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억겁을 견딘 ‘ 차돌’ 섬, 백령도 ~ 기기묘묘한 절벽과 바위 병풍에 숨이 헉!
깊이 50㎞ 지구 속 엿볼수 있는 현무암지대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다는 천연 비행장도
야무진 차돌이 가는 모래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까?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가면, 5억~10억년에 이르는 그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선 또 당시 바닷가 펄 위에 새겨진 물결무늬가 마치 엊그제 생긴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 있다.
18일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두무진을 찾았다. 거대한 담회색~회백색 절벽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백령도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숨막히는 절경이다.
같은 규암층이라도 자연의 변주에 따라 전혀 다른 연출
동행한 이광춘 상지대 명예교수(지질학)는 “원생대 후기에 형성된 사암층이 변한 규암층이 백령도 지질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며 “두무진을 이루는 규암은 석영이 주성분인 워낙 단단한 돌이기에 장구한 세월을 견뎌내고 아직 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돌이란 석영 또는 석영으로 이뤄진 규암 같은 단단한 암석을 가리킨다.
백령도는 지질학적으로 황해도 옹진반도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약 1억2천만년 전 현재의 한반도 꼴이 형성되기 이전 백령도와 경기도는 전혀 다른 땅덩어리에 속해 남반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 그에 앞선 약 10억년 전 한반도는 판게아 이전의 초대륙 로디니아에 속했을 것으로 이윤수 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추정한다.
당시 백령도의 위치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백령도의 지층이 형성되던 환경이 어땠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두무진 바닥의 규암을 자세히 살펴보면 빨래판 같은 무늬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당시 물결의 흔적이 마치 화석처럼 남았다. 바닥에 모래층이 비스듬히 쌓인 단면인 사층리도 보인다. 이 교수는 “물결 흔적 마루의 형태와 방향을 통해 지층의 위·아래는 물론 당시 물이 어느 쪽으로 흘렀는지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두무진의 규암층은 두께가 650~700m에 이른다. 조간대에 흘러든 모래가 퇴적한 뒤 땅속에 묻혀 사암이 되고, 지하 깊은 곳에서 고온과 고압을 받아 변성돼 규암이 됐다. 이후 지각이 솟아오르고 침식을 받아 땅위로 올라온 것이다.
같은 규암층이라도 자연의 변주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남포리 콩돌해안엔 두무진의 웅대한 거석이 오랜 세월 바닷물에 밀리면서 서로 부딪쳐 만들어진 매끄러운 콩알 모습의 잔자갈이 깔려있다. 밀려가는 파도에 잔자갈끼리 부딪쳐 내는 ‘쏴아’ 하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렸다. 콩돌해안엔 머잖아 잔자갈이 될 잔 금이 많이 간 규암 바위가 먼 과거의 물결자국을 간직한 채 놓여 있다.
엄청난 지각변동 받아 지층이 엿가락처럼 휘늘어진 장관
콩돌해안에서 방조제를 건너면 세계에서 두 곳밖에 없다는 천연비행장인 사곶해변이 나온다. 여기서 규암은 직경이 0.3㎜에도 못 미치는 가는 모래가 된다. 석영이 주 성분인 이 모래층은 바닷물을 머금으면 단단해져 대형 버스도 해변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군부대가 사곶 모래밭과 육지 사이에 3㎞ 길이의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한 데 이어 90년대에는 사곶과 콩돌해안 사이를 간척해 해류 변동을 불러왔다. 전문가들은 콩돌해안에 큰 자갈이 많이 눈에 띄고 있고 사곶의 모래밭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며, 두 지질 명소가 앞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려면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김정섭 백령면장은 “지난해 공군이 사곶에서 항공기 이착륙 계획을 세웠을 정도로 상태는 양호하다”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새로운 해안시설이 어떤 환경변화를 불러왔는지는 조사된 적이 없다.
백령도는 대부분 원생대 후기 지층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밑에 있는 중화동층은 깊은 대륙붕의 펄이 쌓인 이암이고, 그 위엔 얕은 대륙붕에서 사암과 이암이 교대로 쌓인 장촌층이 있다. 두무진층은 조간대의 사암이 쌓인 가장 위층이다.


장촌리 용트림바위 부근 해안에는 평온하게 쌓인 장촌층이 고생대가 중생대로 바뀌는 변혁기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받아 지층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늘어난 장관을 펼쳐 보인다.
어두운 색의 점판암·천매암과 밝은 규암이 교대하며 독특한 무늬를 이룬 지층은 높이 약 50m, 길이 약 80m인 해안절벽에서 180도로 꺾이며 대규모 습곡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대청-소청도와 묶어 유네스코 지질공원 추진할 만
황상기 배재대 교수(구조지질학)는 “약 2억5천만년 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지각변동 때 땅속 6~7㎞ 깊이에서 옆에서 누르는 강한 압력을 받아 습곡구조를 형성한 뒤 융기와 침식작용을 받아 지표에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림 참조)
진촌리 물범바위 옆 하늬해변에는 직접 시료를 채취할 수 없는 지구의 깊숙한 내부를 엿볼 수 있는 현무암지대가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가운데는 황록색 암석이 박힌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약 600만~700만년 전 지하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지하 40~60㎞에 있던 맨틀물질을 붙잡아 지표로 나와 굳은 것이다.
이광춘 교수는 “백령도는 지구에 생물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인 상원계의 지층이 빚어내는 멋진 풍광과 독특한 해안지형이 발달해 있어 대청·소청도와 묶어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으로 추진할 만하다”며 “이때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지질전문가 확보, 안내 시스템 구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령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절경 만드는 규암
흰색의 단단한 돌인 규암으로 이뤄진 곳 가운데 빼어난 경관이 많다. 상대적으로 쉽게 풍화돼 부스러지는 화강암과 달리 단단한 규암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의 등선폭포와 구곡폭포는 백령도와 마찬가지로 원생대 때 퇴적한 사암이 변성돼 굳은 규암지대에 위치한다.
이밖에도 춘천 삼악산 들머리, 경기도 소요산, 전남 해남 달마산, 전남 신안 홍도 등도 규암으로 이뤄져 있다.
규암은 이산화규소(SiO₂)로 이뤄진 석영이 주성분이다. 석영은 풍화에 강하기 때문에 모래로 남는 대표적인 광물이다. 석영 중에서 맑고 투명한 것을 수정이라고 한다.
강이나 바다에서 모래가 쌓여 굳으면 사암이 되고, 이 사암이 지하 깊은 곳에서 높은 압력과 온도을 받아 변성작용을 일으키면 규암이 된다.
◈ 점박이물범

백령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점박이물범 서식지이다.
겨울 동안 중국 랴오둥 만 얼음바다에서 번식한 뒤 이듬해 봄 새끼를 데리고 남하해 여름을 보내는 곳이다.
약 300여 마리로 추산되는 백령도의 점박이물범은 썰물 때 드러난 바위 위에서 쉴 수 있는 하늬바다 앞 물범바위, 연봉바위, 두무진 앞 물범바위 등 세 곳에 주로 머문다. 특히 하늬바다 앞 물범바위는 가장 많은 물범이 모이는 곳인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8~9월에 최대 250여 마리까지 확인한 바 있다.
최근에는 이 물범이 백령도는 물론 서해 전 해안과 남해, 동해 경포호 주변에까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가운데 서산 가로림만과 강원 경포 순긋해수욕장은 백령도를 빼고 가장 주요한 서식지이며 포항, 영덕, 울진, 거제, 통영, 부산 낙동강하구 등에서 점박이물범이 목격되거나 죽은 채 발견됐다.
고래연구소는 지난해 경포에 출현하는 물범의 유전자검사 결과 백령도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랴오둥 만의 점박이물범이 서해와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진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고래연구소는 위성추적을 이용해 물범이 중국 랴오둥 만을 출발해 중국 산둥반도와 백령도 북쪽을 거쳐 전남 해남까지 회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점박이물범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있지만 여러 위협에 놓여 있다. 물범은 모든 해역에서 어구에 걸려 질식사한 채 종종 발견되고 있다. 어민과의 마찰도 심하다. 백령도 하늬바다에도 해조류를 채취하는 어민과 낚시꾼이 종종 상륙해 물범을 쫓고 있다. 어민들은 바다에 쳐 놓은 통발에서 물범이 우럭이나 광어, 까나리를 훔쳐가 피해가 크다고 주장한다. 백령도 다음의 서식지인 가로림만에는 대규모 조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배보람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활동가는 “백령도의 물범 등 생태자원을 활용한 생태관광을 위해 주민을 대상으로 생태해설사 양성 교육을 하고 있다”며 “지형과 지질학적 명소도 생태관광의 요소로 적극 활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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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 다대포 해안 ~ 공룡시대 퇴적층 교과서 ‘2천만년 시간여행’
문 밖 나서면 바로 백악기 그들의 놀이터
지금의 아프리카 사바나 기후 흔적 ‘뚜렷’

