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준의 '어퍼컷'] '순수한 축제'를 위해 내버려 두라고?
'스폰서 응원단' 붉은악마, 퇴장 밖에는 답이 없다
1995년 PC통신으로 인연을 맺은 축구팬들이 결성한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은 2년 뒤 '붉은악마'로 개칭하면서 한국축구의 '12번째 선수'로 축구 국가대표팀 응원을 주도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국가적 열광의 당당한 한 축이었던 이들은 그러나 2010월드컵을 맞이한 지금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거리응원의 성지인 서울광장에서의 응원을 포기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코엑스 옆 봉은사 앞에서 응원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붉은악마 측에 따르면 서울광장에서의 응원을 놓고 서울광장 응원의 주관사인 현대자동차와 후원사인 SKT와 만났는데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제시해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 기업이 붉은악마 측에 다른 기업이 연상될 수 있는 응원가를 부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붉은악마 회장은 서울광장 응원에 나선 대기업들의 홍보전이 너무 노골적이고 이 때문에 "순수한 축제여야 할 응원이 기업의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어" 서울광장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월드컵 응원 행사에서 이들 재벌기업들의 과열된 마케팅 전략에 붉은악마가 이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붉은악마 서울지부장도 "평소 축구발전에는 관심도 없다가 광고효과를 노리고 후원하겠다는 기업도 있어 화가 난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울광장을 "기업에 빼앗긴 꼴이 돼 너무나 씁쓸하다"고도 했다. 언론 보도도 기업체 간 마케팅 경쟁이 붉은악마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지적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4년 전을 기억하는 나는 이러한 붉은악마의 태도가 헷갈리기만 한다.
▲ 붉은악마는 이번에도 현대자동차, 홈플러스 등의 후원을 받고 있다. ⓒ붉은악마 홈페이지 |
붉은악마는 과연 순수했는가. 붉은악마 자신은 대기업과의 인연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4년 전 붉은악마는 대기업 마케팅의 선봉에 선 바 있다. 서울광장을 차지한 기업 관계자도 그러지 않았는가. "붉은악마를 후원하는 업체를 상징하는 응원이 나오지 않도록 조건을 건 것"이라고.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금의 처지는 결국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4년 전 월드컵을 앞두고 붉은악마는 KTF로부터 3억8000만원, 현대자동차로부터 (현물 포함) 3억8000만원, 네이버로부터 1억원의 후원금을 받은 바 있다. 여기에 셔츠와 응원도구 판매로 벌어들인 수입 1억여원까지 합해 거의 10억원을 거둬들였다. 도대체 무슨 돈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한가.
붉은악마의 응원, 그리고 붉은악마의 조직 관리는 거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사무실 운영에만 1년에 1억원 이상 필요하다. 카드섹션, 휴지폭탄에 경기 당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관중석을 뒤덮는 대형 태극기도 수백만원이다. 펼치다 찢어지면 또 사야 한다. 이런 물품의 관리와 운송에도 만만찮은 돈이 필요하다. 게다가 스스로의 응원에 매료되어 그들의 응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한마디로 스펙터클이다. 붉은악마는 이제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조직이 되어 버렸다.
조직도 너무 비대해졌다. 2006년 당시 붉은악마는 회원수가 무려 30만이 넘는 거대조직이 되었다. 그런데 회비는 없다. (동네 고등학생들 축구동아리도 5000원, 만원의 회비를 걷는다.) 회비도 걷지 않는데 그런 거대한 응원전을 펼치니 붉은악마는 커질수록 큰 돈이 필요하게 됐다.
4년 전 너무 돈벌이에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붉은악마는 '신선언'을 내걸며 앞으로 기업 후원은 최소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붉은악마는 이번에도 현대기아자동차, KT, 홈플러스와 손을 꼭 잡고 그들의 마케팅을 열심히 돕고 있다.
