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이 말하는 밥 딜런
<블로잉 인 더 윈드> 등의 노래로 1960~70년대 저항정신의 상징이 된 포크 음악가 밥 딜런의 진솔한 내면 세계가 담겼다.
탈색된 위인이 아니라 단점 많고 흔들리는, 살아 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이야기는 포크음악을 하는 신출내기가 뉴욕에 도착한 때부터 시작한다. 작은 카페들을 전전했던 기억, 팁을 더 받으려고
짰던 전략,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상들이 촘촘하게 들어 있다.
자신을 멋대로 재단하는 시선에 대한 분노도 생생하다. 가족과 함께 가꾸는 소박한 삶을 꿈꿨는데 그를 “저항운동의 왕자”로
생각하는 이들은 그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기 일쑤였다. “나는 가족을 지키고 먹여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잘난체
하는 인간들이 언론에서 나를 대변자라느니 심지어 시대의 양심이라느니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개들에게 던진 고기 한 점 처럼 느껴졌다.” 그는 외부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좀더 혼란스럽고 평범한 것”으로 만들려고
무던히 애썼다.
60대를 넘어가면서 음악가로서 한계를 느낀 그가 자신을 향해 퍼부은 비판과 성찰도 칼끝 같다.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한계점을 넘어서까지 이용하면서 자신을 속여왔다. …빛이 사라졌고 성냥은 끝까지 타버렸다.”
책은 시간이 아닌 생각의 흐름을 따라간다. 시 한편, 노래 하나를 단초로 이야기가 뻗어나간다. 예를 들면 철학자 클라우제
비츠의 전쟁에 대한 책을 소개하다 오래 전엔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이어 연줄 없는 설움을 쏟아낸다.
그는 자신과 음악에 대해 이렇게 썼다. “포크송은 내가 우주를 탐구하는 방식이고 그림이었다.… 나는 실제로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슴푸레한 안개를 응시하며 지적인 몽롱함 속에 떠도는 노래를 작곡하는 포크 뮤지션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한겨레신문 2005.10.14]
"포크뮤직은 빛나는 진실이었다"
[신간] 밥 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
'포크록의 거장'이자 음유시인인 밥 딜런(64)은 수년 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삶을 통찰하는 그의 가사는 그
자체만으로 도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밥 딜런의 인생과 그의 글을 모두 볼 수 있는 자서전이 국내에 출간됐다. 원제는 연대기라는 뜻의 '크로니클스(Chronicles)'
이며 국내에서는 그의 대표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지난해 미국은 밥 딜런이 직접 타이프를 치며 쓴 이 책에 수많은 찬사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당대의 싱어송라이터 딜런의
독특한 회고록'이라며 이 책을 지난해 최고의 책 10권 가운데 하나로 꼽았으며 내셔널 북 어워드와 '퀼'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모두 3권으로 기획된 자서전의 1권인 이 책은 5부로 구성돼 음악을 시작한 뒤 처음 뉴욕에 입성, 맨해튼 등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펼쳐진 그의 젊은 시절을 1980년대까지 다루고 있다.
그는 담담하고 세밀하게 인생 얘기를 풀어낸다. 제대로 가사를 쓰려고 뉴욕 공공도서관에 드나들며 신문기사를 읽었던 일,
미국 등지에서 일었던 저항의 물결, 로버트 짐머만에서 밥 딜런으로 이름을 바꾼 사연 등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밤마다 순항속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노래를 그만두고 무대에서
은퇴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내게는 작곡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없었다"는 등으로 당시에 가졌던 고민들도 털어놓고
있다.
"포크뮤직은 빛나는 차원의 진실이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고,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사라질 수도
있고 그 안에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 (…) 내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포크뮤직이었다. 문제는 포크뮤직이 충분
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제5부 '얼어붙은 강' 중)
아직 기약이 없는 그의 자서전 2권과 3권이 기다려진다.
