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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영화 이야기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

by Wood-Stock 2010. 8. 14.

기적이 안 어색한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

 

지난 12일 개봉한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는 다큐멘터리영화다. 영화장르로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 실화란 것이겠죠.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국립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예요.

 

 

1970년대 베네수엘라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세계 5위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 부의 대부분을 몇몇 계층이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다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영향 때문에 베네수엘라 서민층은 석유수출국이라는 명성 이면에 가난한 계층이 많았지요.

 

이런 베네수엘라에서 '엘 시스테마'는 하나의 문화 운동이었어요. 1975년 시작된 이 운동은 특이하게도 베네수엘라 경제학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에 의해 시작되었어요. 당시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혼란기였기도 해요.

 

너무 가난한 하위 계층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의 손에는 언제나 총이 들려 있었어요. 수많은 아이들이 16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간 것이죠. 이런 베네수엘라의 현실에 작은 희망을 던진 것이 '엘 시스테마'예요.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사회활동으로 클래식 음악을 끌어와요.

 

이 작은 문화 사회운동이 베네수엘라에 기적을 가져오게 되는 씨앗이 되죠. 현재 '엘 시스테마'는 완전한 네트워크로 발전을 했어요. 무려 102개의 청년 오케스트라와 55개 유소년 오케스트라가 베네수엘라 전역에 산재하면서 마약과 총,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을 구해낸 것이죠. 이렇게 거대한 문화 사회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헌신적인 노력과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기적이란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는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는 사전 정보를 알고 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요. 이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전혀 모른다면 다큐멘터리영화가 무척 지루할 가능성이 있단 것이죠.

 

이런 지루함은 과거 1970년대 중반 베네수엘라에서 왜 '엘 시스테마' 운동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에요. 결국 과거 1970년대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엘 시스테마'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 큰 영광 속에서 사회문화 운동으로 더 폭넓게 발전하고 있는 '엘 시스테마'의 현재 모습만 단편적으로 나열하기에 발생한 문제란 것이죠.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엘 시스테마'를 생각한다면 분명 아쉬운 일 같아요.

 

교육용 다큐멘터리라 생각할 가능성도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는 빈민가 아이들이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교육을 받고 성공하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기적의 오케스트라란 모토에 맞추어서 다큐멘터리영화를 촬영한 것은 사실이에요.

 

빈민가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엘 시스테마'가 가진 가장 큰 목표이자 설립목적이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단순히 이런 것을 나열하다보니 다른 부분에서 큰 약점이 보인다는 것이에요.

 

이 다큐멘터리영화는 마치 '교육용'으로 관객들을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요. 분명 아름답고 기적적인 오케스트라의 이야기지만 너무나 평범하면서 있는 사실을 그냥 나열하듯이 만들어낸 영화의 약점이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단 것이죠.

 

만약 교육용 영화로 만든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이 작품은 교육용이 아니라 실제 극장에서 상영한다는 것이 문제지요. 여기에다 일반 관객들이 봐도 카메라 앵글이나 편집이 엉성하다고 느낄 부분들이 많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어요.

 

분명 베네수엘라에서 실제 있었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영화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현실감 있는 감동을 느끼긴 어려울 것 같아요. 오히려 교육하듯이 나열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유발할 가능성까지 있어요. 차라리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엘 시스테마'의 이야기를 나열해서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으로나 다큐멘터리완성도보다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분명 약점이 있는 다큐멘터리영화이긴 하지만 실제 큰 변화를 이끌어온 '엘 시스테마'를 환기시킨단 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오케스트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관객일수록 얻어가는 것 역시 커지겠죠. 다큐멘터리영화보기 전에 '엘 시스테마'에 대해 충분히 알고 가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2010. 8.14 / Ohmynews /유진경 (moviejo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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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음악이 세상을 바꾸다

 

남미를 여행했다. 5년 전, 6개월 동안, 11개 나라를. 대개는 관광지의 메이크업으로 이방인을 호객하는 명소 순례였지만, 말라붙은 기억을 있는 힘껏 쥐어짜보니, 아 그게 남미의 민낯이었구나, 싶은 순간이 있긴 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버스 안에서 본의 아니게 달동네를 '구경'하게 되었다. 혹여 길눈이 어두워 변두리에 들어서기라도 하는 날엔, 적어도 장기 하나쯤 빼줘야 겨우 살아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대륙. 그래서 한 블록마다 무장경찰이 어슬렁거리는 안전지대만 돌면서 이국의 풍경을 만끽하던 관광객에게, 비록 주마간산일지언정 달동네 구경은 쉽지 않은 기회(?)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기괴하고 진귀했다. 저개발과 난개발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산의 경사를 따라서, 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가난의 거처들이 찌그러진 레고블록처럼 끝도 없이 쌓여 올라가고 있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겠지만,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솔직히, 사람 살 곳은 못 되었다.

