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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이제는 금융 민주화 - 우석훈

by Wood-Stock 2011. 6. 27.

[우석훈 칼럼] "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1>

"대권주자에게 묻는다…외환은행, 어쩔 건가?"

기사입력 2011-06-07 오전 10:18:25


현 정권은 자신들을 선진화 세력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경제의 발전의 단물만 쏙 빼 먹은 집단이고, 특권 세력일 뿐이고, 반칙 전문들이다. 그들이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별 저항 없이 성공한 유일한 정책은, 슬프게도 '대졸 초임 삭감' 뿐이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대신, 그나마 대기업에 취업한 20대들의 실질 소득만 반토막을 냈다. 방송, 문화, 예술, 이런 것만 80년대로 되돌아간 게 아니라 20대들의 평균 임금도 결국 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다.

결국 폭넓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혀, 지금의 정권은 식물정권으로 가고 있다. 대통령을 둘러싼 이 세력들은 '선진 세력'이라기 보다는 '반칙 세력'들이고, 그들이 주로 특혜를 받는 건 토건과 금융, 두 가지 장치이다. 토건을 통해서는 지대 소득을 통한 투기를 하고, 금융을 통해서는 환율 조작을 통한 대기업 지원과 검은 돈거래, 두 가지를 한다. 토건과 금융, 두 가지를 결합시킨 것이 바로 지금의 저축은행 사태를 비롯한 소위 PF 문제이다. 가장 악질적인 정책이 저축은행 사태이고, 결국 스스로 선진화 세력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들이 덫에 빠지게 된 것이 지금의 저축은행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선 캠프에서 경제 분야 책사로 불렸던 사람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으로 알고 있는데, 환경경제학을 전공하던 그가 한반도 대운하를 기획하던 것까지는 '배 바꿔 탄 것' 정도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도대체 뭘 안다고 산업은행 민영화에까지 끼어들고, 급기야 저축은행 스캔들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는지, 같은 학자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건 바로 현 정권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재산이 100억원이 넘는다는 그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었는지, 정말로 '부패 세력'이라고 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가 않는다. 나는 아직도 그가 돈을 받을 정도로 부패했을 것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그는 나와 입장이 다를 수는 있어도, 한 때 소신있던 소장파 경제학자였었다.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한 번 던져보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의 흐름은, 대통령을 반대하는 흐름이 사회적으로 깊어지는 중이다. 누가 될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대통령 반대 진영에서 집권을 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최소한 IMF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몇 개월 전,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 교체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를 24시간도 남기지 않았던 순간까지도 정몽준과의 단일화가 깨어지면서 정권의 형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대선을 561일 남겨놓은 지금, 김대중, 노무현의 집권 분위기 보다는 지금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이제 와서 노무현 돌풍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언제나 흔들리는 후보였을 뿐이다.

차분하게 김영삼 시절,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민주화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시절에 대통령을 만들어내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이나 그렇게 했는데, 전혀 바뀌지 않은 분야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토건 세력은 그 후에 더 강해져서, 자기들의 대표를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릴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세력이 바로 금융을 잡고 있는, 금융특권 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때에도, 노무현 때에도, 우리는 금융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했고, 금융은 한국에서 견제 받지 않은 거의 유일한 세력으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차이가 있다면, 지난 10여년간 로펌이라는 게 생겨나서, 관료와 금융가가 더욱 끈끈하게 결탁하게 된 점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곪은 곳이 한국에 또 있을까 싶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금융가에는 관치 금융이 문제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람은 100%, 보수 쪽 인사라고 보면 된다. 관치 금융이 한국 금융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 중의 하나인 건 맞지만, 그 말을 지금 하는 건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외환은행, 론스타 돈 갚고, 그냥 하나은행에게 넘겨 버려라

외 환은행 독자생존이든, 산업은행과의 통합이든, 정부의 지분이 일정 정도 들어가서 국민 기업처럼 바꾸는 것이, 아마도 금융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걸 하지 말고, 론스타 돈 갚으라는 게, "관치금융이 문제"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중의 하나이다. 한 마디로 정부는 빠지고, 조중동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이다.
▲ ⓒ투기자본감시센터