사업 때문에 돈 필요하고 돈 필요해 사업 벌이고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붉은악마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 종횡무진 벌이는 수많은 사업들이다. 이들은 4년 전 논란이 일자 자신들이 거둬들인 수익금 중 일부를 축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축구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고 했다. 그게 6억원이다.
일면 좋은 사업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붉은악마가 무엇인가. 축구대표팀 서포터즈 아니던가. 선수육성사업은 왜 벌이는가. 엄청난 후원금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라면 자신의 존재감 내지는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가. 한마디로 '오버'하는 거다.
또 붉은악마는 왜 월드컵 때마다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어 거창한 선포식을 하고 음반 만들도 뮤직비디오도 찍고 그러는가. 왜 월드컵 때마다 새로운 티셔츠를 만드는가. 이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가. 이런 사업을 벌이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 아닌가. 또 돈 더 벌기 위해 돈 쓰는 것 아닌가. TV를 보니 가수 싸이도 냄새나는 4년 전 티셔츠를 꺼내 털어서 입던데 왜 붉은악마는 계속 새것을 만들어 파는가. 응원 말고 뭔 사업이 이렇게 많은가.
2002월드컵부터 붉은악마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간단하게 말해 '스폰서와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배신과 싸움의 역사이기도 했다. 지금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 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 응원의 주체로 SKT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붉은악마측이 "평소 축구발전에는 관심도 없다가 광고효과를 노리고 후원하겠다는 기업도 있어 화가 난다"고 했는데 이는 SKT를 지목한 발언이다.
4년 전 붉은악마는 KTF와 손을 잡으면서 KTF와는 통신업계 라이벌인 SKT와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때 붉은악마는 월드컵에 맞춰 새로운 응원가를 내놓았는데 SKT가 윤도현을 통해 또 다른 응원가 '락버전 애국가'를 내놓자 때 아닌 '원조 응원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족발집, 떡볶이집 수준의 원조경쟁이었는데 그때 붉은악마는 SKT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SKT 입장에선 통신업계 라이벌인 KT의 후원을 받는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하는 게 지극히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 하나. 그런 붉은악마가 2002년에 손잡았던 후원기업은 어디였는가. 세상에. 바로 SKT였다.
▲ 붉은악마의 태극기 응원 장면 ⓒ뉴시스 |
'스폰서 응원단' 붉은악마, 이제 퇴장하시라
자신들을 내버려두라고, 자신들의 순수함만은 물들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면서 붉은악마는 왜 자본과는 그토록 굳게 손을 잡는가. 그것도 하나도 아닌 여러 개의 손을. 십시일반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소박하게, 열심히 응원을 하면 될 일을 왜 대기업의 후원에 의지하려 하는가. 왜 응원과는 상관도 없는 사업을 벌여 스스로 돈이 필요하게끔 만드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 이처럼 거대한 응원단이 있는가. 어느 응원단이 이처럼 거대한 응원만 골라 하고 돈도 거대하게 쓰는가. 응원이 거대하면 그 나라 축구가 발전하는가. 붉은악마는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했는가 대기업 마케팅 발전에 기여했는가. 붉은악마는 축구발전에 신이 난 게 아니라 사업 확장에 신이 난 듯하다. 축구를 활용해 돈벌이 한 건 기업들도 있지만 붉은악마 자신도 빼놓아선 안 된다.
붉은악마는 코엑스 인근에서 응원전을 벌이기로 했단다. 붉은악마가 서울광장은 기업 마케팅의 도구가 될까봐 코엑스 쪽으로 간다고 했는데 이것도 참 나를 황당하게 한다. 거기도 축구마케팅에 혈안이 된 현대자동차가 주관하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SKT는 안 되고 현대자동차는 괜찮다는 말인가. (하긴, 이번에도 현대차는 붉은악마 후원기업이다) 그리고 그곳은 SBS가 함께 주관하는 응원공간이다. SBS도 기업 아닌가. 붉은악마는 편식도 심하다.
