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방·콩다방 없이 ‘커피 메카’로 뜬 강릉
강릉이 ‘커피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월 말 제2회 ‘강릉 커피축제’가 열린 바닷가 도시에는 인파가 넘쳤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하나 없는 도시가 어떻게 커피 애호가들을 불러 모으게 됐을까.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181번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도 한 번에 찾기 어려운 바닷가 마을. 제2회 강릉커피축제(10월22~31일)의 둘째 날인 10월23일 아침 8시50분. 커피점 문을 열자마자 바깥에서 기다리던 손님들이 들어와 여섯 탁자의 절반을 채웠다. 지난해 시작된 강릉커피축제의 시발점이 된 커피전문점 ‘보헤미안’이다.
오전 10시를 넘어서자 커피점은 만석이었다. 대부분 자동차를 몰아 왔고, 강릉에서 1만4000여 원을 지불해야 하는 택시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서울·전주·대구에서 찾아왔고, 일본인·중국인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동쪽 벽은 유리창이다. 바깥으로 동해의 푸른 아침이 펼쳐져 있다.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는 풍경은 그 자체로 ‘작품’이었다. “평소 아침에도 손님이 오지만, 커피축제가 열려 더 많이 온 것 같다”라고 박이추 보헤미안 대표는 말했다.
오후 1시께 커피축제 행사장이 있는 강릉항 건물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수많은 이가 각종 커피 체험을 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강릉시청의 의뢰를 받아 이 행사를 주관한 이벤트 업체 관계자는 “강릉에서 여러 축제의 실무를 맡아 했지만 커피축제는 우리도 놀랄 만큼 사람들이 빨리, 많이 모인다. 축제가 22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었는데, 30분 전부터 줄을 서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다”라고 말했다. 커피 지도 4만 부와 안내 책자 1만 부를 찍었으나 이틀 만에 바닥을 보여 서너 명에게 한 부씩 나눠주고 있었다.
세계의 커피를 볶고, 갈고, 내리고…
강릉항 마리나 건물 1~2층은 축제 기간에 커피박물관과 체험관으로 바뀌었다. 8세기께 에티오피아 카파(지금의 짐마)에서 양치기 소년 칼디가 양들을 따라 처음 따먹은 커피 열매가 여러 세기 후 유럽으로 전파되어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터키는 그 관문 역할을 했다. 바로 그 터키의 각종 커피 유물이 왼쪽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그 옆에는 강릉시 왕산면 커피농장에서 온 크고 작은 커피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 전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중남미·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처 산지에서 온 커피 생두를 현장에서 직접 볶았다. 강릉에서 커피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황광우씨는 가스 볶음기로 커피를 볶으며 연한 연두색 생두가 열을 받아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편에서는 축제 스태프들이 수망을 흔들어 연기를 피우며 직접 콩을 볶았다.
검은색으로 변한 콩은 잘게 갈려 한 잔의 커피로 바뀌었다.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 전용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커피 위에 살살 부어내리는 핸드 드립식, 작은 기구에 커피를 채우고 열을 가해 뽑는 모카포트식, 알코올 불로 가열해 추출하는 사이폰식 등 커피를 만들어내는 여러 방식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30여 시간 유리 기구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더치식으로 커피를 뽑아 관람객에게 한 잔씩 건네던 한 자원봉사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더치 기구로 밤새 커피를 내려 조금씩 맛만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2회 강릉커피축제가 열리는 강릉항 해변에는 커피와 바다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커피점이 즐비하다.
강릉커피축제에 이렇게 많은 이가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원두커피 붐 덕이다. 1980년대 중반 고급 인스턴트 커피인 ‘맥심’이 국내 시장에 나온 이후 인스턴트는 금세 커피의 ‘안방’을 차지했다. 다방에서 마실 수 있었던 진짜배기는 ‘커피’라는 본연의 이름까지 인스턴트에 내주며 ‘원두커피’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고 커피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전체 커피 소비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던 원두커피가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1990년 말께부터였다. 미국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서울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내면서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각종 커피가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고, 그즈음 서울의 다도원·보헤미안·칼디커피·클럽에스프레소, 대구 커피명가 등에서 직접 볶는 커피가 애호가 사이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강릉시에만 커피 전문점 130여 개
스타벅스·할리스·커피빈 등 국내외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는 한편, 생콩을 볶아 손님들에게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 볶는 집’ 또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주)커피명가의 안명규 대표에 따르면, 커피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군 것은 3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우리 손님들을 대상으로 원두커피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설문했더니 50% 이상이 그 드라마를 꼽았다.”
