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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노래 이야기

김작가의 좌충우돌 유럽 음악기행 - 프레시안 연재

by Wood-Stock 2009. 6. 24.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

아주 특별한 여름
[김작가의 음담악담] 좌충우돌 유럽 음악기행, 시작합니다

기사입력 2009-06-22 오후 6:44:36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가 휴식의 계절, 페스티벌의 계절 여름을 맞아 특별한 여행을 떠납니다. 최근 세계 클럽음악을 견인하고 있는 프랑스를 거쳐 미국과 함께 대중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솟은 영국 각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다닙니다. 한국의 양대(가 돼 버린) 록 페스티벌인 펜타포트, 지산밸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후지 록 페스티벌의 열기 또한 생생히 느끼고 돌아올 예정입니다. <프레시안>은 김작가의 좌충우돌 음악 기행기를 여름이 더 뜨거워지도록 독자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아시아를 벗어난 것은 처음입니다. 출국 직전까지 온갖 잡무를 처리하느라 비행기를 타기 전만 해도 군대를 다시 가는 싸이의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격려해주시고 신경 써 주신 많은 분들 덕에 파리의 새벽공기를 맡는 지금은 뭔가 상병휴가 정도 나온 기분입니다(감정이입 불가능한 여성분 및 면제자 및 공익들께는 죄송).

이제서야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뭔가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역으로 좀 더 젊어질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걷고 많이 부딪히는 한달여가 될 겁니다. 통장을 탈탈 턴 만큼 확실히 뭔가 뽑아내야겠지요.

인생의 리셋버튼을 누른 셈입니다(미노루 후루야와 노이즈가든에게, 고맙습니다). 시작과 끝은 록 페스티벌과 함께 하게 됐습니다. 아주 특별한 여름이 시작됐습니다(뭐 지난해도 한 여름에 뜨듯한 촛불 들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서 들락거리는, 나름 특별한 여름이었습니다만).

파리를 들렀다가 영국을 헤집고 일본으로 날아갑니다.

음악 여행이라고 해서 클럽이나 공연장만 주야장천 다니는 건 물론 아니고요. 이곳저곳 다 돌아다니면서 사람 냄새, 발냄새 물씬 맡을 겁니다. 아마, 미친듯이 고생하며 좌충우돌하는 여름맞이 블록버스터급 모험담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께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물론 일정은 마구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상 19일 새벽 2시,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비틀즈의 나라로 갑니다. 팝음악을 세계 음악으로 만든 곳이요.

ⓒ애플 레코드


파리

한국 밴드인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매년 6월 열리는 '여름이 열리는 날'이라는 행사에 초청받아서 파리에서 공연을 합니다. 굉장히 큰 페스티벌이라고 합니다. 파리에서 며칠 머물며 세계 일렉트로니카를 주도하고 있는 파리 클럽 씬, 젊은이들의 음악 문화 등을 둘러보려 합니다. '파리하면 샹송'이라는 고리짝 이미지는 사실과 다릅니다.

글래스톤베리 록 페스티벌

잉글랜드의 성지 아발론에서 열리는 글래스톤베리에 프레스를 받아서 가게 됐어요. 이 페스티벌에 대해서 쓴 글이 있는데, 그걸 옮기는 걸로 설명을 대신하지요.

매년 6월 마지막 금토일, 글래스톤베리 인근의 농장에서 열리는, 영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이다. 공식 명칭은 '글래스톤베리 공연 예술 페스티벌'. 6월 초에야 라인업이 발표되는데 4월 초에 티켓이 오픈된다. 그런데 오픈과 동시에 15만 장의 티켓이 몽땅 팔려 나간다. 누가 나오는 지도 모르는데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다. 이건 뭐, 선지원 후시험이었던 학력고사도 아니고.

이런 '묻지 마' 페스티벌이 가능한 건 1970년에 마이클 이비스가 자신의 농장을 하룻동안 개방하며 시작된 이 페스티벌이 영국 음악의 현주소를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글래스톤베리>에서도 알 수 있듯 80년대의 스미스(The Smiths)와 뉴 오더(New Order), 90년대의 오아시스(Oasis), 블러(Blur), 펄프(Pulp) 등이 수많은 전설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1995년 참가한 펄프의 'Common People'을 15만 관객이 떼창하는 모습은 90년대 브릿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글래스톤베리는 머드 페스티벌로도 악명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일년 내내 농장으로 쓰이는 곳에 6월 마지막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5만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든다. 게다가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영국의 날씨이다보니 비라도 한번 내리면 농장은 거대한 진흙밭이 된다. 그러니 장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목인 셈이다. 또한 비가 안내려도 도처에 뒹구는 소똥의 향연에 시크한 스니커즈 따위는 단숨에 폐품이 될 수밖에 없다. 소똥만 있으면 차라리 다행인데, 인분도 만만치 않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보니 매일 청소하는 화장실은 청소가 끝나고 곧 청소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변한다. 뭐랄까,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잣대인 화장실의 존재가 유명무실한 것이다.

그래서다. 글래스톤베리는 음악 축제라기보다는 일종의 야생으로 돌아가는 기간이다. 도시의 쾌적함 따위는 안드로메다의 사물함에 잠시 보관된다. 라인업과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6월 27일부터 3일간 열리는 올해 페스티벌은 블러의 재결성 첫 공연(아싸!),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닐 영(Neil Young), 프란츠 퍼디넌드(Franz Ferdinand) 등 어느 때 보다 쟁쟁한 라인업으로 열린다. 제이-지가 참가, '록페스티벌에 웬 힙합?'이라는 비아냥을 자아냈던 지난해의 오명을 말끔히 씻을만 하다.

런던

뉴욕과 더불어 세계 음악의 수도인 런던은 당연히 들어가야겠지요. 아마 가장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까 합니다. 소호, 캠든 타운, (비틀즈가 녹음해서 유명한) 애비 로드 스튜디오 외에 런던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Rock N' Roll Legendary Place'에 나오는 장소들 중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곳을 훑어보려 합니다.

맨체스터

박지성 때문에 유명해진 맨체스터가 사실 80년대 후반부터 영국 음악의 주요 도시였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영화 <24시간 파티 피플>의 무대가 된 곳으로서 전설적인 클럽 하시엔다가 있습니다. 쇠락한 공업 도시였던 맨체스터가 어떻게 갑자기 음악 혁명을 이뤄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브리스톨

아마 대중음악 역사상, 그토록 어두운 음악으로 세계를 강타한 장르는 90년대 중후반의 트립합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시 쇠락해가는 도시답게 쇠락의 아우라가 물씬 풍기는 음악으로 음악사를 새로 썼습니다. 브리스톨은 뒷골목이 많기로 유명하고 영국에 대한 소속감이 별로 없다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밤'의 느낌으로 브리스톨을 다뤄볼까 합니다.

