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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세상 이야기

민노당 대표 이정희

by Wood-Stock 2010. 7. 29.

 

 2010-07-29  

“진보정당의 꿈인 대통령, 준비해야죠”

 

 

1 그게 그러니까 방송법 직권상정 현장이 국회 생중계되던 날이었다. 뭐 이종격투, 예견되었던 상황인지라 담담하게 각종 기술의 완성도 감상에 몰두하던 와중이었다. 음, 저쪽 조르기는 경동맥과 거리가 있군. 저래서 실신 되나. 이쪽 관절기 각도 어설퍼요. 요쪽 안다리 후리기는 제법이군. 그 와중이었다. 의장석 앞 발언대기석 부근에서 안경잡이 여성의원 하나가, 육덕 흰색 상의 여성의원에게 목덜미가 낚인다. 앗, 저것은, 국회 사상 최초의 여성 초크슬램이 시도되는 현장인가 하는 순간, 연보라 상의, 검은색 정장, 꽃무늬 상의 셋이 그래플링에 합류한다. 4 대 1. 반칙이다. 태그매치 상황이건만 안경은 터치할 동료가 없다. 로프 대신 의원석 다리 부여안고 버티다 겨드랑이, 양다리 동시 제압당해 본회의장 입구까지 사지 들려 속절없이 운반된다. 질질 끌려 나가던 안경의 막판 스탠딩, 흰색 상의의 헤드록 패대기로 끝장난다. 실신 KO. 내내 덤덤하던 나, 이 혼절 부감 샷에서 울컥한다. 이, 씨바.

 

그때부터다. 내가 그 애처로운 안경잡이, 이정희를 주목하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렇게 1년여 관찰 끝에 그가 좋아졌다. 그렇다. 난 그가 좋다. 왜. 안 되나. 이리 자백부터 해두는 건 그래야 공평하다 여겨서다. 그리고 그래서, 이번 인터뷰, 최대한 야박하게 했다. 다시 한번, 그래야 공평하니까. 좋다고 물렁한 건, 볼썽사나우니까.(아, 나는 변태인가.) 어쨌거나 그리하여 오늘 인터뷰 목표는 한 가지다. 이정희는 과연 내가 좋아할 만한 자인가. 그렇다. 내가 기준이다. 왜. 떫은가. 뭐 그러든가 말든가. 자, 가 보자.

 

 

2 앉자마자 인사치레 생략하고 숨도 고르기 전에 물었다. 헌정 사상 최연소 정당 대표인데, 과연 본인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 생각하느냐.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연다.

 

“음… 처음엔 되게 무겁다 생각했어요. 과연 내 안에 무슨 힘이 있어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 마음을 다해 일하는 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사랑하겠다, 남을 비판하기 앞서 내가 먼저 일하겠다던 마음. 결국 그거 아닐까. 유세 다니다 혼자 있는 어떤 순간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처음의 그 마음을 유지하면, 앞으로 계속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정말 궁금해서 물었던 건 아니다. 정치인 특유의, 제 인생에 자작 조명 때리는, 자기 연출의 정도를 가늠해보고 싶었던 게다. 여기서 통상, 조국과 민족 따위 등장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그의 답, 심심하기 짝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만. 자, 이제 본격적으로 까칠해질 순서.

 

초심, 좋다. 근데 초심 잃지 않겠단 결의만으로 대표까지 해도 되는 건가. 나는 대표를 해도 돼, 왜냐면 난 이런 사람이니까. 그런 자신도 없으면서 대표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강기갑 대표님은 언론에선 굉장히 강경하고 막무가내인 것처럼 비치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언론이 만든 그 이미지를 뚫고 강기갑 대표님의 마음을 본다는 걸 느꼈어요. 어느 순간 번뜩하고.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아, 정치라는 것이 말만으로 이념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결국 사람이 하는 거구나. 그런 걸 깨달았죠. 그런데 제 안에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게 어떤 건가.

 

“사진 찍히려고 겉모습을 만들어 내지 않는구나, 이 사람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그런 게 전달이 된다는 걸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거 같아요.”

 

 

마음 전달하고 교감하는 능력. 그거 교주들 능력인데.(폭소) 자기한테 그게 있다는 걸 깨닫는 특별한 사건이라도 있었나.

 

“음. 이건 제가 미안해서 이야기 안 했던 건데, 작년 쌍용자동차 파업 때 물도 음식도 못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걸 지켜보는 게 굉장히 고통스럽더라고요. 누군가는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며칠을 그 앞에서 기다리면서 안에 계신 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그런데 그 문자를 보고 안에 계시던 분들이 많이 울었다고 하셨어요. 고맙다고. 해결하지 못한 게 굉장히 가슴이 아프고 반성이 되면서도, 그런 말씀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찌릿찌릿한 걸 느꼈어요.”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다는 건가.

 

“정치는 연출이 아니다. 정치는 결국 진심으로 하는 것이다. 약삭빠르고, 제 앞길만 찾고, 제 이익만 추구하고, 만날 거짓말하는, 그런 정치를 깰 수 있을 것 같다….”

 

박하게 되물었다. 좋다. 그런데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이었다. 당시 상황에선 분명 운동권이었는데 왜 그만두고 제 살길 갔나. 분명 졸업하고 쌍용차 현장 같은 곳 가는 선배들 있었을 텐데.

 

“무서워서 못 갔어요.(웃음) (어릴 적 단칸방 살다가) 연립주택의 생활, 안정된 삶,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들. 현장을 생각했을 때 그런 게 제 뒷덜미를 잡았어요. 겁이 났던 거죠.”

 

반성의 표정연출도 없다. 그냥 무방비로 실토한다. 이건 솔직한 게 아니다. 능력이다. 그래서, 더 까칠하게 나갔다.(역시 난 변태인가.) 그런데 본인과 다르게 계속 그 길 갔던 이들이 있다. 그들 제치고 당대표가 된 거다. 새치기 아닌가.

 

“오랫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길 오신 분들이 계시죠. 그런 분은 제가 비례대표로 들어갔을 때 굉장히 낯설어하셨을 거 같아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나. 그런데 기다려주시고 또 받아주신 게 굉장히 고마웠어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미안함은 없었는가 말이다. 없음 말고.(폭소)

 

“음. 미안함… 생각해보니까 제가 거기 머무르는 사람이 아닌가 봐요. 그래서 그런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나 봐요. 낯설어하셨을 거란 게 아마 미안한 감정이겠죠. 그런데 미안한 데 머물기보다 그래서 더 많이 물어봐야겠다, 더 많이 배워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일했어요.”

 

기왕 나선 거 끝까지 까칠하게. 서울 법대, 전국 수석, 학생회장, 사시 합격까지 경쟁에서 져본 적 없고 그래서 그만한 대우 항상 받다 보니 그런 데 익숙해져서, 좋은 게 주어지면 난 당연히 그런 자격 있다고 넙죽 받아들인 거 아닌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과 대표가 그렇게 좋은 직책인가요?(웃음) 의원직에 대해서 저는 귀중하게 써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쌍용차 때도 제가 만약 들어가면 입건될 거라 생각했어요. 의원직 상실할 수 있단 판단하고 추진했던 거였어요. 그런 마음이 민주노동당에는 일상화되어 있어요. 다른 정당과 전혀 다른 문화죠. 그런 게 내가 이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안 하게 되는 배경이었죠.”

 

으하하하. 브라보. 좋았어. 근데 왜 하필 민주노동당인가.

 

“제가 법조인이 된 결정적 계기가 동두천에서 만난 한 여자아이예요. 그때 ‘주한미군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우리 사회의 구조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평화와 화해의 방법으로 풀지 않으면 주한미군 문제 안 풀린다. 그걸 풀려는 곳이 민주노동당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분당이 되고 또 비난을 받는, 그 이유 때문에라도 나는 민주노동당을 선택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진보신당이라고 주한미군 문제 관심 없는 게 아니고, 어려움 따지자면 막 시작한 진보신당이 더 어렵다. 당세를 봐도 그렇고.

 

“진보신당 갈 마음은 없었어요. 이건 말씀드리기 좀 조심스럽지만, 종북주의란 용어를 우리끼리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럼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잘못 생각한 건 뭐냐.

 

“잘못이란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아요.”

 

그렇겠지. 본인은 예의 바르니까.(폭소)

 

“다만 아쉬움은 있어요. 단일화한다고 이기겠나, 저희라고 그런 생각 왜 안 했겠어요. 이렇게까지 우리가 희생해야 하나. 그런 생각 왜 안 했겠어요. 하지만 국민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가 미리 끊지 말자. 국민들이 우리에게 달성하도록 부여한 책무, 해야 하는 최소한의 목표들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면 나머지는 국민들이 한다. 진짜 될까 의심하며 국민들의 폭발력을 미리 재단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좋다. 그런데 대표라면 개인 성향 떠나 정치적 이해득실 따지며 전략적 사고 해야 할 때 있을 거다. 그런 게 본인과 맞겠는가.

 

“제 생각은 그래요. 민주노동당이 협상을 굉장히 잘해서 많이 따오는 것, 그게 우리가 추구할 방식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협상력 없는 사람이라 보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이상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현실에서 출발한다. 허풍과 과장, 술수의 정치를 버리되 협상이 성사되면 반드시 책임진다. 그러나 만약 정당한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싸워서 이긴다.”

 

정당한 요구가 거부되면, 싸워서 이긴다는 건 이번 재보궐 경우 광주에 해당되나.

 

“그렇습니다.”

 

이후 선글라스 착용 여부부터 의상 구매처까지 총 3시간을 고문하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서, 대통령 할 건가.

 

“진보정당의 꿈이죠. 포기할 수 없는. 준비해야죠.”

 

 

3 평생을 업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아무런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으로 살아내는 자, 극히 드물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타고나야 한다. 이건 가르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게다가 그로 인한 비용을 감당해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더 어렵다. 그 획득의 노정은 대단한 분량의 용기와 그것이 그저 곤조에 머물지 않도록 성찰할 지성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타고났다고 모두 그리 살아내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노무현은 그 두 가지가 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대통령 노무현조차 자연인이었다. 그게 현실 정치인으로서 옳거나 바람직한 건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그리도 슬퍼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자연인으로 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고, 또 알았던 게다. 그게 연출 없이 살아내는 자의, 힘이다.