아파트 문을 나와 10분만 걸으면 공룡 서식지에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부산 다대포 일대가 그곳이다. 고성, 해남, 시흥처럼 멋진 공룡박물관은 없지만, 언제라도 기분이 내키면 산책삼아 중생대 백악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부산 사하구 다대2동의 아파트 단지와 두송중학교를 지나자마자 범상치 않은 바닷가와 마주친다. 바닥에 붉은 암반이 깔려 있고 절벽에는 지층이 시루떡처럼 층을 이룬 모습이 독특하다.
조각류의 공룡알 화석 발견
지난달 30일 백인성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의 안내로 다대포 해안을 찾았다. “지금 우리는 약 8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범람원을 걷고 있다”고 백 교수가 말했다.
메마른 건기가 끝나고 우기에 접어들자 강물이 저지대로 넘쳐흘렀다. 강둑 넘어 평원의 둥지에 알을 낳은 작은 초식공룡이 안절부절했다. 키 큰 겉씨식물의 잎을 뜯으며 느긋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던 거대한 초식공룡의 모습이 조선소 타워크레인과 고층아파트 건물과 겹쳐졌다.
다대포항 건너 바다로 삐죽 뻗어있는 두송반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백악기 퇴적층은 지금의 아프리카 사바나처럼 건기와 우기가 뚜렷했던 당시의 아건조 기후를 잘 보여준다.
검붉은 이암은 그 증거이다. 강물에 실려온 진흙이 오랫동안 공기에 노출돼 철 성분이 붉은 산화철로 바뀌었으며, 석회질토양이 만들어졌다. 공룡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또는 식물을 먹기 위해 건조한 범람원의 저지대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백 교수는 2004년 이곳에서 초식공룡인 조각류의 공룡알 화석을 발견했다.
붉은 이암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노란색 또는 흰색의 석회질 덩어리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범람원 식물이 지하수를 빨아들인 뒤 수분만 증발시킨 결과 뿌리 부근에 석회질이 농축돼 생긴 것으로, 건조기후의 또다른 증거이다. 국내에서 이런 칼크리트(석회질 단괴)가 여기처럼 다양하게 나오는 곳은 없다.
천혜의 지질유산, ‘백악기 공원’ 만들 생각도 없나

옛 지진의 흔적도 남아있다. 보통 마그마가 지층을 뚫어 암맥을 이루지만, 다대포에는 퇴적암인 사암으로 된 암맥이 있다. 미처 굳지 않은 이암을 뚫고 지진충격으로 액화된 사암이 관입하거나 빈 틈을 모래가 채운 결과이다.
절벽에는 이암, 역암, 사암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홍수로 떠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진흙층을 파낸 모습도 있다. 백 교수는 “지층 하나하나가 수천~수만년 동안의 환경변화를 담고 있다”며 “백악기 말 퇴적층의 교과서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도시에 위치한 이런 지질유산을 ‘백악기 공원’으로 관광자원화하거나 교육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약수터 등을 만드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들어서고 있고, 청소년 과학교육을 위한 시설이나 안내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백 교수는 “두송반도를 비롯해 몰운대와 송도 해안산책로를 합쳐 도시 지질공원으로 만들면 훌륭한 관광·교육 자원이 될 수 있다” 며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는 안내판 설치, 탐방로 개설, 전문가이드 양성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불바다 휴식기에 만들어진 다대포 분지
무엇보다 이런 지질장소에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산책로 조성 때 지질학 전문가가 참여한 것으로 안다”며 “송도해수욕장에서 이 산책로와 암남공원을 연결하는 송도해안볼레길에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산책로 인근 섬인 두도에서는 공룡의 알과 발자국이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
부산/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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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강암 돔의 ‘보고’ 불암산 ~ ‘공룡 시대’ 태동한 봉우리에 숨은 ‘불의 기억’
곳곳에 미소지형, 천연기념물 지정될 만해
탄생 때 극적 사건 말해주는 포유암 ‘특이’

