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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Sports Record

랜디 존슨, 개인 통산 300승 달성

by Wood-Stock 2009. 6. 5.

 

'탈삼진이었던 사나이' 랜디 존슨

 

1963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여섯. 투수로서 고희연까지 끝낸 랜디 존슨(44·애리조나)은 확실히 예전의 그가 아니다. 평균자책점 3.88, 피안타율 .259, WHIP 1.28은 40대 중반의 투수로서 준수한 성적이지만, 2004년에 보였던 위력(2.60/.197/0.90)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4년 전과 비교해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탈삼진 능력이다. 9이닝당 9.93삼진은 2003년의 9.87보다도 좋다. 올시즌 40이닝 이상을 던진 148명 중 존슨을 앞선 선수는 20살 어린 에딘슨 볼퀘스(10.92), 18살 어린 리치 하든(10.67), 21살 어린 채드 빌링슬리(10.06) 3명뿐이다.

 

라이언, 클레멘스, 존슨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난 탈삼진 투수 3명은, 독보적인 역대 1위 놀란 라이언(5714),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2번의 20K를 작성한 로저 클레멘스(4672), 탈삼진율 1위 랜디 존슨(4680) 3명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탈삼진 능력이 가장 뛰어날까.

 

                놀란 라이언  로저 클레멘스  랜디 존슨

9이닝당 K           9.55         8.55        10.76

10K 경기           215 (28%)    110 (16%)   210 (37%)

탈삼진 타이틀        11            5           9

9이닝당 K 1위        12            3           9

200K 시즌            15           12          13

300K 시즌             6            0           6

 

라이언은 존슨보다 1034개를 더 잡아냈다. 하지만 1472이닝을 더 던졌다. 탈삼진율은 존슨이 앞선다. 역대 129명의 3000이닝 투수 중 9이닝당 8개 이상을 잡아낸 선수는 라이언, 존슨, 클레멘스뿐이다. 9개 이상은 라이언과 존슨뿐이다. 10개가 넘어가는 선수는 존슨이 유일하다(10.18K 페드로 마르티네스 2683이닝).

 

존슨(21년 중 10년) 라이언(27년 중 14년)과 달리, 클레멘스가 내셔널리그에서 보낸 시간은 24년 중 3년에 불과하다. 탈삼진에서도 그만큼 손해를 봤다. 하지만 실제 두 리그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올해 NL 평균(6.80)은 AL(6.39)보다 0.41개가 많을 뿐이다. 지난 4년간은 0.30-0.41-0.27-0.06이었다. 9이닝당 8.55개인 클레멘스에게 설령 1.00을 보태준다고 해도 존슨과는 1개 이상 차이다.

 

그러나 여기서 조정 평균자책점의 개념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 샌디 코팩스 시대와 페드로 마르티네스 시대의 평균자책점의 가치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라이언 시대와 존슨 시대의 탈삼진의 가치도 같을 수 없다. 라이언 시대의 평균은 9이닝당 5.30개, 존슨은 6.34개다. 평균을 100으로 하면 라이언의 탈삼진 능력은 180, 존슨은 170이다. 결국 가장 뛰어난 탈삼진 투수는 라이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정 탈삼진율로 따질 경우 역대 최고의 탈삼진 투수는 따로 있다. 타자들이 삼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모두 방망이를 짧게 잡았던, 그래서 리그 평균이 3.75개에 불과했던 1900년대 초반, 무려 7.04개를 기록했던 루브 웨델이다. 웨델의 조정 탈삼진율은 188로 라이언을 능가한다(코팩스 167).

 

삼진은 똑같은 아웃카운트 1개다.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삼진은 투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삼진이 주는 쾌감은 우리도 많이 느껴본 바다. 왕첸밍의 땅볼쇼보다 제이크 피비의 삼진쇼가 더 재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존슨은 마르티네스와 함께, 그리고 마르티네스보다 훨씬 오랫동안 가장 큰 즐거움을 안겨준 투수였다.

 

존슨은 '삼진의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하지만 애덤 던(신시내티) 라이언 하워드(필라델피아) 같은 마크 맥과이어의 후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음에도 존슨의 후계자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최고의 탈삼진 투수들인 요한 산타나(9이닝당 9.40)와 피비(9.03)의 개인 최고기록은 265개와 240개다. 300K는 어쩌면 존슨의 퇴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탈삼진 레퍼토리를 완성하다

 

1988년에 데뷔한 존슨은 대포알 강속구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투수였다. 특히 제구는 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92년 7월 8경기를 내리 지자, 존슨은 경기에 앞서 몸을 풀고 있는 한 상대팀 선수를 찾아갔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자신의 전담코치인 톰 하우스와 함께 제구 난조의 결정적인 원인을 찾아내줬다.

 

존슨은 그 해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를 눈물로 떠나보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그의 첫 야구코치이자 절대적인 지지자였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을 한탄한 존슨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야구에 쏟아부었다. 라이언의 도움과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로 인해, 1993년 존슨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만 29세 때 일이다.

 

존슨이 만 28세까지 따낸 승수는 48승이다. 반면 톰 글래빈은 108승, 클레멘스는 128승, 그렉 매덕스는 131승이었다. 하지만 29세 이후로 본다면 글래빈은 197승, 매덕스는 219승, 클레멘스는 226승, 존슨은 240승을 거두고 있다.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초창기 존슨의 레퍼토리는 패스트볼-커브-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1993년을 기점으로 패스트볼-슬라이더의 '투피치 피칭'으로 전환했다. 존슨의 스카우팅 리포트에 '하드 슬라이더'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1994년판 스카우팅 노트북이 처음이다. 다음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내용.

 

*1998 : 96-98마일 강속구로 유명한 존슨이지만, 타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슬라이더다. 슬라이더의 구속은 85-88마일로, 다른 투수들의 패스트볼 만큼 빠르다. 또한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날카롭게 꺾이기 때문에 좌타자는 물론 우타자에게도 위협적이다.

 

*1999 : 36살임에도, 존슨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종 2개를 가지고 있다. 96-97마일 패스트볼과 공포스런 슬라이더다. 무릎 근처에서 꺾이는 89마일 슬라이더를 공략할 방법이 없는 것은 우타자도 마찬가지다. 또한 두 핵심 구종이 완벽하지 않은 날에는 체인지업과 투심패스트볼을 섞는다.

 

*2000 : 투심 추가한 덕분에 타자와 승부를 빨리 끝내거나 병살타를 유도할 수 있게 됐다. 98-100마일 강속구는 건재하며, 패스트볼 구속의 슬라이더는 우타자의 발등을 위협한다. 때로는 어깨가 너무 일찍 열려 제구력을 잃는다. 좌타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타자 몸쪽 승부가 성공의 열쇠다.

 

*2001 : 주무기는 세자릿수를 찍을 수 있는 패스트볼, 그리고 패스트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닌 89마일 슬라이더다. 또 백도어 슬라이더를 간간히 던지며, 스플리터와 투심을 경기당 10개 미만으로 구사한다. 주자가 1루에 있을 경우, 존슨은 과거와 달리 땅볼 타구를 만들기 위해 투심을 던진다.

 

*2002 : 마치 97마일 이상 패스트볼과 최고구속 90마일 슬라이더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양, 존슨은 스플리터를 체인지업 용도로 쓴다. 86-88마일 스플리터는 제법 괜찮은 스트라이크아웃 피치다. 또한 투심으로는 땅볼을 유도한다. 하지만 슬라이더는 과거 만큼 날카롭지는 않을 때가 많아졌다.

 

1993년 이후 존슨은 단 2개의 공으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다. 한 때 어느 팀은 존슨이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슬라이더를 던질 때의 준비 동작이 다른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알고도 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존슨은 약점을 순식간에 고쳐버렸다.

