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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노래 이야기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 - Imagine

by Wood-Stock 2009. 4. 7.

'백만장자 혁명가' 존 레넌, 그의 진심은?

[프레시안 books] 신현준의 <레논 평전>

기사입력 2010-12-10 오후 7:17:10

 

올해는 존 레넌의 사망 30주기이자 탄생 70주년이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지냈던 다코타하우스와 뉴욕 센트럴파크 내 스트로배리 필드는 그의 사망일인 지난 8일 팬들이 바친 꽃으로 가득 찼고, 영국 리버풀은 이미 두 달 전 그의 탄생 월부터 문화 행사로 들끓었다. 심지어 쿠바에서도 이날 비틀스의 곡을 연주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존 레넌과 비틀스에 관련된 문화 상품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의 레이블 팔로폰은 존 레넌 박스 세트 <시그내처(Signature)>와 <김미 섬 트루스(Gimme Some Truth)>를 내놨다. 9일에는 그의 유년기를 파고든 영화 <존 레넌 비긴즈 : 노웨어 보이>도 국내에서 개봉했다.

미국의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존 레넌의 사망 사흘 전인 1980년 12월 5일, 아홉 시간에 걸쳐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를 최근 공개했다. (매체들은 그의 마지막 인터뷰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존 레넌은 사망 당일 다코타하우스에서 RKO 라디오의 프로듀서 데이브 숄린과 인터뷰했다).

이렇게 레넌 추모 열기가 뜨거운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존 레넌이 부르짖던 '(내면의, 세상의) 평화'는 멋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로 팔린다. 혁명마저 상품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존 레넌에 대한 뜨거운 추모 열기는 누군가에게 매우 불편한 현실이 될 수 있다.

▲ <레논 평전>(신현준 지음, 리더스하우스 펴냄). ⓒ리더스하우스
최근에 나온 <레논 평전>(신현준 지음, 리더스하우스 펴냄) 또한 어찌 보면 불편할 상품이다. 1990년대 '록 키드'에게 비평 그룹 '얼트 바이러스'와 <얼트 문화와 록 음악>, 인디레이블 '강아지 문화 예술' 등으로 잘 알려진 성공회대학교 교수 신현준은 1993년 발간한 <이매진 : 세상으로 만든 노래>를 다시 손질한 이 책을 존 레넌 사망 30주기에 맞춰 내놨다.

분명히 문화 상품 중 하나인 이 책을 삐딱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바로 대중음악의 전설 존 레넌의 평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영웅(Working Class Hero)'으로 현대사에 우뚝 솟은 레논의 삶은 여러모로 되짚어볼 의미가 많다. 그는 계급 사회에 상처 입은 영혼이었고, 대중의 우상이었으며, 주류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존 레넌이 활동하던 1960~1980년대는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순간이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청년 세대의 사회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다. 그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던 레넌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레논 평전>을 통해서 독자는 다양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신현준의 이 책은 잘 정리된 레넌의 역사다. 리버풀 노동자의 아이로 태어났던 그가 무명 음악인에서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그리고 영향력 있는 사회운동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밀도 있게 그려졌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으고 이에 살을 붙인 저자의 땀이다.

책은 존 레넌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로 그의 음악을 꼽는다. 신현준은 책 전체에 걸쳐서 레넌의 삶을 그의 음악을 통해서 살핀다. 예를 들자면, 비틀스를 나와 좌파 운동에 헌신할 때의 그의 생각을 그가 발표한 노래의 가사를 통해서 살피는 식이다. 신현준은 이런 접근을 통해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말을 바꾸는 등 혼란스러웠던 그의 진심을 추적한다.

이런 접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보이는 레넌은 '신현준의 레넌'이다. 책 전체에 걸쳐서 대중음악가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한 레넌에 대한 흠모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저자가 "각자의 해석들이 서로 소통과 대화의 기회들을 풍부히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지만….

이런 저자의 시선 덕택에 이 책은 '비틀마니아'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읽을거리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한 문제적 인간의 삶을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틀스와 레넌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에게 현대사를 읽는 유용한 참고 문헌이 될 듯하다.

대중문화와 사회 변혁의 연계를 꿈꾸는 이들이나 혹은 레넌에 못지않은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는 스타 음악인에게도 이 책은 유용할 듯하다. 책 곳곳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 레넌의 놀라운 직관력은 대중음악의 힘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지침이다.