공룡시대에 태동한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가 천년고찰의 마애불을 굽어보며 햇빛에 반짝인다. 국립공원도 천연기념물도 아니지만, 이 숨겨진 명산은 오늘도 등산객으로 붐빈다.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경계에 자리잡은 불암산(해발 507m)은 아파트 숲 한복판에 자리잡은데다 지하철 역을 나와 2시간 남짓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수많은 탐방객이 찾는다. 그러나 정작 이 산의 진가를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과 구별되는 이곳만의 특징
지난 14일 진명식 제주화산연구소장의 안내로 불암산을 답사했다. 봉우리에서 급경사를 이뤄 시원하게 내리뻗은 암벽이, 물길이 만든 줄무늬 얼룩과 소나무 숲과 어울려 절묘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진 박사는 “불암산에는 정상을 이루는 암봉을 포함해 13개의 크고 작은 화강암 돔이 있다”며 “학술가치가 큰 미소지형이 곳곳에 있고 경치가 수려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하다”고 말했다.
불암산을 이루는 화강암체는 약 1억6천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때 땅속 깊은 곳으로 뚫고 들어온 화강암질 마그마(녹은 바윗물)가 굳어 형성됐다.(상자 기사 참조)
노원구가 지난해 설치한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정상 근처에 이르면, 회백색 암벽에 검은 암석덩어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곳이 나온다. 불순물처럼 암벽 여기저기 박혀있는 입자가 고운 이 암석이 ‘포유암’인데, 불암산 탄생시기에 벌어진 극적인 사건을 말해준다.
진 박사는 “불암산을 이룬 마그마가 미처 식기 전에 더 뜨거운 염기성 마그마가 침투해, 마치 달군 쇠를 물에 넣었을 때처럼 폭발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불암산과 함께 탄생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의 화강암과 구별되는 이곳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포유암 중에는 약 20억년 전에 생성된 변성퇴적암도 포함돼 있는데, 이는 마그마가 관입하기 전에 있던 기반암의 일부가 마그마 속으로 뜯겨져 들어온 것”이라고 진 박사는 말했다.
바위 중간에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구멍 숭숭
화강암은 깊은 땅속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식으면서 석영, 운모, 장석의 결정이 고르게 생긴 암석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지표면이 깎여 화강암체가 지표로 상승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지하 1만m의 바위는 약 4천기압의 압력을 받는다. 심해어를 건져올리면 눈이 튀어나오고 부레가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단단한 화강암도 물러져 균열과 침식을 피하지 못한다. 불암산은 이런 풍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불암사 옆 등산로 들머리에는 집채 만한 바위 중간에 벌레가 파먹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마치 백상아리가 입을 벌린 모습의 풍화혈이 있다. 포유암이 떨어져 나가거나 작은 홈이 파인 뒤 습기와 대기 속 염분이 오랫동안 조금씩 암석을 침식한 흔적이다.
화강암 돔이 시작되는 근처와 정상에는 암벽에 밭이랑 모양으로 오목하게 파인 ‘그루브’라는 침식지형이 눈길을 끈다. 지하수 또는 눈 녹은 물이 경사면을 서서히 타고 흐르면서 패인 자국이다.
불암산에 돔 구조가 많은 이유는 화강암에 지면과 평행한 방향으로 절리가 발달해 양파껍질처럼 벗겨나갔기 때문이다. 바위가 한 꺼풀 벗겨진 곳에는 평평한 암벽이 형성된다.
화강암 표면은 매끄러워 보이지만 강도가 약한 장석 등이 먼저 풍화돼 떨어져나가고 석영 등만 남기 때문에 꺼칠꺼칠하다. 등산객은 물론 전문 산악인도 이곳 바위를 즐겨 찾는 이유이다. 이날 두꺼비 바위에서 암벽등반 훈련을 하던 한상준(서울 청우산악회)씨는 “불암산은 다양한 기법의 암벽 훈련을 할 수 있어 동호인 사이에 유명하다”고 말했다.
최근에야 지질공원 개발·자연사박물관 유치 나서
그러나 지질학이 아닌 인간의 시간으로 볼 때 화강암은 여전히 단단한 암석이다. 서기 824년(신라 현덕왕 16)에 창건한 불암사와 불암사의 부속 암자로 세워진 석천암에 서 있는 대규모 미륵상의 재질은 화강암이다. 그 까닭을 진 박사는 “암질이 균일해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고 견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질유산이 풍성한데도 불암산은 동네공원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노원구는 불암산 일원을 지질공원으로 개발하고 불암산 자락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탤런트 최불암이 불암산의 이름을 빌려 쓴 소회를 담은 시비까지 최근에 설치했으면서 불암산의 지질유산을 설명한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불암은 시비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욕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등산객 하광석(서울 노원구 상계동·60)씨는 “바위를 타면 다리 근육 운동에 좋아 자주 온다”면서도 “바위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불암산 화강암은 어떻게 만들어졌어졌나 ![]() 공룡시대이던 중생대 중반인 쥐라기 때(약 1억6천만년 전) 한반도는 ‘불의 시대’였다. 겨우 한반도의 꼴을 갖췄지만 대륙이동의 후유증 때문에 땅속에는 마그마가 꿈틀거렸다. 이 시기에 ‘대보 조산운동’이 일어나 원산~서울을 잇는 구조곡을 따라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관입했다. 이때 형성된 화강암체가 나중에 서울 부근의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등의 모체가 됐다. ![]() 그후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을 받으면서 지표가 깎여나갔다. 그 속도는 연간 0.1㎜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체가 지표로 상승하는 동안 큰 지각변동을 받아 북동-남서 방향의 단층이 여러 개 생겼고, 화강암체 위에 있던 암석들이 서서히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깎여나갔다. 이와 함께 화강암체를 누르고 있던 압력이 줄어들어 지표면에 평행한 절리라고 하는 틈이 생겼고, 그 틈에 물이 스며들면서 침식이 가속됐다. 화강암의 부상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단층작용은 화강암체를 여러 덩어리로 쪼갰다. 북한산과 불암산은 이렇게 분리됐다. 화강암체가 지표에 노출되면서 눈, 비, 바람, 생물활동에 의한 침식과 풍화는 가속도를 붙였다. 암석이 모래를 거쳐 흙이 되는 까마득한 세월을 거치면서 지하 깊숙한 곳에 형성되었던 심성암은 등산객을 반기는 화강암 돔이 된 것이다. 한반도 암석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화강암은 대부분 중생대 동안 3차례에 걸쳐 격렬하게 벌어진 화성활동의 결과이다. 중생대 초 ‘송림변동’ 때는 평북, 전남, 경남도 일대의 트라이아스기 화강암체가 형성됐다. 중생대 말인 백악기 ‘불국사 변동’ 때의 마그마 관입은 설악산, 계룡산, 월악산, 월출산, 속리산 등의 뼈대를 이루는 화강임이 됐다. 그렇다면 화강암을 만든 마그마는 왜 지표로 분출하지 않고 땅속에 머물러 굳은 걸까. 바위 녹은 물질인 마그마가 땅속에서 굳어 불암산의 심성암이 되기도 하고 땅 위로 분출해 제주도의 용암이 되는 이유는 성분의 차이 때문이다. 실리카(SiO₂) 성분이 62~75% 가량 차지하는 화강암질 마그마는 점성이 높아 지표로 천천히 상승한다. 반면 현무암질 마그마에는 실리카 함량이 48~52% 정도여서 빠른 속도로 지표로 이동한다. 화강암질 마그마에는 또 수분이 더 많이 들어있다. 마그마가 상승할 때 고온고압의 수증기가 대거 빠져나가면서 온도가 떨어져 결정이 형성되고 땅속에서 굳게 된다. |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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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돌 흐르는 강, 대구 비슬산 ~ 세월이 빚은 불과 얼음의 합작품
길이 2㎞ 깊이 5m, 집채만한 바위 등 계곡 가득
너덜겅과 함께 빙하기 한반도 기후의 비밀 간직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악지형의 하나가 너덜겅이다. 산비탈에 모난 돌무더기가 넓게 쌓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곳이다. 흔히 산사태의 흔적쯤으로 잘못 알고 있는 너덜지대는, 수만 년 전 빙하기 때 한반도 기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대구 분지의 남쪽 울타리인 비슬산에는 많은 너덜겅(애추)뿐 아니라, 너덜지대와 비슷하지만 탄생배경이 전혀 다른 세계 최대 규모의 암괴류(돌강)가 있다.
물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귓전에
지난 27일 전영권 대구가톨릭대학 지리교육과 교수와 함께 비슬산을 찾았다. 소재사를 지나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이르면 주 등산로 양쪽으로 너덜겅과 암괴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오른쪽 계곡으로 나서자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계곡을 가득 메운 장관이 압도한다. 이 돌강은 대견사 터 아래 해발 1000m 지점에서 흐름을 시작해 700m 고도에서 맞은편 산에서 온 다른 돌강과 합류한 뒤 450m 고도까지 이어진다. 현재 식별할 수 있는 암괴류의 길이는 1.4㎞로, 하천개수공사와 휴양림 시설을 짓기 위해 훼손된 곳까지 합치면 2㎞에 이른다.

전 교수는 “세계적으로 영국 다트무어, 미국 시에라네바다, 호주 타스마니아 암괴류가 유명하지만 비슬산의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며 “국내에선 경남 밀양 만어산과 부산 금정산 암괴류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돌강을 이루는 바위는 직경 10m가 넘는 것을 포함해 대개 크고 모서리가 둥글둥글했다. 마치 강물처럼, 암괴류는 가운데가 가장 깊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얕아진다. 깊이가 5m에 이르는 돌강 바닥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청량했다. 이 커다란 바위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비슬산을 이루는 화강암은 중생대 말 백악기 때 깊은 땅속에 뚫고 들어온 마그마가 굳어 형성됐다. 화산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안산암을 뚫고 녹은 바위가 침투한 것이다.
수천만 년 동안 지표가 깎여나가면서 깊은 땅속의 화강암은 차츰 지표 가까이로 나왔다. 억눌렸던 압력에서 해방된 화강암은 부풀어오르면서 표면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에 수분이 침투해 땅속에서 화학적 풍화작용을 일으켜 암석을 부스러뜨렸다. 신생대 제3기의 고온다습한 기후는 이런 심층풍화를 가속시켰다.
큰 강에 지류가 흘러들 듯 너덜겅이 돌강으로
이제 비슬산의 화강암은 아직 땅속에 묻힌 채 심층풍화 과정에서 풍화되지 않은 돌알 둘레를 푸석돌(석비레)과 돌과 진흙이 둘러싼 모습이 됐다. 돌강을 만든 자연의 마지막 작업은 얼음공정이었다.
지난 8만~1만 년 사이 마지막 빙기가 지구를 덮쳤을 때 한반도는 빙하에 뒤덮히지 않았지만 얼음의 영향권에 속했다. 지금의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처럼 1년 중 9개월은 영하의 날씨가 계속됐다. 나머지 석 달 동안 지표면은 질척하게 녹았다. 지표 밑에 영구동토층이나 기반암층이 있어 물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고 녹음이 빈번하게 반복되는 여름 동안 지표면의 퇴적층은 경사를 따라 움직였다. 연간 수㎝에서 수십㎝의 느린 속도였지만 거대한 바위가 들어있는 밀가루 반죽처럼 걸쭉한 상태의 지표가 비슬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렸다.
마침내 1만 년 전 빙기가 끝나고, 빗물이 모래와 진흙을 씻어내리자 바위만 자리에 남게 됐다. 돌강이 탄생한 것이다. 전 교수는 “비슬산 암괴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불과 얼음이 빚어낸 합작품인 셈”이라며 “이제는 활동을 멈추고 화석화한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비슬산에는 큰 강에 지류가 흘러들 듯이 여러 개의 너덜겅이 암괴류로 흘러든다. 얼핏 비슷한 돌무더기이지만 너덜겅은 경사가 더 급하고 바위의 크기가 작고 각진 특징이 있다.
너덜겅도 빙기의 산물이다. 암석 틈새에 스며든 수분이 얼고 녹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틈이 벌어져 떨어져 나온 암석이 너덜을 이뤘다. 돌강이 15도 안팎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비해 너덜겅의 경사도는 30도 전후로 급하다. 돌강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가 땅속에서 오랜 풍상을 겪어 둥글둥글한 모습을 띤다면, 너덜겅에는 거대한 암벽 틈에 스며든 수분이 얼면서 깨진 돌이 암벽 아래쪽으로 굴러떨어져 쌓인 모가 난 돌이 많다.
봄 아닌 봄 때문에 진달래 분홍빛 기지개 못 펴
비슬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오른쪽엔 돌강이, 왼쪽엔 너덜겅이 펼쳐진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지형의 차이를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예년이라면 비슬산 정상 근처의 고위평탄면에 진달래 군락이 흐드러지게 피어 참꽃축제가 열렸을 터이지만, 봄추위로 꽃봉우리는 움처러든 채였다. 하지만 탐방객 들은 “꽃 대신 돌 구경도 짭짤하다”며 너덜겅에 돌탑을 쌓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비슬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희(52)씨는 “집채만한 바위가 강처럼 흐르는 모습을 보러 오는 사람이 꾸준히 많다”며 “그 큰 바위가 어디서 왔는지 늘 궁금했는데 설명을 듣고나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비슬산은 인구밀집지에 가까우면서도 암괴류, 너덜겅, 가마솥바위(나마), 돌알(핵석), 푸석바위, 판상절리, 탑바위(토르), 거북등 바위(다각형 균열바위), 고위평탄면 등 화강암 지형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천혜의 자연학습장”이라고 말했다.
◈ 1만 마리 물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만어사 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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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골인 너덜지대는 빙하기 식물의 피난처![]()
너덜겅은 마지막 빙하기 주변기후의 산물이지만, 얼음골은 당시 식물이 고립된 피난처 구실을 한다. 빙하기 때 추운 날씨를 따라 남하했던 북방계 식물이 빙하기가 끝난 뒤에도 국소적으로 찬 기운이 남아있는 얼음골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밖에 설악산 중청봉이 남방한계인 대표적인 극지·고산식물인 월귤이 강원도 홍천의 얼음골에 분포하고 있는 등 주로 아고산지대에 자라는 주저리고사리, 요강나물, 민둥인가목, 산새풀, 집사초 등 북방계 식물이 해방 350m 이하의 얼음골에서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얼음골의 식물이 식물지리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며 “주민과 관광객에 의한 과도한 이용과 개발, 외래종 유입 등으로 훼손이 심각해 보존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대구/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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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형의 섬, 인천 굴업도 ~ 소금이 깎고 모래가 키워 신도 탐내는 절경
20m 높이 절벽 3~5m 깊이 파낸 120m ‘터널’
비밀은 섬 동쪽 커다란 바다 밑 골짜기에 있다