리버풀

비틀즈(Beatles)의 땅, 리버풀은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마침 올해 비틀즈의 음원이 1987년 CD포맷으로 발매된 이래 처음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 및 온라인 유통을 시작합니다. 아마 가을 이후 다시 한 번 비틀즈 열풍이 불겠지요.

글래스고, 애딘버러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글래스고의 아름다운 환경은 참 많은 아름다운 음악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동네는 생활형 뮤지션이 많기로도 유명하지요. 그리고 동네가 좁은 건지 어떤건지 이 사람이 저 사람이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들이라는 게 그 동안 만난 이 동네 뮤지션들의 전언입니다. 아울러 프린지 페스티벌로 명성을 얻고 있는 애딘버러도 함께 들리려고 합니다.

더블린

요즘은 IT를 바탕으로 잘사는 동네가 되었습니다만,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빼고 영국 음악을 얘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일 겁니다. 유투(U2), 크랜베리스(Cranberries) 등 이 동네 출신 뮤지션은 서구뿐 아니라 국내 정서에도 잘 맞습니다. 한 때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게릴라가 되거나 뮤지션이 되는 길 밖에 없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유럽의 흑인 취급을 받았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찾아서 그곳에 녹아있는 음악과 사람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후지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 지산과 동시에 개최되는 후지 록 페스티벌은 지난해까지는 펜타포트와, 올해부터는 지산과의 제휴로 만들어지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이지요. 후쿠오카 인근의 나에바 열리는 본격 캠핑형 페스티벌에서 한국 록 페스티벌이나 음악 수용의 문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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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로 가는 길
[김작가의 음담악담] <글래스톤베리 특집①> 첫날, 현실은 디스토피아?

기사입력 2009-07-01 오후 2:22:03

 

지난달 28일을 끝으로 세계 최고의 대중음악 페스티벌로 불리는 '2009 글래스톤베리 현대 예술 페스티벌'이 막을 내렸습니다. 유럽 기행을 떠난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파리를 떠난 후 곧바로 올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바로 가기 :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란?)을 닷새에 걸쳐 참관했습니다. 현지에서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던 관계로 페스티벌이 끝난 지금, 런던으로 돌아온 김작가가 글래스톤베리의 뜨거웠던 여름을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24일 11시,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막막할 뿐이었다. 한달여를 끌고 다녀야 하는 거대한 트렁크를 가지고 글래스톤베리까지 간다는 건 미친 짓. 진작 짐을 맡길 숙소를 잡아놨어야 한다는 생각을 킹스톤 역에 도착해서야 했기 때문이다. 미리 정보를 뽑아온 한인 민박집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모두 예약이 다 차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런던에서 글래스톤베리로 떠나는 코치(버스. 지하철은 '튜브'라 한다) 시간은 오후 6시 반. 그 때까지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맡기지 않으면 뭐랄까, 5일 내내 평생 바위를 끄는 시지프스의 심정을 제대로 느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여행의 맛이란 역시 모든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데 있다. 어찌 어찌 다른 민박 번호를 알아내어 연락을 했다.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만세. 짐도 미리 맡겨둘 수 있다고 했다. 브라보. 게다가 위치도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바로 옆이라고 한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튜브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런던을 느끼고 싶었다. 파리의 첫 인상과 런던의 첫 인상의 차이를 알고 싶었다. 결론은 파리의 승리. 공기는 탁했고 먼지는 많았다. 길은 좁고 거리는 번잡했다. 적어도 킹스톤에서 빅토리아까지 가는 길은 그랬다. 뭔가 억압된 느낌이랄까. 파리가 '좋았던 시절'을 그대로 잡아두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면 런던은 좋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지금을 산다는 기분이었다. 과거의 흔적을 위해 지금이 희생하는 게 파리의 시간이라면 과거와 지금이 되는 대로 섞여서 런던의 시간은 흘러간다. 반나절의 런던 체류가 준 인상이다. 글래스톤베리가 끝난 후 일주일 정도 런던에 머물면 또 달라질 것이다. 그 때는 런던이 파리를 이길지도 모른다. 아니, 우열이 아닌 차이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글래스톤베리 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원시로 돌아가기 위해 문명을 이용한다. ⓒ김작가

빅토리아 스테이션 옆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글래스톤베리행 버스가 떠나는 곳이다. 6시 반에 버스가 출발하건만 한 시간 전부터 이미 수백명이 줄을 서 있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는 글래스톤베리이니만큼 버스도 대규모로 증편되고 일찍 와서 줄을 선 사람들이 먼저 온 버스를 타고 글래스톤베리로 갈 수 있다. 우리는 8시에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티켓에 찍힌 6시 30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테지만 아무도 불평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글래스톤베리란 본래 그런가 보다. 일상의 엄정한 질서가 파편처럼 흩어지는 초월의 시공간인가 보다. 그러기에 버스에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차안에 탄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간다. 꿈의 글래스톤베리로. 간다. 마음의 유토피아로.

버스는 국도를 달리고 또 달렸다. 한적하디 한적한 영국의 시골길을 3시간 반 동안 달렸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졸다 깨다를 반복할 때 쯤 버스 안에 다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길디 긴 선을 이루고 있는 램프의 행렬. 글래스톤베리에 온 것이다. 십여대의 버스에서 텐트와 온갖 캠핑 장비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쏟아졌다.

빅 레드 게이트라 불리는 공식 입구에서 티켓을 제시한 후 팔찌를 발급받았다. 금색 천에 검정색으로 'Glastonbury Festival 2009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라 새겨진 이 팔찌가 앞으로 나흘간 이 곳의 주민이 됐음을 확인해주는 신분증이 될터이다. 그리고 캠핑존으로 이동. 길고 또 길게 늘어진 전선줄에 매달린 많고 또 많은 전등이 이 시골 농장의 밤을 적당히 밝혀줬다.

서울서 빌려온 텐트는, 텐트라고 하기엔 남루했다. 다행히도 밤은 맑았지만 과연 이 움막같은 텐트로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설치를 위한 부품도 모자랐다. 맥가이버가 된 심정으로 임기응변 끝에 간신히 텐트를 쳤다. 파리에서 해저 터널을 건너 런던으로 건너와 20킬로그램이 넘는 트렁크를 끌고 민박에 짐을 맡긴 후 3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글래스톤베리에 도착해서 한 밤중에 렌턴도 없이 텐트를 친 하루. 몸은 크립톤 광석처럼 무거웠고 마음은 흥건히 젖은 수건처럼 축축했다. 버스 안에서의 함성도, 도착했을 때 버스 앞에서 빛나던 글래스톤베리라는 간판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긴 역부족이었다. 미끄러지듯 잠들었다.