물론 예술지상주의를 찬미하는 이들이라면 레넌 삶의 후반기를 다룬 이 책의 뒷부분을 편한 마음으로 읽기 어려울 것이다. 대중음악가로서 존 레넌은 사회 변혁에 너무나 열성적이었고, 또 사회운동가로 보기에 그는 지나치게 성공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부분에서 신현준은 레넌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비틀스가 록의 상업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존 레넌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백만장자 사회주의자'였고, 사회운동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조차 다른 사회운동가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었다. 존 레넌이 직설적이고 전복적인 가사를 썼음에도 대중이 그를 조안 바에즈, 피트 시거와 구분지어 이해하는 이유다.

존 레넌의 사상이 집약된 '이매진'은 오늘날 대중에게 광고 음악으로 더 친숙한 노래다. 이처럼 존 레넌을, 그리고 비틀스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렵다. 좋은 음악만으로 그를 소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반쪽만을 아는 것일 뿐이다. 이 책은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면서 존 레넌을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결국 존 레넌은 음악 상업주의의 좋은 상품일 뿐 아닌가", 하고 일갈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 존 레넌과 오노 요코. 오노 요코는 레넌이 폴 매카트니와 결별한 후 찾아낸 반쪽이었다. 둘은 레넌이 총에 맞아 사망할 때까지 연인, 모자, 동료, 동지로 함께 했다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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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불화했던 글로벌스타 존 레넌... “그의 삶과 음악은 ‘자기 고백적’”

탄생 70주년, 사망 30주기 맞아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 등 추적

레논 평전 - 신현준 지음/리더스하우스·1만8000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가로 꼽히는 존 레넌. 공교롭게도 올해는 그가 세상에 나온 지 70년,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위대한 음악가였어”라고 추어올리며 그를 형식적으로 추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나, 음악평론가이자 대중문화 연구자인 신현준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그를 기리기 위해 좀더 진지한 길, 곧 <레논 평전>을 쓰는 일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레넌의 삶을 빼곡하게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진 않는다. 어차피 한 사람의 ‘로컬 평론가’로서 ‘글로벌 스타’에 대한 모든 것을 추적하고 담아내기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지은이는 자신의 시각으로 본 ‘존 레넌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열중하며,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존 레넌을 가지길 바란다”고 한다.

 

지은이가 본 존 레넌은 한평생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친 사람이다. 그런 과정 속에 그의 음악과 삶은 상업적 스타덤에 오른 글로벌 록스타, 60년대 히피 문화와 연결된 반전평화운동가, 전위예술가, 급진적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또 이러한 발버둥은 필연적으로 ‘시대와의 불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레넌은 1940년 영국 리버풀의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선원이었던 아버지와 결혼 전 극장 안내원으로 일했던 어머니는 레넌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레넌은 이모집에서 자랐다. 반항아 기질이 강했던 그는 당시 대부분의 청소년들처럼 미국의 로큰롤 음악 등 팝문화에 빠져들었다. 대중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한 콤비를 이루게 된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등과 만난 뒤, 이들은 1960년대 초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직업 밴드의 길에 나선다. 링고 스타가 드러머로 가세한 뒤 비틀즈는 4인 체제를 굳혔으며,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의 만남 뒤 세계적인 아이돌 스타로 등극한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 만한 인기를 얻으면서도 레넌은 오히려 자신의 세계를 진솔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정치와 계급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 등으로 그는 체제와 본격적으로 불화하기 시작했다.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와의 만남은 큰 전환점이었다. 남은 평생의 동반자가 된 이들은 68혁명의 어수선한 공간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 자체를 예술작품처럼 다루는 방식으로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는 평화운동을 벌여나갔다. 레넌은 이때까지만 해도 매스컴과의 접촉이나 대중 퍼포먼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다소 몽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미 구성원들 사이에 불화가 시작된 비틀스는 1969년 결국 해체됐다.

 

1970년대 들어서 레넌은 본격적인 사회운동가로 변모한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뉴레프트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사찰도 심해졌다. 지은이는 <워킹 클래스 히어로>(노동계급의 영웅)라는 곡을 들어 “레논이 개인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의 계급제도 등 고통의 사회적 뿌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명곡으로 꼽히는 <이매진>(‘상상해보라’)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1972년 대통령선거에서 베트남전을 지지하는 닉슨이 재선되고 미국의 좌파 운동도 한풀 꺾이며, 레넌은 다시 좌절을 맛본다. 새로운 시작의 기회는 요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숀으로부터 왔다. 이들 부부는 뉴욕에 터를 잡았으며, 레넌은 몇 년 동안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했다.