민어 파시가 열려 불야성을 이루던 곳, 땅콩농사와 목축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외딴 섬, 핵폐기장 후보지로 사회적 논란이 불붙던 곳, 그리고 이번엔 대기업의 골프장 예정지로 시민단체가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한 곳….
인천 앞바다의 작은섬 굴업도는 서로 연결이 쉽지않은 이런 굴곡진 역사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으로 꼽히는 굴업도는 최근 섬의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예고되면서 거센 조류와 파도, 바람이 빚어낸 독특한 해안지형이 주목받고 있다.

절벽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 눈길 압도
지난 12~13일 지형학자 이상영 박사(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함께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의 해안지형을 둘러봤다.
굴업도 남쪽의 딸린섬인 토끼섬에 들어서자 절벽을 활 모양으로 파고든 거대한 ‘해식와’가 눈길을 압도했다.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한 곳이다.

화산재와 암석조각이 굳어 생긴 약 20m 높이의 절벽을 3~5m 깊이로 우묵하게 파낸 ‘터널’이 약 120m 길이로 펼쳐져 있다. 중장비를 동원해야 만들 수 있는‘ 이런 지형을 깎아낸 주인공은 놀랍게도 소금이다.
궁금증을 풀 단서는 굴업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백성만 해양호 선장은 “10~15m이던 수심이 굴업도 동쪽에 가면 갑자기 80~90m로 떨어지는 커다란 해저 골짜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해에서 이런 수심은 외해인 홍도나 흑산도에 나가야 나온다. 인천에서 8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굴업도 인근에 이런 깊은 골짜기가 있는 것은 거대한 단층이 2~4개 지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섬을 어렵게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로 정했다가 포기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상영 박사는 “해저 골짜기는 여름철 주변보다 찬 물이 조류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통로 구실을 한다”며 “찬 바닷물이 더운 공기와 만나 짙은 안개를 발생시키고 바닷물의 소금기와 어울려 바위를 그야말로 녹여낸다”고 말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 빚어낸 것과 비슷
이 박사는 찬 조류 말고도 굴업도가 주풍향인 서풍과 남동풍을 병풍처럼 가로막는 남북방향으로 위치해, 섬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에서는 화학적 침식이, 서쪽에서는 물리적 침식이 우세한 독특한 지형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태백산맥이 영동과 영서의 기후차를 빚어낸 것과 비슷하다.
섬의 서쪽 사면은 동쪽보다 건조하고 온도가 높은데다 파도가 두드리는 힘을 받아 바위가 절리를 따라 무너져 내려 절벽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서쪽을 향한 목기미 해안에는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 나가면서 코끼리바위 같은 절경을 이루거나, 절벽에서 떨어진 응회암 덩어리가 거대한 너덜처럼 해안을 메꾸기도 한다.

반면,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대신 습도와 소금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동쪽 해안에선 바위가 부식돼 빵껍질처럼 부풀어오르고 벌집모양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파도와 소금 중 어느 쪽이 힘이 셀까. 이 박사는 “토끼섬에서는 침식된 지형의 규모로 볼 때 바닷물 속이나 공기속의 소금이 우위”라며 “햇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굴업도는 깎여 사라지는 바위보다 훨씬 많은 모래를 얻는다. 한강 하구에서 공급돼 덕적군도 일대에 방대한 양이 쌓여있는 모래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어, 곳에 따라서는 사막화 현상을 빚기도 하다. 덕분에 민어 어장이 붕괴된 뒤 땅콩농사가 주민을 먹여살렸다.

바람에 모래가 날려 쌓인 목기미 해안의 사구는 소사나무와 찰피나무 숲을 잠식하며 확장하고 있었다. 이상영 박사가 측정한 결과 사구 경계 부근의 모래깊이는 지난 5달 동안 26㎝ 높아졌고, 사구는 숲쪽으로 2m 전진했다. 사구가 만 안쪽 바람 통로에 자리잡았고, 바깥 바다에서 모래가 무제한 공급되기 때문이다.
“천혜의 해안경관 잘 간직해 학술적 가치가 높아”
모래밭이 바다를 가른 목기미 해안의 연륙사빈에서는 모래가 불과 2~3년만에 전봇대 꼭대기 2m 밑까지 쌓이는 가공할 퇴적량을 보이기도 한다. 1998년에 만든 콘크리트 방파제가 모래 퇴적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해안에서 드러났듯이, 무분별하게 들어선 해안시설은 모래밭이 씻겨나가고 시설이 붕괴하는 침식을 피하지 못했다. 굴업도 큰마을해변은 자연해안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폭 300m의 완만한 모래해변은 아무리 큰 풍랑이라도 잠재우는 자연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굴업도는 약 8천만~9천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 격렬한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밀치고 부딪치면서 한반도를 형성했지만 아직 봉합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고운 화산재가 쌓이다가 돌연 직경 10m에 이르는 암석들이 콘크리트 반죽처럼 버무려진 화산쇄설암이 쌓이는 등 거듭된 화산활동의 자취와, 바위가 갈라져 부서지고 녹아내린 침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종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2008년 문화재청의 의뢰로 굴업도 해안지형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섬 전체가 천혜의 해안경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며 보전과 학술적·교육적 활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 파란만장한 굴업도 역사 아는 사람만 호젓하게 바닷가 정취를 즐기던 굴업도가 요즘 주말에 가려면 한 달 전에는 배표를 예약해야 하는 곳이 됐다. 대기업의 골프장 건설계획으로 인한 환경훼손 논란이 계속되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굴업도에서 발견된 패총(조개무더기)은 신석기 시대 선사인들이 거주해 왔음을 증언한다.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 어패류 등 먹을거리를 확보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1920년대 초까지 굴업도는 해마다 백령도에 이어 민어 파시가 형성되던 어업전진기지였다. 그럴 때면 수천명이 북적였고 부천경찰서에서 일본인 순사를 파견해 치안을 담당했을 정도였다. 육지에선 땅콩을 재배하고 소를 쳤다. 한국전쟁 뒤에도 적지 않은 주민이 살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주민들은 자녀교육과 일자리 여건이 좋은 인천 등지로 떠났고 계단식 밭이 사라지면서 흑염소와 꽃사슴을 방목하기도 했다. 민박을 뺀 경제활동이 없고 모래채취 등 개발활동이 없어 해안지형은 큰 손상을 받지 않고 보전될 수 있었다. 1994년 정부가 굴업도를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터로 선정한 이유도 주민이 적고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굴업도에는 12가구 21명이 거주하며, 겨울철에는 2가구만이 섬에 남는다. 굴업도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시제이(CJ) 그룹의 시앤아이(C&I)레저산업은 2006년 섬 전체를 깎아 골프장과 레저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이 섬은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 섬은 2009년 이 섬을 제 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환경부 장관 상 등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굴업도의 골프장 개발과 토끼섬의 천연기념물 지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 희귀곤충 살리는 방목 염소![]() 1970년대까지 소를 방목했던 서쪽 섬(느다시)의 꼭대기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소는 없어졌지만 놓아 기른 염소와 꽃사슴은 중요한 생태기능을 한다. 억새 초원에 길을 만들고 키 큰 억새군락을 억제함으로써 햇빛이 잘 들게 돼 엉겅퀴, 금방망이나무 등 꿀이 많은 식물이 잘 자라게 해 준다. 염소와 꽃사슴은 결국 탐식성이 강한 왕은점표범나비에게 꿀을 충분히 공급하는 구실을 한다. 나아가 소들이 사라진 초원에서 애기뿔소똥구리의 산란 장소이자 먹이인 소똥이 사라지자 대체식량으로 흑염소와 꽃사슴 똥을 다량 제공하는 혜택을 베풀고 있다. 느다시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인 왕은점표범나비 애벌레의 먹이인 금방망이와 엉겅퀴가 많이 자란다. 이상영 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왕은점표범나비는 1년에 전국에서 채집되는 개체수가 10여 마리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하지만 이곳에선 하루에 300마리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나비는 육지에선 초지가 숲으로 바뀌거나 개발로 사라지면서 드물어졌다.그러나 느다시의 ‘빈약한’ 초원은 골프장 개발이 타당하다는 근거로만 쓰이고 있다. ![]() 굴업도에는 이밖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매와 검은머리물떼새가 번식하고 있고 먹구렁이도 다수 서식한다. 쇠똥 대신 염소똥과 사슴똥을 먹는 애기뿔쇠똥구리와 개미귀신의 국내 최대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 해발 138m의 산이 있을 뿐인데도 지형과 미 기후의 영향으로 동백나무, 보리밥나무, 큰천남성 같은 난대식물과 홀아비바람꽃, 두루미천남성 등 한대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식생을 보이기도 한다. 1년 중 절반 동안 물이 마르는 묵기미연못 해안사구습지에는 미꾸리를 비롯해 물방게 등 50여 종의 물벌레가 서식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음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
굴업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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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대 ~ 한반도 탄생과 성장통 함께 한 신의 돌기둥
병풍같은 입석대와 서석대는 9천만년 살
풍화와 침식 받아 절벽에 돌의 윤회 연출

