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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김정헌 vs 유인촌

by Wood-Stock 201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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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화예술위 위원장 직을 떠나면서 ~ "유인촌 장관, 그동안 애 많이 쓰셨소"

 

기사입력 2008-12-07 오후 4:55:46

 

위원장 근무 동안의 사퇴압력

지난 12월 5일부로 문화관광체육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광부)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특별조사' 결과, 「문화예술진흥법」과「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법령과 규정을 위반하였다고 한다. 나는 적법한 임명절차를 거쳐 2007년 9월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한나라당,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코드인사 운운하며 시비를 걸어 왔으며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무시하고 끈질기게 퇴진압력을 행사해왔다.

어느 정부건 정권을 잡으면 인사 교체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리도 있다. 바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공모로 뽑힌 공공기관장들이 그러하다. 특히 문화예술관련 사업들은 단시간에 성과를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으므로,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적어도 법적인 임기만큼은 일관성 있는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유인촌 장관은 직간접적으로 사퇴를 요구해왔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해 간섭에 가까운 정책지시를 내렸다. 애초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 것은 단순히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니라 '관'의 입김을 차단하고 현장의 예술가로 구성된 위원들로 구성된 민간합의기구로서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유 장관의 사퇴종용과 간섭은 이런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한 가장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유인촌 장관이 "공연계에 활력을, 국민에게 감동을!"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 내용은, 문화바우처 사업을 통한 장애인들의 문화향수기회 확대, 미판매 공연티켓 통합할인제 도입, 중소기업 및 지방단위 공연지원 강화 등이었다. 그러나 이 중 반 이상이 이미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중인 사업이다. 국회에서 어느 야당의원이 이에 대해 "(위원회의 일인데) 왜 위원회와 사전 협의가 없었느냐"고 질문하자 유 장관은 "위원회가 두 손 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서…"라고 무슨 대사 외우듯이 대답했다. 국회가 연극무대였던가?

이런 사업들은 위원회와의 사전 협의가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장관이 나서서 발표할 일이 아니다. 과장 정도가 나서서 해도 될 일을 굳이 장관까지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취임에서 해임까지 문화부와 조중동의 사퇴압력 일지

- 2007년 9월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취임
- 9월 7일 전후 : 동아일보 등 조. 중. 동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코드인사 운운 공격. 공공기관에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공모 절차를 거친 정당한 임명을 무시, 소위 좌파쪽에만 지원예산을 몰아줄 것이라는 흠집내기성 기사들.
- 2008년 3월 11일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 "지난 정권 추종세력..."
- 2008년 3월 12일 : 유인촌 문화부장관 광화문포럼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나름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
- 2008년 3월 17일 : 유인촌 문화부장관 중앙일보 인터뷰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현대미술관장 등을 거론하며)끝내 자리를 고집한다면 나로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공개할 수밖에 없다"
- 2008년 3월 말 : 유인촌 장관과 식사시 유장관으로부터 앞서의 발언에 대해 사과 받음. 그러면서 크게 결심을 해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전달
- 2008년 8월 11일 : 문화부 예술국장 내방, 1기위원들과 같이 사퇴할 것을 종용
- 2008년 9월 9일 : 문화부 예술정책과장, 한국문화진흥 뉴서울 골프장 감사, 전무 후보자 이력서 가져와서 처리할 것을 부탁
- 2008년 10월 9일 : 조선일보, '청와대가 사표 제출을 요구했으나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장과 감사들' 제하의 기사에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등 4명의 공공기관 기관장과 23개 공공기관의 감사들 일람표 게재
- 2008년 11월 6일 : 문화부 김장실 차관이 문화부로 불러 10시에는 김윤수 현대미술관관장, 11시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에게 '유인촌 장관의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며 11월 말까지 결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
- 2008년 11월 12일 : 유인촌 장관 국회 예산감사에서 (본인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차관이 사퇴를 종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거짓증언함.
- 2008년 11월 26일 :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4명의 직원들이 감사를 위해 나옴. 일주일 전부터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사항과 감사원감사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중심으로 자료요구. 감사 나온 문화부 직원이'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위원장)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발언
- 2008년 12월 5일 : 해임 통고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진다더니...