커피를 볶고 손으로 직접 내리는 드라마 속의 광경은 새로운 소비자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바리스타 교육기관이 급속히 늘어났고, 자격증 제도까지 생겨났다. 2000년 단국대 사회교육원에서 시작된 커피 전문가 과정은 수십 개 대학 평생교육원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지금은 100여 곳에 이르는 커피교실이 유명 커피점과 대학의 평생 교육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창업반에도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원두커피는 전체 커피 소비량의 20%까지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한 해 한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커피는 2조원대가량으로 추산된다.
커피 열풍이 점차 거세지는 이즈음 왜 하필 강릉인가? 축제를 통해 지역 홍보와 수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각 도시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터에, 강릉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전국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 회자되던 ‘보헤미안’ 대표 박이추씨가 서울에서 강릉으로 내려온 것이다.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 ‘커피 장인’이라 불리던 박 대표의 이동은 커피의 중심축을 강릉으로 옮기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강릉에서 태동한 커피 전문점 ‘테라로사’(대표 김용덕)의 전국적 명성도 강릉을 커피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구정면 어단리 시골에 위치한 테라로사는 강릉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로 떠올랐고, 테라로사에 가기 위해 강릉을 찾는 관광객도 생겨났다.
바다 보며 커피 마시는 ‘황홀한 체험’
여기에 더해 과거 안목항이라 불린 강릉항 주변 환경도 강릉을 새로운 커피 메카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은 일찍이 카페와 커피 자동판매기들이 줄지어 늘어선 커피 산책로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은 커피커퍼 등 10여 개 커피 전문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강릉커피축제를 주최한 강릉시 문화관광과 공기종 과장은 “예로부터 강릉에는 남향진의 한송정에서 시작된 전통차 문화가 널리 보급되어 있다. 시민들의 모임도 많고, 신사임당·허난설헌에게 바치는 다례 또한 유서 깊은 유산이다. 이 같은 전통차 문화가 커피와 자연스레 연결된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적은 예산(1억원)을 들인 새내기 지역축제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천혜의 자연조건이다. 영동의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10월 말이면 가을 바다 빛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남대천이 바다와 만나는 바로 그 지점,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커피점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 행위는, 커피의 종류나 맛을 떠나 그 자체로 하나의 ‘황홀한 문화 체험’인 것이다. 더불어 국제적인 지역 축전으로 각광받는 강릉단오제를 치른 경험이, 인구 22만의 작은 도시가 커피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강릉시에는 커피 전문점이 13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커피점에서 커피를 볶아 신선하게 제공하는 방식도 강릉에서는 낯설지 않다. 미국의 유명 프랜차이즈 ‘별다방(스타벅스)’ ‘콩다방(커피빈)’ 하나 들어와 있지 않지만, 커피의 생명인 신선도를 자랑하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이 강릉에 ‘커피 도시’라는 이미지를 하나 더 추가했다.
강릉커피축제에는 지난해 38개 커피 전문점이 참여했고, 올해에는 93개 업소가 함께해 시음회 따위 각종 이벤트로 축제를 이끌었다.
2010.10.29 / 시사IN / 성우제 (커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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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 사이 그윽한 커피향… 강릉 커피명소 탐방
겨울과 바다와 커피는 서로 잘 어울린다. 겨울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웬만한 여행의 즐거움보다 크다. 지난해 가을 강릉시가 커피 축제를 열었다. 이후 강릉에선 이름난 카페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ㆍ보헤미안 주인이 내려주는 ‘드립커피’ 전문
주인 박이추씨는 커피전문가를 거론할 때 늘 꼽히는 사람이다. 커피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재일교포인 박씨는 일본에서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워와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커피숍을 차렸다. 2000년 진고개 휴게소 앞으로 커피숍을 옮겼고, 2004년 7월 강릉에 보헤미안을 열었다. 드립커피만 내놓는다.