“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1574년 무등산 입석대를 처음 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선생은 무등산 산행기인 <유서석록(遊瑞石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이어 “천지개벽의 창세기에 돌이 엉키어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신공귀장(神工鬼匠)이 조화를 부려 속임수를 다한 것일까. 누가 구워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라며 입석대의 형성과정을 궁금해 했다.
10~18m인 5각·6각 기둥 30여 개가 40여m 늘어서
요즘 무등산을 오르는 이라면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의 주상절리대가 화산활동의 결과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면 돌기둥은 어떻게 생겼으며 왜 산꼭대기에 남았을까. 지난 26일 안건상 조선대 과학교육과 교수(암석학)와 함께 무등산에 서 벌어진 일을 더듬어봤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인 장불재(해발 900m)에 올라 정상쪽을 바라보니 포근한 흙산의 분위기가 바뀐다.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해발 1187m)이 있는 봉우리 양옆에 서석대와 입석대가 호위하듯 서 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바라보고 산길을 오르다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누워 있는 거대한 돌기둥 무더기를 먼저 만나게 된다. 단면이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고 길이가 10m에 이르는 돌기둥이 마치 교각이 무너져내린 듯 널부러져 있었다.

안 교수는 “미래 입석대의 모습”이라며 “입석대는 돌기둥이 하나씩 무너지며 뒤로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석대(해발 1017m)는 한 면이 1~2m이고 높이가 10~18m인 5각 또는 6각 기둥 30여 개가 동서로 40여m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돌기둥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작은 관목이나 이끼가 자라고 있다. 같은 주상절리이지만 서석대(해발 1100m)는 입석대보다 침식이 덜 진행돼, 직경 1~1.5m인 돌기둥이 30m 높이로 촘촘하게 병풍처럼 서 있다. 동서방향으로 늘어선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해서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린다.
서석대의 까마득한 절벽을 쳐다 보다가, 절벽 틈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핀 철쭉을 발견했다. 안 교수는 “용암이 절벽 높이보다 훨씬 깊게 흘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무등산을 중심으로 직경 약 40㎞ 범위는 주변보다 땅이 꺼진 함몰지대였다. 최근 아이슬란드 화산처럼 얇아진 지각을 찢고 여기저기서 마그마가 분출했고,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가 흘러내렸다. 무등산 정상은 오히려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아 화산분출물이 두텁게 쌓인 곳이었다.
무등산의 화산암을 연대측정한 결과 화산활동은 약 4500만~8500만년 전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시대가 종말을 고한 중생대 말에서 신생대 초까지의 기간이다. 3조각으로 나뉘어 남반구로부터 북상한 한반도는 중생대 말 백악기 때 봉합을 마쳤다. 그러나 뒤이어 북상한 인도대륙이 아시아와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되고, 그 여파로 동해가 열리고 태백산맥이 솟는 등 지각변동이 끊이지 않았다. 무등산은 그런 한반도 탄생과 성장에 따른 산통과 성장통을 고스란히 겪었다.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두 가지
윤성효 부산대 과학교육학부 교수(화산학)는 백악기 말 아직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나가기 전에 옛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는 현재의 일본처럼 대륙이동의 직접영향권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격렬한 화산활동이 부산-대구 일대와 함께 영동-광주에 이르는 길이 230㎞, 평균 폭 30㎞의 쐐기형 함몰지대에서 벌어졌다. 이 가운데 무등산은 직경 40㎞의 광주함몰체의 중심으로서, 화산분출로 형성된 화구호인 칼데라의 상부와 외곽이 모두 침식돼 사라지고 칼데라 안에 쌓였던 화산암이 당시 화산분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등산이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무얼까. 안건상 교수는 무등산의 해발고도 400m 이상을 이루는 석영안산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해양지각이 대륙 밑으로 파고들 때 생기는 석영안산암은 규암(차돌)처럼 이산화규소 성분이 많아 단단하다. 무등산 주변에는 안산암과 화강암이 분포하는데, 이들은 석영안산암보다 약해 상대적으로 먼저 침식된다. 예컨대 무등산 북사면의 원효계곡은 안산암보다 무른 화강암으로 돼 있는데, 쉽게 침식돼 완만한 지형에 맑은 물이 흐르는 지형이 형성됐다.
또 다른 이유는 화산분출의 영향이다. 화산활동이 끝나자 석영안산암으로 이뤄진 화산체가 용암이 흘러나간 빈 공간으로 무너져내려 두껍게 쌓여, 이후의 풍화와 침식을 견딜 수 있었다. 무등산엔 9천만년의 풍상을 겪고도 석영안산암이 아직 600m 깊이로 남아 있다.
너덜은 주상절리의 미래상이다. 무등산의 너덜은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서사면에 발달한 무등산 최대의 덕산너덜은 동화사터에서 바람재와 토끼등 사이에 길이 600m, 최대 폭 250m 규모로 펼쳐져 있다. 안 교수는 “최근 빙하기에 형성된 대구 비슬산이나 밀양 만어산 암괴류와 달리 훨씬 오래 전인 중생대부터 주상절리가 절벽에서 떨어져나와 붕괴되는 과정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어 매우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 주상절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바위가 녹아 1000도에 이르는 용암이 지표에 나오면 급격히 식는다. 액체인 용암이 고체인 암석이 되면 부피가 줄어들어 움츠러든다. 용암이 수축되면서 그 중심을 기준으로 표면은 육각형 또는 그와 비슷한 다각형이 되고, 그런 수축이 아래쪽으로 진행돼 돌기둥 형태의 균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뭄 때 논바닥이나 쑤어놓은 풀이 굳을 때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입석대, 서석대, 규봉암, 신선대 등 무등산 정상 부근에 발달한 주상절리는 용암과 화산재가 갑자기 식어 만들어진 것이다. 주상절리는 제주도와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고산지대의 주상절리는 무등산이 유일하고 기둥의 직경도 훨씬 굵다. 제주나 한탄강 용암의 이산화규소 함량이 45~52%라면 무등산 것은 63~70%로 높아 점성이 높고 따라서 기둥의 직경도 크다. 시기적으로도 제주도와 한탄강의 주상절리가 약 20만년 전 생겼다면 무등산의 것은 약 9천만년의 연륜을 지닌다. ![]() ◈ 무등산 이름의 유래 무등산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의 진산으로서 백성의 숭배와 사랑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만큼 이름도 많고 해석도 분분하다. 무등산을 이르는 명칭에는 무진악, 서석산, 무당산, 무덤산 등이 있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무등산의 옛 이름은 ‘무돌뫼’였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 고려사에 무등산(無等山), 동국여지승람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표기했지만 모두 무등산을 한자식으로 적은 것이란 설명이다. 신라 때 우리말을 한자로 묘사한 향찰식 표기법으로 ‘무진’과 ‘무등’은 모두 ‘무돌’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서석’은 상서로운 돌이란 뜻으로 무등산 꼭대기의 돌기둥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무돌도 신령스런 돌을 일컫는다. <무등산>을 지은 박선홍씨도 무등산의 이름은 백제 이전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 통일신라 때는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부르다가 고려 때부터 서석산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불렀다고 밝히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무등산 입석대가 천연의 신전으로 전라도 지방 종교의 중심지였다고 보았다. 그는 무등산 전체가 당산으로 ‘무당산’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무등산의 수많은 사찰과 고승의 전설에 비추어 부처님은 견줄 이 없이 높다는 뜻의 ‘무등등(無等等)’에서 왔다고 보는 이도 있다. |
광주/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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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첫 일반공개 평창 백룡동굴 ~ 동강 절벽 중간, 원형의 비경 ‘하늘 정원’
절반쯤 좁디 좁은 개구멍 빠져나오면 신천지
국내 최대 동굴커튼과 달걀부침 석순 독보적


