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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영화 이야기

경계도시2 - 홍형숙 감독

by Wood-Stock 2010. 3. 22.

한국 사회 광기와 혼란의 ‘송두율 극장’

 

힘자랑하는 근육질 국가, 집단과 개인이 부딪힐 때 주류 운동이 취하는 내면의 포즈…
옳고 그름 그 경계의 다큐 홍형숙의 <경계도시2>
 
돌아보면, ‘송두율 극장’이 있었다. 축구팬들은 예컨대 추가 시간에 골을 터뜨려 승부를 바꾸는 드라마틱한 경기를 많이 하는 팀의 경기에 ‘극장’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지난 유로 2008에는 경기마다 명승부를 연출했던 터키팀의 ‘터키 극장’이 있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엔 ‘토트넘 극장’이 있었다. 2003년 9월, 한국에는 37년 만에 입국한 한 개인을 대한민국이란 거대한 원형 경기장의 한가운데 세워두고 지나온 인생을 발가벗기고 당장 여기서 무릎 꿇는 항복을 요구했던 광기의 극장이 있었다. 굳이 나누자면, 한국 사회 오른쪽이 광기로 번뜩였다면 나머지 왼쪽은 혼란에 빠졌다. 간첩이니 김철수니 하는 말들을 국정원의 고리타분한 선전이라 믿었는데, 어쨌든 믿었던 인물이 북한의 자금을 받았고 ‘김철수’란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보수 언론을 통해 포장돼 나온 ‘피의 사실’은 송두율 교수를 분단의 희생자, 양심적 철학자라 여겼던 이들에겐 적잖은 혼란을 주었다. 그것은 송두율 반전 드라마는 아니어도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미드처럼 보였다.
 

» 송두율 교수. 연합

3주 일정은 7년 장정으로

 

그렇게 불타는 시간은 끝났다. 나중에 송두율 교수가 재판에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단 사실을 일부는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후일담에 지나지 않는다. 광기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의 뇌리에 이미 그는 거물 간첩으로 낙인찍혀버렸다. 그렇게 멀어진 얘기를 7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불러낸 사람이 있다. 홍형숙 감독은 고국 방문을 앞두고 설레고 방문이 무산돼 좌절하는 송두율 교수 부부의 얘기를 담은 <경계도시>를 이미 2002년에 만들었다. 앞서 홍 감독은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1995),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 <본명선언>(1998) 같은 작품을 통해 ‘경계와 너머’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마침내 송두율 교수의 고국 방문이 성사되자 3주 일정으로 촬영에 나섰다. 그러나 3주의 일정은 7년의 장정이 되었다. 홍 감독은 “(<경계도시2>는) 나와 그와 친구들 얘기”라며 “세 가지 축에 모두 거리를 두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겨우 거리가 생기자 촬영 테이프 400개, 자료 테이프 100개를 보는 데만 또 2년이 걸렸다. 그는 “처음엔 힘들어 한 번에 10분도 보지를 못했다”고 돌이켰다. 그리고 2006년에 독일 베를린으로 날아가 송 교수를 만났고, 그해 가편집본을 만들었다. 그것도 끝이 아니어서 송 교수를 포함해 다큐에 등장하는 이들의 의견을 모으고 갈등을 조정하면서 마침내 완성본이 나왔다.

 

» 2003년 송두율 교수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으나 결국 구속됐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는 선친의 묘소를 찾아 비로소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나온 <경계도시2>에는 다양한 시선이 담겼다. 이 다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사회의 힘자랑. 체제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한국이란 근육질의 국가는 나한상 같은 얼굴을 하고 입국의 문에서 한 철학자에게 무릎 꿇으라고 협박했다. 홍 감독은 “송두율 교수가 입국해서 출국하기까지 과정을 대략 4단계로 나누었는데, 영화는 처음 입국해서 국정원 조사를 받고 여론몰이를 당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 철학자의 내면 고백을 강요했던 한국 사회의 광기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국가가 한 개인에게 완전한 투항만을 요구했다”고 돌이켰다. 한편으론 그동안 알려진 내용과 조금씩 다른 사실이 나오면서, 송두율을 분단의 피해자로 믿었던 이들이 느끼는 혼란도 역시 혼란을 느끼는 감독의 시선을 통해 드러난다.


