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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진중권의 전쟁

by Wood-Stock 200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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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칼럼] 이것이 문화인가, 야만인가? ~ 유인촌의 문화부, 예술을 겁탈하다

기사입력 2009-06-08 오전 9:56:06

 

진중권 씨는 오직 1학기에 '현대 사상의 지평'만을 강의했고 2학기 강의는 하지도 않았음에도 연봉 4000만 원을 그대로 받은 것. 이에 한예종 측은 "진중권 씨가 UAT 통섭 과정 전반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예술과 놀이 랩'의 초기 워크숍에 미학적 검토에 대한 자문을 했기에 연봉이 높았다"고 해명했지만,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고 1학기에 강의 하나 하면서 연봉 4000만 원을 받은 전례가 있냐"는 질문에도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진중권 씨는 러시아 기호학 관련 석사학위가 최종 학력이므로, 대체 왜 이런 비전문가가 '현대 사상의 지평'을 강의했느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빅뉴스>, 2009년 3월 26일)

이론 없는 예술?

듣자 하니 인터넷 낭인들이 나의 객원교수 자격을 문제 삼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문화부에서도 나의 객원 자격은 문제 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학교에 가서 처분서를 열람해 보니, 그 부분까지도 슬쩍 시비를 걸어놓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를 통해 이번 문화부 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넷 낭인들이 창작한 허접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낭인들과 문화부 감사실의 입장은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왜 실기만 가르치지 이론 교육을 시키느냐?'

감사를 하면서 한예종의 설치령도 제대로 안 읽은 모양이다. 설치령 제2조 1항은 "예술실기 및 예술이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대학 과정에 상당하는 교육 과정"에 대해 언급한다. 또 교칙 제2조에서도 "예술실기와 이론을 교수하여 예술영재 및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것을 한예종의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변모가 부랴부랴 이런 변명을 내놓는다.

예술영재교육과 예술실기교육으로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데 예술이론이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한예종 설치령은 대통령령이므로 언제든지 개정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치령 2조를 개정하여 예술이론을 제외하는 게 합리적이다. (<빅뉴스>, 2009년 4월 16일)

한 마디로 열쇠가 구멍에 맞지 않으니, 이참에 집을 다시 짓자는 식이다.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데 예술이론이 무슨 도움이 되냐"는 무식한 소리를 어떻게 저렇게 버젓이 할 수 있을까? 허접한 미술사 책을 건성으로만 읽었어도, 중세의 장인이 근대의 예술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원근법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 게다.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을 르네상스 이전 중세의 기능공으로 되돌려놓는 데에서, 이들의 정신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볼 수 있다. 생각이 낡아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500년을 거슬러 르네상스 이전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이건 보수도 아니라, 그냥 망발이요, 주책이다.

미국의 줄리어드나 커티스 음대 등 세계적인 음악학교들의 경우 교과 과정에서 이론의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내가 공부를 했던 독일의 경우, 과거의 HdK(예술학교)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대거 UdK(예술대학)로 이름을 바꾸었다. 실기를 전공하든, 이론을 전공하든, 독일의 예술대학생들은 졸업하려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왜 전통적으로 실기에 치중했던 예술학교마저 점점 더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예술의 성격 자체가 그 동안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특히 모더니즘 이후 예술에서 이론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게다. 미학자 아도르노는 일찍이 예술과 철학의 상호보족성을 지적한 바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현대의 전설이 된 뒤샹의 작품 '샘'(1917)을 보자. 그 변기는 그냥 시장에서 사 온 건데, 거기에 많은 '실기'가 필요했을까? 미니멀리스트들의 상당수도 아이디어만 내고 작품의 제작은 그냥 철공소에 맡겼다. 개념예술은 아예 예술가의 머릿속의 관념만으로도 예술이 된다고 주장한다. 팝 아트는 어떤가? 20세기 후반의 아이콘 앤디 워홀의 경우, 자신은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직원들에게 시킨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작품이 완성되면 한 번 보기는 했다고 한다.)
 
  Marcel Duchamp (1887-1968)

더군다나 과학과 예술, 기술과 예술이 디지털 컨버전스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시대에, 어떻게 예술의 본질이 이론 없는 기능이라는 무식한 소리를 버젓이 늘어놓을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 다녀간 미디어 아티스트 크리스타 조머러와 로랑 미뇨노가 만드는 인터랙티브 작품만 떠올려 보라. 거기에는 복잡계이론과 인공생명이론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은가? 미래의 예술실천("미학적 컴퓨팅")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레오나르도>의 발행자 로저 F 말리나는 이렇게 분류한다.

1. 하나의 분과에서 얻어진 관념이나 개념을 다른 분과로 옮겨 놓는 것.
2.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개념을 보완해줄 과학자나 기술자와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
3.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 한 팀이 되어 작업하는 것.
4. 상이한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컨소시엄을 이루어 기술적 플랫폼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공동 출자하는 것.
5. 과학과 기술에서 잘 훈련된 예술가들이 그들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 것. (Roger F. Malina, A Forty-Year Perspective on Aesthetic Computing in the Leonard Journal in : Paul A. Fishwick (edit.) Aesthetic Coputing. MIT Press Cambridge 2006)


이런 시대에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데 예술이론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묻는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게 대한민국 사회에 사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정신적 피곤함이다. 논쟁도 웬만해야 하지, 저런 식으로 초절정 울트라 무식을 자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까? 무식함의 악덕을 용감함의 미덕으로 실천하는 인터넷 낭인들이 그 처참한 교양 수준으로 이렇게 마구 한국 예술의 미래를 농단하고, 그 요란한 장단에 맞춰 유인촌의 문화부가 함께 덩더쿵 선무당의 칼춤을 추는 것이 현재 이 나라 예술계의 상황이다. 이게 문화인가, 야만인가?

객원교수 채용이 규정 위반?

아마도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 인미협과 문화부의 입장인 것 같다. 그러니 2학기 강의를 안 했으니, 급료의 절반을 토해놓으라는 얘기를 했던 것이리라. "우리가 볼 때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채용하는 것이 한예종 학칙 상 맞다." 도대체 들은 한예종의 교칙조차 제대로 안 읽은 않은 모양이다. 한예종 학칙은 객원교수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학칙 제7조 객원교수의 임무는 다음 각호의 1과 같다.

1. 강의 및 실기 지도(실습 포함)
2. 특별강의 및 세미나
3. 학생실기 및 연구지도
4. 본교 전임교수와 공동연구
5. 본교가 지정하는 연구과제 수행.


한예종의 학칙은 이렇게 객원교수의 임무를 다섯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 하나만 만족시키면, 객원교수의 임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 그런데 그 다섯 가지 중에서 나는 1. 강의를 했고, 2. 특별강의 및 세미나를 했고, 4. 한예종 전임교수와 공동연구를 했으며, 5. 한예종이 지정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다섯 가지 중에서 네 가지 임무나 충족시켰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것일까?

도대체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학칙(?)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변희재 학사와 유인촌의 머리? 변 학사야 잘 몰라서 그랬다 치고, 문화부의 감사관들은 어떻게 자기들이 감사하는 기관의 학칙조차 안 읽어 보지 않고 감사를 하고, 심지어 처분까지 날릴 수 있었을까? 이 웃지 못 할 사태는, 변 학사가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에 억지로 감사 결과를 뜯어 맞추다 보니 발생한 희대의 해프닝으로 판단된다. 억지로 뜯어 맞추는 것은 좋은데, 그러려면 아무리 억지스러워도 논리 비슷한 것은 들이대야 하지 않았을까? 그 논리가 무엇이었을까?

제가 변호사와 여러 전문가들에게 상의해보니, 애초에 진중권 씨가 한예종 객원교수로 채용된 것 자체가 학칙 위반이라는 의견이 절대적입니다. (<빅뉴스>, 2009년 4월 11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혹시 저들이 저 학칙 7조를 오해한 게 아닐까? 거기에는 '각호의 1'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혹시 변 학사께서 '각호의 1'이라는 표현 속의 '1'을 넘버링으로 착각하여, 거기에 열거된 다섯 가지 항목 중에서 오직 "1. 강의 및 실기 지도"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 게 아닐까? 그래서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고, 강의를 안 했으니 급료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강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세상에, 이거야말로 포복절도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법령에서 '각호의 1'이라는 것은 넘버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네이버 지식 in'만 검색해 보자. 예를 들어, 경찰관 임용 결격사유에 관한 법령인 <경찰공무원법 제7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1.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
2.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3.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자
4.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자
5.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6. 징계에 의하여 파면 또는 해임의 처분을 받은 자


여기서 '각호의 1'이라는 것은 '이 여섯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되면'이라는 뜻이다. 반면 '각호에'라는 표현은 각호 전부를 가리킬 때에 사용된다. 가령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제2항>을 예로 들면,

② 계도문에는 법 제20조제2항 내지 제4항의 규정에 의한 신상 등의 공개대상자에 대한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성명(한글 및 한자로 표기하되, 외국인의 경우 한글과 알파벳 또는 한자로 표기한다)
2. 연령 및 생년월일
3. 직업(확정판결문에 기재된 것을 기준으로 한다)
4. 주소(확정판결문에 기재된 것을 기준으로 시 · 군 · 구까지만 포함한다)
5. 범죄사실의 요지


여기서는 '각호에'라고 하였으므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할 때에는 위의 다섯 가지 모두를 다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논리학의 용어와 기호를 빌어 말하면, '각호의 1'은 OR(∨), '각호에'는 AND(∧)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법률의 전문가를 자처하시는 변 학사께서 이것도 몰랐던 것일까? (사실 이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변 학사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문화부의 감사관들이다. 공무원인 그들이 법령집 용어가 갖는 이 상식적 의미를 몰랐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공무원 자격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콤비로 코미디를 하세요, 코미디를….

객원교수의 자격이 없다?

진중권 씨가 담당한 교과목은 '현대 사상의 지평'입니다. 실기전문가도 아니면서, 주로 프랑스 철학을 강의했다는 '현대 사상의 지평'을 위한 진중권 씨의 특수경력이 대체 뭡니까? 설사 독일 철학을 강의했다 해도, 박사 과정 수료 제도가 없는 독일의 특성 상, 진중권씨는 그냥 미학 관련 독일 유학 실패자일 뿐입니다. 대체 무슨 경력으로 현대사상을 강의합니까? 게시판에 잡글을 많이 썼다는 것 말고, 강의를 위한 특수경력이 하나라도 있나요? 아니면 본인이 자랑하는 TV 출연 많이 한 겁니까? (<빅뉴스>, 2009년 4월 11일)

그게 그렇게 궁금했다면, 기사로 싸지르기 전에 일단 나한테 물어볼 일이다. 내가 자기처럼 그 동안 인터넷에 놀기만 한 줄 아는가 보다. 어느 대학에서나 그러하듯이 한예종에서도 나를 채용할 때 근거로 삼은 것은 두 가지, 교직 활동과 저술 활동이다. 교원 채용 시에 이 두 가지 활동은 경력으로 환산되어 교수에 대한 처우의 수준을 결정하는 자료로 사용된다. 한예종 측에서 고용 시에 작성한 '객원교수 경력 환산 자료'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는 나의 교직 및 저술의 경력이 '전임교수 연구 실적물 심사 기준'에 따라 '몇 년 몇 월'이라는 수치로까지 환산되어 있다. 객원교수 임용의 근거는 이렇게 명확히 문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제 객원 임용의 근거가 된 두 가지 경력을 살펴보자.

먼저 교직 경력. 나는 몇 년 전부터 여러 대학에서 Art & Technology 관련 연구와 강의를 수행해 왔다. 먼저 2006년 이후 KAIST Culture Technology 대학원에서 대우교수 혹은 겸직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에는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같은 분야의 겸임교수를 지냈다. 중앙대에서는 2003년 이후 겸임교수로 독어독문과와 문화연구학과에서 미디어 예술, 미디어 미학, 미디어 철학을 강의해 왔다. 연대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성대의 신방과에서도 미디어 철학을 강의한 바 있고, 대학 밖의 아카데미와 온라인으로 미디어 미학과 예술에 관한 강의도 했다. 이 모든 경력의 증명은 채용 당시에 서류로 제출한 바 있다.

UAT 사업과의 관련에 관해 말하자면, 대단히 미안하지만, 인문학자 중에서 이 분야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하다. 내가 석사논문의 주제로 삼은 유리 로트만은 기호학과 정보이론을 예술론에 적용한 최초의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를 통해 정보미학과 생성미학의 창시자인 막스 벤제를 알게 되었고, 그와 관련한 리서치를 하던 중에 일본 최초의 컴퓨터 예술가인 카와노 히로시의 존재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컴퓨터 예술에 관한 카와노 히로시의 책을 번역한 것이 1992년, 그러니까 무려 17년 전의 일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는 PC가 XT에서 막 AT로 넘어가던 시절이었고, 컴퓨터가 아직 계산기나 타자기로나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이미 컴퓨터가 영상의 제작, 즉 예술의 창작에 사용될 가능성을 미리 짐작하고, 일본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카와노 히로시를 발견했고, 팔리지 않을 거라고 난색을 표명하는 출판사를 설득해 그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에 성공했다. 최근 컴퓨터가 영상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컴퓨터라는 계산기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발상을 처음으로 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타마 미대에서는 초기 컴퓨터 생성 예술에 대한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열었고, 이 전시회는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순회를 떠났다. 독일에서는 2007년에야 초기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연구서가 나왔고, 2008년에는 미국의 MIT에서도 비슷한 책이 나온다고 들었다.

