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마지막이 될 그렉 매덕스의 350승 전설...
한국시간으로 (2008년)5월 11일 저 위대한 '마스터' 그렉 매덕스가 드디어 개인 통산 350번째 승리를 달성했다. 지난 달 14일 349번째 승리를 거둔 이후 5번째 도전 만에 이루어낸 값진 기록이다. 24일 경기에서 매덕스의 승리를 날렸던 트레버 호프만도 이번 경기만큼은 9회를 깔끔하게 막아내며 친구의 승리를 지켜주었다.
▶ (아마도) 역사상 마지막 350승
매덕스의 350승은 역대 9번째. 하지만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 10번째 350승은 없다 " 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지난해 탐 글래빈이 300승을 달성했을 때부터 " 앞으로 또다시 300승 투수가 나타날 수 있을까? " 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286승을 거두고 있는 랜디 존슨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 지을 문제는 아니지만, 존슨을 제외하고는 현역 선수 가운데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수는 없다. 300승도 불투명한 상황에, 350승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말이 350승이지 20승씩 17년을 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위대한 기록이다. 최근 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20승 투수는 지난해의 자쉬 베켓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98마일의 강속구를 던져서 삼진을 잡아내는 파워피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팀에서 유망주를 키울 때도 그러한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며 조련한다. 컨트롤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그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팀에서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투자한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을 경우에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선수들도 한 둘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 통산 200승 이상을 달성한 10명의 현역 투수 가운데 불같은 강속구와 더불어 구위로 승부한 선수는 랜디 존슨과 존 스몰츠(210승), 페드로 마르티네즈(209승)뿐이다. 나머지 7명의 투수들은 구위 보다는 뛰어난 컨트롤과 로케이션으로 살아남았다.
'피칭'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은 선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200승이라는 고지다. 300승은 말할 것도 없다. 구위로 승부했던 스몰츠는 30대 초반에 선수생활의 위기를 느낄만한 부상에서 겨우겨우 벗어난 경험이 있고, 페드로도 30대 중반이 된 이후로 제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직 특이한 케이스인 랜디 존슨만이 40세가 되어서도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였을 뿐이다.
롱런이 기본 전제조건인 300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지금같이 파워피처를 선호하는 경향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게 몇 해 반짝하다가 사라진 파워피처가 어디 한 둘이던가?
한국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일본 프로야구에서조차도 이제 300승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5일 선발 로테이션과 투수들의 분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야구에서 300이라는 승수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와도 같은 것. 그렇기에 매덕스의 350승은 더더욱 빛이 난다.
▶ 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의 2000년대
매덕스는 지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다.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을 비롯해 그 시대의 골드 글러브까지도 혼자서 독식했다. 그 10년(1990~1999) 동안 매덕스는 2394.2이닝을 던졌고 2.54의 방어율로 176승(클레멘스 152승)을 거뒀다. 그 누가 뭐래도 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는 매덕스다.
하지만 21세기는 더 이상 매덕스의 시대가 아니었다.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2점대를 유지하던 통산 방어율은 어느새 3점대로 진입했고, 지난 4년 동안은 매년 4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오히려 200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라면 매덕스의 뒤를 이어 4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한 랜디 존슨과 요한 산타나, 로이 오스왈트 등의 이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대에 들어선 후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는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그 대답 역시도 그렉 매덕스다. 2000년 이후로 129승을 거둔 매덕스는 팀 허드슨과 더불어 이 부문 공동 선두. 허드슨이 올해 5승 거두며 3승에 그치고 있는 매덕스를 앞섰기에 동률이 되었을 뿐, 지난해까지만 해도 단독 1위를 지켰었다.(랜디 존슨 126승)
'승'이라는 스탯이 투수의 능력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항목은 아니지만, 두 시대(여기서는 decade의 뜻)를 걸쳐서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엽기적이다. 만약 내년까지 매덕스가 건강하게 뛰어서 허드슨의 추격을 뿌리치고 1위 자리를 지킨다면 두 시대에 걸쳐 다승 선두를 지킨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선수가 된다. 그 유명한 사이 영이나 월터 존슨도 그와 같은 이적을 행하지는 못했다.
▶ 역대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
매덕스는 곧 로저 클레멘스를 따라잡고 역대 8위로 올라설 것이다. 올해 안으로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라이브볼 시대(1920년 이후) 최다승 투수인 워렌 스판의 기록도 가시권에 있다. 자타공인 '역대 최고의 투수' 월터 존슨의 벽이 너무나도 두텁기는 하지만, 매덕스는 그 자리조차도 넘볼 수 있는 유일한 투수다.
많은 이들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강속구 투수 '빅 트레인'(월터 존슨의 별명)에 대한 환상에 빠져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그는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자마자 전성기를 마감했던 많은 선수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30대 중반에 막 접어든 나이도 부담이 되긴 했겠지만, 1.55-1.90-2.21-1.27-1.49로 이어지던 방어율이 공인구가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3.13-3.51-2.99-3.48로 수직상승했다면 그것은 분명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경기에 사용하는 공 하나가 바뀌면서 전설적인 선수의 전성기도 함께 막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매덕스가 데뷔하던 당시는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던 '투수들의 시대'의 끝자락이었다. 그 후 메이저리그에는 '타자들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스테로이드 시대'가 찾아오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의 흥행을 위해 공격야구를 중시하는 풍토가 리그를 지배하며 수많은 규정이 바뀌기도 했다. 매덕스는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도 훌륭하게 살아남았고, 42살이 된 현재에도 건강하게 뛰고 있다.
그 뿐 아니라 20년 연속 두 자리 승이라는 위대한 금자탑까지도 쌓았다. 샌디 쿠펙스와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전성기가 아무리 태양처럼 환히 빛났다지만, 20년을 이어온 매덕스의 꾸준함과 비견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매덕스의 전성기 역시도 그들 못지않게 찬란했었다.
