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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천안함 이야기

by Wood-Stock 2010. 4. 9.

천안함과 함께 침몰한 국격 (시사IN)

충격, 혼란, 절망, 분노….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백령도 앞바다에서 두 동강 난 채 침몰한 2010년 3월26일 이후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다. 사고 발생 1주일이 넘도록 46명의 해군 실종자 가운데 생존자는커녕 혹시 있을지 모를 단 한 구의 주검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그동안 평택 2함대 사령부에서 가슴 졸이며 생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려온 실종자 가족과 온 국민의 절절한 염원도 산산이 부서진 채 군 당국과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차가운 불신의 바람만 분다.

지난 1주일간 한국의 천안함 침몰 사고 대응 과정을 지켜본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는 4월1일자 칼럼에서 "한국인은 자기네 정부를 진짜 '괴물'로 여기고 있다"라고 썼다.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있는 천안함 실종자 가족이 제대로 된 정보 제공과 대접을 받지 못한 채 격리돼 있다는 것을 영화 < 괴물 > 에 빗댄 표현이다. 이 기사는 "천안함 실종자 가족이 정부의 섬뜩한 소통 방식에 대해 군사독재 정권의 본능이 되살아난 것처럼 여기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종자 수색과 사고 원인 조사를 맡은 군 당국이 우격다짐 식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군의 대처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상황을 지켜본 외국 기자의 '정직한 눈'이 그려낸 2010년 봄 대한민국의 '암울한 국격'이다.

 

 

외국 언론의 조롱거리로까지 전락한 천안함 침몰 사고 대처 과정의 어수룩함은 사실상 사고 초반 청와대에서 긴급 소집된 안보관계장관회의 때부터 잉태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사고 보고를 받은 직후인 3월26일 밤 10시 이후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4차례에 걸쳐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첫 회의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초주검이 될 정도로 이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천안함 침몰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한 달 동안 육해공군에서 돌아가면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3월2일 강릉에서 훈련 중이던 공군 F-5 전투기 충돌 사고, 3월3일 육군 헬기 추락 사고에 이어 이번에는 해군에서마저 초계함 침몰이라는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날 자정이 넘도록 긴박하게 진행된, 4차례에 걸친 안보관계장관회의 끝에 청와대는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해 공식적으로 '북한과 연관됐다는 단서가 없다'고 거듭 못 박아 사실상 '재난에 준한 사고'로 규정했다. 이어서 새벽 2시쯤 이명박 대통령은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를 내린 뒤 잠자리에 들었다.

승조원 구조 책임 해군에만 떠넘겨

국가 위기관리 사령탑인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최초에 안보 관련 비상사태 대응 차원에서 소집된 회의가 즉각 재난 관리를 위한 또 다른 비상체제로 전환됐어야 함을 뜻한다. 천안함 침몰이 당초 외교안보상 위기(북한의 도발)로 의심됐다가 '원인미상'의 인명사고로 파악된 단계라면 효율적 인명구조 작업에 범정부적 노력을 기울였어야 맞다. 하지만 대통령은 재난 관련 부처 대신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 외교안보 라인만 모인 자리에서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 꼴이다. 제대로 된 위기관리 체계가 가동됐더라면 신속한 인명 구조를 지원할 정부 부처와 장비 등 총역량을 집중 투입할 수 있었다. 이런 사태 전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에 국가 위기관리 매뉴얼이 없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지난 정부에서는 국가 위기와 급박한 재난 사태에 대비해 미국의 NSC와 같은 대통령 보좌 외교안보 정책 및 상황 총괄기구가 마련된 적이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그 기구 및 인원이 대폭 축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대통령조차 처음부터 대규모 해난 사고로 규정한 천안함 침몰 수습 과정에서 인명구조 활동의 성패는 시간이 관건이었다. 해양 전문가들은 바다의 구조작업을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침몰한 선미 부분에 갇혔을 것으로 추정되던 승조원 46명의 생존 가능한 이론적 시간이 69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정부는 그 시간과의 싸움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구조 책임을 해군에 떠넘겼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초동에 혼비백산해 있던 해군은 어떤 측면에서는 위기에 대응할 기관 중 '내상'을 입은 취약한 환자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다른 관련 부처의 유기적 협조와 신속한 지원 없이 해군에만 홀로 떠맡긴 격이었다. 함선 사고의 경우 수백명이 제한된 공간에 탑승하므로 작전 능력에 버금가는 구난체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과정에서 해군의 구난체계는 엉망이었다.


실종자 46명을 어둠의 자식들 취급

사고 당일부터 구조작전의 주도권은 해경이 쥐었다. 해군은 사고 발생 후 2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해경은 40분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선수에 몰려 사투를 벌이던 58명의 승조원을 구한 쪽은 침몰하는 천안함 근처에 있던 속초함, 고속정 등 4척의 해군 함정이 아니라 인천 해경 선박과 근처 민간 어업 지도선이었다. 사고 직후 평택 2함대 사령부로부터 구조 요청 통보를 받은 인천 해경 501함과 1002함은 그날 밤 10시15분부터 한 시간 동안 가라앉는 천안함 뱃머리 부분에 몰린 생존자 56명을 구조했다. 나머지 2명은 근처에 있던 옹진군 어업지도선이 달려가 구조했다. 하지만 곁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던 해군 함정들은 추가 실종자나 부상자 찾기는 물론, 침몰하는 선박이 바다 밑에 가라앉은 위치조차 놓쳤다.

