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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노래 이야기

혁명과 함께하는 민요

by Wood-Stock 2009. 4. 21.

'혁명 기운' 서려있는 세계의 민요들 

'민요', 그 저급한 문화가 세상을 바꾼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음악들은 어떤 것일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베토벤이나 말러의 교향곡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사운드,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작곡기술과 영혼을 담아 낸 숭고한 음악이 만나는 순간을 목격한다면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틀즈나 나훈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연령과 성별, 계층 등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평가에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사실 음악에 대한 취향은 각 사람마다 다를 터이니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음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서 다른 대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제 필자도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음악은 '민요'라고 생각한다.

 

누가 가사를 썼는지, 누가 곡을 지었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는 정체불명의 민요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답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필자가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몇 가지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할 것이니 그 내용을 보고나서 고개를 젓는 것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아이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수한 가락의 이 노래. 아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 대부분의 사람이 이 노래가 1894년에 있었던 동학농민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시 조선은 외세의 침략에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인 상황인데도 관리들은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기면서 농민들에게 고혈을 짜내고 있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반기를 들은 전봉준과 농민들은 곳곳에서 탐학을 일삼는 관리들을 쫓아내고 농민자치기구인 집강소를 두어서 외세를 몰아내고 썩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오히려 외세를 등에 업은 지배계급은 동학농민군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게 되고, 결국 동학농민군은 우금치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후 전봉준이 내부 밀고자에 의해 붙잡혀 처형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비록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꾸면 분연히 일어났던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의 시도는 40만 명이 희생되면서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 조선의 인민들이 전봉준을 생각하는 마음은 <새야새야 파랑새야>에 담겨서 지금도 '민요'로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민요 가사라는 것이 그렇듯이 <새야새야 파랑새야> 역시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파랑새'를 전봉준과 그를 따르는 인민으로 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해석을 하는 이유는 '파랑'은 '팔왕(八王)', 즉 전봉준 '전(全)'의 파자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동학혁명 시기에는 전봉준을 녹두장군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새야새야 파랑새야>에서 나오는 녹두 역시 전봉준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을 한다면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라는 구절의 의미가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파랑새의 파랑은 '청(靑)', 즉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 땅에 온 청나라 군사를 얘기한다고 해석하고, 녹두는 전봉준, 청포장수는 조선 인민을 얘기한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들다 하더라도 노랫말과 가락에 담긴 조선 인민의 마음은 '민요'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지고 있다.

 

 

[멕시코 민요] <라 쿠카라차>

 

한 남자가 한 여인을 사랑하네

그러나 그 여인 그 남자를 쳐다도 안 보네

그것은 마치 대머리가 길가에서 주운

쓸 데 없는 빗같은 것이라네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걸어 여행하고 싶지 않네

가진 게 없기 때문이라네

오 정말 가진 게 없다네

피울 마리화나도 없다네

 

(중략)

 

누군가 나를 미소짓게 하는 사람

그는 바로 셔츠를 벗은 판초 비야라네

이미 카렌사의 군대가 도망가 버렸네

판초 비야의 군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라네

 

사람들에게는 자동차가 필요하다네

여행을 가고 싶다면

사파타를 만나고 싶다면

사파타가 나타나는 집회에 가고 싶다면

 

멕시코민요 <라 쿠카라차>. 바퀴벌레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노래는 흥겨운 멜로디만큼이나 유쾌한 노랫말로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에 등장하는 '판초 비야', '사파타'에 얽힌 이야기를 파고 들어가면 흥겨운 멜로디와 유쾌한 가락의 이면에 숨어 있는 멕시코 농민들의 피울음을 알게 된다.

 

찬란한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인 멕시코는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정복을 당한 후 수많은 선주민들이 스페인에 의해서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시달리던 멕시코는 1821년에 독립하지만, 미국의 침략으로 1848년 거대한 영토(현재 미국의 뉴멕시코·아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텍사스 등)를 빼앗기고 1861년부터 1867년까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괴뢰 황제인 막시밀리언 황제의 혹독한 통치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한 디아스 정권은 대지주들과 외국자본의 이익에만 복무하였고 멕시코 농민들의 삶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로 1910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다.