특히 SBS는 이번 월드컵 단독중계 하느라 중계권료와 제작비로 1000억원을 투자하는 바람에 본전을 건지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스폰서를 구하러 다니고 있다. 그러니까 코엑스 쪽도 대기업들의 마케팅을 위한 스폰서쉽으로 뒤범벅이 된 공간이다. 기업의 마케팅 도구가 되기 싫다면서 서울광장은 안 되고 코엑스는 괜찮다는 자신들의 행태는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강남은 강북보다 덜 상업적인가. 나는 붉은악마만 보면 도대체 헷갈려서 정신이 다 사나워진다.
상업주의에 완전히 물들어버려 대기업 마케팅의 선봉에 선 붉은악마. 그것도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기업과는 포옹하고 다른 기업은 비난하는 붉은악마. 한국축구를 완전히 국가대표 A매치 일변도로 만들어버려 K리그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게 한 일등공신 붉은악마. 축구를 매개로 국가주의를 조장하는 집단 붉은악마. 응원동작도 한 팔이냐 두 팔이냐를 빼고는 나치식 경례와 똑같은 붉은악마. 결론은 퇴출이다.
2010-06-09 /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정희준의 어퍼컷] 누가 거리응원을 말하나
2014년 6월, 거리응원은 증거인멸이다!
2014-06-03 /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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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비우자 / 정윤수
안산에 갔다. 무거운 공기가 합동분향소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분향소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말았다. 몇 걸음 떼기 어려웠다. 분향을 하고 나와서 그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가 멀어져 갔다. 무서운 침묵 속에서 나는 월드컵을 생각했다. 방송과 언론에서 외쳐대는 그 ‘하나 되는 대~한민국’ 말이다.
“대중은 변하지 않아. 이것은 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지. 빵과 오락만 있으면 돼!” 누구의 말인가? 파시즘의 화신 히틀러? 철권통치의 상징 피노체트? ‘미개인’이니 ‘순수 유가족’이니 잔혹한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 축구공에 민족주의를 집어넣은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 실은 근대 유럽을 지배했던 중상류 계급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위 문장은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따왔다.
소설의 무대는 더비셔의 탄광 마을. 그렇다. 축구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을, 한 도시 내의 강력한 라이벌전, 즉 ‘더비 매치’라는 말이 탄생한 곳이다. 이 광산지대의 축구 문화는 중세의 세시풍속과 영토확장 전쟁기의 전투가 문화적으로 결합된 감정의 분화구였다. 지금도 더비셔의 애슈번에서는 ‘로열 슈로브타이드 풋볼’이라는 경기가 열린다. 강의 이쪽과 저쪽, 마을 청년들이 온동네를 경기장 삼아 싸운다. 골대 간격은 무려 5km. ‘더비 매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 대중적 열기를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그렇지 않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로런스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 <아들과 연인> 등에서 탄광 지대의 쓸쓸한 풍경과 계급간 감정 투쟁을 그렸다. 채털리 부인의 남편, 즉 클리퍼드 채털리 경은 유서 깊은 가문의 후예이자 부유한 광산업자로 자신들의 세계가 대중의 무서운 진보에 의하여 뒤흔들리고 있음을 직관한다. 로런스는 이들이 “거대한 중하위 계급 사람들에 의해 무방비 상태로 공포감”에 휩싸였다고 썼다.
“빵과 오락만 있으면 돼”
‘국가 개조’ 운운하며 ‘대~한민국’에 매몰되길 기대…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고 ‘일어서라’면 일어서는 우리는 그런 존재 아니다
2002년에는 꽉 채웠기에 비통한 사람들 위해 6월의 광장 비워둔다면 우리도 놀라고 세계도 놀랄 것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 역사의 휘장 뒤로 쓸쓸히 물러섰는가. 그렇지 않다. ‘빵과 오락’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채털리 경의 말을 더 들어보자. “대중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 지배당해왔고 앞으로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지배당해야 할 거야.”