 

하지만 존슨은 1999년 이후 다시 수정을 가했다. 땅볼 유도를 위해 투심패스트볼을 추가했고, 이어 스플리터도 보탰다. 실제로 존슨의 땅볼/플라이볼 비율은 스플리터를 장착한 2002년에 데뷔 후 최고 수준(1.36)으로 올랐다. 이처럼 존슨에게도 구종 다양화라는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2005년 존슨은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트레이드는 팀의 의지였지만 양키스는 존슨이 골랐다(존슨을 놓친 세인트루이스는 대신 마크 멀더를 영입했다). 존슨은 우타자의 바깥쪽에 던지는 패스트볼이 전만큼 위력적이지 않자, 같은 지점을 공략할 수 있는 백도어 슬라이더에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실패였다. 애리조나로 돌아온 존슨은 이를 스플리터로 교체했다. 그리고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올시즌 존슨의 볼배합은 패스트볼이 54%, 슬라이더가 33%, 스플리터가 13%다. 스플리터 비중은 2005년 2%에서 11%가 늘어났다.

 

하지만 존슨이 2005년(92.7마일)보다도 더 떨어진 평균 90.9마일 패스트볼로도 많은 삼진을 쓸어담고 있는 진정한 힘은 두 말할 것 없이 슬라이더다. 전성기 시절, 존슨이 볼카운트 2-0, 2-1에서 던지는 공은 90%가 슬라이더였다. 올해도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던지는 공의 절반은 슬라이더다.

 

 

지옥에서 온 슬라이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진 좌,우완 투수는 스티브 칼튼과 밥 깁슨이다. 하지만 둘의 슬라이더를 모두 받아본 포수 팀 매카버가 칼튼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역대 최고로 인정받는 것은 윌리 스타겔이 '포크로 수프 떠먹기'라고 격찬한 칼튼의 슬라이더다.

 

칼튼의 최고 시즌은 59승 팀에서 27승(10패 1.97)을 올린 1972년이다. 하지만 당시 칼튼의 주무기는 커브였다. 칼튼은 1974년부터 슬라이더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후 패스트볼보다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지는 투수가 됐다. 키스 에르난데스가 "칼튼이 내게 던진 공은 95%가 슬라이더였다"고 했을 정도. 라이언과 같은 강속구, 톰 시버와 같은 체인지업이 없었던 칼튼이 80마일 후반대 패스트볼로도 300승-4000탈삼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슬라이더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존슨의 슬라이더는 어떤 수준일까. 칼럼니스트 롭 네이어는 존슨의 슬라이더를 칼튼과 깁슨 사이 역대 2위에 올렸다. TV로 보는 존슨의 슬라이더는 확실히 빠르다. 하지만 존 스몰츠와 같은 날카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투수가 던진 공의 변화가 훨씬 두드러지는 카메라 앵글 탓이다. 존슨의 슬라이더를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보면 그 엄청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존슨 슬라이더의 구속은 차원을 달리한다. 지금은 84마일대로 떨어졌지만 전성기 때는 88-89마일을 꾸준히 찍었다. 이에 대해 브라이언 조던은 "공의 회전이 너무 빠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틀림없는 패스트볼로 보인다. 슬라이더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후다"라고 했다. 존슨도 "슬라이더의 움직임을 좌우하는 것은 속도다. 회전수를 높이면 변화도 더 좋아진다"며 자신의 비결을 밝혔다.

 

특히 좌타자가 존슨의 슬라이더를 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존슨의 통산 좌타자 피안타율은 .194(우타자 .222). 우타자 피안타율이 .274인 올해도 좌타자는 .148다. 그렇다 보니 상대 감독이 존슨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조치는 경기에 최대한 많은 우타자를 내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전성기 때는 존슨이 나온다고 하면 리그 정상급의 좌타자들도 아예 날을 잡고 하루 쉬는 경우가 많았다.

 

 

빅 유닛(Big Unit)

 

존슨의 키는 208cm다. 지난해까지 KBL에서는 208cm 이상의 외국인선수를 뽑을 수 없었다. 2002년 존 라우시(211cm)가 데뷔하기 전까지, 존슨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키가 큰 선수였다. '빅 유닛'도 1988년 그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란 선배 팀 레인스가 지어준 별명이다. 통산 808도루로 역대 5위에 올라 있는 레인스는 존슨보다 35cm가 작은 173cm의 단신이었다.

 

여기에 팔길이까지 96.52cm에 달하는 존슨이 만약 오버핸드로 던졌다면 그 위력은 엄청났을 것이다. 타자들은 2층에서 뿌려진 그의 패스트볼에 맞서 선(ㅡ)이 아니라 점(\)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버핸드 딜리버리가 영 불편했던 존슨은 팔을 내렸다. 사이드암 딜리버리는 대신 횡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슬라이더를 위한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존슨이 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타자들은 존슨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면 마치 존슨이 마치 한발 앞에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존슨은 긴 팔과 긴 스트라이드 덕분에 남들보다 가까운 지점에서 공을 뿌릴 수 있다. 좌타자는 더 곤욕스럽다. 사이드암 딜리버리 때문에 공이 마운드가 아닌 1루에서 날아오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2004년 윌 캐롤의 연구에 따르면, 208cm의 존슨의 릴리스포인트는 178cm의 빌리 와그너보다 타석에서 무려 45.7cm(18인치)나 더 가까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존슨은 와그너보다 4마일(6.4km)의 체감 구속을 더 얻을 수 있었다. 즉 존슨의 96마일은 와그너의 100마일과 같았으며, 존슨이 던진 100마일은 타자들이 느끼기에 104마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키가 큰 투수들은 모두 성공할까. 그렇지 않다. 라우시는 올해 워싱턴의 마무리로 좋은 활약을 하고 있지만(12세이브/3블론 2.73)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에 받았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NBA 선수 출신인 마크 헨드릭슨(206cm)도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있다(통산 50승58패 5.03). 크리스 영(208cm)은 샌디에이고 이적 이후 정상급의 선발투수가 됐지만 '펫코파크 투수'라는 꼬리표를 아직 떼지 못하고 있다(펫코파크 3.07, 나머지 3.83).

 

이에 대해 1995년 디비전시리즈에서 상대팀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이후 애리조나의 감독으로서 존슨의 위력을 생생히 목격한 벅 쇼월터는 "나는 존슨이 어떻게 해서 작동(operate)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다. 키가 지나치게 큰 투수들은 기술적으로 조화된 매커니즘을 갖기가 불가능하다. 근력도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존슨과 같은 키에 강속구-슬라이더 조합을 자랑하며 '제2의 빅 유닛'으로 불렸던 라이언 앤더슨은 제대로 작동되기 전에 고장났다.

 

그렇다면 쇼월터의 의문대로 존슨은 어떻게 작동이 가능했을까. 존슨은 하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무릎은 몇 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존슨은 공을 쥔 팔을 뒤로 제치는 테이크백 동작을 남들보다 크게 하는 것으로 공에 힘을 실었다. 이는 허리, 어깨, 등 모두에 큰 무리를 가져오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금기시되는 동작이다. 하지만 존슨의 강인한 상체는 스프링의 탄성한계를 비정상적으로 높여줬다.

 

또 다른 비결은 손목이다. 애리조나의 전 투수코치였던 마크 코너에 따르면, 존슨은 손목에 스냅을 주는 속도가 메이저리그 투수 중 최고 수준이었다. 덕분에 존슨은 공에 더 강한 회전을 걸 수 있었다. 암 스피드는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빠른 손목 스피드는 타고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300승, 5000K

 

올시즌을 시작하기 전, 존슨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만약 부상이 재발하면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겠다는 것이었다. 올해도 존슨은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아직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 존슨의 성적은 288승 4680탈삼진. 역대 2번째 300승-5000탈삼진을 욕심낼 수밖에 없다. 올시즌 존슨은 득점지원 부족과 많은 비자책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내년 9월까지만 부상 없이 버틸 수 있다면 12승 추가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20개가 남은 5000탈삼진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 지금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해 올시즌을 176개로 끝내더라도 208개가 남는다. 존슨의 200K 시즌은 2005년이 마지막이었다.

 

얼마전 EPSN에 직접 쓴 글을 통해, 존슨은 자신이 성공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났으며 최근 피칭과 선수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존슨은 이미 모든 목표를 이뤘다. 아버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투수, 그리고 우리가 다시는 보지 못할, 우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투수가 되었으니까.

