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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

by Wood-Stock 201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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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빨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노동과 인권'

노동·여권·반핵 버물러진 개막식…"무상의료·어린이문학이 가장 자랑"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트랜스포팅>의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18세기 산업혁명부터 오늘날의 소셜미디어 혁명까지 영국의 변화상을 꽤 구체적이고 신선하게 그려냈다. 그 중 눈에 띄는 점은 이번 개막식에 노동운동과 여성 인권, 무상의료, 반핵, 동성애 등 진보적인 메시지가 끊임없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보일 감독은 개막식 초반를 장식한 산업혁명이 도래한 시기를 '악마의 맷돌'로 형상화했다. '악마의 맷돌'은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밀턴>에 나오는 단어로,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노동자들이 비참한 빈곤에 빠진 상황을 묘사했다.

 

<밀턴>에 실린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 이란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잉글랜드의 푸른 산 위를 거닐고/신의 성스러운 양이/기쁨의 풀밭 위에 보였네/구름 낀 산 위로/ 성스러운 얼굴도 빛났을까/여기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 사이/예루살렘이 세워졌을까

 

블레이크는 집 근처 있던 '앨비언'이란 제분소에서 이 시의 영감을 얻었다. 1769년 세워진 앨비언 제분소는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가 버밍엄의 공장주인 메튜 볼튼과 손잡고 세운 것으로 1주일에 약 169톤의 밀가루를 생산했다. 이 놀라운 생산력을 자량한 제분소는 마치 우리네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장악하듯 전통적인 제분소를 밀어냈다. 하지만 세워진 지 2년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되는 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당시 전통 방앗간들은 이 제분소를 '악마의 방앗간'으로 여겼고, 제분소 화재를 묘사한 그림에는 제분소 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은 악마가 그려져 있다. 이후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는 1944년에 쓴 <거대한 전환>에서 자본주의를 '악마의 맷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보일 감독은 이 시기를 '대혼란(Pandemonium)'이란 이름으로 소개했는데 이는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의 작품 「실락원」에 등장하는 지옥의 수도의 이름이다. 인류 역사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받는 산업혁명을 미화하기보다는 그로 인한 폐해를 꽤나 솔직하게 드러낸 셈이다.    

   
▲ 1936년 실업에 저항해 일어난 재로행진
 

자연과 인간성이 파괴됐던 산업혁명에 대한 저항도 그려졌는데 그 때 등장하는 것이 재로 행진(Jarrow Crusade)이다. 1936년 10월 일어난 재로 행진은 대공항의 여파로 실업률이 72.9%에 달하고 그로 인해 빈곤에 시달리던 영국 북동부 재로 지역의 실업자 200여명이 재로 지역부터 런던의 웨스트미니스터 궁전까지 약 48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간 사건을 말한다.

 

이 행진은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이자 '붉은 엘렌'으로 불렀던 엘렌 윌킨스가 조직했는데 그는 엄청난 실업률로 고통받던 당시의 제로 지역을 "마을이 살해당했다"고 표현했다. 윌키스는 스페인 내전에서 극심하게 나타났던 파시즘에 맞서기도 했다.  

 

진주 단추가 달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19세기 런던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자선운동인 '진주의 왕과 여왕(Pearly Kings&Queen)'을 묘사한 것이다. 이 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하던 고아 출신의 거리 청소부 헨리 크로프트가 시작했다. 그 당시 런던의 사과 장수들은 진주 단추처럼 보이게 장식된 바지를 입는 습관이 있었는데 크로프트는 이를 응용, 뭇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모금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진주로 장식된 양복을 입었다.

 

   
▲ 여성참정운동을 묘사한 장면(사진캡쳐-아프리카TV)
 
여성운동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여성참정권운동의 상황도 묘사됐다. 여성 참정권론자(woman-suffragist)라는 손팻말을 든 여성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J.S. 밀은 1867년 여성참정권 요구를 정치강력으로 내걸로 하원에 당선된 후 선거법 수정안을 제출해쓰나 부결됐다. 그 이후 1897년 결성된 전국여성참정권협회 (NUWSS)은 회합, 청원 등 다소 온건한 방법으로 여성참정권을 요구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재로 행진과 전국여성참정권협회의 자손들이 참석해 그 의의를 높이기도 했다.

 

'두번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아침까지 쭉'이란 코너에서는 국민건강보험(NHS)과 어린이 문학을 영국이 가장 자랑하는 두 가지로 꼽기도 했다.

 

특히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어린이병원(GOSH)과 NHS를 600여명의 건강보험직원들과 어린이들이 경쾌한 춤을 통해 표현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면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어린들이 누워있는 병상 수백 개를 밀고 나오면서 시작된다. 이 어린이 병원은 <피터팬>의 저자 J.S. 베리가 인세를 모두 기부해 만들었다.