선의의 초청자들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을 때

» <경계도시2>의 홍형숙 감독은 다큐가 잊어선 안 될 과거를 기억하는 투쟁이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뜨거웠던 2007년 가을의 내밀한 관찰자이던 홍형숙 감독의 카메라는 외부의 시선으로는 짐작만 했으나 들여다보지는 못했던 곳에도 이른다. 당시 사회단체 관계자 등으로 꾸려진 대책위 내부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가 <경계도시2>에 생생히 담겼다. 이것을 보면서 또 다른 성찰의 계기도 나온다. 선의로 가득한 ‘관계자들’은 송두율 교수를 앞장서 초청했으나 이제는 거꾸로 그에게 독일 국적 포기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객관적 상황이 “수많은 사람들”과 “(송 교수 부부) 두 분의 인생”을 대비시킬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계도시2>에는 집단과 개인의 이해가 부딪힐 때 한국 사회의 주류 운동이 취하는 내면의 포즈가 포착된다. 그러나 여기엔 어떠한 판단도 들어 있지 않다. 누구는 송두율 교수 부부의 입장에, 또 누구는 관계자들의 고뇌에 공감할 것이다. 홍 감독은 송 교수를 생각하면 “저 자리에 그가 아닌 누가 있었다고 한들 (상황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관계자들을 보면서 “‘저 테이블에 내가 없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경계도시2>는 그렇게 여기와 저기, 옳음과 잘못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는 다큐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어떠한 입장도 밝히기 어려운 송 교수를 대신해 경계인의 입장을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변하는 부인 정정희씨의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홍 감독은 정정희씨에 대해 “대변자보다는 오히려 당사자”라고 말했다.

 

2004년 8월 마침내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송두율 교수는 고향 격인 제주에 가서 바다에 발을 담그고 회한에 젖는다. 어쩌면 그에게 경계도시 서울로 들어오는 일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그에게 고향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송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주와 서울을 거쳤지만, 스스로 말하듯이 일반적 의미의 고향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홍 감독은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귀향은 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전에도 말했다”고 전했다. 황혼에 접어든 인생을 어디서 마무리하고, 어떤 삶의 거처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 앞에서 철학자는 과거를 대면할 용기도 냈을 것이다. 그리고 변한 조국에 대한 희망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미래의 고향으로의 귀거래사는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다.

 

미래 고향으로의 귀거래사, 언해피엔딩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다. 집단적 기억의 힘은 강하다. 그것을 굳이 ‘기억 투쟁’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기억하는 사회에 역사는 조금 다르게 반복될 여지를 열어준다. 그래서 홍 감독은 “몰랐거나 잊었거나 침묵에 묻었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건이 끝난 지 7년 뒤에 용감하게 이 다큐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는 얘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다시 여기 그와 같은 인물이 온다면 한국 사회는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인가? 누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홍 감독은 “나와 친구들의 고백록인 이 영화가 답답하고 서글픈 이야기를 넘어서 애타는 희망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3월18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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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 스파이라 매도당한 분단 지식인의 수난일기

7년 전 한국사회 이념전쟁 주인공 된 송두율 교수의 귀국~구속~출국 담아

 

 

2003년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았던 송두율 사건의 백서가 나왔다. <경계도시 2>. 책이 아닌 여성감독 홍형숙씨의 다큐멘터리다. 상영시간 104분 내내 옛 상처를 헤집는 고통. 당사자와 홍 감독의 긴 아픔에 비길까만. 애초 3주면 될 촬영이 10개월로 늘어났고, 그것을 편집해 공개하기까지 다시 6년이 흘렀다.

 

송두율부터 소개하자. 1944년생인 그는 1967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뒤 독일에 유학해 1972년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를 받아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1982년 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1994년부터 베를린 훔볼트 대학 교수로 재직해 왔다. 60~70년대 유신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재독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됐다. 내재적 북한 접근론은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에는 김일성 주석 장례식에 참석한 바 있다. 현재 독일시민권자.

 

그럼 송두율 사건이란? 2003년 9월22일 37년 만에 입국해 2004년 8월5일 출국할 때까지 10개월 동안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국정원에 네 차례, 검찰에 아홉 차례 소환되는 조사를 거쳐 입국 한달 만에 구속됐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이듬해 3월, 징역 15년 구형에 7년이 선고됐고 7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났다. 검찰의 두툼한 공소사실 가운데 1992년 5월부터 5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과 황장엽을 상대로 1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내용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제 영화 얘기다. 카메라는 송두율의 입국부터 출국까지 동행한다. 정작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재단한 국정원, 검찰, 법원 등 국가 기관에는 언감생심, 주변만 뱅뱅 돈다. 그게 영화의 핵심이자 아픔이다.

 

국정원 3차출두(2003년 9월24일)

기자: 국정원 쪽에서 피의자라는 얘기를 하던가요? 처음에는 피내사자라고 해서 단지 조사를 받는 것뿐이라고 얘기됐는데….


송두율: 그래요? 난 차이를 잘 모르겠네요.

 

선친묘소(9월28일)

송두율: 67년 유학 떠날 때, 아버님은 세계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 더 우리 민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과정을 아버님께서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 송두율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기자회견 준비(10월2일)

정정희(송두율의 아내): 내가 경계인으로 살았고, 북쪽의 관계로 남쪽과는 소원해졌다. 그러나 경계인이라는 내 입장은 분명하다.

변호사: 현재 입장이 경계인이라는 건 좋은데, 그 입장에 비췄을 때 과거의 부분들이 수긍이 안 된다는 거죠.