▲버스는 글래스톤베리로 15만 명을 실어나른다. ⓒ김작가


새벽, 자명종이라도 울리듯 텐트 위를 후두둑, 하는 소리가 덮쳤다. 비가 오고 있었다. 여기 온게 과연 잘한 선택일까, 데카르트와 맞장을 떠도 지지 않을 만큼의 근본적 회의가 엄습했다. 공연은 금요일부터 시작하건만, 수요일부터 캠핑 존을 여는 이 오만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인업을 발표하기도 전에 진작 예매를 시작하는 주제에 15만장의 티켓을 며칠만에 팔아치우는 이 자신감은 또한 무엇인가.

이왕 깬 김에 음악이나 좀 들으려 CDP에 파리에서 산 월드 뮤직 음반을 걸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배터리가 없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가스가 모두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그 동안 나답지 않게 너무나 순탄한 여행이었어. 시간을 딱 하루만 되돌릴 수 있다면 파리에 그냥 짱박혀 있을 텐데. 아무 것도 예상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에 답답함은 쌓여만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계속 후두둑 후두둑 텐트를 때렸다. 그 사이로 근처 텐트에서 욕망의 고체 연료에 불을 붙인 청춘남녀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먼 길을 달려왔건만 현실은 디스토피아. 총체적으로 곤란한 글래스톤베리의 첫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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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가 와도, 선거로 골치가 아파도, 글래스톤베리는 올해도 열린다. 가장 뜨거운 여름을 앞두고.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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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 이브, 청춘은 불꽃이어라
[김작가의 음담악담] <글래스톤베리 특집②> '팝의 황제' 사망 소식을 듣다

기사입력 2009-07-03 오후 3:23:10

 

맨바닥에 텐트를 설치하고 침낭 하나 깔고 잤더니 허리가 미친듯이 아팠다. 헐크 호건에게 허리 꺾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원,투,쓰.. 그 순간 벌떡 일어나는 프로레슬러처럼 눈을 떴다.

밤에 생각보다 비가 안내렸나 보다. 바닥은 축축하긴 했지만 악명높은 글래스톤베리의 진흙탕은 없었다. 대신 습기를 잔뜩 머금은 잔디가 듬성듬성 보였다. 명색이 농장인데 잔디가 쫙 펼쳐진 게 아니라 듬성듬성인 이유는 밤사이, 그리고 아침부터 계속해서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도착한 밤만 해도 꽤 한가했던 캠핑존은 이미 포화상태. 저 멀리, 그러니까 아주 멀리까지 있는 일반 캠핑존에도 푸르른 구릉대신 형형색색의 텐트촌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넓디 넓은 캠핑존 너머의, 광활하디 광활한 페스티벌 사이트 여기 저기서 음악이 들렸다. 본격적인 공연은 금요일부터 시작이지만 이미 글래스톤베리에 들어와있는 10만명 정도의 페스티벌 팬들을 위해, 공연을 제외한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공연도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다. 공식 타임테이블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영국의 유력 음악지인 <Q>에서 마련한 퀸즈 헤드 스테이지에서는 목요일부터 특별 공연이 하루 종일 돌아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모든 공연을 부지런히 볼 생각이었지만 아직은 그로기 상태. 옆 텐트의 부지런한 영국 청년들이 아침을 해먹느라 피워놓은 모닥불을 쬐며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축제 준비를 시작했다. ⓒ김작가

몸을 좀 추스린 후 페스티벌 사이트로 입장했다. 해도 떴다. 입이 딱 벌어졌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이미 페스티벌 사이트를 누비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한 마켓이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오기 전에는 한국이나 일본의 페스티벌에서 봤던 규모 정도일 것이라 짐작했다. 어림도 없었다. 이건, 거의 판타지 소설에서 주인공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큰 시장이었다. 물건과 활기가 모두 넘쳐났다. 곳곳에 세계 각국의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온갖 마실 거리들이 즐비했다. 무엇보다 놀란건 먹을 것 이외에도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한, 즉 페스티벌 모드로 변신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이 다 있었다는 거다. 할로윈 축제, 혹은 가장 무도회에서나 쓸법한 괴상한 모자, 캠핑 장비를 제대로 못갖춘 이들을 위한 레저 용품 전문점, 독일 군복, 소방수복, 군화 등을 파는 구제 밀리터리 샵. 펑크 샵, 고스 샵 등등. 여기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돈만 있으면 5분 안에 원하는 스타일로 변신할 수 있는 곳이었던 거다. 많은 사람들이 샵을 들락거리며 하나씩 변신해갔다. 이미 페스티벌 모드로 참가한 사람들도 물론 넘쳐났다.

일행 중에는 프랑스에서부터 함께 움직인 루비 살롱의 리규영 대표가 있다. 그는 신체적인 이유로 늘 착용할 수밖에 없는 모자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몇 만원씩 하는 거라며 5파운드 짜리 구제 독일 야상도 두 벌이나 샀다. 한국에서 프랑스를 거쳐 글래스톤베리까지 장화를 낑낑대며 매고 온 나와는 달리, 해골 무늬가 프린팅된 4파운드 장화까지 샀다. 야금야금, 그도 페스티벌 모드로 변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모아온 여러 종류의 밴드 티셔츠로 무장해 있던 탓에 옷에는 눈길도 안주고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검정 밀집 모자를 샀다. 워낙 머리가 큰 탓에 한국에서는 맞는 모자를 구하기가 힘들었으나, 서양인들의 머리가 그저 작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글래스톤베리에서 깨달았다. 물론 모자를 하나 걸쳤다고 페스티벌 가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후줄근한 밴드 티셔츠와 평범한 반바지 정도의 동양청년은 누가 봐도 음악 오타쿠…정도 였을 것이다. 목에 걸린 프레스 목걸이, 어깨에 둘러맨 대포같은 DSLR이 그런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절대 반지였을 거라고, 자위하고 있다.

메인 무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 근처의 잔디밭에 앉았다. 여기가 햇볕 좋은 날의 하이드 파크라도 된 양, 역시 숫자를 논하는 게 부질없는 이들이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겼다. 맥주를 사려는 이들이 늘어선 바에서 기네스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짙고 짙은 베이지색 거품과 검고 검은 기네스가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가는 순간, 여기가 바로 글래스톤베리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젊은 세대 뿐만 아니라 엄마 등에 업힌 갓난아기부터 황혼을 한낮처럼 살아가는 노인들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모두 모인 곳이었다. 사지 멀쩡한 이들 뿐 아니라 거동이 극히 불편한 이들까지도 글래스톤베리의 태양 아래서 여름의 시작을 만끽하고 있었다.

