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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2014 올해의 책

by Wood-Stock 2014. 12. 27.

[2014 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책] 먹먹한 세상에 ‘죽비’를 들고, 갈 길을 들려주다


‘단군 이래 불황’이라는 출판계의 한숨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달 21일 시행된 새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 판매가 더욱 부진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복합적인 사고와 통찰력을 소망하는 이들에게 책은 대체불가능한 지적 근력의 원천이다. 한 해 동안 경향신문에 소개된 책들 가운데 시의성·충실성·참신성·화제성을 평가해 오래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 10권을 선정했다.


▲ 단속사회…엄기호 지음 | 창비 - 살아남으려 자신을 착취하는 시대상 적확히 해부


올해 서점가에는 한국 사회의 단면들을 해부한 ‘○○사회’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속사회>는 그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만하다. 저자는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는 뜻의 ‘단속(斷續)’ 개념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해부한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과잉연결’돼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취미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그 결과는 ‘공적인 것’의 소멸이다. “낯설고 모르는 것과 부딪치고 만나며 경험을 확장하고 갱신하고 통합하며 자신의 삶의 서사적 주체가 되려는 개인의 성장은 불가능해졌다. 그 대신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면 미친 듯이 자기를 소진해가고 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무기력하게 널브러지는 것을 무한반복하게 된다.” 저자의 이 말은 공적 합의를 통한 미래 전망 모색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에서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는 시대상을 적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관계의 단절은 곧 사회의 붕괴임을 강조한다.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장경덕 외 옮김 | 글항아리 -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임을 실증


올해 초 미국 서점에서 이 책이 동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출간 이전부터 화제가 됐다. 학자들은 물론 정치인들까지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을 내놨고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증세 문제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지난 9월 저자의 한국 방문을 정점으로 <21세기 자본>은 ‘피케티 현상’을 낳았다. 820쪽에 달하는 경제 서적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이라는 그의 주장은 새롭지 않다. <21세기 자본>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3세기에 걸친 자료 분석을 통해 실증했다는 점에서 강력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가 주장한 누진적 소득세 강화나 글로벌 자본세 도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그러나 충실한 자료 분석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합한 완성도 높은 저술은 아카데미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으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모범적으로 입증했다. 


 바른마음…조너선 하이트 지음·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가치의 다원론… 진보에게 도덕적 기반 확충 조언


지난여름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오랜 딜레마를 건드리며 적잖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문제의식은 ‘진보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품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보다 먼저 출간된 이 책에서 비슷한 주제를 더 깊이 다뤘다. 저자는 가치의 다원성을 주장한다. 사람은 심정적으로 설득되지 않으면 논리적으로도 설득되지 않는다. 진보가 흔히 빠지는 ‘바름’에 대한 강박은 “세상에는 하나 이상의 도덕적 진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만든다. 진보주의자는 희생자들의 피해와 고통, 공평성 여부에 도덕적 가치를 둔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충성심, 권위 같은 것들에 도덕적 무게중심을 둔다. 저자는 진보에게 도덕적 기반을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는 미국 진보주의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인류학, 심리학, 뇌과학, 진화론 등 다방면의 연구를 아우른다.


▲ 사회주의 100년 1·2…도널드 서순 지음·강주헌 외 옮김 | 황소걸음 - 좌파들이여, 서 있지 말고 다시 사회변혁을 꿈꾸라


책은 ‘20세기 서유럽 좌파 정당’의 100년 역사를 다룬다. 서유럽 좌파 100년 역사는 지속적인 쇠퇴의 역사다. 저자는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경제성장, 그것이 줄 수 있는 번영이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로 현재 좌파가 처한 어려움을 요약한다. 그러나 저자는 가만히 있는 게 답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좌파 정당들은 수세에 몰린 채 새로운 비전을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방어 전략은 일시적일 때만 통한다. 정치의 핵심은 이기는 것이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영국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은 2년 전 출간된 5권짜리 <유럽 문화사>로 이름을 알렸다. <유럽 문화사>에서 입증된 매끄러운 문장력과 방대한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능력은 1·2권 도합 1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 <사회주의 100년>에서도 빛을 발한다. 2008년 출간된 제프 일리의 <The Left 1848~2000> 이후 좌파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최고의 역작이다.