초동 상황에서 사고를 대처하는 데 최우선해야 할 작업은 당연히 천안함 선수에 없었던 46명을 찾아내 생존자를 확인하고 구출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실종자 대부분이 위치할 함미 부분 소재를 파악하려는 신속한 조처를 취하는 것은 그 첫 단계 임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에서 해경에 구출된 천안함 함장은 선미의 실종자 문제에 대해 아무런 후속 조처도 없이 해경선을 타고 현장을 벗어나버렸다. 게다가 가장 먼저 현장에 출동해 구조활동을 벌여야 할 해군 링스헬기(수중 어뢰, 기뢰, 선체 탐지)는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난 밤 11시20분이 넘어 도착했다. 사고 직후의 혼란을 감안하더라도 주변에 고속정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들은 즉각 떨어져나간 배 뒷부분 수색에 나섰어야 하지만 별다른 구조작업도 펴지 않았다. 해군은 이런 비판에 대해 "속초함은 천안함 침몰 사고 후 북한 측 동향을 비상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구조에 나설 수 없었고, 고속정들은 구명보트가 없어서 구조작업을 펼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결국 해군은 사고 직후부터 실종자 46명에 대한 신속한 구조에 손을 놓고 있었다. 사고 함정인 천안함 지휘부는 물론 주변의 속초함과 고속정, 해군 2함대 지휘부, 더 나아가 청와대와 범정부 차원까지 '인명구조 중심 위기관리 대응 시스템 부재'를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그 시각 이명박 대통령은 '해군이 초기 대응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겪은 실종자 가족은 정부 에 극심한 불신감을 드러내며 몸서리쳤다. 실종자 가족 상황실에서 9일째 생활하는 한 실종 해군 병사의 아버지는 "정부 장관들이나 국회의원 자식이 실종자 속에 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무시했겠느냐"라며 정부가 사실상 46명의 실종자를 '어둠의 자식들' 취급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사고 직후 실종된 46명의 생사 확인과 추가 인명 구조를 위해서는 이들이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 선미 부분을 찾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그러나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실종자 가족은 아랑곳없이 효과적으로 인명구조를 할 수 있는 대형 구조함인 광양함은 사고 발생 40시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비판 모면하려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은 국방부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3시간 이상 부력으로 수면 위에 떠 있던 함수 부위에 근처 해군이 아무런 표식도 남기지 않은 것은 한시가 시급한 생존자 구조 활동에서 초기 며칠을 고스란히 허비하게 만드는 결과를 빚었다. 사고 다음 날인 3월27일, 28일 이틀에 걸쳐 해군 해난구조대(SSU) 요원들을 투입해 침몰 선체 확인 작업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고, 28일 밤에야 소해함인 양양함과 옹진함이 도착해 음파탐지기를 이용해 함수 위치를 파악했다. 해군은 사고 발생 사흘이 지난 28일 오후에야 함수 부위를 찾아내 부이(계선 부표)를 설치한 뒤 이날 오후 10시30분께 어선의 도움을 받은 옹진함이 음파탐지기로 함미를 찾아냈다. 이때는 사고 발생 30여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한시가 절박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사실상 패배한 해군은 생존자 구조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허술한 대응이 국회에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자 국방부는 "처음에 해군이 부표를 설치했지만 악천후와 파도에 떨어져나갔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고 초기 현장에 출동해 구조작업을 벌인 해경 502함의 활동 보고서를 통해 국방부의 이 같은 해명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최초 사고 발생 시간대를 무려 4차례나 수정해 발표한 국방부의 태도와 함께 이 문제는 군 당국이 국민적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는 비난을 샀다.

이후 해군은 해난 구조요원과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를 대거 투입해 함미와 함수가 발견된 유역을 중심으로 수색작업을 벌였다. 초동 대처 미흡으로 이미 30시간 이상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실종 생존자를 찾아내는 일은 분초를 다툴 만큼 절박했다. 그러나 백령도 앞바다의 물때는 이미 사리로 접어들고 있었다. 급류성 조류와 시계 제로 상황의 열악한 해저 환경, 기상악화 등으로 수색 활동은 지지부진해지면서 침몰 1주일이 넘도록 생존자는커녕 실종자의 어떤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시시각각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라며 애타게 기적을 바라던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간절한 기대는 점점 물거품이 되어갔다.

정부 재난관리 유관 부처들 사이의 유기적 협조 부족과 총체적 늑장 대처, 해군의 주먹구구식 구조작업은 또 다른 인재를 예고했다. 잠수병 예방을 돕는 감압기(감압 체임버)를 보유한 청해진함의 지원이 빠진 상황에서 해난구조대와 특수전여단 요원들이 일반 장비로 수심 45m 아래 있는 천안함 선미에 접근하며 악전고투를 벌이기를 거듭한 것이다. 그러다 급기야 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끝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천안함 실종자 구조를 위한 한 준위의 살신성인 희생정신은 높이 기릴 만한 군인 정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해군 내에서도 잠수 베테랑이라는 한 준위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이 단지 해저의 악조건 때문일까. 심해 다이버 전문가들은 한 준위의 순직에 대해 '예고된 인재'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에서 심해 다이버 양성학교를 운영하는 한 교관은 "한 준위의 사망 원인은 두께 5mm짜리 일반 슈트를 착용하고 바다 속에 10분 이상 머물러서다. 드라이 슈트라는 겨울용 특수 잠수복이 따로 있는데 일반 슈트를 착용하고 들어갔다니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수중 45m에서는 드라이 슈트를 입고 산소탱크를 2개 가져가더라도 감압이 어렵기 때문에 10분을 넘어가면 탈진해서 질식사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 준위는 국가에 의해 희생된 억울한 영웅

