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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대통령 정신분석 & 심리연구

by Wood-Stock 201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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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 이상하게도 '풍문'과 '음모론'이 난무한다. 사상 첫 여성 대통령(그것도 미혼인)에 대한 저급한 관심 수준이 아니다. 기존의 정치적(더 좁히자면 정치공학적) 분석 만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대통령의 '행태'가 원인이다. 


세월호 참사, 청와대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파문 등 정치적으로 큰 일이 터질 때마다 박 대통령은 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했다. 몰리고 몰려서야 한 마디 툭, 그것도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게 다였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할 참모들을 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꼭꼭 감싸안았다. "이해가 안되니, 각종 음모론이 난무"할 수 밖에 없었다.


<트라우마 한국사회>, <싸우는 심리학> 등의 저자인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을 찾은 것도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행태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인터뷰 첫 질문에서부터 기자는 '멘탈 붕괴'에 빠졌다. 하지만 그의 충격적인 심리 분석은 들으면 들을수록 설득력이 있었다. 김 소장과 지난 24일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1) "박근혜는 연산군…대통령 하기 싫다"


박근혜, 대통령 하기 싫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학적이 아닌 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으로 대통령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일이 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2015년 집권 3년 차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는데, 통치자 박근혜의 심리와 정치 행위를 설명한다면?

김태형 :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면,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다. '박근혜'라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고 싶거나 대통령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표를 얻을 힘이 있기 때문에 극우 보수 세력이 일종의 '정치 상품'으로 키웠고 그렇게 대통령까지 됐다고 보여진다. 어쨌든 '박근혜' 개인은 하기 싫은 배역을 맡아서 억지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프닝에 그쳤지만,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당시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하기 싫었던 거다. 프로이트가 봤다면 "쟤, 대통령 하기 싫어해!"라고 했을 것이다. (웃음) 그런 말이 그냥 실수로 쉽게 나올 수 없다. 프로이트는 "실수에도 다 뜻이 있다(Freudian slip)"고 했다. 대선에 출마하기도, 대통령 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에게 대통령에 대한 의지가 없다'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박 대통령은 독선적이고 권력욕이 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특히 18년 가까이 은둔 생활을 하다 정치권으로 돌아온 데는 어떤 욕망이 있기 때문 아닐까?

김태형 : 심리학자가 보기에, 박 대통령은 권력욕이 없으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물론,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자신의 기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우 보수 세력의 설득이 없었다면,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 다시 발을 디딜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하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세를 확장하려고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 들어와 지금까지 '내 역할 다 했지? 그럼, 집에 가 쉴래'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데, 어떻게 정치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싫은 사람이다.

또 박 대통령은 주도성이 없다. 자신이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거나,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를 감당할 뚝심이 없다. 맡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회피하고,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며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박근혜는 연산군이다?

프레시안 : 역대 왕이나 대통령 중 박 대통령과 유사한 심리를 가진 사람은?

김태형 :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역사의아침 펴냄)에서 성종의 장남이자 폐비 윤 씨의 아들인 연산군(조선의 10대 왕)의 심리를 분석했는데,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연산군과 비슷하다. 

연산군은 예닐곱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1482년 성종 13년 폐비 윤씨 사사(賜死)사건). 이후 그는 생존 위협에 시달리며, 세상에 대한 불신감·정서 불안·애정 결핍·자신감 결여·방어적 태도·의존심·심한 분노 감정 등을 갖게 됐다. 당시 수구 보수 세력인 훈구파는 그런 연산군을 기어이 왕으로 옹립해 이용했다. 연산군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한편,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에게 지독히 의존했다. 

박 대통령은 22살에 어머니를 잃고, 5년 뒤 아버지마저 잃었다. 무서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경우다. 기본적으로 겁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권좌에 앉았어도 정권에 비판적인 세력을 두려워한다. 연산군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왕에게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 늘 자신을 죽일 것으로 생각했다. 선제공격한 것이다. 잔인한 성품이라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약하고 겁이 많아서다. 

또 연산군이 할머니인 인수대비와 친인척에게 의존하다 자신의 인생을 망쳤는데, 박 대통령 역시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에게만 의존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지난해 '비선 실세' 의혹에 휘말린 정윤회 씨를 비롯해 청와대 김기춘 전 비서실장,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행정관 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심리적으로 아예 믿지도 않고, 또 믿을 수도 없다. 

프레시안 :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포함한 일명 '십상시'가 국정을 농락하고 있다는 풍문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다는 말인가.

김태형 : 박 대통령은 심리적으로 의존 상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극소수다. 그리고 이들 소수는 '박근혜'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 본인도, 심리적으로 굉장히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말을 더듬거리는 모습이 TV에 자주 노출된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정도면 심각하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뿐 아니라, 사안을 대하는 태도도 긍정적이지 않다는 신호다. 정서적으로 이미 패닉 상태(공황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현 정권의 주인, 실질적 권력자가 정말 누구인지 의문이 든다. 

김태형 : 박근혜 정권은 수구 보수 세력의 공동 정권일 수 있다. 물론, '실세가 누구냐?'에 따라 정권의 주인이 달라질 테지만…. (웃음) 

참, 비극이다. '박근혜'는 지도자로 유래가 없는, 정말 특수한 유형이다. 아마 극우 보수 세력은 '박근혜'라는 정치 상품이 없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재집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7년 대선은 돈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이 겹치면서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역대 최악의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이때 극우 보수 세력은 정권 재창출용으로 '박근혜'라는 카드를 요긴하게 썼고, 또 성공했다. 

선거에서는 '심리적 결합'이라는 게 중요하다. 60세 이상 노년층은 '영애(令愛) 박근혜'에게 측은지심이 있다. 감정적 유대가 한 번 형성되면, 끊기 어렵다. 반면 젊은층은 이런 유대가 전혀 없다. 박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시대착오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벌여도 표를 주지 않는다. 극우 보수 세력은 '박근혜'가 집권을 위한 마지막 카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를 위해 내각제 개편 등을 고려하는 것이다.


박근혜, 7시간 동안 멘붕에 빠지다? 

프레시안 : 현재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말이 아닐 것 같다. 하고 싶지도 않은데, 책임질 일이 많은 위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파동 등 자아 분열을 겪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김태형 :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7시간 동안 사라진 것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상황을 피하고 본 것이다.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일 처리를 측근에게 맡긴 후 7시간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멘탈 붕괴). 그러니, 그날의 행적을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프레시안 : 대중 앞에 도저히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인가. 

김태형 : '대통령 실종 7시간'은 정신적 붕괴를 진정시킨 시간이었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박 대통령 임기 중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 재난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아마 비슷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9일 세월호 대국민 담화 때 눈물을 흘렸다.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반등시킨 효과가 있었다. 

김태형 :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박근혜'의 위치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물리적·정서적 접근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을 주도적으로 하는 대통령도 아니고, 직(職)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시련을 이겨낼 힘도 없다. 그래서 1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세월호 참사를 은폐하려고만 하는 것 아닌가. 해결 능력이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말 통치 능력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논란을 1년 전에 어떻게든 끝냈어야 했다. 주변 측근에게 책임을 물어서라도 사건을 정리했어야 했다. 1년이 넘도록 진전도 없이 세월호 논란을 끌고 가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다. 쉽게 사그라질 성질이 아닌데, 세월호 참사를 유야무야(有耶無耶) 1년 이상을 끌고 왔다는 것은 통치자로서 굉장히 미련한 짓이다. 사건 수습을 주도적으로 할 의사가 없다고 봐야 한다. 

'친박' 올드보이의 한계

프레시안 : 집권 여당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종북 공세를 한 것 자체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 아닐까? 

김태형 : 박근혜 측근의 정치력이 박근혜의 정치력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위시한 극우 보수 세력도 그렇게 정치력이 있는 집단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극우 보수 세력은 무능하고 부패해 한국을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본다. '박근혜'라는 카드가 아니었다면, 이미 교체됐어야 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박정희 유신 정권 시대,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전두환 군사 정권 시대 인물이다. 모두 옛날 방식이다. 현안에 대한 사고도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보다 느리다. 이슈를 주도하기보다는 따라가는 스타일 아닌가. 이들이 기껏 할 수 있는 정국 주도법은 종북 공세 아니면,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처럼 의외의 일을 터트려 충격을 주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프레시안 :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끊임없이 음모 혹은 공작설이 나온다. 이유가 뭘까? 

김태형 : 정권을 잡은 극우 보수 세력 자체가 국가 철학이 없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집단이 자신의 철학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그저 순간의 위기를 넘기는 식으로만 처신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들고 나오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나도 할래요'라고 했다. 줏대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보수니까 안 한다'라며 선을 분명히 그었어야 했다. 그런데 현 집권 세력은 그런 철학이나 정체성이 없다. 그래서 '순간의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에만 골몰한다. 

통치 철학의 부재가 결국 음모와 공작설 등 온갖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전두환보다 능력이 부족하다. 이들은 나쁜 사람이었지만, 자기 철학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철학이 없다 보니, 일 역시 투명하게 집행되는 게 없다. 측근이나 내부에서도 쑥덕쑥덕해서 순간의 위기를 넘길 카드 하나를 꺼내는 식이다. 이 카드가 실패하면, 또 쑥덕쑥덕하고. 그러니 예측이 안 되고, 예측이 안 되니, 사람들은 추측하고 상상하게 된다. 





(2) "MB는 교활한 양아치…문재인은 또 진다"


문재인, 또 진다고? 

프레시안 : 야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선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다. 그런데 문 대표 역시 권력욕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자기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까? 혹시 문 대표가 대통령이 된 후,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되는 것 아닐까?

김태형 : 문 대표는 박 대통령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시대적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 전투력이 없다. 게다가 겁도 많은 편이다. 그런 문 대표가 2017년에 대선 후보로 다시 출마한다면? 또 질 것이다. 상대가 누가 나오든 필패할 확률이 높다. 

대권에 두 번 이상 도전해 성공한 사람이 누구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1971년, 1987년, 1992년, 1997년)과 노무현 전 대통령(1997년, 2002년)이다. 두 사람은 겁이 없다. 공격이 들어오면 맞받아치던 사람들이다. 문 대표처럼 회피하고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재인 스타일'은 극우 보수 세력의 온갖 공격을 이겨내고 최종 승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요즘처럼 복잡한 국면일수록 전투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선비 스타일의 얌전한 지도자는 태평성대에나 어울린다. 대중 또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프레시안 : 그렇게 보면, 현재 여야 정치인 중 가장 전투력 있는 사람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웃음)


김태형 : 그렇긴 한데, 김 대표는 역시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똑같은 전투력을 가진 사람이 야당에 있다면, 김 대표를 제치기는 쉽다. 대중들에게 새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여야의 차이는 굉장히 명확하다. 여당은 이익 공동체고 야당은 가치 공동체다. 이익 공동체를 상대로, 가치 공동체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권력을 손에 쥔 여당은 서로가 무엇을 나눠 먹을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집권해도 보수적 가치를 가진 관료·법조·재벌과 나눌 수 있는 파이(pie)가 없다. 그래서 야당의 목표는 각자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고, 여당의 목표는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김태형 : 극우 보수 세력이 내각제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변형된 보수로 2017년 세 번째 집권 기회를 노릴 것이다. 이 경우, 유권자들은 2012년 성공 전략인 '보수(박근혜)의 거짓말'에 또 흔들릴 수 있다. 인간 심리상, 사람은 믿으려는 심리가 믿지 않으려는 심리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지배층이 반민중적인 집단일 때 거짓말은 강력한 통치 수단이 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지배층이 민란이나 항쟁을 일으킨 사람에게 '잘해 줄게'라고 타협한 뒤, 그들이 방심하면 천연덕스럽게 칼을 휘둘렀다. 또 지배층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도덕성이 없는 위선적일 가능성이 크다. 잃을 것도 많아서 늘 방어적이다. 일단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한 뒤,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발뺌하는 식이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 

민중이나 국민에 기초한 정부라면, 장기적으로 볼 때 거짓말한다고 이득 볼 게 없다. 실수한 게 있으면, 공개하는 게 낫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반대 세력(민중적 세력)이 집권한 경우가 거의 없어, 지금까지 거짓말은 중요한 통치술로 발전돼 왔다.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잘 써먹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의 '새경제', 과연?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을 위시한 극우 보수 세력이 지난 대선에서 거짓말로 이겼지만, 또 거짓말을 해도 유권자는 믿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치인 선택의 기준이 되는 심리는 무엇인가. 

