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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Tour - World

터키 카파도키아

by Wood-Stock 2009. 12. 3.
유일무이한 비경, 터키 카파도키아 & 파묵칼레


터키 수도 앙카라(Ankara)에서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소금 호수가 나타난다. 말이 호수지 버스로 1시간 넘게 달려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소금 호수를 즈려밟으며 터키 여행의 간을 보았다. 지구상 유일무이한 비경과 동서양의 역사가 응축된 터키의 바람이 소금 백사장을 핥고 지나갔다. '거대한 야외 박물관'을 이루는 찬연한 풍경과 이야기들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카파도키아, 요정들이 사는 굴뚝

 

터키를 다녀온 이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십중팔구 카파도키아(Cappadocia)가 등장한다. 세상에 다시 없는 그 신묘막측한 풍경에 대해 저마다 탄사와 궁금증을 쏟아낸다. 어떻게 그런 신기하고 오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생겨났을까? TV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의 작가가 이곳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던데? 어둑어둑한 지하 도시에서 과연 수만 명이 살 수 있었을까? 카펫이 깔린 동굴 호텔에서 자봤니? 등등 다양하다.

카파도키아는 고대 지명으로 현재 터키 지도에선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소아시아 중앙에 자리한 네브셰히르(Nevsehir) 일대가 옛 카파도키아에 해당된다. 버스 또는 항공편으로 그곳에 닿으면 지형의 생성 과정, 그곳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잠시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도착 즉시 '촬영'이 지상 과제가 된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을 담느라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배터리 충전 상태를 미리 점검하지 못한 이들의 자책 어린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카파도키아는 화산 방출물이 퇴적해 굳은 응회암 지대로 굴을 파기가 쉽다. 끝이 뾰족한 돌멩이 몇 개만 있으면 수일 만에 바위산 절벽에다 전망 좋은 방 한 칸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동굴 레스토랑과 호텔이 만들어진다. 물론 돌멩이가 아닌 굴착기가 이용된다.

    


카파도키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정확지 않다. 출토된 서판을 보면 BC 20세기 이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부터다. 기독교인들은 절벽과 암봉과 땅속에 굴을 파고 숨어 살았다. 은신처로서의 역할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마감되는 듯했다. 하지만 7세기 아라비아에 등장한 이슬람이 소아시아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기독교인들은 다시 옛 은신처로 숨어들게 된다. 카파도키아를 대표하는 괴레메의 수많은 암굴 교회와 수도원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성됐다.

카파도키아를 감상하는 방법은 도보, 낙타, 말, 스쿠터, 버스, 열기구 등 다양하다. 그중 열기구 투어는 동이 트기 전 시작되는데 카파도키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며 다 마치고 착륙하면 샴페인 세례와 함께 수료증이 주어진다. 이용 요금은 20만 원 안팎으로 비싼 편이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다.

데린쿠유(Derinkuyu)는 카파도키아에서 발견된 지하 도시 중 가장 크다. 약 85m 깊이로 고층 아파트 몇 개 동을 땅속에 묻었다고 보면 된다. 최초 건설자는 프리기아(Phrygia) 인으로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의 저서 아나바시스(Anabasis)에도 언급돼 있으니 적어도 2천500살이 넘은 유적으로 볼 수 있다.

데린쿠유 내부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개미집을 방불케 한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통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지며 각 층의 생활공간을 연결한다. 수직으로 파내려간 우물과 통풍 시설을 축으로 삼아 각 생활공간이 배치됐음을 알 수 있다. 천장에 그을음이 달라붙은 부엌, 구유가 놓인 가축우리, 포도주 양조 시설, 곡식 창고, 교회와 학교 등을 볼 수 있다. 두 손을 돌기둥 위에 묶고 징벌을 가하던 공간이 특히 인상적이다. 지상이건 지하건 사람 사는 곳은 '죄와 벌'이 어쩔 수 없는 일상임을 말해준다.
  


◆파묵칼레, 눈으로 즐기는 백색 온천

 

파묵칼레(Pamukkale)는 카파도키아와 함께 터키에서 쌍벽을 이루는 비경이다. 이집트 클레오파트라가 다녀갔다고 전해질 만큼 유구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한다. 로마 시대 온천 휴양지로 이름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목욕탕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 관광지로 본격 개발되면서 인근 호텔들이 너무 많은 온천수를 뽑아 쓴 탓에 옛 풍모를 잃어버렸다. 산등성이에 흘러넘쳐나던 온천수가 거의 고갈된 상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졸졸거리며 흐르는 미지근한 물에 발 한번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몸을 다 담글 수는 없지만 파묵칼레는 분명 가볼 만한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눈에 들어오는 정경만으로도 경탄을 금치 못한다. 누가 선정하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지구상 유일무이한 풍경과 맞닥뜨릴 때 느끼는 감동은 여행의 고단함을 잊게 만든다. 강렬하고 황홀한 경험이다. 물론, 그 감동에 취해 경거망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파묵칼레는 다른 무엇보다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곳이다. 이동 시에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맨발로 석회암 지대를 옮겨 다니며 족욕을 즐기고 사진을 촬영하다 자칫 미끄러질 수 있다. 온천수의 미네랄 성분으로 인해 바닥 표면이 만질만질하다. 또 통행로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아야 한다. 통행로 밖 경사면에서 넘어져 아래로 구를 경우에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경관을 고려한 탓인지 통행로 아래 절벽에는 안전 펜스가 설치되지 않았다. 일단 넘어지면 손으로 잡을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좀 더 나은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모험을 시도하는 일도 절대 없어야 한다. 감동은 잠깐이지만 상처는 영원히 남는다.

파묵칼레는 에게해에서 동쪽으로 한참 들어간 내륙에 자리한다. 공항이 있는 데니즐리(Denizli)가 거점 도시 역할을 한다. 온천 지대 너머 구릉 위에는 페르가뭄 왕국의 유메네스 왕이 세운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유적이 펼쳐져 있다. 유메네스는 페르가뭄 왕국의 창업자인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를 기념해 도시를 조성했다. 완만한 경사의 산자락 중턱 평원에 아폴론 신전과 주거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군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1988년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묶어 세계복합유산에 등재했다.