해군은 보유 중인 감압 체임버가 광양함에 비치된 1대뿐이라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광양함은 수상 사고 구조함이고, 수중 사고 전문 구조함인 청해진함(4300t급)은 뒤늦게야 지원 명령이 내려져 4월6일에나 사고 해역으로 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심해에서 조난당한 잠수함의 승조원을 구조하고 선체를 인양하는 역할을 하는 청해진함은 해저 500m까지 운용이 가능한 심해 구조잠수정을 갖추고 있다. 또 9명의 다이버를 수용할 수 있는 감압 체임버도 보유한다. 침몰 선체 상태를 정밀 탐색하는 '사이드스캔 소나'도 탑재해, 사고 선박의 수중 형체를 정밀하게 그려낼 수도 있다. 청해진함은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침몰한 참수리 357호를 인양한 적도 있다. 바로 이번 사고에서 초동에 투입됐더라면 인명구조 및 선체 인양을 훨씬 용이하게 할 수 있었을 적임자인 청해진함은 아직도 사고 현장에 가지 않고 있다. 진해에서 4월5일까지 수리 중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한 준위의 순직을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확인 결과 잠수병 예방을 돕는 심해 잠수사들의 필수 장비인 이동식 감압 체임버를 보유한 국내 민간 기관과 업체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폴리텍대학의 경우 6인용 감압 체임버 1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울산에 있는 잠수장비 제조업체인 백스쿠버사가 4인용 감압 체임버 3대를 가지고 있다. 백스쿠버 관계자는 "4월1일에야 해군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와서 이동식 감압 체임버 1대를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이미 한 준위가 순직한 뒤였다는 점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이는 곧 정부와 해군이 초동부터 지원과 대비만 제대로 한 뒤 특수 잠수요원들을 투입했더라면 한 준위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구조작업 효율도 높일 수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 준위 순직은 재난 대비 매뉴얼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국가에 의한 억울한 희생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충격과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사고 대응은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했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고는 발생 지역으로나 재난의 특수성으로 볼 때 초동부터 민·관·군의 유기적인 협조와 지원이 필수였다. 우선 조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곳 바다에서 평생 살아온 이들은 백령도 어민이다. 처음에 잃어버린 선미를 찾아낸 것도 어선이었다. 하지만 해군은 수색 및 구조 과정에서 어부들에게 협조를 구하기는커녕 지나치게 현장을 차단하려 한다는 비난을 샀다.


 

국민이 정부와 군을 불신하는 까닭

실종자 수색 지원을 위해 사고 초기 현장으로 달려간 민간 심해 다이버들도 처음에는 대부분 현장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 백령도를 찾은 한 다이버는 "민간 다이버 70명 정도가 백령도에 왔는데 왜 접근을 안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군 UDT는 심해작업용 감압 장비가 없다. 그들은 수중 폭파 및 침투요원이지 심해 잠수요원은 아니다. 심해 잠수로 구조하는 전문가는 민간에 따로 있다. 민간 다이버에게 장비를 빌리거나 묻기라도 했더라면 사고도 없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같은 군 당국의 지나친 현장 차단이 뭔가를 숨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지고, 해군 단독 구조작전에 별다른 성과가 없자 군은 사고발생 9일이 지나서야 기존의 태도를 바꿨다. 어민들의 쌍끌이 어선 협조를 받아 실종자 수색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일이 흐르면서 정부는 아예 시간을 들여 두 동강 난 선체를 인양해 실종자들을 찾아내고, 사고 원인 규명 작업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기간이 족히 1개월은 걸릴 것이라고도 한다. 인명구조를 최우선하는 사고 대책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그런 초동 대응 과정을 지켜보며 정부와 군을 극도로 불신할 수밖에 없었던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절망과 탄식은 깊어만 간다. 참 잔인한 4월이다.

정희상 기자 /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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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같은 북한군? 귀신잡는 시나리오 (한겨레)

 

부시 정권 8년 동안 숨죽이며 기다린건 북-미 관계 정상화
‘대북지원, 어뢰로 돌아왔다’식 북풍 몰이 오히려 의혹증폭

 

석연치 않은 일에 의문을 던지고, 말 안되는, 또는 말 안 돼 보이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언론 기본임무의 하나다. 언론의 자유을 보장한다는 건 국민 누구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의미다. 그게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가르는 선이다. 권력은 제기된 의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그들의 집권에 동의한다. 답변이 요령부득이라면 의혹은 증폭되고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동의받지 않은 권력, 동의받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권력은 물러나거나, 불법 폭압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이제 상식적인 얘기가 됐지만, 다시한번 정리해 보자.