 

진보진영 누구도 거기 도달하지 못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권영길도 강기갑도 노회찬도 심상정도. 그들은 그들의 주장과 동일시되었다. 하나의 캐릭터였다. 안타깝게도. 그런데 이정희는 거기 근접한 최초의 진보 정치인이다. 사람이, 보인다. 내가 대놓고 그를 응원하는 이유다. 으라차차.

 

 

PS - 1년 전, 그를 혼절시킨 한나라당 여성 4인방은 비례대표 정옥임, 이은재, 김옥이, 그리고 수원시 권선구 정미경. 그들의 차기 낙선을, 바라 마지않는다. 어떠냐, 나의 뒤끝 작렬이. 약 오르지. 크하하하.

 

부록. 이정희의 한 줄 평.

 

이명박 - 고통스럽다.

정세균 - 상황과 한계 넘어야.

안상수 - 남 탓.

박근혜 - 생각 깊은.

나경원 - 넘어가죠.

유시민 - 언급했으나, 비보도 요구.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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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똑똑똑] 이정희 민주노동당 새 대표

ㆍ“민주주의 파괴된 국회 보며 결심했죠, 다시는 지지 말자고”

여의도에 웅장하고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돔형의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난 엉뚱하게도 ‘돔구장’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나라가 준우승을 했을 때 국내에도 돔구장을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나는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주는 야구선수들에게 돔구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돔형의 의사당에선 매일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싸움질이 난무하지만 돔구장이 들어서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즐거운 야구가 펼쳐질 것이다.민주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희 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TV나 온라인을 통해 봤던 이 의원은 늘 단호한 표정으로 차분하면서도 매서운 질책을 하는 ‘철의 여인’이다. 네티즌들의 표현을 빌리면 고위 관료들을 ‘떡실신’시키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그에게선 웃음, 눈물, 따뜻한 인간미가 넘쳐났다.

 

김제동 “혹시 20대로 돌아가신다면 좀 더 나이 차이가 적은 분과 연애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어요?”

이정희 “후후. 설마 제가 연애를 한 번밖에 안해봤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 의사당이라는 장소가 국민의 종이 되겠다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초심을 유지하기가 참 어려운 장소 같아요. 뭐랄까,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분위기랄까요?

“처음에 놀란 건 총선 후 국회에 왔는데 직원들이 다 알아보시는 거예요. 당선자 얼굴을 익히려고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그게 당선자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오히려 불편하더라고요. 국회에서의 의사결정이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회의원들은 글자 하나 바꾸는 것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1000억원, 2000억원이라는 돈은 의미나 양이 엄청난데도 그저 주고받고, 협상하고, 조정하는 숫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당황스럽고 서글펐지요. 그래도 권위는 한편으로 잘 유지하고 활용해야 할 측면도 분명히 있어요. 의석이 갖고 있는 힘과 영향력은 매우 중요한 문제죠.”

- 그러니까 위임받은 권력, 즉 뽑아주신 분들을 대변해야 하는 권력은 잘 활용해야 하고 개인에게 따르는 부수적인 권력은 지양하고…. 이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정리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명사회자다우세요.”

- 과찬이십니다. 어쨌든 최연소 당대표신데 어떠세요. 부담스러우신가요? 왜 의원님에게 대표직을 맡겼을까요?

“많은 노동자와 농민, 지역주민들. 이분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신 거고 그런 분들이 자신이 해 왔던 일과 해야 할 일들을 제가 책임감 있고 안정감 있게 해주리라는 기대감을 담아주신 것 같아요. 국민에게 부드러우면서도 명쾌하게, 또 민주노동당의 원칙을 지키면서 좀 더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 아프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민노당을 두고선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친북이니 빨갱이니 국가혼란세력이니 이런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런 오해를 어떻게 불식시켜야 할까요? 진보 전체를 대변할 정당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고요.

“우리 국민들의 집단적 지혜가 이제는 굉장히 성장했다고 봐요. 치우치지 않고 열려 있고, 언론이 전해주는 것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인지 능력과 학습에 대한 열정도 생긴 것 같아요. 우리가 말하는 근거와 상황과 논리를 차분히 이야기하면 충분히 이해해 주세요. 제가 변호사 생활 10년을 했어요. 그러면서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권의 영역을 이야기했죠.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 성전환…. 이런 부분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법관을 설득했어요.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되더라고요. 진보의 능력도 그렇게 성장했어요. 이번에 울산·목포에서 기초의원을 포함해 출마한 우리당 후보들이 다 당선됐어요. 대구에선 우리 기초의원이 1등까지 했다니까요.”

시종 비장하던 이 의원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돈다. 마치 논 팔아 공부시킨 우리 아들이 이번에 서울대에 수석합격을 했다고 자랑하는 시골 어머니의 얼굴 같다. 이 의원은 지난 10여년간 지역에서, 현장에서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고 신뢰를 쌓은 결과라고 했다.
 
▲“11살 차이 남편과 결혼… 아이들에겐 보통 엄마
공부 문제 걱정하면 ‘천천히 해봐’ 그래요”

▲여의도에 버티고 선 돔형의 국회의사당을 볼때면 ‘돔구장’이 떠오른다.
정치인 싸움질은 실망스럽지만 야구는 즐거우니까 - 김제동

- 진보의 분열을 보면서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저들도 별 수 없구나, 똑같구나 하고요.

“얼마전 천안함 특위가 열렸잖아요. 그때 북이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했어요. 전 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데, 어쨌든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볼까 고민했어요. 우리 국방부는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정전협정을 뒤져봤어요. 협정 서명자가 중국·북한·유엔사, 이렇게 세 주체로 돼 있어요. 분쟁이 생기면 합의해 군사정전위원회에서 공동조사를 하도록 돼 있고, 합의가 안될 경우 한쪽 수석대표가 와서 조사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북한의 검열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지만 한쪽 대표인 북한 입장에서 조사하는 차원의 해결책은 논의해 볼 수 있지 않느냐 했더니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들이더라고요.”

솔직히 좌니 뭐니 하는데 내 생각에 난 극우민족주의자인 것 같다.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우리나라만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건강하게 열심히 군복무도 잘 마친 나는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참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단 말이다.

- 당리당론도 좋고, 토론도 좋은데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싸우는 데 넌덜머리를 내요. 제발 좀 싸우지 말라고. 의원님도 은근히 ‘전투경험’이 많지 않으신가요. 하하.

“전 평화주의자예요(웃음). 평화주의자가 왜 싸우게 됐는지 절박한 설명들은 잘 전달되지 않죠. 미디어에서 형성하는 이미지도 그렇고. 그런데 2008년 12월 정기국회부터 올해 지방선거 전까지 국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2009년 용산참사 직후인 2월 국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직권상정이 없던 적이 없어요. 민주주의의 파괴도 일어났고. 도저히 통과되어선 안될 일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상황이 죄스러웠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다시는 지지 말아야겠다고.”

이 의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강인하고 냉철한 여전사 같던 이 의원이지만, 그는 쌍용차 파업 현장과 용산참사 현장에서 많은 눈물을 쏟아냈고, 그런 그의 모습은 보도를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잔상으로 맺혀 있다. 눈물 많은 정치인 이정희, 냉철한 당대표 이정희. 그렇지만 집에서는 어떤 엄마일지 궁금했다.

- 억척스러운 엄마는 아닐 것 같은데요.

“제가 스물아홉에 열한살 차이 나는 남편과 결혼했어요. 이제 애가 둘이죠. 6학년, 4학년인데 아이랑 있을 땐 일상적인 엄마예요. 그렇다고 사교육을 많이 시키거나 볶거나 하지는 않아요. 영어숙제나 수학이 힘들다고 울면 ‘천천히 해봐. 넌 엄마 닮아서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죠.”

-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은 좀 보시나요?

“시간이 없어서 잘 못보는데 <개그콘서트>는 종종 봐요.”

- 거기 강기갑 의원님 나오시죠, 하하. 제가 예전에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강 의원님을 뵈었어요. 국회의원이란 분을 처음 뵙는 자리라 누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때 강 의원님 보면서 ‘이 아저씨는 뭐지?’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국회의원 되게 만만하네’라는 생각을 했더랬죠.

하긴 방송 초기에 나는 여러번 방송국 문앞에서 출입을 저지당했다. 매니저가 나보다 훨씬 잘생겼기 때문에 매니저는 잘 통과하는데 나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정말 외모가 뭐기에 사람을 이렇게 주눅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굴곡진 환경서 자라며 다른 사람들 삶에 관심
의원 영향력·책임 막중…‘정말 잘 살아야지’ 생각”
▲여전사 같던 이 의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현장에서 보였던…
많은 이들의 가슴에 맺혀있는… - 김제동

- 예전에 사법연수원에 특강을 간 적이 있는데 점점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고 장벽이 없다고 하면서도 뒤처지면 너희 책임이라고 하는 현실이 무서워요. 출발선이 동일하지 않으니 결코 공정경쟁도 아닌데 말이죠.

“제가 연수원 들어갔을 때가 97년이었는데, 당시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아주 드문 경우였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부의 세습이 교육, 직업, 수명의 세습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선별적 복지가 보편적 복지로 바뀌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무상급식은 그런 면에서 보편적 복지를 향한 최초의 시도인 셈이죠.”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로만 살아온 이 의원은 어찌보면 법조계의 ‘아이돌’ 생활을 보내온 것 같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거쳐 인권변호사로, 다시 진보정당의 대표로. 그 연령대의 평범한 변호사들이 하는 일들, 일상을 즐기는 대신 무대 위에 올려진 삶, 남다른 변호사의 생활을 해왔다. 적당히 자신의 삶도 즐기고 누리면서 일상을 즐기라는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유혹에선 벗어났어요. 한때 정치입문을 앞두고 아이들과 운동도 하고 과자도 구우면서 소소한 행복을 만끽해 본 적이 있죠. 베토벤 교향곡 5번을 편곡한 피아노곡을 마스터하려고 악보까지 구해놨는데 국회에 들어오면서 다 물건너갔죠. 막상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저 혼자의 삶과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더 큰 책임을 느껴요.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죠.”

