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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I Love Live

20100331 - Bob Dylan 내한공연

by Wood-Stock 2010. 3. 31.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 밥 딜런 온다 ~ 3월 첫 내한공연하는 ‘포크록의 전설’

 

포크록의 거장 밥 딜런이 온다. 3월 31일 저녁 8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티켓 판매는 2월 17일부터(02-3141-3488).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우리 시대의 거장’ 밥 딜런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철학적 가사로 시대정신 표출
빌보드 1위 한번도 없었지만 50여년 동안 최고의 영향력

 

  

 

밥 딜런은 유명하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그의 이름은 안다. 높은 지명도를 고려하면 그가 히트시킨 곡이 많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활동 50년 동안 빌보드 차트 1위는 단 한 곡도 없으며 10위 안에 든 곡도 겨우 네 곡에 불과하다. 애청되는 노래도 별로 없다. 국내 라디오 전파를 타는 곡이라곤 ‘원 모어 컵 오브 커피’나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정도다. 이 점이 히트곡이나 밀리언셀러가 부지기수인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와는 다르다.

 

하지만 차트와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어도 밥 딜런은 언제나 팝 음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음악인 1위’로 꼽힌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든, 이글스든, 징징거리는 소리의 헤비메탈 그룹이든 모두들 ‘딜런의 후예들’이다. 근래 2005년의 앨범 <모던 타임스>와 지난해 68살 나이에 발표한 통산 서른세번째 앨범 <투게더 스루 라이프>가 그랬듯이 그가 앨범만 냈다 하면 모든 음악전문지는 마치 의무처럼 그해 앨범 중 으뜸으로 선정한다. 그의 경쟁력은 인기가 아니라 음악의 심도 혹은 역사적 중력이 요체인 것이다.

 

무엇보다 가사가 그를 ‘우리 시대의 음악지성’으로 견인했다. 그는 낱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자유롭게 써내려가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쾌척했다. 대중가요에 부재했던 철학이 있었고 그런 만큼 난해했다. 그의 정확한 의중에 대한 굴착의 어려움은 더욱 그를 ‘레전드’로 만들었다. 대중음악가들은 그의 경이로운 언어 세계를 접하면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 못지않게 가사가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깨달았다. 애들 사랑 얘기밖에 몰랐던 비틀스의 존 레넌도 그의 음악을 듣고 나서 인생·사회·종교에 대한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다.

 

밥 딜런은 1960년대 초반, 차별과 전쟁에 얽매인 기성 가치를 공격하면서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그가 1962년에 쓴 포크송 ‘바람만이 아는 대답’(블로잉 인 더 윈드)은 즉각적으로 반전 세대의 슬로건이 되면서 전세계 청년들을 저항의 띠로 엮었다. 당시 미국의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케네디 대통령의 정견과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만큼이나 그의 노래를 믿고 추종했다.

 

그가 통기타 포크의 영웅인 동시에 록 음악의 구세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1965년 그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섰다가 야유를 당했지만 역사는 그를 포크와 록 사운드를 결합한 ‘포크록’의 창조자로서 길이길이 환대했다. 록으로부터 폭발하는 젊음의 사운드를 끌어온 대신 록한테는 가사를 가르쳐주는 공적을 남긴 것이다.

 

노랫말과 록 사운드를 공유한 포크록은 청년의 음악문법으로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국내에서도 한대수, 송창식, 이장희 등이 포크록 노선을 따랐다.

 

비평가 그레일 마커스는 “그의 음악은 음악으로만 보면 안 된다. 그것은 대중음악의 정신혁명과 관계한다. 그의 음악은 20세기 모더니즘의 가장 강렬한 분출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왜 그의 음악과 앨범이 명작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기술했다. 그는 히트곡이 대중가수의 전부가 아님을 말하는 산증인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현재 맹위를 떨치는 상업가요에 집착하는 것이 왜 부질없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의 음악은 하나의 현대사상 저서나 같다. 마이클 잭슨이 음악을 영상처럼 보게 했다면, 밥 딜런은 음악을 책처럼 읽게 했다고 할까. 어쩌면 1960년대 이후 서구 대중음악은 밥 딜런에 대한 경배를 통해 힘과 품격을 늘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한공연을 펼친다. 그것은 단지 한 명의 유명한 서구 아티스트를 보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등장하기 전에는 없었던 대중음악의 현실 파괴력과 정신사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사진 액세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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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Dylan to Perform in Seoul for First Time

 

By Cathy Rose A. Garcia / Staff Reporter

Legendary singer-songwriter Bob Dylan will be performing in Seoul for the first time at the end of March.

Concert organizer Access Entertainment announced Dylan's first concert in Korea will be held March 31 at Olympic Gymnastics Stadium, Olympic Park, southern Seoul.

In a statement, Access Entertainment said news of Dylan's concert has generated significant interest from many fans between the ages of 30 and 50 in Korea.

In order to allow more people to enjoy Dylan's first concert in Seoul, concert organizers have adjusted the ticket pricing scale to make it more affordable. Tickets for the one-night-only concert start from 66,000 won to limited VIP seats worth 198,000 won.

Prior to coming to Seoul, Dylan will be holding a series of 12 concerts in Tokyo, Nagoya and Osaka starting March 12. Access Entertainment noted that tickets to Dylan's 12 concerts in Japan sold out in 10 minutes. Tickets for the Japan shows were also more expensive than the ones in Seoul ― 12,000 yen and 20,000 yen (approximately 157,000 won and 262,000 won).

Dylan was born Robert Allen Zimmerman and grew up in Duluth, Minnesota. He moved to New York City in 1961, where he was signed by Columbia Records. His second album, ``The Freewheelin' Bob Dylan,'' released in 1963, placed Dylan in the spotlight.

