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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Tour - China

중국 윈난성 기행

by Wood-Stock 2009.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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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여행기 ①] 잃어버린 낙원 '샹그리라'를 가다. ~ '착한' 중국 기행…"우리는 '공정족'이다" 

기사입력 2009-09-03 오전 10:39:04

 

"5차 '공정족'들, 공정 여행 끝낸 후 일상 정리 잘하고 곧 자리 마련해 얼굴 봐도 좋겠어요 ㅋㅋ"

스스로를 '공정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공정여행'을 마치고 보낸 단체 문자 내용이다. 이들은 '공정한' 소비를 하는, 혹은 하려는 사람들이다. 커피, 차, 초콜릿, 빵, 그리고 옷, 운동화, 모자, 장갑. 사소한 물품들이지만 생산자에게 충분한 돈을 지불하려는 사람들이다. 왜 그런 식으로 살까? 이유는 꽤 많다. 믿을만한 품질을 소비하고, 남을 착취하지 않는 소비를 하며, 윤리적 만족감을 위한 소비를 위한 것, 그리고 기타 등등.

그 공정족들이 여행을 떠났다. 국제민주연대가 진행하는 공정여행 프로그램 다섯 번째다. 아직은 낯선 이름, 공정여행. 국내 대기업 여행사에서 간혹 '공정여행'이라는 이름의 패키지를 쏟아내지만 '반나절 봉사활동' 정도가 껴 있는 일반 패키지 투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공정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은 주로 시민단체 쪽을 알아 볼 일이다.

▲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이 티벳 스님들이 '너희 모두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땅에 찧는다. 라싸로 향하는 긴 몸부림. 샹그리라에서 더친으로 가는 도중 만난 오체투지 스님들, 그 가운데 어린 승려. 이를 지켜본 '공정족' 일행들이 눈물을 흘렸을 만큼 경건하고, 또 경건했다. ⓒ프레시안

'윈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한 국제민주연대 간사 김경 씨는 '공정하게 살기'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돈을 소비하면서 산다. 또 어느 한 부분에서는 생산을 한다. 우리의 생활이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라면 착한 소비를 하는 건 결국 내가 착한 상태에서 생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고, 세상 전체를 착한 환경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국제민주연대는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이 공정한 경영을 하는지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단체가 공정여행을 기획한 취지에 대해 그는 "한국이 세계와 만나는 일 중에 여행이라는 부분이 상당히 크고 여행 산업 역시 외국을 상대로 한 산업으로써 규모가 상당하다. 기업을 감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정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인들의 여행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경험을 주고, 한국 여행 기업들의 폐해 등을 교정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여행은 친환경, 착한 소비…동물 학대는 금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정한 여행인가? 감이 잡히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은 여행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해보자. 다음 사례는 꽤 익숙하다. 성매매 관광, 골프 여행 가서 캐디 착취하기, 야생동물로 만든 기념품 사기, 11년간 조련된 코끼리 타기, 동물쇼 구경하기, 원주민의 '야만성'을 부각시키는 해괴한 문화 체험 관광, 곰 쓸개, 뱀 즙, 사슴피 찾아 떠나는 보신 여행, 패가망신성 카지노 도박 여행…. 굳이 이런 목적으로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실제로 패키지 여행 과정에서는 이 같은 '불공정'한 상품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공정여행은 이 모든 종류의 여행에 대한 반대말이다.

▲ 샹그리라의 밤거리 ⓒ프레시안
 
국제민주연대에 따르면 네팔, 캄보디아 등의 국가는 현지 호텔들의 70% 이상이 외국회사 및 외국의 자본이라고 한다. 먹을거리도 마찬가지다. 여행사는 현지 음식보다는, 이를테면 해당 국가에 진출한 한국 국적 사람이 운영하는 요식업체를 선호한다. 가내수공업이나 소규모 생산 공장에서 탄생한 기념품이 당신의 쇼핑백에 들어갈 즈음 각종 유통마진으로 가격에 날개가 돋아난다. 애초 사람들은 물건을 그렇게 비싸게 만들지 않는다.

