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ession & Beethovenfries
빈 오페라하우스(Staatsoper), 빈 음악협회(Musikverein) 등 비엔나의 명물들로 이어지는 시내 중심가의 Karlsplatz역(칼광장역) 건물은 비엔나 뿐만 아니라 유럽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건축물로 19세기말 비엔나에서 활약하던 건축가 ‘Otto Wagner’의 작품이다.
이곳에서 도보로 5분여 정도 거리에 있는 이와 유사한 건물 ‘Secession(제체시온=탈퇴, 분리)’. ‘빈 분리파 전시관’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19세기말 기존 질서, 경향과의 과감한 단절, 분리, 탈퇴를 결심했던 일군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연구, 토론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작품들을 집중 전시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대 종합예술의 기념비적인 공간이다.
그림에는 문외한인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1902년 ‘구스타프 클림트’가 베토벤에게 헌정하며 만들었던 벽화 ‘Beethovenfries’(베토벤프리즈)를 보기 위해서다. 제체시온 건물 여러 갤러리에서는 다양한 전시, 이벤트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하 전시장에 자리잡고 있는 이 작품만은 늘 이곳을 지키며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악장과 클림트의 그림이 매칭을 이루며 어둠과 혼돈을 극복하고 예술과 사랑으로 ‘Ode to Joy’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3개면, 34m의 벽에 그려넣은 이 작품은 어머니가 오페라 가수였고 베토벤을 좋아했던 클림트의 야심작이었고 개막식에서는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하는 빈필이 9번 합창교향곡을 연주하기도 했지만 전시 직후엔 혹평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었다. (외설 논란도...)
https://www.youtube.com/watch?v=4pbMUEHvoAo
전시가 끝나고 낙심했거나 열받았던 클림트가 작품을 뜯어내버리고, 클림트도 사망하고, 세계대전이 연이어 터지면서 세상에서 사라질뻔 했던 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20세기 말경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데 우연하게도 올해가 클림트 사망 100년 되는 해다. (1862~1918)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해서 에곤 쉴레, 오토 바그너 그리고 수많은 비엔나의 예술가들이 1918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게 모두 스페인 독감 때문이라는...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지금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KISS’가 아닌 제체시온에 있는 ‘Beethovenfries’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Ode to Joy’를 낳았고, 클림트는 제체시온에 베토벤을 소환했고, 구스타프 말러는 그날 베토벤 합창을 연주했다.
불안한 세기말을 보내던 삐딱한 예술가들... 그 와중에 태어났고 사라질뻔 했다가 또 한번의 세기말에 원래 자리로 돌아와 지금까지 남아있는 베토벤 음악과 클림트 미술의 화려한 만남...
그 두 번의 세기말 100년 그리고 클림트 사후 100년... 그 역사적 시공간의 현장에서 제체시온의 모토를 되새겨본다.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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