2) 우리은행, 그냥 강만수에게 넘겨라

IMF 경제위기로 죽어가는 은행을 국민들의 돈으로 살렸다. 우리 은행이 그런 경우이다. 민영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산업은행으로 이걸 넘기라는 말은, 강만수의 오래 된 꿈, 메가뱅크인 투자은행을 만들자는 얘기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바로 이 IB 정책에 대해서 방향을 못 잡아서 금융 민주화에 실패했다는 것이 내가 가진 이해이다. 물론 그 시절에는 IB가 지금처럼 문제가 되고, 결국 세계경제를 휘청하게 할 것이라는 실증이 없었다. '금융 선진화', '금융강국', '금융 허브' 등 두 번의 민주당 정권을 지내면서 금융 관료들이 내건 구호는 다양했지만, 결국 IB를 크게 만들면 우리 모두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깨어졌고,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결국에는 미국의 리만 브라더스 파산까지, 지난 정권에서 금융관료들이 모델로 했던 'IB 입국론'은 실패라는 게 입증이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나마 한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버텼던 것은, 강만수 장관의 소망과는 반대로 우리가 메가 뱅크를 아직 못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3) 한국은행, 민영화해라

이 건 좀 극단적인 주장이기는 한데, 실제로 한국은행을 미국처럼 정부가 직접 설립하는 게 아니라 지분을 민간으로 넘기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재작년에 출간된 책 <달러>와 같이, 미국 연방은행의 지배구조 문제를 다룬 책들이 금융 음모론의 한 줄기를 형성한다. 한국은 미국이 오히려 와야 하는 금융 모델이지, 우리가 미국을 따라갈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 중립성'은 좌파도 주장하고, 우파도 주장한다. 특히 물가인상과 같은, 한국은행 설립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말은, 강만수 같은 집권층과 결탁한 금융관료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외치는 주장이다. 그 말이 그 말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진짜로 한국은행을 민영화하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섞여 있다. 누구 좋으라고? 바로 강만수 같은 사람들 좋으라고 민영화하라는 얘기 아닌가? 지금처럼 청와대가 지나치게 한국은행 쥐고 흔드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증권가 마음대로 통화정책을 폈다가는 진짜 1년만에 나라 폭삭한다.

자, 무엇이 금융 민주화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야권 후보 선두를 달리는 손학규나 유시민 혹은 정동영이나 정세균, 그들은 내놓은 그림이 아직 없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후보 시절에 금융과 관련한 고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현 상태로 집권하면 흔히 모피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금융계와 관료계가 결탁한 바로 그 세력에 바로 잡아먹혀 버린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태인 금융경제비서관이 나름대로 금융개혁에 대한 밑그림이라도 그려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오래가지 않아서 두 사람 다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금융계 밑바닥을 형성하는 바닥은, 정말 치밀하고도 촘촘하다.

'절차적 민주화'만 이루어지면 나머지 분야들 특히 경제 분야 같은 데서도 저절로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두 번에 걸친 민주당 집권에서,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우리가 보지 않았는가?

' 돈의 언어'는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영어 약자들 같은 것을 쓰면서 일반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자기 보호장치들이 있다. 지금 대학등록금 문제로 다시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은행 몇 개만 제대로 관리하고, 환율에 쏟아부은 돈 약간만 대학 문제로 돌려도 몇 번은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일반 대중들에게, 시민들에게, 금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고 될 일도 아닐 듯 싶다.

박정희 정권 이후로, 사실 한국의 금융계는 한 번도 개혁 구호를 걸었던 적이 없다. IMF 경제위기 때, 그냥 은행원 짜르는 게 구조조정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사회적 혼란만 생기고, 전직 관료들은 로스쿨에서 수억원씩 그냥 연봉 받으면서 권토중래, 결국 다 제자리로 복귀하지 않았는가? 실패하지 않을 정권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금융 민주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선 캠프에서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고? 이 땅의 민중들 혹은 이 땅의 시민들과 함께 논의하지 않는다면, 지난 정권에 이정우 정책실장이 그랬던 것처럼, 고립되어 쫓겨나거나 부패하거나, 두 가지 길 중의 하나를 걷게 될 것이다.

집권하면 외환은행 처리 어떻게 할 것인가, 대선후보들, 이 문제부터 국민들과 논의를 시작하는 게 순서다. 대법원이 불법이라고 이미 판결한 외환은행, 이 문제부터 생각을 밝히시길 바란다. 그게 금융 민주화의 첫 번째 수순이다.