 

기자회견 뒤(같은 날)

기자: 노동당을 가입한 것으로 볼 때 이미 북한이라는 체제를 선택하신 걸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경계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고 보구요.

 

텔레비전 뉴스(같은 날)

정형근(한나라당 의원): 정부의 핵심 세력에서 송두율씨를 위장 입국시키고 컨트롤하고 미화 찬양시키고, 이런 핵심 세력을 찾아내는 것이 이 사건의 열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강대 철학자대회 만찬(10월10일)

기자: 오늘 전향을 권유하셨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박홍: 사오로가 바오로가 되는 것이 변화를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했던 사오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바오로가 됐잖습니까? 전향 이상이지, 흐흐.

 

수유동 숙소(10월11일)

정정희: 추방당하면 슬픈 얘기지만 저희가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개씨: 추방당한 다음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추방도 못 당한 사람들.

 

서울지방법원 앞(12월2일)

행인 1: 아니 간첩 새끼가 민주인사야? 쉽게 얘기해서 김일성 동조세력이라 이거예요. 중죄로 다뤄야 돼.

행인 2: 그냥 북한으로 보냈으면 좋겠어. 김정일하고 살라고.

오두방정 호들갑 10개월, 그리고 까무룩한 침묵. 4년 뒤인 2008년 4월 대법원은 2심에서 유죄에 포함됐던 독일 국적 취득 뒤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국 사회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영화는 그렇게 묻는다. 18일 개봉.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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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의 ‘정치적 복권’ 토론해야”

‘송두율 다큐-경계도시 2’ 홍형숙 감독

 

존경받던 민주 인사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으로 전락했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왼쪽 사진) 교수. 부푼 기대를 안고 37년 만의 귀국을 감행했던 그의 몸을 냉전의 사슬이 옭아매는 데는 채 한달이 걸리지 않았다. “강산이 변해도 4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나간 만큼 조국도 많이 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송 교수의 오산이었다. 이성을 상실한 광기가 휩쓸고 지나간 뒤 그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상영 중인 홍형숙(47·오른쪽 사진) 감독의 <경계도시 2>는 이 견고한 침묵의 바다에 던진 최초의 파문이다.

 

‘귀국~대법 판결’ 5년간 한국사회 기록
‘거물 간첩’ 광풍 뒤 상처만 남긴채 망각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잊고 싶어했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가 외면하려 했던 우리 사회의 치부와 대면하게 한다. 영화에는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레드 컴플렉스, 실정법(피의사실 공표죄)을 공공연히 어겨가며 여론몰이를 하는 공안기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어’로서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언론, 송 교수가 구속된 뒤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린 ‘냄비 여론’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병폐의 단면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등장 인물들의 긴박하고 내밀한 대화와 토론을 가감없이 잡아낸, 다큐멘터리 기본 정신에 충실한 작품이다. 딱딱한 주제를 감싸는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아름다운 음악은 이 영화를 예술작품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영화는 2003년 9월, 송 교수가 베를린에서 귀국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해, 2008년 4월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5년 동안 벌어진 일을 담고 있다.


» 철학자 송두율 교수(왼쪽 사진)

홍 감독은 “애초 3주 예정이었던 송 교수의 체류 일정에 맞춰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송 교수의 독일 생활을 다룬 전작 <경계도시>에 이어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가명을 가진 북한의 정치국 후보위원과 동일인물이라며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고, 호의적이었던 여론은 순식간에 악의적으로 변했다. 언론은 그의 방북 사실과 노동당 가입 사실 등을 폭로하며 그를 간첩이라고 단정했다.

 

속속 밝혀지는 송 교수의 과거 행적에 충격을 받은 것은 그의 귀국을 추진했던 측근들도 마찬가지였다. 홍 감독 역시 “당혹과 충격에 빠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난상토론 끝에 송 교수는 그동안 북한에 치우친 점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 모든 소란이 발생한 것은, 양심의 자유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 위에 철옹성처럼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탓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11일 부산에서 만난 홍 감독은 “송 선생님이 모국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민들의 머릿속에서도 그런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송 선생님의 정치적 복권을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손홍주 <씨네 21> 기자 lightson@ci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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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카메라-‘경계도시2’를 보고 / 서해성

“시민사회 분단에 안주한 적 없어…자괴감 아닌 싸움의 기록이었어야”

 

그 여름 송두율 교수는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온 뒤 곧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 사는 송두율은 떠났지만 한국인 송두율은 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였다. 여섯 해 전 일이었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한국인의 심신 일부를 옥에 가둔 채 분단의 망령된 실체로 작동하고 있다. 다큐 <경계도시2>를 통해 그해를 떠올리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분단과 냉전과 국가보안법을 다시금 관절마다 절감하는 일이었다. 분단에는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 송두율 귀국과 관련한 논점은 달리 복잡할 게 없었다. 한국 지식사회는 망명 지식인의 귀환을 두루 반기는 분위기였다. 대중은 독일에서 활동해온 송 교수에게 한국이 낳은 유럽 지식인상을 투사하고 있었고 그는 그에 걸맞은 행적과 내용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더구나 스스로 거듭 말한 대로 그는 경계인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는 남북한 분단 체제가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는 고도의 가치였다. 요컨대 송두율에게는 한국 지식계가 한껏 기대와 상상을 더한 것까지가 들씌워져 있었다.