 

   
▲ 영국의 대표적인 어린이병원(GOHS)을 형상화한 장면(사진캡쳐-아프리카TV)
 
NHS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공적의료보험으로 영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1942년 제출된 베버리지 보고서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사회보험 및 관련 사업에 관한 각 부처의 연락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윌리엄스 베버리지가 작성한 보고서이다. 베버리지는 결핍, 질병, 나태, 무지, 불결을 진보를 가로막는 '5대악'으로 꼽고, 사회 보장의 궁극적인 목표를 궁핍 해소라고 봤다. 그는 궁핍의 원인으로 실업, 질병, 노령, 사망 등에 의한 소득 중단을 들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보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밖에 개막식에서는 무희들이 반핵의 상징물을 형상화하기로 했고, 영국에서 여성 동성애자간의 키스신이 처음 등장한 1993년작 드라마 '브룩사이드'의 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 무희들이 반핵을 형상화한 장면(사진캡쳐-아프리카TV)
 
하지만 올림픽을 중계하는 지상파3사는 이와 같은 내용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SBS는 <8시 뉴스>에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의 생활상이 바뀌는 장면이 이어진다"며 "공장의 검은 연기와 노동자들의 한숨으로 암울했던 분위기는 용광로 같은 오륜 마크가 하늘에서 불꽃 비를 내리면서 치유된다"라고만 전했다.

 

MBC도 <뉴스데스크>에서 "산업 혁명을 통해 영국을 세계속의 변화와 다양성의 중심으로 이끈 과정이 3시간 동안 대서사시로 펼쳐져 70억 지구촌을 웃음과 감동으로 매료시켰다"라고 전했다.

 

KBS는 <뉴스9>에서 "거대한 굴뚝들이 솟아오르고, 산업혁명의 힘찬 고동이 느껴진다"며 "수많은 병원 침상은 영국이 자랑하는 무상 의료 서비스를 나타낸다"고 간단하게 보도했다.

한편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두고 때아닌 '이념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집권 보수당 소속 애이단 벌리 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내가 본 것 중 가장 좌파적인 올림픽 개막식"이라고 썼다. 그는 이어 공연 중 무상의료제도를 묘사한 대목이 10분 이상 지속된데 대해 "공산당 국가인 중국보다 더 하다"며 "복지에 대한 헌사인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해 보일 감독은 "모든 사람이 공연을 좋아할 수는 없다"며 공연에서 묘사된 것들은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가치들이며 그 이상의 어젠다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비중있게 묘사된 무상의료 제도에 대해 "우리가 예찬할 만한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지지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미디어 오늘 / 조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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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식 좌파 냄새? 존중과 연대!

민족 아이콘 지우고 휴머니즘 강조, 굴뚝 소년·무상의료 공연 인상적

 

28일 새벽(한국시각) 열린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국가무상의료제도 혜택을 받는 영국 아동병원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이날 공연에서 실제 영국의 간호사들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아이들과 즐거운 모습을 연출했다

 

올림픽 주경기장 한가운데서 굴뚝이 올라가자, 굴뚝 소년도 함께 하늘로 올랐다. 굴뚝 소년이 시야에 들어오자, ‘개막식 공연 1장’ 흥겨운 전원풍경을 즐기던 런던은 숙연해졌다.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가 진행된 런던에선 19세기 당시, 시커먼 굴뚝에 갇혀 청소를 마친 소년들이 꺼내달라고 비명을 지르곤 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있던 노동자들은 시뻘건 쇳물을 쏟아내는 용광로 건설에 지쳐 무심한 표정만 지었다. 스포츠 평론가 정윤수씨는 “이번 개막식은 총감독을 맡은 대니 보일이 단순히 영국의 역사를 보여준 게 아니라, 그 역사와 사회를 만든 노동자 계급에 대한 존중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지난 28일(한국시각) 새벽, 영국 런던의 리밸리 주경기장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화제다. 개막식은 가장 급진적인 영국 시인으로 평가받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노래 ‘예루살렘’을 아이들이 부르면서 시작해,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전후 사회 등 영국의 모습을 두루 담았다.

본 행사에서 영국은 자신의 자랑거리로 ‘국가 무상의료제도’와 ‘어린이 문학’을 내놨다. 피터팬의 작가가 인세를 기부해 만든 아동병원을 형상화해 수백개의 병상과 아이들, 600여명의 간호사들이 등장해 흥겨운 춤을 췄다. 이들은 영국 의료제도의 알파벳 약자를 경기장에 수놓으며 세계인들에게 소개했다. 1948년 도입된 영국 의료제도는 전국민에게 무차별·무료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도로 알려져 있다.

개막식은 무상의료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여성참정권 운동, 이민자 등 영국 사회가 거쳐간 ‘뜨거운 감자’들도 그대로 묘사했다. 마지막 성화 점화식 때는 성화 봉송자가 주경기장을 지은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에 입장케 했다. 보일 감독은 1997년 실업수당을 받는 우울한 영국 청춘을 그린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제작한 바 있다.