히에라폴리스는 BC 2세기 로마에 편입된다. 현재 볼 수 있는 원형극장과 개선문 등은 모두 로마 시대 작품이다. 원형극장은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완공됐는데 수용 인원은 약 1만5천 명이다. 신기하게도 원형극장은 잦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일행이 있다면 무대와 관람석으로 서로 떨어져 목청이나 동전 낙하 실험으로 음향 전파 메커니즘을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다. 그리스와 로마의 원형극장은 확성기가 없어도 대사 전달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과학적 설계를 자랑한다.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ㆍ글/장성배 기자(up@yna.co.kr),

협찬/터키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꿈꾸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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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지하 도시로 떠나는 시간 여행 터키 ‘카파도키아’

 
세상에는 희한한 곳이 참 많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이나 중국의 장가계는 대자연의 위용에 가슴이 뛰는 곳이다. 대자연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곳을 만들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조형물이나 건축물도 있다. 아마도 피라미드 같은 곳이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 자연도 희한하고, 사람들이 만든 조형물도 특이한 곳을 고르라면? 아마도 터키의 카파도키아쯤 될 것이다.

스머프 마을과 스타워즈 우주 계곡의 배경

 

 
 
 
 
 
 
카파도키아는 지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초기 기독교 시절 교인들이 박해를 받아 숨어들었다는 지하 교회가 있는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아니, 지하 교회가 생기기 오래전부터 지하 도시, 동굴 도시가 있던 곳이다. 철기 시대가 시작된 히타이트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인 BC 2000년부터 시작돼 BC 717년쯤 사라진 히타이트 제국 시절부터라니 놀랍지 않은가? 히타이트는 성경에 나오는 헷 족속이다.

사진기만 들지 말고 볼펜도 들고 떠나자.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이곳은 공부할 게 많다. 카파도키아에 들어갈 때 10시간쯤 버스를 탄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대체 카파도키아가 뭐기에 이렇게까지 차를 타야 하나 하는 투정 때문이었다.

막상 카파도키아 지역의 괴뢰메에 도착하자 눈을 의심했다.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를 연상시키는 버섯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 버섯 바위 속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까지 있다니…! 스머프를 보며 만화가들은 참 상상력도 풍부다고 생각했는데…. 영어안내책자에는 이런 암굴집을 ‘요정들의 굴뚝’이란 뜻의 페어리 침니(Fairy Chimney)라고 써놓았다. 알고 보니 스머프의 작가도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단다. 어디 스머프뿐인가? SF영화 ‘스타워즈’의 우주 계곡도 카파도키아 침식 계곡이 모델이 됐단다. 카파도키아는 그렇게 독특하고 희한하게 생겼다.
 
괴뢰메 교회 내부에 그려진 성화

기기묘묘한 바위들 사이로 열기구 투어
카파도키아는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한 세계 자연유산일 뿐 아니라 문화인류사에서도 중요한 유산이다. 땅 밑에는 지하 도시와 교회까지 있다. 가이드는 이런 마을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했다. 이런 독특한 지형은 위르굽, 괴레메, 아바노스 등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 있다.

먼저 자연사 공부부터 해보자. 지형을 제대로 보려면 열기구 투어를 해야 한다. 열기구 투어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1인당 20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비싼 편이다. 혹시 그 많은 돈을 들여 타야 하냐고? 해외의 어느 유명 가이드북에는 빼놓을 수 없는 투어라고 적혀 있다. 막상 타보니 안 탔으면 후회할 뻔했다.

열기구 투어는 이튿날 새벽 시작됐다. 동 틀 녘 간단한 차 한 잔과 쿠키를 들고 열기구에 탑승한다. 열기구 비행사들은 대부분 유럽인. 이들은 괴레메 협곡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10여 대의 열기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모습도 장관이다. 그랜드캐년처럼 불쑥 들어간 협곡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돋보기 들이대듯 둘러본다. 바람과 눈비가 만든 자연의 모습은 놀랍다는 표현을 넘어 그저 기이할 뿐이다. 카파도키아의 우치히사르는 괴레메와는 또 다르다. 말미잘의 촉수 같기도 하고, 꽃꽂이 바늘받침 같은 지형이다. 뾰족한 바위 옆구리엔 창문이 붙어 있고, 터키 국기가 내걸렸다. 마을은 SF영화에 나오는 외계 도시처럼 생겼다.
 
열강들 침략 피해 바위 속에 만든 집
 
사진기를 꺼내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여행길 내내 심술을 부렸던 터키 가이드 세다트가 바윗집 몇 개 보고 또 한국 기자가 흥분을 한다고 빈정거렸다. 세다트는 가이드 학교에서 가이드를 가르치는 교사인데, 터키 관광청 주선으로 기자에게 길 안내를 하게 됐다. 역사적인 내용을 줄줄 외워대며 받아 적으라고 윽박지르는 이런 ‘자부심 넘치는’ 가이드를 만나면 피곤하다.

세다트가 도전적으로 물었다. “이런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나?” “내가 어떻게 알아. 지리학자도 아닌데.” “수백만 년 전 화산이 폭발했고,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돌처럼 굳었지. 화산재가 쌓이지 않은 부분은 푸석푸석해서 비바람에 의해 쉽게 깎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단 말이야. 바위에 구멍을 뚫고 만든 암굴집은 195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살았어. 지금은 대부분 비어 있지만.”

이 중 일부(우치히사르)는 관광객을 위해 당국의 허가를 받아 호텔이나 커피숍 등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그럼 이런 곳에 왜 사람이 살게 됐을까? 이제부터는 문화인류사 공부가 필요하다. 카파도키아에는 BC 5000년 전엔 이미 여러 개의 소왕국이 있었다. 이어 BC 2000년 전에는 세계 최초로 철기를 사용했다는 히타이트도 제국을 세웠다. 이어 프리지아와 리키아, 페르시아 제국,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을 거쳐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카파도키아를 점령했다. 어디 하나 빼놓을 수 없었던 강국들이다. 왜 이런 강국들이 거친 카파도키아를 노렸을까? 카파도키아는 유럽으로 가는 길목이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이전부터 중요한 교역로였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무역이 발달했다. 제국이 일어설 때마다 카파도키아는 전쟁터로 변했다.
 