 

국내외 언론보도, 전문가들 얘기 등 이제까지 흘러나온 정보들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기본전략(생존전략이라 해도 좋고)은 미국과의 관계 트기, 나아가 수교 쪽에 가장 큰 무게가 두어져 있었다. 김정일 체제 유지라는 측면에서도, 북한이라는 국가의 생존과 지속이라는 측면에서도 지금과 같은 봉쇄와 고립 상태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고, 현상을 타파하는 핵심고리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라는 걸 의심하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대포동 개발과 핵실험조차도 궁극적으로, 김정일 체제 유지라는 게 지상의 목표이면 일수록, 미국과의 협상과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계책 차원에서 그 동기를 이해해야 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북한이, 지난 8년여 조지 부시 정권과의 악연, 대미 협상에 죽을 쑤게 만든 공화당 부시 정권의 네오콘적 강박이 마침내 끝나고 오바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서, 2000년 민주당 클린턴 정권시절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워싱턴에 날아가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는, 관계 정상화 직전까지 갔던 그 놀라운 상황을 다시 한번 소생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마침내 도래했다고 엄청난 기대를 품을 만한 상황(실제 오바마 정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북한은 일단 그렇게 기대해볼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에서, 한국 해군 함정을 향해 어뢰를 발사했다?


그것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게다가 천안함만 문제의 해역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순천함 성남함에 기타 많은 고속 경비정과 항공기들, 인공위성들, 게다가 적지않은 미군 함정들, 특히 동시에 수백개의 표적을 추적하면서 각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방위 최첨단 특수감청 및 방어·공격 시스템 장착함 이지스함정들까지 복수로 인근해역에 배치돼 있었다는데.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그 무엇이 NLL을 몰래 남하해 어뢰를 쏘고 귀신같이 흔적 하나 남김없이 빠져나갔다?

 

그래도 북한이 했을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생각해본다면, 북한은 내부 지휘체계와 완전히 파탄난 무정부 상태이거나 준 내전상태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선 앞서 얘기했듯이 북한에겐 기사회생의 거의 유일한 기회를 안겨줄 것으로 보고 매달려온 미국과의 협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절호의 찬스가 오바마 정권의 등장으로 눈앞에 당도해 있다고 믿을 만한 상황이 도래했는데, 그것을 시도해 보지도 않고 단방에 날려버릴 남한침투와 한국 해군 함정 공격을, 엄청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평양의 중앙권력이 감행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북한이 한국 해군 함정을 공격했을 가능성은 중앙지휘체계를 벗어난 일부 모험주의 과격분자들의 독자소행으로 봐야 하는데, 만일 그랬다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일사분란한 북한 특유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부서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완전 통제불능의 준 내전상태이거나. 그렇지 않은데도 , 말하자면 지휘체계가 멀쩡한데도 그런 중대하고도 미묘한 사건을 상부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저질렀다면 그 당사자들은 죽기를 자처한 셈이 된다. 그 동기가 고작 복수의 일념에 불타는 소영웅주의 따위일 수 있을까. 또는 일각에서 얘기하듯 김정일 후계자 주변 출세주의자들의 모험주의, 실패하면 모든 게 끝장날 수 있는, 성공 가능성 역시 지극히 희박한 한 건 주의가, 지금과 같은 북한 위기상황에서 중앙 수령의 승인없이 감행될 수 있을까. 북한이 아무리 곤경에 처해 있다고는 하나 지휘체계의 전면적 마비 또는 준 내전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판단할 만한 정황은 아직 없다.

 

아니면 1200톤급 초계함 하나를 날려버리고 100명이 넘는 장병들을 희생시키고라도 미국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데 집착한 정신병리학적 이상증세가 극고조점에 이르렀거나. 또는 그런 짓을 감행하고도 협상이 가능하다고 믿을 정도의 무뇌 또는 배짱 또는 신출귀몰 능력의 소지자거나.

 

그럼에도 만일 북한군의 어뢰공격설이 나중에 사실로 판명된다면, 괴물로 변한 범죄집단에 대한 응징은 당연히 더없이 단호해야 되겠지만, 그 전에 도대체 대한민국 해군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지난 몇 차례의 서해 교전들 경험만 떠올리더라도 한국 해군은 결코 누구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예상치못한 위급상황에서도 그들의 대처는 칭송을 받을 만했지 비난받아야 할 정도로 형편없었다곤 절대 얘기할 수 없는 능력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NLL 한참 남쪽, 그것도 백령도 왼쪽 근해에서 인공위성의 감시 아래 수많은 해군함정과 항공기들이 참가한 합동군사훈련 중이었는데도 분명 엔진을 단 상당한 크기의 군사장비가 1200톤급 해군함정을 단방에 날려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어뢰 또는 어뢰들을 장착한 채 접근해서 발사까지 하고 도주했는데도 낌새조차 채지 못했을까. 해군 초계함은 그냥 철판을 잇대어 물에 띄워놓은 바지선이 아니다. 거기에는 바로 그런 전투상황이나 적대세력이 가해올지로 모를 온갖 있을 수 있는 위급사태를 상정한 첨단 대응장비들을 무수히 탑재하고 있고, 해군 승무원들은 그것을 어떻게 작동시키고 위난시 어떻게 대처하는지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하는 게 일상임무일 터. 천안함만이 아니라 주변에, 백령도 주민들 말에 따르더라도 평소와는 달리 이례적일 정도로 수많은 함정들이 인근 해역에 포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침투물체의 접근을 낌새조차 채지 못했고 중무기를 발사하고 도주했는데도 레이더니 음파니, 바로 그런 것들을 포착하기 위해 장착한 많은 첨단장비들이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고 평소 훈련받은 그 많은 장병들은 전혀 몰랐을까.