 

김형준 generl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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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존슨, 개인 통산 300승 달성

 

'빅유닛' 랜디 존슨이 300승 고지를 밟았다.

 

랜디 존슨(4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은 (2008.6)5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스파크에서 열린 미 메이저리그(MLB)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해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 경기 전까지 개인 통산 300승 달성에 단 1승만을 남겨놓았던 존슨은 시즌 5승째(4패)를 수확하는 동시에 300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지난 1988년 데뷔한 존슨은 빅리그 데뷔 22년만에, 607경기만에 300승을 달성하게 됐다. 개인 통산 300승 164패 2세이브를 기록한 존슨은 메이저리그 사상 300승 고지를 넘어선 24번째 투수가 됐다. 현역 투수들 중에 300승 고지를 넘어선 것은 톰 글래빈(43) 뿐이다. 글래빈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방출돼 은퇴 위기에 놓여 있다.

 

존슨은 이날 22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78개의 공을 던져 50개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넣었다. 삼진은 2개를 잡았고, 2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1회말을 삼자 범퇴로 처리한 존슨은 타선이 2점을 뽑아준 뒤 맞은 2회에서도 삼진 2개를 솎아내는 등, 워싱턴 타자들을 삼자 범퇴로 물리쳤다. 존슨은 3회에도 로니 벨리아드와 윌 니에베스, 조던 짐머맨을 모두 유격수 앞 땅볼과 투수 앞 땅볼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4회에도 닉 존슨에게 볼넷을 내준 것 이외에 워싱턴 타자들의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던 존슨은 5회 노장다운 위기관리 능력을 선보였다. 5회 선두타자에게 중전 안타를 허용한 뒤 벤지 몰리나의 패스트 볼로 무사 2루를 맞은 존슨은 오스틴 컨스에게 볼넷을 내줘 무사 1,2루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벨리아드에게 병살타를 유도해 순식간에 아웃카운트를 늘렸고, 니에베스까지 범타로 요리하며 실점을 막아냈다.

 

존슨이 실점을 허용한 것은 6회였다. 존슨은 6회 야수의 송구 실책으로 맞은 1사 1루에서 닉 존슨에게 좌전 적시 2루타를 허용해 실점했다. 존슨은 흔들리지 않고 나머지 타자들을 범타로 처리한 뒤 7회부터 계투진에 300승을 맡겼다. 이후 마운드에 오른 브랜든 메더스와 제레미 아펠트, 브라이언 윌슨은 나머지 이닝을 모두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존슨의 승리를 지켰다. 타선도 9회초 3점을 더 뽑아내며 존슨의 300승에 힘을 실어줬다.

 

 

랜디 존슨, '꿈의 300승'까지 걸어온 22년

 

46세의 노장 '빅유닛' 랜디 존슨(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 개인 통산 300승을 달성했다.

 

존슨은 5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스파크에서 열린 미 메이저리그(MLB)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 시즌 5승째(4패)를 올리면서 개인 통산 300승 고지를 밟았다.

 

이로써 존슨은 현역 선수로는 두 번째로 300승을 달성했다. 현역 선수들 중 300승을 돌파한 선수는 톰 글래빈(4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뿐이다. 현역 MLB 선수들 중 제이미 모이어(47.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이어 두 번째 연장자인 존슨은 빅리그 생활 22시즌, 607경기 만에 300승을 달성했다.

 

지난 1988년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인 몬트리올 엑스포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한 존슨은 데뷔 첫 해 4경기에 선발로 나서 3승(무패)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다. 빅리그 데뷔 이듬해 몬트리올에서 4패만을 기록한 존슨은 7월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됐다.

 

시애틀로 이적한 후 7승(9패)을 따낸 존슨은 1990년 14승 11패 평균자책점 3.65로 활약하며 300승을 향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 부진한 한 해를 지내기 전까지 존슨은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특히 1995년에는 18승(2패)을 올리며 생애 처음으로 사이영상의 영광을 안았다.

 

1996년 5승을 올리는데 그쳤던 존슨은 이듬해 20승(4패)를 올리며 맹활약했지만 1998년 9승 10패 평균자책점 4.33으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인 후 10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됐다. 휴스턴에서 10승 1패 평균자책점 1.28로 부활을 예고한 존슨은 1998년 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을 맺었다.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뛴 2000년대 그가 보여준 활약은 1990년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존슨은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은 첫 해(1999년) 17승 9패 평균자책점 2.48의 성적으로 두 번째 사이영상을 품에 안았다.

 

이때부터 2002년까지 4년 내내 사이영상은 그의 차지였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존슨이 따낸 승수는 81승에 달했고, 4년 동안의 평균자책점은 2.48에 불과했다.

 

특히 2001년과 2002년은 존슨의 최고 전성기였다. 2001년 21승 6패 평균자책점 2.49로 맹활약한 존슨은 사이영상을 수상한 동시에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월드시리즈 2경기에 선발로 나서는 등 3경기에 등판해 17⅓이닝 동안 2실점했던 존슨은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고, 월드시리즈 MVP까지 거머쥐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후인 2002년 존슨은 24승 5패 평균자책점 2.32로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 1위에 올랐다. 260이닝을 던지는 동안 33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 탈삼진 부문 1위까지 석권한 존슨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 당연하다는 듯 사이영상을 가져갔다.

 

2003년 잠시 주춤했던 존슨은 이후 예전만큼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내는 꾸준함을 보여줬다.

 

지난해 그는 FA 신분으로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하며 현역생활을 이어갔다. 존슨은 " 2009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 " 는 말로 마지막 도전임을 알렸다. 존슨은 올 시즌 평균자책점이 5.12에 달할 정도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올해, 존슨은 300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데 성공했다.

 

'살아있는 전설' 존슨의 기록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300승을 달성한 그가 얼마나 더 많은 승수를 추가할지 관심이 쏠린다.

 

 

랜디 존슨, 남은 목표는 탈삼진 5천개

 

원정 구장이었지만 9회말 관중석 팬들이 '랜디'를 연호하자 사납게만 보이던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마무리 브라이언 윌슨이 마지막 타자 윌 니에베스를 삼진으로 처리하자 그 가는 미소가 환하게 얼굴 전체로 퍼졌다. 존슨은 팀 동료들과 일일이 감격을 포옹한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가족들과 포옹하며 감격을 나눴다.

 

'빅 유닉' 랜디 존슨이 대망의 300승 고지에 올랐다. 존슨은 5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6이닝을 단 2안타 1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5-1, 승리를 이끌어 300승을 기록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이 몬트리올 엑스포스인 만큼 그는 자신이 처음 시작한 팀을 상대로 위업을 달성한 셈이 됐다.

 

메이저리그 통산 24번째. 왼손 투수로는 워렌 스판(363승), 스티브 칼튼(329승), 에디 플랭크(326승), 톰 글래빈(305승)에 이어 여섯 번째. 1988년 데뷔해 올해까지 22년 동안 607경기째 등판해 4,097.1이닝을 던져 기록한 쾌거였다.

 

존슨은 198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워싱턴 내셔널스)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데뷔는 1988년. 볼만 빠르고 제구력이 형편 없어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1989년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뒤 이듬해 14승11패를 거두며 잠재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1995년 18승2패 평균자책점 2.48을 기록하며 첫 사이영상을 거머쥐었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연속 사이영을 수상하는 등 투수 최고의 영광인 사이영상을 5회나 받았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소속이던 2001년에는 커트 실링과 함께 막강 원투펀치를 이루며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견인했다. 2004년 5월18일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17번째의 퍼펙트 게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41세의 나이에 기록한 퍼펙트로 최고령 퍼펙트 기록이었다. 이미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는 존슨은 이 퍼펙트 게임으로 사이 영, 짐 버닝, 놀란 라이언, 노모 히데오에 이어 양대리그에서 노히트게임을 한 다섯번 째 투수가 되기도 했다.