정당한 고용보다는 값싼 노동력 착취로 여행자에게 안락함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12년 동안 몽둥이로 조련해 50년을 부려먹는다는 '코끼리 트래킹'이 대형 여행사가 내건 '공정 여행' 상품에 끼어 있는 것을 보면 '공정여행에 대한 개념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여행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행하는 환경 파괴도 만만치 않다. 비행기, 자동차, 그리고 배가 사용하는 화석연료는 어떤가.

공정여행은 이 같은 문제들을 뒤집는다. 화석 연료가 뿜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버스 여행을 선호한다. 호텔보다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문다. 음식은 현지 식당에서 현지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을 즐길 수 있다. 원가 불명의 물건이 진열된 쇼핑몰에서 보이차 한 덩이를 사는 것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차창에 들러 한껏 시음한 후 마음에 드는 맛을 찾아낼 수 있다. 지불하는 돈도 딱히 부담스럽지 않다.

▲호랑이가 건널 수 있는 협곡이라는 이름의 호도협(虎跳峽), 상류와 하류의 낙차가 무려 170m로 물살이 거세다. 길게 누워있는 폭포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프레시안
 
감이 잡힌다면 따라나서 보자. 공정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즈음에는 자유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공정함'을 실천할 수 있을지, 그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번 공정여행 프로그램은 향후 '공정족'이 돼 떠날 당신의 '공정여행 매뉴얼', 혹은 '현장 실습'이다.

중국 윈난성 공정여행 '차마고도를 따라서'

▲ 윈난성 ⓒ국제민주연대
지난 8월 15일부터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8박 9일 동안 참여하며 많은 것을 지나왔고, 또 목격했다.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감동도 있었고, 억지 감동을 쥐어짜는 중국 정부의 손길 덕에 불편한 적도 많았다. '구름의 남쪽', 윈난(雲南)성은 '한족의 나라' 속에서 소수 민족들의 자치주가 모인 곳이다. 윈난 지역에만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 15부족이고, 자치주를 꾸릴 정도의 소수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모서인'(독특한 모계 사회 전통을 가진 중국 소수 민족) 등 소규모, 다수의 부족들이 공존한다.

이 지역의 가장 큰 민족은 리족(黎族)으로 인구는 400만 명에 달한다. 리족은 호전성이 강하다고 하는데, 원나라 건국 당시 쿠빌라이 칸을 애먹이기도 했지만, 마오쩌뚱(毛澤東)의 대장정 때는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당시 리족은 홍군이 진사(金沙)강(양쯔강 상류)을 건너는데 도움을 준 '혁명 공신'이었다. 따라서 윈난은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지역이다. 마오는 소수민족과 전략적 연대를 통해 든든한 아군을 얻었다. 지금은 곳곳에 세워진 '홍군' 동상이 '점령군'같아 보여 눈살을 찌뿌리게 하지만 과거에는 이들이 소수 민족들에게는 희망이었으리라. 이 외에 장족, 바이족(白族), 나시족(納西族) 등이 각각 더친(德欽), 따리(大理), 리장(麗江)시 등지에 자치주를 이루고 모여살고 있다.

▲ 리장 고성 ⓒ프레시안

베이징에서 윈난성 성도인 쿤밍까지 3시간 반 정도. 여행의 줄발지 쿤밍에서 따리시까지 버스로 4시간 정도 달렸다. 은제품이 유명하다는 이곳 따리는 무협지에 간간히 등장하는 '대리국'의 옛 성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대리국은 937년 바이족 출신 단사평(段思平)이 윈난 지역 최초 독립국가인 남조(南詔)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로 당시 송나라도 어찌할 수 없는 '강소국'이었다.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대리국은 특유의 문화를 발전시켜 온다. '대리석'이 바로 대리, 즉 따리 지역을 주산지로 하는 돌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대리맥주'다. 한국에서도 이미 유명해진 청도맥주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대리맥주를 선호한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명심하라. 식당에는 미지근한 맥주 뿐이니 차라리 당신이 묵을 객잔(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맥주를 차갑게 해 주세요'라고 특별하게 부탁해 둘 것을.