김태형 : 일단은 유권자가 가진 동기, 욕망에 정확한 호소를 누가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극우 보수 세력은 나쁜 욕망에 호소한다. 따라서 민주 진보 세력이 나쁜 욕망에 같이 호소하면,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뉴타운 공약이 화두가 된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48개 지역구 중 40대 7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통합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에 압승했다(나머지 1개 지역구는 창조한국당이 차지했다). 

민주 진보 세력은 훨씬 더 좋은 욕망, 건전한 욕망을 건드려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도덕성과 정의에 호소해야 한다. 그런데 야권 역시 물질주의를 의식해 자꾸 물질주의적 욕망에 호소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우리가 돈 더 줄게' '우리가 집권하면 더 잘 살게 해줄게'라고 말했다. 이럴 때 유권자는 '누가 나에게 돈을 더 줄 것인가'를 계산해 판단한다. 

하지만, 사회 구조상 극우 보수 세력이 유권자의 욕망을 실현해 주기가 더 쉽다. 즉, 돈을 줄 수 있는 여건이 보다 용이하다는 말이다. 극우 보수 세력의 공약이 형편없어도 유권자가 판단하기에 '쟤네가 더 현실성 있다'라고 생각하면, 보수를 찍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야당이 정권을 잡아서 경제 민주화를 하는 것보다 무게의 초점이 여당에 더 실리게 되어 있다. 

프레시안
 : 그럼, 문 대표가 지난달 9일 국회 대표 연설에서 제시한 '새경제'는 물질주의적 욕망에 기댄 필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김태형 : 그렇다. '새경제' 역시 물질주의다. '그동안 우리가 잘못된 노선을 걸어왔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이게 아니며, 진짜 행복해지려면 이런 사회가 필요하다'는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물질주의가 끊임없이 심화됐다. 돈에 대한 욕망, 즉 돈 중심의 세계관이 팽배해졌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하다. 우리가 정말 욕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오직 돈만을 욕망하는 것 같지만, 정말일까? 사실은 돈이 아닌 행복을 욕망하지만, 그 행복을 돈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돈을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 없어 무시당한 경험을 공포처럼 여기고 있다. 돈이 있으면 무시당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돈을 욕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없어도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물질주의로부터 인간주의 내지는 행복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면 된다. 해방 이후부터 매몰된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권을 꿈꾸는 자여, 김대중·노무현처럼…

프레시안 : 그럼, 야당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짜야 하나. 

김태형 : 히틀러에게 그래도 배울 게 있다면, 그는 자신의 집권 중 작은 정책을 얘기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의 공동체 회복, 부르주아 만행 등 큰 패러다임만 말했다. 정책 하나하나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대선에서는 사람들에게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희망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정책 개발자는 아니지 않나. 그런데 야당은 정책만 앞세웠다. 2012년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 중 복지 부분을 살펴보면, 문 후보는 △국공립 중심의 인프라 확충 △보편적 아동 수당을, 박 후보는 △민간 중심의 인프라 확충 △서비스 대체 현금 지원 유지를 약속했다. 두 후보의 공약이 비슷하지 않나? 유권자가 어떤 정책이 더 좋은지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특히 대선은 시대를 대변하는 두 진영의 대표 주자가 이데올로기나 희망을 갖고 대결을 펼치는 장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패러다임을 잘 제시했다. 그의 일관된 메시지는 '정의 실현'이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앞으로는 정의가 승리하고 불의가 패가망신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스타일의 지도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야 한다. 

다만, 노 전 대통령도 대통령직에 상당한 부담을 가졌던 것 같다. 욕망이 있어 대통령이 됐다기보다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시대적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2003년 대검찰청이 정치권 전반을 겨냥한 대선자금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 10분의 1 이상 받은 것으로 밝혀지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라고 했다. 사법부와 야당의 파상공세에 결연하게 맞선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직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심리가 엿보였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한국형 지도자로,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김태형 :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IMF 직후에 대통령을 맡아 경제 문제와 관련해 통제권을 가질 수 없었던 비운의 대통령이었지만, 원칙과 노련미뿐 아니라 끈기와 철학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대통령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임기 내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이뤄낸 것만 해도 통치 철학이 얼마나 뚜렷했는지 알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의 6.15 선언 덕에 노 전 대통령도 10.4 공동 선언을 할 수 있었다. 두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났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웃음) 

프레시안 : 다른 지도자의 캐릭터도 궁금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나. 

김태형 : 양아치다. 그것도 아주 교활하고 색깔이 분명한…. 그런데 철학이 있다. 다름 아닌, 돈! 돈을 벌기 위해 대통령이 됐고, 돈을 벌었기 때문에 퇴임 후에도 만족하며 살고 있다. 아주 일관성이 있다.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노래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는 박 대통령보다 조금 유연하다고 할까? 교활하다고 할까? 아무튼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다. MB가 늘 "나도 해봐서 아는데!"를 외치지 않았나. 수준 높은 처세가 아닌, 저급한 처세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태형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야심가이면서 기회주의자였다. 콤플렉스가 많아 내면이 복잡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정체가 불투명한 사람이었는데, 당시 미국과 북한 모두 그가 좌파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한 마디로, 현대사가 만든 괴물 또는 기형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父女) 모두 인간을 깊이 있게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상대방을 배신했던 경험이 많았던 만큼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했다. 특히 여자에 대한 불신이 상당해 여성 편력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배신당해서 죽었다. 


'이런' 지도자를 기대한다

프레시안 : 시대를 대변할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점은? 

김태형 : 민주 정부 10년, 보수 정부 10년을 거친 한국 사회는 현재 과도기다. 21세기형 새로운 리더가 나와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철학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한다. 물질주의를 인간 중심주의로, 대중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극우 보수 세력의 마지막 발악을 제압할 수 있는 전투력이 필요하다. 

재벌이 강고(强固)하다고 하지만, 극우 보수 세력처럼 통치에 목매며 종북을 무기로 삼는 이들이 아니다. 재벌은 실용주의가 우선이라, 돈이 된다면 통일도 마다치 않을 사람들이다. 남북 간이 협력해 살 수 있다면 기득권을 내려놓을 가능성이 큰 쪽은 오히려 재벌, 즉 한국의 자본가들이다. 민주 진보 세력의 힘이 세지면, 이들의 동맹은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 

새 지도자에 의해 인간 중심주의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면, 자본가 중 상당수는 이탈할 것이다. 극우 보수 세력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탁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은 극우 보수 세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대안 세력을 찾을 것이다. 

그나마 한국 재벌은 미국의 경우와 반대다. 재벌이 극우 보수 세력을 만들고 조정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권력을 앞세워 재벌에게 횡포를 부려가며 돈을 뜯었다. 그래서 한국 자본가들은 극우 보수 세력을 싫어한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싫어한 것은 유명하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돈을 하도 많이 뜯겨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했을 정도로, 정치에 부정적이다. 

또한 미국이 쇠퇴하면서 한국에서의 영향력도 퇴조하고 있다. 민주 정부의 성과인 개성공단을 둘러싼 재벌과 극우 보수 세력 간 알력(軋轢)도 지켜볼 일이다. 재벌 상당수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바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극우 보수 세력이 시대에 뒤처진 집단으로 인식되는 순간, 인간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극적 변화의 가능성도 내다볼 수 있다.







박 대통령, ‘배신 트라우마’ 거쳐 ‘복수 콤플렉스’로


아버지 측근들 ‘배신’에 깊은 상처 토로, 배신에 대한 집착은 복수 다짐으로

‘원조친박’ 김무성·유승민에 느낀 배신감

김무성에겐 ‘공천 탈락’으로 복수, 이번엔 대구 유권자들에 “유승민 떨어뜨려라”

대통령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는 국가적 비극


트라우마는 콤플렉스의 어머니다.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과거의 어떤 심리적 충격’이 켜켜이 쌓여 콤플렉스 덩어리로 응고되는 것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감정적으로 강조된 심리가 통상적 의식활동을 방해하는 현상’을 콤플렉스라고 정의했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과도하게 빼앗겨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리 저변을 ‘배신 트라우마’가 휘감고 있다는 분석은 널리 회자돼왔다. 박 대통령은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배신의 정치에 대한 국민 심판’을 거론했다. 메르스를 확산시킨 책임자에 대한 국민심판이라면 모를까, 총선이 10개월이나 남았는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라는 대통령의 요구는 너무도 뜬금없고 생뚱맞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무엇인가에 크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다른 것은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염려스럽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가 이젠 통상적 의식활동을 방해하는 콤플렉스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봐도 지나친 비약이 아닐 것이다.

배신 트라우마가 이젠 의식활동 방해하는 콤플렉스로

트라우마(trauma)를 보통 ‘정신적 외상’으로 번역하는데, 심리학에선 ‘영구적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일컫는다.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탓하거나 비난할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다.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도 일찍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리오”라고 읊지 않았던가. 트라우마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트라우마는 한층 성숙한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커다란 트라우마를 겪고도 심리적으로 성숙해진 경우를 심리학자들은 ‘외상 후 성숙(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의 트라우마는 배신이다. 일기와 자서전에서 배신에 관한 쓰디쓴 경험을 자주 토로했다. “오늘 옛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인생 무상함을 또 한 번 느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 당시 내가 알고 있었던 그들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이 한결같은 경우가 그야말로 드물었다. 모두가 변하고 또 변하여, 그때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배신을 하고 이러저러하게 변할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금의 내 주변도 몇 년 후 어찌 변해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991년 2월 10일에 쓴 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2007년에 출간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쓴 저서들.이해 가는 측면이 있다. 박 대통령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까지 하며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나중엔 ‘독재자의 딸’로 지목돼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 때 믿었던 사람들이 권력에서 밀려나자 순식간에 등을 돌릴 때 경험한 쓰라린 ‘배신의 추억’이 깊다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병이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과도하게 반응하면 콤플렉스가 된다. “콤플렉스란 특정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방어하는 행위다. 과거의 충격적 경험과 관련된 신호들을 모두 위험으로 받아들여 방어적 행동을 한다. 여기에 콤플렉스의 위험이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콤플렉스를 다룬 저서 <마음에 박힌 못 하나>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배신에 대한 집착은 복수에 대한 다짐으로 이어진다. 배신감에 치를 떨수록 복수에 대한 다짐은 더욱 사무친다. 박 대통령이 ‘배신 트라우마’에 과도하게 반응할수록 ‘복수 콤플렉스’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배신에 대한 혐오…능력보다 충성도로 사람 기용


일국의 대통령이 과거의 트라우마에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된다. 배신에 대한 극단적 혐오는 무엇보다 적재적소 인사를 어렵게 한다. 능력이 아무리 출중한 사람이라도 충성도가 입증되지 않으면 중책을 맡기지 않으려 한다. 능력보다 충성도를 최우선으로 따져 사람을 기용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 불거진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진 3인방’의 국정농단 의혹도 박 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많다.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다 보니 박 대통령과 오래 일해온 소수 측근들이 국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불통’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이 혹시 배신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다 보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제대로 소통이 될 리가 없다.