▲한국과 다른 의미로, 영국의 여름 역시 뜨겁게 시작했다. ⓒ김작가

그 어디에도 그늘은 없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파라솔도,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지붕과 테이블도, 그리고 일말의 근심과 걱정어린 표정도.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접속자 폭주로 다운돼버린 홈페이지를 끊임없이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며,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티켓을 거머쥔 십만명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 같았다.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난 이들이 그런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음악과 여름과 축제와 39년의 전통이 그들을 바로 이 곳, 글래스톤베리라는 이름의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듯한 거대한 설레임이 바글바글댔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미래가, 조금씩 조금씩 현실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밤 10시가 될 때까지 저물지 않는 태양 아래서, 페스티벌 사이트를 누비고 다녔다. 살인적인 영국의 물가를 파탄난 재정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단식 수준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생활화 해야한다는 당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까의 잔디밭에 놓고 왔나보다. 몰라 몰라, 나에게는 마이너스 통장도 있고 건강한 장기도 있어. 피도 아직은 쓸만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잔에 7천원씩 하는 맥주를 계속 홀짝홀짝 거리며 시작도 하기 전에 절정을 맞은듯한 글래스톤베리의 열기를 만끽하고 다녔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스테이지와 댄스 캠프, 그 사이 사이에 들어찬 온갖 종류의 이벤트 부스, 또 그 모든 곳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마냥 신나하는 많고도 많은 사람들은 글래스톤베리 그 자체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밤에나 활기를 맞지만, 글리스톤베리의 이브는 낮부터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하늘도, 사람도 끝간데 모르게 뜨거웠다. 모든 종류의 음악이 모든 곳에서 울려퍼지는 글래스톤베리 안에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직 공연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팝의 황제는 하늘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났다. 해가 저물면 세계 최대 대중음악(Pop) 축제가 시작된다. ⓒ김작가

전날 밤과 마찬가지로 피곤했지만 전날 밤과는 완연히 다른 들뜬 마음을 놀라게 한 건, 역시 텐트 안에서였다. 어둠을 뚫고 어느 텐트에서 외침이 터져나왔다. "Michael Jackson is Dead!!!!" 취침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텐트 밖에서 밤하늘을 보던 나에게, 전날 밤 쏟아지는 비 사이로 청춘의 가열찬 교성을 전해주던 (것으로 짐작되는) 또 다른 옆 텐트의 스코틀랜드 청년이 말했다. "이봐, 들었어? 마이클 잭슨이 심장 마비로 죽었대." 여기 저기서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하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와중이었다. 팝의 황제는 세계 최대의 음악 축제가 시작되기 전날 밤, 홀연히 사라져 팝의 만신전으로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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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에서 09년 사이, 버윅 스트리트와 홍대 앞 차이
[김작가의 음담악담] <런던 순례기①> 오아시스를 찾아서

기사입력 2009-07-02 오후 4:00:33

 

런던의 사실상 첫 날이 시작됐다. 글래스톤베리의 마지막 밤을 하얗게 불사르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새우잠을 잤지만 3시간 반을 좁은 버스에서 잔다고 5일간 쌓인 피로가 가실리는 만무할 터, 글래스톤베리에서 생환한 사람들에게 건강을 체크하라는 듯 코치스테이션에 저울이 있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체중을 쟀을 때 보다 6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 파리에서의 미친 듯한 고칼로리 섭취가 체지방을 태웠을리는 만무하니 단 5일만에 6킬로가 빠진 셈이다.

그렇다. 여기서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 사실, 고기와 감자를 주로 먹는 영국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그토록 글래스톤베리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라는 건 거짓말이고 암튼 체중의 변화가 지난 5일간의 생활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도착한 날,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애비로드도 달려갔으나 이미 체력이 고갈되어 고행으로 득도하는 고대 불교의 승려 체험을 한 후, 비몽사몽하다가 뻗고 말았던 게 당연하다. 그저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침대에서의 수면은 너무나 달콤했다. 역시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마치 봄날의 들판처럼 온 몸에 활기가 돋아났다. 그래서 움직였다. 런던 시내로.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HMV. 한국에서 이런 대형음반판매점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김작가
▲대중음악을 해석하는 시장규모의 차이. 영국 대중음악 시장과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발달 정도를 가르는 잣대가 될 지도 모른다. ⓒ김작가

어느 도시를 가도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대형 음반점. 하물며 음악의 도시 런던인데 가장 먼저 가는 건 당연했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있는 HMV로 향했다. 발매 시기와 중요도에 따라 CD의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CD뿐만 아니라 교통편도 예약을 언제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경제적으로 살려면 꽤 머리 아픈 곳임에는 분명하다. 옷가게나 기념품가게를 가면 잘도 아이쇼핑을 하지만, 음반 가게에서는 그게 도저히 불가능한 나로서는 더욱 머리가 아팠다.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을 비싸게 사느냐, 아니면 한국에 발매안된 음반들 중 저렴한 걸 사느냐의 문제. 지름신의 부름에 흔쾌히 응할 것이냐, 그의 멱살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여 끝내 승리할 것이냐의 문제. 언제나 햄릿이 된 기분이 드는 곳, 바로 음반점이다.

결국 2시간의 사투끝에 단 석 장의 음반을 사는 것으로 싸움을 종결했다. 그런데 사실, HMV에 음반을 사러 간 건 아니었다. 런던에서 오래 생활한 뮤지션 친구가 진작 일러주길, HMV에 가면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라는 책을 판다고 했다. 영국 음악사의 중요한 사건과 사소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일어난 장소들을 쭉 소개하는 책이란다. 오오, 그 책 하나만 있으면 어떤 가이드북보다 훌륭한 바이블이 될 터. 그리하여 본격적인 영국 여행을 하기 전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자 시나이산에 오르는 심정으로 HMV를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십계명은 커녕 가짜 사해문서조차 없었다. 결국 점원에게 물어봤다. 검색을 해보더니 자기네는 그런 책이 없으니 근처 대형 서점으로 가라며 이름을 알려줬다. 그런데 그 이름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땃똔, 정확히 이렇게 들렸다. 아니, 무슨 방콕의 불교전문서점이름도 아니고 부땃똔은 뭔가. 왓? 왓? 을 반복하니 답답한지 종이에 이름을 써주기를, 워터스톤(waterstone)이었다. 아놔, 이 놈의 영국 악센트.