 

2005년과 2006년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뒤 2007년 애리조나로 복귀한 랜디 존슨은 자기 연봉의 50%를 자진삭감하면서 애리조나에 남기를 원했지만 결국 터무니 없는 조건 제시에 자신의 고향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전성기 시속 100마일(161km)에 육박하는 빠른 공과 슬라이더 두 가지 구질만으로 타자를 윽박질렀지만 지금은 체인지업에 스플리터를 레퍼터리에 추가하며 떨어진 구위를 다양성과 제구력으로 보완하고 있다.

 

이제 만 46세에 300승 돌파. 언론이 300승 돌파와 그 이후에 대해 집정적인 관심을 보이자 존슨은 " 단지 300승 때문에 구단이 나를 영입하지는 않았을 것 " 이라며 남은 시즌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을 밝히기도 했다.

 

존슨은 생애 통산 4천845개의 탈삼진으로 놀란 라이언(5천714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라이언의 기록을 깨기는 어렵지만 그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탈삼진 5천개를 넘어서는 건 결코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존슨은 두 번째 월드시리즈 반지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팀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점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이 자신의 능력 밖이라면 탈삼진 5천개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존슨은 한 시즌 탈삼진 300개를 6번(놀란 라이언도 6회)이나 돌파했고 지난해에도 174이닝 동안 173개의 삼진을 잡아내 여전히 녹슬지 않은 탈삼진 능력을 과시했다. 올해는 58이닝 동안 5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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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S] 랜디 존슨 '불꽃을 던진 사나이'
[김형준 칼럼 2009-06-04 23:06]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이 정점에 도달하는 나이는 만 29세다(역대 사이영상 수상자의 평균 나이는 29.8세다). 정점에 오른다는 것은 내리막길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9세는 투수들의 하락세가 시작되는 나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야구선수라 하기에는 너무 큰 키와 너무 긴 팔, 깡마른 몸매를 가진 투수가 있었다. 스웨덴의 높이뛰기 선수인 패트릭 스요베리와 같은 외모의 그는, 엉망이었던 제구력 탓에 28세 시즌까지 49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남들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29살부터, 그는 맹렬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나이로 마흔일곱이 된 올해, 불가능할 것 같았던 300승을 달성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투수, 랜디 존슨(45)이다.

 

 


208cm

 

아버지로부터 큰 키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존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미 키가 지금과 같은 208cm에 이르렀다. 미네소타 출신 경찰관이었던 존슨의 아버지는 키가 198cm였고 야구와 스키점프를 즐기는 스포츠광이었다.

 

1982년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는 존슨을 4라운드에서 지명했다. 그리고 당시 4라운드 계약금으로는 파격적인 5만 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존슨은 아버지와 코치의 조언에 따라 프로가 아닌 대학을 택했다. 그렇게 90년대 최고의 좌완 2명이 같은 팀에서 출발하는 역사적인 사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에서 존슨의 전공은 미술(fine arts)이었다. 그는 학교 밴드의 드럼 연주자였으며, 록 잡지를 만드는 일도 했다. 또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꿈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것이었다.

 

그가 진학한 USC에는 1년 선배 마크 맥과이어가 있었다. 1학년 때 투수와 타자를 병행했던 맥과이어는 존슨이 들어온 후부터 타자에 전념했다. 3학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존슨은 드래프트에 나올 투수 중 4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존슨은 부담감에 시즌을 망쳤고 평가도 급락했다.

 

B J 서호프(1순위 밀워키) 윌 클락(2순위 샌프란시스코) 바비 위트(3순위 텍사스) 배리 라킨(4순위 신시내티) 등 LA 올림픽 멤버들이 쏟아져 나온 1985년 드래프트에서, 존슨은 비정상적인 키를 제외하고는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파격적으로 그를 전체 34순위에서 지명했다.

 

존슨은 최고의 강속구와 함께 최악의 제구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마이너리그 시절 존슨은 10개의 삼진을 잡아내 구단 관계자들을 환호케 하다가도, 바로 다음 경기에서 10개의 볼넷을 내줘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1987년 존슨은 더블A에서 140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163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그리고 128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서울올림픽 개최 하루 전인 1988년 9월16일. 존슨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 나서 5이닝 2실점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존슨은 1940년대에 나타났다 통산 7승으로 사라졌던 자니 지(Gee)의 역대 최장신 기록을 1인치 경신했다.

 

그렇다고 제구 문제가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1989년 몬트리올은 존슨이 29⅔이닝 26볼넷 26삼진을 기록하자, 뉴욕 메츠가 놀란 라이언을 포기한 것보다, LA 다저스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포기한 것보다 훨씬 빨리 존슨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당시 포스트시즌에 도전했던 몬트리올은 존슨을 포함한 유망주 4명을 내주고 시애틀에서 사이영상급 좌완인 마크 랭스턴을 데려왔다(그로부터 4년 후, 몬트리올은 새로운 괴물을 얻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였다).

 

1991년 존슨은 1977년 놀란 라이언(204개) 이후 가장 많은 152개의 볼넷을 내줬다. '키가 6피트6인치(198cm) 이상인 투수는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하다'는 스카우트계 격언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타자들의 공포 ⓒ gettyimages/멀티비츠

 

1992년


1992시즌 중반, 경기전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놀란 라이언은 갑자기 큰 그림자가 지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존슨이었다. 당시 8연패에 빠져 있었던 존슨은 평소 존경했던 라이언을 보게 되자 눈을 딱 감고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라이언은 흔쾌히 돕기로 하고 전담코치 톰 하우스와 함께 분석에 들어갔다.

 

라이언과 하우스가 찾아낸 문제점은 공을 던지는 순간 내딛는 오른발의 뒤꿈치가 미세하게 3루 쪽으로 향한다는 것. 발을 홈 플레이트 쪽으로 내딛지 못한 존슨은 무게 중심이 자꾸 3루 쪽으로 쏠렸고, 그 때마다 암 앵글(arm angle)이 달라졌다. 제구 불안의 결정적인 문제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후 라이언을 야구 인생 최고의 은인으로 여기게 된 존슨은 1993년 라이언이 은퇴 경기를 치르자,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이제부터는 자신이 대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라이언의 등번호인 34번을 달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존슨의 또 다른 문제는 불같은 성질이었다. 마이너리그 시절 존슨은 왼 손목에 타구를 맞은 후 교체된 적이 있는데, 손목이 부러진 것으로 지레짐작한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오른손 주먹으로 벽을 쳤다. 하지만 검사 결과 손목은 단순 타박상이었다. 대신 존슨은 오른손에 깁스를 했다. 마운드 위에서 존슨은 너무 쉽게 흥분했고 또 분노했다. 분노의 상당 부분은 동료들에게로 향했다.

 

이 때 또 다른 은인이 나타났다. 스티브 칼튼이었다. 1972년 59승 팀에서 27승을 거두는 등 꼴찌 팀의 에이스 자리를 묵묵히 지켜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까지 차지한 칼튼은 존슨에게 중요한 한마디를 했다. 동료들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료들을 위해 있는 것. 지금까지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존슨은 칼튼의 말에 무릎을 쳤다. 칼튼의 조언 이후, 존슨의 동료들은 더 이상 실책 후에 있었던 존슨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게 됐다.

 

그 해 12월, 운명적인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존슨은 개인 훈련을 하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크게 자책, 가족들에게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한 마지막 당부를 전해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존슨은 이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존슨은 자신의 글러브에 같은 아버지의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9살의 너무 늦은 나이에, 존슨은 다시 시작했다. 존슨은 라이언의 기술적 조언과 칼튼의 심리적 조언을 완벽히 수행했다. 이에 라이언 다음으로 많은 삼진을 잡아낸 투수, 칼튼보다 더 많은 삼진을 잡아낸 좌완이 됐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눈물로 했던 약속을 지켜냈다.

 

그를 볼 수 있었던 건 행운 /  눈앞에서 뿌리다 ⓒ gettyimages/멀티비츠

 

1993년 - 1987년 라이언 이후 처음으로 300K를 달성한 투수가 되다. 1972년 칼튼 이후 처음으로 300K를 달성한 좌완이 되다.

