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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노래 이야기

심성락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by Wood-Stock 2009. 11. 8.

“데뷔 앨범 내는데 50년 걸렸소”
청와대 악사로, 최고가수들 반주자로... 드라마 같은 음악인생 결정판 선보여

 

‘아코디언의 전설’ 심성락씨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흔히 “내 얘기를 글로 쓰면 소설로 몇 권이 나온다”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74)씨의 음악 인생이 바로 그랬다. 국내 어떤 음악에서 아코디언 연주가 나올 때, 그 음반의 속지를 보면 거기에는 대부분 심성락이란 이름이 적혀있을 것이다. ‘대부분’이란 말을 ‘열에 여덟아홉’으로 바꾼대도 큰 무리는 없다. 최희준, 나훈아부터 신승훈, 장윤정까지, 심씨는 당대 최고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 ‘독보적인’ 아코디언 연주자다.

 

그는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귀국해 부산에서 자랐다. 경남고 재학 시절 부산의 한 악기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코디언을 만난 게 첫 시작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풍금을 혼자서 쳤거든요. 아코디언도 처음에는 주인 몰래 연주해보고 그러면서 혼자 배웠죠. 남들보다 귀가 예민했던 편이에요.”

 

그 뒤 논산 제2훈련소 군 예대 악장과 각 방송국 악단의 멤버를 거쳐 스튜디오 세션맨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코디언과 전자 오르간 경음악 연주곡 앨범을 발표하고, 수많은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아코디언은 심성락’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 사고로 한 마디를 잃은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난청이라는 장애도 그 공식을 깨지는 못했다.

 

“악보에 ‘필’(Feel)이 적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당시 나온 가요하고 재즈를 거의 다 들었는데 그 음악들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필’을 내니까 그게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노래하듯이 연주를 하니까 그게 새로웠던 거죠. 그러다 보니 녹음할 일 있으면 나만 부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독보적인 존재였던 만큼 정치권에서도 찾았다. 서울 궁정동과 삼청동 총리공관을 오가면서 오르간 사용법을 가르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 연주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노태우 정부 때까지 청와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악사로 활동했다.


“난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딱 내 할 일만 하고 왔어요. 그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음악 장관 할 것도 아니고 연주에만 신경 쓰는 거죠. 거기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그때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인 줄 몰랐어요. 그냥 일본 재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총리였고, 헨리 키신저도 뒤에야 알았어요.”(웃음)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던 심씨는 최근 음악 인생 50년 만에 공식 데뷔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했다. <봄날은 간다>, <달콤한 인생> 같은 영화·드라마 삽입곡들과 함께 새 창작곡들을 함께 수록했다. 심씨의 표현대로 ‘하이클래스’한 곡들이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비장하게 연주되고 있다.

 

세계적인 아코디언 연주자 리샤르 갈리아노도 참여해 2곡을 함께 연주해주었다. 서로가 가장 자신 있는 곡으로 피아소야의 ‘리베르탱고’와 이봉조의 ‘꽃밭에서’를 골라 같이 연주했다. “리샤르 갈리아노 그 양반 때문에 난 아코디언 하고 싶은 생각이 다 사라졌어”라고 겸손을 보였지만, 두 대가는 그 곡들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담아 일합을 겨룬다.

 

앞으로의 계획도 여러 가지가 잡혀 있다. 그의 염원인 훌륭한 ‘가요 연주 앨범’을 젊은 기획자들과 준비하고 있고, 앨범과 더불어 공개하려고 했던 다큐멘터리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일흔네 살의 노객에게 여전히 음악적인 꿈이 있는지를 묻자 “이제 다 죽을 나이에 그런 게 어디 있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곤 바로 말을 덧붙였다. “병원에서 죽고 싶진 않아요. 내 바람은 녹음실에서, 또는 무대에서 연주하다가 쓰러져서 나도 모르게 가는 거예요.”