[우석훈 칼럼] "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2>

"이헌재 손 잡았던 노무현의 실패, 반복할 건가?"

기사입력 2011-06-13 오전 7:55:02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가장 큰 차이는 대상의 보편성 문제일 것 같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에 있으나 금성에 있으나, 온실가스라는 건 마찬가지이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생명체가 살기에 금성에는 너무 많고, 화성에는 너무 없고, 지구는 적당하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는 어디에 있으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이상한 사람과 멀쩡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생애 주기상에서 누구나 나쁜 사람일 때가 있고, 이상한 사람일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래서 사회과학의 관찰은 제한적이다.

지난 정권에서 한참 유행하다가 이번 정권에서 사라진 단어 두 개를 꼽아보면, 시스템과 로드맵일 것 같다. '하이 서울 페스티발'처럼, 이상한 영어를 행정 용어로 쓴 것은 지난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시 스템이라는 단어는, 누가 오더라도 바뀌지 않을 정책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어떤 것인가, 얼떨결에 정권을 잡았던 노무현 정부는 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이해는 할 수 있다. 대선 24시간 전에도 당선될 거라는 보장이 없던 후보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전문가는 한국에 거의 없다. 그러니까 시스템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일정표를 만드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5년 내내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표만 만들다가 끝났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고 나니, 그렇게 만든 로드맵은 그냥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로드맵이나 일정 같은 건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생각나면 하고, 기분 내키면 하고…. 박카스 슈퍼에서 팔게 하는 게 뭐 그리 국운이 달린 일이라고, 등록금 정국 한 가운데에서 청와대가 직접 개입을 하는가? 청와대가 아직도 열심히 하는 것은 방송 장악과 박카스 파는 일 외에는 없는 듯싶다.

대학 등록금 논쟁을 하면서, 나는 돈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선일보는, 죽어라고 돈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금 융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대학생들 무상교육 해주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금융에서 환율 조작 – 혹은 조정 – 하면서 쓰는 돈, 저축은행 부실 메워준다고 '배드 뱅크' 만든다고 하는 돈, 이런 돈의 기본 단위가 10조 원이다. 뻑 하면 10조부터 시작하는 돈이 넘치고 넘치는데, 무슨 돈이 없다고 하는가? 저축 은행 몇 개 망하는 것과 우리의 청년의 삶 자체가 망가지는 것, 그 사이의 우선 순위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박근혜 대표가 다음 번 대선 공약으로 벌써 내건 영남권 공항 사업비도 기본이 15조부터 시작한다. 대학이냐, 공항이냐, 그 선택을 내리는 것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 기술적으로 사업 집행이 불투명한 새만금 사업? 20조다. 제 정신이 있는 정치인이면, 새만금 사업 재검토하고, 일단 전북 지역 대학교부터 무상으로 하겠다, 그런 얘기들이 지금 나와야 하는 상황 아닌가? 되지도 않을 4대강 지류사업 한다고 정부가 쓰겠다는 돈도 20조 원이 넘는다. 우리가 돈이 없는가?

금융 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민주화 논의이기도 하고, 복지 논의이기도 하고, 동시에 생태 논의이기도 하다. '뱅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흥청망청 하는데, 국민들 호주머니에 돈이 한 푼이라도 남아날 리가 있겠는가? 기억을 되돌려서 IMF 시절에 '고통분담' 얘기하던 걸 다시 기억해보자.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이 나누어졌지, 관료와 뱅커들이 고통을 나눈 흔적은 없다. 그리고 다시 10년, 남은 것은 저축은행 비리에서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부패 밖에는 없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는 전 정권의 문제라고 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기들은 그렇지 않았는가, 그리고 뭘 했는가, 그런 질문이 생긴다. 10년간의 민주당 정권이 과가 5라면, 한나라당의 과는 10 혹은 20 정도 되는 것 아닌가? 민주당 정권이 눈치 보면서 부패했다면, 한나라당은 대놓고 부패한 것 아닌가?