 

1995년 - 1987~1990년 라이언 이후 처음으로 탈삼진 4연패에 성공한 투수가 되다. 매덕스(19승2패)와 함께 역대 최초의 200이닝 이상 9할 승률(18승2패)을 만들어내다. 첫번째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첫번째 사이영상을 따내다.


1997년
- 첫번째 20승을 달성하다. 역사에 남은 활약으로 팀의 첫번째 포스트시즌 진출과 디비전시리즈 승리를 이끌다.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2위.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 로저 클레멘스에 이어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존슨에게 당한 양키스가 시즌 후 존슨의 트레이드를 타진하다. 시애틀이 마리아노 리베라와 앤디 페티트를 요구하다.

 

1998년 - 재계약이 무산된 시애틀에서 맥빠진 시즌을 보내다.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후 11경기에서 10승(1패 1.28)을 따내다. 2번째 300K를 달성하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집과 가까운 애리조나를 선택하다.

 

1999년 - 역대 5위에 해당되는 364개의 삼진을 잡아내다. 한 시즌 23번의 10K 경기를 만들어내다(라이언과 타이). 1987년 라이언 이후 처음으로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내셔널리그 투수가 되다. 2번째 사이영상을 차지하다. 마르티네스와 함께 양 리그 사이영상을 차지한 역대 2,3호 투수가 되다(1호 게일로드 페리, 4호 클레멘스).

 

2000년 - 사이영상 2연패에 성공하다. 마지막 경기 부진(3⅓이닝 8자책)으로 평균자책점이 2.38에서 2.64로 올라 평균자책점-탈삼진 동반 2연패에 실패하다(1위 케빈 브라운 2.58). 3년째 좌타자에게 홈런을 맞지 않다.
 
2001년 - 스프링캠프에서 비둘기를 잡다. 역대 3위에 해당되는 372삼진을 만들어내다. 4년 연속 300K를 기록한 최초의 투수가 되다. 3년 연속 23번의 10K 경기를 만들어내다. 클레멘스(2회)와 우드에 이어 역대 4번째 20K를 달성하다. 9이닝당 13.4K의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다. 사이영상 3연패에 성공하다. 1968년 미키 롤리치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3승 투수가 되다.

 

2002년 - 매덕스에 이어 사이영상 4연패에 성공한 2번째 투수가 되다. 5년 연속 300K를 달성한 최초의 투수가 되다. 6번째 300K를 달성, 라이언과 타이를 이루다. 1972년 칼튼에 이어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좌완이 되다. 1996년 스몰츠 이후 24승째를 따낸 첫번째 투수가 되다. 본즈, 존슨과의 38번째 대결 만에 첫 홈런을 때려내다(통산 3홈런).

 

2004년 - 9번째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하다.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시즌을 보내고도 16승14패에 그쳐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그치다. 클레멘스와의 투표 대결에서 2번째 패배를 당하다. 사이 영이 1904년에 세웠던 37세37일의 최고령 퍼펙트게임 기록을 갈아치우다(40세251일).

 

 

나이 경기 ERA 이닝 탈삼진 K/9 AVG
1988 24  4  3  0 2.42  26  25  8.7 .225
1989 25 29  7 13 4.82 160.2 130  7.3 .248
1990 26 33 14 11 3.65 219.2 194  7.9 .216
1991 27 33 13 10 3.98 201.1 228 10.2 .213
1992 28 31 12 14 3.77 210.1 241 10.3 .206
1993 29 35 19  8 3.24 255.1 308 10.9 .203
1994 30 23 13  6 3.19 172 204 10.7 .216
1995 31 30 18  2 2.48 214.1 294 12.3 .201
1996 32 14  5  0 3.67  61.1  85 12.5 .211
1997 33 30 20  4 2.28 213 291 12.3 .194
1998 34 34 19 11 3.28 244.1 329 12.1 .224
1999 35 35 17  9 2.48 271.2 364 12.1 .208
2000 36 35 19  7 2.64 248.2 347 12.6 .224
2001 37 35 21  6 2.49 249.2 372 13.4 .203
2002 38 35 24  5 2.32 260 334 11.6 .208
2003 39 18  6  8 4.26 114 125  9.9 .280
2004 40 35 16 14 2.60 245.2 290 10.6 .197
2005 41 34 17  8 3.79 225.2 211  8.4 .243
2006 42 33 17 11 5.00 205 172  7.6 .250
2007 43 10  4  3 3.81  56.2  72 11.4 .245
2008 44 30 11 10 3.91 184 173  8.5 .260
2009 45 11  5  4 5.12  58  56  8.7 .262
607 300 164 3.29 4097.1 4845 10.7 .220

 

 

 

 

가장 극적인 300승?


클레멘스가 28세 시즌까지 따낸 승수는 134승. 매덕스는 131승, 톰 글래빈은 108승이었다. 존슨은 클레멘스보다 85승, 매덕스보다 82승, 글래빈보다 59승이 늦었던 것. 1900년 이후 데뷔한 16명의 300승 투수는 28세 시즌까지 평균 114승을 기록했다. 존슨은 이들보다 무려 65승이 적었다.

 

존슨보다도 늦었던 투수가 딱 1명 있다. 광부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너클볼을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고 28살이 되어서야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필 니크로다. 니크로가 28세 시즌까지 거둔 승수는 17승이었다.

 

군복무 때문에 데뷔가 늦었던 워렌 스판(65승) 마이너리그 팀에서 붙잡고 놔주지 않아 25살에 데뷔한 레프티 그로브(67승) 27살에 스핏볼을 완성한 게일로드 페리(60승)도 출발이 늦었다. 하지만 존슨보다는 빨랐다. 존슨은 니크로 다음으로 출발이 늦었으며, 유일하게 5인 로테이션 시대에 그 일을 해냈다.

 

 

300승 투수들의 달성 시점 나이
달성 연도    달성 나이
퍼드 개빈   1888      31세
팀 키페   1890      33세
미키 웰치   1890      31세
찰스 레드번   1891      36세
존 클락슨   1892      31세
키드 니콜스   1900      30세
사이 영   1901      34세
크리스티 매튜슨   1912      32세
에디 플랭크   1916      41세
월터 존슨   1920      32세
피트 알렉산더   1924      37세
레프티 그로브   1941      41세
워렌 스판   1961      40세
얼리 윈   1963      43세
게일로드 페리   1982      43세
스티브 칼튼   1983 38세 275일
톰 시버   1985      40세
필 니크로   1985 46세 188일
돈 서튼   1986      41세
놀란 라이언   1990      43세
로저 클레멘스   2003 40세 313일
그렉 매덕스   2004 38세 115일
톰 글래빈   2007 41세 133일
랜디 존슨   2009 45세 265일

 

 

 

역대 최고의 좌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좌완은 최고의 타고투저 시대를 보낸 그로브다. 그로브의 통산 평균자책점은 3.06으로 23명의 300승 투수 중 13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정 평균자책점으로 따지면 월터 존슨(147)을 넘어서는 역대 1위다(148).

 

존슨의 조정 평균자책점은 136으로 그로브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200승 이상을 달성한 26명의 좌완 중 존슨보다 조정 평균자책점이 좋은 투수는 그로브뿐이다(3위 화이티 포드 133). 데뷔하자마자 탈삼진 7연패에 성공한 그로브는, 그러나 32세 시즌부터는 1개도 추가하지 못했다. 반면 31세 시즌까지 4개를 따낸 존슨은 32세 시즌 이후로도 5개를 더 추가했다.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좌완은 샌디 코팩스다. 코팩스는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보낸 '황금의 4년' 덕분에 통산 165승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 4년간 코팩스는 172의 조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존슨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8년간 177의 조정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은 188이다. 코팩스가 뛴 다저스타디움이 투수의 천국이었던 반면, 존슨은 좁디 좁은 킹돔과 고지대의 뱅크원볼파크에서 뛰었다.

 

존슨은 그로브 못지 않게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코팩스 만큼이나 화려했다.

 

 

90년대 최고의 투수?

