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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영화 이야기

Taking Woodstock

by Wood-Stock 2010. 8. 3.

우드스탁 정신과 히피문화에 대한 동경 <테이킹 우드스탁>

 

1969년, 영화가 시작하면 TV에 나오는 뉴스란 게 뻔하다. 베트남에서 지난주 무려 148명이 사망했다는데 6개월 만에 최저기록이라고 덧붙이고, 수에즈 운하에서의 교전을 비롯해 이스라엘과 아랍의 대결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멘트가 이어진다. 그나마 희망적인 뉴스라면 닐 암스트롱 팀의 아폴로 11호가 발사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열악한 방 상태에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과의 말싸움에 앞서 원작과 달리 가벼운 역사 브리핑으로 시작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야말로 그 자체가 지닌 축제적 성격뿐만 아니라 그 시대 안에 놓여 있는 자리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전운동과 히피문화, 변화하는 시대의 상징으로서 우드스탁은 존재한다.

 

가족이 파산 직전에 놓여 전재산인 모텔을 넘겨야 하는 처지가 되자 엘리엇(디미트리 마틴)은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했다 취소된 록 페스티벌을 유치하려 한다. 맥스 야스거(유진 레비)가 수천평의 농장을 제공하고 낡아빠진 모텔도 페스티벌의 공식 숙소가 되어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되자 엄마 소냐(이멜다 스턴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그렇게 고요하기만 하던 마을에 무려 50여만명의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축제 분위기가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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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우드스탁>은 콘서트를 중심으로 한 시끌벅적한 음악영화가 아니고(실제 무대 위의 밴드를 잡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나체’와 ‘마약’이라는 키워드로 <숏버스>(2006) 같은 느낌의 영화를 떠올리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미리 참고가 될 만한 원작 그대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리게 되면서 베델 지역이 맞닥뜨린 변화의 기운, 엘리엇 가족이 겪는 갈등과 화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엘리엇의 의미심장한 성장의 모습들을 찬찬히 훑는다. 그러면서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사람과 그를 저지하려는 주민들간의 필연적인 대립 양상이나 충돌, 페스티벌 진행상의 난관 등은 딱히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의 페스티벌을 마치 종교적인 무드로 완성한 장면들은 무척 황홀하다. 호수에서 나체로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풍경 뒤로 들려오는 록음악의 느낌, 헬멧에 꽃을 꽂은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수평 트래킹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우연히 만난 남녀의 손에 이끌려 마약에 취한 주인공의 환상장면 등은 마치 계시의 순간과 맞닥뜨린 압도적인 장면들이다. 그렇게 남김없이 벗은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 온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물들고 동산이 바다처럼 물결치는 환각장면은 이미지 그 자체로 <테이킹 우드스탁>의 주제를 명쾌하게 드러낸다. 정말이지 리안 감독은 그 어떤 프레임으로 가둘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2010.07.28 / 씨네21 주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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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갈망은 희망을 부른다

 

엘리엇(디미트리 마틴)은 다 쓰러져 가는 모텔로 생계를 이어가는 부모님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는 파산 직전에 놓인 모텔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다 옆 동네에서 열리기로 했던 록 페스티벌 취소 소식을 듣게 된다. 이 행사를 유치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엘리엇은 바로 주최측에 전화를 한다. 일사천리로 록 페스티벌이 유치되고, 부모님의 모텔은 페스티벌의 공식 숙소로 지정된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50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마을은 혼란에 빠진다.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의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은 <테이킹 우드스탁>은 제목 그대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소재로 한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1969년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공연 실황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이 페스티벌의 기획자인 엘리엇 타이버의 동명 자전 소설을 영화화한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드스탁 페스티벌 뒷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록 페스티벌의 시작이 부모의 모텔과 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벌였다는 것, 초코우유 맛에 반해 젖소들이 풀을 뜯어 먹는 베델 평원에서 열기로 결정한 일, 그리고 이 많은 인원들이 모인 이유가 자유를 부르짓었던 엘리엇의 말 한마디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감독은 영화를 통해 페스티벌을 유치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는 페스티벌의 숨겨진 뒷이야기만으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는다. 이안 감독은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등 초기작부터 가족이란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 왔다. <테이킹 우드스탁>도 예외는 아니다. 엘리엇은 화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림보다는 부모님의 모텔을 관리하는데 더 힘쓴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 자유로운 세상을 만끽하고 싶지만, 언제나 제자리다. 이런 와중에 록 페스티벌은 그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발화점인 동시에, 가족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로 쓰인다. 자유를 찾아 정처 없이 떠나는 히피들은 그에게 자유를 찾으라 손짓하고, 엘리엇은 그들의 삶에 쉽게 동화된다. 그리고 그 힘을 얻어 자신을 억압하는 엄마에게 당당하게 맞선다.