내년에 정권이 바뀌면, 이제는 금융 민주화라는,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그 부패한 금융 체계에 변화가 와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냥 가면, 마치 노무현 시절에 모피아의 대부라는 이헌재가 경제부총리를 맡으면서, 정권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왕국을 만들어낸 그 시절이 다시 오게 된다. 현 정부에서 강만수 장관이 산업은행까지 먹어 삼키면서 원성이 자자하지만, 이헌재와 강만수, 거기가 거기다. 지금 등록금 문제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와 비교적 젊은 관료인 금감원장 권혁세까지, 좌우 혹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금융관료와 뱅커들은 철통같은 방어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민주당 내에서 보수적 색채를 대표하는 김진표와 손학규에게 금융 민주화의 방향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 상태에서 은근슬쩍 복지 정책 얘기하면서 묻어가는 방식으로는, 금융은 다음 정권에서도 여전히 목마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최상위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갔다.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왜 힘들게 국민들의 힘으로 정권을 만들어낸 노무현 정부에서 이헌재 같은 사람이 경제부총리로, 한국의 경제를 총괄하는 그 자리에 간 것일까? 만약 그가 겨우 골프장 수 백개 만들자는 '한국형 뉴딜'이 아니라 요즘 촛불집회의 대상이 된 바로 그 문제를 푸는 '대학 뉴딜' 같은 것을 했다면, 한국은 벌써 복지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겨우 건설사 사장 따위가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농락하는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행정에서 시스템을 얘기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지난 정부에서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얘기한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다. 그러나 금융이라는 특수한 분야는, 마치 군부와 마찬가지로 시민사회가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 두 개는,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YS가 했다.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도입, 이건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적 청산의 문제이기도 하다. 군부에 대한 견제인 하나회 해체는 이루어졌지만, 사실상 한 몸처럼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도 여전히 권력을 놓지 않는 금융집단, 일명 '모피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문제를 피해가서는, 즉 좋은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방식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견제와 균형, 이건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이다. 그래서 우리가 삼권을 분리하고 있고, 행정부 내부에서도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견 제의 원리는, 미리 결정하지 않는 불안정한 요소를 시스템 내에 삽입함으로 인해서 특정 집단 혹은 특정 계층이 권력과 돈을 독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자는 것 아닌가? 한국은 지금 귀족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 외교부의 외교 아카데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기들끼리 특권계층, 귀족 계급을 만들겠다는 거 아닌가? 지금의 금융계 역시 그렇다. 은행과 관료 여기에 로펌까지 한 몸으로 엉켜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금융계인지, 혹은 어디가 정부이고 어디가 민간인지, 도대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농민들 돈 운용하는 협동조합인 농협까지 메가 뱅크 만들겠다고 난리이다. 지금 금융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석동, 도대체 자기가 농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농협경제연구원장을 몇 년씩 지냈는가? 불법과 합법, 편법과 무법, 이런 게 온통 뒤섞여서 현재 한국의 금융계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이다. 지금도 불법 로비스트, 브로커, 이런 게 판치는 데, 아예 이걸 합법으로 하자고 로비스트 제도까지도 도입하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누가 누굴 견제하는가?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진짜로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면, 아예 부패의 고리였던 대장정을 없애버렸던 일본의 경우가 한 사례일 수 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기획재정부를 없애버리고 경제 기능은 지식경제부로, 은행 업무는 총리실로, 이런 식으로 아예 부처를 날려버린 적이 있다. 이 정도는 해야 시스템 개혁이라고 할 수 있지, 경제부총리를 둘거냐 말거냐, 감독 기능과 집행 기능을 분리할거냐 말거냐, 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데, 약간의 제도 보완을 한다고 뭐가 바뀌겠는가? 유신 경제 때에는 EPB라고 불렀던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문제도 많았지만,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지금처럼 막 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경제기획원을 만들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청 와대가 유일하게 좀 견제를 할 수 있는 집단이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금융계와 한 몸이고, 여기에 컨설팅 회사까지 끼어들어서,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통이 되었다. 이 정도면 내부 고발이나 양심 선언 혹은 "좀 바꿔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라도 나올 법한데, 그런 목소리는 거의 없다. 청와대가 최소한 금융과 관련해서는 개혁을 얘기할 처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개혁이 대상이 된 셈이다. 전통적으로 금융관료들을 제어하는 역할을 청와대 정책실장들이 주로 했다. 경제수석이라고 해봐야 역대로 몇 명 빼고는 다 한통속이었고. 진짜로 금융계를 견제하려던 정책실장들은 오래 있지 못하고, 갖가지 사회적 사건에 휘말려서 그 자리를 그만두어야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견제 역할을 좀 하려고 했던 사람이, 신정아 사건으로 자리에서 밀려난 변양균 정책실장으로 기억한다. 개인으로는, 손대기 어려운 게 바로 금융 개혁이고, 금융 민주화이다.