Dylan, considere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songwriters in the last half century, has continued to perform around the world as part of his ``Never Ending Tour.''

Since starting his career in 1959, he has released over 40 studio albums, including the acclaimed ``Modern Times'' and ``Together Through Life.''

His albums have always been deemed among the best of all time. Rolling Stone magazine ranked ``Highway 61 Revisted'' as number 4, and ``Blonde on Blonde'' as number 9 in its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Modern Times'' was ranked number 8, and ``Love and Theft'' ranked number 11 in the magazine's Top 100 Albums of the Decade.

Among his best known songs are ``Blowin' in the Wind,'' ``The Times They Are a-Changin','' ``Like a Rolling Stone,'' ``Knockin' on Heaven's Door'' and ``Shelter from the Storm.'' His songs were anthems for the civil rights and anti-war protests in the 1960s, striking a chord with the rebellious generation.

Dylan was inducted into the Rock and Roll Hall of Fame in 1988. He was described as `` the uncontested poet laureate of the rock and roll era and the pre-eminent singer/songwriter of modern times.

``Whether singing a topical folk song, exploring rootsy rock and blues, or delivering one of his more abstract, allegorical compositions, Dylan has consistently demonstrated the rare ability to reach and affect listeners with thoughtful, sophisticated lyrics,'' it said, on its Web site.

Dylan has been inducted into the Nashville Songwriters Hall of Fame and Songwriters Hall of Fame, and was honored with the Grammy Lifetime Achievement Award in 1991.

In 2008, he received a special citation from the Pulitzer Prize jury for ``his profound impact on popular music and American culture, marked by lyrical compositions of extraordinary poetic power.''

Tickets go on sale at 12 p.m., Feb, 17 on Interpark (ticket.interpark.com). Call 1544-1555.

cathy@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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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

[김작가의 음담악담] 신화가 되길 거부한 대중음악 전설 ~ "밥 딜런은 거기에 없다"
 

기사입력 2010-03-12 오전 8:45:20

 

그가 온다. 밥 딜런. 끝.

이렇게 쓰고 싶은 심정이다.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다. 밥 딜런이란 이름이 모든 걸 설명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밥 딜런이란 이름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명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서술하는 거라 부연할 수 있다면, 밥 딜런의 기의는 어떠한 규정에서도 벗어난다.

하나의 틀로 묶이고 싶어하는 아티스트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궤적에는 대부분 일관성이 있다. 그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있는 일관성이. 그러나 밥 딜런에게는 그런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는다. 미가 무엇이고 애국심이 무엇인지도. 나는 그것이 무엇이야한다는 고정 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밥 딜런은 자기 자신조차 규정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래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의 제목이 <아임 낫 데어>인 것은. 밥 딜런은 '거기' 즉,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로부터 늘 탈출하며 살아왔다. 역시 그래서다.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을 연기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그는 저항 가수이자 기독교 전도사였으며 개인주의자이자 몽상가였다. 시인이자 웅변가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아니었다.

밥 딜런의 첫번째 도피는 1965년이었다. 그 해 5월 포크 무브먼트를 대표했던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한 그는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Like A Rolling Stone'을 연주했다. 포크 순수주의자들에게 일렉트릭 기타는 곧 세속적 상업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청중은 야유했다. 동료들은 당혹했다. 프로테스턴트 포크의 아버지였던 피트 시거는 그 모습을 보고 "전기 톱이 있었다면 당장 기타를 잘라버리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규정된 포크가 아닌, 자신의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포크 록이 창시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버린 것은 저항 가수의 이미지였다. 아무 것도 지칭하지 않음으로서 모든 것을 말하던, 그의 사회적이고 시적인 가사는 1960년대 말을 끝으로 오랜 종결을 고했다. 그 이전에도 스스로 저항가수가 아님을 수차례 밝힌 밥 딜런이었다. 동료였던 존 바에즈와는 달리 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좇아 집으로 몰려 드는 히피와 사회운동가들을 피해, 수 차례 이사를 다녔다. 심지어는 그들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이미지를 180도 뒤집어 컨트리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더니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당혹스러운 음악들이 이어졌다. 더 이상 그를 '현재의' 저항가수나 포크가수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목받는다는 건 굴레다. 예수는 주목받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다"라는 말을 실현이라도 하듯, 주목으로부터 도피한 것이다. 70년대부터, 밥 딜런은 그렇게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밥 딜런이 마지막으로 버린 건 은둔이었다. 1997년 발표한 <Time Out of Mind>부터 지난 해의 <Together Through Life>에 이르는 넉 장의 앨범을 통해서,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장의 음악을 들려줬다. 청년 시절과 조금도 다름없는 시적이고 성찰적인 가사가 있었다. 비음을 간직한 채 늙은, 관조의 목소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되었으며 순차적으로 추구했던 컨트리와 블루스, 그리고 포크가 한데 어우러진 밥 딜런의 음악적 궤적이 한 데 어울려 있었다. 세상이 그를 잊은 게 아니라 그가 세상을 잊었던 거라는 듯, 밥 딜런은 이제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일관성이 없으되 그렇기 때문에 일관적인 인생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벽화를 그리다가 사라진 사람이 나타나 다시 그리기 시작했는데, 사실 사라진 게 아니라 벽의 뒤편에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듯이.

은둔을 털어낸 그는 2006년 생애 첫 자서전을 썼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란 제목으로 국내 출간된 이 자서전은 그 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다. 원제가 '연대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밥 딜런은 편년체 서술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실과 생각을 뒤섞는다. 평생 가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빛났던 그의 시적 언어들이 서사로 이어진 것이다.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그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 "엘비스가 록에 육체를 선사했고 밥이 정신을 선사했다. 오늘날, 위대한 록 음악이 있는 어디에나 밥 딜런의 그림자가 있다." 음악을 언어와 만나게 했고, 언어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밥 딜런에게 마땅한 헌사였다.