영국에서만 2700만명이 시청한 이 개막식 공연은 즉각 반응을 불러왔다. 영국 집권 보수당의 한 의원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내가 본 것 중 가장 좌파적인 올림픽 개막식”이라 썼다. 이에 대해 보일 감독은 “모든 사람이 공연을 좋아할 수는 없다”며 공연에서 묘사된 것들은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가치들이며 그 이상의 어젠다는 없다”고 영 일간지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노동당 시절 시작했지만, 지금은 보수당 정권”이라며 “위원장이 간섭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줬다”고 말했다.

정윤수씨는 “베이징이나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실체 없는 민족과 국가라는 공허한 개념을 신화적으로 재구성한 데 반해, 런던은 실제 나와 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내세웠다”며 “민족적인 아이콘이 아닌 인문적인 공연을 펼쳤다”고 평했다.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들어간 비용은 베이징(약 1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700만파운드(약 480억원)였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에이지비닐슨 집계를 보면, 이날 국내 지상파 3사의 종합 시청률은 14.0%였다. 베이징(40.3%)에 견줘 뒤지지만, 비슷한 새벽시간대에 방송된 아테네(7.7%)보다 훨씬 높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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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이후 알고 싶었던 것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올림픽이 지겨워?

 

30회 런던 올림픽이 지난 27일 성대하게 개막하여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문화 산업, 창조 산업의 선두주자인 영국답게 올림픽 개막식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거대한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어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슬럼독 밀리언에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데니 보일이 총 연출한 이번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의 뒷이야기들과 그 배경들을 출연진과 현지의 반응을 통해 살펴본다.

 

 

영국 여왕은 개막식에서 왜 그렇게 지루해했나?

 

 

개막식 현장 중계 화면에 잡힌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모습은 자국인 영국 팀의 입장 당시를 포함하여 여러 차례나, 약간은 지겨워하는 모습이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엔 그만의 사연이 있다. 올해로 재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을 맞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왕위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미 1948년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을 자신의 아버지인 조지 6세와 함께 치렀을 뿐 아니라, 여왕의 자격으로 영연방 캐나다에서 열렸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개막 선언도 한 바 있다. 어느덧 여왕에겐 올림픽 개막식 주관만 3번째였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포츠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터라, 영국인들은 여왕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다. 28(현지시간) 박태환의 400미터 자유형 예선 경기가 열렸던 시간엔 여왕이 직접 수영 경기가 열리는 아쿠아틱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평소 영국민들이 가장 열광하는 FA컵 결승전도 찾지 않던 여왕의 전격적 방문에 <가디언> 등 현지 언론조차 놀랐을 정도였다.

 

 

<경의로운 섬(Isles of Wonder)>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개막식을 위해 주경기장 한가운데 설치된 잔디 언덕과 구름은 개막식 공연 <경의로운 섬>의 기본 컨셉이었다. 세익스피어가 <템페스트>에서 이야기 한 주제를 적용한,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이미지와 아이디어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팝아트 작품인 <서머 스카이(Summer Sky)>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호크니는 컴퓨터 그래픽과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서 이 작품을 만들었고, 그는 사진과 예술의 경계와 고정 관념을 넘어서며 작품 활동을 해온 영국의 대표적 현대 미술 작가이자 '영 컨템퍼러리스(Young Contemporaries)'의 일원이기도 하다.

 

데니 보일은 이 작품 외에 안토리 곰리(Antony Gormley)<필드 오브 더 브리티시 아일스(Field of the British Isles)>에서도 큰 영감을 받아 개막식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개막식 공식 가이드북에서 밝혔다. 그러나 이 잔디 구릉 무대는 정작 출연진들에겐 경사가 가파르고, 비가 올 경우 미끄럽기까지 해서 아주 큰 걱정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카운트다운에 등장한 종은 어디로?

 

영국 사회에서도 종은 사람들의 아침잠을 깨우고, 기도하게 하고, 노동을 시작하게 하며, 적들을 공격하고, 파티를 즐기거나 파업 투쟁에서 단결하도록 사용되어왔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영국 내의 모든 종들이 다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일제히 멈추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개막식에 등장했던 올림픽 종 역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올림픽 종은 스트라포드의 주경기장 인근의 화이트채플종제작사(Whitechapel Bell Foundry)에서 높이 2미터, 너비 3미터 크기로 제작되어, 개막식 카운트다운 때에 영국에 있는 모든 종들과 동시에 일제히 울렸다.

 

이 종은 1570년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설립되어 그동안 리버티 종(1752)과 빅벤(1858)을 제작하기도 했던,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 제작사에서 만들어졌으며, 올림픽 파크에 향후 200년 동안 자리한 후 제작사인 화이트채플로 반환하도록 계약되었다. 조직위원회와 제작사가 적어도 200년의 사용 계획을 공식 계약으로 체결했다는 점이 놀랍고 부럽기까지 하다.

 

 

 

국가에 침묵한 라이언 긱스... ?