‘배신 트라우마’는 의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2011년 서청원 전 대표와 청산회에 보낸 송년 메시지) “고마운 사람은 나에게 물 한잔 더 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으며 진실한 태도로 일관된 사람들, 진정 빛나는 이들이었다.”(자서전) 2009년 8월엔 심재엽 한나라당 전 의원의 강릉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사람의 도리 중에는 의리를 지킨다는 게 있습니다. 의리가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라고 말했다. 명분과 가치는 내팽개치고 오로지 의리만 외치는 정치라면 조폭집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명분과 가치 대신 의리만 외치면 조폭집단


믿고 의존했던 사람한테 배신당했다고 여길 때 상처는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받은 상처만큼 응징하고 보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쉽다. 박 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도 측근의 배신에 더욱 강하게 반응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대표적 사례다. 김 대표는 한때 ‘원조친박’이었다. 박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대표를 할 땐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도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며 다른 길을 걷자 박 대통령은 “친박엔 좌장이 없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김 대표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김 대표가 배신했다고 여긴 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복수를 했다. 김 대표가 최근 박 대통령과 맞닥뜨릴 때마다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때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했을 거란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이마에 ‘배신자’란 선명한 주홍글씨를 새겼다. ‘여당의 원내사령탑’이라고 콕 찍어서 유 원내대표가 찍어낼 표적임을 숨기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밝히며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구을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떨어뜨려 달라고 대놓고 요구한 것이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대통령이 정치적 근거지인 대구의 유권자들에게 ‘유승민을 떨어뜨리라’고 만방에 공표했으니 유승민 원내대표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아찔했을 것이다. 유 원내대표가 26일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께서도 저희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고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 것도 이해가 간다. 정치란 게 이렇게 비루한 건가라는 쓴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유 원내대표 역시 박 대통령과 ‘대표-비서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핵심 측근이지만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이 지원한 이주영 의원을 꺾으면서 정치적으로 완전히 결별했다.

참으로 공교롭다. 국정의 파트너인 여당의 대표와 원내대표가 하필 한때 측근이었다가 돌아선 사람들이니 박 대통령으로서도 짜증이 날 법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다. ‘배신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한다면 결코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것이다.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는 때로 인간을 파괴와 파멸로 이끈다. 대통령이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갇혀 있다면 국가적으로 매우 위험한 징후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http://hani.co.kr/arti/politics/bluehouse/697762.html?_fr=mt1





박 대통령은 왜 툭하면 배신당했다고 느낄까

배신감과 허무주의로 인한 우울증 증상… '박정희'와 '선거'에 극히 민감한 반응


정치인에게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은 자신을 향한 칼날이면서도 상대방을 겨냥한 총구가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두고 배신의 정치를 한 당사자로 몰아세우면서 사퇴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배신’을 키워드로 한 박 대통령의 정치 이력도 회자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02년 박 대통령의 탈당 사태다.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 12월 10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던 박 대통령은 2002년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로 맞붙은 이회창 총재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박 대통령이 밝힌 탈당의 변이 현재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힌 유승민 원내대표의 처지와 비슷하다. 


박 대통령은 탈당의 변에서 "지난 총선을 앞두고 민국당이 창당될 때 나는 중심을 잡고 움직이지 않으며 이 총재를 도왔으나 이 총재는 나를 견제하고 경쟁자로만 생각하고 있다"며 "정당개혁의 핵심은 1인지배 정당체제 청산이다. 과거보다 이 총재 1인지배체제가 더욱 굳혀지고 있고, 이런 식으로 당을 운영하는데 집권한다고 나아지겠는가"라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대선 전 정당개혁을 이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진정한 수권정당으로 거듭나야 정권교체의 의미가 있다는 확신 아래 대선 전 총재직 폐지와 상향식 공천제도 도입, 투명한 당 재정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으나 결과는 1인지배체제의 틀 안에서 국민참여경선의 모양새만 갖추는 것이 되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나는 당내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한나라당이 희망의 새 정치에 앞장설 테니 지지해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해왔으며, 이는 나의 신념이었고 국민과의 약속이었다"면서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고 변화하지 않은 모습으로 국민지지를 호소할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회창 총재의 1인 지배체제 때문에 정당개혁 민주화가 요원하다는 진단 아래  정당 개혁을 위해서라도 탈당해 정계개편의 축이 되겠다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과거 모습과 비교하면 박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반대했던 1인 지배체제의 모습을 보여주며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찍어누르기 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유 원내대표가 원활한 당청 관계를 강조하면서 타협의 정치를 강조해온 것도 역설적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친박계 의원들이 지시를 기다렸다는 듯이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는 모양새 역시 정당민주화하고는 거리가 먼 행태들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간 뒤 정확히 9개월 뒤에 미래연합 대표로서 당대당 통합을 제안했고 한나라당이 수용해 복당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가 정치개혁을 약속했다"며 복당했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상승한 탓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차라리 탈당했다 수개월 만에 돌아올 바에야 당내에서 정당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명분이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아버지에 대한 당내 비판이 표출될 때도 강한 배신감을 여러차례 토로했다. 


지난 1999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의 상징이라고 비난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계획을 정략적인 술수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나라당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침묵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상당한 배신감을 나타냈다. 당시 이회창 총재 측은 박근혜 대통령(당시 부총재)이 대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개인 전략팀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를 두고 박 대통령이 배신을 운운하는 일은 다음해에도 계속됐다. 지난 2000년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예정지를 둘러싸고 경북지역 의원들이 "기념관은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에 건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자 박 대통령은 "그동안 기념관 건립에 대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경북 의원들이 이제 와서 구미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념관 건립을 훼방놓는 것에 다름아니다"며 "굉장한 배신행위"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서울 상암동으로 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기념사업회의 의견에 동조했다.


지난 2004년 박 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을 때 과거사 청산 문제를 놓고도 격론을 벌이면서 '배신'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전남 구례 곡성에서 개최한 의원연찬회 자리에서 한나라당 비주류 의원들은 당 대표인 박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비주류 측인 김문수 의원은 "박 대표는 누가 정수장학회의 문제점을 제기하든지 간에 당당히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했고, 이재오 의원은 "친일 및 유신독재의 잘못에 대해 깨끗하게 사과하고 털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작심한 듯 비주류의 탈당까지 시사하며 '배신의 정치'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한국에는 다른 정당도 많은데 (한나라당이)역사의 죄가 많은 당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정당을 택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국가 정체성과 관련한 질의서에는 답하지 않고 유신 운운하며 사과 요구하는 열린우리당과 똑같은 어조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분들이 15, 16대 때는 당의 실세였는데 그 때는 왜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느냐. 저에게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것인지 자기들이 대표를 하겠다는 것인지 정정당당히 하라"고 쏘아붙였다.


당시 연찬회 자리가 박 대통령의 반발로 격앙된 모습을 보이자 심재철 기획위원장은 "수위 조절 좀 하라"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대표에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10% 지지대로 떨어졌던 당을 제2당으로 만들어준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거침없는 박 대통령의 반발에 김문수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같다니 사실상 파국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 정권 정체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박 대통령은 자신이 대표로 있을 때 한나라당 지지를 끌어 올린 것에 대해서도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05년 출간된 "대통령의 딸 박근혜를 말한다"는 박 대통령이 지난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되고 정계에 입문한 1997년가지 은둔 시기에 주목해 ‘배신의 정치’를 체화한 박 대통령을 분석했다.  저자는 당시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의 인터뷰를 통해 "배신감과 허무주의로 인한 우울증 환자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증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일기에 '태어나지 않았으면'이라는 대목이 나온 것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로서 거듭난 것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구원투수’로 나서 치러진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121석을 얻으면서다. '선거의 여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선거'는 그를 정치 지도자의 반열로 올려놓았고 존재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자신이 당 대표직에 있을 때 당선된 사람 역시 자신의 수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한 '배신' 역시 이 같은 생각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아있다"며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져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1인 지배체제를 비판하면 탈당까지 감행하고 당 대표가 돼서 선거의 여왕이 됐던 박 대통령에게 유승민 원내대표는 '여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하는 배신의 아이콘이 돼버린 것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837




[인터뷰]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①

"박근혜, 박정희·전두환보다 더 배신당할 것"


꼭 1년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산군, 대통령 하기 싫다"는 파격적인 심리 분석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을 다시 만났다. '선거의 여왕'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이 처참하게 깨진 4.13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이런 충격적인 결과를 박 대통령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국정 운영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 정치력'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기득권층의 박근혜 옹립 과정이 있었고, 민심에서는 어릴 적부터 박근혜를 봐왔던 심리적 유착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애잔함이 가진 위력은 단 한 번, '영애'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였다. 지지가 두 번, 세 번 이어지려면 '영애' 박근혜는 정치력을 보여줬어야 했다...박근혜의 정치력은 허구적이며, 국민적 지지 또한 허구적이다...한번 붕괴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빨리 무너질 것이다."  


김태형 소장이 분석한 4.13 총선에서 '선거의 여왕'이 힘을 발휘하기 못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이런 민심을 받아들여 구시대적, 권위적인 국정 운영 방식에 변화를 줄 것인가?


"박 대통령은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이 크다. 이런 유형은 세상을 향해 방어막을 치고 산다...아마도 4.13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자신의 권력에 더 집착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무리수를 두는 방향에서라도, 장기 집권이나 후기 구도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 이런 박 대통령은 계속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김 소장은 "집권세력과 지지층이 박근혜를 버리는 정도는 과거 박정희, 전두환 등 여권의 지도자를 배신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득권층 내에서 '박근혜 제거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어버이연합과 전경련 커넥션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여권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인한 어지러운 정국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2일 진행한 인터뷰를 두 편에 나눠 게재한다. 


▲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4월 13일, 애인과 헤어지다 


프레시안 : 4.13 총선이 '새누리당 완승, 개헌 가능한 의석수 차지'와 같은 기존의 예측을 빗나갔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원내 제2당이 됐고, 여소야대 국면이 마련됐다. 선거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김태형 : 새누리당이 아닌, 야당 쪽으로 표가 많이 갈 것을 예상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안 돼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다수당이 될지언정, 정당 득표율은 야당이 우세할 것으로 내다봤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4월 13일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33.50%, 더불어민주당은 25.54%, 국민의당은 26.74%, 정의당은 7.23%의 정당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현명했다.(웃음)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표를 주고, 집단적으로는 집권여당을 견제할 수 있도록 야권에 힘을 줬다. 그 결과 새누리당이 원내 1당에서 2당으로 떨어졌다. 놀라운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예측의 일부는 빗나갔고, 일부는 맞았다. 