3월 31일. 그런 그가 온다. 밥 딜런. 진짜 끝.

Bob Dylan (Robert Allen Zimmerman)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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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오늘밤 그 공연이 기대된다

 

‘포크의 거장’ 밥 딜런(Bob Dylon)이 31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칠순 가까운 나이에 비로소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에 국내 대중문화계도 남다른 헌사를 쏟아내는 중이다.

방송, 출판, 음반계 전반에 걸쳐 한때 시대를 뒤흔든 아티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서 큰 영향을 끼친 밥 딜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예전 앨범들이 재발매되고, 그가 직접 쓴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 재발간돼 서점가를 장식하고 있다.

또 31일 오후 10시 케이블 채널 XTM에서는 밥 딜런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밥 딜런-노디렉션홈’(마틴 스콜세지 作)이 방송된다.


이처럼 한 시대를 장식했던 아티스트의 내한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밥 딜런은 음악적 성취만큼이나 한 아티스트가 대중의 의식과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보여줬다. 음악 평론가들은 밥딜런의 음악이 곧 60, 70년대 사회운동의 궤적이며, 그의 주옥같은 곡들은 20세기 대중음악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갔다고 입을 모은다.


‘Knockin' on Heavens Door’, ‘Like A Rolling Stone’, ‘Blowin' In The Wind’ 등 밥딜런의 대표 곡은 시적인 가사로도 유명하다.

그의 예명인 밥 딜런도 시인 딜런 토마스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래 가사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적도 있다.

 

그의 대표곡 ‘Blowin’ in the wind’는 ‘얼마나 많은 길을 얼어야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있지’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시 언어에 반전 메시지까지 담아냈다.


이처럼 시적인 언어로 잘 포장된 그의 음악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촌스러운 구호가 아닌,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행하는 저항은 그 자체로 파워풀했다.

냉전으로 어두웠던 시대 분위기에 음악을 통해 세계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밥딜런 내한공연을 맡은 기획사 관계자는 “천문학적인 개런티가 걸려있지만, 꼭 기획하고 싶었던 공연이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그의) 내한공연을 개최하고 싶었다.”며 이번 공연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밥 딜런은 31일 내한공연에서 ‘Knockin' on Heavens Door’, ‘Like A Rolling Stone’ 등 한 세기를 대표하는 주옥 같은 곡들을 부를 예정이다.


조민선기자/bonjod@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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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녹슬지 않는다"…밥 딜런, 음악으로 소통한 120분

 

[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기자] 명품은 단지 고가의 가격이나 인기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가 지닌 전통과 역사, 그리고 타 브랜드는 흉내 낼 수 없는 고귀한 가치가 있기에 누구나 탐내는 명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미국 팝 음악 역사를 정리할 때 밥 딜런(Bob Dylan)이라는 가수를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딜런이야 말로 미국 음악사에 있어 빠지지 않고 기억될 명품 중의 명품이다.

 

딜런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넘어 대중들에게 파급력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회 운동가로도 큰 명성을 떨쳤다. 그의 음악은 심도 깊은 메시지로 60~80년대 미국 젊은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를 두고 '음유시인'이라 지칭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31일 오후 8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밥 딜런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비록 데뷔 48년이 흘러서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포크의 거장'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뜨겁고 깊었다. 세대와 성별을 막론한 6천여 명의 팬들이 공연장을 찾아 딜런의 공연을 즐겼다.

 

오후 8시 5분경 블랙 셔츠에 아이보리색 중절모를 쓰고 무대에 오른 딜런은 '레이니 데이 우먼'(Rainy Day Woman)으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레이 레이디 레이'(Lay Lady Lay), '더 멤피스 블루스 어게인'(The Memphis Blues Again) 등을 부르며 공연장의 열기를 달궜다. 공연 중반부에 들어서자 '더 리브스 고나 브레이크'(The levee's gonna break), '하이웨이 식스티 원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 '발라드 오브 어 씬 맨'(ballad of a thin man)' 등 주옥같은 히트 넘버를 부르면서 다양한 분위기의 공연으로 끌고 나갔다.

 

 

이날 공연은 전체적으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연장에는 그 흔한 멀티스크린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총천연색 조명도 설치되지 않았다. 오로지 딜런의 목소리와 연주, 5명 연주자들의 악기 선율만이 공연장을 메웠다. 최소한의 세팅은 공연의 집중도를 높여줬다. 청각적 유희를 느끼는데 최적화된 조건이었다. 딜런 역시 2시간 내내 노래와 연주에만 몰두했다. 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환호에 화답하는 시간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중요치 않았다. 그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2시간 내내 만국 공통어인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준비된 모든 곡을 소화한 딜런은 비로소 "땡큐 팬즈(Thank you, fans!)"라는 짧은 인사말를 전했고 5명의 밴드 멤버와 무대 중앙에 나란히 서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팬들은 딜런을 아쉽게 보내지 않았다. 6천명의 팬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밥 딜런!"을 외쳤다. 팬들의 연호 소리에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무대에 다시 등장한 딜런은 최고의 히트곡인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을 앙코르 곡으로 불렀다.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무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손을 뻗어 소리를 지르는 관객도 있었고 몸을 흔들며 따라 부는 관객도 있었다.

