행 현장에서 체포된 교수의 행위에 고의성이 있는지 여부다. 그는 몸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화살이 발사됐다고 항변했다. 그러다 목격자가 보았다는 부러진 화살이 검찰 증거에 없고, 부장판사의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는 점 등을 들어 판사가 자해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회칼까지 준비한 정황 등에 비춰 고의성이 충분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교수는 법원이 혈흔 감정 등을 거부한 것을 근거로 "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지"라고 외친다. 일부 언론도 의혹에 매달렸다. 변호사의 언론 플레이를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러진 화살과 혈흔 없는 와이셔츠는 대법원까지 일치된 유죄 판단에 중요한 요소가 못 된다. 석궁에 상해를 입은 명백한 증거를 넘어설 수 없다. 사족이지만, 부장판사의 노모는 아들이 병원에 실려간 황망 중에 벌벌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와이셔츠를 찬물에 빨았다고 한다.

요란한 영화 홍보에 법원은 침묵하고 있다. 사법부 개혁 요구에 맞서는 모양을 꺼릴 법하다. 이런 와중에 영화의 주인공은 황당한 '법전 공부'를 내세워 마구잡이 고소ㆍ고발을 일삼고 있다. 그의 안타까운 자해 행위를 막고 정신적 치유를 도우려면, 늘 용감한 진보성향 판사들이 나서서 뭐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그게 사법 개혁에도 좋다.

 

2012.1.16 / 한국일보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

 

영화 <부러진 화살> 법의 특권을 정조준하다

시사회의 뜨거운 반응, 무엇을 말하는가

 

폭발적인 시사회 반응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전 시사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지속적으로 얻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재미있다. 아무리 의미가 깊고 의의가 있다 해도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지 못하면 그 작품은 실패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은 법정 공방의 현실감과 함께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면서도, 안성기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즐거움, 그리고 결국 통쾌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하는 영화 속의 대사가 말해주듯 세상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니 하는 개탄과 함께, 그걸 돌파하는 개성 강한 인물의 등장은 극적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분명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조차 놓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아, 이럴 수 있는 거로구나. 이래도 되는 거였네!" 하는 용기로 다가온다.

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방어하는 세력에게 바로 그 법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그 방어벽을 허무는 놀라운 반전과 역설이 펼쳐지는 장면들은 영화이면서 또한 현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힘이 있다. 감독의 상상력으로만 구성된 픽션이 아니라, "사실과 영화적 구성이 하나가 된 팩션(fact+fiction)의 위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 자체가 이른바 "석궁 테러"라는 이름으로 불린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내용인데다가, 극중 실제 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최근 정봉주 전 의원 유죄판결의 당사자이며 피고와 변호인의 극단으로 모순된 성격이 거짓 없이 화면에 드러나면서 이 영화는 "법"에 대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지 촌철살인의 격파력을 가지고 일깨우고 있다.

정지영 감독의 뇌관 건드리기

만 들기 어려운 영화가 만들어져, 이해하기 쉽고 보기 쉬운 영화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있던 사건에서 지금의 현실을 생생하게 길어 올린 감독의 시선은 우리 사회의 내면 의식 깊숙한 곳에 이르고 있다. 거의 언제나 우리 사회와 역사의 뇌관을 과감하게 건드려온 감독다운 영화다.

영화의 플롯에는 복잡함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명백하고 상식적일 듯 한 사건과 그 사건의 전개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분과 흥미로움 그리고 아,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법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고 우리는 그 지배에 별 도리 없이 복종하고 있는 상황을 순식간에 무너뜨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개봉되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법부의 제동 가능성과 거대 자본의 견제 장치, 그리고 이와 동맹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보수 언론의 험담이라는 현실에 포위되어 있다. 어느 신문의 기명 칼럼은 문제가 많은 인물을 국민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배우 안성기로, 사법부를 지탄하기 위해 판사는 "음흉한 악역 배우"를 썼다며 사법부 공격에 의도적인 배역을 했다는 식으로 영화를 모독 내지 모함하고 있다.

바 로 이러한 상황을 뚫어내자는 의식과 의지를 담은 영화이기에 더더욱 <부러진 화살>의 흥행 성공은 우리 사회에 중대한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더군다나 영화 <남부군>의 정지영 감독이 오랜 침묵을 깨고 저예산과 국민배우 안성기, 문성근, 이경영, 나영희, 박원상, 김지호 등의 노 개런티 출연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하다.

유죄와 무죄 사이에 있는 것은?

도 대체가 우리의 사법부는 과연 믿을 만 한가? 검찰은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존 법률 체계를 지켜내야 한다는 법조계의 특징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기득권 또는 특권 방어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 있다. <부러진 화살>의 시사회 반응이 그렇게 열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런 현실에 기인한다.

아닌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중대한 정치적 충격을 주었던 일련의 사안들이 최근 잇달아 무죄판결을 받게 된 것을 봐도 검찰개혁은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그와는 또 달리 전여옥 표절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아직도 시간만 죽이고 미적거려지고 있으며, 이명박 연루 의혹이 끊이지 않는 BBK 사건과 관련해 내려진 정봉주 유죄판결을 봐도 사법부의 두뇌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돌아가는 모양이다.

그 무죄와 유죄 사이에서 우리는 이 나라의 사법부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내일 있게 될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 사뭇 긴장된다. 선거과정에서 경쟁자였던 상대에게 사후에 돈을 주었다는 사실 하나로만 모든 판단을 압도적으로 지배해버린다면 법은 그 사회의 사유방식에 경직된 틀만을 강제화할 뿐이다.

사법부의 몰염치

법은 법조문의 기계적 해석과 적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과 연유에 대해 끝까지 치밀하고 섬세한 관찰과 판단, 그리고 고도의 복합적인 법철학적 사고능력을 요구한다. 실체 판단이 쉽지 않은 사안에 대한 증거 능력 검증과 상황 분석, 그리고 논증의 과정에서도 정밀한 능력이 필요하다. 이걸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면 더더욱 문제다. 아니, 그 배제는 범죄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피고의 억울한 상황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억울한 상황을 정당화하는 법적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의 무염치함을 고발하고 있다. 그건 무염치함이라기보다는 범죄행위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무죄인 사람을 유죄로 몰아 얽어매는 것을 뭐라고 불러야 마땅한가? 이 나라 사법부가 단 한 건이라도 그런 일을 했다면 사법부 전체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바다.

그런데 이 나라 사법부는 그런 성찰의 자세가 없다. 가령 한-미 FTA에 대한 법적 토론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사에게 사법부는 경고를 내린다. 공인의 발언에 조심스러움이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러나 한-미 FTA로 말미암아 법적 희생자가 생겨날 사태에 대한 공인의 책임에 대한 고뇌와 발언은 일체 없다. 사법부의 기득권을 흔드는 상황에 대한 경계경보만 발동할 뿐이다. <부러진 화살>은 그런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경계경보다.

천만 관객 기대하며

영화 <최종병기 활>이 7백만을 넘었다. 그러니 <부러진 화살>은 반으로 부러졌으니 최소 3백50만은 들 것이라는 농담을 누군가가 한 모양이다.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받아쳤다. "부러졌다고 반이 아니라 두 쪽이 된 거지. 천만은 넘을 걸."

만 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변한다. 사법부가 법적 정의에 대한 최종 해석자로 권위를 갖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중대한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누구나 권력과 기득권의 횡포에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보루가 생겨나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를 정조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특권의식과 기득권에서 해방된 사법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사법부가 되는 것은 사법부 자신에게도 당연한 과제이자 책임 아닌가?

 

2012.1.18 / Pressian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

 

사법부를 향한 화살... 살짝 빗나갔습니다

<부러진 화살>, 호평 속 귀담아 들어야 할 비판

 

1994년경으로 기억한다. 어느날 아침 나는 모 일간신문 사회면을 폈다. 중간의 조그만 1단 기사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아, 이 사람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이아무개. 그는 2년 전 내가 변호한 한 형사사건의 피고인이었다. 그가 대전교도소에서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 부화가 치민다. 변호사로서 나의 무능함에 화가 나고, 변호사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한 재판부에 치가 떨린다.

 

그 사건은 내가 민변의 변호사로서 시국사건 변호 차원에서 맡았다. 내가 변호를 맡기로 하고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터였다. 그는 1심에서 변호인도 없이 제대로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실형 선고를 받고 나서야, 주변의 도움으로 민변을 찾았고, 결국 내게 연결되었다.

 

20년 전 교도소에서 발견된 주검

 

가족에게 사건을 수임한 나는 바로 다음날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몇 마디를 나눈 순간, 나는 그가 일반 시국사건의 피고인이 아님을 직감했다. "귀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사상적, 사회적 배경도 갖추질 못했다. 더욱, 그는 몇년 전 속초 앞바다에서 작은 보트를 타다가 경찰에 걸렸는데, 당시 그는 북한으로 가기 위해 노를 저었다고 진술했다가, 경찰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판단하여 그냥 훈방 조치를 받은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일견하여, 나는 이 피고인이 제 정신의 일반 시국사범이 아님을 알았다.