영화는 엘리엇이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는 동시에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평화, 사랑, 평등의 의미를 절묘하게 교합한다. 멀리 무대는 보이고 음악도 들리지만 카메라는 그곳을 애써 비추지 않는다. 다만 베델 평원으로 가는 히피들의 행렬, 헬멧에 꽃을 달고 그들에게 융화되는 경찰관, 전쟁의 상흔과 이념의 충돌 없이 마음껏 노는 사람들 등 분위기로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말한다. 또한 엘리엇은 이 분위기에 취해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소재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유연하게 푼 이안 감독의 연출력은 배우들의 호연으로 힘을 얻는다. 엘리엇 역의 디미트리 마틴은 어수룩하면서도 자유를 찾는 소년의 이미지를 잘 표현했고,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엄브리지 교수로 등장했던 이멜다 스턴톤은 매사에 꽉 막혀있고, 돈만 밝히는 엘리엇의 엄마 역을 인상 깊게 그려낸다. 또한 베트남전에 참전한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엘리엇의 친구로 에밀 허쉬가, 영화에서 게이 같지 않은 모습으로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리브 슈라이버의 새로운 모습까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이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두고 봤을 때 <테이킹 우드스탁>은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동안 봐왔던 익숙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가족이란 굴레, 동성애, 자유로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 등 이안 감독 영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보고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찾는다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음악은 그리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올해 임진각 비무장지대에서 열릴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앞두고 음악을 향유하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분들에게는 영화보다 O.S.T를 권한다.

2010년 7월 26일 / 무비스트 김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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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면서 위대하지 않은 페스티벌 이야기, 테이킹 우드스탁

 

1960년대 후반, 청년세대가 기성사회를 뒤흔든 두 상징적 사건이 있다. 프랑스의 68혁명(1968)과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1969)이다. 두 사건의 성격은 판이하다. 68혁명이 정부의 실정과 사회 모순에 대한 학생과 노동자들의 정치적 저항운동이었다면,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반전, 평화, 인권, 사랑의 메시지를 음악과 함께 향유하는 히피들의 한판 놀이터였다. 방식은 달라도 두 사건 모두 기성사회와 후대의 청년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68혁명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데 반해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대한 재조명은 거의 없었다. 이안 감독의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이 특히나 반가운 이유다.

1969년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베트남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와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흑인폭동 등으로 인종 갈등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해는 마침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해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텔레비전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베트남전 소식과 아폴로 11호 소식으로 역사적 배경을 깔아놓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얼떨결에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한가운데 서게 된 실존인물 엘리엇 타이버(디미트리 마틴)다. 시골에서 낡은 모텔을 운영하는 부모에게 파산 위기가 닥치자 화가의 길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모텔 일을 거든다. 모텔을 살리기 위해 궁리하던 그는 옆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 페스티벌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네 마을로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국 개최지가 이 동네의 베델 목장으로 결정됐고, 공식 숙소가 된 엘리엇의 모텔은 떼돈을 벌기 시작한다.

 

당초 5만명이 올 것으로 예상했던 페스티벌에는 10배인 50만명의 히피들이 몰렸다. 히피는 기성사회의 제도, 가치관 등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 회귀 등을 주장하는 일련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나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히피라는 테두리 아래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뒤섞였다. 환각제와 섹스 등 향락을 좇고 알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누구나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했다. 반전, 평화, 인권, 사랑을 외치면서도 적극적인 사회참여 대신 각자의 이상향만을 찾으며 도피하는 성향을 보였다. 이들에게 페스티벌만큼 좋은 ‘해방구’가 또 있으랴!



사흘간 펼쳐진 축제는 많은 이들을 변화시켰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빌리(에밀 허쉬)는 제 정신이 아닐 때가 많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데, 꿈에서 전쟁터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정상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그가 페스티벌에 젖어들면서 졸업파티 등 예전의 행복했던 기억을 되찾고는 눈물을 흘린다. “히피들 머리를 몽둥이로 두드려야 한다”던 경찰관도 얼마 뒤에는 헬멧에 꽃을 꽂고 “피스”를 외치며 히피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페스티벌의 자유분방한 기운이 철벽 같은 공권력도 녹여버린 것이다. 심지어 엘리엇의 완고하기 그지없던 부모마저 약 성분이 들어간 케이크에 취해 흥겨운 춤판을 벌인다.

소심하고 유약하던 엘리엇 또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페스티벌에서 만난 히피 커플의 권유로 환각제에 취한 그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의 눈에 비친 베델 목장은 음악과 쾌락과 평화가 물결치는 ‘유토피아’였다. 그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대담함마저 보인다. 엘리엇의 아버지는 말한다. “한 달 전만 해도 난 죽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너도 살아나거라. 그리고 떠나거라. 어디가 될진 모르겠지만.” 엘리엇은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불확실할지언정 자유로운 길을 택한다. 2007년 그는 자전적 소설 <테이킹 우드스탁>을 썼고, 이는 영화의 밑거름이 됐다.

‘사흘간의 평화와 음악’이 끝난 뒤 남은 것은 페스티벌 주최자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돈 문제와 쓰레기로 난장판이 된 벌판이다. 하지만 이 사흘간의 기억을 공유한 이들,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축제의 기운을 전해들은 이들, 나아가 사회 전체는 결코 축제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단지 사흘간 신나게 놀았을 뿐인데 말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위대하면서도 위대하지 않은 전환점인 이유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 지점을 담백하지만 아름답게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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