카파토키아의 우치히사르
주민들은 칼과 창을 피해 바위에 굴을 뚫었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아예 땅을 파서 지하에 도시를 만들었다. 지하 도시는 데린쿠유를 비롯해 와즈코낙, 아지굘, 타틀라른, 마즈 등에서 발견됐다. 지하 도시는 지금 발견된 것 외에도 더 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피난처 된 지하 도시
 
그럼 지하 도시에 들어가보자. 데린쿠유의 지하 도시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를 지나면 꽤 널찍한 방이 나타나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게 돼 있다. 길이 복잡해서 관광객들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관광객을 위해 붉은색 화살표는 지하로, 푸른색 화살표는 지상으로 간다는 표시를 해놓았다. 지하 도시의 깊이는 80m로 약 20층 규모다. 가이드는 일행을 떠나 잘못 돌아다니다간 지하 도시에서 평생 못 나올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로마인들이 기독교도를 잡으러 굴속에 들어왔다가 길을 못 찾아 죽기도 했다.

이 중 지하 50m 정도만 개방된다. 지하 도시는 꽤 과학적이다. 환풍 통로, 밥 지을 때 나온 연기를 가둬두는 방도 있을 정도다. 물론 지하 교회도 있다. 데린쿠유의 지하 도시는 약 3만 명의 사람이 6개월 동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터키관광청은 기독교 박해 기간 동안 데린쿠유를 비롯한 지하 도시에 약 3백만 명이 몸을 숨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지하 메트로폴리스다. 아마 핵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지하 도시로 피할 수 있는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화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하도시는 언제 처음 생겼을까? 히타이트 제국이 들어서기 전인 BC 2500년 전에 생겼다는 학설도 있다. 문서나 기념물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는 파악되지 않는다.
 
상상 이상의 도시, 카파도키아
 
기독교도 역시 로마의 종교 박해를 받자 지하 도시로 피난을 왔다. 괴뢰메의 암굴 박물관에서 이런 흔적을 볼 수 있다. 참, 교회 얘긴 안 했던가? 그럼 교회도 들러보고 가자. 괴뢰메엔 고대 교회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 전역에 교회만 2천여 개. 이 중 괴레메에만 2백 개가 있으며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는 샌달교회, 다크교회, 바바라교회 등 10여 개 교회가 남아 있다.

교회 내부의 벽과 천장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종교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도들이 특별히 예술성이 높아서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다. 글을 못 읽는 수도사들이 예수의 일생이나 성경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9∼11세기에는 석회를 바르고 그림을 그렸던 프레스코화도 나타난다. 안타까운 것은 성화 속의 주인공인 성자의 눈동자가 훼손됐다는 것. 가이드는 “초창기엔 눈동자를 긁어먹으면 거룩해진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으며 나중엔 이 땅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이 마음의 눈을 상징하는 눈동자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이런 역사성 때문에 카파도키아는 기독교 성지로 여겨져왔다.

마지막으로 공부 조금만 더 하자.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차이는 뭘까? 불문학자 이재룡은 기독교 문명을 이미지의 문명으로, 이슬람 문명을 기호의 문명으로 봤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를 예로 들어보자. 아야 소피아는 537년 유스티니아누스(원래 360년에 지어졌지만 화재로 타버렸다)가 완공한 성당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성당에 아름다운 성화를 남겼다. 1453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꾼 뒤 이 아름다운 성당은 이슬람 사원이 됐다. 성화에 덧칠을 하고, 글씨와 희한한 문양만 남아 있다. 아라비아 문양을 기억하는가? 그게 바로 이슬람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양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성화와 조각 등 이미지로 표현했다면 이슬람에선 알라의 그림 대신 추상적인 문양으로 표현했다.

그럼 생각해보자. 카파도키아는 이미지의 도시인가? 기호의 도시인가? 너무 특이하게 생겨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아마 포스트모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공부 끝.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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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속 외계도시 ‘터키 카파도키아’

 
만화 영화 '개구장이 스머프'를 보면서 만화가들은 참 상상력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버섯처럼 생긴 집을 떠올렸을까? 그런데 터키를 여행하다 딱 그런 집을 만났다. 바로 카파도키아 괴레메의 암굴집. '요정들의 굴뚝'이란 뜻의 페어리 침니(Fairy Chimney)라는 버섯바위인데 스머프의 집과 똑같다. 알고보니 스머프의 작가도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고, SF영화 '스타워즈'의 우주계곡도 카파도키아침식계곡이 모델이 됐단다. 카파도키아는 희한하게 생겼다.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한 세계 자연유산일 뿐 아니라 문화사와 종교사적으로도 의미 깊다. 땅밑에는 지하도시와 교회까지 있다.
 

 

 
새벽 5시부터 파묵칼레에서 비좁은 미니버스를 타고 하루종일 달려 어스름 무렵에 도착한 카파도키아의 우치히사르. 물먹은 솜처럼 축 처졌던 몸이 오뚜기처럼 튕겨올랐다. 말미잘의 촉수 같기도 하고, 꽃꽂이 바늘받침 같기도 한 지형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뾰족한 바위 옆구리엔 창문이 붙어있고, 터키 국기가 내걸렸다. 마을은 SF영화에 나오는 외계도시처럼 생겼다.

사진 찍는데만 정신을 쏟는다고 여행길 내내 불만을 토로하던 자부심 많은 터키 가이드 세다트는 바위집 몇 개 보고 또 한국 기자가 흥분을 한다는 표정이다. 그럼 이런 마을이 한 두개가 아니란 뜻인가? 이런 독특한 지형은 위르굽, 괴레메, 아바노스 등 수십㎞에 걸쳐 펼쳐져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비로소 지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튿날 열기구에서 내려다 본 괴레메 계곡. 그랜드 캐년처럼 불쑥 들어간 협곡에서부터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솟은 지형까지 풍화와 침식이 만들어낸 자연의 모습은 놀랍다는 표현을 넘어 그저 기이할 뿐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지형이 생겼을까? 수백만년 전 화산이 폭발했고, 두꺼운 화산재가 쌓여 돌처럼 굳었다. 화산재가 쌓이지 않은 부분은 푸석푸석해서 비바람에 의해 쉽게 깎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만든 암굴집은 195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비어있다. 이중 일부는 관광객을 위해 당국의 허가를 받아 호텔이나 커피숍 등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그럼 사람이 이런 곳에 살게 된 이유는? 답을 알려면 카파도키아의 역사를 훑어야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BC 5000년 전엔 이미 여러 개의 소왕국이 있었다. 이어 BC 2000년 전에는 세계 최초로 철기를 썼다는 히타이트도 제국을 세웠다. 이어 프리지아와 리키아,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을 거쳐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카파도키아를 점령했다.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말들의 땅. 페르시아에 조공으로 바쳤던 말의 고장이다. 동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카파도키아는 늘 전쟁에 휘말렸다.