대리고성은 지금도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다. 구시가지에 나가면 하얀 집들이 인상적인데, 배낭여행객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그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에 도무지 다음 목적지를 찾을 생각이 안난다고 했다. 3~4일씩은 꼭 눌러 앉게 된단다. 그만큼 매력적인 도시임라는 말일 게다.

대리에 머무는 중 이번 여행을 기획한 여행 작가 최정규 씨가 "저희가 뚫어놓은 차창으로 안내하죠"라고 말한다. 윈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보이차(푸얼차, 普洱茶)다. 윈난 남부 푸얼 지방에서 나는 이 독특한 차가 따리, 리장, 샹그리라, 더친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꿰는 '차마고도'를 닦은 주인공이다. 차창에서 우리 일행은 각종 보이차를 시음하며 '윈난 가면 보이차 꼭 사와'라고 부탁하던 한국 지인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았다.



▲따리 고성 ⓒ프레시안

아름다운 '리장 고성'…중국의 공격적인 '관광 마케팅'

대리를 지나 밤에 도착한 리장은 눈이 뒤집힐 만한 '별천지' 같았다. '리장 고성'이라는 숙연한 이름과 달리 홍등이 켜진 선술집에서는 댄스 음악이 흘러나왔고, 젊은이들은 술병을 들고 거침없이 스테이지에 올라 몸을 흔들었다. 좁지만 운치있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발을 재게 놀렸다. 이 때문에 지나친 상업화 문제도 안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고성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북적북적한 분위기의 리장 고성이나 따리 고성 주변에는 조용하고 전통 가옥이 몰려 있는 곳도 꽤 된다. 리장 근처에 있는 13세기 나시족 왕국 수도였던 백사마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다만 여기도 여행자의 '때'가 타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 리장 고성의 밤거리. 12시가 넘으면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 한산해진다. ⓒ프레시안

'나시족 전통 가옥'을 본떴다는 리장의 '객잔'은 꽤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객잔 2층에 올라가면 창 밖으로 리장 고성의 야경을 볼 수 있다. 중세 나시족 왕국의 중심. 심신을 객잔에 두고 이름 모를 지역에서 온 윈난의 차 상인들과 서로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교환하며 술잔을 기울여도 좋을 분위기다. 이처럼 붉은 조명이 빼곡한 기와를 간간히 비춰 신비함을 자아내는 밤 풍경과 달리 이른 아침 한 눈에 담은 리장 고성은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리장고성은 1986년 중국 정부가 역사문화도시로 지정했지만 연간 5000명이 채 안 되는 관광객이 다녀갈 뿐인 이른바 '숨겨진 여행지'였다. 그러다가 성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통째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사연이 재밌다. 1996년 2월 진도 7.0의 강진이 리장을 뒤흔들었다. 당시 리장 신시가지는 폐허가 됐지만 수백 년은 족히 묵은 고성의 옛 건물들은 지각의 뒤틀림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도시의 옛 설계자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 정부는 뒤늦게 관심을 가졌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은 연간 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관광 마케팅'의 일환이다.

▲샹그릴라 근교 우붕(雨崩)의 13 초르덴(불탑), 티벳 불교의 성지, 동티벳의 최고봉 매리설산 등 13개의 신성한 설산을 상징한 것이다. 티벳어로 쓰여진 티벳 불교 경전을 매달아 놓은 '서낭줄'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프레시안

샹그리라를 떠나며…진짜 낙원은 어디에 있을까?