35년간 일어난 기적의 재구성

다큐멘터리 < 기적의 오스케스트라-엘 시스테마 > 를 보면서 5년 전, 차창 밖으로 바쁘게 뒷걸음질쳐 도망치던 가난의 풍경이 떠올랐다. 베네주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달동네도 볼리비아 수도의 산기슭과 다를 게 없다. 솔직히,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그 언덕에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다큐의 주인공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총소리가 들리고 더러는 그 총에 맞아 학교에 가지 못하기 일쑤인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멋진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왜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를 새삼 근심하지 않는다.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지도 샅샅이 들춰내지 않는다. 대신, 악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좁고 긴 달동네 계단을 내려와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을 따라간다. 허름하지만 아늑한 교실에 모여, 총소리 대신 악기 소리에 둘러싸인 아이들의 웃음을 찍는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1975년,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해 빈민가 아이 11명이 허름한 차고에 모여 처음 악기를 배운 후, 이제는 베네수엘라 전역 200여 개 센터에서 아이들 30만명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육문화센터. 꿈이라는 단어가 이미 오래전에 쓰임새를 잃고 용도 폐기된 동네에서, 아이들이 다시 '꿈'을 입에 올리게 만든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증언한다. 지난 35년 동안 이 나라에 대체 무슨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한다.

시작은 한 사람의 허황된 꿈이었다. 지휘자이면서 정치가이자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라는 사람이 빈민가 아이들로 오케스트라를 꾸릴 생각을 처음 했다. 아이들이 마약 대신 음악에 중독된다면, 가난의 거처에도 희망이 '인셉션'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원대한 꿈의 설계자를 언젠가 MBC 시사 프로그램 < w > 에서 본 적이 있다. 20분짜리 짧은 리포트만 보고는 '그 양반, 참 대단한 양반이네' 하는 생각뿐이었다. 10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온전히 '엘 시스테마'의 실체를 이해하고 나니 그 양반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음악, 그것 참 대단한 마술이네, 새삼 감탄하고 전율하게 되었다. 왜 세계 각국이 엘 시스테마의 대견한 성공 사례를 배우려 애쓰는지도 알았다.

< …엘 시스테마 > 보도자료에는 제작진이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인용한 글이 실려 있다. "많은 개인적 꿈은 누군가가 이미 꾸었던 꿈에 수렴된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같은 꿈을 꾼다면 결국 그 꿈은 실현된다"라고 제작 후기를 밝혔다. 라스트 신의 짜릿한 퍼포먼스에 감동하고 나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도 어느새 같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김세윤 (영화 에세이스트) /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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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 ‘총알 막은 음악’ 몽상을 현실로 바꾼 기적

음악이 총알을 막았다. 시를 써서 부자가 됐다는 말만큼이나 황당하게 들리는 소리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선 클래식 음악이 총알을 막았을뿐더러, 마약을 피하고, 가난을 이기고, 감성을 키우고, 희망을 얻게 했다.

1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를 보고 나면 베네수엘라가 미인대회의 나라, 차베스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라 ‘엘 시스테마’의 나라라고 여기게 된다. ‘엘 시스테마’란 영어로 ‘시스템’이다. 이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대학에서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고 음악에도 소양이 깊었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8명의 동료와 함께 이 독특한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건 1975년. 전과 5범의 소년을 비롯해 빈곤과 범죄에 물든 11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30여년이 흘렀다. 지금 엘 시스테마는 2~16살까지 단계별로 이루어진 100여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합창단, 성인 오케스트라, 이를 지원하는 교육센터, 악기 제작 아카데미 등을 총칭한다. 지금까지 26만여명이 엘 시스테마를 거쳐갔다. 그 중에는 미국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LA필하모닉 수장이 된 구스타보 두다멜, 베를린 필하모닉 최연소 단원인 에딕손 루이즈도 있다.