메가 뱅크로 가는 미국 모델은 이미 실패했고, 파산했다. 그 길을 따라가자는 게, 지금 사실상 한국 모피아의 수장급인 강만수가 가자는 길인데, 이 길 아니라고 막고 나설 집단이 별로 없다. 금융노조 정도가 좀 다른 생각을 가지는 집단인데, 그렇다고 노조 출신들로 금융 관료를 다시 채울 수도 없다. 무엇보다,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노조는 현재 국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고, 신뢰도도 높지 않다. 한 때 아일랜드 모델을 칭송하던 그 때의 금융관료와 금융 전문가들, 아일랜드 경제의 붕괴 이후, 사과하거나 해명한 사람도 한 사람도 없다. 외국에서 모델을 가져오는 방식, 그게 시스템 논의의 기본이었다. 미국 모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모델도 없지 않느냐? 그러니, 그냥 미국 모델로 가자, 이게 요즘 금융계가 얼렁뚱땅 다음 대선을 맞이해서 가려는 기본 방향으로 알고 있다.

시스템? 사람에 대한 논의를 한 번쯤은 먼저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민간 전문가가 하면 좀 나을 거라고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보다 공무원 눈치를 더 보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소신껏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사실 금융 시스템을 비롯한 금융 행정에서 정답은 없다. 어떤 제도든, 부패하지 않고 잘 돌아가면 그걸로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바꾸든, 합치든 떼어놓든, 일관되게 부패했고, 오히려 국민경제에 부담이 되었다.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자리 찾아 승진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법무법인들이 많은 돈을 주면서 퇴직 관료들을 모시는 것 아닌가? 인적 청산이라고 해서, 반드시 감옥에 가거나, 공무원 생활 그만두게 하자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부패 공무원들의 회전문 인사, 언젠가는 장관 한 번 하는 관행, 그런 건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쉽게 말하면, 강만수, 김석동, 이런 사람들이 물러나게 하는 것이고, 미국 모델 타령하면서 사실은 자기 주머니 돈만 챙기는 그런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모피아들, 너무 썩었다.

각 종 금융관련 위원회에 시민대표들이 들어가서 감시도 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차피 모피아나 뱅커 혹은 그들 눈치 보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고 결정을 내려서는, 밀실행정이라는 금융계의 관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벌써 몇 년 전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음이 내렸던 저축은행 문제, 약간의 틈도 없이 자기들끼리 모든 것을 독식했던 모피아들이 책임져야지, 왜 선량한 시민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

금융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어떻게 모피아를 청산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논의가 시스템 논의보다 우선이다. 그런 논의가 지금 시작되어야,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금융 민주화의 의미 있는 전진을 할 수 있다. 시스템 논의는, 그 다음이다. 강만수 자리에 오고 싶어서 줄 서 있는 사람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 제2, 제3의 강문수를 또 만들어내서는, 민주고 복지고, 아무 것도 못한다. 이헌재의 손을 잡았던 참여정부의 실패, 그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우석훈 칼럼]"이제는 '금융 민주화'다" <끝>

"환율, 국민만 '똥바가지' 썼다"

기사입력 2011-06-27 오전 10:36:44


얼마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적표에 별로 후하지 않은 점수를 주었을 때 청와대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최근 재계에서 복지정책이 '표(票)퓰리즘'이라고 비난을 하는 걸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이들은 이번 정부의 최대 수혜자들 아니었는가? 감세나 그런 게 수혜의 본질이 아니라, 진짜 본질은 환율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외국에서 환율 조작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IMF에서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고 가끔 한국에 권고를 하는데, 그 이면에는 환율에 지나친 개입을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현 정부는 쇼비니즘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보다는 엘리트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과 올림픽 등 국제대회, 이런 것에만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원화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약한 원화'를 정책 기조로 가지고 있다.