사람의 본성은 타고난다지만 그래도 20대의 여성이 친구들과의 수다나 패션, 맛집, 스타일리시한 여행에 대한 관심 대신 내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의원은 다시 사법연수원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인권변호사를 선택할 생각이란다.

“제가 찢어지게 가난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유복한 가정도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지하방을 벗어났죠. 그전엔 여름에 비가 오면 늘 집안으로 물이 들어와서 요가 흥건히 젖었던 기억이 나요. 2층으로 셋집을 옮겼는데 집안에 화장실도 있고 정말 행복하더군요. 연탄가스를 맡은 적도 여러번이고. 다행히 이후엔 부모님의 일이 안정되면서 생활도 좀 나아졌어요. 어쨌든 저랑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의 삶이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건 무슨 우연이고, 왜 그런지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평탄함보다는 환경의 굴곡에서 오는 경험이 남달랐는데, 주변을 돌아보고 남을 생각해보는 성향이 자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어릴 때 이순신 장군 놀이를 하면 왜놈 역할을 할 아이가 없었다. 홍길동을 해도 다 활빈당원만 하려 하고. ‘나쁜 놈’을 하지 않으려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비단 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아마 이 의원도 어린 시절 잔다르크 놀이를 하고 놀지 않았을까 싶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시절의 이순신, 홍길동은 자꾸 안타깝게 변해간다. 그렇지만 이 의원은 그 시절의 잔다르크로 계속 남아주길 기대해본다.

2010.07.21 <정리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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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 너무 젊은, 너무 새로운… ‘정희’란 무엇인가
 
홈페이지에 자신을 스스로 소개하는 ‘40문40답’ 코너가 있다. 장단점, 보물1호, 스트레스 해소법, 징크스, 한 달 용돈, 가장 행복했던 또는 후회됐던 순간, 첫사랑, 슬럼프, 인생 최고의 거짓말 등등.

찬찬히 읽어보면 ‘무조건 열심히’ 스타일이다. 1년 내내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잠도 4시간만 잔다. “남들 놀 때 다 놀고 남들 잘 때 다 자고 언제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느냐”는 어머니 말씀을 ‘내 인생의 한마디’로 삼고 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대충 하지 뭐”라고 한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공은 요즘 떠오르는 여성 정치인이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엄청 까발렸다. 정계의 ‘스타일 아이콘’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홈페이지에도 이런 식의 접근은 없다.

민주노동당 새 대표로 선출된 이정희. 변호사 출신 41세 초선의원이다. 수수하고 친근한 외모, 논리적이고 야무진 언변, 날카롭고 성실한 의정활동…. 2년 전 민노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녀는 일찌감치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강렬한 인상도 남겼다. 단식과 육탄돌진을 불사하는 투쟁성으로. ‘압박정희’ ‘국회 아이돌’ 등의 별명을 얻은 이유다.

다른 당 사람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가슴과 영혼으로 일하는 느낌을 준다”고 극찬한다. 국회 보좌진이 선정한 ‘2009년 가장 돋보인 의정활동을 한 의원’ 1위,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정치인’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헌정 사상 최연소 정당 대표가 된 그녀를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우선 한나라당 사람 중엔 칭찬하는 이가 없는지 물었다.

“참 곤란하네요. 이름을 말할 수도 없고. 혹시 그분들이 곤란해질 수도 있는데…. 그냥 이 정도로 말씀드릴게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정책 토론을 할 때, 민노당이 이렇게 부드러울 줄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한나라당 쪽에. 서로 신뢰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4대강 예산을 놓고 격돌할 때, 제가 강기갑 홍희덕 의원과 함께 본회의장에서 12시간 서 있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러시더라고요. 민노당은 진짜로 싸우는 것 같다고, 민노당은 쇼는 안 한다고.”

어린 시절을 보면 공부벌레, 모범생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서울 방배동 서문여고 출신이고, 대입 학력고사 전국여자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하면서 운동권 학생이 됐고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대학 졸업 무렵 만난 한 여자아이가 그녀를 법조인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됐다고 한다.

 


“동두천에서 만난 여섯 살 여자아이를 아직도 못 잊어요. 엄마는 성매매 여성이고 아버지는 미군이었는데, 그 아이는 포주랑 살고 있더라고요. 아버지는 일찌감치 본국으로 돌아갔고, 엄마는 빚 2000만원을 남겨놓고 도망간 거예요. 그런데 왜 포주가 아이를 돌봐주고 있느냐? 여자아이가 좀 크면 10대가 되니까 성매매를 시키겠다는 거죠.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그때가 93년 여름이었어요. 그 아이를 보고 법조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공부를 하려고 새로 형법 책을 사서 맨 첫 장에 그 아이의 이름을 적어놨어요.”

이 대표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잊지 못한다”며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저를 쉽게 다른 곳으로 못 가게 한다”고 말했다. 그 중에는 중학교 친구들도 있다.

“제 또래만 해도 공부는 잘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여학생들은 여상에 갔어요. 저는 걱정 없이 공부했죠. 대학도 가고. 삶이란 게 그렇게 (출생과 같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안했던 거 같아요, 저와 다른 우연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그래서 내가 경험하게 된 것들, 가지게 된 지식을 같이 나누어 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0년부터 변호사로 일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참여했고 미군, 평화, 여성 등의 분야에서 꾸준히 사회운동을 해왔다. 이때만 해도 정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시절인 스물아홉에 결혼, 두 아들을 둔 엄마로서 보통사람처럼 살았다. 민노당 당적도 없었다. 민노당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18대 총선 직전인 2008년 3월 영입 제의를 받고 이틀 만에 입당을 결정했다.

“인권변호를 하면서 늘 옆에서 민노당이 하는 것을 지켜봤어요. 열심히 하는구나, 그렇게 느꼈죠. 특히 남북관계나 한·미관계와 관련해 민노당의 시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어요. 보수적인 여론이나 자기검열에 맞서 민노당이 용감하게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런 당이 어렵다고 하니까 들어온 거죠.”

입당에 대한 그의 설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놀랍다. 우선 입당 시점. 분당(진보신당)으로 민노당에 대한 비판과 실망이 가장 커져 있던 시점에 민노당을 선택했다. 입당 이유도 의외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민노당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노당이 아니라면 국회의원 안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 2년. 이 대표가 경험한 국회의원 일은 변호사와 비슷하다.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재판부 앞에서 사실을 되살려내고 해결 방법을 원칙에 맞게 내놓고 재판부가 여기에 동의하게 만드는 게 변호사 일이에요. 의뢰인이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말로 글로 풀어주고, 재판부를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끌어와야 되는 거죠.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도 같아요. 국민으로 이뤄진 재판부에게, 벌어지는 일을 쉽게 설명하고 현실의 해결 방법을 내놓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해야 되는 거죠.”

지난 6월 당 대표직에 출마하면서 이 대표는 ‘진심의 정치’를 내걸었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는 말도 자주 한다.

“정치라는 게 정책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하는 것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게 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진심밖에 없어요. 먼저 믿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게 진심의 정치예요.”

민노당은 6·2 지방선거에서 꽤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이후 민노당은 도약의 열망을 분명히 드러냈다. 도약해서 닿고자 하는 곳은 수도권, 그리고 젊은층이다. 당의 얼굴을 교체했다. 당심(黨心)의 선택은 이정희였다. 민노당은 왜 그를 선택했을까?

“우리 당이 10년 됐어요. 권영길 대표 중심으로 노동자 기반을, 강기갑 대표 중심으로 농민 기반을 닦아놓았죠. 그게 이번 지방선거에서 영·호남의 성과로 나온 거예요. 수도권 젊은층에서는 아직도 저희가 부족해요. 우리 당 득표율이 호남 17%, 울산 34% 됐는데, 수도권에서는 굉장히 낮았어요. 수도권에서 30~40대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논리적이고 부드러운 사람,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우리 당이 주장해 온 무상급식도 이번에 실현됐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건강보험 문제를 얘기하려고 해요. 건강보험 하나만 있으면 치료비 걱정 안 하도록 하겠다는 거예요. 수도권 도시민들의 관심하고도 연결돼 있을 거예요.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지지기반을 넓혀나가려고 해요.”

이 대표의 말은 명쾌했다. 나이에 비해 너무 큰일을 맡았다는 부담감은 없을지 궁금했다.

“너무 무거운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대표 출마를 결심할 때는,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이 우리 당의 과제와 일치하는구나, 그렇다면 그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선거운동을 마칠 때쯤, 초선을 당 대표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당원들의 자신감이라고 판단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고 잘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당의 매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정당의 매력’이란 말은 ‘진심의 정치’처럼 왠지 어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여러 차례 매력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민노당이 거칠고 투박하지 않느냐,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얘기들이 있었어요. 민노당의 말과 실천을 좀더 부드럽고 명쾌하게, 그러면서 유연하게 바꿔나갈 거예요. 매력 있는 정당이 돼야죠. 젊은 정치인들을 많이 부각시키려고 해요.”

2010.07.15 /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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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다시 전태일을 호명해야 하는가 - "우리는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 4년 전의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일주일 전쯤, 20대의 한 청년 당원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이 글을 시작하려는 지금 다시 내 마음을 짓누른다. 동네 가게 주인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선거 때 표 찍어달라고 열심히 다니던데, 그런 정당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앞날이나 잘 챙기라". 짐짓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뻘의 가게 주인에게 "그 당은 제가 속한 당이 아니"라며 설명하려는데 억울하고 목이 메여 눈물이 핑 돌더라는 얘기였다. 선거에 패배하여 이제는 그 이름조차 기억 속에 묻어야 하는 당을 변명해야 했던 그 청년 당원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4년 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그것은 2008213일 민주노동당을 떠나며 남겼던 글이다. "민주노동당 당원 번호 '25994'는 이제 주인이 없다"로 시작하는 그 글에서 나는 "민주노동당에 민중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오직 요란한 구호의 장식품이었을 뿐, 오로지 배제 행위에 의한 권력 싸움만 남은 자아팽창자들의 권력의지의 전시장이라고 썼다. 나는 그 글의 말미에 이렇게도 썼다. 기어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 그래서 진보신당 평당원으로 3년 반을 채울 즈음, 당 대표를 지낸 이른바 명망가들이 당 대회의 결정에 아랑곳없이 떠나는 것을 보아야했다. 그리하여 한낱 서생에 자족해온 내가 그 빈자리에 올라 어울리지 않은 직책의 무게에 허덕이며 오늘에 이른 셈이다.