프레시안 :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민심, 어떻게 봐야 할까.

김태형 : 1년 전 인터뷰에서 '현재 집권세력은 시대착오적인 유신 잔당들'이라고 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은 시대가 흘러가면서 점점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권 4년 차인 현재 가시화되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새 시대를 감당할 수 없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통치 역량의 부재가 그대로 드러난 선거였다. 새누리당이 정국을 주도하거나 국민을 통치하는 데 썼던 수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안정국 조성과 종북 몰이, 두 번째는 거짓말과 사기. 새누리당은 국민과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없기 때문에 두 가지로 버텨왔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의 집단 탈북'과 '북한 정찰총국 출신 대좌 망명'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외신도 '4.13 총선에서 북풍(北風)의 영향력이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앞으로 집권세력의 종북 몰이는 점점 더 통하지 않을 것이다.(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의 이번 총선에서 북풍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반면, 경제가 표심을 좌우했다고 분석했다.)     


선거 막판, 새누리당은 엎드려 절하며 '잘하겠다'고 반성했지만 국민들은 속지 않았다. 거짓말인 게 너무 뻔하니까. 새누리당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새누리당은 이 시대를 무엇으로 헤쳐나갈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선거 패배에 대한 내부 수습책도 없지 않나. 있을 수가 없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사람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느끼더라도 처음에는 버틴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르면 표출한다. 참고 참았던, 누적된 고통이 이번 선거를 통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는 민심으로 폭발한 것이다. 

사실 애인과 헤어질 때도 한 번에 이별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웃음) 여러 번에 걸쳐 불신이 쌓이고, 믿었다가 또 배신당하기를 반복하면 분노에 이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젠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민심이 그 상태다. 


'선거의 여왕', 그 힘을 다하다 

프레시안 : 지난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정권은 잡았지만 집권 의지가 없어 정국 운영에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기존 생각과 너무 달라서 반응이 컸는데…. 김태형 소장의 말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의지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권력 유지에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사실상 전패했다. 이유 무엇일까?


김태형 :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 정치력'에 대한 지지 아니었다. 국민들이 '박근혜'에게 표를 주며 도왔던 것은 뛰어난 정치가여서가 아니다. 일단 기득권층의 박근혜 옹립 과정이 있었고, 민심에서는 어릴 적부터 박근혜를 봐왔던 심리적 유착관계가 있었다. 애잔함, 또는 불쌍하다는 정서가 밑바탕이 된 '영애(令愛) 박근혜가 한 번은 대통령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이 애잔함이 가진 위력은 단 한 번, 영애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였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하지만, 지지가 두 번 세 번 이어지려면 영애 박근혜는 정치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래야 '한 번 도와주고 끝낼 게 아니구나. 박근혜, 괜찮은 사람이네. 더 도와줘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길 텐데, 대통령이 된 이후 그의 모습은 후회스러웠다. '그저 불쌍하다 생각에 지지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구나'라는 내면의 반성마저 불러왔다. '선거의 여왕'은 그래서 끝난 것이다. 


박근혜 지지자들도 할 수 있는 한 다 해줬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통령 될 때까지 지지해줬으면 심리적으로 빚진 것 없지 않나. 이제는 그만 내려와라'라는 심리로, 유착 관계가 끝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 유권자 다수가 기권한 것은 이런 의미다. '선거의 여왕'을 더 이상 도와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박근혜의 정치력은 굉장히 허구적이다. 국민적 지지 또한 허구적이다.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지지라기보다는 심리적 유착관계에 의한 일시적인 지지였기 때문에 한 번 붕괴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빨리 무너질 것이다. 

프레시안 : 4.13 총선을 기점으로 붕괴되고 있다고 보는 건가. 

김태형 : 그렇다. 


▲ 새누리당 지도부가 4.13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한 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선거 전만 해도 '박근혜 지지율'은 무너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22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전통적인 지지층 중 상당수가 '선거'라는 시점에 맞춰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 신기하다. 

김태형 : 평상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과 다시 국가를 맡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때는 정말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이번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면, 국민적 심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웃음) 4.13 총선 전에는 이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집권 3년 동안 이어진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또 새누리당에게 국가를 맡겼다면 이해 불가능이다. 나라의 존립이 위험하다고 본다. 다행히도 민심은 늘 납득할 정도만 움직인다. 


'떨고 있는' 박근혜, 자기 세계에 갇히다

프레시안 : 수구보수 세력의 옹립으로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 그는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어떤 마음일까? 

김태형 : 조금 과장하면, 일종의 자폐 상태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이 크다. 이런 유형은 세상을 향해 방어막을 치고 산다. 그래서 갈수록 시야가 좁아진다. 바깥세상은 위험한 곳이고, 방어막을 친 안쪽만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 세계에만 빠지는 자폐 성향을 보일 수 있다. 인식도 당연히 왜곡된다. 

심리학에서 인간의 인식이 왜곡되는 것은 사실 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심리적인 문제다. 망상(妄想)은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에게만 생기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는 것 아닌가. 자폐 성향이라는 것도 지적 수준보다는 정신 건강과 관련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신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폐쇄성을 띈다. 자기 안에 갇힌 사고, 즉 우물 안 사고를 하는 셈이다. 

아마도 4.13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나 비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신 건강이 좋다는 의미다. '나에게 불리한 결과를 인정해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버틸 수 있다. 나를 바꿔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정신 건강상 '난 붕괴될 것 같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못 받아들인다. 

일반적으로 비판 수용을 잘하는 사람은 내면이 센 사람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못하는 사람은 내면이 약한 사람이다. 비판을 받아들이면 스스로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연히 후자다. 선거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아가 약한, 마음에 기둥이나 힘이 전혀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앞으로 점점 더 인식이 왜곡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프레시안 : 선거 결과 권력이 의회로 넘어갔지만,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염려되는 게 있다. 국민은 이번 선거를 통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바꿔달라'고 주문했다.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더군다나 단임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남은 임기를 국민의 마음을 달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소속 정당이 다음 대선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김태형 : 전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4.13 총선 이후 겁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의석을 많이 확보해서 중임제나 의원내각제 등 개헌을 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그런데 실패했다. 


이 경우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표심을 파악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최소한 흉내를 내서라도 대통령 임기 말까지 국정을 안전하게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반대다. '앗, 이것 봐라? 존위를 보장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세워놨는데, 이대로는 너무 위험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권력에 더 집착하게 된다. 박 대통령은 오히려 무리수를 두는 방향에서라도, 장기 집권이나 후기 구도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단, 새누리당 내 지지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의 정치력이라는 것, 사실 실체가 없지 않나. '선거의 여왕'의 유일한 이용가치는 득표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득표력이 없다는 사실이 판명 났다. 이용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주변에서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둘 것이다. 


집권세력과 지지층이 '박근혜'를 버리는 정도는 과거 박정희·전두환 등 여권의 지도자를 배신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하이에나 떼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독자적인 지도력이 없기 때문에 민심 이반을 너머 여권 내부의 반란이 제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권력 누수가 박 대통령의 무리수와 충돌하면, 내부에서 직접 '박근혜 제거'를 생각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김태형 : 그렇다. 또는 권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선거 후유증을 겨우 잊고 나름 잘 진행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또 빨간 옷 입고 등장해 망칠 수도 있으니까.(웃음) 상황이 아주 이상하게 돌아갈 것이다. 흐름상 예측이 그렇다.


▲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기승전-패션'으로 기억될 것인가. ⓒ프레시안


'박근혜 대통령 당선', 舊 세력 마지막 작품


프레시안 : 새누리당의 대권 잠룡들, 오세훈-김문수-김무성 등이 이번 선거에서 무너졌다. '새누리당이 자생력을 잃었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대선주자로 누군가를 세우고 싶어도 인물이 없는 곤란한 처지다. 

김태형 : 그게 바로 '집권여당이 시대착오적 세력'이라고 말한 이유다. 그나마 대선 이후 '박근혜의 득표력'으로 보궐선거 한 번 더 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 특수가 사라졌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멘붕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외부에서 수혈해야 하는데, 곤란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김대중 동행 보고' 건으로 위치가 불안정해졌다. 견제 세력이 조금만 흔들면, '반기문 바람'이 쉬 꺼질 수 있다. 새누리당은 안철수 대표 영입도 고려했을 텐데, 호남에서 '가지마'라며 국민의당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면, 아주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야 하는데 지금 어떤 사람이 초상집에 가겠나. 대권을 준다고 해도.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울산 북구 윤종오 당선인 선거사무소를 압수수색한 것처럼 박 대통령이 무리한 행동을 할까 봐 걱정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정치 탄압과 정치 공작, 앞으로 더 심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민심 이반과 권력 누수, 그리고 반란이 이미 시작됐다. 언론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어버이연합'과 '전경련'의 커넥션은 시작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면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


프레시안 : 설마, 임기도 못 채우는 것은 아닌지.


김태형 : 그건 예측 불가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현명한 방향으로(4.13 총선 결과대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누가 코치를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닐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1기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올드 세력이 보좌했다. 이들은 '정치 공작의 달인'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대로 비교적 잘 진행해 왔다. 사태를 수습하려 하지 않을까? 

김태형 : '정치 공작의 달인'은 맞는데, '어버이연합'이나 '서북청년단'과 같은 시민단체를 만들어 친정부 집회를 하고 국정원을 통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댓글을 조작하는 것은 유신시대 방식이다. 구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2016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통용되는 방식이 아니다. 좀 더 세련된 방식이라면 모를까, 유신시대 방식의 정치 공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 끝이다. 그들이 나선다고 해도 현 사태를 수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겁해진' 야당, 새누리당 적수 될까? 

프레시안 : 이번 총선 결과를 긍정적으로 보면, 국민이 '박근혜'라는 구(舊) 정치 세력을 심판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원내 1·2·3당의 정치적 색깔이 보수화되면서 진보정당의 몫은 더 줄어들었다. '민심이 정확하게 반영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더민주나 국민의당이 기존 야당의 위치보다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국민에게 또 어떤 실망감을 줄지, 앞으로 민생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 등 걱정이다. 선거 후 나타난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태형 : 야당에 대한 불만도 집중적으로 표출된 선거였다. 사실 더민주가 좋아서 표를 준 유권자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미워서 더민주를 찍은 것이다. 호남이 이런 정서를 집중적으로 드러냈다. 일반적으로는 '더민주, 너희들은 야당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이고, 진보적인 유권자들은 '더민주, 너희는 새누리당 2중대 아니냐?'라며 정체성을 따져 물은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특히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협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였던 박영선 의원이 선거 전, '더민주(구 새정치민주연합)가 다수당이 아니라서 새누리당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며 '(더민주를) 찍어 달라'고 했다. 선거가 끝난 지금, 더민주는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됐으며,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제20대 국회의원 의석수 현황은 더민주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다.) 


그런데 세월호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6일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고 자신의 트위터에 "이제야말로 세월호특별법 개정하고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글쎄…. 유권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 또 '너희도 (새누리당과) 똑같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만 놓고 보면, 더민주(25.5%)가 국민의당(26.7%)에게 졌다. 더민주에 대한 지지가 높지 않다는 뜻이다.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가. 전국적으로 두 당의 득표율은 큰 차이가 나지만(더민주 34.93%, 국민의당 6.85%), 정당 득표율은 국민의당이 높다. 국민이 더민주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신을 차릴까? 