원화가 강해지면 일반 국민들의 삶이 나아진다. 당장 기름값이 내리고, 수입 물품들의 가격이 낮아진다. 한-EU FTA를 통해서 유럽 상품의 가격이 싸지고, 한-미 FTA로 미국 자동차의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 후생'이 높아진다고 엄청들 떠들어댔다. 그렇게 낮추어진 관세는 효과는 환율 효과에 비하면 미비하다. 진짜 소비자 후생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것에 댈 바가 아니다. 최근 중국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중국발 관광 정책으로 난리이다. 호텔을 더 만들고, 중국인 관광 버스가 쉽게 주차할 수 있도록 주차장 늘린다고 엄청들 떠들어댄다. 그러나 진짜 강한 나라는, 국민들이 부담 없이 외국 관광에 나설 수 있는 나라이지, 외국인 관광객에 목 매달아야 하는 나라는 아니다. 중국도 위안화 저평가 문제로 미국과 종종 외교 문제가 발생하는데, 상대적으로 우리의 개입폭이 더 컸던 것은 아닐까?

원 화가 약해지면, 전기값도 오르고, 기름값도 오르고, 비닐 하우스 등 시설농의 부담이 늘어난다. 그 대신 수출 위주의 대기업에게 혜택이 간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이런 회사들이 아주 신나는 시대가 바로 이명박 시대인 것 아닌가? 그 대신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해서 국내에 공급해야 하는 중소기업 등이 어려워진다. 1인당 지역소득은 몇 년째 울산이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이런 경제운용과 무관하지 않다. 쉽게 말하면, 대기업들에게 혜택을 주면서 그 '똥 바가지'를 국민들이 뒤집어 쓰고 있던 셈이다.

환율은 기본적으로는 시장 균형에 맞추어 가는 게 제일 무난하다. 경제가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통화도 강해지고, 그러면 국민들의 국제 구매력도 높아진다. 그러나 한국은 성장률을 높게 유지하는 정책을 쓰면서도 환율에 개입해서, 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는 방식으로 몇 년간 거시경제를 운용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자, 실제로 그걸 추진한 청와대에서는 정황을 알고 있을 테니, 가장 큰 수혜자 중의 한 명이었던 이건희 회장이 한국 경제에 박한 평가를 하니 부아가 나게 된 것 아닐까? 인간적으로 말하면, 삼성에 부아를 내기 전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어려운 상황을 감내해준 국민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라고 한 마디 하는 게 우선일 듯 싶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약한 원화를 유지하는 기본 메커니즘은 직접 개입과 낮은 이자율 유지라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있다. 이자가 낮아지면 이자 소득을 생각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간다. 그 감소분만큼을 다른 데서 메우려니까 기업에 더 많은 특혜를 주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기업의 법인세를 추가적으로 낮추어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게다가 낮은 이자율은 은행에서 시장으로 화폐가 풀리게 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이자율을 상회하는 물가상승률로 인해서 일반 국민들의 가정 살이가 더 어렵게 된다. 그냥 자기 돈 가지고 자기 소비를 하는, 남과는 상관없는 듯 하지만, 이자율, 환율, 이런 거시경제의 기본 변수에 의해서 국민들은 그냥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손해만큼 대기업에게 이득이 돌아간다. 꼭 노동착취나 품질 저하 같은 것만 국민들의 소비에 개입하는 게 아니다.

일 본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에 대해서 세계가 놀란 적이 있었다. 일본은 일부러 추진한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 이후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유동성과 경제 안정성 등으로 '강한 엔화'의 시대를 맞았다. 거품 붕괴 이후에도 일본 국민들이 일정한 구매력을 유지한 것이 이런 강한 엔화와도 관계가 있는데, 그 기간에도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은 일정하게 유지가 되었다. 여러가지로 위기를 겪고 있는 토요타 등을 사람들이 높게 평가했던 것은 '강한 엔화'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한 국 경제가, 혹은 한국 대기업이 가야 할 길은 그 쪽 길이다. 청와대에 매달려 국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약한 원화'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과에 의해서 '강한 원화'가 되더라도 자체 혁신에 의해서 경쟁력을 만들어나가는 길, 그게 일류 기업이 가는 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달업체 등 협력업체와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 등 비가격 경쟁력 즉 기술경쟁력이나 통합관리 같은 데에서 강해지는 것이다.

한국 대기업은 그것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쥐어짜고, 협력업체는 후려치고, 국가에 로비해서 '약한 원화' 정책을 이끌어내는….