 

두번째 앙코르 곡은 '조렌'(Jolene), '올 어롱 더 워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였다. 이어 '블로인 인 더 윈드'(Bowin' in the Wind)까지 마친 딜런은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공연은 일흔의 아티스트가 펼친 무대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정적이고 뜨거웠다. 왜 밥 딜런이란 이름이 미국 팝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정한 명품 공연이었다.

 

ebada@med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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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전설은 ing"…가슴 울린 두 시간

  

 

[이데일리 SPN 양승준 기자] '포크록의 전설'은 살아있었다. 밥 딜런이 노래로 읊은 시에 6000여 관객들은 숨죽였다. 한국 나이로 올해 일흔이 됐지만 목소리의 '야성'도 살아있었다. 전성기때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거칠고 둔탁한 목소리의 호소력은 여전했다. 세월의 삭풍을 머금은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웅숭깊게 느껴졌다. '그래미 평생 공로상',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높은 인물', '노벨 문학상 후보' 등의 타이틀은 역시 유명무실이 아니었다.

밥 딜런의 데뷔 48년 만에 성사된 첫 내한공연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밥 딜런이 3월31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공연 오프닝곡으로 '레이니 데이 우먼'(Rainy Day Woman)을 부르자 관객들은 함성으로 거장을 반겼다.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Just Like A Woman),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같은 불멸의 히트곡이 연주될 때면 공연장은 관객들의 환호로 가득찼다. 밥 딜런의 전매 특허인 하모니카 연주가 이어질 때도 관객들의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알찬 공연이었다. 밥 딜런의 공연은 경기장에서 열렸음에도 무대 스크린도 설치되지 않았고 기본적인 조명 외에 특별한 무대 장치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볼거리에는 무심했지만 청각에는 정성을 다했다. 거장은 음악으로 말하는 법. 밥 딜런은 두 시간 여의 공연동안 특별한 멘트없이 보컬과 오르간 연주에 몰입하며 공연을 이끌었다. 또 블루스와 포크 음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밥 딜런이 이날 한국팬들에게 선사한 18곡은 격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이날 밥 딜런의 음악은 세대가 함께 호흡했다. 공연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50대 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밥 딜런의 음악을 즐겼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의 내한에 국내 가수들도 공연장을 찾았다. 조영남, 김창환을 비롯해 빅뱅 멤버 지드래곤과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 등 아이돌 가수들도 공연장에서 밥 딜런의 노래에 귀기울였다.

공연을 관람한 30대 직장 여성 K 씨는 "20세기 대중음악의 산 역사를 만나 즐겁고 값진 시간이었다"며 "울림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고 감동을 전했다.


한편, 이날 한국 공연을 마친 밥 딜런은 1일 유럽으로 출국해 휴식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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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내한공연 '한 번이면 족합니다'

 

"두 번 생각하지 마세요. 그걸로 됐습니다."('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시적인 가사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은 뮤지션이라는 설명은 밥 딜런에게 구차하다. '전설'이라는 표현 역시 진부하기 짝이 없다. 비틀즈, 롤링스톤즈와 함께 세계 대중 음악사에 최정점에 서 있는 뮤지션 밥 딜런이 31일 오후 8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이날 공연장에는 6,000여명의 국내 팬들이 모였다.

밥 딜런의 첫 내한공연은 밥 딜런이 50여년 간 발표한 33장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의 트랙 리스트를 모두 줄줄이 꿰고 있는 밥 딜런 마니아가 아니라면 다소 실망스러운 공연이었을 수도 있다. '녹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나 '블로윙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과 같은 섬세하고 날카로운 서정성을 추억하는 팬들에게도 분명 전혀 예상 외의 공연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오후 8시에 시작한 공연은 전체적으로 포크 뮤지션의 공연 이라기보다는 록 밴드의 그것에 가까웠다. 특히 밴드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그루브함이 넘쳤으며 후반부로 갈 수록 편곡과 연주는 보다 강하고 날카로워 졌다.

하지만 밥 딜런의 목소리는 전혀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결코 아니었지만 1941년생, 올해로 70세가 된 밥 딜런의 목소리는 자신의 곡을 전혀 소화해지 못했다.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이고 노장의 음악적 권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포장할 수 있어도 원곡과 전혀 다른 노트의 가창은 귀에 익숙한 가사를 듣고 서야 그 곡이 어떤 곡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고음은 고사하고 밴드 세션의 강한 비트에 맞춰 가사의 마디 끝마다 거친 악센트를 주는 모습은 안타깝게 보일 정도였다. 이 같은 가창 습관 탓에 거의 모든 노래가 비슷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출적인 측면에서 이날 공연은 가장 미니멀 하게 꾸며졌다. 흔한 대형 스크린도, 빔 조명도 설치되지 않았고 지극히 단출한 몇 개의 조명만이 공연장을 비췄다. 물론 어울리지 않겠지만 폭죽 같은 특수효과도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밥 딜런의 움직임도 제한적이었다. 종종 무대 가운데로 걸어나왔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무대를 옆으로 향한 건반 앞에서 서 있었다.

앙코르 곡까지 총 18곡이 연주되는 동안 세션 교체를 위해 암전이 몇 차례 이뤄졌을 뿐 멘트는 한마디도 없었다. 2시간 동안 공연에서 밥 딜런이 한 유일한 말은 마지막 곡 직전 "땡큐 팬"(Thank you, Fan)과 세션 기타리스트의 소개뿐이었다. 물론 닭살 돋는 립서비스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형 스타의 공연에서 그들이 뱉어내는 한 마디의 멘트는 관객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실제 공연장에 와서 좋아하는 스타를 직접 만났다는 유쾌한 현실감을 안겨준다. 또 주위를 환기시켜 다음 곡의 집중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밥 딜런의 공연은 분명 '불친절한' 쪽에 가깝다.