레넌이 다시 기타를 잡고 음반을 내는 등 본격적으로 복귀에 시동을 건 것은 1980년이었다. 또 파업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준비하는 등 여전히 민중의 힘에 기대를 거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에서도 재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열광적인 팬’임을 자처하는 한 청년이 쏜 총탄이 그를 영원히 좌절시켰다. 레넌은 12월8일 뉴욕의 집 앞에서 마크 채프먼이 쏜 총에 맞아 40살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레넌의 삶과 음악은 그가 숨진 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도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 지은이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레넌의 삶과 음악은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자기고백적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대중들의 취향에 자신의 삶과 음악을 맞춰갈 수 없을 것이란 얘기다. 지은이는 팝스타의 신화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상을 만들어내고, 그 상상들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레넌의 위대함을 찾는다. 특히 지은이가 강조점을 찍고 싶어하던 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신념으로 한평생 사랑과 평화를 위해 고통스럽게 투쟁했던 ‘혁명가’”로서의 레넌의 모습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교황청, '비틀스' 존 레논 사면할 자격 없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예수정신 왜곡하며 여성사제·동성애 등 소수인권 무시

 

 

 

 

1980년 12월 8일, 전설적 록밴드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논(John Lennon)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그의 열렬한 팬이라고 주장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에게 살해됐다. 그의 사망 28주년이 되는 올해는 그에게는 뜻깊은 해(?)가 될 듯하다.

 

지난 11월 22일 교황청이 "비틀스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고 발언했던 그를 사면했기 때문이다. 교황청 공식신문인 오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존 레논의 발언이 갑작스럽고 과도한 성공에 취한 한 청년의 단순한 "자만심"에 불과했다며 교황청의 사면배경을 설명했다.

 

존 레논은 1966년 영국 <이브닝 스탠더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 로큰롤과 기독교, 어느 것이 먼저 사라질지 모르겠다"고 발언했다. 존 레논의 발언에 대해 교황청과 보수 기독교 층은 즉각 반발했다.

 

존 레논의 발언이 알려지자 일부 기독교인들은 공개적으로 비틀스 음반을 불태우기도 했고 보수적 기독교인이 많은 미국 남부의 일부 방송국들에서는 아예 비틀스의 노래를 틀지 않았다. 그리고 비틀스가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순회 콘서트를 할 때는 살해 위협을 하기도 했다.

 

교황청이 '결자해지'식으로 42년 만에 존 레논을 사면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매우 관용적인 행동을 취한 것처럼 해석하지만 현재의 교황과 교황청이 그럴 자격조차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것은 그를 비난했던 교황청이나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그 어떤 조직이나 인물보다 더 예수를 왜곡하고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남부 기독교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을 성경을 근거로 정당화했고 노예해방 이후에는 근본주의 신학을 통해 흑인과 유대인, 진화론, 사회주의는 물론 가톨릭까지 이단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근본주의자들은 1925년 테네시주에서 있었던 진화론과 관련한 이른바 원숭이재판에서 패배한 후 공개적으로는 행동을 자제했으나 남부지역에서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예를 들어 밥 존스 같은 근본주의자는 1927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세우면서 설립 당시에는 백인 이외의 유색인종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보수기독교인들 일부는 비틀스가 활약한 196O년대 마르틴 루터 킹 목사 등을 중심으로 한 흑인민권운동이 활발해지자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K.K.K.단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K.K.K는 흑인에 대한 방화, 납치, 폭행, 살인은 물론 민권운동을 지원하는 백인들도 희생양으로 삼았다.