커피숍도 제법 세련됐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외진 곳에 박혀 있었고, 겉모습도 허름했다. 커피숍에 들어서니 멀리 바다가 보였다. 박씨는 장인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왔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직접 커피를 내렸다. 종업원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주문이 들어오면 벌떡 일어섰다. 보헤미안에서 나오는 모든 커피는 ‘박이추표’ 커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잠깐 커피를 배워 커피숍을 여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커피도 인생을 투자해야 할 만한 것이란 설명이다. 직접 블렌딩한 커피를 내왔는데 진했다. 커피숍 주방 옆에는 생두를 볶는 로스팅실이 붙어있었는데, 생두 가마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는 “커피는 정말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ㆍ테라로사 최상급 원두 자부심·공장형 카페
공장형 카페다. 로스팅실에는 4대의 로스터가 있었고, 커피나무가 자라는 온실도 있었다. 베이커리도 있었는데 직접 빵을 구워낸다고 했다. 인테리어도 훌륭했다. 김용덕 사장은 생두 구입을 위해 니카라과로 떠난 상태였다. 대신 이현주 실장이 테라로사가 생긴 배경을 설명했다. 이 실장은 “은행원 출신의 김 사장이 2002년 카페를 처음 열었다”고 했다. “청담동에는 좋은 레스토랑도 많은데 왜 식사후에 나오는 커피맛은 별로일까”해서 커피숍을 차렸다는 것이다. 처음엔 커피를 잘 몰랐고, 앎도 짧은 상태에서 커피를 만들다 보니 과거에 만든 커피가 부끄러웠단다.
이 실장은 “2008년부터 과거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원두 구입에 힘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해서 상당히 높은 등급인 스페셜티 등급의 커피를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커피 메뉴에는 나라 이름과 농장 이름이 함께 쓰여있다. 이를테면 ‘과테말라 삭이심(영농조합)’ 같은 식이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공동생산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지역이름이 뒤에 붙는다고 했다.
ㆍ커피히피 스테인레스통에 직접 원두 볶아
박이추씨와 강릉시청에서 커피히피를 추천했다. 시내에 있는 그의 7평짜리 커피숍은 테이블이 2개뿐이었다. 바도 있어서 혼자 앉아 마실 수 있도록 돼있다. 막 가게에 들어섰을 때 주인 이병학씨는 가스불에 스테인리스 통을 돌리며 생두를 볶고 있었다. 보통 커피숍에서 볼 수 있는 로스터기가 아니라 튀밥기계나 땅콩기계 같은 수동형이다. “과거에 기계가 나오기 전에는 로스터 기계가 따로 없었어요. 커피를 사서 직접 볶아먹었지요. 누님이 있는 독일에서 할머니들이 이렇게 커피를 볶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이씨는 커피도 생선회와 같이 신선식품이라고 했다. 막 볶아 커피를 내리는 게 좋다는 것이다.(반면 테라로사의 이현주 실장은 커피를 막 볶으면 가스가 남아있어 이틀 정도 후에 마시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이씨는 커피를 내린 지 23년 됐다고 했다. 서울 인사동에서 시작, 홍대앞을 거쳐 강릉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다. 로스팅은 9년째 직접 하고 있다고 했다. “케냐에서는 지금도 커피를 물에 넣고 끓여서 마시잖아요. 필터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됐지만 일본에서 드립커피가 발달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커피숍이 너무 상업화돼 있거든요. 기계 다룬다고 커피를 잘 안다고 할 순 없잖아요.”
그의 카페의 커피메뉴는 딱 6가지. 모두 드립커피다.
ㆍ커피커퍼 값도 싸고 경치도 좋은 안목해변 위치
커피커퍼(2호점)는 안목해변 바로 앞에 있었다. 커피숍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좋았다. 강릉사람들이 점심 먹고 잠깐 커피 마시러 오는 바닷가란다. 최순애 사장은 9년 전 커피숍을 열었다. 처음에는 체인 커피숍을 운영했는데 나중에 직접 자신의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커퍼란 맛 감별사라는 뜻.
그는 안목해안이 원래 자판기 천국이었다고 했다. 바닷가 경치가 좋아서 사람들이 바다보러 오고, 온김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었다는 것이다. 커피에 대해서 솔직했다. 최 사장은 “솔직히 커피를 잘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왕산면 대기리에 커피 농장을 마련, 온실에서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 커피를 올 겨울 수확, 커피를 만들 예정이란다. 사실 한국에서 재배한 커피가 수백년 노하우가 있는 남미나 아프리카 커피보다 나을리는 없을 것이다. 커피커퍼는 어쨌든 경치 좋다. 커피값도 쌌다.