물론 공연을 가창과 연출로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또 팬의 입장에서 아티스트에게 자신들이 선호하는 특정한 이미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밥 딜런이 특유의 짙고 깊은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일 때는 객석에서 감탄사와 환호가 쏟아졌다. 건반 앞에서 밴드와 교감하며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기타에 찰리 섹스톤(Charlie Sexton)과 스투 킴벨(Stu Kimball) 베이스에 토니 가르니에(Tony Garnier) 드럼에 조지 리씰(George Recile) 바이올린에 도니 헤론(Donnie Herron) 등 세계 최정상 세션들의 불꽃튀는 연주 역시 압권이었다. 하지만 두 번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 번이면 족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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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이 '포크록의 전설'인 이유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살아있는 사람에게 전설이란 칭호를 붙이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밥 딜런(69)이 데뷔 48년 만에 펼친 첫 내한 공연은 왜 그가 '포크록의 전설'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31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딜런의 공연은 한마디로 명불허전이었다. 세계적인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짧은 2시간 동안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딜런은 '레이니 데이 우먼 #12 & 35(Rainy Day Women #12 & 35)'로 성대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레이 레이디 레이(Lay, Lady, Lay)', '아이 윌 비 유어 베이비 투나잇(I'll Be Your Baby Tonight)'이 이어지며 6000여명의 팬들을 흥분케 만들었다.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Just Like A Woman)'를 부를 때는 환상적인 하모니카 실력도 뽐냈다. 이어 '어니스트 위드 미(Honest With Me)', '슈가 베이비(Sugar Baby)' 등을 들려줬다.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 '썬더 온 더 마운틴(Thunder on The Mountain)', '발라드 오브 어 씬 맨(Ballad Of A Thin Man)' 등도 선사하며 팬들을 향수에 젖게도 만들었다.

첫 번째 앙코르곡으로 딜런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 중의 하나인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 흘러나오자 팬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1965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 당시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한 시발점이 됐던 바로 그 곡이다. 이후 순혈 포크주의자들에게 외면 받았지만 포크록의 전설로서 첫 발을 내딛게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팬들은 이런 전설적인 곡을 바로 목전에 있는 딜런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기쁨에 무대 앞으로 몰려나갔다. 2,3층 지정석에 있던 팬들도 1층 스탠딩석에 나갈 수 없음을 알면서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애썼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은 2004년 미국 음악잡지 '롤링 스톤'이 로큰롤 탄생 50주년 특집에서 이 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선정된 바 있다.

마지막 앙코르곡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팬들은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딜런을 연호하며 환호작약했다.

딜런은 공연 막바지 멤버들을 소개할 때를 제외하고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오로지 음악만을 들려줬다. 대형 콘서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형 영상과 무대 장치 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명도 무대 위만 비칠 뿐 간소했다.

벌써 국내 나이로 일흔인 만큼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더욱 걸걸해졌다. 젊은 날 음유시인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연륜과 편안함이 한껏 배어있었다. 몸을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연신 리듬을 타며 열정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키보드, 기타, 하모니카를 오가며 절정에 다다른 연주 실력을 뽐냈다. 리드 기타를 맡은 찰리 섹스톤(42)을 비롯한 세션들은 포크록 사운드의 진수를 팬들에게 들려줬다. CD나 MP3 파일로는 느낄 수 없는 전율을 선사했다. 팬들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들도 눈에 많이 띄어 포크록의 전설이 40년 만에 내한했음을 실캄케 했다.

딜런은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을 받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대중 음악계의 대표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뮤지션이다.

비음이 섞인 독특한 음색과 철학적인 가사, 진솔한 메시지 등을 통해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인종차별 반대, 반전, 반핵 등 정치적이고 사회성 짙은 음악을 끊임없이 발표하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포크음악과 록을 결합한 파격적인 음악스타일로 새로운 장르를 연 혁명가로 평가받기도 한다.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2위(1위 비틀스)에 오른 바 있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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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도시의 밤을 위로하다 ‘첫 내한공연’ 6천팬 ‘감동’

 

[뉴스엔 차연 기자] 괜히 ‘거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일흔의 팝 거장 밥 딜런이 첫 내한공연에서 명불허전의 음악으로 6천 한국 팬들을 감동시켰다.

밥 딜런(Bob Dylan, 70)은 3월 31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데뷔 48년만에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화려한 무대장치 보다는 음악에 충실한 이번 공연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음악 그 자체에 충실한 2시간이었다.

숱한 팝스타들이 지각 개연으로 질타를 받지만 그는 달랐다. 오후 8시 5분께 첫 곡 ‘레이니 데이 우먼’(Rainy Day Woman)으로 시작된 공연은 ‘레이 레이디 레이’(Lay Lady Lay) ‘더 멤피스 블루스 어게인’(The Memphis Blues Again)으로 이어지며 객석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딜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하모니카 연주는 앨범의 감동을 넘어서 아름다웠다. 그는 신나는 블루스 리듬과 처연한 포크 선율을 넘나들며 음악 본연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관객들은 열광하기 보단 가만히 앉아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Just Like A Woman’ ‘Like a Rolling Stone’ 같은 희대의 명곡이 흐를 땐 곳곳에서 박수와 함께 탄성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빨강 초록 등 화려한 조명이나 특별한 무대 장치도 없었다. 무대 뒤 대충 두른 듯한 검은 장막은 오히려 밴드를 돋보이게 해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음악은 보는 것이 아닌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재차 곱씹게 하는 대목이었다.

체조경기장을 꽉 채운 관객들은 가만히 그의 목소리와 밴드 연주에 몸을 맡기고 두 시간 동안 도시의 피로를 위로 받았다. 14곡의 세트 리스트가 끝난 뒤 객석에서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 나왔고 첫 번째 앵콜송이 시작됐다.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었다.