 

북한 모험분자들이나, 아니면 흔히 얘기하듯 김정일 지시를 받은 특수비밀집단이 그런 짓을 감행했는데도, 그것을 사전 사후에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당해 놓고 이토록 시간이 흘렀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짚어낼 수 없는 해군이라면, 어디가 잘 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그런 해군에 마음놓고 자식들을 보낼 어버이들이 있을까? 그리고 매년 수십조원의 세금을 쏟아붓고 무기수입 액수가 세계 3위인 대한민국 방위력이 고작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한심한가. 우리는 우리의 안위를 이대로 그들에게 맡겨놓고 있어도 될까?

 

그 비싸다는 이지스함정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미국 일본이 주도하고 한국에도 참여하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체제의 핵심장비가 이들 이지스함인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북한 내륙에서 몰래 발사되는 미사일까지 포착해서, 그것도 발사 순간부터, 그 진로를 순식간에 계산해내고 그 탄도 예상 지점으로 요격미사일을 날려 발사 초기단계 또는 성층권 또는 목표가격 전의 대기권 재돌입시에 정확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물론 인공위성, PAC-3 등 다른 장비들도 거기에 함께 가세하지만) 이지스함인데, 비상시를 상정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동원된 그 많은 함정들과 이지스함들은 한가하게 뱃놀이라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에서 북한군이 침투하는 걸 뻔히 보고도 어뢰를 발사하도록 내버려두고 도주하는 항로까지 일부러 눈감아주기라도 했단 말인가? 게다가 엉뚱한 새떼들(그것도 밤에 떼거리로 날았다는데)에게 76밀리 주포를 무려 5분 이상 계속 쏴댔다니?

 

이런 의문들이, 당국이 발표했지만, 뉘늦게 이리저리 수정해야 했던 일부 주요 팩트들과 그럼에도 여전히 석연찮게 남아 있는 의문들과 맞물려 증폭되면서 개운치 않은 맛을 남기고 있다.

 

아직 합동조사 최종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유력언론들이 그들 관점에서 제시하는 그럴법한 시나리오들 중에는 그들의 정치관·세계관에 따라 심하게 윤색돼 있어 매우 위험해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도, 정부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시 4대강, 세종시, MBC 쪼인트 까기, 한명숙, 봉은사 등 선거악재들을 겨냥한 계산된 노림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물리치기 어렵다. 한나라 정두원 의원 발언을 듣자니 안보위기 분위기에 등장하는 여론의 여당 쏠림 현상이 실제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입으로야 그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저들 중엔 그걸 즐기려는 자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나경원 의원은 기왕 붙은 불에 기름칠이라도 하려는지, 북한군 공격이 거의 기정사실로 판명이라도 난양 얘기하고, 이게 모두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에 북한에 퍼준 4조원 때문이라며, 그 돈이 어뢰로 되돌아왔다는 꽤나 자극적인 구호까지 방송에 동원했다고 한다. 한심하다. 편협과 단견과 사시로 무장한 채 다수를 위한 비전조차 없는, 일개 파당의 이익에 눈먼 자들이 정치 지도자가 되거나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불행하다. 천안함 비극이 결과적으로 그 비극을 조장했거나 막지 못한 무책임한 세력에게 지방선거 승리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엉뚱한 재료로 동원된다면, 당한 이들의 비극과 그 어버이들의 몸부림과 눈물이 책임져야 할 자들에게 정치적 이득을 안겨주는 희극으로 귀결된다면, 세상에 어찌 정의가 깃들고 희망이 남아 있겠는가.

 

1990년대 이후 일본이란 나라를 망친 것(그래서 지난해 가을 결국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다)은, 집권 자민당과 짝자꿍하며 세상을 마음대로 주물러온 관료들의 현실안주·변화 기피증·기득권 집착과, 세상에는 비교적 공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일본 검찰 엘리트들 간의 연합, <페리스코프>를 쓴 김기협의 표현을 빌자면 관료와 검찰이 짜고 지키는 특권구조였다는 일본연구 전문가들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한국은 일본의 복사판이되, 그 특권구조가 유발하는 왜곡 정도가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지적도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이 특권을 상실할 위기에 놓였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에 대한 저들의 비방과 사실날조와 모욕, 오로지 잃었던 권력을 되찾기 위해 광분했던 기득권층, 유력 보수언론들이 거기에 가세했던 특권구조의 횡포가 어떤 지경에까지 이르렀던가. 그들 언론은 지금까지 조사에서 드러난 정황으로 천안함이 외부폭발에 따른 충격으로 침몰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묘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 같다. 외부폭발에 따른 침몰이면 무조건 북한 어뢰공격에 따른 결과인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지 않은가. 저들이 그것을 기정사실로 상정하고 펼치고 있는 대북 전쟁 시나리오는 정말 무책임하고 위험하며 정략적 계산임을 의심케 하는 악취마저 풍긴다.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세력들을 경계해야 한다.

 

기름이 없어 평소 훈련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북한이 스텔스 어뢰나 스텔스 잠수함(또는 잠수정)을 개발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어느 여당의원이 국회에서 질문했고 국방장관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평소 일등임을 자처하는 이상한 신문은 그런 걸 대서특필하는 웃기는 짓거리를 했다. 왈 대한민국 몇대 신문에 들어간다는 돈많은 어느 신문은 북한 잠수정이나 잠수함이 삼엄한 남쪽 경계를 뚫기 위해 엔진을 끄고 조류를 이용해 남쪽으로 침투한 뒤 엔진을 켜서 약간의 미세조정을 거쳐 어뢰를 발사하고 다시 엔진을 끈 뒤 역시 조류를 이용해 북으로 되돌아갔을 수도 있다는 참으로 기발한 시나리오를 썼다. 수많은 함정들이 동원돼 합동군사훈련 중인 남쪽의 그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천안함이 그 시각에 그 곳을 지나갈 줄 알고 미리 엔진을 끄고 때마침 남쪽으로 흐르는 조류를 타고 내려온 뒤 200킬로그램이 넘는다는 어뢰, 또는 어뢰들을 발사한 뒤 때마침 방향을 북쪽으로 획 바꾼 조류를 타고 북으로 소리없이 되돌아갔다?

