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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영화 이야기

추억의 한국영화 - 오마이뉴스 연재

by Wood-Stock 2009. 9. 22.

[1]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 영화 한편 봤다고 어깨 으쓱했던 때가 있었네

송유미 (kaliope50) 기자 / 2009.09.17

 

 

 

흘러간 영화는 우리에게 추억을 돌려준다
 
얼마전 모 단체에서 흘러간 영화 포스터 전시회가 있었다. 빛바랜 영화 포스터를 구경하면서, 그 영화 포스터 속에 배우는 물론 그 영화를 본 함께 사람들의 얼굴 떠올라 무척 흐뭇한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영화는 금방 개봉된 영화도 좋지만, 흘러간 영화를 보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을 여행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만 아니라 대개 영화팬들은 흘러간 옛날 영화를 감상을 좋아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 한 편의 흘러간 영화 속에는, 남에게 털어놓기 아까운 추억이 한마리 나비처럼 숨어  있다 하겠다.
 
요즘에도 그렇지만, 영화는 흘러가도 그 영화의 O.S.T는 남아, 흘러간 그 영화에 대한 그리움을 더해 주곤한다. 그래서일까. 영화보다 영화 속의 O.S.T 가 더 유명한 영화들은 많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O.S.T <전우야 잘 가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 1950년 말 가수 '현인'이 불렀다. 이 노래는 서정성과 비장미가 절묘한, 우리 전쟁가요의 백미라고 부를 수 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 한편 봤다고 어깨가 으쓱 했던 때가 그립네
 
6. 25 종전 10년 이후(1963년도),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O.S.T로 부활한 <전우야 잘 가라>는 꼬마 소녀들의 고무줄 놀이에서도 불릴 정도의 국민가요가 됐다. <전우야 잘가라>는 그 당시 국방부 연예중대에 근무중이던 유호씨가 작사하고, 같은 중대의 박시춘씨가 작곡했다.
 
이 노래는 만들어지자, 전국으로 펴져나가 군인, 학생들, 일반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애창곡이 되었다. 당시 동네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고무줄 뛰기할 때 부르는 동요로 널리 애창되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 뛰기를 한 것이다. 나풀나풀 두 갈래 머리에 나비 핀을 꽂은 소녀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학생 관람가'의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학생들이 없었을 정도로 인기 있었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이 영화의 O.S.T처럼 한국 전쟁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당시 특수촬영 기술이 없어서 실탄을 발사하였다는 일화로 더 유명하다.
 
고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 영화를 내가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같다. 요즘과 달리 지방과 서울에서 함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시골 영화관에서 한참 지난 영화가 금방 개봉된 영화처럼 상영되곤 했다. 
 
그런데 영화관이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았다. 난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영화관 앞에서 거의 보내시피 했다. 그런데 어느날 영화관 문지기 아저씨가 영화를 보고 싶어 기웃기웃거리는 나를 영화관으로 넣어주었던 영화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다. 그래서 일까. 정말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요즘이야 볼거리가 너무 많지만, 그때 영화는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큰 볼거리이었다. 텔레비전도 잘 보급되지 않던 시절이라서, 영화 한편 보는 것은 큰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영화비를 아끼기 위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누가 영화를 보고 오면 그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겨운 풍경들이 많았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영화는, 제3회 대종상영화제 감독상ㆍ녹음상ㆍ신인상ㆍ촬영상, 제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ㆍ특별상, 제7회 부일영화상 촬영상 등을 받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우리나라 6. 25전쟁의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한 분대장(장동휘 분)과 분대원들은 인민군과 시가전을 감행하여 일전일퇴를 거듭하다가, 중대에 합류한다. 이들은 저마다 개성을 지닌 분대원이다. 
 
 
우리가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와 하심(下心)을 일러 주는... 한국의 대표적 명화
 
이들에게 출동명령이 나고 최전방 배속된 대원들은 참호에서 적을 노리고 있지만 중공군은 포위망을 좁혀오고, 인해전술로 돌격하는 중공군을 맞아 분대원들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천지를 사수한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에서의 승리 끝에, 안형민(최무룡 분), 그리고 분대장(장동휘 분)만 살아서 중대로 후송되고, 모두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된다.
 
이 영화를 만든 이만희 감독은 83년 <7인의 여포로>로 북한을 찬양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이 되기도 한다. 이만희 감독의 작품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진하던 국군 해병대의 한 분대가 처한 극한 상황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누가 널 죽였니? 누가 널 죽였어 누가 내 동생을 죽였느냐 말이야. 왜 왜 죽었니? 왜 네가 죽어야 하니? 누가 무엇 때문에 철없는 너를 죽었니?-'영화대사' 중에서
 
코미디언 구봉서와 김운하, 장동휘, 최무룡 등 청룡상 특별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말레이시아, 대만, 미국까지 수출된 작품이다. 당시 영화계에 꽤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그것은 시대를 떠나서 항상 관객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영화가 아닐까.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O.S. T <전우야 잘 가라>와 함께, 이 영화와 노래는, 우리나라 6. 25 전쟁의 상잔의 비극과 아까운 목숨들의 숱한 희생에 대한, 애국심을 교훈적으로 함축해 놓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인 풍요 등에 대해, 하심(下心)을 가르쳐주는 영화다. 일부 우리나라 전쟁영화는 너무나 교훈적이라는 폄하하지만, 아직도 남과 북 대치 상황인 우리 현실을 상기한다면, 이 전쟁 영화야말로 시간을 초월한, 한국의 대표적 명화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전우야 잘 가라>박시춘 작곡, 유호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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