때문에 그렉 매덕스의 350승은 현대 야구에 있어 그 어떤 기록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심지어 뒤따를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존재 때문에) 지난해 배리 본즈가 경신한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보다도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내용을 Daum의 해외야구 섹션 메인화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게시판에서도. 필자가 예정에도 없던 매덕스 관련 칼럼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400승이라는 불가능을 향한 도전...
303승을 기록 중인 탐 글래빈의 350승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평가하면서 350승을 거둔 매덕스의 400승 가능성을 점친다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4년이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과 어떤 면에서 매덕스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인 제이미 모이어(1962년생)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이미 95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 투수가 난무하는 메이저리그에서 85마일도 되지 않는 패스트 볼을 가지고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350승이라는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도전은 끝이 아니다. 로저 클레멘스를 뛰어 넘고 워렌 스판을 지나 라이브볼 시대 최다승 투수가 되는 것이 1차 목표라면, 24승을 추가해 역대 다승 3위에 오르는 것은 2차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최종적인 목표는 400승이 아닐까.
물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매덕스에게는 매 경기가 새로운 도전이다. 그리고 야구팬들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을 환상'을 꿈꾼다. 그 환상이 400승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살아있는 전설' 그렉 매덕스
이미 그렉 매덕스 는 '걸어 다니는 마일스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20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거두며 역대 다승 9위(347승)에 올라 있는 매덕스는 모든 야구인들의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로저 클레멘스가 스테로이드로 인해 침몰했음에도, 야구팬들이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매덕스의 존재 때문이다.
올 시즌에도 매덕스는 여러 가지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선 8승만 추가하면 클레멘스(354승)를 뛰어넘어 역대 다승 8위로 올라서고, 16승을 거뒀을 경우 워랜 스판(363승-6위)과 동률을 이루게 된다. 스판은 1920년 라이브볼 시대가 열린 이후 최다승을 거둔 투수. 매덕스가 스판을 뛰어넘는다는 말은 그가 역대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게 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통산 4814이닝을 던진 매덕스는 올 시즌 동안 186이닝만 소화하면 13번째로 5천 이닝을 돌파하게 된다. 말이 5천 이닝이지 20년 동안 250이닝씩(또는 200이닝씩 25년) 소화해야 달성 가능한 기록이다. 매덕스 보다 3살이 많은 랜디 존슨이 지금껏 3855이닝을 던졌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그 대단함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 17번으로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역대 최다를 기록 중인 그의 18번째 골드 글러브 수상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매덕스는 다소 재미있는 기록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매 경기를 최소한의 투구수로 마무리를 한다. 작년에는 경기 당 평균 투구수가 79.5개에 불과했을 정도. 심지어 2006년 7월 19일 휴스턴 에스트로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매덕스는 한 경기에서 100구 이상을 투구한 적이 없다. 그렇게 이어오던 것이 어느새 50경기 연속(현재 48경기 연속)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연히 역사상 그 어떤 투수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매우 특이하면서도 매덕스라는 투수의 위대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록이 아닐까 한다.
=================================================================================================================
그렉 매덕스, 350승 신화를 쓰다
젊었던 시절의 매덕스 & 안경 쓴 매덕스가 더 매덕스다웠다
133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9번째 350승 투수가 나왔다. 우리가 직접 목격한 것은 로저 클레멘스(354승)에 이어 2번째다. 11일(한국시간) 그렉 매덕스(42·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지 21년8개월, 719경기 만에 350번째 승리를 따냈다. 클레멘스와 마찬가지로 100% 선발승이다.
매덕스의 다음 목표는 워렌 스판(363승). 20세기에 태어난 최다승 투수다. 스판에 앞선 5명(사이 영, 월터 존슨, 피트 알렉산더, 크리스티 매튜슨, 퍼드 개빈)은 모두 1800년대생이다. 하지만 팬들은 보다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직접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전설의 숫자, 400승이다. 메이저리그에서 2번째이자 마지막 400승은 1926년에 나왔다.
만 42세 투수에게 50승을 더 기대하는 것은 고목나무 보고 꽃을 피우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필 니크로(318승)가 48살까지 뛰며 42번째 생일 이후 85승을 거둔 것은 너클볼투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42세 시즌에 23승을 기록하는 등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것 같았던 스판도 결국 '42세 이후 34승'에 그쳤다. 하지만 그 도전자가 매덕스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스카우트의 평가기준인 20-80스케일에서 '메이저리그 평균'인 50에 해당되는 패스트볼 구속은 90마일(145km)이다. 놀란 라이언은 27년을 뛰는 동안 90마일 미만의 패스트볼을 1개도 던지지 않았다. 46살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강속구를 뿌린 라이언은 신화다. 하지만 90마일에도 미치지 않는 패스트볼로 350승을 거둔 매덕스 역시 신화다.
피칭 사이언티스트
오클랜드의 마무리투수 휴스턴 스트리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정성껏 모은 녹화 테이프를 본다. 화면 속 주인공은 미모의 여배우가 아니라 매덕스다. 스트리트는 매덕스가 타자를 잡아내는 과정이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다고 한다. 그는 매덕스를 '사이언티스트'라고 부른다.
매덕스가 던지는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서클 체인지업, 슬라이더, 스플리터, 싱커, 커브의 8가지. 이 모든 구종은 다시 속도과 궤적을 바꿔가며 들어온다. 한 경기에서 같은 공이 같은 코스, 같은 속도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매덕스가 그 경기에서 80개의 공을 던지면 그날 던진 공의 종류는 80가지라는 농담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매덕스의 첫번째 성공요인은 제구력이다. 그에게 홈플레이트의 양 모서리에 꽂히지 않는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통산 715경기에 선발로 나선 매덕스는 31.3%인 224경기에서 1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1개를 내준 경기는 220경기(30.8%), 2개를 내준 경기는 142경기(19.9%)다. 3개 이상의 볼넷을 허용한 경기는 18%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체 볼넷의 18%는 고의4구다. 매덕스보다 고의4구의 볼넷이 높은 투수는 없다. 고의4구를 제외할 경우 매덕스의 9이닝당 볼넷수는 1.486개. 1900년 이후 1위는 1.589개의 크리스티 매튜슨이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에는 고의4구가 홈런보다도 더 희귀한 장면이었음을 감안하면, 매튜슨을 넘어서는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전설적인 제구력의 투수는 과거에도 많았다. 백인이었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됐을 것이라는 세이첼 페이지는 홈플레이트 위에 놓인 껌종이를 맞힐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구종을 모두 완벽히 제구할 수 있는 투수는 없었다. 매덕스의 제구력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덕스도 눈을 감은 포수의 미트에 그대로 공을 꽂아넣은 일화가 있다.