달 러의 위기와 함께 기축통화 논의가 이미 물밑에서 진행 중이고, 위안화나 엔화, 모두 기축통화 내에 들어가기 위한 논의들을 하는 중이다. 언감생심, 한국도 원화가 기축통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경제통합 상황에서는 '강한 원화'가 유리하다. 안정성과 함께 국제적 투자 가치가 있는 화폐, 그런 게 장기적으로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그것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단기적으로 수출성과에 의한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잠재력이, 최소한 원화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원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거나 낮추는 것에 대해서, 나는 반대한다. 환율 시장의 규모가 워낙 커서, 한 국가에서 개입을 해봐야 결국 환투기꾼 배만 불려주게 된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그러나 화폐의 안정성을 높이면, 장기적으로는 '강한 원화'의 시대로 가게 된다. 국민경제의 성과가 좋아져서 그 나라 화폐가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 국민들도 국제 구매력 상승을 통한 보상을 받게 된다.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돈 가지고 장난치는 일', 이것만 줄여도 국민들이 국제적으로 받게 되는 불이익이 줄고, 자연스럽게 내수 진작 효과도 생겨난다.

' 달러의 위기'가 어느 정도로 신빙성 있는 말일까? 지금 한국에도 미국 경제를 둘러싼 음모론이 팽배해있고, 그 한 가운데에는 바로 달러가 있다. 나는 음모론을 그렇게 믿지는 않는 편이지만, 원화의 위기 관리 조치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원화는 달러에 너무 강하게 연동되어 있어서, 위기가 오면 극심한 하락과 등락을 경험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환율 변동에 원화가 얼마나 취약한지 우리가 본 적이 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장치가 원화의 안정성을 높여주는 정책이고, 그걸 통해서 '강한 원화'는 아니더라도 '안정된 원화'를 어느 정도는 구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외환 포트폴리오 정책. 우리는 외환을 달러를 중심으로 보유하는 나라인데,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서 반드시 그렇게 달러에 '몰빵'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지적들이 종종 있었다. 외환의 가치 보존을 위해서 유로화나 엔화 혹은 위안화 같은 비달러 화폐 그리고 석유 등 실물 등으로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정책을 이제는 도입할 시점이 된 듯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과 통화 스왑 즉 달러와 원화가 위기시 서로 교환되는 계약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굴욕적 협정 보다는 포트폴리오가 더 유리하고 안정적이다. 물론 화폐 폭락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고, 석유 등 실물 자산도 급락이 가능하지만, 위험성과 수익성 등을 평가해서 일반 증시 투자자도 다 하는 포트폴리오를 우리도 외환에 대해서 일정 정도는 도입할 필요가 있다.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포트폴리오는 기본 전략이 되는데, 우리는 가치 보존에 위험성이 높은 달러에 너무 목 매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원화 가치를 지키는 게 아주 어려웠던 것은, 이런 외화보유 전략의 취약점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두 번째는, 가끔 나오는 얘기이지만 지역 위기기금 같은 것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한중일의 화폐 통합이나 경제 통합은 아직은 먼 얘기이지만, 자국 통화의 위기를 위해서 지역 차원에서의 공동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규모를 떠나서 통화 안정성을 높여주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IMF 경제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렇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외환위기에 대한 장기적 대응 중의 하나가 지역 통과기금을 만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통화 안정방식은 당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높여주는 조치들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약한 원화'를 정책 기조로 잡고 있기 때문에 원화 안정성은 단기 스왑 외에는 하는 게 거의 없다.

다음 번 대선에서 통화 정책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사실상 청와대 리모콘에 불과한 금융위원회 등 금융관료들이 장악한 의사결정기구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그런 금융관료와의 정책결정권을 둘러싼 시스템 논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약한 원화'에서 어떻게 '강한 원화' 그리고 '안전한 원화'로 갈 것인가, 그런 원화 정책에 대한 전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총선이나 대선에서, 통화 정책이나 금융 정책에 대한 입장이 공약의 형태로 붙어본 역사가 없다. 그러다 보니 공약이라는 게 사실 지역경제에 대한 토건 공약으로 가득하게 되고, 국민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인 금융이 모피아라고 불리는 금융관료의 손에서 놀아났고, 대기업의 로비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 아닌가?

이번 분당을 선거를 포함한 지방선거가 끝나고 어느 공무원이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정권은 바뀔 것 같기는 한데,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다."

YS 이후로 정부가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금융이라는 측면에서는 민주화가 진행된 것은 전혀 없다.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봤는데, 결국 금융가의 소문대로 '리만 브라더스'를 앞세운 금융관료들에게서 금융이 놀아나는 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 금융가의 리만 브라더스는, 이명박+강만수 형제를 의미한다.