 

남부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에도 공화당의 강력한 기반이며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꼽히는 이라크 전쟁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택하는 등 반 예수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재의 교황·교황청, 존 레논 사면 자격 없다

 

날조된 역사를 근거로 예수의 제자 베드로를 계승한다며 교황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교황청 역시 미국의 근본주의자들과 다름없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접한 예수의 말과 행동은 아예 무시하고 바울의 이름을 빌어 쓴 인물의 궤변(디모데 전서 2장 12절: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디모데서는 바울의 저작이 아니라 그의 후계자 집단이 쓴 것이다)만을 인용해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때 화려한 언변을 과시하며 교황에 오른 요한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취임 전에는 요한 바오로2세의 종교재판소장으로 불림)는 동성애는 물론 강간 등에 의한 낙태마저 죄악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이슬람을 폄하하는 연설을 하면서 종교간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9월 고국인 독일을 방문해서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가져온 것은 칼을 앞세워 믿음을 전파하는 식으로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들뿐"이라고 말해 무슬림의 반발을 샀다. 2007년 5월에는 "가톨릭 교회는 중남미 원주민들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당시 인디언 부족들이 기독교를 조용히 갈망했기 때문에 유럽 선교사들을 환영했다"고 말해 원주민 지도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에 비해 존 레논과 비틀스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면서 기성세대에게 환멸을 느낀 젊은 세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고 그들의 노래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영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존 레논은 비틀스가 해체된 후에도 반전평화, 양성평등, 빈부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Imagine', 'Woman' 등과 같은 노래를 발표하고 때에 따라서는 직접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결국 그의 행동은 미국 정부의 감시대상이 되었고 채프먼에게 암살당했을 때 배후에 CIA가 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의 죽음이 어떠했든 간에 존 레논의 삶은 생명, 평화, 평등을 주장하다 로마제국과 이스라엘 성전권력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와 비슷한 삶을 살다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베트남전 당시 발표한 'Imagine'(1971)을 통해 알 수 있다.

 

 

 

* Imagine(상상해봐)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노력하면 아주 쉬워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우리 밑에 지옥이 없다고, 우리 위에는 하늘 뿐이라고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ahaa-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살아간다고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상상해봐, 어떤 국가도 없다고, 그건 어렵지 않아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누구도 그 때문에 죽이거나 죽지 않고 또 어떤 종교도 없다고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 you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넌 날 꿈꾸는 사람이고 할 지 몰라,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나는 언젠가 네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래, 그러면 세계는 언젠가 하나가 되겠지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상상해봐, 어떤 사유(私有)도 없다고, 넌 상상할 수 있을 거야

 

No need for greed n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탐욕도 굶주림도 없다고, 모든 이가 형제라고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상상해봐, 모든 사람이 세계를 공유한다고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넌 날 꿈꾸는 사람이라고 할 지 몰라,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야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나는 언젠가 네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래, 그러면 세계는 언젠가 하나가 되겠지

 

- 박홍규 교수(영남대 법학과)가 쓴 <아나키즘 이야기>에서 발췌

 

 

생명, 평화, 평등을 주장한 존 레논의 삶, 예수와 닮았다

 

존 레논과 대조적으로 베트남전 당시 스펠만 추기경이 이끄는 미국 가톨릭은 무고한 베트남인들의 머리 위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닉슨의 북폭(1968년 당선된 닉슨은 베트남전을 조기 종식시키기 위해 북부 베트남에 대규모의 B-52 폭격기 부대를 동원함)을 지지하고 미군 파병을 위한 미사를 자발적으로 집전하는 등 반평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존 레논은 1960~197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예수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었고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기성종교가 주지 못한 해방의 메시지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유럽의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미국의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과 기독교 우파 세력이 네오콘 세력과 유착해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감안하면 존 레논의 발언을 젊은 시절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몰아세울 수 없다.

 

로마 교황청이 존 레논을 사면하면서 "비틀스가 해체된 지 38년이 지났지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노래는 시간을 거슬러 살아남아 한 세대 이상 팝음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면피 행위에 불과하다.

 

교황청이 존 레논을 진정으로 사면하고자 한다면 예수정신으로 돌아가 여성사제를 임명하고 낙태는 물론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믿는 예수는 진정한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유대종파주의의 얼굴을 한 예수일 뿐이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성탄전 4주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교황청의 전향적인 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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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피아노 선율의 불온한 노래 <이매진>

 

잔잔한 피아노의 울림이 꿈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동그란 안경을 쓴 존 레논은 피아노에 앉아서 콧소리가 심하게 섞인 목소리로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읊조린다. 그는 자신의 읊조림에 <이매진(Imagine)>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1971년에 세상으로 내보낸다.