 

나는 이제 다시 쓴다. 지난 총선에서 당의 존립을 지키지 못한 패장으로서, 그러나 분노보다는 슬픔으로, 슬픔보다는 쓸쓸함으로 이 글을 쓴다. 그것은 위장전입과 당비 대납, 대리투표와 비례대표 독식 등 4년 전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몰염치와 오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몰염치가 한 치의 오치도 없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온 것이 아니다. 내가 4년 전 그 글을 썼을 때, 그리고 그 글이 이른바 당을 장악한 종북 편향의 패권주의자들에게 알량한 쁘띠의 '유럽사대주의'의 발현으로 읽혀졌을 때, 이미 나는 그들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접었다.

 

나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어떤 통합이냐고 묻는 동지들을 '고립주의 독자파'로 몰아붙이고 주저 없이 떠난 이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3당 통합이 '노무현과 전태일의 만남'이라고 정의될 때 노무현 시대가 노동하는 인간에게 어떤 시대였는지 기억하는 노동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배타적 지지'를 강행했던 조직노동의 대표자들에게 묻기 위해, 그리고 진보정치가 통합진보당의 독점물이 되도록 여론 몰이에 앞장선 한겨레를 포함한 이른바 진보매체들이 이제서 이 당의 비례대표경선 부정에 새삼스레 경악하며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정말 이제 비로소 알았다는 것인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가 실현되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 되고 '개혁적'이 되는 국민참여당 출신들의 반응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노총은 무엇을 용인할 수 없고 또 어디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분당은 절대 없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전의 진보신당 대표이자 오늘의 통합진보당 대표인 여성 정치인은 왜 4년 전엔 분당을 결단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 분단의 질곡이 보수를 왜곡시켜 극우의 품에서 사익을 추구하게 했듯이, 본디 보수인 민족자주세력이 패권주의를 통해 주류 종파가 되었고 이들의 뭉뚱그려진 헤게모니 아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과 노동조직까지 실리를 챙기려 했던 공모의 결과물이 통합진보당의 실체 아니었던가. 막무가내로 패권을 휘두른 이른바 당권파들이 차라리 단순한 편이라면, 그들이 그토록 막무가내가 될 때까지 침묵하고 방관하고 용인하다가 마침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서는 사람들은 복잡한 편이다. 이제서 당권파들을 제물 삼아 몰아세우며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서있음을 입증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 왜 그 예민한 지성의 분개는 사태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늘 퇴각하는 권력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작동할까? 차라리 몰랐다면 진솔한 자기고백이 필요할 뿐, 대중의 분노 뒤에 숨어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자제했을 터이다.

 

아마도 4년 전과 오늘이 다른 게 있다면 한 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진보'라는 명분을 필요로 했던 자유주의자들까지 끌어들여 키우고자 했던 파이(권력)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13개의 숫자로 불어난 권력이 지나치게 한편에 치우쳐 작금의 갈등이 촉발되었다면, 그 권력을 다시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대한 합의에 따라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겠다.

 

롤랑 바르트가 그랬던가? '좌파(여기서는 문맥상 '진보'라 하는 게 맞겠다)의 신화'는 그것이 실제의 혁명과는 무관해지는 순간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그런데 권력정치로 변질된 진보가 여전히 혁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권력의지를 그 속에 감추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진리''법칙'이라 '섭리''운명'이라 왜곡하기 시작하는 이 순간은 동시에 이 신화의 수명이 파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역사마저 비틀어버린 불행한 동거의 파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왔어도, 권력정치의 레일에서 열차가 이탈해 완전히 전복되기 전까지 그들의 현란한 정치공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부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갈 진보신당을 옹호하기 위해 목 메이던 청년 당원의 눈동자 속에 어른거리던 열정 때문에 차마 못했던 말을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한국에서 진보는 죽었다. 진보라는 말에 담겨 있던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들은 그 가치들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권력에만 관심을 갖는 자들에 의해, 진보정치를 현실적 실리와 명분이라는 ''을 양손에 쥐고자 했던 자들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았다. 진보신당 또한 죽었다. 권력정치와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우리의 안간힘 역시 참담히 패배했다. 진보정치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던 성장주의와 결별하고자 했으나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일구어내지 못한 우리들 역시 사망선고를 받았다.

 

젊은 벗이여, 이제는 서둘러 낡고 병든 진보(정치)의 신화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땅속에 묻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들 자신에게도 권력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이 진보의 장례식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땅 속에 내려간 진보의 죽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의 씨앗으로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의 참담과 추악과 왜곡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이 쓸쓸한 봄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는다. 오웰 스스로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책'이라 했던 이 빼어난 르포르타주는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의 정치드라마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증언한 고발서의 의미를 갖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페인 인민의 열망 편에 서려고 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소련-스페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배제되고 억압당하고 끝내는 죽음을 당했는지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 책보다 먼저 발표된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라는 에세이에서 소비에트를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연합의 정치적 논리는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너무 따질 것이 아니라 함께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 아래 인민 민주주의 지향은 부르주와 민주주의에 의해 차단되었다. 스페인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식견이 너무 '오른쪽'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왼쪽'이어서" 처형당했다.

 

너무 먼 역사이야기인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 오웰의 책은 소비에트와 연결된 자신의 이해를 실리적으로 계산하는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과 언론들, 심지어 출판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한 세기 전의 상황이 2012년 한국과 너무 닮아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이렇게 '배신당한 혁명'으로 프랑코 독재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파시스트들에게 쫓겨 스페인의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나는 1980년대 파리에서의 망명시절 국제엠네스티 프랑스 지부에서 일하던 스페인 출신 2세 한 여성을 알고 지냈다. 스페인에서 쫓겨 온 그녀의 부모세대들은 그 무렵 이미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고 하나 둘씩 남의 땅에서 눈을 감았다. 동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백발의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래, 우리 삶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들은 끝까지 권력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고발서라기보다 제목 그대로 '찬가'.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여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인간들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웰은 그것을 망각 속으로 밀어낸 권력정치의 드라마를 고발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턱없이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이같이 불편한 글을. "대여섯 살부터 작가가 되리란 걸 알았다"는 탁월한 작가 오웰과 달리 내게 글쓰기는 언제나 고된 짐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쓰는가? 우리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되찾고 싶어서다. 그 노래를 한 번 함께 불러보고 싶어서다.

 

오늘의 절망스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정당운동의 첫걸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희망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길을 잃게 되었을까?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언제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에 대한 현실적 욕망으로 뒤바뀌고 진보정치가 권력정치의 주술에 갇히게 되었을까?

 

올해로 귀국한 지 꼭 10년이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과도 고스란히 겹쳐지는 이 10년 동안 내가 가장 빈번히 들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먼저 바뀌는지를 줄곧 지켜봐왔다. 그리고 진보정치와 조직노동이 스스로를 '민중권력'이라 강변하던 그 시간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그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배제된 노동자들의 숫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나는 왜 쓰는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고 인간의 고통과 시간을 건너뛰어 자유주의-진보주의 연합을 이룩한 저들의 허위와 몰락을 증언하기 위해 쓴다. 그리하여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머물러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는 아직 이 노래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알지 못한다. 이 구절을 외는 것만으로 인간의 숭고함 속으로 성큼 다가가는 것 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중졸도 안 되는, 기껏해야 지상에서 누린 지위가 봉제공장 재단사 보조밖에 안 되는 스물셋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겨준 노래.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쓴 "베를린에서 전태일을 보았다"라는 제목의 시에는 제목 외에 전태일은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의 연이 바뀔 때마다 80페니히의 가격이 매겨진 건포도빵, 1마르크 20페니히의 출근길 맥주, 장벽이 무너진 베를린광장 앞에서 파는 5마르크의 기념품, 4마르크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눈동자 없는 눈'을 지닌 신들의 전시실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건 다름 아닌 노동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까지 완벽히 삼켜버린 물신의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사물을 넘어 살아있는 인간 모두에게 가격을 매겨놓은 물신의 세계가 펼쳐놓는 매끄러운 스크린 위에 모든 것들은 풍경으로 존재할 뿐. 전태일이 그림자로서나 어른거릴 뿐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장막을 찢지 않고선 그도, 그가 사랑으로 껴안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아픔도 볼 수 없다. 이 물신의 세계에 파열을 내지 못하는, 그저 권력정치에 포섭된 노동조직이 전태일을 실체 없는 유령으로 만드는 까닭이다. 유령이 된 전태일이 노무현을, 나아가 박정희 체제가 만들어놓은 자본과 권력, 이들과 만나지 못할 까닭도 없다.

 

지난 반 년 동안 기꺼이 나의 글의 첫 독자가 되어준 진보신당 당원 동지들, 그리고 젊은 벗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간곡한 제안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리가 재창당할 당의 이름을 '전태일당'으로 하자고. 그리고 '전태일의 집' 운동으로 오늘 권력정치에 질식당한 진보좌파운동의 새로운 길 찾기를 하자고.

 

좌파정당의 이름으론 낯선가? 전태일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사유화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전태일당''전태일의 집''망자亡者와의 연대'이며 배제당하고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다가가 부둥켜안기 위해 물신의 세계에 저항하며 싸우는 정당의 정신을 당당히 선언하는 이름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으로 우리를 침탈한 데 머물지 않고 등록취소가 되자마자 곧 진보당으로 바꾸겠다는 저들에게 응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약속하기 위함이다. 전태일 자신이 그랬듯이.

 

절망할 일로 가득 찼을 스물셋 봉제노동자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고 탄식했을 때 그 희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돌아가기 위해' 죽음도 무릅써야 했던, 그리하여 기어이 그가 만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태일은 버림받고 감추어진 자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사랑이고 만남의 정신이었다. 연대는 내게 넘치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부족한 걸 떼어주는 것이다. 늘 배고픈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눠주기 위해 버스비를 아껴 수유리에서 청계천 평화시장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던 전태일의 발걸음을 정의하는 말이다.