 

이 피고인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사실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 미수죄로 기소되었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대만에서 피고인이 북한 대사관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지만 대만에는 북한 대사관이 없다. 따라서 그가 북한으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해도 그것은 불능미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검찰이 이런 사건을 기소한다면 누구나 담당검사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할 것이나 당시는 이런 사건도 기소되었고, 부지불식간에 실형선고가 나오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 항소심에서 우선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냉담했다. 이어 나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증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당시 대만 대표부의 안기부 직원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피고인이 대만에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 정확히 알아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심에서 이 증인의 진술조서가 증거로 제출되었는데 변호인이 없는 상황에서 이 증거는 모두 동의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새로운 재판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증인은 공판기일이 몇 번이나 공전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물론 법원도 나의 증인신청을 기각할 수 없어 받아주기는 했지만 그 증인을 소환하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항소심 구속기간 만기를 며칠 앞두고 마지막 공판기일이 열리는 날, 그날도 그 증인을 기다렸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인의 정신감정과 그 증인의 법정진술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호소를 외면한 채 결심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이날 나는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이상한 재판진행을 경험했다. 재판장은 결심을 선언하고, 잠시 뒤에 선고를 한다 - 통상 형사재판에서 공판기일이 끝나면 선고기일은 따로 잡아 선고한다 - 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공판도 끝나기 전에 판결문을 써 왔다는 것인가? 나는 귀를 의심하고, 법정을 떠나지 않았다. 30분 뒤, 정말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일이 있고나서 2년이 안 되어, 그 피고인은 교도소 감방에서 목을 매 죽었다.

 

"재판인가, 개판인가"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영화 <부러진 화살>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개봉 전에 제2의 도가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간 느낌이다. 다년 간 변호사를 해 왔던 필자이기에 이 영화가 주는 리얼리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관객들은 설마 판사가 저렇게까지 불통이고 권위적일까 의심할지 모르지만, 위의 사실을 떠올리면 <부러진 화살>의 리얼리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과거 어떤 판사는 법정에서 당사자에게 기록을 던지기도 했고, 육두문자를 쓰기도 했다. 이런 수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쌍한 백성은 꼼짝없이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적어도 얼마 전까지 우리의 법정에서 흔치 않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 영화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 사법부의 치부를 그들만의 리그에서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 시민사회가 각성한 결과다. 사법부의 엘리트 주의, 권위주의에 아무리 당찬 변호사들이 도전한들 변하지 않기에 드디어 시민사회가 영화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가 주는 함의는 클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이 영화를 더 이상 권위주의적 사법을 용서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 몇 주 전에 시사회를 통해 보았다. 매우 충격적인 영화였다. 메시지 전달력도 좋고,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도 탁월했다. 극중 피고인 역을 맡은 안성기의 열연도 좋았고, 특히 2심 재판장인 문성근의 연기는 돋보이는 것이었다. 이들의 연기력 때문에 영화의 리얼리티는 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영화가 갖는 몇 가지 문제점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호평 속에 비판이 없을 수 없다. 이 영화는 긍정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자칫 놓쳐서는 안 될 것을 간과하게끔 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부러진 화살> 리얼리티의 문제

 

우선, 영화의 리얼리티에 관한 문제다. 리얼리티 영화에서 사실성의 추구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성의 추구는 영화 제작의 모티브와 그것을 영화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에서 현실의 세계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로 족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십수 년 동안 일어난 어느 특정인의 실제 사건을 마치 99% 동일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리얼리티의 의미를 해석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내용을 영화적 허구로 인식시키지 않고,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재현 영상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기에서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말은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쓸데없는 구설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실존하는 인물로 해석될 수 있어 사실의 진위에 대한 논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영화가 사실의 진위를 밝힐 수 있는 도구가 아님에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것을 무심결에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와 관련 있는 인물들이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지 의문이나, 만일 이해관계자들이 영화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갖는 리얼리티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자기 모순적 상황설정이다.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 사법부의 권위주의적 불통의 모습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것은 좋다. 그런 영화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과도한 의욕 때문에 더 중요한 정의의 문제를 혼동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독자들이여, 나의 진심을 왜곡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실제사건의 진위여부에는 지금 관심이 없다. 단지, <부러진 화살>의 영화적 진실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놓칠 수 없는 사법적 정의, 피고인은 무죄일 수 없다

 

영화에서 피고인은 석궁사건의 진실이 검찰과 법원에 의하여 완전히 왜곡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하지만 피고인 자신도 자신의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이 사는 아파트에 석궁을 가지고 가서 위협을 했고 몸싸움이 일어났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석궁이 우발적으로 발사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영화는 바로 이 사실의 범죄성을 무시한다.

 

피고인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인다 해도 피고인에게 협박죄나 폭행죄의 죄책을 인정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쏘지 않았고, 피해자의 상해가 혹시나 조작된 것이라면 그것도 중요한 쟁점이기는 하지만 - 왜냐하면 이 경우 인정되는 범죄사실이 달라진다 - 그 이전에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면서 몸싸움을 했다는 점도 사법적 정의로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 어떤 사인도 이런 식으로 자력구제를 할 수 없지 않은가.

 

관객들이 자칫 영화가 말하는 피고인의 무고함만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이야 말로 심각한 정의의 왜곡이다. 사실, 이 영화가 우리 사법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 큰 목적이었다면 석궁사건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피고인이 석궁사건을 일으키게 한 민사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사법이 가지고 있는 온갖 부조리 - 예컨대, 전관예우, 법관의 권위주의, 불공정한 재판진행 등등 - 를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실성 있게 만들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리얼리티 영화의 순수성도 유지하면서, 위와 같은 법률적 자가당착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영화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부러진 화살>이 비판을 불허하는 난공불락의 사법부에 자성의 계기를 준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인이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해석은 이제 관객의 몫이다. 관객은 영화의 해석을 통해 우리 사법부에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 그것은 시민의 권리이다. 우리의 사법부가 아직도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에서 맴돈다면 정의의 마지막 수호자로서의 역할은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사법의 민주화가 가능할지, 어떻게 하면 시민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사법이 가능할지 하루 빨리 대안을 강구할 때라 생각한다.

 

이 글을 쓴 박찬운은 변호사이며 현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다.

 

2012.1.23 / 오마이뉴스

-------------------------------------------------------------------------------------------------------------------------------------------------------

 

고위법관의 거짓말... 분노가 치밀어 변호 맡았다

<부러진 화살> 실제 인물 박훈 변호사

 

설날 극장가에 <부러진 화살>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의하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관객들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실제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배우 박원상이 역할을 했던 '박준 변호사'다. 실제 인물은 경남 창원에서 주로 노동문제를 변론하고 있는 박훈(46) 변호사. 창원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박 변호사가 서울에서 진행된 재판에 변론을 맡은 사연이라든지, 박원상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석궁사건 재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재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어떻게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정지영 감독이 전화를 해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박원상이 맡았던 박준 변호사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가 창원에 있는 사무소에서 '석궁 사건'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가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법원장)를 상대로 일으켰던 '석궁 사건'을 다룬 영화다. 지난 18일 개봉했다.

 

박 변호사는 요즘 바쁘다.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연 인터넷 블로그(박훈 변호사의 세상만사)를 관리하기도 바쁘다. 그는 대법원에서 영화와 관련한 '대처'를 다룬 자료를 각급 법원에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에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 방문자가 늘어나고 있다. 1주일에 5만 명이 넘었고, 20일 하루에만 1만8000여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블로그에는 석궁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올려놓았다. 우선 "1심 7차 공판 속기록"(2007년 8월 28일, 박홍우 증언), "항소심 2차 공판 속기록"(2007년 12월 10일), "항소심 3차 공판 속기록"(2008년 1월 28일)만 올려놓았다.

 

박훈 변호사는 누구인가? 그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금속연맹) 법률센터에서 9년간 상근 변호사로 있다가 2008년 개인 사무소를 냈다. 그는 2001년 대우차 부평공장 집회 때, 인천지법의 판결문과 핸드마이크를 들고 300여 명의 해고자들 앞에 섰다가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2007년 수백억 원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았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한테 집행유예와 '준법 강연'이라는 사회봉사 명령이 선고되고, '보복폭행' 혐의를 받았던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때 박 변호사는 당시 재판을 비판하는 글("정몽구의 '준법' 강연? 이건 코미디다", 오마이뉴스 2007년 9월 11일자)을 쓰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 높은 것에 대해, 박 변호사는 "부조리한 사회와 국가권력에 대한 정의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민중들의 심리가 응집되고 있는 결과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국민의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법원장·지검장 이상은 선출직으로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박 변호사는 "판사·검사가 가해자나 피해자로 된 경우에는 특별검사제도처럼 최소한 한시적으로 특별법원을 설치해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영화를 통해 제도적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22일 오후 박훈 변호사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철학 있는 양아치 변호사'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 자신의 역할을 한 박원상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영화 촬영하기 전에 박원상한테 '너는 절대 박훈 변호사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철학 있는 양아치 변호사'로 그려주기를 당부했다. 영화에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덜 양아치로 나왔다. 마지막 10분 정도 장면에서는 연기를 잘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때 박원상과 같이 영화를 봤다. 그때 박원상은 제가 자기를 때릴까 벌벌 떨었다고 했다. 그때 영화 보고 나서 잘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박원상이 무척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 박원상은 안성기·문성근·이경영 등 쟁쟁한 배우들에 밀릴 수도 있었는데?

