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반, 100년의 삶과 영광과 쇠퇴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 노먼 레브레히트 | 마티
‘클래식의 황제’로 20세기를 풍미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
카라얀이 녹음한 CD 5장 구성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큰맘 먹고 구입했던 기자는 지난해 말, 카라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연주한 교향곡을 모은 CD 38장으로 구성된 특별판 박스세트를 샀다. 따져보니 장당 2000원도 되지 않는다. 당대의
지휘자 중 가장 많은 음반을 발표하고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수완 좋던 지휘자 카라얀이 이를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MP3와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와 기술의 출현으로 불과 5~6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음반산업의 운명을 바꿔
놓고 있다. 음반업계를 호령하던 레코드 회사들이 차례로 무너져가고, 이름난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연주가 초저가 음반으로
발매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세계적인 클래식음악 평론가인 저자는 “음반은 음악을 전하는 매체일 뿐
이제 그 기한이 다해가고 있다”고 감히 선언한다. 명멸해가는 클래식 음반의 역사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저자는 이를
기록해두고 냉정하게 평가하겠다는 작지만 큰 욕망에서 책을 썼다.
토머스 에디슨이 1877년 축음기를 발명했지만, 클래식 음악이 음반이라는 매체로 자리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세기 초만 해도 많은 음악가들은 ‘음반은 연주자와 듣는 이의 교감을 제거해 예술을 비인간적인 행위로 만든다’며 음반을
거부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 대표적이다. 음반 녹음을 선호했던 이들도 있다.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유명한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등이다.
1902년 이탈리아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부른 아리아 음반이 공전의 히트를 친 후, 레코딩은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갔다. 사람들은 가정마다 축음기를 들여놓고 음반을 샀다. 수십개의 레코드 회사가 난립하다 전열을 가다듬었고
세력을 갖춘 메이저 음반사들이 출현했다. 음반프로듀서와 연주자 간의 끝없는 짝짓기와 결별, 여기에 새로운 녹음 기술과
음반 매체의 발전으로 클래식 음악은 호황을 맞게 된다. 공연을 통해 한정된 지역에서만 알려지던 음악가들은 음반을 통해
국경과 대륙을 넘어 이름을 얻게 됐고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지속될 명예를 갖게 됐다.
음반이 갖는 이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이가 카라얀이다. 그는 독일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악가들의 선봉에
있었다.
책에는 수많은 연주자와 지휘자들의 이름, 그리고 전설적인 음반프로듀서의 이름과 뒷이야기가 등장한다. 음악만 들어서는
잘 알 수 없던 음악가들의 이면이 생생하게 드러나 흥미롭게 읽힌다. 귀동냥으로나마 20세기를 풍미한 클래식 연주자들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은 더 흥미를 느낄 것이다. 엔리코 카루소부터 1990년대 음반사들이 불황 타개책으로 새롭게 발굴하던
바네사 메이, 일 디보, 샬롯 처치 등 어린 음악가들에 관한 신랄한 비평까지 담고 있다.
책의 절반은 음반사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불멸의 명반 100장’과 ‘최악의 음반 20장’으로 채웠다. 1902년부터 2004년까지
나온 클래식 음반 중에서 골랐다. 선정의 기준은 대중들의 상상력을 이끌고 문명사회의 부속물로서 음반이라는 매체가 발전
하는 데 끼친 영향력이란다. 이제 막 클래식에 입문한 이들에게는 음반사를 정리한 전반부보다는 후반부의 음반 리뷰가
보탬이 될 듯 싶다. 장호연 옮김.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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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음반 20장
1. 바하, 2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 야사 하이페츠, RCA 빅터 체임버 오케스트라, 1946년 RCA
.... 자아도취에 빠져 하이페츠가 연못에서 또 한명의 하이페츠를 보는 연주... 이보다 더 나쁜 연주는 없다...
그도 뭔가 아쉬웠는지 15년뒤 그의 제자 에릭 프리드먼, 말콤 사전트와 함께 다시 녹음했다...