로큰롤의 전설적 장소를 사사받고자 다시 워터스톤으로 향했다. 지하에 있는 음악관련서적코너에 갔더니 입이 딱 벌어졌다. 뭔 놈의 음악 책이 이리도 많은가. HMV는 주로 어떤 음악 장르의 역사나 뮤지션들의 전기와 자서전 위주로 셀력션을 갖춰놓은데 반해, 역시 서점이라 그런지 온갖 종류의 음악 책이 다 나와있었다. 가장 놀란 건 특정 음반에 대해 한 명의 평론가가 저술한 평서. 그러니까,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에 대한 2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석이 한 권의 책으로 이뤄진 것이다. 33과 1/3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리즈만으로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나는 과연 한 음반을 가지고 이런 분석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얼핏 들여다봤다. 정말, 모든 형태의 분석이 다 들어있었다. 음반의 역사적 가치가 한 챕터, 각 곡에 대한 음악미학적 분석이 한 챕터, 이론적 분석이 한 챕터, 가사 분석이 한 챕터…. 이런 식이다. 명함에서 평론가란 직함을 파내고 싶어졌다.

그런 겸허함에도 불구하고, 신은 십계명을 내려주지 않았다. 역시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란 책은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봐도 비슷한 제목조차 없었던 걸 보니 아무래도 그 놈이 거짓말을 했나 싶었다. 순간, 그 놈이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으며 앨범 작업은 무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했다는 사실도 의심이 갔다. 아니,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라는 책 제목조차 뭔가 야매의 냄새가 농후하지 않은가.

▲노엘 스트리트. 노엘 갤러거(기타, 보컬)가 이끄는 오아시스의 대표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 표지에 나온 버윅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다. ⓒ김작가
여튼, 바이블을 못 얻었으니 그나마 알고 있는 레전더리 플레이스로 향할 수 밖에. 지도를 펼쳤다. 버윅 스트리트(Berwick Street). 90년대 브릿팝을 상징하는 단 한 장의 앨범을 꼽으라면 당연히 1995년 발매된 오아시스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꼽아야 한다. 그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거리, 바로 그곳이 버윅 스트리트다. 차이나 타운 근처에만 있다는 정보로 지도를 살펴보니 정말 짧은 거리 하나가 딱 박혀 있었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에서 걸어가도 될만한 거리. HMV에서 가까웠다. 무작정 걸어가보기로 했다. 50년대 테디 보이를 상징하는 리전트 헤어(엘비스 프레슬리의 머리를 떠올리면 된다)가 유래된 리전트 스트리트, 60년대 모드족을 탄생시킨 카나비 스트리트를 지났다. 리전트 스트리트와 카나비 스트리트 모두 잠시 걸음을 멈출만한 역사적 장소지만 그냥 지나쳤다. 버윅 스트리트, 바로 그곳에 가기 때문이다. 카나비 스트리트를 지나 좁은 골목을 걷다보니 노엘 스트리트라는 간판이 보였다. 이 길의 끝에서 우회전을 하면 버윅 스트리트가 나온다. 오아시스의 리더인 노엘 갤러거의 이름을 따온 거리는 아니겠지만, 노엘 스트리트 옆에 버윅 스트리트가 붙어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노엘 스트리트의 끝, 건너편에 버윅 스트리트의 간판이 보였다. 드디어 왔다. 애비 로드만큼의 성지는 아니겠지만 오아시스의 팬이라면 런던에서 한 번 쯤 방문할 것 같은 그 거리에. 모퉁이를 돌며 가방에서 <Morning Glory>앨범을 꺼냈다. 이 사진이 이 거리의 어디쯤에서 찍었을까 앨범 커버와 앞의 풍경을 계속 비교해가며 걸었다. 걷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뒤를 돌아봤다. 아뿔싸. 바로 여기구나. 내 뒤에 있는 이 거리가 앨범 뒷면 커버의 거리로구나. 그 지점에서 약 15미터 정도 더 나가면 바로 정면 커버 사진을 찍은 위치에 서게 된다. 1995년과 다름없는 풍경이 2009년의 버윅 스트리트를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다만, 사업의 흥망성쇠를 말해주듯 상점의 이름과 겉치장이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만세!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옛날, 이 앨범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CD에 기스가 날 때 까지 얼마나 듣고 또 들었던가. 그래서 몇년전 이 앨범이 국내에 재발매됐을 때 얼마나 벅찬 마음으로 해설지를 써내려갔던가. 그런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차가 없는 틈을 타 차도 한가운데서 앞뒤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몇 발자국 앞뒤로 가면서도 찍어보고. 그 사진을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카메라의 사양도 달랐고 날도 달랐다. 무엇보다 프로가 아니기에 그 느낌을 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겠는가. 내가 바로 그 거리에 서있는데. 보도 블럭에 멍하니 서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변하지 않은 것들 안에서 변한 것들을 살펴봤다.

사진의 왼쪽 가장 앞에 있던 상점은 시스터레이라는 레코드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들어가봤다. 오아시스의 앨범중 모닝 글로리만 없었다. 얄궂었다. 마침 인디 음반을 많이 취급하는 가게이길래 몇 장을 샀다. 그 옆에도 또 리바이벌 레코드라는 음반 가게가 있었다. 주로 LP를 취급하는 가게. 창밖에 디스플레이된 음반 중 모닝 글로리의 LP가 있었다. 작은 포스트 잇이 붙어있길래 들여다봤다. 지금 리바이벌 레코드가 있는 바로 그 위치에 'You are here'라는 글귀가 씌여 있었다.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림 책 속의 그림, 또 그 안의 그림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앨범 커버속의 그 가게들은 아무리 봐도 레코드 가게는 아니다. 그 가게들이 지금 레코드 가게로 바뀌어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오아시스의 흔적을 따라 버윅 스트리트를 찾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애비 로드에 이은 버윅 스트리트 방문. 천신만고끝에 에티오피아를 찾은 라스파타리언의 감회가 꼭 그랬으리라.

▲음악팬만이 이 행위에 감동을 누리리라. ⓒ김작가

그 사진을 찍은 그 이는 알았을까. 자신이 사진을 찍은 앨범이 그만한 명반이 될 줄을. 자신이 찍은 사진 한 장에 의존하여, 자신이 사진을 찍은 바로 그 곳을 찾아올 동양의 사내가 있을 줄을. 몰랐을 것이다. 그 때의 나 또한 몰랐다. 훗날 그곳에 앨범 커버 사진 한 장에 의존하여 버윅 스트리트를 찾아가게 될 것임을. 그 때도 그 거리에 있었던 건물들만이 묵묵히, 후일 이곳에 찾아올 이들을 위해 그 모습을 지금까지 오롯이 지켜내고 있을 뿐이었다.