 

마르티네스는 그로브를 유일하게 앞서는, 역대 200승 투수 최고의 조정 평균자책점(154)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214승에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354승을 거뒀으며 그로브와 월터 존슨(147)에 이은 300승 투수 조정 평균자책점 3위(143) 클레멘스는 2차대전 이후 최고의 투수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약물이라는 불명예가 새겨졌다.

 

매덕스가 올린 355승은 클레멘스와 달리 깨끗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매덕스는 사이 영보다도 더, 역사상 가장 꾸준했던 선발투수다. 하지만 그는 안정성을 위해 화려함을 포기했다(조정 평균자책점 132, 300승 투수 9위).

 

우리가 지켜본 4인방 중 가장 위력적인 투수는 마르티네스였다. 가장 안정적인 투수는 매덕스였다. 존슨은 마르티네스보다 덜 위력적이고(그렇다고 볼 수도 없지만), 매덕스보다 덜 꾸준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스보다 더 꾸준했고, 매덕스보다 더 위력적이었다. 클레멘스를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면 그렇다.

 

 


마지막 300승?

 

300승은 결코 흔한 장면이 아니다. 1970년대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며, 1990년대에는 라이언 만이 성공했다(우리가 4번이나 보게 된 건 단지 운이 좋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존슨 이후 역대 25번째 300승은 나올 수 있을까. 마이크 무시나가 270승에서 멈춰서면서, 존슨이 마지막 달성자가 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현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투수는 요한 산타나다. 하지만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16.5승을 올린 산타나는, 올해부터 40세 시즌인 2019년까지 11년간 연평균 17승을 거둔 후, 4승을 더 추가해야 300승에 도달할 수 있다. 존슨(219승) 클레멘스(191승) 매덕스(190승) 그리고 제이미 모이어(203승)가 31세 시즌 이후 174승 이상을 따냈지만, 선발투수가 승리를 챙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CC 사바시아는 올시즌을 18승으로 마감할 경우 28세 시즌을 135승으로 끝내게 된다. 이는 클레멘스보다도 1승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바시아의 롱런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존슨을 마지막으로, 적어도 앞으로 10년 간은 300승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8cm 투수, 어떻게 작동할 수 있었나
 
지렛대는 길면 길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긴 대신 강도가 약하다면 차라리 길지 않으니만 못하다.
 

투수에게도 큰 키와 긴 팔은 유리하다(팔이 길면 손가락도 길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큰 키와 너무 긴 팔은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길이의 팔과 다리가 제대로 된 근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존슨에 앞서 등장한 장신 투수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문제를 보이고 사라졌다. 존슨은 하늘이 내려준 신체를 갖고 태어난, 운이 좋은 투수가 아니었다.

 

존슨은 고교 시절 농구선수로도 뛰어났다. 하지만 무릎이 약해 오래 뛸 수 없었다. 하체를 이용한 피칭 역시 할 수 없었다. 이에 존슨은 팔을 뒤로 제치는 테이크 백 동작을 남들보다 크게 하는 것으로 공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이드암 모션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는 상체에 엄청난 무리를 가져오는 동작이다. 실제로 시애틀은 존슨과 똑같은 키의 라이언 앤더슨을 뽑아 존슨의 매커니즘을 주입했다. 하지만 앤더슨은 메이저리그에도 올라오지 못하고 쓰러졌다. 오직 존슨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버텨낼 수 있는 상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존슨의 너무 큰 키(208cm)와 너무 긴 팔(96.52cm)이,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최고의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땀 덕분이었다. 손가락이 세 개였던 모데카이 브라운이 세 손가락으로 던지는 마구를 만들었던 것처럼.

 

존슨이 공포시대를 열자 스카우트들도 존슨만큼 큰 키를 가진 투수들에 대한 선입견을 풀었다. 이에 마크 헨드릭슨(206cm)과 크리스 영(208cm)이라는 농구선수 출신 투수들이 등장했다. 존 라우시(211cm)는 존슨을 제치고 역대 최장신 투수가 됐다. 하지만 존슨만큼 위력적인 장신 투수는 나오고 있지 않다.

 

그는 늦게 출발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노력으로 답했다.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불꽃은 살아있다. 그의 심장 속에 ⓒ gettyimages/멀티비츠

 
 

랜디 존슨(Randall David Johnson)

 

1963년 9월10일 캘리포니아주 Walnut Creek 출생
198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34순위 지명

300승 - 역대 24번째
4845탈삼진 - 역대 2위 (놀란 라이언 5714개)
300K 6회 -역대 공동 1위
10K 경기 212회 - 역대 2위 (놀란 라이언 215회)
9이닝당 10.7K - 1위(2위 2000이닝+ 페드로 10.1, 3000이닝+ 라이언 9.5)

조정 평균자책점 136 - 300승 달성자 역대 6위
승률 .647 - 300승 달성자 역대 5위

사이영상 5회 - 역대 2위 (로저 클레멘스 7회)
2002년 트리플 크라운 
2001년 월드시리즈 MVP

평균자책점 1위 - 4회 (2위 3회)
다승    1위 - 1회 (2위 3회)
탈삼진   1위 - 9회 (2위 3회)
피안타율  1위 - 6회 (2위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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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승' 랜디 존슨, 최고-최악의 장면들
 
'빅유닛;
랜디 존슨(4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이 5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대망의 300승 고지에 올랐다.

4인 로테이션, 투수들에 대한 엄격한 투구수 제한, 확실한 투수 분업으로 선발 투수들의 승수 쌓기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300승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평을 받을 만큼 대단한 기록이다. 더욱이 그의 전성기가 금지약물로 얼룩진
스테로이드 시대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의 여러 기록은 더욱 값지다.

'ESPN'은 6일 존슨의 경기 장면 가운데 최고와 최악 등 인상적인 장면을 정리해 눈길을 모은다.

우선 존슨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가장 뛰어난 타격을 한 선수는 조 맥유잉이 꼽혔다. 2000년 5월 21일
뉴욕 메츠 소속이던 맥유잉은 존슨을 상대로 4타수3안타를 기록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이날 2루타 2개와 홈런 1개를 쳐냈다는 점. 지금까지 존슨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세 개의 장타를 기록한 타자는 맥유잉 뿐이다. 이날 존슨은 6.2이닝 동안 8안타를 맞았는데 모두 2루타 이상의 장타였다.

반면 존슨을 상대로 최악의 경기를 치른 선수는
마이크 로웰(보스턴 레드삭스). 2002년 8월10일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 소속이던 로웰은 존슨에게 4타수 무안타에 삼진 4개를 당했다. 존슨이 이날 로웰을 상대로 던진 공은 모두 19개. 이중 16개가 스트라이크였다. 로웰은 12번 스윙을 해 간신히 파울볼 일곱개를 만들었고 시원한 헛스윙을 다섯 번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이날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플로리다 외야수 에릭 오웬스는 " 4타수 4안타를 친 기분 " 이라며 " 왜냐하면 삼진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기 때문 " 이라고 말했다.

9개의 공으로 한 이닝 탈삼진 세 개를 잡은 2001년 8월23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 6회는 최고의 이닝. 존슨은 6회 토니 맥나이트, 개리 매튜스 주니어, 잭 윌슨을 모두 삼구삼진으로 처리했다. 존슨이 이 경기에서 7이닝 동안 탈삼진 16개를 잡아내고도 5안타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최악의 경기, 최악의 이닝은 1994년 4월1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 그 경기에서 존슨은 2.1이닝 동안 디본 화이트와 조 카터에게 홈런을 맞는 등 11실점을 기록했다. 볼넷 6개를 내주는 등 투구수가 무려 95개. 1회에는 열명의 타자를 맞아 볼넷 5개에 44개의 공을 던지며 4실점했다.
그날 경기가 끝난 뒤 존슨은 " 나는 파워가 빠진 파워피처였다 " 고 최악의 피칭을 한 소감을 밝혔다.