한예종에서 나를 채용하는 데에 또 다른 근거가 된 것은 저술경력이었다. 그 동안 미학과 예술학 부분에서 내가 쓴 저서들에 관한 증명도 물론 채용 당시에 근거자료로 제출한 바 있다. 내가 그 동안 어떤 책을 써 왔고, 그 책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어땠을까?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 정리해 보았다.

<미학 오디세이>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 선정 (2004년) <KBS 책을 말하다>로 방영
- 동아일보 선정 '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 (2005년)
- 한국일보 선정 '우리 시대의 명저 50' (2007년)
- KAIST 독서마일리지 '추천도서 100권' (2007년)

<폭력과 상스러움>

- 제43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사회과학부문 (2002년)
- 국민일보 문화부 선정 올해의 책 (2002년)

<현대미학강의>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0월의 읽을 만한 책' 선정 (2003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올해의 10권의 책' (2005년)
-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 (2005년)

<서양미술사 I>

- 문화체육관광부 추천 도서 (2008년)

 

  

  

 

<서양미술사I>이 유인촌 장관 산하의 문화부에서 2008년의 '추천 도서'로 꼽힌 것이 매우 이채롭다. 미학과 예술학 분야에서 내가 쓴 책들은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재나 참고 문헌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놀이와 예술 상상력>도 2005년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로 꼽힌 바 있다. 도대체 미학을 전공해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내고, 그 저서가 대학에서 교재나 참고 문헌으로 널리 활용되고, 심지어 자신들도 두 번이나 추천한 예술이론서를 쓴 사람이 예술학교 객원교수의 자격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내 책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알아보자. 국립C대학교 영문과 O 교수는 내가 쓴 미학 서적 두 권에 대한 논문을 싣고, <이론과 이론기계-들뢰즈에서 진중권까지>라며 특별히 내 이름을 부제로 적어 넣기도 했다.

1부 이론에서 이론 -
기계로 들뢰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 유목주의와 자율주의의 비판적 검토
근대와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하기 - 가라타니 고진 읽기
세속의 지성과 망명자의 시선 -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유와 정치론을 중심으로
재현미학에서 존재미학으로 - 진중권의 미학서 두 권 읽기


매우 황송하게도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애드워드 사이드와 나란히 진중권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S대 독문과의 A 교수는 내가 쓴 두 권의 미학서에 자극을 받아 <숭고의 미학>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 책의 서문을 인용한다.

  
 
"진중권 선생으로부터 증정 받은 <앙겔루스노부스>와 <현대미학강의>에 풍부하고도 유려하게 서술되어 있는 '숭고의 미학'의 역사와 현재성을 호흡하듯 읽어 내려가며 초심의 열정이 점차로 되살아났다. 거기에 이미 상당 부분 정리된 글을, 손질해서 책으로 내놓지 않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협업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만날 때마다 격려와 질책을 술안주로 내놓는 진 선생의 덕담이 조금씩 마음을 움직였다." (10쪽)

서울대 미학과를 주축으로 하여 한국의 미학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미학대계>의 리뷰를 쓰는 일도 내게로 돌아왔다. 서울대출판부에서 내게 직접 연락해 200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이 책의 리뷰를 당부한 것도 아마 미학 분야에서 나의 업적에 대한 일정한 평가를 반영한 것일 게다. 그 리뷰는 <경향신문>에 실린 바 있다.

도저히 참기 힘든 것은, 인미협에서 주제넘게 나의 학술 활동에까지 시비를 걸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흘러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용감함의 근원은 무식함에 있는 듯하다. 그들이 그토록 시비를 걸었던 <컴퓨터 예술의 탄생>(2008)이라는 책을 보자.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서울 소재 S대학에서 HCI(Human-Computer Interface)를 연구하는 J교수가 이 책에 관해 언급한 글을 발견했다.

"우리 대학교 미디어학부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술과 예술의 융합에 관심이 많습니다. 언젠가 이런 주제로 책도 꼭 한번 써보고 싶네요. 기술적인 이야기가 중간 중간에 있어서 저는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HCI를 전공하는 교수가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하는 책이 연구 업적으로서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예술 전문가(?)는 도대체 누구신가, 혹시 변 학사? (인미협 기사에 인용되는 이른바 '전문가들'은 왜 거의 모두 익명으로 표기되어야만 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문화예술에 관해서는 백치나 다름없는 무식한 자들이 팔에 완장을 차고 손에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 나라의 문화예술을 제멋대로 농단한다. 이 웃지 못 할 코미디가 유인촌 문화부 1년이 이 사회에 만들어낸 초현실적 살풍경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예술은 문화부의 손에 이렇게 겁탈 당하고 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추부길, 변모, 유인촌의 환상콤비
문화부인가, 야만부인가?
진중권 (angelus) 기자
 

추부길의 아우어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추부길 대표가 올초 <아우어뉴스>라는 인터넷 매체를 창간했다. 역시 권력의 실세답게 그 자리에는 여당의원들이 대거 참석하고, 대통령이 축하화환까지 보냈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 추부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이 사이비좌파들의 좌충우돌 행태로 인해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둠의 나라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사이비 좌파들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 청소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2009/02/17)

 

이 말만 들어도 매체의 성격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우어뉴스>에서는 곧바로 좌파 청소에 나섰다. 진중권이 한예종의 공금을 유용/횡령했다는 것이다. 장문의 기사로도 모자랐던지, 기사와 별도로 물길코리아라는 단체의 성명서('진중권 쌈짓돈은 국가예산?')와 디지털미래연대라는 곳의 논평('진중권 관련 의혹' 철저히 수사해야!!!')까지 함께 실었다. 대체 뭐 하는 단체들인지 찾아봤더니, 세상에

 

"이들의 움직임 뒤에는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 청와대 1기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리뉴스 2008/12/11)

 

명백한 허위보도에 바로 추부길 대표에게 반박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이튿날이던가? 나를 잡아넣기도 전에 우리 목사님께서 먼저 구속이 되셨다(추부길 대표는 현직 목사다). 듣자 하니 박연차 회장한테 청탁의 대가로 검은 돈 2억 원을 받아 챙기셨단다. 변모를 비롯한 몇몇 잔챙이들만 남겨두고 추 목사님 혼자 구속되시는 바람에, 잔뜩 벼르다가 허탈해진 나는 사건을 우스개로 마무리해야 했다. "목사님, 면회 가서 사식 넣어 드릴게요."

 

검찰에서 그는 그 돈을 모두 "생활비"로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사님이 매일 룸살롱에 다니는 것도 아닐 텐데, 단 몇 달 만에 2억을 생활비에 썼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진보신당에 그렇게 썼는데, 아니나 다를까, 검찰수사 결과, 그 돈의 상당 부분이 <아우어뉴스>의 창간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아우어뉴스>는 태생 자체가 구린 돈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리게 탄생한 주제에 애먼 사람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진다. 이게 이 사회를 정화하겠다고 설치는 우익 청소부들의 몰골이다.

 

그래도 이건 용서가 되는데, 내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일이 또 있다. 검은 돈 2억이나 받으신 목사님께서, 세상에, 교회에 십일조는 500만원밖에 안 내셨다는 사실. 평소에 교회에 잘 안 나가는 나 같은 날라리 신자도, (물론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일이지만), 십일조만큼은 정확하게 낸다. 국세청의 눈보다 무서운 게 하나님의 눈 아닌가? 나중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서서 뭐라고 변명하시려고 목사님께서 십일조를 다 떼먹으시는지 모르겠다.

 

 

변모의 인미협

 

추부길이 챙긴 구린 돈으로 창간된 <아우어뉴스>의 진중권 공금 횡령 기사는 변모가 하는 온라인 <빅뉴스>와 오프라인 <미디어워치>라는 매체에 그대로 전재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추부길 목사와 변모 사이에 이른바 '업무제휴'라는 게 맺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아우어뉴스는 지난 18일 변희재씨가 지난달 창간한 보수 미디어비평지 '미디어워치'와 업무제휴를 맺는 등 영역을 확장해왔으나 (...)" (미디어오늘 2009/03/25)

 

'업무제휴'라는 게 그저 서로 기사를 주고받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추부길 대표와 아우어뉴스가 인미협의 기초 취재자료를 받아 보강하여 기사화했을 뿐이지요. 모든 기초 취재는 인미협 사무국에서 했다고도 알려드렸지요. (....) 몸통은 윗선, 아랫선 찾을 것도 없이 그냥 인미협 사무국입니다." (빅뉴스 2009/04/11)

 

이것이 저들이 말하는 '업무제휴'다. 기사를 분업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시스템이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인미협은 언론사가 아니다. 그저 우파매체들이 모여 만든 시민단체(?), 아니 우익 정치단체에 불과하다. 그런 정치단체의 사무국에서 '취재'를 하고, 정작 매체는 '보강'만 했단다. 이는 이들이 하는 일이 공익을 위한 정상적 언론활동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외려 정치기관에 소속된 선전매체, 선동매체의 당파적 활동에 가깝다.

 

그래도 명색이 '인터넷 미디어 협의회'라면, 인터넷 미디어들의 도덕성에나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정작 인터넷 미디어인 '아우어뉴스'의 검은 자금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왜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예술학교의 사업과 미래에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일까? <아우어뉴스>에 검은 돈이 흘러들어갔다면, 인미협의 다른 회원사에는 행여 그런 일이 없는지, 각 매체들 사이에 서로 교차 검증에 들어갔어야 하지 않을까? 가령 <빅뉴스>에서는 <뉴데일리>를 털고, <뉴데일리>에서 <올인코리아>를 털고...

 

 

유인촌의 문화부

 

추부길의 <아우어뉴스>와 변**의 <인미협>이 한 자락 자리를 깔아놓으면, 그 위에서 유인촌의 문화부가 큰 칼을 휘두르며 선무당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3월부터 우파 계열의 인터넷 언론들이 한예종 관련 기사를 집중 보도했다. (...) 이들 매체의 보도가 시작된 직후인 3월부터 문화부의 종합감사가 시작됐다. (...) 황지우 총장은 "정상적인 행정 판단에 의해 감사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한예종을 문제 삼는 '외부'의 주장을 국가권력이 대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 진행 과정에서 "직원들을 용의자 취급하고, 자료를 요청해 받는 게 아니라 사무실에 가서 자료 일체를 싹쓸이했으며, (우파 단체들이 문제 삼은) 통섭 교육, 협동 과정, 이론학과 등에 (감사가) 집중돼 있었다"고 황 총장은 밝혔다. (한겨레21 2009/05/21)

 

자기들이야 물론 아니라고 잡아떼고 싶겠지만, 감사를 받은 한예종 사람들의 증언이나, 직접 겪은 내 자신의 경험에 따르면, 문화부의 감사는 철저히 추부길과 인미협에서 보도라고 내놓은 기사들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다음 기회에 문화부의 감사처분과 인미협의 보도내용을 서로 비교하는 글을 올릴 생각이다.) 아무튼 한 나라의 문화부가 고작 인터넷을 떠도는 우익 낭인들과 발맞추어 움직인다는 것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프닝.

 

하긴, 아무한테나 반말 지껄이고, 국회에서 '씨, 씨'거리는 교양에 뭘 더 기대하겠는가? 추부길, 변모, 유인촌. 그 밥에 그 나물, 참 잘 어울리는 비빔밥이다.

2009.06.08 10:03 ⓒ 2009 OhmyNews

 

 

 

 

"진중권 그 사람만 감옥 가면 좋겠어요"
유인촌의 닌자들 - 변희재

 

 

추부길의 <아우어뉴스>에서 진중권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기사를 올리고, 변희재의 <빅뉴스>와 <미디어워치>에서

그 기사를 전재하기 일주일쯤 전. 그러니까 올 3월 12일에 한 대학생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글을 하나

올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그 학생이 변모로부터 들었다는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것으로 보아, 그 학생이 없는 얘기를 지어낸 것 같지는 않다.

 

"대학에서 사회적 명사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듣는 1학점짜리 수업이 있습니다.

뭐, 학점 부담도 없겠다, 이정재 같은 사람들 강연도 들을 수 있겠다 싶어서 들었지요.

근데 처음부터 나온 '명사'가 무려 변희재...쿠궁

나오시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386세대 비난, 비방으로 일관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진중권 그 사람만 감옥가면 참 좋겠어요, 일하기가 참 편하겠단 말입니다.

두고 봐요, 오늘 저녁에 그 인간이 S대 미학 동창들이랑

미술계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사가 뜨고 감옥 갈 거예요'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뭐,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진교수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사는 보지를 못했는데 말이죠.

변희재씨 진 교수에 대한 증오가 도를 넘어서서는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건가요?"