 

"신이시여 여왕을 지키소서(God save our gracious Queen)"로 시작하는 영국 국가는 1745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서 연주되었다. 가사와 멜로디는 이미 17세기부터 작자 미상으로 잉글랜드 지역에서 이어져오고 있었고, 베토벤, 하이든, 브람스를 비롯한 총 140여 명에 달하는 작곡가들이 이 대중적인 멜로디를 자신들의 작품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사를 잘 살펴보면 '신이 여왕을 지켜주고, 여왕이 장수하며, 여왕이 영국을 오래 통치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모든 구절에서 당시의 잉글랜드 여왕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이 다른 연방국인 웨일즈의 축구 대표 선수이기도 한 라이언 긱스의 입장에선 이러한 내용의 가사가 결코 편하지 않을 법도 하다.

 

이에 영국 언론은 별다른 언급 대신, 이처럼 불편한 영국 단일 축구팀이 올림픽 이후 다시 결성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분위기를 주로 전하고 있다.

 

 

NHS(국가보건서비스)는 갑자기 왜 등장했나?

 

전 세계에서 개막식을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 가운데, 영국의 NHS에 대한 부분이 있다.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정치인이자 사회 활동가였던 아노이린 바반(Aneurin Bavan)'만약 아픈 사람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의 혜택을 거부당하는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라 부를 수 없다'는 정신을 토대로,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것이 영국의 NHS.

 

데니 보일에 의하면 개막식 NHS 장면에 등장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원 봉사자들로 의사, 약사, 매니저,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이었으며, 이들은 전후 영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낸 최고의 국가 기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무대의 배경으로는 영국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병원 가운데 하나이자,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메튜 배리(J. M. Barrie)가 그 작품에서 나오는 모든 저작권 수익을 기증해서 유명해진 그레이트오몬드아동병원(Great Ormond Street Children's Hospital)이었다. 한편 데니 보일은 개막식 이 후 영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NHS를 영국 최고의 자랑거리로 뽑은 자신의 결정에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나 압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개막식의 보안은 어떻게?

 

이번 개막식 행사는 극도의 보안이 지켜져 행사 당일까지 대부분의 이야기와 성화 봉송 주자 등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개막식에 출연진으로 참여한 한국인 유학생 오세현(28)씨에 의하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출연진에게 안무나 노래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인쇄물로 제공되지 않았고, 오직 반복적 연습을 통해 모두가 모든 내용을 각자의 머리로만 기억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안무, 노래 등은 개막 1주일 전까지도 계속 조금씩 바뀌었으며, 출연진이라 하더라도 전체 내용을 알 수 없도록 공연의 부분 부분을 잘게 나누고, 볼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작년 겨울 이후 공개 오디션을 거쳐 뽑힌 공연 참가자들을 위한 연습장 역시 인적이 드문 곳 위주로 계속 옮겨졌고, 출연진들은 마치 암호(●■▲)처럼 작성된 길 안내판을 보고 은밀히 찾아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노출되는 최종 드레스 리허설 단계에선, 8000여 명에 달하는 참여자들에게 스스로 알아서 보안에 유의해달라는 부탁만 있었다고 한다.

 

 

박성우(licjpsw)

런던 거주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프로듀서/ 방송, 미디어, 대중문화 연구하며 (BBC, K-Pop, 문화 정치, 스포츠)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서 박사 논문 준비 중/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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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화 자부심 확인했던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대니 보일,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재구성하다

 

 

 

 

전세계적인에게 사랑받은 영국영화 <러브 액츄얼리>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즈의 나라이며, 숀 코넬리, 해리포터의 나라입니다.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도요. 데이비드 베컴의 왼발도 되겠죠."

 

극중 수상 역할을 맡은 휴 그랜트가 부강한 영국을 만들 것을 약속할 때 내뱉는 이 대사는 문화강국으로서의 영국의 자부심이 정확히 묻어난다. 그렇게 <트레인스포팅><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은 영국의 문화자산을 총동원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정치적 의미는 크게 담지 않았다"던 그였지만 "영국이 산업사회의 시발점이었다는 점과 산업화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점을 알리려 했다"는 공식인터뷰 와중에 영국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찌 샘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굳이 매스 게임이 인상적이었던 24년 전 서울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2008 북경올림픽 개막식이 한 편의 화려한 북경오페라를 연상시키면서도 관제의 느낌이 진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답은 금방이지 않을까.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미스터빈' 로앳 왓킨슨

  보트로 성화봉송 주자를 에스코트하는 데이비드 베컴

 

미스터 빈, 007, 해리포터, 이렇게도 풍성하다니

 

28일 오전 8(한국 시간)부터 생중계로 방영된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미스터 빈' 로왓 앳킨슨이 등장한 자체로도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전세계인에게 친숙한 이 불세출의 코미디언은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육상 선수의 실화를 그린 영국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옆에 직접 앉아 시치미를 뚝 떼고 코믹 연기를 시작했다. 올림픽 정신과 감동 실화를 그린 영화, 명장 반젤리스의 음악과 로왓 앳킨슨의 코믹 연기를 한데 묶는 여유라니.

