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다, '천재 첼리스트' 장한나! | |
[정윤수 칼럼] 이벤트성 지휘자 데뷔보다 더 필요한 것 |
음악 다큐를 둘러싼 장한나-MBC PD 갈등 정경화, 주빈 메타, 장영주 등의 음악 다큐를 제작하였고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호미출판사)도 출간한 이채훈 PD는, 장씨 측이 '최고급 호텔과 차량 요구', '오케스트라 실력 없어서 지휘하지 않겠다', '편집제작을 총괄하겠다'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장한나씨 측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채훈 PD, 시종일관 불성실한 태도', '경험 없는 외주 제작사 때문에 직접 편집에 관여', '약속과 달리 MBC 측에서 손을 놓는 바람에 일어난 일' 등이라고 반박하였다. 양측의 공방은 이 정도로 줄이겠다. 어차피 이 같은 공방은 끝도 없는 진실 게임이 되기 쉽고 결국 당사자들 외에는 그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같은 비방에 대한 관심이 본질의 문제보다 자극적인 언쟁의 승부 쪽으로 기울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실력파로 인정받아온 이채훈 PD나 앞으로도 오랫동안 음악의 길을 걸어갈 장한나씨가 결정적인 상처를 주고받지 않도록 노력해주기를 당부할 뿐이다. 그럼에도 몇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는데, 나는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첼리스트 장한나씨의 활동을 유의미하게 존중하면서 그가 젊은 시절에 이룩하게 될 '결정판 장한나'를 꽤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이번 일은 진실로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장한나씨는, 음악을 들려주기보다는 지휘하는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듯한 장면들은, '젊은 거장'이라는 찬사 속에서 살아온 25살 음악가의 안타까운 몸짓처럼 보였다.
물론 장한나씨는 소속사 EMI를 통하여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였고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내 귀에는 팽팽한 장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2005년 작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이 간절한데, 그래서 그 앨범을 요즘도 차 안에서 듣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다만 그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은 '고통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사른 비극적인 천재' 정도의 상투적인 이미지만 남아 있다. 물론 실제로 바흐는 라이프치히를 수십 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고 베토벤은 일찍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슈베르트는 병적인 자기 연민에 빠졌고 말러는 프로이트를 찾아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다들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고, 예술혼도 불살랐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만을 남루하게 반복하고 그 깔때기 속으로 해당 예술가의 복합적인 세계를 밀어 넣는 것은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무지의 상태로 이르게 될 뿐이다. 기형도의 시집을 80년대라는 상황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듯이, 바흐의 작품은 라이프치히라는 '조화로운 공간'의 소산이었고 베토벤은 그 자신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혁명의 시대를 살았다. 슈베르트의 우울은 바로 그 혁명의 열기가 식어 버리고 보수적인 메테르니히 통치에 의해 '강요된 평화'의 반증이며 말러의 신경쇠약은 벨 에포크 시대의 집단 초상화의 일부로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기교적으로 뛰어난 연주가들이 많은 편이지만, 바로 이와 같은 깊이 있는 성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나는 장한나씨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지휘자로서의 데뷔, 그것도 방송사와 함께 이벤트적인 요소를 넣어가면서, 더욱이 '편집 제작에 직접 관여'하면서까지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안타깝게 보일 뿐이었던 것이다. 장한나씨는 지난 5월, 제1회 성남 국제청소년 관현악페스티벌의 폐막 공연을 통하여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그 무렵의 인터뷰에서 장한나씨는 "작곡가들의 대표작이 주로 관현악곡이고 첼로만으로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해왔다고 했다. 그 점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장한나씨는 현재 25세이다. '신동'이나 '천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요즘이고 더욱이 '뜨거운 얼음'만큼이나 형용 모순이 될 '젊은 거장'이라는 뜻 모를 말들이 횡행하는 때에 25세라면 '결정판 장한나'를 위하여 더욱 정진해야 할 때이다. 장한나씨의 스승은 그야말로 '거장'이란 표현이 부족할 첼리스트 블라디미로 로스트로포비치와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 두 사람은 장한나씨를 각별히 아껴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음반 작업도 함께 했다. 2001년 4월, 지휘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시노폴리는 의학박사이자 철학, 인류학, 문학, 언어 등에 조예가 깊었으며 무엇보다 '음악가와 그의 시대'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았던 지휘자였다. 장한나씨가 철학과에 진학한 것은 스승 시노폴리의 이 같은 면모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결정판' 향해 정진해야 할 '젊은 거장'
칼 뵘이나 시노폴리 같은 후기 낭만파적 해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면서 원전 연주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영국의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는 지난 96년도의 내한 공연 때, '베토벤의 5번 '운명 교향곡'의 그 유명한 동기는 그가 혁명의 열기를 몸소 확인하기 위하여 프랑스 농촌 지역을 여행하면서 얻은 멜로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유명한 '빰빠빠 빠~'하는 '운명 교향곡'은 청각 장애에 시달리는 작곡가의 개인적인 고통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지휘자 가디너가 수많은 문헌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베토벤이 현실의 억압 속에서도 낙천적인 희망을 잃지 않는 프랑스 농민들의 서정적인 민요에서 얻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장한나씨는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도 작고한 스승 시노폴리의 바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역시 올해 4월에 타계한 로스트로포비치도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모름지기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어떤 '결정판'을 빚어낼 때가 있고 25세의 장한나씨는 그와 같은 나이와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첼리스트들이 도전하는 바흐의 전체 6곡으로 구성된 <무반주 첼로 조곡>만 해도 로스트로포비치는 50년대에 2번과 5곡을 녹음했지만,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곡 연주를 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같은 어려운 곡을 무려 10개의 앨범으로까지 낸 적 있는 당대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누구보다 일찍 그 현장으로 달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했던 이 거장도 전곡 녹음을 환갑이 넘어서야 시도했고, 그나마도 본인이나 비평가들의 의견이 분분하게 남아 있다. 적어도 그 곡에 관한 결정판 목록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가 끼어 있지 않은 것이다. 장한나씨는 '작곡가들의 대표작이 대부분 관현악곡'이라고 말했지만, 독주 기악과 관현악을 물리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며, 더욱이 첼로는 물리적인 측면에서나 의미의 측면에서나 대단히 '무거운' 세계이다. 25세의 천재가 좀 더 오랫동안 샅바 싸움을 해볼 만하나 무궁무진한 세계이다.