백룡동굴은 동강이 숨긴 비경이다. 평창, 영월, 정선의 경계를 구불구불 휘돈 동강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에서 높은 절벽과 넓은 백사장 사이로 흐른다. 강물 위 15m 지점, 배로만 닿을 수 있는 강변 절벽 중간에 백룡동굴의 들머리가 놓여 있다.
1976년 주민들이 ‘발견’하고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2000년 영월댐(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돼 수몰위기를 넘어선 뒤에도 일반인은 이 동굴에 접근할 수 없었다. 손때 묻지 않은 석회동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백룡동굴이 다음달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인공시설을 최소화하고 한정된 인원만을 받는 생태체험 방식으로 30여년 만에 공개되는 것이다.
30여 년만에 첫 공개…200여 년 전 피난처 흔적
지난 9일 시험탐사를 위해 찾은 백룡동굴로 가는 길은 ‘십리 안쪽에 찻길이 없다’던 1990년대 초의 ‘명성’과는 많이 달랐다. 오지였던 문희마을까지 도로가 포장됐고, 절벽을 가로질러 동굴까지 철제 데크가 설치됐다.

문희마을의 관리실에서 탐사복을 입고 안전모, 헤드램프, 장화를 갖췄다. 동굴엔 조명과 탐방로 등 인공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탐험 수준의 준비가 필요하다. 데크에는 낙석피해를 막기 위한 덮개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상권(36) 동굴가이드는 “데크를 만드느라 자연을 일부 훼손했지만 봄이면 동강을 굽어보면서 절벽에 핀 동강할미꽃과 회양목 등 희귀식물을 관찰하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쥐가 드나들 수 있도록 창살이 듬성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찬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백룡동굴의 기온은 연중 11~13도로 일정하다. 동굴 들머리에서 10m쯤 들어가자 박명 속에 온돌과 아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굴뚝의 흔적도 있다. 구들장 안쪽의 숯을 연대측정한 결과 서기 1800년께 것으로 나왔다. 적어도 조선 정조~순조 때부터 이 동굴은 누군가의 피난처였다.
다시 10m쯤 가자 호수로 이어지는 가지굴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메기를 잡았다고 해 동강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동굴 앞쪽 바닥엔 펄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지난해 홍수의 영향이 여기까지 끼쳤음을 보여줬다. 백룡동굴은 이번에 개방되는 동-서 방향으로 785m 길이인 주굴과 3개의 가지굴 등 모두 1875m에 걸쳐 있다.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동굴에 종유석과 석순 등 동굴생성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물은 석회암을 녹이는 동굴생성의 원동력이다. 박종일(44) 동굴가이드가 가리키는 동굴 벽을 자세히 보니 흰 애벌레가 거미줄을 쳐 변태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의 웅덩이에선 하얀 아시아동굴옆새우가 램프불에 놀라 숨을 곳을 찾았다.
한국동굴연구소가 2006년 한 백룡동굴 종합학술조사에서는 56종의 동굴생물을 확인했다. 박쥐와 그 배설물에 기대 사는 김띠노래기, 장님굴가시톡토기, 엄지유령거미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도굴을 막기 위해 두 곳을 철창살로 막으면서 동굴 생태계의 유일한 영양원인 박쥐의 배설물이 줄어들었고 홍수 때 바닥이 부분적으로 침수돼 생물상이 단조로운 편이다.
주 동굴의 절반쯤 들어가면 ‘개구멍’이 나온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크기의 이 구멍을 넘어서면 훼손되지 않은 동굴생성물이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1976년 주민 정무룡씨 형제와 우재성씨는 이 구멍을 통해 찬바람이 나오고 소리가 울리는 데 착안해 구멍을 넓힌 뒤 신천지를 발견했다. ‘백룡동굴’이란 이름도 동굴이 위치한 백운산의 ‘백’과 정씨 형제의 돌림자인 ‘룡’을 딴 것이다.
실제로 ‘개구멍’ 에 이르기까지 잘라내 운반하다 내버린 석주나 도굴꾼이 종유석을 잘라낼 때 밝힌 횃불의 그을음, 한자 낙서 등 오랜 훼손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끄트머리 대광장 벽면엔 온갖 동굴생성물 뒤덮어
그러나 이 병목구간을 넘어서면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깨끗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바닥을 기거나 몸을 낮춰 겨우 통과하면 탁 트인 공간이 형형색색의 동굴생성물로 탐방객을 맞았다.
석회암이 돌고드름처럼 달린 종유석과 바닥에서 위로 자라 오르는 석순, 이 둘이 만나 이룬 석주는 얼어붙은 폭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수십만년 동안 석회석과 지하수, 이산화탄소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백룡동굴엔 이밖에 다랑논 형태의 휴석, 유석, 동굴진주, 동굴커튼, 베이컨시트, 곡석,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등 다채로운 동굴생성물이 분포한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인 약 11m 길이의 동굴커튼과 달걀부침을 빼닮은 에그후라이형 석순은 독보적이다.

주 동굴의 끄트머리인 대광장은 이 동굴탐사 여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천장이 무너져 형성된 넓은 광장 벽면이 온통 갖가지 동굴생성물로 뒤덮여 있다. 동굴가이드의 요청으로 헤드램프를 끄자 완벽한 암흑이 펼쳐졌다.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를 깼다. 동굴의 유일한 인공조명이 켜지면서 벽면을 은은하게 비췄다.
이광춘 상지대 명예교수(지질학)는 “어둠의 세계인 동굴에 가로등 수준의 조명을 하고 무제한 탐방객을 받아온 동굴관광의 관행을 깨고 한정된 체험형 개방을 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개방의 영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훼손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동굴 나이가 5억살?![]() 학계에서는 백룡동굴이 생긴 석회암층이 고생대 초 캠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 사이 조간대 상부에 퇴적된 해양생물의 잔해로 형성됐다고 본다. 암석의 연대는 4억~5억년 전이 된다. 그렇다면 백룡동굴은 언제 생겼을까. 석회암은 약한 산성을 띠는 지하수에 잘 녹는다. 지하수면 근처의 석회암층이 계속 녹으면서 동굴이 형성된다.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동굴의 형성이 멈추고 동굴 밑에서 새로운 동굴이 탄생을 준비한다. 석순 등 동굴생성물을 분석하면 생성연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동굴 자체가 언제 생겼는지를 아는 것은 극히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련 한국동굴연구소 박사는 “약 1억년 전에 한반도가 조산운동으로 융기하면서 석회암층이 지상에 노출됐다고 본다면 동굴이 형성된 것은 수천만~수백만년 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석회암 동굴이 형성된 뒤 만들어진 석순 등 동굴생성물은 수십만~수천년의 나이를 지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 체험형 개방 어떻게 하나 7월초 본격 개방될 백룡동굴은 관람 아닌 탐험형 관광지가 될 전망이다. 평창군은 한번에 15명씩 참가자에게 동굴탐험을 위한 장비 일체를 빌려 주고 가이드 인솔 아래 동굴을 체험하게 할 예정이다. 하루 탐험횟수는 9차례로 모두 135명만이 동굴을 드나들게 된다. 코스가 험해 초등학교 4학년 이상만 참가할 수 있으며 개별 촬영을 금지하는 등 안전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동굴가이드는 평창읍과 미탄면 주민 30명을 훈련해 고용할 예정이다. 입장료는 애초 선진국 수준인 1인당 3만~5만원을 고려했으나 최종적으로 1만5천원으로 확정됐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값싸게 많은 탐방객을 받는 방식은 특별한 체험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결국 자연유산의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이무열 평창군 동강생태체험운영팀 담당자는 “어느 정도의 훼손은 불가피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한도 이내일 것으로 본다”며 “개장 이후에도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등을 수시로 체크해 탐방을 관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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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안 마이산 ~ 한반도 최대 토목공사, 역암층 ‘교과서’
자연이 모래와 자갈 비벼 만든 천연 콘크리트
말의 두 귀 모양 봉우리는 1억 년 세월이 조각