첫 내한공연인 만큼 딜런의 팬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딜런의 대표곡 ‘블로인 인 더 윈드’(Bowin’ in the Wind)와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故 김광석이 번안했던 '돈 씽크 트와이스 잇츠 올라잇'(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등을 들을 수 있는 지에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이에 관객들은 앵콜곡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이 흘러나오자 모두 일어나 딜런과 하나되는 순간을 즐겼다. 이에 마지막 앵콜곡 '블로인 인 더 윈드'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깊은 감동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중장년층 팬들 뿐만 아니라 어린 록팬들, 뮤지션들도 찾아 거장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빅뱅 지드래곤,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 등 아이돌 스타들도 딜런의 음악을 직접 느끼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30일 일본 투어 끝에 입국한 딜런은 31일 공연을 끝낸 뒤 4월 1일 유럽으로 출국, 한 동안 휴식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차연 sunshine@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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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밥 딜런 내한공연을 보는 두가지 시선

 
[마이데일리 = 이준형 기자] 31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밥 딜런 내한공연'에 두가지 시선이 엇갈렸다. 좋게 본 시선, 안좋게 본 시선이다.

<좋게 보는 시선 - '밥 딜런 스타일' 역시 영감을 줬다>

국내팬이 설렌 것은 물론 매체로만 듣던 '전설' 밥 딜런을 처음 직접 보고 듣고 같이 호흡했다는 사실 자체. 6천명 관중이 운집한 공연은 예상한대로 오프닝 밴드는 없고 검은 장막만 친 채, 오후 8시 시작돼 예정된 2시간동안 그의 음악이 이어졌다. 첫곡 '레이니 데이 우먼(Rainy Day Woman)'부터 앵콜 끝곡 '블로윈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까지 그는 특유의 읊조리고 내뱉는 목소리로 관중을 이끌었다. '레이 레이디 레이(Lay Lady Lay)', '더 멤피스 블루스 어게인(The Memphis Blues Again), '저스트 라이크 어 워먼(Just Like A Woman)', '어니스트 위드 미(Honest With Me)' 등등 블루스, 재즈록, 컨트리록 등을 섞어 불렀고, 앵콜곡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과 '선더 온 더 마운틴(Thunder on The Mountain)', '블로윈 인 더 윈드'를 불러주었다.

김동받은 것은 내년이 칠순인 그가 아직도 목소리 기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 그가 포크 음악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읊조리다 쏟다 했지만, 그래도 힘이 딸릴 것이란 생각은 공연전 기우였다. 매 곡을 부를때마다 그는 때로는 웅얼거리고 지르고 흘리기도 하며 멜로디파괴 박자파괴 소절파괴를 했던 음악적 선구자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딴은 밥 딜런은 60년대 그것으로 이제와서 유행하고 있는 랩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그의 밴드도 훌륭했다. 세계 각지서 얼마나 많은 공연을 했을까마는 키보드를 치고 기타를 치고 때로는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하는 주인공에 맞춰 폭발적인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기타 사운드는 정말 훌륭했다. 밥 딜런은 이날 지루하게(?) 노래만 부르다가는 공연 시작한지 1시간 넘어서야 이윽고 밴드를 소개했다. 보통 서너곡 끝나고 세션맨 소개하는데, 처음 관객들은 '밥 딜런이 밴드 소개 말고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가 말을 했다니…

31일 밤은 올림픽공원서 열린 '밥 딜런'의 종교 집회였다. 신봉자인 6천팬은 어떤 이는 조용히 박수치고 턱괴고 감상했고, 어떤 이는 일어나 열광했다. 관객을 거의 안 보고, 앵콜 받을때 딱 두번 멤버와 함께 인사하고 나간 그는 2시간동안 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역시 지난 2002년 데뷔 40주년 기념공연때, 동세대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턴, 밥 겔도프, 닐 영 등이 병풍으로 나와 기타치고, 코러스까지 해준 그였다.

<안 좋게 보는 시선 - 불친절한 공연, 불편했던 공연>

그의 행각, 음악사, 노래스타일, 괴벽 등으로 보아 '재밌는 공연'은 기대하지 않았다. 전인권이 30분동안 스탠딩 의자에 앉아 '노래 지르듯이' 밥 딜런도 1시간 넘게 노래만 했다. 객석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음악 평론가도 잘 모를 록 레퍼터리를 1시간 넘게 불러나가다가 이윽고 마이클 잡은 것도 그나마 밴드 소개였다.

관객은 앉자마자 요즘 익숙한 '멀티스크린'이 없는 데 당황했다. 밥 딜런이건 말건, 2,3층에 앉은 관객에게 공연은 음질좋은 라디오일 뿐이었다. 점점이 선 기타 세명과 콘트라베이스, 키보드, 드럼 중 드럼 빼고 누가 밥 딜런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하얀 중절모 쓴 이가 하모니카 부니까 그가 밥 딜런인게 확인됐다. 아마 스크린 설치 안한거는 밥 딜런의 조건이자 스타일이었을 테고, 그의 나이 든 얼굴을 대형스크린에 보여주기 싫었음일까? 관객에게 음악만 보고 듣고 가라는 명령일까. 2,3층의 실망한 관객들은 공연 도중 일부 나가기까지 했다.

해외가수들 내한공연에는 스크린이 있더라도 또 대부분 곡목 소개가 안 나온다. 그 가수를 좋아해도 잘 모르는 노래가 있고, "이 노래 뭐지?' 하며 새 노래에 곡목을 알고 싶은게 있을텐데 전혀 소개가 없다. 이튿날 정통한 네티즌 매니아가 올려놓는 인터넷 블로그를 찾아야 한다.