"박원상이 조연으로 출연한 셈이다. 안성기·이경영·문성근 등 명배우들이 나왔다. 특히 투 톱 주인공인 안성기한테 밀릴 거라고 판단해서, 처음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박원상한테 기를 사정없이 불어 넣어 주려고 했다. 일종의 '퍼포먼스' 같은 게 있었다. 박원상이 촬영 전에 창원에 내려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 때 '안성기 선배한테 밀리면 죽는다'고 말하며 숟가락으로 머리를 두 대 때렸다. 박원상은 안성기한테 밀리는 측면이 있었지만 잘했다."

 

- 석궁사건의 변론을 어떻게 해서 맡게 되었는지?

"김명호 선생이 이른바 '석궁 사건'이 있고 난 뒤, 가족들을 통해 저를 변호사로 선임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제가 정중하게 거부했다. 처음에는 사건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당시 언론 보도만으로 판단한 것인데, 왜 판결에 불만이 있다 해 석궁을 들고 가서 쏘아야 했느냐는 생각과 함께, 창원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변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거절했는데, 1심 공판이 끝나고 선고기일을 앞두고 법원을 통해서, 변호인 선임의뢰서를 보내오기에, 참으로 구애가 끈덕지다고 생각하면서 김명호 선생을 한 번 만나 봤던 것이다."

 

"1심 선고 앞두고 만나기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다"

 

- 그러면 석궁사건 1심 재판 때부터 변론을 맡았던 것인지?

"그렇지 않다. 1심 재판 과정은 언론을 통해 알았다. 그때부터 재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피해자(박홍우 부장판사)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1심 선고 전에 선임계를 제출했지만, 1심 때 변론을 맡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1심 변호인으로 기재돼 있다."

 

- 그 전에는 김명호 교수와 일면식도 없었다는 말인지?

"그렇다. 김명호 선생 측에서 먼저 변호를 해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김 선생은 미국에서 귀국해서 복직 소송을 냈다. 당시 재임용 탈락 교수들을 구제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 김 선생이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챙겨 본 모양이다. 제가 교수노조 추천으로 그 특별법을 만들 때 교육부 논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제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의 구제와 관련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것을 김 선생이 보고, 제가 사태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김명호 선생은 귀국한 뒤에 제 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한번도 받은 적은 없었다. 석궁사건 1심 선고 앞두고 만나기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

 

- 사람들이 <부러진 화살>을 많이 보는 것 같은데?

"관객들이 부조리한 사회와 국가권력에 대한 정의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민중들의 심리가 응집되고 있는 결과다."

 

- 지난해 광주 장애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어 반향이 컸는데, 이번 영화도 그 정도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 보는지?

"저는 이 영화가 <도가니>와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도가니는 장애인시설의 성폭력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사법부는 곁가지로 다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법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가니>가 장애인 문제를 환기해 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이 영화는 사법부 문제를 온전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다른 범주다. 성격은 같을지 몰라고 범주는 다르다."

 

"공판속기록에 기초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

 

- 영화가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

"영화는 법정 안과 밖의 장면으로 크게 구분된다. 법정 안에서 판사, 검사, 피고인, 변호인이 말하는 장면은 공판속기록에 기초한 내용이다. 완전히 사실에 기반을 하고 있다. 법정 밖 장면은 창작된 내용이 있다."

 

- 영화 마지막에 방청객들이 판사를 향해 계란을 던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는?

"석궁사건 항소심 5차 공판 때 사건이다. 판사가 재판을 졸속으로 끝내려고 했다. 저와 피고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퇴정했다. 그 와중에 방청석에 있던 분들이 계란을 던졌다. 던진 계란은 3개 정도로 기억하는데, 판사들이 앉아 있는 '법대'까지는 날아가지 못했다. 그날 법원 직원들이 경호를 하고 있을 정도로 살벌했다. 계란 던지는 것을 막으니까 농구공을 슛하듯이 던졌고, 법원 직원들은 공을 블로킹하듯이 막았다. 계란은 법대까지 날아가지 않았고, 변호인석에 하나, 사무관 앞자리에 하나가 떨어졌다. 영화에서는 계란이 판사가 앉아 있는 의자까지 날아가는 장면으로 나왔지만, 실제 판사석까지 날아가지 못했다. 그때 계란을 던진 사람은 감치 13일 처분을 받았다."

 

- 영화에서 배후 김지호가 맡은 역할인 여기자는 친구로 나오는데, 실제 어떤 사이인가?

"종합적으로 들어와 있는 캐릭터다. 기자는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언론사 기자인데, 30% 정도만 사실이다. 어쨌든 허구로 만들어 낸 것이다."

 

- 영화는 사법부 문제를 다루었지만, 언론 문제도 언급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취재했던 기자가 나중에 배제되는 대상으로 그렸다. 실제 기자가 보도를 못하게 된 뒤에 '죄송하다,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문자 메시지를 날린 적이 있다."

 

- 영화 개봉 뒤에 주변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의 반응은?

"개인적으로 법조계의 반응을 알 수 없다. 옛날에 법조계를 비판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실은 적이 있었는데, 누리꾼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법조계는 무반응이었다. 지금도 아마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석궁사건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판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명호 교수는 유죄라고 지금도 확신한다고 했는데?

"자기가 판결을 내렸으니까 유죄를 확신할 것이다. 법관은 유죄의 증거가 될 만한 것을 갖고 확신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인정할 수 없다. 재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든 그런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정지영 감독이 먼저 전화를 해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는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김명호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부교수확인소송을 냈지만 패했다. 또 복직소송을 냈지만 역시 패했다. 그 민사소송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명호 선생은 1995년 재임용에서 탈락했을 때 부교수확인소송을 냈는데 졌다. 현재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을 때 1심 선고를 했다. 복직소송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2007년에 내려졌는데, 당시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었다. 그 판결문의 핵심 요지를 보면, 김명호 선생은 학문적 업적이나 교수의 자격은 있지만, 자질과 품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수재임용제도의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관적 지표를 들이대는 것이다.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고 싶은 교수가 있으면, 품성이라든지 인화단결을 이유로 든다. 객관적 지표만으로 교수재임용 문제를 심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민사소송 판결은 문제의식이 없었던, 아주 안 좋은 판결이다."

 

검경은 처음부터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

 

- 인터넷에는 영화와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는데, 가령 '김명호 교수는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고 한다. 어떤가?

"결과적으로는 맞는 주장이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은 수사에서 김명호 교수를 '살인미수'로 수사했고, 언론에도 그렇게 보도됐다. 사건 수사기록에 보면 다 나와 있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2007년 1월 15일인데, 경찰이 작성한 29일자 조사기록을 보면 '살인미수 등'이라고 해놓았다. 30일 검찰이 작성한 조서에도 '살인미수'라 해놓았다. 처음부터 살인미수 혐의를 두고 조사를 했는데,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게 피해자 진술이 오락가락하면서, 검찰이 살인미수를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상해죄'로 기소를 한 것이다. 그런 것은 언론 보도나 기소 전단계까지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를 했기에 사실과 어긋나지 않다. 기소 전후 과정을 사실에 입각해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배우 박원상이 맡았던 박준 변호사의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는 창원에 있는 사무소 앞에 영화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 석궁은 시위를 걸어 당기면 자동으로 안전장치가 잠기고, 이를 풀지 않으면 발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화살이 발사되었다는 것은 김명호 교수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것인데?

"판결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는 박홍우 부장판사의 복부에 난 상처가 석궁으로 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판결문의 내용은 고의로 쏘았느냐, 우발적으로 쏘았느냐는 것이다. 전제가 다르다. 우리는 화살이 발사됐다는 것은 맞다고 본다. 화살이 발사됐지만, 박홍우 부장판사의 복부에 맞지 않고 콘크리트 벽 같이 강한 물체에 맞아서 화살 끝이 뭉퉁해지고, 부러지듯 꺾였다는 것이다.

 

판결문은 화살이 복부에 맞았고, 단지 우발적으로 쏘았느냐 고의로 쏘았느냐를 판단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논점이 완전히 다르다. 우발적으로 화살이 나가서 복부에 맞았다면 '석궁은 시위를 걸어 당기면 자동으로 안전장치가 잠기고, 이를 풀지 않으면 발사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맞을 수 있지만, 우리는 화살이 복부에 맞지 않았다고 본다. 두 사람이 석궁을 잡고 드잡이짓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안전장치가 풀어질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화살은 복부에 맞지 않았다는 게 우리 주장이다."