 

김학선 객원기자 studiocarrot@naver.com

 

꽃밭에서 ~ 심성락 & Richard Galliano                       Libertango ~ 심성락 & Richard Gall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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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바람 같았던 50년 음악인생, 50년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수놓다 ~ 자료제공: 라임라이트

악기가 없어 몸을 악기 삼아 상상으로 연주하던 소년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1936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귀국해 부산에서 자란 그는 경남고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위해 들어간 부산의 한 악기상에서 아코디언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제대로 건반악기 한번 배워본 적이 없었고, 초등학교 때 선생님 몰래 연주하던 풍금이 연주 경험의 전부였지만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 악기가 없어 몸을 악기삼아 상상으로 연주하던 소년은 엄청난 양의 가요, 클래식, 재즈 LP들을 외울 때까지 듣고 또 들으며 음악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나갔고, 우연히 방송국 노래자랑의 세션으로 대선배들을 제치고 뽑히게 되면서 그의 바람같은 음악인생이 시작되었다. 그 뒤 논산 제2훈련소 군 예대 악장과 부산 KBS, MBC, TBC 등 각 방송국 경음악단의 멤버를 거쳐 1965년 장충동 스튜디오 멤버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대통령의 악사, 그리고 최고의 가수와 함께 하던 그의 전성기

 

흔히들 말하는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황금기인 6,70년대,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여러 유명 가수들의 악단이나 세션 참여를 비롯, 당시로선 생소한 우리가요 올겐 연주곡집, 경음악 연주곡집 등을 발매하여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녹음한 인연으로 노태우 정부때까지 대통령의 악사로 지냈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라 할 수 있는 남진, 나훈아, 최백호, 심수봉에서부터 조덕배, 신승훈, 김건모, 장윤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논함에 있어 반드시 거론되어지는 뮤지션들의 뒤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들이 붙여준 별명은 '노래하는 아코디언'

 


손가락, 한쪽 귀... 연주자로서의 장애를 안고 보낸 50년의 연주 인생

 

잘려진 한쪽 새끼 손가락과 들리지 않는 한쪽 귀.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는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해 낸다. "나는 내 연주가 내가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벨로우즈(아코디언의 주름진 공기주머니)에 바람을 담아서 내가 부르는 노래... 악보에 '필'(Feel)이 적혀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 음악들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필'을 내니까 그게 사람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노래하듯이 연주를 하니까 그게 새로웠던 거죠. 그러다 보니 녹음할 일 있으면 나만 부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바람 같았던 그의 50년 연주 인생에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Album | 50년만의 데뷔 앨범 심성락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연주자 심성락' 이 주인공이 된 이번 앨범은 그의 50년 인생을 담아낸 진정한 '데뷔앨범'인 것이다. 그의 드라마틱한 음악 인생에 감동을 받은 많은 후배들이 흔쾌히 앨범제작에 참여 하였고 드디어 앨범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음악감독 '조성우' '황상준' '박기헌' 한국인 최초로 미국 에미상의 작곡가로 노미네이트 되었던 '신명수' 광고음악계에서 뚜렷한 작품들을 남겨온 오디오 프로듀서 '강재덕' 이 심성락 앨범 제작의 키메이커로서 참여한 핵심 멤버들이다.

 

평소 단골 세션으로 참여해오던 심성락과 인연이 되어, 그의 솔로 앨범을 위해 자발적으로 동참한 이들은, 노래하듯 유려한 심성락의 아코디언 선율을 토대로, 심성락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음악적 감성의 최대치를 뽑아내기 위해, 심성락의 음원들을 모두 추려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모니터링 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들은 앨범의 내용물로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또한 이미 세계적인 아코디언 연주자로서 그 명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리샤드 갈리아노'는, 재작년 내한 공연 시 심성락의 연주를 듣고 일면식도 없는 그와의 협연을 즉석에서 요청한 계기로 이번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Track List]

1. My Mother Mermaid (영화 인어공주 中)
2. La Dolce Vita (드라마 달콤한 인생 中)
3. Elegy For Us
4. Libertango (Feat. Richard Galliano)
5. One Fine Spring Day (영화 봄날은 간다 中)
6. 자전거(영화 효자동 이발사 中)
7. 꽃밭에서 (Feat. Richard Galliano)
8. Love Affair
9. 매화가 흐드러진 날
10. 바람이 운다
11. 나는 순수한가
12. 재회

 

 

Interview | 심성락 선생이 들려주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어떤 계기로 앨범을 작업하게 되셨는지요?
 

2005년 여름에 이번에 제작을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앨범을 한 장 만들고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자고. 나 같은 노인네 앨범 만들어서 뭐 할라고 그러냐고... 괜한 일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결국 앨범이 나왔네요. 허허허

  지난 50년 동안 세션을 해오셨습니다. 50년 만에 데뷔 앨범을 내신 감회는 어떠신지요?
   