 

영어가 외국어인 우리들에게는 가사의 의미보다는 멜로디가 친숙한 이 노래. 그러나 설탕처럼 달콤한 멜로디에 실려 귓가에 울리는 가사의 의미를 곰곰이 들여다보자. 보수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불쾌하다 못해 공포감마저 느끼게 할 만한다.

 

왜 공포를 느끼느냐고? 이런 '불온한' 가사를 가진 노래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종교, 사적 소유 일반을 근본으로부터 부정해 버리는 '이매진(Imagine)' 가사의 급진성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울고 갈 만하다.

 

상상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상상한 불온한 노래 <이매진>에 대해 혹자는 '맨하탄 대저택에 사는 억만장자'가 만든 노래라면서 가사의 의미를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비단 존 레논뿐만 아니라 가끔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낙타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자비로운' 낙타, 존 레논. 하지만 그의 행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비로운' 낙타라는 표현은 존 레논을 정의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존 레논에게 진보는 '수사'가 아니었다

 

수많은 대중 음악가들이 자신의 대중적 인기와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진보적 수사와 행보를 이용(?)했다면, 존 레논은 거꾸로 자신이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대중적 인기와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1969년에 존 레논은 TV 방송에 나와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낭독하며 1965년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M.B.E(Master of The British Empire) 훈장을 버킹엄 궁전에 반납한다.

 

"여왕 폐하, 영국이 나이지리아-비아프라 내전에 개입한 것을 반대하고, 미국이 벌인 베트남전에 대한 영국의 지지 표명에도 반대하고, 저의 'Cold Turkey' 차트 순위가 내려간 것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 훈장을 돌려 드립니다."

 

한편 1969년 5월 26일에 소울 메이트 오노 요코와 떠난 신혼여행에서도 존 레논은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밝힌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처로 잡은 캐나다 몬트리올 퀸 엘리자베스 호텔 스위트룸 1742호실에서 소위 침대시위(Bed-In For Peace)로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현장을 지켜본 수많은 기자들은 존 레논와 오노 요코가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전쟁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 전쟁터가 아니라 침대로 가라'고 전한 반전(反戰) 메시지를 매체를 통해 전달했다.

 

존 레논은 1970년 폴 매카트니의 탈퇴로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 솔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1971년 1월 26일, 존 레논은 당시 영국의 파키스탄 유학생이자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타리크 알리가 편집장으로 있던 좌파 신문 <붉은 두더지(Red Mole)>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노동자 계급과 혁명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낸다.

 

"모든 혁명은 피델(카스트로)이나 마르크스, 또는 레닌 같은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에게 파고 들어갈 수 있을 때 일어나죠. 지식인들은 상당한 대중을 한데 모으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억압받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죠. 그들은 아직 각성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자가용과 텔레비전이 대답이라고 믿고 있죠. 당신들이 좌파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말하고, 학생들이 <붉은 두더지>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죠."

 

"여성들도 아주 중요해요. 여성이 참여하지 않고 해방되지 않는다면 혁명은 없어요. 남성의 우월성에 대해 배우는 방식은 매우 미묘하죠. 요코 덕분에 제 남성성이 어떤 영역에서 떨어져 나가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녀는 열정적인 붉은 해방주의자이고, 비록 제가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같을 때에도 제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재빨리 보여주었죠. 바로 그 때문에 저는 항상 급진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는 데 관심이 많은 이유죠."

 

"저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처한 정말로 불행한 상태를 인식하도록 하고, 그들을 둘러싼 꿈을 깨뜨림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훌륭한 자유언론의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동차와 TV가 있고 인생에서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죠…(중략)…노동자들은 흑인과 아일랜드인들이 학대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으며 자신이 다음이라는 걸 깨달아야 해요. 노동자들이 이 모든 걸 깨닫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정말로 뭔가를 시작할 수 있죠. 노동자들이 접수하기 시작할 수 있죠.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인 거죠."

 

존 레논이 꿈꾸던 세상, 우리도 지금 함께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존 레논이 얼마나 노동자 계급과 혁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인터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존 레논은 시위대가 쉽고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데모용(?) 노래인 '민중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을 작곡한다. 아래에 옮긴 가사를 한 번 보자.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라. 지금 즉시 실시하자. 발을 딛고 거리로 나가자.'

 

'수많은 노동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일을 한다. 너희들은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실제로 소유하는 것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거리로 나갔을 때, 우리는 너희를 끌어내릴 것이다.'