문학세계사 펴냄. 양은모 옮김. 320쪽. 9200원. [프레시안 20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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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 개봉
밥 딜런은 누구인가.
1941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로버트 짐머먼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60년대 초반 포크 가수로 데뷔했고, 2006년작 ‘모던 타임스’까지 40장에 가까운 음반을 발매했다. 비틀스와 함께 60년대 대중문화계를 지배했으며,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적인 가사로 인해 매해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것은 밥 딜런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아니다. 사실 누구도 밥 딜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밥 딜런은 간명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되는 것뿐이다. 그게 누구든 간에(All I can do is be me, whoever that is).”
밥 딜런은 수많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의 토드 헤인즈가 전대미문의 독특한 형식을 가진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를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임 낫 데어’에서는 6명의 배우가 밥 딜런의 각기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 밥 딜런은 회심한 가스펠 가수, 서부 개척 시대의 은둔자, 시인이 된다. 때론 백인 남자(히스 레저, 리처드 기어, 크리스천 베일, 벤 위쇼), 때론 깡마른 여자 배우(케이트 블란쳇), 심지어 흑인 소년(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밥 딜런을 연상케 하는 역을 맡았다.
블란쳇이 연기한 부분이 팬들에게 알려진 딜런의 모습과 가장 흡사하다. 블란쳇은 팝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을 재연한다. 포크 가수였던 딜런은 전기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팬들은 경악했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포크는 록과 몸을 섞었다. 관객의 충격은 블란쳇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으로 형상화됐다. .
언론에서 딜런은 ‘동문서답’으로 악명이 높았다. 화두를 내리는 선승처럼, 이치에 닿지 않는 대답을 하기 일쑤다. 영화 속에서 기자는 딜런에게 정의, 평등 등을 부르짖으며 청년 저항 문화의 아이콘이 된 심정을 묻는다. 블란쳇이 연기한 딜런은 대답한다. “난 이야기꾼이다. 튀어보려고 잘하는 걸 했을 뿐이다.” 그물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딜런은 언론의 통속적 범주화를 가볍게 넘어선다. “여배우가 밥 딜런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며 역을 맡은 블란쳇은 ‘아임 낫 데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서부의 무법자 ‘빌리 더 키드’로 그려진 딜런은 리처드 기어가 맡았다. 요즘으로 치면 개발 반대론자다. 화려했던 과거를 숨긴 채 시골에 은둔해 살아가는 그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건설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정치인들은 사탕발림의 개발 공약을 내놓지만 빌리는 그들의 위선에 저항한다. 40여년 이상 음악 활동과 은둔을 반복해온 딜런의 모습이 연상된다.
대중의 스타로서 딜런의 모습은 히스 레저가 재현한다. 베트남전이 진행 중이던 미국을 배경으로 연인(샬롯 갱스부르)과 만났다가 결국 안타깝게 이별한다. 일반적 전기 영화의 형식에 가장 가까운 대목이다.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전기 영화다. 딜런의 매니저는 토드 헤인즈 감독에게 ‘천재성’ ‘시대의 목소리’ 등을 운운하지 않는 영화를 요구했고, 헤인즈는 이 괴상한 영화 시놉시스를 제출해 허락을 받아냈다. 헤인즈는 딜런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만 그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는 밥 딜런의 노래 50여곡이 쉴 새 없이 나온다. MTV 출범과 함께 힘을 받은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포장지로 흔히 폄하되지만, ‘아임 낫 데어’는 가장 훌륭한 형태의 뮤직비디오이기도 하다. 음악가들이 이미지를 보면서 악상을 떠올릴 수 있듯이, 영화감독이 음악에 영감받아 영화를 구성하는 사실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역사에는 많은 위대한 뮤지션이 있지만, 모두가 그의 업적에 걸맞은 영화를 헌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밥 딜런은 비교적 운이 좋다. 서울 스폰지하우스 중앙, 부산 CGV 서면 등 전국 8개관에서 29일 개봉했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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