▲ 깊은 마음의 생태학…김우창 지음 | 김영사 - ‘근원적 원근법’ 상실한 한국 사회의 부박함 질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석학으로 평가받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사상적 행로는 ‘심미적 이성’에서 2000년대 이후 ‘마음’으로 이동했다. <깊은 마음의 생태학>은 80세를 바라보는 그가 미학과 철학, 문학과 사회, 세계와 실존의 문제를 아우르는 자신의 넓은 사유를 ‘마음의 생태학’이라는 열쇳말로 집약한 책이다. 그는 “오늘의 삶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일체의 깊이에 대한 감각”이라며 ‘근원적 원근법’을 상실한 한국 사회의 부박함을 질타한다. “튄다는 말은 매우 상징적인 말이다. 깊이와 뿌리가 없는 곳에서는 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된다. 그것은 단명하고 천박한 삶의 파노라마를 이룬다.” 결론을 향해 직진하는 대신 수없이 상충하는 견해들을 모두 검토하며 자신의 생각을 신중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쓰기는 여전히 까다롭고 난해한 느낌을 주지만, 지난 세월 지성의 깊이를 향해 내디딘 그의 쉼없는 걸음은 한국 지식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깊은 사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지금 우린,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심리학자이자 인지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두꺼운 책만 내놓기로 유명한 저자다. 대표작 <빈 서판>은 901쪽,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962쪽이었다. 전작들의 성과를 집대성해 인간 본성의 과학을 밝히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1400쪽이 넘는다. 책은 ‘과거보다 현대가 폭력적이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반박한다. 우리는 흔히 1차 세계대전 당시 1500만명이 사망했고 불과 20여년 뒤에는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을 떠올리며 20세기가 가장 폭력적인 세기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핑커는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폭력이 감소해 왔고, 어쩌면 현재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에 직관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사람이라도 책에 등장하는 100개가 넘는 표와 그래프, 저자의 집요하고 방대한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쉽사리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워진다.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지음·정문주 옮김 | 더숲 - 부패하지 않는 돈은 세계의 건강성 파괴한다


올해는 유난히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책이 풍성했다. 화제성에서는 <21세기 자본>이 압도적이었지만 가독성의 측면에서라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일본의 오래된 시골 마을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마흔넷의 와타나베 이타루는 자신이 시골빵집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굽고 있다고 말하는 남자다. 그가 주창하는 경제는 ‘창조경제’도 아니고 ‘혁신경제’도 아닌, ‘부패(하는) 경제’다. 모든 물질은 ‘발효’와 ‘부패’를 통해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인공배양된 이스트를 사용하는 빵과 부패하기는커녕 이자를 통해 점점 몸을 불려가는 돈은 예외다. 부패하지 않는 빵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듯 부패하지 않는 돈은 삶과 세계의 건강성을 파괴한다. 자본주의와 빵을 연결하는 발상이 절묘한데 저자 자신의 체험을 발효시킨 이야기여서 조금도 억지스럽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된다. 천연균을 연구하는 할아버지, 마르크스에 탐닉했던 아버지에 이은 3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 눈먼 자들의 국가…박민규 외 지음 | 문학동네 - 작가들이 본 세월호… 문학의 힘·존재 이유 보여줘


올해 공적 관심을 모은 그 어떤 사고도 세월호 참사보다 더 비극적이진 않았다. 김애란·김행숙·김연수·박민규·진은영·황정은·배명훈 등 문인들과 평론가, 학자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쓴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3만부를 찍어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올랐다. 이 중 진은영·박민규 등의 글이 처음 게재됐던 ‘문학동네’ 가을호는 문학 계간지로서는 이례적으로 매진되기도 했다. 작가들은 건조한 언론 기사나 논객들의 날카로운 주장으로는 담지 못한 시민들의 참담한 내면을 작가들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냈다. 작가들은 인세 전부를, 출판사는 판매 수익금 전부를 기부했다. 가격도 기존 같은 분량 책의 절반 가격인 5500원으로 매겼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문학이 갈수록 왜소화하고 문학작품의 판매가 부진한 시대에 문학의 힘과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김연수 작가는 말한다. “역사는 스스로 나아진 인간들의 슬기와 용기에 의해서만 진보한다.”