 

(어뢰를 발사한 직후 조류가 갑자기 방향을 반대로 획 바꾸지 않았다면, 어뢰를 쏘고 천안함이 대파당해 가라앉고 구출함정들이 몰려드는 그 상황에도 북한 잠수정이나 잠수함이 엔진 끄고 언제 바뀔지도 모를 조류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문제의 NLL 남쪽 해역에 계속 대기하고 있었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데. 그럴 수 있나? 북한 내륙 해안 잠수함 기지에 있는 잠수함들까지 몇대가 대기중이고 몇 대가 언제 어디로 이동했다는 것까지 위성으로 사진찍어 판독할 수 있는 세상인데, 그 난리가 난 상황에서, 관련국들이 즉각 감시망을 풀가동하며 신경을 곤두세웠을 그 시각에 태연히 사고함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을 해역에 엔진 끄고 떠 있었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만일 그러지 않고 엔진을 켜고 도주했다면 당연히 포착됐겠지. 날아가는 밤 새떼도 포착해서 주포를 마구 쏘아댈 정도의 첨단장비들을 풀가동시킨 초긴장상태에서까지 설마 대한민국 해군 함정들이 문제의 해역에서 엔진소리 요란하게 NLL을 넘어 북쪽으로 도주하는 잠수정 또는 잠수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실수까지 범하진 않겠지.)

 

뭐,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세상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종종 일어나니 단정할 순 없지만, 의문의 사건의 퍼즐조각들을 맞춰가는 일은 그래도 상식에 근거해서 진행해야 설득력이 높고 오류의 가능성도 적다. 옆에 있던 누가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면 볼일이 급해서 그랬다고 생각해야지, 화장실에 숨겨 놓은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갔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뭐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글쎄….

 

좌우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제시될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2010-04-19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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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 미공개 자료' 다 갖고 있다"

박선원 박사 "캠벨 방한해 한국에 '군사적 행동 자제' 요청"

2010-04-22 13:48:51
미국 국무부의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가 이달초 방한해 청와대와 외교부에 천안함 사태와 관련, 군사적 행동에 대해 신중을 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미국은 한국정부가 공개 안한 천안함 사태 발발 당시의 자료를 다 갖고 있다는 지적도 나와 주목된다.

"캠벨 방한해 한국에 '군사적 행동 신중하라'는 메시지 전해"

참여정부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을 지냈고 현재는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의 초빙연구원으로 가 있는 박선원 박사(48)는 22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미국측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맨 처음 사건 직후에 미국이 북한이 직접 개입됐다는 증거가 없다, 이렇게 선을 긋고 나오지 않았나? 그것은 이제 남북한 간에 바로 어떤 군사적 충돌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하는 우려 때문에 확실하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북한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어떤 군사적 조치를 서두르지 말라 라고 하는 주의를 준 거다, 한국정부에 대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어쨌거나 한국에 많은 희생자가 나타난 것 아니냐?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동맹국으로서 어떤 우려와 또 동정을 표시를 하는 거다. 그래서 일단 군사적 부분에 있어서 선긋기를 한 다음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배려하는 그런 말은 계속 나올 것 같다"며 "하지만 이제 그게 미국 정부가 북한 개입 가능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라고 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직후에 3월 29일 크롤리 공보차관이 말한 표현, 그러니까 우리는 선체의 결함 이외에 다른 침몰의 요인을 알지 못한다, 이런 건 굉장히 구체적으로 문제를 짚어준 것"이라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4월 1일 날 커트 캠벨 차관보가 서울에 와서 청와대와 외교부 당국자를 만났다. 그때 그 방문목적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듣고 군사적 행동부분에 대해서 신중을 기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러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진행자가 캠벨 방한은 예정됐던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나는 4주 만에 다시 커트 캠벨이 급거 한국을 방문을 해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청와대 측에. 그 다음에 외교부 위성락 본부장을 만나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처하는 문제는 남과 북한이 중심이 돼야 되고 미국과 중국은 이를 보증하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며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한반도 평화유지의 1차적 책임은 남과 북에 있다 라고 하는 말을 씀으로써 초기에 섣불리 어떤 북한 연루가능성을 들어서 군사적인 위기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그런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진행자가 이에 다시 어떻게 확인이 된 얘기냐고 묻자, 그는 "그것은 내가 잠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측의 어떤 실무자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라며 "그러니까 (캠벨이 방한해)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청취하고 그 다음에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들은 다음에 굉장히 화가 나고 긴장되고 격한 분위기, 이러한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측 실무자의 신원에 대해선 "그것은 내가 말씀드리기 좀 어렵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2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를 방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양국 현안에 대한 대화를 마친 뒤 외통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2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를 방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양국 현안에 대한 대화를 마친 뒤 외통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한국정부가 공개 안한 자료 다 갖고 있다"