주민들은 전쟁때 몸을 피하기 위해 바위에 굴을 뚫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아예 땅을 파서 지하에 도시를 만들었다. 지하 도시는 데린쿠유를 비롯, 와즈코낙, 아지굘, 타틀라른, 마즈 등에서 발견됐다. 학자들은 더 많은 지하도시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를 지나면 꽤 널찍한 방이 나타나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게 돼있다. 길이 복잡해서 관광객들은 길을 잃기 십상. 관광객을 위해 붉은색 화살표는 지하로, 푸른색 화살표는 지상으로 간다는 표시를 해놨다. 지하도시의 깊이는 80m로 약 20층 규모. 이중 지하 50m 정도만 개방된다. 환풍 통로, 밥지을 때 나온 연기를 가둬두는 방, 지하교회…. 약 3만명의 사람이 6개월 동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지하도시가 언제 처음 생겼는 지 확실하지 않다. BC 2500년, 히타이트 시대 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문서나 기념물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는 파악되지 않는다. 나중엔 기독교도들이 로마의 종교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를 찾았다고 한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카파도키아는 기독교 성지로 여겨져왔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지상의 바위에 굴을 뚫고 교회를 세웠다. 카파도키아 전역에 교회만 2,000여개. 이중 괴레메에만 200개가 있으며 괴레메 야외박물관에는 샌달교회, 다크교회, 바바라교회 등 10여개의 교회가 남아있다.

교회 내부의 벽과 천장엔 성화가 그려져있다. 초창기 성화는 글을 못 읽는 수도사들이 예수의 일생이나 성경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9~11세기에는 예술성 높은 프레스코화도 나타난다. 안타까운 것은 성화 속의 주인공인 성자의 눈동자가 훼손됐다는 점. 가이드는 "초창기엔 눈동자를 긁어먹으면 거룩해진다는 잘못된 믿음때문이었으며 나중엔 이 땅을 점령한 이슬람교도들이 마음의 눈을 상징하는 눈동자를 의도적으로 훼손했다"고 한다.

어쨌든 카파도키아에서 만난 것들은 신비스럽다. 빗방울이 새긴 계곡이나, 80m까지 뚫어놓은 지하도시, 기독교도들이 세운 암굴교회…. 인간이 상상해내기 힘든 것들이 현실로 존재한다.

〈터키|글·사진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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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 카파도키아 판타지아 Cappadocia Fantasia



카파도키아를 지도에서 찾아본다. 터키의 명물인 카파도키아를 찾아 헤매는 시선은 지도 위에서 길을 잃는다. 그 이유는 카파도키아는 ‘지명’이 아닌 지역을 칭한다. 그래서 지명만을 수록한 어떤 지도에서는 그 범위가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 경계가 뚜렷한 것도 아니다. 너른 초원이 펼쳐진 평평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뙤약볕에 빛이 바랜 풀이 듬성듬성 난 야트막한 언덕길이다. 그 능선을 따라가면 어느 순간부터는 희한한 모양의 암석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그렇게 점점 사방이 기암괴석으로 둘러쳐진 카파도키아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이런 곳이 내가 수십년을 살았던 지구라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사방 팔방 어디를 둘러봐도 분명했다. 오랜 시간동안 이곳, 카파도키아에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다.

-요정이나 스머프가 아니다. 인간이 살았던 게다

카파도키아에는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있다. 약 1천만 년 전, 인근 3개의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키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펑, 펑’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화산재를 토해 내던 분화구는 그 주변을 두터운 화산재로 뒤덮었다. 화산재와 용암이 교차하며 여러 차례 쌓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지층은 또 지각변동에 의해 깨지고 눠졌다.

기후도 한몫했다. 비가 내려 암석의 무른 부분을 녹이고 바람 역시 암석의 구석구석을 노련하게 깎아냈다. 그래서 화산과 비와 바람이 카파도키아의 조물주인 셈이다. 민둥한 지역에 기기묘묘한 암석들의 퍼레이드를 만들어낸.

하지만 카파도키아의 환상적인 경관은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그 상상을 배가시킨다. 거친 겉모습과는 달리 기암괴석의 속내는 여리디 여리다. 화산암의 특성상 무른 재질이기 때문에 굴을 파고, 모양을 만들어 내기가 좋아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 카파도키아 지역에 ‘지하도시’를 만들고, 거대한 기암괴석 안에 둥지를 틀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버섯 모양의 거대한 암석’에 사람들은 창문을 만들고, 수도와 환풍 시설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마치 ‘개미집’처럼 총 8~20층 규모로 두어평 남짓한 공간의 방과 학교 등 지하도시를 만들어 냈다. ‘요정’이나, ‘스머프’같은 상상의 존재가 아닌 인간의 믿어지지 않는 ‘생존력’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 절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열기구 타고 카파도키아 상공을 나는 기분?

 


늘 그렇듯 입이 방정이었다. 새벽 5시에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이며, 9월 중순에도 쌀쌀한 카파도키아의 날씨며, 한 번 체험하는 데만도 거의 20만원에 육박하는 값비싼 경비까지. 하루를 투자해서 카파도키아를 몽땅 다 봤다는 자만심과 이 정도 감격으로 충분하다는 하향 평준화된 만족도. ‘안 해도 되는데’, ‘안하면 좋겠는데’같은 불순한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 찼다.

이른 새벽부터 열기구 투어를 체험하기 위해 담요와 점퍼로 무장하고 투어가 시작되는 ‘허허벌판’에 몰려든 여행자들은 잠이 덜 깨 몽롱한 표정이거나, 설렘에 달떠 그 거뭇한 밤에 플래시를 펑펑 터뜨리며 기념촬영을 하는 두 무리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한쪽에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열기구의 벌룬(Balloon)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행자들이 홍차와 커피를 마시며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내, 공기가 가득 들어간 벌룬의 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새벽 6시30분경 드디어 상륙 준비를 마친 열기구 한 대에 약 20명가량의 여행자와 조종사가 탑승했다.

열기구가 뜨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열기구 속에 모인 공기를 가열기로 데워 팽창시키면 열기구는 마법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그 공기가 점점 식을수록 하강한다. ‘부웅~’ 떠오른 열기구는 우리의 시야보다 훨씬 높게 위치했었던, 마치 장막처럼 풍광을 가리고 있던 기암괴석의 계곡 위로 ‘둥실’ 떠오른다. 저 멀리 카파도키아를 훤히 밝히는 태양이 솟아오르고 우리의 열기구 밑에 장대한 카파도키아의 광경이 한눈에 넘치도록 들어온다.