퀘스텍시스템의 등장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투수는 매덕스다. 자신들의 스트라이크존에 점수가 매겨지기 시작한 후 주심들은 매덕스의 스트라이크에 대해 가장 인색해졌다. 그만큼 주심들은 매덕스의 제구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애매한 공이 들어오면 일단 손을 올리고 봤다. 왜냐고? 매덕스니까. 그만큼 매덕스는 타자와 상대하기에 앞서 먼저 주심부터 완벽하게 제압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매덕스의 최고 무기는 투심이다. 메이저리그에 투심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 바로 그다. 매덕스는 구속보다 무브먼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에 93마일 포심 대신 87마일 투심을 택했다.
손가락을 통해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매덕스표 투심의 무브먼트는 다른 투심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패스트볼(fastball)이 아니라 '빠른 변화구(fast-breaking ball)'다. 매덕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인훈련은 손가락의 악력을 기르는 것이다. 현란한 매덕스표 투심의 원동력은 바로 손가락의 힘과 기술이다. 매덕스의 투심은 특히 좌타자 입장에서 '몸쪽으로 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깥쪽으로 급격히 휘어져 나간다.
1990년대 초반 매덕스는 '왕서방이 싱커 던지듯' 투심을 뿌려댔다. 전성기 시절의 투심 구사 비율은 75%에 달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게 되고 87-89마일이었던 투심 구속이 84-86마일대로 떨어지자, 구질 다양화라는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했다.
특히 딕 폴 투수코치에게 배웠지만 그동안 던질 필요가 없었던 컷패스트볼을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몸쪽을 파고드는 커터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투심, 그리고 서클체인지업의 조합은 좌타자에게는 악몽이었다. 마리아노 리베라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매덕스의 커터도 메이저리그 정상급 수준이다.
구속 변화, 제구력, 무브먼트에 이어, 매덕스 피칭을 대표하는 마지막 단어는 '수싸움'이다. 많은 타자들이 매덕스와 대결하고 나면 자신의 머릿속을 난도질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매덕스를 '외과의사'라고 한 토니 그윈의 기준으로 보면, 매덕스는 뇌수술 전문의다. 웨이드 보그스도 마치 매덕스가 글러브 안에 수정공을 숨겨넣고 타자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매덕스는 다른 투수들과 달리 볼배합을 포수에게만 의지하지 않는다. 매덕스의 볼배합은 비결은 단순하다. 너무 복잡하게 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자들은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다 결국 매덕스에게 말려든다. 관찰력 역시 상상을 뛰어넘는다. 매덕스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모습을 보고 어떤 공을 노리고 있는지를 알아낸다. 그가 17개의 골드글러브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던진 공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를 알고 있는 덕분이다.
매덕스는 제구력의 마술사다. 그리고 무브먼트의 전도사다. 또한 속도 조절의 천재이며, 두뇌피칭의 대가다. 피칭을 예술로 승화시킨 마운드 위의 예술가다.
매덕스를 만든 사람들
13살 '소년 매덕스'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다. 전직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랄프 메더였다. 지병 때문에 은퇴한 메더는 라스베거스로 옮겨와 어린 선수들을 가르쳤다. 매덕스도 그의 제자가 됐다. 메더가 배출한 메이저리그 투수는 단 3명. 매덕스 형제와 마이크 모건이다. 하지만 이 3명이 메이저리그에서 뛴 시즌은 도합 60년에 이른다. 모건은 22시즌, 형은 15시즌을 뛰었고, 매덕스는 23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메더가 매덕스에게 가르쳐준 것은 구양신공 같은 무림의 절대무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칭 교본 1장 1절에 해당되는 뻔한 내용이었다.
메더는 있는 힘껏 공을 던지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매덕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네 신체조건으로 그렇게 강하게 던지려고만 해서는 타자를 제압할 수 없을 게다" 그리고 힘을 빼고 던져 정확한 위치에 집어넣는 훈련을 시키고 또 시켰다. 메더가 강조한 것은 '볼 같은 스트라이크'와 '스트라이크 같은 볼'이었다.
매덕스는 메더로부터 그의 투수 인생을 지배하게 될 단어인 '무브먼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메더는 매덕스의 팔을 11시에서 10시로 내리게 했다. 그리고 투심 패스트볼 그립을 가르쳐 줬다. 그러자 공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매덕스는 무브먼트의 의미를 깨달았다.
당시 매덕스는 또래 투수보다 빨리 배운 체인지업을 이용해 또래 타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더는 체인지업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만의 패스트볼을 만들 때'라면서 지겹도록 패스트볼만 던지게 했다. '투수 매덕스'의 기초는 남들보다 훨씬 탄탄하게 다져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1984년, 매덕스는 네바다주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수가 됐다. 하지만 그를 보러 찾아오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거의 없었다. 대학들도 매덕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프로필에 적혀 있는 신체조건 때문이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매덕스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매덕스가 받아온 유니폼을 줄여주는 것이었다.
그해 봄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트 덕 맵슨은 구단으로부터 매덕스를 보고 오라는 귀찮은 지시를 받았다. 컵스는 1년 전 같은 학교의 다른 투수를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매덕스라는 특이한 존재를 알아냈다.