 

<라 쿠카라차>에 등장하는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바로 이 멕시코 혁명의 두 영웅이다. 멕시코 북부에서 농민혁명군을 일으킨 판초 비야와 남부에서 활약하던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대지주와 독재정권에 맞서 승리를 거두고 디아즈 독재정권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이후 내부 분열과 미국의 은밀한 공작으로 인해 비야와 사파타의 농민혁명군은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둘은 암살을 당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라 쿠카라차>의 바퀴벌레 역시 <새야새야 파랑새야>처럼 수많은 해석이 있다고 한다. 비참한 멕시코 농민을 바퀴벌레로 표현했다는 해석, 멕시코 전통 의상인 판초와 솜브레로를 입은 농민혁명군의 보습이 바퀴벌레 같다는 해석, 농민혁명군의 끈질긴 생명력이 마치 바퀴벌레 같다는 해석, 판초 비야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바퀴벌레를 닮았다는 해석.

 

해석이야 아무렴 어떤가. 그 어떤 해석이든지 판초 비야와 사파타에 대한 멕시코 인민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애정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La Cucaracha (바퀴벌레)                                       Guantanamera - Compay Segundo                         

 

 

[쿠바 민요] <관타나메라>

 

나는 종려나무 고장에서 자라난 순박하고 성실한 사내랍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내 시 구절들은 연두빛이지만,

늘 정열에 활활 타고 있는 진홍색이랍니다

 

나의 시는

상처를 입고 산에서 은신처를 찾는 새끼 사슴과 같습니다

 

7월이면 난 1월처럼 흰 장미를 키우겠어요

내게 손을 내민 성실한 친구를 위해

 

이 땅 위의 가난한 사람들과 내 행운을 나누고 싶습니다.

산 속의 냇물이 바다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군요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관타라메라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낙네여

 

얼마 전부터 쿠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관타나베라>.

 

작자 미상의 다른 민요들과는 달리 이 노래의 가사는 쿠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세 마르티'가 지은 시이다. 쿠바 인민들이 지금도 <관타나메라>를 제2의 국가처럼 애창하고 있는 것은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 때문도, 신나는 리듬 때문도 아닌 바로 '호세 마르티' 때문이다.

 

"게으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격이 고약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불의가 있는 곳이다."

(호세 마르티)

 

19세기 말 쿠바의 문인이자 혁명가, 그리고 사상가였던 호세 마르티의 삶은 쿠바의 독립의 역사 그 자체였다.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로 온갖 고통을 겪으며 투쟁하고 있던 쿠바의 인민들에게 호세 마르티의 시와 글은 빛과 소금이었다.

 

1853년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시와 글쓰기를 좋아했으면 16살 때는 <해방 조국>이라는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1868년 쿠바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에 연루되어 6개월의 중노동형을 받은 호세 마르티는 1871년 스페인으로 추방되기에 이른다. 스페인에서도 공부와 집필활동을 계속한 그는 1878년 쿠바로 귀환하지만 정치활동을 빌미로 정부는 1년 뒤 그를 또 다시 스페인으로 추방한다.

 

조국을 사랑한 죄로 추방당한 호세 마르티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뉴욕에 정착한 이후로도 지속적인 집필활동과 정치활동으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이후 세력을 규합해서 쿠바 독립을 위한 혁명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던 호세 마르티는 1895년 4월 11일 무장투쟁을 준비하며 쿠바의 해안으로 잠입한다.

 

그러나 한 달 후인 5월 19일 스페인 군대의 기습을 받고 사망한다. 호세 마르티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시와 글들은 씨앗이 되어 싹을 내고 꽃을 피웠다. 그리고 1959년, 호세 마르티의 뒤를 따르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그들이 이끄는 혁명 게릴라와 함께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호세 마르티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냈다.