기껏해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던 거대한 ‘버섯 마을’이 높은 창공을 날며 내려다보니 ‘버섯 밭’으로 느껴진다. 우리를 태운 열기구는 함께 떠오른 20여 대의 벌룬과 함께 군무(群舞)를 추듯 위로, 아래로, 수평으로 능란하게 난다. 하늘 높이, 땅에 닿을 듯, 기암괴석의 버섯 지붕 위를 사뿐히 즈려밟듯이 나는 열기구 위에서는 카파도키아의 전 지역을 ‘넓게’, 그리고 또 ‘자세하게’ 다양한 각도로 조망할 수 있다.

약 1시간에 걸친 열기구 투어가 끝나면 조종사와 비행을 함께했던 일행들이 모여 ‘축배’를 든다. 게다가 몸만 열기구에 얹었을 뿐인데도 ‘열기구 투어 수료증’까지도 선사받는다. 하나같이 만족감에 가득한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 투어’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터키를 여행함에 있어 카파도키아를 필수코스로, ‘열기구 투어’를 카파도키아 여행에서의 백미(白眉)로 기꺼이 꼽게 될 것이다.

:: 운행시간 06:00~08:30 이용요금 160유로, 200달러 문의 www.hellotourism.com.tr



★ View POint- 괴뢰메 야외 박물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과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괴레메(Goreme) 지형의 수도원과 암굴 교회 등을 총칭하는 야외박물관. 1세기경,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면서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암굴 교회를 지어 신앙생활을 했다. 이후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뒤 교회가 타락하자 신자들은 괴레메에 수도원을 짓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과거 총 365개의 교회는 현재는 약 30개의 암굴 교회만이 개방돼 있다. 이곳의 교회는 긴 세월 동안 차례차례 지어져, 이콘(성화그림)의 변천사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뱀이 있는(일란리) 교회’, ‘사과(엘마리) 교회’, ‘혁대(토칼리) 교회’ 등의 독특한 교회명의 어원은 8~9세기 성상 파괴 시대를 피하기 위해 사슴, 포도, 물고기 등 은유적인 이콘을 이용해 성서를 표현하려는 노력이었다.

:: 관람시간 4월~10월 08:30~17:30/ 11월~3월 08:00~ 16:30 입장료 10YTL, 암흑의 교회는 5YTL

★ View POint- 우추히사르·버섯바위

우추히사르(Uchisar)는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 지형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계곡이다. 과거 사람들이 거주하던 동굴은 아직까지 현지 사람들의 집으로, 식당으로, 기념품 가게로 활용되고 있다. 카파도키아의 상징 격인 ‘버섯 바위’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풍화와 침식 장용으로 갖가지 독특한 형상을 갖게 된 이곳의 바위들은 각각 낙타, 오리(혹자는 나폴레옹의 모자라고도 한다) 등 인간의 눈으로 해석된 이름으로 재탄생해 여행자들의 포토 포인트로 사랑받고 있다.

★ View POint- 데린구유 지하도시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데린구유(Derinkuyu)는 수천년의 역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 그렇기에 그 신비로움과 비밀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4,000년 전 히타이트 시대 때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이곳은 최대 3만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총 20층에 달하는 대규모의 지하도시로 현재는 8층까지 개방한다. 수용인원이 많아지면서 지하 동굴은 더욱 넓고 깊숙해졌고 그 지형도 점점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지하동굴 안에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이나,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 및 세례식을 행한 장소, 신학교, 지하매장지 등 완전한 도시의 기능을 갖추었다. 게다가 긴급 상황시 다른 지하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나 이어져 있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면서도 그 규모와 존재 자체가 믿기 어려울 정도.

:: 관람시간 11월~4월 08:30~17:30/ 5월~10월 08:00~18:00 입장료 10YTL

 

★인구 : 약7500만명 (평균 연령 35세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젊은 나라다.)
★수도 : 앙카라
★항공편 : 서울-이스탄불 직항편은 터키항공 (02-777-7055)이 월·목·토요일 1주일에 3차례 뜬다. 전세기를 띄우던 대한항공 (1588-2001)도 최근 정식 항공운항권을 얻어 5월부터 주3회 정기취항하고 있다. 이스탄불까지는 11~12시간 소요.
★시차 :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화폐 : 올해초 화폐개혁을 통해 터키 리라를 예테르(YTL)로 바꿨다. 1달러에 1.25 YTL 정도. 1유로는 1.45YTL. 우리돈으로 850~900원쯤 된다. 달러와 유로 모두 통한다.
★공중화장실 : 대부분 유료다. 0.50YTL 정도니 항상 잔돈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쇼핑과 흥정 : 물건값은 보통 50% 이상 깎을 것. 50~70% 정도에 사면 큰 손해는 보지 않는 셈.


터키 글·사진=신중숙 기자 mybest@traveltimes.co.kr
취재협조=터키관광청 한국홍보대행사 (주)나스기획 02-336-3030
터키문화관광부, 터키항공 www.thy.com/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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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Cappadocia). 딴세상이다.

떠돌이 행성 위를 거니는 듯, 꿈속이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한 들판 위에 섰다. 공상 속의 풍경이다. 버섯 모양의 바위가 불쑥 솟았고 아이스크림콘 같은 바위가 떼를 이뤘다. 그 기암마다 스위스 치즈 같은 구멍이 나있는데 이는 창문이고 대문이고 테라스다. 누가 만든 작품이고, 그곳에 살던 이는 또 누구인가.

 

 

문명의 교차로인 소아시아, 터키의 땅 한복판에 카파도키아가 자리하고 있다. 이 기괴한 풍경은 1,000만년 시간이 빚은 예술.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흐르고, 또 다른 화산의 새 용암이 덮고 또 덮어 땅으로 굳어진 것을 바람이 깎고 빗물이 훑어내며 만들어내 조각들이다. 그 공상의 바다 위로 풍선을 타고 날아올랐다.