▲ 축구의 세계사…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지음·서강목 외 옮김 | 실천문학사 - 축구 예찬… 그러나 그 사랑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스포츠 가운데 전쟁과 가장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축구는 승리를 위해 맨몸으로 벌이는 투쟁의 매혹을 아무런 윤리적 부채감 없이 체험할 수 있는 스포츠다. 전 세계 인구 6분의 1이 직접 축구를 한다. <축구의 세계사>는 12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그 덕분에 축구와 정치, 축구와 돈의 관계에서부터 세계축구연맹(FIFA)의 부패, 한국 축구의 성과까지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다. 특히 저자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영국의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축구에 대한 설명 없는 세계사도 불완전하고 근대사회의 정치·경제·사회사를 보여주지 않는 축구사도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축구에 대한 사랑을 예찬하면서도 그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점 역시 빼놓지 않는다. 축구를 더 깊이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든, 올해 ‘홍명보호’를 둘러싼 온갖 잡음에 짜증이 난 나머지 축구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고 싶은 사람에게든 모두 쓸모 있는 책이다. 


▲ 여자 없는 남자들…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과도한 선인세 논란 불구하고 ‘하루키 파워’ 입증


하루키의 단편집으로는 오랜만에 출간된 책이다. 표제작을 비롯한 7편의 작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자를 떠나보낸 남자들’ 혹은 ‘떠나보내려 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몇 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외 저자에 대한 한국 출판사들의 과도한 선인세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난해 출간된 그의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발간 첫날 국내 대형서점에 독자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해 큰 화제를 모았으나 실제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책을 낸 출판사가 지난해 적자를 낸 원인 중 하나가 하루키에게 지급한 높은 선인세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하루키 파워’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여자 없는 남자들>은 출간 직후 계속해서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해 하루키의 위력이 여전함을 입증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작가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 <국내서>


눈먼 자들의 국가 - 김애란 박민규 외 지음 / 문학동네·5500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다!

 

‘4·16 세월호 참사앞에 사람들은 말을 잊었다. 생때같은 어린 목숨들이 시시각각 수장돼 가는 모습을 눈 번히 뜨고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력감과 분노는 참담했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작가와 연구자 열두 사람이 세월호와 관련해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글에서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를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을 조목조목 짚어 가면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김연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진보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고민했고, 김애란은 이해와 경청과 공감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이 책의 판매수익금은 세월호 관련 단체와 사업에 전액 기부하기로 해 10월 말쯤 1차분 1억원을 전달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유신 -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2만원

유신 잔당의 뿌리요 모델인 유신 본당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 퇴락의 구조와 그 뿌리가 무엇인지, 그 불길한 전락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면 40여년 전 유신체제 등장과 몰락기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떠올려 보는 게 좋다. 한홍구 교수는 이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를 자신의 모델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집권 말기의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를 보고 배웠다고 했다. 박 대통령 집권 1년 뒤,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했다며 유신이 (바로) 오늘이라 했던 그의 경고적 예언은 이미 실현됐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끝난다는 말대로 역사가 반복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유신 잔당의 본질을 알려면 그것이 모델로 삼고 있는 유신 본당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간도 특설대 -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15000

비로소 드러난 건국건군 세력의 실체

 

일제의 만주 항일독립운동 세력 토벌전문 군사조직 간도 특설대와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 조선인들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들이 토벌했다는 공비비적이 바로 독립운동가들이었으며, 광복 뒤 대한민국을 장악한 건 독립운동가들이 아니라 그 토벌세력임을 이토록 명백하고도 구체적으로 까발린 저작물은 달리 없다.