그는 또 미국이 천안함 사태 발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미공개 정보를 다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정보를 미국이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우나, 확실한 것은 한국 정부가 갖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자료, 이것은 미국이 다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사고가 났다고 하는 9시 15분부터 22분, 뭐 이런 사이에 천안함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속도는 얼마였는지 하는 정확한 정보, 항적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건 군사기밀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다음에 교신기록에 대해서도 많이 공개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나? 적어도 사고 직전 30분 직후 30분이면 이미 이 사건의 성격이 다 드러난다. 그런데 안 하고 있다"며 "이 모든 게 미국은 알고 있는 정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한국정부와 우리 군 당국이 가지고 있는 정보, 이것은 주한미군이 다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그런데 이게 한국정부가 국민들한테 공개하지 않은 정보들 아니냐? 그렇지만 미 군당국, 주한미군 당국은 국민들에게 공개를 안 했지만 미군은 알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 사건의 윤곽은 잡고 있을 거라고 본다"며 거듭 당시 합동군사훈련중이던 미군이 천안함 항적정보나 교신기록 등을 파악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르는 실질적인 북한의 피격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것 아니냐? 지금 상황에서. 그렇기 때문에 추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하겠다 라고 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 대해서 조사를 제대로 하고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원하겠다 라고 하는 입장을 밝힘과 아울러서 정말 북한이 무슨 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고 한국을 도와주겠다, 이런 입장은 당연히 표시를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것이 그 사건이 곧 북한 때문에 됐다 라고 하는 건 미국이 인정하는 건 아니다, 이거다"라고 말했다.
 
박태견 기자


천안함이 수상한 아홉 가지 이유…진실은?
[분석] 정부ㆍ합동조사단의 엉터리 '천안함 논리학'

 

기사입력 2010-07-16 오후 12:39:01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흡착 물질에 관한 데이터에 치명적 허점이 있다는 이승헌 교수, 양판석 박사 등 과학자의 의혹 제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스크루 변형 시뮬레이션이 현재 상태의 변형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의 실토가 나왔지만 묵묵부답이다.

그 사이 해난 사고 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13일 금속 부식 실험을 통해서 어뢰 추진체의 부식 상태가 실제 부식과 크게 다르다는 걸 밝혀냈다. 그간의 과학 논쟁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과학 잡지 <네이처> 인터넷 판에 이어 15일 발행된 오프라인 잡지(466호)에도 게재됐다.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북한의 관련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서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허점이 많은 데이터와 미심쩍은 증거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합동조사단과 정부가 내놓는 논리의 허점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을 전제한 이런 논리는, 천안함 침몰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보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제 합동조사단과 정부가 내놓은 엉터리 '천안함 논리학'을 뜯어보자.

▲ 지난 15일 발행된 <네이처>(466호)에 실린 천안함을 둘러싼 과학 논쟁 기사.

■ 북한산 어뢰의 '1번' 한글 표기

합동조사단은 5월 20일 발표 당시 사고 수역에서 인양된 어뢰 추진체가 북한산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 방법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논파했다.

"논리의 오류다.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북한산 어뢰의 표기 방법과 일치할 뿐 아니라 한국의 무수한 다른 표기 방법과도 일치한다. 합동조사단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자면 어뢰에서 발견된 '1번'과 대한민국 국방부 문건에서 발견된 '1번' 표기 방법이 일치하므로 어뢰 추진체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카탈로그

어뢰 추진체가 북한산이라는 또 다른 근거로 합동조사단은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카탈로그에 그 어뢰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음을 강조했다. 또 이들은 해당 어뢰의 설계도가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CD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이를 놓고도 서재정·이승헌 교수의 논박이 나왔다.

"합동조사단은 어뢰가 북한산이라고 직접 주장하는 대신 카탈로그와 CD가 북한산이고 여기에 있는 정보와 설계도면이 어뢰 추진체와 일치하므로 어뢰가 북한산이라는 간접증명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카탈로그와 CD 자체가 북한산이라는 것이 검증되지 않는 한 이런 방식은 '그냥 믿어 달라'는 말밖에 안 된다."

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보안을 핑계로 카탈로그와 CD가 북한산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 같은 물질 나온 게 어뢰 폭발 증거?

합동조사단은 또 천안함 선체와 어뢰에서 채취한 흡착 물질의 구성 원자와 결정 구조가 같은 것이 어뢰 피격의 근거라고 말한다. 이들은 어뢰 안의 알루미늄이 폭발 상황에서 산소와 반응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되어 선체와 어뢰에 흡착됐다고 주장한다. 서재정·이승헌 교수는 이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합동조사단의 주장대로라면 굳이 '1번 어뢰'가 아니더라도 알루미늄이 포함된 폭약의 폭발이 있었다면 흡착 물질과 같은 물질이 형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에서 발견된 흡착 물질이 '1번 어뢰'의 폭발 탓인지, 아니면 다른 폭발 탓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합동조사단은 '외부 폭발=1번 어뢰 폭발'을 입증할 다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서재정 교수는 지난 6월 22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런 합동조사단의 논리의 허점을 놓고, "A가 먹는 밥과 B가 먹는 밥의 구성 원자도 같고 결정 구조도 같으므로 두 밥이 같은 밥통에서 만든 것이라는 논리와 같다"고 따져 물었다. 서로 다른 밥통(폭발)에서 나온 밥(흡착 물질)이라도 구성 원자와 결정 구조는 같기 때문이다.