90년대 중반 한국 인디 신이 태동할 무렵, 밴드들의 사진 배경이 되던 많은 곳들이 흔적조차 없어졌음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공원으로 바뀌고 있는 철길을 비롯해서 팔각정이 있던 홍대 놀이터 등등. 어릴 적 엄마 따라 다니던 동네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억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지 못하는 일상. 과거가 그저 추억이란 이름의 이미지로만 살아있는 생활을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버윅 스트리트에 서봤던 사람이라면, 그가 오아시스의 팬이기까지 하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다.

* 김작가는 현재 런던에 체류 중입니다. 글래스톤베리 기행기는 현지 인터넷 사정이 좋지 못했던 관계로 당분간 런던 체류기와 동시 연재될 예정이나 이 행사는 6월 28일에 끝났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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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의 시작, 섹스 피스톨즈의 흔적
[김작가의 음담악담]<런던 순례기②> 영국 신사와 섹스 피스톨즈

기사입력 2009-07-13 오전 11:01:00

 

지리 시간에 배우기로는 분명히, 영국의 여름은 한국보다 안 덥다고 했다. 그 내용을 집필한 사람에게 장기하와 얼굴들의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를 들려주고 싶었다. 더웠다. 너무도 더웠다. 더운 것도 짜증이 나는데 지하철이건 버스건 에어컨이 아예 없으니 불쾌지수는 한 명의 속된 인간을 체념과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만들 정도로 치솟았다. 런던의 무료 신문은 "런던이 방콕만큼 덥다"라고 헤드라인을 커다랗게 뽑았다. 그 더위 속에서 나는 소호의 토튼햄 코트 로드역 근처를 계속 해매고 있었다. 서점이 보일 때 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점원에게 핸드폰을 들이댔다.

친구에게 들었던 '레전더리 플레이스 오브 로큰롤'이라는 제목이 미심찍은 나머지, 친구에게 다시 문자를 보내 책 제목을 물었다. 녀석에게 답장이 왔다. <London's 50 outstanding rock landmark>. 의역하자면 '런던 로큰롤 랜드마크 필수방문 50' 정도가 될까. 해석이야 어쨌든, '로큰롤의 전설적 장소'와 '랜드마크 필수 50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헛갈릴래야 헛갈릴 수가 없을만큼 공통점이 없었다. 허탈해졌다. 그러나 정확한 제목을 알았으니 의욕이 샘솟는 건 당연한 일. 하여, 다시 바이블을 구하고자 서점을 돌며 점원에게 친구로부터의 문자를 들이댔던 것이다. 이번에는 성과가 좀 있었다. 아, 그 책. 알지. 그런데 여기는 없어. 더이상 입고계획도 없어. 그러니 다른 서점을 가봐. 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더 큰 책방이 있어. 그런 식이었다. 그 답변이 계속 꼬리를 문 결과, 결국 마지막에 간 서점 직원이 처음에 간 서점을 알려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확한 제목을 알았어도 바이블 획득 미션은 실패한 셈이었다. 런던은 넓고 시간은 없는데, 고작 책 한권을 구하기 위해서 이토록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처지가 다만 한심스러웠다. 어디로 가야하나,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런던이 워낙 메트로폴리스인데다가 슬슬 바캉스 시즌이 시작되다보니 거리 어디에나 카메라를 든 사람들로 넘쳐난다. 토박이라면 절대 찍지 않을 장소들이 기념 촬영의 공간이 되곤 한다. 어떤 낡은 건물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동양인들이 보였다. 저긴 또 뭔데, 간판을 슬며시 봤다. 오옷,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St. Martin Collage Of Art)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 디자이너들의 성지인줄로만 알았지 펑크(Punk)족의 신전인지는 몰랐다. ⓒ김작가

1854년 설립된 세인트 마틴 아트 스쿨은 전세계 디자이너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그 자체인 곳이다. 존 갈리아노, 스텔라 매카트니 등 정상의 디자이너들이 이 학교를 나왔으며 매년 재학생들의 졸업전시회만으로도 패션계의 관심이 되는 명문학교다. 패션 디자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고 보면 된다. 유럽의 대학들이 시내 한복판에 건물 하나 있는 게 전부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도 도심 한 복판에 있을 줄이야.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 때였다. 마치 <반지의 제왕> 간달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럽고도 힘차며 기품이 있으면서도 나긋나긋한 그런 목소리가. 게다가 액센트도 간달프처럼 정확하고 또렷했다. "헬로?"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잘 정돈된 백발의 신사가 미소짓고 있었다. "패션디자이너이신가요?" 그는 물었다. 그렇잖아도 딸리는 영어 실력에, 알아듣기 힘든 액센트의 홍수에 고생하고 있던 나에게 그의 억양은 홀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골프공처럼 귀에 쏙쏙 박혔다. 듣기평가에서 만점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언 맥캘런 같은 정통 영국 배우들에게서나 듣던 퀸즈 잉글리시, 그 우아함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한국에서 온 음악 저널리스튼데 영국 음악사의 명소를 찾아 다니고 있던 중, 여기를 보고 사진을 찍는 중이에요."

그의 미소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 그래요? 혹시 섹스피스톨즈를 알고 있나요?" 알다마다요. 섹스 피스톨즈를 몰랐다면 런던에서 버킹검 가서 한국 의장대보다 엉성한 '각'에 실망이나 하고 다녔을 겁니다. 그리 생각하면서 몇 번이나 외쳤다. "당연하죠!" 그의 미소가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그렇다면 혹시 알고 있나요? 섹스 피스톨즈가 여기서 첫 공연을 했지요" "저… 정말요?" 그는 또 한번 미소를 지었다. "자, 안으로 들어가봅시다." 나를 데리고 세인트 마틴 스쿨로 들어간 그는 경비원에게 뭐라 뭐라 말했다. 그리고 안내 데스크 뒤의 벽을 가리켰다. "봐요. 저기 써있죠?" 그곳에는 놀랍게도, 섹스피스톨즈가 1975년 11월 6일,이 곳에서 첫 공연을 했다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냥,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한 권의 책을 찾아 헤매다가 세인트 마틴 스쿨을 발견하고, 별 생각없이 사진을 찍다가 영국 신사를 발견하고, 프로도가 간달프에게 인도받듯 그에게 이끌려 내부로 들어왔는데 음악사의 중요한 현장과 마주하다니. 멍하니 현판을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한 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진이 흔들려 있었다. 얼추 촬영을 마치고 경비에게 안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학생및 관계자가 아니면 곤란하단다. 영어를 잘하면 졸라보기라도 할텐데, 그럴 깜냥은 안되는지라 단념하고 말았다.