2017년에 있는 대통령 선거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야당의 우경화 현상뿐 아니라, 비겁화 현상 때문이다. 야당들이 겁이 많아졌다. 다른 말로 하면, '겁 도둑'이 됐다. 대선에서 어떻게 용감하게 싸울 것인지 우려된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지도자의 부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인터뷰]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②

문재인·안철수, '돈'으론 못 이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일종의 "자폐 상태"로 4.13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란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의 예측은 꼭 들어맞았다. 4월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 "국회 심판"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유권자들의 '종이 짱돌(페이퍼 스톤)'을 던져 여당과 박근혜 정부를 심판한 4.13총선에도 불구하고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를 예상하기는 아직 어렵다고 김태형 소장은 말한다. 


유리한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드러난 야권의 대권 주자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었다. 불의와 싸우고 적과 대적하는 데 있어, 이들은 다소 과격할 만큼 배짱이 있었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온순한 선비' 그 자체다. 


안철수 : 무엇보다 정치 철학이 없어 문제다. 자신의 철학에 따른 비전을 제시해야 '새정치'가 시작되는데, 철학이 없기 때문에 '새정치'에는 내용이 없다. 국민들이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특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한 야권에서 현재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게 '시대정신에 대한 오독'이라고 김 소장은 강조했다. 


"월급이 늘어난다고 고통이 줄어들까? 정치인들은 지금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의 불행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었고, 양극화였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파탄이었고, 공동체의 파괴였다'라고."


'돈'이 아닌 '인간다움에 대한 회복'을 염원하는 시대정신에 용감하게 호응하는 새로운 리더십과 정치가 2017년 대선 승리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김 소장은 강조했다. 


(☞관련 기사 : ① "박근혜, 박정희·전두환보다 더 배신당할 것")


▲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호남, 문재인 OUT!

프레시안 : 4.13 총선에서 호남 민심이 논란이 됐다. 호남이 국민의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에 대한 신뢰가 높아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호남 민심, 어떻게 읽어야 할까?

김태형 : 신자유주의라는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5.18민주화운동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됐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는 '광주'가 시대정신으로 부각한다. 특히 정치 행위를 할 때는 진보성과 개혁성을 띤다. 그렇다 보니, 호남은 전략적 투표를 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 될 사람을 알아보고 밀어주는 능력,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열풍'은 광주의 지지를 받아 북상했다. 호남 사람들에게 노무현 후보가 부산 사람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 대권에서 상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살폈다. 노무현 후보는 이 두 개의 질문에 합격점을 받았다. 

이번 선거 결과 나타난 호남 민심의 핵심은 정권 교체다. 2017년 대선에서 극우보수 세력(새누리당)이 아닌, 개혁 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길 바라고 있다. 또 '미완의 광주'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아니었기에 사람(대권 주자)을 보지는 않은 것 같다. 대신 더불어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이어갈 능력도,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역량도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이탈했다. 민심이반 현상은 서울지역 정당 득표율(더민주 25.9%, 국민의당 28.8%)에서도 드러났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평가가 '더민주 심판'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나. 

김태형 : 그렇다. 호남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비록 박근혜 후보에게 51대 48로 졌지만, 문 후보는 호남 사람들에게 전국에서 제일 높은 지지를 받았다.(문재인 후보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광주 91.97%, 전북 86.3%, 전남 89.3%로 호남에서만 89.2%의 지지를 받았다.) 

'문재인 패배' 원인 중 하나는 '배짱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었다. 불의와 싸우고 적과 대적하는 데 있어, 이들은 다소 과격할 만큼 배짱이 있었다. DJ는 젊은 시절 내내 '빨갱이'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1970년대 야당 최고 지도자로 박정희 정권과 타협하지 않아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5공화국 청문회 때 명패를 집어던질 정도로 투사의 이미지가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장인의 빨치산 활동이 논란이 되자 "나보고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라고 맞받아쳤다. 당시 '50대의 반란'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보수표가 이탈했다. 

▲ 문재인 전 대표는 특전사 출신이다. ⓒ문재인

반면, 문 전 대표는 '온순한 선비' 그 자체다. 일단, '종북 공세'에 대처하는 자세가 확연히 다르다. 맞서기보다는 도망치는 스타일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종북 공세를 당하자, '종북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해병대를 방문하고 천안함 희생자를 기리며 보수주의자 흉내를 냈다. 누가 봐도 겁먹은 모습이었다. 

이런 태도는 싸움에서 굉장히 불리하다. '종북 몰이'에 공포를 느끼는 국민들은 전투사령관이 벌벌 떨고 있으니, 더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대선에서는 전투력 여부가 중요하다. DJ와 노 전 대통령은 야권 출신이지만, 전투력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적(보수 여당)들의 최대 무기인 종북 공세를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다. 

광주 사람들은 문 전 대표는 대선 주자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2017년 대선에 나가면 또 질 것이라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무엇보다 종북 공세에 맞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투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논란거리다. 야권에서도 '노무현 스타일로 더 이상의 집권은 불가능하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김태형 : '노무현 스타일'이 100%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노무현 정권이 무조건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권'을 두고 싸우는 사람은 적어도 전투력이 있는 '투사형 지도자'여야 한다. 또 종북 공세를 정면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저열한 종북 몰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 후보님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친하신 것 같다'고 하자, 문재인 후보는 '박 후보님, 전교조는 법이 인정한 합법적인 조직입니다. 그걸 부정하시는 겁니까?'라고 대응했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다음, 어떻게 했나. 바로 전교조를 불법화했다. 당시 문 후보가 '박 후보님은 왜 자신과 사상이 다르면 인정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민주주의자가 맞습니까? 혹시 파시스트 아닙니까!'라고 맞받아쳤다면? 아마, 박 후보는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광주는 적어도 이런 흐름을 볼 줄 아는 것 같다.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는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다. '문재인'이라는 카드로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한, 차기 대선 주자로 나서기는 어렵다고 본다. 전투력이 너무 없다. 책사(策士)로는 훌륭하지만, 지휘관이나 야전사령관으로는 부족하다. 

호남, 안철수 AGAIN? 

프레시안 :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야전사령관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서 호남과 수도권의 큰 지지를 받았다. 안 대표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 것은 아닌지…. 

김태형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얻은 지지는 더민주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강하다. 만약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종북 공세가 없었다면,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는 진보 정당에 쏠렸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정치 지형,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종북 몰이가 횡행하는 한 국민의 선택은 양당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13석(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을 차지하며 제3당이 된 적도 있지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이후 진보 정당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줄었다.


안철수 대표도 문재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대선에서 상대방을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안 대표는 무엇보다 정치 철학이 없어 문제다. 자신의 철학에 따른 비전을 제시해야 '새정치'가 시작되는데, 철학이 없기 때문에 '새정치'에는 내용이 없다. 국민들이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 15대, 16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 ⓒ프레시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권 욕심보다 자신의 정치 철학이 우선이었다. 두 사람은 대통령이 돼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대권이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은 철학이 없다. 대권 욕심 외에는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정치인 스스로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어떤 시대를 이끌어갈 것인지를 제시해야 국민들도 제대로 된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정치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정치인 100자 평

 김무성
4.13 총선에서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수준이 일단 국민과 안 맞는다. 그래서 대권 주자로 나오면 정말 반가운 사람이다. 실수를 연발해 야권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줄 것이다. 

 반기문
외교부가 공개한 '김대중 동정 보고'가 치명적이다. 일단 호남이 '반기문 등판'을 거부할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걸어온 길과 인간성에 대한 사회적 실망, 회복하기 어렵다. 

 오세훈 
2011년 무상급식 파동 때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본인이 제시한 서울시장 재신임투표 당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오만의 극치를 보였다. '남자 박근혜'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유승민 
일단 '유승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 하나뿐인데, '반박'이 앞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지 기반마저 분명치 않다. 정치적 파괴력이 부족하다. 

 김부겸 
김영삼(부산·경남)-박근혜(대구)-김종필(충청) 등 지역주의 맹주가 사라진 지금, 호남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대구 표밭에서도 반은 가져올 것 아닌가. 

 김종인 
보수 인사 중에서 그래도 진정성이 있는 인물이지만, 나이도 정신도 늙었다. 경제 패러다임 역시 1987년 헌법 조항인 '경제 민주화'에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되고 난 뒤 전투력이 없어졌다. 욕심이 철학을 앞서기 때문이랄까? 과거 시민사회 단체장일 때와 같은 모습이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대권 주자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이재명
'파이터 기질'은 문재인 전 대표보다 낫다. 자신의 실수마저 거세시킬 정도로 전투력이 있다. 만약 대권 주자가 된다면, 야권의 그 누구보다도 잘 싸울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와 사과는 빨갛다. 단, 사람은 아니다 

프레시안 : '종북'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출중하지 않고는 깰 수 없는 프레임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북풍(北風)'이 작동하지 않았다. 유권자의 상당수가 더 이상 '종북 몰이'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김태형 : '종북'이나 '빨갱이'와 같은 색깔론은 늘 공포를 동반했다. 찍히면 죽는, '너, 조금 있다가 죽을 거야!'라는 살인 예고장을 받은 것과 같았다.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국민보도연맹 사건'(6·25 한국전쟁 초기 정부가 좌익 전향 단체인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체포해 집단 학살한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유신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민주화 운동 세력을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으로 둔갑시켜 사회 지도층과 학생 등을 검거한 사건) 등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탄생한 게 색깔론이고, 공포다. 

색깔론이 언어적 공격에 그쳤다면, 공포심을 조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도 빨갱이 공세에 시달리지만, 위력이 크지 않다. '매카시즘 광풍'(극단적 반공주의)이 불었던 1950년대라면 공포였겠지만, 지금은 색깔론을 덧씌운다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80년대까지도 사람을 고문하거나 의문사로 위장해 죽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겪은 뒤, 두 번의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색깔론 공격을 총으로 뒷받침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색깔론 공포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론 공격이 언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색깔론의 위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과거 정권들은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만 색깔론을 사용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종북 공세에 들어갔다. 이틀에 한 번씩은 쓴 것 같다.(웃음)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추모 열기를 종북으로 몰자, 국민들은 특히 분노했다. '종북 몰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인식만 불러왔다. '북한 무인기 사건'도 알고 보니, 화장실 문짝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이번에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귀순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래서 뭐? 그럴 줄 알았어. 아무 것도 없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종북 몰이가 남발되면서 희화화됐다고 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이 색깔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웃음)


▲ 2014년 3월 4일 자 '손문상의 그림세상'. ⓒ프레시안


프레시안 : '종북 공세'는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퇴행을 가져온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종북' 프레임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김태형 :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서도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과 같은 진보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한국은 종북 공세로, '버니 샌더스'(진보 정치인)의 등장을 철저히 막고 있다. 