신새벽 잠에서 덜 깬 몸을 추스려 호텔 문을 나섰다. 열기구 업체에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한참을 가니 너른 벌판이다. 여명이 카파도키아 기암 능선을 평면의 수묵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열기구 불꽃이 굉음을 쏟으며 타오르자 축 늘어졌던 거대한 풍선이 점차 부풀어 올랐다. 20분가량 지났을까. 풍선은 하늘로 곧추 섰고 태양도 그에 맞춰 땅 위로 몸을 드러냈다.

기구에 몸을 싣고 드디어 둥실. 기구는 땅을 떠났고 몸은 하늘로 날았다. 발아래 펼쳐지는 기암의 풍경. 같은 시간 앞서거니 뒷서거니 뜬 열기구들이 잿빛의 카파도키아 고원 위에 알록달록한 빛으로 생기를 넣고 있다.

기암의 바다를 굽어보며 벌어진 턱 사이로 '어허' 탄성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오는데 함께 탄 중년의 여인인 스위스 관광객들도 연신 "울랄라(Oh lala)"를 외쳐댄다.

머리 위 풍선에 열을 뿜는 발화장치 굉음이 장엄한 음악으로 귓전을 울린다. 마치 록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처럼. 올록볼록한 기암들 위로 일행을 태운 열기구의 그림자가 유유히 지나간다. 감탄에 빠진 채 한시간쯤 흘렀나, 이제부터 고민이다. 아니 저 풍경을 어떻게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ㆍ자연 복합유산인 카파도키아의 기암 풍경을 둘러보는 중심지는 괴레메다. 이곳을 중심으로 위르굽, 아바노스 등을 둘러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관광코스. 괴레메 야외 박물관은 기암의 모습도 볼만하지만 그 안에 꾸며진 암굴 교회로 유명한 곳. 기암속 교회만도 10여 개에 달한다.

그 모양 등에 따라 애플교회, 뱀교회, 다크교회 등으로 불린다. 겉모습과 달리 실내에 장식된 화려한 프레스코화들이 당시 교인들의 신심을 짐작케 한다. 괴레메의 우치사르언덕과 비둘기계곡은 기암을 펼쳐놓은 풍경이 장쾌하고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파샤바흐의 기암은 꼭 거대한 남근석을 닮아 민망할 지경이다.

카파도키아는 전략적 요충지로 고대부터 잦은 싸움이 일어났던 곳이다.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이 바로 이 기암들이었다. 바위는 사암보다 부드러워 속을 파내기가 수월하다. 깊은 우물(deep well)이란 뜻의 데린쿠유에 가면 벌판 아래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난다. 기암 속이 아닌 땅속에 꾸며놓은 피란처다. 지하8층 구조로 50m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피란민들과 종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초기 기독교인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카파도키아(터키)=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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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우주의 낯선 별이다 오버 ~ 터키 카파도키아

황혼 무렵에 카파도키아의 고원마을 우치사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붉은 빛에 물든 거대한 벌집 모양의 바위군들이 불쑥 눈 앞에 나타났다. 죽순 모양의 바위들이 예전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고난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고원의 협곡에 늘어서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또다른 모습을 띤 괴르메의 우람한 기암 능선이 저 멀리로 펼쳐졌다. 우주의 어느 낯선 별에 떨어졌을 때의 느낌이랄까. 낯선 이질감과 함께 자연의 경이감에 숨이 막혔다.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의 고원지대에 자리잡은 카파도키아는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최고의 조각가인 대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깨닿게 한다. 그런 까닭에 유네스코가 이곳을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한 것이리라. 조지 루카스는 카파도키아의 절경에 반해 젤베에서 < 스타워즈1 > 을 촬영했다.

현지 가이드 아사트는 "옛날 카파도키아 왕국이 있었던 이곳은 선사시대부터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퇴적된 응회암층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고 풍화하면서 버섯이나 죽순 모양 등의 기암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치사르와 괴레메, 위르굽, 데린쿠유, 이와노스, 카이마클르 등에는 수백만년에 걸쳐 다듬어져온 대자연의 조각품들이 여전히 미완성인 채 전시되어 있다.

이튿날 괴레메에서 열기구를 타고 우치사르와 괴레메, 위르굽, 젤베의 하늘 아래 동화의 마을을 찾아갔다. 카파도키아의 하늘 위에서는 오랜 세월 에르지예스(3914m)와 하산다, 귤류다 등 3개의 활화산과 비바람이 공들여 만든 자연의 불가사의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동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원뿔형, 송곳형, 원통형, 버섯꼴, 모자 쓴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계곡을 이루고 있었다.

위르굽과 아바노스 사이의 데브렌트 계곡은 '상상의 계곡'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자연의 조화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스위스에서 온 카트리나는 연방 "울랄라, 울랄라"하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특히 버섯 모양의 바위집들은 개구장이 스머프 마을을 닮았다.

사다트는 "카파도키아는 예로부터 실크로드 등 중요한 무역루트가 동서남북 사방에서 거쳐갔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말했다. 카파도키아에 살았던 히타이트인들이 교역품들과 자원들을 외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바위를 파서 거주지로 삼았다.

카파도키아는 또한 초기 기독교 성지로 많은 순례객들이 찾는다. 초기 기독교시대인 1세기께 로마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기독교인들이 바위를 파내어 예배당과 교회, 수도원으로 꾸몄다.

카파도키아의 괴레메에는 지상의 바위 속에 교회를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성인들의 모습과 생애를 프레스코 그림으로 꾸며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괴레메에는 약 200개의 바위동굴 교회가 있는데, 괴레메 야외박물관에는 어둠의교회와 토칼리교회, 사과교회, 뱀교회, 샌달교회 등 주요 교회 10곳이 보전되어 있다. 박해가 더 심해지자 이들은 지하 수십미터를 파내려가 현재 발굴된 36개의 암굴도시와 동굴교회들을 세워 신앙생활을 지켜왔다.

데린쿠유가 대표적인 것으로 개미집과 같은 미로로 뻗어 내려간 지하도시에 침실과 주방, 배수시설과 통풍시설, 식료품 창고, 예배당 등을 마련해 공동생활을 통해 열악한 환경을 이겨냈다고 한다. 1271년 카파도키아를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는 < 동방견문록 > 에서 독특한 자연풍광을 극찬하면서 많은 기독교도들이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카파도키아는 대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며 꾸며놓은 낙원이다.