-길잡이-
*연곡면 영진 해안 언덕배기에 있는 보헤미안은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다. 커피 메뉴는 35가지. 4000~5000원.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9시면 무조건 문을 닫는다. www.bohemian88.com (033)662-5365
*테라로사는 학산공장점과 문화의 거리점, 경포점이 있다. 학산공장점으로 가는 게 좋다. 4500~7000원. 여행자를 위해 만든 메뉴 중 하나는 테이스팅 코스. 6000원에 3가지 커피맛을 볼 수 있도록 했다. 1~3주 토요일에는 커피학교도 연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1인당 2만원. 커피를 만드는 과정, 로스팅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코스다. 직접 볶은 원두 100g을 준다. www.terarosa.com (033)648-2760
*커피히피는 상호명으로는 내비게이션에 안 나온다. 전화번호도 주인 이씨의 휴대전화밖에 없다. 내비게이션에는 강릉시 명주동 46-1번지로 쳐야 한다. 오전 11시 이후 문을 연다. www.coffeehippie.kr 011-9790-4227
*커피커퍼는 3호점까지 있다. 2호점이 안목항에 있으며 가장 분위기가 좋다. 2500~3000원 정도의 중가 커피가 대부분이다. (033)653-0100
2010.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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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 가득... 추억이 쌓이는 곳 ~ 강릉 안목ㆍ사천해변
10여년 전부터 해변 곳곳에 자판기 동전 몇잎에 달콤한 바닷가 데이트... 최근엔 전망좋은 카페 10여곳까지
■안목해변
강릉 경포해수욕장에서 정동진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10여분 가면 안목해변에 닿는다. 백사장 길이가 약 500m 되는 해변이다. 이곳 백사장 뒤 해안도로는 10여년 전부터 '길카페'로 통했다. 길거리 카페란 이야기다.
왜 '길거리 카페'일까. 커피자판기가 많아서다. 둘러보면 식당 옆, 슈퍼마켓 앞, 공중화장실 옆 등 곳곳에 커피자판기다. 몇 대나 될까. 이 일대에서 8년째 커피자판기 4대를 운영 중인 박창성씨는 "불과 약 500m 길이의 도로를 따라 30~40대의 커피자판기가 있다. 5~6년 전만 해도 얼추 80대가 넘었다"고 했다.
자판기가 많아진 이유는 이렇다. '전국구' 관광지인 경포해수욕장은 일찌감치 유명한 카페가 많았다. 전망도 좋아 인기였다. 자판기사업자들은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안목해변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안목은 강릉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라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주머니 가벼운 젊은층 사이에서 '대박'이 났다.
요즘 안목 바닷가는 카페와 자판기가 어우러져 '길카페'가 아닌 '커피거리'로 변신했다. '네스카페' '모래위에 쓰는 편지' '엘빈' 등 2002년부터 생겨난 커피가게가 어느덧 10여 곳이나 들어섰다. 쌀쌀한 날씨에도 커피가게를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초겨울 고즈넉한 바다 풍경이 그리워 온 사람들도 있고 옛 7번 국도를 따라 호젓한 드라이브를 즐기다 들른 이들도 있다. 안목 바닷가 한편에선 항구 개발공사가 한창이라 조금 부산스러운 것이 단점. 하지만 이곳엔 예쁜 등대가 있는 방파제가 있고 갈매기들도 제법 많이 날아들어 커피와 호젓한 산책을 즐기기에 모자람 없는 운치가 있다.
수가 줄긴 했어도 지금도 자판기 앞에 차를 멈추고 커피를 뽑는 이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자신만의 자판기'에서만 커피를 뽑아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즉, 자판기마다 단골이 있는 셈이다. 자판기도 전과 달리 한층 업그레이드 됐다. 헤이즐넛 등 종류도 많아졌다. 얼음이 들어간 냉커피도 나온다. "유명한 만큼 이곳 자판기 관리가 전국에서 가장 잘 될 것"이라고 한 자판기 운영자가 설명했다.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손님들이 먼저 야단법석이란다.