한 평생 올겐과 아코디언으로 살아온 인생이고 굳이 따지자면 앨범은 6,70년대에도 우리가요를 연주한 올겐 연주곡집, 경음악 연주곡집을 많이 냈었고 그것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번 앨범을 '50년 만의 데뷔앨범'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전통가요의 레퍼토리가 아닌 연주자 '심성락'이 중심이 된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인기 있는 가요가 주인공이 아닌 내가 주인공인 앨범이니까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앨범 타이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 스스로 내 인생은 바람 같은 인생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일제시대와 전쟁, 근대화의 과정과 민주화의 과정까지 내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도 그렇고 내 개인사도 참 파란만장 했거든. 그러니 살아온 인생도 바람 같았지요. 그리고 아코디언 이란 악기가 바람을 담아야 소리가 나는 악기니까...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바람의 노래' 아닙니까? 앨범 타이틀은 굉장히 자연스런 대화 끝에 만들어진 타이틀입니다.

  앨범을 만들면서 어떤 점이 가장 기쁘시던 가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니 그게 제일 기뻤지요. 앨범을 만드는 과정도 그랬지만 사진도 앨범 디자인도 다들 무료로 참여 해 준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어요. 그게 제일 고맙구요. 그리고 '리샤드 갈리아노'라는 세계적인 주자와 같이 연주할 수 있었던 것도 영광스러웠고... 내 나이 일흔 넷에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도 뭉클하고 그래요.

  그렇다면 앨범을 만들면서 다소 아쉬웠던 점도 있었는지요?
   

50년의 음악 생활 중에 40년은 가요를 연주해온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뽕짝'이라고 부르는 우리가요들을 오랫동안 연주해 온 거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화음악들을 간간히 했지만 우리 가요에 대한 애정과 내가 연주하는 가요의 필(Feel)에 대해선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앨범은 지난 인생에 관한 느낌들을 표현하느라 주로 클래시컬한 곡들이 많이 수록 되었는데, 언젠가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가요를 연주한 곡들도 앨범에 많이 넣고 싶어요. 사실, 우리 가요의 느낌을 살린 곡들이 이번 앨범에는 많이 없어서 좀 아쉬웠거든.

 
  '대통령의 악사'라는 특이한 경력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 박대통령 시절에는 이봉조씨가 청와대 행사에 악단을 데리고 가서 주로 하셨었어요. 어느 날 김종필 총리가 올겐을 좀 배우고 싶다고 이봉조 씨에게 사람을 좀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이봉조씨가 저를 김종필 총리에게 소개시켜 주셔서 김총리에게 올겐을 잠깐 가르쳐 드렸던 적이 있었어요. 그 인연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애창곡을 녹음하게 되고... 청와대 행사에 올겐 연주자로 불려간거죠. 총리 부인께서 악단을 좀 시끄러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 번 간 이후로 쭉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박대통령 시절에 시작해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 했고 김영삼 정부 초기에 그 집들이 다 없어졌으니까 꽤 오랜 시간 대통령의 악사를 했네요. 노래방 시절이 없었을 때라서 가능했던가 봅니다. 허허허

  그 당시 재미있던 에피소드들은 없었나요?
   

박대통령은 굉장히 서민적인 분이셨고 전두환 대통령은 굉장히 에너지가 많았고, 노태우 대통령은 노래를 잘 못하셨다는 정도. 허허허 이건 국가 기밀 아닌가?? 제가 참여했던 행사에 외국 귀빈들도 많이 오셨었는데 한 번은 미국에서 어떤 분이 오셨고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하신다고 해서 반주를 해드렸던 적이 있어요. 한참 세월이 흘러 나중에 그분이 누구인가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키신저 장관' 이더라구. 그런 일들이 많았지. 일본에서 기업하시는 분들인 줄 알았던 사람이 일본 수상이기도 했고... 그 땐 누가 누군지 몰랐을 때니까...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으시다면?
   

이번에 앨범을 만든 회사에선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하고, 다음 앨범도 열심히 해보자는데... 솔직히 이게 내 유작이 될지 아닐지 누가 알겠어요? 콘서트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하자는데... 저는 여기까지도 감사한 일입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아코디언이 점점 더 무거워 지는데... 언제까지 연주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죽는 날까지 무대에서, 녹음실에서 연주하다 죽고 싶습니다.

   

 

Photo | 사진으로 만나는 심성락의 '50년 음악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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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대한민국 대중음악사를 수놓다.

 

74세의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의 50년만의 데뷔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여기 74세 노구의 연주자가 한 사람  있다.


그의 이름은 심성락. 1936년 일본 교토 출생.