 

간도 특설대 정보반 책임자였고 제2대 해병대사령관과 재향군인회 부회장을 지낸 김석범은 <만주국군지> 서문에서 자화자찬했다. “건국건군 40여 년이 된 오늘날 50여 명의 장성급과 다수의 영관급 고급장교가 배출되어 ()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사단장, 연대장, 고급참모 등 정부와 군의 요직을 역임했고.” 박정희, 백선엽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승동 기자

 

대통령의 글쓰기 -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16000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곁에서 8년 동안 말과 글을 다듬었던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쓴 글쓰기 책’. 공무원부터 회사원까지, 글쓰기가 고민인 이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며 한 해 동안 7만부가 넘게 팔렸다. 글쓰기 요령부터 글 욕심 많던 두 대통령과의 일화까지 풍부한 내용이 장점이다.

 

자신없고 힘 빠지는 말투는 싫네. ‘부족한 제가와 같이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쉽고 친근하게 쓰게.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중언부언하는 것은 용납 못하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노 대통령이 남긴 글쓰기 지침을 보며 그를 그리워했던 이들도 많았다. 좋은 글의 기본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양심과 소신을 지키며 말할 수 있는 용기라니, 그런 상식 또한 그리운 시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1~3- 신준형 지음 / 사회평론·5만원

20년 걸려 완성한 르네상스 미술 3부작

 

짜깁기나 작품 순례기 일색인 서양미술사 동네에 나타난 별종.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뚜렷한 논리와 논거를 갖췄다. 르네상스 미술사가 종교와 뒤엉킨 터라, 외국어 13개쯤을 공부하고, 7개쯤은 읽고 쓰는 지은이한테 제격이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1998년에 시작해 2013년 봄에 완결했다.

 

지은이는 르네상스 시대가 절대미를 추구한 이상적인 시대가 아니라 교황의 가톨릭 세계와 종교개혁 운동의 줄다리기 가운데 피어난 예술시대라고 본다. 주변부인 북유럽 화가 겸 미술이론가 뒤러(1471~1528)와 이탈리아 중심부에 속한 미켈란젤로를 비교하며 당대 미술동네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소년이 온다 - 한강 지음 / 창비·12000

소년의 죽음으로 5월 광주를 되살리다

 

‘805월 광주의 실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셈이다. 소설만 해도 임철우의 다섯권짜리 장편 <봄날>과 같은 선행 작업이 적잖이 쌓여 있다. 그렇다면 5월 광주에 관한 소설은 더는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는 새삼 확인시켰다. 소설은 구체성의 예술이고 감성에 관여하는 작업이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스러진 열여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은 희미한 역사적 사건으로 멀어져 가던 5월 광주를 다시 생생한 목숨의 일로 되살려 놓았다.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존재와 삶에 관한 근원적 질문이, 그 구체성을 바탕으로 비로소 가능해진다. 805월 광주와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와 세월호가 본질적으로 동궤에 놓이는 사건들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알게 한다.

최재봉 기자

 

그의 슬픔과 기쁨 -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15000

공장 굴뚝에 올라간 슬픔에 대한 기록

 

지난 4월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1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는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13일부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고공농성중이다. 같은날 쌍용차 해고노동자 한 명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5년째 우리 사회의 묵직한 과제인 이 사태의 선두에 서온 쌍용차 노동자 26명의 생생한 육성을 르포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담았다.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버거운 사건 앞에 놓인 평범한 개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했다. 기독교방송 피디인 지은이는 말한다. “이들이 웃을 때 눈길이 갔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인데 왜 저 사람이 웃고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쁠까? 근데 기쁜 동시에 슬프더라.”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환원근대 - 김덕영 지음 / ·28000

경제성장에 모든 것 양보한 기형적 근대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경제성장에 모든 것을 내주는 과정이었음을 밝힌 책이다.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탓에 정치··과학·예술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각 분야가 합리성을 획득하는 각 기능의 분화개인화가 저지됐다는 뜻이다. 돈과 권력을 숭앙하는 대형교회, 인간을 도구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또한 환원근대의 산물이었다. 근대화의 모든 요소를 경제로 환원하는 것, 그것이 환원근대.