존슨을 상대로 가장 이상한 기록을 남긴 타자는 도루왕 리키 헨더슨. 헨더슨은 존슨을 상대로 통산 타율 1할1푼9리의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출루율은 무려 3할8푼8리. 59타수 7안타에 그쳤지만 볼넷을 26개나 얻어낸 덕분이다.

하지만 국내 팬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존슨의 장면은 따로 있다. 한국인 야구팬이라면 존슨을 상대로 2루타를 친 구대성을 잊을 수 없다. 2005년 뉴욕 메츠에서 활약한 구대성은 그 해 5월21일
뉴욕 양키스와 인터리그 경기 7회초에 구원등판한 뒤 7회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전 경기 타석에 들어섰다가 홈플레이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선 채 전혀 타격을 할 뜻을 보이지 않아 미국 팬들과 언론의 조롱을 받은 구대성이었다.

하지만 이날 구대성은 볼카운트 1-1에서 존슨이 무심코 던진 한복판 직구를 통타, 중견수 키를 넘어
셰이스타디움 가운데 펜스까지 굴러가는 통렬한 2루타를 쳤다. 게다가 2루주자 구대성은 다음 타자 호세 레셰스의 보내기 번트 때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비운 틈을 타 2루에서 홈까지 쇄도해 멋진 슬라이딩으로 세이프 됐다.

존슨은 낭패감에 고개를 떨궜고 셰이스타디움에는 " 구대성 " 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당시 경기를 중계한 캐스터는 " 메츠 팬들의 목소리를 한국에 있는 팬들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과장하기도 했다.

/알링턴=김홍식 특파원
dio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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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존슨의 닉네임 '빅 유닛'의 유래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어하는 투수, 나이트 매어, 빅 유닛 랜디 존슨이 22년 메이저리그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으며 은퇴를 선언했다.

존슨은 "야구경기에서 내가 더 이상 보여줄게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랜 기간 피칭을 했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은퇴를 선언해야 할 시간을 맞았다." 라고 말했다. 투수로써는 드물게 30살이 되어서야 피칭에 눈을 떠 40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랜디 존슨,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좌완투수가 마침내 전 세계의 야구팬들과 안녕을 고했다.
 
타자들이 가장 상대하기 힘든 투수 1위

2006년 6월 7일 SI.COM은 470명의 현역타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내용은 "당신이 만났었던 투수중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투수는 누구인가?" 였다.

당시 뉴욕 양키스 소속이었던 랜디 존슨은 13.4%의 득표율로서, 2위를 차지한 로저 클레멘스의 7.9%를 거의 두 배차로 따돌리며 1위에 올랐다.

선천적 재능과 타고난 구위

고교 시절 랜디 존슨은 야구와 농구에서 재능을 보였다. 1982년 리버모어 고등학교 소속의 랜디 존슨은 자신의 마지막 고교 선발등판경기에서 퍼펙트 경기를 기록했다. 이 해 존슨은 66이닝동안 122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존슨은 고교 졸업시즌에 아웃카운트의 3분의 2가량을 삼진으로 기록했을 정도로 뛰어난 구위를 가지고 있었다. 존슨은 졸업후 캘리포니아 지역의 USC에 입학했다. 마크 맥과이어가 존슨과 같은 대학의 야구부원이었다. 맥과이어는 존슨의 위력적인 피칭을 보고 투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말한바 있다. 존슨은 야구부의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했지만 때때로 제구력 문제를 드러냈다.

빅 유닛의 유래

1988년 랜디 존슨의 첫 번째 팀이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이었다. 팀내 배팅 연습을 하던 중 2미터 7센티의 신인투수와 4회 도루왕과 한번의 NL 타격왕을 차지한 베테랑 팀 레인스가 외야에서 머리와 머리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170대 초반의 작은 키를 소유한 팀 레인스는 거구의 존슨과 부딪히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YOU'RE A BIG UNIT!" 그 이후 랜디 존슨의 닉 네임은 빅 유닛이 되었다. 아마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닉 네임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선수의 특성을 나타내는 닉네임일 것이다. 

놀란 라이언과의 만남

시애틀로 이적한 존슨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으로 아메리칸 리그 볼넷 1위를 기록했다. 2미터 7센티의 좌완 투수가 내려꽂는 시속 160키로에 이르는 강속구는 타자를 압도했다. 그러나 존슨의 문제는 제구력이었다. 1991년 7월 밀워키 부르워스전에서 존슨은 4이닝동안 10개의 볼넷을 기록했고 1992년 5월 볼티모어전에서도 4.1이닝동안 10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무너졌다. 존슨을 구원한 선수는 다름 아닌 통산 탈삼진 왕 놀란 라이언이었다.
 
1992년 후반 존슨은 탈삼진왕 놀란 라이언과이의 만남을 통해 투수로써 한단계 도약하며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로 탈바꿈한다. 존슨과의 미팅에서 라이언은 존슨의 피칭 동작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존슨은 피칭동작의 교정과 함께 놀라운 제구력을 얻게 되었다. 91년 9이닝당 볼넷 6.8, 92년 6.2를 기록했었던 존슨은 라이언의 조언으로 투구폼을 교정한 다음 시즌인 1993년, 9이닝당 볼넷이 이전의 절반수준에 가까운 3.5로 떨어졌고 삼진은 300대를 돌파했다.
 
존슨은 93년부터 2004년 기간동안 90마일 후반대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앞세워 5회 사이영상 수상, 3회 사이영상 2위, 1회 3위등 최고의 좌완투수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한다. 존슨이 라이언을 좀더 빨리 만났었다면 야구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귀가 솔깃해지는 흥미로운 가정이다.
 
빅 유닛의 백넘버 51번
 

랜디 존슨은 커리어 대부분을 백넘버 51번으로 활약했다. 1993년 랜디 존슨은 9월 26일 매리너스 경기에서 부상을 입고 은퇴를 선언한 놀란 라이언을 기리기 위해서 라이언의 백넘버 34번으로 등판했다.
 
랜디 존슨은 1998년 매리너스를 떠나 휴스턴을 거쳐 1999년 애리조나 디백스로 이적한다. 비록 존슨이 매리너스를 떠났지만 매리너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투수인 랜디 존슨의 백넘버 51번의 의미는 컸다.
 
일본프로야구에서 51번을 사용했던 이치로 스즈키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 이후 랜디 존슨에게 '절대로 51번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겠다' 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치로는 데뷔 시즌인 2001년 AL MVP를 차지하며 존슨과 한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양키스 소속의 랜디 존슨은 백넘버 41번을 달아야만 했다. 양키스 프랜차이즈 스타인 버니 윌리암스 역시 51번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존슨은 그 당시 자신의 나이였던 41번을 선택했다.

2007년 애리조나로 복귀한 존슨은 다시 자신의 번호인 51번을 사용했다. 2009년 존슨이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팀인 샌프란시스코 쟈이언트와 계약했을 때 51번은 투수 노아 로우리가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우리가 대투수인 랜디 존슨에게 51번을 양보함으로써 존슨은 자신의 마지막 팀에서 51번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과 MVP

랜디 존슨은 커트 실링과 함께 2001년 신생팀 아리조나 디백스를 이끌고 거함 양키스를 침몰시키며 월드 시리즈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월드 시리즈 2번의 선발등판경기에서 2승 무패를 기록한 존슨은 마지막 7차전에서 8회 초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1 이닝동안 무실점으로 양키스 타선을 잠재우며 9회말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했다. 루이스 곤잘레스의 끝내기 안타로 김병현을 벼랑끝에서 구원해준 월드시리즈 7차전의 승리투수는 랜디 존슨이 되었다. 시리즈 3승 무패를 기록한 존슨은 실링과 월드시리즈 공동 MVP에 선정되었다. 존슨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을 200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이라고 말했다.

22년의 메이저리그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은 46살의 존슨은 향후 코치가 될 계획임을 밝혔다. 존슨은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1년간 스탭으로 활동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오랜 기간 공을 던진 나는 축복받은 선수였다."