매덕스를 본 맵슨은 실망했다. 스피드건과 스톱워치를 가지고 여러가지를 쟀지만 뭐 하나 만족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패스트볼 구속도 84마일(135km)에 불과했다. 배트보이가 마운드에 올라와 공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장난에는 일가견이 있는 매덕스는 실제로 데뷔 첫 해 가장 좋아한 선배인 릭 서클리프와 함께 배트보이인 척하고 다니며 많은 상대팀 선수와 구장 관리인을 골탕먹었다).
하지만 맵슨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을 너무도 쉽게 던지는 모습이었다. 경기장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매덕스의 피칭 동작을 둘러보니, 그보다 힘을 적게 들이고 던질 수 있는 투구폼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 7회가 되자 맵슨은 또 한 번 놀랐다. 위기를 맞은 매덕스가 갑자기 돌변, 강속구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속도를 재보니 90마일이었다. 그제서야 맵슨은 매덕스가 지금까지 전력피칭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았다.
맵슨은 댈러스 그린 단장에게 매덕스를 뽑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보고했다. 컵스는 맵슨을 믿기로 했고 결국 자신들이 가진 2번째 지명권(31순위)을 매덕스에게 썼다. 자신이 메이저리그 팀의 선택을 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매덕스는 하와이에서 졸업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매덕스라는 괴물을 창조해낸 '프랭켄슈타인 박사'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메더는 드래프트 1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1987년 21살의 매덕스는 의기양양하게 풀타임 첫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큰 낙담과 함께 시즌을 마감했다(6승14패 5.61). 실패를 견딜 수 없었던 매덕스는 시즌 중 감독에게 마이너리그로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다.
매덕스에게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것을 눈치챈 딕 폴 투수코치는 구단에 매덕스를 베네수엘라 윈터리그에 보내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자기도 따라갔다. 폴이 목표로 삼은 것은 체인지업의 완벽한 장착. 그리고 몸쪽승부였다. 매덕스는 윈터리그에서 지겹도록 서클 체인지업만 던졌다. 그리고 이듬해 메이저리그에서 체인지업을 가장 잘 던지는 투수 중 1명이 됐다.
또한 폴은 매덕스에게 '삼진을 잡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삼진은 우연한 산물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매덕스는 이후 폴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랐고 타자를 잡아내는 데 가장 적은 공을 쓰는 투수가 됐다. 힘의 사용과 부상 위험성을 최소화시킨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 데다 공도 적게 던지는 투수. 매덕스는 롱런할 수밖에 없었다.
매덕스는 자신을 행운아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좋은 스승을 만났다고 자부한다. 메더와 폴 외에도, 마이너리그 시절 바깥쪽 승부의 기초를 닦아준 짐 라이트, 역시 마이너리그 시절 투수코치로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준 짐 콜번, 그리고 자신을 진정한 투수로 완성시켜준 리오 마조니. 매덕스가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달아줘야 할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매덕스도 이들의 합작품이다.
인물과 기록으로 보는 매덕스 A-Z
Atlanta(애틀랜타) : 매덕스의 350승은 컵스에서 올린 133승(38%) 샌디에이고에서 올린 17승(5%) LA 다저스에서 올린 6승(2%)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거둔 194승(55%)으로 구성되어 있다.
Best season(최고의 시즌) : 최고의 전성기는 2년 연속 만장일치 사이영상을 수상한 1994-1995년(53경기 20완투, 35승8패 1.60). 안타깝게도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들로, 선발 17경기를 잃었다. 매덕스는 1994년 파업이 일어나기 직전 7경기 5완투 5승2패 1.03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파업을 주도한 선수 대표는 팀 동료 톰 글래빈이었다.
Cy Young(사이 영) : 사이 영의 <15년 연속 15승>과 <19년 연속 10승>은 511승과 함께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매덕스는 <17년 연속 15승>과 <20년 연속 10승>으로 이를 넘어섰다. 2⅓이닝만 더 던졌다면 <19년 연속 200이닝>이라는 영의 또 다른 기록도 깰 수 있었다. "립켄의 연속 출장에는 수많은 슬럼프와 부진했던 시즌들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매덕스의 연속기록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엘리어트 캘브의 말이다.
Diamondbacks(애리조나) : 매덕스는 사막의 방울뱀을 가장 무서워한다? 애틀랜타(8승)를 제외한 모든 내셔널리그 팀들을 상대로 10승 이상을 거둔 매덕스지만, 애리조나를 상대로는 2승에 불과하다(통산 19경기 2승11패 5.29). 2000년 승리 후 2007년 2번째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11경기에서 8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뱀사골(체이스필드)에서의 성적 역시 형편없다(12경기 1승7패 6.01).
Eddie(에디 페레스) :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호흡을 맞춘 매덕스의 첫 전담포수. 매덕스가 하비 로페스의 방망이를 마다하고 페레스를 택한 것은 그의 완벽한 포구능력 때문이었다. 특히 움직임이 심했던 매덕스의 공은 포수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하고 볼이 되기도 했다. 이후 매덕스는 미트질이 좋은 포수를 보면 군침을 흘렸고, 폴 바코가 페레스에 이은 '매덕스의 남자'가 됐다.
Family(가족) : 매덕스가 가장 존경하는 투수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손쉬운 방법. 딸과 아들의 이름을 보면 된다. 매덕스는 딸의 이름을 아만다 '세이첼' 매덕스, 아들의 이름은 체이스 '페이지' 매덕스로 지었다.
Gold glove(골드글러브) : 황금장갑 17개는 짐 캇(투수)과 브룩스 로빈슨(3루수·이상 16개)을 넘어선 역대 최고기록. 어쩌면 20개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6년 이후 실책이 단 1개인 그에도 약점이 있으니, 바로 도루다. 매덕스는 통산 718경기에서 521개를 내줬다(글래빈 673경기 225개). 그러나 도루 저지에 대한 그의 무관심은 오히려 철저한 손익계산에 의한 것일 수도.
Hathcer(해처) :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매덕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임무는 대주자였다(얼마전 매덕스는 통산 10번째 대주자로 나섰다). 다음 이닝에서 투수로서 데뷔한 매덕스는, 그러나 2번째 상대인 빌리 해처에게 연장 18회 결승 솔로홈런을 맞았다. 350승 투수라고 해서 출발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Injury(부상) : 메이저리그에서 23년을 보내는 동안, 매덕스는 부상자명단에 딱 1번 올랐다.