그래서 그들은 채찍도 쓰고 당근도 썼다. 빵과 오락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으로 대중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세기의 세계사 곳곳에서 축구는 ‘감정 지배’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통했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우리의 어떤 기억까지 더듬어보면 축구장의 감정 통제로 대중 지배를 실천했던 흑역사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축구장의 정서를 휘어잡으면 권력까지 움켜쥘 수 있다고 생각한, 국가주의와 상업주의로 얼룩진 월드컵을 장악하여 권력의 성채로 들어가려 했던 ‘미개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소설을 보면, 채털리 경은 대중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공포에 휩싸인다. 빵과 오락 삼아 축구공을 던져줬지만 대중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찼다. 대중은 “더 이상 정체된 물웅덩이가 아니라 무기력한 절망을 떨치고”(엥겔스) 되살아났으며 격렬한 감정과 견고하게 조직된 힘으로 “산업의 횡포와 무질서를 타파하려는 거대한 문명화 운동”(레이먼드 윌리엄스)을 벌였다. 맨체스터, 선덜랜드, 뉴캐슬, 리버풀 등지의 중하위 계급에게 축구는 감정 투쟁의 다른 이름이었다. 예컨대 2013년 4월, 신자유주의의 화신으로 탄광지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사망했을 때, 영국프로축구연맹은 대처가 축구장에 몰려든 대중의 열기와 감정을 ‘모욕’ 했다는 이유로 경기 전 추모식을 취소했다. 웬만한 유명 인사의 부고장 앞에서 늘 추모식을 했던 그들로서는 쉽지 않은, 그러나 위엄 있는 결정이었다. 대처는 축구장이나 시위 현장의 대중들을 ‘난동꾼이자 문명사회의 수치’라고 모욕했던 인물이다.
다른 가치의 축구, 다른 감정의 월드컵은 분명히 존재한다. 서구 언론이 전달한 왜곡된 이미지와 달리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의 부패에 저항했던 인물이며 펠레는 거대 권력, 즉 브라질축구협회 회장이자 피파 회장인 아벨란제와 싸웠던 인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을 자신에 대한 지지 구호로 착각하기 쉬운 귀빈석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정과 알 수 없는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대~한민국’이라고 외치지만, 그 구호 안에는 당대의 고통이나 갈등, 개인의 외로움이나 번민이 다양하게 엉켜 있다. 권력은, 그리고 수많은 방송과 언론은 애써 이를 외면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감정 통제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개혁의 대상이 되는 적폐가 오히려 ‘국가 개조’를 앞세워 ‘순수한 대~한민국’을 강요한다.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월드컵과 관련해서는 ‘일어서라’고 한다. 민족주의 정념으로 부풀어 오른 월드컵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감정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저 100 년 전의 채털리 경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많다.
홍명보 감독을 포함하여 많은 축구인들이 분향소를 다녀간 것을 기억한다. 당연히 우리는 대표팀의 승리를 원하며 성원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대규모 응원과 화려한 무대로 ‘하나 되는’ 광경을 만들 필요는 없다. 거리에 모여 응원할 수 있으나 그것이 피파와 자본과 방송이 펼치는 절묘한 패스 플레이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시청률 경쟁으로 독이 오른 방송사는 화려한 무대를 내보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구호와 함성을 지를 때 ‘국가 개조’를 꾀하는 사람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그들은 마치 채털리 경이 대중의 열망에 공포를 느끼며 외쳤듯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라’고 호통칠 것이다. 이때 ‘순수’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어떤 상황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차분하게 성원할 때도 있다. 바로 지금이 그 ‘어떤 상황’이다. 이번 6월의 거리와 광장은 비통한 사람들을 위하여 비워야 한다. 이번에는 광장을 비우자. 모두들 놀랄 것이다. 우리도 놀라고 세계도 놀랄 것이다. 2002년 때는 꽉 채웠기 때문에 놀랐다면 이번에는 텅 비웠기 때문에 놀랄 것이다. ‘국가 개조’를 운운하며 ‘대~한민국’ 함성만 고대했던 자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들려오지 않는 함성 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며 보이지 않는 시민들의 표정이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고 ‘일어서라’ 하면 ‘대~한민국’을 복창하면서 일어서는,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광장을 비우자. 텅 빈 광장이 무한한 우애와 절실한 연대의 공기로 꽉 찰 것이다. 진실로 아름다운 광장이다.