 

재판 때 피해자 옷 입어 확인하자고 했더니

 

- 화살은 양복상의, 조끼, 와이셔츠, 내복상의, 속옷(런닝)을 관통하여 피해자의 복부 근육층까지 박혔다 하고, 각 옷의 구멍이 일치한다는데?

"제가 재판에 관여하지 않았던 1심 7차 공판 때의 속기록을 보니, 각 옷의 구멍을 맞추어 본 모양이다. 김명호 교수측은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한테 그 옷을 입어봐서 복부 상처 부위와 뚫어진 옷의 부위가 맞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는데 그는 옷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김명호 교수가 옷을 입어 보겠다고 했는데 재판부는 제지했다. 옷을 입어 봐야 각도가 나오는데 말이다."

 

- 김명호 교수 측은 박홍우 부장판사의 와이셔츠에 혈흔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국과수 감정결과에는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는데?

"와이셔츠 화살 구멍 주변에 혈흔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오른쪽 어깨 뒷 부분에 혈흔이 있는데 그렇다면 피해자는 오른쪽 어깨 부위를 다쳐야 한다. 그런데 다친 부위가 없다. 복부 창상만 나고 어깨를 다쳤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복부 창상이라고 하면 화살구멍 주변에 피가 순차적으로 배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다른 옷에는 혈흔이 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만 혈흔이 없다. 국과수는 와이셔츠 오른쪽 어깨 부위에 있는 혈흔만 갖고 한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2011년 12월 14일 오후 창원을 찾은 정지영 감독이 영화 속 한 인물인

박훈 변호사(박원상 역)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나?

 

- 부러진 화살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미궁이지만, 그것은 수사기관에서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아닌지?

"수사기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무죄의 주요한 근거다. 조작됐다는 것이다. 피해자로부터 화살을 넘겨받은 경비원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범행 도구를 찾으면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텐데 없어졌다는 것이다. 경비원은 김명호 교수가 허리 춤에 차고 있던 화살 2개와 함께 부러진 화살까지 3개를 수거해서 화단 위에 올려  놓았다고 했다. 그것을 현장에 출동했던 112 순찰 대원이 수거해 갔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이 없어졌다. 범행 현장 주변을 경찰이 수사해서, 1층과 2층 계단 복도에 놓여 있던 석궁 가방과 화살 총 7개, 회칼, 노끈을 가져갔다. 법정에는 화살이 총 9개가 나왔다. 석궁에는 총 10개의 화살이 들어가는데 1개가 없어진 것이다. 그것이 부러진 화살이다."

 

- 김명호 교수는 피해자의 집을 7회 사전답사하고, 여러 차례 석궁 연습을 했다. 석궁 가방 안에는 회칼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위해를 가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는 것인데.

"우리는 화살이 피해자의 복부에 맞지 않았다는 주장이고, 자기들은 맞았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맞았다고 보니까 그런 정황을 고의로 쏘았다는 증거로 끼워 맞추어 놓은 것이라 본다. 회칼은 재판에서 전혀 논점이 되지 않았고, 수사 과정에서 잠시 나온다. 회칼을 가방에 넣어두었던 것에 대해, 수사에서는 피해자를 납치해서 살해하려고 했던 거 아니냐는 취지로 조사를 했다. 김명호 교수는 이사 준비를 하다 가방에 넣어 두었던 것이라고 한다. 회를 좋아했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잊고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 김명호 교수가 '응징하려고 쐈다'는 말을 했다는데?

"김명호 교수는 '응징하려고 쐈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다. 진술조서를 보면, 박홍우 부장판사의 운전기사가 피의자를 붙잡은 다음에 그가 '판사를 응징하기 위해 쐈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해 놓았다. 그런데 경비원은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해 놓았다. 김명호 교수는 민사소송 재판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내려고 했던 것이지 응징하기위해 쐈다는 진술을 한 적이 없다."

 

-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가 이 영화의 리얼리티에 관한 문제가 있다(<오마이뉴스> 1월 23일자 기사 "사법부를 향한 화살 ... 살짝 빗나갔습니다")고 했는데?

"희한하다. 대법원이 직접 대응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진보적 법조인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영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더하고 있어 의아스럽다. 박찬운 교수의 주장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호도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석궁을 가지고 판사 집으로 가서 위협한 것을 부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다만 박홍우 부장판사가 화살에 맞지 않았는데, 그것을 맞았다고 주장하며 재판이 진행된 점을 영화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고위법관인데 거짓말을 한 사건이고, 거짓말한 것을 밝혀내려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강압적으로 무시했기에 사건이 됐을 뿐이다. 본질을 호도하는 측은 바로 석궁을 들고 갔다는 자체만을 문제 삼고 있는 대법원과 박찬운 교수는 같은 류다. 양비론적 시각은 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모처럼 불붙고 있는 사법개혁 요구를 가로막는 행위다."

 

한나라당의 한미FTA 국회 비준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2011년 11월 23일 저녁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 열렸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박훈 변호사

 

석궁사건, 재판 다시 할 수 있다

 

- 영화를 본 관객들은 지금 단계에서 김명호 교수의 민사소송(부교수확인소송, 복직소송)이나 석궁사건과 관련해  다시 재판을 하는 게 가능한지 궁금해 한다.

"민사소송은 재판을 다시 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 석궁사건은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심이 가능하다. '인혁당 사건' 등에서 보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해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서 몇 십년이 지나도 재심을 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려면 재수사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검찰에 맡길 수 없다. 특별검사가 전면 재수사를 해 새로운 증거가 나오거나 관련자들이 위증을 했다는 선언이 나와 위증죄·무고죄로 확정이 나면 재심이 가능하다. 영화가 흥행을 해서 '도가니사건'처럼 재수사하라는 목소리가 높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 사법부 불신이 높은데?

"석궁사건 자체가 사법부의 불신에 연유해서 일어난 것이다. 사법부의 한 식구인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피해자가 된 사건이라면, 더 공정하게 재판을 해서 사법부의 불신이 사라지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지 4일 뒤,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해서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며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수사와 판결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 사법부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자고 주장했지만, 재판은 일사천리 졸속으로 진행됐다.  통렬히 반성을 해야 한다."

 

- 석궁사건과 관련해 고쳐야 할 제도가 있다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번도 국민의 감시를 받지 않은 폐쇄된 권력이다. 이번 기회에 국민의 감시를 받을 수 있는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각급 법원장급과 지검장급 이상은 선출직으로 뽑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선출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판사·검사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된 경우에는 특별검사제도처럼 최소한 한시적으로 특별법원을 설치해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영화를 통해 이 두 가지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2012.1.24 / 오마이뉴스

 

======================================================================

 

“사법부서 제동 걸까봐 조용조용 찍었다네”

‘석궁테러사건’ 재판 비판, 친지에게 5억원 빌려 제작
안성기 사실상 무료 출연 “사법부가 반성 좀 하겠죠”

 

 

“과연 말이지.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택할까?”

 

그는 기자가 펜을 한두 번쯤 만지작거리며 답을 궁리할 틈도 주지 않았다.

 

“절대. 시대가 어느 때인데, 100년 전에나 호소력 있을 이런 이야기를 세계인들에게 봐달라고 할 수 있겠나.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웃기고 슬픈 일이죠.”

 

그 ‘서글픈 현실’에 대한 국내 관객 반응은 뜨거운 편이다. ‘블라인드 시사회’(어떤 영화인지 알려주지 않고 관람한 뒤 설문조사하는 것)에서 관객들의 만족도·추천도가 5점 만점에 4점대였다고 한다. 자신감을 얻어 개봉을 한달이나 앞두고 ‘관객 2만명 목표’ 시사회를 하고 있다. 입소문을 키워 저예산 영화의 홍보비용 한계를 극복하려는 뜻도 있다.

 

정지영(65)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한 신작 <부러진 화살>(내년 1월19일 개봉)은 사법부의 오만한 권력과 비상식을 향해 활을 겨눈 영화다. 2007년 교수 복직 항소심 담당 부장판사에 대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석궁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는 석궁을 몸에 쏘지 않았다는 김 교수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조사 요구 등이 법정에서 어떻게 묵살되는지 보여준다.

 

22일 만난 정 감독은 “재작년 배우 문성근씨가 르포소설 ‘부러진 화살’을 권해 읽어본 뒤 ‘이건 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3년간 영화를 내놓지 않았으나, 한번도 영화를 내려놓은 적 없다”는 그가 준비하던 여러 작품들이 교착 상태에 있을 때, 이 실화와 만났다.

 

“피고인(김 교수)이 법정에서 법조항을 거론하며 판사랑 입씨름을 했다는 재판 상황 자체가 너무 재밌었죠. 실체에 다가서는 미스터리 형식도 있었고.”


그는 복역중이던 김 교수(올해 1월 4년 만기출소)를 면회도 하고, 캐릭터 구축을 위해 편지도 수차례 주고받았다. ‘김 교수 혼자 극을 어떻게 끌고 가나’란 고민은 김 교수를 변론한 박훈 변호사를 만나면서 사라졌다.