이러한 모든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퇴하지 않자, 유인촌 장관은 문화부 직원을 보내 특별조사를 했는데, 그 직원들은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위원장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뒤져서 찾아낸 해임사유가 대부분 틀리거나, 부실하거나, 이미 감사원의 감사로 지적되어 더 이상 다른 기관에서 감사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해임사유 4건에 대한 반박

가장 큰 문제로 꼽았던 부분은 "기금운용관련 규정을 위반한 투자로 거액의 투자손실 초래"인데, 근거가 되어야 하는 '문화예술진흥법'과 '국가재정법' 어디에도 "상대평가를 통해 C등급 이하는 투자하지 말도록" 한 규정은 없다. 다만 감사원이 지난 봄 감사 시 '금융기관 선정기준'을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결과를 활용하도록 권고했을 뿐이다. 즉, 본래 그러한 등급이 있던 것이 아니라 기금을 나누어 넣어둔 11개 금융기관을 감사원이 사후적으로 A, B, C 등급으로 나눈 것이다. 뒤늦게 나눈 등급에 기준하여 그 이전에 넣어둔 돈을 잘못 운영하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감사원이 권고한대로 상대평가를 통해 C등급에 기금을 투자한 경우는 문화부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관광기금'에도 해당한다. 그 기금도 벌써 70억이 넘는 손실평가를 받고 있다던데, 그렇다면 이 건으로 인해 유인촌 장관도 해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세계적인 금융 불안으로 모든 연기금기관들이 투자 손실을 입고 있다. 국민연금처럼 큰 연기금기관들은 손실액이 무려 8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이 정도 규모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위원회는 작년까지 내리 13개 연기금기관 수익이 매우 높아 자산운용부문에서 항상 1위의 자리를 지킨 바 있다.

이 외에도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 카페 계약 건을 문제 삼았는데 이는 억지춘향으로 끼워 맞춘 것들이다. 인사미술공간 게스트하우스(빌라) 임대는 방송발전기금 10억 원을 쓰고 있으며 방송위의 실사 시 관련 주거시설 임대가 적시된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하였고 이에 따른 어떠한 조치도 요구받은 바 없었다. 기금을 지원해준 해당 방송위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화부만 이것이 마치 커다란 법령 위반 행위처럼 '뻥튀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지적한 사항 중에는 관리부실을 지적하며 '번호키를 사용하여 번호 유출 우려'라는 지적사항까지 있었다. 번호키를 사용한 것도 법령위반이란 말인가? 유장관! 정말 국가 공무원들이 이런 쓰잘데없는 일에 매달리게 해도 되는가?

아르코미술관 카페 수의계약 건은 아르코미술관 운영규정에 의해 고유목적사업으로 '테이크 아웃 드로잉'이라는 미술활동을 하는 단체와 계약을 한 것이라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런 적법한 일들을 들추어 낸 다음 그들은 직원들의 책임을 면해줄 터이니 위원장과 처장에게 덮어씌울 것을 강요하며 직원들을 회유하거나 또는 반강제적으로 확인서를 받아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법적인 자문을 구해 보겠지만 그들은 정식 감사도 아닌 '특별 조사' 명목으로 위원장을 해임시키고 여러 가지 조치 사항들을 요구했다. 기관장인 나에게는 지적사항들에 대해 어떠한 해명이나 소명기회도 주지 않았다. 이 모든 해임과정이 형식과 절차에서 적법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들은 원하던 대로 나를 해임시켰다. 아마도 앓던 이를 뽑아낸 것처럼 시원하겠지. 정말 애들 많이 썼다. 지금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제 한파로 우리 사회는 한 치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상항이다. 내년 쯤 해서는 '청년실업과 대량실업으로 인해 체제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청와대실장이 말했다고 한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한시가 급한 상항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데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법적으로 보장된 기관장이나 노리고 있다. 한심스럽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요즘 '사냥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으니 나도 개 이야기를 한 토막 꺼내야겠다. 우리 집에 '또모'라는 강아지가 있다. 먹는 것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이 식탐 강한 강아지도 한 가지 원칙은 지킨다. 그것은 지정된 곳에서 볼 일을 보고 '합격' 소리가 나와야지만 그 보상으로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에 의해 보장된 자리를 내 놓으라고 도에 넘치는 탐욕을 부리더라도 우리 강아지도 지킬 줄 아는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2기 위원들에게 한마디 해야 하겠다. 12월 5일, 내가 해임 통보를 받은 그날 그들은 위원회 회의에서 10명 전원의 이름으로 성명을 냈다고 한다. 특히 나에 대해 기금운용관련 규정을 위반해 거액의 투자손실이 초래된 데 통한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위원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참 한심한 사람들이다. 뭘 알지도 못하면서 문화부의 지시대로 성명서를 채택하고 10명 전원의 동의로 발표를 한 것이다. 내가 11시 넘어 해임 통보를 받았는데 같은 날 그 많은 안건 처리에도 바쁜 회의에서 어떻게 그런 성명을 준비하고 발표했겠는가? 문예진흥법에는 '위원회의 위원은 외부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 한다'라는 엄중한 위원들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조항이 있다. 위원들의 독립성을 보장한 조항이다. 이 조항도 그렇지만 위원들의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가? 잠시라도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나의 해명도 안 들어보고 문화부의 일방적인 '지시' 사항을 그대로 발표를 한단 말인가? 제발 당신들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지 마시라.