 

진보신당 대표가 되어, 지금도 어색하기만한 옷을 입고 주로 했던 일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이런 구호들 속에서 나는 '연대'라는 말만 들으면 늘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력감과 미안함,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말일까? 단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걸 의미하는가?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것도 두 번 버림받은. 한 번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그리고 다음에는 정규직 노동조직에 의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 대해, 그들의 노조가입조차 배제된 현실에 대해 침묵하면서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정규직 노동조직 자신이 배제한 비정규직의 존재를 자본과 권력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은 염치없는 정치적 알리바이 아닌가.

 

우리가 오늘 전태일을 다시 호명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대의 노동현실에 가로놓인 이 이중의 배제구조를 외면하고 외치는 노동정치에 대해 이제는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허위의 현실에 안주해온 죽은 진보를 이제 땅 속에 묻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어이 전태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남도의 끝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 매달린 절망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간 버스에 '희망'이란 말이 붙은 것을 나는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는 전태일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고, 그리하여 죽은 전태일이 죽음을 무릅쓰려는 김진숙을 살려낸 기적이다. 김진숙의 기록 <소금꽃나무>는 내가 읽기에 '망자와의 연대'이다. 크레인 위에서 떨어져 죽어간 동료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고 기어이 크레인 위로 올라갔던 그녀가 희망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부활은 기적을 통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지금 진보의 죽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기적 아닌가? 이제 우리가 만들 당의 이름이 전태일, 그의 이름이면 안 되는가? 우리의 당의 정신이 온통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정신인 그의 정신이면 안 되는가? 평생 집이 없었던 그의 이름으로 집을 짓고 배제되고 쫓겨나고 상처받은 노동자들이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게 하는 일에 전력하는 일, 그게 새로운 정당운동이면 안 되는가?

오늘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그것이 우리가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 존재이유라고 자위해선 안 된다. 우리 자신은 검게 드리운 권력 정치의 그림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일까? 진보정당이란 몸통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우리들은 과연 민중의 고통을 따라 움직이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설움 받는 평화시장 어린 동심을 지켜보던 그의 눈을 닮은.

 

진보신당을 변명하며 목 메이던 젊은 벗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 한편 발췌해 남긴다. 이것이 내가 말한 '망자와의 연대'의 의미이다.

 

"경기대에서 '조국은 하나다'/ 육성시낭송 듣고도 울지 않고/ (……)/ 불 꺼진 취조실마냥 어둡던 망월동/ 그의 하관을 보면서도 이 악물었는데// 그를 묻고 돌아온 서울/ 심야버스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다/ 다리 난간에 덜덜거리는 허리 받치고/ 헤머드릴로 아스팔트 까며 야간일 하는/ 늙은 노동자들을 본 순간/ 이 악물며 울고 말았다/ 그가 간 것보다 그가 사랑했던 한 사내가/ 저물어가는 것이 서러웠다"

 

송경동의 시, '김남주를 묻던 날'

 

기사입력 2012-05-11 / 홍세화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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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통합진보당 파동의 원인 이해하기 -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진실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 사건과 그 뒤에 이어진 이정희 대표의 새로운 모습에 온 국민이 놀라고 있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진보정당 내에서 왜 이런 부정선거가 일어나는가, 게다가 명백해 보이는 부정선거에 왜 반성을 하지 않는가 하는 놀라움이다. 이 과정에서 총대를 맨 진보의 아이콘 이정희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파동의 주요한 특징은 당권파에 대한 공격이 난무할 뿐 그들 편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민한 정치 문제가 발생하면 학자 논객들의 입장은 늘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맞서게 돼있다. 그런데 지금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나누어 보면 일방적인 비대칭 구조이다.

 

당권파가 물러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면서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왜 버티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들만이 전해질 뿐 그들이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때리고 다른 쪽은 얻어맞는 가학증과 피가학증의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결과 총선에서 얻었던 당지지율이 반토막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이 균형잡힌 판단을 하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도 알려져야 하는 것 아닐까.

 

비례대표후보 선정을 위한 당원투표를 하는 정당은 통합진보당밖에 없다.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은 공천심사위원들이 모여서 순위를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다. 사실상 지도부의 각계파가 나눠먹기식으로 결정한다. 이러한 정치환경에서 통합진보당은 당원투표로 결정하는 진일보한 민주주의를 실시해왔다. 이번 파동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다보니 생긴 진보의 숙명이라는 점이 알려진다면 당지지율이 그처럼 급전직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당내외의 빗발치는 비판에도 당권파가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이상 그들이 완강하게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부정선거 전부터 있었던 관행이다

 

이의엽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은 53'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서 사태의 원인으로 "기존의 잘못된 관행" 등 몇가지를 말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는 "기존의 잘못된 관행이라면 과거에도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인가?"라고 날카롭게 되물었다. 이에 대해 이의엽은 말을 얼버무렸다.

 

이런 것이 그들의 딜레마이다. 오래된 관행이므로 정체성의 일부인데도 대중에게 당당하게 말을 못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반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로 그들의 입장에 서보면 말하기가 아주 난처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자칫 그들 입장을 설명하는 게 그들을 욕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점잖은 사람들 앞에서 때가 낀 배꼽을 드러낸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할 때가 됐다. 당권파들이 이미 점수를 너무나 많이 잃어서 더 잃을 것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동일 IP로 대리투표 했다는 사실도 그들의 배꼽이다. 대학생 당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강의 때문에 친구에게 대신 투표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한 친구가 두세명의 친구들 이름에 서명까지 하고 투표를 한다. 선거관리인도 동지적 관계이며 서로 알고 지내는 당원이므로 묵인한다. 그러나 정부보조금을 받는 공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거인명부 즉 당원명부를 공개하라는 유시민 대표의 요구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혹시 당원 중에 정당활동이 금지된 공무원 신분의 당원이 포함돼 있기때문이 아닐까. 다른 정당이 중앙선관위 위탁선거과에 일임하는 것과 달리 자체관리해온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렇든 아니든 간에 이런 판단을 할수 있다. 선거관리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인데 이들은 훈련받지 않은 아마추어였다. 부실 선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들에는 불법 요인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어 거론하기조차 조심스럽다. 반박논리를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다. 이정희 대표는 이런 난처함을 노무현의 상황과 비교해서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야유뿐이었다.

 

송두율 교수는 언젠가 자신의 역할은 북한의 언어를 서방의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박한 사투리를 세련된 표준어로 바꿔서 말하는 일이란 것이다. 진보당 당권파의 입장을 설명해주는 "언어"가 필요하다. 이글에서 그런 언어를 찾아보려 했다.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정치의 주체를 구분하면서 극우 온건우익 온건좌익 극좌라는 네가지 축을 설정했다. 이들 중 극우와 극좌 등 극단주의자들은 권위주의적이며 민주주의의 규칙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극우파들이 보이는 행태를 통해서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파는 본능적 직관적이어서 이런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이론이 강한 극좌파는 상대적으로 이성적이어서 이런 특성이 감춰져 있을 뿐이다.

 

보비오 이론으로 설명하려면 당권파를 극좌파로 규정해야 하는데 이것도 난처한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유권자 정서에 비춰보면 극좌파로 규정되면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뿌리를 찾아보면 80년대 극우정권에 맞서 극좌에 자리를 잡은 것은 사실이다. 그 뒤에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우경화를 거듭해서 지금 극좌와 중도좌의 사이에 서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당원들이 모두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초심을 간직한 사람들이 당내에서 힘이 세다. 이 연장선에서 말해보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쉽게 말하면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으로 독재를 하겠다는 말이다. 모순어법으로 말하자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나쁜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목표의 정당성이 수단을 정당화해준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훼손이 이뤄진다.

 

오사카 경법대 양관수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세상은 투명하고, 정직하고, 상식적 수준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비합법적 지하투쟁을 하던 수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다. 과거에 통용되었던 음습한 공작수법은 단절해야 한다."

 

과거 러시아혁명 시기에는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은행강도를 해서 자금을 징수했다거나 일본좌파는 비행기 납치도 거행했다. 당권파 주요 인사들의 기억에 이와 같은 사실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양 교수의 발언은 이런 기억조차 지워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당권파의 강경한 버티기를 엔엘의 특성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오랜 동안 엔엘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몸으로 체화된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피디는 어떤 국면에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될 일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간다. 이에 반해 주체사상파인 엔엘은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판단하면 타협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밀어붙인다.

 

당권파가 병법의 기본인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세고취화(勢高取和)와 같은 유연한 전술을 구사 못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념적 구분에 따른 규정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당권파 이해를 위한 참고자료로 보면 될 것 같다.

 

당권파의 이런 여러 가지 특성은 당내에서 패권주의로 나타났고 이것을 몸으로 겪어온 사람들은 피디쪽이다. 그들은 이번과 같은 일을 겪을 때마다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봉합해왔다. 그런데 새로이 한 솥밥을 먹게 된 식구들이 문제였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너무나 놀랍고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진보당내 민노계와 국참계의 동상이몽

 

이번 파동은 국회의석을 한석도 얻지못한 국민참여당계의 반격으로 시작됐다. 부산지역의 국민참여당계 지역위원장의 문제 제기가 도화선이 됐다. 이정희 대표는 비례대표 여성순위 1번과 2번의 결정과정에서 그리고 남성순위 2번과 3번이 바뀌는 결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 두 경우 모두 국민참여당계 후보가 뒤로 밀렸다.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있었던 참여당계 당원들에게 당내 질서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몇몇 당원들이 작심하고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은 진보신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여당을 끌어들여 당세를 넓히려고 했다. 이들에게 국민참여당은 정치적인 이용대상이었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 얻은 13석중 대부분을 당권파가 차지했다. 국민참여당의 진보통합에 반대해온 당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독자노선으로 나갔어도 2010년 지방선거 당시의 당지지율 5%대를 유지했다면 비례의석 2-3석을 얻었을 것이다. 이 주장이 근거가 있다면 민노계와 마찬가지로 국민참여계도 욕심이 문제라고 할수 있다.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 진보통합에 나섰는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당권파는 리버럴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당원 개인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 당의 정당한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국민참여당 시기에 이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결국 엉뚱한 데서 일이 터질 개연성이 있었다.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두 그룹은 지금 분당이라는 파탄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자가 대의가 아닌 실리를 위해 결합되었으므로 실리를 못 챙긴 쪽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민참여계 수장인 유시민 대표의 입장에서는 분당이 부담스럽다. 당내외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통합했는데 불과 여섯달만에 참담한 실패로 종결이 되면 정치적 책임이 너무 무겁다.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킨다는 오명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사태가 파탄으로 끝나서 분당이 된다해도 해산된 진보신당의 당원들이 유시민과 손을 잡을 것 같지도 않다. 진보신당이 끝까지 통합진보당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레프트와 리버럴이 함께 하면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지붕 세가족인 엔엘 피디 리버럴 등이 모두 작은 집을 한 채씩 장만해서 제 식구들끼리 오손도손 살면 어떨까. 그리고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모여서 연대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풍파가 일어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진보진영에서는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지금 진보통합당이 깨지면 우리사회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기사입력 2012-05-11 / 김제완 세계로 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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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정희 눈물'의 의미도 헤아리자 - '통합'진보당을 위한 변명

 

다 맞는 말이다. 비례대표 선거과정에 부정이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인 듯하다. 비난받아 마땅하고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사퇴해야 옳다.