<엘 시스테마>는 엘 시스테마의 오늘을 그린다. 아울러 문화의 무한한 힘,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증명한다. 영화 속 인터뷰이들의 말대로 베네수엘라는 “재수 없으면 총 맞는 동네”였다. 저녁이 돼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엄마는 끔찍한 생각에 미리 몸서리쳤고, 집에 들어온 아이는 총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아이들에게 총이나 마약 대신 악기를 들게 하자는 것이 아브레우를 비롯한 ‘몽상가’들의 생각이었다.

 


아브레우는 확고한 비전, 이를 실행할 방법을 갖고 있었다. “죽으면 쉴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 아브레우의 생각이었다. 리더의 영도력 아래 엘 시스테마는 뚜벅뚜벅 전진했다. 협상하고 타협하고 인내했다. 이들은 가장 가난한 동네를 먼저 찾았다. 그곳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구해내는 대신, 그곳에 엘 시스테마의 터를 닦았다. 현이나 건반을 짚지 못하는 유아들은 장난감 악기를 들었다. 유아들로 구성된 악단 이름은 ‘종이 오케스트라’. 실제 연주는 하지 못해도 각자 파트를 정해 연주를 흉내냄으로써 합주의 의미,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한다는 취지였다.

엘 시스테마는 복지 제도일 뿐 아니라 음악 교육 체계다. 이미 두다멜의 존재가 이 체계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아이들은 오디션을 거쳐 상급 오케스트라로 ‘진학’한다. 경쟁 논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엘 시스테마의 정점에 위치한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연주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묵직한 연주를 들려줄 때는 한없이 진지하다가도, 신나는 음악일 때는 악기를 들고 무대를 춤판으로 만든다.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는 클래식 연주, 체험에서 우러난 감정을 담은 음악. 이들의 연주는 서유럽 중심 기존 오케스트라의 헤게모니에 유쾌하게 균열을 낸다.

다큐멘터리로써의 형식미를 따졌을 때 <엘 시스테마>가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역 주민, 단원, 아브레우 등의 인터뷰를 통해 엘 시스테마의 장점을 설명하고 간혹 연주를 들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흥미진진한 극영화가 있듯, 피사체의 아름다움 때문에 볼 만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엘 시스테마>는 그런 다큐멘터리다.
 

경향신문 - 백승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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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의 열정적인 합주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 사우디타’(Venezuela Saudita). 1970년대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석유 부국을 꿈꿨다. 마라카이보 호(湖)에서 솟아난 석유는 분명한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1975년 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페레스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지휘도를 수여받은 우고 차베스 역시 조국의 번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16년 뒤 페레스 대통령과 미국과 초국적 기업을 향해 칼을 빼들 반역의 주인공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누구나 장밋빛 미래를 말하던 시기, 불가능한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베네수엘라는 탐욕스러운 제국들의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들의 귀에 민중의 신음과 통탄은 그치지 않았다. 1975년 엘 시스테마는 그렇게 탄생했다. “우린 예술로 싸웁니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음악이라는 기치 아래 하나가 되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거죠.” 엘 시스테마가 택한 건 총 대신 음악이었다.

 

엘 시스테마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다. 흔히 시스템을 뜻하는 ‘엘 시스테마’라 줄여 부른다. 가난은 당장 처치할 수 없지만, 조금씩 치유할 순 있다. 빈민가에서 마약과 총으로 허기를 달래던 아이들에게 엘 시스테마는 든든한 요새이자 꿈의 요람이다. 전과 기록으로 얼룩진 11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현재 100여개의 지역별 오케스트라와 30만명의 단원을 거느린 초대형 오케스트라가 됐다.

 

 

역경에서 환희를 쏘아올린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다룬 이 음악 다큐멘터리는 특별한 재능이 기적을 일구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모차르트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또한 엘 시스테마의 일원으로만 다뤄진다. 대신 종이로 만든 바이올린을 만지작거리던 코흘리개들이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한명의 불우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모든 불우한 아이들도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죠.”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오의 말처럼, 엘 시스테마의 철학은 누구에게나 평등이다. 마에스트로와 비르투오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음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엘 시스테마의 이념은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스탭들의 확신에 찬 발언과 총을 맞고서도 웃으며 연주를 했다는 소녀의 진지한 표정에서도 읽힌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가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건 아니다. 음악 다큐멘터리로서의 본연의 감동도 있다. “여기 아이들은 열다섯이면 총 들고 마약하다가 3달 뒤엔 죽고 말아요”라는 꼬마의 말이 끝나면 버려진 아이들의 고난의 여정을 다룬 모리스 라벨의 <라프니스와 클로에>가 흘러나오고 젊은이들만이 새 세상을 열 수 있다는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오의 인터뷰에 이어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덧붙여진다.