말의 두 귀 모습을 한 바위산과 기묘한 돌탑을 보기 위해 전북 진안의 마이산도립공원을 찾는 사람은 한반도가 생긴 이래 가장 규모가 큰 ‘토목공사’ 흔적과 만나게 된다.
시공자는 자연, 공기는 수백만년, 원자재는 돌과 모래를 비벼 만든 ‘천연 콘크리트’로 수 ㎞ 거리를 2000m 두께로 쌓았다. 공법은 지하 8000m에서 단단한 바위로 굳힌 뒤 주변보다 400m 이상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비바람과 얼음의 힘으로 장기간 깎아내는 것이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이렇게 형성된 세계 최대 역암층의 홍보탑이다.
“콘크리트를 부어 산을 만들었나?”

지난 22일 마이산도립공원의 탑사 들머리, 100m가 넘는 까마득한 암 마이봉 절벽을 바라보던 한 탐방객이 동료에게 말했다.
“콘크리트를 부어 산을 만들었나?”
실제로 절벽엔 화강암, 편마암, 규암 조각이 모래와 뒤섞여 촘촘히 박혀있지만 진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먹 크기의 돌부터 1m 가까운 바위도 들어있다. 잘 살펴보면, 마치 물살에 휩쓸린 듯 돌들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늘어선 모습도 있다. 동행한 노병섭 전주제일고 교사(지구과학)는 “홍수로 돌과 자갈이 휩쓸려 퇴적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약 1억년 전 진안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중생대 백악기는 남반구에 있던 초대륙 로라시아가 흩어지면서 한반도는 물론 중국 땅덩어리가 이합집산을 거쳐 현재의 꼴을 이루던 시기였다. 지각변동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한반도는 남북방향으로 누르는 힘을 받았는데, 이미 있던 북동 방향의 단층선을 따라 지층이 서로 미끄러지면서 많은 분지가 형성됐다. 경상분지를 비롯해 음성, 공주, 부여, 영동, 무주 등의 분지는 이때 생겼다.
진안 부근에서도 구부러진 형태의 두 지층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면서 중간에 함몰지가 형성됐다. 함몰된 계곡 속으로 기반암 절벽에서 홍수 때마다 돌과 모래가 쏟아져 들어와 부채꼴 형태로 쌓였다. 노 교사는 “마이산 역암층 돌의 모서리가 닳지 않은 상태이고 크고 작은 것들이 뒤섞여 있으며 큰 바위까지 들어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기반암에서 큰 홍수와 함께 쓸려왔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진안분지는 길이 약 32㎞, 너비 약 18㎞의 반 사다리꼴 분지이며, 마이산 역암층은 1500~2000m 두께로 분지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다. 진안 분지에는 큰 호수가 있었고, 마이산은 호숫가에서 가까운 선상지였다.
분지의 형성과 퇴적과정이 정확히 언제 얼마 동안 이뤄졌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이영엽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1억2천만~8천만년 사이에 수백만년 동안 계속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형성시기가 비슷한 시화분지에서는 셰일 지층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되고 있지만 펄이 아닌 모래와 자갈이 쌓인 마이산 역암층에서는 화석이 거의 나오지 않아 연대추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탑사 돌탑으로 되살아나는 마이산 역암
이 교수는 진안분지가 모래와 자갈에 이어 두터운 화산재로 채워졌다고 설명했다. 그후 진안분지는 양쪽 지층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땅속 7~8㎞ 깊이까지 가라앉았다가, 이번에는 양쪽에서 누르는 힘을 받아 주변 지형보다 400m 높은 곳으로 솟아올랐다.
따라서 현재의 마이산 봉우리는 지난 1억년 동안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과 역암의 무른 부분이 침식돼 사라지고 남은 골갱이이다. 마이산 봉우리에 벌집모양으로 숭숭 뚫린 구멍(타포니)은 현재도 진행중인 풍화현상을 잘 보여준다.
역암 자체는 꽤 단단하지만 자갈이나 바위 등이 빠져나간 곳을 중심으로 풍화가 집중돼 구멍이 점점 커진다. 마이산의 거대한 타포니는 대규모 역암층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퇴적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형성된 화강암과 달리 풍화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이산도 북사면엔 타포니가 거의 없어 이채롭다. 이는 겨울에 햇빛을 많이 받는 남사면에서 밤낮의 온도차이가 커 얼음이 얼고 녹으면서 바위를 쐐기처럼 부서뜨리는 힘이 많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흔히 마이산 하면 탑사의 이국적 돌탑을 떠올린다. 조선 말 이갑용이 쌓은 돌탑과 그보다 1만배나 연륜이 많은 마이산은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돌탑의 재료 대부분은 마이산 역암에서 떨어져나온 바위이다. 스러지는 마이산은 돌탑으로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산은 진안분지 경계선인 북동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았다.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건조하고 황량한 계곡에 수시로 홍수와 산사태가 났다. 그 안쪽 커다란 호수가엔 공룡이 먹이를 찾고 익룡이 하늘을 가로질렀을지도 모른다.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앞 하천변에는 백악기 호수의 증거가 남아있다. 호수로 흘러들던 하천의 토사가 쌓이면서 퇴적물이 호수 안쪽으로 전진해 가면서 비스듬한 층을 이루는 독특한 퇴적층이 남아있다.




◈ 땅에서 솟는 고드름의 비밀 수 마이봉(해발 667m) 바로 아래에 있는 은수사는 땅에서 솟는 고드름으로 유명하다. 원불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물이 얼면서 고드름이 위쪽으로 자라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정화수가 불체(佛體)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구진은 천연기념물인 600년 된 청실배나무가 있는 은수사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하나 탑사와 계곡 내 상가에서도 솟는 고드름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또 냉기가 장기간 지속되는 등 마이산의 독특한 기상조건이 솟는 고드름 형성의 중요한 원인지만, 같은 조건이 충족되는 다른 곳에서도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윤마병 대전과학고 교사 등은 한걸음 나아가 실험 냉동장치를 이용해 마이산의 솟는 고드름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지난해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보고했다. 이들은 야외에서는 영하 3~5도에서 솟는 고드름이 잘 만들어지는데 비해 기류조절 등이 어려운 냉동고에서는 영하 12~13도가 최적 조건이라고 밝혔다. 또 솟는 고드름의 형성은 매우 민감해 진동과 물의 불순물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연구진은 2006~2008년 동안 마이산에서 3㎝ 이상의 솟는 고드름을 모두 34개 확인했다. 한편, 경기도 연천, 강원도 삼척 환선굴 등 폐 터널과 동굴에서도 규모가 큰 솟는 고드름이 발견되고 있지만 석순처럼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어서 마이산의 것과는 생성원리가 전혀 다르다. |
진안/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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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퇴적층 교과서, 변산 격포리 ~ 수천만 년 세월이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가로 세로 10여㎞에 깊이 500m 규모 추정
켜켜이 홍수와 사태, 화산분출 흔적 촘촘