 

"쿠바는 많은 자녀들의 피와 희생을 대가로 이룬 혁명을 흥정하지도 팔지도 않을 것이다."(피델 카스트로)

 

사회주의 혁명을 붕괴시키기 위한 미국의 경제봉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바이지만 세계최고 수준의 무상의료 시스템과 생태주의자들의 찬양을 받고 있는 유기농업으로 호세 마르티의 꿈을 실현시켜나가고 있는 쿠바. 제국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만들어온 소중한 혁명을 지켜나가는 쿠바 인민들의 유전자 속에는 언제나 호세 마르티가, 그리고 <관타나메라>가 살아있다.

 

 

 

[독일 민요] <탄넨바움>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에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르구나

 

서정적이고 약간은 쓸쓸하기도 한 이 노래. 음악교과서에도 수록되어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친숙한 이 노래는 사실은 독일민요 <탄넨바움(전나무)>가 원곡이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전나무를 칭송하는 이 노래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불리고 있다. 앞의 민요들과는 달리 독일민요 <탄넨바움>은 민요 그 자체의 모습보다는, 여러 벌의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히려 강력한 음악이 되어갔다.

 

1889년 영국의 짐 코넬이라는 사람은 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서, 영국에서도 멜로디가 잘 알려진 독일민요 <탄넨바움>에 자신이 직접 지은 가사를 달아서 <적기가(Red Flag)>를 만들었다. 이 곡은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영국 노동당의 행사에서도 자주 불리게 되었다.

 

이 곡은 1920년 일본에도 전해지게 되고 아까마쯔라는 사람이 일본어 가사를 짓고, 원래 3박자인 곡을 가사의 운율에 맞춰 4박자 행진곡으로 바꿨다고 한다. 일본어 제목 <아까하타노 우타(赤旗の歌)>인 이 곡은 일본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애창곡이 되었는데, 1930년대에 한국에도 전파가 되어 영화 <실미도>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적기가'가 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빨치산 투쟁을 벌이던 조선의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에게 널리 불린 '적기가'. 항일무장투쟁세력이 주축이 되어 건국을 한 북쪽에서는 여전히 혁명가요로서 사랑받고 있지만, 친일세력이 그대로 친미세력이 되어 정권을 잡은 남쪽에서는 불온한 노래인 것이 현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 <실미도>에서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논란이 되어 영화감독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당하는 실소할 일이 얼마 전에 있지 않았던가.

 

대규모의 교향곡이나 오페라의 화려함에 비하면 눈물겹도록 소박한 민요. 하지만 그러한 '소박한 형식'은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고귀한 자와 천한 자를 가리지 않는 대중성을 담보한다. '소박한 형식'에 담겨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내용'은 결국 민중들의 절실한 염원을 담게 된다.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전봉준, <라 쿠카라차>의 판초 비야와 사파타, <관타나메라>의 호세 마르티, <탄넨바움>의 적기가를 통해 외세와 부패한 권력에 의해 신음하던 민중들의 저항정신과 미래에 대한 조심스러운 낙관을 엿볼 수 있다. 민요를 통해 민중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저항정신과 낙관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정체성과 과제를 전하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민요들이 전부가 아니다. 잘못되고 모순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이 있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민요'라는 형식을 빌려 민중들의 염원을 담은 노래가 여전히 파릇파릇하게 불리고 있다. 민중들을 억압하는 소수의 기득권세력들은 자신들의 문화만이 고급이고 세련된 것이라고 하면서, 민중들의 문화를 저급하고 유치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기득권세력에게는 아쉽겠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들의 '세련된' 문화에 있지 않다. 바로 통속적이고 민족적 성격을 담은 '저급한' 문화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역사를 목도한 민중들의 입을 타고 전해진 '민요'는 우리 후세대의 유전자 속에 이러한 진실의 기억을 아로 새긴다.

 

< 세상을 바꾼 예술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