- http://www.joysf.com/3865015 2009.03.12 21:45:40

 

대학에 '특강'을 나가 이런 소리나 늘어놓는 자를 '사회적 명사'라고 추천한 주체는 대체 누굴까? 아무튼 이 글이 올라온 지

일주일 후, '인미협'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매체들에서 일제히 한예종의 비리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 보도에 발이라도

맞춘 듯 곧 한예종에 대한 문화부의 감사가 시작됐다. 인미협과 상관없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 하나, 이번 감사는 유례

없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저인망식 감사였다. 아무튼 문화부 감사와 더불어 인미협의 위협은 매우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이 드러난 순간, 보수우파시민사회에서는 황지우 총장, 심광현 교수,

진중권씨 등을 검찰에 고발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인미협 성명서 2009/03/26)

 

감사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이들은 머릿속으로 벌써 나를 "검찰에 고발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예종을 털고 또 털다 보면, 검찰에 고발할 정도의 비리는 찾아낼 수 있으리라 굳게 확신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장장 6주에

걸친 저인망 감사로도 나오는 게 별로 없자, 변모는 이제 문화부의 감사를 넘어 아예 검찰의 수사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BBK 때처럼 한예종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저희가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또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문광부 감사가 완료되면 저희가 바로 황지우 총장, 심광현 교수, 그리고 진중권씨 등에 대해서 검찰 고발을 검토

하겠습니다. (<빅뉴스> 2009/04/12)

 

여기서 국립예술학교는 졸지에 BBK와 같은 대형 비리의 온상이 되고, 거기서 가르치던 진중권은 졸지에 김경준 신세가

된다. 하지만 기다리던 감사결과는 그들에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러자 그 동안 자기들이 내게 퍼부어댔던 명예훼손과

인신공격의 법적 책임이 걱정됐나 보다. 부랴부랴 한예종을 방패막으로 삼는다. 내가 자기들을 고소하면, 한예종 전체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넌지시 시사한다.

 

BBK 사례에서 보듯 진중권이 검찰에 인미협을 고소하는 순간, 한예종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진중권이

절대 인미협을 고소하지 못할 것임에도, 검찰고소 운운하는 것은 3류 정치인들이나 하는 저질 협박에 불과하다

(<프리존뉴스> 2009/05/21)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화부의 감사가 끝났다. 예상했던 대로, 문화부의 감사관은 비공개로 해야 할 감사결과를 슬쩍 언론에 흘렸다. 하지만

그렇게 흘러나온 처분결과 속에도 이렇다 할 비리의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비리'가 안 나오면, 당연히 '부실'로 몰아

가야 한다. 하지만 '부실'로 검찰에 고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자 그는 이제 슬쩍 말을 바꾸기 시작한다.

 

솔직히 수차례 강조했지만, 진씨는 한예종 비리의 깃털이었기 때문에 조용히만 있었으면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

(<빅뉴스> 2009/06/07)

 

"솔직히"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이제야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런데 그 동안 매체들

총동원하여 그 난리를 쳤단 말인가? 이로써 감사 건은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그냥 물러설 그가 아니다. 그는 내게 다시

그 동안 "조용히" 있지 않은 죄를 묻는다. 이번엔 허위사실 유포라나?  

 

일단 윗선의 지시로 인미협이 나섰다는 부분, 추부길씨와 공모했다는 부분 등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 인미협이

먼저 진중권씨를 고소하겠다. 그리고 진중권씨가 한예종을 변명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100건이든 1000건이든

모조리 민형사상의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빅뉴스> 2009/05/25)

 

나의 퇴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에서는 살벌함과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나는 절대 진중권 등 권력형 386세대를 용서할 수 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켜

버릴 것이다. (<빅뉴스> 2009/05/31)

 

도대체 이 타오르는 증오의 근원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변모에게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개종을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전생에 그 친구에게 무슨 큰 죄를 지었던 모양이다. 저 타오르는 비이성적 증오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패러다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불교적 세계관밖에 없다.

 

인격살인, 여론재판, 특별감사, 수사의뢰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어떻게 인미협의 변모가 감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내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유인촌의 문화부가 예술적 이견을 해소하는 데에 사용하는 독특한 방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국회 문방위의 민주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 장관과 문화부가 "내쫓을 사람에 대해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을 진행하고, 특별감사를 통해 뒤를 캐서 먼지를 털고,

반항하면 소송이나 수사 의뢰를 해서 괴롭히는 방식"으로 예술가들의 인격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2009/06/08)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은 인미협이 하고, '특별감사'는 문화부가 하고, '소송이나 수사의뢰'는 인미협이나 문화부가

'협조'하고. 환상의 역할분담이요, 절세의 찰떡궁합이다. 이 깊고 넓은 공감대를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인미협의 변모가 뜬금없이 "검찰 수사" 운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BBK 사례에서 보듯 진중권이 검찰에 인미협을 고소하는 순간, 한예종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 BBK 때처럼 한예종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저희가 협조해드리겠습니다.

 

국가의 공공기관인 검찰조직을 자기 맘대로 갖다 쓸 수 있다는 이 드높은 자신감. 우익매체들의 그 보잘 것 없는

매체력에 비해, 이 권력의지는 너무 과도하지 않은가? 검찰마저 자신들의 시녀처럼 부릴 수 있다는 이 기고만장함은

대체 어디서 얻은 것일까?

 

지난 3월부터 인미협 소속의 우익매체들은 이른바 '진중권 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에 발맞추어 문화부는

감사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특정인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문화부가 한예종에 대한 감사를 시작할 무렵 일부 보수 인터넷 언론에 감사 내용의 일부를 흘려 한예종 교수들이 큰

비리를 저지른 집단인양 매도하며 황지우 총장, 심광현 교수, 진중권 객원교수 등 특정인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료를

요청했고 (...)  (<피디저널> 2009/06/09)

 

이는 내가 학교에서 들은 바와도 일치하고, 내가 직접 겪은 것과도 일치한다. 한예종에는 수백 명의 교수가 있는데,

그저 1년짜리 계약직을 맡은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자료를 요청했단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 나에 대한 문화부의 감사는 철저히 인미협의 보도에 따랐고, 감사처분결과 역시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

심지어 이 두 주체는 나의 객원자격에 시비를 거는 과정에서 한예종의 '객원교수채용규정'을 놓치는 실수까지 동일하게

범했다. 이 해프닝에 대해 변모는 이렇게 둘러댄다.

 

반면 학칙외 규정은 한예종에서 알아서 정하고 바꿀 수 있다. 인미협이 취재하면서 학칙외 규정에서 객원교수 규정을

별도로 인용하지 않았고,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이를 중시여기지 않은 이유이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정한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이다. (<독립신문> 2009/06/08)

 

누가 봐도 이는 사후정당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변모의 말대로 이게 사실이라면, 그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생각해 보라. 문화부에서 객원교수규정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인지하고도 무시했는지 자기가 어떻게 아는가?

또 문화부에서 객원교수채용규정을 중시하지 않은 이유를 자기가 어떻게 아는가? 저 문장을 읽어보면, 거의 '문화부와

인미협은 한 마음, 한 뜻이예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진중권 그 사람만 감옥가면 참 좋겠어요, 일하기가 참 편하겠단 말입니다.

두고 봐요, 오늘 저녁에 그 인간이 S대 미학 동창들이랑 미술계 비리를 저질렀다는 기사가 뜨고 감옥 갈 거예요'

 

자객을 쓸 요량이라면 정품을 쓸 일. 칠칠맞게 이런 말이나 흘리고 다니며 장관님 얼굴에 먹칠이나 하는 짝퉁 말고,

정연한 논리와 올곧은 윤리와 세련된 미감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닌자를 데려와라. 보수우익 바닥에는

요강에 눈 코 입 그려 머리라고 달고 다니는 사람들 말고는 인물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오죽 인물이 없으면, 고작 변모가

에이스 노릇 하겠는가. 

 

누가 그리스처럼 카잔스키를 장관 시켜달라 그랬나, 프랑스처럼 앙드레 말로를 장관시켜 달라 그랬나. 명색이 문화부

장관이라면, 교양까지는 몰라도 상식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용식이 말고, 일용이나 응삼이만 됐어도, 내가

이런 허접한 일로 글 쓰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른 곳을 털면서도, 자꾸 내 이름을 거론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년 전의 강연까지 열심히 뒤져대는 모양. 털어봐야 쓸 데 없을 것이다. 진중권은 민주당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지지자로, 문화판보다는 운동판에서 놀았으니까. 장관 하나 잘못 만나 고생들이 심한데,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킬 여지는 항상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나치 정권 하에도 쉰들러가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용돈이 필요하면, 차라리 내게 달라 그래라, 줄 테니까. "니들, 과자 사먹어." 

2009.06.09 23:33 ⓒ 2009 OhmyNews

 

 

"목욕 재계하고 소장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께 묻습니다
진중권 (angelus) 기자

모종의 법률 전문가

 

최근에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에서 '듣보잡'이라 불리는 변모가 대한민국 법무부의 정책위원씩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난히 남의 학력에 관심이 많은 그 자신의 최종학력은 미학과 학사. 그럼에도 이런저런 토론회에 나가 인터넷 관련 입법에 관여했으므로 자신을 법률전문가라 여긴 걸까? 나 역시 전여옥, 원희룡, 최문순 의원 등 의원들의 입법 토론회에 여러 차례 참여하였지만, 그런 것은 아예 경력으로 치지도 않는다. 저 알량한 경력으로 법무부의 정책위원 씩이나 할 수 있다는 참으로 재미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돌아가는 꼴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대한민국 법무부는 대체 무슨 근거로 변모를 정책위원에 임명했을까? 그가 법학 관련 학위를 취득한 적이 있던가? 아니면 법학에 관해 인정받는 연구를 남긴 적이 있나? 하다못해 무슨 의원실에 속해 입법보좌관으로라도 일한 공식경력이라도 갖고 있나? 그가 쓴 글을 보면, 마치 무슨 법률전문가나 되는 양 저 혼자 판사, 검사 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놓는 얘기는 대부분 폭소를 자아낼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법무부의 정책위원이란다. 얼마나 엽기적인가?

 

"소송이 유일한 취미"

 

 하지만 인간은 저 잘난 맛에 사는 법. 그가 자신을 법률전문가라 착각할 자유를 침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 법무부의 정책위원으로서 그가 가진 법 관념의 위험성이다. 우리는 흔히 "법은 최우선의 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윤리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윤리로 규제하되,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에만 최후로 법에 의뢰하는 게 시민사회의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 법무부 정책위원께서는 이런 상식으로부터 자유롭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의 독특한 성향과 관련이 있다. 가령 보통 사람들은 대개 법정에 가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변모는 과연 다르다. 재미있게도 그는 자신이 "법적 소송을 취미 및 레저 생활로 즐기는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저는 소장 하나 내지 못하고 입으로만 소송을 외치는 진중권 따위 아마튜어들과 달리, 포털 등 거대 권력들과 법적 소송에서도 이겨온 사람이며, 법적 소송을 저의 유일한 취미 및 레저 생활로 즐기는 사람이라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빅뉴스 2009/4/11)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맞는다면, 소송이야말로 변모의 인생 그 자체, 그것의 완성이자 목표가 되는 셈이다. 위의 언급은 그저 자신을 고소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 하는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소송에서 쾌락을 느낀다고 한다. 꽤 유명한 어느 기자의 블로그 글에서 인용한다.

 

변희재는 '소송 매니아'이기도 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주말에 집에서 목욕 재계한 후에 조용히 소장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고. 거친 토론을 거친 뒤 소송 난전까지 펼치는 그를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토론 밖의 토론에서 그는 강했다. (고재열의 독설닷컴 2009/05/18)

 

이 정도면, 에피쿠로스의 소송 버전, 쾌락주의의 사법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소송을 그저 사사로운 취미로 즐기는 것은 아니다.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이 소송의 취미와 레저에는 동시에 숭고한 대의가 있다. 그는 자신의 소송 취향을, 조국의 장래를 가로막는 386 앙시앙레짐에 대항하는 실크세대의 시민혁명으로 이해하는 모양이다.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그는 선언한다. 

 

지금은 서로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법의 기준에 따라 낡은 386 권력을 퇴출시키기 위한 실천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빅뉴스 2009/06/07)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어 희생당했던가? 아래 희생자들이 역사의 법정에서 지은 죽을죄는 고작 변모를 '듣보잡'이라 부른 것.

 

나는 이미 법률적 자문까지 다 마쳐놓았고, 다음 주 안에 진중권씨, 와이텐뉴스를 제작한 에이딕스 바이러스의 조경일 대표와 연예인 전유경씨, 그리고 이 동영상을 의도적으로 방치시킨 네이버에 민형사 조치를 취한다. (독립신문 2009/06/07)

 

위에서 말하는 '동영상'이란, 그 유명한 와이텐 뉴스의 '듣보잡' 영상을 가리킨다. 그의 칼날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수많은 민초들 역시 그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사이버 낭인이 아니라, 아예 인터넷의 이반 대제라고 해야 할까? 