신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밖으로 나갔더니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외국인들에게 'sir'라는 존칭을 붙여본 적이 없었다. 그저 땡큐와 쏘리, 만을 연발했을 뿐이다. 나는 그에게 "땡큐 베리 머치, 써'라고 인사하며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저 흘려 보내도 그만인 동양 청년에게 관심을 가져 준 것이. 나의 일에 관심을 보이고 소중한 정보를 전해준 것이. 그토록 온화한 미소와 그토록 세련된 말투를 가진 어른을 만나게 된 것이. 가벼운 목례로, 그는 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디서 왔나요?" "한국입니다. 남한이요." "아 그렇군요. 내가 아는 한국말이 있지요." 그는 우리말로 "좋은 여행되세요"라고 말했다. 억양은 어쩔 수 없이 어색했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히 품위가 있었다. 압도적인 품위였다. 셜록 홈즈의 배경이 된 베이커가로 가는 버스가 왔다. 그는 버스에 올라섰다. 끝까지 웃는 얼굴로 가볍게 손을 흔들고 버스와 함께 사라지는 그를 보며, 나는 영국 영어를 정말로 배우고 싶어졌다. 영국을 왜 신사의 나라라고 하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 ⓒ김작가

그의 나이가 얼추 60전후, 섹스 피스톨즈가 영국을 뒤흔들었을 때는 30대 초반 즈음이었을 거다. 기성 세대라면 기성 세대인 나이. 섹스 피스톨즈가 생방송에서 미친듯한 욕설을 내뱉고 템즈강 위에서 여왕을 모독하는 노래를 부르는 둥, 온간 문제라는 문제는 다 일으키는 걸 보면서 그 때의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마, 통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 섹스 피스톨즈를 이야기하고, 세인트 마틴 스쿨안의 현판을 알려주면서 짓던 그 미소는 조금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좋아하던 것에 대해서, 나이 들어서도 기꺼이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그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에게 사진을 부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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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고향 사람들, 그 후한 인심에 감동하다
[김작가의 음담악담] 귀 따갑게 들은 "메이 아이 헬프 유?"

기사입력 2009-07-16 오후 4:52:46

 

*가난한 여행자다보니, 영국에서 인터넷을 원활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글래스톤베리와 런던 여행기도 안 끝났는데 그 사이에 에딘버러와 맨체스터, 리버풀을 거쳐 브리스톨에 도착했습니다. 런던부터 순서대로 쓰기 보다는 최근의 이야기와 좀 지나간 이야기를 섞어서 전해드리는 게 효율적일 듯하여 여행의 순서에 상관없이 연재를 진행하려 합니다. 독자들의 넓은 이해 바랍니다. (필자주)

도시에서 도시로 옮길 때마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신기하게도 도착하는 날의 하늘은 너무나 맑고, 떠나는 날에는 꼭 비가 왔다. 런던이 그랬고, 에딘버러에서, 맨체스터에서도 그랬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버스로 약 한 시간 반 거리. 맨체스터를 떠날 때 비가 왔다는 건 리버풀에서도 비가 왔다는 거고 그 얘기인즉슨 여정의 공통점이 깨졌다는 거다. 고속도로를 달려 리버풀에 진입할 때부터 빗줄기가 굵어졌다. 창밖에서 보는 리버풀은 말 그대로 쇠락한 도시였다. 허름하고 낡았으며 현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예감이 안 좋았다. 리버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딱 두가지. 비틀즈(Beatles)와 축구뿐. 딱 1박2일 머물 도시지만 이 곳에서 실망하는 건 아닐까. 박물관에 들어가있는 비틀즈와 디스코클럽으로 바뀐 캐번 클럽 같은 박제들만 느끼고 떠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코치 스테이션(버스 터미널)은 시내 외곽에 있었다. 유스호스텔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고속도로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코치스테이션 앞 길 역시, 많은 손님을 맞는 거리치고는 황량했다. 이제 겨우 6시가 되었건만 거의 모든 가게의 문은 닫혀 있었다. 런던이나 맨체스터, 에딘버러와는 달리 여기가 어떤 거리인지 알려 주는 표지판도 붙어 있지 않았다. 가기로 한 유스호스텔이 있는 거리, 즉 오프 와핑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머지사이드라는 지명을 보고 대략 머지 강쪽으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워낙 작은 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사전에 체크를 면밀히 하지 않은 탓도 있다.

여정이 진행될수록 트레일러는 무거워져 간다. 인천에서 출국할 때 이미 25킬로그램 정도 나가던 게, 지금은 온갖 책과 기념품 등이 더해져 30킬로는 족히 나갈 것만 같다. 비가 그치기 기다린 후 트레일러를 끌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도무지 감히 잡히지 않았지만,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지라 한달 가까이 돼가는 여행 끝에 진화한 위치 본능을 믿고 움직였다. 그러나 한 달은 역시 인간을 진화시키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인지 코치 스테이션에서 20미터 정도에 있는 첫 번째 사거리에서 갈팡질팡했다. 이 길을 건넜다가 돌아오고, 저 길을 건넜다가 돌아오고 하며 마치 갓 전입한 이등병이 막사에서 해매듯 어리버리한 상태로 있었다. 그 불쌍한 이등병을 발견한 주임원사가 있었으니, 누가 봐도 지역 토박이로 보이는 노인이 말을 걸었다. "어디 가니?" 리버풀의 액센트는 맨체스터와는 또 달랐지만, 거의 독일어처럼 들리는 맨체스터 액센트에 비하면 그나마 알아들을만 했다. "머지 강으로 가요." "오, 머지강은 여기서 꽤 먼데…. 택시를 타고 가는 게 나을거야. 5분이면 갈 수 있어."
▲상상 속의 리버풀과 현실의 리버풀은 날씨 만큼이나 달랐다(?). ⓒ김작가

택시를 탈 생각이었으면 5분동안 코치 스테이션 바로 앞에서 헤매지도 않았을 것이다. "걸어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데요?" 하며 지도를 내밀었다. "걸어가기에는 먼데….여기서 우회전을 해서 저쪽으로 가다보면 라임 스트리트가 나오는데…." 그 뒷말은 애써 들을 필요도 없었다. 라임 스트리트만 찾아가면 머지강까지는 어떻게든 갈 자신이 있었다. 지도상으로 보기에 리버풀의 메인 도로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인은 설명은 멈추지 않는다. 역시 지나가던, 약간 부랑자처럼 보이는 아저씨도 합세해서 계속 택시를 타라고 권유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트레일러를 끌었다. 다행히도 내리막길이어서 쉽게 갈 수 있었다. 노인과 부랑자가 알려준 길을 따라가니 번화가가 나왔다. 기차역 중 하나인 라임 스테이션. 불과 한 블록 차이로 번화가와 외곽이 갈리는 건 맨체스터나 리버풀이나 마찬가지였다.