 

다 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공연히 좀 억울한 대목도 있지 않느냐고 변호하고 나섰다가는 도매금에 함께 몰매를 맞게 되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침묵만 하기는 어렵다. 한 마디만 하고 싶다.

 

통합진보당은, 김제완씨가 지적했던 것처럼(지난 기사 참조), 적어도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실험했다. 당원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비례대표제를 뽑은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비례대표는 오랫동안 돈과 바꿔졌으며, 최근 사정이 좀 나아졌다고는 해도 밀실에서 소수의 인원들이 모여 선정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순위가 뒤바뀌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났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투표도 없었고 '순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뒤바뀌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들이 정하면 순위는 결정되는 것이었다. 당원들도 국민들도 구경꾼이었다. 그저 중앙당의 몇몇 사람이 정한 명단을 앞에 두고 도장만 꾹 누를 수밖에 없었다. 후보 개개인에 대해서는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그저 몇 십 명 단위로 묶인 '종합선물세트' 중에서 어느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원투표에 의해 비례대표를 선발한다는 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꽤 커다란 의미가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 실험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결과로만 본다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느니 못했다. 하지만 어떤가. 그렇다고 실험을 완전히 중단해야 하겠는가.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아예 그만두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정당들은 잘코사니하면서 불구경할 자격이 없으며, 나는 결백하노라 뒷짐 지고 있을 만큼 떳떳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가. 우리는 종합세트공천보다 투표부정에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도 생길 법하지 않은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태가 터진 뒤에도 통합진보당이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석고대죄하고 모두 사퇴한 뒤에 재발방지책을 찾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뭇매를 맞으며 버티는 쪽을 선택했다. 그 원인도 분파주의이며 그로 인해 더욱 악화되는 것도 분파주의가 아닐까 한다. 급작스럽게 3개 정당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지 못했고, 부정선거도 그에 대한 폭로도 그런 탓에 일어났다. 또한 이 사태로 인해 각 분파 사이의 감정적 골은 깊을 대로 깊어만 졌다.

 

분파주의는 기실 진보적 정치운동에 대한 독재권력의 탄압 때문에 생겨나고 자라났다. 오랫동안 엄혹한 탄압 속에서 자라왔으므로 철통같은 비밀유지와 동지애로 뭉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대동단결보다는 인연이 닿는 소수끼리의 단결을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과 소통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고, 내부의 동지적 관계를 국민과의 소통보다 더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언제 체포되어 어떤 고문을 받게 될 지 몰랐고 누가 프락치일지 알 수 없는 판이었다. 전대협의 경우 의장 사수대가 생겨났고, 지도부는 늘 대중들과 소통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의장사수대가 그렇게 했듯이, 동지나 지도부를 위해서라면 대신 감옥살이하는 일까지도 마다치 않았지만, 그 집단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다. 분파주의 문화는 그 과정에서 생겨났다.

 

국민에 대한 인식도 비슷했다. 말로는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고 투쟁한다고 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국민을 선전의 대상,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습관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 독재자의 권모술수에 놀아나는 그저 어리석은 집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없지 않았다. 국민과 소통할 기회를 권력에 의해 차단당한 나머지, 국민에 대한 인식 역시 관념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이론들을 학습하여 이 땅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급급했다.

 

심지어는 목적이 같고 방법만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인식했다. 힘을 합해야 할 세력이라기보다는 경쟁자라고 보았다. NL이니, PD, NLPD니 하는 편가름은 고질적이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이 지경에까지 몰려있으면서도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결국 파벌 내부의 결속과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리라.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 시작한 일이, 다른 많은 인간들을 대상으로 도구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다.

 

독재 시기에 진보운동이 계파 별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때, 자신의 수뇌부에 대한 과다한 의존과 조직내 민주주의의 결여는 어쩌면 필요악이었다. 이번 경선제도는 그 필요악을 버리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새로운 민주적 조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낡은 문화가 새로운 길을 향하려는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어쩌면 한번쯤은 겪었어야 하는 진통이었다. 이번 통합진보당의 탄생과 비례대표 직선제는 고질적인 분파주의와 당내 민주주의의 결여를 극복하려는 시도로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물론 실패로 끝나는 듯하지만, 역시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의미가 동시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진보진영의 고질적 파벌주의는 정권의 탄압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저 '선글라스 낀 사람들' 때문이라면서 우는 소리만 할 수는 없는 처지에 통합진보당은 놓여 있다. 거의 교섭단체에 육박하는 의석을 지닌 공당 아닌가. 통합진보당은 독재와의 투쟁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독재자를 닮아버린 자신들의 내면에 대해서 성찰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독재권력처럼 나 스스로도 국민과 당원을 도구로 대상으로 동원하고자 했음을 자성해야 한다. 지금의 소나기만 피하면 여론이란 어차피 또 잊어버리게 되어있다고 오판해서도 안 된다.

 

심사가 착잡할 줄로 안다. 검찰 수사도 시작될 것이고, 지금 감추고 싶어 하는 많은 것들이 속속 밝혀질 수도 있다. 더 심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당권파가 그때를 대비하자면 자파 국회의원의 수를 늘려둘 필요도 있겠지. 하지만 그 선택은 진보정치를 몇 백 걸음 퇴보시키는 길. 그러니 진퇴양난이겠지.

 

어려울 때는 오로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 자신이 진보운동에, 진보정치에 몸담기로 결심했던가하는 갓 스무 살 때의 초심으로. 그들은 과연 '한줌밖에 되지 않는' 계파와 '동지'들을 위해서 진보운동을 시작하였던가.

 

진보에 실망했다고, 다시는 표를 주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물론 분노와 실망은 이해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양면성이 있다는 점도 함께 인식하자. 그게 균형 잡힌 시각 아니겠는가. 그들은 적어도, 통합을 해냈고, 당원투표를 도입함으로써 한걸음 진보하고자 시도했던 것 아닌가. 잘 해보려다가 낡은 관성을 채 극복하지 못해 생긴 잘못 아닌가. 작금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은 너무 야박한 것 아닐까. '이정희가 그럴 줄은 몰랐다'고 말하기 전에, 그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도 한번 헤아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판은 하되 균형은 잡자.

 

이번 사건으로 진보의 가치와 의미는 모조리 탕진되었는가. 통합진보당이 이토록 심하게 비판받는 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그들에게 걸었던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 아닌가. '종합세트공천'보다 투표부정에 훨씬 민감한 것은,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가 훨씬 컸다는 반증 아닌가. 다독이고 타일러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비아냥이나 자포자기보다 훨씬 소중하지 않겠는가. 통합진보당은 계파주의의 극복을 위해 통합을 이뤘고 당내민주화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다가 좌초했다. 물론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다시 시작하겠노라 약속한다면 다시 기회를 주어 보자.

 

실패학이라는 것이 있다.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학문이다. 실패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자 노력하게 마련이니 실패학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실패의 주역에게 그 원인을 정확하게 판명하여 재발을 방지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처벌을 감면하는 제도까지 있다고 한다. 예컨대 설계나 시공 미숙으로 건물이 붕괴되면 관련 건축인들이 실패를 정확하게 규명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처벌을 감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의욕적인 실험과 참혹한 실패도, 실패학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다면 길게 보아 훌륭한 경험과 교훈이 되리라 믿는다. 물론, 전제조건은 있다. 먼저 실패를 낱낱이 고백하고 참회하며 재발방지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지 않았던가. 진정성을 가지고 대처해가다보면 국민들이 이해하고 처벌을 감면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통합진보당은 다소 억울한 점이 없지 않더라도, 잘못보다 너무 많이 비판받는다는 분노가 있더라도, 그래도 석고대죄해야 한다.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방식으로 획득한 모든 것들도 물론 기꺼이 포기하라.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보라. 그 출발점에서 당신들에게 과연 무엇이 있었는가. 투옥과 고문과 겁먹어 침묵하는 대중들 말고 그 무엇이 있었는가. 이만큼 온 것도 큰 진보이다. 지금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그때보다는 크나큰 진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처음부터 차곡차곡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가길 바란다. 국민과의 소통과 신뢰는 정치의, 특히 진보운동의 유일한 생명이요 힘이다.