■사천해변
강릉은 '커피의 도시'로 익히 유명하다. 핸드드립의 고수로 꼽히는 박이추씨, 커피 명소인 '테라로사'를 운영하는 김용덕씨 등 커피와 관련한 유명 인물들이 많은 덕분이다. 이들이 각각 운영하는 보헤미안, 테라로사는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난 강릉의 커피 명소다.
강릉시 문화예술과의 한 직원은 "강릉에만 150여 곳의 커피전문점이 있고 이 중 로스팅전문점도 20여 곳에 달한다. 인구비율로 따져보면 강릉은 전국에서 로스팅전문점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안목해변의 '달콤한' 사연 등이 어우러지며 강릉과 커피는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이달 초에는 안목에서 커피축제도 열렸다.
안목해변과 함께 최근에는 사천해수욕장 인근 해안이 커피명소로 뜨고 있다. 하슬라, 쉘리스 등 전망이 좋은 로스팅전문점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건물의 외관도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번 주말 고즈넉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커피의 유혹'을 즐겨보시길.
'커피커퍼'직접 로스팅, 20년된 커피나무 재배
안목해변 커피거리에는 현재 10여 곳의 커피전문점이 영업 중이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해변도로 입구의 '커피커퍼'다. 이 일대 커피가게 중 유일하게 직접 로스팅을 하는 곳이다. 3층 건물 외관에는 커피를 테마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디카족'에게 제법 인기다. 1층에 위치하고 있는 커피로스터도 볼거리다.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제품들을 커피와 함께 판매한다.
'커피커퍼'가 유명세를 치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농원에서 재배 중인 커피나무 때문이다. 수령이 20여년이 된 이 커피나무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제주도에서 들여왔는데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어 화제다. 높이 2m가 넘는 커피나무는 국내에서도 흔치 않다.
이 상태라면 내년 1~2월에 커피를 직접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가 되면 이곳 김준영 대표는 시음행사를 가질 예정인데 직접 기른 커피나무에서 커피를 수확해 손수 로스팅한 후 커피를 내리는 것도 국내에선 드문 일이다.
'모래위에 쓰는 편지'는 이 일대 카페들의 원조로 꼽히는 곳이다. 전망이 좋아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또 '엘빈'은 커피뿐만 아니라 케이크나 각종 베이커리 등 사이드메뉴가 맛있다고 입소문을 타는 곳이다. 세 곳 모두 바다 전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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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특별한 부암동 ‘클럽에스프레소’
부암동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클럽에스프레소는 뭔가 특별하다.
푹신한 소파 대신 딱딱한 나무 의자만 있는 반면, 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 원두 가격은 절반 정도 싸다.
예전부터 그랬다. 일부러 그런 곳에다 자리를 잡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로 클럽에스프레소 가는 길은 불편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그 커피점을 9년 만에 다시 찾으면서 나는 또다시 툴툴거리고 말았다. 예전에 차를 몰고 갈 때는 주차 때문에 골 아프게 하더니,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도 단번에 닿지 않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부암동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러나 클럽에스프레소는 놀랍게도 손님들로 북적댄다. 수요일 오후 2시. 1층의 40여 좌석은 빈 곳이 거의 없었고, 볶은 콩(원두)을 사려는 손님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맛있는 음식점도, 분위기 좋은 카페도 아닌데 평일 대낮에 불편을 마다 않고 굳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의 커피에 분명 뭔가가 있다.
커피 대중화에 뜻을 둔 마은식 대표(오른쪽)는 “커피 값을 내리자”라고 말한다.
그 ‘뭔가’는 입구에서부터 눈에 띈다. ‘커피 중독자 시리즈’라는 제목의 이벤트에는 ‘커피를 물처럼 자주 마시는 사람을 위하여’ 같은 다소 장황한 문구가 적혀 있다. 이른바 중독자에게 제공하는 볶은 커피콩의 가격이 놀랍다. 500g에 1만8000원(내가 사는 캐나다와 엇비슷하다).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 원두 가격이 100g에 6000~8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입구에 ‘카페’나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커피 상점’이라고 써 붙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푹신한 소파 대신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고,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천장과 칸막이,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원목으로 짜였다. 소박하고 검소한 분위기이다. 마은식 대표는 “실내는 목공을 하는 나와 우리 직원들이 꾸몄다”라고 말했다. 남미·아시아·아프리카 등 수십개 커피 생산국에서 들여온 각종 커피콩을 볶아 파는 코너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집에서 커피를 쉽게 내려 먹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돌아간다. 물 300㎖에 커피 15g을 2분 만에 내려 마시면 된다. 물은 92℃에 맞춘다.