 

'동지들과 형제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당신의 여성들을 집안에 가두어 둘 수 있는가. 그녀들은 그녀 스스로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

 

집회와 시위를 위한 노래답게 단순한 멜로디에 단순하고 강력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작되는 이 곡의 가사는 리듬과 멜로디만큼이나 명료하고 직선적이다.

 

역시 급진적인 사상의 소유자인 오노 요코와의 교류는 서로에게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고 이후에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반전운동, 인권운동, 정치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실천해 나갔다.

 

음악 활동을 통해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고 투쟁의 현장에 연대를 해오던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저녁 마크 채프먼이라는 팬이 쏜 총에 맞고 출혈과다로 사망한다. FBI에 의한 암살이라는 음모론이 떠돌 정도로 보수세력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존 레논은 나이 마흔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그가 떠난 이후에도 수많은 언론과 방송에서 그의 음악을 매일매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매일 다루고 있는 언론과 방송도 그가 음악을 통해 진정 하고 싶었던 얘기들은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미국의 언론과 교육이 헬렌 켈러가 장애를 이겨낸 감동적인 과정은 크게 다루지만, 그녀가 이후에 사회주의자로서 자본과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했다는 사실은 다루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존 레논이 '상상한' 세상을 우리 모두가 함께 '상상할' 때 국가와 종교, 사적 소유를 넘어선 평등한 세상은 가능해질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국경'과 '종교'와 '빈부격차'를 넘어서 존 레논의 <이매진>을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가능하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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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vs 레넌 무슨 일이 있었나

비틀스 이후 ‘위험한 행보’ 음악과 인터뷰로 추적

다큐멘터리 ‘존 레논 컨피덴셜’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존 레논 컨피덴셜>의 공동감독 데이비드 리프와 존 셰인펠드는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1990년대 들어 비밀 해제된 미국 에프비아이(연방수사국) 공식문서들 속에서 닉슨 정부가 추진했던 존 레넌 추방 작전의 단서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역으로 추적해 나간다. 닉슨이 왜 그렇게 존 레넌을 두려워했는지를, 존 레넌이 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존 레논 컨피덴셜>은 비틀스 이후,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오노 요코 이후’에 집중한다. 전위예술가 요코를 만난 존 레넌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느낀다. 재치있고 유머러스하며, 자유로운 예술가였던 레넌은 요코와 무정부주의자들을 만나면서 점점 더 구체적인 목표의식을 지닌 급진적인 투사로 변해간다. 세상의 비밀을 발견한 청년은 “미치광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외친다.

 

레넌-요코 부부는 자신들의 유명세를 평화의 메신저로 활용할 줄 아는 탁월한 선동가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자루를 뒤집어쓰고 언론과 인터뷰했으며, 암스테르담과 몬트리올(미국에서 하려 했으나 금지됨)에서는 신혼여행 대신 일주일 동안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침대 시위’를 벌였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침대 위에 붙은 “베드 피스”라는 문구를 보이게 하라는 것이었다. <해피 크리스마스>라는 곡을 발표하고 나서는 노래 가사(‘워 이즈 오버’-전쟁은 끝난다)가 적힌 벽보를 세계 7대 도시에 광고판처럼 붙였다.

 

 

닉슨 정부가 존 레넌의 힘을 깨닫고 두려워하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존 싱클레어 석방운동이었다고 영화는 전한다. 반전평화주의자였던 존 싱클레어는 마리화나를 피운 혐의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을 두 대 때려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존 레넌은 <존 싱클레어>라는 노래를 통해 “두 대에 10년, 미국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웃겠네”라고 야유했고, 법원은 판결을 뒤집어 싱클레어를 석방했다. 이후 닉슨 정부는 존 레넌을 상대로 거의 반공개적인 미행과 도청을 일삼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한 명의 자유로운 예술가에게 쩔쩔맨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원제 <미국 vs 레넌>은 한국 개봉 제목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화자는 존 레넌 자신이다. 대개의 다큐와 달리 해설자가 따로 없다. 존 레넌이 출연한 방송 인터뷰를 축으로 관련자들의 증언, 당시 뉴스와 자료 화면을 촘촘하게 엮었다. 인터뷰 대상자는 바비 실 블랙팬더당 의장을 비롯한 당시 극좌파부터 닉슨 정부 관계자들까지 폭넓다.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것은 인터뷰와 인터뷰, 화면과 노래 사이에 존재하는 논리적 연관성이다. 영화에 흐르는 40곡의 노래 중 37곡이 비틀스 이후 만든 곡들이다. <해피 크리스마스(워 이즈 오버)>뿐 아니라, 당시 반전 시위대의 대표곡이었던 <기브 피스 어 챈스> <이매진> <파워 투 더 피플> <러브> 등의 명곡은 이야기와 절묘한 대구로 절창을 이룬다.