■ 냄비에서 누룽지 생기면 밥통에선 누룽지가 안 생긴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의 흡착 물질에 대한 엑스선 회절 분석(XRD) 데이터는 합동조사단이 자체 실시한 수중 폭발 실험에서 나온 물질의 데이터와 달랐다. 이를 놓고 합동조사단은 '수중 폭발 실험은 어뢰 폭발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물질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것이야말로 천안함 침몰이 어뢰 폭발에 의한 것임을 입증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서재정·이승헌 교수는 6월 3일 <한겨레> 기고에서 "실험 조건이 (어뢰 폭발과) 달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왔으면, 그 결과를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합동조사단의 주장대로 "천안함과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 물질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폭발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재정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합동조사단의 주장은) 냄비(실험 폭발)에다 밥을 해보았더니 누룽지(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가 생기므로 이것은 밥통(어뢰 폭발)에다 밥을 하면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다(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는 증거라고 강변하는 것"이라고 합동조사단의 논리를 꼬집었다.

■ 결론이 가정을 입증한다?

합동조사단은 또 천안함 침몰이 외부 폭발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고자 외부 폭발을 전제로 천안함의 절단 과정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시뮬레이션으로 드러난 천안함 파괴 과정이 어뢰 폭발 상황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 폭발 증거가 될 수 없다.

서재정·이승헌 교수는 "시뮬레이션은 250킬로그램의 고성능 폭약이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미터, 수심 6~9미터 정도에서 폭발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출발했다"며 "이러한 전제가 성립한다는 가정 하에 천안함에 어떠한 손상이 가해질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시뮬레이션이 그 전제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말했다.

스크루 변형 시뮬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스크루가 어뢰 폭발로 급정지해 관성력으로 휜다는 것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은 그 가정을 입증할 수 없다. 합동조사단의 한 민간위원이 "현재의 시뮬레이션으로 현 상태의 스크루 변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털어 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니까 북한?

한국이나 미국의 오폭이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쐈을 리도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이라는 추론은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논리는 아니지만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유포됐다. 언뜻 보면 반박할 구석이 없는 것 같은 이 논리는 그러나 천안함의 경우 성립되지 않는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주사위를 던지고 나서 안 보이는 면을 예상하기는 쉽다. 1이 보이면 안 보이는 면이 1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2가 보이면 2일 가능성을 배제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런 '배제에 의한 논리 추론'이 가능하려면 주사위처럼 경우의 수(여섯 가지)가 확실하고, 1이 보이면 안 보이는 면이 1일 확률이 제로(0)가 되듯 하나의 경우를 완벽히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 원인은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다. 좌초든 어뢰든 기뢰든 어느 하나가 아닐 확률이 낮다고 할 수 있어도 제로는 아니다. 또 어뢰가 분명하더라도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가 쐈을 가능성 역시 제로는 아니다. 천안함 사고 원인을 배제에 의한 추론 방식으로 찾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 지진파가 폭발의 '결정적 증거'?

많은 이들은 천안함 침몰 당시 백령도에서 규모 1.5의 지진파가 관측된 사실을 놓고, 이것이야말로 천안함이 어뢰 폭발에 의해서 침몰한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결정적인 증거'로 보이는 지진파를 합동조사단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왜일까? 그것은 지진파가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지진파의 정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지진파는 백령도에서만 관측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이것이 폭발 탓에 발생한 인공 지진인지, 아니면 백령도 인근에서 빈발하는 자연 지진인지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지진파의 성격상 인공 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뿐이다.

이 지진파가 폭발에 의한 것으로 확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양판석 박사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지진파는 폭발 추정 시간과 폭발 규모 외에는 말해주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합동조사단이 지진파를 결정적인 증거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더구나 합동조사단은 지진파를 독자적으로 검증하지도 않은 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보고서만을 근거로 어뢰 피격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진파가 폭발과 같은 원인 탓에 생긴 것일 수 있다"는 얘기만 해놓고, 현재까지 지진파 원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 오컴의 면도날

'같은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원리도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다. 북한이 어뢰를 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 이런 '간단한' 설명을 왜 부정하느냐, 이런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과연 '간단한' 설명일까?

"① 3월 26일 당시에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② 천안함은 하필이면 그 당시에 백령도 인근에 있었다. ③ 북한의 잠수정은 백령도 외해를 'ㄷ' 자로 거쳐서 천안함이 있는 곳까지 침투했다. (혹은 한국 해군의 방어 체계를 뚫고 직선으로 침투했다.) ④ 그 잠수정은 전 세계에서 실전에 한 번도 배치된 적이 없는 최신식 어뢰로 천안함을 격파했다.

⑤ 천안함을 격파하고 나서 그 잠수정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⑥ 놀랍게도 잠수정의 침투, 어뢰 공격, 도피의 전 과정에서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이 잠수정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⑦ 이런 엄청난 적의 공격이 있었음에도 합참의장은 상황 조치를 하고 나서 수면을 취하는 태평한 모습을 보였다."


자, 이게 과연 간단한 설명인가?

■ 입증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정부와 합동조사단은 공통적으로 "증거를 대라"고 반박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반응이다.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했는지를 밝혀야 할 이들은 바로 정부와 합동조사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문제제기에 대해서 자신의 애초 주장(북한이 쏜 어뢰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했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엉뚱하게 북한에 입증 책임을 미루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북한이 아무런 증거도 대지 않고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우긴다. 물론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면, 그들은 증거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증거를 댈 수 없다.

이제 정부와 합동조사단이 입을 열 때다.

 

/황준호 기자,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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