이날에는 또 중년 관객들이 꽤 많았다. 성음 데카 LP시절, 밥 딜런의 음반을 샀고 추억의 노래를 들으러 갔던 근 반 가까이 되는 관객들은 틀림없이 실망했을 것이다. 새로운 록을 한다는 밥 딜런의 음악적 고집을 꺾을 수야 없었겠지만,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나 '포레버 영(Forever Young)' 같은 쉽고 아름답고 친숙한 노래를 들려줄 수는 없었을까. 친숙한 노래 '라이크 어 롤링 스톤'과 '블로윈 인 더 윈드'도 역시 스타일대로 꺾어 불러, 원어 잘 모르는 우리들은 뒤늦게서야 "그게 그노래야" 했다.

2시간동안 밥 딜런을 음반으로만 들었던 향수에 젖은 팬들은 밥 딜런이 내는 음악시험 문제 풀듯이 곤혹스러웠다. 또 좀 안다하는 팬도 불편했을 것이 틀림없다. 노래를 몰라 같이 흥 날 수 없었던 팬은 이날 앉아 보고 듣기만 하는 극장쇼를 본 느낌일 테고, 호기심 많은 밥 딜런 팬도 공연 직후 이날 많이 온 미국관객들한테 이날 밥이 무슨 노래를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준형 기자 ro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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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 한국 찾은 ‘팝의 전설’ 밥 딜런
ㆍ‘가장 위대한 노래’에 모두가 절규

2010년 3월31일, 수요일. 낮 12시26분.
창 밖으로 차분히 봄비가 내리고 있다. 밥 딜런의 오래된 LP들을 꺼내 턴테이블에 건다. ‘Blood on the Tracks’(1975)며 ‘Free Wheelin'’(1963)이며…. LP 잡음이 꼭 빗소리처럼 들린다. 세월에 상처 입은 그 소리들. 서울 하늘 아래서 밥 딜런은 지금쯤 뭘 할까. 이 빗소리를 듣고 있을까.
20시06분.

‘Rainy day women #12 & 35’. 올림픽 체조경기장. 이 시간쯤, 관객의 환호에는 애절한 기대감이 깃들어 있다. 공연은 신화의 현장검증. 둥그런 흰 모자를 쓴 신사가 저 앞에 나타난다. 모자 때문인지 동유럽의 집시 같은 인상이다. 노래가 시작될 때 환호는 절규로 바뀐다. 이 노래는 1966년 발매 당시 ‘모두들 약(마약)에 취해 보자고’라는 가사 때문에 BBC 방송국에서 금지곡이 됐다. 당신이 이 땅을 일흔살이 되어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신이 한창이던 때, 당신 노래들은 대개 금지곡이었으니까. 봄비 내린 밤을 달구는 오프닝.

21시13분.

‘Highway 61 revisited’. 원곡보다 훨씬 로킹한 버전이다. 올해로 이 기념비적인 앨범이 나온 지 45년. 딜런은 때로는 아주 낮게 절규하다가, 화가 난 노인처럼 톤을 높이고, 어떨 땐 들린 사람마냥 읊조린다. 읊조림과 멜로디의 경계를 허문 사람. 대중가요의 뻔한 가사와 초현실주의 시를 뒤섞은 사람. “맥 더 핑거가 루이 더 킹에게 말했네/나는 마흔 개의 붉고 희고 푸른 신발끈이 있어/울리지 않는 천 개의 전화도.” 이런 가사, 밥 딜런 아니면 쓸 수 없다. 혀에 날개를 단 사람.

21시42분.

‘Like a Rolling Stone’. 첫번째 앙코르. 울 뻔했다. 아, 드디어 이 노래다! ‘롤링스톤’지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1위로 꼽힌 노래라던가. 관객들은 모두 기름불에 튀겨진 듯 튕겨 올라 절규. 밥 딜런의 투어를 “Never Ending Tour”라 부른다. 1988년 6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된다. 구르는 돌처럼.

22시30분.

올림픽공원 전철역. 마지막 앙코르곡 ‘Blowin’ in the Wind’의 후렴이 머릿속을 맴돈다. 한대수를 낳고 김민기를 키웠으며 1970년대 박정희 철권독재 시대에 장발단속 당하며 신음하던 통기타 세대의 송가가 된 노래. 플랫폼이 북적댄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렇게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체조경기장에 함께 있었다니.

<성기완 | 시인·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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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거장은 머무르지 않았다 ~ 또다른 캐릭터 보여준 내한공연
 
모든 곡 흥겨운 로커빌리로 변주, “현재진행형 거장 진면목 보여줘”
공연 내내 나이 잊은 정열의 무대,
기획사 선물 거절…‘소탈한 면모’ 
 

토드 헤인스 감독의 밥 딜런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2007)에는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나온다. 저항 노래로 유명한 포크 가수, 음악적 변신으로 야유를 받는 가수, 신앙심으로 충만한 목사, 영화배우, 은퇴한 총잡이, 시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를 떠올리게 하는 흑인 소년. 밥 딜런의 여러 모습을 상징하는 일곱 개의 퍼즐 조각들이다.

 

지난 31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한 밥 딜런은 ‘여덟번째 밥 딜런’이었다. 아니, 일곱 개의 조각들이 합쳐져 또다른 밥 딜런으로 탄생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하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검은 재킷에 형광색 옆줄이 들어간 검은 바지를 입은 밥 딜런은 1950년대의 로커빌리(블루스와 컨트리가 뒤섞인 초창기 로큰롤 음악 스타일) 스타였다. 한마디 말도 없이 두 시간 내내 거칠면서도 정열이 녹아든 목소리로 노랫말을 토해냈다. 의자 없이 서서 키보드를 연주하던 그의 다리와 어깨는 공연 내내 흥겹게 리듬을 탔다. 일흔 가까운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했다.