 

막상 그가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송두율보다는 문득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야 옳았다. 6·15선언 이후 몸체를 낮췄던 분단세력이 이를 숙주로 삼아 치열한 공세를 퍼부으면서 기를 살려내기 시작했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 송두율 귀국과 함께 몰아치던 드센 광풍은 분단 기득권의 근육이 강하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다큐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 대응하는 시민사회 진영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대책위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은 귀국, 투옥, 출국까지 동지적 애정으로 송 교수의 고통과 함께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다큐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창작 공연 ‘경계에 피는 꽃’ 같은 경우가 좋은 예다. 보안법과 관련해 시련을 겪은 이들 중 누구보다 사랑받은 사람이 그였다. 조선노동당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으나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한 채 희생당한 숱한 영혼들에 비긴다면 숫제 분에 넘친다 해도 어긋난 말이 아닌 관심으로 시민사회는 그를 감쌌다.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은, 대책위가 마치 사실상 전향을 요구하기라도 하는 듯한 인상을 다큐가 주고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르다. 당시 대책위는 경계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상 도리어 회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 옥살이를 포함해 보안법과 싸우는 등 현실에 책임을 지면서 극복해내자고 한 것이다. 이는 송 교수에게는 실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활동들을 사상개조 행위식으로 해석해버리는 일은 새로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던 게 이 다큐를 본 소회였다.

 

한국 시민사회는 장기간에 걸친 비전향장기수 지원 활동에서 볼 수 있듯 분단을 뛰어넘고자 해왔지 그 안에 안주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대법원에서 송 교수의 활동에 무죄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우연일 수 없다. 싸우고 피 흘린 만큼씩 보안법의 벽은 허물어져 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송두율에 관한 기록은 거룩하게 과장된 모종의 자괴감이나 관념적 엄살이 아닌 보안법과 싸운 한국 시민사회의 생동하는 기록이었어야 마땅하다.

 

소설가, 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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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수난’ 그 불편한 진실…누가 자유로울까

다큐영화 ‘경계도시2’ 홍형숙 감독·박원순 변호사 대담

 

2003년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입국을 둘러싼 소용돌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2>가 최근 개봉됐다.(관련기사) ‘스파이’로 매도됐던 분단 지식인의 수난을 기록한 이 영화는 국가보안법, 냄비언론, 한국의 지식인 등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영화를 만든 홍형숙 감독과 박원순 변호사가 대담을 나눴다. 또 송 교수 귀국을 추진했던 소설가 서해성씨가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고, 그 느낌을 보내왔다.

송두율 교수 입국 초기 “37년 만의 귀향”이라며 비적대적이던 여론은 그가 북한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급변한다. ‘거칠 것을 거쳐야 한다’는 주변 조언을 받아 그는 사과 회견을 열고 노동당 탈당, 독일 국적 포기 선언을 하게 된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그에게 1심 법원은 징역 7년을 선고한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치면서 혐의 대부분을 벗는다.

박원순(이하 박) 영화관에서 한번쯤 조는데 이 영화는 전혀 졸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하더군요. 104분짜리 영화 안에서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선명히 드러내는 정치학적, 사회학적으로 위대한 저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형숙(이하 홍) 철학자 눈에 비친 대한민국 초상이라는 콘셉트의 3주 정도 제작 일정이었어요. 그게 7년 걸릴 줄은 아무도 몰랐어요. (송 교수의) 주변 사람들 입장이나 태도를 옆에서 지켜보고 기록하는 게 고도의 긴장 상태였던 것 같아요. 촬영 뒤 2년 정도 자기 정리 시간이 필요하더라구요. 저도 내면에 혼란과 격동이 일어났으니까요.

 

저도 그 영화에서 자유스럽지 않죠. 늘 친구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바로 제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영화가 불편하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때 그 자리(송두율대책위)에 대신 다른 분들이 앉으셨다 한들 얼마나 달랐을까요. 그분들은 당시 많은 사람들 의견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던, 자의 반 타의 반 악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해합니다.

 

» 박원순 변호사“보안법 강고한 내면화 보여줘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않아”

지금 눈으로 판단할 수는 없죠. 당시 그분들은 그때 고비만 넘기면 송 교수가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의 고통을 넘겨버리자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요. 그분이 30년간 지켜온 것보다는 미래적인 관점에서 안착해 잘 살았으면 하는 충정이었을 겁니다. 송 교수도 원칙을 지켰으면 잃는 것이 훨씬 적었을 거라고 판단해요. 당시 권력 상층부와 입국을 주도한 분들 사이에 교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형식적 조사를 받고 기자회견 한번 하면 끝나는 정도로 말이죠. 당시 사건이 악화된 과정을 보면 정부든 방한 주선자들이든 간에 국가보안법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지 몰랐던 거 같아요. 보안법은 단순한 법이 아니라 특정화된 권력을 상징하는 정치사회 구조나 문화나 내면화된 의식들을 상징하죠. 언론 문제도 컸죠?