 

이와 별도로, 빅뉴스, 미디어다음, 네이버 등에 마구잡이로 모욕적 게시글을 늘어놓은 네티즌 개개인에 대해서도 모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들의 숫자가 천명이든 만 명이든 관계없이 모두 조치를 취할 것이다. (빅뉴스 2009/06/05)

 

빈말이 아니다. 그는 "소장 하나 내지 못하고 입으로만 소송을 외치는 진중권 따위 아마튜어들과 달리, 포털 등 거대 권력들과 법적 소송에서도 이겨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막말 네티즌의 명예훼손 모욕성 게시글 18건에 대해서 6월 7일 12시 49분에 인터넷사이버수사대를 통해 종로경찰서에 신고하였다. (빅뉴스 2009/06/07)

 

그에게 소송은 사적인 취미나 레저이자, 역사의 진보를 위한 가열찬 실천투쟁이다. 하지만 그에게 소송이 갖는 의미가 이것으로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소송은 동시에 사업, 말하자면 영리를 획득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문) 18건 이외에 향후 더 많은 네티즌을 고소할 것인가?

- 포털뉴스의 댓글, 그리고 빅뉴스의 댓글까지 합치면 수천 건이 넘을 것이다. 특히 진중권 블로그의 네티즌들이 가장 악질적으로 명예훼손성 글을 퍼붓고 있다. 다만 대부분 임시차단조치 되어 다음 주에 글 원본을 받은 뒤 시작할 것이다. 이를 다하려면 혼자 할 수 없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야 할 것이다. 다음주 안에 채용사이트 등에 네티즌의 불법 글 하나 캡쳐해 오는데 2000원 정도 주는 아르바이트생들 채용공고를 낼 예정이다. 하여간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할 생각이다. (...) 솔직히 나 개인적으로는 사업적 관점에서 한 명 당 500만 원 정도 받고 취하해준다면, 걸려드는 네티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빅뉴스 2009/06/07)

 

이렇게 소송이 비즈니스가 되고, 고소가 영리활동이 되다 보면, 당연히 따르는 것이 고질적인 노사문제. 마침내 건당 2000원의 저임금에 시달리던 민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알바 희망'이라는 분이 그 기사 밑에 쪽글을 달았다.

 

아니 합의금을 500만원 받을 계획인데,

네티즌 1건당 2000원이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명백히 근로기준법 위반이 될 수 있으므로,

4대보험을 가입하여 주시고,

최저 임금제를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실크포럼' 만들어 2030 창업 지원하겠다더니, KTV 국정방송에 조선일보까지 끼고 고작 창출해낸 일자리가 건당 2000원짜리 알바 자리란 말인가?

 

그리하여 김경한 장관께 묻습니다

소송을 취미/레저, 정치투쟁, 사업모델로 이해하는 매우 독특한 법 이해를 가진 사람이 법무부 정책위원이라는 사실은 양식을 가진 국민을 경악시키고 남음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위원'이 되어 법무부의 정책에 영향을 끼친다니, 얼마나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일입니까?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법을, 최우선의 수단으로 삼아 비판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휘두르는 사람이 버젓이 법무부 정책위원이라니요. 이는 선량한 국민들이 보기에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변모 위원께서는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솔직히 사이버수사대를 통한 고소는 처음이라 절차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빠르게 수사가 진행되지는 못한다. 내가 현재 법무부 정책위원 활동을 하는데, 다음 회의 때, 사이버 수사를 신속처리할 수 있도록 건의안을 제출할 예정이기도 하다." (빅뉴스 2009/06/07)

 

이렇게 자신의 사적 감정을 곧바로 정책의 건의로 연결시키는 태도에서 우리는 놀라움과 섬뜩함을 느끼게 됩니다. 일단 법부터 휘둘러대는 무지막지한 무차별성이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내세우는 이른바 '법치'라는 것인지요?

 

법무부 장관께서는 먼저 변모가 어떤 자격과 경력으로 정책위원이 될 수 있었는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또 상식을 초월하는 폭력적 법 관념을 자랑하는 사람이 과연 법무부 정책위원으로서 자질이 있는 것인지도 함께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정말 의미없는 시간 낭비이지만, 그래도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할 일. 독자들은 약간 인내심을 갖 고 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이 문제를 일단락한 후, 본격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2009.06.11 17:55 ⓒ 2009 OhmyNews

 

 

 

뉴라이트의 예술 말살 책동 '한예종을 도살하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젊은 힘이 무대를 바꾸고 있다. 개교 14년 만에 클래식 음악, 무용, 연극, 뮤지컬 등을 망라하는 모든 무대를 장악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2006년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 2007년 스위스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세은, 2007년 뉴욕인터내셔널 발레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하은지,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김주원ㆍ김현웅, 유니버설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황혜민ㆍ엄재용의 공통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피아니스트 임동혁,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도 한예종 예비학교 출신이다.

 

최근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연극ㆍ뮤지컬계에서도 한예종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06년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를 만든 극작가 겸 연출가 장유진, 2006년도 최대의 화제작인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의 극작가 겸 연출가 김태웅, 배우 오만석이 이 학교 출신이다. 최근 대학로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한예종 출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충무아트홀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의 경우에는 아예 동문 3명이 극작ㆍ작곡ㆍ연출을 전부 맡았다. 무대 밖이긴 하지만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 작가 하준원,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의 스토리 작가 윤은경, 김은희도 활약 중인 동문이다." ('창조적 소수자, 우리는 한예종이다' 헤럴드경제 2007/08/09)

 

예술교육정책의 실패?

 

1998년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의 유수 콩쿠르, 각종 경연에서 1위를 수상한 학생의 수만 무려 473명. 거의 상을 휩쓸어온 셈이다. 놀랍지만 이것이 문화계 뉴라이트들이 '예술 전문가 양성이라는 본 기능을 상실했다'고 비판하는 학교에서 거둔 성적이다. 문화판 뉴라이트들의 억지는 그동안 한예종이 배출한 "전문예술가"들의 면면 앞에서는 무색해지고 만다.

 

리즈 피나오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 뉴욕 발레 콘테스트를 석권한 하은지, 국내 최초로 국제건축학교인증(RIBA)을 받은 건축과, 영국 <선>지의 세계 베스트 10 영화감독에 선정된 나홍진, 롱티보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신현수 등등.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한예종이 보수우익의 타깃이 된 것이다.

 

문화계 우익들은 한예종이 "무분별하게 이론과 교수를 채용하여 외부로 돌아다니면서 사실상 실기교육이 무력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감사 논란이 뜨겁던 지난달, 일간신문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황지우) 무용원 졸업생 및 재학생 14명이 '제39회 동아무용콩쿠르'를 휩쓸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은 이번 콩쿠르에서 일반부문 전체 수상자 23명 가운데 무려 61%에 달하는 14명이 입상함에 따라 국내 최고의 무용전문 교육기관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프라임경제 2009/05/17) 입상자의 60%가 한예종 학생. 이것이 "실기교육이 무력화되었다"는 학교에서 거둔 성과다.

 

개교할 때만 해도 장래조차 불투명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가 14년 만에 무섭게 성장했다. 이 모든 성과가 문화계 뉴라이트들의 눈에는 그저 "국내 예술교육정책의 실패"로 보일 뿐이다. 이게 성한 정신 갖고 할 수 있는 소리일까? 만약 한예종이 "국내 예술교육정책의 실패"라면 그것은 누구의 실패일까? 세계적인 예술학교 하나 갖기를 소망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실패일까? 아니면 한예종의 성과 앞에서 나날이 초라해지는 뉴라이트 교수들의 사적 실패일까? 어느 쪽인지는 교육의 소비자인 학생들이 더 잘 안다. 바로 엊그제(6월 13일) 보수매체인 <중앙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최근 예술분야 대학과정 중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학교가 있다. 지난해 입시에서 평균 경쟁률 12.4대 1로 높은 인기도를 보인 한국예술종합학교(총장 황지우·이하 한예종)가 그곳. ('한국예술종합학교 지원하려는데' 중앙일보 2009/06/13)

 

이렇게 "개교 14년 만에 클래식 음악, 무용, 연극, 뮤지컬 등을 망라하는 모든 무대를 장악"한 죄,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연극ㆍ뮤지컬계에서도 약진이 두드러진" 죄, 그리하여 "최근 예술분야 대학과정 중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죄. 예술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이런 죽을 죄(?)를 지은 대가로 보수우익의 도마 위에 올라온 것이다.

 

한예종 정상화?

 

왜 한예종을 죽이려는 걸까? 크게 두 가지 동기가 뒤얽혀 있다. 하나는 문화판의 뉴라이트들의 정치적, 이념적 동기. 그들은 한예종에 대한 공격을 무엇보다 문화계에 침투한 좌파를 척결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해한다. 한예종에는 수많은 교수들이 있고, 그들의 성향 역시 좌에서 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뉴라이트의 논리는 이렇게 흘러간다. '한예종은 좌파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그런데 좌파들은 주로 실기가 아닌 이론과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좌파를 척결하려면 먼저 이론과부터 폐지해야 한다.' 문화부에서 서사창작과 폐지에 집착하는 것 역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황지우씨가 돌아갈 곳을 아예 없애버리기 위한 기동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물질적 이해관계. 다른 예술대학의 일부 보수적 교수들은 한예종의 축소 내지 해체를 원한다. 동국대와 한양대 영화과와 중앙대 연극학과의 교수들이 주축이라고 한다 (한겨레 2009/06/05). 이들은 "애초에 음악원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예종이 갑작스럽게 무용원, 연극원, 영상원 등을 개설하며 7개 단과로 확장된" 것을 불편해 한다. 왜? 앞에 인용한 기사가 실마리가 될지 모르겠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젊은 힘이 무대를 바꾸고 있다. 개교 14년 만에 클래식 음악, 무용, 연극, 뮤지컬 등을 망라하는 모든 무대를 장악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 최근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던 연극ㆍ뮤지컬계에서도 한예종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문화계 좌파세력의 인적 청산'과 '종합학교로서 한예종의 해체'. '문화미래포럼'이나 '예술대학교수회'를 통해 이 두 가지는 MB 문화부의 정책적 목표가 되다시피 했다. 이번 일에 개입한 또 하나의 세력은 '인미협'이라는 단체. 문화예술과 별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이 괴단체의 개입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이들은 신경민, 김미화, 손석희 등 언론계 인사들을 주로 공격해 왔고, 미친개를 연상케 하는 그 사나운 물어뜯기로 '인터넷 서북청년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의 역할이 그저 특유의 막가파식 보도로 보수우익의 내밀한 욕망을 대리 발산해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 이들이 한예종의 디자인에까지 간섭하고 있다.   

 

문화미래포럼(대표 정진수)과 연계하여, 한예종 개혁의 안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문화체육관광부의 자체 감사 결과는 매우 미흡하다. 고로 문화미래포럼과 별도로 인미협 차원에서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여 대대적인 감사를 하도록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예종 설치령 개정안을 만들어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할 것이다. ('한예종, 부실운영의 몸통과 실체 드러나' 빅뉴스 2009/05/25)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추진하는 세력들의 뒤에는 물론 문화부가 있다. 이른바 '좌파척결'은 장관께서 취임하자마자 천명하신 MB 문화정책의 목표이고, '우파 정부에서는 우파가 총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차관께서 최근에 실토하신 MB 문화정책의 이상이 아니던가.

 

사실 문화부라는 권력이 아니었다면, 위에 언급한 단체들이 늘어놓는 주장은 그저 문화판의 '듣보잡' 논리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업으면 '듣보잡'도 무서워지고, '듣보잡'을 앞세우면 권력은 살벌해지는 법. 한마디로 '실력'이 없으니 '권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이 저열한 정치노름에서 영문도 모르는 채 졸지에 문화판 정치꾼들의 판돈 신세로 전락한 것이 바로 한예종이다.

 

"한예종을 해체하자"

 

문화판 뉴라이트들은 "한예종의 정상화"를 말한다. 이들의 눈에는 한예종의 학생들이 국내외의 콩쿠르를 휩쓰는 것이 비정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 게 어디 정상인가? 이 비정상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이들은 한예종에 시퍼런 칼을 들이댄다. 황금알을 낳는 이 거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문화미래포럼'을 주도하는 한 인사가 작년 9월 어느 심포지움에서 내놓은 '레시피'를 보자. 기가 막히다. 이런 것에 저들은 "구조조정 대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학시스템을 폐기한다는 의미에서 종합예술학교를 해체하고 각각의 학교로 독립시킨다. 그것이 몇 개가 남고 어떤 성격이 될 것인지는 다음의 단계를 밟아 필요한 학교만 남기는 방안이다:

 

1단계, 각 원에 있는 이론과 및 협동과정을 폐지한다.

2단계,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전공은 폐지한다.

단일하고 축소된 형태의 영재 조기교육학교로 남고, 대학에서 하지 못하는 전공만을 특별히 하는 학교로 전환한다.

 

1단계로 먼저 불필요한 깃털을 뽑고, 2단계로 오리랑 중복되는 기관은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오리가 갖지 못한 부위만 남기겠다는 얘기. 이 대원칙 아래 그들은 아주 구체적인 해체의 레시피를 마련해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레시피가 무슨 전문적인 논의나 학술적 연구의 결과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발제자는 한예종의 구체적인 구조조정안을 제시하며 "사계의 의견을 사적으로 들어보면…"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얘기를 졸지에 국가의 예술정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 그 수준이 오죽하겠는가?