 

하지만 정교한 구성보다 당장 눈과 귀를 사로잡는 건 엘 시스테마의 열정적인 합주다. 엘 시스테마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시몬 볼리바르의 <맘보> 연주는 어떤 뮤지컬보다도 흥겹고 어느 재즈 공연 못지않게 자유롭다. 연주 도중 파트별로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무거운 관악기를 휘리릭 손으로 돌리는 대목에선 지켜보는 이의 엉덩이도 저절로 들썩거린다. 악기가 없어도 연주할 줄 아는 꼬마 오케스트라와 들리지 않아도 노래할 줄 아는 장애인 합창단의 감동도 빼놓을 수 없다.

 

덧붙여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좀더 보고 듣고 싶다면 국내 출시된 DVD <The Promise of MUSIC>이나 음반 <<Fiesta>>를 권한다. <The Promise of MUSIC>에도 엘 시스테마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포함되어 있는데 또 다른 환희의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Fiesta>에는 남미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으로 제 영혼을 연주하는 엘 시스테마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책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에는 차베스 혹은 엘 시스테마의 정신적 지주인 시몬 볼리바르, 시몬 로드리게스 등과 같은 전설적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씨네21 / 이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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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음악, ‘차고의 기적’

베네수엘라 거리 청소년에 희망 심은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기록한 다큐

 

1975년,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난생처음으로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35년 뒤 그 음악교실이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여개로 퍼지고 단원이 30만명에 이를 줄이야.

 

새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는 음악으로써 거리의 청소년들한테 삶의 희망을 심어 문화의 나라로 거듭나게 한 베네수엘라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의 약칭. 두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단계별로 이루어진 100여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성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센터, 악기 제작 아카데미, 불우한 어린이를 위한 지원센터 등 ‘베네수엘라’의 음악 운동과 관련된 모든 기관과 단체를 총망라한다.

 

 

차고의 기적은 음악의 힘을 믿었던 젊은이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의 꿈에서 비롯됐다. 어려서 피아노, 오르간, 작곡 등을 배운 그는 대학에서 정책학과 경제학 등을 전공한 괴짜. 작은 시작은 봇물처럼 불어나고 악기가 모자라자 이들은 ‘종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 했다. 악기는 소리가 나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종이 악기로 가르치고 연주회를 열었다. 쓰레기 매립장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사는 곳에 센터를 만들고 그에 맞는 교육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음악이 아니더라도 ‘엘 시스테마’를 거친 아이들이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악기 제작, 수리 센터를 만들었다.

 

그 후 35년, 허름한 차고에서 연습을 하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는 수많은 아이들이 꿈을 연주하는 세계 최대의 음악 학교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만도 수십만. 이제는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베네수엘라 전역에 퍼져 있는 200여개의 센터에서 30여만명의 후배들을 가르치며 ‘엘 시스테마’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마약과 범죄의 땅이었던 베네수엘라는 100여개의 오케스트라가 있는 음악의 나라로 변신했다.

 

엘 시스테마의 기적은 수화합창단이 손짓으로 들려주는 ‘아베마리아’는 아름다운 하모니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리도 베네수엘라다!’라는 모토로 1995년 시작된 시각, 청각 등의 장애아를 위한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불가능을 넘어선 이들의 모습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적 혜택을 얻고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엘 시스테마’의 마음이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음악이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며 오케스트라 연주는 협동과 배려, 조화 등 사회적 덕목들을 자연스레 익히게 한다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개구쟁이 소년 요브란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몰라요. 빈민가 출신인데 뭘 알겠냐 하겠죠. 큰 걸음으로 나가야죠. 코끼리처럼!” 12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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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과 사회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전 국민의 30퍼센트 이상이 빈민층이며, 이들은 총을 들고 거리를 떠돌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베네수엘라에서 빈곤과 체념이 대물림 되는것을 막고, 아이들을 가난과 폭력에서 구해내기 위해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시작되었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최초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립한 것으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빈민가의 차고나 창고를 전전하며 연습하던 오케스트라는 국내외 성공적인 공연을 통하여 성장하였고,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전국 각지에 음악 교육 센터를 세워 빈민가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사회경제적 빈곤 계층으로, 가난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은 으악을 배우며 비로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이 책은 자신의 열정과 재능, 그리고 꿈을 다른 사람에게 '꿈'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한명 한명의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엘 시스테마가 베네수엘라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한 것처럼 이 책을 통하여 독자는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Chefi Borzacchini