Justice(데이빗 저스티스) : 1966년 4월14일(현지시간)에 태어난 매덕스와 생년월일이 같은 메이저리거가 있다. 데이빗 저스티스와 스티브 에이버리다. 셋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애틀랜타에서 함께 뛰었다.
Killer(천적) : 매덕스를 상대로 두자릿수 홈런을 때려낸 타자는 단 1명. 10개를 기록한 루이스 곤살레스다(배리 본즈 8개). 하지만 매덕스를 가장 잘 공략한 타자는 따로 있다. 천하의 매덕스도 바깥쪽 공을 툭툭 밀어치는 토니 그윈의 타격 기술은 당해내지 못했다(통산 상대 타율 .429)
LASIK(라식수술) : 안경을 쓴 매덕스는 '교수님'으로 불렸다. 하드렌즈가 맞지 않은 매덕스는 1999시즌 중반 느닷없이 라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틀 후 마운드에 오른 매덕스는 8이닝 1실점 승리를 시작으로 11경기에서 9승(1패)을 따냈다. 지금도 미국에서 라식수술을 권하는 홍보물에는 매덕스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Mike(형 마이크) : 형 마이크의 증언.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매덕스는 자신의 승산이 없는 승부는 아무리 꼬셔도 하지 않았다고.
No hitter(노히트노런) : 로저 클레멘스, 톰 글래빈, 페드로 마르티네스, 그리고 매덕스의 공통점. 노히트노런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October(10월) : 매덕스의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은 32경기(30선발) 11승14패 3.34. 글래빈(35선발 14승16패 3.42)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반면 '가을 남자' 스몰츠의 성적은 40경기(27선발) 15승4패 2.65다.
Padres(샌디에이고) : 투수로서 칠순잔치까지 끝낸 매덕스가 실버 타운으로 택한 곳은 '투수의 낙원' 펫코파크. 샌디에이고 입단 후 평균자책점은 홈이 3.23, 원정이 4.71다. 팀 공격을 보면서 속이 터지더라도 꾹 참아야하는 이유다. 샌디에이고가 먼저 나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매덕스는 쉰살이 될 때까지 뛰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Quotation(인용) : "난 매덕스 같은 투수가 되고 싶었다" - 명예의전당 헌액자이며 324승 투수인 돈 서튼
Retired Number(영구결번) : 애틀랜타에서 톰 글래빈의 47번, 존 스몰츠의 29번, 치퍼 존스의 10번, 그리고 매덕스의 31번은 틀림없는 영구결번이다. 그렇다면 컵스는 매덕스에게 영구결번을 줄까. 보스턴은 클레멘스가 나간 후 21번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컵스는 31번을 보호하지 않았다. 컵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영구결번 심사가 가장 엄격한 팀. 영구결번자는 론 산토, 어니 뱅크스, 라인 샌버그, 빌리 윌리엄스 4명뿐이다.
Spain(스페인) : 매덕스는 텍사스주 샌안젤로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공군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살부터 7살 때까지 보냈다. 매덕스가 8살 때 아버지는 군을 제대하고 라스베거스 MGM 그랜드 카지노의 딜러가 됐다. 매덕스는 소프트볼 경력 20년의 아버지로부터 야구, 그리고 포커와 체스를 배웠다.
Tom(톰 글래빈) :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해 2명의 300승 투수가 태어난 것은 1887년(월터 존슨, 피트 알렉산더) 1944년(톰 시버, 스티브 칼튼), 그리고 1966년(매덕스, 글래빈)이다. 이 중 동료로 뛴 커플은 매덕스와 글래빈뿐이다. 둘이 같이 뛰며 올린 347승은 역대 5위에 해당된다.
Uniform number(등번호) :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데뷔 때부터 2006년까지 21년간 31번을 달았다. 하지만 트레이드된 다저스에서 브래드 페니의 거부로 36번으로 바꿨다. 페니는 이후 매덕스를 사부 받들 듯하면서도 등번호는 양보하지 않았다. 샌디에이고에서 31번은 데이브 윈필드의 영구결번. 이에 매덕스는 30번을 달고 있다.
Vizquel(오마 비스켈) : 매덕스의 3000번째 탈삼진 제물. 비스켈은 1000삼진보다 1만타수에 더 먼저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타자다. 역사상 1000볼넷보다 먼저 3000탈삼진에 도달한 투수는 퍼거슨 젠킨스에 이은 역대 2번째였다(이후 커트 실링과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가세).
Walter(월터 존슨) : 1994-1995년, 매덕스는 2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매덕스에 앞서 이 기록을 달성한 우투수는 1918-1919년의 월터 존슨이다. 1919년은 데드볼 시대의 마지막 해였다.
X-rate(미성년자 관람불가) : 컵스 시절 류제국은 샤워를 하고 있는 동료의 뒤에다 대고 소변을 보면서 킬킬 웃는 매덕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매덕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괴팍한 장난을 가장 잘 치는 선수다.
Yankees(양키스) : 1992년 겨울 FA시장에 나온 매덕스는 스캇 보라스가 들고 온 양키스의 5년간 3400만달러와 애틀랜타의 5년간 2800만달러 제안 중 애틀랜타를 택했다. 양키스보다 애틀랜타의 전력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매덕스가 애틀랜타에서 11년 동안 1개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얻는 동안, 양키스는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Zimmer(돈 짐머) : 매덕스 매커니즘의 안정성을 만천하에 알린 인물. 매덕스는 22살이었던 1988년 짐머 감독 밑에서 130구 이상을 6번이나 던졌다. 134구로 10이닝 완봉승을 따내고 그 다음 경기에서 167구를 던진 적도 있었다.