2. 베토벤, 삼중협주곡
~ 리히테르,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 카라얀 베를린 필, 1969년 EMI
.... 4명은 같이 연주하면서도 서로의 연주를 듣지 않았다... 자신들의 연주가 창피해서 한번 더 하자고 했지만
카라얀은 거절했다. 그야말로 음악적 비소통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환호했다...
3.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번스타인, 1982년 DG
.... 연주자들은 몹시 화가 났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곡을 망쳐놓은 이유가 번스타인의 성격 탓이었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이 다시는 같이 연주하지 않겠다고 하자 몇몇 연주자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4. 힌데미트-지고의 영상 모음곡, 바일-서푼짜리 오페라, 클렘페러-행복한 왈츠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토 클렘페러, 1961년 EMI
.... 클렘페러의 아마츄어에도 못 미치는 작품과 연주는 그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5. 말러, 교향곡 2번(부활)
~ 빈 필, 로린 마젤, 1983년 CBS
.... 빈 필은 시종일관 삐걱거렸고 두명의 여성 성악가(제시 노먼, 에마 마르톤)는 서로를 무시하며 최악의 음성으로
마젤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에 일조했다... 이 연주의 참혹함은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다...
6. 크라이슬러, 바로크 양식의 협주곡
~ 크라이슬러, 빅터 현악 오케스트라, 도널드 보히스, 1945년 RCA
.... 크라이슬러 자신이 발견했다고 하는 바로크 작곡가의 협주곡들은 사실은 그가 작곡하고 속인 것들이었다...
7.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 피터 피어스, 벤자민 브리튼, 1963년 데카
.... 피어스의 독일어 발음은 부정확하고 첫 소절은 늘 삐걱거리고 듣는 이는 늘 조마조마하다... 이때 끼어들어
화려한 솜씨로 그를 나락에서 구해주는 이가 브리튼이다...
8. 알비노니-아다지오, 파헬벨-캐논, 코렐리-크리스마스 협주곡, 비발디 협주곡...
~ 베를린 필, 카라얀, 1983년 DG
.... 바로크 특유의 투박한 매력과 느슨함, 변칙적인 요소들은 무시하고 잘 조련된 군대로 밀어붙이는 카라얀의
바로크 작품은 그야말로 고집스런 허영이자 오만한 해석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음반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9. 재즈 세바스치안 바하
~ 스윙글 싱어즈, 1962년 필립스
.... 대체 이 음반에 어떤 예술적 목적이 있는지... 돈벌기가 목적이 아니라면 바하를 욕실용 음악으로 바꾼
이유라도 있어야 한다... 이런 훌륭한 목소리로 고작 그런 사소한 목적에 사용해야 했을까....
10. 색다른 모차르트
~ 던 앳킨슨(프로듀서), 1996년
.... 마치 스타벅스 판매용으로 편곡한듯한 형편없는 모차르트는 예술과 상업성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지 생각한다면 역대 최악의 클래식 음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1. 베르디, 레퀴엠
~ 르네 플레밍, 안드레아 보첼리 외, 키로프 오케스트라 & 합창단, 발레리 게르기에프, 2000년 데카
.... 보첼리가 베르디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테크닉이 없다는 것은 금방 들통난다...
게다가 다른 성악가가 보첼리의 한계에 맞춰 자신의 소리를 억누르는 것을 듣노라면 음반 제작자를
기소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첼리의 열정 덕분인지 음반은 대박이 났다...
12. 재즈 앨범
~ 런던 신포니에타, 사이몬 래틀, 1986~87년 EMI
.... 음반 판매량은 형편 없었고 EMI는 래틀과의 계약철회까지 진지하게 고려했다... 래틀도 첫 음반에서는
흰색 타이와 검고 흰 멜빵을 매고 있지만 재발매 음반에서는 반성과 애도의 의미로 검은 정장을 입었다...
13. 초보자를 위한 말러
~ 클라우스 텐슈테트, 존 바비롤리,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1996년 EMI
.... 이것이 음악을 들으려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을 위한 감상용 음반인지 아니면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과시용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14.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기돈 크레머, ASMF, 네빌 마리너, 1982년 필립스
.... 크레머는 크라이슬러 대신 자신의 친구인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카덴차를 체택했지만 이착 펄만, 예후디
메뉴힌, 아이작 스턴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분노뿐이었고 결국 크레머는 이 카덴차를 용도폐기하고 말았다.