 

밥 딜런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통기타를 메고 미성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꽤나 당황했을 만큼, 모든 곡들을 블루스와 컨트리 향취가 물씬한 로커빌리로 변주했다. 최지호 음악평론가는 “90년대 후반 이후 발표한 네 장의 앨범에서 블루스, 컨트리 등 ‘루츠’에 천착해온 밥 딜런이 이번 공연에서 과거 거쳐온 포크, 록, 가스펠 등을 자신의 최신 스타일로 재창조해냈다”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거장의 진면목을 목도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공연의 절정은 앙코르 첫 곡으로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부를 때였다.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오자 그때까지 다소 얌전했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일부는 무대 앞까지 몰려가 손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생큐, 팬스”라고 처음으로 입을 뗀 그는 앙코르 마지막 곡까지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뒤늦게 달궈진 관객들은 그냥 갈 수 없었다. 박수와 함성이 멈추지 않자 밥 딜런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하우 매니~”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순간 객석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곡 중반 이후까지 무슨 노래인지 눈치를 채지 못했을 만큼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버전의 새로운 ‘블로잉 인 더 윈드’를 남기고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가수다. 이번 방한에서 인터뷰는 물론 공연 사진 촬영도 일체 거부했다. 무대에 대형 화면을 세우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소탈하기로도 유명하다. 숙소, 식사 등에 대한 요구사항이 아예 없었고, 공연을 마친 뒤에도 조용히 숙소로 돌아갔다. 공연기획사에서 준비한 선물을 숙소로 보내겠다는 얘기를 듣고는 “나는 거기에 없는 사람(아임 낫 데어)”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거듭 사양했다고 한다.

 

밥 딜런은 1일 전세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그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노킹 온 헤븐스 도어’나 ‘원 모어 컵 오브 커피’를 부르지 않았다. 많은 중년 관객들이 예상한 과거 전성기 때의 모습을 재현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공연,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고집스레 이 땅에 남기고 사라졌을 뿐이다.

 

이번에 그가 호의나 요청을 거절하며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아임 낫 데어”였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어쩌면 밥 딜런은 그날 무대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관객들의 가슴속에서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여덟번째 밥 딜런은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금도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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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필요 없는 ‘전설’ 말이 필요 없는 ‘음악’…밥 딜런 내한공연

 

노래·연주 ★★★★ 관객 호응도 ★★★★


공연장에는 젊은이들 외에 모처럼 중년도 많았다. 외국인도 꽤 눈에 띄었다. 3월 3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밥 딜런의 내한공연은 신구(新舊)세대와 동서(東西)가 동행한 관객층에서 이미 그가 서구 대중음악의 위대한 신화임을 확인해주었다. 나이 일흔에도 활발한 앨범과 공연활동을 하는 인물인 만큼 과연 그가 근래 음악에 중심을 둘지, 아니면 주로 과거의 골든 레퍼토리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밥 딜런은 이 점에서부터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과연 이 곡을 할까?' 싶었던 전설적인 명곡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차트 히트곡 ‘레이니 데이 우먼 #12 & 35' ‘레이 레이디 레이'로 시작했고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과 ‘발라드 오브 어 신 맨'을 노래한 순간 객석은 “이 곡도 듣게 되는구나!” 하는 감격과 환호로 가득했다.

 

한 조사에서 소설 영화 연극 음악을 망라해 20세기 서구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꼽힌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이 앙코르 순서에서 나오자 흥분한 관객들은 떼 지어 무대 앞으로 몰려나갔다. 밥 딜런은 1960년대 청춘들과 교감하며 그를 전 세계 ‘저항의 기수'로 부상시켜준 곡 ‘블로잉 인 더 윈드'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배려를 보였다. 연주곡 리스트가 대표작 모음집이나 명작 컬렉션 수준이었다.

 

고령이어선지 처음 네 곡까지는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곧바로 특유의 정돈된 야성(野性)을 회복했다. 그는 결코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식으로 공연에 임하지 않았다. 한창 젊었을 때 불렀던 원곡을 애써 재현하기보다는 지금 나이에 맞춰 즉흥의 늘어진 장단으로 풀어갔다. 산울림의 김창완은 “할아버지 공연의 진수”라고 말했다. 한참이 지나야 어떤 곡인지 알 수 있었기에 쾌감은 덜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해석의 묘미였다. 그는 공연에서도 ‘창작 중'이었다.

 

전체적으로는 객석 맞춤용이 아닌, 빙 둘러서 그냥 세션맨들과 즐겁게 한판 벌이는 잼(Jam)에 가까웠다. 그는 기타와 오르간을 연주했고 하모니카도 불었다. 음악 스타일은 최근 그가 천착한 블루스 분위기가 압도하는 가운데 컨트리, 포크, 재즈 그리고 로큰롤의 느낌이 혼재했다. 이 음악들은 흔히 미국음악의 뿌리로 통한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단순한 포크영웅이 아니라 미국 대중음악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구현하는 아티스트임을 전했다.

 

오로지 음악밖에 없었다. 밥 딜런이 노래말고 입을 뗀 순간은 마지막 밴드멤버를 소개할 때뿐이었다. 대형화면이 설치되지 않아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관객들은 잘 보이지 않은 게 흠이었지만 음악으로, 진정한 음악으로 모든 것을 커버했다. 음악이 과연 무엇인지, 수요자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 공연이었다. 음악이 이렇게 커 보인 공연은 지금까지 없었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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