리장을 떠나 샹그리라를 거쳐 더친으로 향했다. 샹그리라, 디칭(迪慶) 티벳족 자치주로 본래 이름은 중덴(中甸). 윈난 지역에 한번도 가 본적 없는 제임스 힐튼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자신의 소설에 티벳 지역을 배경으로 지상낙원을 등장시켰는데 그 이름이 '샹그리라'다. 목격하지 않은 목격자의 말만 믿고 수많은 학자들이 '샹그리라'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1997년 샹그리라가 디칭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중국 정부는 2001년 재빠르게 중덴을 '샹그리라'로 개명했다. 역시 공격적 '관광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중국이 잃어버린 '낙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샹그리라에서 만난 장족 여인 ⓒ프레시안

잔뜩 기대하며 거닐었던 작은 도심은 생각과는 꽤 달랐다. 배낭족들이 몰려들며 생겼을 법한 '기와 올린 웨스턴 바'가 자주 눈에 띤다. 낙원, '유토피아'라는 말은 라틴어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이곳은 따라서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다. 예전에는 유토피아였을지 모를 일이지만.

샹그리라를 나섰다. 더친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티벳 성도 라싸(拉薩)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무리들을 봤다. 오체투지하는 티벳 스님들이다.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이 티벳 스님들이 '너희 모두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땅에 찧는다. 그랬다. 드디어, 하늘의 샹그리라가 지상에 당도했다. 우린 '중덴'을 빠져나왔던 것이었고, 샹그리라는 오체투지 행렬을 이룬 스님들 사이 사이에 성기게 배어 있었다.


▲ 따리 고성, 그리고 백족 여인 ⓒ프레시안

▲ 보이차 시음회 ⓒ프레시안

▲ 따리 고성의 중국군 부대 ⓒ프레시안

▲ 리장 고성 ⓒ프레시안

▲ 리장 고성, 나시족 여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사방가(四方街)에서 춤을 춘다. 윈난정부가 이들에게 소정의 돈을 지불한다고 한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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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윈난성 기행 ②] 소금마을, 그리고 티벳 ~ 빠덴, 티벳에 관한 아주 짧은 기억 

기사입력 2009-09-04 오후 5:21:01

 

"아직 확인중이라고요? 우린 이미 입경 수속을 마쳤고 공안국, 여유국, 그리고 군사지역 입경 허가서까지 발급받은 게 확실하다니까요?"

지루한 줄다리기 같았지만 제법 긴장감이 돌았다. 티벳 입경을 위해 공안들과 승강이를 벌였다. "당신네들 믿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상부에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중국 공안의 말만 듣고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티벳 들어가기가 꽤나 까다롭다. 우리로 치면 경찰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의 재가를 동시에 받아내야 하는 꼴이다. 더친에서 2시간 여를 달려왔다. 이곳은 해발 약 2600미터, 간간히 어린 친구들이 고산병 증세에 시달린다.

▲윈난 소금마을 '자다 마을'의 소금밭 ⓒ프레시안

티벳 입경은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단체 여행일 경우는 더 그렇다. 5차 공정족 33명은 분명히 여행사를 통해 입경 허가를 받았다. 여행사도 '문제 없다'는 식이다. 여러 가지 편법으로 개별 여행이 가능하다지만 지금은 엄중한 상황, 게다가 편법을 썼다가 잘못 걸리면 추방당한다고 했다. 단체 여행객의 경우는 정해진 루트, 정해진 가이드, 정해진 시간 동안의 여행만 가능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주로 서양들이 티벳에 들어가서 간간히 '티벳 독립 반대 시위'를 조직한다고 했다. 그런 '기획 입경'을 배제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팀의 '공정여행'을 디자인한 곳이 '국제민주연대'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단체 아닌가. 중국 공안들이 그 이름을 확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경 허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을 보니 괜히 불안해진다.