라임 스테이션에서 라임 스트리트를 따라 계속 시내를 통과해서 걸었다. 그래도 역시 내가 가야할 곳이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는 사실은 변화가 없었기에, 사거리가 나올 때 마다 갈팡질팡했다. 그 때마다 누군가 다가와서 "메이 아이 헬프 유?" 나 "웨어 아 유 고잉?"이라 말을 걸었다. 리버풀 사람들은, 정말이지 친절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 말을 최소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헤매고 헤맸다지만 고작해야 20분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시내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역시 "메이 아이 헬프 유"라는 마법의 주문을 던진 할머니는 심지어, 내가 가야할 유스호스텔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다른 지나가는 토박이들에게 묻고 묻고 또 물어 결국 목적지를 알려주기에 이르렀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나 존 레넌(John Lennon)의 꼬맹이 시절처럼, 누가 봐도 악동처럼 생긴 중학생 또래의 소년들이 심한 리버풀 액센트로 할머니에게 그 곳이 어딘지를 설명해줬고, 할머니는 리버풀 액센트를 런던 액센트로 통역(?)해서 다시 나에게 일러줬다. 그들 모두에게 땡큐 베리 머치를 연발하며 결국 숙소 코앞에 이르렀다. 리버풀 주민들의 친절함은 끝나지 않았다. 골목이 두 개여서 약간 주저하다가 한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뒤에서 "헤이"하며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르렀다. 비틀즈 관련 장소와 리버풀 FC 스타디움을 제외하면 리버풀 제1의 관광지. 머지 강가의 알버트 독(Albert Dock)바로 맞은 편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리버풀 FC유니폼과 모자를 걸친 캐나다인이 인사를 건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이 방에 한국사람이 또 있다며 다른 침대를 가리켰다. 또 한 달 일정 몽땅 예약해놓고 번개처럼 다니는 대학생 배낭여행족이려나 싶었는데, 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냈다. 그는 깜짝 놀라며 "한국분이세요?"라 물었다. 거의 매일 한국 사람들과 마주쳤던 나로서는 이상할 것도 없는데, 알고보니 그는 1년예정으로 세계 일주를 하고 있는 여행자였다. 한국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바로 출국해서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가 영국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축구 때문에 오셨어요? 아니면 비틀즈?"라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뇨. 어제 리버풀에서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가 공연했거든요. 그거 하나 때문에 왔어요." 두둥,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루 차이로 펫 샵 보이스 공연을 놓치다니! 맨체스터에서는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 주연의 오페라 <프리 마돈나>를 역시 일정이 안맞아 놓치고, 런던에서는 몇 십 분 차이로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공연을 들으며 하이드 파크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는데! 티켓 마스터를 부지런히 검색하면서 다녔어야했지만, 뭐 글래스톤베리에서 천하를 느꼈는데 공연은 안봐도 그만… 이라고 위안하기에는 역시 펫 샵 보이스를 놓친게 원통할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펫 샵 보이스의 공연 하나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건너올 정도의 한국 사람을 만났으니. 그러고보니 그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또래의 한국 사람이자, 처음으로 음악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허지훈.

 
▲에코 아레나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머지 강 위로 음악을 흘러보낸다. ⓒ김작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해서 함께 싸구려 중국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초 계획은 머지강가에 앉아 멍하니 밤을 보내는 거였다. 에딘버러에서 사온 작은 위스키를 홀짝거리며 다음 날 본격적으로 비틀즈의 흔적을 찾아다닐 마음의 준비를 할 작정이었다. 파리에서 사온, 이 숙소 저 숙소를 떠돌아다니며 만난 이들마다 함께 마실 것을 권유했으나 모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와인을 꺼내 머지 강으로 나갔다. 머지 강가에는 참 많은 문화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뭐랄까, 리버풀이 하나의 대로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이 과거 영광의 항구 도시 시절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면 알버트 독은 일신우일신, 모든 건물에 현대의 분위기가 완연했다. 비틀즈 박물관인 비틀즈 스토리, 리버풀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에코 아레나 등이 그랬다. 오직 비틀즈 때문에 리버풀에 왔으면 비틀즈 스토리는 가보는 게 당연하겠으나, 13파운드를 지불하고 박물관의 박제된 비틀즈는 보고 싶지 않았다. 밤에 지나가면서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에코 아레나의 박스 오피스쪽에 있는 공연 라인업을 보며 침만 줄줄 흘렸다. 아니, 오늘은 지금 저 안에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공연을 하고 있네! 아니, 11월에는 뮤즈(Muse)의 공연이? 그렇다면 곧 새 앨범이 나온다는 얘기로군! 그렇게 혼잣말을 계속하며 머지 강변에 앉았다. 템즈나 센이 강이라기보다는 좀 넓은 개천이라는 느낌이었다면, 머지는 진짜 강이었다. 검정색과 푸른색이 공존하는 리버풀의 밤하늘 아래 바다로 이어져있는 머지강에서는 바다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으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척 베리(Chuck Berry)에 빠져 있던 리버풀의 악동들은 이 곳에 모여 기타를 퉁겼을 것이다. 머지 사운드는 그런 기타 소리 하나 하나가 모여 탄생했다. 그리고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라는 두 명의 천재가 이 별 볼일 없는 도시를 꿈의 장소로 만들었다.

와인을 꺼냈다.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던 경찰 한 명이 다가왔다. 런던에서는 밖에서 술마셔도 못본 척 하던데, 여기는 지방이라 안 통하나 싶어 살짝 겁을 먹었다. 경찰이 말하기를, 여기서는 술병을 들고 마시는 게 안된다고 했다. 지훈씨가 술병을 품에 숨기는 시늉을 하자 경찰이 씩 웃더니 "그렇죠. 그렇게 하면 돼요." 그러고는 좋은 시간 보내라며 사라졌다. 리버풀의 인심은 공직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하지만 이때 까지는 알지 못했다. 시민 한명 한명의 미친듯한 인심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잠을 잊은 갈매기와 고층 빌딩 하나없이 고즈넉한 야경이 펼쳐진 강가에 앉아 우리는 와인을 비웠다. 펫 샵 보이스의 공연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지훈씨가 찍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미비아 사막의 밤에 깔리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의 여행담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추운줄도 모르고 수다를 떠는 두 동양 남자의 뒤로 레너드 코헨의 공연을 보고 귀가하는 신사 숙녀들이 지나갔다. 그 행렬 틈틈히 멈춰서서 키스를 나누는 젊은 아베크족들을 보며, 우리는 나란히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