 

지은이는 특히 박정희 체제 18년 동안 한국 사회가 근대의 토대를 전통에서 찾고 유순하고 복종적인 신민을 만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정권은 권력의 권위와 정당성을 기본으로 개인 존엄을 지키는 강력한 국가가 아니라 허약한 국가라는 것이다. 이 책이 박정희 정권에 대한 혹독한 비판서일 수 있는 이유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투명인간 - 성석제 지음 / 창비·12000

선의로 악의를 물리친 우리 시대의 영웅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1960년을 앞뒤로 태어나 지금 50대 중반에 이른 인간 김만수의 일대기라 할 수 있다. 머리도 나쁘고 외모도 보잘것없지만 삿된 마음을 먹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된 도리를 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는 그야말로 진국이라 이를 법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삭막하고 각박한 현실은 그런 이들에게 좌절을 안기고 경계 밖으로 내치기 일쑤다. 김만수는 자신의 선의로 만든 꽃다발이 악의의 화살로 바뀌어 되돌아오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끝끝내 악이 아닌 선의 편에 서고자 하는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 불려 손색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관찰과 증언을 쌓아 올려 주인공의 입체적 형상을 빚어내는 작가의 필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풍속화를 만나는 재미도 쑬쑬하다.

최재봉 기자

 

살아가겠다” - 고병권 지음 / 삶창·14000

거리에서 변혁을 읽는 철학의 시간

 

<“살아가겠다”>2009~2013년 서울 대한문 농성촌에서부터 밀양과 쌍용차, 장애인,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까지, 철학자 고병권이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말의 기록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밀양, 장애인들의 투쟁은 제 터전에서 쫓겨난 자들의 살아가겠다는 맞섬이다. 이들의 육성을 전하면서 그는 용기를 얘기한다. “철학은 본래 용기라 말한다. 그것은 탐욕에 대한 정찰병이 되어 권력자들을 고발했던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용기다. 문제를 드러내 공적으로 제기하는 용기다. 디오게네스에게 대중은 양떼가 아니라 사자였다. “목자가 양을 키우는 건 양을 먹기 위해서지만, 사자에게 먹이를 갖다주는 건 사자가 무섭기 때문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 <번역서>

 

21세기 자본 -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 글항아리·33000

세습자본주의병치료할 긴급처방전

 

2014년 국내에서 나온 책 가운데 가장 뜨거운 책이었다. 영어판이 나왔을 때부터 관심이 집중됐으며, 번역과 출간 소식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책이 나오자 논쟁이 이어졌다.

 

이 책에 쏠린 유례없는 시선 집중의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세계적 차원의 자본세(특히 상속세) 도입이라는 나름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범우파 진영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통계를 수집해 불평등의 역사와 구조, 미래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피케티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21세기 세습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며, ‘자본세카드를 꺼내든다. 일부 우파 학자들의 피를 토하는 비판과 달리, 피케티는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멸망해가는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긴급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14000

빵집에서 펼치는 반자본주의 실험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이윤의 원천이 초과노동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빵집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윤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대신 자본주의가 좋아하는 방향의 정반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상품과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판다. 인근 농가에서 자연재배 방식으로 기른 통밀을 직접 제분해 인공 이스트가 아닌 천연효모와 천연누룩균으로 빵을 만든다. 시중에서 파는 보통 빵보다 조금 비싸지만 멀리서 발품을 팔아 찾아오는 고객들 덕에 판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은이가 제빵 기술을 배우려 취업한 한 빵집의 노동 착취 현실을 고발하는 대목에서 시작되는 시골 빵집의 마르크스 강의가 인상적이다.

이재성 기자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16800

기지와 통찰 번뜩이는 대중 경제학 개론

 

경제는 너무 중요해서 경제학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문장이다. 귀찮더라도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책을 소화하면 경제학자에게 사용당하지 않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경제학파 분류법이다. 고전주의부터 신고전주의, 마르크스학파, 개발주의, 오스트리아학파, 슘페터학파, 케인스학파, 제도학파, 행동주의 등 9개 학파를 해체하고 조립한다. 표까지 곁들여 각 학파의 장점과 단점을 명료하게 정리했다.