입경 허가서가 확인이 된 모양이다. 통역을 기꺼이 담당해 준 재중교포 김광범 씨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배시시 웃어보였다. "못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워낙 이 친구들이 까다로와야지..." '허가'와 함께 몇 가지 주의 사항도 얻어왔다. 첫째, 보이는 민가라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내부 사진을 찍지 말 것. 현지인들과 정치적 대화를 나누지 말 것. 체류 일정은 당일 하루. 솔직한 말로 여행자 대부분은 정치적 대화는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는 중국어 실력자들이다. 이 모든 것이 '분쟁 지역에 들어왔구나' 하는 실감을 안겨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티벳 경계 지역, '소금 우물'이 있는 곳, 엔징(鹽井)과 '자다 마을'까지 우리를 안내해 줄 짱족 청년들이 중국어로 뭐라고 떠든다. 알아들을 수 없다.

▲ 티벳 공안 입경 사무소 앞에서 ⓒ프레시안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 입을 연 김광범 씨의 한국어가 반갑게 들렸다. "10월 1일이 중국 건국절입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세운 날로부터 딱 60년이 되지요. 제가 중국에서 석재 수출업을 하는데 광산에서 폭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제 사업도 큰일입니다.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른바 '조폭' 단속에 나섰어요. 작년에 대규모 티벳 소요 참사, 그리고 올 들어 발생한 신장(新疆) 우루무치(烏魯木齊) 지역의 참사가 재현될까 중국 정부가 노심초사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허가 다 받아놓고 티벳에 못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네요."

올 들어 중국 정부는 바짝 긴장했다. 지난 3월에는 티베트 민중 봉기 50주년, 6월에는 톈안먼(天安門) 참사 20주년이고, 7월에는 파룬궁을 불법화한 지 꼭 10년 째를 맞았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굵직한 '반체제 인사들'의 기념일을 별 탈 없이 차례로 통과한 터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중국 정부는 반체제 활동가, 인권단체에 대한 감시망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6521프로젝트'라는 것을 진행 중이다.

▲ 붉은 소금 '홍염' ⓒ프레시안

소금마을 아이들에게 학용품 전달하기

이런 저런 생각과 걱정이 교차하는 사이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윈난성을 벗어나, 드디어 티벳 땅에 들어섰다. 곳곳에 티벳어와 중국어가 함께 쓰인 간판이 눈에 띤다. 탁한 란찬강(瀾滄江, 메콩강 상류)이 흐르는 골자기 깊숙한 곳에 '소금 우물'이 있다. 옌징(鹽井), 일명 '흰소금 마을'이다. 그 왼쪽에는 붉은 빛을 띤 산 아래에는 '자다 마을', 일명 '홍염 (紅鹽) 마을'이 있다. 지도에서 눈대중으로 본 이 마을은 윈난과 티벳의 경계선에 거의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구불구불 길을 따라 무려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다.

고스란히 비포장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지만 압도적인 주변 광경 덕에 지루함은 덜하다. 삼각 김밥처럼 비쭉비쭉 서 있는 커다란 산 사이 란창강이 조용히 흐른다. 산은 붉었다. 저 아래, 물은 흐리다. 멀리 보이는 산과 산, 그리고 산, 그 중턱에는 말이 겨우 지나갈만한 길이 물결 무늬처럼 길쭉하게 늘어서 있다.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저 길. 차와 소금을 실은 마방이 지나다니던 차마고도(茶馬古道)다.

▲ 자다 마을의 회관에 걸려 있는 중국 지도자 사진들 ⓒ프레시안

'홍염 마을'이라는 자다 마을의 별칭은 이 지역 흙이 붉은 빛을 띤다고 해서 그렇단다. 자다 마을은 티벳족의 일종인 장족(藏族) 사람들이 살고, 옌징 마을에는 나시족(納西族) 사람들이 산다고 했다. 1000년 전에는 이들 사이에 소금을 두고 전쟁까지 벌어졌다니, 과연 산간 벽두인 이 곳 티벳과 윈난성에서 소금이 얼마나 귀했는지 보여주는 사료 같다. 육지 소금은 과거 이 곳이 바다였음을 보여준다. 확실하진 않지만 가장 인정받는 학설이란다.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바닷물이 흙에 그대로 섞여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 '우물'에서는 '소금'이 난다.