카파도키아(터키)/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여행 정보

터키는 봄과 가을이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최근 터키가 성지순례 코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에도 터키 전문여행사들이 많이 늘어났다. 특히 카파도키아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이므로 여행 전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교통=인천 국제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이스탄불에 가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카이세리에 간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터키항공과 대한항공이 주 3회 운항한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이스밀 등에서 패키지 관광으로 카파도키아 관광도 가능하다. 개별여행일 경우 영어 회화가 가능한 가이드를 구하는 것이 좋다.

◆숙박=우치사르, 괴레메, 위르굽 등에 호텔과 일반 여관이 있으며, 색다른 경험을 해보려면 동굴 여관을 권한다.

◆음식=터키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양고기나 쇠고기 등을 구워 빵에 싸 먹는 케밥과 빵을 몇겹으로 겹쳐서 구운 피데 등이 있다. 물이나 음료수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사용료를 낸다.

◆특산물=아바노스의 전통도기와 마노, 요정의 굴뚝 모양 기념품 등이 있다. 기념품을 살 때는 반드시 값을 흥정해서 최대한 깎는다. 터키 최대의 시장인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는 각종 터키 특산물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곳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때도 절반쯤 깎아볼 것.

◆기타=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이 늦다. 1터키리라(예테르 YTL)는 약 900원.

기암괴석 땅밑 미로도시…누구 작품일까

 

앙카라를 떠나 향한 곳은 터키 여행의 백미라는 카파도키아다. 8월 하순이었으나, 아나톨리아 고원의 한낮 뙤약볕은 만만치 않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동남쪽으로 두 시간쯤 달렸다. 갑자기 길 오른편에 햇빛 반짝이는 새하얀 '벌판'이 펼쳐졌다. 이름난 소금호수(투즈게)다.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이 호수는 넓이가 1500㎢나 된다. 바다였다가 물이 빠지면서 생긴 호수다. 겨울엔 물이 2m쯤 차있다가, 여름이면 증발해 소금밭으로 남는다. 수면을 걸어보니 발 밑에서 흰 모래소금이 흐슬부슬 바싹거린다. 10cm쯤 파니 바닥은 약간 호졸근하다. 호숫가에 세운 소금 정제공장이 해마다 30만 톤씩 소금을 걸러낸다니 무진장한 자원이다.

소금호수 끝자락에 있는 셀주크 시대 고도 악사라이('흰 궁전'이란 뜻)를 지나 동북쪽의 네브세히르('새 도시'란 뜻)에 도착했다. 1954년 주도로 승격한 이곳은 카파도키아 여행의 거점으로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로 붐빈다.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아름다운 말이 있는 곳'이란 뜻의 '카트박투키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은 면적 250㎢를 아우른 하나의 지역 명칭으로서 악사라이와 네브세히르 두 개 도시와 여러 주변 마을이 딸려있다.

흔히 신비로운 기암괴석의 대명사로만 알려진 카파도키아는 그에 못지않게 기구한 인간 삶의 티가 새겨진 고장이기도 하다.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슬기가 조화의 극치를 이룬 지구상 몇 안 되는 명소다. 지상 지하 기암괴석 속에 삶의 터전인 도시와 마을, 교회가 복합구조를 이룬다. 이런 조화상을 떠난다면 바위와 돌이 아무리 기기괴괴한들 그곳을 찾는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버섯·도토리·갓모양 바위 속 거미줄 같은 요새 160여곳
집 외에 학교·교회당까지 6천~7천년 전부터 생겨난 흔적
초기 기독교 은신처·전란 피난처로


내부 곳곳 지름 170㎝ 돌문 설치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약 300만년 전 해발 4000m의 에르지예스 화산이 폭발해 인근 수백 ㎞에 마그마를 토해내면서 이뤄졌다. 마그마가 굳어진 용암은 경도가 낮아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닳아져 천태만상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옹긋쫑긋 튀어난 바위만 봐도 버섯, 도토리, 갓, 짐승 모양 등으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밋밋한 능선은 마냥 물결, 주름무늬로 수놓은 것 같다. 방향과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하며 색조 또한 이채롭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조물주의 조화(造化)이며 자연의 신비다.

이런 자연의 조화와 신비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도전일 수 밖에 없다. 카파도키아 특유의 문화는 이곳 사람들이 그 도전에 성과적으로 응전했기에 창출된 것이다. 그래서 일행의 답사는 자연의 신비보다 그들의 체취가 밴 곳곳을 둘러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찾은 곳은 데린쿠유('깊은 웅덩이'이란 뜻)란 지하도시다. 네브세히르에서 29㎞ 떨어진 이곳은 해발 135의 질펀한 고지에 있다. 어린 목동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다가 우연히 입구를 발견한 이 지하도시는 1965년 공개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높이 150cm, 너비 60cm에 불과한 통로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뚫려있다. 몸집이 웬만히 큰 사람은 머리를 숙인 채 모로 걸음을 더듬어야 한다.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길목도 수두룩하다. 도시 전체가 미로라서 길을 잃기 일쑤다. 대부분 용암을 파서 만든 인조굴로 인구 2만을 수용했다고 한다. 지금껏 지하 8층(5)까지 발견했으나 모두 17~18층은 족히 되리라고 보고있다. 일행은 4층까지 가까스로 내려갔다. 입구는 몇군데가 더 있으나 막혀버렸다.

층마다 거주공간은 물론, 부엌과 방앗간, 창고가 따로 있다. 몇 곳에는 회랑과 학교, 교회당과 수도관 딸린 세례소, 포도주 저장고 같은 부대시설 흔적도 보였다. 깊이 70~8에 달하는 수직 통풍구 52개가 있는데, 환기뿐 아니라 내부 온도를 조절하는 구실도 했다. 안내원이 천장 구멍에 라이터를 켜니 불꽃이 한쪽으로 빨려들어갔다. 통풍구가 아직 작동한다는 증거다. 내부 곳곳엔 두께 55~65cm, 지름 170~175cm의 둥근 돌문을 설치해 외부 침입을 막았다. 이 지하도시는 북쪽으로 9km 떨어진 한 지하도시와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데린쿠유 부근의 30곳을 포함해 찾은 지하도시는 150개나 되는데, 가장 큰 외즈코나크 지하도시는 6만명까지 수용하는 대규모였다고 한다. 세계 8대(혹은 9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지하도시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유물로 미뤄 6~7천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바위를 뚫고 살기 시작한 이래 고대 히타이트인들이 처음 정주한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박해를 피한 은신처로 쓰이다 기독교가 합법화되자 수도나 포교 장소로 바뀐다. 이슬람·몽골·티무르군이 침입했을 때는 피난처나 방어보루로 쓰였다.