어쨌든 결국 15개월로 위원장 임기를 마감한다. 위원장의 잦은 교체는 물론 문화부의 일방적인 지시나 간섭은 문화예술 지원기구의 존엄성과 권위를 훼손하는 일이다. 사무처의 업무 안정성도 크게 흔들린다. 이렇게 되면 문화예술계 전체의 손해다. 유인촌 장관은 제발 문화예술위원회를 동반자로 존중하길 바란다. 또한 나 다음부터라도 위원장이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도록 협조하기를 부탁한다. 훌륭한 위원장이라면 한 10년 이상 연임을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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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의 와중에서 ~ "유인촌 장관에게 진정으로 권한다"
 

기사입력 2010-02-22 오전 10:42:53

 

갑자기 어디 낯선 땅에 들어 온 느낌이다. 여기가 어딘가? 아수라의 세곈가? 가상의 세곈가?

내가 너 같고 네가 나 같다. 누가 누굴 괴롭히는 것도 같고 서로를 바꾸어 즐겁게 하고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가상이 현실을 패러디하고 현실이 가상을 패러디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알레고리이고 모든 것이 가상이다.

부당한 해임으로 시작된 이 게임은 계속해서 부당의 부당을 확대 재생산한다. 불법 부당을 시작한 사람은 어느새 이 자리를 빠져 나와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즐기면서도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한편으론 괴로울 것이다. 이 게임이 자기로부터 시작된 허구의 가상 게임이라는 것이 다 알려지면서, 가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불법 부당' 게임의 한쪽 당사자이다. 예술가로서 이런 가상의 세계에 익숙해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마냥 즐기기만 하는 데는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여보세요들! 이는 현실 같은 가상이 아니라 가상 같은 현실이랍니다.'

2기 위원장인 나를 부당하게 해임하는 것으로 시작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두 위원장 사태는 당연히 나를 '위법'하게 해임한 유인촌 문광부장관의 책임이다.

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전 정권의 코드인사를 운운하면서 나와 김윤수 당시 현대미술관장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자진해서 사퇴를 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부턴 수시로 국장과 과장들을 보내 자진 사퇴를 압박해 왔다.

아마 이들은 2008년 8월 말에 새로 시작하는 2기 위원들에 맞추어 나를 물갈이하고 싶었을 것이다. 국정감사를 치르고 11월이 되자 장관과 문화부의 공세는 더욱 심해졌다.
11월 중순 당시 문화부 차관이었던 김장실 차관이 문화부로 나를 호출했다. 아마 마지막 통고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 부딪쳐 나가기로 했다.

문화부로 막 나가고 있는데 김윤수 현대미술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미 김관장은 김차관을 만나 통고를 받아, 나와 사퇴문제를 의논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의논은 나중으로 미루고 나는 김차관에게로 갔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빨리 나 보고 자진 사퇴를 하란다. 공식적인 통고였다. 나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문화부의 공식적인 통고인가를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큰소리로 따져 물었다. 사람 좋은 김차관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퇴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선언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아 이제 막장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주에 문화부로부터 '특별조사'가 나왔다. 그들은 위원회 직원들을 압박해 가면서 나에게 불리한 모든 것들을 만들어 냈다. 지금 법원이 대부분 위법하다고 판결한 그 사유들을 만드는 데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 주는 해임통지였다. '그 직을 면함' 딱 다섯 글자였다. 해임사유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날 12월 5일 오후에 기자회견을 열고 '이 엉터리 부당 해임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해임무효소송 등 모든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2기 위원들은 언제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재빠르게 나의 해임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나의 해임 사유를 알지도 못한 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임 지지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들이 허수아비가 아니고 뭔가?