그러한 무대는 장한나씨가 좀 더 원숙한 나이에 이르고, 삶의 희열과 고통이 얼마나 극단적이며 동시에 우리 인생의 쌍생아인지, 그리하여 그러한 영혼의 담금질에 의하여 '결정판'에 도달하는 것, 바로 그 결정판으로 이미 '다음 세대에 전달한 것'이 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아들딸이 되는 세대와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를 열어도 얼마든지 늦지 않는 것이다. 한 걸음 더 양보해서 지휘자가 되는 과정이 그렇게 떠들썩한 흥행 요소를 수반해야 하는가 의문이다. 남자 골퍼들과 '장타 대결'을 벌이다가 침체에 빠진 여성 골퍼 위성미 선수처럼, 혹시나 장한나씨도 늘 자신을 '젊은 거장'이라고 불러주는 후원사나 그럴 듯한 명분을 제시하는 기획사, 혹은 진짜로 가까운 사람들과도 조금은 냉철한 대화를 할 필요도 있다. 1958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수많은 관객들이 기립 박수로 '젊은 거장'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때 심사위원 중에 한 사람이 클라이번에게 '저 박수 소리를 장송곡으로 여기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반 클라이번은, 음악 외적인 이유, 즉 58년 냉전 시대에 클래식 음악의 성전인 소련의 한복판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이 영웅은 카퍼레이드, 환영 만찬, 연설 등으로 소중한 젊은 시절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의 인생은 재기를 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장한나씨를 비롯한 우리 음악계의 '젊은 거장'들에게 차마 그런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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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장한나, 연주 도중 일어선 까닭은? | |||||||||
'스승의 스승' 곡으로 '러시아 페스티벌' 찾은 젊은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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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008.4.5) 서울 포스코센터 아트리움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있었다. 포스코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매월 음악회를 열고있는 포스코는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적인 명성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도 활동을 시작한 장한나와 가야금 연주자이자 국악 작곡가인 황병기의 협연이라는 그 시도만으로도 흥미로운 음악회를 준비했다.
▲ 공연의 시작 오케스트라와 장한나가 연주를 준비중이다
시작은 장한나의 첼로 연주로 비발디의 '첼로와 현,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Eb 장조 RV 408'를 디토 오케스트라(DITTO Orchestra)와 박지영의 하프시코드(Harpsichord)의 협주로 아름답게 시작하였다.
세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첼로와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현악기가 유려하게 시작하면서 점점 첼로의 솔로를 돋보이게하여 장한나의 아름답고 깊은 음색을 잘 나타날 수 있게 해주면서 마지막으로 첼로와 현, 하프시코드가 대화를 주고 받듯 번갈아 연주되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듯 발랄하게 마무리되었다.
협연중인 장한나 연주에 심취한 그녀의 표정이 아름답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장한나의 짧은 연주가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두 명인의 협연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온몸과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 장한나와 황병기의 협연 새봄을 협연중인 두 음악가
1991년 MBC의 위촉으로 황병기가 작곡한 가야금 협주곡 '새봄'은 '고요한 아침', '평화롭게', '신비하게', .익살스럽게', '신명나게'의 5악장으로 이루어진 곡으로서 아직도 눈이 오는 이른 봄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 황병기, 장한나의 협연 협연 중간중간 호흡을 맞추는 두 명인
장한나의 지휘로 황병기의 가야금, 김정수의 장구 그리고 디토 오케스트라가 이루어낸 화음은 비발디의 '사계'나 베토벤의 '전원' 못지않게 봄의 다채로운 생동감을 잘 표현해내었으며, 서양의 악기들과 한국의 가야금과 장구가 이루어낸 조화로운 음은 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 지휘중인 장한나 지휘자 장한나.
막간을 이용하여 장한나의 곡 설명이 있은 후 그녀의 지휘로 디토 오케스트라의 베토벤의 [교향곡 6번 F장조 작품 68 '전원'] 연주가 시작되었다. 베토벤 스스로 '특징 있는 교향곡, 전원 생활의 회상'이라 이름붙인 이 전원 교향곡은 듣는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해석하고 감상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을 담고있다.
▲ 음악회 디토오케스트라와 장한나
장한나의 지휘자로 변신한 모습을 처음으로 직접 접한 나로서는 참으로 신선한 모습이었다. 첼로의 스트링에 온몸을 맡기던 연주자에서 수많은 연주자들과 호흡하며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은 그녀의 음악세계에 정말로 새로운 즐거움을 준듯한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첼리스트 장한나의 천재적인 연주와 더불어 지휘자 장한나의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꾸준히 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공연의 끝 관객의 성원에 답하는 장한나와 오케스트라
앙코르 공연까지 마친 장한나와 디토 오케스트라에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90여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첼리스트 장한나, 국악과 오케스트라의 만남, 지휘자 장한나로 이어지는 다채롭고 알찬 음악회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의 표시였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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