 

이런 풍성한 함의는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여왕 엘리자베스 2(를 연기한 대역)가 현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보자. 실제 영화처럼 007이 여왕을 호위하는 화면을 선보인 뒤, 헬기를 탄 여왕의 대역이 먼저 점프를 시도하면서 낙하산을 펴는 유머가 삽입된다. 영국이 낳은 전세계적인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여왕의 만남, 그리고 호들갑스럽지 않은 영국식 유머까지.

 

그렇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올림픽 개막식은 '경이로운 영국'을 주제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대중문화와 접목시켜 과시하는 탁월함과 풍성함을 자랑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이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M. 배리의 기부를 통해 지어졌다는 아동병원의 아이들이 등장한 가운데, <피터팬>의 첫 구절을 낭송하는 장면은 어떠한가.

 

영국의 국가적 자랑으로 국민건강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와 아동문학을 내세운 것도 놀랍지만, 이를 <해리포터> <피터팬>의 악당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메리 포핀스>, 그리고 <피터팬>이 탄생시킨 아동병원과 아이들로 연결시키는 자부심과 영민함은 분명 그간의 올림픽 개막식에서 접해 볼 수 없던 종류의 신선함이었다.

 

무엇보다 산업혁명을 형상화하며 노동자의 피로와 노조 탄생의 의미까지 역설하는 올림픽 개막식을 또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더욱이 자본에 의해 지배된 지 오래이며, 이번 개막식 역시 480억을 쏟아 부었다는 국가대항제전 '올림픽'에서 말이다. 영국 제국주의의 흑역사까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노동과 복지, 문화를 접목시키는 것으로 만족해도 충분치 않겠는가.

 

'판타스틱'하단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모던한 감각으로 과거와 현재,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있자니, 대니 보일이 연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등장 인물이 모두가 하나 되어 행복하고 경쾌한 군무를 추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런던올림픽 개막식 피날레를 장식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비틀즈로 마무리한 대니 보일의 자신감, 폐막식이 고대된다

 

"그동안 다른 나라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는 '너희는 우리나라의 요런 거 몰랐지?' 이런 거였다면 런던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는 ', 너네도 이거 다 알지?' 이거임."

 

개막식을 감상한 만화가 김풍(@kimpoong)의 감상평이다. 그런니까, 올림픽 개막식에 섹스피스톨즈의, 레드 제플린의, 퀸의, 더 후의, 데이비드 보위의 명곡들이 울려 퍼지고 이에 관객들이 환호하는 광경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니 보일은 이와 함께 '디지털 문화''가족'을 연결시키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SNS 시대의 소통을 토요일 밤의 평범한 가족의 일상과 클럽문화, 그리고 젊은이들의 사랑으로 형상화했고, 그 끝을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의 등장으로 마무리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배경엔 역시나 20세기를 점령한 영국의 팝과 록음악들이 자리했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경호의 등장과 함께 성화봉송은 신구 올림스타들이 함께했다. 이후 피날레는 20세기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첨병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등장, <헤이 주드>를 완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비틀즈의 상징성과 명성, 그리고 영국 대중문화의 위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개막식의 성격에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예상을 웃도는 개막식의 감흥에 벌써부터 폐막식에 고대하는 이들이 양산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부디, 폐막식엔 폴 매카트니의 무대를 광고 화면으로 대체한 MBC와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풍성한 대중문화의 향연을 향유하기 위해선 그 만큼의 감수성과 철학이 필요하다는 걸 방송사 차원에서 입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하성태(wood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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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보여준 대서사시 

 

올림픽 개막식은 제30회 런던올림픽 이전과 이후로 나뉠 듯하다. 작가주의 개막식 출현,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대니 보일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시초였다. 중국 제5세대 감독으로 유명한 장이머우가 개막식 총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장이머우는 그만의 독특한 색채 감각과 전통적 이미지를 결합시켜 스타디움을 무대예술 공간으로 창출해냈다. 대니 보일 개막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개막식을 시각 예술에서 스토리텔링 예술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어떤 올림픽 개막식도 이처럼 완벽한 서사를 갖춘 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개 개막식은 완결된 국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시각적 메타포(은유나 상징)가 많았다. 이미지는 강렬한 인상이다. 반면 서사는 단단한 메시지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대니 보일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전달한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의 힘, 자존심이라는 메시지다. 대니 보일은 수많은 이름과 제도를 열거함으로써 영국의 문화적 힘을 16세기 출생 셰익스피어에서 21세기 인물들로 끌어 올린다. 그에 따르면 영국은 과거의 국가가 아니라 미래의 국가다. 