'한 번에 한 대씩' 건널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재래식 나무 다리를 건너 자다 마을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소학교(초등학교) 분교에 들러 '공정족'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한국에서 사온 학용품을 건네줬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학교로 구태여 불러들인 '비호감' 손님이 됐을까? 외려 아이들에게는 우리같은 외지인이 신기해 보일만도 할 것 같다. 오밀조밀하게 꾸려놓은 소금밭에서 티벳 나시족 아낙네들과 소금을 그러모으며 '육지 소금'도 조금 맛 봤다. 칸칸으로 나눠진 소금밭은 마을사람마다 저마다의 소유지가 있다고 했다.

작근 마을회관에 들러 짱족식 전통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이 마을엔 영수증 따위를 끊어주는 식당이 없다. 외부인이 오면 회관을 내주며 식사를 대접한다. 물론 그에 상응한 '식대'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손님을 맞는 밝은 표정의 짱족 여인의 얼굴들, 긴장감이 훌훌 풀리기 시작하는 찰라, 식당 벽에 마오쩌뚱, 덩샤오핑, 장쩌민 등 중국 지도자들의 얼굴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중국인입니다'라고 강변하는 중국 정부의 웅변처럼 보였다. 티벳 불교를 믿는 이들에게 달라이 라마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

▲ 샹그리라 근교 쑹찬린 사원 ⓒ프레시안

"난 티벳인이고, 티벳의 독립을 바란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들렀던 한 사원에서 달라이 라마 사진을 보긴 했었다. 리장에서 이곳 티벳 홍염마을까지 안내를 맡아준 '빠덴'이라는 이름의 짱족 가이드와 함께 샹그리라 근처의 쑹찬린 사원(松贊林寺)에서 봤던 달라이 라마, 그의 사진에 대한 기억. 빠덴은 당시 "티벳 사원에는 보통 달라이 라마 사진을 둘 수 없지만 이 곳 쑹찬린 사원에는 걸려 있어. 특이한 현상이야"라고 설명했다. 티벳 본토가 아니어서 이 정도 사진 쯤은 예외로 눈 감아줄 수 있다는 뜻인가? '팍스 차이나'의 강온 전술의 일환인가?

설명을 마친 빠덴은 달라이 라마 사진 앞에서 경건하게 절을 했다. 작은 돈을 그 앞에 '시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빠덴이 사진 앞에 둔 돈에는 마오쩌뚱 사진이 담겨 있고, 모든 중국 지폐에는 마오쩌뚱이 들어가 있다. 마오쩌뚱이 달라이 라마에게 인사할까? '이 돈을 독립 자금으로 사용하시오'라고. 물론 독립자금은 아니겠지만, 이 돈은 쑹찬린 사원에 모셔진 달라이 라마와 달라이 라마를 우러르는 스님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공안에게 '까닥'을 걸어주는 티벳 승려. '까닥'은 순수한 믿음, 정(情)의 상징이고 이를 목에 걸어주는 것은 '당신의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다. ⓒ프레시안