결국 한국의 진보 정당 또는 진보 정치인은 '버니 샌더스'가 등장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헌법 안의 정치'를 해야 하고, '헌법 안의 진보'를 표방해야 한다. 얼마나 왜곡된 정치 구조인가.(웃음) 

한국에도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처럼 사회주의를 얘기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진짜 그렇게 외치면, 종북으로 몰리겠지?(웃음) 그래서 '버니 샌더스'와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 

돈이 없어 불행하다? NO! 사람대접이 먼저다 


프레시안 : 요즘 정치인은 철학도 없고 시대정신도 읽지 못한다고 비판했는데, 2017년 대권을 주도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김태형 : 시대정신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근원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과거 고통의 근원은 군부독재였다. 그래서 당시 시대정신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였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상당수의 정치인은 '돈이 없어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표피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하면, 대중 추세적인 관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인들이 현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대접을 못 받아서 고통 받는 것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대접을 못 받고 무시당한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뿐이다. 

월급이 늘어난다고 고통이 줄어들까? 정치인들은 지금 시대정신을 잘못 읽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의 불행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불평등이었고, 양극화였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의 파탄이었고, 공동체의 파괴였다'라고


정치인의 임무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한 채 인간의 존엄성마저 유린당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회복, 즉 공동체가 부활되어야 한다. 정치인이라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와 같은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사회안전망 확충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자신의 정치 철학을 주장하다 '종북'으로 몰릴 각오를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초 '대중경제론'과 '연방제통일방안'을 주장했다. 그 결과, 빨갱이로 몰려 몇십 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6.15 남북공동선언 등을 이루며 역사를 바꿨다. 

프레시안 : 현재 시점으로 보면, 다음 대선도 경제 문제(또는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대선 때와 같은 프레임인데, 야권은 이 싸움에서 한 번 진 것 아닌가. 

김태형 : 시대정신을 '돈'으로 오도(誤導)하면, 새누리당이 무조건 유리하다.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대결한다고 해도 야권이 지난 대선에서 얻은 48%의 벽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방향은 맞았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구호에 맞는 정책과 설명이 없었다. 

프레시안 : 지금 야권 정치인 중에 그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김태형 :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고통의 근원과 해결 방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좋겠다. 시대정신을 꿰뚫고 있어도 종북 공세가 무서워 말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야권 정치인들의 비겁성 또한 문제다. '버니 샌더스'와 같은 소신 있는,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 사회가 발전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감동을 주는 정치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에는 못 본 것 같다. 시대를 대변하고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진짜 정치인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얘기하는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와야 한다. 


헬조선, '파라다이스조선'으로 SHIFT!

프레시안 : 이번 선거의 특징 중 하나가 2030대 투표율이 올랐다는 점이다. 세월호 이슈와 청년 문제 등에 분노한 민심이 표출된 것이라고 보는데, 젊은 층의 적극적인 정치화, 어떻게 봐야 할까?

김태형 : 성공을 꿈꾸며 야망을 불태우던 1990년대와 달리, 지금 청년들은 꿈과 야망을 포기한 채 공무원과 교사와 같은 안정을 찾고 있다. 이유는 '낙오될 것이다. 굶어 죽을 것이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포세대'가 된 청년들은 스펙을 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이들에게 결국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개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고통 역시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 스스로 '헬조선에 살고 있다'고 말하며, '흙수저·금수저'라는 단어로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불과 1~2년 새 젊은 층의 정신세계가 큰 도약을 한 것이다. 아직 행동화 단계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시각이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됐다. 


이런 가운데, 4.13 총선이 하나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들은 '사회 모순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이미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훌륭한 야당이 이번 선거를 지도했다면, 젊은 층의 정치화는 더욱 가속화(투표율 상승)됐을 것이다. 

이들이 다시 일어나 싸울 가능성은 높다. 1980년대와 같은 학생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섣불리 얘기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 대한 시각에 눈을 뜨고 있고 정치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성이 일고 있다. 그로 인한 행동의 징후가 보인다. 물꼬만 터지면, 가속화될 것이다. 


▲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 ⓒgoogle.com


프레시안 : 민심은 분명히 변하고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다소 왜곡돼 반영된 면이 있다. 그리고 2017년 대선이 기대되는 정치인 또한 보이지 않는다. 

김태형 : 새누리당이나 야권이나 다음 대선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2017년은 야권에 가장 유리한 국면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집단이 막바지에 도달해 있을 뿐 아니라, '박근혜 득표력'도 차기 대권 주자도 없는 상황이다. 

단, 유리한 상황을 '불리함의 가능성'으로 만들 사람이 야권에 있다는 맹점이 있다.(웃음) 야권이 내홍에 휩싸이거나 새누리당과 똑같은 프레임(돈, 또는 경제민주화)으로 경쟁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역사상 최초의 기회가 오히려 불리해 질 수 있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192시간 27분 동안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통해 전투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 발 더 나가 종북 공세에 맞서 잘 싸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줘야 한다. '세월호 싸움'이 야권의 진정성과 전투력을 확인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럼, 국민이 호응할 것이다. 무엇보다 야권이 어설픈 대선 주자를 낼 수 없게 하는 강제력이 생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단순히 대권을 노리는 사람인지, 철학을 가진 진짜 정치인인지 가려낼 것이다.(끝)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①] 김재규가 10.26의 동기 중 하나로 지목한 '새마음운동'박근혜에겐 감추고 싶은 '20대'가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0320&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1980년 1월 28일 계엄고등군법회의 재판부에 세 달 전에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항소이유보충서가 제출되었다. 이 문서에는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와 관련된 중요한 증언이 실려 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 영애의 문제가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었지만 중요한 것이었다." (1990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

최태민이란 자가 총재로, 큰 영애(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명예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러 김재규 자신이 중앙정보부 조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직보'했음에도, 오히려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박근혜를 이 단체 총재로 앉혀 결과적으로 개악시켰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은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쏠렸다. 이로 인해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 영애의 문제'는 주로 최태민이란 세 글자에 국한됐고, 정작 이들이 구국여성봉사단을 '교두보'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것은 바로 '새마음운동'이었다.

퍼스트 레이디의 '새마음 외출', 그렇게 많았는데 왜?


기사 관련 사진새마음운동. 이제까지 알려진 바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하다. 박근혜가 육영수 여사 사망을 계기로 가까워진 최태민 목사와 의기투합하여 1977년부터 전국적으로 펼친 국민운동으로 충효 정신을 바탕으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다같이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전체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민 정신 개조운동이란 평가도 따라붙는다.

그 운동에 어느 정도 박근혜가 열과 성을 다했는지는,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975년부터 1979년 10.26 직전까지 이들 신문에 실린 '큰 영애'의 퍼스트레이디 행적을 조사해보니, 박근혜가 소화한 청와대 외부 단독 일정 보도 137건 중 최태민 목사 혹은 새마음운동과 관련한 일정이 64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대로라면, 거의 두 번에 한 번은 '새마음 외출'이었던 셈이다.

▲  2007년 출판된 박근혜 후보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와 같은 자신의 '과거' 평가에 매우 '인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07년 나온 그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보면, 총 350페이지 분량의 이 책에서 '새마음운동'이란 단어는 단 두 차례만 언급된다. 그 분량 또한 다 합쳐도 한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1974년부터 걸스카우트 명예총재를 맡았고, 곧이어 '새마음운동'을 전개하며 퍼스트레이디 활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새마음운동'은 '새마을운동'의 정신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어가자는 뜻을 담았다. 소득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득 수준에 걸맞은 의식 수준을 갖는 것이 필요한 때였다."

위 글이 박근혜가 자서전을 통해 새마음운동에 대해 그나마 상세하게 밝힌 전부다. 이제부터 그 '전부의 나머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려 한다. 

"복음국가 건설" 다짐하는 행사에 나타난 박근혜


기사 관련 사진"배화여고 합창단의 육 여사를 추모하는 조가가 울려 퍼지자 장내는 숙연해졌고 이내 울음바다가 되었다. 시종 따뜻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위엄을 잃지 않은 근혜양은 입장식이 끝난 뒤 식순에도 없는 즉석 연설로 '바쁜데 와주셔서 고맙다. 힘껏 싸워 돌아가신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이 대회를 빛내달라'는 내용의 인사를 했다." 

1974년 9월 21일 장충체육관에서 개막한 '육영수 여사컵 쟁탈 어머니 배구대회'. 당시 <경향신문>은 어머니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퍼스트 레이디로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큰 영애' 박근혜의 모습을 위와 같이 전하고 있다. 이처럼 그 해 박근혜의 행보는 '새마을 권잠(勸蠶)실 현판식'이나 '새마을여성경진대회' 참석 등 대체로 육 여사의 자리를 메우는 모습이었다.

▲  생전의 육영수 여사, 곁에 앳된 모습의 박근혜 후보가 보인다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만의 독자적인 행보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이듬해 5월 11일 임진각이었다. 최태민 목사가 이끄는 대한구국선교단, 그들이 주최한 기독교 초교파 구국기도대회라는 행사에 그 모습을 나타낸 것. "조국의 통일"과 또한 "복음국가 건설" 등을 다짐하는 '해괴한' 자리였다. 

그 후에도 박근혜는 M16 소총 사격 등 구국선교단 목사들의 군사훈련 퇴소식, '나라의 영원한 보호와 발전을 기원하는 기도회' 등 최 목사가 주관하는 여러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다. 군부대나 대구 지역 교회 등 먼 곳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태민 목사 주관 행사에 자주 얼굴 드러내


기사 관련 사진

▲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 후보와 함께 새마음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이다. 1990년 11월 23일자 <동아일보>


1976년에도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와의 '돈독한 행보'는 계속된다. 구국선교단 주관 헌혈 행사에  방문하는가 하면, 구국선교단 개설 야간무료진료센터(새마음종합병원 전신) 개원식에도 참가한다. 이어 그해 4월, 김재규가 항소이유보충서에 언급한 구국여성봉사단의 발단식이 열린다. 박근혜는 물론 당시 통일원장관, 서울시장 등도 참석했다고 한다.

새마음운동의 '복선'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해 6월이다. 역시 구국선교단이 주최한 경로대잔치,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오늘의 모임은 국민 전체가 참여해야 할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권력의 '주구' 역할을 했던 <경향신문> 역시 "효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다짐하는 경로대잔치"라 표현했으니, 그때 이미 새마음운동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곧 구국여성봉사단 조직이 전국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다. 그해 9월 도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구국여성봉사단 천안 지부와 수원·화성지부가 만들어지고, 구국선교단·한국노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구국여성봉사단 등 4개 단체의 '구국단체 결연 단합대회'도 열린다. 행사 때마다 박근혜가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급기야 그해 연말과 다음해 연초에 걸쳐서는 TBC를 시작으로 KBS 이어 MBC 순으로 새마음운동 '예고편'이 방영된다. 특별 기자회견이나 특집 대담 형식의 프로그램에 박근혜가 직접 출연하여 '새해에는 새마음운동' 또는 '이제는 새마음운동 시대'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아들이 히딩크와 기념사진 찍었던 그 나이에...