대니 보일은 이 현대성을 위해 영국 역사를 과감하게 산업혁명 이후부터 출발시킨다. 산업혁명 중심으로서 영국, 그리고 그 부작용처럼 발생했던 1ㆍ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까지 보여주며 대니 보일은 그 역사적 공과에 대해 고백한다. 그는 사죄라는 역설적 제스처를 통해 20세기 역사의 중심이 바로 영국이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흔히 영미권 문화라고 얼버무렸던 수많은 현대적 문화 자산의 빈티지를 정확히 밝혀낸 것이다. 대니 보일은 우리가 즐기는 대중문화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영국산이었는지 알려준다. 놀라운 것은 대니 보일 말처럼 영국의 문화적 자산 중 세계적인 것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해리 포터, 피터 팬, 비틀스, 제임스 본드와 미스터 빈 등. 아니나 다를까. 그 이름 중 우리가 모르는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은 매우 영국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문화의 흐름을 이끄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대니 보일 개막식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영국 문화의 자존심 중 하나를 개방성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옹호, 여권신장 운동, 무상 의료에 대한 지지까지 대니 보일은 영국의 정치적 힘을 바로 이 공공성의 존중으로 규정한다. 이 또한 강렬한 메시지를 지닌 대니 보일 개막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말하자면, 대니 보일 개막식은 올림픽 개막식이라는 공공재이자 작가 대니 보일의 독립적 작품이기도 하다. 대니 보일의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영화가 기록에서 예술로 성장한 순간과도 겹친다. 영화가 편집과 미장센(분장이나 무대장치 등 시각적 배치)에 의해 예술이 되었듯이 대니 보일은 자신의 개막식 작품에 편집과 미장센의 미학을 최대화했다. 가령 제임스 본드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의전하고 헬리콥터에서 낙하하는 장면은 편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위트다. 이불을 덮고 해리 포터를 읽는 아이를 클로즈업한 영상이 대형 화면으로 투사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니 보일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를 현장의 무대예술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스토리를 가진 개막식, 아마도 런던올림픽 이후 개최될 올림픽의 개막식 연출자들은 독자적 컨셉트뿐만 아니라 그것을 풀어가는 서사 방식, 게다가 작가적 전언까지 반드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강유정 영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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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두를 위한 개막식 - 정윤수 / 문화평론가

 

올림픽이 그렇듯이, 그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은 언제나 국가주의의 경연장이 되어왔다. 18961회 대회 때 그리스의 국왕 조지가 개막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화해''친선'이라는 수사를 고명처럼 얹은 올림픽의 국가주의적 개막식은 날로 팽창해왔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는 무려 3천여명의 합창단이 히틀러를 위해 노래했고 1964년 토오꾜오올림픽 때는 히로시마 원폭투하 때 태어난 사람이 성화의 최종주자였다. 두차례의 반쪽 올림픽을 거친 후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은 개발도상국이 자국의 민족주의적 아이콘에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열렬히 펼쳐낸 대회였다.

 

그 결정판은 2008년의 베이징올림픽이다. 직전 대회에서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이, 자국의 근현대사의 비극이나 아픔을 고대신화를 소재로 한 장려한 아름다움으로 잠시나마 가려보고자 한 것에 비해, 베이징은 태산이 솟아오르고 장강이 흘러 넘치는 '대륙굴기'의 근육질 넘치는 중화주의를 맘껏 표출했고, 그래서 싱거웠다. 장 이머우 감독은 비둘기로 평화를 노래하고 아이들의 합창으로 미래를 예찬하는 식의 진부한 연출을 엄청난 규모의 인원과 압도적인 스케일로 얼버무렸다.

 

올림픽 개막식의 두 극단, 베이징과 런던

 

중화주의의 깃발이 펄럭거린 베이징의 개막식은, 중국의 체조 스타 리 닝이 마치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장면처럼 허공을 밟으며 성화에 불을 피우는 등의 놀라운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결론은 중화주의였다. 100여년의 올림픽 개막식이 결국 그 나라의 국가주의적 상징을 집대성하여 펼쳐내는 공간임을 그들은 여실히 입증했다. 그래서 지루했다. 지나치게 호사스럽게 치장한 결혼식장의 뷔페 음식 같았다.

 

그랬는데, 이번 대회는 조금 달랐다. 우선 첨단 디지털 프로젝션 같은 시청각적 스펙터클이 크게 줄었다. 베이징에 비하여 오히려 아날로그적이었다. 농촌 풍경이 산업화의 공장지대로 바뀌는 장면에서, 출연자들은 경기장에 잠시 깔아놓았던 잔디를 둘둘 말아서 들고 나갔다.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일종의 자신감마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레이저쇼나 디지털 프로젝션으로 순식간에 시공간을 이동하는 깜짝쇼 같은 것을, 개막식 연출자 대니 보일 감독은 사양했다. 컴퓨터 그래픽은 최소한도로 사용되었다. 역대 대회 때마다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고 서있는 여성들이 '늘씬한 미녀'였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평범한 여성'들이 보랏빛 옷을 입고 서있는 것과 '맥락'이 일치하는 연출이었다.