권력에 유착 또는 종속된 언론 구조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초반에 보수 세력과 수사 기관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피의 사실을 흘리고 언론은 그대로 받아서 여론을 형성했어요.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인 절차가 훼손돼 있었던 거죠. 짧은 기간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의해 여론 재판이 끝나 버렸습니다. 정작 합리적 이성으로 다툼을 벌이는 재판 과정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어요.

 

이른바 냄비언론이라 하죠. 사건을 팩트를 기반으로 깊이 있고, 분석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의견성·추측성 기사가 많아요. 송두율 사건만 해도 거의 추측으로 썼다는 거잖아요. 사법부가 보였던 것처럼 깊이 있는 기사를 썼다면 애초부터 무죄가 되어 문제가 크게 되지 않았겠지요. 저는 미국의 징벌적 손해(punitive damage) 제도를 도입해야 된다고 봐요.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잘못한 것은 패가망신시키는 겁니다.

 

» 홍현숙 감독“촬영 뒤 혼란과 격동의 시간 ‘송두율=스파이’기억 언론 탓”

2008년 4월 대법원에서 송 교수 혐의가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났는데 대부분 단신처리됐어요. 사람들 기억 속에 박힌 ‘송두율=스파이’를 지울 수 없지요. 어떤 근거도 없이 모국을 향해 40년 학문을 닦아온 철학자를 하루아침에 추락시킨 책임은 언론에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지식인들은 보안법 프레임에 갇혀 있지는 않았어요. ‘보안법을 인정하자, 전향을 강요하자’보다는 ‘어떻게 귀향 정착시킬 수 있을까’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송 교수가 여론이나 공안 기관의 포로가 된 상황에서 맘놓고 싸울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거쳐야 할 것은 거쳐야 한다며 최악의 선택을 했고 결국엔 구속되면서 명분도 실리도 다 잃었지요. 처음부터 당당하게 싸웠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송 교수의 ‘경계인’이 오해, 왜곡되기도 했어요. 원래는 남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경계를 선 아닌 면 개념으로 보면 경계인은 양자의 틈을 넓혀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거죠.

 

토인비 얘기처럼 변경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창조와 변혁은 가득 찬 중심이 아니라 경계 지대에서 발생합니다. 모두 똑같으면 절망, 쇠락, 후퇴뿐입니다. 대원군이 쇄국 정책과 유교 국가를 강조하면서 조선은 외세 침략으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지금 현실이 그와 비슷한지도 몰라요. 일체 좌파를 분쇄하고 우국충정으로 가득 채우려 하죠.

 

지금 송 교수 입국이 추진된다면 원활하게 이뤄질까요?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심하겠지요. 역사에서 가정은 허망하지만 나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가 우리 사회를 너무 모릅니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행·정리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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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 '레드 콤플렉스'가 두렵다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치부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 <경계도시2>

 

<경계도시2>는 마음을 쓰리게 만든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대학까지 졸업 했다. 지금도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또한 92학번이기에 지역 감정이 극심한 시기를 겪었고, 초등학교 다닐 때는 의무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였다. 극심한 지역감정과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이다. 이런 일들이 무려 20년 넘게 이어졌다. 자연히 그 시기 동안 한쪽에 치우친 사고로만 세상을 보았고, 그런 흔적은 여전히 잠재적으로 '나'에게 남아 있는 상태다.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는 '나'의 마음 속에 내재된 '레드 콤플렉스'를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끔씩 이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아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북한'은 '한국'의 주적이란 생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 '북한'에 대해 좋은 시선을 주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뇌의 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사람이다.

 

송두율 교수 2003년은 유죄, 2008년은 무죄

 

<경계도시2>는 '나'란 사람이 보기엔 상당히 힘겨운 작품이었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나의 치부를 들추어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반공만화 '똘이장군'을 보면서 환호하고, 북한 주민들은 모두 '돼지'라고 생각했던 그런 기억들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2003년 당시 송두율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을 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글을 적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북한'과 관련된 인물이란 사실만으로 '나'의 이성적인 뇌 기능은 모조리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작품에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지 보기 전엔 솔직히 몰랐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경계도시2>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한국사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랜 된 과거의 망령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붙잡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지 현실적으로 관객들에게 각인 시켜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것들을 위한 포석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송두율 교수란 인물이 이 작품에서 분명 중요하지만, <경계도시2>는 모든 것을 송두율 교수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자신 스스로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경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송두율 교수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배척받고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일반시민들이 보여주는 반응 또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낯을 뜨겁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결국 한국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강렬하게 시사하고 있다.
 