기사 관련 사진"물질 만능으로 이뤄지는 모든 부작용은 아예 처음부터 뿌리 뽑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경제 발전에 못지 않게 정신개혁운동을 일으켜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정신적인 면에서도 선진화를 이룩해야 한다." (1976년 12월 12일 TBC)

"우리가 이 시점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또 시급한 일은 무엇보다도 범국민적으로 새마음갖기운동을 벌여 정신순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새마음갖기운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민이 노력하는 것이 국민총화단결의 첩경이다." (1976년 12월 17일 KBS)

"새해에는 도시·농촌 할 것 없이 우리 정신을 순화시키는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되찾고 튼튼한 복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새마음갖기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1977년 1월 3일 MBC)

▲  1976년 12월, 박근혜 후보는 퍼스트레이디로 생활한 지 2년 여 만에 이뤄진 TV 특별기자회견 등을 통해 새마음운동의 본격적인 전개 의지를 밝힌다. 1976년 12월 17일 KBS 송년 회견 소식을 보도한 당시 신문

그때 박근혜의 나이 스물다섯, 이명박 대통령 아들 시형씨가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히딩크 감독과 기념사진을 촬영했을 때와 같은 나이였으니, 갓 대학을 졸업한 새파란 젊은이의 '일성'을 지켜보는 당시 '어른 세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20대의 나이에 북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정은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각에서는 아주 '기괴한 광경'이었던 셈이다.

새마음운동 전국에 지역 조직... '개악'은 오히려 그 후


기사 관련 사진

▲  박근혜 후보의 퍼스트레이디 시절 핵심 활동은 새마음운동이다. 특히 1977년부터 박 후보는 전국을 돌며 새마음운동 확산을 위해 지역 조직을 건설한다. 사진 상단 왼쪽부터 'Z' 방향으로 경기, 충남, 전북, 경북, 전남, 강원, 충북, 제주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하단 맨 오른쪽 사진은 경기여고 새마음학생회 발단식 모습



그리고 스물다섯 살 젊은이의 새마음운동 '교지'에 온 나라가 출렁이기 시작한다. 그해 3월 16일, 구국봉사단, 대한노인회 등 10개 민간단체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른바 '새마음갖기궐기대회'. 

당시 내무부 장관도 참석한 이 행사에서 '큰 영애' 박근혜는 격려사를 통해 "새마음갖기운동이 어느 단체나 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 전체의 국민철학으로 심어져 나갈 때 이 땅은 이상적인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곧 전국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8일 후 인천에서 2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새마음갖기 경기·인천시민 궐기대회가 열리고, 이어 경남·마산, 충남·대전, 전북·전주, 경북·대구, 전남·광주, 부산, 강원, 충북 등 순으로 제주를 제외한 전국이 새마음갖기궐기대회 '광풍'에 휩싸인다.

그 모든 행사에 박근혜는 직접 모습을 나타낸다. 당연히 도지사들로서도 '출석 도장'을 찍어야 하는 행사였다. 동시에 궐기대회가 열릴 때마다 해당 지역에는 구국여성봉사단이 조직된다. 일종의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전국 규모 조직이 탄생한 셈이다.

1978년 2월 22일, 전국 지부장 등 구국여성봉사단 간부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새마음갖기결의 실천 전국대회에서 박근혜는 마침내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정식 취임한다. 취임사에서 이제 새마음운동은 "한 국가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성장해 나가고자 할 때 필연코 다져야 할 기초작업"으로 격상한다. 김재규가 결과적으로 상황이 더 개악되기 시작했다고 지목한 바로 그 시점이다.

불교도 '새마음', 구로공단도 '새마음'


이와 같은 김재규의 상황 인식은 정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생 단위 새마음운동 조직이 본격적으로 꾸려지고, 종교계는 물론 노동계로까지 확산되는 시점이 '큰 영애' 박근혜가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취임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우선 종교계에서는 불교계가 발빠르게 움직였다. 

1978년 4월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불교본부가 '뜨고', 이어 새마음갖기 대법회가 열린다. 새마음운동의 '산파'가 최태민 목사였음을 감안하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임에 분명했다.

이에 박근혜는 새마음운동 불교본부 각 종단대표를 청와대에서 접견하는 자리에서 그들을 치하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모든 종단이 한가족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단합하여 불교 총화를 이룩하고 나아가 전국민에게 새마음의 불꽃을 피우게 해 달라"고 격려한다.

노동계에서는 특히 직능 단위로 새마음운동 조직이 잇따라 구축된다. 그 출발은 구로공단. 1978년 6월 1일 최각규 상공부 장관, 구자춘 서울시장, 공단 내 362개 업체 대표, 그리고 여자 종업원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단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및 새마음직장봉사대 결단대회'가 열린다.

이어 그해 9월 한국간호원보조협회, 11월에는 버스 안내양을 중심으로 한 '전국자동차노조'가 각각 새마음직장봉사대를 조직한다. 다음해인 1979년에는 3월에 창원공업기지, 8월에는 서울시 약사들까지 '새마음 종사' 행렬에 동참한다. 

"전국 면 단위까지 지부 조직"... <새마음의 길> 영문판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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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6월 2일자 <경향신문>  ▲  1979년 7월 발행된 <새마음의 길> 영문판



이렇게 전방위로 조직된 새마음운동 관련 단체의 위세는 1979년 2월 당시 구국여성봉사단이 주도한 '물가안정범국민대회'를 통해 잘 나타난다. 

그 면면은 구국여성봉사단, 전국대학생총연합회, 전국 중고등학생 총연합회, 대한노인회, 자동차노조, 새마음 불교본부, 성균관, 서울시의사회, 서울시한의사회, 예총 등이었다. 

이와 관련 1979년 8월 14일자 <경향신문>은 '뿌리내리는 새마음운동' 기사를 통해 퍼스트레이디 박근혜를 돌아보면서 "큰 영애가 무엇보다도 큰 역점을 두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새마음운동"이라며 "새마음봉사단은 전국 각 면에까지 지부 조직을 끝냈다"고 결산하고 있다. 그야말로 '꼼꼼하게', 조직을 구축했음을 보여준다.

이제 새마음운동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새마음종합병원, 새마음연수원도 등장한다. 연예인 새마음봉사대가 각종 '새마음 행사'에 동원된다. 당시 박근혜 총재의 새마음 대회 격려사를 묶은 <새마음의 길>이란 책이 나오는가 하면, 다시 얼마 후에는 <새마음의 길> 영문판도 출판된다. <코리아헤럴드>가 출판한 이 책의 당시 정가는 1200원, 미화로 2달러50센트였다고 한다.







"정신 파괴된 박근혜, 폭주가 두렵다"


[인터뷰]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샤머니즘 국가로 전락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집단적 멘붕(멘탈 붕괴) 사태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특정인을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작금의 사태를 1년 6개월 전에 '예언(?)'한 사람이 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언'이 아닌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예측'이었다. 그는 인물 심리 분석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심리적으로 의존 상대가 필요하"며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으로 연산군에 비유했다. 이 인터뷰는 최근 '최순실'이라는 박 대통령의 '조종자'가 명확해지면서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박근혜는 연산군…대통령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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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김 소장은 박 대통령에 대해 최태민-최순실 부녀에 의해 40년간 (정신적) "포로 상태"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심리적 특징은 '두려움'과 '의존성'이었고, 최 씨 부녀에게 장기간 조, 이용당해 오면서 정신적으론 더 망가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 


박 대통령의 현재의 상태에 대해선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 무기력과 폭주가 오락가락할 것이다. 불안감에 몸서리치다 대포도 쏘고 계엄령도 선포하고 싶을 것"이라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김 소장은 현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은 '박근혜'라는 대통령이 불가능한 사람을 내세워 무리하게 집권을 하고자 했던 수구 보수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 '박근혜'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순실이와의 관계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수구 보수 세력은 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사람을 데려다가 민주공화국 수장에 앉혔을까...단기적으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밝혀내는 게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신이 박약한 사람을 이용한 세력들(수구 보수 세력, 친미 사대 세력, 7인회, 만만회, 문고리 3인방, 8선녀 등 '새누리당 일파')도 처벌해야 한다. 이건 범죄다. 특히 알고 한 짓이기 때문에, '확신범'이다."


김 소장은 또 최순실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지지자들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심리적 유착관계가 해소됐기 때문에 남은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도 했다.

 

"이번 사태는 정치적 정통성이 완전히 부정된 사건이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박 대통령은 통치가 불가능하다. 끝난 상황이다. 너무나 극적으로, 그것도 아주 충격적으로 끝났다." 


다음은 26일 오후 있었던 김 소장과 인터뷰 전문. 


▲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포로 박근혜, 풀어줘야 한다"

프레시안 : 2015년 4월에 첫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로, "심리적으로 의존 상대가 필요하"며 "정서적으로 이미 패닉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박 대통령의 심리 분석이 너무 정확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태형 :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의존하고 있는 인물이 누군지 특정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알게 돼 속 시원하다.(웃음) 당시 박 대통령은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마저도 극소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윤회-최순실-김기춘 세 사람 사이에서 감을 못 잡았는데, 비로소 확인됐다.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다. 

1년 6개월 전 박 대통령은 "이미 패닉 상태"였다. 그리고 올해 4월 두 번째 인터뷰에서 "자기 세계에만 빠지는 자폐 성향을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이" 커 "세상을 향해 방어막을 치고"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 국면마다 해외 순방을 갔다. 알고 보면, 누군가 내보낸 것 아닐까? 박 대통령 멘탈이 약해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일의 수습 차원에서 말이다. 뭐,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에게 '가라'고 하면 가야지.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 말은 잘 들었으니까.(웃음) 이제 박 대통령을 쉬게 해줘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최태민-최순실 부녀에게 이용당하고, 조당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태형 : 그 연설문도 최순실 씨가 쓰지 않았을까? 박 대통령 심리가 지금 글을 직접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것 같다.(웃음) 기자회견도 녹화로 1분 정도에 그치지 않았나. 생방송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말이다. 

설령, 박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해도 주변에서 검토했을 것 아닌가. "그럼, 이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도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의 관계가 "순수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웃음) 청와대 참모들이 최순실 씨 수준으로 떨어졌다. 

말을 버벅거리고, 행사에 불참하고, 위기 때마다 해외에 나가는 등 이미 징후가 나타났다. 측근들은 박 대통령이 통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심지어는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렵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기자회견도 아마 굉장히 힘들게 소화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포로로 잡힌 상태다. 지금 상황도 박 대통령 혼자 수습하지 못한다. 최순실 씨가 도와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니 박 대통령은 조금 있으면 멘붕에 빠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죄를 지었지만, 달리 보면 치료 받아야 할 사람이다. 광신도 집단에 포로로 잡힌 사람을 사회가 구출해 치료해주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지금 한 종교집단의 무당에게 잡혀 있으니, 빨리 구출해야 한다. 

프레시안 : 멘붕에 빠진 박 대통령, 지금 어떤 상태일까? 무기력한 가운데,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김태형 : 박 대통령이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 무기력과 폭주가 오락가락할 것이다. 불안감에 몸서리치다 대포도 쏘고 계엄령도 선포하고 싶을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과 동정심이 남아 있다면, '포로 박근혜'를 이제라도 풀어줘야 한다. 물론, 본인은 세뇌를 당해서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양을 거쳐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치료된다는 게 아니라,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인간 '박근혜'를 위하는 길이고, 국민을 위한 길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20대부터 함께한 '40년 지기'다. <뉴스타파> 갈무리.


프레시안 :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 부녀와의 관계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각에서 종교적인 관계를 의심하는 것 아닌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박근혜 대통령께서 최태민-최순실의 사교에 씌어 이런 일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태형 : 박 대통령의 기본 심리는 두려움이다. 종교적인 걸 떠나서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어 있다.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 경호를 뚫고 들어온 공작원(문세광)의 총에 죽었다. 그리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최측근이자 실세 중 한 명이었던 사람(김재규)의 총에 죽었다. 