요즈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들 가운데 지금 위원장으로 있는 오광수를 비롯한 6명은 특별조사가 나오기 바로 직전, 11월 14일 (그 당시 위원장인 나도 모르게) 장관 앞으로 '해임 청원서'를 올렸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들대로 어설프게 나의 해임 시나리오를 짠 셈이다.
해임청원서(11월 14일)- 차관의 마지막 통고(11월 19일)- 사퇴 거부(11월 19일)- 특별조사(11월 25일 전후)- 해임(12월 5일)-해임지지성명(12월 5일)
어디로부터 지시를 받아 했겠지만 제법 그럴듯한 각본이다.

내가 곧바로 해임무효소송에 들어가자 그들은 아주 큰 실수를 한다.
나의 해임사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유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손실' 부분이다. 그들은 이 기금손실의 사유가 내가 기금운용을 잘못해서 손실을 본 것이라고 여기고 여기에 사활을 걸었다.

위원회는 4000억 여 원의 기금을 몇 십 군데의 투자회사에 나누어(포트폴리오 방식이라고 한다) 투자를 해서 거기에서 나온 이익(일년에 2~3백억 원)을 다른 재원과 합쳐 예술계를 지원한다. 투자회사들 가운데 '메릴린치'라는 투자회사에 100억원을 투자 한 것이 60여 억 원 평가 손실(평가된 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환매하기 전에는 실현되지 않은 손실임)이 날 가능성이 있는데 여기에 투자를 한 것은 분명히 위원장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매년 기금운용은 금융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금운용심의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투자를 하고 또 위원회 내에 펀드전문가가 둘이나 이 기금운용을 담당하고 있어 매년 기금운용을 하는 정부기관들 가운데서는 우리 위원회가 항상 상위에 랭크 돼있었다. 물론 문제의 투자회사는 상대평가를 하면 'c'등급에 해당하여 투자에 위험표지가 달려 있는 회사이기는 했다. 그러나 당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많은 투자회사들이 평가 손실을 보고 있었고, 12월에 난 해임처분무효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경제위기로 인한 주가하락 등을 고려할 때 발생손실이 내부규정 위반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문화부가 만들었다. 내가 제기한 해임무효소송에 맞대응하기 위하여 메릴린치에 투자했던 100억원의 투자액을 환매하도록 함으로써 '평가 손실'일 뿐이었던 것을 40억원의 '확정된 손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근거로 나에게 이 손실 분 중에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왔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메릴린치 회사에 했던 투자를 그대로 놔두었으면 작년에 주가상승 등 상황이 호전되어 60억의 평가 손실을 보전하고도 남을 상당한 이익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100억원 투자가 환매되지 않았다면 120억원이 되었든지 그 이상이 되었든지 한단다. 그러니까 40억원의 손실과 금년에 받을 이익금(원금 100억원은 그대로 묻어 두고) 10-20억 을 합치면 5, 60억원의 기금을 날려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광부로부터 투자를 해지하라고 지시를 받았던 위원회의 펀드매니저 직원은(원래 이 기금운용에는 문화부든 어디든 절대 공무원이 개입할 수 없다) 차마 자기 손으로는 기안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오광수 위원장이 직접 기금해지를 결재했다고 한다.

물론 이 해지로 인해 확정된 손실액을 근거로 나한테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작년 10월의 1심 판결로 이미 나의 손을 들어 주었다. 당연한 결과다.

이 5, 60억원의 기금 손실은 나중에라도 오광수 위원장과 문화부가 꼭 책임을 지고 갚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각본에 의해 짜여진 나의 해임은 최종 책임자가 유인촌 문화부 장관임에 틀림없지만 해임청원서와 해임지지성명을 낸 2기 위원들, 기금손실을 확정하여 예술계를 지원해야 할 소중한 재원을 고의로 날려버리고 나에게 손배소를 제기한 오광수위원장도 이 책임에서 절대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이제는 이 가상의 게임을 끝낼 때이다. 이 게임의 끝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게임이 가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하면 되니까. 위원장으로서의 나의 출근은 바로 사법부가 판결한 결정을 따르는 법치의 행동이며 동시에 부당한 방법으로 문화예술계를 어지럽힌 유인촌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상징적 행위이기도 하다.

유인촌 장관에게 다시 한 번 진정으로 권한다. 가상의 무대에서 내려와 나에 대한 잘못된 해임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자진 사퇴하시라. 이 사건은 오래 갈수록 당신만 괴로우니까.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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