 

기사입력 2012-05-11 / 한만수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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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거 부정' 사태 이후를 고민하자 - '미션 임파서블'? 통합진보당을 점령하라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가 이 나라 온 언론과 SNS를 도배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그 원인 진단에서부터 해법 제시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은 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커다란 실망감의 토로에서부터 이른바 당권파의 이야기도 들어 봐주자는 동정 표시에 이르기까지 태도도 다양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 노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별 다른 토론이 없다. 어쨌든 당권파는 구태를 청산하고 반성해야 하며 통합진보당은 정치적 속죄를 통해 구원받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최선의 경우에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는 깊은 상흔을 털어 낼 길이 없어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만 묻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대선이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4.11 총선의 역사적 패배 때문에 이른바 '2013 체제'에 대한 꿈이 반쯤은 날아가 버린 상태인데, 야권연대의 한 쪽이 처절한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 나머지 반의 반도 찢겨진 셈이다.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보수 정권 5년을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만약 지금 이대로 통합진보당이 주저앉아 버리면, 5년이 10년이 되고 20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전후로도 확인했듯이 민주통합당과 거기에 결합해 있는 정치세력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데, 그들을 올바르게 견인하고 좀 더 폭넓고 튼튼한 반-보수 연합정치를 추동할 수 있는 제대로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당 하나 없는 상태에서, 도대체 무슨 수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복지국가를 실현하고 한단 말인가? 나는 비록 민주통합당이 지금이라도 올바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대로, 그런 변화의 조짐은 조금도 보이질 않는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통합진보당을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는 지금, 문제를 다시금 적당히 봉합한 뒤, 이 당을 그대로 안고 갈 수는 없다. 그 길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이제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통합진보당의 환골탈태,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이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라는 것, 그 길을 가는 게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지금 많은 시민들을 지독하고 긴 '멘붕'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진짜 문제다. 무엇보다도 다음 두 가지의 치명적인 난제가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이른바 당권파를 포함한 ()민주노동당계 일반의 정치적 세계관에 얽힌 문제다. 여러 차례 '친북' 또는 '종북주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그 세계관 말이다. 악의적인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긴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시민들에게 진보와 친북은 동의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사태를 낳은 당권파의 패권주의도 이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해 내지 않고는 진보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그 다음도 문제다. 자주파 NL 세력이 진보 정치를 망쳤으니 이제 평등파 PD 세력이 나서면 된다는 식의 손쉬운 해법은 없다. 그런 일은 물리적으로도 가능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PD세력이라고 나을 게 없다. 그 세력의 다수는 지난 번 통합진보당 결성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과는 결코 함께 진보 정당을 할 수 없다며 합류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고, 그들의 진보신당은 유권자들의 외면으로 소멸하고 말았다. 그렇다. 한심하게도 이제 쪽박을 찬 그들 중 어떤 이들은 NL 세력이 진보정당을 자유주의자들에게 헌납하게 생겼다고 혀를 차고 있지만, 이제 진보와 자유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부터 다시 따져 보며 정말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보 정치의 정체성을 새로이 제대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누군가는 '역사의 간지'라 했지만, 재밌게도 지금 NL 세력이 '통일전선'의 상대로 생각해서 불러 들였던 자유주의자들이 단호한 결기로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NL 세력의 (희망하고 예견된) 몰락은 그 자유주의자들이 PD 세력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진보 정치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먼저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정치적 세계관과 패권주의 문제를 보자. 지금 문제는 그 당권파를 단순히 '척결'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개탄한 대로 그들의 이념 지향은 정말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낡았고 불투명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의 상징인 북한과 연결된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과 거기서 비롯된 정치적 생존에 대한 강박이 패권주의도 낳았고 이번 사태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무슨 '국가보안법'의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접근은 '민주주의 원칙''사상의 자유'라는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NL 세력의 정치적 세계관을 단순히 북한하고만 연결시켜 이해하지 말고 좀 더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사적인 지평 속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식민지나 외세의 침탈을 경험했던 제 3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좌파 운동은 자주 민족주의와 결합하곤 했다. 심지어는 일본의 공산당조차도 최근까지 일본이 미국의 반()-식민 상태에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NL 세력의 정치적 지향도 이런 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우리는 그들을, 단순히 무슨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힌 광신자들로서가 아니라, 외세의 부당한 지배로부터 벗어난 자율적인 정치공동체에 대한 나름의 정의로운 지향을 가진 '좌파 민족주의자들'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진보 정치의 발전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도 했다.

 

물론 나로서는 그 좌파-민족주의적 이념이 형편없이 낡고 틀렸다고 보지만, 여기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세세하게 따질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고 정치도 하게끔 내버려 두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는 단순한 사상의 다원성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아주 극단적으로 이단적인 사상에 대한 관용과 포용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만약 그들이 민주공화국의 근본 틀과 원칙 그 자체를 폭력적으로 훼손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치적 자유는 넘치다 싶을 정도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게 민주주의다. 그리고 사실 국가보안법적 논리가 아니라 바로 이 민주주의 원칙만이 우리가 그들을 비판할 때 의거하는 참된 준거여야 하고, 또 그것만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그들의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비민주적인 행태와 습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은 그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덕적-정치적으로 압박하는 것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통합진보당의 민주적 재구성'을 통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물론 통합진보당은 지금 '진성당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당권파를 포함한 범NL 세력이 과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 민주적 재구성이 어떻게 가능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다수결주의 없는 민주주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성당원제가 참된 난관은 아니다. 통합진보당원들은 그것이 통합진보당의 민주성과 진보성을 상징한다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우리는 진성당원제의 민주성에 대해서부터 제대로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통합진보당은 당비로만 운영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은 일반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나온 막대한 국고보조금으로도 운영된다. 그것은 그 당이 획득했던 대중적 지지의 결과다. 그렇다면 그 당의 의사결정을 오로지 당원들에게만 맡기겠다는 것이 정말 민주적인지는 심각하게 의심스럽다. 시민적-민주적 견제와 감시가 수용될 통로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전체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라는 더 큰 틀에서 보면 심각하게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에 그 당내 민주주의마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는가? 통합진보당이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고 지지자들의 뜻에 제대로 반응하도록 요구하는 광범위한 시민적 압력, 이 정당한 압력을 더 거세게 가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통합진보당에 실망해서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정을 갖고 더 강한 감시를 해야 하는 이유이며, 또 그것이야말로 통합진보당의 민주적 재구성을 위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문제에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좀 더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든 이 진성당원제를 아예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하나다. 통합진보당의 민주적 재구성은 통합진보당 내 '다수파의 재구성'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가능할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바라는 이들이 대거 통합진보당에 입당을 해 버리면 어떨까 싶다. 우선, NL 세력의 패권주의가 싫다며 당을 떠났던 ()진보신당원들이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 그 밖에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추구하는 사회단체나 운동 조직들이 가능한 대로 통합진보당으로 합류하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민주적-진보적 발전을 간절하게 염원하고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보통 시민들이 많이들 나서 통합진보당 당원이 되면 어떨까 싶다. 진성당원제가 통합진보당의 근간이라 하니 그 안에서 진보적 시민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면, 통합진보당의 환골탈태는 그 진정한 물질적 토대를 갖추게 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시민정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통합진보당 점령 운동 정도로 이 과제를 설정해 두자. 물론 이 운동의 참된 목표는 무슨 패권 추구가 아니라 통합진보당이 민주성과 진보성을 제대로 확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내가 위에서 제기했던 두 번째 문제가 심각한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 아마도 ()진보신당원들은 통합진보당 입당을 완고하게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NL 세력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적 시민들이 걸림돌이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들 때문에 진보 정치에서 '노동'이 사라져 버릴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통합진보당은 진정한 진보 정당이기를 멈추고 민주통합당과 별반 다를 게 없어져 버린다는 투의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진보 정치에 대한 이런 이해 역시 매우 낡고 또 심지어 <보수적>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진보정치를 노동하고만 연결시킨다거나 '보수-자유-진보'라는 정립 지형 속에서 이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적-실천적 과제 해결과는 무관한 지독한 도그마일 뿐이다(관련기사 보기). 이번에 통합진보당 내부의 환부가 이런 식으로라도 드러나고 시민적 압력을 통해 그 환부의 실질적 제거라는 전망이 얼마간이나마 현실이 된 데에는 그 PD 세력이 경원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공이 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이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정의의 이념과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며,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진보성은 명백하다. 그리고 사실 그런 차원의 진보성의 실현은 ()진보신당의 PD 세력이 결과적으로 과거에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일이다. 그들은 이번 사태에서 반면교사의 형식으로나마 바로 이점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진보정치가 노동 없이도 가능하다는 투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보 정치를 모든 종류의 부당한 억압과 지배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추구라는 차원에서 이해했을 때, 노동자 계급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괄 없이 진보 정치가 가능할 리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우리 노동운동이 바로 그 점에서 얼마나 진정으로 진보적인지는 전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이 땅의 모든 노동자는 또한 동시에, 아니 노동자이기 이전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시민'임을 잊지 말자. 만약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노동자계급을 중심에 두는 고루한 역사철학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로 한다면, 노동 운동이 추구하는 대의의 정당성은 근본적으로 <모든> 시민이 '존엄의 평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포괄적 시민성의 원칙에 있을 수밖에 없다. '노동 대 시민'의 이분법은 원천적으로 틀렸다.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는 동시에 시민적이기를 거부하거나 시민적으로 되는 데 실패하는 노동 운동은 제대로 전진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여기서 하는 이런 정도의 이야기로 그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곤 믿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노동 운동에 뿌리를 둔 진보 정당 운동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 보자는 투의 태도는 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진보 정당 운동이 지금 여기까지 오는 데도 거의 30년이 걸렸다. 진보정치에 무슨 백마 탄 왕자라도 나타나기를 기다리자는 건가?

 

어쨌든 지금 모두가 진보 정치의 올바른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할 것 같다. 민주-진보 진영 전체가 맞고 있는 지금의 이 혹독한 위기 상황을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한다. 자칫 우리 사회의 참된 진보적 발전이 아주 나중으로 미루어지거나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 위기의 극복은 진보 정치를 이해하는 우리의 정치적 사유 습성과 행태에 대한 전면적 쇄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단순한 당위가 아니라 지상 명령이다. 낡은 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시민과 함께 하는 진보 정치가 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수많은 시민들이 통합진보당으로 몰려가서 그 당을 완전히 새로운 시민적 진보 정당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 당을 허깨비 같은 NL적 의제 같은 것에 매달리는 정당이 아니라 시민들과 더불어 일구어내는 민주적 축제 속에서 인권과 민생-복지 같은 참으로 진보적인 의제들의 해결을 최우선의 정치적 과제로 삼는 그런 정당으로 탈바꿈시켜 낼 수 있다면, 이번의 위기는 그야말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말 하루빨리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사그라져 가는 평화복지국가의 비전도 새롭게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가 진보 정치의 참된 민주적 메타모포시스가 이루어지는 긴 과정의 소란스러운 통과의례 정도로 마무리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기사입력 2012-05-11 /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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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체사상, 실체 알고 보면 별것 아니다 - 우리는 모두 주사파다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로 알려진 황장엽이 2010년 10월 사망한 직후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었다. 진보는 반대, 보수는 찬성의 구도를 보였으나 우파 진영 일각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반대론의 근거가 뜻밖이었다. 그가 남한에 와서도 주체사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발전, 파급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일반국민에게는 황당한 말로 들릴만했다.