 

먼저 영상원의 경우,  연출, 기획, 이론 등의 전공은 폐지하고 사립대학이 할 수 없는 기술교육만을 하고 영화인 재교육기관으로 내용을 전환할 수 있다. 이름도 영상원에서 '국립영화학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아시아 영화교육만을 전담하는 아시아영화학교로 운영하자는 의견도 있다.

 

미술원은 어떤가?

미술원도 영재교육의 취지에 맞지 않음. 폐지 내지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

 

연극원은 어떻게 될까?  

연극원은 이론, 극작과를 폐지하고 연기원으로만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 원도 현장 재교육기관으로 운영하자는 것. 동문극단의 폐지. CEO과정도 폐지.

 

전통예술원의 운명은?

연희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음악원(국악), 무용원(한국무용)과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음악원과 무용원은?

음악원과 무용원은 조기영재교육원으로만 운영한다는 의견.

 

한마디로, 세계 최고의 예술가를 배출하던 학교를 기술만 가르치는 기능공 양성소로 전락시키고, 대학(원) 수준의 교육을 하던 기관을 조기영재교육이나 고등학교 과정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것. 대체 이게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사적으로" 들어 본 이 넋 나간 소리는 이제 형식적 공청회를 거쳐 졸지에 문광부의 공식적인 구조조정안이 될 것이다.   

 

이처럼 각 원들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사계의 의견으로 정리되는 공청회 등이 개최되어 문광부가 예종을 구조조정하길 바란다.

 

누가 한예종의 미래를 말하는가

 

국립예술학교의 비전을 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현대적 수준에 부합하는 예술의 철학, 예술의 미래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황지우 총장은 2006년 취임을 하면서 한예종의 발전 방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것이 위에서 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지는 독자가 판단하기 바란다.

 

▶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황지우 총장은 2006년 취임하면서부터 이 같은 기치를 내세웠다. 앞으로도 주류가 되지 않고 실험정신을 간직한 비주류 집단으로 남겠다는 것이다. (...) 황지우 총장은 "이미 유럽과 미국의 예술학교는 단순히 아티스트를 길러내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 있다"며 "그들처럼 핵심 역량을 콘텐츠 생산과 예술 장르 간 융합에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한예종은 두 가지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음악원이나 무용원은 현재의 컨서바토리(예술학교) 형태로 남고 연극원 영상원 미술원 등 나머지 4개원은 인스티튜트(institute)로 가되 장르 간 융합교육을 강화해 상호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시됐던 학생 수출을 줄이고 역으로 해외 학생들을 수입하기 위해 AMA(Art Major Scholarship)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현재 한예종에는 22개국에서 온 60여명의 외국인 예술영재가 수학 중이다. (헤럴드경제 2007/08/09)

 

반면, 문화판 뉴라이트들을 보자. 그들이 내놓은 이른바 '개혁안'을 보라. 거기에 한예종의 비전이 있는가? 거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저 한예종의 암담한 미래와, 한예종을 없애겠다는 섬뜩한 살의뿐이다. 당연하다. 한예종의 미래를 논하는 저 자리에 정작 당사자, 즉 한예종의 교수와 학생들이 앉을 자리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럼 한예종 밖에 있는 사람들이 왜 주제넘게 남의 학교의 미래를 마구 농단하는 걸까? 문화미래포럼을 주도하는 정재형 교수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기존 예술대학은 이미 현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한예종은 기존 예술대학과 차별성이 없기 때문에 존립기반이 없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대학을 무력화해야 했을 것... ('영상원은 왜 사라졌는가' 씨네21 2009/05/26)

 

이는 국립학교인 한예종의 존재가 기존 사립예술대학의 존립위기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한예종을 해체시켜 "한예종과의 경쟁관계를 소멸시키려는 의도"(위의 기사)를 볼 수 있다. 참고로, <문화미래포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한다고 들었다. 어설픈 진화생물학까지 들여다가 경쟁이라는 시장원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칭찬해 온 이들이 고작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예술과 창작의 시장에서 경쟁관계를 소멸시키려 한다니, 얼마나 우스운 자가당착인가?

 

밖으로 나돌면서 남의 학교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제발 자기들 학생이나 잘 가르치는 일에나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사립대학 교수들은 한예종의 교수들보다 훨씬 많은 봉급을 받는 것으로 안다. 더 많은 봉급을 받는다면, 가르치기도 더 잘해야 할 일이다. 자기들이 더 잘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한예종으로 몰리는 일도 없지 않겠는가? 한예종이 괜히 성장한 게 아니다. 한예종의 성장은 교수들의 노력과 학생들의 열성, 거기에 학교 측의 전략이 하나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성과다. 기사를 보자.

 

낯설고 어려운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았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카데미 개념의 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더욱 헷갈렸다.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초대 총장인 이강숙 총장은 기존 대학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타 대학의 유명 교수와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최정상급 연주자들을 데려왔다. 교수들은 학교에 부임하면서 제자들을 설득해 입학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 위주의 국내 사회에서 '졸업해도 정식 학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창조적 소수, 우리는 한예종이다' 헤럴드경제 2007/08/09)

 

다른 학교의 교수라도 필요하면 과감하게 영입하고, 해외에 사는 연주자라도 최상급이면 모셔오는 것. 이것이 '이름이 잘 기억되지 않았고', '졸업해도 정식 학위를 받지 못한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한예종이 오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다. 한예종이 두려운가? 그럼 자신들도 똑같이 하면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타 대학의 유명 교수와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최정상급의 연주자들"이 자기 학교에 들어오면, 그러잖아도 알량한 그들의 처지가 뭐가 되겠는가. 황금알 앞의 낙동강 오리알?

 

코믹 호러

 

이제 마지막으로 한예종 개혁의 기수로 뉴라이트 쪽에서 내세운 유망주의 수준을 보자.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로, 굳이 분류하자면 '코믹호러'라는 새로운 혼합 장르에 해당한다. 얼마 전 <빅뉴스>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문화미래포럼은 (...) '21세기 문화를 위한 문화법 개정 방안 심포지엄'을 다시 한번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주제는 문화산업기본진흥법 개정방안, 문화예술진흥법의 개정 방안, 영화법 개정 방안, 국공립 예술단체 개혁방안, 한예종의 문제 및 개혁 방안 등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총망라하고 있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주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 결과 발표가 예상되는 시점에서의 한예종 개혁이다. 발제문은 본지 변희재 대표가 맡고, 문화예술 전문 교수 등이 토론에 나선다. ('부실집단 한예종 개혁의 깃발이 올랐다' 빅뉴스 2009/05/19)

 

한예종의 개혁에 관한 발제를 맡은 이가 무려 변희재. 정신병동의 사이코드라마가 아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현대시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미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독일어 원전으로 수업을 하는 황지우 총장이 한예종 교수의 자격이 없다며, 뉴라이트 측에서 대항마로 내세운 것이 자그마치 변희재.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과연 제정신인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하긴, 그 바닥에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이런 개그를 연출하겠는가? 변희재의 최종학력은 미학과 학사다. 그가 예술에 대해서 읽었다고 바깥으로 알려진 유일한 책이 있다. 뭘까?

 

그의 저서 <미학 오디세이>는 내가 처음 미학을 공부할 때 길라잡이 역할도 해주어 개인적으로도 진중권에 대한 관심은 항상 갖고 있었다. (브레이크뉴스 2002/02/28)

 

문화에 대한 식견은 어떤가? <스타비평>인가 뭔가, 그는 내가 그에게 받아서 깜빡 잊고 화장실 소변기 위에 올려놓고 나온 책의 저자일 뿐이다. 영화와 TV의 스타들에 관한 잡담을 늘어놓은 이 책은, 거론된 스타들의 이름이 무색하게도 참으로 안 팔렸다. 그중에서 그나마 인상에 남는 것은 젖소 부인 진도희에 관한 글 정도? 그런 그가 한 번 그 바닥에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긴 하다. 여기자들이 몸 팔아 취재를 한다는 왜곡보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가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 아무튼 그의 빼어난(?) 문화적 식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디워> 사태 때 그가 쓴 글들이다.

 

영화 '디워'의 국내외 총매출이 2월 7일 현재 9천만 달러를 넘어 1억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 만약 일본과 유럽의 개봉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디워'의 국내외 총매출은 2억불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총 3천만 불 투자에, 2억불의 매출, 해외배급사의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영화 최대 매출, 해외 흥행 최대 수익은 확정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디워'는 분명히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 다시 한 번 묻는다. 3천만불 투자하여 2억불의 총매출을 올릴 '디워'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하는가, 더 보강해서 지속해야 하는가. ('디워 매출 1억불, 구지식의 파산선고' 빅뉴스 2008/02/08)

 

굳이 대답할 가치가 있을까? 그의 이 남다른 문화적 식견(?)은 곧 현실의 반박을 받는다.

 

검찰은 '디워'가 투자금 300억여 원 가운데 130억여 원만을 벌어들여 170억여 원의 적자를 봤다고 밝혔다. ('안에서 벌어 밖에서 까먹은 영화 디워' 서울신문 2009/05/22)

 

'디워'의 흥행실패를 주장했다 해서 그는 애먼 사람에게 파산선고를 내렸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에게 '파산선고'를 내려야 마땅하다. 디워가 흥행에 참패했음을 검찰이 확인해준 마당에, 그가 아직도 자신을 퇴출시키지 않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주제에 같잖은 조언까지 했다는 사실.

 

진중권은 향후 미디어 아트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 글쎄, 최소한 미디어와 디지털에 대해서는 필자가 진중권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언을 해주고 싶다. 미디어 아트가 만약 시장 가치가 있다면, 산업 자본들이 개입할 텐데, 미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디지털 분야에서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투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심형래 감독에 대한 증오심을 풀고, <디워>가 미국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었는지 공부를 해보기 바란다. 앞으로 진중권이 하겠다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386이후 세대는 어렵다 고백한 진중권' 빅뉴스 2003/03/28)

 

"미디어와 디지털에 대해서는 필자가 (...) 훨씬 더 깊이 있는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대목에서는 그만 '너, 약 먹었니?'라고 묻고 싶어진다. 이게 뉴라이트 인사들이 한예종 개혁의 기수로 내세운 젊은 유망주의 상태. 이런 척박한 머리에서 한예종의 미래를 짜내는 것이 유인촌 시대의 대한민국 문화다. 그 주제에 소리 높여 외친다.

 

"부실 집단 한예종 개혁의 깃발이 올랐다."(빅뉴스 2009/05/19)

 

이것이 현재 한예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태의 시각적 응축이다. 우습다고 할 수도 없고, 무섭다고 할 수도 없는 이 코믹호러를, 우리는 앞으로 3년 더 현실로 살아야 한다.

2009.06.15 15:59 ⓒ 2009 OhmyNews

 

 

'MB분신' 유인촌 장관의 좌충우돌
저 달콤한 로망은 MB와 둘이서만 즐기면 딱 좋았을 걸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말을 유인촌 장관에게 돌려드릴 때가 됐다. 문화부의 말죽거리 잔혹사를 막으려면, 이전 정권이든, 지금 정권이든, 정치색을 가진 문화부 장관은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 다른 정권에서라면 벌써 낙마했을 게다. 하지만 능력이나 자질보다 충성심을 보는 각하의 철학 덕분에, 그는 "7월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단다. ('실세들은 문화부를 좋아해', 내일신문 2009/06/10)

 

다른 한편, 최근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는 쇄신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건의하기로 했단다. 쇄신안의 골자는 "총리를 포함한 개각 및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적 인적쇄신"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쇄신의 대상이 될까? 위원장 원희룡 의원은,

 

'인적 쇄신' 대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름은 거명하지 않았으나 "국회나 국민들을 무시하는 모욕적이고 불손하고 부적절한 언사들을 아주 그냥 자랑스럽게 쓰는 인사들"이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불손하고 부적절한 언사 상습범들 인적 쇄신해야' 프레시안 2009/07/03)

 

"구체적인 이름"은 거명하지 않아 쇄신대상은 국민퀴즈로 남는다. "특위 안팎에서는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이동관 대변인, 외교통상부 유명환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고 한다. 쇄신이 이루어진다면, 1순위는 누굴까? "국회나 국민들을 무시하는 (...) 부적절한 언사들을 자랑스럽게 쓰는 인사"라는 게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유인촌 장관의 주옥같은 어록  

 

그 동안 유인촌 장관은 주옥같은 언행으로 신문지면을 꽃처럼 수놓곤 했다. 작년 청와대에서 열린 올림픽 선수단 초청 만찬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문대성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께서 만들어 주신 거야." ('유인촌, 그 입의 가벼움이 결국' 미디어오늘 2008/10/07)

 

독재자 모시고 살아가는 제3세계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풍경이다. 아무한테 반말 지껄이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황당한 것은 IOC 위원 된 공적마저 기어이 각하께 돌리는 저 투철함. 이승만 시절인가?