베네수엘라의 카톨리카 안드레스 베요 대학교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문화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81년부터 87년까지 일간지 「엘 나시오날」에서 음악, 춤, 발레, 문화 정책 등의 문화 관련 기사를 썼다. 1988년부터 90년까지 「엘 디아리오 데 카라카스」에서 일했고, 1990년에 다시 「엘 나시오날」로 돌아와 2002년까지 12년 동안 문화면을 이끌었다. 13개 베네수엘라 문화예술 기관에서 문화 저널리스트에게 수여하는 미요 베스트리니 상의 첫 번째 수상자이고, 1995년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저널리스트에게 수여하는 「엘 나시오날」의 엔리케 오테로 비스카론도 상을 받았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여러 문화 관련 기관에서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35년간 음악으로 30만 명의 삶을 변화시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혁명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까? 총을 들고 거리를 떠돌던 아이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어 콘서트에 참여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고단한 삶을 술과 마약에 기대어 견뎌내던 사내가 아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일이 가능할까?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난 35년간 30만 명의 삶에서 매일같이 일어났다.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이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로 전 국민의 30퍼센트 이상이 빈민층인 나라, 총격 사건과 마약 거래, 폭력으로 얼룩진 나라 베네수엘라에서 거리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주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쳐 아이들을 가난과 폭력에서 구해온 음악 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El Sistema)’의 35년 역사를 담고 있다. 음악이 한 사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빈곤과 체념의 문화가 대물림되는 것을 막아 그의 가족과 마을, 사회를 변화시키리라 믿은 초기 개척자들의 헌신, 그 혜택을 받아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난 음악가들, 또 그들에게 음악을 배우는 다음 세대 아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책은 지금껏 부분적으로만 소개된 엘 시스테마의 온전한 모습을 국내에 소개하는 첫 책이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최초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빈민가의 차고나 창고를 전전하며 연습하던 오케스트라는 국내외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치르며 규모를 키워갔고,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전국 각지에 음악 교육 센터를 세워 빈민가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사회 경제적 빈곤 계층으로, 가난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던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며 비로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처음부터 솔로보다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중심으로 실시되는 음악 교육은 거리를 떠돌던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단체 생활을 통해 질서와 규율, 책임과 의무, 배려와 헌신 등의 가치를 익히게 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현재 전국 221개의 음악 학교와 5백 개가량의 오케스트라에서 30만 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음악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구스타보 두다멜이나 에딕손 루이스를 바라보며 탁월한 음악가를 꿈꾸기도 하고,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멋진 선배들을 보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지난 35년간 엘 시스테마가 이룬 가장 큰 성취는 함께 연주하며 자기 앞에 놓인 불행과 싸워나간다면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음악의 약속’,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일 것이다.

* 엘 시스테마 : 1975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8명의 젊은 음악가를 모아 창립한 최초의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발전해 이루어진 전국 규모의 음악 교육 시스템으로,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FESNOJIV)이다. 현재 전국 221개의 음악 학교와 500개가량의 오케스트라에서 30만 명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배우고 있고,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사회 경제적 빈곤 계층이다.