 

장 교수 본인은 계급생산’ ‘혁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고전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케인스주의, 슘페터학파와 교집합을 갖는다. 정부의 보호정책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개발주의와도 겹친다. ‘하이브리드학파인 셈이다.

이재성 기자

 

마음의 그림자 - 로저 펜로즈 지음, 노태복 옮김 / 승산·28000

인공지능은 아무리 진화해도 의식없는 기계

 

얼마 전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이 진화 속도에서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며, “완전한 인공지능의 개발이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 능력을 추월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다. 이제 이런 우려는, 인간이 인공지능(AI)에 정신능력, 곧 의식까지 갖게 된 기계들의 지배를 받는 애완동물 신세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옥스퍼드대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 로저 펜로즈는 아니라고 얘기한다. 컴퓨터는 처리 속도와 용량이 인간의 수천수만배를 넘을 수 있지만 아무리 발달해도 기계일 뿐 결코 인간과 같은 의식, 마음을 지닌 존재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괴델의 정리와 양자역학을 동원하는 펜로즈의 20년 전 생각은 지금도 일까?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헤겔 - 찰스 테일러 지음, 정대성 옮김 / 그린비·5만원

진짜 헤겔찾아낸 정치철학자의 개가

 

캐나다 출신의 저명한 정치철학자이자 공동체주의 이론가 찰스 테일러가 1975년 출간한 <헤겔>의 국내 첫 번역서.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어렵기로 악명 높은 헤겔 철학을 속속들이 파헤친 대작으로 우리말 번역의 공로도 인정받았다. 지은이는 17~18세기 헤겔 세대가 도구적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와 비합리적 낭만주의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려 노력했고, 헤겔 또한 이 둘을 넘어서려 했다고 말한다. ‘진짜 헤겔은 개인적 주체와 공동체적 주체 모두를 포기하지 않았다. “궁극적 종합은 통일뿐 아니라 분리를 포함하고 자유는 개인의 독립성과 보다 큰 삶에의 통합이라는 두 요소를 모두 요구하는 것 같다는 헤겔의 원칙을 테일러는 강조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가지무라 히데키의 내재적 발전론을 다시 읽는다 - 강원봉·도베 히데아키·미쓰이 다카시·조관자·차승기·홍종욱 지음 / 아연출판부·12000

··일 삼각동맹의 식민주의 구조 폭로

 

재일동포 연구자들은 198953살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우리들은 가지무라씨 덕에 일본인을 믿을 수 있었다며 애통해했다. 아베 신조로 상징되는 반동복고 시절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식민사관을 실증적으로 논파한 조선사 연구자 가지무라 히데키를 다시 불러냈다.

 

가지무라 문제의식의 핵심은 식민주의와 일한(日韓)체제극복이었다. “한국 경제는 36년간의 일본 식민지배와 해방 뒤 20년간의 미국 지배정책의 역사적 소산인 식민지적 경제였다.” 일본 자본주의에 한국은 반공의 최전선이요, 값싼 노동력 공급처로서 경제·군사 양면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킨 하위 파트너였다. 그 뒤엔 미국이 있었다. 이젠 과거지사일까?

한승동 기자

 

빨래하는 페미니즘 - 스테퍼니 스탈 지음, 고빛샘 옮김 / 민음사·19500

슈퍼맘의 유령이 배회하는 사회

 

왜 다시 페미니즘인가. 지은이는 1960~70년대 미국 반전·평화 물결 속에서 남녀 평등을 익힌 세대의 딸이자, 평등은 당연한 거라 여기며 성장한 90년대 엑스 세대의 일원이다. 그런 그가 왜 페미니즘 읽기에 나섰나. 1963년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여성이 직업을 가지면 남녀 평등은 성취될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어언 반세기. 여성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결국 하나를 포기하고 있다. “(일과 가정을 완벽히 병행하는) ‘슈퍼맘의 유령은 힘을 다하여 구겨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책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부터 에리카 종까지 18~21세기 페미니즘 저작 26권의 문제의식을 톺으면서 오늘 여성의 현실을 풀었다. 지은이는 말한다. ‘일과 가정병행이 여자에게만 요구되는 한, 평등은 요원하다고.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중국 농민 르포 - 천구이디·우춘타오 지음, 박영철 옮김 / ·28000