 

국민들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문화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학부모를 향해 "세뇌 당하셨네요"라고 말하는 장면. 사실 문화부에서 '세뇌'라는 말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촛불정국에 문화부 홍보지원국 직원 12명의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육' 강의자료로 사용된 문건에는 이미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하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대중은 멍청, 인터넷 매체 몇 푼 쥐어주면 돼' 미디어오늘 2008/05/28)

 

어록의 압권은 역시 작년에 국회에서 퍼부었던 폭언. 자신을 'MB의 졸개'라 부르는 야당 의원의 발언에 유장관은 "성질이 뻗쳐서" 애먼 사진기자들을 향해 예의 반말을 지껄였다. "찍지 마! 찍지 마!" 그 뒤로는  들어주기 남세스런 상스러운 표현도 이어졌다. 황당하게도,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유장관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새 정부 문화정책의 모토로 내세운 바 있다. ('柳문화, 품격 있는 문화국가 만들겠다' 연합뉴스 2008/09/03) 

 

부족한 교양이 낳은 이 우발적 사건들이 동시에 MB 문화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가령 (1) "대통령께서 만들어주신 거야." MB 정권 아래서 문화부는 실제로 정권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능을 맡았던 3공 시절의 문화공보부로 전락했다. (2) "세뇌 당하신 거예요." MB 문화부는 실제로 3공 시절처럼 국민을 계몽과 홍보, 심지어 세뇌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3) "성질이 뻗쳐서." 국회에서,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장관이 드러낸 이 야성. 그가 지난 1년 반 동안 문화계에서 행해진 이념테러 역시 그 못지않게 거칠었다. 

 

문화부, 3공화국 문공부로 돌아가다

 

왜 문화부가 졸지에 문공부로 전락한 걸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제도적 원인. 국정홍보처를 문화부에 통합시켜버리다 보니, 문화부 장관이 꼴사납게 정권홍보를 주업무로 삼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이념적 원인. 3공 시절에 갇힌 MB의 상상력은 문화를 국정홍보의 수단 정도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셋째는 인격적 원인. MB는 유장관의 영웅이다. 의식적으로 MB를 닮으려 하니("오랫동안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내가 닮아간 것" 한겨레 2009/07/03) 문화부가  MB의 친위대처럼 될 수밖에.

 

3공 시절에나 보던 현상이 다시 나타나는 건 그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공화국 정부는 종종 유명가수를 정권의 홍보에 동원하곤 했다. 또 그 시절 가수들은 음반의 끝에 반드시 애국심을 고취하는 '건전가요'를 끼어 넣어야 했다. MB 정권의 복고 취향은 이 해괴한 관행을 오늘에 되살려낸다.

 

청와대는 전문가에 의뢰해 일명 '힘내라! 대한민국' 등의 랩송 등을 제작한 뒤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사랑 랩송은 경제위기 극복에도 적잖이 도움이 될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민적 단합이 절실한 상황에서 (...) 애국심 고양 및 국민통합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靑, '나라사랑 랩송 만든다' 연합뉴스 2009/02/15)

 

나라사랑 랩보다 우스운 것은, 그게 "애국심 고양 및 국민통합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청와대의 믿음이다. 대중은 거국적 비난으로 이 야무진 믿음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랩으로 애국심 고양? 유치하다' 헤럴드 생생뉴스 2009/02/17) 저런 식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게 정권의 문화감각이다. 문화를 담당하는 주무부서는 좀 나을까? 그 밥에 그 나물, 촌사마의 감각도 다르지 않다. (이게 다)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 아니겠냐." ('여론의 된서리 맞은 나라사랑 랩송' weekly경향 2009/03/05)

 

문화부의 감각이 이 지경이니 '대한 늬우스' 소동은 예정된 사고였던 셈이다. 국민의 혈세 2억을 잡아가며 야심차게 추진한 이 계획 역시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에 부딪혔다. 그러자 문화부에서 부랴부랴 다음 아고라에 해명 글을 올렸다.

 

'대한늬우스'라는 단어는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주기 위한 광고기법 차원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 문화부는 광고 상영에 앞서 영화관 주수요층을 대상으로 반응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재미있다, 이해하기 쉽다고 답했으며, 또한 내용 표현방식에 대해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화부, '광고는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자' 2009/06/25)

 

이런 광고를 보고 "재미있다, 이해하기 쉽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는 "영화관 주(主)수요층"은 도대체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을까? (문화부에서는 멍청한 대중만 따로 추려 반응 조사용 마루타로 관리하나 보다.) 문화부만 아는 '주'수요층 말고, 대부분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부'수요층의 반응을 보자.

 

"백 투 더 퓨쳐"(뷰스앤뉴스 2009/06/24),

"히틀러 라디오에 히틀러 늬우스"(프레시안 2009/06/24),

"국민 바보로 아는 대한늬우스"(한겨레 2009/06/24),

"역사의 시계 거꾸로 돌린 블랙코미디"(오마이뉴스 2009/06/25),

"시대착오적, 강압적" (노컷뉴스 2009/06/25)

"눈물이 날지언정 크게 한번 웃자"(업코리아 2009/06/25),

"이제 하다하다 별걸 다해" (폴리뉴스 2009/06/25)

"정부가 왜 욕을 얻어먹는가 했더니" (국민일보 2009/06/26)

"유인촌의 실패한 촌티 전략"(미디어스 2009/06/26),

"대한늬우스, 또 다른 소통부재"(헤럴드경제 2009/06/26)

"대한늬우스는 또 뭔가"(중앙일보 2009/06/26)

대한 늬우스, 과거로의 회귀 (경향신문 2009/07/02)

 

정권의 퇴행적 감성은 사사건건 대중의 세련된 감성과 충돌하며 국민적 반감을 사고 있다. 이 문화지체(cultural lag)가 어디 청와대나 문화부만의 문제일까? 최근 국정원에서도 이에 질세라 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빈티지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이로 보아 이 퇴행적 취향은 얼빠진 한 두 개인 혹은 넋 나간 한 두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MB 정권 전체에 공유되는 일반적이며 보편적 감성인 듯하다.

 

'안보신권' 이벤트가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 '안보신권 필살기를 연마하라' 코너에는 5명의 간첩을 찾는 게임이 등장한다. (...) 이를 접한 한 네티즌들은 "유치원생들 그림 맞추기를 한다고 안보의식이 생기겠느냐"며 "저런 문제를 내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합성사진인줄 알았는데 국정원이 실제 실시하고 있는 행사라니 놀랍다"며 "조만간 남한판 '5호 담당제'가 시행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국정원 이벤트 안보신권, 네티즌 질타' 노컷뉴스 2009/06/24)

 

6, 70대 노인들이 가진 70년대 콘텐츠를 억지로 2,30대 디지털 세대의 표현형식에 담다 보니, 거기서 해괴하기 짝이 없는 문화적 에얼리언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나라사랑 랩, 대한늬우스, 안보신권. 다음에는 또 어떤 괴물이 탄생할까?

 

이 관제 하이브리드 문화를 유장관은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MB정권도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절실히 원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젊은 세대를 향해 '미래'로 가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를 자신들이 있는 '과거'로 끌어당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문제는 이 미션 임파서블에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문화부의 '정책 커뮤니케이션' 거참 희한하네

 

국민을 홍보와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6~70년대 산업화 초기의 습속이다. 당시 국민의 대다수는 농민이었고, 교육수준도 높지 않았기에 계몽과 홍보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국민의 대다수가 정보 프롤레타리아이고, (MB도 한탄하듯이) 고졸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가는 과잉교육의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낡은 산업혁명의 자식들이 디지털 혁명의 자식들을 가르치겠단다. 이건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문제. 한 마디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에게 문명을 가르치려 드는 격이다.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대한늬우스'를 놓고, 문화부 제2차관은 "어쨌거나 이슈화되지 않았냐", "광고를 잘한 것"이라 말했단다. ('문화부 4대강 대한늬우스 자화자찬 파문' 미디어오늘 2009/07/02) 내친 김에 '대한늬우스' 2탄도 극장에 걸 작정이란다. ('대한늬우스 2탄, 이 달 25일부터 상영' 조선일보 2009/07/01) 반발을 하든 말든, 그냥 가겠다는 얘기다. 황당한 것은 문화부에서는 이런 짓을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이 증세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앞으로도 정부 정책을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방안을 강구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대한 늬우스 15년만 부활…문화부 "대화가 필요해"' 서울신문 2009/06/24)

 

이 문화부의 처방을 뒤집으면, '그 동안 국민과 소통이 안 된 것은 정부 정책이 너무 어려워 국민이 편하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진단을 얻게 된다. 한 마디로 국민들이 우매하다는 얘기다. 그 문건 속의 구절이 생각나지 않는가?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 이런 생각이야말로 문화부에서 개그맨을 동원해 대한늬우스를 찍는 동기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지도 모른다.

 

최근 문화부의 행태는 문화부 홍보지원국에서 유출된 그 문건을 연상시킨다. (작성자는 이게 공식적 강의 자료가 아니라, 강의를 위해 잠깐 열었던 개인파일이 사고로 노출된 것이라 해명해 왔다.) 그 안에 소개된 내용들은 거의 괴벨스의 선전선동 전략을 연상시킨다. 위에 인용한 기사('대중은 멍청, 인터넷 매체 몇 푼 쥐어주면 돼' 미디어오늘 2008/05/28)에 문건의 전문이 실려 있으니, 일독해 보시기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797

 

'정책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원래 야비하기 그지없는 것일까? "대중은 조작과 영합의 대상", "이해찬 세대는 부리기에 유리한 집단", "인터넷게시판은 가난한 이들의 한풀이 공간", "비판적 미디어비평 기자들 엉겨주면 뿌듯해해", "복잡한 방송판 기생집단 활용해 관리". 마키아벨 리가 환생한듯하다. "주둥아리로 출세하는 방법"이라는 항목이 눈길을 끈다. 배워서 출세 좀 할까 들여다봤다가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혹시 이게 문화부의 인터넷 낭인 채용규정(?)이었던 건 아닐까?

 

"가급적 사람들이 잘 아는 '센 놈' 하나를 골라 밟아야 잘 뜬다. 몸값이나 Media 역량이 안 되면 뭉쳐서 떠든다. 정부 위원회, 자문그룹에 마지못한 척 낀다. 조금밖에 몰라도, 떠들다 보면 남들이 전문가라고 하고 정보도 생김. 무작정 / 좌우간 한쪽 편을 골라서 떠든다. 사냥개는 생각이 필요 없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은 불러서 쓰는 놈도 헷갈려. 진영논리에 충실해야 낙전이라도 주워 먹는다." ('공공갈등과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2008년 2008년 5월)

 

최근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천방지축 날뛰는 자들의 인생철학이 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밤하늘에 별이 스치우듯, 문득 머릿속으로 얼굴 하나가 스치운다.

 

문화부의 MB식 예술관

 

문화부의 주업무인 예술정책으로 넘어가 보자. 정치적 수구는 문화적으로도 수구여야 하나? 정치적 입장과 문화적 감성 사이에도 모종의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유인촌 장관은 한예종의 학생을 물리친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결국 '예술학교에서 왜 이론을 가르치냐'고 하던 무식한 문화판 뉴라이트 논리의 반복이다.

 

최근 만난 무용원 학생이 '통섭은 트렌드이고 앞으로의 예술 방향인데, 왜 못하게 하느냐.'고 하길래 '발걸음 걷는 연습부터 해라. 명인들이 평생 발 올리는 연습을 한다.'고 말해줬다. 기량을 먼저 익혀야 한다. ("연극인 시국선언 땐 딱 관두고 싶더라" 한겨레신문 2009/07/02)

 

MB의 낡은 산업화의 관념이 유장관의 입을 통해 예술론으로 환생했다. 기량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량만으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서커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뒤샹이 변기에 사인을 하고, 폴록이 화폭에 물감을 흘리고, 뉴먼이 화폭을 롤러로 밀고, 폰타나가 캔버스를 송곳으로 뚫고, 미니멀리스트가 철공소에 전화를 걸고, 워홀이 직원에게 작품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케이지가 4분33초 동안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데에 과연 얼마나 많은 기량이 필요했을까?

 

한 사회의 경제수준과 예술의 상태 사이에는 묘한 평행이 존재한다. 가령 70년대 한국은 기능 올림픽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휩쓸곤 했다. 그렇다고 당시 한국의 기술이 세계 최고였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 몸을 굴려 기량을 연마할 때, 선진국 사람들은 정신을 굴리며 컨셉트를 잡고 있었다. 한국의 예술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가령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한국의 예술가들을 보라. 대부분 연주자나 무용수와 같은 퍼포머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쓰는 창작자는 극히 드물다.

 

훌륭한 퍼포머도 그저 기량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거기에도 풍부한 교양과 섬세한 정신이 필요하다. 가령 외국에 유학을 간 한국의 학생들은 시험곡은 능숙한 기량으로 소화해내지만, 정작 다른 작품을 해석하라고 하면 당황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예술적 상황은 묘하게도 기술의 상태와 조응한다. 가령 한국의 기술은 (메모리를 비롯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아직 창의적 기술이 아니라 모방적 기술에 머물러 있다.