나와 같이 '북한'이란 이야기만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레드콤플렉스'가 작동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까지도 송두율 교수에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바꿀 것을 권하고 강요한다. 한국에서 어느 누구도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치부를 <경계도시2>는 적나라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언론들이 송두율 교수를 보도하면서 어떠한 태도를 유지했는지도 이 작품은 간과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보여준 무뇌아적인 형태와 이성이 마비된 보도태도 역시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빨강과 파랑색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다큐멘터리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런 부분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직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면 가장 효과적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해준다. 바로 '레드콤플렉스'를 발동시킬 수 있는 '빨갱이'란 소리로 공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란 것이다. 이 한 마디면 모든 뇌의 기능과 이성적인 사고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 레드 콤플렉스가 두렵다

 

아무리 여기서 '나' 스스로 아닌 척 해도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나'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레드 콤플렉스'다. 이 콤플렉스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잘못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것에 대한 평가는 '레드'란 단어 안에서 그리고 '빨갱이'란 단어 안에서 사고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경계도시2>는 이런 '나'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줌과 동시에 두려움을 준다. 이 글을 적고 있지만 언제 또 다시 '나'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가 다른 사람을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도망가고 싶어도, 오랜 시간 봐온 반공만화처럼 '나'의 잠재의식 속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이 망령이 또 다시 스위치를 켜고 작동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전히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경계도시2>는 분명 보기 불편한 작품인 동시에 마음 한 구석을 쓰라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20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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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영화 <경계도시2>

 

<경계도시2>(감독 홍형숙)는 내가 본 영화(다큐멘터리) 중 가장 슬픈 영화다. <경계도시2>라는 거울 앞에 선 내가 바라봐야했던 것은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던 나였기 때문이다.

지금껏 난 국회에 공산당원이 진출하는 그 날이 우리 사회가 학문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가진 진정한 '열린 사회'가 된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서 조선노동당적을 가진 그를 내 마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 슬픈 건,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경계도시2>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나온다.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이들은 송두율 교수에게 조선노동당 입당을 사과하고 독일 국적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진보진영을 위해, 운동 전체를 위해, 심지어는 이듬해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송두율 교수에게 무릎 꿇을 것을 요구한다.

(물론, 송두율 교수가 감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나온 고민의 흔적일 수 있다. 또한 끝까지 송두율 교수를 지키고 지지한 것은 진보진영 인사들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더 슬픈 건, 2003~2004년 송두율 교수의 귀환을 둘러싼 논란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조금은 더 열린 사회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지만, 2010년 그는 스파이가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2010년은 공무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임·파면되고 여당 원내대표가 좌파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드러내는 시대다. 송두율 교수가 2003년이 아니라 오늘 귀환한다면, 우리 사회 야만성의 크기는 2003년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언제나 망각에 빠져있다.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 사건'이 '해방 이후 최대의 마녀사냥'이 됐지만, 그 누구도 이를 기억하려하거나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송 교수가 그렇게 질타했던 언론인들은 여전히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서, 사회적 자살을 여전히 시도 중이다.


박헌영 / 위키피디아에서 퍼옴 (사진 원본은 박헌영의 딸인 박 비비안나가 현재 소장 중)

 

무엇보다 더 슬픈 건, 우리 사회의 야만성이 60년 전 해방공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얼마 전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박헌영 평전>(지은이 안재성, 실천문학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박헌영은 해방공간 전후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최고지도자였다.

공산주의는 한국전쟁 후 한국민에게 '악' 그자체로 뿌리박혔지만, 전쟁 전 공산주의 이상은 조선인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자들을 사로잡았다. 해방 전 독립운동의 가장 큰 세력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일일 7~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제, 국민연금·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확립,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사형제도 반대를 주장했다. 선입견을 버린다면, 공산주의자야말로 인본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였다. (이들의 이상은 소련·북한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실패를 낳았지만, 인류 최고의 제도인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38선 이북 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토지개혁으로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해방공간에서 공산주의자는 모두에게 적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민중들의 집회와 노동자들의 파업은 우익세력으로부터 대대적으로 탄압받았다. 박헌영은 소련의 괴뢰로 공격받았다.

공사주의자의 활동은 일제 때보다 더 악화된 상황에서 이뤄졌고, 이들은 북한으로 피신하거나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좌익세력은 토벌과 학살대상이 됐고, 전쟁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좌익세력은 한반도 남쪽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북에서도 박헌영을 비롯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던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은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하고 만다.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진 걸까?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겪어야 했던 우리사회의 야만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배회하고 있다. 홍형숙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학문·사상·양심·표현의 자유 등 이미 한국사회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의 초석들은 송 교수의 법정에서 허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2010/03/29 - 가슴 뛰는 현장(sundai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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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혹은 1점, 누리꾼 평점 극과 극 오간 이유

[인터뷰] <경계도시2> 홍형숙 감독... "송두율 교수는 지표생물"

 

<경계도시2>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영화 관람 후 모두 낯뜨거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가 되었든 진보가 되었든 이성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성이란 것이 무용지물인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전해줄 수 있는 대답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다. 그 대답이 무엇인지 이성이 있는 분들이라면 각자 다들 짐작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관계로 인해 '나'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부끄러움이 컸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지역 감정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공교육으로 철저하게 다져진 세대이기에 90년대 초반 이 영화를 봤다면 '나' 역시 이성을 잃어 버리고 이 영화를 매도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90년대 '나'와 같은 반응은 씻어버릴 수 없는 원죄일지 모른다.