근육질과는 거리가 먼 매덕스... 'Mad Dog'은 영원하리
=================================================================================================================
[김홍석 야구스페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그라운드를 떠나다
누군가 기자에게 " 야구라는 스포츠가 생겨난 이후 탄생한 가장 뛰어난 투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라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 그렉 매덕스 " 라고 답할 것이다. 그 외에 달리 생각나는 이름도 없을뿐더러, 굳이 다른 이름을 떠올리려 애써 고민해야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150년의 야구 역사를 통틀어서 단순한 'throwing'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pitching'을 보여준 단 한 사람. 실력과 인격을 동시 겸비했으며, 팬들보다도 동료나 후배들에게 더욱 큰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던 저 위대한 '마스터' 그렉 매덕스.
그가 23년의 선수 생활을 뒤로한 채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종료와 더불어 계속해서 떠돌았던 소문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매덕스에 관한 추억들을 떠올렸던 야구팬이 기자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선수의 은퇴 소식도 이처럼 아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 살아있는 전설, 그렉 매덕스
1966년생으로 올해 42살인 매덕스는 1986년 20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래 통산 744경기에 등판했으며, 그 가운데 4번을 제외한 740번(역대 4위)이 선발등판이었다. 355승(8위) 227패 109완투 35완봉 3.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5008.1이닝(13위)을 투구하는 동안 3371개의 탈삼진(10위)을 잡아냈다.
17년 연속 15승 이상, 20년 연속 두 자리 승수, 14년 연속 200이닝 투구, 21년 연속 세 자리 수 탈삼진, 1992년부터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 8번의 올스타, 그리고 18번의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수상. 그가 이룩해 낸 업적들은 너무나도 화려하기만 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한 야구팬이 "고흐의 작품은 보지 못했지만, 그렉 매덕스의 투구는 본 적이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매덕스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이며, 또한 얼마만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선수인지를 잘 말해준다. 실제로 매덕스의 통산 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시대에 진정한 살아있는 전설 그렉 매덕스.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그와 같은 투수가 앞으로 또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
○ 메이저리그 역대 다승 순위
1위 사이 영 511승, 2위 월터 존슨 417승, 3위 피트 알렉산더 & 크리스티 매튜슨 373승, 5위 퍼드 갤빈 364승,
6위 워렌 스판 363승, 7위 키드 니콜스 361승, 8위 그렉 매덕스 355승, 9위 로저 클레멘스 354승, 10위 팀 키프 342승
○ 메이저리그 역대 탈삼진 순위
1위 놀란 라이언 5714개, 2위 랜디 존슨 4789개, 3위 로저 클레멘스 4672개, 4위 스티브 칼튼 4136개, 5위 버트 블라일레븐 3701개, 6위 탐 시버 3640개, 7위 돈 서튼 3574개, 8위 게일로드 페리 3534개, 9위 월터 존슨 3509개, 10위 그렉 매덕스 3371개
▶ 신의 영역에 이른 컨트롤 + 꿈틀거리는 직구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승과 5000이닝 이상 투구 그리고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선수는 매덕스 외에도 놀란 라이언과 스티브 칼튼, 게일로드 페리, 월터 존슨, 필 니크로까지 모두 6명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통산 볼넷 허용 개수가 1000개 미만인 선수는 매덕스(999개)가 유일하다.
1993년까지 1709이닝에서 507개의 볼넷을 허용했던 매덕스는 컨트롤이 '신의 영역'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94년 이후에는 3299.1이닝에서 단 492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더군다나 그 중 100개는 고의볼넷이었으며, 200이닝 기준 30개, 9이닝 당 1.34개에 불과한 엄청난 컨트롤을 자랑했다.
매덕스의 투구 철학은 '못 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히 맞춰 잡는 것을 노렸으며, '치기 쉬워 보이지만 중심에는 맞출 수 없는 공'을 던지려고 노력했던 선수다. 굳이 마음을 먹는다면 삼진을 잡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의 목표는 언제나 '27구 완봉승' 이었다.
2008년 매덕스의 직구 평균 구속은 83.7마일(135km)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 가운데 그보다 느린공을 던지는 투수는 너클볼러인 팀 웨이크필드(72.9)와 46세의 제이미 모이어(81.2)뿐이다. 전성기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마일(145km)을 넘어가는 매덕스의 포심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속만 놓고 본다면 시속 100마일(161km)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는 랜디 존슨이나 페드로 마르티네즈, 로저 클레멘스 등의 직구가 훨씬 빠르고 위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높은 직구 구사비율(70%안팎)을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그렉 매덕스다.
앞의 투수들이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고 변화구로 헛스윙 삼진을 노릴 때, 매덕스는 볼 끝이 살아 있는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고 꿈틀거리는 현란한 투심으로 스탠딩 삼진을 잡았다. 9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말까지 '매덕스의 투심 패스트볼'은 '현존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구' 랭킹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슬라이더와 커브 등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지만, 정작 경기에 들어가면 직구 계열인 포심과 투심 그리고 체인지업만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프시즌이 되면 훈련은커녕 탐 글래빈, 존 스몰츠 등과 어울려서 골프 치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소모품'이라고 할 수 있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구질과 철저한 휴식.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다.
▶ 언제나 기록에 초연했던 교수님의 은퇴
[상황 1] 2001년 8월 12일 매덕스는 4:0으로 뒤지고 있던 3회 1사 2루 상황에서 스티브 핀리에게 고의볼넷을 허용했다. 더 이상의 실점을 막기 위한 바비 칵스 애틀란타 감독의 지시에 고개 한 번 흔들지 않고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터너필드의 관중들과 TV를 시청하던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 볼넷이 매덕스의 연속이닝 무볼넷 기록을 72.1이닝에서 멈추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황 2] 2002년 9월 27일 시즌 마지막 등판을 맞이한 매덕스는 '15년 연속 200이닝 투구'라는 대기록에 단 5.2이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매덕스는 53개의 공을 사용해 5회까지 1실점으로 막은 후, 기록 달성까지 아웃 카운트 2개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디비즌 시리즈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팬들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19년 연속이 될 수도 있었던 위대한 기록은 14년 연속에서 멈추고 말았다.(당시 필자는 들고 있던 리모콘을 던져서 박살냈던 기억이 있다.)