*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 : 직업 연주자들로 구성된 엘 시스테마의 최상위 레벨 오케스트라.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멕시코의 거장 에두아르도 마타의 지휘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이후 주빈 메타, 사이먼 래틀과 같은 거장들과 협연하며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거듭났다. 알프레도 루헬레스가 지휘하며 엘 시스테마의 창립 멤버들과 뛰어난 경력을 갖춘 음악가들로 구성된 시몬 볼리바르 A 오케스트라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며 엘 시스테마에서 성장한 음악인들과 신참들로 구성된 시몬 볼리바르 B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어 있다.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던 내 삶에 오케스트라가 찾아왔다

스물아홉 살의 클라리넷 연주자 레나르 아코스타는 소년원 안에 설립된 음악 학교인 로스 초로스 센터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는 열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신발과 옷을 팔고, 온갖 종류의 마약을 하고, 총을 들고 강도짓을 하는 ‘거리의 아이’였다. 소년원에 들어가서도 문제를 일으켜 도주했다가 다시 잡혀 들어온 게 열다섯 살 때였다. 그 무렵 청소년 오케스트라 프로젝트가 로스 초로스 센터에 왔다. 난생처음 보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 매료된 그는 그때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전문 음악원에서 클라리넷을 배워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대안 시스템을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산업 디자인도 공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레나르 아코스타의 삶은 결코 특별한 예가 아니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던 아이들이 전국 각지의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음악 학교에서 삶의 극적인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손에 바이올린을 든 모든 아이는 무기와 마약의 폭력에서 안전하게 떨어져 나온 아이라고 믿습니다.”(119쪽)라는 엘 시스테마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타르시시오 바레토의 말처럼, 엘 시스테마는 그들에게 평화와 안정, 나아가 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과 기회를 준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음악에 몰두하고, 엘 시스테마는 그 노력에 걸맞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사회 밖에 있던 아이들을 사회 안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설사 음악가가 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배운 도전의식과 협동심, 질서, 선의의 경쟁, 화합과 연대 등의 가치를 실천하며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간다.
엘 시스테마가 일으키는 변화는 아이들의 삶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들이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가족과 마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가족을 한번 상상해봅시다. 어느 주에 사는 가족이든 상관없습니다. 아버지는 맥주를 마시며 TV의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느라 바쁩니다. 저쪽 방에는 바이올린으로 비발디를 연주하는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이 소년을 둘러싼 음악은 삶에 질서를 부여할 몇 가지 기준을 소년의 가슴속에 심어줍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가족 구성원들에게 전염됩니다. 장담하건대 맥주를 마시며 야구 경기를 보던 사내는 3년 안에 아들이 주립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어느 공연장에 앉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아이, 그러니까 우리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이웃들까지도 바꿔놓게 될 것입니다. 이웃들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가 자기 동네 몇 번지에 산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 pp.135-136

음악 교육이 가난과 폭력을 낳는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지만, 엘 시스테마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성찰적 사고 능력과 의지”(269쪽)를 키워주고, 그 가족과 이웃에게도 희망의 싹을 틔워 사회 전체가 서서히, 스스로 변해갈 수 있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실제로 엘 시스테마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빈민, 마약, 무기 등으로 대표되던 과거의 이미지를 벗고 전 세계 문화예술계가 주목하는 곳, 음악 교육을 통한 사회개혁 운동의 본고장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Play and Fight! 연주하라, 그리고 싸워라!

‘연주하라, 그리고 싸워라’는 1976년 이래 엘 시스테마를 이끌어온 모토다. 이 말은 한 아이가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 앞에 놓인 삶의 여러 장애물을 넘어서는 강력한 의지가 되는 동시에, 음악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빈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애써온 초기 개척자들의 분투와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로, 전국 규모의 오케스트라 교육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추진해온 ‘엘 시스테마의 심장’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와 8명의 개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최초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이어서 전국 각지에 음악 학교와 오케스트라를 세우며 엘 시스테마의 기초를 닦았다.

 

엘 시스테마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아브레우라는 인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35년 전 한 청년이 만든 작은 오케스트라가 전국에 걸친 음악 교육 시스템이 되고, 나아가 전 세계적인 사회 운동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아브레우라는 한 사람의 의지와 신념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솔로이스트를 양성하는 음악 교육에 반기를 들고, 처음부터 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합주를 통해 악기 연주를 익혀가는 방식을 택했다. 2년간 개인 레슨을 받는 것보다 60회의 공연을 치르며 동료, 지휘자, 관객과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음악을 배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클래식 음악의 낡은 권위를 무너뜨리고, 원한다면 누구나 악기를 부여받아 오케스트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없앴다. 이는 현대 클래식 음악 교육에서는 매우 혁명적인 방식으로, 아브레우는 그 효과와 사회적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맞서 정부의 지원을 유지하며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삶 모두를 바쳤다.