 

처음 이 작품은 단순히 송두율 교수 문제를 다룬 사회성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보고 나면 송두율 교수를 전면에 내세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이 작품에 나오는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조차도 위에서 말한 원죄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전히 대한민국 언론이 보여주는 보도 형태 역시 이 작품에서 보여준 수준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떤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한민국 언론들이 반응했는지 송두율 교수 사건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단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라 모 포털 영화코너에 가면 아직도 이 영화에 평점 1점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물론 평점 1점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의견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 평점 1점 주는 사람들 의견을 보면 대부분 보통 한 가지 이유뿐이다. 입 아프게 여기서 그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2010년 현재도 <경계도시2>에서 보여준 우리들의 치부가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바로 이런 사실들이 이 영화를 본 '나'를 더욱더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경계도시2> 홍형숙 감독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국도예술관에서 4월15일 <경계도시2> 개봉을 앞두고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도움으로 홍형숙 감독과 인터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인터뷰는 협조공문을 발송하여 서면으로 진행이 되었다. 인터뷰에 도움을 주신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에게 감사드린다. 인터뷰 회신은 4월 14일 이루어졌다.

 

국회 상영회 때 소감을 밝히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우)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오늘 외면하고 부인한다면 미래는 무엇으로 시작할까요?

 

- 홍형숙 감독님 안녕하세요. 요즘 같은 시기에 <경계도시2>를 개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영화 개봉 후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받거나 시달리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시기적으로 민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7년 전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경계도시2>가 2010년 현재 상황에서, 관객과 무엇을 가지고 만날 것인가의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우리 모습을 비추는 아픈 거울과 같은 과거의 시간 속에 숨은 현재적 의미와 맞닿아 있는 것을 찾는 일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동시에 지금 한국사회는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근원적 질문과 대면하게 만드는 역할이 <경계도시2>가 2010년 관객들과 만나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내면의 환부에 스스로 메스를 가할 수 있는 '정직한 시선'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지금 이 시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늘 또한 외면하고 부인한다면 미래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요?"

 

-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행하는 정신적 폭력, 그리고 그 폭력에 아무런 이유 없이 동조하는 사람들, 정치적 성향이 보수가 되었든 진보가 되었든 인간 송두율이란 개인에게 행한 폭력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50보 100보란 말이 떠오르는데요. 작품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인간 송두율에게 가장 큰 아픔을 느꼈을 때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2003년 가을은 태풍의 시간이었습니다.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은 각자 저마다의 분열과 상처를 경험했으리라 추측해봅니다. 당사자였던 송 교수의 내면을 짐작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송 교수가 있었던 자리에 나를 대입해 보면 섬뜩할 뿐입니다. 태풍의 시간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물론이거니와 그토록 떠들썩한 시간이 끝나자 완벽하게 실종되어 버린 상황이 더욱 당혹스럽지 않았을까요? 송 교수는 단호하게 연민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7년간의 침묵. 송 교수의 말대로 한국 사회가 입을 열어야 할 차례입니다. 지금보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제2, 제3의 송두율 사건은 언제나 가능하다

 

 

- 이미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념은 중요한 정치적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북한 이야기나 북한과 관련된 인물 이야기가 나오면 달갑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송두율 교수 사건 당시 저 역시 그를 비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벗어나려고 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한데요. 홍형숙 감독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010년 한국사회 성원들이 과연 일상 속에서 이 문제를 체감할 수 있을까요? 거의 완벽하게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느끼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나 역시 <경계도시2>의 상황을 만나기 전까지는 스스로의 이성과 신념을 꽤나 확고하게 믿었던 편입니다. 그러나 2003년 가을, 일상에서 숨어있던 레드 콤플렉스의 견고한 덫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는 순식간에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소위 공안당국으로 표현되는 국가기관과 보수는 이념의 총공세를 펼쳤고, 언론은 여론 몰이에 나섰습니다. 결국 그들의 절묘한 합주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이미 합리적 이성이 마비되고 소위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도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그의 친구들 역시 한국사회의 공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7년이 흘렀으나, 불행하게도 제 2, 제 3의 송교수 사건은 언제나 가능한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공포영화 코드로 이야기하면, 언제 '푸른 수의'가 무관해 보이는 우리 자신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일입니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푸른 수의는 실제 송 교수님이 수감 당시 입었던 수의로 베를린 자택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촬영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홍 감독님의 의중을 헤아려주실 줄로 압니다).