 

“재판 자료를 받으러 간 건데, 이 사람도 재밌더라고. 말끝마다 욕에, 술 먹으면 더하고. 아주 급진적인 친구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김 교수와 박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재밌겠다 생각한 거죠.”

 

과연 그렇다. “(사법부조차) 법을 안 지켜서 문제이지 법은 아름다운 것”이란 김 교수(안성기)와 “법은 쓰레기”란 박 변호사(박원상). 두 이질적인 캐릭터가 다투며 빚어내는 ‘앙상블’은 사회성 짙은 이 영화가 대중성까지 획득하도록 이끈다.

 

1년여간 시나리오를 쓴 감독은 친지한테서 순제작비 5억여원을 빌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을 같이 한 배우 안성기에게 건넸다. 그는 ‘세가지’를 얘기했다.

 

“돈이 없다. 그래서 (교통비 수준 외엔) 출연료가 없다.” “이 작품이 정치·사회적으로 껄끄럽다.” “난 당신과 사회적으로 껄끄러운 내용이었던 <남부군> <하얀 전쟁>을 같이 해서 성공했다. 이 작품도 안성기가 하면 성공할 것 같다.”

 

다음날, 안성기는 “하겠다”고 연락했다. 정 감독은 “톱배우인 안성기가 주연으로 확정되면서, 다른 배우와 국내 최고 스태프 구성이 ‘쭉쭉쭉’ 풀렸다”고 했다. “과연 이 영화를 그들이 할 수 있을까 싶어 아예 대기업 투자자와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정 감독은 “제작비 여건 탓에 촬영 장소는 무료로 제공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찍었다”며 웃었다.

 

영화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이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부끄러움은 영원할 것” 등의 대사를 통해 상식적인 주장을 외면하는 사법부를 날카롭게 겨냥한다.

 

“사법부가 국민한테서 권한을 위임받고도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이 문제죠. 진정한 양심을 가진 판사라면, 이 영화를 보고 사법부의 지나친 권위의식, 부당한 권력이란 걸 알고도 스스로 용서하고 넘어가는 사법부의 오만에 대해 반성하리라 봅니다.”

 

그는 사법부 관계자들이 영화 제작에 간섭할까봐, “조용조용히 찍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 등도 마음속으로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지만, 그러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 내용이 공판기록에 뻔히 나오는 건데 문제 제기를 할까? 소송을 하면 당시의 (문제가 많았던) 재판을 다시 들춰내야 하는데 사법부가 그럴 수 있을까?”

 

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는 두 사람(김 교수·박 변호사)을 보면서, 관객들도 부당한 권력에 주눅 들지 않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 영화는 메시지의 묵직한 체중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과체중’을 막기 위해 곳곳에서 재기를 부린다. 예컨대 영화 막판 김 교수는 재소자들에게 체벌을 주는 교도관의 이름을 적으며 “우린 인권이 없습니까”라고 따진다. “이름을 적지 말라”는 교도관의 명찰엔 실제 인물의 이름을 살짝 비튼 이름이 적혀 있다. 전 국민이 아는 ‘그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

 

“영화관에 뱀 풀었던 그 심정으로…”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유전무죄 무전유죄 세상에 화살을 날려라”

 

검사는 국민을 대신해 원고가 되어 어떤 일이 죄인지, 죄가 맞다면 그 일을 저지른 죄인이 누군지 밝히고 고발한다. 판사는 그 고발이 옳게 이루어졌는지, 죄갚음에 대한 처벌과 형량이 정당하려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하는 지를 공정하게 판단한다. 변호사는 과연 고발된 사안이 죄가 되는 것인지, 또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사람이 어느 지경에서 죄인으로 몰리게 되었는지를 피고를 대신해 항변한다. 우리가 배워온 사법제도에서 법조인들이 나누어 맡은 역할이 이렇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검찰은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법원은 사법독립이 아니라 사법전횡을 일삼는 부당한 권력의 시녀로, 변호사는 소신과 능력보다 전직 판검사에 대한 전관예우를 발판 삼아 승소율과 수임료 높여 제 배 채우는 장사꾼으로 여겨진지 오래다. 모든 법조인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자리 차지하고 법조계를 주무르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온 이 나라 사법시스템이 대체로 그렇게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겨왔다.

이런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사법부의 공정성이나 독립성보다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니 정의와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지를 파헤치는 법정영화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지난해 <도가니>가 일으킨 파장이 그랬고, 올해 개봉도 되기 전에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부러진 화살>이 또 그렇다.

<부러진 화살>의 감독은 정지영,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과 같은 영화를 통해 이 사회가 억지로 덮어버렸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상처를 스크린에 펼쳐 보인 감독이었다. 작품으로 뿐 아니라 UIP직배 반대, 스크린 쿼터 사수 등 한국영화계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도 앞장서 왔던 영화계 어른. 이렇게 한국영화계의 버팀목이 되어온 멋진 감독이 작품으로 관객을 다시 만나기까지 무려 13년이 걸렸다.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는 지난 해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보다 먼저 감독과 만난 자리는 극장이 아니라 길바닥이었다.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던 김진숙과 함께 하는 희망버스가 영화제 기간과 겹치자 ‘잔칫상에 재뿌리는 난동’이라며 영화제를 빌미로 희망버스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 시기였다.

이때 여러 영화인들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실은 영화제 기간에 희망버스가 온다는 게 아니라 1년이 다 되도록 문제 해결을 못하는 부산시의 무능"이기에 "어떤 영화보다도 아름다운 이번 투쟁에 함께 할 것이며 진실을 담고자 하는 카메라의 렌즈를 끄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라며 영화인 희망버스에 함께 올라 영도를 향했다. 이 희망버스의 길을 이끌고, 마침내 85호 크레인 바로 아래까지 가서 김진숙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네도록 중심이 되어준 이가 바로 정지영 감독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부러진 화살>을 보았다. 해를 넘기고 이제 통렬하고, 후련하고, 재미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시 만나고 싶었던 감독 정지영을 드디어 거리에서가 아니라 극장에서 보게 된다는 건 참 벅찬 일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아우라픽쳐스
 

이안 : 지난 13년 동안 작품으로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정지영 : <아리랑>이라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김산의 일대기를 준비하는데 8년, 광주이야기를 다룬 작품 <은지화>에 한 2년, 그러다 <부러진 화살>을 만나 여기까지 오는데 13년이 걸렸어요.

이안 : <아리랑>은 님 웨일즈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만주, 일본, 북경, 광동에 걸친 배경이 만만치 않지만 대중적으로 관심도 높을 텐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도 아직 작품화되지 못하고 있나요? 감독님과도 잘 맞는 소재인 듯한데요.

정지영 : 김산이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항일독립투사이면서 또 아나키스트에 국제주의자인 인물이잖아요. 중국 혁명 과정에서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으로 중국 당국에 의해 처형되었다가 80년대에야 복권이 되었거든요. 김산에 대해 중국 정부가 잘못은 인정한 거지만 그 과정이 영화로 재현되는 데 대해서는 간섭이랄까, 검열이랄까, 상당히 민감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좀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더군요.

이안 :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러진 화살>을 보고 바로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때 감독님께서 그 시기에 언론에 너무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영화제는 가장 좋은 홍보마케팅 장이기도 한데 왜 그러신 건지?

정지영 : 영화제라는 자리가 소수 참가자만 보는 자리인데 그런 기회를 빌어 그냥 사회적 이슈 거리가 되는 것보다 영화가 개봉되어 대중들이 직접 보고 평가할 수 있을 때 알려지길 바란 거지요. 작품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이안 : 감독님 작품은 심각하고 묵직한 내용이 많았고, <부러진 화살>도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재판 과정을 다룬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그런데도 보는 내내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는 데도 냉소가 아니라 희망을 품게 하는 게 참 신선했습니다. 더구나 감독님은 현재 작품 활동을 하는 감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세대이기도 한데 이렇게 유쾌한 방식으로 다루다니 의외였어요.

정지영 : 사실 내가 그렇게 유머러스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다들 <부러진 화살>을 보고 재미있다고 하시는데 그건 캐릭터의 힘이지요.

이안 : 배우들 말씀이신가요?

정지영 : 물론 연기자들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앞서 실제 배역의 모델이 된 김영호 교수나 박준 변호사가 참 재미있는 분들이었어요. 영화에서 김경호 교수 역할을 한 안성기 씨가 시나리오를 보더니 50 평생 처음 만난 캐릭터라며 연기자로서 욕심난다고 할 만큼 실존 인물들로부터 나오는 힘이 컸지요.

이안 : 안성기 씨뿐 아니라 캐스팅에서 오는 재미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감독님 연배도 그렇고, 배우들도 거의 중견연기자들이라 연기력은 당연히 믿을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요즘 상업영화판에서는 모험적인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게 반전의 묘미를 만든달까요. 가령 사회적,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으로 꼽히는 문성근 씨가 가장 보수 꼴통 성향의 판사 역을 하는 모습이 아주 그럴듯하거든요.