이 상황에서 인간 '박근혜'는 누굴 믿어야 할까? 두 번의 사건만으로도 박 대통령이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신을 보호해주며 정신적 안정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의탁할 수밖에 없다. 그게 최태민 목사였다. 최 목사는 특히 종교(영세교)를 도구로, 효과를 극대화했다. 최순실 씨 또한 그런 최 목사의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 최 씨 일가와 박 대통령의 관계가 교주와 교인이라면, 더욱 강력할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저렇게 망가질 수 있나?' 하는 측면인데, 최 씨 일가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기간으로 따지면 짧지 않다.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뒤, 최 목사가 자신의 꿈에 육 여사가 나왔다며 "나(육영수)는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너(박근혜)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더는 슬퍼하지 마라"고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 것 아닌가. 40년이 넘은 관계다. 누군가에게 40년 동안 이용당하고 조종당하면, 사실상 본성이 망가진다. 

'윤 일병 사건'을 심리학적으로 조사했는데, 건강한 청년들도 군대에서 1~2년간 학대를 당하면 망가진다. 윤 일병을 구타해 죽게 한 상병 두 명도, 처음에 군대에 왔을 때와 달리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였다. 단적으로, 5년 동안 상사에게 매일 핀잔을 들으며 회사 생활을 했다고 하면? 또 매 맞는 아내의 경우는 어떤가. 10년 동안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면? 피해자 대부분이 '남편이 훌륭한 분이라서 절 때린 거에요'라고 한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의사소통 방식을 놓고 '눈에서 레이저를 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또 '문고리 3인방도 박 대통령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고 한다. 

김태형 : 박 대통령이 최측근도 멀리한 채 지키고자 한 게 무엇인가. 자신이 유일하게 믿는 '최순실'이었다. 박 대통령 뒤에 최순실 씨가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언행만 봤다. "나쁜 사람"이나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와 같은 말, 그동안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 아닌가. 그런데 알고 보니, 박 대통령의 내면적 동기는 '순실이(순siri) 말 잘 듣기'였다. '이 세상에서 날 사랑하는 사람은 순실이 밖에 없어. 순실이 없으면, 난 죽을 거야'라는 심리다. '지구가 망해도 순실이 만은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다.(웃음) 

프레시안 : 정말,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김태형 : 그래서 박 대통령 같은 사람은 대통령을 시키면 안 되는 경우다. 미국 영화를 보면, 지구가 위기에 처해도 가족을 지키는 게 우선인 주인공이 나온다. 그와 비교해 박 대통령에게 뭐라고 할 수 있나? 박 대통령에게는 순실이가 전부다. 그럼에도 책임은 있다. 영화 주인공들은 재난을 먼저 수습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데, 박 대통령은 순실이 만을 구한다(지킨다)는 생각이니까. 

이기적인 사람들은 보통 세상을 못 믿기 때문에, 위기 상황일수록 가족부터 살리려 한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에 앉히면 되겠는가. 인간 '박근혜'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순실이와의 관계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수구 보수 세력은 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사람을 데려다가 민주공화국 수장에 앉혔을까. 

"'새누리당 일파'가 저지른 범죄박근혜, 임기 못 채운다"


프레시안 : 1년 6개월 전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권은 수구 보수 세력의 공동 정권일 수 있다"며 "'실세가 누구냐?'에 따라 정권의 주인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당시 "극우 보수 세력은 '박근혜'라는 정치 상품이 없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재집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태형 : 그렇다. 한국의 극우 보수 세력과 친미 사대 세력은 선거 때문에 '박근혜'라는 카드가 필요했다. 이 사람들도 ''박근혜'를 선거판(정치판) 끌어들이려면 누굴 만나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주변 조사를 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최태민 목사(1912~1994)였을 것이고, 이후에는 최순실 씨 아니었겠나. 


추측인데,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 대표되는 수구 보수 세력이 '같이 정권을 잡아 보자. 공동 정권을 창출해보자'라고 하며 삼성동에 칩거 중인 '박근혜'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만났고, 이듬해 4.2재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최순실 씨의 위치도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상 왕비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곁에서 왕이 될 때까지 보좌한 셈이니, 그 위세가 더욱 올라갔을 것이다. 

정권 초기, 김기춘 비서실장과 최순실 씨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박 대통령이 누구 편을 들었을까? 무조건 순실이 편을 들었을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2015년 2월 물러난 이유다. 박 대통령의 심리가 곁에 사람을 오래 두지 않는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쳐내는 식이다. 최 씨 일가 사람만 주변에 남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 문고리 3인방도 최 씨 일가라고 봐야 할까? 

김태형 : 그렇다. 사실상 최 씨 일가라고 볼 수 있다. 최순실 씨와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비서관은 '한통속'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오른쪽). 김 전 비서실장은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박 대통령을 보좌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은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를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최근에는 우병우 민정수석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게 모든 것을 다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적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국정이 좌지우지됐는데, 여기에 동조한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김태형 : 수구 보수 세력과 친미 사대 세력의 장기집권이 낳은 폐해다. 간단하게 '새누리당 일파'라고 칭해 보자.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부 10년을 기점으로 퇴장했어야 한다. 그런데 사기를 쳐서 정권을 잡은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후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꼭두각시로 세우면서 억지 집권 연장에 따른 폐단이다. 

현 집권세력인 '새누리당 일파'는 조선시대 '한명회 일파'와 같은 찌꺼기들이다. 70년 동안 집권했기 때문에 이제는 찌꺼기들밖에 남지 않았다. 악당도 질과 급이 있는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때가 되니까 고급 악당들은 사라지고 찌꺼기만 남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 얘기 듣고 쓴다"고 말하는 사람이니, 얼마나 수준있나.(웃음)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경제를 총괄한 최경환 전 부총리만 봐도 '새누리당 일파'가 경제를 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재난에는 또 어떻게 대처했나. 심지어 도덕성도 없다. 그렇다고 민족성과 자주성이 있나? 아니다. 할 줄 아는 것은 오로지 종북 몰이와 사욕을 채우는 일이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 일파'는 최 씨 일가가 조하는 '박근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김태형 : 욕망이 크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또 욕망이 강력하면 사고가 왜곡된다. 이들은 권력에 빌붙어서 한몫 잡겠다는 욕망, 자기들이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욕망으로, 박근혜-최순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제하고 절제해 욕망을 없애는 것보다 '건전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건전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의 최고 자리에 올라야 한다. 정치인이면, 욕망이 기본적으로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사익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차지했다. 본인들이 알았어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고, 또 다른 방식으로 합리화했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건전하지 못하고 마음이 병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대표적인 게 망상이다. 망상은 욕망에서 시작된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 과대망상이 나오는 것이고, '사람들이 날 너무 괴롭혀'라고 생각하면 피해망상이 생긴다. 이렇게 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의 순수한 마음에 현실 왜곡이 들어간 이유다.(웃음) 


프레시안 :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어떻게 강남 사는 웬 아주머니가 대통령 연설을 뜯어고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라고 했다. 국민이 느끼는 멘붕도 바로 이런 것이다. '강남 아주머니에게 국정을 농락당했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 

김태형 : 최순실 씨는 '강남 아주머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청와대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리고 영애 박근혜를 조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로얄 패밀리 수준의 심리를 가졌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간이 부어서 배 밖으로 나온 격이다. 


최순실 씨가 '동네 아줌마만도 못하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른 채, 최소한의 절차도 외교적 상식도 없이 국정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주머니가 국정을 쥐락펴락하다 보니, 박근혜 정부는 굉장히 비상식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의 관여를 심리적으로 제동할 힘이 없었을 것이다. 순실이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 

문제는 박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누리당 일파'는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옹립했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어떤 일을 당하든 말든 정권만 연장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이 박 대통령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다. 

'새누리당 일파'가 추종하지 않았으면, 영애 박근혜는 대통령을 하지 않았을 사람이다. 사회적, 심리적으로 자립할 능력도 없지 않나.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 국민을 기만하고, 꼭두각시로 내세운 사람의 단물을 빨아 먹은 이들이야말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권 초기 대통령 자문그룹이라고 불렸던 '7인회'가 대표적이고, 정윤회 씨가 부각되면서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과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포함한 '만만회'가 알려졌다. 이어 '십상시'까지. 

김태형 : 그렇다. 그런 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지금은 최순실 씨를 정점으로 하는 '8선녀' 얘기가 나오는 것이고. 

프레시안 : 새누리당 내에서도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선상 반란 또는 배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데,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의원 등은 결이 좀 다르다고 봐도 될까? 

김태형 : 같은 '새누리당 일파'다. 배가 난파할 것 같으니까 빨리 탈출하려고 쥐떼들이 아우성하는 꼴이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었겠는가. 물론, 야당에 속해 있다고 다 훌륭한 건 아니다. 

'조중동'이 모두 '최순실 게이트'를 다루고 있다. 단독과 특종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는 차기 선거에서 표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누가 봐도 지금은 탈출해야 하는 때다. 추가 폭로와 양심선언 등 정권 말기 붕괴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레임덕이 올 것이다. 


▲ 한 네티즌이 만든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미지. 18대 대통령을 '박근혜'에서 '최순실'로 바꾸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아직 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다. 걱정된다. 

김태형 : 지난 4월 인터뷰에서 '박근혜의 정치력도 국민적 지지도 허구'라고 했다. 그래서 "한번 붕괴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빨리 무너질 것"이며 "집권세력과 지지층이 '박근혜'를 버리는 정도는 과거 박정희·전두환 등 여권의 지도자를 배신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정치영역에서는 '새누리당 일파'의 대통령 옹립 과정, 그리고 민심에서는 영애 박근혜에 대한 심리적 유착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지도력이 없다. 따라서 "권력 누수가 박 대통령의 무리수와 충돌하면, 내부에서 직접 '박근혜 제거'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예견했다.

결국 맞았다. 박근혜 정권이 임기를 못 채울 것이라고 한 우려가 맞았다. 지금은 버텨 봤자 의미도 없다. 중간에 내려오든지, 쫓겨나든지 사달이 날 것이다. 이미 게임은 끝났다. 

프레시안 : 20대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때문에 분노하고 있고, 4050세대 아줌마들은 최순실 씨와 자신을 비교하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대한민국 남녀 모두 박근혜 정권이 사실상 '최순실 정권'이었다는데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다. 

김태형 : 말한 대로, 심리적 저지선이 붕괴됐다. 이번 사태는 정치적 정통성이 완전히 부정된 사건이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박 대통령은 통치가 불가능하다. 끝난 상황이다. 박근혜 정권이 너무나 극적으로, 그것도 아주 충격적으로 끝났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눈치 보기에 급급할 것 같다. 

김태형 : 민중들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에 11월 12일 민중총궐기와 같은 민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야당을 견인해야 한다. 야당도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국민의 힘을 등에 업고 정국을 수습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밝혀내는 게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신이 박약한 사람을 이용한 세력들(수구 보수 세력, 친미 사대 세력, 7인회, 만만회, 문고리 3인방, 8선녀 등 새누리당 일파)도 처벌해야 한다. 이건 범죄다. 특히 알고 한 짓이기 때문에, '확신범'이다. 그렇게 청소하고 다시 시작한다면, 한국 사회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