공사장의 절개지이든 산사태로 드러난 절벽이든 지질학자들은 노출된 지층(노두)을 좋아한다. 그곳에선 과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해안가는 채석강과 적벽강으로 유명한 관광지 못지 않게 지질학 명소이다. 암회색 지층이 시루떡처럼 촘촘하게 쌓여있는 까마득한 절벽은 공룡시대가 저물 무렵 수천만 년 동안 깊은 호수 밑바닥에 쌓인 퇴적층이다. 여기서 지질학자는 오랜 역사책을 한 줄 한 줄 해독해 나가듯, 켜켜이 쌓인 퇴적층이 간직한 홍수와 사태, 화산분출의 흔적을 더듬는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수천만 년에 걸친 시간여행
지난 1일 박재문 박사(전북과학고 지구과학 교사)의 안내로 ‘퇴적층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격포리 퇴적층을 둘러봤다.
격포리 퇴적층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최근에 쌓인 것이다. 따라서 궁항에서 시작해 봉화봉 해안, 채석강(닭이봉 해안), 적벽강 순으로 해안으로 따라가면, 처음 호수가 생겼을 때부터 용암에 묻혀 호수가 사라질 때까지 수천만 년에 걸친 시간여행을 하는 셈이 된다.
썰물 때 격포항 옆 채석강을 찾으면 해변 바닥에 널따랗게 깔린 퇴적층의 평면과 닭이봉 절벽의 단면을 함께 볼 수 있다. 변산반도에서 서해 쪽 끄트머리인 이곳은 파도의 힘을 정면으로 받는다. 파도에 깎인 바닥 퇴적층(파식대지)에는 침식으로 자갈이 빠져나간 구멍이 점점 커진 역암층이 있는가 하면, 표면에 정체 모를 기하학적 무늬를 그린 지층이 나타나기도 한다. 박 박사는 “절벽에는 파도의 침식을 받아 해식동굴이 생기고 이것이 무너지면 파식대지로 모습을 바꾼다”고 설명했다.
약 50m 두께의 닭이봉 절벽의 퇴적층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퇴적층의 입자가 작아진다. 아래 부분이 강을 따라 퇴적물이 들어오는 들머리에 가깝다면 위로 갈수록 호수 가운데에서 쌓였음을 알 수 있다.
전승수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격포리 층에 한꺼번에 쓸려 들어온 대규모 퇴적물이 많고 고운 입자가 쌓인 퇴적층에도 큰 자갈이 종종 들어있다는 점에 비춰, 아주 깊은 호수로 하천이 흘러드는 수중 급경사 삼각주에서 형성됐다고 해석한다.
세계적으로 드문 페퍼라이트 지층

절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퇴적과정이 늘 고요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가지런하던 지층이 구겨놓은 것처럼 뭉개져 있거나 대규모 사태로 쓸려온 토사가 물길을 메운 흔적도 선명하다.
김승범 한국석유공사 탐사사업처 박사(퇴적학)는 격포리의 옛 호수에서 벌어진 두드러진 자연현상을 ‘대규모 사태’라고 요약했다. 지각변동으로 깊이 패인 호수에 종종 대규모 홍수로 각종 퇴적물이 쏟아져 들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런 돌발적 사건은 10년이나 100년 또는 1000년 단위로 일어났겠지만, 평온하게 쌓인 지층을 깎아내고 큰 사건만 지층에 기록되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장되게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채석강 하면 흔히 격포항 북쪽의 닭이봉을 떠올리지만 방조제 남쪽의 봉화봉 해안에도 볼 만한 퇴적층 절벽이 이어져 있다. 특히 이곳에선 호수가 생긴 초창기의 상황을 볼 수 있다. 격포항에서 나무다리를 따라 방파제 끝에 이르면 닭이봉에서보다 훨씬 큰 바위와 굵은 모래가 굳은 퇴적암을 만난다. 절벽에는 지반이 가라앉아 호수가 차츰 깊어지면서 강어귀의 퇴적층이 호수 안쪽으로 전진하면서 쌓인 길버트 삼각주가 드러나 있다.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들은 옛 격포호 기슭을 어슬렁거렸다. 김정률 한국교원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2003년 이곳에서 수십 개의 용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격포리 호수의 마지막 시기를 보려면 북쪽 적벽강으로 가야 한다. 이곳 퇴적층에는 장석이 많이 들어있는 유문암이 포함돼 있어 황색을 띤다. 적벽강에 들어서면 검은색과 노란색의 얼룩무늬를 한 해안절벽이 눈길을 끈다. 주차장의 적벽강 안내판은 “숱한 전설을 안고 있다”고만 적었을 뿐 세계적으로 드문 페퍼라이트 지층이 있음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박재문 박사는 “최고의 자연학습장에 걸맞은 안내판과 학습시설이 아쉽다”고 말했다. 후추를 뿌린 것 같다는 뜻의 이 암석은 수분 함량이 높은 퇴적층을 뜨거운 마그마가 뚫고 올라오면서 격렬하게 끓어올라 유문암과 검은 이암이 뒤섞여 만들어졌다.

지표에 드러나 깎인 세월 200만년
격포리 퇴적층에는 군데군데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 들어있다. 화산활동이 뜸했을 때 탄생한 호수는 분출이 다시금 격렬해지자 죽음을 맞았다. 화산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격포리 호수는 화산암 조각 등 퇴적물로 차츰 메워졌다. 땅속에 묻힌 퇴적층은 신생대 지반융기로 지표에 드러났고, 이후 약 200만 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지금의 단면을 드러냈다.
눈에 보이는 격포리 퇴적층의 두께는 약 500m이다. 똑같은 퇴적층이 격포항에서 15㎞ 떨어진 위도에서도 발견된다. 따라서 퇴적층은 적어도 가로 세로 10여㎞에 깊이 500m 규모로 펼쳐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퇴적층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쌓인 것인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격포리 층에서는 퇴적 연대를 가늠할 화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퇴적층을 뚫고 들어온 화성암의 절대연대를 측정해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김승범 박사는 “화산암 등의 연대가 6천만~9천만 년으로 나와 퇴적시기는 9천만~1억 년 전부터 수천만 년 동안 이뤄진 것으로 짐작할 뿐”이라고 말했다.



◈ ‘순간’이 기록돼 있는 서귀포층![]()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와 윤석훈 제주대 교수는 오는 8월 발간되는 국제학술지 <지질학>에 퇴적학의 ‘해상도’를 극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논문을 게재한다고 12일 밝혔다. <지질학>은 미국지질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로 지질학계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 연구진은 화산재와 화산암이 쌓인 서귀포 층의 한 퇴적단위를 정밀분석해 매일 매일의 조석현상이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있음을 밝혀냈다. 서귀포층은 신생대 제4기의 대표적 퇴적층으로, 조개 등 당시의 얕은 환경을 보여주는 화석이 많이 산출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연구진은 서귀포층 가운데 비슷한 환경에서 쌓였으면서도 다른 층과 달리 화석이나 생물 활동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층이 있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사결과 화산재와 작은 화산암으로 이뤄진 이 퇴적층은 가까운 바다 속에서 격렬하게 폭발한 수성화산에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화산폭발과 함께 분출한 뜨거운 가스와 화산재로 이뤄진 화쇄난류가 바다를 건너뛰어 서귀포 바다 밑에 퇴적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화산 퇴적물이 바다에 떨어질 때 조류가 세면 물결무늬의 퇴적층이 침식작용 없이 쌓이고, 조류가 바뀌는 정지 기간 동안에는 펄층이 쌓이는 사실을 면밀한 퇴적층 분석으로 밝혀냈다. 조사 대상인 3m 길이의 퇴적층에서 이런 펄층은 모두 24개로 나타나, 퇴적기간은 보름 또는 한 달일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두께가 30m인 서귀포 층은 약 100만 년에 걸쳐 퇴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사 대상 퇴적층은 3m 두께로 1달만에 퇴적했다면, 퇴적속도는 서귀포 층보다 100만 배나 빠른 셈이다. 손 교수는 “수성화산은 보통 며칠에서 몇 달에 이르는 짧은 기간 동안만 분출하지만 워낙 분출량이 많아 퇴적량도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퇴적기록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손 교수는 “화산분출은 흔히 재앙적 사건을 일으키지만 퇴적률이 높다 보니 서귀포 층에서 보는 것처럼 오히려 평온한 일상을 잘 기록한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퇴적층에선 크고 드문 사건이 이전 지층을 깎아내거나 재배치하기 때문에 평상기의 퇴적기록을 왜곡시킬 수 있음이 지적돼 왔다. 서귀포 층에서도 통상적인 퇴적층은 폭풍 등 예외적 사건을 두드러지게 기록하고 있는 반면 매일의 조석 같은 일상적 사건은 격렬한 화산활동이 기록한 셈이다. |
부안/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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