사원을 나왔더니 큼지막한 사진 하나가 눈에 띠었다. 티벳 승려가 공안의 목에 흰 비단천, '까닥'을 걸어주는 장면이다. 티벳 불교 의식에서 사용되는 '까닥'은 순수한 믿음, 정(情)의 상징이고 이를 목에 걸어주는 것은 '당신의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라고 했다. 또 다시 오체투지를 하며 땅에 머리를 찧던 승려들이 생각났다. 티벳 승려는 '우리의 독립'을 바라지만 '공안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찧고 '까닥'을 목에 걸어준다. 그게 중국 공안의 목이라 해도 좋다. 촛불 집회 당시 전경의 방패에 꽃을 달아주던 시민들의 모습이 얼핏 설핏 생각났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찬란한 쑹찬린 사원을 뒤로 하고 샹그리라로 돌아왔다. 빠덴과 샹그리라의 한 객잔(客棧)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했던 말을 또 떠올렸다. 나와 동갑내기인 빠덴은 "난 쓰촨성에서 태어났어. 과거에 짱족은 티벳 뿐만 아니라 쓰촨성, 운남성 일대에 널리 퍼져 살았지, 내 부모는 지금 쓰촨성에 살고 있어. 그리고 난 여기 샹그리라에서 가이드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라고 말해줬다. 난 기습적으로 "넌 티벳의 독립을 바라니?"라고 물었고 빠덴은 배시시 웃으며 날 잠깐 쳐다보더니 "티벳이 독립을 하길 바래"라고 말했다. 그는 "난 중국인이 아니라 '티벳인'이거든"이라고 대꾸했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4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다던 그에게 "혹시 망명 정부에서 일을 했었나"라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영어 공부만 했어"라고 말했다. 영어를 배우려 했다면 왜 하필 다람살라에 갔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딱히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아 더 묻기를 그만 뒀다.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빠덴이 갑자기 물었다.

"밥 말리(Bob Marley) 노래 좋아해?"
"응, 사랑하지."
"이 노래 가사 알아? '세상의 일들에 대해 걱정마세요, 모든 것은 잘 될 거예요. 걱정말라고 노래를 불러봐요.' (밥 말리의 노래 'Three little birds' 가사 중에서)"
"하하, 잘 부르네, 아시아의 '짱족'이 '카리브해'의 밥 말리 노래를 부른다. 재미있군."
"그리고 이 노래도 있어. '일어나 어서, 너의 권리를 위해 일어나. 일어나 어서, 싸움을 포기하지 마." (밥 말리의 노래, 'Get Up, Stand Up' 가사 중에서)

역시 음악은, 아주 잠깐이지만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섞어준다. 화학적으로, 균질하게 해 준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옛 철학자가 '음악은 말과 말의 틈새를 메워준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린 같이 흥얼거렸고, 빠덴은 노래를 부르다 껄껄 웃으며 '버드와이저'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 안에 있던 선입견도 훌훌 풀려나갔다. '소수 민족'이라는 어감만큼 본질을 왜곡시키는 말도 없을 것이다. 빠덴은 자유분방한 청년이다. 세계 어느 거리에서나, 어느 대륙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청년.

▲ 소금마을의 공부하는 아이들 ⓒ프레시안

티벳에서 맞은 '잊지 못할' 생일 파티

소금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털털거리는 비포장 길을 꼬불꼬불 올라갔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이날 반나절동안 우리를 안내해준 가이드가 경영하는 짱족 식당에서 작은 '파티'가 벌어졌다. '야크 고기 바비큐'와 함께 식사를 하고 짱족 전통춤을 배웠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국 전통춤과 비슷한 몸짓으로 짱족 아낙네와 청년들이 춤을 췄는데, 우린 어설피 흉내내다 그만 두고는 곧 '막춤'을 췄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들과 마주보고 몸짓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흘렀다. 마침 이 날은 부산에서 올라온 15살 내기 '청소년 공정족' 박정현 군의 생일이었다. 정현군에게 해 줄 말을 손수건에 적어 목에 감아줬고, 짱족, 한국인 모두 입을 모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이 친구, 연신 '셰셰'를 외치느라 정신 없었다. 티벳에서 맞은 생일,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 쑹찬린 사원의 지붕 장식 ⓒ프레시안

▲쑹찬린 사원의 승려 ⓒ프레시안
▲짱족 자치주 더친(德欽) 현의 짱족 청년 ⓒ프레시안

▲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티벳 승려들이 '너희의 평화'를 위해 몸을 땅에 던진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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