바위교회에 기독교 벽화 즐비

데린쿠유 지하도시 구경을 마치고 비둘기 계곡에 들렀다. 옛날 기독교인들이 배설물을 포도밭 거름과 교회 그림의 물감으로 쓰기 위해 비둘기를 많이 키운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이어 예치히사르산 기슭을 지나 리틀 케니에 이르렀다. 발밑에는 기암괴석과 숲이 어울린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수만년 전 바다였다는 괴레메 마을도 멀리서 시야에 들어왔다. 창공에는 관람객을 태운 오색찬연한 열기구가 두둥실 떠올라 날아간다. 다음 발길을 옮긴 젤베 계곡에서는 큰 뱀과 아기 뱀이 기어가는 형상을 한 괴석을 보고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어느덧 정오를 훨씬 넘겼다. 오후엔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슬기를 조화시킨 또 하나의 현장인 바위교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표적인 곳이 '당신은 볼 수 없다'는 뜻의 지명인 괴레메 마을의 노천박물관이다. 지붕 없는 공간에서 2~10세기 전개된 기독교 활동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공개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13개의 각기 다른 바위교회를 망라한 이 박물관은 한마디로 교회들의 집합체이자 설교장이다. 벽화 중에 예수가 손에 사과 모양의 둥근 물체(지구의 형상화란 주장이 있음)를 쥐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사과(엘마리)교회는 네 개 원주가 받치는 돔 형식의 바위교회다. 벽화 가운데는 침례의 상징과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유다의 배반 등이 그려져 있다. 뱀(일란리)교회에는 몇 가지 흥미있는 프레스코화가 눈에 띈다. 왼쪽 벽면에 성 게오르기와 성 테오도르가 뱀과 싸우는 장면이 있고, 오른쪽에는 성 바실과 성 토마스 곁에 늘 옷을 벗은 채 사막에서 선교하는 반남반녀의 오노프리스가 서있다. 그 모습이 퍽 해학적이다. 상하층 네 개 교회와 예배당으로 구성된 토칼리 교회는 예수의 일생을 세세히 그린 원형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다. 그 구조와 화법이 담대하면서도 섬세하다.

괴레메 마을 주변 400개를 포함해 카파도키아엔 모두 1500개에 달하는 바위교회가 있다고 한다. 교회 구조물과 안에 그려진 갖가지 프레스코화들은 로마~비잔틴 시대 교인, 수도승들의 정신세계와 생활상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 성립과 발전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역사의 한 토막을 장식했던 기독 세계를 펼치려고 성직자들은 벽화에 성심(聖心)을 부었다. 그러나 그때도 마음만 능사는 아니었나 보다. 돈이 생기면 전문 화가들을 초청하고, 없으면 서툰 솜씨로 직접 그렸다. 그래서 어떤 벽화는 미숙하고 소묘에 그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얼거리만 있는 소묘 같은 그림은 학생 교육용이라고 해설원은 설명한다.

카파도키아의 지상 지하에는 숱한 신비와 불가사의가 비장되어 있다. 인간의 힘으로 감춤을 다 들춰내기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드러난 것에만 만족하고 맴돈다면, 그 감춤은 영원한 감춤으로 남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좀더 성숙된 조화만이 역사의 현장 카파도키아의 감춤을 들춰내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것은 문명사의 통칙이다.

글 정수일 문명사연구가,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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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시달린 카파도키아 암굴

주거·상업 근거지→기독교 성소→무슬림 안식처로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에 벌집처럼 동굴을 뚫어 삶터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흔히 초기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은신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이 불가사의한 동굴건축이 태동한 실제 배경은 전란의 영향 탓으로 보는 편이 온당하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한가운데인 카파도키아는 서방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근교 아으즈 카라한의 상업도시 유적과 이 부근에 집중된 케르만 사라이 등의 대상 숙박소터들은 이 지역의 교통로적 위상을 보여준다. 이 핵심 교통로를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이미 고대 앗시리아, 히타이트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기원전까지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시아, 로마제국 등으로 주인이 숱하게 바뀌었다. 중세 이후에는 로마의 후신 비잔틴 제국과 아랍, 투르크인들 사이에 전투가 치열했다. 따라서 미로처럼 굴을 깊이 뚫고 출입을 제한한 동굴 주거는 기원전부터 주민 안전을 위한 필연적 방책이 되었던 것이다.

동굴 공간의 성격은 지역사의 부침을 따라 바뀌었다. 기원전에는 주거·상업 근거지였다가 비잔틴 제국 강역이 된 4~7세기 기독교 수도사들과 교인들이 모여들면서 암굴들은 손꼽는 신앙과 포교의 거점이 된다. 동방 기독교의 신비주의 전통에 충실했던 이들은 깊은 신심으로 각종 성화와 제단 등을 만들었으나, 8~9세기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성상파괴령으로 상당수가 파괴되는 수난을 당한다.

로마 지하묘지(카타콤)처럼 기독교인들의 집단 주거지화가 진척된 것은 이슬람 세력들의 압박이 본격화한 8세기 이후부터다. 탄압을 피해 지하 묘지에 숨어든 로마시대 특유의 주거 방식이 수백년 뒤 동방에서 7만 이상이 살았다는 거대 지하 도시로 재연된 것이다. 11세기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비잔틴 제국과 싸워 아나톨리아의 동부와 중부를 빼앗으면서 카파도키아의 동굴도시들는 더욱 고립된다. 셀주크 왕조는 아예 카파도키아 서쪽 코니아에 도읍을 정하고 그 부근을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 메블라나의 근거지로 삼아 기독교인들의 포교를 봉쇄했다. 뒤이은 13, 14세기 몽골군의 중동 및 소아시아 진공, 티무르의 정복 등 잇따른 전란 속에서 기독교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무슬림으로 개종해야 했다. 하지만 동굴도시들은 이슬람 모스크가 새로 들어선 것외에는 여전히 건재한 채로 무슬림들에게 애용되어 50년대까지 주거지로 쓰였다. 지금도 현지에서 응회암 동굴을 개조한 펜션들이 성업중인 것을 보면, 카파도키아는 주거를 둘러싼 인간의 끈질긴 역사적 적응력을 보여주는 명소로서도 의미를 지닌 셈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한겨레 > 실크로드 답사단

취재 임종업 blitz@hani.co.kr,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경호 jijae@hani.co.kr,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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