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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문화예술 관련글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

by Wood-Stock 2009. 4. 7.

마라도나에 맞먹는 국민 영웅, 피아졸라

[서평] 위대한 탱고음악가를 다룬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

 

1880년 무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인민들은 활기차고, 쾌활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탱고'이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스페인 탱고'와 4분의2 박자로 빠르고 경쾌한 춤음악인 '말랑가', 보통 템포에 의한 4분의 2박자의 곡으로

2종의 리듬형이 특징을 이루는 '아바네라'가 혼합된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태어난 탱고는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1915년 경에는 유럽 사교계를 뒤흔들만큼 인기를 누렸다. 환영받는

춤곡으로 변신했지만 초창기 활기차고, 쾌활했던 리듬과 가사는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음악과 가사가 극도의 우수를

띠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하층인민이 사는 뒷골목 춤곡을 클래식 음악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있으니 아스토로 피아졸라이다. 쉽게 말하면

그는 탱고의 역사를 바꾼 사람이다. 탱고와 함께 살다간 피아졸라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엮은 책이 나왔는데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이다.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에서 '에비타'(Evita)라는 애칭을 가진 에바 페론,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클랙식과 재즈와 결합시켜 전통 탱고와는 다른 새로운 탱고인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탄생시켜 탱고 전통주의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떤 택시 기사는 그를 "탱고를 파괴시켰다"고

하여 탑승 거부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철저하게 탱고 문화에 완전히 젖어 있으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음악을 언제나 자신의 방식대로 연주했다. 그는

탱고와 클래식, 재즈를 하나로 묶는 데 근접한 작업을 했다. 그는 탱고를 현대 실내악의 형식으로 바꾸었다. 전통 탱고를

스스로 저버렸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통주의자들은 피아졸라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14쪽)

 

이런 비판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탱고는 '영원한 전통이라는 법전' 안에 국한될 수 없다. 이제 '가로등과 목에 두르는 수건,

단도, 단조로운 신음 소리'라는 과거의 전형적인 탱고를 버릴 때가 온 것이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만의 탱고 세계를 만들었다.

 

전통을 거부하는 이 저항과 자신만의 탱고 속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부산하고 요란한 현대 사회, 그리고 인간의 모든 감정을

쏟아부었다. 그는 항상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가기를 원했다. 새로운 탱고를 탄생시켰을 때 결국 사람들은 피아졸라가 작곡한

탱고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율했다.

 

195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간 그는 밴드를 결성하고 탱고의 작곡과 연주에 힘을 기울였다. 그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편곡을 한 곡 끝내고 빌린 피아노 앞에 앉아 몇 시간만에 곡 하나를 완성할 정도로 본능에 가까운 음악적 직관과 천재성을

갖고 있었다. 소원이 무대 위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다가 죽는 것일 정도로 온몸과 혼을 바쳐 연주하고 일에 몰두했다.

 

"그는 자신의 악기와 하나가 되었다. 그는 마치 황소의 뿔을 붙잡듯이 양손으로 악기를 쥐었다. 그는 악기와 함께 춤추며,

조용히 타고 앉아 마침내 봄이 되어 활기차게 뛰노는 조랑말처럼 하늘 높이 도약한다. 뛰어난 마술사가 마지막 카드를 자랑

하듯이, 또는 승리의 라오콘이 패배한 용을 잡아당기듯이 피아졸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연주해야만 한다."(286쪽)

 

그는 결코 패배를 몰랐고,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했다. "나는 다른 뮤지션들이 나와 같은 높이에서 보는 것을 싫어

한다. 나는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느끼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탱고와 내 밴드가 이겼다는 대단한 만족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자신에 대한 경외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피아졸라는 자신의 음악에 열정과 활력, 부드러움과 유머, 드라마, 고통, 즐거움, 강렬함, 감정을 몰아넣었다. 그는 육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이며 인생 그 자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에게서 음악은 절대였다. 음악에 대한 분명한 이런

인식과 열정은 평생 3000곡 이상을 작곡했고, 전쟁이 나도 작곡하는 일에는 집중력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에게 음악은 아내 이상이다. 아내와는 이혼할 수 있지만 음악과는 이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과 결혼하면 음악은

영원히 당신의 사랑이 되며, 결국 음악과 함께 무덤까지 가는 것이다."(277쪽)

 

음악과 결혼한 피아졸라, 음악 연주 자체였던 피아졸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확장시키고, 살아 있다는 기쁨을 경험

하며, 도전하는 정신을 배울 수 있게 했다. 피아졸라는 댄스홀에 머물러 있던 탱고를 콘서트 홀로 가져왔다. 그렇다.

피아졸라는 탱고 역사를 바꾼 '위대한 탱고'였다.

 

덧붙이는 글 | <피아졸라, 위대한 탱고> 마리아 수사나 아치 · 사이먼 콜리어 지음 ㅣ 한은경 옮김 ㅣ 을유문화사 ㅣ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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