 

MB의 예술철학(?)은 더 직접적인 형태를 띄기도 한다. MB의 머릿속에 삽 한 자루만 들어 있다 보니, 문화도 삽질을 하는 걸까? 중앙일보 기자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데 이명박 정부는 문화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하자, 촌사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청계천 복구도 문화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물론 건설이지만 그렇게 환경을 바꿔주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거 아닌가요. 광화문 네거리에 건널목을 만든 거나 서울광장 등 그게 다 문화정책이죠. (...) 4대 강 정비도 마찬가지죠. 수질이 좋아지고 환경이 나아지면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크루즈도 뜨고 국토환경이 바뀌는 건데 (...) 문화정책이 없다는 건 난센스입니다."('파워인터뷰-취임1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2009/04/28)

 

한 마디로, 삽질이 곧 문화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뭐 하러 문화부를 따로 두는가? '작은 정부'의 모토에 따라 그냥 국토해양부에 통합시킬 것이지.

 

문화부의 홍인종 사냥

 

이런 수준의 교양으로 이 나라의 문화예술을 이끈단다. '예술에 왜 이론이 필요하냐'고 묻는 머리들 속의 비전이 오죽 하겠는가. 그리하여 지난 1년간 문화부에서 역점을 두고 진행한 사업이 고작 좌파척결. 전봇대 뽑는 저돌성으로 문화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역시 박힌 사람 뽑는 것뿐이다. 이는 그 자신도 인정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을 내보낸 겁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난 1년간은 이걸 정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어요." (중앙일보 2009/04/28)

 

지난 1년 간 "모든 역량"을 쏟아서 한 일이 고작 좌파척결. 그런 이런 기사도 있다.  부산일보 사설이다. 그 일을 하고도 자체적으로 이런 평가를 내렸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유인촌 장관의 지난 1년간의 업무 평점이 'A' 수준을 상회한다고 자평하고 있다.('문화정책 예산지원도 지방홀대 심하다니' 부산일보 200/02/28)

 

'A' 수준을 상회한다니, 장관님 점수 매기기 위해 A 앞에 알파벳 문자를 새로 만들어 드려야 할 판이다. 물론 문화부 밖의 평가는 이와 사뭇 다르다. 사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인적 청산 작업 말고는 뚜렷이 부각되는 것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위의 사설)

 

문화부 안에서는 A+를 받았으나, 문화부 바깥의 중론은 사람 잡는 일 외에 생각나는 업적이 없다는 것. 한겨레신문의 인터뷰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기자가 "보수 인터넷 매체들의 한예종 공격과 감사 내용 등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지적하자, 유장관은 이렇게 대꾸한다. 

 

"학교에서 그런 얘길 많이 하더라. 변희재씨가 공격을 주도하던데, 황 전 총장의 서울대 미학과 후배더라.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다." (위의 기사)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가? '백남준이 독일문화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벤야민이 문화비평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처참한 교양의 소유자다. 어차피 수준이 비슷해 보이니 만나면 말도 아주 잘 통할 게다. 게다가 평소에 즐겨 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은가. MB 정권이 적어도 한 명의 국민(?)과는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이 소통부재의 시절에 참으로 귀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완장과 명찰의 정치 어떻게 봐야 할까

 

좌파적출의 메스는 감사. 감사라고 변변할까? 감사의 수준이 거의 개그 콘서트다. '회의실 의자가 열다섯 개인데 왜 세 개를 더 샀냐'(방만한 예산집행), '총장실에 왜 북한 우표책이 있냐'(남북교류협력법 위반), '국회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왜 한강 둔치에 나가 사진을 찍었냐'(근무지 이탈). 그래도 한예종 감사는 양반이다. 영화판에서는 "연간 1000만원 남짓 지원하는 조그만 영화제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다." ('유인촌은 MB가 아니라 우리가 내친다' 시사IN 2009/06/22)

 

문화부의 이런 조폭적 행태는 당연히 문화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문화행정은 실종된 대신, 감찰활동은 독재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원에 인색하고 간섭에 능하며, 심지어 공포를 주는 문화부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위기에 빠뜨린 유인촌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상상력에 자유를!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성명' 오마이뉴스 2009/06/12)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도 나섰다.

 

낡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어 단죄하고 처형하는 작태는, 마치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독재의 기반을 다지던 과거 독일의 나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 완장 찬 사람들이, 미운 놈이면 아무한테나 명찰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완장과 명찰의 정치를 예술과 학문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예술과 학문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한예종 사태를 염려하는 영화감독 100인 선언 전문' 스타뉴스 2009/06/18)

 

영화계에 이어 유장관의 옛 '나와바리'에서도 성명을 발표했다.

 

연극 연출가와 배우 등 연극인 1천37명이 25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연극인들은 시민들과 연대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신명을 바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문화와 예술의 환경조차 관치로써 재단하는 퇴행적 행태는 문화대중 및 예술인의 자존심과 정신적 생명권을 참담한 지경으로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현 정부에 대해 (...) 구시대적, 반예술적 문화정책 중단 등을 요구했다. ('연극인 1천여명 시국선언 동참' 연합뉴스 2009/06/25)

 

연극계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연극인 시국선언 때는 딱 관두고 싶더라. 명단을 일일이 다 봤다. 그 가운데 내가 가르친 애, 유씨어터에 있던 애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너무 깜짝 놀랐다. ("연극인 시국선언 땐 딱 관두고 싶더라" 한겨레신문 2009/07/02)

 

심지어 자기가 가르친 제자까지도 자기에게 반기를 드는 상황. 그는 이 상황을 마음속으로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을까? 어쨌든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참상이 촌사마께서 단 1년 반 만에 이룩한 업적이라는 점이다. 불도저 같은 그 추진력 하나는 높이 사줄만 하다.

 

MB 코드로 볼 때에

 

어차피 MB 정권에 교양까지 기대할 수는 없으니, 문화예술은 그렇다 치자. 정권 자체의 기준으로 본 유장관의 직무수행은 어땠을까? 문화부에선 A+라 자평했지만, 정부의 평가는 다른 모양이다. 거기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가 2008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서 92개 공공기관 중 최하위인 E등급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 이번 평가 결과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적지 않게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더욱 당혹하게 하는 대목은 경영평가 결과에서 '경고' 조치를 받은 17개 기관 중 무려 23%에 해당하는 4개 기관(방송광고공사ㆍ체육진흥공단ㆍ국제방송교류재단ㆍ예술의전당)이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이란 점. (...) 평소에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던 예술의전당 등 상징적인 단체들이 대거 경고 조치를 받음에 따라 (....) ('잘하고 있다더니, 유인촌 장관의 굴욕' 2009/06/19) 

 

'작은 정부'를 위해 MB는 국정홍보처를 폐지했다. 관제홍보에 국민의 혈세를 쓸 필요 없다는 문제의식만큼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렇다면 국정홍보처의 기능을 넘겨받은 문화부에서는 홍보예산을 얼마나 절감했을까?

 

'관제홍보는 않겠다'며 국정홍보처를 폐지했던 이명박 정부가 집권 1년 만에 (...) '국정홍보 체제' 강화에 나섰다. (...) 2008년 90억8천만 원이던 예산은 2009년 189억8천만 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137억 원보다 53억 늘어난 액수다. (...) '관제홍보' 논란도 심해졌다. 문화부는 설 연휴 때 방송법과 '4대강 정비사업' 홍보책자를 수십만 부씩 찍어 귀성객에게 나눠줬다. 한나라당의 언론법 홍보전단 배포에만 (...) 5억3천여만 원을 썼다. 올해 초 대통령실은 '2008 이명박 대통령 어록-위기를 기회로'를 222쪽 전면 컬러로 5천부 찍어 공공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귀막은 MB정부 홍보예산 2배로' 한겨레신문 1009/03/16)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간단하다. 소통=홍보라는 70년대 관념 때문이다. 70년대의 이상에 갇힌 머리가 메시아적 사명감에 넘쳐 자신을 민족의 선지자로 착각한다. 국민은 그저 대붕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참새일 뿐. 이들을 설득하려면 당연히 홍보가 필요하다. 마침 모두들 입을 모아 소통이 부족하다지 않는가? '뭐 해? 홍보예산 대폭 늘려.'

 

"앞으로도 정부 정책을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방안을 강구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대한 늬우스 15년만 부활…문화부 "대화가 필요해"' 서울신문 2009/06/24)

 

그들에게 국민과의 소통은 "다양한 홍보방안"을 문제일 뿐이다. 2009년 홍보예산 189억. 그 돈은 귀 닫고 입만으로 소통하려 드는 MB의 독특한 버릇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다.

 

돈키호테의 꿈?

 

외부로부터 인풋을 차단하고, 내적 동질성을 강화하며, 밖을 향해 공세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폐쇄적인 정치체제다. MB 정권의 상태도 이와 비슷하다. 가령 "파격적"이라 평가되는 유장관의 기용은 MB식 인사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것은 '코드 정치'와는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 코드는 서로 맞춰보기라도 해야지. MB는 코드를 맞추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자신의 분신을 원한다.

 

유인촌 장관을 만나면서는 왜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렇게 가까운지 궁금했다. (...)  MB는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서울문화재단을 만들어 유인촌에게 대표를 시켰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장관으로 데려갔다. 파격적이다. 도대체 유 장관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어서? 인터뷰를 하고 나선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 내가 보기엔 유 장관과 이 대통령은 기질이 같은 사람들이다. ('파워인터뷰-취임1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2009/04/28)

 

기질이 같아서 그런지, 정치를 모르는 MB와 똑같이 유인촌 장관도

 

정치적으로 매끄럽지 않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았다. (위의 기사)

 

이렇게 단점을 장점으로 믿어 버리는 사람 앞에서 국민은 대책이 안 선다. 그 뿐인가? 유인촌이 본 MB의 느낌이란다. 

 

나도 지독한데 '참 나보다 더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위의 기사)

 

심지어 지독하기까지 하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표 한 번 잘못 던진 죄로 이 두 사람의 독기를 겪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운명이다.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려면 주관적 환상의 힘을 믿어야 한다. 저 홀로 과거로 돌아가 주관적 로망 속에서 시대착오적 영웅문학을 한다는 의미에서 언젠가 MB를 돈키호테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런데 현실은 비유를 그냥 비유로 남겨두는 문학적 여유도 없나 보다. '명박호테'를 사모하는 유인촌 장관의 고백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는다'는 구절이죠. 돈키호테와 제가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꿈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쩌면 집착일지도 모르지만 예술이 결국 꿈 아닌가요.(위의 기사)

 

저 달콤한 로망은 MB와 둘이서만 즐기면 딱 좋을 터. 불행히도 "지독한" 그 두 사람의 손엔 권력이 쥐어져 있기에 그들의 '예술'은 국민의 짜증이 되고, 그들의 '꿈'은 국민의 악몽이 된다.

2009.07.06 10:56 ⓒ 2009 OhmyNews

 

 

“비행은 착륙을 배우는 것, 이제 사유할 시간이 생겼다”    

ㆍ비행기 타기위해 3년간 세부로 떠나는 ‘파일럿 진중권’

진중권씨(46)와 만났다. 미학자, 전 대학겸임교수, 유명 저자, 논객, 시사평론가 등 간판이 많다. 이번에는 파일럿 진중권이 궁금했다. 최근 중앙대, KAIST,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재임용에서 줄줄이 탈락한 그는 내년 초 한국을 떠날 작정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적어도 3년은 채우고 돌아올 셈이다. 강한 바람 때문에 한차례 연기된 인터뷰는 지난 17일 비행구역인 경기 화성 삼존리의 허허벌판에서 주로 진행됐다. 에어로마스터 사설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서울 영등포역에서 그와 만났다. 무궁화호 기차를 함께 탔다. 진씨는 “KTX와 다르게 무궁화호는 삶의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 출근길 비좁은 열차 복도를 뚫고 3호차 1·2번 좌석을 찾았다. 이미 젊은여성 승객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기차표를 내보이며 일으켜 세웠다. 쫓고보니 그 여자승객이 읽다 덮은 것은 진씨의 책이었다.
진중권씨는 자가용 초경량 비행기 ‘리트비야크’를 타고 하늘을 난다. 비행은 그를 자유롭게 한다. 시간의 지배자가 되게 한다. 김영민기자

-독자와 자주 부딪히나요.
“종종요. 지하철 맞은편 자리에서 제 책을 읽고 있을 땐 괜히 얼굴을 못들겠어요. 지금처럼 얼굴이 안마주칠 때도 많지만요.”

-비행기는 자주 타러가세요.
“3주에 한번 정도요. 한번 갈 때마다 김포 집에서 지하철·기차·버스·택시를 대여섯 번은 갈아타야하니 자주는 못가요. 자동차 갖고 다니면 짜증날 것 같아서 자동차운전면허증은 아예 따지도 않았어요.”

-대학강의가 줄어서 좀 한가할 것 같은데.
“새 책이 나와 독자 강의도 있고 바빠요.” (그의 다이어리 스케줄표는 빽빽했다. 대전·부산·대구 등은 물론이고 다음날 연세대학원 세미나, 한신대 학부 강의 등 하루 3~4개의 일정이 잡혀있었다. 휴대폰도 10분 단위로 진동했다.)