이 당시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발전시키려 했던 의도가 강했다"며 "주체사상은 북한 인권 문제와 다른 문제로, 차라리 주체사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강조한 게 아니라 주체사상을 남한에서 더 개선해 파급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혼란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보수우파 진영 일각에서 그가 주체사상을 왜 버리지 않느냐, 혹시 위장 전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는 강연이나 저술을 통해서 줄곧 '인간중심의 철학'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체사상의 별칭이다.

그가 남긴 저서에는 실업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한의 청년들에게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가 말하는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철학은 고난에 처한 사람이 역경을 뚫고 목표에 이르게 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 준다. 그래서 북한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지배이념이 되었다.

주체사상을 막연히 북한의 독재를 합리화시켜준 괴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사갈시해온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말이다. 그런 것이라면 위험할 게 뭐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더구나 주체사상의 핵심인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말로 들린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하기가 어렵다. 주체사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통적 좌파의 세계관과 비교해 봐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뒤집으며 탄생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일정한 조건에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될 일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합리주의이다. 이에 비해 주체의 인간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면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신념의 인간이라 불린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3대요소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중 의식성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북한의 선전포스터에서 보이는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경구는 이 같은 특성을 잘 보여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FIFA 랭킹 꼴찌였던 북한은 랭킹 1위의 브라질에 대등한 게임을 펼친 것도 소위 주체축구의 힘이라고 선전했다. 2대 1로 패하긴 했지만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놀라운 힘의 원천인 의식성은 주체사상을 매우 독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주체사상의 이 같은 특성은 우파적 관념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80년대에 PD(민중민주 계열) 쪽의 비판을 받았고 유럽의 전통적 좌파에게 외면 받는 이유가 됐다.

이 같은 인간중심의 철학에 수령론, 유일사상 체계 등 정치적인 성격이 입혀져서 비로소 북한의 지배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의 원형인 인간중심의 철학만을 보면 남한의 지배이념과 다르지 않다. 인간중심의 철학에서 나온 "한다면 한다"와 남한의 경제발전 시기의 지배이념이었던 "하면 된다"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나. 통일시대에 남북이 함께 가져야할 이념이 이처럼 쉽게 발견된다는 것은 더없이 다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인민들도 '아이 캔 두이스트(I can doist)'이고 남한 국민들도 주사파이다.

 

통합진보당 파동 중에 이석기, 김재연 등 구당권파가 버티는 모습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당황해 하고 있다. 기존의 정치상식에 비춰보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여론이 불리할 때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전략을 써볼 만도 한데 그들은 무소처럼 밀고나간다. 도무지 정치를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놀라게 된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북한과 꼭 닮았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과의 대결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합리적으로 접근할 때 이해가 잘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자기들이 손해가 되는 일도 자초하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병법에 비춰보면 미국이 북한에 쩔쩔매면서 끌려 다닌 것은 당연했다.

이석기, 김재연 등이 지금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는 모습도 북한과 비교가 된다. 왜 진보진영에 손해가 되는 일을 그리고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일을 자초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은 바로 인간중심의 철학으로 훈련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갖 난관과 어려움에도 맞서서 끝까지 버티며 마침내 목표한 바를 이뤄내고 마는 그런 모습이 그들의 로드맵이 아닐까. 그들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자료로 삼아서 북한의 주체사상이 어떤 것인지 학습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그것도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낭만적인 아이디얼리스트의 발상으로 보일 법하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5월12일 통합진보당 사태를 주제로 한 KBS 심야토론에 나와서 한 마디 했다가 혼이 났다고 말했다. 평생 그때처럼 악명이 높았던 때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 토론에서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뿐 아니라 주사파 정당까지 한국정치에 들어 올 수 있다면서 이것이 한국정치에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야토론 게시판에 오른 시청자의 글 하나를 소개한다. "전국민이 수신료를 내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북한의 적화통일을 돕는 주사파를 인정해야 된다고? 이건 고발대상입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봄은 오듯이 북한이 아무리 싫다 해도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필자는 80년대 북한바로알기운동에 참여해서 북한 서적을 펴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차원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북한의 주체사상 별 것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것과 비슷하다. 실체를 잘 모를 때에 불필요한 공포심이 생긴다.

북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이석기, 김재연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누구와 통일하겠다는 것인가. 앞으로 원조 주사파와 통일하려면 유사 주사파쯤은 받아들일 체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번에 백신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2012-05-25 /김제완 세계로 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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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종북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선 없는 현실론'의 결과물...'의리''조직'만 남아

 

말 돌리지 말고 종북인지 아닌지 말해 주세요.”

 

‘MBC 백분토론에서 돌직구녀로 유명해진 여성 시민논객이 이상규를 몰아붙입니다. 이걸로 게임 끝! 이름도 잘 지어요, ‘돌직구

 

즉문즉답이 생명인 토론에서 ~ 그건 이렇고식으로 설명하는 순간 이미 진 거죠. 말이 길어지는 건 단칼에 쳐내지 못할 사정이 있거나 자기도 잘 모르거나, 둘 중 하나거나 둘 다거나 이거든요.

 

구당권파의 특별한화법

 

구당권파로 불리는 분들은 북한 얘기만 나오면 경직됩니다. 북핵 문제나 북한 인권 문제, 그리고 삼대 세습 문제가 그것들이죠. 지켜보는 처지에서 보면 그리 곤란한 질문이 아닌 듯한데, 이상할 정도로 유연하게 넘기질 못하더라구요.

 

이분들의 답변에는, 뭐랄까, 정해진 패턴이 있는 것 같아요.

 

북핵 문제 : 원칙적으로는 반핵이다. 다만, 미국과 맞서야 하는 북한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인권 문제 : 당연히 인권은 소중하다. 다만, 엄혹한 상황에서 나라를 유지해야 하는 북한의 형편을 고려하자면

삼대 세습 : 우리 기준으로 볼 때는 참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 내부 문제로서

 

이렇게 일반론 북한의 특수성으로 흐르죠. 이게 참 답답합니다. 순서만 바꿔도 완전 다를 텐데 말이죠.

 

북한의 특수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평화인권이라는 가치는 어떤 체제도 거스를 수 없는 보편적 가치다.”

세습은, 북한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몰라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이렇게만 시작해도 충분히 얘기를 풀 수 있습니다. 앞의 두 문제는 정전과 평화협정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죠. 세습도 현실의 북한 정권을 부정하고서야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느냐로 가면 되거든요. 실제로 중국은 물론 미국도 이렇게 접근하잖아요?

 

과거의 덫에 사로잡히다

 

저는 종북주의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00주의‘00을 기원이자 목표로 삼는 이념(신념)’이란 뜻입니다. 가령 자유주의라 하면, ‘자유를 개인의 기원이자 목표로 삼는 이념이겠죠. 따라서 ‘00’가치를 담습니다.

 

그런데 종북이란 게 무슨 가치란 말입니까? ‘북한 추종이 존재의 기원이자 목표다? 웃기잖아요? 설령 그렇더라도 북한의 무엇을?’이라는 게 따라 나와야만 합니다. 그 순간 별 게 아니게 되는 거죠.

 

저 보기엔, 종북주의라는 프레임을 만든 사람도, 그 프레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모두 과거의 덫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싶습니다.

 

80년대 중반에 이른바 강철서신이 학생운동권을 강타했더랬죠. 별 것도 없어요.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내세운, 참 소박한 이론이었습니다. ‘주체사상말이죠. 한국을 미제의 식민지로 규정한 식민지반봉건(반자본)’론이라는 걸 곁들였죠.

 

정작 학생들을 사로잡은 것은 이론보다는 품성론이었습니다. 사회주의에 흠뻑 빠졌지만 자유분방하던 학생들에게 바른 생활의리는 매서운 질타였습니다. ‘대중 노선은 비밀스럽던 운동을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해 줬고요.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이들에게 주체사상 같은 이론은 더 이상 없다고 봅니다. 남은 것은 현실적인 힘뿐이죠. 민주노동당을 장악하고 급기야 현실 권력 근처까지 다가가게 한 바로 그것, 의리와 조직! 이것이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의 바탕에 깔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아닌가 싶습니다.

 

노선 없는 현실론이 그들을 궁지로 내몬 겁니다. 낡은 이념을 대체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곧장 과거의 뿌리를 캐내는 쪽으로 몰렸다는 거죠.

 

그걸 반성하지 않은 채 그냥 들고 왔던 게지요. 이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넘어갔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죠. 조중동이 물고 늘어지고, 국민들 관심도 집중되고 있으니까요.

 

결국, 북한 문제에 대답을 잘 못하는 것은 말 못할 사정도 있고’, ‘자기도 잘 몰라서그런 겁니다. 분명 시대착오적인 논란이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이념이 필요한 때

 

이상규가 백분 토론 다음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더군요. 답답했습니다. 사상의 자유는 남들이 말하지못하는 사상을 말할때는 빛나지만, 말 못할 것을 숨기는 경우에는 초라합니다.

 

물론 돌직구녀는 전 국민이 지켜보는 데서 대답을 강요했습니다. 엄연한 폭력입니다. 허나 어쩝니까? 그럼 대답 안 할 겁니까? 양심수와 정치인은 엄연히 다른 것을요.

 

진보=종북의 얼개를 짠 저들은 통진당 당사를 압수수색하여 당원 명부를 가져갑니다. 새누리당은 연일 종북주의자 축출을 외칩니다. 급기야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자 분향소가 털리고 맙니다.

 

분향소가 헐리고 한 여학생이 울먹이며 들고 있던 손팻말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22명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이 철거당했습니다.”

 

진보 정치인을 10명 넘게 배출했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고통과 슬픔을 호소하는 처지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금이야말로 진보진영의 이념을 마련하는 쪽으로 뛰어들 때입니다. 진보의 틀을 짜는 데로, 진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이념을 장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자는 거죠. 있지도 않은 것, 단단한 것, 꽉 짜인 것 말고 가장 기본적인 것,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 그 안에서 호소하기보다는 당당하고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이념 말이죠.

 

희미한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구당권파만이 아니었습니다. 내세울 것 없는 진보이기는 이짝 저짝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의원들이 진보우파를 표방할까요.

 

우한기 -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진보신당 당원이고, 17년째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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