2014.06.11 /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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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이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브라질 월드컵의 열기는 예전 같지 않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광장을 비우자는 제안이 나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스포츠 정치 분야 탐사전문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가 쓴 <피파 마피아>를 보면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 20년째 국제축구연맹(피파)의 어두운 이면을 추적해온 기자답게 지은이는 피파의 부패 사례를 꼼꼼하게 파헤친다. 그뿐만 아니라 축구와 정치가 어떻게 몸을 섞는지,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제프 블라터 회장이 어떻게 건재할 수 있는지 밝힌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으로 피파는 40억유로(5조5000억원)를 벌어들인다. 그런데도 피파의 재정 상태는 늘 좋지 않다. 그 돈은 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피파 집행부가 얼마의 돈을 쓰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라곤, 회장과 사무총장, 10명 정도의 국장과 24명의 위원 등을 위해 3300만달러(335억원)의 예산이 잡혀 있다는 사실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엄청난 돈을 뒤로 빼돌리면서 그 돈으로 조직을 관리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피파 회장인 제프 블라터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사석에서 뇌물을 두고 ‘산소’라고 하면서 낄낄대곤 했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부패한 피파와 한국의 세월호 사고가 사실상 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익추구 집단과 감독관청이 이처럼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습니다. (…) 규제가 줄어들수록 돈벌이라는 탐욕에 제동을 걸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세월호’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보내지는 신호입니다.”
왼쪽부터 주앙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 제프 블라터 현 피파 회장, 월드컵 트로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현란한 드리블 뒤에 숨은 피파의 비열한 반칙
축구선수들이 펼치는 현란한 드리블 뒤에 감춰진 피파의 추악한 진실. 지은이의 고발대로라면, 피파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마피아나 다름없다. “스포츠는 음험한 악당의 손에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이 범죄 소굴을 어떻게 할 것인가.
<피파 마피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부패 교과서’ 정도일 것 같다. 돈과 권력에 환장한 인간군상들이 벌이는 여러 악행이 다 들어 있다. 매수와 협박, 배신과 협잡, 도청과 미행…. 세상의 언어가 부족할 만큼 추악한 만행으로 가득 차 있다. 대체 언제부터 국제축구연맹 피파(FIFA)는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일까?
아디다스 VS 푸마 독일의 스포츠 전문 탐사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는 피파에 부패의 유전자를 심은 주인공으로 독일의 스포츠기업 아디다스 가문을 꼽는다. 독일 프랑켄 지역의 소도시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형 루돌프 다슬러와 함께 구두를 깁던 아돌프 다슬러는 1924년부터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치 정권에 적극 협력하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계기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살만해진 형제는 원수가 됐다. 루돌프는 1948년 푸마를 창업했다.
경쟁은 아들 대에도 이어졌다. 아버지 아돌프에 이어 아디다스 회장이 된 호르스트 다슬러는 푸마를 따돌리고 월드컵과 올림픽을 장악하기 위해 “스포츠 임원과 걸출한 선수의 정보를 모두 모아 관리하기 시작했다. 체중과 신발 사이즈는 물론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객의 성향을 낱낱이 기록했다. 좋아하는 여성 타입도 빼놓지 않았다. (…) 이 걸물은 최측근에게 이 기록을 보여주며 케이지비(KGB) 정보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곤 했다.” 이른바 ‘운동화 시아이에이(CIA)’, ‘스포츠 비밀정보부’의 시작이다. 전직 인터폴 간부 요원들로 이뤄진 운동화 정보부는 이제 피파 집행부를 위해 맹활약중이다.