-벌써 서너달이 지났네요. 대학에서 퇴출된 후 이 부조리한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두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어요. 학생 수업권 침해와 정치적 문제죠. 불쾌하고 한심합니다. 정치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후진국 현상이잖아요.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여겼는데 우리나라가 이 정도 밖에 안돼나, 이렇게 일거에 되돌릴 수 있나…. 그다음엔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했어요. 내가 없는 시간 쪼개서 강의한 건데 ‘당신들 손해지 내 손해는 아니다’ 그렇게요. 복권투쟁하는 것은 너저분하고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강의가 경제와는 별상관없었으니 그런면에서는 덤덤했죠. 차라리 비정규직 교수 문제로 부각됐으면 했어요. 이유도 없이 세상의 관심 밖에서 그냥 잘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분들한테 오히려 미안하죠.”

-‘중권 형아! 복직시키라’는 학생들의 움직임도 있었죠.
“그때 난감했어요. 학생들이 다치게 될까봐요.” (그는 ‘중권 형아’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먹물 중에서 그렇게 불리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어느덧 택시는 화성 외국인보호소 앞을 지나고 있었다. “지난달 네팔사람 미누가 저곳에 있다가 강제추방되지 않았나. 이곳을 지나면서 이주노동자들 태운 버스를 자주 보는데 무슨 범죄자 호송하는 것 처럼 보여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외국인보호소를 지나 우회전하자 비포장길이 나왔다. 흙먼지가 날렸다. 에어로마스터 비행장에 도착해 격납고에 있는 진씨의 2인승 초경량비행기를 구경했다. 비행기 이름은 ‘리트비야크’. 옛 소련의 전설적인 여자 전투기 조종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프로펠러를 잡고 비행기를 손으로 끌어냈다. 난생처음 비행기 뒤꽁무니를 밀며 도왔다. 다행히 풍속이 초속 5미터를 넘지 않아 비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바람이 세서 비행기가 계속 요동쳤다. 그는 “오늘 완전 롤러코스터인데…”라며 한쪽으로 기운 비행기를 상공 200피트로 유지하며 날았다. 멀리 시화호 전경이 보였다. “저쪽 아래 2시 방향 추락한 비행기 보이냐”고 눈짓했다. 논바닥에 노란 비행기 잔해가 보였다. 그럼 안에 탔던 사람은? “비행기가 박살 났는데 무사했겠냐.” 두 눈을 질끔 감았다.

-비행의 미학은 뭔가요.
“그런게 어딨어요. 250~290㎏짜리 기계 갖고 3D운동하는 건데. 맞바람 불 때도 바람을 이기면서 들어가야 하고…. 비행은 착륙을 배우는 거예요.”

-그럼 비행할 때는 무슨 생각을.
“지금 손 떨리는 거 안보여요. 딴 생각 못해요. 이렇게 바람이 부른데 아이구…. (조정스틱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돌풍을 만나 캐노피(조종석 위 투명한 덮개)에 두어번 머리를 찧은 적이 있어요. 고도를 어떻게 하나, 바람과 힘겨루기 바빠 죽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곡예·저공 비행은 절대 안합니다. 교관이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해요. 물리학을 갖고 장난할 수는 없잖아요. 만용을 안부리죠.”

-여기서도 비행기를 타는 데 굳이 한국을 떠날 필요 있나요.
“대학에서 잘리고 아예 활동하지 말라는 얘기잖아요. 굉장히 피곤합니다. 민관합동으로 소송이 6개 걸렸어요. 말도 안되는 질문에 대답하려니 짜증납니다. 물이 흐르다 막히면 돌아가야죠. 소송 때문에 내년 2월쯤 나갈 것 같아요. 필리핀 세부로요.”

-가서 무엇을 하시나요.
“지금 비행기(CH-601)로는 여행할 수가 없어요. 세스나 기종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 자격증을 따야해요. 세스나급은 왠만한 도시와 외국도 갈 수 있고 대륙횡단도 가능하죠. 항법·교신·정비·이론 등 공부할 게 많아요. 상업용 자격증도 딸 생각입니다. 그곳은 물가가 싸요. 또 거기 사람들은 시간을 부리는 ‘시간의 지배자’들이죠. 거기서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아무튼 3년간 안 돌아올 생각입니다.”

-어디로 여행하고 싶으신가요.
“아프리카 대륙 15박16일 비행코스가 있어요. 남미대륙도 횡단하고 싶고요. 한비야씨처럼 고생스럽게 할 생각은 없지만 여행을 하고 싶어요. 다음 책은 여행기가 되지 않을까요. 2차 대전 당시 활동한 여성 전투기 조종사들의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안젤리나 졸리가 탄다는 기종(CIRRUS SR22)을 갖고 싶어요. 그 기종으로 2000시간 탄 중고가 2억원에 나왔던데 비싸서…”

-모아둔 돈이 꽤 되시나봐요.
“대학 강의비야 교통비, 밥값하고 나면 없잖아요. 1년에 한 두 권씩 책을 내요. 내 책은 베스트셀러는 아니고 스테디셀러죠. 인세가 들어와요. 독일의 아내와 아이, 이곳에 어머니 생활비 등 쓰는 곳이 많아요. 당비도 내야하고요. 지난해는 선거가 있어 진보신당에 580만원을 냈어요. 시민단체와 정치적 성격의 강연에서 받은 강연료는 그쪽에 기부합니다. 그런 것까지 소득신고 안했다고 문제삼아 귀찮게해요. 요즘 변호사 비용이 꽤 들어갑니다.” (그는 커피값 5000원이 비싸 커피숍에 안간다. 대신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즐긴다. 가난한 독일 유학시절에도 한달 50만원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음악회·전시회·여행을 다녔다.)

-아들이 독일에 있으면 자주 못보겠네요, 자녀 교육은 어떻게.
“초등학교 3학년인데 1년에 두번 독일과 한국에서 각각 한달씩 함께 지내요. 애는 애니까, 나랑 같을 필요 없잖아요. 그냥 내버려둬요. 탱크·전차·비행기 플라스틱 조립하며 놀아요. 올해는 꽤 집중해 혼자 다 하더라구요. 탐정소설 읽고 그림(만화)을 좋아해요. 잘 먹고 놀고 책 읽고 친구들한테 사랑받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요. 어른의 꿈을 아이들에게 너무 빨리 투사하는 게 문제죠. 교육철학 그런 거 없어요”

-꼬마 중권이는 어떤 아이였나요.
“혼자 다락방에서 비행기 모형, 회로 조립하는 거 좋아하고 평범했죠. 우리 때는 부모가 바빠서 챙겨주지 않았잖아요.” (그는 고등학교 시절 흡연 두번, 폭행 한번으로 세번 정학을 맞았다. 당시 서울대는 내신 1~2등급은 받아야 하는데 정학 때문에 내신 4등급이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입학정원이 두배로 늘었고 ‘잘 찍은’ 덕분에 서울대 미학과에 82학번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당시 전국 수석으로 대학 동기다.)

-컴플렉스는 없나요.
“그런 것은 없어요. 사람은 그냥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 아닌가요.”

-최근 한 여대생의 ‘루저 발언’으로 시끄러웠는데.
“(그 역시 큰 키가 아니다.) 그냥 피식 웃고 넘어가면 될 것을 난리칠 필요있나요. 그런 사회 분위기 자체가 루저죠. 문제가 있다면 그대로 내보낸 방송사가 문제고. (아까 못다한 얘기인듯) 그리고 모든 아이가, 모든 아이보다 나을 수는 없잖아요. 모든 아이를 왜 루저로 만들죠? 모든 아이가 위너가 될 수 있는데…”

이날의 비행시간은 0.6시간. 그의 비행기록은 96시간 정도다. 황우석 사태가 불거진 무렵 2006년 5월8일 그는 처음 비행장을 찾았다. 첫날 조정스틱도 잡아봤다. 그는 “황우석 사태로 우울증에 걸려 2년간 아예 글을 쓰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울증은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를 타면서 차츰 나아졌다”고 했다. 지상을 바라보며 ‘밑에서 왜들 저렇게 사나’ 세상을 초월하게 됐다는 것. 비행기를 격납고에 집어넣고 서울 구로 항동에 있는 성공회대로 향했다. 미디어아트를 주제로 한 특강이 잡혀있었다. 그는 KAIST 대학생과 교수, 일반인이 주축인 ‘기술미학연구회’ 활동도 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도 창의력과 예술성이 없으면 단순 기술로 전락해 통섭이 필요하다는 것. “한예종에서 하려던 교육도 그것이었는데 유인촌 문화부 장관 때문에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너무 여러가지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정말 잘 할 수 있는 한가지는.
“서점에 가면 내 책이 인문·예술·정치·사회·어린이코너에까지 꽂혀있어요. 앞으로 저 같은 스타일이 많아질 겁니다. 이제는 스페셜리스트와 제널리스트가 결합된 하이브리드(잡종)가 많아져요. T자형이 정보생산의 유형이 될 거예요. 저변의 지식을 갖고 그 중 한곳에 깊은 지식이 있는 T자형이요. 지적호기심이 있어서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중적 인기가 꽤 많은데 왜 그럴까요.
“젊은 사람과 코드가 맞다고 생각해 그럴거예요. 다른 먹물과 달리 만만해보이고 말붙이기도 좋을 것 같으니까. 문어체가 아니라 대화체고 인터넷에서 소통할 수 있죠. 내용적으론 자기할말 다하고 자유가 있어 보이니까요. 요즘 세대들이 억눌려 살잖아요. 먹고 사는 것에 매달려 대기업 아니면 공무원이 꿈이고, 거기 맞춰서 살려니 스트레스가 많죠. 일탈의 욕망을 대리투사할 수 있는 인물들, 한비야씨를 좋아하는 것처럼요.”

-괴롭히는 사람은 없나요.
“연관 검색어들이 꽤 있습니다. 숙주가 죽으면 살 수 없는 기생충들 말이에요.”

-‘머리에 삽자루 하나 들었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만드나요.
“정권의 본질을 상징해 시각적으로 요약한 거죠. 순간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하기도 해요.”

-정권이 끝날 때까지 안돌아온다고 했는데 MB정권에 하고 싶은 말은.
“‘자신만 다 알고 국민들은 모른다’는 생각을 버려야해요. 보수층에도 브레인이 얼마든지 있잖아요. 한나라당 이한구의원처럼 소신껏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활용해야죠. 완장 찬 똘마니들 말고요.”

-발언 할 때 두려움은 없습니까.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명예훼손 정도잖아요. 옛날처럼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무서울 게 뭐 있나요.”

-요즘 ‘진중권·손석희·김제동’ 세 사람이 세트처럼 회자됩니다.
“본의아니게 ‘급’이 올라갔어요. 동네수퍼에 담배를 사러갔는데 주인장이 ‘힘내세요’ 해요. 대학로에서 오뎅을 사먹는 데도 ‘아! 진선생님’ 합니다. 이제 나쁜짓도 못하겠어요(웃음). 김제동씨는 수준있게, 기분나쁘지 않게 웃음을 주었는데 안타까워요.”

-TV <100분 토론>에서 하차한 손석희 진행자에 대한 평가는.
“전혀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에요. 자기관리가 철저하죠. 방송 전·후 모드가 똑같이 ‘진행자 모드’여서 한번도 사적 견해를 드러낸 적이 없어요. 직업에 대한 전문성·자부심이겠죠. 이제 잘하던 사람들 쫓아내고 방송이 ‘듣보잡’스러워지는 거죠.”

-요즘 대학생들에 대한 생각은.
“그 세대만의 방식이 있는데 나이먹은 사람이라고 쓴소리하는 거 못마땅합니다. 세대로 나누는 것도 이데올로기 같아요.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이 창의력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책 안읽고요. 이미지와 사운드도 텍스트 해독능력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죠. 긴 호흡의 책도 못읽죠.”

-당신의 인생미학은 뭔가요.
“그런 질문은 안좋아 하는데 대충 비슷하게 사는 것 아닙니까. 저는 하고 싶은 것 미루지 않고 다른 것 때문에 희생하지 않고 살아요. 그거예요.”

그는 성공회대 캠퍼스를 빠져나오면서 담배를 빼 물었다. 오후 5시였다. 대전에서 새 책(교수대 위의 까치) 출판과 관련한 강의가 있어 KTX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는 “이런 일들을 겪으니까 흥미 자체가 좀 없어졌다. 옛날엔 보람이 있었는데”라고 말했다. 대학이 더이상 학문을 위한 곳이 아니고 학생들도 공부하러 오는 게 아니라 학점 따러오는 곳으로 변질돼 우울하다는 것이다. 진짜 잘 해보고 싶은 마음(대학에서)도 있었는데 의욕이 떨어졌다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브르주아, 강남아줌마, 회사원 앞에서도 해봤는데 역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게 가장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사유할 시간이 생겼다”고 되뇌었다. 오전에 “비행은 착륙을 배우는 거다. 잘 늙고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그의 꿈은 뭘까. 언젠가 그는 강연회에서 이 책 한권만 쓰면 죽어도 여한 없을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책일까. “인지과학과 뇌과학이 의식철학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과학자들은 전제를 갖고 출발하지만 철학자들은 그 틀부터 점검해 잘 맞을 수 있다. 그 작업이 재미있을 거다. 괴델의 정리에서 보면….” 그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좀더 세월이 지난 후 비행을 좋아한 한 늙은 미학자의 의식철학서를 사봐야겠다.

<김희연기자 egghee@kyunghyang.com> 입력 : 20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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