 

그 대신, 대니 보일은 윌리엄 블레이크를 택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더 템페스트>의 대사 '두려워하지 마라. 이 섬은 소음으로 가득할 것이다를 시작으로 비틀스의 <헤이 주드>로 마무리되었지만, 개막식 전체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정신이 지배했다.

 

개막식 전체에 흐르는 블레이크 시

 

우선 개막식 앞부분에서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의 풍광이 보이고 이를 배경으로 각 지역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바로 블레이크 시를 바탕으로 한 <예루살렘>이다. 산업혁명을 침통한 시선으로 바라본 블레이크의 시에 곡을 부친 <예루살렘>19세기 중엽에 영국 사람들이 국가로 채택하자고 운동까지 벌인 바 있다. 개막식 후반에 리버풀 출신의 사이먼 래틀이 런던심포니를 지휘하여 영화 <불의 전차> 주제곡을 연주했는데(대회 시상식 테마곡으로도 쓰인) 이 곡의 제목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역시 블레이크의 시 <예루살렘>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

잉글랜드의 푸른 산 위를 거닐고

신의 성스러운 양이

기쁨의 풀밭 위에 보였네

구름 낀 산 위로

성스러운 얼굴도 빛났을까

여기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 사이

예루살렘이 세워졌을까

 

런던 앨비언 태생인 블레이크는 1769년에 세워진 앨비언 제분소를 보며 성장했다. 산업혁명의 주인공인 증기기관 발명자 제임스 와트가 버밍엄의 공장주 매튜 볼튼과 합작으로 세운 이 제분소는 전통의 가내 제분소를 몰아낸 공장식 생산의 상징이었다. 블레이크는 이 거대한 '악마의 맷돌'을 비참하게 묘사했고 이를 받아서 칼 폴라니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마저 거대한 물신의 맷돌로 파괴시키는 자본주의의를 해부한 책 거대한 전환21장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개막식 전체를 관류하는 정신으로 블레이크 시를 선택한 대니 보일의 연출은 산업혁명의 거대한 공장 굴뚝을 묘사하는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국내 방송사들은 이 장면을 '산업혁명으로 인류 생활을 바꾼 영국의 자부심의 표현'이라는 식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대니 보일의 생각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진부한 이해다. KBS <뉴스9>는 심지어 "거대한 굴뚝들이 솟아오르고 산업혁명의 힘찬 고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런던의 수많은 굴뚝과 그것을 청소하는 어린아이의 비참한 삶을 통탄했고 대니 보일의 연출 지시에 따른 수많은 출연진 역시 시종 침통한 표정으로 블레이크의 정신을 재현했다.

 

제국의 영광 대신 민중의 희로애락 그려내

 

대니 보일은 두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전쟁의 기억을 생략하는 대신 19세기의 여성참정권 운동이나 1936년 대량실업 상황을 묘사했고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묘사하는 대신 자메이카 등지에서 대량 유입되는 이주민의 지친 표정을 재현했다. 이를 두고 집권 보수당의 애이단 벌리 의원이 "가장 좌파적인 개막식"이라고 비난했지만 대니 보일은 각 소재들은 "예찬할 만한 훌륭한 일이며 그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민족주의 상징들이 온갖 첨단 기술로 재현되고 과도한 국가주의가 화려한 불꽃쇼로 치장되어 자화자찬의 과장된 퍼포먼스로 일관되어온 기존의 개막식에 비추어 볼 때 확실히 대니 보일의 개막식은 제국의 다른 '훌륭한 일'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가슴 벅차고, 위트있고, 장대하면서도 사려깊고, 감동적인 개막식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대니 보일이 선택하고 재현한 요소들은, 그의 말처럼 '지지할 만한 훌륭한 일'들이었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테리 이글턴은 서평집 반대자의 초상에서 "한 국가의 역사는 교향곡이나 연속극이 아니듯이 플롯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어떤 일관된 민족주의적 흐름을 타고 한 나라의 역사가 빨랫줄처럼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 기존 개막식(특히 서울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의 관념이었다면 대니 보일은 "영국 역사에는 조형의 의도라는 게 없으며 대영제국이라고 불리는 대단한 업적을 휘리릭 만들어내놓은 것이 아니다"라는 테리 이글턴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대니 보일은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까지 당대성을 지닌 가치들을 선택하였고 그것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현했다.

 

'좌파적 개막식' 논란 잠재운 과감한 연출

 

두루 얘기한 바와 같이 그것은 노동에 대한 존중, 더 나은 삶을 위한 헌신, 그것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요약된다. 이런 측면 때문에 '좌파적인 개막식'이라는 비난을 듣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번 개막식의 주제이기도 한 '이것은 모두를 위한 것'(This is for everyone)이다. 그런 뜻에서, 블레이크는 오래전에 <예루살렘>이라는 시를 썼던 것이다.

 

나에게 이글거리는 황금의 활을 다오.

나에게 열망의 화살을 다오.

나에게 창을 다오; 구름아 걷히거라.

나에게 불의 전차를 다오.