정지영 : 문성근 씨와 작품은 처음 같이 한 건데, 이 사람이 진짜 연기자예요. 비판적 지식인 역할도 많이 했지만 나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연기한 조직폭력배 보스 배태곤 역할을 문성근 최고의 연기로 꼽거든요. 그래서 그 배태곤 같이 가진 건 돈과 주먹밖에 없던 인물이 이 사회에서 죽 승승장구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 지적인 권력자가 된 상태가 신재열 판사 같은 인물이라고 보았고, 문성근 씨가 아주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해낸 거지요. 비열함이 관철되고 성공해서 빚어진 정점의 모습이랄까요.

이안 : 감독님은 UIP 직배 반대, 스크린 쿼터 사수 등 영화계를 강타한 문제들에서 늘 앞장서서 소신을 밝히고 실천해온 현실참여형 영화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담은 없으신가요?

정지영 : 누구는 참여적이다, 누구는 작품만 한다, 이런 분류가 되는 데는 영화인들이 반성할 부분이 있어요. 영화인이기 전에 누구나 국민인데, 영화인도 정치적, 사회적 소신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거지 별다른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영화인들이 자기 소신을 밝혔다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소심함 때문에 나서지 않는 건 중립적인 게 아니라 비겁한 거지요. 이런 영화인들의 소심함도 문제지만 대중들의 시선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영화인이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 무슨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편견이 대중적으로 깊이 내면화되어 있거든요. 이건 외국과 다른 한국 대중문화의 특징이예요. 외국에서는 배우나 감독들이 정치적 입장을 밝히거나 사회적 실천을 하는 게 당연할뿐더러 많은 지지를 받잖아요. 미국에서는 배우 출신인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기도 했고. <부러진 화살>을 통해 밝히려는 건 그 당시 재판에 관여한 법조인 개개인들을 문제 삼자는 게 아니에요. 공정성을 지키기보다 권위에 둘러싸인 사법부 자체가 문제라는 거지요.

이안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희망버스를 이끄셨습니다. 당시 부산시에서 영화제를 핑계로 희망버스를 강력히 저지하려는 상황에서 꽤 화제가 되었는데요.

정지영 : 내가 이끌었다기보다 스크린쿼터 문제 때부터 죽 함께 싸워온 영화인들의 네트워크가 영화인 희망버스를 움직인 동력이지요. 그동안 각자 작품한다는 핑계로 개인적으로는 참여해도 조직적으로는 희망버스를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었는데 마침 영화제 기간에 희망버스가 움직인다니 우리도 뜻을 보탠 거고. 원래 희망버스 주최측에서는 영화인들이 좀더 큰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랬는데, 우리에게 맞는 역할을 할테니 맡겨달라고 했어요.

이안 : 저는 개인적으로 1차를 빼고는 희망버스를 모두 함께 했는데 85호 크레인 바로 아래까지 가서 김진숙씨와 통화도 하고 서로 손도 흔들며 인사한 건 영화인 희망버스가 유일했어요.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과 대화를 통해서요. 그런 돌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정지영 : 영화인들은 UIP 직배 반대, 스크린 쿼터 사수 등 오랜 투쟁을 외롭게 해온 경험이 있지요. 그러면서 무조건 부딪히고 싸우기보다 말 걸고,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지치지 않고 오래갈뿐더러 원하는 것을 이루는 길이라는 지혜를 얻게 되었고. 그리고 희망버스 전날 국회에서 해결을 위해 타협점을 찾겠다고 밝힌 시기라 영화인들이 거기까지 가서 통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을 수도 있고. 김진숙씨와 통화를 한 것보다 그 사람이 내려오게 된 것이 더 기쁜 일이지요.

이안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러진 화살>이 상영될 당시, 문재인 변호사가 관람을 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영화가 작품 외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걸 경계하신다면서 그 분은 특별히 초청하신 건가요?

   

 

정지영 : 오히려 그 반대예요. 그때 오히려 초청 인사에서 정치인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어요. 시나리오 원작 작가가 유력 정치인이 참여를 원한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는데 거절도 했고. 그런데 문재인 씨는 문성근 씨랑 친분이 있다보니 정치인으로가 아니라 마침 부산을 찾은 김에 만난 오랜 친구 사이로 관람하게 된 건데 언론에서 화제로 삼은 거지요. 그래서 일부러 와주시겠다는 걸 거절했던 다른 정치인들께는 좀 죄송하게 됐길래, 나중에 시사회에 초대했는데 그때는 또 그쪽이 바빠서 엇갈렸지요.

이안 : <도가니>가 성공하면서 법정영화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고, 정봉주 전의원 구속이나 SNS로 개인 의사를 밝히는 판검사에 대한 사법부의 제재여부 문제로 <부러진 화살>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영화를 처음 기획하면서부터 이런 분위기를 예상하신 건 아니었을 텐데요.

정지영 : 그렇지요. <부러진 화살>을 기획하던 당시에는 이 정도 파급력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개봉도 적은 규모라도 진지한 관객에게 다가가자, 그러면 영화에 공감하는 관객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이런 정도로 생각했었죠. 투자나 배급도 취약한 상태여서 내 영화 중 가장 저예산 작품이에요. 그나마 안성기씨가 출연하겠다고 하면서 투자도 유치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지요. 저예산이라는 것도 연기자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해줬기에 가능했던 거예요. 이렇게 사람들 줄 거 못주고 영화 만들면 안되는 건데, 참.......

이안 : <부러진 화살>에서 재판과 구속을 다룰 뿐 아니라 감독님 자신도 재판이며 구속을 겪은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정지영 : 그게 참 엉뚱한 일이예요. UIP 직배 저지투쟁 때 삭발도 하고, 성명도 내고, 한달 동안 시위도 하고 그래도 언론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단신만 나오지 ‘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영화인들이 기를 쓰고 막으려하는 지에 대해 알아보려는 기사는 하나도 없다시피 한 거예요. 그러다보니 대중들은 관심도 없고. 그래서 언론의 주목을 끌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게 할 방법으로 뱀을 풀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왔고, 그걸 조직적으로 한 게 아니라 나중에 나 혼자 다른 사람에게 의뢰해서 뱀을 극장에 풀어달라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뱀이라는 동물이 알고 보니 시멘트 바닥에서는 구석에서 꼼짝도 않고 숨어있는 습성이 있어서 누구한테 해를 끼치지도, 관객들이 있는 상황에서 소란이 벌어지지도 않고 모르고 지나가게 됐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청소부가 발견했는데 극장측은 관객이 알면 장사 안될까봐 쉬쉬하고 덮어버렸는데, 나중에 극장에 화재가 나니까 뱀을 푼 사람이 불을 지른 것으로 몰고 가려고 표적수사를 하다보니 알려지게 된 거지요. 수사과정에서 화재사건과 뱀 사건은 전혀 별개의 일이라는 게 밝혀져서 나는 <남부군> 촬영을 하러 현장으로 떠났는데 여름 장면 촬영 마지막을 하루 앞두고 형사가 찾아 왔어요. 신문에 ‘정지영 구속’이라는 보도가 나왔으니 나를 잡아가야겠다고. 현장에서 멀쩡히 촬영 중인 사람이 구속되었다는 오보 때문에 하루 남은 촬영을 미룰 수는 없길래 다 찍고 출두할 테니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길로 구속되서 재판받고 보석으로 풀려나 하루 남았던 여름 장면을 겨울에 찍었지요.

이안 : 그 때의 재판이 <부러진 화살> 재판처럼 불합리했나요?

정지영 : 내가 구속된 걸 두고 영화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빨치산을 다룬 <남부군> 제작을 막으려는 탄압이라고 보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그럴 거면 제작 자체를 막았겠지요. 오히려 언론에 오보가 나가자 그걸 사실로 만들기 위해 구속이 되고 재판이 진행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문제였지요. 재판 과정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게 없으니까 나는 보석으로 석방되었는데, 참 마음이 아팠던 게, 실제 뱀을 풀었던 사람들은 유죄 판결을 받아 여전히 구속된 상태였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내 청을 받아 일한 것밖에 없는데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로 풀려 나오면서 마음 아프고 미안해서 법정에서 마지막 발언할 때 그 분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는데......


   

 

이안 : 13년 만에 작품을 하시다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을 텐데요.

정지영 : 먼저 투자환경이 대기업 메이저 위주로 바뀌면서 실무자들이 다 젊다보니 나이 많은 감독을 꺼려해요. 감각이 뒤졌다고 하지만 그건 핑계고, 우리 문화가 연장자를 편하게 대하지 못하다보니 현재 제작편수에 비해 나이 든 감독보다 신인감독이 더 많은 구조가 된 거지요. 그래서 <부러진 화살>이 좀 잘 돼서 경륜있는 감독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예요. 영화는 스타가 출연하는 것으로 관심을 받을 수는 있어도 영화 자체가 좋아야 성공하는 거고, 스타 출연작들이 흥행에서 참패하는 경우가 계속 반복되는 데도 여전히 투자의 전제조건이 스타 캐스팅이거든요. 그건 사실 작품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대기업 직장인으로서의 투자 실무자들이 흥행실패의 책임을 스타에게 돌리려는 책임회피지요.