축복받은 자는 랜디 존슨이 아니라 그의 압도적인 피칭을 보아온 야구팬이었다. 존슨은 28살부터 40살 기간동안 10번(리그이동)이나 다름없는 9번의 탈삼진 1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6번의 300K 시즌을 기록한 존슨은 야구역사에서 9이닝당 가장 많은 삼진을 기록한 투수 1위로, 가장 많은 삼진을 기록한 좌완투수로 커리어를 마쳤다.
 
38살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40살에 퍼펙트 경기의 위업을 달성한 투수를 본 것은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의 행운이었다. 전설중의 전설이 야구사의 한 막을 장식하며 퇴장했다. 앞으로 랜디 존슨 같은 투수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랜디 존슨 연도별 성적

연도

게임

탈삼진

방어율

비 고

1988

몬트리올

  4

  3

  0

  25

2.42

 

1989

몬트리올/시애틀

29

  7

13

130

4.82

 

1990

시애틀

33

14

11

194

3.65

올스타

1991

시애틀

33

13

10

228

3.98

 

1992

시애틀

31

12

14

241

3.77

 

1993

시애틀

35

19

  8

308

3.24

올스타

1994

시애틀

23

13

  6

204

3.19

올스타

1995

시애틀

30

18

  2

294

2.48

올스타, 사이영상

1996

시애틀

14

  5

  0

85

3.67

 

1997

시애틀

30

20

  4

291

2.28

올스타

1998

시애틀/휴스턴

34

19

11

329

3.28

 

1999

애리조나

35

17

  9

364

2.49

올스타, 사이영상

2000

애리조나

35

19

  7

347

2.64

올스타, 사이영상

2001

애리조나

35

21

  6

372

2.49

올스타, 사이영상

2002

애리조나

35

24

  5

334

2.32

올스타, 사이영상

2003

애리조나

18

  6

  8

125

4.26

 

2004

애리조나

35

16

14

290

2.60

올스타

2005

뉴욕 양키스

34

17

  8

211

3.79

 

2006

뉴욕 양키스

33

17

11

172

5.01

 

2007

애리조나

10

  4

  3

  72

3.81

 

2008

애리조나

30

11

10

173

3.91

 

2009

샌프란시스코

22

  8

  6

  86

4.88

 

통 산

 

618

303

166

4875

3.29

올스타 10회, 사이영상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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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존슨, 역사를 남기고 사라지다

 

랜디 존슨(46). 또 하나의 전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존슨은 6일(한국시간) 은퇴를 선언하고 1988년부터 시작한 22년 간의 메이저리거 생활을 접었다.

 

 

로저 클레멘스, 그렉 매덕스에 이어 존슨까지. 이로써 90년대 '4대 투수' 중 3명이 유니폼을 벗었다. 그들과 자웅을 겨뤘던 커트 실링은 이미 2007년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끝냈고, 지난해 1이닝도 던지지 못한 톰 글래빈 역시 은퇴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존 스몰츠가 은퇴를 결심하는 순간, 이들에 의해 찬란하게 빛났던 90년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릴 전망이다.

 

지난해 역대 24번째로 300승을 달성했던 존슨은 이로써 놀란 라이언(5714)에 이은 역대 2번째 5000K에 불과 125개를 남기고 은퇴하게 됐다(4875).

 

2008년 존슨이 184이닝을 던져 173개를 잡아낼 때까지만 해도, 5000K는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존슨은 지난해 부상으로 96이닝밖에 던지지 못했고 86개 추가에 그쳤다. 이대로라면 존슨은 140이닝을 던져야 5000K를 달성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만 46세가 넘어 14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너클볼러 필 니크로(46세 220이닝, 47세 210이닝)와 지난 시즌의 제이미 모이어(162이닝)뿐이다. 1963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여덟인 존슨은 몸에 안 아픈 곳이 없다.

 

지난해 9월 말, 존슨은 두 달 반 만에 부상에서 돌아와 불펜투수로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불펜투수 존슨'이 위력적인 피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존슨이 4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평균자책점 6.23에 피안타율 .368였다. 존슨은 이 때 자신에게 때가 왔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한편 존슨은 8승을 거둔 지난해가 마지막 해가 됨으로써, 2008년 8승으로 은퇴한 매덕스와 함께 마지막 해에 7승보다 더 많은 승수를 올린 2명뿐인 300승 달성자가 됐다. 클레멘스가 마지막 해에 따낸 승수는 6승이며, 글래빈은 2승이다.

 

실링과 함께 해 더 빛났던 존슨 ⓒ gettyimages/멀티비츠

존슨의 퇴장과 함께 또 하나의 기록도 전설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바로 300탈삼진이다. 김병현 덕분에 존슨의 애리조나 시절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던 우리는, 300K가 그렇게 어려운 기록인줄은 미처 몰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K를 달성한 선수는 14명. 그 중 7명은 300이닝 이상을 던지고 달성했다. 33개의 300K 기록 중에서 250이닝 이하에서 만들어진 것은 단 6개. 그 중 3개를 존슨이 만들어냈다(마르티네스 2회, 라이언 1회).

 

존슨은 놀란 라이언과 함께 가장 많은 6번의 300K를 달성했다. 둘을 제외하면 4번을 달성한 선수도 없다(샌디 코팩스, 커트 실링 3회). 5년 연속 300K(1998~2002)는 라이언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라이언은 3년 연속이 최고 기록이다.

 

그렇다면 300K는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팀 린스컴(25·샌프란시스코)은 지난해 225⅓이닝을 던져 261개를 잡아냈다. 지난해의 린스컴이 300K를 달성하려면 24이닝을 더 던지거나(259이닝), 9이닝당 탈삼진 숫자를 10.4개에서 12.0개로 끌어올려야 한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9이닝당 탈삼진이 12개가 넘었던 투수는 총 6번을 기록한 존슨과 1998년의 케리 우드, 1999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스 3명뿐이다.

 

2008년 CC 사바시아(29·뉴욕 양키스)는 259이닝에 가장 근접한 253이닝을 던졌다. 하지만 사바시아의 9이닝당 탈삼진은 8.93개로 사바시아는 251개를 기록했을 뿐이다. 지난해 저스틴 벌랜더(26·디트로이트)는 2004년 존슨(290개) 이후 가장 많은 26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하지만 벌랜더가 300K를 달성하려면 지난해보다 28이닝이 더 많은 268이닝을 던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선발투수의 투구 이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먼훗날 우리는 마치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듯 꼬마 야구팬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옛날 메이저리그에는 300K를 밥 먹듯 했던 공포의 투수가 있었다고.

 

존슨은 역사상 아웃카운트에서 차지하는 탈삼진 비율이 가장 높은 선수다. 역사상 우드(10.38)와 마르티네스(10.04) 만이 존슨(10.61)과 함께 9이닝당 10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고 있지만(통산 1000이닝 이상), 지난 2년간 평균 7.3개에 그친 마르티네스는 올시즌에 두자릿수가 붕괴될 것이 확실시되며, 겨우 1000이닝을 넘긴 우드는 순수한 선발투수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세이철 페이지에 대한 수많은 전설 중 하나에 따르면, 어느날 페이지는 마운드에 올라오자마자 야수들에게 모두 자리에 털썩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9개의 공을 던져 이닝을 끝내버렸다. 야수들은 편안히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현대 야구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장면이지만, 그래도 이 장면에 가장 어울릴 만한 선수를 고르라면 역시 존슨일 것이다.
 
존슨은 30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2번째로 안타를 적게 맞은 투수다. 존슨의 통산 피안타율은 .221로 .204를 기록한 라이언 다음이다. 라이언과 3위 톰 시버(.226)는 투수들의 시대 일부를 보낸 투수들이며, 4위 밥 깁슨(.228)은 최고의 수혜자 중 1명이다(마르티네스 2827이닝 .214).

 

또한 존슨은 역사상 좌타자를 가장 완벽하게 처리한 투수로 남을 전망이다. 라이언의 통산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03. 하지만 존슨은 .199다. 이는 빌리 와그너(.200)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기록이다. 팬들에게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했으며, 타자에게는 악마가 빚어낸 것 같았던. 그와 같은 투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영원히 기억될 그의 눈빛 ⓒ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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