15. 쿠르트 바일, 9월의 노래
~ Various Artists, 1997년 소니
16. 비제, 카르멘
~ 제시 노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세이지 오자와, 1988년 필립스
.... 무대에서 한번도 카르멘을 노래해본 적이 없는 제시 노먼은 애당초 섹시한 여인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고
당대 최고의 스타에 묻어가려던 음반사의 얄팍한 잔머리는 결국 제시 노먼에게는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음반사에게는 막대한 손실을 돌려주었다...
17. 영광의 순간
~ 스콜피온스, 베를린 필, 2000년 EMI
.... 대용량 앰프를 들고 나온 록 밴드는 '록 음악을 즐길 준비가 되었나요?' 라고 소리치더니 오럴 섹스를 찬양
하는 노래를 불렀다... 사이몬 래틀은 이 작업을 두고 끔찍하고 오싹한 기획이라 했다...
18. 사티, 벡사시옹
~ 레인버르트 더 레이우, 1977년 필립스
.... 벡사이옹은 18개의 음표로 구성된 모티브를 변형시키지 않고 아주 천천히 840회 밤낮으로 계속 연주해야
하는 작품이다... 이를 음반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클래식 음반 역사상 가장 멍청하고 가장 비음악적 짓이다...
19. 키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 키리 데 카나와, 런던 보이시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칼 데이비스, 1985년 데카
.... 별다른 노력이나 열정 없이 2시간 정도 시간내서 녹음하는 캐럴 음반중에서도 이 음반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이 음반에는 감정이나 의미가 제대로 실린 노래가 하나도 없다...
20. 파바로티, 최고의 모음집
~ 루치아노 파바로티, 1977년 데카
.... 조지 마이클, 조 카커, 머라이어 캐리 등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파트너들 가운데 일부였으며
그 중에서도 죽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테이프에 맞춰 부른 이중창 My Way는 가장 고약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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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클래식 음반 20
1. 바그너 - 니베룽겐의 반지 - 게오르그 솔티 (1960년대) - 1800만장 - Decca
2. Three Tenor -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 1990년 - 1400만장 - Decca
3. 비발디 - 사계 - 이 무지치(아요) - 1959년 - 950만장 - 필립스
4. Three Tenor II -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 1994년 - 780만장 - Warner
5. Canto Gregoriano - 1993년 - 300만장 - EMI
6. 영혼의 아리아 - 안드레아 보첼리/정명훈 - 1999년 - 300만장 - 필립스
7.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협주곡#1 - 반 클라이번/키릴 콘드라신 - 1959년 - 300만장 - RCA
8. 푸치니 - 토스카 - 마리아 칼라스, 티토 곱비... - 1953년 - 300만장 - EMI
9. O Holy Night - 파바로티 - 1976년 - 300만장 - 데카
10. 아리엘 라미레스 - 미사 - 호세 카레라스 - 1990년 - 300만장 - 필립스
11. 비발디 - 사계 - 나이젤 케네디/English CO - 1989년 - 250만장 - EMI
12. 엘가 - 첼로협주곡 - 뒤 프레/바비롤리 - 1965년 - 210만장 - EMI
13. 칼 오르프 - 카르미나 부라나 - 제임스 레바인/시카고 SO - 1989년 - 210만장 - DG
14. 모차르트 - 호른 협주곡 - 데니스 브레인/카라얀 - 1953년 - 200만장 - EMI
15. O Sole Mio - 파바로티 - 2000년 - 200만장 - 데카
16. 아베 마리아 - 키리 테 카나와 - 1985년 - 200만장 - 필립스
17. 바하 - 골드베르그협주곡 - 글렌 굴드 - 1955년 - 180만장 - 컬럼비아
18. 베토벤 - 교향곡 9번 - 카라얀/베를린 필 - 1962년 - 150~200만장 - DG
19. 베토벤 - 교향곡 5번 - 카를로스 클라이버/빈필 - 1975년 - 150~200만장 - DG
20. Three Tenors Christmas -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 2000년 - 120만장 - 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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