이안 : 투자 환경 뿐 아니라 현장도 13년 만이었을 텐데 어떠셨어요?

정지영 : 기술적 변화가 처음에는 낯설더군요. 예전에는 영화를 필름으로 촬영하다보니 한 컷, 한 컷이 아까워서 리허설 오래하고, 사전에 머릿속에서 촬영 장면이며 편집결과까지 다 그려보고 현장에 갔거든요. 그래서 테이크도 여러 번 가지 않고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면 함부로 찍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로 촬영하다보니 현장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건 좋은 점도 있지만 긴장감 없이 현장을 대하는 경우는 아쉽지요. 스탭들은 <부러진 화살>이 저예산 영화인데도 아주 성실하고 환상적으로 호흡이 맞아서 정말 좋았어요. 그저 충분한 대우를 해주지 못하는 제작환경이 아쉽고 미안하지요.

이안 : 마지막으로 후배 감독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이라면?

정지영 : 영화는 개성이 생명이라는 겁니다.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를 살리는 열쇠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한국 영화산업이 독과점화되면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어요. 가령 시나리오를 보면서 신(scene)마다 점수를 매겨서 투자여부를 결정한다는 건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지요. 영화는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아서 제조업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처럼 계량화될 수 없어요. 어렵더라도 자신의 개성을 지키고 영화에 담아야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작가로 살 수 있다는 걸 새겼으면 합니다. 한 번 연출하고 다시는 영화 못 만드는 감독이 되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평생 영화를 할 수 있는 작가로 살려는 자부심으로 자신의 개성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1월 19일 개봉하는 <부러진 화살>,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호통으로 사법부의 문제를 스크린에 활짝 펼쳐 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화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를 기꺼이 누리는 관객이 되기를.

 

2012.1.10 / 미디어오늘 / 이안(영화평론가)

----------------------------------------------------------------------------------------------------------------- 

‘부러진 화살’ 안성기, ‘제2의 도가니’라고 묻는 질문에…

 

[신 동호가 만난사람] 매우 특별한 해, 특별한 시점이다. 환갑에다 데뷔 55년. 설 연휴 화제작 두 편 동시 개봉.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은 우리 사회의 성역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고, 김달중 감독의 <페이스메이커>는 올해 런던올림픽을 무대로 한 감동적인 드라마다. 이 두 영화에 출연한 ‘국민배우’ 안성기가 심상찮다.

 

http://img.khan.co.kr/news/2012/01/14/khan_Yr0IaI.jpg 

 

한 달 전쯤에도 좀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책 한 권을 접했다. 무라야마 도시오(村山俊夫)의 <청춘이 아니어도 좋다>(사월의책), 안성기의 연기와 인간적 매력에 반한 일본인이 쓴 그의 평전이다. 그가 왜 국민배우인지 이 책이 잘 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라야마는 평전을 쓰기 위해 그의 출연작 50여편을 찾아서 보았다고 한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영화 담당을 한 적도 없고 ‘광팬’도 아닌 기자도 이제까지 그 정도는 본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같은 시대에 산 결과가 그렇다는 걸 깨닫고 적이 놀랐다. 영화를 통해 시대를 함께하고 대변해온, 그래서 국민배우라는 화려한 치장도 평상복처럼 소박하게 어울리는 것인가.

 

 

심상찮은 것은 국민배우의 변신이다. 물론 그 자신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배우’가 아니라 ‘국민’이 변하고 있다. 그가 출연한 두 작품이 ‘흥행 대박’이 되든 ‘제2의 도가니’가 되든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국민정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의 자택 부근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두 작품이 같은 날 개봉돼 흥행 경쟁을 벌이게 됐습니다. <페이스메이커>가 더 잘 되기를 바란다면서요.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부러진 화살>의 20배 이상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같은 숫자의 관객이 들어도 한 쪽은 굉장한 성공, 다른 쪽은 실패가 될 수 있거든요. 그 점에서 양쪽이 비슷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죠.”

-개인적으로는 러닝개런티로 출연한 <부러진 화살>이 잘 되는 게 이득이지 않습니까.

“하하하.(크게 웃음) 개인적으로는 좋죠. 그런데 제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어요. 대작이 실패하면 시장 전체가 위축되거든요.”

-사회적 반향은 <부러진 화살>이 더 클 것 같습니다.

“굉장히 흥미가 있고 잘 찍혀진 영화예요. 법정영화인데 밀도와 긴장감이 있고 확실한 주제를 전달하는 이런 작품이 그동안 없었다고 할 정도로 말이죠. 다만 문지방이 좀 높죠. 요즘 사회성이나 예술성보다 오락적 측면이 강한 영화를 더 찾잖아요. 일단 문지방을 넘기만 하면 아주 좋은데….”

-<도가니>에서처럼 영화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바꾸고 정치권을 움직인 선례가 있잖습니까. <부러진 화살>도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어 ‘제2의 도가니’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허허허.(가벼운 웃음)”

 

부담스러운 질문인지 그는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수준 높은 평은 많다. ‘무채색의 연기자’(배창호 감독), ‘안성기의 얼굴이 아니라 감독의 얼굴’(정성일 영화평론가), ‘캐릭터의 만물상과 같은 스펙트럼’(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비범한 평범’(이명세 감독) 등등. <부러진 화살>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타협을 거부하는 깐깐한 교수로 분한 그가 수감자에게 극도의 모멸을 당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성폭행을 당한 뒤 기가 꺾인 듯한 표정이 너무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의도적으로 표현을 절제한 겁니까.

“실존 인물이 있고 근래에 일어났던 큰 사건을 다룬 것이니까 부담이 되죠. 사실에서 벗어난 표현을 배제하고 가감이 없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성폭행 신은 영화적 픽션이에요. 더욱 모멸감을 주기 위한 장치였죠. 보통 때 제가 가진 이미지, 이를테면 부드러움이라든가 웃음기, 선한 인상 등을 보여주면 하고자 하는 얘기와 다른 방향으로 갈 것 같고 영화가 실패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감정적이기보다는 사실적으로, 다시 말하면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은 굉장히 자제를 한 것이죠.”

-주인공이 너무 매력적으로 안 보이려고 했다, 이런 말씀인가요.

“그렇죠. 연기자는 인물에 대해 호감을 갖고 연기를 하고 또 호감을 주는 캐릭터로 보이기를 대부분 원하죠. 그런데 이 영화가 객관성을 갖고 진실에 가까우려면 주인공의 좋은 이미지와 옳은 점만 보여줘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굉장히 조심을 많이 했죠. 감정적으로 쓸데없는 어떤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말이죠.”

- 연기를 할 때 맡은 배역과 어느 정도 일체감을 느낍니까.

“그게 잘 이루어질 때 좋은 연기를 하게 되죠. 그 사람 같은 느낌을 충분히 갖고, 뭐 어떤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것도 자기화하는 거죠. 그게 안 되고 겉돌면 표시가 나죠. 어설플 수가 있고 감동을 줄 수가 없는 거죠.”

 

-대통령이나 왕의 역할도 여러 번 했는데, 그런 역을 할 때 권력의 힘이라든가 단맛 같은 걸 느낍니까.

“아니 그런 건 안 느껴지고 오히려 촬영장에서도 불편해요. 단정한 옷차림, 헤어스타일, 뜨는 경호원들, 이런 것들이 굉장히 신경 쓰이죠. 대사도 정확하게 해야 되고… 진짜 재미가 없어요.”

-뜻밖이네요. 어릴 때 전쟁놀이할 때 대장 역할을 하면 근사하잖아요.

“그건 어렸을 때 감정이고…(웃음) 그냥 의상도 아무 거나 입고 머리 스타일도 편안하게 하는 게 몸가짐이라든가 생각이라든가 표현이 자유롭죠.”

그는 아역 시절 70여편, 성인배우로 재데뷔한 뒤 8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거지 왕초부터 대통령까지, 안 해본 역이 없을 것 같다.

-제일 많이 한 역할이 어떤 겁니까. 경찰 역입니까.

“굉장히 다양해요. 가만 있어봐…(잠시 생각한 뒤) 아, ‘루저’ 역할을 많이 했네요. <라디오스타>에서도 약간 그런 스타일이었고요. 최근에는 좀 연륜이 붙어서 노련한 사람, 그런 역할을 많이 하게 되죠.”

-극중 인물이 자신의 실제 인간형과 가장 부합했던 작품으로 어떤 걸 꼽을 수 있습니까.

“전체가 다 비슷할 수는 없지만 <라디오스타>의 그런 캐릭터(최곤의 매니저 박민수)가 좀 비슷해요. 최근의 <페이스메이커>는 저하고는 다른, 만들어진 인물이죠.”