[상황 3] 은 미국시간으로 2008년 12월 8일(월)에 벌어질 예정이다. 이 날 매덕스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워렌 스판의 라이브볼 시대(1920년 이후) 최다승 기록에 단 8승만을 남겨둔 채, 유니폼을 벗게 되는 것이다. 올해 8승 13패 4.22로 다소 부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은퇴를 결정할 정도로 나쁜 기록은 아니기에 팬들은 한숨을 쉰다.
매덕스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이며 4살 연상인 제이미 모이어는 지난 4년 동안 54승을 거뒀다. 그 이상으로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해온 매덕스가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면, 스판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역대 3번째 400승 투수로 등극하지 말란 법도 없다는 뜻이다. 9승만 추가하면 '역대 최고의 투수'라는 호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의 은퇴 결정. 역시나 매덕스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다.
23년간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수많은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Professor(교수님)' 그렉 매덕스가 마운드를 떠난다. 팬이나 동료, 심지어 기자들에게까지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던 전설의 퇴장은 단순한 아쉬움 이상의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은 모든 야구인의 존경을 받을 만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
그렉 매덕스 명장면 10
데뷔전, 형과의 맞대결(1986년 9월3일, 9월30일)
연장 15회, 리글리필드가 어두컴컴해지자 주심은 서스펜디드를 선언했다(시카고 컵스는 2차대전 때 조명탑을 조선소에 기증했다는 자부심에 1988년까지 조명시설 없이 버텼다). 다음날 속개된 경기. 17회말 조디 데이비스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컵스 진 마이클 감독은 대주자를 기용했다. 확장 로스터로 올라온 스무살짜리 신인투수 그렉 매덕스였다. 18회초 매덕스는 컵스의 8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2번째 타자 빌리 해처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매덕스 데뷔전의 양팀 선발투수는 놀란 라이언(휴스턴)과 제이미 모이어였다.
다음 등판이자 메이저리그 첫 선발등판에서 신시내티를 상대로 3실점 완투승을 따낸 매덕스는, 9월30일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4살 위 형 마이크(필라델피아)와 함께 역사상 첫 '형제 루키투수 선발대결'을 만들어낸 것. 승리는 동생이 가져갔다. 형 마이크 매덕스가 3이닝 3실점 패전을 안은 반면, 그렉 매덕스는 7⅔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167구(1988년 5월18일)
1988년에 부임한 돈 짐머 감독은 '어깨는 쓸수록 단련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매덕스도 시즌 첫 등판에서 143구 1-0 완봉승의 신고식을 치렀다. 5월12일 샌디에이고전. 매덕스는 9회까지 1점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컵스도 9회까지 1점도 뽑지 못했다. 연장 10회초 짐머는 투구수 122개의 매덕스를 또 마운드에 올렸다. 매덕스는 공 12개로 3자범퇴를 시켰다. 10회말 1사 만루에서 밴스 로의 스퀴즈번트가 성공하면서 매덕스는 10이닝 1-0 완봉승을 거뒀다. 내셔널리그에서 다음 '10이닝 완봉승'이 나온 것은 17년 후인 2005년(마크 멀더)이었다.
바로 다음 등판에서 매덕스는 또 10회까지 1점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컵스 역시 또 1점도 뽑지 못했다. 연장 11회초 투구수 139개의 매덕스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매덕스는 2사를 잘 잡았지만, 이후 연속 5안타를 맞고 무너졌다. 그제서야 짐머는 다른 투수를 올렸다. 매덕스의 투구수는 167개였다.
15년 만의 20승(1992년 10월1일)
포스트시즌 탈락이 일찌감치 확정된 리글리필드에 만원관중이 몰려들었다. 이미 7월에 결별을 선언한 매덕스의 마지막 등판을 보기 위해서였다. 상대는 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강타선의 피츠버그. 하지만 매덕스는 피츠버그를 9K 완봉승으로 잠재우고 시즌 20승에 성공했다. 컵스 투수로는 1977년 릭 러셀 이후 15년 만의 첫 20승이었다. 컵스 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별의 기립박수를 보냈다. 시즌 후 매덕스는 더 많은 돈을 제시한 뉴욕 양키스가 아닌 애틀랜타를 선택했다.
아! 노히트노런(1995년 5월29일)
무사사구 완투승만 18번이나 거둔 매덕스지만, 노히트노런은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의 목표는 노히트노런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스턴 원정경기에서 매덕스는 7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투구수는 76개. 하지만 8회 첫 타자 제프 배그웰이 휘두른 방망이에 모든 것이 날아갔다. 배그웰의 타구는 담장을 넘었고 결국 매덕스는 1피안타 1실점 완투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2006년, 매덕스는 다저스 데뷔전에서 6회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나갔다. 투구수는 72개. 하지만 갑작스런 비로 경기가 중단됐고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황금시대(1993년 8월1일~1995년 8월5일)
정확히 2년 동안, 매덕스는 56경기에 나서 52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실패한 4번 중 2번은 점수차가 크게 벌어져 5이닝 1실점과 5⅔이닝 1실점으로 내려온 것이었으며, 한 번은 6회까지 1실점으로 버티다 7회에 4점을 내준 것이었다. 56경기에서의 성적은 37승9패 평균자책점 1.61 WHIP 0.88. 완투가 20번이었으며, 8이닝 이상을 던진 것이 35번이었다. 1994년 7월3일부터 95시즌 마지막까지는 원정경기 18연승(20경기 18승무패 0.99)을 달려 메이저리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94-95년이 파업시즌이었다는 것과 우리가 메이저리그를 쉽게 접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는 게 지금도 아쉬울 따름이다.