 

이 책에는 아브레우 이외에도 초창기부터 엘 시스테마와 함께해온 교사와 교수 그리고 무대 뒤의 생활을 책임지는 행정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들은 베네수엘라 구석구석은 물론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오지와 작은 섬에까지 들어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많게는 8백 명에 이르는 대형 오케스트라의 국내외 공연을 준비하고,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경력과 미래, 때로는 가정까지 포기한 사람들이다. 음악을 무기로 불가능이라 여겨지던 모든 것에 도전한 ‘전사들’인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어머니’ 페레스 여사가 아브레우 박사에 대해 “그는 절대로 지치지 않고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그에게 불가능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됩니다”(185쪽)라고 말한 것처럼, 엘 시스테마의 역사는 꿈을 가진 한 사람의 거대한 신념과 의지가 현실이 되는 과정이자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꾼다면, 결국 그 꿈은 실현된다”(54쪽)는 보르헤스의 말을 증명해주는 가슴 벅찬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음악가들의‘아름다운 책임’

초기 개척자들의 헌신은 후배 음악가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지난 35년간 엘 시스테마를 성장을 멈추지 않는 조직으로 키웠다. 엘 시스테마에서 교육받은 음악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엘 시스테마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친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경우라도 한 해의 일정 기간은 반드시 베네수엘라에 머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엘 시스테마가 낳은 최고의 스타 구스타보 두다멜과 에딕손 루이스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두다멜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런 행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은 아름다운 책임이에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건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것이 좋은 음악의 비밀이고 비법이죠..”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연소 단원으로 뽑힌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손 루이스 역시 “제가 유럽에서 배운 것, 베네수엘라를 떠난 후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을 저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저 눈 감고 독일에 있을 수가 없어요.”라며 자신이 매년 꼭 세 차례 베네수엘라로 돌아가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케스트라의 창립 멤버들은 처음부터 미래 세대를 위한 모델로서 각자가 관리자의 역할까지 책임지는 것을 배웠어요. 우리는 연주했고, 콘서트를 열었고, 수업을 하러 전국 곳곳을 다녔고, 세미나를 열었죠. 이것이 바로 모든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공통분모가 ‘주는 것(giving)’으로 확립된 이유일 겁니다. 아이들이 음악 경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는 거죠. --- p.47

이처럼 지금껏 엘 시스테마가 흔들림 없이 성장해왔던 건 자신이 받은 혜택을 대가 없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겠다는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 가진 것 없이 엘 시스테마에 들어와 하고 싶은 일과 친구 그리고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처럼, 엘 시스테마에 들어온 모든 아이가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려고 한다. 엘 시스테마에 들어왔으나 음악에 소질이 없는 아이들을 악기 제작자나 행정 인력으로 키우고, 장애아를 위한 음악 학교와 합창단을 만들어 낙오자가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모두 이런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년 엘 시스테마에서 탈락하는 청소년과 아이들의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탈락이라는 말은 부적절합니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은 좌절을 느꼈기 때문이거든요. 엘 시스테마에서 중요한 것은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직업인으로서든 음악인으로서든 또 다른 무엇으로든 다양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에 남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회 안에서 보다 완전하고 통합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문화적 지식을 엘 시스테마 안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 p.103

엘 시스테마는 세계 문화예술 중심지들에서의 성공적인 공연과 거장들과의 협연을 통해 그들이 이룬 기적을 전 세계에 알려왔다. 그 결과 세계 각지에서 엘 시스테마를 모델로 삼아,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명훈, 장한나 등의 음악가들과 정부,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화예술 교육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첼리스트 장한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엘 시스테마를 언급하며 청소년들을 위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로스트로포비치, 미샤 마이스키 등 세계적 거장들에게 돈 한 푼 내지 않고 가르침을 받았던 그녀는 실제로 자신이 지휘자로 변신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한국형 엘 시스테마’의 기반을 구축해가고 있다(청소년 관현악 축제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8월 14일~28일, 성남아트센터)

 

이 책은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세상과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예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사회,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핵심은 조건 없이,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은 반드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으로 전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베네수엘라에서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총, 마약 대신 악기를 줘서 그들의 삶을 음악가의 삶으로 바꿨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베네수엘라는 나라 자체가 변했다. 문화의 나라, 문화의 심장이 되었다. - '장한나(첼리스트,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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