-자신의 본모습과 다른 연기를 할 때 어려움은 없습니까.

“어렵죠. 감정이 섬세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보는 사람도 풍부한 것을 느끼기보다는 하나의 큰 이미지만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큰 감동을 주기가 어렵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많은 노력이나 단련을 해야 하는 역할이나 연기도 있을 텐데,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습니까.

“<만다라>에서 법운 스님 역할을 할 때예요. 보통 머리를 깎으면 일반 사람은 죄수 모습이에요.(웃음) 속세의 때가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이죠. 맑은 영혼을 가진 젊은 수도승의 모습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죠. 그래서 출연 결정이 나자 바로 승복을 맞췄어요. 집에서 잠옷처럼 늘 입고, 머리를 깎고 난 뒤에는 밖으로도 그렇게 다닌 거예요. 1980년 초만 해도 제가 TV를 안 했으니까 영화를 안 보는 분은 제 얼굴을 몰랐어요. 지금 같았으면 어렵겠지만 그 당시는 큰 어려움 없이 그렇게 했죠.”

그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위해 피아노를 배운 일, <헤어드레서>를 위해 몇 달 동안 가위질 연습을 한 일, 사극을 위해 검술 훈련을 한 일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아역배우에서 은퇴하고 대학·군복무(ROTC)를 마친 뒤 영화를 기피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려 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시작된 일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거기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거나 영화라는 게 무엇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고 그냥 시달리고 잠 못 잤던 기억만 있었죠. 인기 같은 걸 누릴 만한 나이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취직이 안 되자 에이, 영화를 다시 하자고…. 내가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영화가 아니겠는가 해서 다시 시작을 한 거죠.”

-아, <페이스메이커>에 나오는 대사와 비슷하군요. ‘잘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에 무엇을 할 것이냐’였죠.

“제가 좋아서라기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점점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영화 보기가 굉장히 힘들어서 프랑스문화원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할리우드 영화만 접하다가 소규모 자본으로 만든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고 아, 이거 의미 있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내가 하겠다고 확실하게 마음을 먹게 된 거죠.”

연기 외에도 그는 영화계 안팎에서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20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굿다운로드캠페인 공동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이사, 집행위원, 홍보대사 등까지 아우르면 명함 앞뒤에 빼곡하게 적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치적 또는 사회적 발언을 하거나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특유의 방식으로 활발한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대중스타들의 사회적 발언이 과거와 달리 많아지고 그 영향력도 커진 것 같습니다. 이른바 소셜테이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순전히 자기 스타일이죠. 그런데 사실은 숫자적으로 많은 편은 아니죠. 워낙 영향력이 있고 눈에 띄어서 그런 것이지… 그런 데 대해 무관심하거나 잘 모르는 쪽이 상당히 많은 편이죠.”

-한국영화의 가능성이나 비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영화를 잘 만들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예요. 자국 영화가 관객의 인기를 누리는 나라가 많지 않다고 그래요. 칸이니 베를린, 베니스, 이런 영화제에서도 예전에는 중국 영화가 빠지면 약간은 동양 쪽에서 뭔가 빠진 것 같았는데 요즘은 한국영화가 그런 식으로 됐어요. 기다리는 감독의 영화들도 많아졌고….”

영화계 얘기가 나오자 그의 말이 길어졌다. 그는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이 좋아지고 자본이 커진 점 등을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문제점은 큰 작품들과 작은 자본의 작품들 간의 균형이에요. 작은 영화들이 배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잖아요. 너무 산업적으로, 기업적인 마인드로 접근을 하다 보니까 문화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부분이 겉놀게 되죠. 이런 부분에 대한 포용이 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작은 영화와 독립영화, 이런 것이 결국 시장의 크기도 물론이지만 영화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거든요. 그들을 잘 키워주고 수용했을 때 영화 전체의 파이도 커질 수 있는 것이죠.”

-선거의 해를 맞아 정치권에서 탐을 낼 만한데, 정치에 참여할 생각은….

“물론 생각은 진짜 없고요. 그리고 이제는 (참여할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해주는 것 같아요. 가끔 기사 나오는 건 언론매체에서 알아서 쓰는 것 같고…, 직접 콜을 받았다거나 제가 무슨 얘기를 했다거나 한 적은 요 근래에 한 번도 없었어요.”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으니까….

“영화를 할 때가 제가 제일 행복하거든요. 행복한 일을 뿌리치고 다른 일을 왜 합니까. 무슨 일이든지 영화 속에서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 방법이 제게는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을 때보다 정리하면서 귀가 번쩍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후 <부러진 화살>과 관련한 두 가지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부러진 화살>, 제2의 <도가니> 되나’와 ‘대법원, <부러진 화살> 개봉 앞두고 대응 매뉴얼 배포’다. 대법원이 <부러진 화살> 개봉을 의식해 ‘석궁 테러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리한 문서를 각급 법원 공보판사들에게 발송하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무슨 일이든지 영화 속에서 얘기할 수 있다? <부러진 화살>에서 김경호 교수로 분한 그의 대사가 떠올랐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2012.1.14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

 

부러진화살 안성기 "예술적 가치있다"…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젊음의 비결이요? 영화라는 행복한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심적으로 젊음을 주는 것 같아요. 정년이 없잖아요. 사업하는 친구들 말고는 다 정년이 지나서 할아버지가 됐는데 저는 영화에서 실제 나이보다 5~10년 정도 젊은 역할을 하니까…. 대신 노쇠해졌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니 운동을 많이 하지요. 하하."

안성기(60)는 외골수다. 한결같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연기를 시작, 55년 세월동안 다른 길로 빠진 적 없다.

 

 


부드러움의 대명사, 한국의 아버지상을 제시한 안성기의 올해 첫 작품은 '부러진 화살'이다. 꼬장꼬장하고 매우 보수적이고 고집스럽다. '석궁 테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사법부와 타협 없이 맞선2007년의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54) 교수를 그대로 재현했다.

 

"90년대 후반 강우석 감독과 법정영화를 찍었다. 거기서 변호사 역할을 했는데 대사 때문에 힘들었다. 다시는 법정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피고인이지만 변호사 같은 피고라 대사가 부담이 됐다. 법정 장면은 노트를 사서 전체를 다 적고 밑줄 긋고 외웠다. 다 외우고 하니 편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영화에 참여한 이유는 명료하다. "사회적 파장? 나 역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메시지도 좋고 영화 완성도도 있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영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괜찮고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노장 정지영(66) 감독이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정 감독과 동시대의 감독들은 사라지다시피했다. 안성기는 "영화 풍토가 바뀌어서 90년대 초중반부터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다 보니 이쪽에서 일하는 분들이 젊어지고 있다. 관객들이 젊고 어린 데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나이가 들었다며 물러나는 감독님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너무 오락적인 재미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좋은 영화가 있으면 손해보는 것 같아도 했는데 지금은 다 손익을 계산하고 기업적으로 되다보니 제작하지 않는다.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부분도 있고 대하기에 껄끄러운 부분도 있어 제작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안성기는 "본의 아니게 못 하게 되고 안 하게 되니 자연스레 연출에서 물러나는 것 같다. 반면 정 감독은 '나, 늙지 않았다. 나이가 들은 게 아니다'면서 좋은 감각을 보여준 것 같다. 굉장히 가치가 있는 영화다. 나이가 많은 감독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는 거구나', 마음을 열게 하는 영화가 될 수 있는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영화를 찍는 그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비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충고다. "신인 때 느슨해질 때가 있다. 길이 옆으로 샐 수도 있는데 초심만 흔들리지 않으면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업을 하기보다는 연기면 연기, 쭉 흔들림 없고 인기에 아랑곳하지 않아야 한다. 연기하는 것에 행복해하는 배우는 옆에서 보기만 해도 좋아 보인다."

그러나 거대자본 유입, 대형배급사의 횡포, '퐁당퐁당' 상영 등 영화계 현실은 못마땅하다. "'마이웨이' 같은 큰 작품의 흥행이 조금은 기대에 못 미쳐서 투자가 위축될 염려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대형자본 투자가 전부는 아니다. 전보다 저예산 영화를 많이 찍고 있기는 하지만 배급 문제, 퐁당퐁당 등 기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적인 비즈니스 측면이 강조된다. 대중문화도 기업이지만 개념이 다르다. 생각을 키운다면 서로 배려를 통해서 결국은 영화가 더 커져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 그때그때 결과만 중시하다 보니 모든 게 급박해진다. 호흡이 짧다 보니 깊이가 없어지는 것 같다. 깊이와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2012.1.15 / gogogirl@newsis.com

----------------------------------------------------------------------------------------------------------------------------------

 

 

'Art & Culture >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dnight in Paris - Woody Allen  (0) 2012.07.25
건축학개론  (0) 2012.05.23
인사이드 잡(Inside Job)  (0) 2011.05.26
김기덕 - 아리랑  (0) 2011.05.22
강풀의 '26년' 영화화 막는 자 누군가  (0) 201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