양키스를 만나다(1996년 월드시리즈)
매덕스가 애틀랜타를 택한 이유는 양키스보다 애틀랜타의 전력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6년 매덕스는 자신이 퇴짜를 놓은 양키스와 월드시리즈에서 만났다. 매덕스는 지미 키와의 선발대결이었던 2차전에서 8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승리를 따냈다. 애틀랜타 입단 후 포스트시즌 성적은 11경기 7승3패(팀 8승3패) 2.59. 2승1패로 앞서나가던 애틀랜타는 4차전에서 6-0으로 앞서던 경기를 역전 당한 데 이어, 스몰츠와 앤디 페티트의 눈부신 투수전으로 진행된 5차전에서도 0-1로 패했다. 벼랑끝에 몰린 6차전, 매덕스가 나섰다.
매덕스는 8회 2사까지 양키스의 7차례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하지만 3회 1사 3루 단 1번의 위기에서 조 지라르디에게 3루타, 데릭 지터에게 적시타, 다시 2사 2루에서 버니 윌리엄스에게 적시타를 맞고 3점을 내준 것이 승부를 갈랐다. 결국 애틀랜타는 2-3으로 패했고 시리즈는 끝났다. 1999년, 매덕스는 월드시리즈에서 또 양키스를 만났다. 하지만 1차전에서 7이닝 4실점(2자책) 패전을 안았고 애틀랜타는 4연패로 물러났다.
76구로 끝내다(1997년 7월23일)
짐머와의 만남을 통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매덕스는 이후 '맞혀잡기의 달인'이 됐다. 7월23일 컵스전은 매덕스 피칭의 결정판이었다. 1실점 완투승을 따내는 동안 매덕스가 던진 공은 단 76개. 1990년 밥 턱스버리의 76구 이후 최소투구수 완투승 기록이었다. 이날 매덕스가 상대한 타자는 31명으로, 매덕스는 한 타자당 평균 2.5개의 공을 던졌으며 1이닝을 끝내는데 8.4개의 공을 사용했다. 타자가 쉽게 맞힐 수 있는 공, 그러나 정확히는 맞힐 수 없는 공. 그것이 매덕스가 생각한 최고의 공이었다. 모든 경기의 투구수가 전산처리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매덕스는 28번의 '100구 미만 9이닝 완투'를 기록했다.
14K(2001년 5월3일)
매덕스는 '삼진은 맞혀잡기의 우연한 산물이어야 한다'는 딕 폴 투수코치의 지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매덕스의 맞혀잡기에도 타자들은 삼진을 당했다. 2001년, 당시 최강의 공갈포 군단이었던 밀워키가 매덕스에게 14K의 개인 최고기록을 선사했다. 매덕스는 마지막 10타자 중 8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으며 개인 통산 100번째 완투경기를 달성했다. 14K는 박찬호의 최고기록이기도 하다. 박찬호의 제물 역시 2000년의 밀워키였다.
2000년 9월24일, 매덕스는 몬트리올을 상대로 7회까지 13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투구수는 81개. 완투도 충분했다. 하지만 스코어가 10-0으로 벌어져 있다는 이유로 매덕스는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2005년 7월27일, 삼진에 관심이 없는 매덕스는 3000K를 달성한 13번째 투수이자, 300승-3000K를 모두 달성한 9번째 투수가 됐다. 1000개 미만의 볼넷으로 3000탈삼진을 달성한 것은 퍼거슨 젠킨스에 이어 역대 2번째였다(이후 커트 실링과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가세).
스스로 기록을 멈추다(2001년 8월13일)
'기록의 사나이'로 통하는 그이지만 정작 매덕스 본인은 기록에 관심이 없다. 매덕스는 1995년 기록에 신경을 쓰다 투수인 조이 해밀턴에게 볼넷을 내줘 51이닝 연속 무볼넷이 중단된 후 기록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2001년, 마침내 매덕스는 70⅓이닝 연속 무볼넷으로 내셔널리그 최고기록인 크리스티 매튜슨의 68이닝 기록을 경신했다. 빌 피셔의 메이저리그 기록까지는 14이닝이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음 등판에서 매덕스는 기록을 스스로 중단했다. 3회 1사 2루에서 스티브 핀리를 고의4구로 거른 것이었다. 그에게는 기록보다 팀의 승리가 더 중요했다. 매덕스는 다음 타자 대니 바티스타를 3루 땅볼로 잡아낸 후 다시 대미언 밀러에게 고의4구를 주고 투수 알비 로페스를 2루 땅볼로 잡아내 목적을 이뤘다.
2002년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 5회까지 55개의 공을 던진 매덕스는 6회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디비전시리즈를 대비해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웃카운트 2개가 모자라 결국 매덕스의 14년 연속 200이닝 기록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만약 6회까지 던졌다면 매덕스는 19년 연속 200이닝을 달성할 수 있었다.
300승, 클레멘스(2004년 8월30일, 2005년 4월30일)
2004년 매덕스는 12년 만에 다시 컵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컵스 팬들에게 300승을 선물했다. 이듬해 305승 매덕스와 329승 로저 클레멘스의 300승 투수 대결이 성사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87년 돈 서튼-스티브 칼튼 이후 18년 만이었지만, 내셔널리그에서는 1892년 이후 113년 만에 탄생한 대축제였다.
소문난 잔치는 먹을 것도 많았다. 6이닝 2실점의 매덕스는 7이닝 3실점의 클레멘스를 제치고 승리투수가 됐다. 클레멘스는 7회초 제로미 버니츠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반면 투타대결에서는 매덕스가 2타수 무안타, 클레멘스가 2타수2안타를 기록했다. 맞대결 당시 24승이었던 차이는 이제 7승으로 줄어들었다. 매덕스와 클레멘스가 다른 한 가지. 매덕스는 마운드에 계속 오르는 이유가 즐거워서라고 한다.
'Art & Culture > Sports Recor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데스리가 차붐 이야기 (0) | 2009.05.12 |
---|---|
농구 득점 기록들 (0) | 2009.05.12 |
메이저리그의 전쟁 영웅들 (0) | 2009.05.11 |
MLB Legend, 불멸의 기록들 (0) | 2009.05.11 |
World Best Boxer 50 - ESPN(2007) (0) | 2009.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