 

- 영화를 본 후 자신이 부끄럽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홍형숙 감독님 개인적으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어떤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계셨는지요?

"관객들 개개인의 삶의 프리즘에 따라 영화는 저마다 다른 텍스트로 읽히게 됩니다. 거듭되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은 <경계도시2>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코드로 읽어내는 시선부터,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평까지 독해의 스펙트럼이 꽤나 다양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감독으로서 <경계도시2>에 놓아둔 다양한 질문과 문제의식들- 레드콤플렉스, 관성화된 진영의 논리,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문제, 개인과 집단의 문제, 일상에서 만나는 선택을 강요하는 현실 등- 속에는 누군가 발견해 주기 바라는 무수히 많은 개념과 상황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발견'하고 '확장'시킬 것인가는 오직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중하고 품격 있는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 영화에서 보여주는 당시 언론의 모습과 현재 2010년 대한민국 언론의 모습이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추측성 보도가 아닌 진실만을 보도해야 될 언론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송두율 교수 사건을 보도하는 모습이 비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사건 당시 독일의 유력 일간지는 '한국 언론은 관찰자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어'라고 한국 언론에 대해 일갈했습니다. 한국 사회만큼 언론의 영향이 지대한 사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관행은 7년 전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특히 사회적 현안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패턴은 조사당국에서 피의사실을 흘리면, 거의 그대로 받아 전하고, 그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언론이 먼저 떠나면서 세간의 이목이 다른 사안으로 재빠르게 이동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와 본질은 흐려지고, 누군가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내면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신중하고 품격 있는 언론의 역할은 얼마나 중대한가요?" 

 

- 송두율 교수는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입니다. 하지만 현재 남과 북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경계인으로 서 있는 것 자체가 양쪽 모두에게 공격당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현실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경계인으로 남과 북을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이란 의미는 북과 대치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회색분자 같은 사람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공격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사회는 내 편 아니면 적이란 사고방식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모두 적이거나 나쁜 사람 혹은 몹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송두율 교수 같은 분이 과연 경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남과 북의 상황 속에서 경계인은 여전히 '실재'가 아니라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역으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쓴 송교수의 글을 보면, 경계와 경계인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경계를 선의 개념으로 규정하면 선을 중심으로 양자는 구분되고, 배타적인 상황으로 규정됩니다. 그러나 경계를 공간 혹은 지대의 개념으로 인식하면, 양자가 만난 가능성을 타진하고 공유할 지점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런 공간을 넓혀가는 '생산적인 제 3의 존재'를 송 교수는 '경계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10년 한국사회에도 현재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닌가요.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목소리 층이 깊고 넓어질수록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다만, 한국사회에는 '의지적 가능성'이 필요한 영역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싶어 피로감도 느끼고 따라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경계도시2> 평점은 10점 아니면 1점

 

 

- 아무래도 영화 개봉 후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현재 지역공동체 상영도 문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공동체 상영을 하려면 어디로 문의해야하는지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시네마 달에서 대신 답변 드립니다. <경계도시2>를 위한 공동체배급위원회가 꾸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전체 진행은 배급사인 '시네마 달'에서 기본적으로 진행합니다만, 각 지역의 특성과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여 보다 효과적이고 폭넓은 지역배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각 지역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관련 활동을 오래 진행해 오셨던 단위들과 함께 '배급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하여 현재 다음과 같이 지역공동체 배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릉/강원영동 : 강릉씨네마떼끄  

원주 : 다큐멘터리동호회 나무   

대구/경북 : 대구경북시네마테크    

울산 : 울산미디어연대   

진주/경남 :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광주/전남 : 진상필름   

전주/전북 :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청주/충북 : 청주시네마테크  씨네오딧세이    

대전/충남 : 대전아트시네마

 

각 배급처의 연락처와 자세한 정보는 http://cinemadal.tistory.com/905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모 포털 영화코너에 가면 이 작품은 송두율을 미화 시켰단 주장을 하면서 평점 1점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분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부딪치면 다큐멘터리영화 만든 감독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경계도시2>의 평점은 대개 10점 아니면 1점입니다. 중간 점수는 흔치않습니다. 표준편차가 이렇게 큰 영화도 드물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경계도시2>가 서 있는 한국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송 교수가 구속되던 날, 어떤 방송에서는 '송 교수는 2003년 한국사회의 지표생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존재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통해 해당지역의 청정도를 가늠하는 것이 지표생물이라는 개념입니다. 2010년 <경계도시2>가 한국사회의 관용도를 측정하는 문화적 지표생물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 마지막 질문으로 <경계도시2> 이후 다른 작품을 계획 중인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사회성 짙은 다큐멘터리영화를 계속 만드실 예정인지요?

"구체적으로 차기작을 확정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그 연장에 서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당대에서 함께 논의할 만한 사안을 '발견'하고, 중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언제든 새로운 시선으로 무엇인가 발견하게 되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질문할 것입니다."

 

201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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