클럽에스프레소는 2010년 10월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990년 서울 대학로에 당시 스물셋 젊은이가 창업한 스페셜티 커피점은 ‘새롭다’ ‘특이한 20대가 주인이다’ 하여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1년 마은식 대표는 한적하기 짝이 없는 부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내가 전문가라면 아무것도 없는 바로 그 맨바닥에서 이상적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피점 안 가장 좋은 자리 는 수십개 커피 생산국에서 들여온 커피콩이 차지한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물 가운데서도 커피는 묘한 ‘물건’이다. 먹어서 배부른 것도 아니고 마셔서 시원한 것도 아닌, 그저 쓰거나 설탕을 곁들인 달달한 음료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람들은 그 쓴물을 마시기 위해, 놀랍게도 5000원 이상씩을 서슴없이 투자한다.
스페셜티 커피가 한 잔에 5000~6000원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리 비싼 축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커피점이 부암동 같은 외진 곳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마 대표가 말하는 ‘전문성’이다. 그이와 함께한 자리에 직원이 에티오피아산 ‘리무’라는 커피를 한 잔 내왔다. 마 대표가 에티오피아에 가서 직접 사온 것이라 했다. 약간 텁텁하지만 좋은 신맛이 돈다. 깊이와 더불어 입안 한가득 차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마 대표는 “꽃향기가 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커피의 진정한 맛은 ‘볶기’와 ‘블랜드’(Blend·산지가 서로 다른 커피를 섞어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하는 것) 기술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까맣게 혹은 연하게 볶거나, 블랜딩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최근 그 개념이 크게 바뀌었다. “스페셜티 커피의 진정한 맛과 향은 각 커피 산지가 가진 독특한 환경과 문화에서 나온다. 산지의 고유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성 높이기와 더불어 마 대표가 목표로 삼는 것은, 바로 그 맛과 향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즐기게 하는, 이른바 대중화이다. 커피 가격을 대폭 낮춘 것은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미국에서 20달러 하는 청바지가 한국에서 10만원 한다면 말이 안 된다. 나는 커피 값을 내리자고 악을 쓰며 이야기한다.” 커피업계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커피 질을 높게 더 높게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면서 그는 그 대중을 점점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2007년부터 그이 스스로 담배를 끊어가며 실내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더니, 2년 후에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했다. 3층 건물(120평·396㎡)을 모두 쓰면서 직원 16명의 쉼터는 ‘널널’하게 만든 대신, 손님에게는 달랑 1층 한구석만 내준다. 직원들의 쉼터에는 푹신푹신한 소파와 침대까지 있지만 손님들에게는 딱딱한 나무 의자만 제공할 뿐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를 줄이는 대신 그 에너지를 커피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라는 것이다. 마 대표는 급기야 매장 내의 테이블을 모두 없애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손님을 불편하게, 더 불편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건 듯 보이는데, 클럽에스프레소에서 그것은 ‘커피 질을 높게, 더 높게’로 받아들여진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하면 2000원이 싼 3000원에 마실 수 있다.
아무리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지만 한국만큼 커피 값이 비싼 나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최근 산지의 특성을 살려 커피를 볶고 만드는 신개념 커피점으로 각광받는 미국 ‘스텀프타운 커피 로스터스’의 커피 한 잔 가격이 2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클럽에스프레소가 이른바 가격 파괴와 전문성 높이기를 통해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화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클럽에스프레소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7-1 / 전화 02-764-8719 / www.clubespresso.co.kr
교통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로 나와 버스 1020번, 7022번, 0212번, 7212번으로 갈아타고 10여 분 후 부암동주민센터 앞에 하차.
특징: 20년 전통의 수준 높은 스페셜티 커피 가격이 파격적. 집에서 커피를 직접 볶을 수 있도록 생두 판매. 오븐에서 직접 구운 신선한 쿠키. 온라인 쇼핑 가능. 실내 금연. 인터넷 안 됨.
ⓒ 시사in(http://www.sisainlive.com) 2011년 01월 03일 (월) 성우제 (커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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