초강대국이 된 중국, 농민의 삶은 나아졌을까

 

고속 성장 속에 초강대국이 된 중국의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이면의 실상과 모순, 그 아픈 속살을 9억 중국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 고발을 통해 충격적으로 증언한 보고서. 2004년 출간되자마자 판금당하고 언론보도도 불허됐으나 중국에서만 1천만권 이상이 팔리고 해외 반응도 뜨거웠던 책이다. 중국 국가지정 1급작가가 쓴 이 책(원제 <중국 농민 조사>)의 문제의식과 문제제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까.

 

중국은 그동안 책이 고발한 농업세비 문제와 양곡수매정책 등을 개선했지만 지은이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농민의 부담은 결코 경감되지 않았고 농민의 토지는 각지의 당과 정부관리의 맛난 고기가 되어 마구 약탈당해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가 없는 상황은 별로 바뀐 게 없다고 말한다.

한승동 기자

 

자본의 17가지 모순 - 데이비드 하비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19800

우리 삶을 힘겹게 하는 것, 자본

 

기술이 발전하는데도 삶은 팍팍해지고,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본 때문이라고, 79살의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는 주장한다. 그는 조증에 걸린 듯 들뜬 소비주의 대신, 필요한 사용가치를 제공하는 쪽으로 생산을 합리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것 같지만 () 대안정치는 장기적 야심과 비전을 품어야 한다며 그람시의 혁명적 휴머니즘을 불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사유. 대공장 위주 투쟁으로 주택이나 공공요금 등 더 중요한 착취 요소를 놓치고 있는 기존 좌파, 자본주의 생명력 연장에 기여하는 협동조합을 비롯한 대안경제, 지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포스트 구조주의 담론도 비판 대상이다.

이재성 기자

 

돈키호테 1, 2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각 권 15800

고전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늘 새롭다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는 통설은 씁쓸하다.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 탓일 텐데, 실제로 읽어 보면 예상과는 달리 새롭고 놀라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 책이 또한 고전이다. <돈키호테>가 대표적. 기사도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머리가 살짝 돈 주인공이 좌충우돌 세상과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희비극적 풍경들, 광기와 어리석음이라는 가면 밑에서 뿜어내는 신랄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학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현대성이 <돈키호테>의 세계다. 세르반테스의 고향과 스페인 현지 취재, 정확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에 꼼꼼한 주석을 곁들여 번듯한 한국어판을 내놓은 역자의 5년여에 걸친 노고가 돋보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상식과 이성이 무너져가는 자리에서

 

상식이 무너진 지는 오래되었고, 이제 이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고등학생의 백색테러,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의 폭식’, 사법부가 유권자보다 위에 있는 줄 아는 오만함은 상식과 이성이 무너진 사회의 단면이다. 이럴 때 우리 사회 지성의 정수리를 담당하는 출판계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지난 한 해 동안 <한겨레>가 주목한 책들에서 그 편린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겨레> 문화부 책지성팀 기자들이 정혜윤 기독교방송(CBS) 피디, 박현주 에세이스트 겸 번역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김명남 번역가와 함께 국내서와 번역서 10권씩을 추렸다.

 

국내서들은 역시 우리 사회 미해결 과제를 파고든 책이 많았다. 일제와 유신을 거쳐, 광주민주화운동과 쌍용차,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역사적 아픔을 마주하는 문인과 학자, 언론인들의 시선은 예리하다. 번역서 중에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탐색하는 책이 주를 이뤘다. 자본주의 체제 또한 인간이 만들어내고 합의했던 여러 제도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이후에 대한 상상력의 도약 지점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신화 속 건국이념은 언제나 미래완료형이다.

 

이재성 책지성팀장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