 

평화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백주대낮에 경찰에게 얻어터지는 광경은 일종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촛불시위의 원조도 60~70년대 미국 반전 시위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도 평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이 시도했지만 살해당했다.” 존 레넌은 이렇게 말하며, 자신도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예감했을까. 얼마든지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위대한 뮤지션은 그렇게 세상의 한 가운데서 자신을 불태우다, 1980년 한 미치광이 팬의 총에 맞았다. 여전히 전쟁과 탐욕으로 얼룩진 오늘의 세계, 존 레넌을 무덤에서 불러내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31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존 레넌’입니다. 그러나 영화사에서 정한 제목은 고유명사로 보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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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작가를 뛰어넘는 ‘기적’
존 레논 컨피덴셜

멍청한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까.

피안의 존 레넌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이번주 개봉작 ‘존 레논 컨피덴셜’은 음악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가’로서의 레넌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입니다.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 진보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 블랙 팬더 당(흑인 중심의 급진적인 정당)의 리더 바비 실, 닉슨 정부 당시 레넌을 감시했던 FBI 요원 등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비틀스의 멤버였던 레넌은 오노 요코와의 만남, 팀 해체와 함께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쏟아냅니다. 정치적 신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한 거죠. 자신들의 신혼 여행에 미디어의 관심이 쏠릴 것을 예견한 레넌·오노 커플은 1969년 4월부터 그해 말까지 ‘베드 인’(Bed-in) 시위를 펼칩니다. “전쟁을 하느니 침대에 있겠다”는 이들은 기자들을 침대 주위로 불러놓고는 간이 공연, 인터뷰를 합니다.

레넌·오노 부부가 미국 정부와 정면 대결을 펼치면서 영화는 절정에 달합니다. 영화 원제가 ‘The U.S. vs. John Lennon’인 이유이기도 하죠. 레넌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미국 정부는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음으로써 그를 추방하려 합니다. “닉슨은 촛불시위를 축구 경기 구경하듯 했다”는 설명은 오늘날 한국 상황에 비추어봐도 굉장히 서글픕니다.

영화 속 자료 화면에서 레넌은 말합니다. “수도승도 아닌 마당에 세상사에 침묵할 수는 없죠.” 그는 마틴 루터 킹을 지지했고, 베트남전을 끝내라고 촉구했으며, 감옥에 갇힌 지식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세대, 이념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대중 예술가는 예민한 사회 문제를 건드림과 동시에 스스로 입지를 약화시킬 운명입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비틀스도 상업적 타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레넌이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발언한 뒤, 성난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비틀스의 음반을 불태웠습니다. 레넌은 돈을 덜 벌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예술인들이 레넌처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울러 저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내세운 예술가의 작품을 억지로 폄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는 평화헌법 폐기, 천황제 부활 등을 주장하며 할복자살한 극우파였습니다. 저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정치적 입장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금각사’를 쓰레기통에 처넣자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밀양’의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이창동 감독이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다는 사실과 연계되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순진한 ‘예술지상주의’를 옹호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예술이 저잣거리의 삶과 동떨어져 고고히 존재한다고 말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커다란 나무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에 깊게 뿌리 박고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다만 예술가의 정치적 견해가 아무리 알량하고 저열하다 하더라도, 그의 손길을 탄 작품은 그 견해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발자크는 반동적인 왕당파였지만, 당대 민중의 현실을 치열하게 담아낸 그의 작품은 역사의 앞길을 예견합니다. 작품이 작가를 뛰어넘는 순간,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그 순간을 우리는 ‘기적’이라 부릅니다.

당신은 존 레넌이 미국에 대해 가졌던 견해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매진’ ‘러브’의 가치를 속단할 권리는 없습니다. 스스로 삶의 한 즐거움을 포기하시고 싶다면, 레넌의 음악을 듣지 마세요.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입력 : 2008-07-31 1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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