'관치금융'이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그 말에 속으면 안 된다. 정권을 바꾼다는 말은, 대통령을 바꾼다는 말인데, 이미 금융관료와 그들과 결탁한 전문가들은 그것이 손학규이든 혹은 또 다른 누구이든, 새로운 대통령을 맞아들일 이론적 준비를 이미 시작하였다. 원칙적으로 관치 금융이 문제라는 말은 맞지만, 지금 한국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관치금융은, 대통령도 손 못대는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금융관료들과 그들이 완전히 장악한 경제학과 교수 등 소위 금융전문가, 그들이 대통령의 말도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민간 위원회'로 가겠다는 게 바로 관치금융이 문제라는 비판에 숨은 얘기이다.

삼성이 로펌을 통해서 법조인들을 관리했듯이, 금융관료도 각종 정부 시스템을 통해서 전문가를 관리한다. 민주당 쪽에 금융에 대해서 자문하거나 지원하는 전문가가 있는가? 거의 없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노동 전문가는 일부 이런 진보정당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금융 전문가는 10명 정도를 제외하면 100% 한나라당에 줄을 선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이 진보정권으로 바뀔 때, 금융관료를 보호하는 장치막으로 나서겠다는 것이고, 그게 "관치 금융이 문제"라는 말의 숨은 의미이다. 민간이라고 해봐야 결국 증권회사 간부들 아니면 모피아에게 줄 댄 경제학과 교수들이다.

금융민주화라는 것은, 결국은 인적 부문이든, 시스템이든, 뭔가 바꾼다는 것인데, 한나라당이 아닌 정부가 들어오면 금융 개혁에 손 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게 바로 "관치금융이 문제"라는 말이 가지는 숨은 의미이다. 여차직하면 한국 은행도 민영화해서 미국처럼 민간회사에 지분을 넘기는 극단적인 방안마저도 금융개혁으로 둔갑할 위험이 지금 상존한다.

손학규든 정동영이든 아니면 유시민이든, 금융 쪽의 문외한이라는 건 금융관료들이 너무 잘 안다. 그리고 금융이 대선이나 총선에 공약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금융 개혁에는 손 대지 마라,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다, 그게 '관치 금융' 운운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장기적 책략이다. 이래서는 아무리 정권 바뀌어도 좋은 세상 열리지 않는다.

반 값 등록금에 몇 조원 쓰면 나라 망한다고 지난 몇 주 동안 조중동과 재계에서 생난리를 쳤다. 그 한 가운데에서 저축은행의 부실채권 인수하는 데 2조 원 가까운 돈을 그냥 정책자금으로 쓰겠다는 결정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대해서 견제하는 언론도, 정치권도 없다. 이 돈은 기업돈이고, 등록금 지원은 나라 돈인가? 어차피 다 우리의 세금인데, 교육 쪽 투자에는 그렇게 인색하던 사람들이, 경영책임에 불과한 부실채권을 지원하는 것은 아무런 국민적 합의나 논의 없이, 자기들끼리 '쓱싹' 하는 것 아닌가?

야 당 쪽 후보들에게 금융공약과 비전을 제시하라고 내가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금융관료들에게 먹혀버리는 상황을 벌써 두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주는 권력을 그냥 모피아들에게 넘겨주는 그런 일이 이번에도 반복되면 안 된다. 국민들에게, 자신이 집권하면 금융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어떤 식으로 시민들이 그 결정과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지, 그런 시스템을 지금 제안해주시기 바란다. 그래야 금융관료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은 좋아져야 한다!

금 융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하고, 그게 내가 이해하는 금융 민주화이다. 그리고 그 첫 발은, 외환은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안이다. 많은 국민들은 작은 돈이라도 외환은행이 주주가 되어, 외환은행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 방안을 내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대통령이 아니라 금융의 대통령이 되고, 우리들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 첫 발에서 원화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자신의 방안을 내어주시기 바란다. 꼭 최적안이 정답이 아니다. 국민과 같이 고민하는 방안 그게 금융민주화의 정답이고, 그게 강한 원화를 지킬 수 있는 강한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아무 방안과 비전이 없으면, 모피아의 나라가 다시 한 번 펼쳐지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제2, 제3의 강만수,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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