해방 이후 귀국하여 고등학생 시절 부산 악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인연이 되어, 아코디언을 손에 잡은 후 독학으로 아코디언 마에스트로로 성장한 연주자. 그는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새끼 손가락의 한 마디가 없다. 게다가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연주하기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과는 거리가 먼, 아니, ‘연주자로 대성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신체적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TBC, 부산MBC, 부산 중앙방송 등의 프로그램에서 전문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전면에 등장한다.

한 번도 정식으로 아코디언 교육을 받아본 적 이 없었기에 정통파와는 거리가 먼 그의 연주 스타일은, 남진, 나훈아, 심수봉, 송대관, 신승훈, 김건모, 이승철 등 국내 대중음악계의 대가들로부터 ‘노래하는 아코디언’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생활 50여 년 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무대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남을 빛나게 해주는 존재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왔고, 그 자신 역시 본인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바람. 그래, 내 인생은 마치 바람 같았어. 바람 같은 인생의 바람 같은 앨범 하나 만들고 싶었던 게 사실이야.”

심성락의 50년 만의 데뷔 앨범.‘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타이틀은 이렇게 만들어 졌다.

 

50년 음악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빛을 더해준 아코디언 세션으로 성장하기까지, 심성락은 대통령의 악사로, 수많은 가수들의 앨범과 드라마, 영화음악의 세션으로 지난 반세기를 아코디언과 함께했다. 후배들은 그의 드라마틱한 음악 인생에 감동을 받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흔쾌히 앨범제작에 참여 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그리고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음악감독 ‘조성우’, 영화음악계의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음악감독 ‘황상준’과 ‘박기헌’. 한국인 최초로 미국 에미상의 작곡가로 노미네이트 되었던 신명수, 광고음악계에서 뚜렷한 작품들을 남겨온 오디오 프로듀서 강재덕 ……이들이 바로 심성락 앨범 제작의 키메이커로서 참여한 핵심 멤버들이다.

 

평소 단골 세션으로 참여해오던 심성락과 인연이 되어, 그의 솔로 앨범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동참해준 이들은, 노래하듯 유려한 심성락의 아코디언 선율을 토대로, 심성락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음악적 감성의 최대치를 뽑아내기 위해, 심성락의 음원들을 모두 추려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모니터링하는 열정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들은 앨범의 내용물로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이미 세계적인 아코디언 연주자로서 그 명성을 확고히 하고 있는 ‘리샤드 갈리아노’는, 재작년 내한 공연 시 심성락의 연주를 듣고 일면식도 없는 그와의 협연을 즉석에서 요청한 계기로 이번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미 앨범 발매 전에 SK그룹의 광고 BGM으로 사용되어 대중의 귀에 익은 ‘My Mother Mermaid’는 어째서 그가 ‘노래하는 아코디언’이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내는 핵심 트랙.

 

이외에도 풀 오케스트레이션 스트링을 통해 웅장함을 넘어서 모던한 고전미를 발산하고 있는  ‘La Dolce Vita’, ‘Elegy for us’ 그리고 ‘리샤드 갈리아노’와 ‘심성락’ 두 거장의 협연이 빛을 발하는 ‘Libertango’와 ‘꽃밭에서’ 는 이미 일흔 살을 넘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노구의 연주자의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내는 앨범의 필청 트랙들이다.

 

진정한 의미의 트리뷰트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엇보다도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앨범 제작의 핵심 멤버들이 모두 재능 나눔의 의미로 제작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앨범 제작의 핵심 멤버들이 무보수를 선언 하였고, 당대 최고의 사진작가 안성진, 멋진 손 글씨와 디자인을 담당해 준 디자이너 김혜진, 마스터링 엔지니어 채승균 등 각자의 분야에서 가히 ‘최고’라 인정받고 있는 예술가들도 기꺼이 앨범제작의 선의에 무보수로 동참 해 주었다. 이렇듯 심성락의 이번 앨범은 노  선배에게 바치는 후배 아티스트들의 헌사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인 것이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이 연주자 ‘심성락’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본 앨범의 제작에 동참했기에 본 앨범은 가히 ‘진정한 의미의 트리뷰트 앨범’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선의는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고 앨범 발매 이후에도 최백호, 작곡가 김형석등 쟁쟁한 후배 아티스트들이 노 선배의 프로젝트에 참여의사를 전해오고 있다.

 

@Release 2009.10.15 / 본문출처 : www.triangle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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