공용어는 부패와 독재 1974년부터 24년 동안 피파를 지배한 주앙 아벨란제를 발탁한 것도 다슬러다. 아벨란제에 이어 98년부터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 제프 블라터 역시 다슬러 사람이다. 다슬러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지배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패와 독재다. 사마란치는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장군 밑에서 주지사를 지냈다. 프랑코가 죽자 러시아 주재 대사로 갔다가 거기서 다슬러를 만났다. 벨기에에서 브라질로 이민 온 무기상의 아들인 아벨란제는 브라질과 볼리비아의 군사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블라터는 피파 회장이 된 뒤 나이지리아의 사니 아바차를 비롯한 제3세계의 잔인무도한 군사 독재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피파에 부패의 유전자를 심은 건 독일 스포츠기업 아디다스 가문이다
24년간 피파를 지배한 아벨란제와 회장을 연임한 블라터를 발탁했다
피파의 마케팅 대행사는 1억4100만프랑을 뇌물로 썼다
개최지 선정과 피파 회장 선거때마다 호텔 방에는 돈 냄새가 진동한다
아벨란제와 블라터 피파의 모든 권한은 회장에게 집중돼 있다. 회장에게 불리하면 선거규칙마저 바꿔버린다. 1994년 아벨란제 회장에게 도전했던 당시 사무총장 블라터는 거의 모든 집행위원들이 해고되는 참사 속에서도 자리를 보전했다. 지은이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비밀 (…) 여차하면 당신과 함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겠다는 겁박으로 노인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면서?”라며 둘의 검은 공생관계를 의심한다.
블라터는 피파로부터 받는 공식 활동비가 얼마인지 끝끝내 함구하고 있다. 대신, 한해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는 피파의 돈이 어디로 새어나갔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최근 나왔다. 피파의 마케팅을 대행해온 회사 ‘국제스포츠와 레저’(ISL)의 파산을 계기로 벌어진 재판에서 아이에스엘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계 고위급 인사들에게 1억4100만프랑(우리돈 1600억원)의 막대한 돈을 뇌물로 바쳐온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사의 파산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돈이 2억9100만프랑이다.
비자 VS 마스타 입만 열면 거짓말인 피파 집행부의 행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이중계약 사건이다. 피파는 비자카드와 독점광고 계약을 맺어놓고도 마스타카드와 또 계약을 맺었다. 마스타카드는 미국 법정에 피파를 제소했다. 피파는 미국에서 열린 재판 과정에서 위조 계약서를 증거로 내밀기도 했다. 지은이는 “어찌나 비열한 반칙인지 거칠기로 유명한 축구선수라 할지라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였다”고 경악했다. 그러나 블라터는 건재하다. 마스타카드에는 9000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주기로 했다. 당연히 피파 돈으로. 비자카드로부터 받은 ‘플러스 알파’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공연한 복마전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피파 회장 선거는 공공연한 복마전이다. 주로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태평양의 섬나라들, 요즘엔 동유럽 국가들이 매수 대상이다. 투표가 있을 때마다 호텔 방에는 ‘돈 냄새’가 진동한다. 피파는 인터폴조차 기부금이란 명목으로 매수했다.
바뀌기 전의 피파 엠블럼. 마스타카드가 자사의 엠블럼과 비슷하다며 문제제기한 바 있던 이 엠블럼은, 피파가 사기 계약의 대가로 마스타카드에 거액을 물어주면서 동시에 사라졌다. 돌베개 제공
지은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심판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의 뇌물수수 혐의를 상세히 소개한다. “이 에콰도르 심판이 갑작스레 돈을 펑펑 물 쓰듯 하는 행보를 두고 세간의 의혹은 커지기만 했다. 월드컵 전만 하더라도 빚이 많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모레노였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지난 6·4 지방선거 와중에 실수로 내뱉은 “내 능력이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발언이 진실임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 많은 고유명사들─대부분 모리배들─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예전처럼 순진하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을까?
2014.06.15 /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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