나는 정신의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나의 칼이 손에서 가만히 잠들게 하지 않으리라.

 

2012.8.8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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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보다 콘텐트 영국 문화의 힘 보여준 개막식

 

27일 밤(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비틀스가 활동할 당시의 공연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고 있다. 이날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를 부르면서 개막식의 엔딩을 장식했다. 연출을 맡은 대니 보일 감독은 비틀스와 해리 포터, 셰익스피어 등 콘텐트를 앞세운 문화 개막식으로 올림픽의 성대한 막을 올렸다. [런던 AFP·로이터=연합뉴스]

 

27일 밤(현지시간) 열린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이른바 영국류(英國流)가 세계와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를 3시간의 장편영화처럼 보여줬다. 영국의 세계적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로 시작해 비틀스의 명곡 헤이 주드로 마무리 지은 대서사의 지휘자는 영국의 세계적인 영화 감독 대니 보일(55)이다. 그는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로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쓴 바 있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의 자랑거리를 마음껏 뽐내는 축제다. 그리스와 중국은 아테네 올림픽(2004)과 베이징 올림픽(2008)을 통해 자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과시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사상 최대 규모인 1억 달러(1140억원)를 투입해 수퍼 파워중국의 위세를 전 세계에 떨쳤다. ‘야심 찬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61)가 지휘했다.

 

 

007과 함께 헬기를 타고 스타디움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여왕(스턴트 대역)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런던 AFP·로이터=연합뉴스]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언 앳킨슨이 깜짝 등장해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런던 AFP·로이터=연합뉴스]

개막식에서 노동자들로 분장한 출연자들이 용광로에서 O자형 링을 만들고 있다. 용광로는 산업혁명을 상징한다. 이 링이 올라가 4개의 원과 합쳐져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 모양을 만들었다. [런던 AFP=연합뉴스]

 

스토리로 차별화=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그런 위세와 규모 대신 스토리를 택했다. 대니 보일 감독에게 주어진 예산은 베이징 올림픽의 절반도 안 되는 4800만 달러였다. 물량과 규모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차별화된 콘텐트로 승부를 보자는 의도였다. 영국의 풍부한 문화 콘텐트는 스토리 있는 올림픽 개막식을 만들어내는 밑바탕이 됐다. 대니 보일 감독은 셰익스피어, 비틀스, 007, 미스터 빈, 해리 포터 등 영국에서 태어나 전 세계의 것이 된 영국 문화상품을 개막식의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이런 익숙한 소재들로 전 세계에 친근하고 리버럴한 영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서울대 변창구(영문과) 교수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교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면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민족적 색채를 배제하고 글로벌한 이미지를 줬다고 평가했다. 올림픽의 서막을 알린 건 셰익스피어의 희곡 더 템페스트의 대사가 적힌 대형 올림픽벨이었다. 한국 셰익스피어학회장 박정근(대진대) 교수는 화합의 장인 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묶어줄 상징적인 인물로 셰익스피어를 활용한 것은 적절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과시하지 말되 유머 있게=곳곳에 유머코드를 넣은 것도 베이징 올림픽과의 차별점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007의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의 헬기 낙하 연출이나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언 앳킨슨(57)의 깜짝 등장은 허를 찌른 개막식의 백미였다. 007의 헬기 낙하 연출은 007 탄생 50주년 영화 ‘007 스카이폴의 제목을 재치 있게 은유한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연출에는 영국인 특유의 진지하지 않기규칙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인의 특성을 관찰한 사회학자 케이트 폭스는 진실함(sincerity)은 괜찮으나 진지함(earnestness)은 절대 안 된다. 이 미묘한 차이를 모르면 영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대니 보일 감독은 산업혁명, 복지제도, 인권보장 등 자국의 역사를 보여주면서도 열광적이거나 장엄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이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풍자·해학으로 그려낸 셰익스피어, 인간의 내면을 냉소적으로 들여다본 오스카 와일드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막식의 대미는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70)가 장식했다. 현장의 8만 관중은 물론 전 세계가 그와 함께 헤이 주드를 불렀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영국이 자국의 팝음악을 가장 훌륭한 문화상품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라며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이 지금은 문화콘텐트의 매력으로 영향력을 과시하는 강대국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콘텐트 내세울까=전문가들은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듯 예산과 스케일이 아닌, 소통과 매력이 성공적인 개막식의 관건이라는 점을 인천 아시안게임(2014)과 평창 겨울올림픽(2018)을 앞둔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21세기 스포츠제전은 지난 세기 행사들과 달리 하나 된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비틀스 노래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발달된 정보기술(IT) 문화,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등 문화적 공유점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76·인천 아시안게임 개·폐막식 총감독)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용광로 쇳물이 오륜기로 연결되는 장면이 돋보였다한국적 정서에 젊음과 첨단 IT 기술을 접목해 감동적인 개막식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 20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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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식 하이라이트

http://sports.media.daum.net/london2012/highlight/all/#id=30714